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DY 2016/12 케야키자카 '혁명 다큐멘트' 3/3
최대의 시련을 앞에 두고
용기를 쥐어 짠 스가이.
드라마 첫 촬영은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단 한 컷을 찍기 위해 수 없이 연습을 한 뒤에야 겨우 본 촬영에 들어 갈 수 있었다. 태양빛이 들지 않는 교실 세트에 갖히다시피 한 멤버들은 지금이 몇 시인지,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녀들에게 들이닥친 것은 ‘시련’이라는 흔한 말로 정리 할 수 없을 정도의 극한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런 시련 하에서 지금껏 부각되지 않았던 ‘그룹의 약점’이 차례차례 밝혀져갔다.
“드라마를 찍던 기간동안엔 멘탈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코너에 몰려 있었어요. 그렇기에 다들 주변이 눈에 들어 오지 않았지요. 그러다보니 멤버들간에 온도차가 발생되고,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 할 정도였어요.” (스가이)
“드라마 촬영기간동안에는 정말 매일같이 멤버들이랑 있었거든요. 자연스레 멤버들의 좋은 부분 뿐 아니라 안 좋은 부분까지 눈에 들어오게 되었지요.” (사이토)
케야키자카46에는 ‘리더’나 ‘캡틴’ 같은 직책이 없다. 물론 이렇게 함으로하여 각각의 자주성과 책임감을 배양 할 수도, 그룹의 개성 중 하나인 ‘전원 야구’적인 측면을 부각시킬 수 있는 면도 기대 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안 좋은 부분도 존재했다. 바로 이렇게 궁지에 몰렸을 때 구심점을 잃고 팀 자체가 공중분해 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위기상황에서 용기를 내어 떨치고 일어 난 멤버가 있었다.
“멤버들끼리 어두운 교실에 모여, 밖도 보지 못 한 채 있다보니 지금이 몇 시인지도 모르겠어서 혼란스러웠어요.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것은 멤버들과 커뮤니케이션이 점점 잘 되지 않았다는 점이었지요. 그렇게 멤버들의 기분이 축 쳐져있을 때, 어떻게 하면 좀 더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싶어 이래저래 생각도 해 보고, 실제로 말도 걸어보고 했었지만, 반응이 없더라고요. 드라마 촬영기간동안 매일같이 만나긴 했지만, 말은 그렇게 많이 나누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런 가운데 윳카가 멤버들을 불러 모아 이렇게 이야기 했지요. ‘일단 한 번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펑펑 울면서 그렇게 이야기 해 주었어요.” (하부)
“후쨩이랑 먼저 이야기를 했어요. ‘조금 있으면 드라마 촬영이 끝나는데, 지금 이 상태로 끝난다면 언제까지고 지금 이 찝찝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 멤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을 전해보려 해. 멤버 전원이 하나가 되고 싶으니까.’ 라고. 그 뒤, 용기를 내서 멤버들을 대기실에 모았어요. 물론 무서웠지요. 무서워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요.” (스가이)
스가이의 눈물의 호소는 멤버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스가이는 스스로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신경쓰고, 미움받을까 전전긍긍하며 살아왔다’고 표현 할 정도로 ‘리더십’과는 거리가 있는 아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룹 활동에 진지하게 임하는 자세와 연장 멤버로서의 책임감이 그녀에게 용기를 주었던 것이다.
“사실 MC등지에서 멤버들을 대표하는 경우가 많은 스가이입니다만, 본디 그녀의 성격은 혼자서는 결정을 내리지 못 하고 ‘어떻게 할까요?’라고 자주 묻는 타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그룹을 대표하는 경험을 쌓으면서 ‘내가 끌어나가야 한다’는 의식이 싹튼 것 같아요. 의식적인 것인지 무의식적인 것인 지는 모르겠지만요.” (모기)
쉴 틈도 없이 맹렬한 속도로 달려 올라간 ‘TV드라마’라는 이름의 언덕길. 그룹 내에서 개인 일을 가장 많이 소화하며, 그만큼 많은 ‘시련’들을 극복 해 온 히라테조차도 ‘가장 힘들었던 것은 드라마 촬영기간’이라고 술회 할 정도로 노도와도 같은 시간이 흘러갔다. 하지만 그 시련의 시간들은 ‘사일런트 마조리티’의 성공으로 인해 해이해진 마음을 다잡는 데에는 좋은 치료약이 되어 주기도 하였다.
