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가나 케야키 스토리 21화
제 21화
'달아나고싶어'라 적었던 나날
멤버 내 오디션
2기생들이 오디션을 거쳐 그룹에 합류한지 얼마 되지 않은 9월 초 어느날.
'테스트 촬영을 한다'는 명목으로 2기생 멤버들이 소집되었다. 특이한 것은 멤버들을 두 팀, 다시 말해 지방에 살고 있는 멤버들과 도쿄에 살고 있는 멤버들로 나누어 소집하였던 점이다.
그리고 소집일, 지정된 장소에 모인 멤버들에게 날아든 소식은 멤버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 했던 것이었다.
'얼마 전에 히라가나 주연 드라마 소식 나온 건 알고 있지? 사실 그 드라마에 나오는 중요한 역할 중 한 자리가 아직 미정이거든. 지금부터 그 자리에 들어 갈 사람을 정하기 위해 오디션을 볼거야.'
그렇다. 8월 말 치바 마쿠하리멧세에서 열린 케야키자카46 사상 첫 전국투어 파이널 무대에서 히라가나케야키 주연 드라마, 'Re'mind' 제작 발표가 있었던 것이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것은 10월부터였고 대략적인 줄거리와 키 비주얼은 이미 공개 된 상황이었다.
2기생들 역시 관객석에 앉아 드라마 제작 발표를 보았지만,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자신들이 드라마에 출연할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제대로된 레슨조차 시작되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무대 위에 서 있는 선배 멤버들을 바라보는 그녀들은 말하자면 '팬과 다름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오디션'에 어찌 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는 2기생 멤버들. 하지만 스탭들은 아랑곳않고 멤버들에게 각자의 이름이 적힌 조끼와 오디션용 대본을 건네주었다.
소집을 받고 이 날 아침에 고향(야마구치현)에서 올라온 카와타 히나는 아이돌이 되어 처음으로 받은 '일'에 의욕이 가득했다. 비록 첫 '일'이 춤이나 노래가 아닌 연기, 그것도 9명 중 단 한명만을 뽑는 오디션이라는 것은 예상 못 했던 일이지만 '기왕 할 거면 꼭 합격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전력을 다했다.
하지만 실제로 심사위원들 앞에 서자 긴장을 한 탓인지 몇 번이나 대사를 더듬었다. 그런 일이 되풀이되다 보니 자신이 생각했던 자신의 모습과 실제 자신의 모습간의 괴리에 낙담하게 되어, 자신감을 잃은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져만 갔다.
'이거 어쩌지.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
카와타의 머릿속이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차 갈피를 못 잡고 허둥대던 와중에 오디션이 끝났다.
심사위원들은 카와타에게 '오디션에 대한 감상'을 요구하였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눈물을 참으며 고개를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TV나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하는 '연기' 라는 것이 실제로는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리고 불과 얼마 전까지 '해 낼수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무력감'은 카와다 뿐 아니라 이번 오디션을 겪은 모든 멤버들이 공통적으로 뼈저리게 느낀 바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연기'로 심사위원들을 깜짝 놀라게 한 멤버가 있었다. 바로 와타나베 미호였다.
그녀가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인 대본의 내용은 '내가 좋아하는 선배가 알고보니 내 친구에게 고백을 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된 상황'을 그린 것이었다. 이 상황을 멤버 둘이서 연기 해 내야 하는 것이었다.
멤버 대부분이 친구를 위해 희생하는 '착한 아이'를 연기한 가운데, 와타나베만은 감독의 조언에 따라 대본을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여 '악녀'를 연기했다. 다른 멤버들과 같은 대사를 받았음에도 해석 하나로 캐릭터를 정반대로 가져갔던 것이다.
그리고 와타나베의 연기를 뒤에서 보고 있던 니부 아카리는 그 순간 '아, 이번엔 얘가 합격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한다. 니부 뿐 아니라 와타나베의 상대역이었던 토미타 스즈카 역시 '나도 오디션에 붙고 싶긴 하지만, 상대가 미호면 별 수 없지'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오디션으로부터 이틀이 지난 어느 날, 와타나베는 드라마 촬영이 한창이던 스튜디오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이 오디션에 합격하게 되었다는 점과, 그 날부터 바로 촬영에 합류하게 되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내가 합격하다니, 뭔가 잘못된거야.'
'처음 뵙겠습니다. 와타나베 미호라고 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촬영 현장 문을 열고 들어선 와타나베는 처음 만나는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선배'들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긴장감에 심장이 터질듯했다.
2기생으로서 들어 온 와타나베가 처음으로 1기생 선배들을 만난 이 자리는 1기생 멤버들에게 있어서도 처음으로 '2기생이 이 드라마에 참가한다'는 것을 알게 된 자리이기도했다.
