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이시 마이 포토북 MAI STYLE - 04
고등학생기 :
1) 어머니와 단둘이 시작한 신생활. 불안함도 있었지만 희망이 더 컸다.
- 새로이 시작하기 위하여 사이타마현으로 나온 마이얀. 생전 처음 오는 곳으로 왔다는 불안보다는 지금까지의 인간관계를 새로이 리셋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 속이 너무나도 개운했다'고 말한다.
시라이시 : 군마에서 살 때는 정말로 시골에 살았었기에 집 주변에 온통 논밭밖에 없었어요. 그렇기에 사이타마에 처음 왔을 때는 사람도 너무 많고 전철도 많이 다니는데다가 제가 좋아하는 예쁜 옷을 파는 가게도 많았기에 너무나도 자극적이고 즐거웠습니다.
이전까지 아무런 연도 없는 곳에 간 것이지만 새롭게 자기 자신을 재생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기에 그다지 두렵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물론 낯가림 자체는 변함이 없었기에 고등학교에 들어 간 뒤로도 긴장은 계속 했었지요.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 중에는 사이타마에서 온 아이들은 물론 도쿄를 비롯하여 다양한 곳에서 온 아이들도 있었기에, 제가 군마에서 왔다는 데 대해 딱히 위화감 없이 받아들여주었습니다.
저 역시도 변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다가갔기에, 금세 친구가 생겼어요. 학교까지는 전철로 등하교를 했기에, 수업이 끝난 뒤 친구들과 함께 쇼핑을 하러 가거나 가라오케에 놀러가기도 했습니다. 휴일에는 친구들이랑 하라주쿠나 시부야까지 놀러가기도 했었지요. 이러던 와중에 몇 번인가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습니다만, 제 꿈은 어디까지나 연예인이 아닌 스타일리스트가 되는 것이었기에 명함은 받기만 하고 연락을 하지는 않았어요.
고등학교 다닐 때 어울리던 아이들중에 양키까지는 아니지만 조금 논다 싶은 아이들이 있었기에, 교복 위에 트레이닝복을 입고 돌아다니곤 했습니다. 심지어 그대로 전철에 타기도 했었지요. (웃음) 아마 주변에서 보기에는 '쟤 어디 놀러가나?' 싶었을거예요. 트레이닝복 입고 전철에 탔던 건 단 한번 뿐이었지만 그 때는 저도 상황 파악하고는 정말이지 창피해서 말이지요... 뭐랄까, 사이타마 신고식이었다고 할까요?
중학생때는 소프트볼부에서 열심히 부활동을 하였지만, 고등학교때는 아무 부에도 들지 않았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딱히 약속이 없을 때는 바로바로 집으로 돌아가곤 했지요. 잠을 자는 것을 좋아하기에 집에 가서는 거의 잠만 잤던 것 같아요. (웃음) 엄마가 직장을 다니셨었기에 엄마가 돌아오면 함께 요리를 하거나, 함께 장을 보러 가거나, 귀가 시간이 비슷할 때엔 역 앞에서 만나 함께 돌아가거나 하는 매일매일을 보냈습니다.
- 마이얀에게 있어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 준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어머니의 존재였다. 어머니에 대해 마이얀에게 물어보았다.
시라이시 : 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저를 지탱 해 주는 존재이지요. 처음 군마를 떠나 사이타마로 나올 때에도 반대 없이 제 편이 되어주셨고요. 중학생때 학교에서 트러블이 있었을 때, 처음엔 엄마에게도 말하지 못했어요. 부끄럽기도 했고, 분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엄마가 슬퍼 할 게 뻔했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제가 말 안 해도 다 알고 계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내색을 안 하니 모르는 척 평소와 다름없이 대해줬던 거라 생각합니다. 매일아침 '일어나, 학교 가야지' 라며 깨워 주기도 했었는데, 저는 그냥 이불에 콕 박힌 채 아무 말 없이 저항했었어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다음에 엄마에게 학교에서의 일들을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너무 울어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음에도 엄마는 조용히 들어주었어요.
-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이야기 하던 마이얀은 '아, 울 것 같아' 라며 말끝을 흐렸다. 인터뷰가 시작 된 뒤 처음으로 말이 막히는 듯 보였다. 자신의 괴로운 과거를 이야기 할 때에도 미소를 짓고 있었던 마이얀이지만, 자신의 철없는 행동으로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는 가슴이 아픈 듯 했다.
시라이시 : 엄마와 둘이서 새롭게 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생각 해 보면 생전 처음 보는 마을로 이사를 와서, 그것도 아는 사람도 한 명 없는 상황에서의 시작이었기에 불안함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요.
저 개인적으로는 불안보다 희망이 더 컸습니다만, 엄마는 불안감이 더 컸을거예요. 하지만 휴일에 둘이 함께 산책을 나가거나, 함께 놀러가거나 하면서 새로운 생활에도 익숙해 졌고,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새 집과 새로 이사 온 동네가 더더욱 좋아졌지요.
- 마이얀의 고향은 분명 군마현이다. 하지만 이렇게 스타가 되어 활약을 하고 있으면서도 아직 당당하게 '군마 출신' 이라고 이야기를 하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시라이시 : 시간도 오래 지난 이야기이기에 딱히 응어리 진 것 까지는 없습니다만, 솔직히 아직까지도 군마에 돌아가는 것은 조금 주저하게 됩니다.
악수회에 오신 군마현 팬분들께서 '고향이 같네' 라던지 '군마에서도 라이브 해 줘' 라고 말씀 해 주시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한 편으로는 정말 죄송스럽기도 해요. 물론 저를 만나러 와 주시는 건 정말로 감사한 일이고, 기쁘지만 말이예요.
노기자카가 더 성장해서 일본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활약 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2) 작은 흥미가 큰 꿈으로.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진로를 크게 바꾸다.
- 어머니와 마이얀 단 둘만의 생활에도 익속해 지고 교우관계도 양호했다. 사이타마에서의 생활은 순조롭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순조로운 나날이 지나 고 3이 된 마이얀.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마이얀도 자신의 미래와 진로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시라이시 : 당시에는 단짝친구 셋과 함께 자주 가라오케에 가서는 하마사키 아유미나 YUI의 노래를 부르곤 했어요. 하지만 가수가 된다는 건 전혀 상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당시에 저는 학교 선택수업에서 보육을 선택하여 듣고 있었어요. 보육과목을 고른 이유는 단순히 어린아이들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고른 것 뿐이었습니다만, 공부를 하면 할 수록 매력을 느껴서, 보육사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지요.
초등학생 때 피아노를 배우기도 했기에 보육사라는 건 정말로 현실적인 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고 3이 되었을 때, 제 꿈이 확 바뀌는 사건이 일어났지요. 고 3들이 참가하는 진로 설명회에서 음악 전문학교 설명을 듣고, 음악에 흥미를 갖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가벼운 흥미였지만, 그런 작은 흥미로 체험 입학하여 보이스 트레이닝을 받던 도중에 '아, 더 노래를 잘 하고 싶어'라는 감정이 눈 떴던 거예요.
전문학교에 함께 체험입학을 했던 친구들 중에는 aiko 같은 가수가 되고 싶다는 아이도 있었는데,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저 역시 더욱 더 큰 목표를 갖고 음악을 공부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그 순간이 바로 제게 음악에 대한 애착이 생겨 난 순간이라 할 수 있겠네요. 이전까지는 사실 꿈이나 목표라는 것에 대한 의욕이 그렇게 강한 편은 아니었는데, 이렇게 강하게 무엇인가를 갈구하게 된 것은 음악이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