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최전선에 있는 것은 언제나 ‘소녀’들이었다.
~’한국 음악’이라는 틀을 뛰어넘어 글로벌화 되어가는 ‘K-POP 시스템’~
1) 음악제작 시스템에 불어닥친 큰 변화
2010년을 전후하여 일본에서 일어난 K-POP붐.
그 중에서도 소녀시대나 KARA를 위시한 여성 그룹의 약진은 눈이 부실 정도로, 당시 일본의 틴에이저 중에서 그들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후, 한국에서 인기를 얻은 K-POP 걸그룹은 차례차례 일본에 상륙, 눈 깜빡할 사이에 큰 인기를 얻었다. 그로부터 10여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K-POP 걸그룹은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덕분일까, 그룹의 활동 방식 자체도 크게 변했을 뿐 아니라 활약하는 무대 자체가 ‘세계’로 넓어지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그런 ‘세계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K-POP 걸그룹’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작금의 걸그룹에 대하여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우선 소위 말하는 ‘걸그룹 르네상스’를 쌓아 올린 3대 기획사, 즉 SM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YG 엔터테인먼트에 대하여 설명을 해야 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세 기획사는 현재도 왕성하게 최고의 아이돌 그룹을 제작하고 있는 명문 기획사인 동시에, 과거 가장 각광을 받았던 걸 그룹을 배출 해 낸 기획사이며, 상기한 기획사에서 만들어 낸 아이돌 그룹들이 말 그대로 K-POP 이라는 장르를 선두지휘한 것은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현재 3대 기획사의 간판 그룹이라 할 수 있는 Red Velvet, TWICE, BLACKPINK을 보면 각각 자신들의 직속 선배라 할 수 있는 소녀시대, Wonder Girls, 2NE1가 남긴 유산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Red Velvet의 다양한 음악적 실험이나 TWICE의 캐치한 후렴구와 귀여운 안무, BLACKPINK의 ‘걸 크러시’ 컨셉트는 바로 직속 선배들의 그것들과 궤를 같이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요즘 걸 그룹들이 위대한 선배들의 유산을 그대로 답습하고만 있냐 하면 그런 것은 또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부분이 어떻게 변화 해 온 것일까?
가장 처음 꼽을 수 있는 ‘변화’는 바로 음악 제작 시스템이 큰 폭으로 발전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오랜 기간 여러 아이돌을 탄생시켜 오며 노하우와 기반을 쌓아 온 대형 기획사들은 더욱 더 퀄리티 높은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게 되었다. 예를 들어 SM은 해외의 거물 프로듀스들과 자주 협업을 한다. 물론 지금같은 시스템이 정착되기 이전에도 테디 라일리 같은 세계적인 프로듀서의 곡을 받아 소녀시대에게 주고는 했지만, 요즘은 그런 단발성 협업에 그치지 않고 정기적으로 ‘송 캠프’를 개최, 전 세계의 유명 프로듀서들을 한자리에 모아 새로운 프로젝트를 꾸미는 데 까지 발전했다.
실제로 Red Velvet의 리패키지 앨범인 ‘The Perfect Red Velvet’에는 브루노 마스나 저스틴 비버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들의 프로듀싱을 담당한 더 스테레오 타입스를 비롯하여 덴마크의 프로덕션 팀인 Deekay의 다니엘 ‘오비’ 클라인, H.O.T나 S.E.S등 SM의 1세대 아이돌 제작 당시부터 SM엔터테인먼트의 음악적인 축으로 활약 해 온 작곡가 유영진, 한국 R&B계의 실력파 아티스트인 JINBO와 SUMIN 등 수 많은 유명 프로듀서들이 참여한 바 있다. 이는 말 그대로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K-POP 그룹이기에 가능한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SM의 과감한 시도는 자사 아이돌 뿐 아니라 타사의 여러 아이돌들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남기고 있다.
