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물/출판물-AKB
AKB 히스토리 - 3장
hemod
2013. 6. 14. 00:05
3-1. '센터'와 '그 외'
그 해 4월 15일부터 팀 K의 '파티가 시작돼요'와 함께 팀 A의 새 세트리스트 '만나고 싶었어 (会いたった. 이하, 아이타캈타)'가 번갈아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이 '아이타캈타'라는 세트리스트는 이전까지 공연 해 왔던 '파티가 시작돼요' 세트리스트에 비해 센터에 서는 멤버와 그렇지 않은 멤버의 격차가 심해 진 세트리스트였다. 특히 '물가의 CHERRY (渚のCHERRY)'라는 곡에서 그런 차별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이 곡은 마에다 아츠코를 센터에 두고 미네기시 미나미, 히라지마 나츠미, 마스야마 카야노가 마에다를 둘러싸는 구성이었다.
2006년 3월 모일, '아이타캈타' 세트리스트에 있는 곡들을 녹음하기 위해 멤버들이 녹음 스튜디오에 모여 있었을 때 일어난 일이다. 당시 '물가의 체리'녹음을 먼저 시작 한 것은 미네기시, 히라지마, 마스야마였다. 히라지마는 그 때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일단 저희 셋이 임시 녹음을 한 뒤 그것을 들으면서 이야기 했어요. '아무래도 우리 넷 중에서는 앗쨩 파트가 가장 많은 것 같지?'라고요. 그리고 나서 정식으로 파트를 나눈 파트 배분표를 봤는데... 웬걸, 거기 쓰여 져 있는 것은 '마에다'와 '모두 함께'라는 글자였어요. 저희 이름도 아니고 '모두 함께'였다고요. 그것도 가사는 '체리 체리 보이'와 '체리 체리 걸' 뿐이었어요. 딱 두 소절뿐이었던 거예요."
당연히 '그 외'로 분류된 히라지마, 미네기시, 마스야마는 충격으로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지만 일단 자신들에게 주어진 노래를, 최선을 다 해 불렀다. 그런데도 스탭들은 '좀 더 밝고 경쾌하게 노래 불러!'라고 호통을 치고... 자기 자신이 너무나도 비참했었다고 한다.
히라지마는 "무대에 올라서 이 곡을 부르는 모습을 보고 저를 응원 해 주는 팬 분들께서 어떤 마음이실까... 라고 생각하니 가슴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울컥 치솟아 오르는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어금니를 꽉 깨물고 끝까지 웃으면서 불렀습니다. 그리고 나서 녹음이 끝나고 스튜디오를 나서는 순간, 다른 곡의 녹음을 끝내고 나온 토지마 하나쨩이랑 맞닥뜨렸습니다. 그리고, 하나쨩의 얼굴을 본 순간, 저와 미이쨩 (미네기시 미나미)은 하나쨩을 붙들고 펑펑 울었어요. 그랬더니 하나쨩이 '앗쨩 녹음도 금방 끝날거야. 너희들이 이렇게 울고 있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되잖니'라고 이야기 하며 저희를 데리고 화장실로 함께 가 주었어요. 나중에 들은 얘긴데 앗쨩도 그 파트 분배표를 보고는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그 뒤로도 '물가의 체리'연습은 했지만 연습때고 공연때고 파트 분배에 대해서는 모두들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어요."라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8월 11일, '아이타캈타' 공연도 마지막 날 (千秋樂. 스모 용어)을 맞이하였다. 모든 공연이 끝난 뒤, 멤버들은 한 사람씩 이번 공연을 되돌아 보며 이야기 나눌 기회를 가졌다.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은 미네기시 미나미. 이미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AKB48에 들어 와 여러가지를 배웠습니다. '물가의 체리' 파트분배표를 처음 받아들었을 때엔 '왜 내 (노래) 파트가 없는거지?'라며 불만을 가지기도 했습니다만, 이제는 '물가의 체리' 공연때 제 역할은 '춤을 추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미네기시
미네기시를 필두로 지금껏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것들을 털어놓는 멤버들...
