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우 7일만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렸다.
제 1장
야마무로 카에데는 잠에 빠져 있었다.
관광버스 내부는 교복 차림 소녀들이 내는 소음으로 시끌벅적했다. 그렇게나 시끄러운데도 그녀는 깊게 잠들어 있었다.
잠 든 그녀의 얼굴은 마치 인형처럼 아름다웠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도 깊게 잠이 든 탓일까, 그녀의 얼굴은 마치 죽은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기도 했다.
수학여행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이기에 그동안 쌓여있던 피로가 얼굴에 드러나 죽은 것 처럼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버스는 잠 든 그녀를 태운 채 산길을 달린다. 저녁 빛이 드리우는 삼나무 숲 사이를 달리고 또 달린다.
갑자기 버스가 크게 흔들렸다. 그 충격에 잠들어있던 카에데가 눈을 떴다.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지...?”
카에데는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사이죠 아스미에게 말을 걸었다.
“계속 잠만 자길래 죽은 건 아닌가 했어.”
짓궂게 웃으며 아스미가 대답했다.
“뭐라고?”
카에데는 프리지아 학원 중등부 시절부터 절친하게 지내 온 아스미에게 웃으며 대답했다.
프리지아 학원.
중, 고등학교 일관으로 운영되는 기숙제 여학교이다.
관련시설도 전부 학교 부지 안에 완비 되어 있으며, 학생들은 그 안에서 중, 고등학교 6년간을 보내는 것이다.
또한, 프리지아 학원은 소위 말 하는 ‘미션 스쿨’로, 부지 내에는 채플, 다시 말 해 교회도 있었다.
카에데와 친구들은 오랜만에 학교 밖으로 나와 수학여행을 하고, 다시 그 학교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난 모양이야. 그래서 지금 국도로 돌아가고 있어.”
앞 쪽 자리에서 반장인 모로즈미 미노리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며 이야기했다.
“그래?”
카에데는 그렇게 대답을 하며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미노리의 말 대로 고속도로가 아닌 산길을 지나고 있었다.
(내가 자는 사이에 고속도로에서 벗어났구나…)
잠에서 덜 깬 상태로 카에데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이미 운전석에서는 이상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카 내비게이션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운전대를 잡아 온 버스 운전사조차도 처음 보는 에러였기에 어떻게 손을 써 볼 수도 없었다.
자신들이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 지 아무도 모르는 채, 버스는 소녀들을 태우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리고 또 달렸다.
카에데는 버스 앞 좌석 등받이에 설치되어 있는 그물망에 다 읽은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집을 쑤셔넣었다. 그물망 안에는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수학여행 일정표도 꽂혀 있었다.
카에데는 한숨을 쉬며
“아, 아직도 나가노현이야? 학교에 도착하면 대체 몇 시일까…”
라고 한탄했다.
“그러게…”
카에데의 말에 맞장구 치는 아스미의 목소리에서도 불만이 뭍어났다.
생각 같아선 빨리 학교로 돌아 가 쉬고 싶지만 어떻게 해 볼 수도 없는 노릇. 다른 학생들은 이미 포기 하기라도 한 듯 친한 그룹들끼리 모여 각자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는 아이도 있었고 기념으로 사 온 과자를 나누어 먹으며 수다를 떠는 아이들도 있었으며 거울을 보며 몸단장을 하는 아이도 있었다. 각자 자신들만의 방식대로 시간을 때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학생들과는 대조적으로 담임인 미야가와 아이는 연신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지연된 일정을 어떻게 조정해야 할 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이런 점만 보아도 선생과 학생의 차는 역력히 드러났다.
(다시 잠이나 잘까. 잠 좀 자면 시간도 가겠지.)
그렇게 생각한 카에데는 다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녀가 눈을 감은 순간, 끼기긱 하는 브레이크 소리를 내며 버스가 급정거했다.
버스 안을 가득 메운 소녀들은 갑작스러운 사태에 비명을 질렀다. 카에데 역시 눈을 뜨고 주변을 훑어보았다.
“이게 무슨 일이야?”
아스미가 깜짝 놀라서 이야기했다. 평소보다 큰 목소리였다.
다행히 패닉 상태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소녀들의 웅성거림은 멎을 줄 몰랐다.
“상황 파악이 끝날 때 까지 자리에 앉아 기다려 주세요.”
담임인 미야가와는 학생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운전수에게 가서 이야기를 나눈 뒤, 상황을 확인하기 위하여 차 밖으로 나갔다.
차창 밖으로 흰 연기가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차체 아래에서 피어 오르는 것 같았다. 이윽고 흰 연기는 빽빽하게 늘어선 삼나무 숲 사이로 흘러갔다.
삼나무 숲 속으로 흘러가는 연기를 눈으로 쫓던 카에데는 깜짝 놀라 숨을 삼켰다.
그녀의 시선이 멎은 곳은 삼나무 숲 속 오솔길 옆에 세워진 지장보살상 부근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놀라게 한 것은 지장보살상이 아니었다. 바로 지장보살상 사이사이를 가득 메우듯이 세워 져 있는 무수한 ‘손’들이었다.
손바닥을 활짝 펼치고, 마치 무언가를 갈구하듯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손들이 그녀를 놀라게 한 것이다.
그 ‘손’들은 돌로 만들어 져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어떤 것은 왼손, 어떤 것은 오른 손… 좌우로 기울어 져 있는 것들도 간간히 보였지만 대부분은 하늘을 향해 손바닥을 펼친 모양새였다.
“도대체 저건 뭐지…”
아스미가 카에데의 손을 잡으며 나직이 내뱉었다. 그녀도 지장보살과 ‘손’들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십 수년간 살아오면서 이런 그로테스크한 광경을 목도 한 것은 처음이었다. 대체 이건 무엇일까. 지장보살 신앙과 손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이 떨렸다.
“…여러분.”
공포에 질린 카에데의 귓가에 미야가와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 덕분에 카에데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버스를 고칠 때 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그리고 여기는 어째선지 무선도,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 것 같네요.”
선생님의 말에 학생들은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일단 버스에서 내립시다. 휴대폰이 터지는 곳 까지 걸어 가, 다른 버스를 불러서 돌아가죠. 여러분 내릴 때 귀중품은 잊지 말고 챙기세요.”
학생들은 투덜댔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반장인 미노리가 솔선해서 학생들을 이끌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들은 버스에서 내렸다. 카에데는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저녁놀이 물든 하늘은 금새 어두워 질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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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전파가 안 터지다니! 말도 안 돼!”
컴컴한 산길을 걸으며 카네무라 유이가 투덜댔다.
유이는 카에데의 반에서도 눈에 띄는 학생이다. 교내 서열로 봐도 상위권에 있는 학생이고, 다른 학생들을 괴롭히는 이지메 그룹의 중심 인물이었으며 때로는 반장인 미노리, 카에데 등과 충돌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단순한 불량학생은 아니었다. 국내외 할 것 없이 최신 패션에 밝은 정보통이기도 했고, 패션 센스 역시 모두가 인정하는 바였다. 아버지가 병원 경영자이고 어머니가 통번역가이기 때문에 남들보다 정보가 빠르고 센스가 좋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버스 무선도 안 터진다고 하잖아. 빨리 휴대폰 전파가 있는 곳을 찾아서 선생님께 연락 드려야 하지 않겠니?”
미노리가 투덜거리는 유이를 다독였다.
“아니 그렇다 해도 우리들이 걸어다니며 찾을 필요가 있었어?”
“음… 다 함께 찾아보자는 얘기지.”
미노리의 말에도 유이는 불만스러운 모습이다.
사실 카에데를 포함, 9명의 학생들은 숲 속에서 길을 잃은 상황이었다.
인솔하던 담임 선생님을 따라가던 중에 길을 잘못 들었는데, 당황해서 찾아보겠다 한 게 화근이었다. 결국 숲 속에서 완전히 미아가 되어 버린 것이다.
어느 사이엔가 해가 져, 숲 속은 완전히 깜깜해졌고, 불빛이라곤 스마트폰의 라이트가 전부였다.
“…선생님 그룹은 이미 전화 터지는 곳 까지 갔을걸…”
하나무라 호노카가 털썩 주저앉으며 입을 열었다. 지병인 천식 탓에 이렇게 오랫동안 걷는 것은 몸에 주는 부담이 심했던 것이다. 체력이 없어서 미술부에 들었지만 자신도 모르고 있던 재능에 눈을 떠, 여러 차례 상도 받은 바 있는 그녀였다. 그 뿐 아니라 성적 역시 전교 톱클래스였다.
“호노카, 힘 내.”
주저앉은 그녀를 격려 해 준 것은 사키카와 유즈키였다.
호노카와는 절친한 관계로, 마치 언니처럼 호노카를 세심하게 챙겨주곤 했다.
취주악부에서 색소폰 파트 리더를 맡을 정도로 리더십도 있고, 다른 사람을 잘 챙겨주는 성격이다.
그런 유즈키가 호노카의 팔을 붙잡고 일으켜 세우려 한 순간이었다. 그녀들의 머리 위에서 무언가가 갑작스레 강렬하게 빛을 발했다.
이윽고 공기를 찢어버리기라도 할 듯한 굉음이 사방을 가득 메웠다.
“와… 이거 실화냐..”
사사키 세나가 질려버린 듯 읊조렸다.
그녀는 테니스부 주장이자 뛰어난 스포츠 우먼에 사람들을 이끄는 힘도 있는 ‘좋은 사람’이지만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로 입이 험하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런 그녀에게도 소녀 감성이 남아 있었기에 ‘천둥번개’는 그녀가 무서워 하는 것 중 하나였던 것이다.
“번개와 천둥 소리가 차이가 얼마 안 나. 이거 자칫 잘못하면 위험하겠는데.”
세나가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을 듣고 아스미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운도 없지…”
“그러게.”
카에데도 아스미의 말에 동의했다. 정말이지 재수가 지지리도 없었다. 버스는 고장나지, 휴대전화는 안 터지지, 산 속에서 길을 잃은 것으로도 모자라 이젠 천둥번개까지 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아마 조금 있으면 비도 내릴 기세였다.
아스미는 목에 건 DSLR이 신경쓰이는 눈치다. 사진부이기에 수학여행 사진을 찍기 위해 일부러 가져 온 것이었다. 귀중품이기에 버스에서 내릴 때도 소중히 챙겨 왔던 것이다.
“자, 자, 빨리 길을 찾아 보자.”
미노리가 다시 모두를 독려했다. 그 말에 학생들은 다시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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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삼나무 숲을 지나고 나니 아래로 내려가는 돌계단이 나왔다.
계단 폭이 좀 좁긴 해도 잘 정비된 계단이다. 계단 양쪽으로는 석등이 늘어 서 있어, 어슴푸레하게 주변을 밝혀주고 있었다.
계단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발걸음을 옮기려니 지금까지 함께 걸어 온 멤버 중 한 명이 요지부동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카이 히지리였다.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그녀는 말하자면 교내 서열 최하위에 위치한 아이였다. 오컬트를 좋아하고 오타쿠적인 면이 강한 탓일까, 자신이 흥미를 갖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엔 흥분해서 끝도 없이 말을 늘어놓는 타입이었다.
그리고 사실인지 뜬소문인지는 모르지만, ‘영감이 있다’는 소문도 떠도는 아이였다.
“너 거기서 뭐 해?”
갑자기 멈추어 선 히지리를 향해 아키요시 린이 말을 걸었다. 걱정스러운 목소리였지만 말투에는 불만이 묻어 나왔다.
평소 밝고 명랑한 성격으로 반의 무드메이커격인 존재인 린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한 마디였다.
하지만 히지리는 좀처럼 계단을 내려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
“같이 내려가자.”
린이 다시 한 번 상냥하게 말을 걸었지만 히지리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다시 한 번 굉음이 울려퍼졌다.
히지리는 ‘여기 서 있다간 번개라도 맞겠다’라는 생각이라도 들었는지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걸음걸이는 주저하는 듯 무겁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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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계단은 끝 없이 이어지는 것 같았다.
아무리 가을이라곤 하지만 밤 시간대, 그것도 산 속은 추웠다. 교복인 점프 스커트와 블라우스, 타이츠만으로는 추위를 막을 수 없었다. 심지어 마지막으로 식사를 한 지도 한참 되었기에 체온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피로와 배고픔이 최고조에 달해 있는 상황에서 안개까지 자욱하게 껴, 그녀들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돌계단이 한 차례 끊긴 곳까지 내려왔을 때에야 휴식을 위해 발을 멈출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들이 발걸음을 멈추길 기다리기라도 한 듯, 갑작스레 번개가 번쩍이며 밤 하늘을 갈랐다.
번개의 섬광으로 발 아래의 풍경이 한 순간이나마 눈에 비쳤다. 나무 사이로 언뜻 보인 것은 산 사이 계곡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었다.
소녀들은 다시 기운을 내서 그 ‘마을’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두에는 미노리가 서서 친구들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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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가 저 멀리 눈에 보이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길 양 옆으로 무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오래된 자연석 비석, 만든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화강암 비석 등이 줄지어 서 있었다. 하지만 마을 규모에 비해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무덤이 많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뿐 아니었다. 아무리 한밤중이라 해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불이 켜져 있는 것이 자연스러울 터인데, 그런 등불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나도 부자연스러운 마을 풍경에 어느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민가를 몇 채인가 지났을 때, 갑작스레 굵은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 눈 깜빡할 사이에 소녀들의 교복을 적셨다.
갑작스러운 비에 소녀들은 달리기 시작했지만 포장이 되어 있지 않은 흙길과 주위를 가득 채운 어둠 탓에 생각만큼 속도가 나지 않았다. 앵클 스트랩이 붙어 있는 교복 구두가 연신 미끄러졌다.
“아, 정말 최악이야.”
유이가 진절머리 난 듯 소리쳤다. 다른 아이들도 말로는 꺼내지 않아도 같은 생각이리라.
미끄러운 흙길을 종종걸음으로 달리다 보니 눈 앞에 거대한 건물 그림자가 보였다.
오래된 절이었다.
본당으로 보이는 건물과 구리(※주지가 거주하는 별채, 혹은 부엌)로 보이는 건물 사이에 아치형 다리가 놓여 있었다. 마을 규모로 보아 이상할 정도로 호화로운 절이었다.
소녀들은 본당으로 보이는 건물 입구로 향했다.
그녀들은 입구 부근에 도착 한 뒤로도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구두를 벗은 뒤 처마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
“아무도 없는걸까?”
아스미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질문에 대답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실례합니다! 실례합니다! 아무도 안 계시나요?”
미노리가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빗줄기는 점점 거세져만 갔다.
“아무도 없는 것… 같지?”
역시 이번에도 그 질문에 대답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미노리는 간논비라키(※양쪽 여닫이) 문을 조용히 열었다.
‘끼기기긱’ 무거운 소리를 내며 서서히 문이 열리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공간이 소녀들의 눈 앞에 펼쳐졌다.
내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컴컴한 공간만이 있을 뿐.
그 순간, 천둥소리가 소녀들의 등 뒤를 때렸다. 소녀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다투어 건물 내부로 뛰어들었다.
“너무 어두워…”
누군가가 속삭이듯 말했다.
미노리는 조용히 스마트폰 라이트를 켰다. 라이트에 비춰지는 내부 모양을 보니 이 건물은 예상대로 본당이 맞는 듯 보였다.
본당 내부에 위치한 내진(※본존이나 부처를 모시는 곳)에는 각양각색의 불상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부처는 물론이고 무서운 표정을 한 명왕들이나 자애로운 미소를 띈 보살상, 심지어 승려의 모습을 한 좌상들이 가득 들어 서 있었다.
“아…”
미노리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장지문이 있었다. 살짝 열려있는 장지문은 아무래도 다른 건물로 이어지는 복도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아치형 다리로 된 복도에는 지붕이 있었고, 그 지붕에는 작은 범종이 매달려 있었다.
아홉 명의 소녀들은 조심스레 복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지붕이 낮아 머리가 부딪힐 것 같았다. 몰아치는 천둥번개에 깜짝 깜짝 놀라면서도 복도를 건너고 나니 아까 보았던 구리가 나왔다.
