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물/출판물-AKB
AKB 히스토리 11장
hemod
2014. 3. 3. 21:55
11-1. 급증하는 팬들, 그리고 염원하던 1위.
9월이 되었다.
뉴욕에서 개최 된 '뉴욕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AKB48 선발 멤버들이 참여하였다. 7월에 있었던 파리 공연에 이어, AKB48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모습에 많은 뉴요커들도 관심을 보였다. 뉴욕 거리 여기저기에서 'AKB!'를 외치는 팬들의 목소리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일본 전역에서 열리는 악수회에 참가하는 팬들의 수도 급증하게 되었다. 악수회가 열리는 회장의 규모 변화만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도쿄 악수회의 경우, '쥬넨사쿠라'때에는 도쿄 돔 시티 라쿠아가든의 무대였으나, '나미다 서프라이즈!', '이이와케 Maybe'때에는 요미우리 랜드, 도쿄 빅사이트에서 열리게 되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10월 21일, AKB48의 14번째 싱글, 'RIVER'가 발매되었다. 지금껏 AKB48이 불러 왔던 '소녀들의 감성'을 다룬 노래가 아니었다.
'AKB~! 48!!!'
곡의 도입부에서 다카하시 미나미가 자신들의 팀 이름을 소리 높여 외친다. 뒤를 이어 멤버들이 발을 구르며 박자를 맞춘다.
그 이색적인 곡은 자신들의 눈 앞에 놓인 '강'에 대한 노래였다.
'제 아무리 넓은 강이라더라도, 어둡고 깊은 강이더라도, 흐름이 급한 강이더라도' 어떻게든 헤엄쳐서 건너 내지 않고서는 '꿈'을 손에 넣을 수 없는 그런 '강'... '시간에 빠져 버려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헤엄 쳐야 한다. 강은 영원히 이어지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건너편에 닿을 수 있는, 끝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RIVER'는 어쩌면 그녀들이 지금껏 걸어 온, 길고도 험한 여정에 대한 노래였던 지도 모른다. 노래에 나오는 것 같은 그런 시련을 그녀들은 벌써 몇 번이나 넘어서 여기까지 왔던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강에 '빠져' 버렸던 적도 있었다. 도중에 포기하고 자신들의 곁을 떠난 친구들도 있었다. 모두가 힘을 합쳐 건너 온 강들도 여럿 있었다...
확실한 것은 당장 눈 앞에 있는 이 강을 건너지 않고서는 그녀들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뿐이었다. 그 시련은 지금껏 몇 번이나 겪어 온 것이었다. 익숙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그 급류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 그녀들은 그런 마음을 'RIVER'에 담아,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이 곡은 오리콘 위클리차트에서 등장 첫 주 1위를 기록하였다. 이 기록은 AKB48이 데뷔 한 지 4년만에 거둔 쾌거였다.
11-2. 와랏테 이이토모! 에 33명의 멤버들이 출연!
'RIVER'의 힘은 첫 주간 1위에 그치지 않았다.
2009년도 여성 아티스트의 초동 판매 금액과 판매 매수에서 양 쪽 모두 당당히 1위를 차지했던 것이다. AKB48가 지금껏 그리도 원해왔던 '1위'가 겹쳐서 그녀들에게 일어 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인기 있는 가수들을 피해서 CD를 냈잖아. 운이 좋은거지'라는 비아냥을 이겨 낼 수 있는 자신감을 주었다.
새로이 팀 A의 캡틴이 된 다카하시 미나미는 1위를 했을 때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때까지 AKB48 전원이 아무리 열심히 해서 순위를 올려도 인정을 받지 못했어요. 솔직히 말해서 오리콘 3위라는 성적, 대단한 성적 아닌가요? 하지만, 잡지 제목 같은 데에는 'AKB에 열광하는 아키하바라 증후군'같은 말이 쓰여져 있곤 했어요. (※ 3위나 되었는데도 AKB48을 좋아하는 것은 일부의 아키하바라 오타쿠라는 편견을 떨쳐버리지 못했다는 뜻.) 그런 것을 볼 때마다 '많은 분들이 응원을 해 주시고, 또 우리도 이렇게 노력을 하는데...어째서 이런거지...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3위가 한계기 때문에?'라고 항상 마음속에 짐이 되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1위를 차지하였을 때, 마음속으로 '할 말 있으면 해 봐!!'라고 이긴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요."