"솔직히 그 때, 저뿐만이 아니라 모두들 마음속에 이런저런 것들을 담아두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 날 공연을 하기 전에 아키모토 선생님께서 멤버 각자에게 편지를 써 주셨었어요. 내용은 '오늘 공연이 끝나고 자기 자신이 어떤 생각을 했었는 지 솔직하게 털어 놓아 보자'였고요... 솔직히 다들 마음속에 여러가지를 담아 놓았던 타이밍이었기에 너무나도 절묘했습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학교와 AKB활동을 둘 다 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던 시기이기도 하고요. 일을 하기 위해 조퇴라도 할라치면 창 밖에서 누군가가 '아키바~'라고 조롱을 하기도 했었고, 다른 친구들에 비해 성적이 떨어져 가는 것도 싫었지요. 그래서 제 차례가 되었을 때 그런 얘기를 했었어요." 라고 히라지마는 당시를 회상한다.
그리고, 학교와 레슨의 양립 (学校とレッスンの両立)의 고충을 이야기 한 다음 순서가 바로 마에다 아츠코였다. 마에다 역시 눈에는 눈물이 가득 맺혀있었다.
"저는 '물가의 체리'를 불러야 한다는 것을 알고... 너무나도 불안했어요. '사실 난 노래를 그다지 잘 하는 편도 아닌데..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불안해 하며 울기만 했었어요. 솔직히 말해 저는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약간 서투른 편인데... 이 노래를 부를 때에는 가능한 한 감정을 내 보이려고 노력했어요. 아직 여러모로 미숙한 저이지만... 응원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마에다가 말한 내용이다.
팀 K가 팀 A라는 거대한 벽을 뛰어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을 무렵, 팀 A는 새로운 과제, '팀 내 격차'라는 것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3-2. 언더 제도 도입으로 인해 공포의 나날이 이어지다.
두 팀이 각각 다른 공연을 하게 되면서 팬들도 그에 따라 나뉘게 되었다.
슬슬 팀 A 멤버들도 팀 K를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 때의 일을 팀 A 멤버들은 어떻게 느꼈는가 하면...
코지마 하루나 "솔직히 말해서, 저를 응원해주는 팬분들이 팀 K 팬으로 빠져버리는 것 같았어요. '인간이라는 건 그런거지, 어차피 새로운 게 나타나면 거기로 관심을 돌리는 거야. 잔인한 일이지.'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너무 슬펐지요. 하지만 동시에 '그래, 주금 더 힘내서 열심히 하자'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다카하시 미나미 "팀 A의 두 번째 세트리스트인 '아이타캈타'를 공연 할 때, 처음으로 언더 (=대타)제도가 도입 되었어요. 첫 곡이 '탄식의 피규어 (嘆きのフィギュア. 한탄하는 인형 정도의 뜻)'이었는데, 어느 날, 앗쨩 (마에다 아츠코)과 토모찡 (이타노 토모미)이 자리를 비운 적이 있었어요. 당장 탄식의 피규어 공연을 해야 하니 대타로 팀 K의 유우코 (오오시마 유우코)와 토모미 (카사이 토모미)가 불려 왔었지요. 그걸 보는 순간 굉장히 복잡한 기분이 되어버려서 저 자신의 감정이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아...정말로 팀 K가 이만큼 커 버렸구나'라는 생각도 들면서 엄청 실감나더라고요. 그리고... 무서웠어요. '만약 내가 못 올 일이 생겨도 누군가가 나 대신 이 무대에 서겠네' 라는 두려움이요. 그 두려움은그 때로 끝 난 게 아니고 꽤 나중까지 이어졌었습니다. 저희 세 번째 세트리스트인 '누군가를 위해 (誰かのために)'공연때에도 '교복이 방해해 (制服が邪魔をする, 오리지널 참가자 : 이타노, 오오시마(마이), 코지마, 시노다, 다카하시, 나카니시, 마에다, 미네기시♡)'를 부를 때, 참가 멤버 중에 4명정도가 참가를 하지 못 한 적이 있었어요. 그 때 스탭 여러분들께 '팀 K 아이들로 대타를 시킬바에는 그냥 저희들 (남아있는 멤버)끼리 부를게요'라고 고집을 부렸지요. 결국 저랑 또 다른 멤버 한 명 정도가 둘이서 노래를 부른 적도 몇 번이나 있었습니다."
