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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기자카46
노기자카46는 2011년 8월에 결성된 뒤, 이듬해 2월에 정식 데뷔하였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 기준으로 4기생들이 들어 와 활동을 하고 있지요.
‘AKB48의 공식 라이벌’이라는 설정으로 만들어 진 그룹이며, 프로듀서는 아키모토 야스시 선생님입니다. 이름에 들어 간 ‘노기자카’라는 지명은 최종 오디션 회장이기도 했던 소니 뮤직 본사 빌딩 (지금은 이전했습니다만)이 위치한 지명에서 유래했으며, ‘46’라는 숫자는 ‘AKB48보다 적은 숫자지만 지지 않는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숫자라고 합니다. 46라고 해서 실제 멤버의 수가 46명이라는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뉘앙스’를 딴 것 뿐인데 자주 ‘46이니 멤버가 46명이라는 얘기지?’라는 질문을 받곤 했습니다. 하도 그런 질문을 자주 듣다 보니 나중에는 설명하기 귀찮아져서 ‘뭐 대강 그런 셈이지’라고 넘기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멤버가 가입하고 기존 멤버가 졸업하고 하며 그 때 그 때 멤버 수 변동이 꽤 있는 편입니다.
노기자카46의 활동 분야는 매우 광범위합니다. 그 중 어느 분야에 중점을 두느냐는 멤버마다 다를 것이라 생각하기에 이번에는 저를 기준으로 설명 해 보고자 합니다.
그룹 활동의 가장 큰 축으로 들 수 있는 것은 음악 활동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년 싱글 혹은 앨범을 여러 장 제작하여 신곡을 중심으로 음악 방송에 출연하거나 음반 특전인 악수회, 이벤트 등에 참가하거나, 때로는 손이 마비 될 정도로 사인을 하거나 하지요. 물론 라이브도 정기적으로 소화합니다.
음반활동이나 시기에 관계없이 소화하는 일정이라 하면 대표적으로 굿즈의 일종인 생사진 촬영이나 휴대전화용 콘텐츠 및 소재 촬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그 외에도 노기자카46의 간판방송 촬영 등이 있습니다. 노기자카46의 간판 방송은 TV, 웹, 라디오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다수 존재합니다만, 결성 당시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는 것은 TV도쿄 계열 방송국에서 방송중인 ‘노기자카 공사중’을 들 수 있겠네요. 이 방송의 MC는 다름아닌 바나나맨분들이고, 저희는 바나나맨 두 분을 ‘공식 오빠’라고 부르곤 합니다.
상기한 그룹 일 외에도 개인 스케줄을 소화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멤버에 따라 패션 잡지의 레귤러 모델로 일을 하는 경우라던가 잡지, 신문 등에 칼럼을 쓰는 경우, TV/라디오 방송의 레귤러 패널로 매회 줄연하는 경우도 있지요. 그 외에도 그라비아 촬영, 광고 촬영, 영화 출연, 연극 등 무대 출연, 이벤트 등 수 많은 개인 스케줄을 소화하곤 합니다.
아이돌이라는 일, 정말로 눈코뜰 새 없이 바쁜 일입니다. 팬분들 입장에서는 잘 알기 힘든 곳에서도 묵묵히, 꾸준히 일을 하고 있지요. 물론 여기서 ‘나도 알고보면 바빴다고!’라는 식으로 자랑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아이돌들이 얼마나 열심히 최선을 다 하고 있는 지 이야기 해 두고 싶었습니다.
자 그럼 싱글 이야기로 돌아 와 보죠. 대부분의 경우 싱글을 발표하면 첫번째 트랙에 그 싱글 기간동안 활동을 할 ‘타이틀 곡’이 들어가고 나머지 곡들은 ‘커플링 곡’이 됩니다.
멤버 수가 많은 아이돌 그룹 같은 경우, 그 많은 멤버들 전원이 한 곡을 부르기는 힘든 법인지라 ‘선발 제도’를 채용하는 케이스가 많습니다. 선발 제도란 멤버들을 두 부류로 나누어 타이틀곡에 참가하는 멤버 수와 음악 방송에 나갈 멤버를 제한하는 제도입니다.
선발 제도에 의해 멤버들은 ‘선발 멤버’와 ‘언더 멤버’로 나뉘게 됩니다. 쉽게 말해 멤버들을 수평적으로(옆으로) 줄세우는 것이 아니라 상하관계를 매겨 수직적으로 줄 세우는 것이지요. 선발 멤버들은 타이틀곡을 부르고, 타이틀 곡을 들고 전국에 방송되는 음악 방송에 나가 인지도를 얻고 인기를 높이며 결과적으로 개인 스케줄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지지요.
물론 싱글을 새로 낼 때마다 선발 구성은 바뀝니다. 새로운 선발 발표는 아까 이야기 했던 간판 방송 ‘노기자카 공사중’ 녹화 때 방송되며, 전원 착석 한 상태에서 이름이 불린 멤버들은 선발 자리로 이동해서 서는 방식으로 이루어 집니다. 자연스레 선발과 언더간에 대립 구도가 연출되지요.
사실 냉정하게 보면 멤버들간에 사이가 안 좋아질 수 밖에 없는 제도처럼 보입니다만, 적어도 노기자카46에서 그런 갈등이 발생하지 않았던 것이야말로 노기자카46라는 그룹의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때때로 ‘아이돌은 같은 그룹이라 해도 서로 사이 않 좋지?’라는 질문을 받는데, 그 때마다 솔직히 내심 화가 나곤 해요.
지금까지 ‘선발 멤버에 선택을 받는다, 받지 못한다’는 표현을 여러 번 썼지요. 보기에 따라선 ‘두통이 아프다’(※)처럼 보여 이상하게 느낀 분들도 계실 지 모릅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선발 멤버 (들과 같은 팀)에 선택을 받는다, 받지 못한다’라는 얘기라고 보시면 될 것 같네요.
그리고 상기한 ‘선발 제도’는 제 아이돌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요소이기도 했습니다.
※ 애초에 ‘선발(選抜)’이라는 말 자체에 골라서(選) 뽑는다(抜)는 뜻이 있기에 선택(選択)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고를 ‘선(選)’자가 중복되기도 하고. 두통이라는 말 자체에 아플 통(痛)자가 들어 있는 데에서 온 관용구. 우리나라식으로 바꾸자면 ‘역전(駅前) 앞(前)에서 만나자’ 같은 표현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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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아이돌이 된 ‘나’
출발 지점은 ‘좌절’이었다.
오디션은 자기소개, 가창, 댄스 세 분야에 대해 이루어졌습니다. 사실 이전에도 오디션을 받은 적은 있었기에 그 날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잘 하느냐’가 아니라 분위기, 행동거지, 잠재력, 상황 대처능력 등등이라는 점은 알고 있었지요. 그렇다면 남은 것은 진지하게 오디션에 임하는 것 뿐이었어요.
최종 오디션에 남은 후보자들은 누구 하나 빠질 것 없이 매력적인 아이들 뿐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다양한 타입의 미녀들이 한데 모여 있다는 느낌이었지요.
여러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 친해져서 잡담을 하거나 사진을 찍거나 연락처를 교환하거나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아이돌 오디션 현장’이라 하면 먼저 떠오르는 ‘모두 라이벌이야’ 라는 분위기나 살절한 분위기는 전혀 없이 서로 ‘긴장되지?’ ‘함께 붙으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를 나누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가득했습니다.
어떻게 보자면 ‘노기자카46’ 1기생들의 분위기는 이 오디션 최종심사 회장에서 이미 완성 되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모두들 마음 속으로는 ‘지지 않을거야’ 라는 호승심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올라가기 위해 다른 이들을 끌어내리려 하기보다는 ‘모두 함께 올라가자’고 하는 그런 분위기 말이지요.
그런 가운데 저는 어땠느냐… ‘나르시시스트’라고 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신’에 가득 차 있기는 했습니다. 지금까지 ‘노력’ 해 왔고, 그 ‘노력’을 통해 난관을 헤쳐 왔던 경험이 있었으니까요. 그 뿐 아니라 스쿨에서 여러 차례 오디션을 경험 한 바 있었고, 그 때마다 높은 확률로 ‘선택을 받아 왔’기 때문에 ‘선택 받는 데에 익숙’ 해 져 있기도 했었거든요.
그렇기에 솔직히 이야기하면 이 오디션장 대기실의 화목한 분위기가 너무나도 신기했습니다. 같은 목적을 가진 동세대의 소녀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 재미있고 즐겁다는 것은 백분 이해를 해도, 당장 여기에 모인 이들 중 누군가는 ‘선택을 받지 못한다’ 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제가 비록 조금만 친해져도 금방 속마음을 이야기 할 정도로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긴 해도 ‘오디션 회장’에서는 이런 저 마저도 경계를 하기 마련입니다. 비록 표정은 사람 좋아보이는 표정으로 방긋방긋 웃고는 있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선 경계심을 풀지 않았습니다.
최종 심사결과 발표는 후보자들을 전원 강당에 모은 뒤, 합격자들이 단상으로 올라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름이 불려 스테이지 위로 올라가는 아이들이 귀엽고 예쁜 거야 말할 것도 없었지만 무대 위에 올라가지 못한 채 발표를 기다리는 아이들도 하나같이 귀엽고 예쁜 아이들 뿐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대체 이 오디션은 기준이 뭘까. 나같은 비전문가들은 느끼지 못 하는 무언가가 업계 전문가들 눈에는 보이는 걸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기준을 알 수 없는 오디션’에 저는 합격 했습니다. 노기자카46라는 그룹의 멤버가 된 것입니다.
이번 오디션은 스타팅 멤버 오디션, 즉 그룹의 첫 멤버를 뽑는 오디션이었기에 앞으로 ‘노기자카46’라는 그룹이 어떻게 성장 해 나갈지, 어떤 힘을 갖게 될 지 상상도 할 수 없었지요. AKB48 선배님들처럼 큰 그룹으로 성장 할 수 있을지, 아니면 세상에 이름을 알리지도 못 한 채 해산되어버릴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래도 기껏 멤버가 되었으니 할 수 있는 최대한 노력하자’라 생각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물론 마음 속 한 구석에서는 합격한 데 대한 기쁨도 있었습니다.
오디션 합격자들은 그대로 기자회견을 하게 되었습니다.
합격했다는 실감에 웃어보려, 기쁨에 젖어보려 한 바로 그 순간, 단상에 올라온 운영 스탭분께서 청천벽력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럼 바로 잠정 선발멤버 발표를 하겠습니다. 이름이 불린 멤버는 다시 한 번 단상위로 올라 와 주세요’
‘…?’
선발 멤버라니요. 그룹 결성 오디션과 동시에 결성 후의 포지션까지 정해진다는 얘기는 지금껏 들어 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제 이름은 불리지 않았습니다.
합격 발표 직후에 갑작스레 멤버들이 ‘선발’과 ‘언더’로 나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제가 ‘언더’로 분류되었다는 것이었지요.
‘응?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그럼 이젠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앞길이 험난한 건 틀림없어 보이네’
‘고등학교 입시까지 포기하고 이 그룹에 내 인생을 걸 가치가 있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합격 못 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성적도 괜찮고, 스쿨에선 노래도 잘 하는 편이라는 소리를 들어 왔었기에 저도 저 스스로를 ‘하면 되는 아이’라 생각 해 왔습니다. 비록 ‘춤’ 면에서는 저보다 잘 하는 아이들이 워낙 많아 같은 무대에 서서 싸울 생각을 못 하고 피해 왔지만 전부 다 잘 할수는 없는 법이라 생각하며, 그건 그것대로 문제 없다고 생각 해 왔습니다.
그런 제가 기껏 ‘이 그룹에서 열심히 해 보자’고 생각 한 순간 바로 ‘넌 언더야’라는 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자신도 있고 자부심도 있었던 제게 있어 처음 겪어보는 좌절에 제 마음은 바로 꺾여버리고 말았습니다. 인생 첫 ‘좌절’은 너무나도 큰 것이었어요. ‘겨우 그 정도로 좌절하다니 과장이 심하네’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지만, 제 인생에 있어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겪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분명 ‘오디션’의 목표인 ‘합격’은 이루어 냈음에도 마음 편히 기뻐 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분명 그룹의 ‘멤버’가 되었지만 동시에 ‘넌 패배자야’라는 낙인이 새겨 진 것 같았습니다. 어떤 감정에 마음을 맡겨야 할 지 감을 잡지 못 한 채 너덜너덜해 진 채로 호텔로 돌아 왔습니다.
히로시마로 돌아가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다들 ‘내 눈에는 히메쨩이 가장 귀엽던데 말이지.’라고 위로 해 주었습니다.
그야 나를 아는 사람들이니 당연한 얘기겠지요.
그렇다곤 해도 정말 큰 힘이 되었어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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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나카모토 히메카라고 합니다. 심리 카운슬러지요.
이전에는 ‘노기자카 46’라는 아이돌 그룹에서 6년 정도 활동 한 바 있습니다.
‘아이돌? 그런 거 잘 모르지만 왠지 좀 별로야’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이 책을 손에 들어 주신 것도 하나의 인연이겠지요.
당신이 청춘을 보내며 겪었던 일들 중에는 제가 아이돌을 하며 겪은 에피소드와 비슷한 일들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자신의 처지에 고민을 하셨거나, 큰 마음을 먹고 전혀 다른 분야로 길을 바꾸셨거나, 불현듯 ‘그 때 이랬으면 좋았을텐데’라고 과거에 대해 미련을 느껴 본 적이 있는 분이시가면 제가 이 책에 적은 에피소드들을 보시며 공감하는 부분이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잠시 시간을 내시어 찬찬히, 질리시면 멈춰가면서 조금씩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의 아이돌 시절을 알고 계시는 분이시라면 ‘오랜만에 뵙겠다’고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네요. 헤어질 때 ‘다시 보자’고 말씀을 드렸는데, 이런 형태로라도 그 때 그 약속을 지켜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어 기뻐 해 주실까요. 기대 해 주셨던 형태의 ‘재회’가 아니라면 죄송할 따름입니다만…
아이돌이라는 경험… 정말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이야기 해 두고 싶은 것은 제가 아이돌을 하며 겪었던 일들은 ‘즐거운 일’ 뿐만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우여곡절을 겪었고, 그렇기에 더더욱 그 경험이 농밀했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이돌이 ‘저희도 힘들어요’라고 고생담을 펼치는 것에 대해 좋지 못한 시선을 보내는 분들도 많이 계시다는 점, 알고 있습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보고 계시는 당신이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싫어하시는 분이라면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이 책을 닫아 주세요. 사실 저 역시 ‘아이돌’이라는 존재는 팬들에게 ‘꿈을 파는 존재’이길 바라는 사람이거든요.
이 책에는 제가 아이돌로 활동하며 겪은 다양한 경험들과 카운슬러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하고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수 년에 걸친 이야기들을 엮었습니다. 개중에는 제가 ‘아이돌이 아니’기에 쓸 수 있는 것들도 있지요.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카운슬러’인 저의 경험과 말들이 어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 책을 내게 된 것이지요.
물론 사람에 따라 감상도, 자극을 받는 부분도 크게 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미리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는 이 책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적었다는 점.
지금 저는 매우 충실한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매일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모색 해 나가는 매일을 보내고 있으니까요.
0장 ‘히로시마에서 보낸 평범한 중학생 시절’
노기자카46라는 그룹과 만나기까지
이 때만해도 막연히 제 인생과 ‘좌절’이라는 단어는 인연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노력’이라는 것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비록 특별한 재능은 없었지만 ‘그렇다면 그만큼 더 노력하면 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고, 그런 경험이 제게 자신을 주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무렵부터 집 근처에 있던 댄스교실을 다니기 시작, 4학년 때엔 액터즈 스쿨 히로시마에 입학하여 노래도 배우기 시작했지요.
학교 성적도 좋은 편이었습니다. 과외활동과 학업을 양립하여 바쁘긴 했지만 그만큼 보람찬 초, 중학교 시절을 보냈어요.
중학생이 되어 방송부에 들어 가 NHK배 전국 중학교 방송콘테스트에 참가, 라디오 부문 1위를 차지 한 적도 있습니다. 물론 방송 제작은 어디까지나 ‘팀플레이’, 제가 관여 된 부분은 극히 일부분이었지만요.
액터즈 스쿨 학생들 중에는 장래에 연예인이 되고자 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렇기에 1년에 2번 있는 발표회에는 도쿄, 오사카 등지에 위치한 연예 사무소의 신인 발굴 담당자분들이 직접 참가하시어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학생들에겐 스카우트의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지요.
기본적으로는 1주일에 1번, 3시간 동안 레슨을 받지만 희망자에 한해 옵션으로 보컬 트레이닝이나 댄스 레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옵션을 택하는 학생들이 많았지요. 그 외에도 희망자들은 평일 밤에 연기 수업이나 모델 워킹, 아나운서 레슨 등을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저 역시 열심히 레슨에 참가하는 학생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학업을 위하여 학원을 다니게 된 뒤로는 평일 저녁 레슨에는 참가 할 수 없게 되었지만 발표회 직전이면 주말 이틀은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하루 종일 스쿨에서 연습에 매진했지요. 이런 생활을 5년간, 노기자카에 가입하기 전까지 보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개인적으로는 연예계에 그렇게까지 큰 흥미가 있던 편은 아니었어요. 애초에 스쿨에 들어 간 것도 분위기를 타서 들어 간 것이었고, 그 뒤로 계속 레슨을 받았던 것 역시 그저 그렇게 레슨을 받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이었던 것 뿐, 기본적으로는 노래하고 춤 추는 것을 배우러 다닌다는 정도였지요.
그렇기에 당시에는 장래희망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항상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 지 망설였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가수가 되고 싶다’, ‘배우가 되고 싶다’라고 명확히 자신의 꿈을 이야기 하는 가운데 저는 ‘음… 애견 미용사가 되고싶어요’라고 이야기 하곤 했습니다. 사실 ‘애견 미용사’라는 것도 딱히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단순히 ‘미용을 받는 강아지들을 보는 것이 좋다’는 막연한 이유였지요.
물론 저 역시도 ‘하고 싶다’고 생각한 직업은 여럿 있었어요. 맹도견 훈련사라던가 아나운서, 하토버스(도시 관광버스) 가이드, 스튜디오 앨리스(전국적으로 체인점을 갖고 있는 사진관)의 어시스턴트 등등… 하지만 그 중 어느 것 하나 진지하게 ‘장래 희망’이라고 할 수는 없었고, 그저 적당히 괜찮은 고등학교에 들어 가, 괜찮은 대학을 가서 도쿄로 상경하여 즐겁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 정도였지요.
그러던 중 3때의 어느 여름날, 제게 ‘이 오디션 한 번 보지 그러니?’라는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그 오디션은 아이돌 그룹인 ‘노기자카 46의 스타팅 멤버 모집 오디션’ 이었지요. 결과가 최종적으로 나오는 것이 8월 말경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이전에도 오디션을 받은 적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딱히 열의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반강제적으로 회장에 끌려 가 면접을 받는 정도였죠. 소위 말하는 ‘주변 사람들이 멋대로 이력서를 보내서 오디션을 받는’ 케이스였지요. 꼭 붙고싶다는 동기부여가 없었기에 자기소개 때 ‘강아지 짖는 소리 흉내를 잘 내요. 멍멍. 이상입니다.’ 라는 식으로 대충 임했고, 당연히 퀄리티 역시 낮았습니다.
‘아이돌이라… 노래나 춤은 좋아하니까 그래도 좀 괜찮은 것 같긴 한데…’
그런 기분이었기에 노기자카의 오디션에는 그나마 좀 적극적으로 임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곤 해도 중 3 여름방학이라는 시기는 고등학교 입시에 있어 중요한 시기. 히로시마의 진학고를 목표로 하고 있었기에 제게 있어 이 오디션은 ‘여기서 떨어지면 고교 입시에 전념하자’는 하나의 전환점이라고도 할 수 있었습니다.
2011년 8월 21일. 최종 오디션을 통해 아이돌 그룹 ‘노기자카46’가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제 모습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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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라테상도 벌써 19살(성인)이구나.
히 : 네. 전혀 실감은 안 되지만요.
- 19살이 되어 '이것이 바뀌었다' 싶은 부분은 있어?
히 : 전혀요. (웃음) 바뀐 게 있는 지 모르겠는걸요. 애초에 마음이 예전 그대로 멈춰있는데다가, 같이 일하는 분들께선 '5살 아이'같다고 이야기 하시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제가 19살이 되었다는 실감이 전혀 안 나는데다가 딱히 와 닿지도 않아요. 뭔가 변했다는 생각도 안 들고…
결국 나이는 별 상관 없구나. 싶더라고요. 저 자신의 나이도 그렇지만 사실 주변 사람들의 나이도 크게 신경쓰는 편은 아닌데, 그게 긍정적으로 작용 할 때도 있고 부정적으로 작용 할 때도 있는것 같아요.
- 히라테상을 처음으로 인터뷰 했던 게 15살때였던 것 같은데, 그 때 히라테상은 '지금의 자신은 지금 이 순간에만 표현 할 수 있는 것이니 지금의 저를 봐 주셨으면 해요. 앞으로 16살, 17살, 18살이 되어버리면 '15살의 히라테 유리나'를 표현 할 수는 없을테니까요.'라고 말 했었어.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내심 '엄청난 소리를 하는 아이구나'라고 생각했거든.
그럼 지금, 19살이 된 히라테상은 자신의 이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히 : 지금도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어요. 오히려 '당연한 얘기 아닌가?' 싶을 정도. (웃음)
- 그럼 같은 얘기를 '19살이 된 히라테 유리나'식으로 표현하면 어떻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히 : 에… (웃음) 19살은 이번 1년밖에 없으니… 아, 그건 그렇고 진짜 대단하네요. 겨우 15살밖에 안 된 애가 '봐 주세요'라니… 자기자신에게 엄청 팬들이 많다는 식으로 이야기 하네요? 건방지게. (웃음)
- 하지만 내용 자체는 히라테상이 하고싶었던 바로 그 내용 아니야?
히 : 아하하하하. 지금은 과연 제가 '봐 주세요'라고 이야기 할만한 상대가 있긴 한건지 모르겠는걸요. 그러니까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이야기 하진 못 할 것 같은데요. (웃음)
- 아마 그 때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다'는 의식이 강했던 거겠지. 그건 그렇고, 지금은 저런 말을 못 할 것 같다는 얘기지?
히 : 음… 네. 그렇게 생각하면 그래도 이 때는 스스로에게 자신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웃음) 음… 솔직히 자신이 있어서 저런 말을 한 건지, 거꾸로 자신이 없어서 저런 식으로 이야기를 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음… 사실 앞으로 제가 어떤 사람이 될 지 저 자신도 잘 모르겠거든요. 앞으로 엄청 일을 할 지 아닐 지도 알 수 없고요. 음… 그러니까 '믿고 기다려주세요'라는 말은 못 할 것 같아요.
- 뭐 이래저래 해 보다 안 되면 어딘가로 훌쩍 떠나는 것도 괜찮겠고 말이야.
히 : 하하하하하.
- 이젠 자유로워졌잖아.
히 : 아, 그러고보니 19살이니 이제 운전면허도 딸 수 있겠네요. 하지만 다들 저보고 면허 따지 말라고 해요 '뭔가 무섭다'면서.
- 히라테상 본인은 면허 따고싶어?
히 : 따고싶어요. 드라이브 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차 안은 오롯이 혼자만의 공간이잖아요. 좋아하는 음악 틀어놓고 어딘가 훌쩍 떠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아, 이런 말 하면 주변 사람들이 면허따는 걸 더 말리겠네요. (웃음) 음… 19살이 되어 변한 것을 굳이 말 해 보자면 그거겠네요. '차만 있다면 훌쩍 떠날 수 있다'는 점? 물론 차가 없어도 떠나려면 떠날 수야 있겠지만요. (웃음)
- 슬슬 시간이 다 되어가는 것 같으니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게.
예전, 그룹에 소속되어 있을 땐 굉장히 많은 것을 떠안고 있었던 것 같거든? '그룹 전체가 하나되어 좋은 표현을 하고 싶다'라던지 '사람들이 케야키자카46라는 그룹에 기대하는 것에 부응해야만 해'라던지. 그래서일까, 인터뷰 때마다 항상 '케야키자카라는 그룹에게 은혜를 갚고싶다'는 말을 했던 것 같아.
히 : 그랬죠.
- 굉장히 민감한 질문일지도 모르겠는데, 그룹에 은혜를 갚고 싶다는 그 마음은 아직도 히라테상 안에 남아 있어? 이미 졸업했으니 그런 생각도 없어졌을 수도 있다 생각하는데.
히 :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실제로 스태프 분들께서도 종종 '케야키를 나와서 마음의 짐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았어?', '홀로서기 한 뒤로 조금은 편해졌지?' 라는 말씀들을 하세요.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저도 처음에는 '그룹에서 나왔으니 짊어진 것들도 조금은 줄어들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왠걸요. 오히려 역효과만 난 것 같아요.
- 역효과?
히 : 아까 나왔던 표현을 빌리자면 '짊어진 짐을 덜어내지 못했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도 짊어지고 있고.
- 덜어내지 못 하고 오히려 지금도 짊어지고 있다?
히 : 네. '짐이 조금은 줄었겠네', '지금까지 부담이 많았지?', '힘 내' 라고 말씀 해 주시는 경우가 많은데, 그 얘기를 들으면 사실 '음…'이라고 복잡한 마음이 돼요. 솔직히 그런 말에 '그러게요', '그 땐 정말 힘들었어요', '지금 많이 편해졌어요' 라는 식으로 공감 할 수가 없거든요.
- 히라테상 본인은 자신이 그룹에서 나간 뒤에도 그런 짐을 계속 짊어지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히 : 그런걸까요… 뭐 사실 그런 얘기를 해 봤자 이해 해 줄 사람은 얼마 없을테고, 부담이나 힘듦이라는 부분은 그 때나 지금이나 크게 차이가 없기도 하고요. 물론 그런 얘기를 들으며 '딱히 내려놓은 건 아닌데'라는 생각은 했지만요.
- 이렇게 말하면 오해를 살 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말해 히라테상이 '짐을 짊어진 것'은 딱히 케야키에 들어갔기 때문만은 아니라 생각해. 아까도 얘기했지만 애초에 '살아가는 데 서툴기' 때문이랄까. 지난 번에 진행한 2만자 인터뷰 때도 '저에겐 원래 아무 것도 없었어요'라고 이야기 했었잖아. 아무 것도 없었기에 케야키라는 그룹에 들어왔다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그룹에서 나왔다 해도 '그룹과 관계 없이 애초에 짊어지고 있던' 짐이 내려 갈 리가 없는 거지.
히 : 아. 그렇게 생각하면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 말 그대로 '짊어진 짐의 무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잖아. 뭐랄까. '내가 짊어진 짐의 무게는 케야키라는 그룹의 무게가 아니었구나. 어슴푸레 깨닫고는 있었지만 결국 이건 나라는 사람 자체의 무게구나' 라고 해야하나? 내 생각엔 히라테상이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다는 말이야.
히 : 음… 케야키 때는 또 케야키 나름대로 짊어진달까요. 정확히는 생각해야만 할 거리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코야나기상이 말씀 해 주신대로 결국은 이미 예전부터 짊어지고 있었던 것이 있었고, 그것이 점점 커졌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니, 어쩌면 커지지도 않고 그대로일지도 모르지만.
- 그렇지. 그것에 대한 히라테상의 자세가 '변화'일지 '포기'일지, '받아들임' 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종류의 새로운 감각이 히라테상 안에서 새롭게 싹텄다고 생각해. 앞으로 내가 몇 번이나 더 히라테상을 인터뷰 할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 때는 그 때 대로 새로운 '정답'을 찾아 갈 것이라 생각하고.
히 : 음… 어렵네요.
- 아, 그러고보니 9월 4일에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하잖아? 이 작품은 '케야키자카46의 히라테 유리나'를 볼 수 있는 마지막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
히 : 아, 그렇죠. 사실 다큐에 대해는 '언젠가 인터뷰 할 기회가 있다면 그에 대한 내 심정을 말해보고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게 바로 이 ROCK'IN JAPAN이 되어서 죄송하긴 한데… 이야기 해도 될까요?
- 물론.
히 :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저는 이 작품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아요. 물론 저 역시 케야키자카라는 그룹의 일원이었기에 그룹 활동의 일환으로 노래하거나, 이야기 하거나, 행동하는 모습이 나오긴 합니다만 말이죠.
그런 제 모습에 대해 여러 가지로 의견이 갈릴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저를 위해 필사적으로 서포트 해 주시는 매니저분들이나 아키모토상, 코디분들을 비롯하여 제가 신뢰하는 스태프분들은 많이 계시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분들을 비난하지는 말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그 분들이 비난 받으시는 것을 보는 것이 가장 상처가 됩니다.
음... 그러니까 말이죠. 그 영화에 실린 것, 실린 말들이 전부이고, 진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물론 다큐멘터리 한 편에 지난 5년간 있었던 모든 것을 담아내는 것은 힘든 일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거기 담긴 것이 전부라고 하기엔... 거기 담기지 않은 것들도 굉장히 많고...
얼마 전에 매니저님이랑 다큐에 대해 이야기 했어요. '언젠가 모든 것을 이야기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요.
- 그러게 말이야. 모든 것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히라테상은 언젠가 자신을 긍정할 수 있게 될 거라 생각해. 지금은 자세히 얘기 할 수 없겠지만.
히 :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이야기하지 않을거야’라고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 사실 ‘다큐멘터리’라 하면 어떤 작품이건간에 결국 ‘미화’되기 마련이라 생각하거든요. 아, 그리고 영화 제목에 ‘거짓과 진실’이라는 부분이 있는데요, 사실 이 영화 제목을 지은 게 아키모토상이 아니다보니 아키모토상 본인도 이 제목에 대해 의문이 남는다고 하셨어요. 저 역시도 지금까지 제가 해 온 ‘표현’들이 거짓이고 이 영화에 실린것만이 진실이라 받아들여진다면 슬플것 같아요. 이렇게 이야기 하면 ‘그런 말을 할 거면 입다물고 있지 말고 이야기 하던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러기엔 타이밍도 애매했고, 저 자신의 정신적인 문제도 있었고요. 그렇기에 ‘이야기 하’라는 분들께 죄송한 마음도 있습니다만, 한가지만 말씀드리자면 이 영화에 나온 것만이 진실이라 받아들이지는 않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잘 알겠어. 어느 사이엔가 벌써 3시간이나 지났네.
히 : 솔직히 말하자면 저를 다시 불러주실거라곤 생각도 안 했어요.
- 그게 무슨 말이야. (웃음)
히 : 아니 저는 이제 더 이상 CD를 내지도 않고, 지금 뭔가를 릴리스한 타이밍도 아니잖아요. 그렇기에 인터뷰 오퍼가 왔을 때 정말 깜짝 놀랐어요. 이렇게 다시 불러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오늘 긴장도 엄청 했지만, 음… 뭐랄까요. 음악에 대해 더 이야기 나누고 싶어졌어요! 하지만 이야기하다보면 진짜 별 얘기를 다 할 것도 같은데요. (웃음) 사실 그것도 불안요소 중 하나거든요.
- 자, 그럼 1년 후에 다시 볼까? (웃음)
히 : 음… 뭐랄까…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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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그런 생각을 갖고 매일매일을 살아간다는 건데, 뭔가 그런 것을 실감 한 적은 없었어?
히 : 음… 뭐라 해야 하지… 코로나 자숙기간이 끝나기 1주일 전 쯤인 것 같은데요. Mrs. GREEN APPLE의 'WanteD! WanteD!'라는 곡의 MV에 출연 해 보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들어 왔어요. 깜짝 놀라긴 했지만 예전부터 알고 있고, 좋아했던 곡이었거든요.
때마침 '코로나로 인해 졸업식이나 입학식을 하지 못 한다거나,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만나지 못한다거나, 고시엔에 나가지 못 하는 등, 기분이 축 처진 채 살아가는 아이들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출연하기로 하면서 '그렇게 기분이 축 처진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작품을 통해 조금이라도 기운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왕 하는 거 그런 마음가짐으로 임하겠다'고 이야기 했어요. Mrs. GREEN APPLE쪽 뿐 아니라 저희 팀에도 말이죠. 그렇게 만들어진 MV입니다만... 솔직히 말해서 어떠셨어요?
- 엄청 좋았어.
히 : 생각 해 보니 감상을 들은 적이 없구나 싶어서요. (웃음)
- 이렇게 말하면 좀 이상하게 들릴 지도 모르지만 ‘치사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는걸. 히라테상에게서 이만큼이나 에너지를 이끌어내다니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히 : 헤에~
-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히라테상의 퍼포먼스가 멋졌고, 순수하게 느껴졌다는 얘기야. 진심으로 히라테상은 일을 할 때 ‘이게 제 일인걸요’ 같은 마음으로 임하지 않는구나. 라고 느꼈어.
히 : 아하하하!
- ‘네... 네… 알겠어요. 이 옷 입고 이렇게 춤 추면 되죠?’ 라는 식이 아니라는 얘기야.
히 :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안무가 다 있었는데도 실제로 MV에 쓰인 건 제가 막 자유롭게 춤 춘 부분이었는걸요. (웃음)
- 그랬구나.
히 : 네. 정말 자유롭게 막 뛰어다니는 장면 같은 게 들어 가 있어서 내심 ‘어라? 나 분명 제대로 안무 소화 했을텐데?’라고 생각했어요. (웃음)
- 그 과정에서 느낀 건 없었을까?
히 : 음… 많은 분들께서… 특히 제가 이렇게 웃고 하니까 ‘케야키자카를 나오길 잘 했어’라던가 ‘케야키 나오고 나서야 웃는구나’라는 식으로 생각 하실 거라 보거든요. 하지만 사실은 그런 것 보다는 단순히 ‘그 곡이 그런 곡’이라서, ‘그 곡에서 우러나오는 표정이나 행동’이라 생각하기에 솔직히 ‘케야키를 나오고 말고는 크게 관계 없는데…’라는 생각도 들어요.
사실 지금까지 그 곡만큼 업템포의 곡을 해 본 적 자체가 거의 없었던데다가 외국 팝송같은 부분도 있는 곡이고, 약간 삐딱한 가사의 곡에 맞추어 퍼포먼스 해 본 적도 없었거든요. 뭐라 할까요… 제게 있어 전부 처음 겪는 경험들 뿐이라 신선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 모로 시도 해 볼 수 있었고, 다양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고, 자연스레 여러가지 모습이 우러났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정말 말 그대로 전부 ‘그 곡 덕분’이라 해야 할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 예전부터 Mrs. GREEN APPLE을 좋아하기도 했고, 가급적 라이브도 찾아 갔고, 라이브 영상 같은 것도 꾸준히 봤거든요. 사실 보컬인 못쿤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만-의 에너지 넘치는 목소리에 매력을 느꼈기에 저 역시 그런 목소리에 지지 않을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여드려야 하겠다는 마음도 갖고 있었고요. 서로가 상승효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렇기에 그 MV를 보신 분들께서 ‘MV를 보고 가사를 다시 한 번 읽었어’ 라던지 ‘MV를 보고 다시 한 번 찬찬히 곡을 들어 봤어’라고 말씀 해 주시는 것이 너무 기뻐요. 그 곡이 처음 나왔을 때 부터 즐겨 들었고, 저 자신도 힘들 때 그 곡을 듣고 힘을 받았거든요. 어느 정도냐면 가사를 읽으며 ‘어째서 이렇게 내 마음을 잘 알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듣는 사람들의 마음도 알 것 같고요.
실제로 못쿤도 ‘비웃듯이 삐딱하게 노래 한다’고 했었거든요. 그런 ‘삐딱함’을 숨기지 않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지금까지 해 오지 않았던 종류의 퍼포먼스였기에 불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지금까지 보여드린대로 퍼포먼스를 해서 ‘아 저건 히라테 유리나구나’라고 생각하시게 하는 건 싫었어요. 음… 단순히 ‘WanteD! WanteD!’라는 곡에 등장하는 한 여자아이’라고 받아들여 주시면 가장 좋겠네요.
곡조가 귀여운 톤으로 진행 될 때는 저도 귀여운 안무를 추기도 하고, 곡 진행에 맞추어 삐딱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다리 위에서 껑충 껑충 뛰는 장면도 있는데 그 모습을 보시고는 매니저님이 ‘얘, 바보니?’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어요. (웃음) 개인적으로 그 감상이 정말 좋았거든요. 보시는 분들께서 그 여자아이를 ‘바보’라고 생각 해 주신다면 좋겠어요. 애초에 이 곡의 주인공은 자기 앞에 펼쳐질 미래는 물론이고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는 ‘바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저 필사적으로 도망 갈 뿐이죠. 도망가는 대상이 ‘어른’들일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도망 가면서도 자신이 찾고 싶은 것은 확실히 알고 있는 아이라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이라면 ‘해 냈어!’라고 기뻐 할 정도의 일을, 이 아이는 ‘우와아아아아!! 해냈어!!!’ 정도로 기뻐하는거죠. (웃음) 기뻐서 방방 뛰면서, 표정도 엄청 기쁘게 웃고, 양 손을 힘껏 들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매니저님도 진심으로 ‘얘, 바보구나’라고 말씀 해 주신 것 같아요. (웃음) 그 말을 듣고 ‘아, 역시 그렇게 보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뻤어요.
- 그렇구나. 그거 대단한걸! 아, 그리고 주인공말인데 엄청 매력적이었어.
히 : 헤에~
- 분명 아까 말한대로 ‘바보’고, 제멋대로인 구석도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이 되려 매력적이었어. 그리고 그건 연기한 히라테상의 대단한 점이라고도 생각해. 물론 곡과 상성이 잘 맞은 것도 있을 지 모르지만, MV주인공의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모습을 표현 해 내고 대변할 수 있다는 것은 히라테상의 연기가 얼마나 높은 해상도를 갖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해.
히 : 어느 부분인지는 확실히 기억이 안 나는데요, 가사 중에 갑자기 전부 카타가나로 진행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거기랑 가사 중에 ‘그 아이는 바보라서 인생을 거침없이 살고있지’라는 부분이 있는데, 그 두 곳은 제대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더 이야기하자면 후렴구중에 ‘서두르지 않아도 돼? 조금씩 깨달아 가면 돼?’라는 부분이 있는데, 사실 노래만 들으면 ‘서두르지 않아도 돼. 조금씩 깨달아 가면 돼.’라고 들리거든요. 하지만 가사를 보면 물음표가 들어 가 있단 말이죠. 다시 말하자면 이 곡의 주인공은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사실 어떻게 해야 할 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는 얘기에요. 그런 미묘한 부분도 표현 해 내고 싶었어요.
이런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도 몇 번이나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좋은 의미로 서로가 서로를 믿고 맡길 수 있었던 것같아요. 둘이서 이런 얘기를 4시간 가까이 했거든요. 그 정도로 저를 생각 해 주신달까, 배려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한 마음 뿐이었어요. 긴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힘이 되는 말씀도 해 주셨고, 힌트가 될만한 이야기도 많이 해 주셨어요. ‘미세스’ 여러분께는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을만큼 감사할 따름입니다. 언젠가 또 함께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 그랬구나. 내가 보기에 히라테상은 맡은 일을 하나 하나 해 나감에 있어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게 있는 것 같거든? 물론 주어진 안무를 틀리지 않고 선보인다던가, 받은 노래를 완벽하게 마스터한다던가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우선시하는 것 말이야. 내가 느끼기에는 그것이 바로 ‘지금 맡은 일에 100%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전부 바치는 것’이라 생각하거든? 자신이 생각하기엔 어때?
히 : 말씀하신대로라고 생각해요. (웃음) 어떤 일이건, 어떤 작품이건간에 저 자신을 온전히 바친다고 할까요. 아니,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 하자면 성격상 뭐든 어중간한 것을 싫어하는지라 할 거면 확실히 하고 아니면 아예 안 한다는 구분이 확실한 것 같기도 하네요.
- 그것이 바로 히라테가 살아가는 방식이자, 규칙이자, 매너 같은 거라고도 할 수 있겠네.
히 : 하하하하하. 하지만 그렇게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면 상대방 뿐 아니라 저희 팀 여러분, 그리고 함께 작품을 만들어 가는 분들께 실례라고 생각해요. 물론 제 방식이 무조건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각자 맞는 방식이 따로 있다고는 생각해요. 그렇기에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편한 방법이 있다면 누구라도 좋으니 빨리 가르쳐주셨으면 좋겠네요. (웃음)
- 하지만 히라테상은 솔직히 그런 편한 길을 누가 알려줘도 그 길로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히 : 그런가요… 하긴 매사 적당적당한 사람들은 딱 보면 안다고 할까요… 알아채기가 쉽다고 할까요… 여하튼 ‘저렇게 살기는 싫어’라고 생각하곤 해요.
- 그럼 어떤 일에 ‘나 자신을 온전히 바치지 못 할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어?
히 : 있었죠. 제가 불안함을 느끼는 요소 중에 그것도 꽤 크거든요. 하고자하는 마음도 있고, 전하고 싶은 주제가 있다 해도 ‘그것을 표현함에 있어 내 정신과 육체가 버텨 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크고요.
- 정신과 육체가 버텨낸다니?
히 : 히 : 음… 뭐라고 할까요. WanteD! WanteD! 촬영은 사실 꽤 예전에 한 거거든요? 그리고 MV촬영이 끝나고 5일 뒤가 영화 촬영 재개일이었어요. 영화 촬영을 위해서는 거기에 맞춰서 머리 스타일도 바꿔야 했는데, 머리를 바꾼 바로 다음날이 촬영 재개일이었던데다가, 영화 내용 중 가장 중요한 신 중 하나를 찍어야 했지요. 그렇기에 'WanteD!' MV 촬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그렇게 중요한 촬영을 해야 한다는 것이 불안했어요. '이 영화에서 전하고 싶은 것은 있는데, 그게 뭔질 정확히 모르겠어'라며 매일 밤 매니저님께 전화로 하소연 했던 것이 기억나네요. (웃음)
- ‘잘 모르겠다’니, 뭐를 잘 모르겠다는 얘기야?
