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물/출판물-AKB
비 선발 아이돌 - 3장
hemod
2014. 3. 5. 16:04
3-1. 재검토
결국 궁지에 몰려버린 나는 생존전략을 다시 검토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새롭게 취한 생존전략은, 당연하다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바로 '어떻게 해도 안 되는 것은 포기한다'는 것이었던 것이다. 내가 '잘 못 하는 것'이라면 바로 '인기를 얻는' 것. 내 선택은 바로 '인기를 얻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을 그만 두'는 것이었다. 뭐, 쉽게 말하자면 내게 주어 진 '매 공연에 최선을 다 하는 것'이었다.
써 놓고 보면 참 멋져보이기는 하는데, 쉽게 말하자면 그냥 생각을 바꾼거다.
'뭐... 아무리 해 봐도 안 되는 건 어차피 안 되는 거야. 그렇다면, 그럴 시간에 내가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을 더 열심히 하면 되지. 그리고, 이왕 할 거면 최선을 다 하자' 라는 마음이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내 성격은 지금껏 수 없이 말 한 바와 같이, '매사에 의욕이 없고', '소극적'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완고하고 고집이 센' 면도 있다.
이런 성격덕분에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이런 성격 때문에 궁지에 빠진 적도 있었다. 고집이 세다는 점 덕분에 한 번 정한 '성우'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고, 지금까지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견뎌 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고집'이 독이 되어 요령이 없고, 융통성이 없어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꼭 힘들게 하곤 했던 것이다.
이 때도 그런 고집스러운 면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솔직히 일반적인 아이돌이라면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행동을 취하기로 마음먹고, 그것을 관철 해 나간 것이다. 쉽게 말해, 인기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포기 한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하는 편이 옳은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인기가 늘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고, 묘한 고집 때문인지 인기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너무나 힘이 들었다. 그 대신 공연의 퀄리티를 높이는 것, 다시 말해 춤 연습을 더 하고, 노래 연습을 더 하는 것이라면 나로서도 가능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라도 '아이돌'이 아니라 'AKB48의 멤버로서 최소한 지켜야 할 의무'를 다 하고자 했다.
그리고 한 번 하기로 마음 먹은 이상, 철저하게 해 보자고 마음 먹었다. 제일 처음 생각이 닿은 것은, AKB48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극장 공연'의 퀄리티를, 할 수 있는 한 올리기 위해 노력 하는 것이었다.
3-2. 극장 공연을 파고들다.
AKB48은 콘서트, CD 발매, 영화 및 드라마 등의 출연, TV, 잡지 출연 등 여러 활동을 하는 그룹이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그 근본에는 '아키하바라 극장에서의 극장 공연'이 있다. 나만이 갖고 있는 생각이 아니다. 일단 AKB48에 들어 온 멤버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기본적'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AKB48의 멤버라면 누구라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다.
AKB48이라는 그룹에게는 처음 시작 될 때 부터 모든 멤버들이 꿈꾸는 목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언젠가 도쿄돔에서 콘서트를 열고싶다'는 것이었다. 이런 목표는 비단 멤버들 뿐 아니라 모든 스탭들의 목표이기도 하여, AKB48 전용극장 지배인인 토가사키상께서도 본인이 운영하는 AKB48의 공식 블로그를 'AKB48 도쿄 돔까지의 궤적'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또 하나의 목표가 있었다. AKB48의 관계자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꿈이 이루어 진 후의 목표'가 있는 것이다.
다름 아닌, '도쿄 돔 공연 다음날, 아키하바라 전용 극장에서 극장 공연을 하는 것' 이 바로 그 목표이다.
결국, AKB48의 최종적인 목표는 '도쿄돔 공연' 이 아니라, 그 다음 날 이어 질 '변함 없는 극장 공연'인 것이다. 언제나 기본을, 근본을 잊지 않는 아티스트로서 오랫동안 공연을 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 AKB48가 꿈꾸는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전용 극장에서 열리는 공연은 언제나 AKB48의 전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며, 기본인 동시에 활동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 '기본'을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그리고 잘 해 내는 멤버가 되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매우 작은 계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언제였던가 기억은 확실히 나지 않지만, 부상으로 인해 멤버가 공연을 못 나오게 되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멤버는 팀내에서 매우 비중이 있는 멤버로, 참가 유닛곡에서는 가장 중요한 파트를 담당하는 멤버였다. 그렇기에 그녀가 공연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것은 해당 유닛곡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해당 유닛곡을 빼는 것이 어떻냐는 비상 회의가 열렸던 것이다.