라고 한다.
멤버들의 그런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이 팬들도 서로 대항심을 드러내곤 했다.
다카하시 미나미의 말마따나 팀 A의 무대에 팀 K의 멤버가 언더 자격으로 설 때 마다 팀 K의 열렬한 팬들이 극장을 메우곤 했다. 그런 팬들은 팀 K의 멤버들이 노래를 하면 큰 소리로 팀 K멤버 콜을 하고는 했다. 대타로서 팀 A 공연에 섰던 경험이 있는 마스다 유카는 "무대에 올랐는데... 팀 A 공연임에도 팀 K팬분들이 맨 앞줄을 가득 메우고 계셨던 적이 있었어요. 한 눈에 보기에도 객석이 둘로 나뉘어서 안 좋은 분위기가 계속되었었지요. 물론, 항상 저희 공연때 와 주셔서 얼굴도 알고 있는 익숙한 팬분들이 계셔서 안심도 되고 든든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솔직히 팀 A 멤버여러분들께 너무 죄송했어요."라고 이야기한다.
그뿐이 아니었다. 이 당시엔 두 팀 팬들 사이에서 여러 트러블이 뒤를 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갈등은 팀 A팬 대 팀 K팬의 구도에서 팬 대 멤버구도로 옮아가게 되었다.
팀 A와 팀 K가 합동으로 하이파이브회를 연 적이 있었다. 당시, 팀 K의 팬 전원이 팀 A멤버들은 무시하고 팀 K 멤버와만 하이파이브를 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그런 일을 한 팬들은 팀 K에 대한 응원의 의미로 한 일이었겟지만 팀 A, 팀 K를 가리지 않고 모든 멤버들이 엄청난 쇼크를 받았었다고 한다.
이런 험악한 분위기에서 팀 K는 첫 번째 세트리스트인 '파티가 시작돼요'를 끝냈다.(※1) 그리고 7월 8일, 팀 K의 두번째 세트리스트이자 첫 오리지널 세트리스트인 '청춘 걸즈 (青春ガールズ. ※2)가 시작되었다.
'팀 A의 곡들을 따라 부른' 것이 아닌 자신들만의 퍼포먼스를 손에 넣은 것이었다. 더 이상 '아무리 봐도 저 곡은 팀 A랑 더 잘 어울려'라는 말을 들을 필요도 없게 된 것이다. 팀 K를 위해 아키모토 야스시가 만들어 준 곡들... 데모 CD를 받고, 모두들 감격하면서 노래를 들었다고 한다.
팀 K의 우메다 아야카는 그 날을 떠올리며 "카요쨩 (노로 카요)이 제게 전화를 걸어서 그러더라고요. '들었니?'라고. 뭘 들었냐고 얘기 안 해도 모두들 아는 거예요. 그것이 지칭하는 대상이 '구르는 돌이 되어라'라는 것을요. 그리고는 하는 말이, '팀 K 노래지?'였어요. 그래서 '응.. 응.. 너무 좋아'라고 대답했지요. 그래요. 저희 이름이 들어 간 곡이 나왔다는 게 정말 견딜 수 없이 기뻤어요. 지금도 그 노래를 콘서트에서 부를 때엔 그 날이 떠올라요." 라고 말했다.
미야자와 사에는 "'청춘 걸즈' 첫 공연날이었어요. 본편 마지막 부분에 유카타(※3)를 입고 '내가 쏘아 올린 불꽃 (僕の打ち上げ花火)'을 불러야 했어요. 그래서 멤버들이 반씩 나뉘어서 MC를 하는 중에 유카타로 갈아입으러 대기실로 갔지요. 그리고 다 갈아입고 난 뒤에는 MC하고 있는 멤버들과 교대해서 나머지 반이 옷을 갈아입고 오는 것이었죠. 그리고 저희가 먼저 옷을 갈아입고 나오면서 '잠깐 기다려~!'라고 얘기를 걸면서 나오는데... 유카타를 입은 저희를 바라보는 팬분들의 얼굴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다들 '오오오오~!!'하고 놀라시더라고요. 모두들 저희가 유카타 입은 모습을 보고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좋아 해 주시는 거예요. 그 때 속으로 생각했죠. '팀 A의 곡이 아닌 우리들만의 곡으로 팬 여러분들을 기쁘게 해 드렸다'고요.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감정이 벅차올라요." 라고 회상했다.
