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기자카46가 부모님에게 안긴 충격
집으로 돌아 갔을 때엔 이미 눈물도 더 나오지 않았다.
무표정하게 멍하니 TV를 보던 나가하마의 눈에 원래대로라면 자신이 받았어야 할 오디션의 결과를 알리는 뉴스가 비춰졌다.
활짝 웃으며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드는 합격자들의 모습.
그룹 이름은 당초 예정 되어 있었던 '토리이자카46'에서 '케야키자카46'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버지에게도 한 마디 상담 없이 독단적으로 네루를 데리고 돌아 온 어머니에게 네루의 언니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마지막까지 기회를 줬어야 하는 거 아냐? 위험해 보인다고 지레짐작해서 싹을 뽑아버리기 보다는 일단 하고 싶은대로 하게 해 보고 힘들어 할 때 도와주는 게 좋지 않았을까?"
네루의 모친 역시 아무 표정 없이 오디션 뉴스를 바라보는 네루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파왔다.
'어쩌면 내가 되돌릴 수 없는 잘못을 저질러 버린 것일지도 몰라.'
라는 생각이 들어 어머니의 마음도 혼란스러웠다.
가족들의 혼란해 하는 모습을 본 네루의 부친은 그 날 밤, 자신의 딸이 최종 심사를 받지 못 했던 바로 그 그룹, '케야키자카46'의 운영 스태프에게 전화를 했다.
"저희 아내가 딸을 데리고 돌아 와 버리기는 했습니다만, 저희가 이렇게 딸아이의 꿈을 막아버리는 것이 과연 잘 하는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애비로서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나 하는 생각에 이렇게 뻔뻔하게 연락을 드립니다."
솔직하게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하는 네루 부친의 말에는 듣는 이의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사실 이 때, 네루의 가족과 운영측 사이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신기한 인연이 양 측을 다시 이어주게 되었다.
최종심사 바로 다음날, 그리고 다다음날 이틀에 걸쳐 후쿠오카에서 노기자카46의 전국 투어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가하마 본인도 꽤나 전부터 티켓을 구입, 오매불망 기다려 온 콘서트였다.
운영 스태프의 결론은 바로 그 노기자카의 라이브에 나가하마의 부친, 모친을 초대하는 것이었다.
"일단 저희의 라이브를 한 번 봐 주세요. 라이브를 보시면 저희가 어떤 세계관을 만들고 있는 지 아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8월 23일 밤.
나가하마일가는 후쿠오카 국제센터에서 열린 노기자카46의 라이브 회장에 있었다.
그리고 나가하마 네루의 앞으로의 인생을 크게 바꾸어 버릴 무대를 목격하게 된다.
이 해 전국투어는 각 공연마다 특정 멤버에 대한 특별 VTR을 회장에 트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나가하마의 가족이 참가한 후쿠오카 공연에서는 아키모토 마나츠라고 하는 멤버와 그 아버지에 대한 VTR이 상영되었다.
아키모토 : "(노기자카에 합격했을 때) 엄마에게 전화를 했어요. 당연히 기뻐 해 줄 거라 생각했지만, 엄마의 반응은 '에…' 였지요."
아키모토는 중학교 입시를 통하여 중고 일관교인 진학교에 입학한 멤버로, 고등학생 때는 학생회장을 역임했을 정도로 우등생이었다. 그런 딸이 고 3때 갑자기 노기자카의 오디션을 받겠다고 나섰을 때, 아키모토의 부친은 맹반대를 했다. 그리고 부모의 반대로 인하여 아키모토는 오디션 합격 직후부터 활동을 쉬어야만 했다.
아키모토의 부친은 그 당시 본인이 느꼈던 갈등, 그리고 대학에 합격 한 뒤 노기자카에 복귀하여 지금 이렇게 TV안에서 자신만의 길을 열어가는 딸을 보며 느끼게 된 것에 대해 진심을 담아 적은 편지가 VTR과 함께 흘러 나왔다.
'지금껏 이야기 하지 못 했지만, 사실 지금은 활동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언제나 마나츠의 편입니다.'
라는 말로 끝맺어진 아키모토 부친의 편지를 보며 나가하마의 부친은 '내 마음과 통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다.
'아, 어느 부모건간에 다 이렇게 걱정하면서 딸을 연예계에 내보내는구나.'
나가하마의 모친 역시 콘서트를 보며 마음이 서서히 변해갔다.