생활에 필요한 집기가 잘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면 역시 주지스님 가족이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아무도 안 계시나요…?”
미노리가 목소리를 높였지만 역시나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어디선가 장작에서 불똥이 튀는 듯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어 보니 구리 내부에 깔려 있는 다다미(※짚으로 짠 일본 전통 건축재료) 한 가운데에 전통식 화로가 설치 되어 있었고, 그 화로에는 불이 피워져 있었다. 그 뿐 아니라 화로 위에 걸려있는 찻주전자에는 물이 들어 있어, 그 물이 끓고 있었던 것이다.
“아!”
미노리는 방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 한 듯 뛰어 들어갔다.
미노리가 향한 곳에는 오래 된 검은색 전화기가 놓여있었다. 미노리는 수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돌렸다.
“전화 돼?”
아스미의 질문에 미노리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래도 연결이 안 되는 모양이다.
“아, 더 이상은 못 버티겠어.”
호노카가 다다미 위로 털썩 쓰러졌다.
“그래, 그럼 잠깐 여기서 쉬자.”
미노리의 제안에 소녀들은 한 명씩 다다미 위에 걸터앉기 시작했다. 피곤한 나머지 전등을 켤 생각도 안 한 채.
장지문 앞쪽에 자리 잡은 것은 카에데와 아스미, 미노리였다.
천둥 소리, 빗소리는 점점 심해져만 갔다.
하지만 천둥 소리와 빗소리 사이사이로 다른 ‘소리’들이 들려왔다. 그 ‘소리’는 마치 딱딱한 나무들끼리 부딪히는 듯 한 높고 새된 소리였다.
‘깡… 깡… 깡… 깡…’
(이건 무슨 소리지?)
카에데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신경을 집중하니 또 다른 소리가 섞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디갔느냐 헤메고있느냐 어디갔느냐 숨어버렸느냐 어디갔느냐 돌아가버렸느냐
아님죽어버렸느냐 도망가라도망가라 땅이움직인다 손이뻗어온다 내일이온다
되살아나리라 되살아나리라 잠비가온다 바로네뒤에 바로네뒤에있다
(이건 뭐지? 노래?)
아무래도 어린아이, 그것도 어린 여자아이 두어명이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아무리 들어도 어린아이들이 부를 법한 밝은 곡조의 동요가 아니라 너무나도 불쾌한 멜로디였다. 말하자면 옛날부터 내려오는 주술적인 동요 같은 느낌이었다.
“너도 들려?”
카에데는 아스미에게 말을 걸었다. 아스미는 잔뜩 겁 먹은 표정으로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무슨 소리야? 노래…?”
호노카도 잔뜩 겁을 먹은 채 입을 열었다.
유즈키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고, 아스미는 조용히 카에데에게 기대며 ‘무서워’라고 속삭이듯 말했다.
하지만 불길한 노래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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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벽에 걸린 시계가 소리를 내며 울리기 시작했다.
뎅… 뎅… 뎅… 뎅… 뎅… 뎅… 여섯 번 시계가 울린 것을 보면 지금 시간은 아마도 새벽 여섯시이리라.
시곗소리를 듣고 카에데는 눈을 떴다.
밝은 아침 햇살이 그녀를 비추고 있었다. 밤새 그녀를 괴롭혔던 천둥번개와 비는 어느 사이엔가 그쳐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었나 보네)
그러고 보니 잠 든 기억이 없다. 이상한 소음과 노랫소리에 잔뜩 겁을 먹었었지만 그런 공포조차도 피로에는 이기지 못 했던 것이리라.
문득 주변을 살펴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 방 안을 전부 뒤져보았지만 역시나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른 아이들은 어디 간 거지?)
다시 한 번 방 안을 둘러보다 보니 어제는 보지 못 했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벽에 모셔져 있는 긴 봉이었다.
카에데의 키 보다도 길고, 단면이 육각형인 것을 보면 아마도 절에서 쓴다고 하는 육척봉(※보통 봉술을 익힐 때 쓰는 2미터 내외의 봉.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스님들의 무예 수련에 자주 쓰임)인 것 같았다.
봉 앞에는 금줄이 드리워져 있었고, 금줄의 양쪽 끝에는 부적이 붙어 있었다.
그 아랫쪽에 설치 된 제단에는 양초가 두 개 세워 져 있었는데, 불이 붙어있는 것 보면 필시 누군가가 잠든 사이에 들어 와 양초에 불을 붙인 듯 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마치 무언가를 봉인이라도 하는 듯 한 느낌이었다.
카에데는 자신도 모르게 그 제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카에데가 제단에 도착하기 전에 어디선가 불어 온 바람에 촛불이 꺼지고 말았다.
‘분명 창문이나 문이 전부 닫혀 있는데 대체 그 바람은 어디서 불어 온 것일까’라 생각하니 갑자기 소름이 돋아 햇볕 아래로 도망 가기라도 하듯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카에데는 친구들을 찾아 마을을 뒤졌다. 오래된 건물들은 햇빛을 받아도 음울해 보였다.
아침 바람은 상쾌하다기 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한기가 느껴졌다.
어디갔느냐 헤메고있느냐 어디갔느냐 숨어버렸느냐 어디갔느냐 돌아가버렸느냐
어젯 밤에 들려왔던 노랫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이번에는 자신의 뒤쪽에서 들려왔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눈 앞에 오래된 건물이 보였다.
그 건물 처마 아래에는 사람 하나가 들어 가, 쭈그리고 앉을 수 있을 만큼 큰 통이 놓여 있었다.
얼룩덜룩 더러운 큰 통은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뚜껑이 붙어 있었다. 몸통 주변으로는 이중 삼중으로 붉은 실이 감겨져 있었으며 붉은 실 곳곳에 시데(※일본 신사에서 금줄에 끼워 놓는 종이. 결계나 봉인의 의미)가 끼워 져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흰 색이 아닌 붉은색 시데였다.
곰곰히 생각 해 보니 이 집 뿐 아니라 다른 집에도 이런 통이 놓여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아마도 이 지방의 풍습 같은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려니 문득 뒤통수 쪽에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낮은 계단 중턱에 처음 보는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초등학생 정도일까, 병적으로 흰 피부에 새까만 생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새빨간 원피스를 입고 종아리를 반쯤 가리는 긴 흰색 양말을 신고 있는 아이였다.
복장만으로는 이상할 것이 없었지만 팔에 안고 있는 인형이 위화감을 불러일으켰다.
아니 인형이기 보다는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지푸라기로 만든 인형’이었다.
갑자기 또 다른 시선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그녀의 주변 사방에서, 마치 그녀를 포위하고 있기라도 한 듯한 시선’들’이었다.
카에데는 시선을 좇아 주변을 한바퀴 빙 둘러보았다.
저 집 처마에 놓인 통 위에는 노파가, 그 건너편 집 통 위에는 노인이 서 있었다. 아까까지는 없었던 사람들이 통 위에서 그녀를 향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여기에 있어선 안 돼. 빨리 다른 아이들을 찾아야 해’
카에데는 달리기 시작했다.
집과 집 사이에 난 작은 골목길을 달려, 난간도 없는 위험한 다리를 건너기까지 하며 친구들을 찾아 보았지만 어디에도 친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디로 간 거지?)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려 마을 외곽까지 왔을 때, 갑자기 발이 걸려 넘어졌다. 바닥에 무릎이 부딪혀 아팠지만 참아내고 몸을 일으켰다. 대체 뭐에 발이 걸려 넘어졌는지 확인하고자 바닥을 보니 세로로 쪼개진 돌 불상이 나뒹굴고 있었다. 버려진 뒤 오래 되었는지 표면이 심하게 마모 되어 있었다. 의외의 광경에 자기도 모르게 숨을 삼킨 순간, 그녀 근처 풀숲에서 소리가 났다.
화들짝 놀라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니 머리에 까치집을 지은 중년 남성 하나가 풀숲을 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키가 크고 안경을 쓴 남자다. 두꺼운 렌즈 너머로 남자의 눈이 날카롭게 빛나더니 무뚝뚝하게
“너 지금 여기서 뭐 하니?”
라고 말을 건다.
“네?”
“빨리 나가!”
남자는 소리 치며 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 저기… 길을 잃었어요.”
주저앉은 채 그렇게 말을 하는 카에데의 얼굴을 의심쩍은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남자는 곧이어 손을 뻗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모리구치 타쿠마라 한다. 기자지.”
“저는 야마무로, 카에데, 라고 합니다.”
카에데는 남자의 손에 이끌려 일어나면서 자기 소개를 마쳤다.
“길을 잃었다고? 뭐, 그래.. 일단 따라 와.”
모리구치의 말에 카에데는 그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숲에서 나와 마을로 돌아가는 길, 우거진 덤불 너머로 연못이 보였다.
“어? 저건 뭐지?”
연못 가운데에 도리이(※신사 입구를 나타내는 돌/나무로 만든 구조물.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를 잇는 입구 역할이자 결계 역할을 한다. 생긴 건 ⛩ 이렇다)가 있었는데, 그 모습이 묘했던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땅에 박혀 있어야 할 도리이 다리 부분이 어째서인지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다. 말 그대로 ‘거꾸로 세워진 도리이’였다.
카에데가 조용히 수면에 비친 도리이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모리구치가 입을 열었다.
“이 쪽을 보고 있어.”
“네?”
무슨 소리인지 물어보려 하는 카에데를 손짓으로 제지하며 모리구치가 걷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건 묻지 마. 이 세상엔 모르는 게 더 나은 일들도 있으니.”
그 말을 들은 카에데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모리구치의 등 뒤를 따라 걸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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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구치의 뒤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 사이엔가 마을 중앙에 있는 신사 부근까지 돌아왔다.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렸다. 들어 본 적 있는 웃음소리다.
탁 트인 공간에 다다라 주변을 돌아보니 신사 경내였다.
그리고 그 곳에 있었던 것은 반 친구들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카에데는 안도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어딘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졌다.
신사의 구조가 지금까지는 못 보았던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사 하이덴(※배전이라고도 하며, 참배가 이루어지는 곳) 앞에 작은 사당이 있고, 그 사당을 빙 둘러싸는 형태로 대나무 통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대나무 통 위에는 어째서인지 바람개비가 꽂혀 있었던 것이다.
바람개비 날개는 6장, 전부 나무로 만들어 져 있었으며 날개 표면에는 독특한 문양이 들어 간 와시(※일본 전통 종이)가 발려있었다.
“와, 이거 사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려야지!”
“그거 괜찮겠다.”
유즈키가 스마트폰으로 연신 바람개비 사진을 찍으며 말을 하자 호노카가 맞장구 쳤다.
심지어 아스미는 꽂혀있던 바람개비를 뽑아서 손에 들고 있기까지했다.
아스미는 바람개비를 손에 들고 입으로 바람을 불어 넣었지만, 바람개비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런 친구들의 모습과는 달리, 카에데의 시선은 사당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카에데는 비틀거리며 사당을 향해 다가갔다. 도중에 히지리가 말을 걸었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카에데의 마음 속에는 ‘사당 정면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사당 앞에 다다른 카에데는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고신타이(※신사에서 모시는 신, 혹은 그 신을 상징하는 물건)로 보이는 ‘거울’이 보였고, 그 뒤에 보이는 벽에는 부적이 붙어 있었다.
부적에는 붉은 무늬가 그려 져 있었으며 무슨 뜻인지 모를 글자가 검은 먹물로 적혀 있었다.
카에데는 2례3박수 (※신사에서 참배나 기원을 할 때 하는 인사법) 뒤 합장했다.
‘으어어어어어어….’
순간적으로 사당 안쪽에서 무언가가 괴로워하는 듯한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어?!)
카에데는 지금 자신이 들은 것이 착각인지 아니면 실제로 들린 것이었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친구들은 아직도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유이는 기도를 드리는 카에데의 모습을 찍고있기까지했다.
“지금 뭐하는 거야! 당장 그만둬! 너희들 지금 사진 찍는거냐!”
갑자기 모리구치가 학생들에게 소리를 쳤다. 안색이 창백했다.
그런 모리구치의 모습을 보며 아스미는 손에 들고 있던 바람개비를 등 뒤로 감추었다.
사당 앞에 서 있는 카에데를 중심으로 해서 나머지 친구들은 각자 바람개비 부근에 서 있었다.
마치 사당을 빙 둘러싼 바람개비들처럼.
학생들은 전원 모리구치를 응시했다.
그 순간, 카에데의 귓가에 다시 한 번 ‘으어어어어어…’라는 신음소리가 들렸다.
“당장 거기서 나와!”
어디선가 갑자기 백발 노인이 나타나 학생들에게 소리치며 이 쪽으로 다가왔다.
말투부터가 사투리인 걸 감안하면 이 지역 주민이리라.
노인은 손에 든 큰 전정가위(※정원 관리시 나무 가지치기를 위해 사용하는 가위)를 마구 흔들며 소녀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지금 당장! 여기서! 나가!!! 썩 나가지 못할까!”
노인의 기세에 눌려 학생들은 도망치듯 신사를 나섰다.
카에데는 모리구치에게
“여기는 대체…?”
라고 질문을 했다.
모리구치는 고개를 돌려 사당쪽을 뚫어져라 노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잠비마을이야.”
-----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놀. 어디선가 교회 종소리가 울려퍼진다.
이 곳은 프리지아 여학원.
카에데와 친구들은 나가노현 부근에 위치한 수수께끼의 마을, ‘잠비마을’을 무사히 탈출하여 학교로 돌아왔던 것이다. 물론 갑자기 사라져 버린 데 대하여 선생님들께 꾸지람을 들었지만 그 외에는 큰 벌 같은 것은 받지 않았다.
학교측에는 선생님들이 사정을 설명 해 준 모양이라 설교도 최소한으로 듣고 끝났다. 자신들보다 먼저 학교에 도착 해 있었던 캐리어 백을 끌며 기숙사로 가니 낯익은 수위 아저씨가 밝게 웃으며 맞아 주었다. 기숙사에 들어가니 후배들이 웃으며 그녀들을 환영 해 주었다.
근대적인 구조의 기숙사는 모든 사람에게 개인실이 주어졌다.
각 방은 원룸 맨션 같은 구조로, 문을 열면 내부가 전부 다 보이게 되어 있었다. 비록 화장실과 주방은 공용이었지만, 그만큼 생활 스페이스를 넓게 쓸 수 있는 구조였다.
기본적인 책걸상, 수납용 붙박이장 등은 있었지만 그 외의 가구들은 각자 사 와서 자기 취향에 맞게 꾸밀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방 구조나 인테리어를 통해 방 주인의 개성을 알 수 있는 것이 재미있는 점이기도 했다.
기숙사 1층은 공통 현관과 식당 등 공용 공간이 있으며, 두 곳 모두 채광에 신경을 써서 만들어 졌기에 언제나 밝은 분위기가 유지되었다. 말 하자면 ‘기숙사’라기에는 조금 호화로운 느낌이 드는 건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호화로움’도 학생들에게는 익숙한 매일 보는 풍경이요, 사람들일 뿐이었다.
그녀들은 이제서야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 온 것이었다.
-----
자신의 방에 들어 가, 평상복으로 갈아 입고 나서야 겨우 마음이 놓였다.
카에데는 짐정리를 하며 모리구치의 말을 떠올렸다.
‘잠비마을’
스마트폰을 켜서 검색 사이트에 ‘잠, 비, 마, 을’을 쳐서 검색 한 뒤 스크롤을 내리며 내용들을 훑어보았다. 그 중 유난이 눈에 띄는 문서가 있었다.
‘잠비마을의 민속과 전통 (나가노현)’
카에데는 그 항목을 터치했다. 그러자 곧바로 동영상이 흘러나왔다.
동영상은 오래된 기록영화 같은 느낌이었다. 영상에 찍혀있는 사람들은 흰 수의 같은 옷을 입은 채 어떤 의식을 행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이윽고 ‘신슈(※나가노현의 옛 이름)의 깊은 산에 위치한, 옛 잔미(※残美, 발음은 ‘잔비’)신앙이 남아 있는 마을’ 이라는 자막과 함께 그 자막을 읽는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역시나 오래 된 기록영화에서 들을 법한 목소리였다.
