25살의 결단
올 해 1월 7일, 노기자카46에서 졸업 할 것을 발표한 후카가와 마이. 2011년 8월에 오디션에 합격, 1기생 멤버로서 활동을 시작 한 지 약 4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성모’라는 애칭과 그룹의 ‘치유’의 상징으로 사랑 받아 온 그녀는, 대체 어떻게 성장 해 온 것일까. 우선 시즈오카에서 보낸 그녀의 유소년기부터 짚어보도록 하자.
초등학교 때, ‘얌전한 아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았습니다만, 실제로는 나무 타기를 좋아했어요. 어릴 때부터 ‘봉’같은 게 있으면 우선 타고 올라가곤 했지요. (웃음) 밖에 나가서 놀이기구 같은 것을 타며 노는 걸 좋아했어요. 그렇게 보이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자연 속에서 컸거든요.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해서, 신문에 들어 간 광고 전단지 중에 뒷면이 백지인 것들을 모아서 거기다가 그림을 그리곤 했어요.
당시에 엄마가 톨페인팅 (※ 오래된 가구나 상자 같은 곳에 그림을 그려서 장식하는 인테리어 데코레이션의 일종) 교실을 하셨기에 나무에 그림을 그리거나 목공예 같은 건 일상이었거든요. 그렇게 엄마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며 저도 옆에서 ‘나도 그림 그릴래’ 라며 낙서를 하다 보니 그림을 그리게 되었던 것 같아요.
- 실제로는 활발한 편임에도 항상 얌전한 아이로 보이는 데에 대해 반발하기도 했다고 하는 그녀.
실제로도 얌전한 편이긴 하지만, 당시에는 저를 그렇게만 보는 주변 시선이 싫었어요. 그래서 ‘머리가 짧으면 활발한 아이로 봐 주겠지?’라 생각해서 엄청 짧게 잘랐던 적도 있을 정도랍니다.
물론 친한 친구들 앞에서는 장난도 잘 치고 본래 저 자신의 모습을 내보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친한 친구가 아닐 경우에는 스스로 말을 걸거나 하지 못 하는 편이었기에, 낯가림이 심하긴 했지만요. 하지만 노기자카에 들어 온 뒤, 일을 하면서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늘어, 요즘은 예전보다 덜 긴장하며 다른 사람과 이야기 나눌 수 있게 되었어요. 오히려 처음 만나는 분과도 ‘더 이야기 나누고 싶다’고 생각 할 정도가 되었지요.
- 어릴 때엔 어떤 직업을 갖고 싶었는지 물어 보았다. 어릴 적부터 연예계에 대한 동경은 있었느냐고.
초등학생 때엔 여러 분야에 관심이 있었어요. 자주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 하곤 했는데, 한 편으로는 와가시(※ 일본식 과자. ‘화과자’) 장인도 되고 싶었지요. (웃음) 뭔가를 만들어 내는 ‘크리에이티브한 직업’을 갖고 싶었던 것 같아요.
연예계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중학교 때 쯤이었던 것 같아요. 원래 여자아이들이란 중학생 때쯤부터 패션 잡지를 사기 시작하곤 하잖아요. 저 역시도 비슷했어요. 저랑 비슷한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엄청 귀엽고 블링블링한 화장을 하고 귀여운 옷을 입고 잡지에 실려 있는 것을 보며, 헤어 메이크 특집을 혼자 따라 해 보기도 하곤 했지요.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그 때 부터였던 것 같아요. 물론 그 당시에는 그렇다고 해서 오디션을 받으러 다니거나 하진 않고, 그저 잡지를 보는 정도였지만요.
-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그림’에 대한 열망은 중학교에 들어 갔을 때쯤부터 본격화 되었다고 한다.
중학교에 들어 가, 미술부에 들어 갔어요. 고등학교는 보통과와 예술과로 나뉘어 있는 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는데, 예술과를 선택했지요. 예술과는 보통과보다 미술 수업이 많은, 좀 특이한 커리큘럼이었어요. 고 2가 되었을 때 부터는 아예 수학 시간이 없어졌고, 미술 시간이나 각자의 전공 수업 시간이 많아졌지요. 체육이나 국어 같은 과목은 좋아했지만, 점차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를 만들거나 하는 데에 더더욱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 앞서 실린 이코마 리나, 이쿠타 에리카와의 대담에서 ‘노기자카46에 들어오기 전, 부 활동 같은 때에도 딱히 그렇게 상하관계가 엄격하지 않았다’고 이야기 한 후카가와. 부 활동 외에도 비교적 평화로운 학교 생활을 보냈던 것일까?