오오시마 유우코는 이 '청춘 걸즈'공연을 통해 팀 K내의 유대감이 더더욱 끈끈해 졌다고 밝혔다.
"오리지널 곡을 받았을 때, 너무기뻤어요. '지금까지 해 온 것 이상으로 우리들의 매력을 보여줘야지'라는 생각을 했지요. 저 뿐 아니라 모두들 같은 목표를 세웠었기에 모두의 마음이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파티가 시작돼요'를 공연 할 때에는 멤버들이 서로서로의 마음을 전부 알지 못 했었거든요. 그랬던 것이... 저희들만의 공연을 받은 뒤에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있었지요." 오오시마의 말이다.
3-3. 지옥을 견뎌 내고 겨우 손에 넣은 '유대감'
7월부터 시작 된 '청춘 걸즈'공연은 '파티가 시작돼요'공연과 비교하여 격렬한 안무가 많이 포함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런 격렬한 안무는 동기부여가 된 팀 K의 열정과 하나되어 더더욱 좋은 결과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팀 K에게도 팀 A처럼 '극장 밖에서의 일거리'가 들어오게 되었다.
그 극장 밖에서의 일거리라는 것은 후지TV가 진행했던 이벤트, '오다이바 모험왕'이었다.
여름방학이 한창이던 어느 더운 7월 초의 일이었다. 당시 팀 K 멤버들은 주말 (토/일)이 되면 낮에는 이벤트에 출석하고, 밤에는 극장에서 공연을 하는 소위 '주말 한정 1일 2회 공연'체제였다. 그리고 본격적인 휴가철이 되는 8월부터는 평일에도 이벤트에 참여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를 떠올리며 노로 카요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 전 까지는 외부 행사는 팀 A에게만 왔었거든요. 그러던 것이 드디어 저희에게도 오퍼가 왔다니 너무 신났어요.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날씨가 엄청 더워서 혼났습니다. 8월 20일이 지난 뒤 부터는 낮 11시에 극장에서 공연을 한 뒤, 에어컨도 제대로 듣지 않는 차를 타고 오다이바까지 가야 했어요. 차를 타고 이동하면 그 안에서 도시락을 주긴 하는데 솔직히 도시락 먹을 체력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겨우겨우 힘든 공연이 끝나면 다시 차에 타서 아키하바라로 돌아 와 밤 공연을 하는 거예요. 하루에 3번이나 공연을 해야 하는 것이었지요. 솔직히 말해서 지옥같았어요."
그리고, 그런 지옥같은 강행군에 지쳐 쓰러지는 멤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이 된 지 얼마 안 되어서 유우코, 토모미 (카사이), 메탄 (오오호리 메구미)가 쓰러졌어요. 유카 (마스다)도 한 번 다운되어 버렸고요. '내가 쏘아 올린 불꽃' (청춘 걸즈 졍규 세트리스트 마지막 곡)을 부른 뒤에는 모두들 일단 대기실로 돌아 와서 옷을 갈아 입은 뒤에 앵콜곡을 부르러 나가야 하는데... 옷 갈아입으러 대기실 돌아오는 순간 기절 해 버리는 멤버도 있었어요. 결국 휴연멤버 (공연을 쉬는 멤버)가 3명 (오오시마, 카사이, 오오호리)이나 생겨버려 결국 공연을 13명이 하는데, 대기실에서 기절 해 버려서 앵콜 공연때는 10명인가 9명이서 공연 한 적도 있었어요. (※4)" 라고 미야자와 사에가 당시를 떠올리며 이야기했다.
노로 카요 역시 "제 옆에 서 있던 멤버가, 받쳐주는 사람도 없이 (옆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 하는 사이에) 꽈당! 하고 바닥에 쓰러지는 거예요. 태어나서 사람이 그렇게 쓰러지는 것은 처음 봤어요. 그대로 과호흡 상태 (※5)까지 가 버리는 멤버도 있었어요. 대기실은 아비규환이었지요." 라고 그 때를 떠올린다.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면서도 최선을 다 하는 팀 K의 모습을 보고 팬들은 한 층 더 격렬한 응원을 보내게 된다. 개중에는 무대를 바라보며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도 팀 K를 외치는 팬들도 있었다. 이런 지옥같은 여름을 보내면서 팀 K도, 그리고 팀 K를 응원하는 팬들도 한결 더욱 단단한 유대감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3-4. 메이저 데뷔는 선발멤버들로만?!?!