그 뒤로는 짧은 흑백 영상들이 언뜻언뜻 흘러갔다. 특이하게도 배경 음악은 전혀 들어 가 있지 않았다.
필름이 손상되기라도 한 걸까, 군데군데 영상이 흔들렸다. 딱 봐도 엄청 오래 된 영상이었다.
나레이션이 끝난 뒤에 표시된 타이틀은 ‘잔미신앙’ 네 글자.
‘잠비라는 건 무참하다(※일본어로는 無残)에 나오는 ‘잔인할 잔’자와 미인이라 할 때의 ‘아름다울 미’자를 쓰며,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서 있는 존재들을 뜻한다.’
라는 나레이션과 함께 흘러나오는 영상은 노파가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찍은 영상이었다. 노파는 잘라낸 나무조각을 대패로 밀고, 평평한 나무 판이 완성되자 그것을 모아 둥근판 주변에 둥글게 세웠다. 노파가 그렇게 모은 나무 판에 금속 띠를 둘러 쇠망치로 쳐 완성한 것은 다름아닌 나무통. 나무통을 완성한 노파는 마지막으로 나무통에 실을 빙 둘러 감았다.
이상한 것은 노파가 작업하는 모습과 음향이 미묘하게 빗나갔다는 점. 마치 영상을 찍고 이후에 음향을 덧씌운 것 처럼 들렸다.
노파는 실이 둘러진 나무 통에 뚜껑을 덮었다. 뚜껑 가운데 부분은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오각형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완성된 나무 통은 다름아닌 ‘좌관’, 다시 말 해 죽은 사람을 앉혀서 매장할 때 쓰이는 ‘관’이었다.
‘예로부터 이 마을은 이런 좌관을 만드는 것을 생업으로 해 왔다. 하지만 어느 날, 이 좌관에 갖혀 생매장 되었던 여인이 살아 돌아와, 마을에 재앙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이 마을의 이름은 통칭 ‘잠미마을’이라 부른다.’
이런 나레이션이 흐른 뒤, 장면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전부 꺼림칙한 장면의 나열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카에데가 직접 목격하였던 신사와 사당으로 보이는 것도 있었다.
화면은 이윽고 또 다른 의식 장면으로 바뀌었다. 이번에는 무당같아 보이는 사람이 등장했다. 무당의 가슴팍과 등에는 별모양 문신 혹은 낙인 같은 것이 새겨져 있었다.
무당이 땅에 바람개비를 꽂자 가면을 쓴 사람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가면에는 부적이 붙어 있었다. 아무리 봐도 가구라(※일본 전통극. 신을 모시기 위하여 바치는 춤과 노래)는 아니다. 이 의식은 어딘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다섯 사람이 사당을 둘러싸고 웅얼웅얼 알 수 없는 말로 기도 같은 것을 올리고는 영상이 끝났다.
(이거 뭐야?)
꼭 쥔 카에데의 손엔 땀이 흥건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영상 중간중간에 자신이 아는 것들이 섞여 있었다. 나가노현, 잠비마을, 그리고 나무 통이라 생각했던 ‘좌관’.
카에데는 그 페이지를 즐겨찾기에 추가 해 두고 인터넷 브라우저를 닫았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카에데는 꺼림칙한 기분을 떨쳐 낼 겸 목욕탕으로 향했다.
-----
아스미는 자신의 방에 돌아와 짐을 풀기 시작했다.
카에데가 동영상을 보기 시작한 때보다 조금 앞선 시점의 일이었다.
짐으로 챙겨갔던 옷들을 세탁 할 것과 안 해도 될 것으로 나누고 있으려니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삐걱… 삐걱… 삐걱… 삐걱… 지금까지는 기숙사에서 들어 본 적 없는 소리… 무언가가 삐걱거리는 듯한 소리였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테이블 위, 꽃병에 꽂아 둔 나무 바람개비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잠비마을에서 가져 와서는 꽃병에 꽂아 두었던 것이다. 사실 되돌려놓으려 했지만 갑작스럽게 마을을 도망치듯 나오게 되어 되돌려놓지 못 한 것이었다.
“이거 이상하네…”
아스미는 바람개비를 손에 든 채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처음 손에 든 때부터 지금까지 아무리 세게 입김을 불어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던 바람개비가 갑자기 돌기 시작한 것이다.
“왜 이러지?”
여섯 장의 날개는 끊임 없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멍하니 바람개비를 손에 든 채 서 있던 아스미의 뒷편에서 무언가가 나타났다.
꼬질꼬질한 흰 수의를 입은, 머리가 하얗게 센 노파의 모습처럼 보이는 무언가였다.
‘그것’은 갑자기 아스미에게 달려들어 아스미의 머리와 어깨를 단단히 붙잡고는 크게 입을 벌렸다.
깊은 동굴 같은 입 안에서 새빨갛고 긴 혀가 춤추며 튀어 나왔다.
마치 뱀의 그것처럼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그것’의 혀는 순식간에 아스미의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아스미는 갑작스러운 습격에 깜짝 놀라 두 눈을 크게 떴지만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사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녀 자신도 지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 파악을 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리라.
노파의 모습을 한 ‘그것’은 뒤이어 아스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스미의 목덜미에서 검은 핏줄이 솟아올랐다. 검은 핏줄은 순식간에 아스미의 얼굴까지 타고 올라갔다.
잠시 뒤, ‘그것’은 아스미의 목덜미에서 얼굴을 떼었다. 아스미의 목에는 깊게 패인 이빨 자국과 두 개의 구멍이 나 있었다.
아스미의 얼굴을 타고 올라가던 검은 혈관이 안구 부근까지 다다른 순간, 아스미의 눈동자가 흰 색으로 흐려졌다.
그리고 아스미는 정신을 잃었다.
잠시 뒤, 아스미는 정신을 차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던 것 같았다.
(꿈인가?)
주변을 찾아 보아도, 물렸던 목 부근을 자세히 뜯어 보아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테이블 위에 있는 꽃병에는 바람개비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꽂혀 있었다.
-----
카에데가 목욕탕에 도착했을 때, 아스미는 세면대에서 머리를 감고 있었다.
“정리하는 데 한 세월이네. 그렇지?”
카에데가 말을 걸어도 아스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스미?”
“잠이 든 것이오, 아니면 이미 죽은 것이오?”
갑자기 아스미의 입에서 흘러나온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에 카에데는 눈썹을 찌푸렸다.
문득 아래를 바라본 카에데는 경악했다.
세면대에는 아스미의 검은 머리카락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머리카락들은 아스미가 빗질을 할 때마다 늘어만 갔다.
“아, 아스미..?!”
카에데의 말에 아스미가 반응을 보였다.
잔뜩 겁에 질려있는 카에데의 표정을 보고 안 좋은 예감이 들었던 것일까, 아스미도 시선을 아래로 옮겼다.
아스미의 눈에 자신의 머리카락이 비쳤다. 상태가 이상해 보였다.
아스미는 시선을 눈 앞의 거울로 옮겼다. 동요를 감추지 못 하는 표정이었다.
“아스미!”
카에데의 말에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아스미는 절규하며 욕실을 뛰쳐나갔다.
-----
욕실에서 도망쳐 나온 아스미는 자신의 방에 틀어박혔다.
방으로 뛰어 오는 도중에 슬리퍼가 벗겨졌지만 눈치 채지도 못했다.
방에 들어 온 그녀는 거울을 들고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았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왼쪽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아니, 그냥 일그러져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얼굴 반쪽이 마치 아스미와는 다른 존재에 지배 받기라도 하는 듯이 멋대로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고 있었다.
깜짝 놀란 아스미는 손에 힘이 빠져 거울을 놓쳐버렸다.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난 거울 파편이 어지러이 튀었다.
-----
카에데는 기숙사 복도를 달리고 있었다.
절규하며 뛰쳐나간 아스미의 뒤를 쫓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사이죠 아스미’라는 이름판이 걸려있는 방 앞에 다다른 카에데는
“아스미! 아스미!”
라 외친 뒤 문고리를 잡았다. 하지만 안에서 잠근 듯 문이 열리지 않았다.
“…들어오지마!”
친구의 절규가 들렸다. 완전한 거부의사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카에데는 친구의 방문을 두드리고, 문 손잡이를 돌렸다.
계속해서 ‘오지마!’라고 외치는 아스미에게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 났다고 직감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아스미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변하더니 말이 뚝 끊겼다. 마음이 급해진 카에데는 아스미의 방문에 몸을 부딪혀 억지로 열어젖혔다.
“아스미!”
방 안으로 들어갔지만 아스미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아스미…?”
창문이 열려있었다. 열린 창문을 통해 차가운 밤바람이 커튼을 흔들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에 카에데는 창문을 향해 달려갔다.
창 밖을 바라본 카에데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네 층 아래 아스팔트에 무참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 친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스미의 팔다리는 제각각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고, 머리에서는 엄청난 양의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풀린 두 눈은 멍하니 허공을 응시한 채 뜬 채였다.
카에데는 절규하며 맨발로 계단을 뛰어 내려가 친구가 떨어져 있는 곳으로 달려나갔다.
“아스미..?!”
하지만 카에데가 도착했을 때, 아스미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몸은 물론이고 그토록 대량으로 흘러나왔던 피조차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런 건 없었다는 듯이.
문득 머리 위를 올려다보니 아스미 방의 열린 창문과 그 안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이 카에데의 눈에 들어왔다.
그저 멍하니 서 있던 카에데의 귓가에 비명과도 같은, 혹은 야수의 위협 같기도 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교내의 나무에서도, 그리고 먼 곳의 산에서도 동시에 울려오는 듯 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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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MBI 소설판
등장인물
야마무로 카에데 : 2학년.
고고한 타입. 쿨하고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음. 유치원생일 때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었음.
사이죠 아스미 : 2학년
카에데와는 중학생 때부터 친구. 밝고 서글서글하며 사교적이고 쾌활한 성격. 매사에 호기심이 왕성함.
모로즈미 미노리 : 2학년
반장과 학생회장을 겸임. 성격이 밝고 성적이 좋음. 교내 중심인물.
카이 히지리 : 2학년
오컬트를 좋아하고 영감도 있지만 정작 유령은 무서워하는 소녀. PC에 대해서도 잘 앎. 낯가림이 심해 친구는 많지 않다.
아키요시 린 : 2학년
무드메이커. 밝고 천진난만한 성격이라 언제나 똑부러지는 세나의 도움을 받곤 함.
사카키 세나 : 2학년
테니스부 주장. 씩씩하고 지는 것을 싫어함. 린과는 절친한 관계로 항상 린을 지켜주는 역할.
카네무라 유이 : 2학년
기본적으로 성격이 드세고 동급생들을 무시함. 이지메 그룹의 리더.
하나무라 호노카 : 2학년
유즈키와는 절친. 성적도 좋고 매사에 성실하지만 천식을 앓고 있어 몸이 약하다.
사키카와 유즈키 : 2학년
호노카와는 절친. 몸이 약한 호노카를 지켜주기 위하여 언제나 곁에 있음.
사쿠라 스즈네 : 2학년
만화 연구부 부원. 내성적인 성격으로 유이 무리에게 괴롭힘 당하고 있음.
이가라시 레나 : 2학년
소극적인 성격이지만 다정다감한 소녀. 사와와 친함.
키우치 카나 : 2학년
학급 내 서열 상위이며 유이가 이끄는 이지메 그룹의 일원.
혼다 쿄코 : 2학년
유이가 이끄는 이지메 그룹 일원. 유이, 카나와는 중학생 때부터 친구.
세키 아즈사 : 2학년
이지메 그룹의 일원으로 평소에는 유이에게 맞춰주고 있지만, 실제로는 착하고 성실한 성격.
후지사키 마리나 : 1학년
미노리의 직속 후배. 학생회 소속. 정의감이 강함.
이치죠 시오리 : 2학년
1학년 때 카에데와 같은 반이었던 소녀. 차분한 성격이며 애니메이션을 좋아함.
나이토 메구미 : 1학년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성격.
쇼지 미오 : 2학년
검도부 주장. 무장집단의 일원으로 잠비와의 싸움 일선에서 활약.
코지마 야요이 : 1학년
만화 연구부 부원. 미코토의 절친.
시이나 미코토 : 1학년
만화 연구부 부원. 야요이의 절친.
우에스기 사와 : 2학년
얼핏 보기에는 차분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가 센 성격. 레나의 절친.
쿠라타 유리에 : 2학년
요리 연구회 회장. 무장집단 리더.
야마나카 리코 : 2학년
육상부 주장. 무장집단 일원.
미야가와 아이 :
카에데의 담임으로 담당 과목은 영어. 독실한 크리스천. 그 무엇보다도 학생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선생님.
모리구치 타쿠마 :
카에데가 수학여행 도중에 만난 기자. 잠비마을을 조사하던 중에 카에데와 만났다. 하나뿐인 딸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김.
의문의 미녀 :
먼 옛날 어떤 마을 지주의 부인이었던 미녀. 하지만 그녀의 삶은 너무나도 불행한 일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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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화
히라가나란 무엇일까?
2018년 1월 30일부터 2월 1일에 걸쳐 3일간 일본무도관(이하 부도칸)에서 열린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의 단독 공연. 당초 예정상으로는 3일 중 이틀은 한자 케야키가 공연을 하기도 되어 있었으나, 공연 개최를 약 2주 가량 남긴 시점에 사정은 급변, 히라가나 케야키가 3일 공연을 전부 담당하는 것으로 계획이 수정되었다.
갑작스러운 변경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 하는 멤버들, 하지만 그런 가운데도 마음을 다잡고 ‘사람들을 놀라게 해 주자’, ‘전설에 남을 라이브를 보여주자’고 서로를 다독이며 무대에 섰다.
그리고 ‘서커스’를 테마로 한 컬러풀한 세계관으로 장식 된 스테이지에서 관객들을 매료하며 3일간에 걸친 공연은 성황리에 마무리 되었다.
또한 이 공연 마지막에 히라가나 케야키의 단독 앨범 발매 소식이 서프라이즈로 발표 되어, 그룹 활동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다음 곡 센터가 2기생이라 해도 괜찮아요’
부도칸 공연이 마무리 된 지 며칠이 지나 2월 12일,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2기생들에게는 첫 단독 이벤트인 ‘오모테나시회’가 개최되었다. 이는 선배에 해당하는 한자 케야키와 히라가나 케야키 1기생들 역시 각각 통과 해 온 그룹 전통의 이벤트이다.
그리고 이번 무대는 부도칸 공연을 성공시킨 히라가나 케야키의 기세를 과시하기라도 하듯 치바현 마쿠하리 멧세라는 큰 회장에서 열리게 되었다.
마쿠하리 멧세는 작년에 있었던 전국 투어 파이널 공연의 장소로, 2기생들에게 있어서는 무대 데뷔를 이루어 낸 장소이기도 했다. 투어 때는 1기생들과의 합동곡 1곡만 참가하였으나, 이번에는 7,000명에 달하는 관객들 앞에서 2기생만으로 8곡 라이브를 포함한 퍼포먼스를 성공리에 선보이며 자신들의 잠재력을 뽐냈다.
그리고 2월 하순,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에게 좋은 소식이 찾아왔다. 봄 개편부터 히라가나의 칸무리방송이 두 편이나 시작된다는 소식이었다. 지금까지 한자 케야키의 칸무리방송인 ‘케야카케’ 등에 드문드문 출연하기는 했지만, 그 방송은 어디까지나 선배인 한자 케야키의 방송에 ‘게스트’로서 출연했던 것이었기에 자신들만의 칸무리방송이 시작된다는 것은 히라가나 멤버들에게 있어 꿈만 같은 일이었다.
사이토 쿄코는 ‘아이돌 활동에 있어 TV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지’에 대해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가입 초기 ‘케야카케’에 나와 자신의 특징인 낮은 목소리와 라면 마니아라는 점을 어필하였기에 비교적 빠른 시기에 팬층에게 주목을 받고, 그 결과 악수회 인기도 높아졌으며, 유닛곡에서 센터를 맡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 조차도 자신들이 칸무리방송을 할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 했다.