“드라마 촬영기간동안에는 멤버들의 본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그 때까지는 멤버들끼리도 서로 어느 정도 배려라 할까, 계산이라 할까… 그런 부분이 있었는데, 드라마 촬영기간동안에는 그럴 여유도 없었거든요. 비록 좋은 모습 뿐 아니라 안 좋은 부분도 알게 되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진정한 의미의 ‘동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가하마)
인간은 변화하는 존재이다. 변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 말을 믿고 한 발을 내딛은 그 여름날로부터 1년여가 지난 어느날, 2nd싱글 제작이 발표되었다.
신선발의 명암
시다를 구원한 스즈모토의 한 마디.
두 번째 싱글 발매일이 8월 10일로 결정되었다. 새 싱글 제작에 임하는 멤버, 스태프들의 마음 속에는 불안이 가득했다. 전작인 ‘사일런트 마조리티’의 평가가 좋았기 때문에, 두 번째 싱글이 어떤 식으로 완성되느냐가 진정한 의미의 시금석이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케야키자카는 이런 부담감에 굴복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도전’을 선택했다. 프론트 멤버 중 두 명을 교체하는 강수를 둔 것이다. 새로이 프론트에 발탁 된 것은 시다 마나카와 와타나베 리사였다.
“솔직히 프론트에 뽑힌 걸 기뻐만 할 수는 없었어요. 마나카랑도 ‘아, 우리 프론트네.. 어쩌지…’라고 이야기했고요. ‘앞으로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그리 강한 편도 아니었던 데다가, 불안한 마음만 앞섰었는데 그런 건 저 뿐만이 아니라 마나카도 마찬가지더라고요. 하지만 ‘이왕 뽑힌 거, 기대에 부응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둘이 다짐했어요.” (베리사)
지금이야 숏컷이 너무나도 당연한 와타나베. 하지만 예전에는 머리를 길게 기르고 있었다. 귀엽기는 하지만 소극적이고, 눈에 띌만한 개성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콘노씨의 ‘머리 잘라보는 게 어떻냐’는 한 마디를 받아들인 뒤, 그녀의 운명은 드라마틱하게 변하게 된다
“리사 같은 경우에는 데뷔 당시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지요. 하지만 언뜻 언뜻 미소를 지을 때, 정말 귀여웠어요. 비주얼까지 포함해서 그룹 내에서 가장 많이 변한 멤버를 뽑으라면 아마 리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머리를 자른 것을 계기로 사람이 달라졌다 할까요. 본인은 머리 자르기 싫었다고 합니다만. (웃음)” (모기)
“자르기 전에는 정말 싫었어요. 중학교때 두발규제가 있어서 못 기르다가 고등학교 들어 와서 겨우 기르기 시작했거든요. 그랬던 걸 20센티 넘게 잘라야 했으니깐 말이죠. 사실 자르면서도 ‘아, 이 이상은 자르지 말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정작 자르고 나니 팬분들께서 ‘머리 자르길 잘 했다’고 말씀 해 주셔서 지금은 저도 자르길 잘 했다고 생각해요.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베리사)
이제 와 얘기지만, 오디션에 합격 한 지 겨우 1달여만에 진심으로 ‘그만두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고민하기도 했던 와타나베. 그런 그녀는 ‘머리를 자른다’는 큰 결심을 한 뒤, 완전히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프론트 멤버’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그리고 와타나베와 함께 프론트에 서게 된 시다 마나카는 그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케야카케에서 선발발표를 녹화하고, ‘촬영 종료’라는 지시가 나온 바로 그 순간, 울음이 터졌어요. ‘내가 왜?!?’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물론 프론트 멤버로 뽑아주신 건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내가 그 자리에 서도 되는걸까?’라는 생각이 들어 고민이 되었어요. 그래서 스태프분께 가서 ‘이런 마음으로 프론트에 서는 건 다른 멤버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아요. 해 낼 자신도 없고요.’, ‘저한테는 무리예요’라고 말했어요.” (시다 마나카)
새롭게 프론트에 서게 된 멤버가 있다는 것은 자연스레 원래 프론트에 서 있던 멤버가 밀려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즈모토 미유가 바로 그 ‘밀려난 멤버’중 한 명이었다. 비록 프론트에서 2열로 밀려났지만, 낙담은 하지 않았다는 그녀.
