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DY 1706 - '불협화음' MV 제작 다큐멘트 2/2
촬영현장의 분위기를 확 바꾸는 히라테의 립신
귀기가 서리기라도 한 듯 박력있는 댄스신들이 이어지는 '불협화음' MV. 하지만 그런 MV의 분위기와는 달리 촬영 현장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긴장감만 맴돈 것은 아니었다. 전원이 달리는 장면을 찍기 전에는 오제키 리카의 독특한 달리기 (오제키 스타일)를 조금이라도 교정하기 위해 멤버들이 모여 몇 번이고 웃으며 달리기도 하였고, 쉬는 시간이면 오다 나나, 사이토 후유카가 시다 마나카, 이마이즈미 유이, 나가하마 네루의 장난에 응해 즉흥 모노마네를 하기도 하였다.
오랫동안 이어지는 지리한 촬영시간 사이사이 멤버들은 짧게나마 릴랙스타임을 가져가며 스스로의 모티베이션을 컨트롤 하고 있었다. 이것은 케야키자카라는 그룹이 하나의 '팀'으로서 좋은 팀웍을 다진 덕분이라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렇게 웃고 떠들던 멤버들의 얼굴로부터 웃음기가 싹 걷히고 촬영 현장의 분위기가 변해버리는 순간이 있다. 바로 립신(노래 가사에 맞추어 립싱크 하는 장면) 촬영이었다.
이시모리 "립신이 제일 찍기 힘들어요. 얼렁뚱땅 뭉개버릴 수가 없다고 할까요… 개개인의 표현능력이 가감없이 드러 나 버리거든요. 멤버들 역시 그 점을 잘 알고 있기에 거울을 보며 몇 번이고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연습을 하지만… 아무리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도 립신 촬영은 고전하곤 합니다. 실제로 스태프분들도 '케야키자카는 댄서가 아니라 아이돌이니까 무엇보다도 듣는 이에게 노래를 들려 주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봐도 립신은 중요한 포인트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멤버 한 사람 한 사람 차례로 이름이 불리고, 이름이 불린 멤버들은 카메라 앞에 선다. 모든 멤버, 스태프들이 모니터를 주시하는 가운데, 멤버는 홀로 싸워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긴장을 안 한다고 하면 거짓말이리라.
신구감독의 'OK'사인을 받고 안도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마이즈미에게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이마이즈미 "촬영에 앞서 한 번 눈을 꼭 감고 '불협화음'의 가사를 다시 한 번 떠올렸어요. 가사의 세계에 저 자신의 감정을 맡긴 채 촬영에 임했습니다. 오늘은 가사의 세계관에 제 감정이 이입 잘 된 편인데, '사이마조' 때는 그렇게 하지 못 했어요. 그 때문에 꽤나 아쉬운 마음이 들었었기에 그 뒤로부터 조금씩 더 이입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히라테를 보며 배우는 게 많아요. 히라테의 립신 촬영을 보며 '아, 저런 식으로 할 수도 있구나'라고 많이 배우거든요."
그렇게 이야기 하는 이마이즈미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히라테가 서 있었다. 때마침 히라테의 립신 촬영이 시작되려는 찰나였다. 현장의 분위기는 어느 사이엔가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신구 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나 히라테에게 다가가서는 입을 열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MV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 이 장면이라 생각해'
신구 감독의 말을 들은 히라테가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제자리에서 몇차례 가볍게 점프를 하고는 목을 좌우로 돌렸다. 히라테의 눈이 평소보다 더 강렬한 빛을 띄기 시작했다. 그리고 히라테의 눈빛을 주시하고 있던 신구 감독이 '좋아! 촬영 시작!'이라 소리를 지른다. 신구감독의 사인에 음악이 흘러 나오고 모든 이가 숨죽여 바라보는 가운데 히라테가 립신을 찍기 시작했다.
히라테는 왼발로 리듬을 타며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불협화음' 보다도 크고 낭랑한 목소리로 지금 이 곳에서 밖에 들을 수 없는 '불협화음'을 선보이는 것이다. 한 번, 두 번, 세 번… 같은 장면을 여러 번 촬영하며 점점 커져가는 건 비단 '긴장감'만이 아니었다. 히라테가 선보이는 '표현 방법' 역시 그에 맞추어 늘어났던 것이다. 히라테의 '진화'란 1년, 아니 1일 단위가 아니라 불과 1분 단위로 이루어지고 있던 것이다. 이번 기획기사의 첫 문장에서 묘사했던 광경, '베테랑 카메라맨'이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을 읊조렸던 것은 다름아닌 이 장면이었던 것이다.
신구 감독은 히라테의 립신을 찍으며 몇 번이고 촬영을 중단하곤 히라테에게 다가 가 무언가 지시를 내렸다. 이 장면이 인상적이었기에 신구 감독에게 당시 어떤 이야기를 했는 지 물어보았다.