2) 팬과 공유하는 ‘세계관’
기획사들의 아이돌 육성방식 변화는 음악 제작면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JYP의 경우 꽤나 파격적인 시도를 하였는데, 바로 ‘TF팀’ 제도의 도입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연예 사무소들은 회사 내에 마케팅 부서, 매니지먼트 부서, A&R(※레코드 회사에서 신인 아티스트 발굴, 레코드 기획, 제작, 관리 등을 담당하는 일) 부서 등 그 기능에 맞추어 여러 부서를 두는데, JYP는 그런 기능적인 부서 구분을 철폐하고 한 팀이 한 그룹을 전담해서 움직이는 태스크포스팀 제도를 도입하였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시도를 통해 만들어 진 결과물이 바로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TWICE’인 것이다.
JYP가 이런 대담한 시도를 하게 된 것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 ‘종래의 방식으로는 아티스트의 성장 속도에 맞추어 시의적절하게 필요한 서포트를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도는 보란듯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전속 팀이 TWICE의 활동에만 모든 역량을 집중하여 앨범 기획, 선곡, 뮤직비디오 촬영, 마케팅을 담당하는 구조가 완성됨으로 하여 아티스트와 스태프들간의 커뮤니케이션도 더욱 밀접하고 원활하게 되었으며 콘텐츠 제작 속도 역시 비약적으로 빨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시스템의 구축으로 인하여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면서도 내용의 일관성을 유지하거나 바쁜 스케줄 안에서도 콘텐츠의 질을 높게 유지하는 것도 가능 해 진 것이다.
물론 JYP이외의 기획사들도 각자 방법은 다를지언정 경쟁력 있는 활동을 위하여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가창력과 퍼포먼스 능력이 전체적으로 상향 평준화 된 현재의 걸그룹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명확한 컨셉트와 확고한 개성을 갖추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이다. 예전 K-POP그룹들이 한 앨범 안에 다양한 컨셉트와 스타일을 실험했던 것과는 달리 현대의 그룹들에게는 ‘하나의 일관된 아이덴티티’를 갖추고 그것을 중심 축으로 하여 활동 할 것이 요구된다. 그렇기에 그런 ‘아이덴티티’를 설정하는 것은 그룹을 런칭하기 전부터 고민해야 할 최우선과제라 할 수 있다. 물론 MAMAMOO처럼 ‘가창력’이라는 부분을 극단적으로 강화하여 성공한 예도 있기는 하지만, 모두가 그럴 수는 없는 노릇. 대다수의 그룹들은 팬들과 공유하는 유니크한 ‘세계관’을 설정하는 방향성을 택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이런 ‘세계관’에 가장 철저히 힘을 쓴 그룹이 바로 ‘이달의 소녀’라고 할 수 있다. 이달의 소녀는 완전체로 데뷔하기까지 약 2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12명의 멤버들을 한 명씩 공개하는 방식을 통해 독특한 세계관을 서서히 확장해 왔다.
이달의 소녀의 각 멤버에겐 자신을 상징하는 색, 과일, 동물이 주어졌으며, 멤버들을 4명씩 (※틀림) 나누어 우주를 구성하는 3개의 가상 공간에 속해있다는 설정으로 유닛을 구성,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결국 이 모든 멤버가 만나 한 공간에 모이기까지의 스토리를 짜기 위하여 막대한 자본과 시간을 들인 것이다.
이외에도 데뷔 당시부터 ‘학교 3부작’이라는 일관된 컨셉트 하에 활동을 한 ‘여자친구’ 역시 그런 세계관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한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여자친구는 고등학생을 연상케 하는 청순한 이미지의 초창기 3부작을 통해 인기를 얻은 뒤, ‘학교를 졸업하여 당당한 한 사람의 성인이 되었다’는 식으로 스토리를 전개시켜 팬들을 납득시키며 자연스럽게 이미지 변화를 꾀함과 동시에 그룹의 아이덴티티의 연속성 역시 확보 할 수 있었다. 이렇듯 세계관의 설정 및 전개는 단순히 ‘팬들이 그룹의 스토리를 공유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아이돌’이라는 하나의 콘텐츠를 ‘분석’하는 또 다른 즐거움을 제공해 주었다.
