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시와기 유키, 와타나베 마유 '왕복서간' 세 번째 편지
세 번째 편지
'꿈꾸어 왔던 무대
제 3기 AKB48 추가멤버오디션 응모자 수는 1만 2828명.
그 중에서 1차심사를 통과 한 것은 불과 134명, 나아가 2차 심사까지 통과 한 사람은 겨우 72명 뿐이었다.
'이번에는 특별히 좀 많이 뽑아서 나도 합격시켜주면 좋겠다'
카시와기 유키는 두 손을 모아 아이돌을 관장하는 신에게 기원한 것은 위와 같았다. 하지만 정작 최종합격자 수는 오프닝 멤버 오디션 때 보다도 2명, 와타나베가 불합격한 2기생 오디션보다는 1명 적은 18명뿐이었다.
3기생 오디션에 합격한 소녀들은 불과 1주일 뒤, 아키하바라 UDX빌딩 2층 AKB SQUARE에서 열린 AKB48 1주년 기념공연 'AKB48 1st Anniversary LIVE! 드디어 완성된 A K B'에 서게 되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가고시마에서 올라왔습니다. 중학교 3학년, 카시와기 유키입니다. 저는 춤과 노래를 통해 여러분께 메시지를 전해드릴 수 있는 가수가 되고 싶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겠사오니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카시와기 유키의 풋풋한 인사가 끝난 뒤, 와타나베 마유 역시 선배들과 관객들을 향해
'사이타마 출신 와타나베 마유입니다. 12살 중 1입니다. 항상 미소를 짓고 있는 쾌활한 사람입니다. 오늘 이 곳에 모여 주신 여러분께서 제 이름을 기억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라며 미소 지으며 인사를 하였다.
그 다음날부터 극장공연 데뷔를 위하여 레슨의 나날이 이어졌다. 아침 10시부터 밤 10까지 이어지는 레슨은 나날이 허들이 높아져만 갔다.
'이 극장 무대와 객석간의 높이 차이는 겨우 몇 센티미터 정도밖에 안되지만, 하지만 그 '수 센티미터'가 바로 아이돌이 된 사람과 되지 못 한 사람의 차이야. 그 점을 명심하도록'
안무를 지도한 나츠 마유미의
말에 카시와기와 와타나베는 눈물을 흘렸다.
와타나베 마유 귀하.
그 날, 처음으로 마유와 함께 무대 위에 선 날은 2006년 12월 9일이었지요. 그 날에 대해서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요.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가 벽, 천정에 어지럽게 반사되며 극장 안을 가득 채우는 가운데, 이름이 불린 사람들이 한 명씩 차례로 센터 마이크 앞에 가서 섰었지요.
네, 우리가 선 것은 '약속의 장소', 우리가 그토록 동경 해 오던 곳, 그토록 꿈꾸어 왔던 곳이었던 것이지요.
처음 서게 된 무대.
처음 하는 인사.
처음으로 들어보는 땅울림과도 같은 사람들의 목소리.
눈에 보이는 것은 우리들… '팀 B 후보생'들이 아닌 선배들뿐…
그렇게 되리라는 거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키링~;이라며 제 이름을 불러주고
빈말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제게 '귀여워'라고 이야기 해 주었지요.
네, 그것이 바로 제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인생의 첫 걸음을 떼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마유, 당신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겠지요?
회장에 있던 우리 엄마가 스태프분들의 안내를 받아 무대 뒤편으로 가신 뒤, 저와 영상통화를 하는 깜짝연출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 해 보면 그게 꼭 필요했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하지만, 정말 즐거웠어요.
…
네, 어디까지나 겉으로 드러난 카시와기 유키 얘기는 여기까지예요.
하지만 그 뒷편에는 누구에게도 이야기 한 적 없는 비밀이 숨겨져 있었어요.
음… 어떻게 할까요…
네, 마유에게만은 솔직하게 말하도록 할게요.