중학교 때엔 무서운 선배들도 있었어요. 예를 들어 주차장에서 진 치고 있다가 치마 길이가 좀 짧은 후배들이 지나가면 일일이 주의를 주는 선배라던가. (웃음) 하지만 부 활동 때는 그런 일이 전혀 없었어요. 딱히 운동부에 들어 갔던 것도 아니기에, 운동부에서 흔한 엄격한 상하관계 같은 건 느껴 본 적이 없네요. 테니스부였던 친구를 보면서 ‘힘들겠다’고 생각 한 적은 있지만, 제가 속해있던 미술부는 정말이지 평화 그 자체였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육상부에 들어갈 까 생각 하기도 했었는데, 장거리 종목이 쥐약이라… (웃음) 그래서 ‘그림 그리는 것 좋아하니까’ 라며 미술부를 골랐습니다.
-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후카가와는 의복 계열 전문학교에 진학하였다.
물론 그 당시에도 연예계에 대한 동경은 있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 한 직후, 아무 것도 없는 상태였기에, 상경해서 혼자 살 엄두는 내지도 못 했고요. 그래서 일단 뭔가 기술을 배워두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고야에 있는 전문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나고야에서의 생활이 제 생애 첫 홀로서기였는데, 나고야에서의 생활은 정말 즐거웠답니다. 시즈오카 출신이다 보니 나고야에 대한 첫 인상은 ‘도시’라는 거였어요. 사람도 많고, 나고야역도 엄청 넓고… 처음에는 지리도 잘 모르고 했기에 혼자 잘 해 낼 수 있을까 걱정도 많이 되었지만, 살다 보니 점점 익숙해지고, 살기 편한 곳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전문학교 친구들이 시내 이 곳 저 곳을 안내 해 주기도 했고, 함께 밥을 먹으러 다니기도 하는 등, 매일매일 즐거운 나날이었습니다.
- 전문학교를 졸업 한 뒤의 진로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을까?
전문학교는 2년제였어요. 그리고 졸업 한 뒤에는 평범하게 취직 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하지만 취직 해 버리면 연예인이 되겠다는 꿈은 접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취직을 하느냐 마느냐 결단하는 게 어떤 의미에선 마지막 결단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지요. 그리고 여기서 취직을 택하면 나중에 가서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렇기에, 잘 풀리지는 않을 지도 모르지만, 아예 해 보지도 않고 후회하기 보다는 도전이라도 해 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상경할 결심을 하게 되었지요. 아마 그 때 도쿄로 올라 올 결심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 때 도쿄로 갔어야 했는데’라고 언제까지고 후회했으리라 생각해요.
부모님과도 상담을 했는데, 부모님도 딱히 절대 안 된다고 강하게 반대하시는 타입은 아니라서 말이지요. 제가 어느 정도 생활 할 수 있을만한 돈을 모으고, 확실히 생활할 수 있다면 일단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시켜주시고, 응원 해 주시는 분들인지라 제가 도쿄로 올라가겠다고 했을 때도 ‘그럼 가기 전에 몇 년 해 보겠다고 확실히 정하고, 그 기간이 끝났을 때에도 성과가 없다면 돌아 오렴’이라 말씀 하시는 정도였지요.
- 후카가와는 그렇게 2011년 봄, 도쿄로 상경한다. 나고야에서 보낸 2년과는 또 다른 생활이 시작 된 것이다.
나고야와는 완전히 달랐지요. 처음 도쿄로 왔을 때, 대학 문제로 먼저 상경 해 있던 고향 친구가 시부야를 안내 해 줬어요. 마루큐 같은 곳에 처음 갔을 때, ‘와, 대단해!’ 라며 엄청 사진을 찍어댔지요. (웃음) 학생 때 읽었던 패션 잡지에 소개 된 가게들도 엄청 많았고요. 사실 그런 가게들, 잡지에서 보고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시즈오카에는 없는 가게들인지라 저랑은 연이 없다 생각했었거든요.