“2열에서 이름이 불렸을 땐 물론 분했지요. 하지만 낙담은 하지 않았어요. 2열이라는 자리는 퍼포먼스를 할 때, 주변이 한 눈에 들어오는 자리거든요. 360도 어딜 봐도 멤버들이 있기에 안심도 되고. 그런 위치에 서서 그 분위기를 알 수 있었기에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스즈모토)
“MV촬영 때 솔로 컷이 있었는데, 아무리 해도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아서 울어 버렸어요. 저 스스로도 납득이 되지 않아서 우는 거였는데, 스즈모토가 그런 제 모습을 보고 다가와서 ‘잘 했어’라고 이야기 해 줬죠. 입장을 바꿔서 생각 해 본다면… 그래도 그렇게 스즈모토가 이야기 해 주었기에 ‘울지 말고 더 노력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커플링곡MV 촬영에는 ‘절대로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하자’고 마음 먹고 임할 수 있었지요.” (시다)
“시다가 제게 와서 ‘스즈모토가 나한테 잘 했다고 해 줬어!! 어쩌지?! 정말 열심히 해야겠어!!’라고 말했던 게 기억나요. 스즈모토의 그 한마디 덕분이었을까요… 커플링곡인 ‘이야기 한다면 미래를…’ MV를 보시면 잘아실 수 있겠지만, 시다의 춤이 정말 멋있어 졌지요. TAKAHIRO선생님께도 솔선해서 ‘이런 식으로 하면 어떨까요?’라고 의견을 내기도 했고요.” (히라테)
스즈모토 본인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본인은 부끄러운 듯 미소를 띄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애초에 쉬이 낙담하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고민하고 있는 것 보다는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다보니 말이죠. 머리가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다 보니 깊이 생각하지 않고 먼저 행동에 옮긴 것 뿐이에요.” (스즈모토)
그룹 아이돌이라는 구조상, 누군가에게 빛이 드리워지면 누군가는 그 그림자에 가려지게 된다. 누군가의 기쁨은 다른 누군가의 좌절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않다. 하지만 시다와 스즈모토 사이를 잇고 있는 것과 같은 ‘신뢰관계’와 ‘끈끈한 유대감’이 어느 사이엔가 케야키자카 멤버들 사이에 싹트고 있었던 것이다.
‘분한 마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에너지로 바꾼 것은 스즈모토뿐만이 아니었다. 오제키 리카 역시 그런 멤버 중 한 명이었다.
“2열에서 3열로 내려 간 건 21명 중 저 하나였어요.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그런 귀중한 경험을 한 건 저 혼자뿐이라는 것도 되니까요.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지요. 2열에서 배운 것들을 3열에 가져 갈 수 있는 것 역시 저혼자뿐이었으니까요.” (오제키)
그리고 이 곡을 통해 나가하마 네루의 ‘한자- 히라가나 케야키 겸임’이 성사되어, 나가하마도 정식으로 선발멤버로서 2열에서 활동 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불안했다’고 말하는 그녀. 하지만 케야카케 방송에서 그녀가 흘린 눈물에는 그런 ‘불안’ 뿐 아니라 ‘기쁨’이 담겨 있었다.