‘지금까지 그룹의 목표 중 하나로 칸무리방송을 언급 해 왔습니다만, 사실은 이룰 수 없는 꿈이라 생각했기에 입 밖으로 그 얘기를 꺼내는 것 조차 부끄러웠어요. 하지만 그 꿈이 이렇게 이루어 지다니… 저희는 정말 축복받은 그룹 같아요.’
새롭게 시작된 히라가나의 칸무리방송의 제목은 ‘히라가나오시!’와 ‘KEYABINGO!4 히라가나 케야키는 어떤 그룹?’이었으며, 두 방송 모두 4월부터 시작되었다. 또한, 그룹 전원이 출연하는 첫 연극무대 ‘아유미’ 역시 4월에서 5월에 걸쳐 상연이 확정되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악수회 외에는 일거리가 없었고, 한자 케야키가 음악 방송에 출연할 때 도맷금으로 함께 출연을 하더라도 조명조차 비춰지지 않았던 히라가나 케야키. 그 때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 했던 일들이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현실로 바뀌어가는 나날을 보내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던 멤버들도 있었다. 다카모토 아야카는 당시를 이렇게 되돌아본다.
‘예전에는 아무리 저희가 열심히 하려 해도 노력할 기회조차 없었어요. 그렇기에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 지 고민했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죠. 하지만 그런 예전의 기억이 있기에 지금 이렇게 바쁜 것이 너무나도 기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이렇게 계속 노력한다면 저희들도 언젠간 노기자카 선배님들이나 한자 선배님들처럼 멋진 아이돌이 될 수 있겠지요?’
이런 식으로 그녀들의 심경이 변한 데에는 전국투어부터 부도칸 공연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라이브를 하며 1기생들 자신의 평가가 착실히 쌓아 왔다는 점, 그리고 2기생들의 가입으로 인해 그룹 자체의 폭이 넓어 진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멤버들은 알지 못 하는 곳에서 또 다른 거대 프로젝트가 시동이 걸렸다.
다름 아닌 ‘사카미치 그룹 합동 신규 멤버 모집 오디션’ 이었다.
‘사카미치 그룹’으로 불리는 세 그룹, 다시 말 해 노기자카46, 케야키자카46,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이 동시에 오디션을 연다는 이야기였다. 노기자카, 케야키자카라는 ‘선배 그룹’과는 별개로 히라가나 케야키의 새 멤버를 받는다는 것은 업계 관계자들은 물론 팬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가 발표 되었을 당시, 히라가나 케야키의 2기생들은 활동을 시작한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갑작스러운 발표에 동요하는 2기생들. 그 모습은 1년 전, ‘추가 멤버 오디션’ 개최 소식을 알았을 때의 1기생의 그것과 비슷했다.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간다면 나가하마 네루의 가입과, 히라가나 케야키 결성 발표를 알게 되었을 때의 한자 케야키 멤버들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2기생들의 모습을 본 우시오 사리나는 자신들이 1년 전에 비해 확실히 강해졌다는 것을 실감했다.
‘사실 저희도 2기생 모집을 알았을 때 엄청 울었거든요. 그런데 합동 오디션 얘기를 들었을 때는 크게 불안하지 않았어요. 아마 2기생들이 들어 와 준 덕분에 방송이나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늘었고, 그 결과 그룹 전체가 크게 성장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3기생이 새롭게 들어 와 준다면 히라가나 전체가 더욱 더 밝은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어요.’
사실 이미 이 때부터 코사카 나오를 비롯한 2기생들이 단독으로 잡지 표지를 장식하곤 했다. 그렇게 2기생들의 미디어 노출이 늘어나며 그룹 전체의 지명도가 나날이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1기생들은 실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카토 시호 역시 스태프에게 자신의 본심을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저 개인적으로는 다음 곡 센터는 2기생이 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귀여운 아이가 한 가운데 서는 게 좋잖아요. 저는 뒤에서 최선을 다 해 그 아이의 버팀목이 되어 주고 싶어요.’
부도칸 공연 이후 그룹에 불어 온 변화의 바람이 멤버들을 정신적으로 성장시켜 준 것이다. 그런 가운데 말 그대로 ‘인생 최대의 결단’을 내린 멤버도 있었다.
그룹 최연장자, 이구치 마오 이야기이다.
지금껏 그려 온 인생 설계가 어긋난 순간
이구치 마오가 히라가나 케야키의 오디션을 받은 이유는 ‘심사위원들을 놀라게 해 주고 싶어서’ 라는 것이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이구치는 친구들 사이에선 무드메이커로 통했다. 그녀는 거의 매일같이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서 특유의 ‘음치’를 숨기지 않으며 친구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다름 없이 AKB의 노래를 부르며 ‘아이돌 놀이’를 하고 있으려니 한 친구가 갑작스레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마오, 아이돌이 되는 건 어때? 마오가 오디션에 간다면 심사위원들도 깜짝 놀랄걸’. 그런 친구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스마트 폰으로 ‘아이돌 오디션’을 검색해서 나왔던 것이 히라가나 케야키의 오디션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응모했었기에 본인은 합격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 했지만, 쇼룸 심사 때 몇 시간이나 하이 텐션으로 즐겁게 이야기 하는 그녀의 모습은 이미 팬들 사이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그렇게 최종 합격자에 이름을 올린 그녀.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로서 정식 데뷔를 한 이후, TV에서나 악수회에서나 음치임을 숨기지 않고 전력으로 노래를 부르고, 거리낌 없이 인기 배우의 흉내를 내는 그녀의 독특한 캐릭터는 금새 팬들 사이에 침투 하였다.
하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고민거리가 늘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그녀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덜컥 아이돌이 되어, 미디어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처음으로 참가한 MV ‘누구보다 높게 뛰어!’가 유튜브에 공개 되었을 때에도 댓글란에는 이구치의 어설픈 춤을 지적하는 댓글이 가득했다.
그녀 본인이야 지금까지와 다를 것 없이 ‘즐거운 일들을 했’을 뿐인데 어느 사이엔가 불특정 다수에게 그런 행동 하나 하나를 평가받는 입장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나쁜 평가를 받다니, 내 인생도 끝장났구나… 이렇게 가다간 취직도 못 하고 결혼도 무리겠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이름도 바꾸고 인생을 다시 시작할까’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언젠가는 안무 연습 때 혼이 나서 우울한 상태로 사사키 쿠미의 댄스를 보고는 ‘나랑 같은 대학 3학년인데 저렇게나 필사적으로 연습 하다니… 아예 나랑은 사는 세계가 다른 것 같아’라 생각하고 혼자 멋대로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다. 예전에 항상 늦게까지 놀러 다니던 친구들이 그룹 라인에 올리는, 즐거워 보이는 사진을 보며 아이돌이 된 것에 대해 후회 하는 날도 많았다.
그룹에게 세 번째 오리지널 곡 ‘우리들은 사귀고 있어’이 주어졌을 때는 때 마침 그녀가 4학년 진학을 목전에 두고 있는 타이밍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 그녀는 그룹을 그만두고 진지하게 취업 활동을 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몇 번이나 다른 멤버들에게 ‘사무소로 가서 그만 둔다고 말 하려고’ 라 이야기 했다가, 멤버들이 울며 말려서 그만 뒀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윽고 그녀의 마음이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신기하게도 그녀의 마음 속에서 ‘그만 둬야지’라는 마음이 정점에 달했던 타이밍이기도 했다.
전국 투어 첫 공연이었던 제프 도쿄 공연에서 ‘후타리 세종’ 솔로댄스를 추게 되었던 그 때 말이다.
그녀는 내심 ‘이번 라이브만 끝나면 바로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채, 우시오에게 부탁 하여 울면서 솔로 댄스 연습에 매진했다. 그렇게 힘들게 연습을 했음에도 실제 무대에서 안무를 틀린 순간, 이구치의 머릿 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다음 번에는 더 잘 추고 싶어. 일단 다른 멤버들 방해는 되지 말아야지. 그럼 일단 첫 목표는 다음 공연에서 한 번도 틀리지 않는 것으로 하자.’
물론 아쉽게도 이후로 이어지는 공연, 적어도 부도칸 공연까지 이어진 공연 중 그녀가 ‘한 번도 안 틀리고’ 끝을 맞이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라이브 횟수를 더하면 더할수록 그녀의 마음 속에 ‘다른 멤버들과 함께 더 열심히 하고 싶다’는 생각은 커져갔다.
그렇게 그녀의 인생 설계, 다시 말 해 ‘대학을 나와 취직하고 결혼한다’는 계획은 서서히 변해서 부도칸 공연을 끝내고, 대학을 졸업했을 무렵에는 굉장히 단순한 것으로 변해 있었다.
‘뭐, 생각 해 보면 아이돌에서 실패 하면 니이가타로 돌아가면 되지. 지금까지는 타이밍을 놓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만 했지만, 인생 어차피 한 번 뿐이니까 즐기지 않으면 손해야.’
생각을 바꾸니 마음이 편해졌다. 노래방에 가서 친구들을 즐겁게 해 주거나 쇼룸에서 ‘일반적인 아이돌’들이 하지 않을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때, 자신이 빛나 보였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찬찬히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 해 본 결과, ‘언젠가 가게를 차리고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그 결과 떠오른 것이 바로 ‘지친 샐러리맨이나 아이돌 팬들이 부담없이 와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스낵 같은 가게를 열고, 내가 그 가게의 마마를 하면 매일매일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거기까지 생각 한 이구치는 곧바로 악수회에서 ‘스낵 마오’라는 가상의 가게를 오픈, 2기생 미야타 마나모를 설득하여 블로그와 쇼룸 등에서도 이 기획에 대하여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아이돌 답지 않은 그녀의 발상과 행동력은 다시 한 번 화제를 불러 일으키며, 이후 히라가나 케야키의 칸무리 방송에서도 대대적으로 다루어 지기에 이른다.
이 ‘스낵 마오’는 물론이고 아이돌로서의 이구치 마오가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이구치는 ‘자신이 즐거운’ 일을 할 때의 자신이 가장 빛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히라가나란 무엇일까’를 찾아 온 시간들
처음에는 ‘한자 케야키의 언더 그룹’으로 시작된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하지만 구체적으로 ‘언더’가 어떤 의미인지, 어떤 위치인지 명확해지지 않은 상황 하에서 멤버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자신들의 존재의의를 찾아 왔다.
2017년, 전국 투어를 하며 그룹의 상징인 ‘해피 아우라’를 찾아냈고, 그것을 계기로 그룹의 색이 변하기도 했다. 카게야마 유카는 이 전국 투어에 대하여 ‘히라가나란 무엇인가를 찾는 시간’ 이었다고 술회한다.
이후 나가하마 네루의 겸임 해제, 2기생의 가입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거쳐 히라가나 케야키는 단독으로 부도칸 3days 공연을 성공 시키기에 이른다. 그 뒤로 이어진 ‘단독 앨범 데뷔’는 지금껏 라이브를 통해 성장 해 온 이 그룹이 ‘앞으로 새로운 단계에 돌입함’을 나타내는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그룹의 선두에 서서 자신의 생각을 말로 나타내 왔던 사사키 쿠미는 ‘지금이라면 우리가 케야키자카46과는 다른 그룹이라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고도 밝혔다.
‘지금까지는 저희의 활동에 대하여 ‘한자 선배님들의 활동을 그대로 이어 받으면서도 거기에 해피 아우라를 더한 느낌’이라 설명 해 왔습니다만, 앨범 데뷔가 정해지고 2기생들이 들어 와 준 지금은 ‘저희는 한자 케야키와 다른,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입니다’라고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도 저희 히라가나 케야키는 멤버들 사이의 끈끈한 우정을 느끼실 수 있는, 보고 있으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해피한 그룹이 되고 싶습니다.’
그룹을 둘러 싼 환경은 크게 바뀌었지만, 사사키 미레이가 이루고 싶은 목표는 그룹 결성 초기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히라가나 멤버들 끼리 전국 47개 도도부현을 돌며 투어 해 보고 싶어요. 아, 그리고 양로원에 가서 춤을 춘다거나 멤버들과 함께 할머니 할아버지 수발을 든다던지 해 보고 싶네요.’
어릴 적에 인도네시아에 살았으며,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우시오 사리나 역시 초창기에서 지금까지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
‘언젠간 해외에서 라이브를 하고, 일본과 세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어요. 최근에는 악수회에도 해외에서 오신 팬분들이 늘어 났기에, 다음번엔 저희가 직접 만나러 가서, 노래를 통해 ‘감사합니다’라는 저희의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어요.’
2018년 6월 20일 릴리스 된 히라가나 케야키의 데뷔 앨범 ‘달려 나가는 순간’은 첫 주에만 15만장을 팔며 오리콘 주간 앨범 랭킹 1위를 획득, 음원 순위도 1위를 차지하며 첫 출발부터 2관왕을 달성하였다.
시즌 2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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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보다 ‘현재’에서 싸워 온 ‘둘쨋딸들’
지금, 그녀들의 속내를 알아보자.
노기자카46 2기생들의 진심
‘동기란 무엇인가?’
그룹의 중요한 변환기에 그녀들을 취재 한 이유는?
본지가 노기자카의 2기생들에 대한 특집을 싣는 것은 2017년 10월의 특집기사에 이어 두 번째이다.
2년 전, 그녀들을 다루게 된 데에는 사실 필연적인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 해 여름, 메이지진구 야구장에서 열린 콘서트 ‘한여름의 전국투어 2017’는 멤버들이 각 기수별로 나뉘어 등장하는 구성으로 이루어 져 있었다. 그 중 불과 1년 전에 가입했던 3기생들의 등장은 진구 구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게 하였으며, 1기생들은 선배다운 관록을 뽐냈다. 그럼 2기생들은 어땠을까? 그녀들이 남긴 감정은 다름아닌 ‘애달픔’ 이었다. 오랜 기간 그룹 내에서 방치되어 오다시피한 그녀들 특유의 처연함이 회장에 흘러나오는 VTR, 그리고 그녀들에게 주어진 곡에서도 느껴졌다. 2기생들의 퍼포먼스에서는 1기생들이 선보인 퍼포먼스와도, 3기생들의 그것과도 다른 분위기가 느껴 진 것이다.
실제로 몇몇 멤버들의 증언에 따르면 진구 구장에서의 콘서트가 끝나고 열린 악수회에서도 수 없이 많은 팬들이 ‘진구 구장, 정말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그녀들의 퍼포먼스는 그 정도로 많은 팬들의 마음을 울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애달픔’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2기생들만이 갖고 있는, 보는 이들을 홀리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2년 전, 본지가 2기생 특집을 한 이유는 바로 그 의문에 답을 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특집기사로부터 1년 반 이상이 흘렀다.
그렇다면 1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금 그녀들을 취재하기도 마음 먹은 계기는 무엇일까…
노기자카의 2기생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우선 노기자카46라는 그룹의 현 상황을 살펴보도록 하자. 대략적으로 말 하자면 현재 그룹을 대표하는 멤버로는 역시 시라이시 마이, 사이토 아스카, 이쿠타 에리카, 마츠무라 사유리, 아키모토 마나츠, 사쿠라이 레이카, 다카야마 카즈미 등 1기생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멤버들의 졸업이 이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1기생들이 그룹을 대표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싱글의 포지션, 인기, 외부 일, 지명도 등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힘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 바로 1기생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3기생들은 어떠한가. 작년 11월에 발매 된 싱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빙 돌아가고 싶어져’에서 3기생 중 세 명이나 프론트 멤버로 발탁 된 바 있다. 야마시타 미즈키, 요다 유우키, 우메자와 미나미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전술한 세 명 외에도 사토 카에데, 오오조노 모모코, 이토 리리아가 해당 싱글의 선발에 뽑힌 바 있으며, 직전 싱글인 ‘자기 중심적으로 가자!’ 때에도 이와모토 렌카, 우메자와, 오오조노, 야마시타, 요다가 선발에 들었으며, ‘싱크로니시티’ 때 역시 오오조노, 쿠보 시오리, 야마시타, 요다 네 명이 선발에 든 바 있다. 그 뿐 아니라 잡지 표지나 연극 무대, 드라마 출연 등 개개인의 활동도 눈에 띄게 늘어 나, 사실상 ‘노기자카의 차세대를 꾸려나갈 중심 축은 3기생’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또한 작년 12월에 첫 선을 보인 4기생들은 아직 들어 온 지 얼마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여러 명이 함께, 심지어는 솔로로 잡지 표지를 장식하며 이후에 펼쳐질 밝은 미래를 시사 한 바 있다.