솔직하게 말 하자면 그 날, 저는 내심 '이 인사가 AKB48의 카시와기 유키에게 있어 처음이자 마지막 무대가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왜냐고요?
왜냐면, 그 전까지 저는 그저 일개 AKB오타쿠였을 뿐인걸요.
몇 번이나 팬레터를 쓰거나, 악수회에 가거나 했던.
너무 중증 오타쿠였기에 그런 과거가 밝혀지면 무조건, 120% 확실하게 합격 취소되어 잘릴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아! 마유 지금 이거 읽고 웃었지요?
뭐, 마유라면 용서해 줄 수 있어요.
그리고 그 날로부터 3주일간은 태어 나 처음 겪어보는 노도와 같은 매일매일이었어요.
도쿄에서 살 집을 구하고,
전학 갈 학교를 찾아 수속을 밟고,
이사 준비를 하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벙쪄있는 아빠를 위로 해 드리고…
정말이지 크리스마스고 연말연시고 없이 정신없이 보냈어요.
1월에 도쿄로 상경 한 직후엔 어째선지는 몰라도 오오시마 유코쨩의 언더로 지명을 받아서 다른 일 관계로 유코쨩이 공연을 쉰 유코쨩의 자리에 들어 가, 전국투어 무대에까지 오르게 되었어요.
유코쨩을 보러 온 팬분들 앞에 제가 섰을 때는…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도 식은 땀이 날 정도인걸요.
정말 지옥같았어요.
그에 비해 팀 B 극장데뷔를 대비하여 하루 12시간씩 이루어 진 레슨은 정말 너무나도 즐거웠어요.
선배들 사이에 끼어서 돌았던 전국투어와는 달리 극장공연 레슨때는 전부 사이가 좋은 동기들이었고, 공연 자체도 저희들을 선보이는 공연이었으니까요.
'프로페셔널이란 무엇인가?'라던지
'지금 우리들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등등
조금이나마 프로라는 존재의 위대함을 알게 되어 동기들끼리 엄청 울었던 적도 있었지요.
그 당시 저는… 아니, 저희 3기생들은… 뭐랄까요, 다들 어딘지 좀 붕 떠 있었던 것 같아요.
마유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
처음 마유와 이야기 했던 거, 정말로 3기생 레슨때였던가요?
지금까지 나온 얘끼 맞다면 제가 마유에게 '도시락 뭐 먹을거야?'라고 물었던 것이 첫 대화였을텐데,
미안하지만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없는걸요.
정말 미안해요.
하지만 그 당시 마유는 항상 뭔가를 겁내는 작은 동물 같은, 그런 위태위태한 느낌이 있었어요.
말을 걸어보아도 항상 '응' 아니면 '네'라는 대답뿐이었고, 일부러 말을 길게 이어가려 하지 않는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랬었는데…
이토록 서로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사이가,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사이가 될 줄이야.
아직 26년밖에 살지않았지만, 정말이지
인생이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네요.
유키링에게
UDX에서의 첫인사는 저도 기억에 생생해요.
무대 위에 서서 고개를 든 순간, 제 눈에 들어 온 것은 수 많은 사람들이었어요. 수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몇 겹이나 되는 벽을 이루고 있었지요.
그런 벽이 몇 겹이나 되는지,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맨 뒤는 어디인지 보려 해도 보이지 않았지요.
한 사람씩 이름이 불리어 센터 마이크 앞으로 갈 때마다 눈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벽에서는 엄청난 열기가 일제히 뿜어져 나와, 마치 무대를 덮치는 것만 같았습니다.
긴장감에 다리가 떨렸지만, 동시에 엄청 즐겁고 기쁘고, 흥분되었어요. 정말 사실이 아닌것만 같았어요.
비록 이름, 나이, '열심히 하겠다'는 뻔한 말밖에는 못 했지만, 그래도 정말 즐거웠지요.