그렇기에 모델들이 입고 있는 그런 가게의 옷들을 보며 ‘예쁘다’고 생각만 할 뿐이었는데, 도쿄에 올라 오니 그런 가게들이 한 데 모여 있는데다가, 그런 가게들 이외에도 온갖 것들이 한 곳에 있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정말 엄청나게 놀랐어요.
당시에는 오디션을 받는 동시에 미용실의 컷 모델을 했어요. 미용실 비용이 비싸서 큰 부담이 되지만, 컷 모델을 하면 공짜로 자를 수 있었거든요. 그 뿐 아니라 사진도 예쁘게 찍어 주시기도 하니 일석이조였지요. 모델이나 배우에 대한 동경이 있었기에 그 쪽 오디션을 주로 받았어요. 사실 나이도 있고 하니 아이돌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안 했지요.
- 그랬던 그녀가 ‘노기자카46’이라는 아이돌의 오디션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1기생’을 뽑는다는 것에 끌렸어요. 아마 10기생 같은 기수였다면 오디션을 받지 않았을 것 같은데, 1기생으로서 처음부터 그룹을 만들어 간다는 것에 흥미가 갔지요. 그리고, 칸무리 방송이 확정 되어 있는 등, 여러 모로 축복받은 환경이기도 했고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한 번 응모 해 볼까?’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당시에는 아이돌에 대해서 거의 무지했거든요. AKB48의 노래를 제대로 들은 것도 전문학교 다닐 때, 친구에게 앨범을 빌려 들은 게 처음이었을 정도였고요. 물론 어릴 때 모닝구 무스메。를 좋아하긴 했습니다.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다가시야(※불량식품이나 간단한 군것질거리를 파는 구멍가게)에서 파는 모무스의 씰을 모았기에, 저로 원하는 멤버가 나오면 교환해서 파일에 모으곤 했어요. 초등학생 때는 사실 미니모니。에 들어가는 것이 꿈이기도 했고요. (웃음) 하지만 미니모니。 (※미니모니는 결성 당시 150cm 미만 멤버가 모여 만든 그룹이었음)에 들어가기에는 키가 커서… 노래 하고 춤 추는 것에 대한 동경은 있었어요.
- 모무스를 좋아하긴 했지만, 본인이 춤을 배우거나 노래를 배운 적은 없다는 그녀.
당시에는 춤이고 노래고 배운 적이 없어요. 친구들의 가족들과 함께 디즈니랜드에 간 적이 있거든요. 근데 디즈니랜드의 쇼 같은 데에서 ‘함께 춤 추자’며 관객들을 부르는 경우가 있잖아요? 함께 간 친구는 엄청 활발한 아이라서 바로 그 안으로 들어 가 춤을 추었어요. 저 역시 그 안으로 들어 가 함께 춤을 추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 했지요.
신나게 춤을 추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부럽다…’ 라는, 저도 모를 복잡한 마음이 생겼어요. 부럽기도 하고, 나도 나가서 함께 춤 추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 하고 ‘부끄럽다’는 마음이 앞서 버린 것이지요.
마음 한 편으로는 춤 추고 노래하는 데 대한 동경을 갖고 있으면서도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너무 부담되고 싫었던 아이, 학교에서 발표하는 것 조차도 싫어하는 아이였답니다.
- 그랬던 그녀는 이후 고교에 들어 가, 밴드 활동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경험을 살려 노기자카46에 들어 와서는 그룹 내의 밴드 유닛 ‘노기단’의 기타리스트로서 활약하게 된다.
고등학교 축제에서 밴드를 하게 되었어요. 제가 다니던 학교 예술과는 미술 전공과 음악 전공이 있었는데, 음악 전공 친구들이 ‘기타 칠 사람이 없는데 마이쨩이 기타 맡아 주지 않을래?’ 라고 이야기를 했거든요. 그 얘기를 듣고 연습을 시작했지요.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하는 것은 엄청 긴장 되었지만, 끝난 뒤에 느껴지는 달성감이 대단했어요. 나중에 ‘해 보지도 않고 못 한다고 단정짓지 않길 잘 했어’라고 생각했지요.
