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이서 스테이지에 서서 연주를 한 뒤, 완전히 맛이 들려버렸습니다. 한 밴드로서 무대 위에서 연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를 알게 되고, 음악이라는 것이 얼마나 심오한 것인지에 매료된 뒤, 남들 흉내를 낸답시고 곡도 만들어 보는 등 완전히 밴드에 매료되어버렸습니다.
때마침 연예 사무소에도 들어가게 되어, 같은 사무소 선배 아티스트 분들의 공연에 전좌(본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바람을 잡거나, 신인들의 이름을 알리기 위하여 짧게 공연을 하는 것)로 참가한 것이기는 하나, 나름 라이브 무대에 서게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 밴드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한, 말 그대로 '어웨이'인 무대에 설 땐 저도 모르게 투지가 타오르기도 했습니다. '한 명이라도 좋으니 우리 밴드의 팬으로 만들어야겠다'는 투지 말입니다. 정말 필사적이었지요. 라이브 무대 한 번 한 번이 저희에겐 기회였고, 승부처였습니다. '우리에겐 라이브가 전부'라는 각오로 라이브에 임했지요.
경험이 어느 정도 쌓인 뒤, 중 2에서 중 3으로 올라갈 무렵에 사무소 윗분들의 오퍼로 저희 밴드, 'MAD CATZ'는 메이저 데뷔를 할 수 있었습니다. 데뷔 곡은 'Girls be Ambitious!'. BS후지에서 방영중이었던 애니메이션의 주제가로도 발탁되었지요. 지금 생각 해 보면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 지 깨닫지 못 하고, 그저 데뷔하게 된 것이 기쁠 따름이었습니다. '해 냈다!!' 라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지요.
그리고 데뷔 이후의 일은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있었다… 는 정도로 머릿속에 남아 있는 정도입니다.
CD를 릴리스 한 뒤, 선배 아티스트분들의 전좌가 아닌 저희들의 라이브를 개최하였지만, 사람들이 전혀 모이질 않았습니다. 어떤 땐 객석에 단 두명만이 앉아 있었던 때도 있었지요. 우리 밴드는 3인조… 밴드 구성원보다 관객 수가 적었던 것입니다.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더 컸던 것은 '여기서 뭘 더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기분이었습니다. 아직 어리기도 했고, 사실 밴드 활동에 대한 의지도 그렇게까지 강하지 않았고요. 솔직히 '어른'들이 개입해서 여러 모로 컨트롤을 해 주셨기에 활동을 할 수 있었던 밴드였기에 그저 '어른'들이 '이거 해라, 저거해라' 라고 지시하는 것을 그저 따를 뿐이었습니다.
물론 저희들 역시 저희들 나름대로 생각은 했습니다. 특히 곡을 만들 땐 서로의 집에 모여 합숙 비슷한 것을 하며 서로가 쓴 곡이나 가사를 부끄러워 하며 서로에게 보여주곤 했습니다.
정말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친구들 모임' 정도라는 느낌도 벗어버릴 수 없었습니다.
NMB48 멤버들은 서로 사이가 좋지만 엄연히 말해 '친구'들은 아닙니다.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싸워나가는… 말하자면 '동료'에 가까운 사이입니다. 그런 관계성을 알아버린 지금 와서 생각하면 '아, 그 당시 밴드 멤버들이랑은 말 그대로 친구들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밴드 생활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목표가 없다'는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아직 중학생이었기에 밴드활동보다는 학교가 메인이 되는 생활이었지요. 솔직히 말하자면 '앞으로도 음악을 계속 할 것'이라던가 '음악으로 벌어 먹고 산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큰 목표' 뿐 아니라, 작은 목표조차도 셋이 공유한 적은 없었습니다.
목표로 삼을 것이 없다면 오래 가기 힘든 법이라는 걸 이젠 잘 알고 있지만 말이지요.
중 3이 끝나갈 때 쯤, 겨우겨우 두 번째 음반이 나왔습니다. 총 수록곡 수 5곡인 미니앨범 'POSITIVE'였습니다. 그리고 그 앨범 수록곡 중에 제가 작사한 곡이 들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