그 때, 우연히도 그 자리에 있었던 나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 유닛, 제가 대신 부르면 안 될까요?"하고 나섰던 것이다. 솔직히 나같은 경우는 내가 출연하지 않는 유닛곡이라고 해도, 재미로 곡이나 안무를 외우곤 했었기에 '가능 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자, 스탭분들께서 내게 "정말 할 수 있니? 그럼 한 번 해 봐."라고 말씀을 해 주셨고, 간단한 리허설이 열리게 되었다. 그 리허설에서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하나의 '오디션' 같았지만...) 어째저째 무난하게 공연을 해 낸 뒤, 공연에 대타로 나서게 되었지만... 역시 리허설과 본 공연은 많이 달랐다. 공연에서는 실수를 몇 차롄가 범했기에, 결과적으로 평가를 해 보자면 실패라고 하기도, 성공이라고 하기도 좀 애매하긴 했다.
하지만 그런 경험 자체는 내게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다른 멤버들의 안무나 노래라고 해도, 일단 외워두고 있으면 내가 공연에 나설 기회가 늘어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찬스라는 것은 언제나 내가 예상도 못 한 곳에 있어서, 그것을 내 것으로 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준비를 해 두어야 한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다.
3-3. 쓰기 쉬운 멤버로 자리잡다.
그런 것을 깨달은 나는, 혹여 나도 모르는 사이에 찾아 올 지도 모르는 기회를 붙잡기 위하여 스스로 춤과 노래를 갈고 닦기 시작했다. 그 뿐 아니라 다른 멤버들의 안무, 노래도 서서히 외워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런 노력들이 예상도 못 한 효과를 낳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병이나 부상 등으로 멤버들이 못 나오게 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내가 공연에 나설 기회가 늘어나기 시작 한 것이다.
솔직히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쑥스러운 이야기이긴 한데, 나름 춤이나 노래라면 남들 만큼은 하는 편이라고 자신한다. 그것은 아이돌로서 '인기'가 없기에 적어도 '실력'면에서까지 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그만큼 필사적으로 노력을 해 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방식이 아니라 노력을 통해 직접 '인기'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게 가장 빠르고 편한 방식이었겠지만, 그게 힘들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이미 나 스스로도 인정 해 버렸기에 더욱 더 공연에 몰두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다른 멤버들의 안무와 노래를 외워서, 한 번이라도 더 많은 공연에 나갈 수 있도록 항상 '준비'를 한 것이다.
그러자 그런 나의 노력을 인정 해 주기라도 한 듯 어느사이엔가 '대타를 뛰게 하려면 나카야에게 시켜라'라는 인식이 스탭들 사이에서 정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내가 '저 시켜주세요'라고 하지 않아도 스탭분들이 나를 먼저 찾아주시게 되었다. 그것도 처음에는 팀 B 대타만 하던 것이, 점점 다른 팀 멤버의 대타도 뛰게 되었던 것이다.
이게 참 아이러니한 것이, 이럴 때엔 또 내가 '비선발' 멤버'라는 점이 도움이 되엇다. 선발 멤버가 아니기에 다른 일이 없고, 그렇기에 연습 할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일이 없으니 갑자기 공연이 들어와도 대응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쓰기 쉬운 멤버'라고나 할까. 듣기에는 참으로 안 좋은 뉘앙스인데, 나 나름대로는 그런 상황에 대해 불만이 없었다. 아니, 어찌 말하자면 굉장히 뿌듯하기도 했다. 대타라고는 하지만, 공연에 나가면 관객분들께서 즐거워 해 주셨으니까...