지금 생각 해 보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선보인다는 것의 원점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 노기자카의 오디션 얘기로 돌아 가 보자. 여러 차례에 걸친 심사들을 통과하며 그녀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을까.
정말로 어찌 될 지 몰라 불안했어요. 오디션 때, 제 곁에 있는 아이와 이야기를 하긴 했는데, 그 아이도 도중에 탈락 하거나 했기에 그런 모습을 보며 불안감은 점점 더 커졌지요.
아무래도 아이돌 오디션이다 보니 주변에는 온통 귀엽고 빛나는 아이들 뿐이기도 했고요. 다른 후보생들을 보며 ‘아, 이런 아이들이 연예인이 되는 거구나’라고 생각했지요.
- 그런 그녀 역시 38,934명의 응모자 중 36명만이 뽑힌 노기자카의 1기생에 뽑혔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로 요행이었다고,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아직도 어떤 기준으로 제가 뽑힌 것인 지를 모르겠거든요. 다른 멤버들과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저를 뽑은 건 아닐까 생각은 합니다만. (웃음)
솔직히 제 이름이 불렸을 때, ‘아… 오…’ 이런 정도의 느낌이었거든요. (웃음) 다큐멘터리 영화였던가… 제 이름이 불리는 순간이 찍힌 영상이 있었는데, 다른 멤버들은 이름이 불리면 울곤 하는데 저는 ‘에?’라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더라고요. (웃음)
물론 합격 한 것은 기뻤고, 기왕 여기까지 온 거 끝까지 가 보자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아이돌’이 된 뒤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전혀 감이 안 잡혔거든요. 하지만 도쿄에 올라 와 처음으로 합격 한 오디션이기도 했기에, 이왕 붙은 거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 당시 후카가와의 나이는 20세. 대부분의 멤버들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합격자 발표가 끝난 뒤, 유미네와 함께 주변 멤버들에게 ‘몇 살이니?’라고 물었어요. 사실 동갑인 멤버 (유미네)가 있어서 한 숨 돌리기는 했는데, 다른 멤버들 얘기를 들어보니 전부 저희보다 한참 어리더라고요. 마아야는 심지어 당시 13살이었고요. (웃음)
사실 이전까지는 이렇게 많은 어린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일이 딱히 없었거든요.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야 후배라고 해 봤자 1~2살 어린 아이들인데다가, 아르바이트를 함께 한 것은 대부분 연상이 많았고 해서, ‘이렇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 잘 지낼 수 있을까? 친해 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걱정도 많이 했어요. 다들 착한 아이들이라 정말 다행이지요.
- 아이돌로서 활동을 시작 한 뒤로 경험 한 것들은 대부분이 지금껏 경험 한 적 없는 것들, 익숙치 않은 것들 뿐이었다고 하는 그녀. 당시에는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고 하는데.
아이돌이라는 일은 제가 생각 했던 것 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어요. 전문학교 때 AKB의 앨범을 빌려서 듣거나, TV에서 보거나 하며 갖게 된, 막연한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지요. 그것도 초반에는 레슨이 주말에만 있었기에, 평일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다시피 했거든요.
당시에는 나쨩처럼 주말에만 도쿄에 올라 와 레슨을 받고, 월요일에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 가 학교에 다니곤 하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저나 나나밍처럼 아예 상경을 한 멤버들은 정말 할 일이 없었죠. 아르바이트도 하면 안 됐고, 돈이 없어서 놀러 다니지도 못 했고, 마찬가지로 돈이 없으니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니지도 못 했고요. 정말이지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불안할 따름이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 해 봐도 당시에 무슨 일을 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에요. (웃음)
- 그러던 와중에 그룹 내에 선이 그어진다. ‘선발’과 ‘언더’라는 선이.
데뷔 싱글 선발 멤버라던지 메이지 수제 초콜릿 CM 선발 같은 게 순식간에 정해졌지요. 그런 것을 보고 처음으로 ‘아, 이게 연예계구나’라고 느꼈습니다. 특히 ‘구루구루 커튼’ 선발 멤버에 뽑히지 않았을 땐, 의미 깊은 데뷔곡을 부르지 못 하게 되었다는 게 정말 슬펐습니다.