그렇다면 2기생들은 어떨까.
3기생들이 그룹에 가입 한 이후의 각 싱글별 선발 추이를 살펴보자.
‘신기루 (니게미즈)’
1기 14명, 2기 2명, 3기 2명
‘언젠가 할 수 있다면 오늘도 할 수 있어’
1기 16명, 2기 3명, 3기 0명
‘싱크로니시티’
1기 14명, 2기 3명, 3기 4명
‘자기 중심적으로 가자!’
1기 13명, 2기 3명, 3기 5명
‘집으로 돌아 가는 길은 빙 돌아가고 싶어져’
1기 13명, 2기 2명, 3기 6명
‘신기루’ 때를 기점으로 노기자카라는 그룹에 일어 난 일들을 간단히 정리 해 보자면 1기생들을 중심으로 한 멤버들의 연이은 졸업, 그리고 3기생들의 대두를 들 수 있다. 실제로 위에 제시한 기수별 선발 인원수만 보아도 이런 흐름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비단 선발 인원 뿐 아니라 그룹 활동 전반에 있어 ‘2기생’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하는 멤버들에게 있어서는 사실상 예전과 비교 하여 큰 변화는 일어나고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표면적인 모습만이 전부일까?
작년 7월, 사가라 이오리가 그룹을 졸업하였다. 2기생 가운데에서 졸업자가 나온 것은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올 해 3월에는 이토 카린이 졸업을 발표하였다. 오랜 기간 이어져 내려온 것들이 ‘무너지기’ 시작 한 것이다. 그런 변혁기에 맞닥뜨리면 누구나 새로운 감정을 품게 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본지는 현재 노기자카의 2기생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기록하고 남겨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1기생들의 졸업이 잇따르고 있는 지금, 노기자카라는 그룹은 큰 변환기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큰 변환기에 ‘2기생’들의 마음 속에는 어떤 감정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또한, 후배인 3기생, 그리고 4기생들이 눈부시게 성장하며 대두하고 있는 지금, 2기생들은 어떤 시선으로 현재를 보고 있는 것일까.
어찌 보면 질문 하기가 조심스러운 내용들 뿐이지만, 허심탄회하게 물어 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녀들은 자신들이 ‘2기생’이라는 점을 얼마나 의식하며 그룹 활동에 임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현재의 동기들에 대해 동료 의식은 갖고 있는 것일까?
그녀들의 속내를 알아야만 앞으로도 조금씩 형태를 바꾸어 가며 성장하게 될 그룹 전체를 조금 더 안정된 시선으로 바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기생들만이 있었던 스테이지 아래서
2019년 2월 21일 교세라돔 오사카에서 ‘노기자카46 7TH birthday live’가 개최되었다.
4일에 걸쳐 지금까지 발표한 곡 총 177곡을 발매 순서대로 피로하는 세트리스트였다.
가장 먼저 공연의 막을 연 것은 역시나 1기생들이었다. 팬들 역시 우렁차게 ‘지금껏 그룹을 이만큼이나 성장시킨 공로자’들에게 함성을 보냈다.
2기생들은 6번째 곡인 ‘오이데 샴푸’부터 등장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순서를 기다리며 센터 스테이지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사실 그 때, 남들 모르게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고 있었던 멤버가 있었다. 바로 키타노 히나코다.
키타노 : 그 땐 정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얼마 뒤면 카린이 졸업을 하니까 카린과 함께 라이브를 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겠구나. 라던지 예전에는 정말 힘들었었지 하는 생각 같은 것들 말이에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울컥하며 눈물이 날 것만 같았어요. 하지만 당시는 제가 7개월에 걸친 휴양을 끝내고 돌아 온 시점이기도 했기에, 건강한 모습을 보여드리지 않으면 팬 여러분께서 다시 걱정하시잖아요? 그렇기에 정말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았어요. 눈물을 참으며 주변을 둘러보니 근처에 있던 멤버들도 다 울고 있더라고요. 쥰나도, 카린도, 마이츙도. 그 멤버들이 어째서 눈물을 흘렸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마 마이츙은 다른 사람들이 우니까 분위기에 휩쓸려 울었던 것 같지만요. (웃음)
키타노가 센티멘털한 감상에 잠겨 있었던 그 때, 다른 멤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이토 카린 : 저는 그 때 이미 졸업을 결심하고 있었기에, ‘내가 이 곡을 하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겠구나…’ 라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으려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하지만 눈물을 흘리면서 무대에 나서면 보시는 팬분들께서 ‘졸업 하니까 우는건가?’라 생각하실 수 있기에 필사적으로 티슈로 눈물을 닦으며 무대에 나섰어요.
스즈키 아야네 : 저는 ‘오이데 샴푸’에서 센터를 맡게 되었거든요. 그 당시에는 센터에 서게 되었다는 생각에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와타나베 미리아 : 저는 스테이지 위에 서 있는 1기생 선배님들을 보며 ‘이젠 우리 2기생 10명이 저 무대를 띄워야지, 그리고 앞으로는 우리 2기생들이 중심이 되어 3, 4기생들을 잘 이끌어줘야겠어’라 생각했어요.
물론 모두들 공통적으로 ‘무대를 성공시킨다’는 의식은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대를 앞두고 각자가 가진 감정이 다 같을 리는 없는 법.
시간을 돌려 2년 전의 진구구장으로 돌아 가 보자. 기수별로 무대를 꾸몄던 그 날 말이다. 2기생들이 무대에 서기 전, 그녀들이 지금껏 걸어왔던 여정이 모니터에 비추어졌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던 위치에서 그 VTR을 본 2기생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기억 해 내고는 감정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녀들은 하나가 되어 무대로 나아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들이 선보인 무대는 당연하게도 너무나 감동적인 것이었다.
물론 올 해의 버스데이 라이브와 2년 전의 라이브를 단순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2기생들의 ‘현재’를 비추어 본다는 의미에서 보자면 올 초, 스테이지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던 멤버들의 심경이라는 것은 그녀들의 지금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동기를 생각하는 마음, 그 무게는 각자 다르다.
사실 2기생들은 ‘깃수별 활동’이라 부를 만 한 것이 거의 없었다. 3기생 뿐 아니라 들어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4기생들과 비교 해 보아도 그 차이가 역력하다. 3기생들은 들어 온 지 얼마 안 되어 3기생들을 위한 곡이 주어졌으며, 4기생들 역시 가입 직후부터 ‘노기자카46 4기생’으로서 단체로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는 등 깃수별 활동을 활발히 해 오고 있다. 2기생들은 사이가 좋은 멤버들끼리 개인적으로 놀거나 하는 경우는 있었어도 전원이 모이는 것은 1년에 한 번 열리는 ‘2기생회’ 뿐이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나는 2기생’이라는 의식 역시 옅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오디션에 합격한 지 벌써 6년이나 지난 그녀들은 실제로 매일매일 어떤 생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임하는 것일까?
테라다 란제 :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나는 몇 기생이다’ 라고 의식하며 일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라이브 연출로 깃수별 등장 같은 것들이 있을 때 새삼스레 의식하는 정도랄까요.
이토 쥰나 : 딱히 누가 몇 기생이라는 생각은 안 하는 것 같아요. 오히려 저랑 사이가 좋은 멤버가 동기인가 아닌가를 생각 할 때 정도 의식하는 것 같네요.
신우치 마이 : 저도 쥰나와 같은 의견이에요. 누구와 함께 있는 시간이 긴가에 따라 다른 것 같네요.
2기생들은 ‘기수’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험을 거의 하지 못 했다. 그렇기에 사람에 따라서는 ‘2기생’이라는 단어가 뇌리에서 지워지다시피 한 멤버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그런 상황이기에 더더욱 ‘2기생’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품게 된 멤버도 있다. 그 뿐 아니라 좌절을 맛보고 나서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동기’라는 존재를 깨닫게 된 멤버도 있다. ‘2기생’이라는 단어에 대해 품고 있는 마음은 멤버마다 다르며, 어떻게 보자면 짙은 색에서 옅은 색으로 그라데이션을 이루고 있다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멤버들은 각자 자신의 시각에서 ‘2기생’이라는 구조를, 제도를 보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자면 너무나도 독특한 ‘기수’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보통 노기자카의 2기생들은 1기생들과 한 묶음으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다. 사실상 3기생들이 들어오기 전까지 3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동고동락해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딱히 1기와 2기를 나누어서 보는 경우 자체도 매우 드문 일이다.
그렇게 2기생들과 함께 지금까지 걸어 온 1기생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자면, 최근 들어 급속도로 졸업자들이 늘고 있다. 작년부터 올 봄까지 벌써 8명이 그룹을 떠났다. 반면 2기생들 중에서는 같은 기간동안 졸업을 한/발표 한 멤버가 사가라 이오리와 이토 카린 둘 뿐이다.
작년 7월, 사가라가 그룹을 떠났다. 2기생들 중에서 졸업자가 나온 것은 오랜만의 일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사가라의 졸업은 2기생들이 오랜 기간 쌓아 올려 온 것들이 오랜만에 조금씩이지만 무너지기 시작 한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사가라의 졸업에 대하여 동기인 2기생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사사키 코토코 : 졸업 한다는 말을 들은 건… 나고야에서 열린 언더 라이브 때였던 것 같은데, 일단 본인이 멤버들에게 이야기를 했어요.
키타노 : 이오리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 지에 대해 확고하게 생각이 있는 아이기에 만류하려 해도 만류 할 수가 없었죠.
테라다 : 개인적으로 멤버들과 밥을 먹으러 가거나 하는 경우가 그리 많진 않은데요, 제가 처음으로 언더 센터에 서게 되었을 때 저를 데리고 밥을 먹으러 가 준 것이 이오리였어요. 당시 저도 이오리도 카페 투어에 빠져 있었거든요. 함께 이런저런 카페에 가서 일 얘기를 자주 했어요. 제게 있어 이오리는 다정하고 함께 있어서 마음이 편한 언니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 소중한 사람이 졸업을 하는 마지막 라이브에서 함께 있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어요. 그렇기에 좀 더 함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라는 후회가 남습니다.
야마자키 레나 : 동기 중에 유일하게 동갑인 멤버였어요. 그룹 활동에 합류 한 것은 남들보다 늦었지만 금새 선발에 뽑혔었기에 사실 한 때는 어떻게 대해야 할 지 감을 잡기 힘들기도 했어요. 성격도 저랑은 정반대고 말이죠.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오리가 다른 사람들을 소중히 대하는 정말 상냥한 사람이었다는 점입니다.’
호리 미오나 : 사실 이오리가 졸업하기 전에 2기생들만의 라이브를 하고 싶었어요.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졸업이었기에 실현 되지는 못 했지만요. 비록 그 이야기를 꺼낸 데 대해 이오리가 좋아했고, 제게 고맙다고 이야기 해 주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나도 아쉬워요.
와타나베 : 제게 있어 이오리는 정말로 소중한 존재였어요. 제가 혼자 힘들어 할 때 항상 손을 내밀어 주었던 것이 이오리였죠. 머릿속이 복잡해서 어찌 할 줄 몰라 하고 있을 때면 ‘무슨 일 있어?’라고 물어 봐 주었지요. 그런 믿음직한 존재가 더 이상 곁에 없다는 것이 너무 쓸쓸했어요.
웃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이들에게 언제나 상냥했던 사가라는 7월에 열린 싱크로니시티 라이브를 마지막으로 ‘한여름의 추억’과 함께 노기자카를 떠났다.
노기자카46로서 잃고 싶지 않은 사람
사가라의 졸업에 이어 2기생들에게 큰 동요를 일으킨 사건은 올 해 3월 22일에 일어났다. 이토 카린이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졸업을 발표 한 것이다.
블로그에 적힌 글은 카린의 성격을 반영하듯 밝은 어조로 적혀 있었다. 이는 팬들이 자신의 졸업을 알고 쓸쓸해 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인 동시에, 그녀 자신이 슬프고 축 처지는 분위기를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카린이라는 멤버가 노기자카46에서, 조금 범위를 한정짓자면 ‘언더 라이브’에서 빠진다는 것은 매우 큰 손실이라 할 수 있다. 멤버들간의 의견 조정은 물론이고 스태프들과 멤버들 사이에 서서 분위기를 주도했던 것이 그녀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이제 노기자카라는 둥지를 떠나 조용히 마이크를 내려 놓기로 결심 한 것이다.
동기인 2기생들은 카린의 졸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키타노 : 저는 계속 말렸어요. ‘다시 한 번 생각 해 봐’라고. 버스데이 라이브서 동기들끼리 기다리고 있었을 때에도 설득을 했을 정도였지요. 그 때 카린은 엄청 분해보이는 표정으로 울면서 이렇게 말 하더라고요. ‘정말이지 나이 먹고 싶지 않아~’라고. 저도 그 말을 듣고 눈물이 나서…
테라다 : 딱히 2기생들 뿐 아니라 모든 멤버들이 카린쨩에게 큰 신세를 지고 있다 생각해요. 사유링고 군단 활동만 해도 안 보이는 곳에서 노력 해 줬고 말이죠. 기분 좋게 보내 줄 수 있다면 좋겠네요.
야마자키 : 카린은 노기자카라는 그룹에 남긴 것들이 많으니까요. 일반적인 ‘멤버 한 명의 졸업’이라기엔 부족합니다. 모두를 구원 해 준 숨은 공로자인걸요.
신우치 : 카린은 ‘2기생’으로 구분 지을 것이 아니라, ‘노기자카46이라는 그룹 입장에서’ 보아도 잃고 싶지 않은 멤버예요.
와타나베 : 오디션 합격한 직후 한동안 카린이 제게 장난을 많이 쳤어요. 사실 그 때만 해도 어렸고 그렇게 장난치는 데 익숙치 않았기에 솔직히 카린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 했죠. 하지만 서로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나서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지금이야 카린이란 존재는 정말로 사랑스러운 존재지요.
스즈키 : 멤버 중에 소극적인 아이가 많습니다만, 카린은 그런 아이들을 대신하여 하고싶은 말을 스태프분들께 해 주곤 합니다. 정말이지 다른 사람들을 잘 챙겨 줘요.
카린 본인도 지난 1년동안 의식 해 온 것들이 있다고 한다. 바로 ‘내가 후배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점이다.
카린 :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은 라이브에서 내뿜는 열량을 일정하게 맞추는 것이었어요. 들어 온 지 얼마 안 되는 아이들에게 ‘선배들하고 똑같이 하라’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없잖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각자 할 수 있는 대로 해 버리면 스테이지 위에서 융화가 되지 않고 격차가 발생하기 마련이고요. 그런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은 안 될 일이라 생각하거든요. 실제로 멤버들 사이에서도 온도차를 느낀 적도 있어요. 물론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지만요. 실제로 3기생들이 처음 들어왔을 때만 해도 ‘함께 무엇인가를 만들어 간다’는 의식 보다는 ‘필사적으로 따라가는 데 급급하다’는 의식이 강했고요. 지난 1년동안 그런 면에 있어서 이야기 해 줘야 할 것들은 대부분 전해 주었다고 생각해요. 마이크를 어떻게 잡느냐 하는 기본적인 것부터 라이브에 임하는 자세, 안무를 맞추는 점 까지… 그렇기에 더 이상 제가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 할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 덕분에 불안한 마음 없이 졸업 할 수 있는 거고요. 그 뿐 아니라 제가 졸업을 한다 해도 언더 라이브에는 ‘와다 마아야’라는 리더가 있으니까요. 사실 3기생들의 안무를 다져 준 것은 다름아닌 마아야였거든요.
어쩌면 카린이 남긴 유산들은 팬들이 쉽게 눈으로 찾아내긴 힘든 것일지도 모른다. 선발에 단 한 번도 들지 못 한 채 그룹을 떠나려 하는 그녀이지만, 라이브에 대한 애착만큼은 누구보다 강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언더 라이브에 걸었고, 그룹에 남을 후배들에게 라이브의 진수를 전해주며 그룹에 큰 선물을 남겨 준 것이다.