신구 "사실 처음에 '이번 MV에서 이 장면이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 했던 건 연출적인 측면이 강했어요. 히라테는 어느 정도 프레셔를 가해주면 정말 좋은 표정을 짓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의식적으로 프레셔를 준 거였죠. 그 뒤로는 그저 '어떻게 히라테에게서 최대한 감정을 이끌어 내느냐'가 승부처이기에 히라테에게 '지금 한 게 최선이야?'라고 물어 본 거였지요. 만에 하나 본인이 그 장면에 만족하지 않는다면 다시 한 번 찍고, 히라테가 '최선을 다 했어요'라고 하면 그제서야 OK를 하는 거죠. 기본적으로 히라테는 매우 스토익한 아이이기에 저 역시도 본인이 만족 할 때 까지는 카메라를 돌려 주고 싶고요. 그런 식으로 몇 번이고 찍다 보니, 립신 촬영 때 가장 시간이 많이 드는 게 히라테의 촬영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겠지요."
히라테의 립신 촬영을 보며 정말로 놀랐었다고 이야기하니 씩 웃으며 '아뇨. 히라테는 더 잘 할 수 있는걸요'라 말을 잇는 신구감독.
신구 "히라테가 더 경험을 쌓고 20살이 넘었을 때 즈음에는 정말로 어마어마할 거예요. 이제 겨우 15살이긴 하지만 저기에 인간적인 경험이나 감정이 실리기 시작한다면 정말 완벽할 거라 생각하거든요. 제 상상이긴 하지만 그런 모습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기도 하기에, 그런 '완성형'을 최대한 끌어 내 보고자 하는 욕심은 있습니다. (웃음) 물론 지금 제 눈 앞에 있는 15살 히라테에게서 제가 상상하는 '20살이 넘은 히라테'를 요구한다는 건 잔인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촬영을 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그런 점을 요구 하게 되더라고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발전 과정에 있는 15살 소녀. 하지만 서두에 적었듯이 그녀가 이미 '모든 이의 시선을 빼앗는 퍼포먼스'를 소화 해 내는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니, 재능 뿐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TAKAHIRO상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다른 아티스트들을 찾아보며 끊임없이 자극을 추구하는 왕성한 탐구심을 갖추고 있기까지 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모든 측면들이 모여 만들어 낸 것이 바로 '히라테 유리나'라는 존재인 것이다.
15살 소녀의 농도 짙고 장대한 매일매일
어느 사이엔가 해가 지고 어둠이 세상을 감쌌다. 한겨울의 차디 찬 공기 속에서 MV촬영은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장면은 이 작품 최대의 승부처, '전체 댄스신'이었다.
'스즈모토! 0.05만큼 오른쪽으로 가! 리사! 0.05만큼 왼쪽으로 가!'
TAKAHIRO씨는 미세한 부분까지 신경써서 지시를 내렸다. TAKAHIRO씨의 지시가 끝나자마자 대형이 흐트러질세라 신구 감독의 촬영 개시 사인이 떨어졌다. 뭉게뭉게 피어 오른 스모크 안에서 수십 수백번을 연습 해 온 안무를 있는 힘껏 선보이는 멤버들. 도중에 음향트러블이 일어나 5분가량 촬영이 중단 된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 때는 나가사와 나나코가 다른 사람들을 웃게 하며 현장의 분위기를 완화시키기도 하였다.
트러블이 해결 된 뒤 다시금 음악이 흐르고, 히라테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데모곡의 소리를 지워버릴 듯 한 큰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싫어!'