또, 데뷔 당초부터 함께 힘을 모아 걸어 온 멤버들 사이에 ‘선발’과 ‘언더’라는 선이 그어 진 것도 정말 충격적이었지요. 지금이야 언더 멤버들도 일을 많이 하지만, 당시 언더는 정말 할 일이 없었어요. 1, 2주일 연속으로 일이 아무 것도 없던 적도 있을 정도였지요. 뭔가 하고는 싶은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다가, 무엇을 어떻게 노력해야 좋을 지도 모르겠고… 지금까지 중에서 그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 그리고 첫 번째 싱글 선발 발표를 계기로, 연예계에 대한 후카가와 본인의 생각도 바뀌었다고.
다들 사이가 매우 좋긴 하지만, 그 선발 발표를 계기로 ‘이 곳은 학교와는 다르구나’ 라고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싱글이 발매 될 때마다 선발 멤버를 정하거나, 누가 선발에 들게 되면 누군가가 떨어지게 되는 그런 시스템은 정말로 괴롭습니다만, 그런 곳에 뛰어 든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 이미 발을 들인 이상, 그런 것들도 뛰어 넘어야만 하는 시련인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멘탈이 정말 튼튼해졌어요.
- 1st 싱글, 2nd 싱글 활동기간 동안 후카가와는 언더에서 활약하게 된다. 2nd 싱글에 수록 된 커플링곡, ‘늑대에게 휘파람을’ 에선 프론트 멤버로 발탁되기도 했던 그녀.
‘늑대’에서 프론트 멤버로 뽑혔을 때, 정말로 기뻤어요. 언더 곡 뮤직 비디오가 제작 된 것도 ‘늑대’가 처음이었기에 더더욱 기뻤지요.
선발에 들고 싶다는 의욕, 더욱 더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을 전부 그 곡에 쏟아 붓기로 마음 먹고, 언더 멤버 전원이 필사적으로 춤을 체크하고 또 체크했지요.
그렇기에 ‘늑대’는 지금도 제게 있어 너무나도 소중한 곡이에요. 버스데이 라이브 같은 데에서 그 곡을 선보일 때 마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만 같아서 기합이 팍 들어갑니다.
- 올 해는 수도권 내 콘서트장이 부족했기에, 2월 22일에 열려야 할 버스데이 라이브가 연기되었다. 그 대신 데뷔 4주년 기념 기획으로 인터넷 방송, ‘노기자카46. 4th Anniversary 노기자카 46시간 TV’가 방영되었다.
이 때 열린 스페셜 라이브는 후카가와가 지금껏 발매 된 13장의 싱글에서 한 곡씩을 뽑아 그 곡을 선보이는 형식이었다. 이 때 후카가와가 2nd 싱글에서 선곡 한 것이 바로 ‘늑대에게 휘파람을’ 이었다.
그리고 3rd 싱글에서 고른 곡은 후카가와가 처음으로 선발에 뽑힌 의미 깊은 곡, ‘달려라! Bicycle’이 아닌 언더곡 ‘눈물이 아직 슬픔이던 시절’ 이었다. 5th 싱글에서는 본인이 참가한 유닛곡인 ‘딱밤’이 아닌, 3월에 졸업을 앞 둔 나가시마 세이라가 처음으로 선발에 뽑힌 ‘너의 이름은 희망’을 선곡하기도 하는 등, 노기자카46이라는 그룹 자체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주기도 하였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 하시는 거에요? 기쁘네요. (웃음)
사실 정말로 선곡이 힘들었어요. 싱글마다 한 곡만 골라야 하는데다가, 발매 순서대로 진행해야만 했거든요. 좋아하는 곡들이 정말 많았기에 엄청나게 고민하고 고민 한 끝에 완성시킨 세트리스트였습니다. 하지만 라이브 세트리스트를 정하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재미도 있었고, 제가 고른 곡을 멤버들이 열심히 퍼포먼스 해 주는 모습을 보고 기쁘기도 했어요.
- 앞서 이야기 하였지만, 후카가와가 처음으로 선발에 뽑힌 것은 3rd 싱글, ‘달려라! Bicycle’이었다. 오디션에 합격 한 지 1년이 지난 시점의 일이었다. 그리고 후카가와는 그 뒤로 쭉 선발멤버의 일원으로서 활약 해 왔으며, 작년 10월에 발매 된 13번째 싱글 ‘지금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에서는 프론트 멤버로 발탁되기에 이른다.