물론, 내가 대타로 참가한 멤버를 좋아하는 팬분이시라면 나를 보고 실망하셨을 지도 모르지만, 그런 분들이 아니신 경우에는 '항상 하는 공연과는 다른' 멤버가 깜짝 출연 한 것이라며 나를 환영 해 주셨었다. 그리고, 그만큼 나에게 큰 박수와 환호를 보내 주셨던 것이다.
게다가 스탭분들께서도 나를 '편하게' 생각 해주셨고, 다른 멤버들에게 '자극'이 된다면서 많이 칭찬 해 주시기도 했다.
나 자신 역시도 대타를 통해 새로운 테크닉을 익히고, 다른 멤버들의 방식을 보고 배우면서 내 수준을 올리는 데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관객분들도, 멤버도, 스탭분들도, 심지어는 나 자신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었던 그런 '쓰기 쉬운 멤버'라는 위치에 대해 나는 만족하고 있었고, 보람도 느끼고 있었다.
3-4. 실패하더라도 부딪혀 보기.
그런 식으로 스탭분들께 '어떤 상황에서도 쓰기 쉬운' 멤버라는 평가를 받게 된 뒤, 자신감을 얻은 나는 그 외에 또 뭔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는지 추구하고, 시도 해 보게 되었다. 그 중 하나가 '안경을 벗는 것'이었다.
이전에도 설명 했던 바 있지만, 눈이 나쁘기에 당연하다는 듯 안경을 쓰고 있었고, 그런 면이 오히려 오디션 때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아 합격에 도움이 되었다는 점 역시 잘 알고 있었기에 나는 굳이 안경을 벗으려고 하지 않고 있었다. 말하자면 안경이야말로 바로 나의 개성이라고 해도 무방 한 수둔이었다. 그 뿐 아니라 솔직히 렌즈를 끼는 것이 무서웠던 것도 있어서 안경을 벗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때마침 '안경을 벗어보는 게 어때?'라고 권유 해 주신 분도 계셨기에 과감하게 안경을 벗어버리기로 결정을 한 것이었다.
글로 쓰니 꽤나 고심을 한 것 같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다. 애초에 어디까지나 눈이 나빠서 쓰고 있었던 것 뿐이지, 딱히 뭔가 노리는 게 있어서 쓰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기에 벗으려고 마음 먹자, 실행에 옮기는 것은 간단했다. 단지, 앞서 이야기 했듯이 렌즈 끼는 게 영 무서웠었기에 매 공연때마다 렌즈를 껴야한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하지만, 제 아무리 내가 고집이 세다고는 해도, 단순하게 나 편하자고 계속 안경을 쓰는 것은 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다. 인기를 얻기 위해서 노력하지 못 하는 성격이라고는 해도, 최소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보는 것이 프로로서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면도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까지의 고집 (+ 귀차니즘)을 버리고 안경을 벗어 던지기로 결심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 덕분에 나의 인기는!!!!!! ....그다지 변화가 없었다. 안경 하나로 기본 얼굴이 변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안경을 끼나 벗으나 항상 '비선발'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주변의 시선이 조금이나마 변하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나를 '고집센 아이'로 보고 어려워 하던 사람들이 나의 그 작은 변화를 보고 다가오게 된 것이다. 물론, 내가 멋대로 그렇게 착각 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내 주변에 쳐져있던 울타리가 조금이기는 하지만 사라 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이 작은 변화가 나름대로 효과가 있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안겨을 벗은 시기는 딱 내가 '자처해서 대타를 뛰던' 시기와 맞물려, 조금 더 말 걸기 편하고, 조금 더 대하기 편한 이미지로 바뀐 계기가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변화 없이 그대로 안경을 쓴 채였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나카야라는 아이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고집 센 아이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주변 사람들과 벽을 만들지 않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 또한 든다.
물론 내가 고집이 센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성격임에도불구하고 그다지 다른 사람들과 충돌하거나, 싸우거나 하지는 않는 편이었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팀'으로서 활동하는 AKB48이라는 그룹에, 의외로 잘 맞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사 모든 일에는 좋은 면 나쁜 면이 있기 마련... '남들과 충돌하지 않으려 하는' 나의 성격은 '아이돌'로서는 최악의 성격이라 부를 수 있는 성격이기도 했다. '개성이 드러나지 않고,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3-5. 개성이 없는 것도 개성.