지금껏 편견을 갖고 바라보았던 '아이돌'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화려한 것인지, 그리고 최선을 다 해 노력하는 멤버들의 모습이 얼마나 멋진지를 알게 된 것이다.
'이렇게 제대로 된 그룹이었구나. 우리 딸도 자신이 최선을 다 할 곳을 찾은 거구나. 그렇다면 부모로서 그 결정을 믿고 지지 해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위험하다고 과보호하기 보다는 우선 본인이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 지 이해 해 주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콘서트가 끝난 뒤, 나가하마의 양친은 운영 스테프에게 머리를 숙이며 부탁을 했다.
"이미 늦은 이야기입니다만, 부디 오디션 사퇴를 없던 일로 해 주실 수 없을까요."
하지만 최종심사를 받지도 않은 멤버를 그대로 그룹에 받아들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바로 이 순간, 나가하마 네루의 특이한 아이돌 인생이 시작 된 것이다.
나가하마 네루의 '동료'를 찾아주자
케야키자카 운영회에서는 곧바로 나가하마의 처우를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다시 한 번 최종심사 때와 같은 상황에서 오디션을 보게 하죠."
"나가하마를 그룹에 받아들일 지 말 지 팬들에게 판단 하도록 하자."
등등의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결정적이었던 것은 케야키자카의 종합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의 한 마디였다.
"부모님의 마음을 생각하면 나가하마 네루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 싶기는 한데, 이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멤버들에게 미안한 일이지. 그러니까 케야키자카46라는 그룹 내에 히라가나 표기인 별도 팀을 만드는 건 어떨까? 나가하마 네루는 그 팀의 첫 멤버로 받아들여, 그녀와 함께 활동을 할 '동료'를 뽑는 오디션을 따로 개최 하자고."
사실 케야키자카46은 당초 히라가나 표기인 케야키자카46이라는 이름으로 발표 할 예정이었다.
선배 그룹인 '노기자카46'가 그룹 이름을 지명에서 따 왔듯이 케야키자카 역시 도쿄 도내에 실존하는 '케야키자카(히라가나 표기)'에서 따 올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룹 이름을 성명학적으로 풀이 하러 갔을 때, 스태프가 실수로 점쟁이에게 한자로 표기한 '케야키자카'를 제시하였고, 점쟁이가 그 한자 표기 '케야키자카'가 엄청나게 좋은 운을 가진 이름이라 한 것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룹 이름이 한자 표기가 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 해,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명은 결국 '환상 속의 존재'로 남아버린 첫 기획을 재활용 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자 케야키와 다른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을 만듦으로 하여 나가하마에 대한 반감을 조금이나마 경감시키려는 의도였다.
아무리 운영측이 그녀에 대해 '합격 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했다 한들, 결국 그녀가 최종심사를 받지 않은 것은 사실. 그 점에 대해 그녀를 공격하는 팬들이 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를 '케야키자카의 후배'격인 포지션에 두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케야키자카의 일부분인 동시에 한자 케야키와는 다른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은 대체 어떻게 받아들이면 되는 것일까? 한자 케야키의 언더격인 존재? 하지만 지금껏 보지 못 한 완전히 새로운 형식의 무언가?
사실 이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의 위치에 대해서는 2018년 현재도 명확히 정리 되지 않았다. 운영 스태프들을 비롯하여 그 누구도 이 답을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의 역사는 다름 아닌 '소속 멤버들이 자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으며 걸어 온 여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말 잘 하고 낯가림 없는 아이'
오디션이 끝나고 약 한달여가 지난 9월 하순. 케야키자카의 매니저가 나가하마 네루를 만나기 위하여 나가사키로 향했다. 매니저의 곁에는 케야키자카의 칸무리방송인 '케야카케'의 디렉터의 모습이 보였다.
나가사키에서 나가하마와 만난 두 사람은 나가하마와 함께 그녀가 사는 마을을 걸으며 이 곳에서 어떤 생활을 해 왔는지, 그리고 최종심사날 당일에는 어떤 기분이었는 지 등을 물었다.
그리고 그 때 매니저가 느낀 감정은 '얘 잘 떠드네. 낯가림도 없고.' 였다고.
나가사키시내에서 태어난 나가하마는 3살 때부터 7살이 될 때까지 5년동안 고토열도의 한 섬에서 살았다.
그녀는 복잡한 해안선, 높낮이가 변화무쌍한 섬의 자연에서 자라난 그녀는 낚시를 해서 낚은 생선들을 뼈까지 먹고는, 나무를 타며 매일 매일을 보냈다.