일견 착실히 스텝 업 해 왔던 것 처럼 보일 지도 모르지만, 처음으로 선발에 든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약 3년 동안, 기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그녀.
처음 선발에 뽑혔을 땐 정말 기뻤지요. 하지만 금세 ‘다음 싱글에서도 선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그런 생각에 너무나도 사로잡힌 나머지 어깨에 들어 간 힘을 빼지 못 한 채 지낸 시기도 있었어요.
선발에는 들었지만 MV에는 거의 비춰지지 않았다는 것 역시 딜레마였고요. (웃음) 팬 여러분께 선발에서 활약하는 제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었기에, MV에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땐 좀 슬퍼지더라고요.
지금이야 분량이 적어도 ‘작품에 출연한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긍정적으로 생각 할 수 잇지만, 당시에는 마음에 여유가 없었고, 모든 것이 벅찼거든요.
- 그렇게 ‘긍정적’으로 변한 데에는 팬들의 존재가 컸다고 한다.
예를 들어 보자면… 이런 말 하면 좀 이상하게 들릴 지도 모르겠는데요…
팬이 아닌 분들께서 보시기에는 제가 ‘제복 마네킹’ MV에 얼마 나오지 않기에, 사실상 선발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냐는 식으로 받아들이실 수도 있을 거에요. 하지만 노기자카를 좋아 해 주시는 분들, 그리고 저를 좋아 해 주시는 분들께서는 제가 아무리 MV에 안 나오고 뒷자리에, 구석에 있어도 저를 찾아 내 주시거든요. 그리고 본인들의 감상을 악수회 같은 데에서 이야기 해 주시곤 하시거든요. 거기서 ‘아무리 맨 뒷 줄에 있다 해도 봐 주는 분들은 봐 주신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그것이 정말 큰 힘이 되었어요. 그리고 동시에 ‘어느 곳에 있건 간에 최선을 다 해야만 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 노기자카46의 활동을 해 오면서 힘들었던 일도 많았을 텐데, ‘그만 둬야겠다’고 생각 했던 적은 있었을까?
‘도망가고 싶다’고 생각 한 적은 여러 번 있었어요. (웃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이유로 졸업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더라고요.
물론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 한 적은 많았어요. 특히 ‘16명의 프린시펄’ 때는 ‘빨리 마지막 공연 다음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 한 적이 많았어요. (웃음)
- 그럼 졸업을 의식하게 된 것은 언제일까?
약 1년쯤 전이에요. 스태프 분이나 다른 사람에게 상담을 한 것은 아니지만, 저 스스로 자연스레 졸업을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졸업을 생각한 적은 없었고, 졸업이라는 것 자체를 생각 한 적도 없었거든요. ‘졸업 할 타이밍이 오면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라 생각했기에 의식을 안 한 것도 있었고요. 하지만 약 1년 전, 세이부 돔에서 열린 버스데이 라이브 때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이 곳에 있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버스데이 라이브는 노기자카에게 있어 1년에 한 번 뿐인 중요한 이벤트거든요. 이 날 아니면 부르기 힘든 곡들도 있기에, 그런 곡들을 부르면서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이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정식으로 매니저 분께 말씀 드린 것은 13번째 싱글 제작이 끝난 뒤였어요. 매니저 분께 상담 하고 난 뒤, 역시 지금까지 신세를 진 관계자 분들이나 팬 여러분께도 확실하게 인사를 드린 뒤에 졸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기에 다음 싱글인 14번째 싱글까지 활동을 하기로 정했지요.
- 실제로 나 자신도 여러 차례 그녀를 취재하던 중, 어느 순간부턴가 ‘아, 뭔가 개운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던 바 있다. 그것이 바로 13번째 싱글에 대한 취재였던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 개운해 보였던 것은 과연 ‘졸업’을 결의했기 때문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프론트 멤버로서 그룹의 최전선에 서서 싸울 각오를 했었기 때문일까?
그런 느낌을 받으셨었군요. 생각 해 보면 지난 번에 취재를 해 주셨던 것이 딱 13번째 싱글 제작을 끝냈던 때이기에, 어쩌면 제가 졸업을 결의했던 그 때와 겹칠 지도 모르겠네요. (웃음)
- 졸업을 결의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장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을까?
