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시와기 유키, 와타나베 마유 '왕복서간' 다섯 번째 편지
다섯 번째 편지
선발 입성
카시와기 유키와 와타나베 미유
두 사람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어왔다. 꿈에도 생각 못 했던 선발 입성이었다.
그 소식이 날아 든 것은 2007년 7월 18일에 릴리스 된 AKB48의 4번째 싱글 'BINGO', 센터는 다카하시 미나미와 마에다 아츠코였다.
이전까지 1기생과 2기생들만이 뽑혀 왔던 '선발'에 3기생인 두 사람이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해 연말에는 그룹의 첫 홍백 출장도 달성 해 냈다. '오타쿠계 아이돌'이라 불리며 마이너한 취급을 받아 온 그룹에게 있어 홍백 출장은 한 줄기 빛이 비추어 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라비아 촬영, 주간 만화잡지 표지 장식, TV방송 출연…
갑작스레 여러 일거리 오퍼들이 물밀 듯 밀려 와, AKB라는 그룹은 한 번에 두 계단, 아니 세 계단씩 뛰어넘어 '스타덤'에 오르기 시작했다.
2009년에는 제 1회 선발총선거가 개최되고, 동년 10월 21일에 발매 된 14번째 싱글 'RIVER'가 그룹 역사상 처음으로 오리콘 주간 랭킹 1위를 차지하였다. 이듬해에는 5월 26일에 발매 된 16번째 싱글 '포니테일과 슈슈', 8월에 발매 된 17번째 싱글 '헤비 로테이션'이 연속으로 초동 50만장 이상을 판매하여 2년 연속 홍백가합전에 진출하는 등 인기를 구가하였다. 특히 이 해 홍백에는 정규멤버 뿐 아니라 연구생, 자매그룹인 SKE, NMB까지 103명이나 되는 인원이 무대에 오르기도 하였다. 11년에는 22번째 싱글 '플라잉 겟'을 통하여 일본 레코드대상을 수상하는 등, 엄청난 기세로 '모르는 사람이 없는 톱 아이돌'로 성장 하였다.
와타나베 마유 귀하.
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걸까요.
마유는 기억하고 있나요?
저는 아무리 기억을 해 보려 해도 점점 그 기억의 파편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 져 버리는 것만 같아요.
히트차트 1위, 홍백가합전, 그리고 레코드대상…
글자만 봐선 정말 대단한 일이네요.
하지만 정작 그룹의 일원으로서 그 한 가운데 서 있던 내 입장에선 실감이 하나도 안 났거든요.
마유는 어땠나요?
아이돌들의 정점에 선 그룹…
그렇게 느낀, 그렇게 생각하게 된 순간이 있었나요?
아마도… 없었을 거라 생각해요.
아니, 절대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강렬한 개성과 개성이 만발하며, 작은 빛들이 큰 빛을 더더욱 빛내게 해 주는 것만 같았던 위대한 선배들을 쫓아 가야만 했던 우리는… 우리들은 그것 만으로도 필사적이었어요.
달리고 달리고… 아무리 숨이 턱밑까지 차 올라도 쉬지 않고 달려야만 했지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저 필사적으로 달리다 보니 어느 사이엔가 그 곳에 서 있었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고, TV에 출연하고, 잡지 인터뷰를 하고…
매일 밤 늦게까지 일을 하고, 심야 느지막히 일이 끝나면 바로 그 다음날 스케줄을 건네 받고,
'내일 스케줄은 아침 5시 집합이구나… 일단 집에 가면 세 시간 정도 잘 수 있겠네'…
매일매일이 그런 식이었지요.
심지어 힘들다던가 하는 마음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어요.
처음에는… 분명 도쿄에서 학교를 다니며 아키하바라에 있는 작은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춤 출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었는데 말이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가고시마로 돌아 가 취직하겠다고, 3년간만 아이돌을 하자고 생각했던 시간은 정말 눈 깜빡 할 사이에 지나 버리더군요.