지옥같았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10월 25일, AKB가 크게 전진하게 되는 날이었다.
데프스타 레코즈가 AKB48의 메이저 데뷔를 결정 한 것이었다.
이 때까지 인디에서 2장의 싱글 ('벚꽃 잎들 (桜の花びらたち. 이하 사쿠라노하나비라타치)'과 '스커트, 펄럭 (スカート、ひらり, 이하 스카토, 히라리)')을 릴리즈 한 적은 있었지만, 인디즈와 메이저는 레벨이 다른 얘기였다. 말 그대로 '진정한 음악 업계'에서 싸워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념스러운 메이저 싱글 제 1탄은 '아이타캈타'로 결정되었다.
이 '아이타캈타'라는 노래는 본디 팀 A의 곡이었고, 팬들은 물론이고 멤버들도 이 곡은 '팀 A가 부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녹음때가 되자 팀 A와 팀 K에서 선발 된 멤버들이 녹음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이후 '총선거'의 바탕이 된 AKB특유의 'CD선발'개념의 시작점이었다.
마에다 아츠코는 이 당시를 떠올리며 "엄청 놀랐어요. 당연히 팀 A의 노래니까 팀 A가 부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라고 입을 열었다.
우라노 카즈미 역시 "저는 선발멤버에 들지 못했었어요. 선발멤버가 발표 된 날, 돌아가는 길에 친구를 만나서 함께 밥을 먹었는데 친구가 '왜 그래? 표정이 안 좋은데?'라고 묻는거예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눈물이 펑펑 쏟아졌어요. 얼마나 울었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였다니까요. 진짜 기억이 날아 갈 정도로 '분하다'고 느낀 건 태어나서 그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정신을 차려보니 친구네 집이었어요. 지금이야 웃으면서 얘기 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분함과 창피함이 겹쳐서..." 라고 이야기했다.
이런 멤버들의 눈물 덕이었던 것일까. '아이타캈타'는 오리콘 위클리차트 최고순위 12위에 랭크되었다. 데뷔 싱글치고는 괜찮은 성적이었다.
하지만, 경사스러운 메이저 데뷔와는 별개로 팀과 팀 간의 대립은 점점 더 심해 져 갈 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그 갈등이 해결 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한 멤버가 답을 제시했다. '그 답은 일본 청년관에서의 셔플이었어요.'
일본 청년관...
그것은 그녀들이 처음으로 AKB48극장이 아닌 곳에서 개최했던 콘서트를 말한다. 11월 3일과 4일, 이틀에 걸쳐 열린 콘서트의 제목은 '퍼스트 콘서트 '만나고 싶었어! ~기둥이 없어!''였다.
이 공연은 평상시 극장 공연과는 전혀 다른 '깜짝 구성'을 한 공연이었다. 공연 첫 날에는 팀 A와 팀 K가 각자의 세트리스트에 맞추어 공연을 하였지만 공연 둘쨋날에는 팀A가 팀K의 곡들을, 팀 K가 팀 A의 곡들을 불렀던 것이다. 자신들이 지금껏 몸이 부숴져라 공연 해 오고 만들어 왔던 자신들의 노래를, 라이벌이라고도 말 할 수 있는 다른 팀이 부르는 모습을 보는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 날을 떠올리며 아키모토 사야카가 말했다. "처음에는 전혀 신경 안 썼었어요. 그런데 팀 A가 '구르는 돌이 되어라', 다시 말해 우리 팀 K의 심벌과도 같은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하니, 뭐랄까요... 굉장히 복잡한 마음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마음 속으로 '팀 A가 부르는 '구르는 돌이 되어라'는 진정한 '구르는 돌이 되어라'가 아니야'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연습이 시작되자 팀과 팀 사이에 작은 변화가 나타났다. 셔플 (섞음)에 의해 서로가 서로의 곡을 부르게 되어,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에 대해 상대 팀원에게 '여기는 어떻게 춤을 추면 돼?'라는 식으로 묻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를 떠올리며 오오시마 유우코는 "그 때 팀 A가 '구르는 돌이 되어라'를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내심 '이거 재미있네'라고 생각했어요. 뭐랄까... '다른 팀이 우리 곡을 부르니 곡 자체가 이렇게 분위기가 변하는구나'라는 느낌이랄까요? 동시에 저 역시도 '지금껏 팀 A가 불러 왔던곡의 분위기를 바꾸어 가는 주인공 중 한 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즐거웠어요."라고 회상한다.