아직 장래에 대해서는 블로그에도, 악수회 등지에서도 확실히 말한 적이 없어요. 그렇기에 팬 여러분께서도 제 미래에 대하여 의문을 갖고 계시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하지만 아무 생각도 없이 졸업을 하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다가, 해 보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물론 앞으로 일이 어떻게 흘러 갈 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에, 어디까지나 제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닐까 싶기는 하지만요.
물론 노기자카에 남아 있다면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 스스로가 졸업을 정한 이상, 그런 것에 미련을 갖고 흔들려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노기자카46은 정말로 마음 편하고 좋은 그룹인데다가, 멤버 모두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역시 한 명의 인간으로서 제 미래를 생각하면… 이런 말을 하면 팬 여러분께서 ‘결혼이라도 하는 건가?’라고 오해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결혼 하는 건 아니랍니다. (웃음) 여성에게 있어 ‘25살’이라는 나이는 결혼 적령기라고도 할 수 있기에, 그런 오해를 사는 것도 별 수 없다고는 생각 합니다만, 그런 의미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이 타이밍에 인생의 전환기를 갖고 후회 없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 생각 해 보면 확실히 ‘25살’이라는 나이에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사람은 적지 않은 편이다. 20대… 다시 말 해 ‘어른’이 된 지 5년이 되는 해이자, 대학에 간 사람이라면 대학을 졸업한 뒤 3년째를 맞이하는 이 타이밍에 자신의 인생에 대해 새롭게 생각 해 보는 기회를 갖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하나의 기준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저 역시 25살이라는 나이를 제 인생의 전환기로 삼아, 그룹을 졸업하여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작년 연말, 처음으로 NHK 홍백가합전에 출장한 데다가, 최근 들어서는 멤버들의 TV 출연도 급증하는 등 노기자카46의 기세가 대단한 지금, 졸업을 결단하는 데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으리라. 그룹 입장에서도 선발, 그 중에서도 프론트에 선 멤버가 졸업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 후카가와의 미래만큼이나 ‘노기자카46’이라는 그룹이 어떻게 변화 해 나갈 지 역시 관심을 끄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후카가와 본인은 ‘자신이 없는 노기자카46’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상상 할 수 있는데요. (웃음) 물론 그런 모습을 보면 쓸쓸해 질 것 같긴 해요.
졸업한 뒤, 라이브를 보러 갔을 때 제가 했던 곡들… 특히 ‘성격 급한 달팽이’나 ‘딱밤’같은 유닛곡들은 더더욱 그럴 것 같긴 한데… 제가 있던 곳에 다른 멤버가 서 있고, 팬 여러분이 다른 멤버의 이름을 외치는 것을 들으면 더더욱 쓸쓸해 질 것 같기는 합니다만, 제가 예전에 그 자리에서 그 곡을 불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잖아요.
곧 3기생 모집도 시작되니 노기자카는 더더욱 새롭게 변해 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멤버들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어요. 만약 올 해도 홍백에 나갈 수 있다면, 작년 홍백때 느꼈던 것과는 다른 마음으로 그 모습을 보며 응원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마도 집에서 TV로 홍백을 보며, 멤버들을 응원하면서 감동 받아 울고 있겠지요? (웃음)
- 그리고 지난 3월 23일, 후카가와가 처음으로 센터 자리에 서게 된 신곡, ‘봄망초가 필 무렵’ 이 발매되었다. ‘센터’라는 자리에 서서 보게 된 풍경은 지금껏 본 적 없는 풍경이었다고 한다.
안무 배울 때부터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어요. 지금까지는 0번 자리 (댄스 포지션에서 ‘가운데 자리’, 곧 센터를 의미)에서 앞뒤로만 움직였던 적이 없었거든요. 아, 그리고 눈 앞에 아무도 없기에 절대로 틀려서는 안 된다는 공포도 컸고요.