카린이 졸업하기 전에 그녀의 공적에 대하여 이렇게 지면에 글을 남기는 것이야말로 본지가 그녀에게 보내는 소소한 ‘졸업 선물’이다.
스즈키 : 올 해 버스데이 라이브 때 카린이 후배들에게 여러 가지로 조언을 해 주었던 것이 기억에 남아요. 카린이 졸업을 하더라도 그녀가 흔적은 노기자카라는 그룹 안에 수 없이 남아 있을 거예요. 팬 여러분께서 그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후배들에게 바라는 점, ‘분위기를 느꼈으면’
서장에도 이미 적은 바 있지만, 현재의 노기자카는 3기생들을 조금씩이나마 전면에 내보내는 경향이 강하다. ‘니게미즈’에서 오오조노와 요다를 더블 센터로 세운 것을 시작으로 3기생들의 전방위적인 활약이 시작되었다. 올 해 4월에 시작된 드라마 ‘전영소녀 ~Video Girl MAI 2019~’에서도 야마시타 미즈키가 주연에 발탁 된 바 있으며, 버스데이 라이브에서는 졸업생들의 빈 자리에 2기생들 뿐 아니라 3기생들이 서기도 했다.
호리 : 대만 라이브 때나 버스데이 라이브 때에도 3기생들이 프론트에 서고, 2기생들은 그 뒤에서 춤을 추는 경우가 많았어요. 솔직히 퍼포먼스 면에서는 저희가 더 잘 할 자신이 있기에 내심 아쉬운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저 역시도 선배들의 포지션에 서서 1기생들의 위대함을 실감했고, 저 자신이 아직 부족하다는 점을 깨닫기도 했거든요. 그렇기에 비록 100% 자신을 갖고 그 자리에 서지는 못 하더라도, 3기생들이 그 자리에 선다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저 자신도 ‘힘 내’라고 응원 할 수 있었어요.
키타노 : 저 역시도 리허설 때만해도 솔직히 아쉬운 마음이 더 컸어요. 하지만 무대에 선 야마시타 미즈키쨩을 보니, 1기생 선배들에게도 뒤지지 않는 아우라를 뿜어내더라고요. 그 모습을 본 순간 ‘아, 이건 3기생들 외에는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2기생이 아닌 3기생의 역할이라는 것을 자각 한 것이지요.
테라다 : 노기자카라는 그룹의 컬러 자체가 1기생, 2기생, 3기생, 4기생이 각각 다르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베이스는 전부 같지만, 각자 어딘지 모르게 다른 느낌이 들어요.
야마자키 : 1기생과 2기생은 ‘개성’이라는 데 대한 열의가 대단하거든요. 탐구심이라 해야 할까요? 하지만 3기생, 4기생들은 들어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별 수 없다고는 생각합니다만, 아직 각자의 ‘색’을 찾고 있는 중이라 생각해요. 자신만의 무기를 발견한다면 더욱 더 강해질 것이고, 활동도 편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자각을 갖기 시작한 멤버들도 적지 않다.
호리 : 버스데이 라이브 리허설을 하다 느낀 것이 있어요. 언더 곡의 연습을 하던 중에 제게 있어 소중한 곡을 연습하게 되었거든요? 역시나 제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곡이라 오리지널 퍼포먼스와 비교해서 퀄리티가 떨어지는 것이 싫었어요. 그 때, ‘아, 앞으로는 지금까지 이야기 하지 않았던 쓴소리들도 해야 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쥰나 같은 경우에는 이미 3기생들에게 ‘여기는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이야기를 했었기에, 그런 모습을 보며 ‘2기생들 중에서 저렇게 이미 자각하고 있는 아이도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기뻤습니다. 저희가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사실 1기생 선배님들이 저희를 그렇게 이끌어 주셨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그런 1기생들이 점점 그룹을 떠나게 되고, 3, 4기생들이 점점 눈에 띄게 활약을 해 나가는 지금, 2기생들만이 손을 놓고 있으면 결국 저희들의 존재가치 자체가 알 수 없게 되잖아요. 그렇기에 저희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증명 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와타나베 : 저희들에게는 주의를 해 주는 선배님들이 계셨어요. 특히 이코마상이나 미사선배 같은 경우에는 여러 가지를 가르쳐주셨지요. 물론 엄하게 혼내시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경험을 했기에 지금 이렇게 활동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그렇게 후배들에게 주의를 해 주시는 선배님들이 졸업을 하셨잖아요. 그렇다면 저희 2기생들이 그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즈키 : 미리아의 말대로예요. 저희 2기생들도 벌써 6년째 활동을 하고 있는걸요. 물론 후배들 입장에서는 ‘왜 저런 소리를 들어야 하지?’라고 생각 할 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런 것 까지 전부 고려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런 것들까지 전부 생각해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가는 언젠가 1, 2기가 전부 졸업했을 때,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그룹이 되어 버릴 지도 모르니까요.
그녀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그녀들의 의지가 묻어나는 것 같았다. 특히 ‘저희들도 이미 6년이나 활동을 하고 있다’는 스즈키의 말은 거짓 한 점 없는 본심이었으리라.
물론 그렇게 악역을 자처한다 해도 3, 4기생들이 ‘그룹의 희망’이라는 점만은 잊지 않고 있는 듯 했다.
신우치 : 제가 이 그룹에 2기생으로 들어 올 수 있어 행복하다 생각하는 점은 다름 아닌 ‘1기생들을 가장 가까이서, 그것도 가장 오랫동안 지켜 볼 수 있었다’는 점이에요. 그렇기에 지금 들어 온 4기생들이 ‘1기생들이 전부 졸업하기 전에 최대한 많이 보아주기’를 바라고요.
쥰나 : 노기자카라는 그룹을 기초부터 쌓아 온 것은 1기생들이잖아요. 선배들이 만들어 온 그룹의 분위기와 무드를 후배들이 느껴 주었으면 해요. 가입 직후부터 선배들에게 귀여움을 받아 온 3, 4기생들이기에 지금의 ‘후배다운’ 반짝임이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요.
후배들이 위축되지 않고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 할 수 있는 것은 선배들이 만들어 준 따뜻한 그룹의 분위기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환경에 안주하지 말고 ‘노기자카46’이라는 그룹의 분위기를 자신 안으로 받아들여 주기를 바란다. 쥰나의 말에 담긴 속 뜻은 이런 것이리라.
호리 미오나는 ‘무지개’ 그 이상의 것을 원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2기생에 대한 사랑은 잊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호리 미오나와 키타노 히나코를 설명하는 문장일 것이다. 다른 동기들에 비해서도 누구보다 동기애가 강한 것이 바로 그 둘이다.
묻기에는 너무 늦은 새삼스러운 질문일 지는 모르지만, 그녀들에게 ‘어째서 그렇게 동기애가 강한 지’를 물어 보았다.
호리 : 동기들이 노기자카라는 그룹에 얼마나 강하게 애착을 갖고 있는지, 얼마나 진지하게 활동 하고 있는 지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 봐 왔기에 가장 잘 알고 있거든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를 들자면… 책임감이랄까요. 제가 동기 중에서 가장 먼저 선발에 들어 갔고, 그 다음에 히나코가 들어 왔으니까요. 16살 때부터 저희 둘이 다른 동기들을 이끌어 줘야 한다는 생각은 계속 하고 있습니다.
키타노 : 미오나와 제가 선발에 들어 간 뒤, 한동안은 다른 동기들이 선발에 들어 오지 못했어요. 상황이 잘 변하지 않았기에 항상 ‘다 함께 힘을 모아서 노력하자’고 이야기는 했지만… 사실 2기생들은 ‘2기생’으로서 함께 일을 한 경우가 거의 없거든요. 그런 환경이었기에 동기애가 더더욱 강해진 것 같아요.
호리와 키타노는 서로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키타노 : 사실 저는 미오나가 처음으로 선발에 들어갔을 때의 영상을 지금도 가끔씩 꺼내 보곤 해요. 볼 때마다 소름이 돋는데요, 덜덜 떨면서 쟁쟁한 선배들 사이에 들어 가, 무슨 일이 있어도 묵묵히 견뎌 온 것이 미오나잖아요. 말하자면 ‘2기생의 개척자’ 랄까요. 언젠가 한 번은 스태프분께서 ‘솔직하게 얘기 해 봐, 미오나랑 히나코는 사이가 어때?’라고 물으셨는데요, 저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미오나를 부정해도 저만은 미오나의 편이 되어 줄 거예요’라고 이야기 했어요.
호리 : 히나코와 저는 성격도 정반대고, 처해있는 처지도 달라요. 하지만 나이도 같고, 동기에다가 웃음 포인트도 같죠. 그룹 활동에 대한 생각도 비슷합니다. ‘라이벌은 누구’냐는 질문에는 항상 ‘저 자신’이라고 대답하지만, ‘그룹 멤버중에서 고르라’고 하신다면 언제나 ‘히나코’라고 대답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히나코의 적이 된다면요? 그럼 제가 지켜 줄 거예요.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마음은 마치 프로포즈처럼도 들렸다. 서로를 인정하는 두 사람의 마음, 그 근간에 깔려 있는 것은 다름아닌 ‘동기애’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동기들은 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사사키 : 둘 다 2기생을 위해 열심히 노력 해 주고 있다 생각해요. 그런 점은 제가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정말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카린 : 히나코가 갖고 있는 동기애는 최근 들어 더 커졌다고 생각해요. 아마도 마음에 여유가 생긴 덕분이라 생각하는데요. 이전까지는 자기 자신의 일만으로도 벅찼지만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기도 했고,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결과, 그 빈자리에 2기생들을 채워넣는달까요. (웃음) 뭐, 그런 부분이 귀엽습니다만.
와타나베 : 그 중에서도 미오나는 특히 어떻게 해서건 2기생들을 밀어주려 하기에, 굉장히 고맙죠. 사실 동기 중에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선발에 꾸준히 들어 온 미오나 외엔 없거든요. 물론 저희가 ‘2기생’이라는 카테고리로 항상 함께 움직이는 건 아니기에 ‘엄청 고마워!’라고 하면 그건 그것대로 좀 오버 같긴 하지만요.
멤버들의 말마따나 2기생들이 자신들의 기수를 강하게 의식 할만한 순간은 지금껏 그리 많지 않았다. 기수별로 묶여서 함께 활동한 경험이 적다는 것도 그 이유일테지만 1기생들과 오랫동안 함께 활동 해 오며 1, 2기가 융화되어 기수를 의식할 일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는 점도 큰 이유일 것이다.
테라다 : 다들 사이는 좋지만 그게 딱히 동기라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야마자키 : 물론 다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사이들은 좋아요. 저 같은 경우는 동기들을 믿고 있기 때문에 구태여 ‘2기생’이라고 묶어서 생각하지 않아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고요. 딱히 묶여서 활동하지 않아도 각자가 각자의 분야에서 노력하고 있다는 건 잘 아니까요.
어떻게 보자면 2기생들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은 단순한 ‘동기애’가 아니라, ‘동기애’와 ‘노기자카에 대한 애정’이 섞인 감정이라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지난 ‘2기생 특집’ 때 와타나베는 이런 말을 남긴 바 있다.
‘2기생들의 색은 전부 제각각이에요.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로 섞이거나, 한 색으로 물들지 않아요. 하지만 굳이 섞거나 한 색깔로 물들이지 않아도 무지개라 생각하면 그 자체로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말로부터 1년 반이 지난 지금, 그녀가 말한 ‘무지개’는 어떻게 변했을까?
와타나베 : 지금도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어요. 사실 저 그 표현, 꽤 좋아하거든요. (웃음)
호리 : ‘무지개’라는 비유, 정말 마음에 드네요. 각자 색이 다르지만 하나가 되었을 때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준다는 의미잖아요. 하지만 무지개는 정말 가끔씩밖에 볼 수 없잖아요. 그렇기에 전 무지개도 좋지만 항상 볼 수 있는 것에 비유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것도 사는 데 필수적인 무언가라면 더더욱.
사가라의 졸업으로 ‘무지개’를 구성하는 색이 하나 빠졌다. 그리고 곧 다가올 카린의 졸업을 통해 색이 하나 더 줄어 들 것이다. 사실 이 ‘무지개’는 앞으로도 색이 줄어 들 수는 있어도 늘어 날 수는 없는 무지개인 것이다. 그런 상황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지난 1년 반동안의 활약을 통해 멤버 한 사람 한 사람이 내뿜는 색은 더욱 더 선명해졌다. 각자가 각자의 분야에서 활약하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신우치로 예를 들어보자. 올 4월에는 3년 전부터 진행 해 온 라디오 방송 ‘올 나이트 닛폰 0’가 2부에서 1부로 승격, 방송 시간이 새벽 1시부터로 앞당겨졌다. 3월에는 여성 패션잡지인 ‘andGIRL’에서, 4월에는 ‘Oggi,jp’에서 레귤러 모델로 발탁이 되었고, 재작년 11월에는 솔로 사진집을 내기도 했다.
신우치 : 라디오 승격 소식은 믿을 수 없었어요. 3년간 해 온 것들에 대한 결과라 생각합니다. 저에게 맡겨주신 이상 그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고, 항상 머릿속 한 구석에선 청취율을 신경쓰고 있었어요. 조금이라도 재미있게, 조금이라도 더 즐거운 방송을 만들고자 고민 한 결과입니다. 모델 일에 대해서는 저 스스로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였어요. 사실 모델일을 하고 싶다는 꿈에 대해서 블로그 등에 쓴 적은 없었지만, 인터뷰에서는 이야기 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했던 말들이 실현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어찌 보자면 지금껏 쌓아 온 것에 대한 결과겠지요. 직선 거리로 빠르게 달려 온 것은 아니지만 지금껏 해 온 모든 것들이 헛된 것들이 아니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사키 역시 4월부터 라디오에서 자신의 방송 ‘노기자카46 사사키 코토코의 톱기어’가 시작된다.
사사키 : 방송이 결정되었을 때, 엄청 기뻤어요.
이토 쥰나의 경우에는 역시 연극 무대가 주를 이룬다. 지난 1년 반동안 ‘MIDSUMMER CAROL’이나 ‘가로’, ‘3자매’, ‘일곱색 잉꼬’, ‘GIRL’S REVUE’ 등에 출연하였으면 그 중 ‘일곱색 잉꼬’에서는 처음으로 주연을 맡기도 하였다.
쥰나 : 저 자신의 무기가 하나 생겼다는 점에서 보자면 조금은 성장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처음으로 주연을 하게 되었을 때, 연출가 분께서 아무런 지시를 안 해 주셨거든요. 나중에 여쭤 보니 ‘주연이잖아. 딱히 여기서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아도 알아서 판단하고 연기 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해서 일부러 아무 말도 안 했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보아 주셨다는 건, 제가 그래도 성장 했다는 의미겠지요?
야마자키는 오랜만에 골든타임 퀴즈방송인 ‘Q사마!!’에 출연하였다.
야마자키 : 현재 멤버 중에 대학생은 저 혼자거든요. 그런 점을 살려 활동한다는 것이 제게 있어서는 하나의 사명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주어진 기회를 제 것으로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력을 다 할 생각으로 준비했어요. 녹화날짜 이틀 전부터 밤을 새워서 공부를 했을 정도죠. 물론 공부한다 해서 어떤 문제가 나올 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껏 손에 넣은 기회를 헛되이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니 밤을 새울 수 밖에 없더군요. 사실 처음 방송에 불러 주셨을 때 보다 두 번째 불러 주셨을 때가 더 기뻤습니다. 아무래도 첫 출연 때 어떤 형태로든 인상을 남겼으니 두 번째 오퍼가 있었다는 것일 테니까요. 그 뿐 아니라 아무리 언더에 있어도 시점을 바꾸어 보면 얼마든지 변화 해 갈 수 있다는 점을 실감 할 수 있었기에 활동하는 것이 더 즐거워 지기도 했어요.
멤버들 스스로도 각자가 발하는 빛이 더 강해졌다고 자각하고 있을까.
테라다 : 그런 것 같아요. 버스데이 라이브때 아야네가 ‘오이샨’ 센터에 서게 되었을 때, 모든 분들이 ‘열심히 해’라고 응원 해 주는 분위기였거든요. 저도 그 모습을 보며 기뻤습니다.