히 : 무엇보다도 '내가 이 역할을 잘 해 낼 수 있을 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작품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 할 수 있을까'라는 점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이렇게 잘 모르는 상황에서 어찌저찌 촬영이 무사히 끝난다고 한들, 결국 다른 분들께 폐만 끼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고민이랄까… '어쩌면 좋아'라는 생각이었지요.
- 그런 '불안'이나 '자신 없음'이란 거, 어떻게 보자면 '작품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는 히라테상의 룰이랄까 매너와 밀접하게 관계가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히 : 아! 분명 '할 바에는 어중간하게 하지 말고 제대로 메시지를 전달하자'라는 생각은 갖고 있으니까요… 음… 그렇게 생각하면 그 때도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 바로 그 며칠이 중요한거지. 'WanteD!'의 MV를 찍고 '페이블' 현장으로 돌아갔던 그 4~5일 정도가 히라테상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 같아. 히라테상 자신의 생각을 듣고 싶은게 있는데, 'WanteD!' 촬영부터 '페이블' 현장으로 돌아갈 때 까지 히라테상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몸 상태로 임했는지 이야기 해 줄 수 있어? 우선 'WanteD!' 촬영부터.
히 : 촬영 당일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걸요. (웃음) 정말로 음…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촬영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확실한 건 '이 MV를 통해 무언가 전하고 싶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다고 할 수 있을것 같네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촬영에 앞서서 둘이 길게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Zoom을 톨해 미세스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했어요. 그리고 촬영에 임할 때는 이 곡을 만든 사람, 그리고 이 곡을 부르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제대로 이어받아 표현해 내야한다고 생각했기에 부담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타협 할 생각은 없었어요. 저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누구 하나 적당히 타협 할 생각은 없었던 거죠. 그렇게 촬영에 임하다 보니 어떻게 촬영을 했고, 어떻게 영화 촬영 현장으로 되돌아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
- 정말로 '아무 것도' 기억을 못 하는 거구나.
히 : 촬영장 오프숏 사진 중에 제가 편하게 잠들어 있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 있거든요? 사실 잠든 기억도 없어서 그 사진을 보고는 '현장에 이런 침대가 있었나?'라며 깜짝 놀랐어요. (웃음) 아, 그리고 휴게소에서 라멘 먹는 사진을 보고 '아, 라멘 먹었었나보네'라고 생각 한 정도예요.
- 그렇구나. 기억을 못 하는구나.
히 : 네. 기억 안 나요. (웃음) 그러고 나서 어디 갔었지? ViVi 촬영이었나?
(매니저 : 그 다음날은 후시녹음 하러 갔지)
- 다음날 무슨 일을 했는지도 기억을 못 하는구나?
히 : 아, 녹음날은 그래도 좀 기억 나요. 'WanteD!'가 끝나자마자 이번엔 '삼각창'의 히우라 에리카가 되어야만 했기에, 무엇보다 '몰입 할 수 있을까'가 걱정이었어요. (웃음) 하지만 저희 팀 분들은 저에 대해서 정말 잘 알고 계시는지라, 제게 최대한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하여 '그 때 일은 그 때가 되면 생각하자 '라고 말씀을 해 주셨기에 그 말씀대로 따랐어요. 물론 소위 말하는 '어른들의 사정'도 있었으리라 생각하지만요.
- 그런 조언을 받으면 따르는구나?
히 : 네. 사실 영화 후시녹음은 처음이었어요. 그렇기에 뭘 어떻게 하면 좋을 지 몰랐거든요. 현장에 가 보니 노래 녹음하는 스튜디오를 넓게 만든 버전? 같은 방에 들어갔는데, ‘이제 여기서 뭘 어떻게 하는거지?’라고 생각했지요. 꽤나 고전하긴 했지만, 그래도 덕분에 디렉션 해 주시는 분과 친해질 수 있었어요. 그렇게 여러 일들을 경험하고, ‘삼각창’에 관여되신 모든 분들의 힘을 빌어서 어찌저찌 작품을 마무리 할 수 있었지요.
그리고 녹음이 끝나자마자 잡지 ViVi 촬영장으로 향했는데, 아무래도 그 일은 제가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옷'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일이다보니 '이렇게 에너지가 없는 상태에서 해 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 현장 역시 ViVi 스태프 여러분과 저희 팀 코디분, 매니저님 등 여러 분들의 힘을 빌어 어떻게든 일을 끝낼 수 있었지요.
그러고나서 '페이블' 준비를 위해 미용실로 갔던 것 같은데…
- 그렇게 정신없는 와중에 히라테상의 '마음'이나 '고민'은 어떤 상태였을까?
히 : 정확힌 모르겠지만 정말 '너덜너덜한 상태' 아니었을까요. (웃음) 그렇다고는 해도 싫어하는 일도 아니었고, 뭐니뭐니해도 '해내야만 한다'는 마음이 강했어요. 'ViVi' 표지 촬영때가 때마침 'WanteD!' MV가 공개 된 때이기도 했기에 촬영 자체만으로도 일종의 프로모션도 되었고 말이죠. 분명 저도 그런 점을 의식해서 '머리 스타일은 MV 촬영때와 같은 게 낫지 않을까요?' 같은 의견을 냈던 것으로 기억해요. 제가 '많은 사람들이 'WanteD!' MV를 봐 주었으면 좋겠어'라고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까지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움직이지 못 했을거라 생각하거든요. 아무리 바빠도 마음 한 구석에서 진심으로 '전달하고싶다'고 생각했기에 해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내가 왜 아까부터 그 '며칠간'에 집착하냐면 말이지, 음… 아까 히라테상이 '너덜너덜한 상태'였다고 했잖아? 그렇게 '너덜너덜한' 채로 달려나가는 것 자체가 히라테상에게 있어서 새로운 경험이 아니었을까 싶어서 말이야.
히 : 아뇨. 의외로 지금까지 항상 '너덜너덜한' 상태로 달려온 것 같은데요. (웃음)
- 음… 지금까지도 그랬다곤 하지만, 생각 해 보면 지금까지는 '너덜너덜한' 상태면 사람들 앞에 설 때도 숨김 없이 '너덜너덜한 채'로 나섰던것 같거든. 하지만 지금은 '너덜너덜한' 자신을 받아들이고 긍정하며 달려 왔다는 느낌이 들어.
히 : 아… 그건 그런 것 같아요. 저 스스로가 받아들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컸지요. 그렇기에 저 '자신'이 변했다기보다는 주변 '환경'이 변했다고 봐야 할 것 같네요. 이렇게 헤쳐나올 수 있던 건 전부 환경… 그러니까 주변에 있는 스탭분이라던가… 덕분인것 같아요.
- 히라테상 본인이 예전에 비해서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을 순순히 받아들이게 된 것 같기도 해.
히 : 음… 뭐라 해야하지… 예전에 비해 저를 이해 해 주는 사람이 늘어났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을것같아요.
- 그럼 그 사람들이 히라테상의 어떤 부분을 이해해주고, 긍정해준다고 생각해?
히 : 어려운 질문이네요. (웃음) 음… 어떤 부분이려나… 음… 저란 인간이 이렇게 되어먹은 인간이다보니 아무래도 첫인상을 안 좋게 보시거나, 무섭다고 생각하시거나 등등 좀 안 좋게 비치기 쉽거든요. 물론 저 스스로 적극적으로 말을 걸거나 하지 않는 점도 문제겠지만요. 뭐, 어쨌든 인상이야 어쨌건 '그래도 얘는 이 작품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려하는 점은 확실해'라고 생각해 주시는것 같아요. 저 스스로도 딱히 누군가와 사이가 좋아지거나 이야기를 하거나 하는 것 보다는 저의 행동이나 말을 보시고 '이 아이는 정말로 작품을 소중히 여기는구나'라고 생각 해 주시면 기쁠것같고요.
- 그렇구나.
히 : 저라는 사람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데 시간이 걸리는 편이에요. 물론 그 시간이란 게 사람마다 달라서 금방 열 수 있는 사람, 조금 더 시간이 걸리는 사람은 있지만요.하지만 한 번 마음을 열면 엄청 말 많아지기도 하거든요. 그렇게 생각하면 인간관계라는 게 참 힘드네요. 그리고 저란 사람이 참 상대하기 귀찮은 타입이구나… 라는 생각도 들어요. (웃음)
- 물론 주변 사람들이 히라테상을 이해하게 된 것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히라테상 자신도 여러모로 변했다고 생각한단말이지. 말하자면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를 알게되었달까.
히 : 아니에요. 지금은 그저 단순히 주변 사람들을 잘 만난 것 뿐이에요. 정말로 (웃음) 그 뿐이에요.
- 그렇구나. (웃음) '이 사람이 나를 이해 해 주는구나', '이 사람은 나를 알아주는구나' 라는 거, 구체적으로 어떤 느낌일까?
히 : 음 '이해한다'라고 해도 좋을 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보아 주는구나' 라고는 느껴요. (웃음)
-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 해 줄 수 있을까?
히 : 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냥 평범하게… 이렇게 말 하니 저 자신이 무슨 외계인이라도 된 것 같은데요… (웃음) 평범하게 말을 걸어주시거나, 이름을 불러 주시거나 대화를 해 주시는것만으로도 저는 기쁘고 감사하거든요.
- '아,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구나' 라고 느끼는거야?
히 : 음… 그냥 '아, 지금 내 이름을 불러줬어', '아, 지금 아무렇지 않게 대해줬어' 뭐 그런 느낌이에요. 그냥 말 걸어주는것만으로도 감사한걸요.
- 그렇구나. 지금 이렇게 이야기를 쭉 듣다보니 머릿속에서 대충 정리가 되는 것 같아. 히라테상은 항상 '불안하고 자신이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그건 히라테상 본인이 '자기긍정'을 잘 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아. 그런 '자기 자신을 긍정한다'는 것이야말로 히라테 유리나라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가 아닐까싶거든. 자, 이 의견에 대해 히라테상 본인은 어떻게 생각해?
히 : 저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사실 칭찬을 듣는 것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니기는 합니다만, 칭찬해 주시는 분이나, '그거 좋았어', '히라테의 이 부분이 좋았어'라는 식으로 말씀 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사실 그런 칭찬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있을까?' 라는 식으로 생각하곤 해요. 기껏 좋은 말씀을 해 주신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게돼요. 사실 아키모토상도 제 그런 점에 대해 화 내신 적이 있거든요. 그것도 꽤 최근... 올 해 들어서요. 그 때도 '말씀하신대로예요. 죄송합니다'라고 사과를 드렸음에도 이런 버릇이 잘 고쳐지지 않네요. (웃음)
- 본인이 생각하기엔 이유가 뭐같아?
히 : 음… 제 자신의 '표현'이 아직 미숙하기 때문인것 같아요. 언제나 '정말 좋은 퍼포먼스를 하고싶다'는 마음은 갖고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저 스스로가 만족하는 결과가 안나오더라고요.
- 음… 그런데말이지 정말로 자신의 퍼포먼스에 '납득' 해 버리면 그 이상 퍼포먼스를 해 나갈 수 없을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히 : 아… 그건 그렇네요. 생각 해 보니 크리에이터는 자신의 결과물을 납득해버리면 끝이네요. 그래서인지 자주 '다음에 더 열심히 하면 돼'라던가 '100점이란 건 없어'라는 말을 듣곤 하는것같아요. 물론 그렇다고해서 언젠간 스스로도 납득하할만한 결과물을 선보이고 싶다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지만요.
-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결과물에 대해 '나는 정말 열심히 했어.' '이만큼 노력했으면 결과는 어찌되건 상관없어'라는 식으로 자신과 자신이 낸 결과물을 긍정하곤하거든.
히 : 아… 그런가요. 저는 그런 생각 해 본 적 없는것같아요. (웃음) 어떻게 생각하면 그런 결론이 나는지 이해가 안 되는데요.
-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해가 안 된다'기보다는 '이해하고싶지 않다' 쪽이 아닐까. 히라테상은.
히 : 그러게요. 그런 방식을 알아버리면 매사가 재미없어질것 같기도 하고. 물론 알아버리면 또 그 나름대로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을것 같은 느낌도 들지만요. 저는 한가지를 두고 몇 번이나 반성하는 타입이지만, 만약 그런 것들을 마음에 담아두지않고 금방 다음 과제로 시선을 옮기는 사람이 있다면… 아니, 분명 있겠지만요… 그런 사람들은 바로바로 '그럼 다음번엔 이런 걸 해 보자'라는 식으로 새로운 비전이 보일지도 모르겠네요.
- 그런 식으로 '미래에 대한 비전을 시야에 넣고 움직이는' 자신의 모습에 흥미가 생겼어? (웃음)
히 : 아뇨. 사실 그렇게까지 흥미는 안 생겨요. (웃음) 그저 예전부터 감사하게도 여러분들과 협업을 한다던가, 일을 한다던가 하는 기회가 많았기에, 연예인분들 뿐 아니라 스태프분들까지 정말 다양한 분들을 봐 오면서 느낀 점이라 해야 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한 작품의 감독님이 세세한 실수를 계속 마음에 담아두고 있으면 안되잖아요. 그런 분들은 조금 더 큰 관점에서 '다음! 다음!'식으로 이끌어 나가는 역할을 맡고 계시니까요.
물론 개중에는 한장면 한장면 애정을 쏟아가며 천천히 연출하고 싶어하는 감독님도 계실지모르지요. 하지만 제반 사정, 예를 들어 일몰시간 같은 사정으로 인해 그렇게 하지 못 하는 분들도 계실거고, 일정 등을 생각하며 조금더 거시적으로 현장을 이끌어야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실거라 생각하거든요
- 결국 감독이란 그 현장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니까. 그렇다면 히라테상 본인은 아직 그런 '책임'을 지기는 힘들까?
히 : 음… 아직 그런것같아요.
- 사실 이 얘기는 요컨대 아까 내가 '자기긍정을 못한다'는 식으로 얘기했잖아? 하지만 그건 히라테상을 공격하려는게 아니고, 그런 점이 히라테상의 '개성'중 하나라는 점을 얘기하고싶었어. 다만, 그런 개성을 얻는대신 세상살이가 많이 힘들어질지는 모르지만.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히라테상이 그런 '힘듦'을 일정부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단 말이야. 아까부터 내가 '변했다'고 하는 건 그런 뜻이었어.
히 : 사실 아주 예전부터 아키모토 선생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 있는데요, '고독해져라', '고독에 익숙해져라'라고. 예전부터 그런 말을 들으며 지내왔으니 어쩔수 없나 싶기도 하고요.
- 하지만 지금은 그 '고독해져라', '고독에 익숙해져라'라는 말이 예전과는 좀 다르게 느껴지지않아?
히 : 고독이요? 음… (웃음)
- '어차피 너는 그런 사람이잖아' 뭐 그런 느낌?
히 : 아하하하! 뭐, 분명 예전부터 '내겐 누구누구가 있어' 라던가 '나를 위해 누구누구가 있어줄거야', '그 사람만 있다면 괜찮아' 같은 생각 해 본 적은 없네요. 생각 해 보면 어느 사이엔가 고독해져 있었고요. (웃음) 뭐, 때때로 '언제부터 이렇게 된걸까'라는 생각을 하기는 하지만요.
- 지금 히라테상이 이야기한 '고독'은 모두들 흔히 겪는 종류의 고독이라 생각해. '왜 내 마음을 몰라줄까' 같은 생각도 그렇고. 당장 나만해도 그런 생각 많이 하는걸. 하지만 히라테상이 느끼는 고독은 조금 더 본질적인 면이 있는것 같단 말이지.
히 : 에… 잘 모르겠는데요. (웃음) 방금 코야나기상 말씀대로 인간은 모두 고독한 존재라 생각해요. 진심으로. 그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더 본질적인 고독'이란 건 뭘까요? (웃음)
- 굳이 말하자면 '나 자신조차 스스로를 지켜주지 않는다'라 해야하나. 어쩌면 '자기애'가 없는 것 같다고도 할 수 있을것 같아.
히 : '자기애'요?
- 응.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이 없는 것 같다는 얘기지.
히 : 자신을 사랑한다라… (웃음) 아, 그러고보니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분명 '자신을 사랑하라'였던가. 에… 그거,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만 한다는 말인가요?
- 음…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는 얘기지. 뭐, 히라테상은 그런 식으로 편해지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웃음)
히 : 아하하하하하하!
-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 한 구석에선 '고독해하는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법이거든. 아까 말했던 '왜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줄까?'라는 말은 결국 다시 말하자면 '이 세상에서 내 마음을 아는 건 나 뿐이야'라고 포기해버리는 말이기도 하잖아. 하지만 히라테상은 그렇게 편한 길로 가지 않고 '남들이 내 마음을 몰라주는건 당연해. 당장 나도 내 마음을 모르는걸'이라 이야기하는 타입이라는 거야.
히 : 아, 그렇게 보면 분명 '이해받기를 포기한' 부분이 있을지도 몰라요. 저. (웃음) '결국 모든 사람들이 알아주는 건 아닌걸'라며 셔터를 굳게 잠그고 있다고 할까요.
- 말은 그렇게 하지만 결국 히라테상은 노력을 하잖아. 자신에게 요구되는 것에 부응하기 위해.
히 : 음… 이야기가 조금 주제에서 벗어날지도 모르겠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저라는 사람이 뭔가를 표현하는 데 서툰 인간이라 생각하거든요. 당장 말만해도 잘 못하는 편이고. 눈 앞에 계신 코야나기상이라던가 제가 신뢰하는 일부의 사람들 앞에서야 곧잘 말을 하지만, 사실 그 외의 세상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게 사실이잖아요. 알 수도 없고. 그렇기때문에 더더욱 제가 나온 작품을 통해 저의 메시지를 느껴주셨으면하는 마음이 강한것 같아요. 저는 블로그나 SNS를 잘 쓰는 타입도 아니기에, 역시 아무래도 '작품'을 통해 제가 하고싶은 말을 전하고 싶어요. 너무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말로 할 필요는 없다고, 작품을 보시는 분들께서 제가 보내는 메시지를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여주시면 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요.
- 만화 '붓타'(※부처의 일생을 그린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에 이런 이야기가 나와. 한 노인이 굶주려서 쓰러지는데 그 모습을 본 동물들이 각자 먹을거리를 들고 노인 곁에 모여들거든? 예를 들어 여우는 나무 열매를 갖고오고, 곰은 물고기를 잡아오는 식으로 말이야. 하지만 토끼는 아무 것도 들고 오지 않았어. 그 토끼는 먹을거리대신 장작을 모아 불을 피운다음에 스스로 그 불 속으로 뛰어들지. '내 몸을 먹어달라'며.
히 : 에…
- 나는 히라테상에게서 그 '토끼'의 모습이 겹쳐보일 때가 있어.
히 : 아하하하하!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런 것도 같은데요. (웃음) 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각자 생각하는 것이 다르니 별 수 없다'고도 생각해요. 그렇기에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일단 '작품을 보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분명 있지만요.
- 자, 그럼 질문을 바꿔서 '19살이 된 히라테 유리나에게 있어 '표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히 : …음…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다른 이들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존재여야만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기에 제게 '표현'은 해야만 하는 것… 이랄까요.
- '자기만족'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다른 이들에게 전해야 하는 것'이 있기에 '표현'을 한다는 얘기네.
히 : 네.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잔뜩 있어요. 잔뜩 있긴 한데… 쉽지 않다고 해야 할까요… 사실 제가 잘 하는 분야는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너무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 편이, 어쩌면 이렇게 표현하고 싶어하는 제 마음마저도 드러내지 않는 편이 더 나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하고, 그런 이유로 한 발 물러서서 관조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저 자신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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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테 유리나
19세, 지금 느끼는 것들
19살이 된 뒤 처음으로 임한 3시간에 걸친 롱 인터뷰
‘연기한다’는 것, 음악에 대한 생각, ‘표현’, 혼자가 된 지금 그녀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그리고 이젠 말할 수 있는 이야기까지…
2019년 4월 30일, 헤이세이 시대 마지막 날에 발표 된 본지의 표지를 장식한 지 약 1년 4개월만에 그녀와 마주했다. 지난 1년 개월간 히라테는 5년간 몸담아 온 케야키자카46에서 탈퇴,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노도와도 같았던 1년간의 ‘18세’ 시기를 끝내고 지난 6월 25일, 19살이 되었다.
본지가 지금까지 그녀를 인터뷰 한 빈도를 생각 해 보면 거의 1년에 한 번 꼴이었다. 아마도 본지와 그녀의 페이스가 그 정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인터뷰 할 때는 언제나 우리(나, 스태프, 그리고 히라테 본인)는 길게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리고선 지금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그녀의 머릿속을 바삐 돌아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당장은 정리가 되지 않아도 다른 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레 정리가 되는 어떤 ‘생각의 씨앗’ 같은 것은 없는가, 새롭게 깨닫게 된 것은 없는가, 혹은 나이를 먹고 새로이 1년을 보내며 그녀 안에서 생긴 ‘변화’는 없는가 등등… 수 많은 이야기의 파편들을 모으고 흐름에 맞추어 배열하고 공유하며 ‘언제 어디서 인터뷰를 하는 것이 좋을지’, ‘어떤 내용을 글로 옮겨야 할 지’, ‘어떤 타이밍에 잡지에 실어야 할 지’ 등을 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인터뷰는 히라테가 ‘19살이 된 뒤 처음으로 임하는 인터뷰’라는 테마로 진행하는 것은 어떨까라는 제의가 왔을 때, 나 역시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히라테라는 사람 안에서 한 사이클이 끝나고 새로운 사이클이 시작되는 지금, 그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이번 인터뷰는 19살이 된 히라테에게 있어 ‘표현’이란 무엇인가, ‘책임’이란 무엇인가, ‘음악’이란 무엇인가 등 여러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시작되어 히라테 본인이 ‘로킨 재팬’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하여 본질적으로 들어 볼 수 있는 인터뷰였다.
‘삼각창 밖은 밤’, ‘더 페이블’ 등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은 물론이고 이 인터뷰가 발매되었을 때엔 이미 방송이 되었을 ‘FNS가요제’에서의 콜라보레이션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Mrs. GREEN APPLE의 뮤직비디오에서 선보인 멋진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지금까지 겪어 온 일들을 이야기하는 히라테의 말투는 너무나도 밝고 즐거워 보여서 지금까지 얼마나 충실한 매일매일을 보내 왔는지 실감이 될 정도였다.
언제나처럼 3시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이어진 인터뷰 내내 히라테는 마치 자문자답 하듯이 한 마디 한 마디 차근차근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 놓아 주었다.
이 인터뷰가 ‘언제나 매 순간 순간을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히라테 유리나라는 한 사람의 리얼한 마음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기쁘겠다.
- 오랜만이네요.
히라테 (이하 ‘히’) : 오랜만이에요.
- 작년 4월 표지 모델이 되었을 때 인터뷰를 하고 1년 4개월만에 다시 인터뷰를 하게 되었네. 이번에는 특정한 테마에 맞추어 이야기를 한다기 보다는 지난 1년 4개월 동안 히라테상이 여러 가지 일들을 겪었으니, 지금 심경은 어떤지,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 왔는지 같은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어 볼까 해. 굳이 테마를 정하자면 ‘히라테 유리나라는 사람에게 있어 표현이란 무엇인가’ 정도라고 할까?
히 : 요즘은 영화 ‘더 페이블’ 촬영이 한창이에요. 내일이면 크랭크업이네요. 촬영 자체는 코로나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시작했는데 코로나 사태때 잠시 쉬었거든요. 얼마 전에 촬영을 재개 했습니다. 그렇기에 촬영 기간 자체가 굉장히 긴데다가 감사하게도 제 분량이 많아 많은 스태프 분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취할 기회도 많았어요. 물론 처음에는 -항상 그렇긴 합니다만- 긴장도 많이 되고 불안했어요. 한 번 중단되었다가 촬영이 재개 될 때도 다시금 불안했지요. 하지만 감사하게도 스태프 여러분께서 그런 저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시고, 여러 모로 신경을 써 주셔서 정말 따뜻한 환경에서 촬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솔직히 한 편으로는 아쉽기도 해요. 하지만 촬영이 끝나지 않으면 영화가 완성되지 않으니까요. (웃음) 좋은 작품으로 완성 되면 좋겠네요.
- 방금 전에 ‘처음에는 불안했다’고 이야기 했는데, 지금까지도 그런 ‘불안’을 안고 일 해 왔을 거라 생각하거든? 그런 ‘불안’은 어떤 종류의 불안일까?
히 : 음… 영화라면 ‘내가 이 역할을 정말 제대로 연기하고 있는 걸까?’라던지 ‘나는 과연 이 작품을 더욱 더 좋은 작품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있는 걸까?’, ‘내가 이 영화에 폐를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같은 불안함이 있네요.
- 예전에 느끼던 ‘불안’이랑은 다른 종류의 불안이라 할 수 있을까?
히 : 음… 전혀요. 지금도 불안하고, 촬영이 끝나면 그 나름대로 또 불안할 것 같고요, 시사회 때나 영화가 공개가 되었을 때에도 불안할 거고요. 그런 ‘불안’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제가 저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없는 것 역시 변하지 않을거고요. 감독님은 물론이고 다른 출연진 분들, 스태프 여러분, 그리고 기대하며 기다려주시는 여러분의 기대를 만족시켜드릴 수 있을 지 어떨지… 그런 점이 좀…
- 그런 불안은 케야키에 있을 때에도 느꼈을 것 같은데, 그 때는 사실 ‘내게 주어진 책임을 얼마나 짊어져야 할 것인가’, ‘나는 케야키를 위해 얼마나 싸울 수 있을까’ 같은 ‘자신에 대한’ 불안이 컸던 것 같다면 지금은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짊어지고 있다’,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는 불안감이 큰 것 같은데 말이지.
히 : 아, 그건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지금 말씀해 주시는 것을 들으니 그렇게 생각 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뭐랄까요. 저는 지금까지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의견 교환을 하’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그러면서도 실제로는 리허설이나 준비기간 동안에는 여러가지를 정하지 못 하는 면도 있어요. 어느 쪽이냐면 실제로 촬영이 시작되었을 때 현장의 분위기나 뉘앙스에 맞추어 이래저래 결정하는 편이 더 재미있다고도 생각하거든요. 영화의 세계에 뛰어 든 뒤로 그런 생각이 더 강해졌고,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이런 거구나’라고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 역시 알게 된 것 같아요.
- 음…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생각을 갖고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일까?
히 : 그렇죠. 정말로. 그런 것을 제 눈으로, 그리고 제 피부로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 그런 가운데 자신에 대한 부담이나 책임감을 느낀다거나, 자문자답 해 보거나 하는 시간도 있어?
히 : 네. 있어요. 엄청 있어요. 매일매일 있는걸요. (웃음) 얼마 뒤에 영화가 크랭크업 하는데, 촬영이 막바지에 달하니 ‘아, 대본 여기까지 끝났구나’라고 실감하게 되기도 하고, 이제 더 이상 재촬영을 못 하니까 ‘문제 없으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런 생각들을 번갈아가며 하곤 해요. 하지만 저 혼자 생각하다보면 결국 생각이 치우치게 되고, 좋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사람, 예를 들어 매니저님께 ‘어떻게 생각하는 지’ 여쭤보곤 해요. 이건 예전부터 하는 버릇이긴 하지만.
- 그건 아마도 한 작품에 여러 사람들이 관여가 되어 있고, 많은 사람들이 히라테상에게 기대를 하기 때문에 느끼는 불안이라 생각해. ‘많은 사람들이 내게 바라는 나 자신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종류의 불안 말이야. 그렇다면 불안에서 벗어나긴 힘들겠지.
히 : 그런 것 같아요. 최근 매니저님과 이야기 하는 것도 바로 그런 내용이고요. 이야기 하다 스스로 ‘뭐, 벗어나지 못 하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성격면으로 봐도.
- 내가 느끼기엔 말이지, 예전엔 히라테상이 마음 한 구석으로 ‘언젠간 이런 불안을 벗어나는 날이 올거야’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거든? 단적으로 말하자면 ‘해 보다 안되면 다 그만둬 버리면 된다’고 할까? 그런 어딘가 아슬아슬해 보이는 점이 있었어. 그런데 지금은 그런 불안이나 부담을 짊어지고 가는 것이 자신의 삶이라는 것을 받아들인 것 같아. 물론 지금도 자신을 엄하게 채찍질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말이야. 하여튼, 내가 보기엔 정말 많이 변한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히 : 사실 지금도 그런 생각을 안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는 생각해요. 하지만 제 성격상 아마도 그렇게 되기는 힘들겠죠. 여러 사람들에게 ‘불안하다’거나 ‘긴장된다’고 이야기 하기에 주변 사람들이 지겨워 할 것 같지만 결국 그런 게 ‘저’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물론 뭔가 작품을 하고 있을 땐 그런 불안이 더 심해지고 말이죠. 작품이 끝나면 그래도 조금은 부담이 없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 작품을 할 때 불안해 지는 거야 당연한 거라 생각하는데, 히라테상은 뭐랄까 ‘살아가는 것’ 자체가 불안의 연속이라는 느낌마저 든단 말이지.
히 : 아… (웃음) 후후후.
-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불편하달까, 어떤 것이 정답인지 알지 못 한 채로 걷고 있다는 느낌? 그런 불안함이랄까, 어긋남이랄까 그런 것이 히라테상에게서는 느껴져. 작품을 할 때고 아닐 때고.
히 : 분명 그런 것 같아요. 작품이 있건 없건 언제나 항상 뭔가를 생각하고 있다 생각해요. 하지만 감사하게도 요즘은 ‘아무 것도 없는 때’가 거의 없거든요. 뭔가 하나가 끝나면 바로 다음 일을 생각해야 하는 나날이 이어지는 것 같아요.
- 이번호가 발매 될 때엔 이미 방송이 끝난 뒤일테지만, 모리야마 나오타로상과 콜라보레이션을 하게 되었다고 들었어. 이건 본인이 하고 싶어서 하는 걸까?
히 : 네. 누가 뭐라 해도 저는 음악을 좋아하기에, 제게서 ‘음악’이라는 색을 지우고 싶지는 않아요. 그리고 이번에 부르실 노래는 물론이고 모리야마상 본인의 메시지나 방송국 분들의 의견을 들었는데, 그 순간 ‘아, 이 곡은 지금 내가 표현해야 할 곡이구나’라고 직감했어요. 말 그대로 ‘이건 해야만 해, 전해드려야 해’라 생각했지요.
- ‘이 곡은 내가 표현해야 할 곡’이라고 느끼게 된 이유는 뭐야?
히 : 음… 요즘은 말 그대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잖아요. 뭐라 해야하지… 2020년이 된 뒤로 사실 그다지 좋은 뉴스가 없었던 것 같거든요. 그런 가운데 이 곡은… 타이틀이나 가사만 보면 일견 굉장히 무겁게 느껴질 지도 모르지만… 제가 전달하고자 한 건 그런 ‘무거운’ 내용은 아니었어요. 그저 여러가지 표현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일방적으로 ‘살아라’, ‘힘 내’, ‘함께 극복 해 내자’ 같은 메시지를 전해봤자 ‘정말로 그렇게 받아들여 줄까’라는 의문이 있었거든요. 그렇기에 받아들이는 거야 보시는 분 각각에게 맡기기로 하고 저는 보시는 분들에게 다가서는 퍼포먼스를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보시는 분들께서 그렇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러고 보면 히라테상은 예전부터 ‘내가 나로 존재하기 위하여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점을 고민한다는 게 느껴져. 단순히 ‘나는 나야’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히 : 그렇네요. 영화, 드라마, 연극 등 다양한 장르가 있고 장르마다 해야 하는 것이 각각 조금씩 다른 것 같거든요. 예를 들어 음악이라던가 생방송 퍼포먼스처럼 ‘시간이 멈추지 않는’ 일을 할 때라면 그 때, 그 시대에 무엇이 요구되는지, 무엇이 결여되어 있는 지 같은 것을 엄청 생각하곤 해요.
- 그건 다시 말 해 ‘그 시대에 결여되어 있는 것을 채우고 싶다’는 감각이라 해야 할까?
히 : 음… 어떨까요. 제 모습이 어떤 분들께 용기를 드리거나 결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드릴 수 있다면 좋을 것 같긴 해요.
- 그런 마음은 변하지 않는구나?
히 : 네. 쭉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계속 이야기 해 오고있는 것 같네요.
- 그렇구나. 이젠 혼자서 ‘표현’을 해야 하잖아? 그렇게 상황이 변했으니 히라테상의 심경에도 변화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거든.
히 : 아니에요. 기본적인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어요.
- 지금 이 시대에 결여되어 있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 했잖아. 생각 해 보면 케야키자카에 있을 땐 이렇게 명확하게 이야기 한 적은 없었던 것 같거든. 하지만 그 때도 이렇게 이야기를 못 했을 뿐, 생각하는 건 같았던 것 아닐까?
히 : 그런 것 같아요. 비슷한 생각은 갖고 있었어요.
- 히라테 유리나라는 ‘한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지를 숨겨 왔던 것 같거든.
히 : 그런 것 같아요. 특히 올 해 들어… 코로나 사태가 있었잖아요. 그 사태를 겪으며 여러 부분이 변해 버렸기에 더더욱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시대에 결여 된 것이 어떤 것인지를 실감하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이 세상 뭔가 이상해’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라 생각해. 그러면서 -나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별 수 없지’라고 포기한 채 살아가고 있고. 하지만 히라테상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인 것 같아.
히 : 음… 그런가요? ‘포기하지 않는다’고 할까, 이런 시대가 되어버렸기에 더더욱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을까’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갖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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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화
'달아나고싶어'라 적었던 나날
멤버 내 오디션
2기생들이 오디션을 거쳐 그룹에 합류한지 얼마 되지 않은 9월 초 어느날.
'테스트 촬영을 한다'는 명목으로 2기생 멤버들이 소집되었다. 특이한 것은 멤버들을 두 팀, 다시 말해 지방에 살고 있는 멤버들과 도쿄에 살고 있는 멤버들로 나누어 소집하였던 점이다.
그리고 소집일, 지정된 장소에 모인 멤버들에게 날아든 소식은 멤버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 했던 것이었다.
'얼마 전에 히라가나 주연 드라마 소식 나온 건 알고 있지? 사실 그 드라마에 나오는 중요한 역할 중 한 자리가 아직 미정이거든. 지금부터 그 자리에 들어 갈 사람을 정하기 위해 오디션을 볼거야.'
그렇다. 8월 말 치바 마쿠하리멧세에서 열린 케야키자카46 사상 첫 전국투어 파이널 무대에서 히라가나케야키 주연 드라마, 'Re'mind' 제작 발표가 있었던 것이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것은 10월부터였고 대략적인 줄거리와 키 비주얼은 이미 공개 된 상황이었다.
2기생들 역시 관객석에 앉아 드라마 제작 발표를 보았지만,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자신들이 드라마에 출연할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제대로된 레슨조차 시작되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무대 위에 서 있는 선배 멤버들을 바라보는 그녀들은 말하자면 '팬과 다름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오디션'에 어찌 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는 2기생 멤버들. 하지만 스탭들은 아랑곳않고 멤버들에게 각자의 이름이 적힌 조끼와 오디션용 대본을 건네주었다.
소집을 받고 이 날 아침에 고향(야마구치현)에서 올라온 카와타 히나는 아이돌이 되어 처음으로 받은 '일'에 의욕이 가득했다. 비록 첫 '일'이 춤이나 노래가 아닌 연기, 그것도 9명 중 단 한명만을 뽑는 오디션이라는 것은 예상 못 했던 일이지만 '기왕 할 거면 꼭 합격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전력을 다했다.
하지만 실제로 심사위원들 앞에 서자 긴장을 한 탓인지 몇 번이나 대사를 더듬었다. 그런 일이 되풀이되다 보니 자신이 생각했던 자신의 모습과 실제 자신의 모습간의 괴리에 낙담하게 되어, 자신감을 잃은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져만 갔다.
'이거 어쩌지.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
카와타의 머릿속이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차 갈피를 못 잡고 허둥대던 와중에 오디션이 끝났다.
심사위원들은 카와타에게 '오디션에 대한 감상'을 요구하였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눈물을 참으며 고개를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TV나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하는 '연기' 라는 것이 실제로는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리고 불과 얼마 전까지 '해 낼수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무력감'은 카와다 뿐 아니라 이번 오디션을 겪은 모든 멤버들이 공통적으로 뼈저리게 느낀 바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연기'로 심사위원들을 깜짝 놀라게 한 멤버가 있었다. 바로 와타나베 미호였다.
그녀가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인 대본의 내용은 '내가 좋아하는 선배가 알고보니 내 친구에게 고백을 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된 상황'을 그린 것이었다. 이 상황을 멤버 둘이서 연기 해 내야 하는 것이었다.
멤버 대부분이 친구를 위해 희생하는 '착한 아이'를 연기한 가운데, 와타나베만은 감독의 조언에 따라 대본을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여 '악녀'를 연기했다. 다른 멤버들과 같은 대사를 받았음에도 해석 하나로 캐릭터를 정반대로 가져갔던 것이다.
그리고 와타나베의 연기를 뒤에서 보고 있던 니부 아카리는 그 순간 '아, 이번엔 얘가 합격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한다. 니부 뿐 아니라 와타나베의 상대역이었던 토미타 스즈카 역시 '나도 오디션에 붙고 싶긴 하지만, 상대가 미호면 별 수 없지'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오디션으로부터 이틀이 지난 어느 날, 와타나베는 드라마 촬영이 한창이던 스튜디오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이 오디션에 합격하게 되었다는 점과, 그 날부터 바로 촬영에 합류하게 되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내가 합격하다니, 뭔가 잘못된거야.'
'처음 뵙겠습니다. 와타나베 미호라고 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촬영 현장 문을 열고 들어선 와타나베는 처음 만나는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선배'들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긴장감에 심장이 터질듯했다.
2기생으로서 들어 온 와타나베가 처음으로 1기생 선배들을 만난 이 자리는 1기생 멤버들에게 있어서도 처음으로 '2기생이 이 드라마에 참가한다'는 것을 알게 된 자리이기도했다.
1기생들 역시 뜨거운 박수로 '후배'를 맞아 주기는 했지만 사실 처음 생긴 후배를, 그것도 혼자 찾아 온 후배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다른 멤버들이 어찌할 줄 모르고 있던 와중에 가장 먼저 행동을 취한 것은 카게야마 유카였다. 카게야마는 적극적으로 와타나베에게 다가 갔다. 우두커니 서 있던 와타나베를 이끌어 자기 옆자리에 앉히고 지금까지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 해 준 것도, 와타나베의 사인을 함께 만들어 준 것도 카게야마였다.
사실 카게야마는 이미 2기생들과 접점이 있었다. 2기생들이 오디션 때 걸쳤던 조끼에 2기생들의 이름을 적은 것이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
2기생들의 드라마 오디션이 결정된 날, 스태프가 조끼에 이름을 쓰고 있을 때 우연히 근처를 지나던 카게야마는 '저도 도울게요'라고 자원하여 일을 도우며 2기생들의 이름을 완벽하게 외웠다.
이 오디션 뿐 아니라 앞으로도 리허설 등이 있을 때 마다 그녀들이 착용하게 되는, 말하자면 '아이돌이 된 자만이 입을 수 있는 유니폼'과 같은 의미 깊은 조끼에 이름을 적어 넣은 것이 바로 카게야마라는 이야기이다.
생각 해 보면 카게야마는 추가 멤버 오디션 당시에도 자신의 메세지를 통해 'OO번(후보자)은 사실 정말 성실한 아이예요.', 'XX번은 이러이러한 특기가 있답니다.' 라는 식으로 후보자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런 카게야마가 '홀로 낯선 환경에 떨어진' 와타나베를 돕고, 1기생과 2기생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어쩌면 운명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와타나베 본인은 든든한 선배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고민을 끌어안고있었다. 바로 '연기 경험이 없다'는 점이 그녀의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감독으로부터 자주 '감정이 아직 덜 잡혔다'고 지적을 받기도 했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여러번 연기 워크숍에 참가하여 '자연스러운 감정을 표현하는 연기 방식'을 배운 1기생들과는 애초에 출발선 자체가 달랐던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와타나베가 맡은 역은 설정상 다른 멤버들의 그것과는 다른 '특별한' 역할이었기에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프로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어야 하는 일도 많았다.
한 번은 그녀가 그룹에 가입하기 전부터 TV에서 보았던 배우와 단둘이 연기를 해야 하게 된 적도 있었다. 그 날 역시 감독에게 여러 가지 사항을 지적받았고, 프로 배우 앞에서 이어지는 감독의 지적에 '난 정말 연기를 못 하는 한심한 인간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 날 촬영이 끝나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와타나베는 조용히 홀로 울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나 말고 다른 아이가 붙는 게 더 나았을 지도 몰라. 내가 합격한 건 뭔가가 잘못 된 거야.'
와타나베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메모 해 두는 버릇이 있다. 그리고 드라마 촬영 기간동안 그녀가 적은 메모에는 이런 말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힘들어', '도망가고싶어', '그만 둬 버릴까'
가슴 가득 희망을 품고 '아이돌 세계'에 한 발을 내딛은 순간,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그런 감정이었다.
'합격한 딸 앞에서 눈물을 보인 어머니'
와타나베 미호는 중학생 때 부터 농구를 해 왔다. 사실 그녀가 시합에 처음 나선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언니의 연습을 보러 갔을 때, '시합이 있으니 나와달라'는 권유를 받고 처음으로 시합에 나간 것이었다.