비록 저는 졸업 하지만, 이 곡 센터 자리에는 다른 멤버가 서 주리라 생각해요. 물론 졸업을 이미지한 가사이기는 하지만, 이 곡은 ‘제 노래’가 아니라 ‘노기자카’의 노래니까요. 앞으로도 노기자카의 ‘봄 노래’로서 많은 분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날이 왔을 때, 들어주시는 분들께서 ‘그러고 보니 이 곡, 예전에 후카가와 마이라는 아이도 부른 적 있지’라고 떠올려 주셨으면 좋을 것 같아요.
- 아직 명확하게 졸업 날짜가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블로그에서는 ‘5, 6월까지 활동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그녀. 결국 노기자카의 오디션을 받기 시작 한 때로부터 만으로 5년이 되는 타이밍에 졸업을 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아, 그게 그렇게 되나요. 음…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눈 깜빡 할 사이였네요. 5년이란 시간 말이에요.
사실 그룹에 갓 들어왔을 땐, 멤버들끼리 ‘노기자카라는 그룹은 몇 년이나 갈까’라거나 ‘우리는 언제까지 이 그룹에 있을 수 있을까?’ 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어요. 그 때마다 대부분 ‘3년 정도 아닐까?’라고 이야기 했었지요. (웃음)
지난 나날들을 떠올려 보면 3년이라는 시간은 정말 한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사실 정신이 들고 보니 벌서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것 같은 느낌인걸요. 당시 16살이었던 이코마쨩이나 마리카도 벌써 20살 아가씨가 되었고 말이지요.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다른 멤버들의 성장을 보며 4, 5년이라는 시간이 정말 큰 의미가 있구나 라고 새삼 놀라곤 합니다.
4, 5년이라는 시간이 큰 의미가 있다는 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나 여성들에게 있어서 그 의미는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 아직 이런 이야기를 하기에는 조금 이를 지도 모르지만, 후카가와 마이에게 있어 ‘20대 전반’ 5년간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음… 그렇네요. 노기자카의 활동은 ‘일’이긴 했지만, 일반적인 ‘회사’와는 다른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요. 사실 학교를 졸업 한 뒤, 이렇게 많은 또래 여자아이들과 함께 무엇인가를 하거나 항상 함께 있거나 할 기회는 잘 없으리라 생각하거든요.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이렇게 멤버들이 하나가 되어 라이브를 준비하거나, 함께 작품을 만들어 나간다는 건 일반적으로는 쉽사리 경험하기 힘든 일이라 생각합니다. 정말이지 감사하게도 그런 흔치 않은 경험을 듬뿍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저는 20살 때 전문학교를 나와 새롭게 노기자카라는 학교에 입학하여 멤버들과 함께 청춘 시대를 보냈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 그럼 20대 후반은 어떤 인생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지.
글쎄요…
예전에 점을 보러 갔을 때, ‘인생 전반부는 고생을 많이 하겠지만, 30살이 넘어가면 인생이 잘 풀릴 것’이라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말이죠. (웃음) 그런 것도 있고 해서 지금은 앞으로 어떻게 될 지 기대가 더 커요.
노기자카46이라는, 제 인생에 있어 정말로 의미가 큰 존재를 잃게 된다는 것은 잃게 되겠지만, 어떤 미래가 기다리는 지 모른다는 지금 상황은, 예전에 무작정 상경 해 왔을 때의 제 모습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비록 다시 출발점에 서게 되겠지만, 그것이 제로(0)로 돌아간다는 것은 아니잖아요. 노기자카에서 경험하고 배운 것들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에, 그런 것들을 가슴에 품고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다시 ‘준비 기간’이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30살이 될 때 까지의 준비기간 말이에요. (웃음)
- 졸업 후에도 끊임 없이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무언가를 느끼고, 배울 멤버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멤버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 주고 싶은 지?
음… 뭐가 있을까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해’ 주었으면 해요.
하지만 제 모습을 보며 배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 하는데 말이지요… 저는 보고 배울 만큼 큰 존재가 아니니까요. (웃음)
- 후카가와가 노기자카46 밖에서 노력 해 나간다는 것은, 남은 멤버들에게도 큰 희망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럴까요? (웃음)
하지만 멤버들은 각자 자신 나름대로,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 해 그룹 생활을 즐겨주었으면 좋겠네요.
- 그럼 본인은 노기자카46 활동에 있어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지?
네. 그렇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 때 이렇게 했다면 더 좋았을텐데…’ 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있긴 합니다만, 제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 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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