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BKA 1706 이노우에 사유리 X 쿠보 시오리
'꽃이 피는 곳'
'숲이 좋아요'
-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노우에상과 쿠보상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생각에 이번 대담을 세팅하게 되었습니다.
이노우에 (이하 '이') :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런 말 처음 듣는걸요.
쿠보 (이하 '쿠') : 네. 처음이네요.
- 오늘은 어쩌다 보니 비가 오는 가운데 촬영을 하게 되었는데요, 공교롭게도 두 분 모두 '쨍하게 맑은 날'이라기 보다는 '촉촉하게 비가 오는 날' 느낌이 나요.
이&쿠 : 후후후
- 목소리 톤도 비슷하네요. 평소엔 그다지 큰 소리 내지 않는다는 점도 비슷하고.
이 : 체력을 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웃음) 아, 요 전에 쿠보쨩이 '노기중'에서 갑자기 '왁!!'이라고 큰 소리를 내며 깜짝 놀라게 하는 기획이 있었잖아요.
쿠 : 아, 숨바꼭질 때요.
아 : 기본적으로 그런 타입이랑 안 맞아요.
- 아니 평소에도 그러는 사람이 있어요?!
이 : 있어요. 가끔 길을 걷다 보면 자전거를 탄 사람이 뒤에서 '띠링띠링'하고 갑자기 벨을 울린다던지 하거든요. '그럴거면 차도로 가라고!'라 생각하곤 하죠. (웃음)
쿠 : 후후후
이 : 저 같은 경우엔 가급적이면 제 자신의 시간축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
쿠 : 저도 제가 편한대로 사는 타입이에요. 다른 사람들이 '저기, 내일 어디 놀러가자. 어디 가고 싶은 데 있어?'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가운데에는 그다지 끼지 않는 편이에요.
- 모두 함께 즐겁게 놀고 싶어!! 같은 생각은 안 하나요?
쿠 : 함께 쇼핑을 가기보다는 홀로 숲으로 놀러 가는 게 좋아요. (웃음)
이 : 와, 그거 나랑 똑같아! 신기하네.
쿠 : 에?! 에?! (감격한 듯한 표정)
이 : 요 전에도 혼자 나가노현 가서 등산하고 왔는 걸.
쿠 : 우와~
- 쿠보상, 손이 떨리는데요. 괜찮아요? (웃음)
쿠 : 뭔가 기뻐서요.
이 : 응.
쿠 : 도시는 아무래도 큰 소음들로 가득 차 있잖아요.
- 하긴, 만화카페 선전 트럭이 굉음을 내며 거리를 달리곤 하죠.
쿠 : 제 고향에는 그런 게 거의 없어서 처음 봤을 땐 엄청 놀랐어요. 그렇기에 때로는 전철에 타고 조금 멀리까지 가서 조용한 곳에서 유유자적하게 지친 심신을 쉬게 하고 싶어요. 그래서 그런지 자주 '요즘 애 같지 않아'라는 말을 듣곤 하죠. (웃음)
- 아무래도 혼자 있는 편이 편한가요?
쿠 : 그렇네요.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면 그 사람의 시간이 제 시간이 되어버리는 거 잖아요. 어쩌면 그 사람은 저랑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보다 더 하고 싶었던 것들이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제게 맞춰버리는 게 영 미안해서 말이죠. 그러다 보니 함께 놀자고 말을 꺼낸 저 스스로도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고, 그러다 보니 금세 지쳐버리거든요.. 그렇기에 차라리 그럴 바엔 혼자 지내는 편이 더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 이노우에상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것 보다는 홀로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지요?
이 : 그렇긴 한데, 다른 사람의 초청은 거절하지 않아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 자체는 좋아하거든요. 아, 물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건 좀…
- 예를 들어 50명 정도가 모여서 쫑파티를 한다던가?
이 : 우와… 안 맞아요. 기본적으로 쫑파티 같은 단어만 봐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지는 걸요. (웃음)
- 혼자 우두커니 앉아서 빨대만 만지작거리는 이노우에상의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웃음) 아, 그럼 바비큐 파티 같은 건 어때요?
이 : 저랑 가장 안 맞는 게 그건데요. 애초에 그런 신식 문물 자체가 익숙치 않아요. 영화관도 없고 가라오케도 없는 동네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 쿠보상도 '지금껏 불꽃놀이를 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요.