한 여름, 전원이 수영장에 모여 MV를 찍는 상상
최근 들어 2기생 오시들에게 기쁜 일이 있었다. 23번째 싱글 발표 말이다. 이번 싱글에서 선발에 뽑힌 2기생들은 사상 최대인 5명 (호리, 키타노, 신우치, 스즈키, 와타나베)이었다.
테라다 : 평가 기준이 ‘선발’이냐 아니냐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선발이라는 것에 너무 연연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2기생들이 선발에 많이 뽑힌 것은 진심으로 기뻤습니다. 물론 2기생들이 선발에 몇 명이나 드는 지 가장 신경쓰는 것은 다름 아닌 미오나지만요.
키타노 : 미오나가 엄청 기뻐했어요. ‘이거야 이거! 내가 지금까지 기다려 왔던 건 이거야!’라 하더군요. (웃음)
카린 : 누가 뭐라 해도 동기란 건 특별한 존재다 보니 엄청 기뻤어요. 뭐, 선발이나 기수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제가 이런 말 하는 게 좀 웃기긴 하지만. (웃음)
야마자키 : 처음으로 선발에 뽑힌 미리아에겐 연락 했어요. 엄청 기뻤거든요. 특히 미리아는 언더 라이브 때 포지션이 가깝기도 했고요. 그런 아이가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것이 기뻤습니다.
본인들의 말 그대로 ‘신경쓰지 않’지만 내심 신경이 쓰이는 관계, 혹여 ‘신경을 쓰’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신경쓰이는 그런 관계가 바로 2기생들 사이의 독특한 관계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절묘한 균형이 맞춰 져 있는 그런 관계성 말이다.
호리 : 사실 저, 망상 하는 버릇이 있어요. 그 중에서도 ‘이런 식으로 MV를 찍으면 좋을 것 같아’라는 망상을 자주 하는 편인데요, 어떤 스토리로 찍을 지, 어떤 식으로 캐릭터 설정을 넣을 지, 카메라 앵글은 어떤 각도에서 찍을 지 같은 것들을 자주 상상하곤 해요. 얼마 전에는 2기생 전원… 가능하면 졸업한 동기들도 전부 불러서 2기생만의 MV를 찍어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었어요. 시기는 한 여름, 무대는 수영장으로요. MV 촬영 자체도 추억이 되겠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함께 활동을 했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거든요.
스즈키 : 사실 딱히 제가 2기생이라는 의식을 강하게 갖고 있는 편은 아닙니다만, 함께 있는 것은 역시 동기들일 경우가 많아요. 왜냐고요? ….역시 동기들을 좋아하니까.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하거든요. 가족 같은 관계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와타나베 : 버스데이 라이브 리허설 당시, 자연스럽게 동기들끼리 뭉쳐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 때 새삼스럽게 ‘동기들 참 귀엽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실 벌써 6년이나 함께 활동을 해 왔지만, 그렇게 느낀 건 처음이었거든요. 정말이지 너무 사랑스럽게 느껴졌어요. 어째서인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라이브 때 2기생 곡에 맞추어 춤 출 때도 정말 즐거웠고요. 딱히 카린의 졸업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라 생각해요. ‘이 멤버들과 함께 이렇게 활동 할 수 있다니. 내 인생 정말 좋은 인생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죠.
사사키 : 요 전에 쥰나랑 이야기 한 적이 있어요. ‘2기생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딱 좋다’라고.
카린 : 사실 동기들끼리 자주 이런 말을 해요 ‘2기생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딱 좋다’라고 말이죠. 이 말을 할 땐 반드시 ‘이러니 저러니 해도’라는 말이 붙는데요, 말 그대로 서로가 서로의 좋은 점도 안 좋은 점도 다 알고 있고, 그러다 보니 상대방에 대해 짜증이 날 때도 있는 거죠. (웃음) 하지만 그런 것들을 전부 감안해도 ‘딱 좋은’ 관계라 생각해요.
하는 말을 들어보면 영락없는 ‘가족’이 아닌가. 서로의 좋은 점을 알고 있는 동시에 서로의 ‘이런 점은 바꿔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때로는 싸우기도 하지만 함께 놀러 다니기도 하고… 말 그대로 ‘가족’ 인 것이다. 아무리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는 끈끈한 인연이 그녀들 사이에 싹 터 있는 것이다.
카린 : 저는 노기자카46의 2기생이 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카린은 미소 지으며 그렇게 말을 맺었다.
앞으로도 계속 될 연례행사
그럼 다시 한 번 이야기를 교세라돔 오사카으로 돌려보자. 그 날은 2019년 버스데이 라이브가 시작 된 날이었다. 무대 위에서는 1기생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고, 다음 차례인 2기생들은 무대 뒤에서 대기하며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카린 : 사실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한 건 저였어요. 제가 이 콘서트 이후에 졸업을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인지 다들 금방 모여 주었지요. 평소 같았으면 단체 사진 찍자고 모이라 하면 ‘에~?!’라 하며 모이지만 이번에는 별 말 없이 금방 와 주더라고요.
테라다 : 뭐, 다들 귀찮은 척 ‘나 참…’이라 말 하면서도 결국은 모여 주죠. 2기생들 중에는 정말이지 츤데레들이 많아요.
사사키 : 도쿄돔 때도 단체 사진을 찍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찾아 보면 2기생 단체사진은 꽤 많을걸요.
야마자키 : 단체 사진 찍을 때면 항상 누군가 저에게 ‘팔이 제일 기니까 사진 찍어 달라’고 하거든요. 그 때마다 제가 ‘싫어’라고 하면 다들 웃음이 터지고요. 2기생들끼리 사진 찍을 때면 항상 여기부터 시작합니다.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웃음이 나네요. (웃음)
모두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면 솔직히 찍고 싶다고 이야기 하면 될 것을, 다들 그런 면에서는 감정 표현이 서툴다. 누군가 블로그에 올릴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신들의 마음과 휴대폰 앨범에 단체 사진을 간직하고 다시 꺼내 보는 일은 좀처럼 없다.
시간이 오래 지난 뒤, 문득 기억 해 내고 사진을 다시 꺼내 보았을 때,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그 사진들은 변함없이 선명할 테지만 멤버들의 눈에는 마치 오래 된 흑백사진처럼 비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사진을 보며 ‘아, 이런 때도 있었지. 그 때 내 동기들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딱 좋았’어’ 라고 미소 지으며 회상할 그녀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4월 모일, 올 해
역시 어김없이 ‘2기생회’가 열렸다. 그녀들이 오디션에 합격한 기념일, 3월 28일에 개최하지는 못 했지만 결국 ‘이러니
저러니 해도’ 다들 모여주었다고 한다. 아마 그 날도 다들 모여 단체 사진을 찍었을 테지만, 그 때
역시 다들 솔직해 지지 못 하고 짐짓 싫은 척 하며 누군가의 카메라 앞에 모여 들었을 테다. 그런 솔직하지
못 한 그녀들이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 이어 져 있다면 뭐, 그건 그것대로 괜찮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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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화
부도칸 3days라는 도전
2017년 봄에 시작된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의 첫 전국 투어는 같은 해 12월, 치바현 마쿠하리 멧세에서 이틀간에 걸쳐 열린 파이널 공연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마지막 공연을 이틀 앞둔 날, 카키자키 메미가 팔에 골절상을 입어 라이브에 참가 할 수 없게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하지만 ‘메미 몫은 다른 멤버들이 커버하여 최고의 라이브를 선사하겠다’는 굳은 다짐 아래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는 모든 곡의 포메이션을 급하게 수정하여 마쿠하리 멧세의 무대에 서게 되었다. 또한 그룹에 가입 한 지 4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2기생 9명도 그 날 처음으로 무대를 밟게 되었다.
이렇게 이틀간 1만 4천명을 동원한 ‘과거 최대규모’의 스테이지는 성공리에 막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공연 직전에 터져 나온 ‘한 번 놀라게 해주자’
시간은 흘러 2018년 새 해가 밝았다. 새 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1월 어느 날, 한자/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의 합동 공연이 발표되었다. 두 그룹이 함께 3일간 부도칸 무대에 선다는 소식이었다. 상세한 내용은 ‘1월 30일에 히라가나가 무대에 서고 다음날인 1월 31일과 마지막 날인 2월 1일에는 한자가 무대에 선다’는 것이었다. 음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 꾸는 ‘음악의 성지’인 부도칸에서 단독 공연을 하는 것은 한자, 히라가나 할 것 없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일은 생각처럼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았다. 1월 중순, 스태프가 히라가나 멤버들을 불러 모았다. ‘중요한 전달사항이 있다’며 입을 연 스태프의 말은 히라가나 멤버들에게 있어서 상상조차 하지 못 했던 내용이었다.
‘히라가나 케야키, 너희들에게 부도칸 공연을 3일 전부 맡기고 싶은데, 해 줄 수 있겠어?’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발표에 사사키 쿠미는 머릿 속이 새하얗게 되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 대답을 할 지 모르’는 것 이전에 ‘지금 무슨 말을 들었는 지’ 조차도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사키 뿐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상황은 비슷했기에 스태프가 거듭 ‘할 수 있겠어?’라고 재촉하듯 물었음에도 대답을 하지 못 하고 그저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던 것이다.
일이 이렇게 급변한 것은 사실 한자 케야키의 센터인 히라테 유리나가 전치 1개월짜리 부상을 입어 부도칸에 참가 할 수 없게 되어, 스태프들이 이 건에 대해 한자 멤버들과 대화를 나눈 결과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동안 히라테의 포지션을 메우고,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퍼포먼스를 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불과 한 달여 전에 성공리에 단독 전국투어를 마치고 한층 성장한 히라가나 케야키에게 3일간의 부도칸 공연을 전부 맡기겠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이다.
이 결단은 운영측에 있어서도,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을 믿을 수 밖에 없는 도박이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들의 마음 속은 여러 가지 생각들로 복잡했다.
사이토 쿄코는 ‘3일이나 공연을 한다니, 과연 체력이 버텨 주려나…’라며 불안해 했으며, 사사키 쿠미는 ‘우리들 만으로 3일이나 공연을 한다니, 객석이 채워 질 리도 없을 거고 한자 선배님들의 라이브를 보기 위해 오신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실 지 무서워’라고 마음이 약해져 있었다.
다카모토 아야카는 ‘뭐, 결국은 한자 선배님들도 라이브에 참가 하실거야. 팬 여러분 뿐 아니라 나도 솔직히 한자 선배님들 라이브가 보고 싶은걸’이라며 당초 예정대로 부분적이나마 양 그룹이 함께 공연을 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렇듯 각각 마음의 준비가 다 되지 않은 상태로 시작된 리허설은 지금까지 겪었던 그것에 비해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부담이 막중했다.
우선 투어 때와는 전혀 다른 콘셉트로, 새로운 연출이 많이 가미 되었기에 그에 맞추어 안무나 동선 자체가 크게 변경되었다. 예를 들어, 한자 케야키의 곡인 ‘이야기한다면 미래를…’의 경우, 히라가나 멤버들은 지금까지 이 곡을 선보인 적인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생소한 곡이었을 뿐 아니라, 부도칸 공연을 위해 새로운 구성이 이루어 져, 2층으로 세워 진 세트를 재빠르게 올랐다 내렸다 하며 퍼포먼스를 해야만 했다.
‘퍼포먼스를 한다면 통일성이 중요하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사사키 미레이의 경우, 특히 유닛곡의 완성도가 낮다는 사실에 불안감을 갖고, 리허설이 끝난 뒤에도 스튜디오에 남아 적극적으로 추가 연습을 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연습을 하여도 자신이 목표로 하는 레벨에 도달하지 못 해, 불안함과 초조함을 감추지 못 했다.
또한, 그 시기는 두 달 뒤에 발매될 새 싱글 제작기간과도 완벽하게 겹쳐 있었기에, 공연 리허설에 전념 할 수 있었던 시간은 사실상 1주일 정도뿐이었다. 그 뿐 아니라 이구치 마오, 우시오 사리나, 카게야마 유우카 등 몇몇 멤버들은 그런 얼마 되지 않는 리허설 조차도 학교에 가느라 참가하지 못 하는 경우마저 있었다.
그렇기에 택한 방식은 ‘일단 참가하지 못 하는 멤버들의 대역으로 댄서를 넣고 리허설을 진행 한 뒤, 그것을 동영상으로 찍어, 그 동영상을 보며 각자 연습을 하는’ 방식이었다. 사실은 모든 멤버들을 모아놓고 함께 리허설을 하면서 바로바로 틀린 부분을 고쳐가며 정확도를 높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런 것이 가능한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 하에서 각자 자신이 해야 할 것들을 수행하는 것 만으로도 벅찼기에, 어느 사이엔가 멤버들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져갔다. 공연 직전에 열린 게네프로(※의상, 연출까지 전부 실제 공연과 동일하게 한 최종 리허설)를 본 연출가가 멤버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질책하기까지 했다.
‘너희들 왜 예전처럼 해피 아우라를 뿜어내지 못 하는 거야? 부도칸에서 공연을 할 각오가 부족한 것 아니니?’
부도칸 공연 티켓은 선행 판매 시점에 이미 회장의 수용 인원을 한참 상회하는 수의 응모가 들어 왔을 정도였다. 멤버들이나 스태프들이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히라가나 케야키의 부도칸 공연을 기대하는 팬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수 많은 팬들이 자신들에게 기대를 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된 멤버들은 잔뜩 고무되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우리를 기다려 주고 계시잖아. 이렇게 된 이상 한 번 놀라게 해 드리자고. 전설에 남을 라이브를 보여드리자.’
‘더 이상 도망 갈 수 없는 곳 까지 와 버린 이상, 지금의 불안을 뛰어 넘어,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갈 수 밖에 없어.’
큰 무대를 눈 앞에 두고 멤버들은 서로에게 이렇게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부도칸 공연에서 모두를 놀라게 해 주자!’
‘전설에 남을 라이브를 보여주자!’
그런 멤버들의 각오와 함께 3일간 3만명을 동원한 ‘그룹 결성 이래 최대의 도전’은 막을 올렸다. 그리고 이 공연은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는 ‘격동의 2018년’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의 컬러풀한 세계
부도칸 공연의 오프닝에선 화려한 롱코트를 입은 멤버들이 지팡이와 중절모를 이용하여 댄스를 선보였다. 그리고 그녀들이 발을 딛고 서 있는 무대는 형형색색의 색전구들로 장식되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화려하고 컬러풀한 세트 구성이었다.
지난 해, Zepp tokyo에서 시작된 전국 투어 때는 아무래도 서게 되는 무대가 ‘라이브 하우스’ 였기에 연출을 최대한 자제한 심플한 스테이지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 이 부도칸 공연에서는 처음으로 테마가 있는 ‘쇼’ 형식의 연출이 적용 되었다. 그리고 이 날의 ‘테마’는 다름아닌 ‘서커스’. 부도칸을 하나의 거대한 서커스 천막으로 가정하고 멤버들이 차례로 나와 쇼를 선보이는 설정이었던 것이다.
아리나석에서 천장 부근까지 객석으로 꽉 찬 한가운데에 무대가 위치한, 마치 ‘절구통’ 모양을 한 부도칸의 중심에 선 순간, 사사키 쿠미의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부도칸은 지금까지 서 온 무대들과는 전혀 다르구나. 360도 모든 방향에서 관객들이 지켜 보고 있어. 보는 사람들의 함성이 회장 안을 가득 메우며 마치 땅이 울리는 것 같아.’
공연 시작 직전까지 필기한 메모를 몇 번이고 필사적으로 읽고 또 읽으면서 어찌 할 줄 몰라했던 우시오 사리나 역시 스테이지 위에 선 순간 기분이 확 바뀌었다. ‘여기 이렇게 서 있으니 마치 우주 한 가운데 떠 있는 것 같아. 팬분들의 사이리움이 마치 별처럼 반짝 거리네. 지금까지 준비하는 건 힘들었지만 이렇게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니… 우리들 정말 너무나도 행복한 사람들이구나.’
히라가나 케야키의 라이브에서도 빠질 수 없는 곡, ‘후타리세종’ 때는 전국 투어때와 마찬가지로 이구치 마오의 솔로 댄스 파트가 들어갔다. 이 퍼포먼스는 마쿠하리 때의 그것과 비교하여 퀄리티가 많이 올라 가 있었다.