'아, 나 정말로 AKB멤버가 되었구나'
'드디어 되었구나!'
짐심으로 그렇게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물결같았던 기쁨이 어느 사이엔가 엄청나게 큰 파도가 되어 저를 휩쓸었지요.
'나, 지금 이 세상의 모든 행복을 독차지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어요.
하지만…
그 때 그토록 어마어마하게 커 보였던 회장이, 그래도 1만명은 들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회장이, 얼마 전에 가 보니 굉장히 작게 느껴져서
'어?'라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아까 유키링이 저에 대해 '처음에는 겁을 내는 작은 동물 같았다'고 했지요?
왜 그렇게 보였던 걸까요?
저 개인적으로는 딱히 겁내거나 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오히려 합격 직후부터 항상 기뻐서 하늘을 나는 것만 같은 매일매일이었는 걸요.
합격발표 다음날, 엄청 상쾌하게 잠에서 깬 순간부터 이미 완전히 'AKB48 멤버 와타나베 마유' 모드였지요.
커튼을 열었을 때 눈에 들어 온 것은 매일 보아 온 풍경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다른 것 처럼 느껴졌어요.
잔뜩 들뜬 채 아침밥을 먹고, 취주악부 아침 연습을 가는데, 손에 든 가방이 너무나도 가볍게 느껴지더군요.
12월의 차가운 바람마저 따뜻하게 느껴졌을 정도였고,
나무, 풀, 스쳐 지나가는 처음 보는 사람, 바람에 날리는 먼지들 조차 전부 반짝반짝 빛을 내며 제게 '축하한다'고 이야기 해 주는것만 같았지요.
학교로 가던 도중에 취주악부 친구를 만났을 때 쯤에는 저도 모르게 깡총깡총 뛰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친구는 '뭐야? 뭔 일 있어? 왜 그렇게 신이 났어?' 라며 신기한 듯 바라보았지요.
그도 그럴 것이, 이전까지는 길을 걸으면서 신나서 깡총깡총 뛰는 사람은 아니었거든요.
'응? 뭐가?'
'뭐가가 아니고 진짜 뭔 일 있어?'
그런 친구의 질문에 대답 대신 후후후후후 하며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다시 깡총깡총 뛰는 저…
억누를 수 없는 기쁨이 전신에서 흘러 넘쳐 이대로 '하늘을 넘어 우주 저 편까지 날아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기쁨이었지요.
그런 기쁜 나날은 그 날 하루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몇날 며칠이고 이어졌습니다.
그렇기에, 유키링이 생각하듯이 무언가를 겁내거나 한 적은 없어요.
유키링은 어째서 그런 느낌을 받았던 걸까요?
인사를 할 때도, 첫 공연을 앞두고 레슨을 받던 시기도, 항상 그렇게 들떠있었어요.
아침에 학교를 닸다가 끝나는 순간 바로 1시간 이상 걸리는 아키하바라로 달려가서는 레슨을 했어요. 연습을 끝내고 집에 들어오는 것은 다음날이 시작되는 12시 전후.
막차에서 잠이 들어 종점까지 갔다가 돌아 온 적도 셀 수 없이 많았지요.
레슨때는… 춤이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아서, 다른 멤버들에게 뒤쳐졌던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즐거웠어요.
물론 힘들 때도, 괴로울 때도 있었지요.
생각처럼 되지 않아서 스스로에게 화가 난 적도 있었어요.
그런 적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쁨이 훨씬 컸기에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몸은 지쳐서 너덜너덜했지만, 마음만은 합격 한 그순간 이후로 항상 변함없었어요.
네. 너무나도 즐거웠지요.
꿈을 꾸고 있는 것 처럼…
모든 감정 위에 '기쁨'이라는 감정이 있었지요.
그런 마음은 얼마나 이어졌던 걸까요?
1년? 2년?
아니, 최소 3년은 계속 그런 기분이었던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