쿠 : 네. 아직 본 적 없어요. 저 같은 경우, 누구랑 함께 가냐 마냐 이전에 애당초 같이 가자는 사람이 없어요. (웃음) 딱히 이지메를 당했다던가 한 건 아니지만, 같은 부의 친한 친구들이 불꽃놀이를 보고 와서 나중에 '아, 요 전에 불꽃놀이 보고 왔어'라고 이야기 해 준 적은 있었네요. 친구들 모두 유카타를 입고 다녀왔다는 것 같은데, 저는 그런 것도 몰랐기에 나중에 '불꽃놀이가 뭐야?'라는 느낌이었어요. (웃음) 뭐, 같이 가자고 했다면 같이 갔겠지만.
- 이노우에 선배님, 부디 쿠보쨩과 함께 불꽃놀이를 보러 가 주세요!
이 : 사실 저도 지금껏 불꽃놀이 보러 간 적 없는데요.
쿠 : 후후후
이 : 제 고향, 예전엔 불꽃놀이를 했었다는 것 같은데, 예~전에 한 번 폭발사고가 나서 산불로 번진 적이 있었다고 하네요.
- 산불이라.
이 : 그래서 그 날 이후로 불꽃놀이 축제자체가 중지되었어요. 물론 다른 동네에서 불꽃놀이 할 때, 먼 발치에서 조그맣게 불꽃이 터지는 걸 본 적은 있지만.
하드럭
- 지금 이야기를 나누면서 두 분의 또 다른 공통점을 발견했어요. 두 분 모두 자학개그를 잘 하신다는 점이에요.
이&쿠 : 후후후
- 예전에 들었던 쿠보상의 자학개그가 걸작이었어요. 딱히 내키지 않았지만 쭈뼛쭈뼛 피자가게에 갔는데 영업시간이 끝나 있었다던가, 규동가게에서 용기를 내어 주문을 했는데 요리가 안 나왔다던가.
이 : 야 그거 대단하네요.
쿠 : 정말로 항상 그런 일들만 일어나요… 한 번은 제 곁에 있던 사람이 전철과 플랫폼 사이에 스마트폰을 떨어뜨린 적이 있거든요. 그거 아마 제가 그 칸에 탔기 때문에 일어 난 일일거예요.
이 : 아니 그거 우연이겠지. (웃음)
- 이노우에상도 의외로 저런 에피소드가 끊이지 않는 타입 아닌가요.
이 : 저는 그냥 단순히 바보라 그래요. 그래서 일상생활에서도 실수만 하는 거겠죠.
- 덤벙대는 거 아닌가요?
이 : 음… 그렇게 귀여운 게 아니란 말이죠. 예를 들어 영화를 보러 가서, 표를 사서 극장에 들어 갔단 말이죠. 그것도 꽤 일찍 들어갔기에 예고편까지 전부 보고, 드디어 본편이 시작되었는데… 총을 든 남성이 빌딩 옥상에서 누군가를 저격해서 죽이는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애초에 제가 보러 간 건 애니메이션이었는데… 정작 흘러나오는 건 꽤나 그로테스크한 외국 영화…
- 얼레? 그림이 아니고 실사였나요? (웃음)
이 : 네. 하지만 '와!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구나! 참신하다!'라고 생각하며 10분 정도 그대로 영화를 봤어요.
- 설마…
이 : 보다 보니 아무래도 다른 작품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면서 밖으로 나와 확인 해 보니, 제가 보려 했던 건 옆 상영관이었다는… (웃음)
- 참고로, 보려 했던 영화는 뭐였나요?
이 : 지브리의 '바람 불다'요.
쿠 : 후후후
- 아무리 그래도 분위기가 너무 다르잖아요. (웃음)
이 : 기본적으로 '전쟁' 이야기잖아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시작되는가보다… 했죠. '지브리는 이번에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구나! 대단해!'라면서.
-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은퇴작품에 그 정도로 실험적인 시도를 할 리가 없잖아요.
쿠 : 그러고 보니 저도 최근에 실수 한 게 있어요.
- 오 쿠보상, 갑자기 불 붙으셨네요.
쿠 : 얼마 전 일인데요, 촬영차 강에 들어 갈 일이 있었는데, '아 물 차가워~'이러면서 천천히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다가… 그게… 삐끗해서…
- 완전 콰당 하고 넘어 져 버렸나요?
쿠 : 네. 넘어졌어요. 촬영 직전인데 제복은 진흙 투성이지, 머리도 흠뻑 젖어서 엉망이지… 스타일리스트상, 메이크상에게 면목이 없었어요. 정말이지 항상 여러 분들께 폐만 끼치네요.
- 운이 없다 해야 하나…
쿠 : 그게 천성적으로 타고 난 거라서요.
이 : 에? 타고 난 불운이라고? (웃음)
쿠 : 뭘 하건 운이 없었어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어떤 불운이 있었는 지 전부 기억하고 있어요.
- 그렇게 옛날부터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났나요?