1기생들 역시 뜨거운 박수로 '후배'를 맞아 주기는 했지만 사실 처음 생긴 후배를, 그것도 혼자 찾아 온 후배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다른 멤버들이 어찌할 줄 모르고 있던 와중에 가장 먼저 행동을 취한 것은 카게야마 유카였다. 카게야마는 적극적으로 와타나베에게 다가 갔다. 우두커니 서 있던 와타나베를 이끌어 자기 옆자리에 앉히고 지금까지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 해 준 것도, 와타나베의 사인을 함께 만들어 준 것도 카게야마였다.
사실 카게야마는 이미 2기생들과 접점이 있었다. 2기생들이 오디션 때 걸쳤던 조끼에 2기생들의 이름을 적은 것이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
2기생들의 드라마 오디션이 결정된 날, 스태프가 조끼에 이름을 쓰고 있을 때 우연히 근처를 지나던 카게야마는 '저도 도울게요'라고 자원하여 일을 도우며 2기생들의 이름을 완벽하게 외웠다.
이 오디션 뿐 아니라 앞으로도 리허설 등이 있을 때 마다 그녀들이 착용하게 되는, 말하자면 '아이돌이 된 자만이 입을 수 있는 유니폼'과 같은 의미 깊은 조끼에 이름을 적어 넣은 것이 바로 카게야마라는 이야기이다.
생각 해 보면 카게야마는 추가 멤버 오디션 당시에도 자신의 메세지를 통해 'OO번(후보자)은 사실 정말 성실한 아이예요.', 'XX번은 이러이러한 특기가 있답니다.' 라는 식으로 후보자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런 카게야마가 '홀로 낯선 환경에 떨어진' 와타나베를 돕고, 1기생과 2기생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어쩌면 운명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와타나베 본인은 든든한 선배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고민을 끌어안고있었다. 바로 '연기 경험이 없다'는 점이 그녀의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감독으로부터 자주 '감정이 아직 덜 잡혔다'고 지적을 받기도 했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여러번 연기 워크숍에 참가하여 '자연스러운 감정을 표현하는 연기 방식'을 배운 1기생들과는 애초에 출발선 자체가 달랐던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와타나베가 맡은 역은 설정상 다른 멤버들의 그것과는 다른 '특별한' 역할이었기에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프로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어야 하는 일도 많았다.
한 번은 그녀가 그룹에 가입하기 전부터 TV에서 보았던 배우와 단둘이 연기를 해야 하게 된 적도 있었다. 그 날 역시 감독에게 여러 가지 사항을 지적받았고, 프로 배우 앞에서 이어지는 감독의 지적에 '난 정말 연기를 못 하는 한심한 인간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 날 촬영이 끝나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와타나베는 조용히 홀로 울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나 말고 다른 아이가 붙는 게 더 나았을 지도 몰라. 내가 합격한 건 뭔가가 잘못 된 거야.'
와타나베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메모 해 두는 버릇이 있다. 그리고 드라마 촬영 기간동안 그녀가 적은 메모에는 이런 말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힘들어', '도망가고싶어', '그만 둬 버릴까'
가슴 가득 희망을 품고 '아이돌 세계'에 한 발을 내딛은 순간,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그런 감정이었다.
'합격한 딸 앞에서 눈물을 보인 어머니'
와타나베 미호는 중학생 때 부터 농구를 해 왔다. 사실 그녀가 시합에 처음 나선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언니의 연습을 보러 갔을 때, '시합이 있으니 나와달라'는 권유를 받고 처음으로 시합에 나간 것이었다.
우연히 데뷔를 하긴 했지만, 어린 아이때부터 남자 아이들보다도 활발했던 데다가 운동신경도 좋았던 와타나베는 금세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않아 시합을 할 때마다 '쟤는 어디 팀 소속이야?'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성장했다.
이렇게까지 빠르게 성장한 데에는 물론 그녀의 타고난 소질도 있었겠지만 그에 못지않은 그녀만의 '강점'이 있었다.
중학생이 되어 정식으로 농구부에 들어 갔을 때의 일이다. 때마침 입부한 학생 중에 와타나베보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라이벌격 존재가 있었다. 그리고 와타나베는 그 '라이벌'에게 자신의 포지션이었던 포인트 가드 자리를 빼앗겼다. 그리고 그 때 와타나베는 '앞으로는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코트 구석구석까지 뛰어다녀야겠다'라고 마음먹었다.
주전자리를 빼앗긴 뒤로는 좀처럼 경기에 나서지도 못하는 나날이 이어졌지만 와타나베는 연습 때에도 다른 누구보다도 열심히 코트 구석구석을 누볐다. 그리고 그 결과 포인트가드 자리를 되 찾는데에 그치지 않고 주장 자리를 거머쥐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가짐은 그 뒤로도 변함없이 이어져, 고등학생이 된 후에는 주장으로서 팀을 사이타마현대회 8강으로 이끌기까지 했다. 앞서 말한 '와타나베의 강점'이란 바로 이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노력하는 재능' 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남들에게 말 못할 비밀이 있었다. 그 비밀은 다름아닌 '아이돌에 대한 동경'. 어릴 때 부터 헬로! 프로젝트나 AKB48을 좋아했던 그녀는 내심 '아이돌이 되고싶다'는 꿈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중학교 2학년 때 오디션 지원용지를 프린터로 뽑아 본 적도 있었다. 비록 '농구부 활동을 해야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해서 지원을 하지는 않았지만 솔직한 이유는 '자신에게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가 고 3 진로상담 때 선생님과 어머니 앞에서 '저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연예계로 나가고 싶어요.'라고 밝혔을 때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 지는 상상이 될 것이다.