맞벌이로 바쁜 부모님 대신 낮에는 이웃집 아주머니가 뒤치닥거리를 해 주는 등, 시골 특유의 '섬 사람은 모두 한 가족'이라는 분위기에서 자연스레 몸에 익혀 온 붙임성이야 말로 그녀의 성격을 이루는 근간이었다.
그녀의 운명을 바꾼 노기자카의 콘서트로부터 케야키자카에 합류하기까지 약 2개월동안은 그녀 특유의 붙임성 있는 성격을 숨기지 않고 지내 온 기간이기도 했다.
그녀가 도쿄로 상경 해 온 것은 10월. 그리고 거의 동시기에 케야키자카의 지방 출신 멤버들 역시 도쿄로 상경했다. 하지만 운영측은 일부러 나가하마의 존재를 다른 멤버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혹여 사무소에서 서로 마주치기라도 할 까 세심하게 신경을 썼고, 레슨 역시 나가하마 혼자 받도록 배려 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나가하마 본인은 새롭게 시작 될 도쿄에서의 새로운 생활에 기대를 감추지 못 하고 있었다.
오디션에 응모 했을 때만 해도 자신이 어째서 아이돌이 되고 싶은 지 잘 알지 못 했지만, 나중에 생각 해 보니 사실 탈출구가 '아이돌'이었건 아니건 상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남이 깔아 둔 레일 위를 걷기만 하는 인생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히라가나 케야키'로서 인생의 새로운 분기점을 맞이한 그녀는 혹독한 첫 '세례'를 받게 된다.
비명과 오열이 소용돌이치는 스튜디오
11월 어느 날.
'케야카케' 녹화가 이뤄지는 한 스튜디오에 나가하마가 나타났다.
그녀는 깜짝 등장을 위하여 다른 멤버들이 녹화 하고 있는 세트장 뒷편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만간 인생 처음으로 TV카메라 앞에 홀로 서게 된다고 생각하니 겁이 나고, 눈물이 났다.
스튜디오에 갑작스레 '긴급 발표! 케야키자카46 신멤버 가입'이라는 나레이션이 흘러나온 순간, 멤버들 사이에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9월에 나가사키에서 취재했던 내용이 담긴 VTR 소리를 들으며 나가하마는 오랜만에 고향 생각이 났다.
나가하마는 눈물을 닦고 세트 중심으로 걸어 가, 자기소개를 했다. 그녀의 '히라가나 케야키' 가입 소식과 함께 '히라가나 케야키 추가멤버 오디션 개최' 소식이 흘러나왔다.
사실 나가하마가 처음 등장한 '케야카케'에서는 케야키자카46 결성 후 첫 이벤트에서의 인기랭킹을 소개하고 있었다.
'CD데뷔를 위하여 모두 함께 힘을 합쳐'야 하는 시점에서 처음으로 '그룹 내 서열'이라는 것이 매겨진 데 대하여 멤버들이 충격을 받은 직후였던 것이다.
멤버들의 충격이 다 가시기도 전에 '추가 멤버 가입' 발표가 있고, '(나가하마는) 노기자카로 말하자면 언더 멤버'이며 '(이후 추가 오디션을 통해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이 들어 오면) 한자 케야키와 히라가나 케야키간에 멤버가 바뀔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발표가 이어 져, 눈물을 터뜨리는 멤버들도 있었다.
노기자카46의 언더 멤버란 싱글 타이틀 곡을 부르는 '선발' 멤버에 발탁되지 못 한 멤버들을 뜻한다.
노기자카는 매 싱글이 나올 때 마다 해당 멤버의 인기, 해당 멤버에 대한 기대치에 따라 선발과 언더를 나누는 형식이다.
다시 말 해, 모든 멤버들이 '언더'인 나가하마가 들어옴으로 하여 케야키자카에서도 결국 그룹 내 경쟁이 격화 될 것이라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런 어수선한 상황에서 첫 번째 촬영을 끝내고 두 번째 촬영이 시작되려는 찰나, '사건'이 터졌다.
나가하마의 옆에 앉아있던 멤버가 나가하마에게 '선언'을 했던 것이다.
"정말 미안한데, 난 너랑 친해지지 못 할 것 같다."
그룹에 들어 온 순간, 같은 그룹 멤버에게 엄청난 반감을 사게 된 것이었다.
멤버가 단 한명뿐인 아이돌 그룹 '히라가나 케야키'는 이렇게 파란만장한 가운데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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