그렇게 보자면, 지금까지 저의 아이돌 인생을 단 한 마디로 정리 해 보자면
'그저 해야 할 일들을 담담하게 해왔을 뿐'
이라는 말로 정리가 될 것 같네요.
아마 마유도 저와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선배님들께서는 모두 다정하게 대해 주셨지만, 저희 쪽이 먼저 어려워 하며 벽을 쌓았었지요.
먼저 말을 건다는 게 너무 주제넘는 것 같았어요.
아, 저는 괜찮으니 신경 안 쓰셔도 된다며 먼저 뒷걸음질쳤지요.
선배님들 안에서 항상 마유와 저는 구석에 서서, 기척을 지우고 조용히 앉아 있었어요.
물론 이전에도 대화는 했었고, 팀 B의 동료라는 의식은 있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마음을 열어야 할 지를 재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거든요.
내가 내 모습을 어느 정도까지 내보이면 쟤가 받아 줄까.
아직 조금 더 보여줘도 되려나?
아, 이번에는 조금 너무 나갔나…
아, 다행이다. 받아들여 줬어.
그런 식으로 시행착오를 거치며 조금씩 거리를 좁혀왔던 것이, 선발 입성을 계기로 한 번에 급속히 가까워 진 것 같네요.
그도 그럴 것이 그 때 제게 있어서는 마유밖에 없었고, 마유에게도 저밖에 없었잖아요.
물론 이렇게 말 하면 마유는 볼에 바람을 잔뜩 넣고
'그렇지 않아!'라고,
'그런 환경이 아니었더라도 유키링이랑은 친구가 되었을 거야!'라고 화를 낼 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그 때 제게는 마유밖에 없었어요.
이야기를 할 상대로서도,
이야기를 들어 줄 동료로서도,
함께 웃을 팀메이트로서도,
함께 울어 줄 친구로서도…
마유, 당신 한 명 뿐이었어요.
그러고 보니
처음으로 잡지 표지 촬영을 했던 날을 기억하나요?
장소가 분명… 시즈오카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첫 날은 선배님들과 함께 수영복을 입고 사진을 찍었는데,
긴장을 해서 완전 얼어버렸었지요. 웃을 수가 없었어요.
어찌저찌 촬영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 간 것 까지는 좋았는데, 마음이 놓여서였는지 잔뜩 밥을 먹고는 둘이 호텔 방으로 돌아 가서 잠 들어 버렸었지요.
그리고, 그 다음 날 예정 되어 있었던 개별 촬영에…
엄청나게 늦어 버렸었지요.
제 표정도 엄청났으리라 생각은 하지만, 그 당시 마유의 새파랗게 질린
표정은 솔직히 지금 생각하면 '왜 사진을 안 찍었을까'하고
후회 할 정도로 걸작이었지요.
유키링에게
저와 유키링의 명예를 위해 일단 한 가지 정정 할 게 있어요!
로케 장소가 시즈오카였던 것은 맞고, 첫 날 16분의 선배님들과 함께 표지 촬영을 했다는 것도 맞고요.
표정이 굳어서 얼어 있었던 것도, 호텔로 돌아 가 밥을 잔뜩 먹은 것고, 유키링과 함께방으로 들어 가 그대로 잠이 들었던 것도 맞아요.
한 가지 보충하자면 피곤과 만복감에 졸려서 눈을 비비면서도 어찌저찌 알람을 맞추고 잤었어요.
하지만, 하지만 말이에요…
둘 다 화들짝 놀라서 잠에서 깬 건, 엄청 늦은 시간이 아니라 로비 집합시간 4분 전이었어요.
그 때, 어쩌다 보니 둘의 알람이 안 울렸었는지, 아니면 누가 먼저 일어 나 무의식적으로 알람을 둘 다 껐던 것인지, 그도 아니면 둘이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알람을 껐던 것인지…
아직도 그 때의 미스터리는 풀리지 않은 채이지요.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예요.