우연히 데뷔를 하긴 했지만, 어린 아이때부터 남자 아이들보다도 활발했던 데다가 운동신경도 좋았던 와타나베는 금세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않아 시합을 할 때마다 '쟤는 어디 팀 소속이야?'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성장했다.
이렇게까지 빠르게 성장한 데에는 물론 그녀의 타고난 소질도 있었겠지만 그에 못지않은 그녀만의 '강점'이 있었다.
중학생이 되어 정식으로 농구부에 들어 갔을 때의 일이다. 때마침 입부한 학생 중에 와타나베보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라이벌격 존재가 있었다. 그리고 와타나베는 그 '라이벌'에게 자신의 포지션이었던 포인트 가드 자리를 빼앗겼다. 그리고 그 때 와타나베는 '앞으로는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코트 구석구석까지 뛰어다녀야겠다'라고 마음먹었다.
주전자리를 빼앗긴 뒤로는 좀처럼 경기에 나서지도 못하는 나날이 이어졌지만 와타나베는 연습 때에도 다른 누구보다도 열심히 코트 구석구석을 누볐다. 그리고 그 결과 포인트가드 자리를 되 찾는데에 그치지 않고 주장 자리를 거머쥐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가짐은 그 뒤로도 변함없이 이어져, 고등학생이 된 후에는 주장으로서 팀을 사이타마현대회 8강으로 이끌기까지 했다. 앞서 말한 '와타나베의 강점'이란 바로 이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노력하는 재능' 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남들에게 말 못할 비밀이 있었다. 그 비밀은 다름아닌 '아이돌에 대한 동경'. 어릴 때 부터 헬로! 프로젝트나 AKB48을 좋아했던 그녀는 내심 '아이돌이 되고싶다'는 꿈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중학교 2학년 때 오디션 지원용지를 프린터로 뽑아 본 적도 있었다. 비록 '농구부 활동을 해야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해서 지원을 하지는 않았지만 솔직한 이유는 '자신에게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가 고 3 진로상담 때 선생님과 어머니 앞에서 '저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연예계로 나가고 싶어요.'라고 밝혔을 때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 지는 상상이 될 것이다.
물론 그녀의 그런 폭탄선언에 주변 어른들은 맹반대했다. 와타나베의 어머니는 딸에게 '난 네가 평범하게 대학을 가서, 평범한 인생을 살았으면 한다'고 설득하기도 하였다.
언제나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렴'이라고 말 해왔으면서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용기를 내서 말 하니 반대하는 어머니가 미워졌다. 동시에 '결국 나한테는 아무런 선택권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무력한 자신에게 화가 나 눈물이 쏟아졌다.
결국 이 날 진로상담에서는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 한 채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교문을 나선 순간 짜증과 무력감, 서러움 등 온갖 감정이 폭발하여 휴대전화를 힘껏 바닥에 패대기쳤다.
사실 어머니가 반대를 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란 다름아닌 와타나베가 고 2때 받았던 오디션, '노기자카46 3기생 오디션' 때의 기억이었다.
자신에게 자신이 없던 와타나베가, 항상 '농구부' 핑계를 대며 정작 중요한 순간에 도망쳤던 와타나베가 심기일전하여 '핑계'를 대지 않고 끝까지 해 내기로 '결심'했던 오디션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허무하게도 불합격. 와타나베는 그 때의 충격에서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하고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울기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딸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던 어머니는 자신의 딸이 두 번 다시 그런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반대 의사를 내비친 것이었다.
하지만 주변 어른들의 반대에도 와타나베의 의지는 굳건했다. 우선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와타나베는 PC를 켜서 문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우선 적은 것은 그녀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노기자카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자신의 목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그녀의 '궁극적인 목표' 역시 변해 있었던 것이다.
그 '목표'는 다름아닌 '배우'가 되는 것. 어릴 때 부터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했던 그녀였기에 어쩌면 당연한 변화였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목표를 세운 와타나베는 '연기에 대한 열정'을 어떻게 현실로 만들어 나갈 것인지를 서류에 적어나갔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모아 연기 학원에 들어간다', '우선 오디션을 여러 번 봐서 소속사에 들어간다' 등 자신이 얼마나 이 길에 진심이며, 어떤 계획으로 움직일 것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자료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때 때마침 열리고 있던 것이 바로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추가 멤버 모집' 오디션이었다. 비록 아이돌이 된다는 꿈은 접은 와타나베였지만 그럼에도 '오디션에 붙는다면 내 마음을 알아 주겠지'라는 마음에 응모를 결심했다.
와타나베가 오디션에 합격, '엄마가 많이 놀라겠지?'라 생각하며 집에 돌아 왔을 때, 그녀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딸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엄마는 네가 하고 싶은 일에 반대하는 게 아니야. 네가 어떤 길을 걷건 네 미래를 응원한단다.'
와타나베 모녀는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한동안 눈물을 흘렸다한다.
'동기에게조차 말 못할 고민'
그렇게 힘들게 들어 온 아이돌 세계인데, 시작부터 난관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꿈꾸었던 연기에서.
배우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매일같이 영화를 보고, 감상을 노트에 적고, 자신이 목표로 하는 배우를 분석하고, 자신이라면 어떻게 연기 했을 지까지 노트에 정리 할 정도로 갈구하던 '연기' 일이 어느 사이엔가 '도망가고 싶은' 대상이 되어 있던 것이다.
약 두 달에 걸친 촬영을 거쳐 드라마 'Re:mind'가 크랭크업 되었다. 마지막 촬영이 끝난 뒤, 1기생들은 입을 모아 '좀 더 이 촬영을 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와타나베는 자신의 차례에 이렇게 감상을 말했다.
'아무래도 2기생이 저 혼자다보니 부담감이 컸어요. 물론 기쁘기도 했지만…'
와타나베는 오열하면서도 말을 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이제 와 생각 해 보면 '연기를 해 본 적이 없으니 못 하는 게 당연하다'는 전제 하에 연기 워크숍에 참가하고, 다른 멤버들과 함께 촬영을 하며 조금씩 성장 해 나갈 수 있었던 1기생들과는 달리 '오디션'이라는 과정을 통해 '선발'된 와타나베는 '당연히 잘 해야만한다'는 부담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렇다고 '떨어진' 동기들에게 그런 마음을 상담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녀는 말 그대로 혼자서 '선택 받은 자의 책무'를 짊어 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 인사에서 그녀가 오열한 것은 어쩌면 지금껏 누구에게도 터놓지 못하고 억눌러만 왔던 감정들이 폭발 한 것이라 봐야 할 지도 모르겠다.
물론 와타나베 외의 2기생들 역시 머지않아 그런 '선택받은 자의 책무',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이라는 그룹에 뽑힌 자의 책무'를 뼈저리게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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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최전선에 있는 것은 언제나 ‘소녀’들이었다.
~’한국 음악’이라는 틀을 뛰어넘어 글로벌화 되어가는 ‘K-POP 시스템’~
1) 음악제작 시스템에 불어닥친 큰 변화
2010년을 전후하여 일본에서 일어난 K-POP붐.
그 중에서도 소녀시대나 KARA를 위시한 여성 그룹의 약진은 눈이 부실 정도로, 당시 일본의 틴에이저 중에서 그들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후, 한국에서 인기를 얻은 K-POP 걸그룹은 차례차례 일본에 상륙, 눈 깜빡할 사이에 큰 인기를 얻었다. 그로부터 10여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K-POP 걸그룹은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덕분일까, 그룹의 활동 방식 자체도 크게 변했을 뿐 아니라 활약하는 무대 자체가 ‘세계’로 넓어지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그런 ‘세계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K-POP 걸그룹’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작금의 걸그룹에 대하여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우선 소위 말하는 ‘걸그룹 르네상스’를 쌓아 올린 3대 기획사, 즉 SM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YG 엔터테인먼트에 대하여 설명을 해야 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세 기획사는 현재도 왕성하게 최고의 아이돌 그룹을 제작하고 있는 명문 기획사인 동시에, 과거 가장 각광을 받았던 걸 그룹을 배출 해 낸 기획사이며, 상기한 기획사에서 만들어 낸 아이돌 그룹들이 말 그대로 K-POP 이라는 장르를 선두지휘한 것은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현재 3대 기획사의 간판 그룹이라 할 수 있는 Red Velvet, TWICE, BLACKPINK을 보면 각각 자신들의 직속 선배라 할 수 있는 소녀시대, Wonder Girls, 2NE1가 남긴 유산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Red Velvet의 다양한 음악적 실험이나 TWICE의 캐치한 후렴구와 귀여운 안무, BLACKPINK의 ‘걸 크러시’ 컨셉트는 바로 직속 선배들의 그것들과 궤를 같이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요즘 걸 그룹들이 위대한 선배들의 유산을 그대로 답습하고만 있냐 하면 그런 것은 또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부분이 어떻게 변화 해 온 것일까?
가장 처음 꼽을 수 있는 ‘변화’는 바로 음악 제작 시스템이 큰 폭으로 발전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오랜 기간 여러 아이돌을 탄생시켜 오며 노하우와 기반을 쌓아 온 대형 기획사들은 더욱 더 퀄리티 높은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게 되었다. 예를 들어 SM은 해외의 거물 프로듀스들과 자주 협업을 한다. 물론 지금같은 시스템이 정착되기 이전에도 테디 라일리 같은 세계적인 프로듀서의 곡을 받아 소녀시대에게 주고는 했지만, 요즘은 그런 단발성 협업에 그치지 않고 정기적으로 ‘송 캠프’를 개최, 전 세계의 유명 프로듀서들을 한자리에 모아 새로운 프로젝트를 꾸미는 데 까지 발전했다.
실제로 Red Velvet의 리패키지 앨범인 ‘The Perfect Red Velvet’에는 브루노 마스나 저스틴 비버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들의 프로듀싱을 담당한 더 스테레오 타입스를 비롯하여 덴마크의 프로덕션 팀인 Deekay의 다니엘 ‘오비’ 클라인, H.O.T나 S.E.S등 SM의 1세대 아이돌 제작 당시부터 SM엔터테인먼트의 음악적인 축으로 활약 해 온 작곡가 유영진, 한국 R&B계의 실력파 아티스트인 JINBO와 SUMIN 등 수 많은 유명 프로듀서들이 참여한 바 있다. 이는 말 그대로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K-POP 그룹이기에 가능한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SM의 과감한 시도는 자사 아이돌 뿐 아니라 타사의 여러 아이돌들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남기고 있다.
2) 팬과 공유하는 ‘세계관’
기획사들의 아이돌 육성방식 변화는 음악 제작면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JYP의 경우 꽤나 파격적인 시도를 하였는데, 바로 ‘TF팀’ 제도의 도입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연예 사무소들은 회사 내에 마케팅 부서, 매니지먼트 부서, A&R(※레코드 회사에서 신인 아티스트 발굴, 레코드 기획, 제작, 관리 등을 담당하는 일) 부서 등 그 기능에 맞추어 여러 부서를 두는데, JYP는 그런 기능적인 부서 구분을 철폐하고 한 팀이 한 그룹을 전담해서 움직이는 태스크포스팀 제도를 도입하였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시도를 통해 만들어 진 결과물이 바로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TWICE’인 것이다.
JYP가 이런 대담한 시도를 하게 된 것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 ‘종래의 방식으로는 아티스트의 성장 속도에 맞추어 시의적절하게 필요한 서포트를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도는 보란듯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전속 팀이 TWICE의 활동에만 모든 역량을 집중하여 앨범 기획, 선곡, 뮤직비디오 촬영, 마케팅을 담당하는 구조가 완성됨으로 하여 아티스트와 스태프들간의 커뮤니케이션도 더욱 밀접하고 원활하게 되었으며 콘텐츠 제작 속도 역시 비약적으로 빨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시스템의 구축으로 인하여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면서도 내용의 일관성을 유지하거나 바쁜 스케줄 안에서도 콘텐츠의 질을 높게 유지하는 것도 가능 해 진 것이다.
물론 JYP이외의 기획사들도 각자 방법은 다를지언정 경쟁력 있는 활동을 위하여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가창력과 퍼포먼스 능력이 전체적으로 상향 평준화 된 현재의 걸그룹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명확한 컨셉트와 확고한 개성을 갖추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이다. 예전 K-POP그룹들이 한 앨범 안에 다양한 컨셉트와 스타일을 실험했던 것과는 달리 현대의 그룹들에게는 ‘하나의 일관된 아이덴티티’를 갖추고 그것을 중심 축으로 하여 활동 할 것이 요구된다. 그렇기에 그런 ‘아이덴티티’를 설정하는 것은 그룹을 런칭하기 전부터 고민해야 할 최우선과제라 할 수 있다. 물론 MAMAMOO처럼 ‘가창력’이라는 부분을 극단적으로 강화하여 성공한 예도 있기는 하지만, 모두가 그럴 수는 없는 노릇. 대다수의 그룹들은 팬들과 공유하는 유니크한 ‘세계관’을 설정하는 방향성을 택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이런 ‘세계관’에 가장 철저히 힘을 쓴 그룹이 바로 ‘이달의 소녀’라고 할 수 있다. 이달의 소녀는 완전체로 데뷔하기까지 약 2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12명의 멤버들을 한 명씩 공개하는 방식을 통해 독특한 세계관을 서서히 확장해 왔다.
이달의 소녀의 각 멤버에겐 자신을 상징하는 색, 과일, 동물이 주어졌으며, 멤버들을 4명씩 (※틀림) 나누어 우주를 구성하는 3개의 가상 공간에 속해있다는 설정으로 유닛을 구성,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결국 이 모든 멤버가 만나 한 공간에 모이기까지의 스토리를 짜기 위하여 막대한 자본과 시간을 들인 것이다.
이외에도 데뷔 당시부터 ‘학교 3부작’이라는 일관된 컨셉트 하에 활동을 한 ‘여자친구’ 역시 그런 세계관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한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여자친구는 고등학생을 연상케 하는 청순한 이미지의 초창기 3부작을 통해 인기를 얻은 뒤, ‘학교를 졸업하여 당당한 한 사람의 성인이 되었다’는 식으로 스토리를 전개시켜 팬들을 납득시키며 자연스럽게 이미지 변화를 꾀함과 동시에 그룹의 아이덴티티의 연속성 역시 확보 할 수 있었다. 이렇듯 세계관의 설정 및 전개는 단순히 ‘팬들이 그룹의 스토리를 공유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아이돌’이라는 하나의 콘텐츠를 ‘분석’하는 또 다른 즐거움을 제공해 주었다.
3) 전 세계의 팬들과 ‘동시대성’을 갖다
K-POP의 양적, 질적 성장과 선진적 시스템은 아시아 뿐 아니라 전 세계 팝 문화의 중심인 미국을 비롯한 유럽 등지에서도 주목받기에 이르렀다.
과거 한국에서 명실상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였던 Wonder Girls의 미국 진출을 예로 들어보면 그런 ‘시대의 변화’가 역력히 느껴지는데, Wonder Girls는 최전성기에 미국 진출을 위하여 국내 활동을 거의 희생시키다시피 하였다. 그 결과, ‘빌보드 핫 100차트’의 76위에 이름을 올리긴 하였으나, 결과적으로 희생해야 하는 것이 너무 컸기에 사실상 실패한 시도에 그쳤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예전에는 미국 진출을 위하여 현지의 유명 프로듀서를 섭외하고, 지금까지 보여 준 적 없는 새로운 컨셉트를 시도하며 어떻게든 ‘현지인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현지화를 꾀하는 측면이 컸다고 할 수 있는데, 최근 K-POP그룹의 미국 진출은 양상이 사뭇 다르다.
얼마 전 미국의 인터 스코프 레코즈와 계약을 맺은 BLACKPINK는 현지에서 단 한차례도 활동 한 적 없음에도 빌보드 핫 100차트 55위, 200차트 40위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올 4월, 그녀들이 처음으로 북미투어를 감행 한 것은 이미 그녀들의 이름이 어느 정도 알려 진 ‘뒤’였던 것이다. 이는 ‘우선 한국에서 인기를 얻고, 그 이후의 프로세스로서 해외 시장에 도전’하는 종래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한국에서 인기를 얻는 것 만으로도 이미 세계적으로 굳건하게 뿌리 내린 K-POP 팬들에게 어필 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K-POP 아이돌들이 생산해 낸 수많은 콘텐츠들이 동영상 플랫폼이나 SNS, 무료 방송 서비스등을 통해 전달됨으로 하여, 전 세계의 K-POP 팬들이 일종의 ‘동시대성’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K-POP’이 하나의 장르로 정착되는 가운데 그 팬베이스 역시 서브컬쳐의 일종으로서 확고하게 형성되어 왔으며,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서브 컬쳐’에서 벗어나 ‘메인 스트림’을 주도 할 정도의 규모로까지 성장 한 것이다.
또한, 해외의 K-POP 팬들은 단순히 콘텐츠 소비자에 머무르지 않고, ‘K-POP 랜덤 플레이 댄스 챌린지’ 등의 이벤트를 개최하거나 노래, 안무를 커버하여 동영상 사이트에 투고 하는 등 스스로 2차 콘텐츠를 제작, 커뮤니티와 공유하며 K-POP의 재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TWICE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들이 아직 일본에 데뷔 하기도 전 부터 ‘TT댄스’는 일본의 10대, 20대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 않았던가.
4) 국경의 한계를 초월한 ‘콘텐츠’
전 세계의 팬들을 매료한 K-POP 걸 그룹계에서는 엄청난 속도로 새로운 그룹이 생겨나고, 새로운 곡들이 발매된다. 그리고 각 그룹들은 다른 그룹들과 차별화 되는 개성을 어필하기 위하여 자신들만의 ‘아이덴티티’ 개발에 매진한다. 그렇기에 일견 비슷해 보이는 그룹들이라 해도 찬찬히 뜯어보면 다 다른 새성을 갖고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물론 그룹들을 크게 분류하면 ‘섹시’, ‘큐트’, ‘청순’ 등 몇 가지 키워드로 분류가 가능하다는 것 역시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그룹이 어필하는 디테일들은 각자 다르다. 당장 ‘청순파’ 그룹이라 해도 ‘졸업 전’의 여자친구는 청순함과 절도를 동시에 갖춘 느낌이지만 LOVELYZ는 그와 다른 정통파 노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Weki Meki가 ‘10대 특유의 자신만만한 발랄함’을 선보이는 데 반해 MOMOLAND는 ‘장난기 넘치는 동급생’ 같은 발랄함을 무기로 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뿐 아니다. 같은 그룹이라 해도 연차를 쌓아가며 새로운 매력을 선보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청순파 아이돌’로 활동 해 왔던 APINK가 2018년을 기점으로 ‘걸 크러시’적인 면모를 대폭 받아들여 이미지 체인지를 한 바 있지 않은가. 또한 ‘밝고 귀여운’ 종래의 아이돌상에서 벗어나, Dreamcatcher 처럼 하드한 기타 사운드가 돋보이는 록적인 면모를 내세우는 그룹도 나름의 지위를 확립하고 있다.
한국의 케이블 TV 방송국인 Mnet의 오디션 방송 ‘PRODUCE 101’을 통해 결성된 프로젝트 그룹 I.O.I의 멤버들 역시 그룹이 해산된 뒤로는 각자의 그룹으로 돌아가 이전과는 다른 매력을 뽐내고 있다. 예를 들어 김세정과 강미나는 구구단에서 ‘당당하고 자신 넘치는 모습’을 어필하고 있고, 정채연은 DIA에서 귀엽고 소녀스러운 감성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주결경과 임나영은 PRISTIN(※해당 기고문은 2019년 2월에 작성됨)에서 발랄한 면모를 선보이고 있으며 청하는 솔로 아티스트로서 카리스마 넘치는 댄스를 무기로 활동하는 등 I.O.I 활동때와는 다른 매력을 선보이고있다.
2016년에 시작된 Mnet의 ‘PRODUCE 101’시리즈는 ‘아이돌 제작 시스템’ 측면에서 보아도 큰 의미가 있는 방송이다. 여러 사무소에 소속되어 있는 아이돌 지망생들을 모아, 경쟁을 통해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멤버들을 하나의 프로젝트 그룹으로 데뷔시키고 활동하게 만든다는 기획 취지 자체는 매우 심플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압도적인 스케일 덕분에 수 많은 드라마를 낳으며 결과적으로 크게 성공하였다. 첫 시즌 합격자들로 결성된 I.O.I는 2016년 4월부터 2017년 1월에 걸친 ‘기간 한정 아이돌’로서 활동하며 그 특수성 덕분에 더 큰 지지를 받았다.
해당 방송은 남성그룹인 ‘Wanna One’을 배출한 시즌 2를 걸쳐, 시즌 3에서는 파격적인 실험에 나섰다. 이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Mnet이 지금의 K-POP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기획이었다.
일본의 AKB48 그룹과의 협업이 바로 그것이었다.
시즌 3는 방송 제목을 아예 PRODUCE 48으로 바꾸어 방송되었으며, 이 파격적인 실험은 한일 양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이목을 불러모으기에 충분했다.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12명의 멤버들은 IZ*ONE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하였으며, 데뷔와 동시에 2018년 최고의 신인 아이돌로서 군림하였다. 그녀들은 눈 깜빡할 사이에 수 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경쟁하는 K-POP 걸그룹계에서 3대 기획사의 쟁쟁한 그룹들을 위협할 정도의 위치까지 치고 올라왔다.
특히 IZ*ONE에는 이미 AKB48 그룹의 일원으로서 일본 연예계에서 활동을 한 멤버가 3명 포함되어 있기에 일본에서 활동을 하는 데에는 큰 이점을 안고있다. 이러한 PRODUCE48, 그리고 IZ*ONE의 성공은 어찌 보자면 ‘기존 시스템이나 기획의 범위를 뛰어넘어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하는’ K-POP 걸그룹 시장의 현재 모습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한 예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PRODUCE101’시리즈는 한국과 일본 뿐 아니라 중국 시장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있다. 해당 방송의 정식 판권작인 ‘창조101’이나 그 영향을 받아 제작된(※정확히는 표절) ‘우상연습생’ 등을 보면 중국에서의 PRODUCE101 시리즈의 영향력을 짐작 할 수 있다.
이런 사례들은 ‘K-POP이라는 장르가 한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아이돌 그룹이라는 단편적 개념을 벗어 나, 국경을 초월한 콘텐츠라는 것’을 알려주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제 20화
선택받은 자들
2015년 8월, 노기자카46의 뒤를 잇는 ‘사카미치 시리즈’ 제 2탄, 케야지자카46가 결성되었다. 한편, 어머니의 맹렬한 반대로 케야키자카46 최종 오디션장에 참가하지 못 한 소녀도 있었다.
이후 그 ‘소녀’ 나가하마 네루가 그룹에 뒤늦게 가입하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그녀는 케야키자카46의 자매그룹격인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의 유일한 멤버로 활동하게 된다.
이듬해인 2016년 5월, 히라가나 케야키46의 추가 멤버 오디션을 거쳐 나가하마와 활동을 함께 하게 될 11명의 멤버들이 그룹에 가입하며 히라가나 케야키는 그룹으로서 본격적인 시동을 걸기 시작한다.
한 발 앞서 데뷔한 한자 케야키는 데뷔곡인 ‘사일런트 마조리티’부터 사회 현상 수준의 붐을 일으키며 일약 인기 그룹으로 발돋움, 데뷔한 해에 홍백 가합전 무대에 서는 등 승승장구한 반면, 히라가나 케야키의 지명도는 미미한 채, 활동 기회조차 변변히 부여받지 못 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런 그녀들에게 기회가 주어진 것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2017년 3월부터 전국의 라이브 하우스를 도는 소규모 전국 투어가 열리게 된 것이다. 이 투어를 계기로 12명의 멤버들간의 유대가 깊어지고 하나가 되어 가던 그녀들에게 시련이 주어진다. 투어가 시작된 지 불과 한 달 뒤인 4월에 열린 ‘케야키자카46 데뷔 1주년 기념 라이브’에서 그녀들을 깜짝 놀라게 할 발표가 있었던 것이다.
같은 꿈을 쫓는 동세대 소녀들
2017년 4월 6일. 도쿄 요요기 제 1체육관에서 ‘케야키자카46 데뷔 1주년 기념 라이브’가 열렸다. 이 라이브는 1년 전 같은날에 데뷔 싱글 ‘사일런트 마조리티’가 발매 된 것을 기념하여 열린 라이브로, 지난 1년간 발표한 4장의 싱글에 실린 곡 전곡을 선보이는 라이브였다. 말 그대로 그룹이 지금껏 해 온 라이브 중 최대 규모의 라이브라고 할 수 있었다.
토미타 스즈카는 홀로 이 라이브 회장에 와 있었다. 가족들이 음악을 좋아하는 관계로 예전부터 가족들과 함께 한류 아이돌, 일본 아이돌은 물론이고 얼터너티브 록 공연에도 간 적이 있지만, 혼자서 라이브를 보러 온 것은 이 날이 처음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동경해 온 케야키자카46의 스테이지를 보고 싶어 겨우겨우 손에 넣은 티켓이었다.
자신의 눈 앞에서 격렬하게 춤을 추는 케야키자카46 멤버들을 본 토미타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소녀들이 이런 식으로 자신의 꿈을 쫓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마저 느꼈다.
이 날 공연에는 히라가나 케야키도 참가하여 커플링곡으로 수록된 자신들의 노래를 몇 곡인가 선보였다. ‘우리들은 사귀고 있어’를 부를 땐 멤버들끼리 손을 잡고 토롯코에 탄 채 회장 내부를 휘젓기도했다.
한자 케야키의 팬으로 입덕을 하긴 했지만,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인 카토 시호의 악수회에도 간 적이 있던 토미타는 내심 ‘히라가나는 한자와는 다르게 말 그대로 아이돌스러운 느낌이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본공연이 끝나고 앙코르를 위해 멤버들이 무대 위로 등장한 순간 서프라이즈 발표가 있었다.
‘긴급공지!’
‘히라가나 케야키 증원 결정!’
‘올 해 여름에 오디션 개최!’
쉴 새 없이 스크린에 표시되는 발표에 회장 내부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멍하니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던 토미타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한 팬이 말을 걸어 왔다.
‘저 오디션 받을거야?’
갑작스러운 질문에 토미타는 웃으며 ‘에이, 제가 뭘요.’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이미 응모 할 생각을 정해둔 상태였다.
토미타는 사실 이전에도 몇 번인가 연예인 소속 사무소의 스카우트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중 한 번은 꽤 잘 알려진 유명 소속사에 면담을 하러 갔지만 인연이 아니었는지 아쉽게 소속 연예인이 되지는 못 한 경험도 있었다. 그러한 경험 때문인지 토미타의 마음 한 구석에는 계속해서 연예계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 토미타에게 있어 우연히 가게 된 콘서트에서 히라가나 케야키의 추가 멤버 모집 오디션 개최 발표를 보게 되었다는 것은 일종의 운명적인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 주는 것이었다.
‘무대 위에 서 있는 저 소녀들처럼, 내게도 꿈을 이룰 기회가 주어진거야.’ 토미타는 그렇게 느꼈다.
시간이 흐르고, 오디션 접수가 시작되었다.
토미타는 접수 개시 직후 오디션에 응모했다.
‘나도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히라가나 케야키 추가 멤버 오디션에는 스태프들이 예상한 것 이상의 응모가 몰렸다. 오디션에 응모한 후보자들의 수는 무려 약 1만 5천여명.
지금까지의 활동 내용을 보면 사실상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 하는 백댄서 취급인데다가 단독 데뷔는 커녕 그룹의 존속마저도 명확하지 않은 그룹의 오디션에 이만큼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은 경악할만한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의외였던 것은 응모자 중에 ‘히라가나 케야키의 라이브를 보았다’, ‘히라가나 케야키의 팬’이라는 응모자들이 많았다는 점이었다.
사실 그 해 3월에 시작된 히라가나 케야키의 투어는, 회장인 전국의 라이브 하우스는 물론이고 일부 영화관에서 라이브 뷰잉이 진행되었다. 이 덕분에 전국적으로 히라가나 케야키의 팬층은 서서히이긴 하지만 저변이 넓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라이브 뷰잉을 보며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가 될 마음을 갖게 된 응모자 중에는 코사카 나오도 있었다. 코사카는 초등학생 때 AKB48의 팬이 된 후 아이돌 오타쿠로 발전, 노기자카46나 케야키자카46에도 빠져 가족과 함께 응원을 해 왔다. 하지만 그녀의 ‘덕질’은 어디까지나 TV나 CD 같은 미디어를 통한 것에 그쳐, 실제로 라이브나 콘서트를 보러 간 적은 없었다. 그런 코사카가 히라가나 케야키의 라이브 뷰잉을 보러 간 것은 그녀가 중 3때, 같은 반에 있었던 ‘히라가나 케야키의 팬’인 친구의 권유에 의한 것이었다.
5월 31일, 그 날은 히라가나 케야키의 전국투어 오사카 공연이 열린 날이었다. 코사카는 오사카 시내의 한 극장에서 화면을 통해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이 춤 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이 날 공연은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이 지금까지의 노선에서 방향 전환을 시도한 중요한 공연이었다. 한자 케야키의 이미지가 강한 ‘사이마조’나 ‘불협화음’은 봉인하고 그 대신 ‘제복과 태양’, ‘미소가 슬퍼’ 같은 상대적으로 유순한 분위기의 곡들을 세트리스트에 주로 포함시켰다. 그런 세트리스트에 맞추어 미소를 지으며 무대에 임하는 멤버들의 모습은 회장 뿐 아니라 라이브 뷰잉이 진행되는 영화관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며 보는 이들의 기분마저도 밝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 반짝거리는 멤버들의 모습을 보며 코사카의 마음 속에서도 지금껏 생각 해 본 적 없는 새로운 마음이 싹텄다.
‘아이돌이라는 존재가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을 미소짓게 만드는구나. 혹시 나도 아이돌이 된다면 저렇게 밝게 웃을 수 있을까?’
코사카는 초등학생 때 부터 학교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성적은 좋은 편이었지만 친구가 많지 않았기에 학교라는 공간이 어색했다. 한 번은 일부러 밝게 행동해서 반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여자아이들 그룹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별로 가고싶지도 않은 약속에 억지로 따라가고 하다 보니 ‘이건 진짜 내 모습이 아니야’라는 고민이 생겨서 결국 그 아이들과도 거리를 두게 되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그런 상황은 변함이 없어 성격은 점점 더 소극적으로 변했고 집 밖으로 한 발짝 나가는 것 만으로도 남들 눈을 의식해서 전전긍긍하기에 이르렀다. 학교에서도 몇몇 친구들 말고는 교류를 거의 하지 않고 항상 조용히 지내는 아이가 되었다.
‘다른 애들하고 이야기를 해 봤자 재미 있을 리도 없는데 뭐.’
재미도 없고 밝지도 않은 자신의 모습이 정말로 싫었다. 하지만 히라가나 케야키같은 그룹에 들어 갈 수 있다면 그런 자신의 모습도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라이브 뷰잉을 보았던 그 날, 히라가나 케야키의 추가 멤버 오디션 접수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같은 날, 코사카는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인생에 한 걸음을 내딛었다.
첫 라이브뷰잉이 끝나고, 코사카는 그 때 느낀 즐거움을 다시 한 번 느끼기 위해 다음 공연의 라이브뷰잉을 신청했다. 이번에는 코사카가 친구에게 함께 가자고 권유 했던 것이다.
부모님 앞에서 ‘서약서’에 지문을 찍다.
‘왜? 어째서 오디션을 보지 말라는 거야? 이유라도 알려줘요!’
미야타 마나모가 어머니를 향해 질문 공세를 펼쳤다. 손에는 갈기갈기 찢어진 서류가 들려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찢어진 서류는 다름아닌 히라가나 케야키 오디션 1차 심사 통과통지서였다. 격해져 있는 감정과는 반대로, 어머니를 몰아세우는 그녀의 말투는 무서울정도로 냉정하고 침착했다.
외동딸로 태어난 미야타는 어릴 때 부터 독서와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주변에서 ‘아가씨들이 다니는 학교’라 불리는 명문 사립중학교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것도, 수험공부를 해서 결국 원하던 중학교에 들어 간 것도 전부 그녀 자신이 선택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들어 간 중학교에서 그녀는 ‘아이돌’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빠져버렸다.
그 당시는 TV를 켜기만 하면, 아니 TV를 보지 않아도 여기저기 붙어있는 광고에, 잡지에, 어딜 보아도 AKB멤버가 눈에 들어오는 시기였다. 미야타 역시 AKB의 팬이 되어 자신의 오시멘인 오오시마 유코를 비롯한 어리고 귀여운 여자아이들이 노력하는 모습, 춤 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CD를 사거나 거실에서 아이돌이 나오는 방송을 보지는 못했다. 연예계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어머니 앞에서는 ‘아이돌’이라는 화제를 입에 올리는 것 조차 거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억압받으면 억압 받을수록 그녀가 안고 있던 ‘동경’은 커져만갔다. 결국 미야타는 아이돌 뿐 아니라 만화, 애니메이션 등 비슷한 분야의 서브컬쳐로도 발을 뻗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고2였던 때, ‘친구가 티켓을 줬다’는 핑계를 대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러 갔던 성우 아티스트의 라이브가 그녀의 마음 속에는 너무나도 큰 흔적을 남기게 되었다.
‘나도 언젠간 저렇게 귀여운 의상을 입고 무대 위에서 춤 춰 보고 싶어’
그나마 고등학교 때 까지는 학교 댄스부 활동을 하거나 발레 교실에 다니며 춤을 추기는 했지만 대학생이 되어 그나마도 하지 않게 된 뒤, 오히려 ‘라이브’에 대한 열망이 커져만 갔다. 그리고 바로 그 타이밍, 그녀가 대학에 들어 온 지 2달도 채 되지 않은 타이밍에 히라가나 케야키의 오디션 응모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니 하고 싶은 일들은 전부 해 보자’ 라는 모토로 살아 온 미야타는 오디션 광고를 보고 부모님께는 비밀리에 오디션에 응모를 했다.
머지않아 문제가 생겼다. 1차 심사 합격 통지서를 아무 생각 없이 어머니 앞에서 뜯었고, 그 내용을 그녀의 어머니가 확인 한 순간, 집안이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집 앞 편의점을 갈 때에도 꼭 어머니가 붙어서 데리고 갈 정도로 애지중지 키워 온 외동딸이 자기 몰래 아이돌 오디션에 응모했다는 것을 안 그녀의 어머니가 격노하여 딸이 보는 앞에서 합격 통지서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이 때는 딸도 가만 있지는 않았다. 지금껏 크게 반항도 안 했던 미야타이지만 이 날 만큼은 집요하게 어머니에게 맞서 결국 아버지를 자기 편으로 하는 데에 성공, 두 분 부모님 앞에서 서약서를 작성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대학은 4년 딱 맞추어 졸업 할 것’
‘대학에 다니는 동안 사서 자격증을 딸 것’
이 두 가지 조건이 적힌 서약서에 지장을 찍고 나서야 겨우 오디션을 봐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이 때까지만 해도 딸이 아이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실제로 미야타가 최종 심사에 합격한 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그녀의 어머니는 ‘너 정말로 아이돌 할 생각이야?’라고 질문을 했다. 그리고 미야타는 이런 어머니의 질문에 딱잘라 대답했다.
‘응. 할 거야. 여기까지 와 버렸는걸.’
미야타는 어릴 때 부터 친구들과 놀러 가는 것 보다 부모님과 함께 외출하는 것을 좋아했을 정도로 가족애가 강한 아이였다. 지금껏 부모님의 말에 거스른 적도 없었지만 이 오디션에 대해서만큼은 시종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던 것이다.
본인은 기억하지 못 하는 듯 하지만, 그녀의 부모님에 의하면 이런 ‘자신이 정한 일에 대해서는 의지를 굽히지 않는 면’은 사실 어릴 때 부터 종종 드러났다고 한다.
차 안에서 질렸다는 듯 혀를 내두르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미야타는 ‘나, 이렇게 강한 면도 있었구나’ 라고 내심 놀랐다고 한다.
떨어진 후보생들이 남기고 간 편지
그런 미야타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일이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최종심사날에 있었던 일이다. 최종심사를 앞두고 운영측은 후보생들을 10명 정도씩 나누어 각자 다른 대기실에서 기다리게 했다. 미야타가 속해있던 그룹은 같은 방이 된 뒤, 한 차례 자기소개를 하고는 다들 침묵을 지켰다. 숨막힐듯한 침묵과 어색한 분위기 안에서 후보생들은 그저 자기 차례가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였다. 옆 방에서 어떤 소리가 들렸다.
‘아!!’
옆 방 멤버들은 방 안에서 발성 연습을 하고 있는 듯 했다. 그 소리를 시작으로 큰 소리로 노래 연습을 하는 소리, 자기 소개를 연습하는 소리가 왁자지껄 들려왔다.
사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날 미야타와 같은 방을 썼던 후보자 중 최종 합격 한 것은 미야타 한 명 뿐이었다. 반면 왁자지껄했던 옆 방 멤버들 중에서는 토미타 스즈카, 니부 아카리, 마츠다 코노카, 와타나베 미호, 코사카 나오 총 5명이 합격했다.
옆 방에서는 토미타나 와타나베가 개인기를 하며 다른 후보생들을 웃기는 등, 시종 좋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미야타를 놀라게 한 ‘아!’라는 소리도 그 방에 있던 누군가가 ‘이번이 마지막 심사니 최선을 다 하고 싶다’는 말에, 전원이 벽을 향해 ‘아!’하고 소리를 지르기로 한 데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옆방 멤버들은 마지막까지도 ‘다 함께 힘 내자’며 서로를 다독였다. 방에서 나와 무대 뒤에서 대기를 할 때엔 감정이 벅차올라 서로를 끌어안기도 했다. 코사카와 와타나베도 이 때 ‘힘 내자’며 서로를 끌어 안았다. 둘은 그 날 처음 만난 사이였다. 사실 평소 같았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이후 히라가나 케야키로 활동을 시작 한 뒤로도 각별한 관계가 이어져 오고있다.
그런 좋은 분위기는 최종심사에도 이어졌다. 한 멤버가 자기소개를 할 때면 다른 멤버들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합격자가 발표 된 후, 불합격한 후보자는 먼저 귀가하고 합격자들만이 남아 사진을 찍게 되었다. 미야타와 옆방에서 합격한 5명 외에도 카네무라 미쿠, 카와타 히나, 하마기시 히요리가 합격했다.
합격자들은 사진을 찍은 뒤, 대기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대기실은 이미 텅 비어 있어, 불합격한 후보자들의 모습은 없었다. 하지만 테이블 위에는 편지가 한 통 놓여있었다.
‘우리 몫까지 열심히 해 줘! 응원할게!’
메시지 아래에는 떨어진 아이들 전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최종심사에 임하기 전에 함께 찍은 사진과 이 편지만이 떨어진 아이들이 이 곳에 함께 있었다는 증거였다.
2017년 8월 13일.
이 날 열린 최종심사 결과, 9명의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의 추가 멤버가 확정되었다. 1만 5천명이나 되는 후보자 중에서 선택을 받은 9명의 멤버들은 히라가나 케야키의 2기생으로서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녀들의 선배, 히라가나 케야키 1기생들의 활동이 ‘한자 케야키와는 다른, 히라가나 케야키다움’을 모색하는 과정이었다면 2기생들의 활동은 다름아닌 ‘선택받은 자의 책임을 다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 중 하나가 바로 ‘선택받은 자로서, 자기 스스로도 무엇인가를 선택해야만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9명의 멤버 중 가장 먼저 이런 힘든 선택을 강요받게 된 것이 바로 하마기시 히요리였다.
너무 울어 퉁퉁부은 눈으로 올려다 본 호텔 천장
하마기시는 언니의 영향으로 3살때부터 발레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발레 교실을 바꾸어 엄격한 선생님의 지도를 받게 된 이후로는 발에 잡힌 물집이 터져 발이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연습을 계속하고, 학교에 있을 때 조차 발레 노트를 읽을 정도로 발레에 몰두했다. 그녀에게 있어 장래 희망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발레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그 뿐 아니라 초등학생 때 부터 패션잡지를 즐겨 읽었던 그녀는 청소년 대상 잡지는 물론이고 20대 대상 패션지까지 섭렵했다. 사실 패션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예쁜 모델을 보는 것이 좋았기 때문에 패션지를 읽었다고 하는 그녀는 중학생이 되어, 오디션을 받을 수 있는 연령이 되자 스스로 오디션에 응하여 2년 연속으로 최종 후보자에 들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합격은 하지 못 했다. 패션잡지 오디션에 떨어져 낙담해 있는 하마기시에게 ‘이런 오디션도 있는데 받아볼래?’라고 어머니가 권해주신 것이 바로 히라가나 케야키의 추가 멤버 오디션이었다.
사실 하마기시는 나가하마 네루의 팬이었다. 하마기시는 당시만 해도 한자/히라가나 겸임이었던 나가하마의 귀여운 얼굴과 목소리에 푹 빠져있었다. 게다가 발레 발표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귀여운 의상을 입고 춤을 출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결국 하마기시는 어머니가 권해 준 오디션을 받았고, 보기 좋게 합격 해 냈다.
하지만 합격 직후, 예상도 못 했던 일이 벌어졌다. 하마기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머니가 발레 교실에 전화를 해서 그만 두겠다고 말을 한 것이다.
‘왜 엄마 맘대로 선생님한테 전화 했어? 왜? 왜? 왜?!’
사실 이 때 하마기시는 처음으로 중요한 역할에 발탁되어 이미 두 달 넘게 맹연습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안무도 완벽히 숙지하였고 자기 몸에 맞춘 의상도 완성이 되어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10년 이상 발레를 해 오면서 꿈에도 그리던 큰 무대가 코 앞에 있었다.