3) 전 세계의 팬들과 ‘동시대성’을 갖다
K-POP의 양적, 질적 성장과 선진적 시스템은 아시아 뿐 아니라 전 세계 팝 문화의 중심인 미국을 비롯한 유럽 등지에서도 주목받기에 이르렀다.
과거 한국에서 명실상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였던 Wonder Girls의 미국 진출을 예로 들어보면 그런 ‘시대의 변화’가 역력히 느껴지는데, Wonder Girls는 최전성기에 미국 진출을 위하여 국내 활동을 거의 희생시키다시피 하였다. 그 결과, ‘빌보드 핫 100차트’의 76위에 이름을 올리긴 하였으나, 결과적으로 희생해야 하는 것이 너무 컸기에 사실상 실패한 시도에 그쳤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예전에는 미국 진출을 위하여 현지의 유명 프로듀서를 섭외하고, 지금까지 보여 준 적 없는 새로운 컨셉트를 시도하며 어떻게든 ‘현지인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현지화를 꾀하는 측면이 컸다고 할 수 있는데, 최근 K-POP그룹의 미국 진출은 양상이 사뭇 다르다.
얼마 전 미국의 인터 스코프 레코즈와 계약을 맺은 BLACKPINK는 현지에서 단 한차례도 활동 한 적 없음에도 빌보드 핫 100차트 55위, 200차트 40위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올 4월, 그녀들이 처음으로 북미투어를 감행 한 것은 이미 그녀들의 이름이 어느 정도 알려 진 ‘뒤’였던 것이다. 이는 ‘우선 한국에서 인기를 얻고, 그 이후의 프로세스로서 해외 시장에 도전’하는 종래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한국에서 인기를 얻는 것 만으로도 이미 세계적으로 굳건하게 뿌리 내린 K-POP 팬들에게 어필 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K-POP 아이돌들이 생산해 낸 수많은 콘텐츠들이 동영상 플랫폼이나 SNS, 무료 방송 서비스등을 통해 전달됨으로 하여, 전 세계의 K-POP 팬들이 일종의 ‘동시대성’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K-POP’이 하나의 장르로 정착되는 가운데 그 팬베이스 역시 서브컬쳐의 일종으로서 확고하게 형성되어 왔으며,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서브 컬쳐’에서 벗어나 ‘메인 스트림’을 주도 할 정도의 규모로까지 성장 한 것이다.
또한, 해외의 K-POP 팬들은 단순히 콘텐츠 소비자에 머무르지 않고, ‘K-POP 랜덤 플레이 댄스 챌린지’ 등의 이벤트를 개최하거나 노래, 안무를 커버하여 동영상 사이트에 투고 하는 등 스스로 2차 콘텐츠를 제작, 커뮤니티와 공유하며 K-POP의 재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TWICE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들이 아직 일본에 데뷔 하기도 전 부터 ‘TT댄스’는 일본의 10대, 20대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 않았던가.
4) 국경의 한계를 초월한 ‘콘텐츠’
전 세계의 팬들을 매료한 K-POP 걸 그룹계에서는 엄청난 속도로 새로운 그룹이 생겨나고, 새로운 곡들이 발매된다. 그리고 각 그룹들은 다른 그룹들과 차별화 되는 개성을 어필하기 위하여 자신들만의 ‘아이덴티티’ 개발에 매진한다. 그렇기에 일견 비슷해 보이는 그룹들이라 해도 찬찬히 뜯어보면 다 다른 새성을 갖고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물론 그룹들을 크게 분류하면 ‘섹시’, ‘큐트’, ‘청순’ 등 몇 가지 키워드로 분류가 가능하다는 것 역시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그룹이 어필하는 디테일들은 각자 다르다. 당장 ‘청순파’ 그룹이라 해도 ‘졸업 전’의 여자친구는 청순함과 절도를 동시에 갖춘 느낌이지만 LOVELYZ는 그와 다른 정통파 노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Weki Meki가 ‘10대 특유의 자신만만한 발랄함’을 선보이는 데 반해 MOMOLAND는 ‘장난기 넘치는 동급생’ 같은 발랄함을 무기로 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뿐 아니다. 같은 그룹이라 해도 연차를 쌓아가며 새로운 매력을 선보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청순파 아이돌’로 활동 해 왔던 APINK가 2018년을 기점으로 ‘걸 크러시’적인 면모를 대폭 받아들여 이미지 체인지를 한 바 있지 않은가. 또한 ‘밝고 귀여운’ 종래의 아이돌상에서 벗어나, Dreamcatcher 처럼 하드한 기타 사운드가 돋보이는 록적인 면모를 내세우는 그룹도 나름의 지위를 확립하고 있다.