사실 ‘부도칸에서도 솔로댄스를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이구치는 그녀 답지 않게 단호하게 거절을 했다 한다.
‘부도칸에서 3일 연속으로 공연을 한다는 거, 분명 뉴스에서도 다룰텐데 그런 중요한 무대에서 춤이 제일 서툰 제가 솔로로 춤을 추는 건 웃음거리밖에 안 되잖아요. 투어 때도 참고 했으니까 이번에는 다른 사람을 시켜 주세요.’
하지만, 사실 수 없이 눈물을 흘려가며 셀 수 없을 정도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결과, 조금씩이나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온 이구치였기에 부도칸에서 솔로 댄스라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자격이 있는 것이었다.
스태프들과 멤버들로부터 거의 ‘질타’에 가까운 설득을 받은 뒤, 이구치 역시 결심을 굳혔다. 자신이 춤 추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수 없이 돌려 보며 ‘여기랑 여기는 움직임이 좀 기분 나쁜데 어떻게 해야 좀 멋있게 출 수 있을까요?’ 라며 댄스 선생님에게 하나하나 세세한 곳 까지 확인한 것은 물론이고, 부도칸 공연이 한창일 때에도 자신이 무대에 서 있지 않을 땐 대기실에서 쉬지 않고 연습을 거듭했다. 그리고 그 결과, 본인 스스로도 ‘지금까지 해 왔던 것 중 최고 걸작’이라 자신 할 수 있을 정도의 퍼포먼스를 해 낼 수 있었고, 팬들 사이에서도 그녀의 성장이 화제가 될 정도였다.
이구치의 이 퍼포먼스, 불과 30초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솔로 댄스에는 1년 가까이 노력 해 온 그녀의 지금까지의 시간은 물론이고 ‘사람은 노력하면 성장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부도칸 공연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가 바로 ‘100년 기다리면’ 이라는 곡이었다. 이 곡은 나가하마 네루가 히라가나의 멤버일 때 나온 나가하마의 솔로곡으로, 부도칸 공연에서 1기생 전원이 이 곡을 커보 했던 것이다. 이 곡을 선보일 때, 무대 위에는 멤버들 뿐 아니라 곡예가, 피에로, 댄서, 어린 아이들도 등장하여 ‘서커스’와 ‘뮤지컬’을 융합시킨듯 한 화려하고 팝한 세계관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사실 한자, 히라가나 할 것 없이 무대 위에 멤버 이외의 사람이 올라오는 연출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 한 것이 바로 이 무대였다. 그리고 이 연출은 ‘모두 하나가 되어 즐겁게 즐긴다’ 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개방적인 분위기를 표현한 연출이기도 하였으며, 그 특유의 컬러풀한 세계관은 ‘스타일리시하고 흑백 대조가 강렬한’ 한자 케야키의 세계관과 대조를 이루며 양 그룹의 차이를 한 층 더 돋보이게 해 주는 연출이었다.
양 그룹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 연출이 다른 곡도 아닌 ‘나가하마 네루의 솔로곡’에 처음 쓰였다는 것은 어쩌면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이라는 그룹은 사실 나가하마 네루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역사를 생각 해 보았을 때, 필연이라고도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이 날, 부도칸의 객석에서 ‘나가하마 네루’의 이름이 쓰여진 타올을 본 다카세 마나는 ‘지금 이 자리에 네루쨩은 없지만, 역시 모두와 함께 있는 것이나 다름 없구나’라고 실감 했다.
그리고 부도칸 공연 이틀차에는 바로 그 나가하마 네루 역시 부도칸의 객석에 앉아 멤버들의 공연을 지켜 보았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뒤에는 멤버들을 찾아 감상을 이야기 하기도 하였다.
‘오늘 공연은 히라가나 케야키답게 해피 아우라가 가득 한 스테이지였어. 정말 엄청 감동했어. 100년 기다리면을 함께 불러 줘서 고마워.’
멤버들에게 감상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리는 나가하마의 모습을 보며 카토 시호는 ‘나가루 왜 울어’라며 웃어 주었다.
나가하마는 히라가나 케야키와 한자 케야키 겸임 당시, 항상 ‘한자 흉내에 그쳐선 안 돼. 히라가나만의 특징은 뭘까’라고 자신에게 묻곤 했다. 하지만 어느 사이엔가 자신이 떠난 뒤에 남겨진 멤버 들이 ‘해피 아우라’라는 ‘답’을 도출 해 내고, 자신들만의 것으로 삼은 뒤, 미소 지으며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지난 해 연말에 있었던 마쿠하리 멧세 공연때는 일부의 곡에서 무대를 맛 보는 데 그쳤던 2기생들 역시 더욱 더 파워업 한 스테이지를 보여주었다. 솔로 댄스나 ‘NO WAR in the future’ 뿐 아니라 매일 센터를 바꾸어 가며 노기자카46의 곡을 3곡씩 커버 했던 것이다. 비록 등장은 적었고, 커버 무대이긴 했지만 그녀들의 무대는 지금까지의 한자 케야키나 히라가나 케야키의 그것과는 다른 ‘새로운 바람’을 무대에 일으켰다.
그리고 이 라이브의 앙코르 때 처음으로 선보인 것이 1기생들의 신곡 ‘두고 보라고 (イマニミテイロ)’였다. 이 곡은 이 부도칸 공연의 상징과도 같은 곡이며,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라는 그룹의 미래에 대한 각오를 담담하게 풀어 낸 곡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중요한 곡의 센터에 선 멤버는 다름 아닌 사사키 미레이였다.
새벽 4시, 잠을 이루지 못 한 채 보낸 메시지
사사키 미레이는 히라가나 케야키에 들어 왔을 때부터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모든 분야에서 높은 잠재력을 지닌 멤버로 손꼽혔다. 나가하마 네루 역시 그녀를 보고 ‘뭐든 다 잘 하는 아이가 있다’고 놀랐을 정도였다. 그녀 자신이 주목을 받거나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서려 하는 타입이 아니었기에 그렇게 눈에 띄는 존재는 아니었지만, 그룹 전체로 봐서도 댄스 면에서는 최고로 손꼽히는 히가시무라 메이조차도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사사키 미레이에게 조언을 구하곤 할 정도였다.
그랬던 그녀의 존재감이 급격히 커 지고, 스태프들이 그녀에게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드라마 ‘Re:Mind’ 무렵부터였다. 이전까지는 항상 맨 뒷줄의 끄트머리 포지션에 서는 경우가 많았지만, 무대 위에 섰을 때 보여지는 그녀만의 깔끔한 모습은 말 그대로 ‘센터’에 적합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것 처럼 보였다.
그런 미레이가‘새롭게 발걸음을 옮기려 하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얼굴로 발탁 된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나 비교를 싫어하는 그녀의 성격상, 지금껏 센터라는 포지션을 의식 한 적은 없었다. 신곡의 포지션 발표 때에도 ‘센터, 사사키 미레이’라는 발표를 듣고 ‘아, 2열 중간에 서는구나’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정작 본인이 상황을 파악하기 전에 주변 멤버들이 그녀를 위해 박수를 쳐 주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우시오 사리나는 감격하여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누구보다 높이 뛰어!’에서 미레이와 대칭점에 선 이후 서로를 인정하며 ‘영원한 대칭점’이라고 부를 정도로 사이가 좋은 우시오였기에, 언제나 ‘나는 괜찮다’며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기만 하는 상냥한 미레이가 인정을 받은 것이 마치 자신이 인정 받은 것 마냥 기뻤다.
‘미팡은 언제나 생글생글 웃고 있는 태양 같은 존재이며, 히라가나 케야키를 상징하는 사람이라 생각해. 우리들이 자신을 갖고 자랑 할 수 있는 센터야.’
포지션 발표가 있었던 당일 밤, 처음으로 맡게 된 센터라는 자리의 중압감에 잠을 못 이루던 미레이는 새벽 4시경, 멤버들이 있는 그룹 라인에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오늘 제가 센터라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놀랐습니다. 저는 악수회에서도 인기가 없고, 얼굴도 귀엽지 않기에 센터에 서서 잘 해 낼 수 있을지 불안합니다만, 미팡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또한, 그녀는 ‘두고 보라고’ MV 촬영 당시에도 모니터에 비친 자신의 딱딱한 표정을 보며 크게 낙담하기도 하였다.
‘이대로라면 아무 것도 표현 못 하겠는걸. 이건 그냥 ‘무’의 표정일 뿐이야.’
이렇게 이야기하며 낙담하는 미레이를 보며 안무가인 TAKAHIRO는 ‘그렇다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분하고 아쉬웠던 때를 떠올려 봐’라고 조언 해 주었다.
‘어느 날 갑자기 어른들이 ‘해 보지 않을래’라고 이야기 했어. 어떻게 할 거니? 겁쟁이야’
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두고 보라고’라는 곡은 부도칸 공연을 갑작스레 맡게 된 그녀들의 심경을 그대로 그려 낸 곡이었다. 그리고 그 ‘시련’으로부터 등을 돌려 달아나지 않고 맞설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이야말로 곡의 제목인 ‘두고 보라’는 마음가짐이었다.
‘다른 누군가의 등 뒤에서 이 세상을 훔쳐보기만 했지. 내 차례가 되면 패스는 할 수 없는 룰이야. 두고 보라고, 지금 내가 보여주는 색은 어떤 색인지. 입술을 곱씹으며 지금껏 노력 해 온 색인걸.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몇 번이고 되뇌었어. 말이란 어떤 색일까? 언젠가 내가 보여 줄 색이야.’
미레이는 이 곡을 부르며 지난 날 분했던 기억들을 곱씹었다. 예를 들어 악수회에 사람들이 전혀 와 주지 않았던 날을, ‘케야키 공화국 2017’ 때 앙코르가 끝난 뒤 전체 인사에서 히라가나는 제외 되었던 날을… 그러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한자 케야키’에 대한 라이벌심에서 느낀 분함이 아니라, 한자의 등 뒤에 서 있을 뿐 스스로 앞으로 나서려 하지 않았던 자신에 대한 분함이었다. 한자 케야키의 팬인 미레이에게도 아느 사이엔가 ‘우리는 우리야. 우리 역시 하나의 그룹으로서 앞으로 걸어 나가야만 해’ 라는 마음이 싹 터 있었던 것이다.
이 곡에서 가장 압권인 부분은 2절 후렴구 이후의 퍼포먼스였다. ‘두고 보라고’를 부르면서 멤버들이 미소를 띈 채 주먹을 들어 올리는 부분이다. 과거의 안타까움, 분함, 그리고 눈 앞에 버티고 서 있는 높은 벽들마저 미소를 지으며 극복 해 나가겠다는 ‘히라가나 케야키’ 다운 각오가 표현 되어 있는 퍼포먼스이기 때문이다.
부도칸에서 처음으로 이 곡을 선보였을 때, 곡이 끝날 즈음하여 얼굴 가득 미소를 띄우며 ‘히라가나 포즈’를 한 미레이의 얼굴이 모니터에 비추어 진 순간 회장은 따뜻한 박수소리로 가득 찼다.
모니터에 비춘 그녀의 얼굴은 정말이지 그녀 다운, 너무나도 상냥하고 다정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라이브의 마지막 날, 공연이 끝날 때쯤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서프라이즈가 기다리고 있었다.
전설로 남은 ‘다레토베’ 더블 앙코르
그것은 마지막 공연의 앙코르로 ‘두고 보라고’를 선보인 뒤, 멤버들이 다음 곡 준비를 위해 무대 위에서 이동 하기 시작했을 때의 일이었다. 회장 뒤에 설치 된 모니터에 갑작스럽게 이런 메시지가 나타났던 것이다.
‘멤버 여러분, 3일간 공연 정말로 수고 많았습니다!’
메시지가 사라진 뒤, 지난 3일간의 공연을 요약한 다이제스트 영상이 흘러나왔다. 어저께, 그리고 그저께의 일임에도 오래 된 추억만 같아 멤버들 중에는 눈물이 맺힌 멤버들도 있었다.
하지만 서프라이즈는 그 때 부터였다.
‘부도칸 공연을 성공리에 마친 히라가나 케야키의 새로운 성장을 위한… 다음 시련은…’
뒤이어진 메시지. 그 곳에 자리잡은 ‘시련’이라는 두 글자에 멤버들은 비명을 질렀다.
지금까지 있었던 서프라이즈 발표에서는 항상 괴로운 추억밖에는 없었던 그녀들에게 있어 이 다음에 이어질 메시지는 두려움일 뿐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표시 된 메시지는 그녀들의 그런 예상을 멋지게 빗나간 것이었다.
‘히라가나 케야키 단독 앨범! 발매 결정!’
뒤이어진 메시지를 본 멤버들은 마치 폭발하듯 환희에 차서 소리를 질렀다. 생각조차 하지 못 했던 기쁜 발표에 표정 관리를 하지 못 하고 서로 얼싸안은 멤버들을 보며 회장 안은 떠나갈 듯한 환성소리로 가득찼다.
발표의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은 채, 사사키 쿠미가 그룹을 대표하여 짧게 감상을 이야기했다.
‘이렇게 저희의 꿈이 이루어 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 했기에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만… 기쁘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자신들 명의로 CD 데뷔를 한다는 것은 작년 투어 도중에 멤버들끼리 의견을 나누며 결정한 목표 중 하나였다. 지금까지 한자 케야키 명의 CD의 커플링 곡에만 참가 해 왔던 그녀들에게 있어 자신들만의 이름으로 작품을 낸다는 것은 너무나도 심플하지만 명확한 목표였으며, 동시에 가장 이루기 힘든 목표로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1년 가까이 이어진 투어를 무사히 완주 해 내고, 부도칸 3days 공연이라는 크나큰 도전에 승리한 히라가나 케야키는 어느 사이엔가 단독 데뷔에 걸맞는 그룹으로 성장 해 있었다.
그리고 이 날 공연의 마지막에는 관객들의 ‘더블 앙코르’ 요청에 답하여 ‘누구보다 높이 뛰어!’를 선보였다. 초창기, 자신들만의 노래가 거의 없을 무렵부터 관객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어느 부분에 어떻게 객석을 띄울 지’, ‘어떻게 해야 우리들의 마음이 곡에 더 잘 묻어 나올 지’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그룹과 함께 성장 해 온 히라가나 케야키의 대표곡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룹의 중심에 서서 목소리를 높여 이끌어 온 사사키 쿠미는 이 날의 이 더블 앙코르에서 지금까지 느끼지 못 했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들이 소리를 내는 그 몇 배, 몇 십 배로 환성이 되돌아오네. 엄청 즐거워!’
연출 스태프들 역시 분위기를 타고 인이어 모니터를 통해 ‘좀 더 객석 분위기를 띄워! 지금 한창 분위기 좋으니까 좀 더 띄워봐!’라고 지시를 내렸고,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카케야마가 ‘여러분! 더 더 즐겨 봐요!’라고 소리를 질렀다. 상당히 기분이 업 되었는지 목소리가 뒤집혀 쇳소리가 날 정도였지만 아무도 그 점은 신경쓰지 않았다.
곡의 분위기에 취하기라도 한 듯 멤버들도, 회장을 메운 관객들도 리미터가 풀려 있었던 것이다. ‘다레토베’라고 하는 곳이 가진 진정한 잠재력이 최대한으로 발휘 된 순간이었다.
라이브가 끝난 뒤, 모두가 ‘해 냈다’는 달성감과 기분 좋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가운데, 카키자키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신기한 느낌에 휩싸여 있었다.
‘당장 내일도 여기서 라이브를 할 것 같아. 이대로 또 한 번, 3일 공연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히라가나 케야키의 이 부도칸 공연은 TV, 인터넷 할 것 없이
크게 다루어졌다. 그녀들에게는 ‘부도칸 3일 공연을 성공리에 마무리 한, 요즘 가장 기세가
좋은 그룹’이라는 높은 평가가 주어졌다. 그녀들의 큰 도전이
확실히 그녀들의 ‘미래’로 이어 져, 그룹을 둘러 싼 환경을 크게 바꾸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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