하마기시는 집을 박차고 나와 발레 선생님에게 라인을 보냈다.
‘저 이번 역할 포기 안 해요. 발레도 절대로 그만두지 않을 거예요.’
집으로는 돌아가기 싫어 밖에서 펑펑 울고 있으려니 차를 타고 하마기시를 찾으러 나온 아버지와 맞닥뜨렸다. 우는 딸의 모습을 본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하마기시를 한 호텔로 데려 가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주었다. 말하자면 부모님이 허락한 가출이었다.
딱히 TV를 볼 마음도 들지 않고 그렇다고 샤워를 할 생각도 들지 않아 그저 침대 위에서 이리저리 뒹굴거리던 하마기시는 너무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호텔 천장을 가만히 올려다 보았다. 천장을 가만히 보다 보니 여러 생각들이 밀려왔다. 언제나 내 편이던 어머니가 어째서 자신에게서 발레를 빼앗으려 한 것일까,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그 때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두 가지를 모두 양립한다는 건 무리겠구나. 아이돌이 되기 위해선 발레를 그만 둬야 하는 거구나. 엄마도 그걸 알고 나를 위해 선생님께 연락 드려 준거야…’
하마기시는 그 전까지는 막연하게 두 가지를 모두 양립해 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 해 보면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가 되어 활동을 한다는 것은 발레를 그만두고 도쿄로 상경하여 ‘아이돌’이라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선택 받은’ 자들은 자신들 스스로도 ‘선택’을 해야만 하는 법이라는 잔인한 섭리를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발레 교실을 그만둔 뒤, 적어도 자신이 나올 예정이었던 무대는 보러 갈 생각이었지만 그조차도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본디 자신이 서 있어야할 곳에 다른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9명의 선택받은 소녀들은 각자의 사정을 가슴 속에 품은 채, 화려하지만 험난한 아이돌의 길로 한 걸음을 내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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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공감할 수 있는 거리감, 생각을 공유 할 수 있는 관계성
- 히라테는 불과 14살에 불과한 나이에 싱글 ‘사일런트 마조리티’를 통해 아이돌로 데뷔하였으며 키타가와는 17살의 나이로 잡지, 드라마 등을 통해 연예계에 데뷔하였다. 아직 어린 10대에 연예계라는 가혹한 환경에 뛰어들게 된 두 사람. 그런 공통점이 있기에 키타가와는 히라테의 현재 모습을 보며 느끼는 점이, 히라테는 키타가와의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며 느끼는 점이 각각 있다고 한다.
키 : 생각 해 보니까 사적으로 이렇게 매일 연락을 주고받는 건 히쨩밖에 없는 것 같아.
히 : 정말? 생각 해 보니 나도 그래.
키 : 뭐 딱히 말을 안 나누고 서로 스티커만 주고 받는 경우도 있잖아? 딱히 대화를 안 해도 그렇게 서로서로가 잘 지내는 지 확인하는 경우. 뭐, 말하자면 생존보고 같은 느낌? (웃음)
히 : 응. 그거! 그거! ‘후미도 열심히 일 하고 있구나!’라고 안심하면서 매일매일 일 하러 가곤 해.
키 : 나도 그래. ‘아, 히쨩은 이런 늦은 시간에도 깨어 있구나’라던지 말이야. 어쩌면 다른 누구보다도 서로의 일상 생활을 잘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몰라.
히 : 응.
키 : 우리들은 정말로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지.
히 : 응. (웃음) 후미랑 이야기 나누는 건 즐겁기도 하고 마음이 편해.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하고. 정말이지 이런 관계성 너무 좋아.
키 : 히쨩은 말이 많은 타입은 아니지만 한마디씩 하는 말이 때때로 굉장히 핵심을 꿰뚫곤 하거든. 조언을 해 줄 때도 적확한 조언을 해 주고. 그런 히쨩을 보고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면이 ‘특이하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 어쩌면 나도 특이한 사람이라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히 : 결론이 그렇게 나? (웃음) 하지만 난 내가 되게 평범하다 생각하는걸.
키 : 나도 나 자신이 평범하다 생각해. 하지만 우리 둘,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꽤나 특이한 사람들일거야. (웃음)
히 : 그럴까?
키 : 히쨩은 예의도 바르고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상식도 갖고 있지만 어디라고 콕 찝어서 이야기 하긴 힘들어도 분명 특이한 부분이 있어. 나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그런 면도 이해 해 줄 사람은 어딘가에 분명히 있기 마련이고, 그런 ‘이해자’들이 응원 해 주시는 것 아닐까?
히 : 그럴지도 모르겠네.
키 : 자신의 감성을 믿어야 하는 게 우리가 하는 일이잖니. 뭐, 그렇게 생각하면 특이한 부분이 있다 해도 딱히 문제 될 건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히 : 그건 그렇지.
키 : 얘기하다보면 이런 식으로 점점 깊은 이야기로 발전하곤 하잖아.
히 : 후미 같은 경우에는 자신이 10대였을 때 있었던 이야기들을 종종 해 주잖아? 그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정말로 안심이 돼.
키 : 내가 처음 데뷔 한 건 잡지 ‘세븐틴’이었지. 그리고 거의 같은 타이밍에 ‘세일러 문’의 TV드라마를 통해 드라마도 데뷔 했었고. 하지만 두 가지 일 모두 어린 여자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이라는 공통점이 있었어. 함께 같은 잡지를, 작품을 만들어 가는 동료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모두가 라이벌이었지. 그런 사람들이 잔뜩 있는 복잡한 환경이다 보니 아무래도 이래저래 어려운 일들이 많았어.
단체 행동을 할 땐 서로서로 협조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한 법인데 동시에 자신만의 개성을 최대한 발휘하고 남들보다 더 빛을 내서 스포트라이트를 내 쪽으로 끌고 오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니까. 그런 환경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랑 허물 없이 친해지는 것도 힘들었고, 내 생각보다도 더 치열한 전장 같은 곳이었어. 주변에 사람들은 많았지만 항상 고독했다는 것이 내 10대 시절에 대한 솔직한 감상이야. 정말 언제나 외톨이었거든. 주변에 사람이 많건 적건.
한 곳에 수 많은 개성들이 모여 있는데 그 개성들이 하나가 되어 움직여야 한다는 것도 힘들었어. 물론 그렇게 개성 있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도움이 된 점도 있었지만 말이야. 물론 머리로는 이해를 하고 있었지만 이해를 하고 있다 해도 그런 환경에 놓여있다는 것 자체가 상상보다 훨씬 더 힘들었어.
20대가 된 뒤로는 나 개인에게 여러 일들이 주어졌는데,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혼자 모든 것을 해 나가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었고.
각자 몸담고 있는 분야가 다르긴 하지만 결국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일이라는 거, 사실상 자기 자신을 축내면서 해야 하는 일이잖아? 자신이 힘들다고 설렁설렁 하면 작품이 어중간해지고, 그게 싫어서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고 전력투구하면 결국 남는 건 너덜너덜해 진 자신의 모습이고.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매번 ‘이번 작품이 마지막이어도 상관없어’라는 각오로 전력을 다 해야만하는 일이다 보니, 어떻게 보면 이 업계의 가장 큰 난관은 수십년간 변함이 없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 대가로 팬분들께서 ‘이번 작품 정말 좋았어요’, ‘이번 작품을 통해 용기를 얻었어요’라고 말씀 해 주시는 것을 들으면 역시 ‘다음 작품에도 최선을 다 하자’는 생각이 들지.
히 : 그건 그래.
키 : 얼핏 보기에는 화려해 보이기만 하는 일일지 모르지만, 사실 심신 모두 곤죽이 될 정도로 쥐어 짜 내면서 일 하고 있잖아.
히 : 응. 정말 너덜너덜해지곤 해.
키 : 그러니까 꼭 같이 온천 가자는 얘기야.
히 : 그러자. (웃음) 뭐라 해야하지, 방금 전 얘기 같은 것들 듣다 보면 후미랑 나는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나와 공감이 될 사람, 공감 해 주는 사람을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거든.
키 : 히쨩의 모든 것이 공감할 곳 투성이인걸. 나는.
히 : 정말?
키 : 팬 여러분께 좋은 작품을 보여드리려면 결국 나 자신을 만신창이로 만들어야 하잖아. 나도 촬영하면서 말도 안 되는 무리한 자세를 취하거나 무모한 액션 연기에 도전하거나 하거든 (웃음) 하지만 결과적으로 해 내고 나면 아드레날린이 막 뿜어져 나오지.
히 : 응. 그래서 결국 어떻게든 해 내고 마는거고. 이렇게 이 일을 하면 결국 나 자신이 만신창이가 된다는 걸 알면서도.
키 : 사실 아이돌 그룹같은 경우, 아무리 다들 서로 사이가 좋다고 해도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이 전부 ‘프로’인 집단이다 보면 의견 충돌은 있을 수 밖에 없잖아. 그냥 ‘우리 사이 좋아요’라는 미사여구로 포장 할 수만은 없는 세계니까. 하지만 그렇게 치열하게 부딪히는 것도 결국 언젠가는 ‘그렇게 살길 잘 했다’고 되돌아 보는 날이 오기 마련이야.
히 : 응. 나야 아직 데뷔한지 4년차 밖에 안 되었지만 매일매일 어떻게든 살아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키 : 그렇지. 어찌저찌 오늘을 버텨내면 내일이 오고, 내일을 버텨내면 모레가 온다는 느낌. 우리들 정말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고 있지.
히 : 응.
키 : 때때로 ‘내일 잘 일어날 수 있으려나’라는 걱정이 될 정도로 녹초가 되기도 하지만.
히 : 그렇지.
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해 나간단 말이지. 그렇게 생각 해 보면 내가 데뷔 한 건 17살 때였던 데 비해 히쨩은 겨우 14살에 데뷔 했잖아. 그거, 정말 대단한 것 같아. 중학생에 불과한 소녀가 이 힘든 환경에서 싸워 왔다는 게. 그렇기에 좀 더 많은 분들께서 ‘히라테 유리나라는 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 주셨으면 좋겠어. 여러분이 상상하시는 것 이상으로, 아니 그것보다도 더 노력하고 있는 아이라는 것을 말이야.
히 : 고마워. 후미랑 이야기 하고 있으면 이렇게까지 서로를 이해 할 수 있다는 것에 깜짝 놀라고, 나를 너무 잘 알아줘서 안심하곤 해.
키 : 아이돌의 센터처럼 남들 앞에 서서 주도적으로 일을 수행해야 하는 사람의 마음이란 거, 한 시즌내내 방영되는 드라마의 주연을 할 때의 기분과 비슷 할 것 같아. 자신이 메인이 되어서 일을 해야 하지만 동시에 다른 출연자들과도 보조를 잘 맞추어 가며 일을 해야 하지. 의견을 내야 할 땐 확실히 의견을 내야 하지만 그 의견이 자신만 생각하는 고집이 되어서는 안 되고, 어디까지나 작품 전체가 잘 되기 위하여 내는 의견이어야 하고. 그렇게 의견을 내다 보면 때로는 다른 사람들과 의견이 충돌하는 경우도 있어. 그럴 때 느끼는 내 마음을 히쨩은 잘 알아 주고, 반대로 나 역시 ‘히쨩은 이럴 때 이런 마음이겠지’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북돋고 용기를 얻기도 해.
히 : 나도 마찬가지야. ‘후미도 이런 식으로 노력해 왔겠구나’라고 생각하곤 하는걸.
키 : 히쨩은 이미 충분히 노력하고 있는걸.
히 : 에이, 아직 멀었어.
키 : 자신이 놓인 환경에서 최선을 다 해 살아간다는 의미에서 보자면 우리 둘 다 조금 서툰 부분이 있을 지도 몰라. 하지만 확실한 건 ‘전력을 다 하고 있다’는 점.
히 : 응. 그런 노력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힘이 나.
키 : 세세하게 모든 것을 보고하진 않아도 ‘아, 히쨩은 알아 주는구나’라고 느껴지는 경우는 꽤 있지.
히 : 진짜?
키 : 응. 특히 ‘나를 배려 해 주는구나’라는 점은 정말 잘 느껴져.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 관계, 정말 좋은 관계네!
히 : 응. 좋은 관계야.
다음에 함께 일을 한다면 어떤 일을?
- 비록 서로 활약하는 분야가 다르지만 ‘표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더욱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남들 앞에 서서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두 사람이기에 서로의 마음이 잘 통하고, 각자가 끌어안고 있는 짐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이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만약 다음에 함께 일을 하게 된다면 어떤 일을 해 보고 싶은 지’라는 주제를 중심 축으로 하여 두 사람이 그리는 상상과 희망에 대하여 들어 보기로 했다.
키 : 다시 한 번 함께 일 해 보고 싶어. 만약 히쨩이 다시 영화에 출연한다면 나도 꼭 같은 작품에 나가고 싶어.
히 : 나도 내가 영화에 나갈 일이 있다면 후미가 함께 나와줬으면 해. 어떤 역이든 좋으니까.
키 : 한 장면만 나오는 단역이라도 좋으니 부디 나가고 싶어. ‘히비키’처럼 우리 둘이 중심이 되는 건 힘들지도 모르지만 함께 연기를 하게 된다면 다시 한 번 ‘후미’가 되고 싶어.
히 : 응. 꼭 나와줬으면 해.
키 : 그리고 자주 ‘함께 버라이어티에 나가고 싶다’는 말도 하잖아.
히 : 응.
키 : 지난번처럼 영화 선전하러 나가는 게 아니라 ‘저희 잠깐 나왔어요~’ 같은 느낌으로 가볍게 나가 보고 싶어. 아무래도 영화 선전으로 나가면 무엇보다도 ‘영화를 PR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앞서니까.
히 : 응. 나도 그런 의무감 없이 함께 나가보고 싶어. 후미와 함께라면 어떤 일이건 괜찮아.
키 : 여행 방송 같은 것도 좋겠다. 그러면 일부러 쉬는 날 일정을 맞추지 않아도 함께 온천여행 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 ‘여자 단 둘이 가는 여행’ 느낌으로.
히 : 그거 좋다!
키 : 온천 들어 가 있는 부분은 촬영 안 하고. (웃음) 아침 먹을 때 정도는 괜찮지만.
히 : 정말 좋은 생각이야!
키 : 일이라 해도 그런 일이면 즐거울 것 같고.
히 : 일이 그런 식이면 괜찮을 지 모르겠는데. (웃음) 하지만 정말로 둘이 함께 뭔가 하고싶어. 이렇게까지 사이가 좋아진 상황에서 다시 한 번 함께 일을 하면 어떻게 될지에 대해 알고싶기도 하고.
키 : 아, 내가 케야키자카46 MV에 출연하는 것도 괜찮겠다!
히 : 에에에?!? 정말이야? 대박…
키 : 뭐 이렇게 케야키자카 특집 잡지에 내 인터뷰가 실린다는 것만 봐도 내가 케야키자카라는 그룹에 다가가고 있다는 얘기 아니겠어?
히 : 그렇네. 천천히 다가오고 있어. (웃음)
키 : 정말로 다음 MV에 배경으로라도 잠깐 나올 지 몰라!
히 : 아니 아예 후미가 센터에 선다던지.
키 : 에? 둘이서 센터에 딱 서?
히 : 딱 서 버려? (웃음)
키 : 사실은 이렇게 사이 좋으면서도 일부러 외부적으로는 ‘우리 엄청 사이 나빠요’라고 어필 해 본다던지?
히 : 거꾸로 말이지.
키 : 서로 흘긋흘긋 째려본다던지 말이야.
히 : 촬영장 분위기 엄청 살벌하게.
키 : 메이킹 비디오에서도 엄청 살벌하게 연기 해 보는거야. ‘야, 왜 오늘 메이크업 받는 자리가 얘 옆인데.’ 라고 짜증 낸다던지 (웃음)
히 : 그거 엄청 무서운데! (웃음)
키 : 아, 인터뷰에서 이런 바보같은 이야기 해도 되는건가 모르겠네. (웃음) 뭐, 인터뷰라고 일부러 격식 차리면서 이야기 하는 것도 좀 웃기고 하니 그냥 평소처럼 대화를 나눴네.
히 : 응. 정말로 평소같아.
키 : 수다가 끊기질 않지.
히 : 응. 끊기질 않아.
키 : 하지만 오늘은 이쯤 해 둘까? 쌓인 얘기는 다음에 만나서 계속 하자.
히 : 응. 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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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촬영 현장을 떠나 개인적으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히라테와 키타가와의 관계는 유일무이한 관계로 승화되었다. 그런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두 사람. 서로를 처음 만났을 때의 첫인상은 어떠하였는 지가 궁금해졌다.
키 : 처음 만났을 땐 ‘뭔가 대단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했어. 물론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 없고. 처음 만난 게 캐스팅 된 배우들 대면식이었잖아?
히 : 응. 그랬지.
키 : 그 때 히쨩 머리 금발이었지. 일 관계로 염색했다고 했어.
히 : 응. 그 때 마침 금발이었어.
키 : 그래서 ‘쟤 성격 좀 세 보이네’라고 생각했어. (웃음) 하지만 이야기 해 보니 그냥 평범한 10대 소녀더라고. 금전감각도 그냥 평범했고. 하지만 일 얘기만 나오면 갑자기 프로로 돌변하더라고. 자기 의견을 적확하게 표출하며 의견 교환을 한다던지. 그 두 모습 사이의 갭이 정말 너무 귀엽더라고. (웃음) 어른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함께 사진 찍자’며 다가오는 모습을 보면 그냥 그 나이대의 소녀이기도 하고 말이지.
히 : 갭모에라니… 그럼 이번엔 내가 후미의 첫인상을 이야기 해 볼게. 음… 어떤 이미지였더라… 사실 아마도 너무 긴장해서 후미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 했던 것 같아. 나 낯가림이 엄청 심하거든.
키 : 응. 실제로 눈이 마주친 게 2~3번 뿐이었으니까. 계속 자기 무릎만 보고 있었어.
히 : 응. (웃음) 시선은 아래로 떨어뜨린 채 어떻게 하면 좋을 지 몰라서 헤맸어. 일단 인사 하고 자기 소개를 한 뒤에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하는 것 만으로도 벅찼거든. 뭔가 미안한데…
키 : (웃음) 결국 내가 엄청 질문을 해 댔었지? 원작은 읽었니? 만화 좋아하니? 라는 식으로 되게 귀찮게 굴었을거야.
히 : 귀찮게 굴다니. (웃음)
키 : 그 때 성심성의껏 대답 해 줬잖아. 사실 나도 10대 때 이 일을 시작했는데, 처음엔 히쨩이랑 비슷했거든. 회의실 같은 데에 들어가서 선배님들께 인사를 하는 것만 해도 엄청 긴장이 됐고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 지도 몰랐고 말이야. 그래서 히쨩을 보며 ‘지금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 지 갈피를 못 잡고 있구나’라는 건 금방 알겠더라고. 나도 낯가림이 심하다보니 히쨩이 이 분위기를 얼마나 어색하게 생각하고 있을 지도 이해가 됐고. 그래서 역시 내가 언니니까 분위기를 바꾸어 보자 싶었어.
히 : 응. 나도 후미가 낯가림이 심하다는 얘기는 들었어.
키 : 그렇지. 그러니까 나도 꽤 용기 내서 말 건 거라고. (웃음) 내가 언니인데 여기서 낯가림이 심하네 뭐네 핑계 대면 안되겠다 싶었지. 하지만 지금 생각 해 보면 둘 다 낯가림이 심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는 점도 친해진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 둘 다 들이대는 타입이 아니다 보니까 자연스레 마음이 맞았던 것 같아. 사실 누구라도 금방 친해지는 타입도 아닌데다가, 심지어 알게 된 계기가 일 관계면 그 뒤로도 일 관계로만 엮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히쨩이랑은 정말이지 기적적인 타이밍에 만나 좋은 관계를 맺은 것 같아.
함께 시간을 보내는 법, 그리고 함께 해 보고 싶은 것
- 키타가와와 히라테는 상대방에 대해 나이 차이, 몸 담고있는 장르의 차이 등을 넘어 서로를 존경하고 있고 서로에게 자극이 되는 존재라 이야기 해 주었다. 각자 눈코뜰 새 없이 바쁜 가운데에도 서로를 만나기 위해 없는 시간을 쥐어짜 낼 정도라는 두 사람. 함께 해 보고 싶은 일도 잔뜩 있다고 한다.
키 : 영화 촬영이 끝난 뒤에도 자주 만나긴 하지만, 사실 대부분이 잠깐 만나서 식사를 함께 하는 정도라는 게 좀 아쉬워.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간이 훌쩍 지나 있고 말이야.
히 : 그렇지.
키 : 헤어질 때가 되면 ‘지금까지 무슨 얘기를 나눴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야. 하지만 그렇게 만나서 금방 시간이 간다는 건 그만큼 우리가 잘 맞는다는 얘기겠지.
히 : 응. 무조건 그렇지.
키 : 생각 해 보면 15살 이상 나이 차이가 나니까, 일반적으로는 세대차이도 느껴질 법 한데.
히 : 세대차이라… 있으려나? 사실 나 같은 경우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대부분 30대인걸.
키 : 정신적으로 성숙해서 그런 게 아닐까? 이렇게 보면 일반적인 여고생들이 좋아할만한 것들엔 흥미 없어 보이는걸.
히 : 그건 그래. 하지만 ‘가급적 지금 이 순간을 살자’라는 생각은 갖고 있어. 예를 들어 요즘 유행하는 타피오카 밀크티 (※버블티)에 대해 큰 흥미는 없어도 일단 한 번은 마셔 본다던가. 그렇게 하는 건 좋아해.
키 : 나 같은 경우에는 버블티 하나 마시겠다고 몇십분씩 줄 설 엄두조차 못 내는데 말이야. 그러다 보니 편의점에서 파는 것 말고는 마셔 본 적도 없어.
히 : 에! 정말? 그럼 안돼! 얼마나 맛있는데. 꼭 마셔봐. 아, 그래. 다음에 만날 때 사 갈게.
키 : 그렇다면 차라리 함께 줄 서서 사 마시자.
히 : 응! 함께 줄 서서 마시자!
키 : 그러고 보니 요 전에 만났을 땐 나 때문에 미술관에 줄 섰었네.
히 : 그랬지. (웃음)
키 : 우에노에 있는 도쿄도립 미술관이었지? 클림트(※구스타프 클림트. 오스트리아의 상징주의 화가)전 보러 갔던거.
히 : 응. 클림트. 그 땐 입장하는 것 만으로도 엄청 줄 서서 기다렸지.
키 : 심지어 비까지 왔었잖아! 사실 그 때 둘이서 이틀 휴일을 받아서 온천여행 가자고 했었는데 둘이 동시에 이틀씩이나 휴가를 맞출 수 없었지. 하지만 하루 정도는 어떻게든 맞출 수 있어서 이전부터 가고 싶었던 클림트전에 끌고 갔었잖아.
히 : 끌고 갔다니.. 전혀 그렇지 않아! 나도 미술관 좋아하는 걸!
키 : 응. 같이 가자고 했을 때 흥미를 가져 줘서 고마웠어. 미술관에 함께 간 건 그 때가 처음이지?
히 : 같이 식사하는 것 외에 어딘가를 함께 간 것 자체가 그 때가 처음이잖아. 하지만 같이 가자고 해 줘서 정말 좋았어. 정말 멋진 그림도 많았고.
키 : 정말 대단했지. 특히 누다 베리타스(※벌거벗은 진실이라는 뜻으로 클림트의 대표작 중 하나)라는, 전라의 여성이 그려진 작품이 좋았어. 위아래로 긴 캔버스에 중성적인 여성이 그려져 있고, 여성의 발부분을 뱀이 휘감고 있는 작품 말이야. 우리 둘이 다 좋다고 했던건 ‘언덕이 보이는 정원’이라는 꽃밭 그림이었던가?
히 : 응. 그거 정말 좋았어. 그것 말고도 출입문 근처에 걸려 있었던 ‘헬레네 클림트의 초상’이 좋았어.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여자아이의 옆모습 그림. 정말 좋아서 엽서와 굿즈까지 샀을 정도.
키 : 나도 마음에 드는 것들을 여러 종류 샀는데 알고 보니 둘이 산 게 거의 겹쳤지.
히 : 응. (웃음)
키 : 정말 좋은 자극이었어. 일 면에서도 여러 모로 참고가 되었고. 둘이 서로 ‘이런 세계관으로 MV 찍어보고 싶다’던가 ‘이런 의상 입어보면 어떨까?’같은 얘기를 했잖아.
히 : 응. 했었지. 시간이 모자랄 정도였어.
키 : 그러니까 정말 언젠가 시간 넉넉하게 잡고 온천에서 하루 묵으면서 진득하게 이야기 나누고 싶어.
히 : 응. 가고 싶어.
키 : 그리 멀리 가지 않아도 되니까 자연 속에서 느긋하게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역시 ‘18살짜리가 이런 여행 계획에 찬성하다니, 역시 좀 애늙은이 같은 부분이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드네. (웃음)
히 : 애늙은이 같다? 그런 부분도 있을 지 모르겠네. 하지만 후미랑 둘이서 느긋하게 있고 싶은걸.
키 : 히쨩이랑 간다면 분명 즐거울거야.
히 : 응. 아무나 같이 가는 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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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적인 타이밍에 만난 두 사람, 서로에 대한 인상은?
- 히라테 유리나의 첫 출연작인 동시에 처음으로 주연에 발탁된 영화 ‘히비키’가 개봉한 지 10개월여가 지났다. 본작에서 주인공인 아쿠이 히비키를 연기한 히라테는 아이돌로서 뿐 아니라 배우로서도 일약 큰 주목을 받으며 ‘제 42회 일본 아카데미상’ 신인 배우상 및 ‘제 28회 일본 영화 비평가 대상’ 신인 여우상을 수상하는 등 큰 성과를 내는 동시에 스스로도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 뿐 아니라 히라테는 이 작품에서 만난 동료 배우와 ‘유일무이’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깊은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 동료배우는 다름 아닌 극중에서 히비키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여주는 편집자 하나이 후미 역할을 맡은 키타가와 케이코이다. 영화 촬영이 끝난 뒤에도 서로를 부를 땐 영화 캐릭터의 애칭을 딴 ‘히쨩’, ‘후미’라고 부른다고 하는 두 사람은 지금까지도 거의 매일같이 연락을 주고받고, 시간이 될 때면 만나서 시간을 보낼 정도라고.
본지는 그런 두 사람에게 ‘히비키’ 프로모션이 끝난 뒤 처음으로 대담 특집을 제의하였다. 공적인 자리에 함께 하는 것은 10달만이라 하는 두 사람에게 ‘처음 만났을 때 느낀 서로의 첫인상’부터 ‘사적인 자리에선 어떤 사람인지’, ‘일을 대하는 자세’, ‘앞으로 함께 도전 해 보고 싶은 일’, 그리고 ‘서로에게서 받은 영향’ 등에 대하여 질문을 해 보았다.
키타가와와 히라테가 개인적으로 단둘이 만났을 때 처럼 편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진 이번 대담동안 ‘거리가 가까운 사람들이기에 이해 할 수 있는’ 일종의 ‘운명적인 관계성’을 느낄 수 있었다.
키타가와 케이코 (이하 ‘키’) : 이렇게 공적인 자리에서 함께 취재를 받는 건 10달만인가…
히라테 유리나 (이하 ‘히’) : 사실 개인적으로는 자주 만나니까 이렇게 새삼스럽게 대하는 게 좀 어색한데. 당장 전에 만난 게 지난주였고.
키 : 아까 전에 사진 촬영 할 때도 뭔가 좀 어색했지?
히 : 응. (웃음) 그래서 오늘 취재는 어떻게 응해야 할 지 갈피가 안 잡히더라고.
키 : 사실 우리가 이렇게까지 친해졌다는 거, 생각 해 보면 좀 신기하지 않아?
히 : 응. 신기해.
키 : 물론 영화에서 맡은 역할이 있으니 그 영향도 있겠지만 말이야. 히쨩이 천재 소설가 아쿠이 히비키 역할이었고, 나는 담당 편집자 하나이 후미 역할이었으니까. 후미는 히비키가 천재라는 점에 대해 확신을 갖고 오래 전부터 주목 해 왔고, 그만큼 히비키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잖아. 촬영이 시작 된 이후로는 히쨩 본인이 내게 있어 그런 존재로 느껴지게 되었고. 그래서인지 처음부터 역할에 몰입이 잘 되었지.
히 : 그렇게 생각하면 분명 역할이 끼친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겠네.
키 : 둘이 함께 나오는 장면이 많았기에 함께 시간 보내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있을거고. 지금 생각 해 보면 정말로 좋은 추억이야.
히 : 응. 후미가 없었더라면 나는 촬영 끝까지 버티지 못 했을거야.
키 : 그렇게 보면 처음에 친해지게 된 계기는 역할 때문이라 생각하거든. 그런데 이렇게 그 후로도 계속 친하게 지낸다는 게 좀 신기해. 사실 나만해도 여러 작품을 찍었지만 함께 나온 동료들과 이렇게까지 친해지는 게 흔한 일은 아니거든. 작품이 끝날 때면 서로 친해져서 ‘또 만나자’고 이야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서로 바쁘다 보니 다시 만날 기회를 만든다는 게 쉽지 않거든. 하지만 히쨩은 좀 달라. 실제로 시간을 내서 만나고 있잖아.
히 : 응.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꼭 만나네. 연락은 매일 주고받고.
키 : 이야기 하다보면 어느 사이엔가 다음 날이 되어 있고, 그 뒤로도 계속 이야기가 끊기지 않는 경우가 많지.
히 : 그렇지. 정말로 끝 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아. 신기할 정도로.
- 처음엔 극중 히비키’와 ‘후미’의 관계에 영향을 받아 가까워 진 두 사람.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어느 사이엔가 특수한 것이 되어 있었고, 그 관계의 특수성은 본인들 스스로도 말로 다 옮기지 못 할 정도로 특별한 것이었다.
키 : 가끔 ‘키타가와상에게 있어 히라테상은 어떤 존재인가요?’라는 질문을 받는데,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 지 모르겠어.
히 : 그렇지. 나도 같은 질문을 가끔 받는데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모르겠더라고.
키 : 절친이라 하기엔 역시 나이 차이가 꽤 나니까 조금 이상해 보일 것 같고, ‘가장 친한 사람’이냐 하면 그렇게 표현하기는 좀 안 맞는 것 같고 말이야. ‘가장 친하다’라고 하면 사실 거기서 끝이잖아. 뭔가 굉장히 가볍게 느껴지거든.
히 : 그러고 보니 아키모토(야스시)상은 ‘미녀 자매’라고 하시던데.
키 : 아, 그거 괜찮네!
히 : 그래? (웃음) 하지만 사실 난 ‘미녀’ 소리 들어 본 적 거의 없는데.
키 : 그럴리가. 히쨩같은 아이 좀처럼 없는걸.
히 : 음… 아무래도 ‘자매’는 좀 안 맞는 것 같아. 아무리 생각해도 딱 맞는 단어가 안 떠오르는데.
키 : 어떤 얘기도 할 수 있는 존재인데다가 숨기는 것도 없고. 무슨 일이 생길 때면 ‘상담’이라 하기엔 좀 안 맞을 지는 모르지만 누구보다 먼저 이야기를 해 주는 그런 관계지.
히 : 평소에도 근황보고 같은 거 자주 하고.
키 : 그렇지. 그 뿐 아니라 서로 마음 속 이야기도 터놓고 얘기 하잖아. 히쨩같은 경우 나보다 어리긴 한데 솔직히 이야기 하고 있으면 나보다 어린 사람이랑 이야기 나눈다는 생각이 안 들어. 히쨩이나 나나 ‘표현 하는 일’에 연관된 사람들이잖아? 그런 점에서 보면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나누기 때문에 때때로 히쨩이 아직 18살이라는 사실을 잊곤 해.
히 : 우후후
키 : 사실 나 히쨩을 존경하거든. 사실 서로 본업은 다른 분야이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된다고 생각하고.
히 : 분명 그런 점은 있네. 우리 둘의 본업이 같은 분야였다면 지금 같은 관계는 쌓지 못 했을 지도 몰라.
키 : 나 같은 경우는 히쨩을 보며 엄청 자극을 받아. 한 번 만날 때 마다 최소 한두번은 깜짝 놀라게 되거든. ‘아, 이 아이는 이런 생각을 갖고 있구나’ 라며 감탄하게 돼.
히 : 어? 정말?
키 : 그래. 히쨩 같은 경우 주관이 뚜렷하잖아. ‘이 부분은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던가 ‘이 곡은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라던가. 이야기를 하다보면 히쨩 자신이 어떤 것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런 자신의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제대로 전하려 한다는 점이 잘 느껴져. 나같은 경우 연기가 본업이잔아? 그런데 ‘이 역할은 이렇게 연기해야지’라고 나 스스로 생각해 둔 게 있다 해도 감독님이 ‘이 역할은 이렇게 연기 해 달라’고 하면 감독님 지시에 맞추어 연기를 바꾸곤 하거든. 물론 이렇게 상황에 맞추어 연기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면 중요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가 생각한 것을 다른 이들에게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는 마음을 잊지 않는 점 역시 중요하다 생각하거든. 최근 들어 자주 생각하는 게 있는데, 다름 아니라 ‘나도 내일부터는 히쨩같은 마음가짐으로 연기에 임하자’라는 거야.
히 : 그래?
키 : 요 전에 히쨩을 만나고 나서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 했던가? 어쩌면 그 직전에 만났을 때 였을지도 모르겠다. 왜, 함께 토마토 스키야키 먹었던 때.
히 : 아, 이래저래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을 때구나.
키 : 히쨩이 하는 얘기들을 듣고 있자면 나 자신도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 나 역시도 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열정이 넘쳤었는데 어느 사이엔가 정해진 규칙에 익숙해지고 하다보니 그런 열정을 잊고 있었거든. 히쨩은 그런 초심을 일깨워 줘.
히 : 나도 후미랑 이야기 하다보면 여러 모로 자극을 받아. 안심이 되기도 하고. 후미 같은 경우엔 일과 관계된 일 뿐 아니라 대부분의 면에서 말이 잘 통하거든. 특히 연기라는 부분에서는 후미의 프로페셔널한 면에 느끼는 점도 많고. 나 역시 후미가 존경스러워.
키 : 이렇게 보면 서로가 서로를 존경하는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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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막 ‘미츠모토 저택 객실’
객실 가운데에 놓여 있는 테이블 주변에 쥰케이, 쥰이치, 마이, 타도코로, 소지로의 아들인 타카미, 모리타 교수가 서서 환담을 나누고 있다. 마후유는 메이드 복장으로 음료를 나르고 있다. 테이블 위에는 히라노야의 다이후쿠쵸와 미사가 기입한 복식부기 장부가 펼쳐져 있다.
쥰이치 : 이노우에 자작이 쭈뼛대며 돌아가는 모습이라니! 모리타 교수님도 그 장면을 보셨어야 했는데 말이죠. 그리고 마이님의 늠름한 모습도 꽤 멋졌고요.
모리타 : 그거 볼 만 했겠군요.
마이 : 어머, 무슨 말씀을. 저는 그렇게 ‘늠름한’ 사람이 아닌걸요.
타카미 : 저도 보고 싶었습니…
타카미의 말을 끊기라도 하듯 소지로가 미사를 이끌고 객실 안으로 들어왔다. 미사는 새빨간 드레스를 입고 있다. 타카미의 누이의 드레스였다.
모리타 : 참으로 아름답군요.
쥰케이 : 복식 부기의 여신이라 해도 손색이 없겠군.
쥰이치 : 하카마 차림보다 이런 옷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네요.
마이 : 옷이 날개라고 하잖아요.
마후유 : 미사상만 예쁜 옷 입고… 치사해요. 왜 난 메이드 복장인데 미사상은 드레스인가요?
미사는 쑥쓰러운 듯 어색하게 웃으며 소지로의 손에 이끌려 객실 중앙까지 걸어갔다.
쥰케이 : 복식부기의 여신이여, 이 쪽은 테이코쿠대학 교수인 모리타 교수일세.
모리타 : 처음 뵙겠소. 잘 부탁하오.
모리타는 그렇게 인사를 하며 한 쪽 무릎을 꿇더니 비단 장갑을 낀 미사의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마후유 : 미사상 치사해요.
마이 : 옷이 날개라니까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예요.
소지로 : 이 쪽은 내 아들인 타카미일세. 타카미, 이 쪽은 이번에 복식 부기라는 것을 발명한 미사양이다.
타카미는 미사를 향해 가볍게 목례를 했다.
소지로 : 타카미, 지금 그 태도는 뭐냐. 숙녀에게 실례를 범하는 것 아니냐. 당장 제대로 인사 하지 못해?
쥰이치 : 부끄러워 하는 것 같은데요.
갑자기 모리타가 미사의 앞으로 다가왔다.
모리타 : 아까 전에 쥰이치군, 쥰케이님께서 자네가 발명했다는 복식부기라는 것에 대해 말씀 하시더군. 내가 가르치는 전공 과목이 상법이다 보니 전 세계의 장부 기입법에 대해 연구를 했네만, 자네의 그 ‘복식부기’ 비슷한 것도 본 적이 없어.
미사 : 역시 여기는 복식부기가 없는 세계구나…
‘아무래도 여기는 평행세계가 맞나봐. 언젠가 비슷한 얘기를 읽은 적이 있어. 우리가 사는 세계는 무수한 평행세계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던가? 그나저나 어쩌다 이런 세계로 들어 오게 된 거지?’
쥰케이 : 복식부기의 여신양 뭘 그리 인상을 쓰고 있나. 자, 자 다들 잔을 들게. 우선 건배부터 하세나.
쥰이치 : 복식부기의 ‘여신’이라… 아무리 봐도 복식부기 ‘소녀’가 더 어울리는 것 같은데.
마후유 : 미사상 나이를 봐선 ‘소녀’라고 하긴 힘들죠. 뭐, 저도 그렇지만…
‘아직 소녀 소리 들어도 될 것 같긴 한데 말이지…’
쥰케이 : 그래? 내가 보기엔 미사양에게는 여신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말이야. 뭐, 그렇다면 젊은이들의 의견을 따를까? 자 그럼 우리의 ‘복식부기 소녀’를 위하여!
건배가 끝난 뒤, 미사는 잔에 담긴 샴페인을 원샷했다.
일동 : 야, 술 시원시원하게 잘 마시네!
그런 와중에 타카미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다.
쥰케이 : 우리의 복식부기 소녀는 술도 잘 마시는구만.
미사 : 그렇지도 않아요.
마후유 : 미사상만 즐기고… 치사해.
미사 : 마후유상도 한 잔 할래?
소지로 : 메이드가 술을 마시면 쓰나. 일이나 하게.
마후유 : 네. 일 할게요.
마후유는 빈 술잔을 들고 부엌쪽으로 힘 없이 걸어갔다.
쥰이치 : 아, 미사양. 미사양이 기입한 복식 부기가 히라노야의 재판에서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을 지에 대해 모리타 교수님께 여쭤보는 건 어떨까요. 때마침 모리타 교수님은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상법학자시고 말이죠. 교수님께서 인정하신다면 재판도 쉽게 이길 수 있을 겁니다.
쥰케이 : 타도코로 점장에게 부탁해서 다이후쿠쵸와 자네가 적은 복식부기 장부를 빌려 왔네.
쥰케이는 그렇게 말 하면서 테이블 위에 펼쳐진 장부를 가리켰다.
마이 : 어떻게 해서든 그 야만스러운 재무장관 코를 납작하게 해 주고 싶어요. 그런 작자가 귀족이라니… 왕족의 일원으로서 수치스러워요.
미사 : 저도 동감입니다. 그 자는 정말이지 악독한…
쥰이치 : 우리 복식부기 소녀는 할 말은 하는 성격이군요.
모리타 : 이 재판의 쟁점은 참으로 간단한 것입니다. 바로 ‘빌려 준’ 것인가 ‘빌린’ 것인가라는 점이지요. 하지만 차용증에 ‘히라노야 상점이 이노우에 자작에게 돈을 빌렸다’고 되어 있는 한, 어지간한 증거로는 이기기 힘들 겁니다. 뭐, 귀족을 상대로 돈을 빌려 줄 때는 ‘빌렸다’고 거짓말을 하는 풍습이 있다는 것 정도는 저도 잘 아니까 어떻게든 될 것 같기도 합니다만…
쥰케이 : 그렇다면 미사양에게 부탁해서 히라노야의 최근 거래를 전부 복식부기로 기록 해 보는 것은 어떨까?
모리타 : 사실 저도 지금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던 차입니다. 이노우에 자작과 히라노야 사이에 문제가 생긴 게 반년쯤 전이니,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최근 1년간의 거래를 전부… 그 뭐라 했지요? 분개라고 했던가요? 그 방법을 이용해서 기록 해 보는 게 좋을 듯 싶습니다. 이 ‘분개’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계정과목’간의 연동과, 같은 사안에 대하여 여러 번 확인하는 ‘복식’이라는 특성을 활용하면 알기 쉽겠지요. 다시 말 해 이노우에 자작과의 돈거래를 제외한 모든 거래의 내역, 음… 돈을 빌려주거나 되돌려 받거나 하는 거래 내역과 현금 잔고가 아귀가 맞는다면 문제는 이노우에 자작과의 거래 뿐이겠지요. 그러니 이노우에 자작과의 거래 금액과 현금 잔고를 비교 해 보면 돈을 빌린 것인지, 빌려 준 것인지를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쥰이치 : 아! 그렇네요! 복식으로 거래를 기록하면 모든 계정과목이 연동되니까 어떤 거래 내역이 사실과 다를 경우 반드시 현금 잔고와 맞지 않게 되니까요!
마이 : 대체 무슨 말씀들을 하고 계신 건지 모르겠네요. 쥰이치님은 전부 이해가 되시나요?