쿠 : 네. 유치원 때 소프트블럭(쌓으며 노는 스펀지제 블록) 갖고 놀고 있었는데, 다른 아이가 '그것 좀 빌려줘'라고 해서 '그래, 하지만 부수면 안돼'라고 당부를 했었는데… 완전 산산조각 났었지요… 뭐 그런 식이에요.
- 어릴 때부터 불운의 연속이었군요. (웃음)
백합과 벚꽃
- 아무래도 자학개그 탓인 것 같긴 한데, 아무래도 두 분은 '자기 긍정'이 부족한 느낌이 있어요. 아무리 칭찬을 받아도 '아뇨, 그렇지 않아요'라고 부정하시곤 하고…
쿠 : 저는 아무래도 저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그렇게 말씀 해 주시는데 부정하는 것도 실례되는 일이라는 생각은 하지만, 저도 모르게 부정하게 되곤 해요. 물론 그래선 안된다는 것도 알고는 있지만… 애초에 낯가림도 심하고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낮기에 항상 '미움 받을 말, 오해 살 말을 한 건 아닐까'하고 전전긍긍하곤 해요.
- 집에 돌아 가, 홀로 반성회를 한다던가 하나요?
쿠 : 네. 항상 집에 가서 '아 더 이상 날 불러주지 않으실 지도 몰라' 라던가, '카메라맨분께서 더 이상 날 찍어주지 않으실지도 몰라' '더 이상 인터뷰에 불러주지 않으실지도 몰라' 같은 생각을 하곤 해요.
- 그럴리가요.
쿠 : 지금까지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사 본 적'이 없었기에…
- 지금은 이렇게 많은 팬분들께서 쿠보상을 '좋아 해' 주고 계신데요.
쿠 :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만, 정말 신기할 따름이예요. '나 같은 걸로 괜찮을까?' 같은 생각은 지금도 해요.
- 이노우에상은 활동을 하다 스스로를 긍정하게 된 타이밍이 있었나요?
이 : 아뇨 아직은… (웃음) 아무래도 저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겠지만요. 그래서 자신만만한 사람을 보면 부러워요.
- 참고로 이노우에상은 스스로를 '색'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색일 것 같나요?
이 : 음… 무슨 색일까요. 좋아하는 색은 흰 색이거든요. 아무래도 이름이 '사유리 (작은 백합)'이다보니. 하지만 파랑과 흰색이 섞인 하늘색이나, 녹색과 흰색이 섞인 연녹색처럼 파스텔톤도 좋아해요. 사복도 그런 색깔 계열이 많고요. 그러다 보니 성격도 이런 걸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 파스텔톤에 어울리는 성격이요?
이 :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색깔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투명한 색은 아니고, 뭔가 다른 색이 섞여 탁한 색이라 해야 하나. 그다지 자기주장은 안 하고 얼버무리지만 자신의 주관은 있는 편이라 해야 할까요.
- 그렇군요. 자신만의 '색'은 확실히 갖고 있지만, 겸허한 느낌의 색조라는 얘기네요.
이 : 네. 하지만 검은색은 아닌 것 같아요. 검은색은 그 무슨 색에도 물들지 않는 고고한 색이잖아요. 저는 그런 사람까지는 아닌지라.
- 쿠보상, 전월호 인터뷰에서 자신을 색깔로 비유한다면 무슨색이냐는 질문에 '회색일지도 모른다'는 말씀을 하셨잖아요.
쿠 : 네. 그것도 엄청 불투명한 회색.
- 사실 그건 어느 정도 자학개그가 섞인 대답이라 생각하는데요, 진정한 자신은 어떤 색이라 생각하시나요? 혹시나 아직도 회색이라 생각하신다면 '되고 싶은' 색은 어떤 색인가요?
쿠 : 정말로 회색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아까 촬영을 할 때 벚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보며 생각 한 거네요, 벚꽃잎은 분홍색이지만 어딘가 투명한 담분홍빛이잖아요. 예를 들어 달리아 꽃은 엄청 색이 진한데, 그러다 보니 호불호가 확연히 갈리는 거라 생각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보면 벚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그다지 본 적 없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 하긴, 벚꽃 싫어하는 일본인은 없다 봐도 무방하죠.
쿠 : 그러니까, 가능하다면 저도 벚꽃처럼 색이 옅고, 누가 보더라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색을 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이렇게 우중충한 회색 성격이지만, 조금이라도 저 자신에게서 인정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나가다 보면 저도 언젠가는 벚꽃 색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만약 그런 사람이 된다면 즐거운 일도 많이 늘어나겠죠? (웃음)
- 두 분께서 앞으로 어떤 색 꽃을 피워 내실 지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