그리고 모두들 그 때를 떠올리며 입을 모아 이야기 하는 것이 이것이다. "상대 팀에 대한 반발심보다는 AKB48극장보다 몇 배나 많은 관객분들께 최고의 무대를 보여드릴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더 컸어요."라고. 그렇다. 처음으로 '팀이 아닌 AKB48로서 정면승부 해야 할' 무대가 눈 앞에 닥쳤던 것이다.
2006년 11월 3일.
일본청년관에 설치 된 무대에는 두 개의 큰 기둥모양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곧 객석의 조명이 꺼지고... 환성이 울려퍼졌다.
파티의 시작을 알리는 'overture (AKB의 공연 시작을 알리는 곡)'이 흘러나온다.
몸이 떨리기 시작한다. 떨림을 견디기 위해 다리에 힘을 준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상대 팀 멤버와 눈이 마주쳤다. 분명 예전이었다면 '라이벌'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함께 큰 무대로 올라가는 '동료'라고 느껴졌다.
"Party, 자, 파티를 즐겨요 (さあ楽しみましょうか)"
'AKB48'의 멤버 36명이 일제히 무대 위로 뛰어 나가서, 무대에 설치 된 기둥에 손을 가져다 댄다.
그러자 기둥들이 크게 움직이면서 점점 무대에서 멀어 져 간다. 그래, 여기는 AKB48 극장이 아니다.
그것은 비로소 처음으로 하나가 된 'AKB48'이 아키하바라를 벗어 나 일본 전국으로 뻗어 나가겠다는 의식이기도 했다. 그 뒤로 뻗어나갈 소녀들의 꿈을 향한 한 발짝이었다.
제 3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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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팀 K가 첫 세트리스트인 '파티가 시작돼요'를 끝내던 날, 공연 마지막에 팀 A멤버들이 함께 무대에 올라 팀 K를 축하 해 주는 이벤트가 있었다. 이 때, 팀 K팬들은 '어째서 팀 K 공연에 팀 A 멤버들이 나오는 거야!'라면서 화를 냈고, 이로 인해 팬들간의 대립은 더더욱 심화되었다.
※2 이 '청춘 걸즈' 세트리스트에는 팀 K를 대표하는 곡인 '구르는 돌이 되어라 (転がる石になれ)', '비오는 날의 동물원 (雨の動物園)', 'Blue rose'등이 포함되어 있어, 팀 K 팬들 사이에서는 '신(神)공연'이라고 불렸다.
※3 유카타 : 일본 전통 의상으로, 기모노를 간략하게 한 복장. 평상복으로 입는다. 최근에는 온천에서 목욕 후에 입거나 여름에 열리는 축제 때 등에 입는 경우도 있다.
※4 청춘 걸즈 공연은 원래 16명이서 한 공연. 여기서 3명이 쓰러져서 13명이 하고 있다가 도중에 쓰러 진 멤버가 3~4명이나 있었다는 얘기. 원래 멤버는 아키모토 사야카, 이마이 유우, 우메다 아야카, 오오시마 유우코, 오오호리 메구미, 오쿠 마나미, 오노 에레나, 카사이 토모미, 코바야시 카나, 사토 나츠키, 다카다 아야나, 노로 카요, 하야노 카오루, 마스다 유카, 마츠바라 나츠미, 미야자와 사에.
※5 과호흡 : 뇌나 폐로 가는 산소가 부족 해 져서 몸이 급격하게 호흡량을 늘리는 현상. 체내에 산소 부족, 이산화탄소 과잉 등으로 촉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