쥰이치 : 아, 저도 전부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이 복식 부기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장부 기입방식과는 전혀 다르네요. 모든 ‘거래’를 원인과 결과로 나누어 ‘분개’ 하나로 표현을 한다는 점이 재미 있군요.
소지로 : 개인적으로는 거래를 ‘차변’과 ‘대변’으로 나누어서 보기 쉽게 만든다는 점이 마음에 드네만.
쥰케이 :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저 역시 이 방식의 가장 큰 장점은 다름 아닌 ‘보기 쉽다’는 점에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사실 지금까지의 방식은 솔직히 보기 힘들었지요. 주판을 이용해서 검산을 해야만 하는 방식이었기에 장부만 봐서는 어느 것이 현금 잔액인지도 알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복식 부기는 분개… 복식부기 소녀의 표현에 따르자면 ‘거래의 일기’를 이용해서 하나의 거래를 ‘차변’과 ‘대변’으로 나누어 깔끔하게 알 수 있게 되어 있지요. 그리고 이 ‘분개 내역’ 들을 하나로 정리한 ‘총 계정원장’은 매달 행해진 거래의 대차(빌리고 빌려줌)의 총 합계를 바로 알 수 있도록 월별로 기록하게 되어 있잖습니까. 이런 발상이야말로 앞으로의 장부 기입을 바꿀 한 수라 생각합니다.
모리타 :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앞으로는 장부 기입을 함에 있어 단순히 상인들이 자신의 매상을 관리하기 위해서 기입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 상인들에게 투자한 자본가들에게 ‘당신이 투자 해 준 재화는 이렇게 쓰이고 있다’라고 보고 할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할 테니까요. 저 역시도 오랜 기간동안 그런 새로운 장부 기입 방식에 대해 궁리 해 보았지만, 미사양이 개발한 이 방식이야말로 앞으로의 변화에 가장 걸맞는 방식이라 생각이 듭니다. 자, 여러분 위대한 복식부기 소녀를 위해 건배 합시다!
모리타의 말에 모두들 건배를 외쳤다. 건배가 끝난 뒤, 미사가 다시 한 번 샴페인을 원샷하자 그 모습을 본 모두가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냈다.
모리타 : 제가 요즘 생각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바로 ‘주식회사법’이라는 것인데요, 다름 아니라 자본가들로부터 막대한 투자를 받아 공업을 중심으로 한 각종 산업을 육성하는 방식입니다. 사실 잉글랜드가 이런 식으로 ‘리미티드 파트너십’ 계약을 발전시켜 막대한 자본을 투자받고, 그 투자를 원동력으로 산업혁명을 일으켜 세계 최강대국이 되지 않았습니까. (※여기서 말하는 ‘주식회사법’은 말하자면 ‘회사법’을 뜻함. ‘리미티드 파트너십 계약’이란 투자자와 기업가를 이어주는 계약을 뜻하며, 이 ‘리미티드 파트너십 계약’이 산업혁명을 일으켰다는 것은 실제 역사와는 다른 이 소설의 설정) 우리나라 역시 그런 잉글랜드를 따라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주식회사법을 하루바삐 가결시켜야만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한 눈에 보면 바로 알 수 있는 장부’라고 하는 것을, 다시 말 해 ‘주식회사를 만드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요소’를 발견하였습니다. 이 기념비적인 날을 위해 한 잔 더 하시죠!
모리타의 말에 모두들 다시 한 번 건배를 했지만, 미사는 ‘이 이상은 못 마신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복식부기에 대해 이렇게 기뻐 해 주니 나도 기쁘긴 한데… 어째서 저렇게까지 복식부기에 감동 하는 거지?’
미사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마후유가 새로운 음료가 실린 쟁반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마이 : 어려운 얘기들이라 사실 어떤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복식부기라는 것이 있으면 얄미운 재무장관을 혼쭐 내 줄 수 있다는 얘기지요?
모리타 : 그렇게 되도록 저 역시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히라노야의 지난 1년간의 거래를 전부 복식부기로 기입해야 하겠지요.
소지로 : 그렇군. 미사양, 어떤가, 해 줄 수 있겠나?
타도코로 : 오너인 히라노님께는 내가 잘 말씀드릴 테니 부디 장부 정리를 해 줬으면 좋겠어. 히라노야를 구한다고 생각하고 해 줘.
미사 :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하겠지만… 재판의 증거가 될만한 장부를 제가 만들 수 있을지…
‘사실 자신이 없는데… 옛날에 있었던 환전상이라 하면 은행 같은 거잖아. 그 거래를 전부 분개 할 수 있으려나…’
마이 : 만약에 가게가 망하면 당신, 일자리를 잃게 되는 걸요.
미사 : 일자리를 잃는 건 곤란한데요. 이번 달에 학교도 졸업하니 제대로 일자리를 잡아야만 하니까요.
쥰이치 : 그러고 보니 미사양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네요. 온가쿠여학원에 다니시나봐요?
미사 : 저기 있는 마후유상과 함께 온가쿠여학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쥰이치 : 그럼 거기서 배우는 건 뭔가요? 노래? 악기?
미사 : 노래를 배웠어요.
쥰이치 : 노래군요. 그거 멋지네요. 어려운 장부 얘기는 이쯤 해 두고 노래 한 곡 들려 줄 수 있나요? 타카미군, 피아노 좀 쳐 줄래? 자네 잘 치잖나. 피아노.
타카미 : 음.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은데. 자, 그럼 미안하지만 난 이쯤에서 실례 하겠네.
그런 말을 남기고 타카미는 방 밖으로 나갔다. 방 안에 남은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타카미의 행동에 말을 잃은 채 타카미의 등만을 바라보았다.
쥰이치 : 저 친구 왜 저러지? 아까 전부터 상태가 별로더니.
소지로 : 내가 미사양에게 저 드레스를 입힌 게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일지도 모르겠군.
마이 : 그러고 보니 그 드레스, 타카코 언니의 드레스지요?
소지로 : 키가 같길래 잘 됐다고 생각했었네만…
마이 : 타카미씨는 아직도 타카코 언니가 폐하의 제 2 왕비로 들어 간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 거겠죠.
미사 : 드레스, 안 입는다고 말씀 드리는 건데 그랬어요…
소지로 : 자네 탓이 아닐세. 너무 신경 쓰지 말게.
‘말이야 쉽지… 신경이 쓰이는 걸. 집안 사정이 굉장히 복잡해 보이네… 아니, 그런 가정 사정 다 빼고 봐도 이 드레스 너무 꽉 조여서 힘들단 말이지. 빨리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싶은데…’
모리타 : 여러분.
축 처진 분위기를 바꾸기라도 하려는 듯, 모리타가 입을 열었다.
모리타 : 이렇게 된 거, 여기서 모의 재판을 한 번 열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재정장관이 이 복식 부기에 대해 어떤 식으로 반론을 할 지 연습도 되지 않겠습니까. 일단 제가 재정장관측 변호인을 할 테니 미사양이 원고측 증인이 되어서 말이죠.
쥰이치 : 교수님 그거 재미있을 것 같네요. 그럼 제가 원고측 변호인을 하겠습니다.
모리타 : 그거 좋군요. 그럼 소지로님, 판사를 해 주시겠습니까?
‘갑자기 재판을 한다고 해도…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미사와 쥰이치, 모리타는 각각 좌우로 갈라섰다. 그 중심에 소지로가 들어 와 섰고, 다른 이들은 조금 떨어져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소지로 : 그럼 지금부터 원고 히라노야, 피고 이노우에 자작의 대부금 사건에 대한 심리를 시작하겠소. 원고측 증인 앞으로 나오시오.
미사는 망설이며 소지로 앞에 가 섰다.
소지로 : 자 그럼 피고측 변호인, 심문을 시작하시오.
모리타 : 증인이 작성한 이 장부를 보아하니 왼쪽 항목에 ‘차변’이라고 적혀 있군요. ‘차변’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증거물 – 총 계정원장>
이노우에 자작
차변 1/1 현금 200,000,000 15 현금 180,000,000
|
대변
1/25 현금 20,000,000 31 잔액 360,000,000
|
합계 : 380,000,000 |
합계 : 380,000,000 |
미사 : 복식 부기에서는 돈을 빌리거나 해서 자산이 증가했을 경우에는 그 내역을 차변에 적게 되어 있습니다.
모리타 : 그렇다면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은데요. 돈을 빌렸(借, 빌릴 차)는데 어째서 ‘자산이 증가’ 한 것이 되나요?
미사 : 그냥 그러기로 되어 있는 건데 왜 그렇게 되냐고 물어 보시면…
모리타 : 원고인 히라노야는 현재 이노우에 자작에게 돈을 ‘빌려 주었다’고 주장을 하고 있지요. 게다가 돈 거래가 있었을 때 양 측이 함께 작성한 차용증에는 ‘이노우에 자작이 히라노야에게 돈을 빌려 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증거라고 이 장부를 제출 하셨는데, 일단 이 장부의 1월 1일의 거래 내역을 보도록 하지요. 현금 2억엔이 적혀 있는 것은 ‘차변’ 입니다. 이노우에 자작의 이름이 적혀 있고 ‘차변’ 다시 말 해 빌린 내역에 2억엔이 적혀 있다는 것은 히라노야의 주장과는 반대로 히라노야가 이노우에 자작에게 2억엔을 ‘빌렸’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말 그대로 이노우에 자작에게 돈을 ‘빌렸’기 때문에 ‘차변’에 기입을 한 거죠. 제 말이 틀립니까? 증인?
미사 : 차변이라는 표현에 빌릴 ‘차’자가 사용되기는 합니다만, 그 차변이라는 표현이 문자 그대로 ‘빌린 돈’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생각 해 보니 나도 왜 저렇게 헛갈리는 표현을 쓰는 지에 대해 생각 해 본 적이 없었네. 학교에서 배울 때도 일단 무작정 외우면 된다고 했었고… 생각 해 보니 이상하긴 하네… 자산이 증가했는데 왜 차변에 기입하는 걸까? 음… 이 분개는 사람 한 명 한 명에 대한 분개니까… 아, 어쩌면 이런 이유일지도!’
미사 : 정확한 설명이 될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경우에는 분개를 할 때 계정항목으로 해당 인물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빌린/빌려 준’ 주체는 히라노야가 아니라 해당 인물이라는 것이지요.
쥰이치 : 재판장님! 저 말이 맞습니다. 바로 영어에서 말하는 SV 문형이라 생각하시면 될 것 같네요.
‘맞아! 그거야! …아마도…’
미사 : 맞습니다. 영어의 주술관계인 SV문형을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이노우에 자작이라는 특정인의 이름이 ‘주어(S)’가 되는 것이기에 이 장에 적혀있는 행동(V)들은 전부 이노우에 자작의 움직임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 경우, 돈을 빌린 것이 이노우에 자작이고, 돈을 빌려서 자산이 증가 한 것도 이노우에 자작이므로 차변’, 다시 말 해 ‘빌린’ 측에 2억엔을 기입하는 것이지요.
모리타 : 아무리 생각해도 그 말은 궤변 같군요. 말장난을 하는 것 뿐, 히라노야의 주장을 속시원하게 증명 해 주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진실을 가리기 위한 얄팍한 술수에 불과합니다!
‘아닌데…’
모리타 :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히라노야가 이노우에 자작에게 돈을 빌렸기에 ‘차변’에 기입했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차용증과도 앞뒤가 맞고 말입니다. 자, 증인 이 말에 반론이 가능합니까?
‘아… 말꼬리나 잡고 말이지. 제대로 상대 해 줘야겠어.’
미사 : 하지만 그 말씀대로라면 다른 계정항목과 비교 해 보았을 때 모순이 생깁니다. 분개 장부를 보시면 아실 수 있는데요, 분개를 할 때 대(빌려줄 대 貸)변에 쓴 ‘현금 2억엔’이라는 것은 다시 말 해 히라노야에게 있어 현금이라는 자산이 2억엔 어치 ‘줄어들었다’는 얘기죠. 다시 말 해 총 계정원부에서 ‘현금’ 항목을 찾아 보시면 2억엔이 줄어들어 있는 상태일 것이고, 현금 잔액 역시 2억엔 부족한 상태일 거예요. 돈을 빌렸는데 현금이 줄어들었다면 그것이 모순 아닐까요?
※참고 : 분개 장부의 내역 - 1/1 이노우에 자작 200,000,000 / 현금 200,000,000
모리타 : 백보 양보해서 실제로 현금이 줄어 있는지 아닌 지 알 방법이 있나요? 장부야 그냥 고치면 되는 것이고.
미사 : 현금이라는 것은 실제로 히라노야에 보관중인 실체가 있는 재산이므로 장부만 조작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죠. 상식적으로 그냥 히라노야 금고에 들어 있는 돈을 세어 보면 될 일 아닌가요?
쥰이치 : 판사님. 히라노야에 실제로 현금이 얼마나 있는 지에 대해서는 증인이 책임을 질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소지로 : 변호인의 말에 일리가 있군. 실제로 현금이 얼마나 있는 지까지 증인이 책임을 질 필요는 없지. 피고측 변호인, 이 점을 고려 하여 심문을 이어 가시오.
모리타 : 알겠습니다. 자 그럼 다시 장부로 이야기를 돌려 보지요. 아까 특정 인물을 계정항목으로 사용 한다는 이야기를 했었지요? 증인의 논리에 따르면 이번 대부금에 있어서는 특정 인물, 다시 말 해 이노우에 자작을 계정항목 삼아 분개를 하였기에 주어가 이노우에 자작이 되는 것이고, 그런 맥락에서 이노우에 자작의 이름을 ‘차변’에 쓴 것은 ‘이노우에 자작이(주어) 빌렸다(술어)’라는 의미가 된다는 얘기인데요. 제가 이해 한 바가 맞나요?
미사 : 네. 이번에는 대부금이지만, 다른 거래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이해 하시면 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이노우에 자작님이 히라노야 개화당에서 외상으로 커피를 1만엔 어치 사 가셨다고 치죠. 이 거래를 분개한다면 차변에는 ‘이노우에 자작’이라는 계정항목으로 1만엔을, 대변에는 ‘매상’이라는 계정항목으로 1만엔을 적어서 분개 할 수 있어요.
※참고 : 이 경우 분개 장부의 내역 - ?/? 이노우에 자작 10,000 / 매상 10,000
모리타 : 돈거래 뿐 아니라 외상 거래 역시 ‘차변’에 이노우에 자작의 이름을 적는다는 얘기군요.
미사 : 그렇죠. 상품을 거래했을 때 생긴 외상 역시 차변에 적습니다. 대변을 보면 이번 거래로 발생한 이익이 ‘매상’이라는 계정항목으로 기입이 되어 있으니, 이번 거래를 통해 히라노야가 1만엔 어치 매상, 다시 말 해 자산의 증가가 있었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지요. 그러므로 이 경우, 비록 ‘차변’에 이름이 적혀있긴 해도 이 1만엔이 이노우에 자작의 것이 아닌 히라노야의 것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머리를 쓰는 건 오랜만인걸…’
모리타 : 그건 그것대로 또 이상하군요. 원래 ‘대변’에는 자산이 감소한 내역을 쓰는 것이라 하지 않았나요? 어째서 ‘매상’을 대변에 쓰는 것이지요? 앞뒤가 안 맞지 않나요?
미사 : 네. 기본적으로는 ‘자산이 감소한 내역’을 대변에 씁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수익이 증가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매상’이라는 것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4장을 참조)
모리타 : 그건 궤변 아닌가요. 재판장님, 증인은 지금 이 복식부기라는 것에 대해서 ‘이 경우에는 이렇고 저 경우에는 저렇다’라며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런 증언은 증거로서 효력이 없습니다!
‘그런 게 아닌데… 이 사람 너무하는걸…’
소지로 : 그 말도 일리가 있군. 자, 증인. 그러면 지금 이야기가 복잡해 지는 것이 특정 인물의 이름을 계정항목으로 사용해서 주어가 어떻다 하는 말이 나오는 것 같은데, 아까 전의 외상 거래를 인명 계정항목을 사용하지 않고 분개 할 수는 없는거요?
미사 :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대신 ‘외상 미수금’이라 적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 : 이 경우 분개 장부의 내역 - ?/? 외상 미수금 10,000 / 매상 10,000
모리타 : 자 그럼 ‘외상 미수금’을 갖고 분개를 한다고 생각 해 보죠. 이 경우는 당연히 ‘외상 미수금’이 주어겠지요? 아까 논리대로라면 ‘외상 미수금’이 1만엔을 빌렸다는 얘기가 되는데, 이게 말이나 되는 얘긴가요?
미사 : 외상 미수금은 사람이 아니니까 돈을 빌리거나 하지 않지요.
모리타 : 그렇다면 더 이상하지 않나요? 외상 미수금은 ‘사람’이 아니니 아까 말한 영어의 SV구조가 적용되지 않음에도 미수금의 증가를 왜 ‘차변’에 쓰는 거죠? 아까는 ‘히라노야가 아니라 이노우에 자작이 주어이기에, 차변에 이노우에 자작을 써도 된다’고 하더니?
미사 : 아.. 그건… 확실하진 않지만, 원래 복식 부기는 특정 인물의 이름을 계정항목으로 사용 하는 데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 해요. 그 때 왼쪽은 차변, 오른쪽은 대변이라는 원칙이 정해져서 이후에 여러모로 계정항목의 종류가 늘어난 뒤로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모리타 : ‘아닐까 싶다’고요? 재판장님 이건 말도 안 됩니다. 항상 엄정하게 관리되어야 할 장부가 ‘이럴 땐 이렇’고 ‘이 계정항목은 이렇’고 ‘아마도 예전에는 이랬을 것이다’ 라는 식으로 변명에 불과 해 지면 증거로서의 효력이 없는 것 아닐까요?
쥰이치 :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것에 예전에 쓰이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닙니다!
미사 : 복식부기라 함은 기본적으로 차변과 대변이라는 두 항목만으로 모든 거래를 도식화 하는 방법입니다. 그렇기에 엄정한 규칙이 있으며, 제 편의에 맞추어서 이렇게 해석했다 저렇게 해석했다 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리타 : ‘엄정한 규칙이 있다’고 했나요? 지금?
‘아… 지금 여기서 자세히 설명 하라 하면 곤란한데…’
쥰케이 : 재판장님.
쥰케이가 갑자기 소지로를 불렀다.
쥰케이 : 분위기가 과열 된 듯 싶으니 잠시 휴식시간을 갖는 것은 어떨까요? 복식부기 소녀도 지쳐버린 듯 하고 말이죠. 지쳐버린 미녀를 보는 건 마음이 아프군요.
‘다행이다… 쥰케이님은 역시 신사야.’
소지로 : 그렇군요. 그럼 잠시 휴식 시간을 갖도록 하지요. 저도 좀 피곤하군요. 모리타 교수, 괜찮겠지?
모리타 : 물론이죠. 너무 몰아붙인 것 같기도 한데, 너무 상심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미사양.
미사 :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긴장한 탓인가 너무 피곤한데…’
휴식시간이 시작되자 다들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했다.
마후유 : 차변, 대변 같은 두 가지 화제만으로도 이렇게까지 달아오를 수 있군요.
쥰이치 : 이것저것 설명하는 것도 귀찮은데 그냥 ‘왼쪽이 대변(빌려 준 것)입니다’라고 얘기 해 버리면 되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정말로 내가 만들어 낸 개념이라면 그래도 되겠지만, 이건 전 세계 공통의 기준이라서요… 엄밀히 말하자면 차변은 Debit의 번역어, 대변은 Credit의 번역어란 말이지요…’
미사 : 왼쪽이 차변, 오른쪽이 대변이라는 건 정해진 거라서요…
제 3막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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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카에데는 기숙사 정문을 뛰어 들어갔다.
맨발인 채였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교무실에 있을 터인 미야가와 선생님을 부르러 간 것이다.
“선생님! 선생님!”
카에데는 교무실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왜 그러니?”
교무실 문이 열리고 미야가와 선생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다.
카에데는 그런 선생님의 표정을 보며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 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카에데는 주저하면서도 천천히 일어난 일에 대하여 설명하기 시작했다.
설명이 끝난 뒤, 카에데와 미야가와 선생님, 그리고 학교 수위는 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아까 전과 마찬가지로 현장에는 아무런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아스미가… 방 창문으로… 뛰어내렸어요. 정말이에요! 거짓말이 아니라고요!”
카에데의 말을 들은 선생님과 수위는 서로 얼굴을 한 번 마주보고는 입술을 삐죽였다.
“사이죠상 방이라…”
선생님은 수상쩍다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카에데는 문득 고개를 들어 아스미의 방을 바라보았다. 아까까지 열려 있던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펄럭이던 커튼 역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방안을 가리고 있었다.
“어…?”
대체 누가 창문을 닫은 걸까…
닫은 게 아니라면 혹시…
“야마무로상, 일단 사이죠상 방으로 함께 가 볼까요?”
미야가와 선생이 말을 이었다. 카에데 역시 그 말에 동의하고 아스미의 방 앞으로 갔다.
아스미의 방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별달리 이상이 있었던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미야가와 선생은 방 문을 노크하며 아스미를 불렀다.
“사이죠상, 방 안에 계신가요?”
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미야가와 선생이 몸을 돌려 카에데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읽어 낼 수 없는 복잡미묘한 표정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문 손잡이가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방 문이 열리고, 아스미가 고개를 내밀었다.
“무슨 일 있나요?”
살짝 짜증이 난 것 같은 표정이다.
“아, 아니에요. 방 안에 있었다면 다행이네요.”
“네?”
미야가와 선생과 대화를 끝낸 뒤 돌아서는 아스미의 시선과 카에데의 시선이 한 순간 마주쳤다. 카에데를 향한 아스미의 시선은 마치 수상한 무언가를 보고 있는 듯 차갑기만했다.
“그럼 쉬세요.”
아스미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일단 오늘은 일찍 자고 내일 천천히 이야기 해 봅시다.”
미야가와 선생은 카에데에게 이 한 마디를 남기고 교무실로 돌아갔다.
카에데는 지금의 상황에 할 말을 잃고 어쩔줄 모른 채 멍하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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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평소와 다름 없이 아침이 밝았다.
카에데는 무거운 마음으로 교실로 향했다. 통학이라 해 봤자 기숙사에서 교실까지 가는 것 뿐이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함께 위치한 프리지아 여학원의 부지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겠지만- 매우 넓었다.
누군가가 갑자기 카에데의 축 쳐진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좋은 아침! 좀 더 서두르지 않으면 지각한다!”
고개를 돌려 보니 아스미가 서 있었다. 평소와 다름 없는 그녀의 모습에 카에데는 뭐라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멍하니 아스미의 뒷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아스미가 갑자기 뒤돌아 보며
“나 먼저 간다?”
라고 말을 걸어왔다.
카에데는 미소 지으며 다시 등을 돌려 교실로 달려가는 아스미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돌렸다.
교실에서도 아스미의 모습은 변함 없었다. 평소처럼 유즈키나 호노카와 명랑하게 수다를 떠는 아스미의 모습에서는 어제 본 참혹한 모습, 창문 아래 널부러져 있던 모습은 눈꼽만큼도 찾을 수 없었다.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카에데의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것일까, 아스미가 문득 카에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카에데는 다시 한 번 아스미의 시선을 피해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그런 부자연스러운 두 사람의 모습을 히지리가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 하고 있었다.
수업과 부 활동이 다 끝난 뒤, 기숙사에 저녁식사 시간이 찾아왔다.
카에데는 교복을 입은 채 식당에 자리 잡았다. 그녀의 앞에는 밥을 담는 트레이가 놓여 있었고, 트레이 위에는 정갈하게 차려진 저녁식사가 놓여 있었다.
소위 ‘이상적인 식단’으로 평가 받는 1국 3반찬으로 이루어진 메뉴를 앞에 하고도 카에데는 식욕이 생기지 않았다. 양 손은 무릎 위에 올린 채 멍하니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젓가락을 들 기력조차 없는 것 처럼 보였다.
“카에데, 무슨 일 있어?”
사복 차림으로 카에데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미노리가 말을 걸었다.
하지만 카에데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런 카에데의 모습을 보며 미노리는 자세를 고쳐 앉고는 묵묵히 젓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에데가 옆자리를 곁눈질하며 ‘그래도 미노리라면 내 얘기를 믿어주지 않을까?’라 생각 한 순간, 옷을 갈아 입고 온 아스미가 카에데의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아~ 배고파!”
아스미는 그렇게 말하며 밥공기에 담긴 밥을 먹기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왕성한 식욕이었다.
분주하게 밥을 입 속으로 옮겨넣던 아스미가 문득 카에데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 수학여행 가서 찍은 사진말이야, 앨범에 넣었어?”
아스미의 말에 순간적으로 어제 본 참상이 카에데의 눈 앞을 스쳤다.
“…내 말 듣고 있어?”
“아… 응… 아직 안 넣어뒀어.”
허둥대며 카에데가 대답했다. 그런 카에데의 모습을 보며 아스미는
“흐음.. 그렇구나. 아, 그거 안 먹을거야? 내가 먹는다?”
라고 이야기 하며 카에데의 접시에 놓여 있던 고깃덩어리를 집었다.
아스미는 집어 든 고기를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아스미가 고기를 씹는 소리 사이사이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분 나쁜 소리가 섞여 들리는 듯 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진 카에데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에데, 왜 그래?”
카에데는 걱정스러운 듯 묻는 미노리의 말을 뒤로하고 출구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런 카에데의 뒷모습에 아스미와 히지리의 시선이 꽂혔다.
다른 학생들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왁자지껄 떠들며 식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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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으로 돌아온 카에데는 책상 위에 엎드렸다.
어찌저찌 옷은 갈아 입었지만 답답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혼잣말을 해 보지만 당연히 답은 알 수 없었다.
카에데는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사진 어플을 열어 수학여행때 찍었던 사진을 보기 시작했다.
사진들 중에는 잠비마을에서 찍은 사진도 여러 장 있었다.
바람개비 뒤로 유이가 사진을 찍는 장면이 찍힌 사진도 있었다.
‘잠비마을이라…’
마을의 이름은 분명 모리구치인가 하는 남자가 가르쳐 주었었다.
뒤이어 마을 어디에선가 보았던, 짚인형을 손에 들고 있던 소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외에도 작은 사당, 거울, 부적, 바람개비 등 자신들이 우연히 마을에 들어 가 맞닥뜨린 것들이 차례로 머릿속을 스쳤다.
“잠비마을이라…”
카에데는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인터넷 즐겨찾기에 등록되어 있던 ‘잠비마을의 민속과 전승’을 터치했다.
곧바로 예의 그 ‘영상’이 시작되었다.
‘…어?!’
춤을 추는 사람이 쓰고 있는 가면, 그 가면에 붙어 있는 부적이 묘하게 신경 쓰였다. 카에데는 동영상을 잠시 멈추고 화면을 확대시켜 보았다. 자세히 보니 부적에는 어떤 글자가 적혀있었다. 분명 이전에도 같은 영상을 보았을 터인데 갑자기 위화감이 느껴졌다.
조금 더 자세히 화면을 보니, 그 글자는 ‘終, 끝날 종’자를 좌우 반전해서 적은 것이었다.
“끝이라고?”
그 순간 카에데는 깜짝 놀라 침을 삼켰다. 그 글자는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는 글자였던 것이다. 다름 아니라 신사에 있던 작은 사당, 그 안에 붙어있던 글자와 똑같았다.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보아버렸다는 생각이 든 카에데는 황급히 인터넷 브라우저를 닫고 스마트폰을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
‘끝이라는 글자, 그것도 좌우반전… 대체 무슨 의미지?’
아무리 생각 해 보아도 의미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의문은 카에데의 마음에 가시처럼 박혀 찝찝한 뒷만을 남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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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종소리가 들린다.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여러분, 숙제는 잊지 말고 꼭 해 오세요.”
교과서를 덮으며 미야가와 선생님이 말을 맺었다. 미노리의 구령에 맞추어 학생들이 일어섰다.
카에데는 아스미의 모습을 곁눈질 하다 순간적으로 움직임이 늦어버렸다.
전원이 기립 한 뒤,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카에데의 시선은 아스미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카에데의 곁에 미야가와 선생님이 다가왔다.
“야마무로상, 오늘 방과후에 시간 있나요?”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을 하기 위해 잠시 시선을 거둔 그 찰나의 사이에 아스미는 교실을 나서고 말았다.
‘빨리 쫓아가야 되는데’
황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카에데의 팔을 잡는 손이 있었다. 미야가와 선생님의 손이다.
“야마무로상, 정말로 당신이 걱정되어서 그래요.”
미야가와 선생은 다시 한 번 카에데의 손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 선생님의 눈빛은 너무나도 자상해보였다.
“혹시 고민 같은 것이 있거든 꼭 선생님에게 상담 해 주세요.”
미야가와 선생님의 다정한 말에도 카에데의 신경은 온통 아스미에게 집중 되어 있었다. 카에데는 선생님의 손을 떨쳐 내고는 아스미의 뒤를 따라 복도로 뛰쳐나갔다.
저 멀리 어딘가로 걸어가는 아스미의 모습이 보였다. 카에데는 아스미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계단을 올라 가는 것을 보면 화장실을 가려는 걸까?
카에데의 예상대로 아스미는 화장실 문을 열었다.
잠시 후 아스미가 화장실에서 나와 교실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 한 뒤, 카에데 역시 화장실로 들어갔다.
가장 문과 가까운 화장실 문을 열어 보았다. 내부는 전통식 변기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두 번째 화장실은 좌변기가 놓여있다는 것 외에는 마찬가지로 별다른 특이점이 없었다.
그렇다면 마지막 화장실은 어떨까.
다른 두 개의 화장실과는 달리 마지막 화장실은 문을 당겨서 여는 방식이었다. 비단 이 층 뿐 아니라 모든 층이 동일하게 문과 가장 먼 화장실 문은 당기고 나머지 두 개는 미는 문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카에데는 손잡이를 잡고 문을 당겨 열었다.
‘…!!’
좌변기 뚜껑은 내려 간 채였고, 그 뚜껑 위에는 길고 검은 물체…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널부러져 있었다.
머리카락 뿌리 부근에는 모근, 심지어 피부까지도 붙어 있어 끔찍한 모습이었다.
카에데는 자신도 모르게 그 머리카락을 손에 들어 확인했다. 가발 같은 게 아닌 틀림 없는 사람 머리였다.
“…지금 뭐 하는거야?”
갑자기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에데는 깜짝 놀라 튀어 오르듯이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아스미가 서 있었다.
아스미의 표정은 수상한 것을 보는 듯 의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왜 내 뒤를 쫓아 다니는거야?”
아스미는 그렇게 말 하고 혀로 입술을 핥았다. 순식간에 일어 난 일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확실히 이야기를 하던지.”
아스미는 카에데를 추궁하며 몰아붙였다. 뒷걸음질 치던 카에데는 조금씩 화장실 칸막이 속에 고립되기 시작했다.
카에데는 긴박한 상황에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오지 마.”
카에데의 목소리도 점점 커졌다.
“오지 마! 이쪽으로 오지 마! 저리 가 버려!!”
카에데의 절규에도 아스미는 동요하지 않았다.
“카에데, 너 좀 이상해.”
아스미는 그렇게 말하며 카에데의 팔을 붙잡았다.
“카에데.”
“건드리지 마!!!!!”
카에데는 절규하며 아스미를 밀쳐냈다. 그 뒤 생긴 틈을 타 화장실에서 뛰쳐나갔다.
하지만 겨우 화장실을 벗어났다고 생각 한 순간, 카에데의 눈 앞이 캄캄해졌다.
그리고 카에데는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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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카에데의 의식이 돌아왔다.
눈을 뜨긴 했지만 초점이 맞지 않아 모든 것이 뿌옇게 보였다.
잠시간 시간이 지난 뒤,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은 하얀 천장과 거기 설치 된 형광등이었다.
‘여긴 어디지?’
생각 해 보니 침대 위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실에서도 하루 종일 멍하니 있었고, 어제 저녁도 제대로 먹지 않더라고요. 수학여행에서 돌아 온 이후로 계속 상태가 이상했어요.”
아스미의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려 보니 흰 커튼 사이로 아스미와 미야가와 선생님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게… 확실히 평소와는 좀 달랐지.”
미야가와 선생님도 아스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카에데가 정신을 차렸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일까, 아스미가 카에데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스미…”
“아무리 불러도 정신을 못 차리길래 죽은건가 했어.”
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 말이다. 분명 수학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던 버스 안에서 아스미가 했던 말이다. 아스미는 전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음… 뭔가 오랫동안 악몽을 꾼 것 같아.”
카에데의 말에 아스미는 카에데의 머리맡에 다가오며 나직이 속삭였다.
“금방 괜찮아 질 거야.”
걱정스러운 듯 카에데를 바라보는 아스미의 표정은 예전과 다름 없었다.
아스미는 가슴 위에 포개져 있는 카에데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카에데도 자연스럽게 포갰던 손을 풀고 아스미의 손을 꼭 쥐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요 며칠간 계속되었던 신경전은 어느 사이엔가 눈 녹듯 사라지고 없었다.
미야가와 선생님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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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짙게 드리워진 교내에 종소리가 울려퍼진다.
고요한 학교 성당 안에 미야가와 선생이 홀로 앉아있다.
쭉 늘어 선 촛대에 설치 된 양초의 빛이 성당 내부를 따뜻하게 채우고 있었다.
미야가와 선생은 성호를 긋고는 가슴께에서 손을 모으더니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녀의 기도가 어떤 내용인지, 그리고 그녀가 기도하는 대상은 누구인지… 그것은 본인 이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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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았다.
학교 체육관에서는 체육 수업이 한창이었다.
그 날 수업 종목은 농구였다.
한 반을 여러 팀으로 나누어 시합을 하는 형식이었다.
“카에데! 패스!”
아스미의 말을 들은 카에데가 재빠르게 아스미를 향해 공을 던졌다.
카에데의 패스를 받은 아스미는 한 차례 페인트를 섞어 수비를 제끼고는 그대로 점프 슛을 날렸다. 아스미의 손을 떠난 공은 네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결국 시합에서 이긴 것은 카에데의 팀이었다.
“예이!”
아스미와 카에데는 하이파이브를 하며 승리를 자축했다.
“아, 잠깐 얼굴 좀 씻고 올게.”
아스미가 체육관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카에데는 딱 기분 좋을 정도의 나른함을 느꼈다.
아스미와의 관계가 예전처럼 되돌아 간 것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하지만 히지리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아스미를 응시하고 있다는 것까지는 알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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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미는 수돗가로 가기 위해 계단을 올랐다.
먼저 물을 마시러 갔던 반 친구들 네 명이 계단을 내려 오는 것이 보였다.
유이, 키우치 카나, 세키 아즈사, 혼다 쿄코였다.
“걔 졸라 짜증나지 않냐?”
유이가 웃으며 다른 아이들에게 이야기 했다.
“짜증나.”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아 그나저나 아까 그거 봤어?”
“봤어.”
“개 웃기지 않았냐?”
유이의 말을 들은 나머지 셋이 말을 주고 받았다.
얘기만 들어도 유이 그룹이 누군가를 이지메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스미는 그런 이야기들을 못들은 척 하며 유이 그룹을 지나쳤다.
그리고 수돗가에 다다랐을 때, 아니나 다를까 누군가가 울고 있었다.
등을 돌린 채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던 것은 사쿠라 스즈네였다.
양갈래로 묶은 머리 사이로 땀이 송글송글 맺힌 흰 목선이 보였다.
아스미는 그런 모습을 보며 어찌 할 줄 모르고 그저 우두커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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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아스미는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고 있었다. 샤워부스 문 건너편에서 카에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스미, 나 먼저 간다.”
“응!”
아스미의 대답을 들은 카에데는 샤워실을 나섰다.
아스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머리를 감았다. 샴푸 거품과 함께 뽑힌 머리카락이 물처럼 흘러내렸지만 아무런 상관 없다는 듯 머리를 감고 있는 것이다.
샤워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 온 아스미의 등 뒤로 꽃병에 꽂힌 바람개비가 보였다. 바람개비의 날개는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람개비 뒤편에는 사진 액자가 놓여 있었다. 액자 안에는 친구들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이 장식 되어 있었다.
아스미는 자리에 앉아 발톱에 패디큐어를 바르기 시작했다. 패디큐어 솔의 움직임에 따라 그녀의 엄지 발가락 발톱이 크게 움직였다.
아스미는 덜렁덜렁거리는 발톱을 손에 쥐고 좌우로 흔들더니 천천히 떼어냈다.
발톱이 뽑혀 버린 발가락이 아프지도 않은 걸까, 아스미는 뽑아 낸 발톱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천천히 눈을 감더니 가슴팍을 마구 긁어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하반신 쪽에서 예의 그 검은 혈관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얼굴을 향해 몸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괴로운 것인지, 아니면 적당한 통증을 즐기고 있는 것인지 모를 표정을 짓던 아스미가 갑자기 눈을 떴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탁한 흰색으로 변해 있었다.
아스미는 그대로 복도로 나가, 정처없이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양 팔은 축 늘어뜨리고, 고개는 힘 없이 휘청거리며, 맨발로 휘적휘적 배회하기 시작 한 것이다.
발톱이 빠진 자리가 아플 법도 한데,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아스미의 움직임에 맞추어 그녀가 지나가는 곳의 조명들이 빠르게 깜빡였다.
어디갔느냐 헤메고있느냐 어디갔느냐 숨어버렸느냐 어디갔느냐 돌아가버렸느냐
아님죽어버렸느냐 도망가라도망가라 땅이움직인다 손이뻗어온다 내일이온다
되살아나리라 되살아나리라 잠비가온다 바로네뒤에 바로네뒤에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잠비마을에서 들었던 동요가 어디선지도 모르게 울려퍼졌다.
때때로 복도 양쪽으로 검은 그림자 같은 것이 요동치며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 검은 그림자는 서서히 모습을 갖추어 갔다. 작은 지장보살과 손의 모습이었다. 잠비마을 부근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무수한 손과 지장보살의 그림자가 아스미를 감싼 채, 복도를 배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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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실에서 돌아 온 카에데는 침대에 걸터앉아 수학여행때 찍은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비마을에서 찍은 사진을 보던 중에 눈에 들어오는 사진이 있었다.
아스미의 사진이었다.
사진 속의 아스미는 잠비마을의 풍차 앞에서 양 손으로 브이자를 그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카에데의 입가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사진을 스와이프 하여 다음 사진을 보았다. 다음 사진은 유이가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찍은 단체사진이었다.
사진 아랫쪽에는 예의 그 바람개비가 찍혀 있었다.
‘…?!’
기분 탓인지 사진에 찍혀 있는 바람개비가 움직인 것 처럼 보였다.
찝찝한 마음에 카에데는 다시 한 번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바람개비 사진이 다시 한 번 움직였다. 조금씩이긴 하지만 확실히 바람개비가 움직이고 있었다.
카에데의 등 뒤로 소름이 돋았다. 눈을 떼지 못 하고 바라보고 있으려니 바람개비의 움직임이 조금씩 부드러워 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느리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확인 했지만 확실히 동영상 파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착시를 이용하는 사진도 아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겨우겨우 스마트폰에서 눈을 뗀 순간, 노크소리가 났다.
문에 설치된 불투명 유리 너머로 복도 조명이 깜빡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조명이 들어 올 때마다 누군가의 그림자가 비췄다.
‘누구지?’
카에데는 튀어 오르듯 침대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어 보니 히지리가 서 있었다.
-----
카에데는 히지리를 방 안으로 들여보냈다.
“이것 좀 봐 줄래?”
그렇게 말 하며 히지리가 카에데에게 내민 것은 스마트폰이었다.
스마트폰 화면에는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이거… 뭐야?”
히지리가 내민 사진은 교실에서 담소를 나누는 아스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하지만 묘하게도 아스미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아스미의 오른쪽 얼굴이 마치 누군가가 잡아 당기기라도 하는 듯 일그러져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것 처럼도 보였다.
“사실… 뭔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 했거든… 아스미 말이야… 그래서… 사진… 찍어 봤더니…”
히지리는 아스미의 친구인 카에데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듯 단어를 신중히 골라가며 말을 이었다.
카에데는 추하게 일그러진 아스미의 사진에서 눈을 돌리고 화면을 껐다. 오한이 느껴졌다.
“이 사진… 계속 보고 있으면 기분이 나빠져.”
히지리가 말을 이었다. 두 눈은 내리 깔고 카에데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이 사진,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카에데는 히지리에게 스마트폰을 돌려주며 질문했다.
“사실… 오늘 한 장 더 찍은 게 있거든..”
“뭐?”
“아스미 뿐 아니라 한 명 더 있었어…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상해서 찍어 봤는데..”
카에데는 히지리로부터 시선을 피했다.
…이 학교 내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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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에데는 히지리와 함께 어두컴컴한 도서실로 향했다.
이 학교 학생이라면 소등시간 이전까지는 언제는 이용해도 되는 시설이다. 그 뿐 아니라 카에데 본인이 도서위원이기에 이용하기 편한 곳이기도 했다.
책상 위에는 ‘주술 완전 매뉴얼’, ‘주술연구’ 같은 책들이 놓여 있었다.
히지리가 책을 한 권 더 가져왔다. 표지에는 ‘일본 고주술사’라고 적혀 있었다.
히지리는 조용히 페이지를 넘기다가 멈추어서는 소리내어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음양도(※陰陽道, 일본 전통 신앙 중 하나. 음양오행에 기초한 주술법)의 가르침에 따르면 오른쪽 얼굴은 ‘삶’을 상징하고 왼쪽 얼굴은 ‘죽음’을 상징한다.”