“겸임이 발표 되었을 때, 멤버들이 제 쪽을 보며 기뻐 해 주었어요. 무엇보다도 그게 제일 기뻤어요.” (나가하마)
2nd싱글은 나가하마를 포함한 21명 체제로 항해를 시작하였다.
타이틀곡의 제목은 ‘세상에는 사랑뿐이야’ 마치 그녀들 사이에 싹 트기 시작한 ‘동료애’를 축복이라도 하는 듯 한 제목이었다.
‘지지않는 것’
그것을 통해 길이 열리다.
찰나에 불과한 청춘. 그 청춘의 흔들리는 감정을 포에트리 리딩이라는 방법으로 표현 해 낸다는 도전적인 시도를 한 곡 ‘세상에는 사랑뿐이야’.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데뷔곡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도전적인 곡이었다. 이 곡은 음원이 공개되자마자 높은 평가를 받으며 ‘사일런트 마조리티’로 인해 잔뜩 기대가 높아 진 대중들의 기대를 만족시켰다.
그리고 8월에는 오다이바에서 열린 세계 최대급 아이돌 페스티벌 ‘도쿄 아이돌 페스티벌’에도 이틀 연속으로 출연하게 되었다. 가장 ‘핫’한 신인 아이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케야키자카를 보기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회장으로 몰려들었다. 케야키자카의 팬들은 물론이고 타 아이돌들의 팬, 심지어는 다른 아이돌그룹 멤버들까지.
“TIF는 정말 즐거웠어요! 퍼포먼스를 할 때, 센터에 서 있다 보면 멤버들의 분위기가 등을 통해 전해지거든요. 하지만 TIF땐 항상 멤버들이 즐기고 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그 덕분에 저도 즐게 퍼포먼스를 할 수 있었지요. 드라마 녹화가 끝난 직후였던 것도 있었기에 멤버들의 달성감, 해방감도 대단했고요.” (히라테)
“TIF 때, 대기실에 있으면 다른 아이돌 그룹 선배님들께서 오셔서 ‘함께 사진 찍자’고 해 주셨어요. 그 때마다 ‘아녜요. 제가 부탁을 드려야하는데…’라는 생각이 들어 죄송스러울 정도였지요.” (나가하마)
이렇게 수 많은 관객들이 모이는 이벤트에 출연함으로 하여,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자신들의 주목도가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된 케야키자카 멤버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그녀들을 고민하게 하는 점이기도 했다.
비록 평탄한 길은 아니었지만, 모두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빠르게 인기를 얻게 되어 버린 점, 그리고 그룹으로서 좌절을 겪지 않고 성장 해 버린 것이 오히려 그녀들에게 ‘컴플렉스’가 된 것은 아닐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실제로 ‘아직 우리 실력이 그리 좋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 큰 무대에 서게 되어 면목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멤버들도 적지 않아요. 비록 자신들의 힘으로 쟁취해 낸 것이 아니라, 주어진 기회라고는 해도 그것을 훌륭하게 극복 해 낸 건 자신들의 실력이니 자신을 좀 가져도 되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만… 데뷔 이전부터 축복받은 환경이 주어졌다고는 하나, 자신들이 제대로 해 내지 못 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 했을거라 생각하거든요. 뭐라 할까… 오히려 ‘절대로 질 수 없는’ 상황,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맹비난을 받을 분위기에서 멤버들이 죽을 각오로 노력 한 결과라고나 할까요. 물론 지금까지 매사에 ‘이겨’왔느냐 하면 그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습니다만, 적어도 ‘지지는 않고’ 이만큼이나 온 건 사실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이 있는 것이고요.” (모기)