히트차트 1위라는 결과는 AKB48를 대하는 언론들의 태도조차 바꾸어버렸다. 많은 잡지들이 갑자기 그녀들의 그라비아 화보를 싣고 싶다고 연락을 해 왔고, TV에서도 매일같이 멤버들의 얼굴이 비추어지기에 이르렀다. 그 중에서도 특징적이었던 것은 11월 12일에 있었던 '와랏테 이이토모 (웃어도 좋고말고! 라고 해석되는 유서깊은 방송)'의 코너, '텔레폰 쇼킹 (사실 처음에는 MC인 타모리씨 근처에 앉은 멤버들만 자기소개를 할 예정이었으나, 도중 타모리씨의 애드립으로 인해 멤버 전원이 자기소개를 하게 되었다.)' 출연했던 때의 일이다. 와랏테 이이토모의 긴 역사 중에서도 최다인원인 '33명 동시 게스트'로서 출연을 했던 것이다. 덕분에, '멤버들의 자기소개만으로도 시간이 끝나 버렸다'는 미증유의 일이 예상외로 좋은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모두들 '갑자기 커져 버린 인기'라는 소용돌이 안에서, 그 소용돌이 건너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곳에는 2년 전에 잠시 손에 쥐었다가 결국 놓아버릴 수 밖에 없었던 그녀들의 꿈이 있었다.
...홍백가합전 출장...
몰려 든 수많은 취재진으로부터 '아키바 48'이라는 말을 듣고, 자신들의 힘이 아닌 '아키하바라 특집'으로 출장했었던 2007년... '오오고에 다이아몬드'라는 히트곡을 내고서도 결국 출전 할 수 없었던 2008년... 분함, 비참함, 그녀들이 어금니를 악 물고 곱씹고 있던 마음을 올해야말로 무대에서 폭발시키고 싶다...
그런 마음은 멤버들 뿐 아니라 그녀들을 응원하는 팬들, 그리고 그녀들에게 관계하는 스탭들의 마음이기도 했다.
11-3. 2번째 홍백출장. 무대에 선 72명의 멤버들.
2009년 11월 23일, 오후 3시 30분이 지난 때였다. 2009년 홍백가합전 출장자가 발표되는 순간이 왔다. AKB48 주력멤버들은 종합 프로듀서인 아키모토 야스시와 함께 치바현에 위치한 라디오 방송국, bayfm의 생방송에 출연중이었다.
그리고 아키모토 프로듀서는, 생방송 중에 '홍백에 출연하게 되었습니다'라고 제 1보를 전했다. 그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멤버들은 물론이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팬들은 환성을 올렸다.
카사이 토모미는 이 때의 기억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때마침 방송중이었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키모토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모두들 울기 시작했지요. 정말로 '드라마 같다'고 생각했어요. 거기다가 작년에 집에서 씁쓸하게 홍백을 보았던 때의 기억이 되살아 나서...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보여주겠어'라고 결심했습니다. 'RIVER'는 소위 말하는 '아이돌스러운 곡'이 아니므로, 진정한 AKB48이 어떤 팀인 지 보여주겠다는 마음을 먹었죠."
그리고 드디어 맞이 한 12월 31일...
2년전에 마음속에 맹세 한 바 대로, AKB48은 자신들만의 힘으로 NHK홀에 돌아 올 수 있었다. 더 이상 그녀들을 '아키바 48'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미네기시 미나미는 이 때의 기억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2007년에 왔을 때엔 처음이라 불안감이 너무 컸었고, 'AKB48? 어차피 학예회 수준 아냐?'라고 비아냥대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2년이 지나, 2009년에는 주변 분들로부터 'AKB48은 홍백에 나갈 자격이 있는 그룹'이라고 인정을 받은 것을 실감했습니다."
오오시마 유코는 이렇게 말한다. "정말로 '이제야 돌아왔어'라는 느낌이었어요. 마음 속으로 '그래, 우리가 바로 AKB48이다!'라고 가슴을 펴고 자랑하고 싶었지요. 함께 출연하는 다른 아티스트 여러분들도 저희를 보고 '아, AKB48이다!', '멤버 많네'라는 식으로 이야기 해 주셨 (주 : 편견 없이 동료로서 받아들여 주었다는 뜻) 어요. 2007년에 왔을 때와는 전혀 달랐지요."
AKB48의 차례가 되기 직전, 멤버들은 대기실에서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 서 있었다. 다카하시 미나미의 구령에 따라 72명이나 되는 멤버들이 일제히 무대로 향했다. 홍백에서 피로한 곡은 'RIVER', 그녀들에게 있어 많은 팬들을 가져다 준 기념스러운 곡, '나미다 서프라이즈'로 이어지는 '홍백 특별 리믹스 버전'이었다.
우선 16명인 선발멤버들이 RIVER를 부르고, 곡이 '나미다 서프라이즈'로 바뀌는 순간, 72명의 멤버들이 무대를 가득 채우는 구성이었다.
사토 유카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 날,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있을 때, 모든 멤버들이 'AKB48은 대단해!'라는 기분이었을 겁니다. 저도 그랬고, 다른 멤버들도 그랬으리라는 것을, 함께 무대에 선 저는 알 수 있어요. 모두들 얼굴에 자신감이 넘쳤거든요."
아이돌을 꿈꾸던 소녀들이, AKB48이라는 아이돌이 되어 맞이 한 5번째 섣달그믐날 밤... 그녀들의 눈동자에 눈물은 맺혀있지 않았다.
제 11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