히지리의 말에 카에데는 문득 아까 본 사진을 떠올렸다. 카에데가 보고 있는 방향이 아니라 아스미 본인을 기준으로 했을 때 왼쪽 얼굴이 기묘하게 뒤틀려 있었던 사진을. 아스미 기준으로 오른쪽 얼굴은 평범해 보였지만 왼쪽 얼굴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는 듯 추악하게 일그러져 있지 않았던가.
“음양도라고?”
카에데의 질문에 히지리가 대답했다.
“음양도는 원래 주술이나 점성술의 체계를 말해. 물론 전통 신앙과도 관계가 있고. 예를 들자면 신사도 음양도와 관계 있지.”
“신사라…”
히지리는 카에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책 내용을 소리내어 읽었다.
“한 사람의 얼굴에 삶과 죽음, 그 두 가지가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 그런 사람은 잔미라고 부른다… 잔미가 뭐지?”
카에데는 수학여행때 들렀던 마을의 이름을 떠올렸다. 히지리는 계속 책을 읽어 나갔다.
“잔미는 살아 있으면서 죽은 존재이며, 죽어 있으면서 산 존재로서…”
카에데의 머릿속에 아스미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친구의 얼굴과 그 때 창밖으로 보았던 무참한 모습, 그리고 얼마 전 양호실에서 보았던 다정한 표정까지…
갑자기 카에데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래! 잠비마을 신사에 모셔진 것은 삶과 죽음 사이에 위치한 자들이었던 거야!”
이전에 보았던 동영상에 나왔던 이미지들, 다시 말 해 위아래가 뒤바뀐 도리이와 기묘한 사당, 그리고 그 주변에 꽂혀 있던 바람개비들이 어지러이 카에데의 머릿속을 채웠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자신들이 한 일이 무엇이었는 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잠비… 마을? 그게 뭐야?”
“그 때 우리들이… 잠비의 봉인을 풀었던 거야…”
카에데가 단언했다.
“우리가… 봉인을… 풀었어.”
갑작스러운 카에데의 말에 히지리는 할 말을 잃고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카에데를 바라 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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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에데와 히지리가 도서실에서 잠비에 대한 책을 읽고 있을 무렵.
아스미는 교실에 홀로 남아있던 학생을 덮쳤다.
뒷편에서 달려들어 몸을 움직이지 못 하게 한 뒤, 뾰족한 혀를 목덜미에 꽂아 버린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당했던 것 처럼 그 학생의 흰 목덜미를 콱 물어 버렸다.
아스미의 눈은 탁한 흰색이었고 얼굴에는 검은 혈관이 솟아있었다.
아스미에게 목덜미를 물린 소녀 역시 점차 온 몸에 검은 혈관이 솟아 오르더니, 이윽고 눈이 희게 변했다.
소녀의 이름은 시이나 미코토.
잠시 뒤, 아스미는 만족한 듯 미코토의 목에서 얼굴을 떼었다. 미코토는 마치 무너지듯 바닥 위로 쓰러졌다.
아스미의 입 옆으로 한 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에 비친 그녀의 입가는 처참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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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에데는 조용히 되뇌었다.
“그렇다면 아스미는 역시…”
상상하기도 싫었던 시나리오가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히지리는 깜짝 놀란 눈빛으로 카에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어디선가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갔느냐 헤메고있느냐 어디갔느냐 숨어버렸느냐 어디갔느냐 돌아가버렸느냐
아님죽어버렸느냐 도망가라도망가라 땅이움직인다 손이뻗어온다 내일이온다
카에데와 히지리는 당황한 나머지 어찌 할 줄 모른 채 도서실에 서 있었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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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야마무로 카에데는 잠에 빠져 있었다.
관광버스 내부는 교복 차림 소녀들이 내는 소음으로 시끌벅적했다. 그렇게나 시끄러운데도 그녀는 깊게 잠들어 있었다.
잠 든 그녀의 얼굴은 마치 인형처럼 아름다웠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도 깊게 잠이 든 탓일까, 그녀의 얼굴은 마치 죽은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기도 했다.
수학여행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이기에 그동안 쌓여있던 피로가 얼굴에 드러나 죽은 것 처럼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버스는 잠 든 그녀를 태운 채 산길을 달린다. 저녁 빛이 드리우는 삼나무 숲 사이를 달리고 또 달린다.
갑자기 버스가 크게 흔들렸다. 그 충격에 잠들어있던 카에데가 눈을 떴다.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지...?”
카에데는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사이죠 아스미에게 말을 걸었다.
“계속 잠만 자길래 죽은 건 아닌가 했어.”
짓궂게 웃으며 아스미가 대답했다.
“뭐라고?”
카에데는 프리지아 학원 중등부 시절부터 절친하게 지내 온 아스미에게 웃으며 대답했다.
프리지아 학원.
중, 고등학교 일관으로 운영되는 기숙제 여학교이다.
관련시설도 전부 학교 부지 안에 완비 되어 있으며, 학생들은 그 안에서 중, 고등학교 6년간을 보내는 것이다.
또한, 프리지아 학원은 소위 말 하는 ‘미션 스쿨’로, 부지 내에는 채플, 다시 말 해 교회도 있었다.
카에데와 친구들은 오랜만에 학교 밖으로 나와 수학여행을 하고, 다시 그 학교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난 모양이야. 그래서 지금 국도로 돌아가고 있어.”
앞 쪽 자리에서 반장인 모로즈미 미노리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며 이야기했다.
“그래?”
카에데는 그렇게 대답을 하며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미노리의 말 대로 고속도로가 아닌 산길을 지나고 있었다.
(내가 자는 사이에 고속도로에서 벗어났구나…)
잠에서 덜 깬 상태로 카에데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이미 운전석에서는 이상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카 내비게이션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운전대를 잡아 온 버스 운전사조차도 처음 보는 에러였기에 어떻게 손을 써 볼 수도 없었다.
자신들이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 지 아무도 모르는 채, 버스는 소녀들을 태우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리고 또 달렸다.
카에데는 버스 앞 좌석 등받이에 설치되어 있는 그물망에 다 읽은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집을 쑤셔넣었다. 그물망 안에는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수학여행 일정표도 꽂혀 있었다.
카에데는 한숨을 쉬며
“아, 아직도 나가노현이야? 학교에 도착하면 대체 몇 시일까…”
라고 한탄했다.
“그러게…”
카에데의 말에 맞장구 치는 아스미의 목소리에서도 불만이 뭍어났다.
생각 같아선 빨리 학교로 돌아 가 쉬고 싶지만 어떻게 해 볼 수도 없는 노릇. 다른 학생들은 이미 포기 하기라도 한 듯 친한 그룹들끼리 모여 각자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는 아이도 있었고 기념으로 사 온 과자를 나누어 먹으며 수다를 떠는 아이들도 있었으며 거울을 보며 몸단장을 하는 아이도 있었다. 각자 자신들만의 방식대로 시간을 때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학생들과는 대조적으로 담임인 미야가와 아이는 연신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지연된 일정을 어떻게 조정해야 할 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이런 점만 보아도 선생과 학생의 차는 역력히 드러났다.
(다시 잠이나 잘까. 잠 좀 자면 시간도 가겠지.)
그렇게 생각한 카에데는 다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녀가 눈을 감은 순간, 끼기긱 하는 브레이크 소리를 내며 버스가 급정거했다.
버스 안을 가득 메운 소녀들은 갑작스러운 사태에 비명을 질렀다. 카에데 역시 눈을 뜨고 주변을 훑어보았다.
“이게 무슨 일이야?”
아스미가 깜짝 놀라서 이야기했다. 평소보다 큰 목소리였다.
다행히 패닉 상태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소녀들의 웅성거림은 멎을 줄 몰랐다.
“상황 파악이 끝날 때 까지 자리에 앉아 기다려 주세요.”
담임인 미야가와는 학생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운전수에게 가서 이야기를 나눈 뒤, 상황을 확인하기 위하여 차 밖으로 나갔다.
차창 밖으로 흰 연기가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차체 아래에서 피어 오르는 것 같았다. 이윽고 흰 연기는 빽빽하게 늘어선 삼나무 숲 사이로 흘러갔다.
삼나무 숲 속으로 흘러가는 연기를 눈으로 쫓던 카에데는 깜짝 놀라 숨을 삼켰다.
그녀의 시선이 멎은 곳은 삼나무 숲 속 오솔길 옆에 세워진 지장보살상 부근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놀라게 한 것은 지장보살상이 아니었다. 바로 지장보살상 사이사이를 가득 메우듯이 세워 져 있는 무수한 ‘손’들이었다.
손바닥을 활짝 펼치고, 마치 무언가를 갈구하듯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손들이 그녀를 놀라게 한 것이다.
그 ‘손’들은 돌로 만들어 져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어떤 것은 왼손, 어떤 것은 오른 손… 좌우로 기울어 져 있는 것들도 간간히 보였지만 대부분은 하늘을 향해 손바닥을 펼친 모양새였다.
“도대체 저건 뭐지…”
아스미가 카에데의 손을 잡으며 나직이 내뱉었다. 그녀도 지장보살과 ‘손’들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십 수년간 살아오면서 이런 그로테스크한 광경을 목도 한 것은 처음이었다. 대체 이건 무엇일까. 지장보살 신앙과 손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이 떨렸다.
“…여러분.”
공포에 질린 카에데의 귓가에 미야가와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 덕분에 카에데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버스를 고칠 때 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그리고 여기는 어째선지 무선도,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 것 같네요.”
선생님의 말에 학생들은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일단 버스에서 내립시다. 휴대폰이 터지는 곳 까지 걸어 가, 다른 버스를 불러서 돌아가죠. 여러분 내릴 때 귀중품은 잊지 말고 챙기세요.”
학생들은 투덜댔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반장인 미노리가 솔선해서 학생들을 이끌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들은 버스에서 내렸다. 카에데는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저녁놀이 물든 하늘은 금새 어두워 질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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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전파가 안 터지다니! 말도 안 돼!”
컴컴한 산길을 걸으며 카네무라 유이가 투덜댔다.
유이는 카에데의 반에서도 눈에 띄는 학생이다. 교내 서열로 봐도 상위권에 있는 학생이고, 다른 학생들을 괴롭히는 이지메 그룹의 중심 인물이었으며 때로는 반장인 미노리, 카에데 등과 충돌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단순한 불량학생은 아니었다. 국내외 할 것 없이 최신 패션에 밝은 정보통이기도 했고, 패션 센스 역시 모두가 인정하는 바였다. 아버지가 병원 경영자이고 어머니가 통번역가이기 때문에 남들보다 정보가 빠르고 센스가 좋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버스 무선도 안 터진다고 하잖아. 빨리 휴대폰 전파가 있는 곳을 찾아서 선생님께 연락 드려야 하지 않겠니?”
미노리가 투덜거리는 유이를 다독였다.
“아니 그렇다 해도 우리들이 걸어다니며 찾을 필요가 있었어?”
“음… 다 함께 찾아보자는 얘기지.”
미노리의 말에도 유이는 불만스러운 모습이다.
사실 카에데를 포함, 9명의 학생들은 숲 속에서 길을 잃은 상황이었다.
인솔하던 담임 선생님을 따라가던 중에 길을 잘못 들었는데, 당황해서 찾아보겠다 한 게 화근이었다. 결국 숲 속에서 완전히 미아가 되어 버린 것이다.
어느 사이엔가 해가 져, 숲 속은 완전히 깜깜해졌고, 불빛이라곤 스마트폰의 라이트가 전부였다.
“…선생님 그룹은 이미 전화 터지는 곳 까지 갔을걸…”
하나무라 호노카가 털썩 주저앉으며 입을 열었다. 지병인 천식 탓에 이렇게 오랫동안 걷는 것은 몸에 주는 부담이 심했던 것이다. 체력이 없어서 미술부에 들었지만 자신도 모르고 있던 재능에 눈을 떠, 여러 차례 상도 받은 바 있는 그녀였다. 그 뿐 아니라 성적 역시 전교 톱클래스였다.
“호노카, 힘 내.”
주저앉은 그녀를 격려 해 준 것은 사키카와 유즈키였다.
호노카와는 절친한 관계로, 마치 언니처럼 호노카를 세심하게 챙겨주곤 했다.
취주악부에서 색소폰 파트 리더를 맡을 정도로 리더십도 있고, 다른 사람을 잘 챙겨주는 성격이다.
그런 유즈키가 호노카의 팔을 붙잡고 일으켜 세우려 한 순간이었다. 그녀들의 머리 위에서 무언가가 갑작스레 강렬하게 빛을 발했다.
이윽고 공기를 찢어버리기라도 할 듯한 굉음이 사방을 가득 메웠다.
“와… 이거 실화냐..”
사사키 세나가 질려버린 듯 읊조렸다.
그녀는 테니스부 주장이자 뛰어난 스포츠 우먼에 사람들을 이끄는 힘도 있는 ‘좋은 사람’이지만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로 입이 험하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런 그녀에게도 소녀 감성이 남아 있었기에 ‘천둥번개’는 그녀가 무서워 하는 것 중 하나였던 것이다.
“번개와 천둥 소리가 차이가 얼마 안 나. 이거 자칫 잘못하면 위험하겠는데.”
세나가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을 듣고 아스미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운도 없지…”
“그러게.”
카에데도 아스미의 말에 동의했다. 정말이지 재수가 지지리도 없었다. 버스는 고장나지, 휴대전화는 안 터지지, 산 속에서 길을 잃은 것으로도 모자라 이젠 천둥번개까지 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아마 조금 있으면 비도 내릴 기세였다.
아스미는 목에 건 DSLR이 신경쓰이는 눈치다. 사진부이기에 수학여행 사진을 찍기 위해 일부러 가져 온 것이었다. 귀중품이기에 버스에서 내릴 때도 소중히 챙겨 왔던 것이다.
“자, 자, 빨리 길을 찾아 보자.”
미노리가 다시 모두를 독려했다. 그 말에 학생들은 다시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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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삼나무 숲을 지나고 나니 아래로 내려가는 돌계단이 나왔다.
계단 폭이 좀 좁긴 해도 잘 정비된 계단이다. 계단 양쪽으로는 석등이 늘어 서 있어, 어슴푸레하게 주변을 밝혀주고 있었다.
계단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발걸음을 옮기려니 지금까지 함께 걸어 온 멤버 중 한 명이 요지부동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카이 히지리였다.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그녀는 말하자면 교내 서열 최하위에 위치한 아이였다. 오컬트를 좋아하고 오타쿠적인 면이 강한 탓일까, 자신이 흥미를 갖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엔 흥분해서 끝도 없이 말을 늘어놓는 타입이었다.
그리고 사실인지 뜬소문인지는 모르지만, ‘영감이 있다’는 소문도 떠도는 아이였다.
“너 거기서 뭐 해?”
갑자기 멈추어 선 히지리를 향해 아키요시 린이 말을 걸었다. 걱정스러운 목소리였지만 말투에는 불만이 묻어 나왔다.
평소 밝고 명랑한 성격으로 반의 무드메이커격인 존재인 린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한 마디였다.
하지만 히지리는 좀처럼 계단을 내려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
“같이 내려가자.”
린이 다시 한 번 상냥하게 말을 걸었지만 히지리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다시 한 번 굉음이 울려퍼졌다.
히지리는 ‘여기 서 있다간 번개라도 맞겠다’라는 생각이라도 들었는지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걸음걸이는 주저하는 듯 무겁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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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계단은 끝 없이 이어지는 것 같았다.
아무리 가을이라곤 하지만 밤 시간대, 그것도 산 속은 추웠다. 교복인 점프 스커트와 블라우스, 타이츠만으로는 추위를 막을 수 없었다. 심지어 마지막으로 식사를 한 지도 한참 되었기에 체온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피로와 배고픔이 최고조에 달해 있는 상황에서 안개까지 자욱하게 껴, 그녀들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돌계단이 한 차례 끊긴 곳까지 내려왔을 때에야 휴식을 위해 발을 멈출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들이 발걸음을 멈추길 기다리기라도 한 듯, 갑작스레 번개가 번쩍이며 밤 하늘을 갈랐다.
번개의 섬광으로 발 아래의 풍경이 한 순간이나마 눈에 비쳤다. 나무 사이로 언뜻 보인 것은 산 사이 계곡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었다.
소녀들은 다시 기운을 내서 그 ‘마을’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두에는 미노리가 서서 친구들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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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가 저 멀리 눈에 보이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길 양 옆으로 무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오래된 자연석 비석, 만든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화강암 비석 등이 줄지어 서 있었다. 하지만 마을 규모에 비해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무덤이 많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뿐 아니었다. 아무리 한밤중이라 해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불이 켜져 있는 것이 자연스러울 터인데, 그런 등불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나도 부자연스러운 마을 풍경에 어느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민가를 몇 채인가 지났을 때, 갑작스레 굵은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 눈 깜빡할 사이에 소녀들의 교복을 적셨다.
갑작스러운 비에 소녀들은 달리기 시작했지만 포장이 되어 있지 않은 흙길과 주위를 가득 채운 어둠 탓에 생각만큼 속도가 나지 않았다. 앵클 스트랩이 붙어 있는 교복 구두가 연신 미끄러졌다.
“아, 정말 최악이야.”
유이가 진절머리 난 듯 소리쳤다. 다른 아이들도 말로는 꺼내지 않아도 같은 생각이리라.
미끄러운 흙길을 종종걸음으로 달리다 보니 눈 앞에 거대한 건물 그림자가 보였다.
오래된 절이었다.
본당으로 보이는 건물과 구리(※주지가 거주하는 별채, 혹은 부엌)로 보이는 건물 사이에 아치형 다리가 놓여 있었다. 마을 규모로 보아 이상할 정도로 호화로운 절이었다.
소녀들은 본당으로 보이는 건물 입구로 향했다.
그녀들은 입구 부근에 도착 한 뒤로도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구두를 벗은 뒤 처마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
“아무도 없는걸까?”
아스미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질문에 대답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실례합니다! 실례합니다! 아무도 안 계시나요?”
미노리가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빗줄기는 점점 거세져만 갔다.
“아무도 없는 것… 같지?”
역시 이번에도 그 질문에 대답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미노리는 간논비라키(※양쪽 여닫이) 문을 조용히 열었다.
‘끼기기긱’ 무거운 소리를 내며 서서히 문이 열리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공간이 소녀들의 눈 앞에 펼쳐졌다.
내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컴컴한 공간만이 있을 뿐.
그 순간, 천둥소리가 소녀들의 등 뒤를 때렸다. 소녀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다투어 건물 내부로 뛰어들었다.
“너무 어두워…”
누군가가 속삭이듯 말했다.
미노리는 조용히 스마트폰 라이트를 켰다. 라이트에 비춰지는 내부 모양을 보니 이 건물은 예상대로 본당이 맞는 듯 보였다.
본당 내부에 위치한 내진(※본존이나 부처를 모시는 곳)에는 각양각색의 불상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부처는 물론이고 무서운 표정을 한 명왕들이나 자애로운 미소를 띈 보살상, 심지어 승려의 모습을 한 좌상들이 가득 들어 서 있었다.
“아…”
미노리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장지문이 있었다. 살짝 열려있는 장지문은 아무래도 다른 건물로 이어지는 복도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아치형 다리로 된 복도에는 지붕이 있었고, 그 지붕에는 작은 범종이 매달려 있었다.
아홉 명의 소녀들은 조심스레 복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지붕이 낮아 머리가 부딪힐 것 같았다. 몰아치는 천둥번개에 깜짝 깜짝 놀라면서도 복도를 건너고 나니 아까 보았던 구리가 나왔다.
생활에 필요한 집기가 잘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면 역시 주지스님 가족이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아무도 안 계시나요…?”
미노리가 목소리를 높였지만 역시나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어디선가 장작에서 불똥이 튀는 듯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어 보니 구리 내부에 깔려 있는 다다미(※짚으로 짠 일본 전통 건축재료) 한 가운데에 전통식 화로가 설치 되어 있었고, 그 화로에는 불이 피워져 있었다. 그 뿐 아니라 화로 위에 걸려있는 찻주전자에는 물이 들어 있어, 그 물이 끓고 있었던 것이다.
“아!”
미노리는 방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 한 듯 뛰어 들어갔다.
미노리가 향한 곳에는 오래 된 검은색 전화기가 놓여있었다. 미노리는 수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돌렸다.
“전화 돼?”
아스미의 질문에 미노리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래도 연결이 안 되는 모양이다.
“아, 더 이상은 못 버티겠어.”
호노카가 다다미 위로 털썩 쓰러졌다.
“그래, 그럼 잠깐 여기서 쉬자.”
미노리의 제안에 소녀들은 한 명씩 다다미 위에 걸터앉기 시작했다. 피곤한 나머지 전등을 켤 생각도 안 한 채.
장지문 앞쪽에 자리 잡은 것은 카에데와 아스미, 미노리였다.
천둥 소리, 빗소리는 점점 심해져만 갔다.
하지만 천둥 소리와 빗소리 사이사이로 다른 ‘소리’들이 들려왔다. 그 ‘소리’는 마치 딱딱한 나무들끼리 부딪히는 듯 한 높고 새된 소리였다.
‘깡… 깡… 깡… 깡…’
(이건 무슨 소리지?)
카에데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신경을 집중하니 또 다른 소리가 섞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디갔느냐 헤메고있느냐 어디갔느냐 숨어버렸느냐 어디갔느냐 돌아가버렸느냐
아님죽어버렸느냐 도망가라도망가라 땅이움직인다 손이뻗어온다 내일이온다
되살아나리라 되살아나리라 잠비가온다 바로네뒤에 바로네뒤에있다
(이건 뭐지? 노래?)
아무래도 어린아이, 그것도 어린 여자아이 두어명이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아무리 들어도 어린아이들이 부를 법한 밝은 곡조의 동요가 아니라 너무나도 불쾌한 멜로디였다. 말하자면 옛날부터 내려오는 주술적인 동요 같은 느낌이었다.
“너도 들려?”
카에데는 아스미에게 말을 걸었다. 아스미는 잔뜩 겁 먹은 표정으로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무슨 소리야? 노래…?”
호노카도 잔뜩 겁을 먹은 채 입을 열었다.
유즈키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고, 아스미는 조용히 카에데에게 기대며 ‘무서워’라고 속삭이듯 말했다.
하지만 불길한 노래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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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벽에 걸린 시계가 소리를 내며 울리기 시작했다.
뎅… 뎅… 뎅… 뎅… 뎅… 뎅… 여섯 번 시계가 울린 것을 보면 지금 시간은 아마도 새벽 여섯시이리라.
시곗소리를 듣고 카에데는 눈을 떴다.
밝은 아침 햇살이 그녀를 비추고 있었다. 밤새 그녀를 괴롭혔던 천둥번개와 비는 어느 사이엔가 그쳐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었나 보네)
그러고 보니 잠 든 기억이 없다. 이상한 소음과 노랫소리에 잔뜩 겁을 먹었었지만 그런 공포조차도 피로에는 이기지 못 했던 것이리라.
문득 주변을 살펴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 방 안을 전부 뒤져보았지만 역시나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른 아이들은 어디 간 거지?)
다시 한 번 방 안을 둘러보다 보니 어제는 보지 못 했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벽에 모셔져 있는 긴 봉이었다.
카에데의 키 보다도 길고, 단면이 육각형인 것을 보면 아마도 절에서 쓴다고 하는 육척봉(※보통 봉술을 익힐 때 쓰는 2미터 내외의 봉.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스님들의 무예 수련에 자주 쓰임)인 것 같았다.
봉 앞에는 금줄이 드리워져 있었고, 금줄의 양쪽 끝에는 부적이 붙어 있었다.
그 아랫쪽에 설치 된 제단에는 양초가 두 개 세워 져 있었는데, 불이 붙어있는 것 보면 필시 누군가가 잠든 사이에 들어 와 양초에 불을 붙인 듯 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마치 무언가를 봉인이라도 하는 듯 한 느낌이었다.
카에데는 자신도 모르게 그 제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카에데가 제단에 도착하기 전에 어디선가 불어 온 바람에 촛불이 꺼지고 말았다.
‘분명 창문이나 문이 전부 닫혀 있는데 대체 그 바람은 어디서 불어 온 것일까’라 생각하니 갑자기 소름이 돋아 햇볕 아래로 도망 가기라도 하듯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카에데는 친구들을 찾아 마을을 뒤졌다. 오래된 건물들은 햇빛을 받아도 음울해 보였다.
아침 바람은 상쾌하다기 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한기가 느껴졌다.
어디갔느냐 헤메고있느냐 어디갔느냐 숨어버렸느냐 어디갔느냐 돌아가버렸느냐
어젯 밤에 들려왔던 노랫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이번에는 자신의 뒤쪽에서 들려왔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눈 앞에 오래된 건물이 보였다.
그 건물 처마 아래에는 사람 하나가 들어 가, 쭈그리고 앉을 수 있을 만큼 큰 통이 놓여 있었다.
얼룩덜룩 더러운 큰 통은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뚜껑이 붙어 있었다. 몸통 주변으로는 이중 삼중으로 붉은 실이 감겨져 있었으며 붉은 실 곳곳에 시데(※일본 신사에서 금줄에 끼워 놓는 종이. 결계나 봉인의 의미)가 끼워 져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흰 색이 아닌 붉은색 시데였다.
곰곰히 생각 해 보니 이 집 뿐 아니라 다른 집에도 이런 통이 놓여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아마도 이 지방의 풍습 같은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려니 문득 뒤통수 쪽에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낮은 계단 중턱에 처음 보는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초등학생 정도일까, 병적으로 흰 피부에 새까만 생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새빨간 원피스를 입고 종아리를 반쯤 가리는 긴 흰색 양말을 신고 있는 아이였다.
복장만으로는 이상할 것이 없었지만 팔에 안고 있는 인형이 위화감을 불러일으켰다.
아니 인형이기 보다는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지푸라기로 만든 인형’이었다.
갑자기 또 다른 시선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그녀의 주변 사방에서, 마치 그녀를 포위하고 있기라도 한 듯한 시선’들’이었다.
카에데는 시선을 좇아 주변을 한바퀴 빙 둘러보았다.
저 집 처마에 놓인 통 위에는 노파가, 그 건너편 집 통 위에는 노인이 서 있었다. 아까까지는 없었던 사람들이 통 위에서 그녀를 향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여기에 있어선 안 돼. 빨리 다른 아이들을 찾아야 해’
카에데는 달리기 시작했다.
집과 집 사이에 난 작은 골목길을 달려, 난간도 없는 위험한 다리를 건너기까지 하며 친구들을 찾아 보았지만 어디에도 친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디로 간 거지?)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려 마을 외곽까지 왔을 때, 갑자기 발이 걸려 넘어졌다. 바닥에 무릎이 부딪혀 아팠지만 참아내고 몸을 일으켰다. 대체 뭐에 발이 걸려 넘어졌는지 확인하고자 바닥을 보니 세로로 쪼개진 돌 불상이 나뒹굴고 있었다. 버려진 뒤 오래 되었는지 표면이 심하게 마모 되어 있었다. 의외의 광경에 자기도 모르게 숨을 삼킨 순간, 그녀 근처 풀숲에서 소리가 났다.
화들짝 놀라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니 머리에 까치집을 지은 중년 남성 하나가 풀숲을 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키가 크고 안경을 쓴 남자다. 두꺼운 렌즈 너머로 남자의 눈이 날카롭게 빛나더니 무뚝뚝하게
“너 지금 여기서 뭐 하니?”
라고 말을 건다.
“네?”
“빨리 나가!”
남자는 소리 치며 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 저기… 길을 잃었어요.”
주저앉은 채 그렇게 말을 하는 카에데의 얼굴을 의심쩍은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남자는 곧이어 손을 뻗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모리구치 타쿠마라 한다. 기자지.”
“저는 야마무로, 카에데, 라고 합니다.”
카에데는 남자의 손에 이끌려 일어나면서 자기 소개를 마쳤다.
“길을 잃었다고? 뭐, 그래.. 일단 따라 와.”
모리구치의 말에 카에데는 그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숲에서 나와 마을로 돌아가는 길, 우거진 덤불 너머로 연못이 보였다.
“어? 저건 뭐지?”
연못 가운데에 도리이(※신사 입구를 나타내는 돌/나무로 만든 구조물.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를 잇는 입구 역할이자 결계 역할을 한다. 생긴 건 ⛩ 이렇다)가 있었는데, 그 모습이 묘했던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땅에 박혀 있어야 할 도리이 다리 부분이 어째서인지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다. 말 그대로 ‘거꾸로 세워진 도리이’였다.
카에데가 조용히 수면에 비친 도리이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모리구치가 입을 열었다.
“이 쪽을 보고 있어.”
“네?”
무슨 소리인지 물어보려 하는 카에데를 손짓으로 제지하며 모리구치가 걷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건 묻지 마. 이 세상엔 모르는 게 더 나은 일들도 있으니.”
그 말을 들은 카에데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모리구치의 등 뒤를 따라 걸을 수 밖에 없었다.
-----
모리구치의 뒤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 사이엔가 마을 중앙에 있는 신사 부근까지 돌아왔다.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렸다. 들어 본 적 있는 웃음소리다.
탁 트인 공간에 다다라 주변을 돌아보니 신사 경내였다.
그리고 그 곳에 있었던 것은 반 친구들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카에데는 안도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어딘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졌다.
신사의 구조가 지금까지는 못 보았던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사 하이덴(※배전이라고도 하며, 참배가 이루어지는 곳) 앞에 작은 사당이 있고, 그 사당을 빙 둘러싸는 형태로 대나무 통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대나무 통 위에는 어째서인지 바람개비가 꽂혀 있었던 것이다.
바람개비 날개는 6장, 전부 나무로 만들어 져 있었으며 날개 표면에는 독특한 문양이 들어 간 와시(※일본 전통 종이)가 발려있었다.
“와, 이거 사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려야지!”
“그거 괜찮겠다.”
유즈키가 스마트폰으로 연신 바람개비 사진을 찍으며 말을 하자 호노카가 맞장구 쳤다.
심지어 아스미는 꽂혀있던 바람개비를 뽑아서 손에 들고 있기까지했다.
아스미는 바람개비를 손에 들고 입으로 바람을 불어 넣었지만, 바람개비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런 친구들의 모습과는 달리, 카에데의 시선은 사당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카에데는 비틀거리며 사당을 향해 다가갔다. 도중에 히지리가 말을 걸었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카에데의 마음 속에는 ‘사당 정면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사당 앞에 다다른 카에데는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고신타이(※신사에서 모시는 신, 혹은 그 신을 상징하는 물건)로 보이는 ‘거울’이 보였고, 그 뒤에 보이는 벽에는 부적이 붙어 있었다.
부적에는 붉은 무늬가 그려 져 있었으며 무슨 뜻인지 모를 글자가 검은 먹물로 적혀 있었다.
카에데는 2례3박수 (※신사에서 참배나 기원을 할 때 하는 인사법) 뒤 합장했다.
‘으어어어어어어….’
순간적으로 사당 안쪽에서 무언가가 괴로워하는 듯한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어?!)
카에데는 지금 자신이 들은 것이 착각인지 아니면 실제로 들린 것이었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친구들은 아직도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유이는 기도를 드리는 카에데의 모습을 찍고있기까지했다.
“지금 뭐하는 거야! 당장 그만둬! 너희들 지금 사진 찍는거냐!”
갑자기 모리구치가 학생들에게 소리를 쳤다. 안색이 창백했다.
그런 모리구치의 모습을 보며 아스미는 손에 들고 있던 바람개비를 등 뒤로 감추었다.
사당 앞에 서 있는 카에데를 중심으로 해서 나머지 친구들은 각자 바람개비 부근에 서 있었다.
마치 사당을 빙 둘러싼 바람개비들처럼.
학생들은 전원 모리구치를 응시했다.
그 순간, 카에데의 귓가에 다시 한 번 ‘으어어어어어…’라는 신음소리가 들렸다.
“당장 거기서 나와!”
어디선가 갑자기 백발 노인이 나타나 학생들에게 소리치며 이 쪽으로 다가왔다.
말투부터가 사투리인 걸 감안하면 이 지역 주민이리라.
노인은 손에 든 큰 전정가위(※정원 관리시 나무 가지치기를 위해 사용하는 가위)를 마구 흔들며 소녀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지금 당장! 여기서! 나가!!! 썩 나가지 못할까!”
노인의 기세에 눌려 학생들은 도망치듯 신사를 나섰다.
카에데는 모리구치에게
“여기는 대체…?”
라고 질문을 했다.
모리구치는 고개를 돌려 사당쪽을 뚫어져라 노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잠비마을이야.”
-----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놀. 어디선가 교회 종소리가 울려퍼진다.
이 곳은 프리지아 여학원.
카에데와 친구들은 나가노현 부근에 위치한 수수께끼의 마을, ‘잠비마을’을 무사히 탈출하여 학교로 돌아왔던 것이다. 물론 갑자기 사라져 버린 데 대하여 선생님들께 꾸지람을 들었지만 그 외에는 큰 벌 같은 것은 받지 않았다.
학교측에는 선생님들이 사정을 설명 해 준 모양이라 설교도 최소한으로 듣고 끝났다. 자신들보다 먼저 학교에 도착 해 있었던 캐리어 백을 끌며 기숙사로 가니 낯익은 수위 아저씨가 밝게 웃으며 맞아 주었다. 기숙사에 들어가니 후배들이 웃으며 그녀들을 환영 해 주었다.
근대적인 구조의 기숙사는 모든 사람에게 개인실이 주어졌다.
각 방은 원룸 맨션 같은 구조로, 문을 열면 내부가 전부 다 보이게 되어 있었다. 비록 화장실과 주방은 공용이었지만, 그만큼 생활 스페이스를 넓게 쓸 수 있는 구조였다.
기본적인 책걸상, 수납용 붙박이장 등은 있었지만 그 외의 가구들은 각자 사 와서 자기 취향에 맞게 꾸밀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방 구조나 인테리어를 통해 방 주인의 개성을 알 수 있는 것이 재미있는 점이기도 했다.
기숙사 1층은 공통 현관과 식당 등 공용 공간이 있으며, 두 곳 모두 채광에 신경을 써서 만들어 졌기에 언제나 밝은 분위기가 유지되었다. 말 하자면 ‘기숙사’라기에는 조금 호화로운 느낌이 드는 건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호화로움’도 학생들에게는 익숙한 매일 보는 풍경이요, 사람들일 뿐이었다.
그녀들은 이제서야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 온 것이었다.
-----
자신의 방에 들어 가, 평상복으로 갈아 입고 나서야 겨우 마음이 놓였다.
카에데는 짐정리를 하며 모리구치의 말을 떠올렸다.
‘잠비마을’
스마트폰을 켜서 검색 사이트에 ‘잠, 비, 마, 을’을 쳐서 검색 한 뒤 스크롤을 내리며 내용들을 훑어보았다. 그 중 유난이 눈에 띄는 문서가 있었다.
‘잠비마을의 민속과 전통 (나가노현)’
카에데는 그 항목을 터치했다. 그러자 곧바로 동영상이 흘러나왔다.
동영상은 오래된 기록영화 같은 느낌이었다. 영상에 찍혀있는 사람들은 흰 수의 같은 옷을 입은 채 어떤 의식을 행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이윽고 ‘신슈(※나가노현의 옛 이름)의 깊은 산에 위치한, 옛 잔미(※残美, 발음은 ‘잔비’)신앙이 남아 있는 마을’ 이라는 자막과 함께 그 자막을 읽는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역시나 오래 된 기록영화에서 들을 법한 목소리였다.
그 뒤로는 짧은 흑백 영상들이 언뜻언뜻 흘러갔다. 특이하게도 배경 음악은 전혀 들어 가 있지 않았다.
필름이 손상되기라도 한 걸까, 군데군데 영상이 흔들렸다. 딱 봐도 엄청 오래 된 영상이었다.
나레이션이 끝난 뒤에 표시된 타이틀은 ‘잔미신앙’ 네 글자.
‘잠비라는 건 무참하다(※일본어로는 無残)에 나오는 ‘잔인할 잔’자와 미인이라 할 때의 ‘아름다울 미’자를 쓰며,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서 있는 존재들을 뜻한다.’
라는 나레이션과 함께 흘러나오는 영상은 노파가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찍은 영상이었다. 노파는 잘라낸 나무조각을 대패로 밀고, 평평한 나무 판이 완성되자 그것을 모아 둥근판 주변에 둥글게 세웠다. 노파가 그렇게 모은 나무 판에 금속 띠를 둘러 쇠망치로 쳐 완성한 것은 다름아닌 나무통. 나무통을 완성한 노파는 마지막으로 나무통에 실을 빙 둘러 감았다.
이상한 것은 노파가 작업하는 모습과 음향이 미묘하게 빗나갔다는 점. 마치 영상을 찍고 이후에 음향을 덧씌운 것 처럼 들렸다.
노파는 실이 둘러진 나무 통에 뚜껑을 덮었다. 뚜껑 가운데 부분은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오각형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완성된 나무 통은 다름아닌 ‘좌관’, 다시 말 해 죽은 사람을 앉혀서 매장할 때 쓰이는 ‘관’이었다.
‘예로부터 이 마을은 이런 좌관을 만드는 것을 생업으로 해 왔다. 하지만 어느 날, 이 좌관에 갖혀 생매장 되었던 여인이 살아 돌아와, 마을에 재앙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이 마을의 이름은 통칭 ‘잠미마을’이라 부른다.’
이런 나레이션이 흐른 뒤, 장면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전부 꺼림칙한 장면의 나열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카에데가 직접 목격하였던 신사와 사당으로 보이는 것도 있었다.
화면은 이윽고 또 다른 의식 장면으로 바뀌었다. 이번에는 무당같아 보이는 사람이 등장했다. 무당의 가슴팍과 등에는 별모양 문신 혹은 낙인 같은 것이 새겨져 있었다.
무당이 땅에 바람개비를 꽂자 가면을 쓴 사람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가면에는 부적이 붙어 있었다. 아무리 봐도 가구라(※일본 전통극. 신을 모시기 위하여 바치는 춤과 노래)는 아니다. 이 의식은 어딘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다섯 사람이 사당을 둘러싸고 웅얼웅얼 알 수 없는 말로 기도 같은 것을 올리고는 영상이 끝났다.
(이거 뭐야?)
꼭 쥔 카에데의 손엔 땀이 흥건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영상 중간중간에 자신이 아는 것들이 섞여 있었다. 나가노현, 잠비마을, 그리고 나무 통이라 생각했던 ‘좌관’.
카에데는 그 페이지를 즐겨찾기에 추가 해 두고 인터넷 브라우저를 닫았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카에데는 꺼림칙한 기분을 떨쳐 낼 겸 목욕탕으로 향했다.
-----
아스미는 자신의 방에 돌아와 짐을 풀기 시작했다.
카에데가 동영상을 보기 시작한 때보다 조금 앞선 시점의 일이었다.
짐으로 챙겨갔던 옷들을 세탁 할 것과 안 해도 될 것으로 나누고 있으려니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삐걱… 삐걱… 삐걱… 삐걱… 지금까지는 기숙사에서 들어 본 적 없는 소리… 무언가가 삐걱거리는 듯한 소리였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테이블 위, 꽃병에 꽂아 둔 나무 바람개비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잠비마을에서 가져 와서는 꽃병에 꽂아 두었던 것이다. 사실 되돌려놓으려 했지만 갑작스럽게 마을을 도망치듯 나오게 되어 되돌려놓지 못 한 것이었다.
“이거 이상하네…”
아스미는 바람개비를 손에 든 채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처음 손에 든 때부터 지금까지 아무리 세게 입김을 불어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던 바람개비가 갑자기 돌기 시작한 것이다.
“왜 이러지?”
여섯 장의 날개는 끊임 없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멍하니 바람개비를 손에 든 채 서 있던 아스미의 뒷편에서 무언가가 나타났다.
꼬질꼬질한 흰 수의를 입은, 머리가 하얗게 센 노파의 모습처럼 보이는 무언가였다.
‘그것’은 갑자기 아스미에게 달려들어 아스미의 머리와 어깨를 단단히 붙잡고는 크게 입을 벌렸다.
깊은 동굴 같은 입 안에서 새빨갛고 긴 혀가 춤추며 튀어 나왔다.
마치 뱀의 그것처럼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그것’의 혀는 순식간에 아스미의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아스미는 갑작스러운 습격에 깜짝 놀라 두 눈을 크게 떴지만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사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녀 자신도 지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 파악을 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리라.
노파의 모습을 한 ‘그것’은 뒤이어 아스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스미의 목덜미에서 검은 핏줄이 솟아올랐다. 검은 핏줄은 순식간에 아스미의 얼굴까지 타고 올라갔다.
잠시 뒤, ‘그것’은 아스미의 목덜미에서 얼굴을 떼었다. 아스미의 목에는 깊게 패인 이빨 자국과 두 개의 구멍이 나 있었다.
아스미의 얼굴을 타고 올라가던 검은 혈관이 안구 부근까지 다다른 순간, 아스미의 눈동자가 흰 색으로 흐려졌다.
그리고 아스미는 정신을 잃었다.
잠시 뒤, 아스미는 정신을 차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던 것 같았다.
(꿈인가?)
주변을 찾아 보아도, 물렸던 목 부근을 자세히 뜯어 보아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테이블 위에 있는 꽃병에는 바람개비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꽂혀 있었다.
-----
카에데가 목욕탕에 도착했을 때, 아스미는 세면대에서 머리를 감고 있었다.
“정리하는 데 한 세월이네. 그렇지?”
카에데가 말을 걸어도 아스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스미?”
“잠이 든 것이오, 아니면 이미 죽은 것이오?”
갑자기 아스미의 입에서 흘러나온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에 카에데는 눈썹을 찌푸렸다.
문득 아래를 바라본 카에데는 경악했다.
세면대에는 아스미의 검은 머리카락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머리카락들은 아스미가 빗질을 할 때마다 늘어만 갔다.
“아, 아스미..?!”