축복받은 환경하에 데뷔하였기에 ‘실패는 용납되지 않’는다는 굴레를 쓰게 된 그녀들. 그런 부담감과 싸워가면서 이만큼이나 싸워 왔던 것이다. 그녀들에게는 ‘신인그룹이니 별 수 없지’라는 안이한 잣대는 통용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안 좋은 부분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프로로서의 자각이 꽃피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금껏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아 왔지만, 제대로 해 내지 못 해 주눅드는 아이는 있을지언정 ‘지금 대강대강하는구나’, ‘적당적당히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아이는 단 한명도 없습니다. 언제나 새로운 과제가 주어지는 가운데 그런 과제들에 항상 필사적으로 임하고 있지요. 제게 있어 케야키자카의 좋은 점을 이야기하라 하면 항상 이야기하는 게 이 점이에요. 앞으로도 이런 마인드를 잃지 않아 주었으면 합니다.” (모리)
현재까지 그녀들은 흔한 아이돌의 석세스스토리, 다시 말 해 ‘우리들의 힘으로 꿈을 이뤘어요!’라고 할만한 스토리를 이뤄내진 못했다. 하지만 앞서 모기씨가 이야기 했듯이 ‘질 수 없는 상황’,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비난을 받을 상황’하에서 멤버 전원이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에 집중하고, 묵묵히 노력하다보면 그것이 언젠가는 밝은 미래로, 자신들의 꿈으로 이어지리라는 것을 믿고 있는 것이다.
“얼마전에 노기자카 선배님의 버스데이 라이브를 보고 왔는데, 관객분들의 일체감이 너무 잘 느껴졌어요. 노기자카 선배님들께서 많은 것들을 경험하시고, 그 때마다 팬 여러분과 함께 걸어오셨기에 그런 일체감이 생겨 난 것이겠지요. 저희들도 팬 여러분과 희노애락을 함께 해 나가고 싶어요.” (코바야시)
그룹의 키를 쥐고 있는 콘노씨는 케야키자카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누가 도쿠야마 다이고로를 죽였는가?를 통해 멤버각자를 부각시킴으로 하여 단순히 ‘히라테 원톱’그룹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 해 냈다고 생각합니다. 히라테 혼자만 재능이 있고 다른 멤버들은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 드라마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을테니까요. 그런 점을 감안하여 앞으로 1~2년간 어떤 엔터테인먼트를 어떻게 전개하고, 그 결과 어떻게 성장 해 나갈 지가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케야키자카로서 독자적인 것을 만들어 가는 것은 결국 노기자카가 독자적인 것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기도 하고요. 앞으로 두 그룹이 어떻게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엔터테인먼트를 만들어 가느냐… 그것은 48그룹처럼 ‘거대 시스템’하에서 연출되는 드라마와는 조금 다른 맛을 낼 것 같아요. 요는 노기자카는 노기자카, 케야키자카는 케야키자카로서 각각의 드라마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깁니다.” (콘노)
눈부신 햇볕이 아스팔트에 어지러이 산란하는 어느 한 여름날, 롯폰기 ‘케야키자카’에서 열린 ‘TV아사히 롯폰기힐즈 여름축제 SUMMER STATION’ 기념 라이브를 마친 멤버들은 어째선지 연신 시계를 쳐다보곤 했다.
그날은 2016년 8월 21일.
그 날, 케야키자카는 결성 1주년을 맞이하였다.
히라테 유리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
불과 1년 전만해도 집과 학교를 왕복하고 주말이면 친구들과 놀곤 했던 극히 평범한 소녀들이었다. 하지만 1년간 자신들의 힘으로 미래를 개척한 그녀들의 곁에는 어느 사이엔가 ‘동료’들이 생겨 있었다.