물론 그녀의 그런 폭탄선언에 주변 어른들은 맹반대했다. 와타나베의 어머니는 딸에게 '난 네가 평범하게 대학을 가서, 평범한 인생을 살았으면 한다'고 설득하기도 하였다.
언제나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렴'이라고 말 해왔으면서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용기를 내서 말 하니 반대하는 어머니가 미워졌다. 동시에 '결국 나한테는 아무런 선택권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무력한 자신에게 화가 나 눈물이 쏟아졌다.
결국 이 날 진로상담에서는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 한 채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교문을 나선 순간 짜증과 무력감, 서러움 등 온갖 감정이 폭발하여 휴대전화를 힘껏 바닥에 패대기쳤다.
사실 어머니가 반대를 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란 다름아닌 와타나베가 고 2때 받았던 오디션, '노기자카46 3기생 오디션' 때의 기억이었다.
자신에게 자신이 없던 와타나베가, 항상 '농구부' 핑계를 대며 정작 중요한 순간에 도망쳤던 와타나베가 심기일전하여 '핑계'를 대지 않고 끝까지 해 내기로 '결심'했던 오디션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허무하게도 불합격. 와타나베는 그 때의 충격에서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하고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울기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딸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던 어머니는 자신의 딸이 두 번 다시 그런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반대 의사를 내비친 것이었다.
하지만 주변 어른들의 반대에도 와타나베의 의지는 굳건했다. 우선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와타나베는 PC를 켜서 문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우선 적은 것은 그녀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노기자카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자신의 목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그녀의 '궁극적인 목표' 역시 변해 있었던 것이다.
그 '목표'는 다름아닌 '배우'가 되는 것. 어릴 때 부터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했던 그녀였기에 어쩌면 당연한 변화였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목표를 세운 와타나베는 '연기에 대한 열정'을 어떻게 현실로 만들어 나갈 것인지를 서류에 적어나갔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모아 연기 학원에 들어간다', '우선 오디션을 여러 번 봐서 소속사에 들어간다' 등 자신이 얼마나 이 길에 진심이며, 어떤 계획으로 움직일 것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자료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때 때마침 열리고 있던 것이 바로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추가 멤버 모집' 오디션이었다. 비록 아이돌이 된다는 꿈은 접은 와타나베였지만 그럼에도 '오디션에 붙는다면 내 마음을 알아 주겠지'라는 마음에 응모를 결심했다.
와타나베가 오디션에 합격, '엄마가 많이 놀라겠지?'라 생각하며 집에 돌아 왔을 때, 그녀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딸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엄마는 네가 하고 싶은 일에 반대하는 게 아니야. 네가 어떤 길을 걷건 네 미래를 응원한단다.'
와타나베 모녀는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한동안 눈물을 흘렸다한다.
'동기에게조차 말 못할 고민'
그렇게 힘들게 들어 온 아이돌 세계인데, 시작부터 난관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꿈꾸었던 연기에서.
배우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매일같이 영화를 보고, 감상을 노트에 적고, 자신이 목표로 하는 배우를 분석하고, 자신이라면 어떻게 연기 했을 지까지 노트에 정리 할 정도로 갈구하던 '연기' 일이 어느 사이엔가 '도망가고 싶은' 대상이 되어 있던 것이다.
약 두 달에 걸친 촬영을 거쳐 드라마 'Re:mind'가 크랭크업 되었다. 마지막 촬영이 끝난 뒤, 1기생들은 입을 모아 '좀 더 이 촬영을 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와타나베는 자신의 차례에 이렇게 감상을 말했다.
'아무래도 2기생이 저 혼자다보니 부담감이 컸어요. 물론 기쁘기도 했지만…'
와타나베는 오열하면서도 말을 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이제 와 생각 해 보면 '연기를 해 본 적이 없으니 못 하는 게 당연하다'는 전제 하에 연기 워크숍에 참가하고, 다른 멤버들과 함께 촬영을 하며 조금씩 성장 해 나갈 수 있었던 1기생들과는 달리 '오디션'이라는 과정을 통해 '선발'된 와타나베는 '당연히 잘 해야만한다'는 부담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렇다고 '떨어진' 동기들에게 그런 마음을 상담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녀는 말 그대로 혼자서 '선택 받은 자의 책무'를 짊어 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 인사에서 그녀가 오열한 것은 어쩌면 지금껏 누구에게도 터놓지 못하고 억눌러만 왔던 감정들이 폭발 한 것이라 봐야 할 지도 모르겠다.
물론 와타나베 외의 2기생들 역시 머지않아 그런 '선택받은 자의 책무',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이라는 그룹에 뽑힌 자의 책무'를 뼈저리게 실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