주변을 감싼 어둠을 찢어발기듯 카랑카랑하게 울려퍼지는 '나는 싫어!'라는 히라테의 목소리는 그녀 안에 내재된 우울을, 생각대로 되지 않는 자신에 대한 불만을, 스스로에 대한 분노를 폭발시키는 듯 했다. 히라테 유리나는 스스로가 히라테 유리나라는 점을 인식하며, 동시에 히라테 유리나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에서, 마치 자신의 존재의의를 증명이라도 하듯 누구보다도 격렬하게 약동 한 것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지난 1년간 히라테가 가장 많이 성장한 부분, 가장 진화한 부분은 어떤 부분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퍼포먼스가 늘었다' 같은 눈에 빤히 보이는 부분을 제외하고 생각 해 보자면 히라테 유리나의 지난 1년간의 성장, 진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은 두 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은 집중력의 지속성과 예리함이다. '세카아이'나 '세종'때에도 나이에 걸맞지 않은 걸출한 집중력을 보여 준 바 있지만, 지금은 그 때랑 비교해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본인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아니에요. 의외로 멍하니 있는 경우가 많은걸요'라며 웃으며 대답을 하였지만, 카메라가 돌기 시작 한 순간부터 촬영이 끝날 때 까지 본인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꿰뚫는 듯한 시선'을 계속 유지하는 집중력이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불협화음'의 세계에 들어가는 순간, 그 곳에 서 있는 것은 천진하게 웃으며, 고양이가 보이면 쫓아가서 머리를 쓰다듬는 15살 소녀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바로 '케야키자카46의 히라테 유리나'라는 존재를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스스로가 센터로서 각광을 받는다'는 데에 대해 주변의 시선을 신경쓰고 한 발 물러서려는 면이 많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일종의 '겸허함'은 지금도 그녀의 안에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전과는 달리 그런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불안, 주저함'을 촬영 현장에서는 한 치도 드러내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 바로 그런 성장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케야키자카라는 그룹 내에서 '스페셜'한 존재가 된 자신에게서 도망치지 않고, 그 '스페셜함'에서 오는 책임감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려는 모습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드디어 마지막 장면 촬영이 시작되었다. 마지막 장면은 모든 멤버들이 일제히 '빛'을 향해 달려 나가는 장면. 마지막 촬영을 앞두고 멤버들은 한 데 모여 원진을 짰다. 모두 입을 모아 케야키자카의 원진 구호를 힘차게 외친 뒤, 스가이 유카가 입을 열었다. '자, 그럼 마지막 장면 기합 빡 넣고 해 보자!' 멤버들은 스가이의 말에 '오오!'라고 큰 소리로 호응하였다. 그리고 그런 멤버들의 목소리가 신호이기라도 한 듯 카메라가 소녀들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십 초 뒤… 모든 촬영이 끝났다.
오랫동안 이어진 촬영을 끝내고 멤버들의 표정에도 안도의 빛이 감돌았다. 기진맥진한 멤버들이 하나 둘씩 버스 안으로 들어 간 뒤, 고요한 촬영 현장에 홀로 서 있는 사람이 있었다. 히라테였다. 히라테가 서 있는 곳에 조명이 비추어 진 것은 아니었기에 그녀의 표정마저 읽어내지는 못했기에 그녀가 어떤 생각으로, 무엇을 떠올리며 그 자리에 서 있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꼼꼼히 지켜 봐 온 내 눈에는 그녀의 그런 행동이 '히라테 유리나가 히라테 유리나로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끝나 버린 데 대해 아쉬움을 표현하는 것' 처럼 보였다. 모든 것을 불태운 뒤에 느껴지는 해방감, 그리고 그와 동시에 찾아오는 상실감이 그녀를 감싸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절대적인 센터', '21세기가 낳은 혁명아', '야마구치 모모에의 재림' '아이돌계에 강림한 구세주'
지난 1년간 그녀를 보며 내 머릿속을 맴돌던 것은 '쟤는 어떤 아이일까?'라는 의문이었다. 비록 나 스스로가 납득 할 만한 대답은 아닐지라도, 어떻게든 그런 의문에 대한 답을 독자들에게 전해야만 하는 편집자, 기자로서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내가, 그리고 나와 같은 의문을 가졌던 수많은 라이터, 편집자들이 '히라테 유리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답을 내기 위해 수 많은 비유를 들이댔었다. 하지만 정작 히라테 본인은 저런 수 많은 비유에 대해 '저 중에 정답은 없는데'라며 내심 웃어 넘겼으리라. 저런 비유를 사용한 바 있던 본지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좀 우스운 일이지만, 분명 히라테 유리나라는 사람을 적절하게 나타내는 캐치프레이즈는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말이다.
하지만 그 날, 아무도 없는 불꺼진 야마시타 부두에 홀로 서 있는 그녀를 보며 우리들 만큼이나 히라테 본인도 아직 '히라테 유리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답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 답을 찾기 위해 내일도 히라테는 자신이 '히라테 유리나'로 있을 수 있는 장소에서 싸워 나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 해 보면 이제 겨우 15살밖에 되지 않은 소녀가 보내는 매일매일이 얼마나 농도 짙고 장대한 것인지가 가슴을 저미듯이 느껴 져, 내 안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것만 같았다.
케야키자카46은 서로를 지키며 전진 해 왔다.
춤에 자신이 있는 스즈모토가 춤을 못 추는 나가사와에게 손을 뻗고, 오다는 다른 이를 웃게 하며 멤버들이 긴 촬영에 지치지 않도록 해 주었다. 히라테는 점심시간을 앞두고 멤버들의 집중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몇 번이고 모니터를 체크하며 전체적인 움직임을 확인하였다. 이런 모든 것들은 하나하나 따로 떼어놓고 보면 참 사소한 일일 지 몰라도, 이 MV가 테마로 삼았던 '지켜 낸다'는 행위를 자연스레 하고 있었던 것이다.
'불협화음'이라는 음악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 낸 케야키자카46.
그녀들에게도 두 번째 봄이 찾아왔다. 그리고 머지않아 여름이 찾아 올 것이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 할 미래를 향해, 그녀들은 앞으로도 서로를 지켜주며, 서로 도와가며 전진 해 나갈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