일어나서 몇 초 정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 한 채 멍하니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던 저와 유키링은 바로 다음 순간 한 순간에 정신을 차리고는
'큰 일이야!' 라던지
'빨리 준비해' 같은 말은 물론이고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라는 절규조차 하지 않은 채, 그저 조용히 옷을 갈아입었죠.
옷을 전부 갈아 입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1분 정도였으려나요.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문을 열고는 미친듯이 달려나갔었지요.
그 덕분에 어찌저찌 집합시간 안에 로비에 도착 할 수 있었지요.
그러니까…
유키링 말과는 달리 지각은 하지 않았어요.
몇 초만 삐끗했더라면 지각할 뻔 했다.. 는 것이 사실이에요.
하지만 유키링과 제가 선배님들 틈에 끼어들이 못 했던 것은 사실이에요.
1기생과 2기생들도 어느 정도 차이가 있었지만, 저희들 3기생은 그보다 더 길게, 1년 가까이 차이가 났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더더욱 다가 서기가 힘들더라고요.
저희 나름은 배려 한다고 한 거였는데, 그게 지나칠 정도였지요.
저희를 걱정 해 주신 선배님께서 일부러 말을 걸어 주셔도
'네' 라던가 '열심히 할게요' '괜찮아요' 같은 말로 끝내버리곤 했지요.
게다가 저나 유키링 같은 경우에는 애당초 AKB팬이었기에 선배님을을 처음 만나게 되었을 때의 감동이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어
'우와, 마에다 아츠코상이야. 엄청 귀여워!'
라던가
'오오시마 유코상, 역시 멋져' 라던지,
겉으로 표현은 안 해도 내심 '우와 AKB멤버들이 눈 앞에 있어'라는 식으로 흥분 했었거든요.
물론 1년 넘게 함께 지내다 보니 그런 흥분은 조금씩이나마 익숙함으로 변했지만, 그럼에도 초창기 선배들과의 사이에 있던 팬과 아이돌의 높은 벽은… 결국 선배들이 졸업 할 때 까지 완벽하게 사라지지는 않았어요.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는 감각… 대충 알 것은 같지만,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 하자면 바빠진 뒤로부터는 그런 감각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어요.
지금 이렇게 졸업을 앞두고 되돌아 보니 '아, 그런 일도 있었지'라고 생각이 되는 정도지, 솔직히 한창 그 안에서 달리고 있었을 때엔 우리가 어떤 식으로 보여지는 지 따위 생각 할 수 없었어요.
그렇기에 '아이돌계의 정점에 섰다'는 감각도 없었고, 딱히 위기감도 없었을 뿐더러, 앞으로 어떻게 될 지에 대한 불안조차 없었지요.
그저 있는 것은 매일 매일이 그저 즐겁다는 느낌 뿐.
그 이상은 그다지 뭐가 뭔지 잘 모른 채 지나 갔어요. 그 땐 아직 어리기도 했고요.
물론 '어리다'는 말로 치부 해 버려서는 안되는 일이겠지만.
세세한 것들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건 사실이랍니다.
처음으로 선발 총선거를 했을 때의 기억도 마찬가지예요.
첫 해… 그러니까 13번째 싱글 선발을 총선거로 뽑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오, 인기투표 하나보네' 정도의 느낌이었지요.
팬 여러분께서 제게 주신 4위라는 순위가 얼마나 무겁고 큰것인지 생각도 못 했어요.
그랬던 것이 매년 매년 회를 거듭하며 점점 마음 속에 앙금이 쌓이듯 무게감이 쌓여만 가고, 부담이 되고, 혼자서는 견뎌내지 못 할 정도로 무거운 짐이 되고, 스스로의 마음을 갉아먹는 것이 되리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 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