“수만명 가운데서 이 멤버가 뽑히고, 지금껏 함께 시간을 보내고 앞으로도 몇 년이나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는 거… 정말로 기적이라 생각해요. 그렇기에 모든 활동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고, 겸손함을 잃지 않고 노력 해서 언젠간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그룹이 되었으면 해요.” (사토)
히라테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았다. ‘지금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단순한 질문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멤버들이에요. 제게 있어서 멤버들이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거든요. 혼자 일을 하다 멤버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면 마음이 안정되고, 멤버들이 저를 즐겁게 해 주기도, 수고했다고 칭찬 해 주기도, ‘테치가 나온 잡지 봤어’라고 이야기 해 주기도 합니다. 멤버들의 그런 아무렇지도 않은 한 마디가, 어깨를 토닥여주는 손길이 제게는 큰 기쁨이에요. 그렇게 제 어리광을 받아 줄 뿐 아니라, 요 전에 스즈모토에게 ‘기분이 울적해’라고 했을 때 ‘안 돼! 지금 열심히 해야 할 때야!’라고 격려 해 주었을 때 처럼 힘을 줄 때도 있어요. 그 한 마디에 ‘응. 울지 말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 역시 그 말을 해 준 것이 ‘동료’이기 때문일거예요. 물론 때로는 부딛히기도 하지만, 그런 동료들과 함께 노력 해 나갈 수 있다는 게 정말 기쁩니다.” (히라테)
미래가 어떻게 될 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동료들과 함께 있다면 두려울 게 없는 것이다. ‘이 그룹에서 나는 외톨이가 아닐까’ 라는 고독감이 덮쳐 올 때도 있다.
“그렇지만”
히라테는 힘주어 말을 이어갔다.
“얼마 전, 예전부터 신경쓰였던 질문을 겨우 할 수 있었어요. ‘나, 어떻게 생각해?’라는 질문 말이에요. 모리야, 시다, 스즈모토에게 물어 보았는데, ‘테치는 항상 정말 열심히 해 줘’라고 말 해 줘서 눈물이 핑 돌았어요. 게다가 리사가 ‘고치호시(라디오 ‘여기는 유라쿠초 별하늘 방송국’)’에 나가고 싶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정말 놀랐고요. 개인적으로는 계속 저 혼자만 레귤러로 나가다 보니 다른 멤버들이 안 좋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었거든요. 그렇게 ‘나가고 싶다’고 이야기 해 주는 것을 듣고 안심했어요.” (히라테)
뛰어난 재능, 높은 주목도로 인해 어느 사이엔가 초심을 잃고 동료들과의 사이가 벌어지는 일은 이 바닥에서 보기 힘든 일이 아니다. 하지만 히라테는 그룹안에서 고립되지 않고, 오히려 활약 할 수록 동료들로부터 신뢰와 인망을 쌓아가고 있다.
멤버들 뿐만이 아니다.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에서 ‘세상에는 사랑뿐이야’ MV를 촬영했을 당시,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은 우중충한 하늘에 밀착 취재를 하던 스태프들이 불안해 하고 있을 때 매니저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한 바 있다.
“괜찮아요. 히라테는 하레온나니까 비 안 올 거예요.”
사실 현장에서 자주 하는 농담이기도 하고, 그 말을 한 매니저 본인은 큰 의미를 두지 않고 한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발언에서는 자신들의 ‘에이스’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다는 스태프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것을 공유 해 온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동료들
‘세상에는 사랑뿐이야’ 가사 중에 이런 소절이 있다.
‘너와 만난 그 순간, 무언갈 되찾은 듯 우리 머리 위 하늘에 무지개가 떴어’
히라테는 이 가사에서 말하는 ‘너’가 바로 ‘멤버’라고 이야기 했다.
“케야키라는 한자는 전부 21획이지요. 그러니까 저희들 21명 중 누구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되는 거예요.” (히라테)
어쩌면 운명의 장난이라고도 볼 수 있는 그 ‘우연’을 이야기하는 히라테의 모습은 어딘가 기쁜 듯 보였다. 마치 ‘이 얘기는 꼭 하고 싶었다’, ‘내게 있어 그만큼 중요한 이야기’이다 라고 이야기라도 하듯이.