AKB48의 멤버라면 누구라도 한 번 쯤은 해 본적이 있으리라 생각되는데, 나 역시도 때때로 인터넷에서 내 이름을 검색 해 보고는 한다. 그렇게 함으로하여 팬들의 평가를 듣기도 하고, 그런 평가들을 참고로 하여 나 자신의 성장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나같은 경우에는 남 모를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내 이름으로 검색을 해 보아도 나오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혹여 검색결과가 나와도 거의 대부분은 '나카야라는 아이는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네'라는 말 뿐... 다시 말해, 좋은 이야기도 나쁜 이야기도 없는 것이었다.
AKB48는 그 캐치프레이즈이기도 한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팬분들과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그룹이기도 하다. 그 중 하나이자 가장 큰 일 중 하나인 악수회가 열릴 때에는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와 주신 팬분들께 직접적으로 나 자신을 평가 해 달라고 이야기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의견을 물어도, 일부러 나를 찾아주시는 팬분들이 마음이 착하셔서인지 항상 좋은 말만 해 주시는 것이었다. 물론 나를 배려해서 그렇게 말씀 해 주신 것이기도 했지만, 나 스스로 생각 해 보아도 솔직히 뭔가 딱히 드러나는 '결점'이라고 할 만한게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아니, 결점이 없었다는 것이 내가 완벽하다던가 하는 것이 아니었다. 개성이 전혀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었기에 아이돌로서는 좋은 현상도 아니었고, 굳이 말하자면 '결점이 없는 것 자체가 결점'이었던 것이다.
다른 멤버들은 팬분들의 의견이나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그 주에서 좋은 의견들을 택해서 발전 해 갔지만, 나는 그런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없는 개성을 쥐어 짤 수도 없는 법, 일정부분 타협 할 수 밖에 없었다.
3-6. 글을 쓰다.
그런 나도 팬분들의 반응을 확인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다름아닌 인터넷에 글을 쓰는 것이었다.
AKB48의 멤버들에게있어 '글을 쓸 기회'라고 하면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번째로는 '무료로 볼 수 있는 개인 블로그', 그리고 두 번째는 유료로 서비스되는 '모바일 메일 서비스'이다.
이런 서비스들의 좋은 점은 바로 '반응이 즉각즉각 나오며, 바로바로 숫자로서 확인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블로그의 경우는 글의 조회수, 덧글 수 등을 보면 팬들의 반응이나 관심도를 바로 알 수 있다. 반면 모바일 메일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돈을 내면서까지' 보는 것이기때문에 조금 더 빡빡하다. 말하자면 모바일 메일의 구독 수는 바로 '매상'과도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 한 바 있듯이, 악수회에서나 게시판의 반응 등에서 참고로 할 만한 반응을 그다지 건지지 못 한 나는, 이런 매체들을 기회로 삼아 더더욱 열심히 하고자 마음먹었다. 나 스스로가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글을 쓰는 것 자체는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뛰어 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토끼와 거북이' 중 거북이 타입이기에, 매일매일 묵묵히, 그리고 꾸준하게 글을 쓰는 것 역시 잘 할 자신이 있었던 것도 한 이유였다.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글을 쓴다는 게, 나에게 유리하리라는 계산도 있었다. 왜냐하면 블로그가 되었건, 메일 매거진이 되었건 간에 내용이나 쓰는 사람의 인기보다는 아무래도 '매일 계속해서 써 나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인기멤버라고 해도 블로그 투고가 적고 띄엄띄엄하면 주목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반대로, 인기가 없는 멤버라 해도 묵묵하게 꾸준히 쓰면 주목도가 오르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사전에 '블로그나 모바일 메일을 매일매일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쓰도록' 지시를 받은 것도 있었기에, 나는 그것을 우직하게 관철 해 내고자 한 것이다.
그렇게 우직하게 매일매일 묵묵하게 글을 써 내려가다보니, 반응이 금세 나타났다. 원래부터 인기가 없는 '비선발' 멤버인터라 처음에는 그다지 주목도 받지 못하고, 인기도 나오지 않았지만, 그렇게 매일매일 써 내려가다보니 인기가 조금씩이나마 올라가기 시작 했던 것이다.