카에데의 말에 아스미가 반응을 보였다.
잔뜩 겁에 질려있는 카에데의 표정을 보고 안 좋은 예감이 들었던 것일까, 아스미도 시선을 아래로 옮겼다.
아스미의 눈에 자신의 머리카락이 비쳤다. 상태가 이상해 보였다.
아스미는 시선을 눈 앞의 거울로 옮겼다. 동요를 감추지 못 하는 표정이었다.
“아스미!”
카에데의 말에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아스미는 절규하며 욕실을 뛰쳐나갔다.
-----
욕실에서 도망쳐 나온 아스미는 자신의 방에 틀어박혔다.
방으로 뛰어 오는 도중에 슬리퍼가 벗겨졌지만 눈치 채지도 못했다.
방에 들어 온 그녀는 거울을 들고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았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왼쪽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아니, 그냥 일그러져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얼굴 반쪽이 마치 아스미와는 다른 존재에 지배 받기라도 하는 듯이 멋대로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고 있었다.
깜짝 놀란 아스미는 손에 힘이 빠져 거울을 놓쳐버렸다.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난 거울 파편이 어지러이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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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에데는 기숙사 복도를 달리고 있었다.
절규하며 뛰쳐나간 아스미의 뒤를 쫓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사이죠 아스미’라는 이름판이 걸려있는 방 앞에 다다른 카에데는
“아스미! 아스미!”
라 외친 뒤 문고리를 잡았다. 하지만 안에서 잠근 듯 문이 열리지 않았다.
“…들어오지마!”
친구의 절규가 들렸다. 완전한 거부의사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카에데는 친구의 방문을 두드리고, 문 손잡이를 돌렸다.
계속해서 ‘오지마!’라고 외치는 아스미에게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 났다고 직감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아스미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변하더니 말이 뚝 끊겼다. 마음이 급해진 카에데는 아스미의 방문에 몸을 부딪혀 억지로 열어젖혔다.
“아스미!”
방 안으로 들어갔지만 아스미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아스미…?”
창문이 열려있었다. 열린 창문을 통해 차가운 밤바람이 커튼을 흔들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에 카에데는 창문을 향해 달려갔다.
창 밖을 바라본 카에데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네 층 아래 아스팔트에 무참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 친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스미의 팔다리는 제각각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고, 머리에서는 엄청난 양의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풀린 두 눈은 멍하니 허공을 응시한 채 뜬 채였다.
카에데는 절규하며 맨발로 계단을 뛰어 내려가 친구가 떨어져 있는 곳으로 달려나갔다.
“아스미..?!”
하지만 카에데가 도착했을 때, 아스미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몸은 물론이고 그토록 대량으로 흘러나왔던 피조차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런 건 없었다는 듯이.
문득 머리 위를 올려다보니 아스미 방의 열린 창문과 그 안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이 카에데의 눈에 들어왔다.
그저 멍하니 서 있던 카에데의 귓가에 비명과도 같은, 혹은 야수의 위협 같기도 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교내의 나무에서도, 그리고 먼 곳의 산에서도 동시에 울려오는 듯 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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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MBI 소설판
등장인물
야마무로 카에데 : 2학년.
고고한 타입. 쿨하고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음. 유치원생일 때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었음.
사이죠 아스미 : 2학년
카에데와는 중학생 때부터 친구. 밝고 서글서글하며 사교적이고 쾌활한 성격. 매사에 호기심이 왕성함.
모로즈미 미노리 : 2학년
반장과 학생회장을 겸임. 성격이 밝고 성적이 좋음. 교내 중심인물.
카이 히지리 : 2학년
오컬트를 좋아하고 영감도 있지만 정작 유령은 무서워하는 소녀. PC에 대해서도 잘 앎. 낯가림이 심해 친구는 많지 않다.
아키요시 린 : 2학년
무드메이커. 밝고 천진난만한 성격이라 언제나 똑부러지는 세나의 도움을 받곤 함.
사카키 세나 : 2학년
테니스부 주장. 씩씩하고 지는 것을 싫어함. 린과는 절친한 관계로 항상 린을 지켜주는 역할.
카네무라 유이 : 2학년
기본적으로 성격이 드세고 동급생들을 무시함. 이지메 그룹의 리더.
하나무라 호노카 : 2학년
유즈키와는 절친. 성적도 좋고 매사에 성실하지만 천식을 앓고 있어 몸이 약하다.
사키카와 유즈키 : 2학년
호노카와는 절친. 몸이 약한 호노카를 지켜주기 위하여 언제나 곁에 있음.
사쿠라 스즈네 : 2학년
만화 연구부 부원. 내성적인 성격으로 유이 무리에게 괴롭힘 당하고 있음.
이가라시 레나 : 2학년
소극적인 성격이지만 다정다감한 소녀. 사와와 친함.
키우치 카나 : 2학년
학급 내 서열 상위이며 유이가 이끄는 이지메 그룹의 일원.
혼다 쿄코 : 2학년
유이가 이끄는 이지메 그룹 일원. 유이, 카나와는 중학생 때부터 친구.
세키 아즈사 : 2학년
이지메 그룹의 일원으로 평소에는 유이에게 맞춰주고 있지만, 실제로는 착하고 성실한 성격.
후지사키 마리나 : 1학년
미노리의 직속 후배. 학생회 소속. 정의감이 강함.
이치죠 시오리 : 2학년
1학년 때 카에데와 같은 반이었던 소녀. 차분한 성격이며 애니메이션을 좋아함.
나이토 메구미 : 1학년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성격.
쇼지 미오 : 2학년
검도부 주장. 무장집단의 일원으로 잠비와의 싸움 일선에서 활약.
코지마 야요이 : 1학년
만화 연구부 부원. 미코토의 절친.
시이나 미코토 : 1학년
만화 연구부 부원. 야요이의 절친.
우에스기 사와 : 2학년
얼핏 보기에는 차분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가 센 성격. 레나의 절친.
쿠라타 유리에 : 2학년
요리 연구회 회장. 무장집단 리더.
야마나카 리코 : 2학년
육상부 주장. 무장집단 일원.
미야가와 아이 :
카에데의 담임으로 담당 과목은 영어. 독실한 크리스천. 그 무엇보다도 학생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선생님.
모리구치 타쿠마 :
카에데가 수학여행 도중에 만난 기자. 잠비마을을 조사하던 중에 카에데와 만났다. 하나뿐인 딸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김.
의문의 미녀 :
먼 옛날 어떤 마을 지주의 부인이었던 미녀. 하지만 그녀의 삶은 너무나도 불행한 일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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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화
히라가나란 무엇일까?
2018년 1월 30일부터 2월 1일에 걸쳐 3일간 일본무도관(이하 부도칸)에서 열린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의 단독 공연. 당초 예정상으로는 3일 중 이틀은 한자 케야키가 공연을 하기도 되어 있었으나, 공연 개최를 약 2주 가량 남긴 시점에 사정은 급변, 히라가나 케야키가 3일 공연을 전부 담당하는 것으로 계획이 수정되었다.
갑작스러운 변경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 하는 멤버들, 하지만 그런 가운데도 마음을 다잡고 ‘사람들을 놀라게 해 주자’, ‘전설에 남을 라이브를 보여주자’고 서로를 다독이며 무대에 섰다.
그리고 ‘서커스’를 테마로 한 컬러풀한 세계관으로 장식 된 스테이지에서 관객들을 매료하며 3일간에 걸친 공연은 성황리에 마무리 되었다.
또한 이 공연 마지막에 히라가나 케야키의 단독 앨범 발매 소식이 서프라이즈로 발표 되어, 그룹 활동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다음 곡 센터가 2기생이라 해도 괜찮아요’
부도칸 공연이 마무리 된 지 며칠이 지나 2월 12일,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2기생들에게는 첫 단독 이벤트인 ‘오모테나시회’가 개최되었다. 이는 선배에 해당하는 한자 케야키와 히라가나 케야키 1기생들 역시 각각 통과 해 온 그룹 전통의 이벤트이다.
그리고 이번 무대는 부도칸 공연을 성공시킨 히라가나 케야키의 기세를 과시하기라도 하듯 치바현 마쿠하리 멧세라는 큰 회장에서 열리게 되었다.
마쿠하리 멧세는 작년에 있었던 전국 투어 파이널 공연의 장소로, 2기생들에게 있어서는 무대 데뷔를 이루어 낸 장소이기도 했다. 투어 때는 1기생들과의 합동곡 1곡만 참가하였으나, 이번에는 7,000명에 달하는 관객들 앞에서 2기생만으로 8곡 라이브를 포함한 퍼포먼스를 성공리에 선보이며 자신들의 잠재력을 뽐냈다.
그리고 2월 하순,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에게 좋은 소식이 찾아왔다. 봄 개편부터 히라가나의 칸무리방송이 두 편이나 시작된다는 소식이었다. 지금까지 한자 케야키의 칸무리방송인 ‘케야카케’ 등에 드문드문 출연하기는 했지만, 그 방송은 어디까지나 선배인 한자 케야키의 방송에 ‘게스트’로서 출연했던 것이었기에 자신들만의 칸무리방송이 시작된다는 것은 히라가나 멤버들에게 있어 꿈만 같은 일이었다.
사이토 쿄코는 ‘아이돌 활동에 있어 TV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지’에 대해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가입 초기 ‘케야카케’에 나와 자신의 특징인 낮은 목소리와 라면 마니아라는 점을 어필하였기에 비교적 빠른 시기에 팬층에게 주목을 받고, 그 결과 악수회 인기도 높아졌으며, 유닛곡에서 센터를 맡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 조차도 자신들이 칸무리방송을 할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 했다.
‘지금까지 그룹의 목표 중 하나로 칸무리방송을 언급 해 왔습니다만, 사실은 이룰 수 없는 꿈이라 생각했기에 입 밖으로 그 얘기를 꺼내는 것 조차 부끄러웠어요. 하지만 그 꿈이 이렇게 이루어 지다니… 저희는 정말 축복받은 그룹 같아요.’
새롭게 시작된 히라가나의 칸무리방송의 제목은 ‘히라가나오시!’와 ‘KEYABINGO!4 히라가나 케야키는 어떤 그룹?’이었으며, 두 방송 모두 4월부터 시작되었다. 또한, 그룹 전원이 출연하는 첫 연극무대 ‘아유미’ 역시 4월에서 5월에 걸쳐 상연이 확정되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악수회 외에는 일거리가 없었고, 한자 케야키가 음악 방송에 출연할 때 도맷금으로 함께 출연을 하더라도 조명조차 비춰지지 않았던 히라가나 케야키. 그 때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 했던 일들이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현실로 바뀌어가는 나날을 보내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던 멤버들도 있었다. 다카모토 아야카는 당시를 이렇게 되돌아본다.
‘예전에는 아무리 저희가 열심히 하려 해도 노력할 기회조차 없었어요. 그렇기에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 지 고민했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죠. 하지만 그런 예전의 기억이 있기에 지금 이렇게 바쁜 것이 너무나도 기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이렇게 계속 노력한다면 저희들도 언젠간 노기자카 선배님들이나 한자 선배님들처럼 멋진 아이돌이 될 수 있겠지요?’
이런 식으로 그녀들의 심경이 변한 데에는 전국투어부터 부도칸 공연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라이브를 하며 1기생들 자신의 평가가 착실히 쌓아 왔다는 점, 그리고 2기생들의 가입으로 인해 그룹 자체의 폭이 넓어 진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멤버들은 알지 못 하는 곳에서 또 다른 거대 프로젝트가 시동이 걸렸다.
다름 아닌 ‘사카미치 그룹 합동 신규 멤버 모집 오디션’ 이었다.
‘사카미치 그룹’으로 불리는 세 그룹, 다시 말 해 노기자카46, 케야키자카46,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이 동시에 오디션을 연다는 이야기였다. 노기자카, 케야키자카라는 ‘선배 그룹’과는 별개로 히라가나 케야키의 새 멤버를 받는다는 것은 업계 관계자들은 물론 팬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가 발표 되었을 당시, 히라가나 케야키의 2기생들은 활동을 시작한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갑작스러운 발표에 동요하는 2기생들. 그 모습은 1년 전, ‘추가 멤버 오디션’ 개최 소식을 알았을 때의 1기생의 그것과 비슷했다.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간다면 나가하마 네루의 가입과, 히라가나 케야키 결성 발표를 알게 되었을 때의 한자 케야키 멤버들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2기생들의 모습을 본 우시오 사리나는 자신들이 1년 전에 비해 확실히 강해졌다는 것을 실감했다.
‘사실 저희도 2기생 모집을 알았을 때 엄청 울었거든요. 그런데 합동 오디션 얘기를 들었을 때는 크게 불안하지 않았어요. 아마 2기생들이 들어 와 준 덕분에 방송이나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늘었고, 그 결과 그룹 전체가 크게 성장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3기생이 새롭게 들어 와 준다면 히라가나 전체가 더욱 더 밝은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어요.’
사실 이미 이 때부터 코사카 나오를 비롯한 2기생들이 단독으로 잡지 표지를 장식하곤 했다. 그렇게 2기생들의 미디어 노출이 늘어나며 그룹 전체의 지명도가 나날이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1기생들은 실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카토 시호 역시 스태프에게 자신의 본심을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저 개인적으로는 다음 곡 센터는 2기생이 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귀여운 아이가 한 가운데 서는 게 좋잖아요. 저는 뒤에서 최선을 다 해 그 아이의 버팀목이 되어 주고 싶어요.’
부도칸 공연 이후 그룹에 불어 온 변화의 바람이 멤버들을 정신적으로 성장시켜 준 것이다. 그런 가운데 말 그대로 ‘인생 최대의 결단’을 내린 멤버도 있었다.
그룹 최연장자, 이구치 마오 이야기이다.
지금껏 그려 온 인생 설계가 어긋난 순간
이구치 마오가 히라가나 케야키의 오디션을 받은 이유는 ‘심사위원들을 놀라게 해 주고 싶어서’ 라는 것이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이구치는 친구들 사이에선 무드메이커로 통했다. 그녀는 거의 매일같이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서 특유의 ‘음치’를 숨기지 않으며 친구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다름 없이 AKB의 노래를 부르며 ‘아이돌 놀이’를 하고 있으려니 한 친구가 갑작스레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마오, 아이돌이 되는 건 어때? 마오가 오디션에 간다면 심사위원들도 깜짝 놀랄걸’. 그런 친구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스마트 폰으로 ‘아이돌 오디션’을 검색해서 나왔던 것이 히라가나 케야키의 오디션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응모했었기에 본인은 합격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 했지만, 쇼룸 심사 때 몇 시간이나 하이 텐션으로 즐겁게 이야기 하는 그녀의 모습은 이미 팬들 사이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그렇게 최종 합격자에 이름을 올린 그녀.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로서 정식 데뷔를 한 이후, TV에서나 악수회에서나 음치임을 숨기지 않고 전력으로 노래를 부르고, 거리낌 없이 인기 배우의 흉내를 내는 그녀의 독특한 캐릭터는 금새 팬들 사이에 침투 하였다.
하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고민거리가 늘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그녀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덜컥 아이돌이 되어, 미디어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처음으로 참가한 MV ‘누구보다 높게 뛰어!’가 유튜브에 공개 되었을 때에도 댓글란에는 이구치의 어설픈 춤을 지적하는 댓글이 가득했다.
그녀 본인이야 지금까지와 다를 것 없이 ‘즐거운 일들을 했’을 뿐인데 어느 사이엔가 불특정 다수에게 그런 행동 하나 하나를 평가받는 입장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나쁜 평가를 받다니, 내 인생도 끝장났구나… 이렇게 가다간 취직도 못 하고 결혼도 무리겠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이름도 바꾸고 인생을 다시 시작할까’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언젠가는 안무 연습 때 혼이 나서 우울한 상태로 사사키 쿠미의 댄스를 보고는 ‘나랑 같은 대학 3학년인데 저렇게나 필사적으로 연습 하다니… 아예 나랑은 사는 세계가 다른 것 같아’라 생각하고 혼자 멋대로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다. 예전에 항상 늦게까지 놀러 다니던 친구들이 그룹 라인에 올리는, 즐거워 보이는 사진을 보며 아이돌이 된 것에 대해 후회 하는 날도 많았다.
그룹에게 세 번째 오리지널 곡 ‘우리들은 사귀고 있어’이 주어졌을 때는 때 마침 그녀가 4학년 진학을 목전에 두고 있는 타이밍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 그녀는 그룹을 그만두고 진지하게 취업 활동을 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몇 번이나 다른 멤버들에게 ‘사무소로 가서 그만 둔다고 말 하려고’ 라 이야기 했다가, 멤버들이 울며 말려서 그만 뒀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윽고 그녀의 마음이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신기하게도 그녀의 마음 속에서 ‘그만 둬야지’라는 마음이 정점에 달했던 타이밍이기도 했다.
전국 투어 첫 공연이었던 제프 도쿄 공연에서 ‘후타리 세종’ 솔로댄스를 추게 되었던 그 때 말이다.
그녀는 내심 ‘이번 라이브만 끝나면 바로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채, 우시오에게 부탁 하여 울면서 솔로 댄스 연습에 매진했다. 그렇게 힘들게 연습을 했음에도 실제 무대에서 안무를 틀린 순간, 이구치의 머릿 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다음 번에는 더 잘 추고 싶어. 일단 다른 멤버들 방해는 되지 말아야지. 그럼 일단 첫 목표는 다음 공연에서 한 번도 틀리지 않는 것으로 하자.’
물론 아쉽게도 이후로 이어지는 공연, 적어도 부도칸 공연까지 이어진 공연 중 그녀가 ‘한 번도 안 틀리고’ 끝을 맞이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라이브 횟수를 더하면 더할수록 그녀의 마음 속에 ‘다른 멤버들과 함께 더 열심히 하고 싶다’는 생각은 커져갔다.
그렇게 그녀의 인생 설계, 다시 말 해 ‘대학을 나와 취직하고 결혼한다’는 계획은 서서히 변해서 부도칸 공연을 끝내고, 대학을 졸업했을 무렵에는 굉장히 단순한 것으로 변해 있었다.
‘뭐, 생각 해 보면 아이돌에서 실패 하면 니이가타로 돌아가면 되지. 지금까지는 타이밍을 놓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만 했지만, 인생 어차피 한 번 뿐이니까 즐기지 않으면 손해야.’
생각을 바꾸니 마음이 편해졌다. 노래방에 가서 친구들을 즐겁게 해 주거나 쇼룸에서 ‘일반적인 아이돌’들이 하지 않을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때, 자신이 빛나 보였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찬찬히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 해 본 결과, ‘언젠가 가게를 차리고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그 결과 떠오른 것이 바로 ‘지친 샐러리맨이나 아이돌 팬들이 부담없이 와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스낵 같은 가게를 열고, 내가 그 가게의 마마를 하면 매일매일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거기까지 생각 한 이구치는 곧바로 악수회에서 ‘스낵 마오’라는 가상의 가게를 오픈, 2기생 미야타 마나모를 설득하여 블로그와 쇼룸 등에서도 이 기획에 대하여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아이돌 답지 않은 그녀의 발상과 행동력은 다시 한 번 화제를 불러 일으키며, 이후 히라가나 케야키의 칸무리 방송에서도 대대적으로 다루어 지기에 이른다.
이 ‘스낵 마오’는 물론이고 아이돌로서의 이구치 마오가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이구치는 ‘자신이 즐거운’ 일을 할 때의 자신이 가장 빛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히라가나란 무엇일까’를 찾아 온 시간들
처음에는 ‘한자 케야키의 언더 그룹’으로 시작된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하지만 구체적으로 ‘언더’가 어떤 의미인지, 어떤 위치인지 명확해지지 않은 상황 하에서 멤버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자신들의 존재의의를 찾아 왔다.
2017년, 전국 투어를 하며 그룹의 상징인 ‘해피 아우라’를 찾아냈고, 그것을 계기로 그룹의 색이 변하기도 했다. 카게야마 유카는 이 전국 투어에 대하여 ‘히라가나란 무엇인가를 찾는 시간’ 이었다고 술회한다.
이후 나가하마 네루의 겸임 해제, 2기생의 가입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거쳐 히라가나 케야키는 단독으로 부도칸 3days 공연을 성공 시키기에 이른다. 그 뒤로 이어진 ‘단독 앨범 데뷔’는 지금껏 라이브를 통해 성장 해 온 이 그룹이 ‘앞으로 새로운 단계에 돌입함’을 나타내는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그룹의 선두에 서서 자신의 생각을 말로 나타내 왔던 사사키 쿠미는 ‘지금이라면 우리가 케야키자카46과는 다른 그룹이라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고도 밝혔다.
‘지금까지는 저희의 활동에 대하여 ‘한자 선배님들의 활동을 그대로 이어 받으면서도 거기에 해피 아우라를 더한 느낌’이라 설명 해 왔습니다만, 앨범 데뷔가 정해지고 2기생들이 들어 와 준 지금은 ‘저희는 한자 케야키와 다른,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입니다’라고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도 저희 히라가나 케야키는 멤버들 사이의 끈끈한 우정을 느끼실 수 있는, 보고 있으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해피한 그룹이 되고 싶습니다.’
그룹을 둘러 싼 환경은 크게 바뀌었지만, 사사키 미레이가 이루고 싶은 목표는 그룹 결성 초기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히라가나 멤버들 끼리 전국 47개 도도부현을 돌며 투어 해 보고 싶어요. 아, 그리고 양로원에 가서 춤을 춘다거나 멤버들과 함께 할머니 할아버지 수발을 든다던지 해 보고 싶네요.’
어릴 적에 인도네시아에 살았으며,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우시오 사리나 역시 초창기에서 지금까지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
‘언젠간 해외에서 라이브를 하고, 일본과 세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어요. 최근에는 악수회에도 해외에서 오신 팬분들이 늘어 났기에, 다음번엔 저희가 직접 만나러 가서, 노래를 통해 ‘감사합니다’라는 저희의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어요.’
2018년 6월 20일 릴리스 된 히라가나 케야키의 데뷔 앨범 ‘달려 나가는 순간’은 첫 주에만 15만장을 팔며 오리콘 주간 앨범 랭킹 1위를 획득, 음원 순위도 1위를 차지하며 첫 출발부터 2관왕을 달성하였다.
시즌 2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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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보다 ‘현재’에서 싸워 온 ‘둘쨋딸들’
지금, 그녀들의 속내를 알아보자.
노기자카46 2기생들의 진심
‘동기란 무엇인가?’
그룹의 중요한 변환기에 그녀들을 취재 한 이유는?
본지가 노기자카의 2기생들에 대한 특집을 싣는 것은 2017년 10월의 특집기사에 이어 두 번째이다.
2년 전, 그녀들을 다루게 된 데에는 사실 필연적인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 해 여름, 메이지진구 야구장에서 열린 콘서트 ‘한여름의 전국투어 2017’는 멤버들이 각 기수별로 나뉘어 등장하는 구성으로 이루어 져 있었다. 그 중 불과 1년 전에 가입했던 3기생들의 등장은 진구 구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게 하였으며, 1기생들은 선배다운 관록을 뽐냈다. 그럼 2기생들은 어땠을까? 그녀들이 남긴 감정은 다름아닌 ‘애달픔’ 이었다. 오랜 기간 그룹 내에서 방치되어 오다시피한 그녀들 특유의 처연함이 회장에 흘러나오는 VTR, 그리고 그녀들에게 주어진 곡에서도 느껴졌다. 2기생들의 퍼포먼스에서는 1기생들이 선보인 퍼포먼스와도, 3기생들의 그것과도 다른 분위기가 느껴 진 것이다.
실제로 몇몇 멤버들의 증언에 따르면 진구 구장에서의 콘서트가 끝나고 열린 악수회에서도 수 없이 많은 팬들이 ‘진구 구장, 정말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그녀들의 퍼포먼스는 그 정도로 많은 팬들의 마음을 울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애달픔’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2기생들만이 갖고 있는, 보는 이들을 홀리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2년 전, 본지가 2기생 특집을 한 이유는 바로 그 의문에 답을 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특집기사로부터 1년 반 이상이 흘렀다.
그렇다면 1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금 그녀들을 취재하기도 마음 먹은 계기는 무엇일까…
노기자카의 2기생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우선 노기자카46라는 그룹의 현 상황을 살펴보도록 하자. 대략적으로 말 하자면 현재 그룹을 대표하는 멤버로는 역시 시라이시 마이, 사이토 아스카, 이쿠타 에리카, 마츠무라 사유리, 아키모토 마나츠, 사쿠라이 레이카, 다카야마 카즈미 등 1기생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멤버들의 졸업이 이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1기생들이 그룹을 대표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싱글의 포지션, 인기, 외부 일, 지명도 등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힘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 바로 1기생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3기생들은 어떠한가. 작년 11월에 발매 된 싱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빙 돌아가고 싶어져’에서 3기생 중 세 명이나 프론트 멤버로 발탁 된 바 있다. 야마시타 미즈키, 요다 유우키, 우메자와 미나미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전술한 세 명 외에도 사토 카에데, 오오조노 모모코, 이토 리리아가 해당 싱글의 선발에 뽑힌 바 있으며, 직전 싱글인 ‘자기 중심적으로 가자!’ 때에도 이와모토 렌카, 우메자와, 오오조노, 야마시타, 요다가 선발에 들었으며, ‘싱크로니시티’ 때 역시 오오조노, 쿠보 시오리, 야마시타, 요다 네 명이 선발에 든 바 있다. 그 뿐 아니라 잡지 표지나 연극 무대, 드라마 출연 등 개개인의 활동도 눈에 띄게 늘어 나, 사실상 ‘노기자카의 차세대를 꾸려나갈 중심 축은 3기생’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또한 작년 12월에 첫 선을 보인 4기생들은 아직 들어 온 지 얼마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여러 명이 함께, 심지어는 솔로로 잡지 표지를 장식하며 이후에 펼쳐질 밝은 미래를 시사 한 바 있다.
그렇다면 2기생들은 어떨까.
3기생들이 그룹에 가입 한 이후의 각 싱글별 선발 추이를 살펴보자.
‘신기루 (니게미즈)’
1기 14명, 2기 2명, 3기 2명
‘언젠가 할 수 있다면 오늘도 할 수 있어’
1기 16명, 2기 3명, 3기 0명
‘싱크로니시티’
1기 14명, 2기 3명, 3기 4명
‘자기 중심적으로 가자!’
1기 13명, 2기 3명, 3기 5명
‘집으로 돌아 가는 길은 빙 돌아가고 싶어져’
1기 13명, 2기 2명, 3기 6명
‘신기루’ 때를 기점으로 노기자카라는 그룹에 일어 난 일들을 간단히 정리 해 보자면 1기생들을 중심으로 한 멤버들의 연이은 졸업, 그리고 3기생들의 대두를 들 수 있다. 실제로 위에 제시한 기수별 선발 인원수만 보아도 이런 흐름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비단 선발 인원 뿐 아니라 그룹 활동 전반에 있어 ‘2기생’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하는 멤버들에게 있어서는 사실상 예전과 비교 하여 큰 변화는 일어나고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표면적인 모습만이 전부일까?
작년 7월, 사가라 이오리가 그룹을 졸업하였다. 2기생 가운데에서 졸업자가 나온 것은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올 해 3월에는 이토 카린이 졸업을 발표하였다. 오랜 기간 이어져 내려온 것들이 ‘무너지기’ 시작 한 것이다. 그런 변혁기에 맞닥뜨리면 누구나 새로운 감정을 품게 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본지는 현재 노기자카의 2기생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기록하고 남겨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1기생들의 졸업이 잇따르고 있는 지금, 노기자카라는 그룹은 큰 변환기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큰 변환기에 ‘2기생’들의 마음 속에는 어떤 감정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또한, 후배인 3기생, 그리고 4기생들이 눈부시게 성장하며 대두하고 있는 지금, 2기생들은 어떤 시선으로 현재를 보고 있는 것일까.
어찌 보면 질문 하기가 조심스러운 내용들 뿐이지만, 허심탄회하게 물어 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녀들은 자신들이 ‘2기생’이라는 점을 얼마나 의식하며 그룹 활동에 임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현재의 동기들에 대해 동료 의식은 갖고 있는 것일까?
그녀들의 속내를 알아야만 앞으로도 조금씩 형태를 바꾸어 가며 성장하게 될 그룹 전체를 조금 더 안정된 시선으로 바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기생들만이 있었던 스테이지 아래서
2019년 2월 21일 교세라돔 오사카에서 ‘노기자카46 7TH birthday live’가 개최되었다.
4일에 걸쳐 지금까지 발표한 곡 총 177곡을 발매 순서대로 피로하는 세트리스트였다.
가장 먼저 공연의 막을 연 것은 역시나 1기생들이었다. 팬들 역시 우렁차게 ‘지금껏 그룹을 이만큼이나 성장시킨 공로자’들에게 함성을 보냈다.
2기생들은 6번째 곡인 ‘오이데 샴푸’부터 등장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순서를 기다리며 센터 스테이지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사실 그 때, 남들 모르게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고 있었던 멤버가 있었다. 바로 키타노 히나코다.
키타노 : 그 땐 정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얼마 뒤면 카린이 졸업을 하니까 카린과 함께 라이브를 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겠구나. 라던지 예전에는 정말 힘들었었지 하는 생각 같은 것들 말이에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울컥하며 눈물이 날 것만 같았어요. 하지만 당시는 제가 7개월에 걸친 휴양을 끝내고 돌아 온 시점이기도 했기에, 건강한 모습을 보여드리지 않으면 팬 여러분께서 다시 걱정하시잖아요? 그렇기에 정말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았어요. 눈물을 참으며 주변을 둘러보니 근처에 있던 멤버들도 다 울고 있더라고요. 쥰나도, 카린도, 마이츙도. 그 멤버들이 어째서 눈물을 흘렸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마 마이츙은 다른 사람들이 우니까 분위기에 휩쓸려 울었던 것 같지만요. (웃음)
키타노가 센티멘털한 감상에 잠겨 있었던 그 때, 다른 멤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이토 카린 : 저는 그 때 이미 졸업을 결심하고 있었기에, ‘내가 이 곡을 하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겠구나…’ 라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으려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하지만 눈물을 흘리면서 무대에 나서면 보시는 팬분들께서 ‘졸업 하니까 우는건가?’라 생각하실 수 있기에 필사적으로 티슈로 눈물을 닦으며 무대에 나섰어요.
스즈키 아야네 : 저는 ‘오이데 샴푸’에서 센터를 맡게 되었거든요. 그 당시에는 센터에 서게 되었다는 생각에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와타나베 미리아 : 저는 스테이지 위에 서 있는 1기생 선배님들을 보며 ‘이젠 우리 2기생 10명이 저 무대를 띄워야지, 그리고 앞으로는 우리 2기생들이 중심이 되어 3, 4기생들을 잘 이끌어줘야겠어’라 생각했어요.
물론 모두들 공통적으로 ‘무대를 성공시킨다’는 의식은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대를 앞두고 각자가 가진 감정이 다 같을 리는 없는 법.
시간을 돌려 2년 전의 진구구장으로 돌아 가 보자. 기수별로 무대를 꾸몄던 그 날 말이다. 2기생들이 무대에 서기 전, 그녀들이 지금껏 걸어왔던 여정이 모니터에 비추어졌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던 위치에서 그 VTR을 본 2기생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기억 해 내고는 감정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녀들은 하나가 되어 무대로 나아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들이 선보인 무대는 당연하게도 너무나 감동적인 것이었다.
물론 올 해의 버스데이 라이브와 2년 전의 라이브를 단순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2기생들의 ‘현재’를 비추어 본다는 의미에서 보자면 올 초, 스테이지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던 멤버들의 심경이라는 것은 그녀들의 지금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동기를 생각하는 마음, 그 무게는 각자 다르다.
사실 2기생들은 ‘깃수별 활동’이라 부를 만 한 것이 거의 없었다. 3기생 뿐 아니라 들어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4기생들과 비교 해 보아도 그 차이가 역력하다. 3기생들은 들어 온 지 얼마 안 되어 3기생들을 위한 곡이 주어졌으며, 4기생들 역시 가입 직후부터 ‘노기자카46 4기생’으로서 단체로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는 등 깃수별 활동을 활발히 해 오고 있다. 2기생들은 사이가 좋은 멤버들끼리 개인적으로 놀거나 하는 경우는 있었어도 전원이 모이는 것은 1년에 한 번 열리는 ‘2기생회’ 뿐이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나는 2기생’이라는 의식 역시 옅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오디션에 합격한 지 벌써 6년이나 지난 그녀들은 실제로 매일매일 어떤 생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임하는 것일까?
테라다 란제 :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나는 몇 기생이다’ 라고 의식하며 일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라이브 연출로 깃수별 등장 같은 것들이 있을 때 새삼스레 의식하는 정도랄까요.
이토 쥰나 : 딱히 누가 몇 기생이라는 생각은 안 하는 것 같아요. 오히려 저랑 사이가 좋은 멤버가 동기인가 아닌가를 생각 할 때 정도 의식하는 것 같네요.
신우치 마이 : 저도 쥰나와 같은 의견이에요. 누구와 함께 있는 시간이 긴가에 따라 다른 것 같네요.
2기생들은 ‘기수’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험을 거의 하지 못 했다. 그렇기에 사람에 따라서는 ‘2기생’이라는 단어가 뇌리에서 지워지다시피 한 멤버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그런 상황이기에 더더욱 ‘2기생’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품게 된 멤버도 있다. 그 뿐 아니라 좌절을 맛보고 나서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동기’라는 존재를 깨닫게 된 멤버도 있다. ‘2기생’이라는 단어에 대해 품고 있는 마음은 멤버마다 다르며, 어떻게 보자면 짙은 색에서 옅은 색으로 그라데이션을 이루고 있다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멤버들은 각자 자신의 시각에서 ‘2기생’이라는 구조를, 제도를 보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자면 너무나도 독특한 ‘기수’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보통 노기자카의 2기생들은 1기생들과 한 묶음으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다. 사실상 3기생들이 들어오기 전까지 3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동고동락해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딱히 1기와 2기를 나누어서 보는 경우 자체도 매우 드문 일이다.
그렇게 2기생들과 함께 지금까지 걸어 온 1기생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자면, 최근 들어 급속도로 졸업자들이 늘고 있다. 작년부터 올 봄까지 벌써 8명이 그룹을 떠났다. 반면 2기생들 중에서는 같은 기간동안 졸업을 한/발표 한 멤버가 사가라 이오리와 이토 카린 둘 뿐이다.
작년 7월, 사가라가 그룹을 떠났다. 2기생들 중에서 졸업자가 나온 것은 오랜만의 일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사가라의 졸업은 2기생들이 오랜 기간 쌓아 올려 온 것들이 오랜만에 조금씩이지만 무너지기 시작 한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사가라의 졸업에 대하여 동기인 2기생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사사키 코토코 : 졸업 한다는 말을 들은 건… 나고야에서 열린 언더 라이브 때였던 것 같은데, 일단 본인이 멤버들에게 이야기를 했어요.
키타노 : 이오리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 지에 대해 확고하게 생각이 있는 아이기에 만류하려 해도 만류 할 수가 없었죠.
테라다 : 개인적으로 멤버들과 밥을 먹으러 가거나 하는 경우가 그리 많진 않은데요, 제가 처음으로 언더 센터에 서게 되었을 때 저를 데리고 밥을 먹으러 가 준 것이 이오리였어요. 당시 저도 이오리도 카페 투어에 빠져 있었거든요. 함께 이런저런 카페에 가서 일 얘기를 자주 했어요. 제게 있어 이오리는 다정하고 함께 있어서 마음이 편한 언니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 소중한 사람이 졸업을 하는 마지막 라이브에서 함께 있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어요. 그렇기에 좀 더 함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라는 후회가 남습니다.
야마자키 레나 : 동기 중에 유일하게 동갑인 멤버였어요. 그룹 활동에 합류 한 것은 남들보다 늦었지만 금새 선발에 뽑혔었기에 사실 한 때는 어떻게 대해야 할 지 감을 잡기 힘들기도 했어요. 성격도 저랑은 정반대고 말이죠.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오리가 다른 사람들을 소중히 대하는 정말 상냥한 사람이었다는 점입니다.’
호리 미오나 : 사실 이오리가 졸업하기 전에 2기생들만의 라이브를 하고 싶었어요.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졸업이었기에 실현 되지는 못 했지만요. 비록 그 이야기를 꺼낸 데 대해 이오리가 좋아했고, 제게 고맙다고 이야기 해 주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나도 아쉬워요.
와타나베 : 제게 있어 이오리는 정말로 소중한 존재였어요. 제가 혼자 힘들어 할 때 항상 손을 내밀어 주었던 것이 이오리였죠. 머릿속이 복잡해서 어찌 할 줄 몰라 하고 있을 때면 ‘무슨 일 있어?’라고 물어 봐 주었지요. 그런 믿음직한 존재가 더 이상 곁에 없다는 것이 너무 쓸쓸했어요.
웃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이들에게 언제나 상냥했던 사가라는 7월에 열린 싱크로니시티 라이브를 마지막으로 ‘한여름의 추억’과 함께 노기자카를 떠났다.
노기자카46로서 잃고 싶지 않은 사람
사가라의 졸업에 이어 2기생들에게 큰 동요를 일으킨 사건은 올 해 3월 22일에 일어났다. 이토 카린이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졸업을 발표 한 것이다.
블로그에 적힌 글은 카린의 성격을 반영하듯 밝은 어조로 적혀 있었다. 이는 팬들이 자신의 졸업을 알고 쓸쓸해 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인 동시에, 그녀 자신이 슬프고 축 처지는 분위기를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카린이라는 멤버가 노기자카46에서, 조금 범위를 한정짓자면 ‘언더 라이브’에서 빠진다는 것은 매우 큰 손실이라 할 수 있다. 멤버들간의 의견 조정은 물론이고 스태프들과 멤버들 사이에 서서 분위기를 주도했던 것이 그녀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이제 노기자카라는 둥지를 떠나 조용히 마이크를 내려 놓기로 결심 한 것이다.
동기인 2기생들은 카린의 졸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키타노 : 저는 계속 말렸어요. ‘다시 한 번 생각 해 봐’라고. 버스데이 라이브서 동기들끼리 기다리고 있었을 때에도 설득을 했을 정도였지요. 그 때 카린은 엄청 분해보이는 표정으로 울면서 이렇게 말 하더라고요. ‘정말이지 나이 먹고 싶지 않아~’라고. 저도 그 말을 듣고 눈물이 나서…
테라다 : 딱히 2기생들 뿐 아니라 모든 멤버들이 카린쨩에게 큰 신세를 지고 있다 생각해요. 사유링고 군단 활동만 해도 안 보이는 곳에서 노력 해 줬고 말이죠. 기분 좋게 보내 줄 수 있다면 좋겠네요.
야마자키 : 카린은 노기자카라는 그룹에 남긴 것들이 많으니까요. 일반적인 ‘멤버 한 명의 졸업’이라기엔 부족합니다. 모두를 구원 해 준 숨은 공로자인걸요.
신우치 : 카린은 ‘2기생’으로 구분 지을 것이 아니라, ‘노기자카46이라는 그룹 입장에서’ 보아도 잃고 싶지 않은 멤버예요.
와타나베 : 오디션 합격한 직후 한동안 카린이 제게 장난을 많이 쳤어요. 사실 그 때만 해도 어렸고 그렇게 장난치는 데 익숙치 않았기에 솔직히 카린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 했죠. 하지만 서로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나서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지금이야 카린이란 존재는 정말로 사랑스러운 존재지요.
스즈키 : 멤버 중에 소극적인 아이가 많습니다만, 카린은 그런 아이들을 대신하여 하고싶은 말을 스태프분들께 해 주곤 합니다. 정말이지 다른 사람들을 잘 챙겨 줘요.
카린 본인도 지난 1년동안 의식 해 온 것들이 있다고 한다. 바로 ‘내가 후배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점이다.
카린 :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은 라이브에서 내뿜는 열량을 일정하게 맞추는 것이었어요. 들어 온 지 얼마 안 되는 아이들에게 ‘선배들하고 똑같이 하라’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없잖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각자 할 수 있는 대로 해 버리면 스테이지 위에서 융화가 되지 않고 격차가 발생하기 마련이고요. 그런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은 안 될 일이라 생각하거든요. 실제로 멤버들 사이에서도 온도차를 느낀 적도 있어요. 물론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지만요. 실제로 3기생들이 처음 들어왔을 때만 해도 ‘함께 무엇인가를 만들어 간다’는 의식 보다는 ‘필사적으로 따라가는 데 급급하다’는 의식이 강했고요. 지난 1년동안 그런 면에 있어서 이야기 해 줘야 할 것들은 대부분 전해 주었다고 생각해요. 마이크를 어떻게 잡느냐 하는 기본적인 것부터 라이브에 임하는 자세, 안무를 맞추는 점 까지… 그렇기에 더 이상 제가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 할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 덕분에 불안한 마음 없이 졸업 할 수 있는 거고요. 그 뿐 아니라 제가 졸업을 한다 해도 언더 라이브에는 ‘와다 마아야’라는 리더가 있으니까요. 사실 3기생들의 안무를 다져 준 것은 다름아닌 마아야였거든요.
어쩌면 카린이 남긴 유산들은 팬들이 쉽게 눈으로 찾아내긴 힘든 것일지도 모른다. 선발에 단 한 번도 들지 못 한 채 그룹을 떠나려 하는 그녀이지만, 라이브에 대한 애착만큼은 누구보다 강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언더 라이브에 걸었고, 그룹에 남을 후배들에게 라이브의 진수를 전해주며 그룹에 큰 선물을 남겨 준 것이다.
카린이 졸업하기 전에 그녀의 공적에 대하여 이렇게 지면에 글을 남기는 것이야말로 본지가 그녀에게 보내는 소소한 ‘졸업 선물’이다.