그 뒤로도 히라테는 틈만 나면 ‘오제키는요~’ ‘요네타니는요~’라고 멤버들의 장점이나 좋아하는 점을 이야기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한 가지 확신이 생겼다. 그것은 케야키자카라는 그룹이 훌륭한 곡, 우수한 스태프 이상으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동료’로 만들어 진 그룹이라는 점이다.
‘내가 있는 이 곳이 아닌 어딘가’를 찾아 케야키자카로 온 소녀는 그 곳에서 상상도 못 한 시련을 겪게 되었다.
힘들었던 때도, 울고 싶어 질 때도 있었다. 자신의 존재가 다른 동료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남몰래 고뇌하던 날도 있었다.
하지만 소중한 ‘동료’들과 만나, 그 모든 것들을 되찾은 것이다.
센터에 선다는 ‘영광’, 그리고 미디어가 쏟아내는 수 많은 ‘절찬’들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
자랑스러운 동료들과 함께 자신들의 길을 걸어가는 것.
바로 그것이 겨우 15살밖에 되지 않은 소녀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소중한 보물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히라테만이 아닐 것이다. ‘동료’의 존재로 인해 분함을 맛 본 모리야가, ‘동료’의 존재 덕분에 투지를 불태우는 이마이즈미가, 동료의 한 마디에 구원을 받은 시다가, 말 없이 동료의 등 뒤에 서서 묵묵히 밀어주는 사이토가, 동료를 위해 용기를 쥐어 짜 낸 스가이가 그렇다.
동료를 솔직히 받아들여 주지 못 하는 자신에 고뇌했던 요네타니가, 자신을 축복 해 주는 동료들을 보며 눈물을 흘린 나가하마 역시 그러했다.
케야키자카46이라는 그룹에는 바로 그 ‘21명’이기에 공유 할 수 있었던 기쁨과 슬픔, 분함과 달성감이 있는 것이다.
21명이 도달한 세계
그리고 기적이 일어나다
그리고 21명이 된 케야키자카가 맞이한 첫 가을. 멤버들간의 흔들림 없는 신뢰와 끈끈한 유대감이 다시 한 번 기적을 불러일으켰다.
3rd 싱글 포메이션에 일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전작, 전전작 연속으로 3열에 있었던 코이케 미나미, 사이토 후유카, 사토 시오리, 하라다 아오이, ‘세상에는 사랑뿐이야’에서 2열에 위치했던 모리야 아카네, 스즈모토 미유가 프론트에 서는 등 거의 모든 멤버들이 전작과는 다른 포지션에 서게 된 것이다. 멤버들 조차도 누구 하나 상상하지도 못 한 큰 변화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발 발표를 끝낸 멤버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았다.
그것은 멤버 개개인의 프라이드와 입장을 존중하는 동시에 집단으로서 ‘전진’해야만 하는 아이돌 그룹에 있어서는 ‘기적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서열’에 구애되지 않고, 모두가 빛날 수 있는 세계.
일찍이 48그룹도, 노기자카조차도 도달하지 못했던 그런 ‘세계’에 케야키자카는 불과 1년만에 근접 해 있었던 것이다.
한 멤버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케야키는 앞에 섰으니 어떻다던가, 뒤로 밀렸으니 나는 안 된다고 자포자기하는 그런 그룹이 아니라 생각해요.’
케야키자카46가 지금까지 걸어 온 길을 ‘혁명’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팬이나 미디어가 적지 않다. 그리고 지금까지 역사상 ‘혼자서’ 혁명을 성공시킨 사람이 없듯, 케야키자카 역시 ‘소중한 동료’들과 함께 싸우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께서 기대를 하고 계시다는 것도 잘 알고 있고, 실패해선 안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희는 그런 기대에 부응 할 수 있는 21명이라 생각합니다. 그 점은 믿고 있어요.” (히라테)
운명에 이끌려 만나고, 동료가 된 21명의 소녀들. 그녀들의
‘혁명적’인 도전은 자신들의 미래를 향해 이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