한국의 케이블 TV 방송국인 Mnet의 오디션 방송 ‘PRODUCE 101’을 통해 결성된 프로젝트 그룹 I.O.I의 멤버들 역시 그룹이 해산된 뒤로는 각자의 그룹으로 돌아가 이전과는 다른 매력을 뽐내고 있다. 예를 들어 김세정과 강미나는 구구단에서 ‘당당하고 자신 넘치는 모습’을 어필하고 있고, 정채연은 DIA에서 귀엽고 소녀스러운 감성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주결경과 임나영은 PRISTIN(※해당 기고문은 2019년 2월에 작성됨)에서 발랄한 면모를 선보이고 있으며 청하는 솔로 아티스트로서 카리스마 넘치는 댄스를 무기로 활동하는 등 I.O.I 활동때와는 다른 매력을 선보이고있다.
2016년에 시작된 Mnet의 ‘PRODUCE 101’시리즈는 ‘아이돌 제작 시스템’ 측면에서 보아도 큰 의미가 있는 방송이다. 여러 사무소에 소속되어 있는 아이돌 지망생들을 모아, 경쟁을 통해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멤버들을 하나의 프로젝트 그룹으로 데뷔시키고 활동하게 만든다는 기획 취지 자체는 매우 심플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압도적인 스케일 덕분에 수 많은 드라마를 낳으며 결과적으로 크게 성공하였다. 첫 시즌 합격자들로 결성된 I.O.I는 2016년 4월부터 2017년 1월에 걸친 ‘기간 한정 아이돌’로서 활동하며 그 특수성 덕분에 더 큰 지지를 받았다.
해당 방송은 남성그룹인 ‘Wanna One’을 배출한 시즌 2를 걸쳐, 시즌 3에서는 파격적인 실험에 나섰다. 이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Mnet이 지금의 K-POP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기획이었다.
일본의 AKB48 그룹과의 협업이 바로 그것이었다.
시즌 3는 방송 제목을 아예 PRODUCE 48으로 바꾸어 방송되었으며, 이 파격적인 실험은 한일 양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이목을 불러모으기에 충분했다.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12명의 멤버들은 IZ*ONE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하였으며, 데뷔와 동시에 2018년 최고의 신인 아이돌로서 군림하였다. 그녀들은 눈 깜빡할 사이에 수 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경쟁하는 K-POP 걸그룹계에서 3대 기획사의 쟁쟁한 그룹들을 위협할 정도의 위치까지 치고 올라왔다.
특히 IZ*ONE에는 이미 AKB48 그룹의 일원으로서 일본 연예계에서 활동을 한 멤버가 3명 포함되어 있기에 일본에서 활동을 하는 데에는 큰 이점을 안고있다. 이러한 PRODUCE48, 그리고 IZ*ONE의 성공은 어찌 보자면 ‘기존 시스템이나 기획의 범위를 뛰어넘어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하는’ K-POP 걸그룹 시장의 현재 모습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한 예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PRODUCE101’시리즈는 한국과 일본 뿐 아니라 중국 시장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있다. 해당 방송의 정식 판권작인 ‘창조101’이나 그 영향을 받아 제작된(※정확히는 표절) ‘우상연습생’ 등을 보면 중국에서의 PRODUCE101 시리즈의 영향력을 짐작 할 수 있다.
이런 사례들은 ‘K-POP이라는 장르가 한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아이돌 그룹이라는 단편적 개념을 벗어 나, 국경을 초월한 콘텐츠라는 것’을 알려주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