'인기가 없는' 나는 그런 현상에 힘을 얻기도 했고, 지금까지 헤매고 있던 문제들에 대해 팬들의 조언을 들을 수 있는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창구로서 활용 할 수도 있었기에 기뻤다. 그리고 그런 기쁨에서 나는 점점 더 블로그와 메일 매거진에 힘을 쏟게 되었다. 그렇게 하니, 반응은 점점 더 커 졌고, 이런 긍정적인 순환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내게 있어 매우 귀중한 경험이었던 것이다.
3-7. 질질 끌지 않을 것.
여기까지 읽어 주신 독자분들 중에서 조금이나마 눈치를 채신 분들도 계실 지 모르겠는데, 나는 원래 '질질 끌지 않는' 성격이다. 싫은 일이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금세 잊고는 하는 성격인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떻게 해야 인기를 얻을 수 있을 지 모르겠'을 경우에는 '뭐, 안 되는 건 별 수 없지'라고 금세 단념하고는 한다.
솔직히 스스로도 저런 '질질 끌지 않는'(=미련이 없는) 성격과 '고집이 센'면이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 지 신기하긴 한데, 태어 날 때 부터 저런 묘한 성격이었다. 몇 번인가 고쳐보려고 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바뀌지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비선발 아이돌'이라는 힘든 상황 하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실 하에서는 그런 '질질 끌지 않는' 성격이 매우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솔직히 말해 '집착이 없'고 '질질 끌지 않'는 나 역시 지금껏 몇 번이나 AKB를 그만두려고 마음을 먹었던 적이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한창 힘들 때엔 매일매일 몇 번 씩이나 '...내일은 정말로 그만 둬 버리자. 오늘은 어쩌다보니 그만 둔다는 말을 못 했지만 내일은 꼭 해야지'라고 다짐을 하며 집으로 돌아가곤 했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 한 숨 자고나면 전부 잊어버리고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레슨을 받으러 가곤 했었다. 신기하게도 자고나면 머릿속이 리셋되듯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질질 끌지 않고' '잘 잊는' 성격 덕분에 지금까지 꺾이지 않고 AKB48이라는 그룹에 속해서 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새로운 마음 가짐으로 힘을 낼 수가 있었던 것도 이런 성격 덕분이었다.
언젠가 스스로 곰곰히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나는 왜 '질질 끌지 않'고, '잘 잊어버리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그 결과, 항상 잠을 푹, 그리고 잘 자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솔직히 그 누구보다도 잠을 잘 잘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나는 잠을 잘 자는가? 항상 몸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귀차니스트이긴 하지만, 몸을 움직이는 것은 싫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에는 그다지 학교도 가지 않고 항상 집에서 애니메이션이나 보곤 하는 매일매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AKB48에 들어 와서 격한 춤 레슨을 받을 때에도 그렇게까지 많이 힘들고 하지 않을 정도로 기초체력이 있었다.
지금 생각 해 보면 아마도 어릴 적, 모리오카에 살던 때, 자유분방하게 들이나 산을 쏘다니며 체력을 붙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저 재미있게 노는 사이에 체력이 길러졌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AKB48에 들어 온 뒤 겪은 수 많은 시련들을 '푹 자는 것' 만으로도 극복 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3-8. 작은 성장.
한 때는 그만 둘 생각까지도 했었지만, 그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는 생존전략을 몸에 익히고, 연구 하면서 조금씩이지만 성장을 해 왔다. 그리고 동시에 AKB48이라는 '아이돌 그룹' 내에서 내가 있을 자리를 찾고, 지켜 내 왔던 것이다.
물론 그것을 뛰어넘어 '인기 멤버'가 된 것은 아니었기에, 나를 괴롭히고 고뇌케 하는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해결 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안경을 바꾸거나 하는 식으로 조금씩이나마 여러가지 시도를 하면서 '항상 응석만 부리는 아마추어'에서 조금씩이나마 자신의 책임을 다 하는 프로로 발전 해 왔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제 3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