스즈키 : 올 해 버스데이 라이브 때 카린이 후배들에게 여러 가지로 조언을 해 주었던 것이 기억에 남아요. 카린이 졸업을 하더라도 그녀가 흔적은 노기자카라는 그룹 안에 수 없이 남아 있을 거예요. 팬 여러분께서 그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후배들에게 바라는 점, ‘분위기를 느꼈으면’
서장에도 이미 적은 바 있지만, 현재의 노기자카는 3기생들을 조금씩이나마 전면에 내보내는 경향이 강하다. ‘니게미즈’에서 오오조노와 요다를 더블 센터로 세운 것을 시작으로 3기생들의 전방위적인 활약이 시작되었다. 올 해 4월에 시작된 드라마 ‘전영소녀 ~Video Girl MAI 2019~’에서도 야마시타 미즈키가 주연에 발탁 된 바 있으며, 버스데이 라이브에서는 졸업생들의 빈 자리에 2기생들 뿐 아니라 3기생들이 서기도 했다.
호리 : 대만 라이브 때나 버스데이 라이브 때에도 3기생들이 프론트에 서고, 2기생들은 그 뒤에서 춤을 추는 경우가 많았어요. 솔직히 퍼포먼스 면에서는 저희가 더 잘 할 자신이 있기에 내심 아쉬운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저 역시도 선배들의 포지션에 서서 1기생들의 위대함을 실감했고, 저 자신이 아직 부족하다는 점을 깨닫기도 했거든요. 그렇기에 비록 100% 자신을 갖고 그 자리에 서지는 못 하더라도, 3기생들이 그 자리에 선다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저 자신도 ‘힘 내’라고 응원 할 수 있었어요.
키타노 : 저 역시도 리허설 때만해도 솔직히 아쉬운 마음이 더 컸어요. 하지만 무대에 선 야마시타 미즈키쨩을 보니, 1기생 선배들에게도 뒤지지 않는 아우라를 뿜어내더라고요. 그 모습을 본 순간 ‘아, 이건 3기생들 외에는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2기생이 아닌 3기생의 역할이라는 것을 자각 한 것이지요.
테라다 : 노기자카라는 그룹의 컬러 자체가 1기생, 2기생, 3기생, 4기생이 각각 다르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베이스는 전부 같지만, 각자 어딘지 모르게 다른 느낌이 들어요.
야마자키 : 1기생과 2기생은 ‘개성’이라는 데 대한 열의가 대단하거든요. 탐구심이라 해야 할까요? 하지만 3기생, 4기생들은 들어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별 수 없다고는 생각합니다만, 아직 각자의 ‘색’을 찾고 있는 중이라 생각해요. 자신만의 무기를 발견한다면 더욱 더 강해질 것이고, 활동도 편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자각을 갖기 시작한 멤버들도 적지 않다.
호리 : 버스데이 라이브 리허설을 하다 느낀 것이 있어요. 언더 곡의 연습을 하던 중에 제게 있어 소중한 곡을 연습하게 되었거든요? 역시나 제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곡이라 오리지널 퍼포먼스와 비교해서 퀄리티가 떨어지는 것이 싫었어요. 그 때, ‘아, 앞으로는 지금까지 이야기 하지 않았던 쓴소리들도 해야 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쥰나 같은 경우에는 이미 3기생들에게 ‘여기는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이야기를 했었기에, 그런 모습을 보며 ‘2기생들 중에서 저렇게 이미 자각하고 있는 아이도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기뻤습니다. 저희가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사실 1기생 선배님들이 저희를 그렇게 이끌어 주셨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그런 1기생들이 점점 그룹을 떠나게 되고, 3, 4기생들이 점점 눈에 띄게 활약을 해 나가는 지금, 2기생들만이 손을 놓고 있으면 결국 저희들의 존재가치 자체가 알 수 없게 되잖아요. 그렇기에 저희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증명 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와타나베 : 저희들에게는 주의를 해 주는 선배님들이 계셨어요. 특히 이코마상이나 미사선배 같은 경우에는 여러 가지를 가르쳐주셨지요. 물론 엄하게 혼내시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경험을 했기에 지금 이렇게 활동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그렇게 후배들에게 주의를 해 주시는 선배님들이 졸업을 하셨잖아요. 그렇다면 저희 2기생들이 그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즈키 : 미리아의 말대로예요. 저희 2기생들도 벌써 6년째 활동을 하고 있는걸요. 물론 후배들 입장에서는 ‘왜 저런 소리를 들어야 하지?’라고 생각 할 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런 것 까지 전부 고려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런 것들까지 전부 생각해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가는 언젠가 1, 2기가 전부 졸업했을 때,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그룹이 되어 버릴 지도 모르니까요.
그녀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그녀들의 의지가 묻어나는 것 같았다. 특히 ‘저희들도 이미 6년이나 활동을 하고 있다’는 스즈키의 말은 거짓 한 점 없는 본심이었으리라.
물론 그렇게 악역을 자처한다 해도 3, 4기생들이 ‘그룹의 희망’이라는 점만은 잊지 않고 있는 듯 했다.
신우치 : 제가 이 그룹에 2기생으로 들어 올 수 있어 행복하다 생각하는 점은 다름 아닌 ‘1기생들을 가장 가까이서, 그것도 가장 오랫동안 지켜 볼 수 있었다’는 점이에요. 그렇기에 지금 들어 온 4기생들이 ‘1기생들이 전부 졸업하기 전에 최대한 많이 보아주기’를 바라고요.
쥰나 : 노기자카라는 그룹을 기초부터 쌓아 온 것은 1기생들이잖아요. 선배들이 만들어 온 그룹의 분위기와 무드를 후배들이 느껴 주었으면 해요. 가입 직후부터 선배들에게 귀여움을 받아 온 3, 4기생들이기에 지금의 ‘후배다운’ 반짝임이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요.
후배들이 위축되지 않고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 할 수 있는 것은 선배들이 만들어 준 따뜻한 그룹의 분위기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환경에 안주하지 말고 ‘노기자카46’이라는 그룹의 분위기를 자신 안으로 받아들여 주기를 바란다. 쥰나의 말에 담긴 속 뜻은 이런 것이리라.
호리 미오나는 ‘무지개’ 그 이상의 것을 원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2기생에 대한 사랑은 잊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호리 미오나와 키타노 히나코를 설명하는 문장일 것이다. 다른 동기들에 비해서도 누구보다 동기애가 강한 것이 바로 그 둘이다.
묻기에는 너무 늦은 새삼스러운 질문일 지는 모르지만, 그녀들에게 ‘어째서 그렇게 동기애가 강한 지’를 물어 보았다.
호리 : 동기들이 노기자카라는 그룹에 얼마나 강하게 애착을 갖고 있는지, 얼마나 진지하게 활동 하고 있는 지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 봐 왔기에 가장 잘 알고 있거든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를 들자면… 책임감이랄까요. 제가 동기 중에서 가장 먼저 선발에 들어 갔고, 그 다음에 히나코가 들어 왔으니까요. 16살 때부터 저희 둘이 다른 동기들을 이끌어 줘야 한다는 생각은 계속 하고 있습니다.
키타노 : 미오나와 제가 선발에 들어 간 뒤, 한동안은 다른 동기들이 선발에 들어 오지 못했어요. 상황이 잘 변하지 않았기에 항상 ‘다 함께 힘을 모아서 노력하자’고 이야기는 했지만… 사실 2기생들은 ‘2기생’으로서 함께 일을 한 경우가 거의 없거든요. 그런 환경이었기에 동기애가 더더욱 강해진 것 같아요.
호리와 키타노는 서로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키타노 : 사실 저는 미오나가 처음으로 선발에 들어갔을 때의 영상을 지금도 가끔씩 꺼내 보곤 해요. 볼 때마다 소름이 돋는데요, 덜덜 떨면서 쟁쟁한 선배들 사이에 들어 가, 무슨 일이 있어도 묵묵히 견뎌 온 것이 미오나잖아요. 말하자면 ‘2기생의 개척자’ 랄까요. 언젠가 한 번은 스태프분께서 ‘솔직하게 얘기 해 봐, 미오나랑 히나코는 사이가 어때?’라고 물으셨는데요, 저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미오나를 부정해도 저만은 미오나의 편이 되어 줄 거예요’라고 이야기 했어요.
호리 : 히나코와 저는 성격도 정반대고, 처해있는 처지도 달라요. 하지만 나이도 같고, 동기에다가 웃음 포인트도 같죠. 그룹 활동에 대한 생각도 비슷합니다. ‘라이벌은 누구’냐는 질문에는 항상 ‘저 자신’이라고 대답하지만, ‘그룹 멤버중에서 고르라’고 하신다면 언제나 ‘히나코’라고 대답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히나코의 적이 된다면요? 그럼 제가 지켜 줄 거예요.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마음은 마치 프로포즈처럼도 들렸다. 서로를 인정하는 두 사람의 마음, 그 근간에 깔려 있는 것은 다름아닌 ‘동기애’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동기들은 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사사키 : 둘 다 2기생을 위해 열심히 노력 해 주고 있다 생각해요. 그런 점은 제가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정말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카린 : 히나코가 갖고 있는 동기애는 최근 들어 더 커졌다고 생각해요. 아마도 마음에 여유가 생긴 덕분이라 생각하는데요. 이전까지는 자기 자신의 일만으로도 벅찼지만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기도 했고,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결과, 그 빈자리에 2기생들을 채워넣는달까요. (웃음) 뭐, 그런 부분이 귀엽습니다만.
와타나베 : 그 중에서도 미오나는 특히 어떻게 해서건 2기생들을 밀어주려 하기에, 굉장히 고맙죠. 사실 동기 중에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선발에 꾸준히 들어 온 미오나 외엔 없거든요. 물론 저희가 ‘2기생’이라는 카테고리로 항상 함께 움직이는 건 아니기에 ‘엄청 고마워!’라고 하면 그건 그것대로 좀 오버 같긴 하지만요.
멤버들의 말마따나 2기생들이 자신들의 기수를 강하게 의식 할만한 순간은 지금껏 그리 많지 않았다. 기수별로 묶여서 함께 활동한 경험이 적다는 것도 그 이유일테지만 1기생들과 오랫동안 함께 활동 해 오며 1, 2기가 융화되어 기수를 의식할 일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는 점도 큰 이유일 것이다.
테라다 : 다들 사이는 좋지만 그게 딱히 동기라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야마자키 : 물론 다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사이들은 좋아요. 저 같은 경우는 동기들을 믿고 있기 때문에 구태여 ‘2기생’이라고 묶어서 생각하지 않아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고요. 딱히 묶여서 활동하지 않아도 각자가 각자의 분야에서 노력하고 있다는 건 잘 아니까요.
어떻게 보자면 2기생들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은 단순한 ‘동기애’가 아니라, ‘동기애’와 ‘노기자카에 대한 애정’이 섞인 감정이라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지난 ‘2기생 특집’ 때 와타나베는 이런 말을 남긴 바 있다.
‘2기생들의 색은 전부 제각각이에요.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로 섞이거나, 한 색으로 물들지 않아요. 하지만 굳이 섞거나 한 색깔로 물들이지 않아도 무지개라 생각하면 그 자체로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말로부터 1년 반이 지난 지금, 그녀가 말한 ‘무지개’는 어떻게 변했을까?
와타나베 : 지금도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어요. 사실 저 그 표현, 꽤 좋아하거든요. (웃음)
호리 : ‘무지개’라는 비유, 정말 마음에 드네요. 각자 색이 다르지만 하나가 되었을 때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준다는 의미잖아요. 하지만 무지개는 정말 가끔씩밖에 볼 수 없잖아요. 그렇기에 전 무지개도 좋지만 항상 볼 수 있는 것에 비유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것도 사는 데 필수적인 무언가라면 더더욱.
사가라의 졸업으로 ‘무지개’를 구성하는 색이 하나 빠졌다. 그리고 곧 다가올 카린의 졸업을 통해 색이 하나 더 줄어 들 것이다. 사실 이 ‘무지개’는 앞으로도 색이 줄어 들 수는 있어도 늘어 날 수는 없는 무지개인 것이다. 그런 상황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지난 1년 반동안의 활약을 통해 멤버 한 사람 한 사람이 내뿜는 색은 더욱 더 선명해졌다. 각자가 각자의 분야에서 활약하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신우치로 예를 들어보자. 올 4월에는 3년 전부터 진행 해 온 라디오 방송 ‘올 나이트 닛폰 0’가 2부에서 1부로 승격, 방송 시간이 새벽 1시부터로 앞당겨졌다. 3월에는 여성 패션잡지인 ‘andGIRL’에서, 4월에는 ‘Oggi,jp’에서 레귤러 모델로 발탁이 되었고, 재작년 11월에는 솔로 사진집을 내기도 했다.
신우치 : 라디오 승격 소식은 믿을 수 없었어요. 3년간 해 온 것들에 대한 결과라 생각합니다. 저에게 맡겨주신 이상 그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고, 항상 머릿속 한 구석에선 청취율을 신경쓰고 있었어요. 조금이라도 재미있게, 조금이라도 더 즐거운 방송을 만들고자 고민 한 결과입니다. 모델 일에 대해서는 저 스스로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였어요. 사실 모델일을 하고 싶다는 꿈에 대해서 블로그 등에 쓴 적은 없었지만, 인터뷰에서는 이야기 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했던 말들이 실현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어찌 보자면 지금껏 쌓아 온 것에 대한 결과겠지요. 직선 거리로 빠르게 달려 온 것은 아니지만 지금껏 해 온 모든 것들이 헛된 것들이 아니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사키 역시 4월부터 라디오에서 자신의 방송 ‘노기자카46 사사키 코토코의 톱기어’가 시작된다.
사사키 : 방송이 결정되었을 때, 엄청 기뻤어요.
이토 쥰나의 경우에는 역시 연극 무대가 주를 이룬다. 지난 1년 반동안 ‘MIDSUMMER CAROL’이나 ‘가로’, ‘3자매’, ‘일곱색 잉꼬’, ‘GIRL’S REVUE’ 등에 출연하였으면 그 중 ‘일곱색 잉꼬’에서는 처음으로 주연을 맡기도 하였다.
쥰나 : 저 자신의 무기가 하나 생겼다는 점에서 보자면 조금은 성장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처음으로 주연을 하게 되었을 때, 연출가 분께서 아무런 지시를 안 해 주셨거든요. 나중에 여쭤 보니 ‘주연이잖아. 딱히 여기서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아도 알아서 판단하고 연기 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해서 일부러 아무 말도 안 했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보아 주셨다는 건, 제가 그래도 성장 했다는 의미겠지요?
야마자키는 오랜만에 골든타임 퀴즈방송인 ‘Q사마!!’에 출연하였다.
야마자키 : 현재 멤버 중에 대학생은 저 혼자거든요. 그런 점을 살려 활동한다는 것이 제게 있어서는 하나의 사명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주어진 기회를 제 것으로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력을 다 할 생각으로 준비했어요. 녹화날짜 이틀 전부터 밤을 새워서 공부를 했을 정도죠. 물론 공부한다 해서 어떤 문제가 나올 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껏 손에 넣은 기회를 헛되이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니 밤을 새울 수 밖에 없더군요. 사실 처음 방송에 불러 주셨을 때 보다 두 번째 불러 주셨을 때가 더 기뻤습니다. 아무래도 첫 출연 때 어떤 형태로든 인상을 남겼으니 두 번째 오퍼가 있었다는 것일 테니까요. 그 뿐 아니라 아무리 언더에 있어도 시점을 바꾸어 보면 얼마든지 변화 해 갈 수 있다는 점을 실감 할 수 있었기에 활동하는 것이 더 즐거워 지기도 했어요.
멤버들 스스로도 각자가 발하는 빛이 더 강해졌다고 자각하고 있을까.
테라다 : 그런 것 같아요. 버스데이 라이브때 아야네가 ‘오이샨’ 센터에 서게 되었을 때, 모든 분들이 ‘열심히 해’라고 응원 해 주는 분위기였거든요. 저도 그 모습을 보며 기뻤습니다.
한 여름, 전원이 수영장에 모여 MV를 찍는 상상
최근 들어 2기생 오시들에게 기쁜 일이 있었다. 23번째 싱글 발표 말이다. 이번 싱글에서 선발에 뽑힌 2기생들은 사상 최대인 5명 (호리, 키타노, 신우치, 스즈키, 와타나베)이었다.
테라다 : 평가 기준이 ‘선발’이냐 아니냐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선발이라는 것에 너무 연연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2기생들이 선발에 많이 뽑힌 것은 진심으로 기뻤습니다. 물론 2기생들이 선발에 몇 명이나 드는 지 가장 신경쓰는 것은 다름 아닌 미오나지만요.
키타노 : 미오나가 엄청 기뻐했어요. ‘이거야 이거! 내가 지금까지 기다려 왔던 건 이거야!’라 하더군요. (웃음)
카린 : 누가 뭐라 해도 동기란 건 특별한 존재다 보니 엄청 기뻤어요. 뭐, 선발이나 기수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제가 이런 말 하는 게 좀 웃기긴 하지만. (웃음)
야마자키 : 처음으로 선발에 뽑힌 미리아에겐 연락 했어요. 엄청 기뻤거든요. 특히 미리아는 언더 라이브 때 포지션이 가깝기도 했고요. 그런 아이가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것이 기뻤습니다.
본인들의 말 그대로 ‘신경쓰지 않’지만 내심 신경이 쓰이는 관계, 혹여 ‘신경을 쓰’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신경쓰이는 그런 관계가 바로 2기생들 사이의 독특한 관계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절묘한 균형이 맞춰 져 있는 그런 관계성 말이다.
호리 : 사실 저, 망상 하는 버릇이 있어요. 그 중에서도 ‘이런 식으로 MV를 찍으면 좋을 것 같아’라는 망상을 자주 하는 편인데요, 어떤 스토리로 찍을 지, 어떤 식으로 캐릭터 설정을 넣을 지, 카메라 앵글은 어떤 각도에서 찍을 지 같은 것들을 자주 상상하곤 해요. 얼마 전에는 2기생 전원… 가능하면 졸업한 동기들도 전부 불러서 2기생만의 MV를 찍어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었어요. 시기는 한 여름, 무대는 수영장으로요. MV 촬영 자체도 추억이 되겠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함께 활동을 했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거든요.
스즈키 : 사실 딱히 제가 2기생이라는 의식을 강하게 갖고 있는 편은 아닙니다만, 함께 있는 것은 역시 동기들일 경우가 많아요. 왜냐고요? ….역시 동기들을 좋아하니까.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하거든요. 가족 같은 관계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와타나베 : 버스데이 라이브 리허설 당시, 자연스럽게 동기들끼리 뭉쳐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 때 새삼스럽게 ‘동기들 참 귀엽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실 벌써 6년이나 함께 활동을 해 왔지만, 그렇게 느낀 건 처음이었거든요. 정말이지 너무 사랑스럽게 느껴졌어요. 어째서인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라이브 때 2기생 곡에 맞추어 춤 출 때도 정말 즐거웠고요. 딱히 카린의 졸업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라 생각해요. ‘이 멤버들과 함께 이렇게 활동 할 수 있다니. 내 인생 정말 좋은 인생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죠.
사사키 : 요 전에 쥰나랑 이야기 한 적이 있어요. ‘2기생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딱 좋다’라고.
카린 : 사실 동기들끼리 자주 이런 말을 해요 ‘2기생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딱 좋다’라고 말이죠. 이 말을 할 땐 반드시 ‘이러니 저러니 해도’라는 말이 붙는데요, 말 그대로 서로가 서로의 좋은 점도 안 좋은 점도 다 알고 있고, 그러다 보니 상대방에 대해 짜증이 날 때도 있는 거죠. (웃음) 하지만 그런 것들을 전부 감안해도 ‘딱 좋은’ 관계라 생각해요.
하는 말을 들어보면 영락없는 ‘가족’이 아닌가. 서로의 좋은 점을 알고 있는 동시에 서로의 ‘이런 점은 바꿔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때로는 싸우기도 하지만 함께 놀러 다니기도 하고… 말 그대로 ‘가족’ 인 것이다. 아무리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는 끈끈한 인연이 그녀들 사이에 싹 터 있는 것이다.
카린 : 저는 노기자카46의 2기생이 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카린은 미소 지으며 그렇게 말을 맺었다.
앞으로도 계속 될 연례행사
그럼 다시 한 번 이야기를 교세라돔 오사카으로 돌려보자. 그 날은 2019년 버스데이 라이브가 시작 된 날이었다. 무대 위에서는 1기생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고, 다음 차례인 2기생들은 무대 뒤에서 대기하며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카린 : 사실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한 건 저였어요. 제가 이 콘서트 이후에 졸업을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인지 다들 금방 모여 주었지요. 평소 같았으면 단체 사진 찍자고 모이라 하면 ‘에~?!’라 하며 모이지만 이번에는 별 말 없이 금방 와 주더라고요.
테라다 : 뭐, 다들 귀찮은 척 ‘나 참…’이라 말 하면서도 결국은 모여 주죠. 2기생들 중에는 정말이지 츤데레들이 많아요.
사사키 : 도쿄돔 때도 단체 사진을 찍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찾아 보면 2기생 단체사진은 꽤 많을걸요.
야마자키 : 단체 사진 찍을 때면 항상 누군가 저에게 ‘팔이 제일 기니까 사진 찍어 달라’고 하거든요. 그 때마다 제가 ‘싫어’라고 하면 다들 웃음이 터지고요. 2기생들끼리 사진 찍을 때면 항상 여기부터 시작합니다.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웃음이 나네요. (웃음)
모두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면 솔직히 찍고 싶다고 이야기 하면 될 것을, 다들 그런 면에서는 감정 표현이 서툴다. 누군가 블로그에 올릴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신들의 마음과 휴대폰 앨범에 단체 사진을 간직하고 다시 꺼내 보는 일은 좀처럼 없다.
시간이 오래 지난 뒤, 문득 기억 해 내고 사진을 다시 꺼내 보았을 때,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그 사진들은 변함없이 선명할 테지만 멤버들의 눈에는 마치 오래 된 흑백사진처럼 비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사진을 보며 ‘아, 이런 때도 있었지. 그 때 내 동기들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딱 좋았’어’ 라고 미소 지으며 회상할 그녀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4월 모일, 올 해
역시 어김없이 ‘2기생회’가 열렸다. 그녀들이 오디션에 합격한 기념일, 3월 28일에 개최하지는 못 했지만 결국 ‘이러니
저러니 해도’ 다들 모여주었다고 한다. 아마 그 날도 다들 모여 단체 사진을 찍었을 테지만, 그 때
역시 다들 솔직해 지지 못 하고 짐짓 싫은 척 하며 누군가의 카메라 앞에 모여 들었을 테다. 그런 솔직하지
못 한 그녀들이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 이어 져 있다면 뭐, 그건 그것대로 괜찮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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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화
부도칸 3days라는 도전
2017년 봄에 시작된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의 첫 전국 투어는 같은 해 12월, 치바현 마쿠하리 멧세에서 이틀간에 걸쳐 열린 파이널 공연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마지막 공연을 이틀 앞둔 날, 카키자키 메미가 팔에 골절상을 입어 라이브에 참가 할 수 없게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하지만 ‘메미 몫은 다른 멤버들이 커버하여 최고의 라이브를 선사하겠다’는 굳은 다짐 아래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는 모든 곡의 포메이션을 급하게 수정하여 마쿠하리 멧세의 무대에 서게 되었다. 또한 그룹에 가입 한 지 4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2기생 9명도 그 날 처음으로 무대를 밟게 되었다.
이렇게 이틀간 1만 4천명을 동원한 ‘과거 최대규모’의 스테이지는 성공리에 막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공연 직전에 터져 나온 ‘한 번 놀라게 해주자’
시간은 흘러 2018년 새 해가 밝았다. 새 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1월 어느 날, 한자/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의 합동 공연이 발표되었다. 두 그룹이 함께 3일간 부도칸 무대에 선다는 소식이었다. 상세한 내용은 ‘1월 30일에 히라가나가 무대에 서고 다음날인 1월 31일과 마지막 날인 2월 1일에는 한자가 무대에 선다’는 것이었다. 음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 꾸는 ‘음악의 성지’인 부도칸에서 단독 공연을 하는 것은 한자, 히라가나 할 것 없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일은 생각처럼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았다. 1월 중순, 스태프가 히라가나 멤버들을 불러 모았다. ‘중요한 전달사항이 있다’며 입을 연 스태프의 말은 히라가나 멤버들에게 있어서 상상조차 하지 못 했던 내용이었다.
‘히라가나 케야키, 너희들에게 부도칸 공연을 3일 전부 맡기고 싶은데, 해 줄 수 있겠어?’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발표에 사사키 쿠미는 머릿 속이 새하얗게 되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 대답을 할 지 모르’는 것 이전에 ‘지금 무슨 말을 들었는 지’ 조차도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사키 뿐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상황은 비슷했기에 스태프가 거듭 ‘할 수 있겠어?’라고 재촉하듯 물었음에도 대답을 하지 못 하고 그저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던 것이다.
일이 이렇게 급변한 것은 사실 한자 케야키의 센터인 히라테 유리나가 전치 1개월짜리 부상을 입어 부도칸에 참가 할 수 없게 되어, 스태프들이 이 건에 대해 한자 멤버들과 대화를 나눈 결과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동안 히라테의 포지션을 메우고,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퍼포먼스를 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불과 한 달여 전에 성공리에 단독 전국투어를 마치고 한층 성장한 히라가나 케야키에게 3일간의 부도칸 공연을 전부 맡기겠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이다.
이 결단은 운영측에 있어서도,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을 믿을 수 밖에 없는 도박이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들의 마음 속은 여러 가지 생각들로 복잡했다.
사이토 쿄코는 ‘3일이나 공연을 한다니, 과연 체력이 버텨 주려나…’라며 불안해 했으며, 사사키 쿠미는 ‘우리들 만으로 3일이나 공연을 한다니, 객석이 채워 질 리도 없을 거고 한자 선배님들의 라이브를 보기 위해 오신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실 지 무서워’라고 마음이 약해져 있었다.
다카모토 아야카는 ‘뭐, 결국은 한자 선배님들도 라이브에 참가 하실거야. 팬 여러분 뿐 아니라 나도 솔직히 한자 선배님들 라이브가 보고 싶은걸’이라며 당초 예정대로 부분적이나마 양 그룹이 함께 공연을 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렇듯 각각 마음의 준비가 다 되지 않은 상태로 시작된 리허설은 지금까지 겪었던 그것에 비해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부담이 막중했다.
우선 투어 때와는 전혀 다른 콘셉트로, 새로운 연출이 많이 가미 되었기에 그에 맞추어 안무나 동선 자체가 크게 변경되었다. 예를 들어, 한자 케야키의 곡인 ‘이야기한다면 미래를…’의 경우, 히라가나 멤버들은 지금까지 이 곡을 선보인 적인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생소한 곡이었을 뿐 아니라, 부도칸 공연을 위해 새로운 구성이 이루어 져, 2층으로 세워 진 세트를 재빠르게 올랐다 내렸다 하며 퍼포먼스를 해야만 했다.
‘퍼포먼스를 한다면 통일성이 중요하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사사키 미레이의 경우, 특히 유닛곡의 완성도가 낮다는 사실에 불안감을 갖고, 리허설이 끝난 뒤에도 스튜디오에 남아 적극적으로 추가 연습을 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연습을 하여도 자신이 목표로 하는 레벨에 도달하지 못 해, 불안함과 초조함을 감추지 못 했다.
또한, 그 시기는 두 달 뒤에 발매될 새 싱글 제작기간과도 완벽하게 겹쳐 있었기에, 공연 리허설에 전념 할 수 있었던 시간은 사실상 1주일 정도뿐이었다. 그 뿐 아니라 이구치 마오, 우시오 사리나, 카게야마 유우카 등 몇몇 멤버들은 그런 얼마 되지 않는 리허설 조차도 학교에 가느라 참가하지 못 하는 경우마저 있었다.
그렇기에 택한 방식은 ‘일단 참가하지 못 하는 멤버들의 대역으로 댄서를 넣고 리허설을 진행 한 뒤, 그것을 동영상으로 찍어, 그 동영상을 보며 각자 연습을 하는’ 방식이었다. 사실은 모든 멤버들을 모아놓고 함께 리허설을 하면서 바로바로 틀린 부분을 고쳐가며 정확도를 높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런 것이 가능한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 하에서 각자 자신이 해야 할 것들을 수행하는 것 만으로도 벅찼기에, 어느 사이엔가 멤버들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져갔다. 공연 직전에 열린 게네프로(※의상, 연출까지 전부 실제 공연과 동일하게 한 최종 리허설)를 본 연출가가 멤버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질책하기까지 했다.
‘너희들 왜 예전처럼 해피 아우라를 뿜어내지 못 하는 거야? 부도칸에서 공연을 할 각오가 부족한 것 아니니?’
부도칸 공연 티켓은 선행 판매 시점에 이미 회장의 수용 인원을 한참 상회하는 수의 응모가 들어 왔을 정도였다. 멤버들이나 스태프들이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히라가나 케야키의 부도칸 공연을 기대하는 팬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수 많은 팬들이 자신들에게 기대를 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된 멤버들은 잔뜩 고무되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우리를 기다려 주고 계시잖아. 이렇게 된 이상 한 번 놀라게 해 드리자고. 전설에 남을 라이브를 보여드리자.’
‘더 이상 도망 갈 수 없는 곳 까지 와 버린 이상, 지금의 불안을 뛰어 넘어,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갈 수 밖에 없어.’
큰 무대를 눈 앞에 두고 멤버들은 서로에게 이렇게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부도칸 공연에서 모두를 놀라게 해 주자!’
‘전설에 남을 라이브를 보여주자!’
그런 멤버들의 각오와 함께 3일간 3만명을 동원한 ‘그룹 결성 이래 최대의 도전’은 막을 올렸다. 그리고 이 공연은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는 ‘격동의 2018년’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의 컬러풀한 세계
부도칸 공연의 오프닝에선 화려한 롱코트를 입은 멤버들이 지팡이와 중절모를 이용하여 댄스를 선보였다. 그리고 그녀들이 발을 딛고 서 있는 무대는 형형색색의 색전구들로 장식되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화려하고 컬러풀한 세트 구성이었다.
지난 해, Zepp tokyo에서 시작된 전국 투어 때는 아무래도 서게 되는 무대가 ‘라이브 하우스’ 였기에 연출을 최대한 자제한 심플한 스테이지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 이 부도칸 공연에서는 처음으로 테마가 있는 ‘쇼’ 형식의 연출이 적용 되었다. 그리고 이 날의 ‘테마’는 다름아닌 ‘서커스’. 부도칸을 하나의 거대한 서커스 천막으로 가정하고 멤버들이 차례로 나와 쇼를 선보이는 설정이었던 것이다.
아리나석에서 천장 부근까지 객석으로 꽉 찬 한가운데에 무대가 위치한, 마치 ‘절구통’ 모양을 한 부도칸의 중심에 선 순간, 사사키 쿠미의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부도칸은 지금까지 서 온 무대들과는 전혀 다르구나. 360도 모든 방향에서 관객들이 지켜 보고 있어. 보는 사람들의 함성이 회장 안을 가득 메우며 마치 땅이 울리는 것 같아.’
공연 시작 직전까지 필기한 메모를 몇 번이고 필사적으로 읽고 또 읽으면서 어찌 할 줄 몰라했던 우시오 사리나 역시 스테이지 위에 선 순간 기분이 확 바뀌었다. ‘여기 이렇게 서 있으니 마치 우주 한 가운데 떠 있는 것 같아. 팬분들의 사이리움이 마치 별처럼 반짝 거리네. 지금까지 준비하는 건 힘들었지만 이렇게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니… 우리들 정말 너무나도 행복한 사람들이구나.’
히라가나 케야키의 라이브에서도 빠질 수 없는 곡, ‘후타리세종’ 때는 전국 투어때와 마찬가지로 이구치 마오의 솔로 댄스 파트가 들어갔다. 이 퍼포먼스는 마쿠하리 때의 그것과 비교하여 퀄리티가 많이 올라 가 있었다.
사실 ‘부도칸에서도 솔로댄스를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이구치는 그녀 답지 않게 단호하게 거절을 했다 한다.
‘부도칸에서 3일 연속으로 공연을 한다는 거, 분명 뉴스에서도 다룰텐데 그런 중요한 무대에서 춤이 제일 서툰 제가 솔로로 춤을 추는 건 웃음거리밖에 안 되잖아요. 투어 때도 참고 했으니까 이번에는 다른 사람을 시켜 주세요.’
하지만, 사실 수 없이 눈물을 흘려가며 셀 수 없을 정도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결과, 조금씩이나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온 이구치였기에 부도칸에서 솔로 댄스라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자격이 있는 것이었다.
스태프들과 멤버들로부터 거의 ‘질타’에 가까운 설득을 받은 뒤, 이구치 역시 결심을 굳혔다. 자신이 춤 추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수 없이 돌려 보며 ‘여기랑 여기는 움직임이 좀 기분 나쁜데 어떻게 해야 좀 멋있게 출 수 있을까요?’ 라며 댄스 선생님에게 하나하나 세세한 곳 까지 확인한 것은 물론이고, 부도칸 공연이 한창일 때에도 자신이 무대에 서 있지 않을 땐 대기실에서 쉬지 않고 연습을 거듭했다. 그리고 그 결과, 본인 스스로도 ‘지금까지 해 왔던 것 중 최고 걸작’이라 자신 할 수 있을 정도의 퍼포먼스를 해 낼 수 있었고, 팬들 사이에서도 그녀의 성장이 화제가 될 정도였다.
이구치의 이 퍼포먼스, 불과 30초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솔로 댄스에는 1년 가까이 노력 해 온 그녀의 지금까지의 시간은 물론이고 ‘사람은 노력하면 성장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부도칸 공연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가 바로 ‘100년 기다리면’ 이라는 곡이었다. 이 곡은 나가하마 네루가 히라가나의 멤버일 때 나온 나가하마의 솔로곡으로, 부도칸 공연에서 1기생 전원이 이 곡을 커보 했던 것이다. 이 곡을 선보일 때, 무대 위에는 멤버들 뿐 아니라 곡예가, 피에로, 댄서, 어린 아이들도 등장하여 ‘서커스’와 ‘뮤지컬’을 융합시킨듯 한 화려하고 팝한 세계관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사실 한자, 히라가나 할 것 없이 무대 위에 멤버 이외의 사람이 올라오는 연출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 한 것이 바로 이 무대였다. 그리고 이 연출은 ‘모두 하나가 되어 즐겁게 즐긴다’ 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개방적인 분위기를 표현한 연출이기도 하였으며, 그 특유의 컬러풀한 세계관은 ‘스타일리시하고 흑백 대조가 강렬한’ 한자 케야키의 세계관과 대조를 이루며 양 그룹의 차이를 한 층 더 돋보이게 해 주는 연출이었다.
양 그룹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 연출이 다른 곡도 아닌 ‘나가하마 네루의 솔로곡’에 처음 쓰였다는 것은 어쩌면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이라는 그룹은 사실 나가하마 네루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역사를 생각 해 보았을 때, 필연이라고도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이 날, 부도칸의 객석에서 ‘나가하마 네루’의 이름이 쓰여진 타올을 본 다카세 마나는 ‘지금 이 자리에 네루쨩은 없지만, 역시 모두와 함께 있는 것이나 다름 없구나’라고 실감 했다.
그리고 부도칸 공연 이틀차에는 바로 그 나가하마 네루 역시 부도칸의 객석에 앉아 멤버들의 공연을 지켜 보았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뒤에는 멤버들을 찾아 감상을 이야기 하기도 하였다.
‘오늘 공연은 히라가나 케야키답게 해피 아우라가 가득 한 스테이지였어. 정말 엄청 감동했어. 100년 기다리면을 함께 불러 줘서 고마워.’
멤버들에게 감상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리는 나가하마의 모습을 보며 카토 시호는 ‘나가루 왜 울어’라며 웃어 주었다.
나가하마는 히라가나 케야키와 한자 케야키 겸임 당시, 항상 ‘한자 흉내에 그쳐선 안 돼. 히라가나만의 특징은 뭘까’라고 자신에게 묻곤 했다. 하지만 어느 사이엔가 자신이 떠난 뒤에 남겨진 멤버 들이 ‘해피 아우라’라는 ‘답’을 도출 해 내고, 자신들만의 것으로 삼은 뒤, 미소 지으며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지난 해 연말에 있었던 마쿠하리 멧세 공연때는 일부의 곡에서 무대를 맛 보는 데 그쳤던 2기생들 역시 더욱 더 파워업 한 스테이지를 보여주었다. 솔로 댄스나 ‘NO WAR in the future’ 뿐 아니라 매일 센터를 바꾸어 가며 노기자카46의 곡을 3곡씩 커버 했던 것이다. 비록 등장은 적었고, 커버 무대이긴 했지만 그녀들의 무대는 지금까지의 한자 케야키나 히라가나 케야키의 그것과는 다른 ‘새로운 바람’을 무대에 일으켰다.
그리고 이 라이브의 앙코르 때 처음으로 선보인 것이 1기생들의 신곡 ‘두고 보라고 (イマニミテイロ)’였다. 이 곡은 이 부도칸 공연의 상징과도 같은 곡이며,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라는 그룹의 미래에 대한 각오를 담담하게 풀어 낸 곡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중요한 곡의 센터에 선 멤버는 다름 아닌 사사키 미레이였다.
새벽 4시, 잠을 이루지 못 한 채 보낸 메시지
사사키 미레이는 히라가나 케야키에 들어 왔을 때부터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모든 분야에서 높은 잠재력을 지닌 멤버로 손꼽혔다. 나가하마 네루 역시 그녀를 보고 ‘뭐든 다 잘 하는 아이가 있다’고 놀랐을 정도였다. 그녀 자신이 주목을 받거나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서려 하는 타입이 아니었기에 그렇게 눈에 띄는 존재는 아니었지만, 그룹 전체로 봐서도 댄스 면에서는 최고로 손꼽히는 히가시무라 메이조차도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사사키 미레이에게 조언을 구하곤 할 정도였다.
그랬던 그녀의 존재감이 급격히 커 지고, 스태프들이 그녀에게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드라마 ‘Re:Mind’ 무렵부터였다. 이전까지는 항상 맨 뒷줄의 끄트머리 포지션에 서는 경우가 많았지만, 무대 위에 섰을 때 보여지는 그녀만의 깔끔한 모습은 말 그대로 ‘센터’에 적합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것 처럼 보였다.
그런 미레이가‘새롭게 발걸음을 옮기려 하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얼굴로 발탁 된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나 비교를 싫어하는 그녀의 성격상, 지금껏 센터라는 포지션을 의식 한 적은 없었다. 신곡의 포지션 발표 때에도 ‘센터, 사사키 미레이’라는 발표를 듣고 ‘아, 2열 중간에 서는구나’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정작 본인이 상황을 파악하기 전에 주변 멤버들이 그녀를 위해 박수를 쳐 주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우시오 사리나는 감격하여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누구보다 높이 뛰어!’에서 미레이와 대칭점에 선 이후 서로를 인정하며 ‘영원한 대칭점’이라고 부를 정도로 사이가 좋은 우시오였기에, 언제나 ‘나는 괜찮다’며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기만 하는 상냥한 미레이가 인정을 받은 것이 마치 자신이 인정 받은 것 마냥 기뻤다.
‘미팡은 언제나 생글생글 웃고 있는 태양 같은 존재이며, 히라가나 케야키를 상징하는 사람이라 생각해. 우리들이 자신을 갖고 자랑 할 수 있는 센터야.’
포지션 발표가 있었던 당일 밤, 처음으로 맡게 된 센터라는 자리의 중압감에 잠을 못 이루던 미레이는 새벽 4시경, 멤버들이 있는 그룹 라인에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오늘 제가 센터라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놀랐습니다. 저는 악수회에서도 인기가 없고, 얼굴도 귀엽지 않기에 센터에 서서 잘 해 낼 수 있을지 불안합니다만, 미팡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또한, 그녀는 ‘두고 보라고’ MV 촬영 당시에도 모니터에 비친 자신의 딱딱한 표정을 보며 크게 낙담하기도 하였다.
‘이대로라면 아무 것도 표현 못 하겠는걸. 이건 그냥 ‘무’의 표정일 뿐이야.’
이렇게 이야기하며 낙담하는 미레이를 보며 안무가인 TAKAHIRO는 ‘그렇다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분하고 아쉬웠던 때를 떠올려 봐’라고 조언 해 주었다.
‘어느 날 갑자기 어른들이 ‘해 보지 않을래’라고 이야기 했어. 어떻게 할 거니? 겁쟁이야’
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두고 보라고’라는 곡은 부도칸 공연을 갑작스레 맡게 된 그녀들의 심경을 그대로 그려 낸 곡이었다. 그리고 그 ‘시련’으로부터 등을 돌려 달아나지 않고 맞설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이야말로 곡의 제목인 ‘두고 보라’는 마음가짐이었다.
‘다른 누군가의 등 뒤에서 이 세상을 훔쳐보기만 했지. 내 차례가 되면 패스는 할 수 없는 룰이야. 두고 보라고, 지금 내가 보여주는 색은 어떤 색인지. 입술을 곱씹으며 지금껏 노력 해 온 색인걸.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몇 번이고 되뇌었어. 말이란 어떤 색일까? 언젠가 내가 보여 줄 색이야.’
미레이는 이 곡을 부르며 지난 날 분했던 기억들을 곱씹었다. 예를 들어 악수회에 사람들이 전혀 와 주지 않았던 날을, ‘케야키 공화국 2017’ 때 앙코르가 끝난 뒤 전체 인사에서 히라가나는 제외 되었던 날을… 그러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한자 케야키’에 대한 라이벌심에서 느낀 분함이 아니라, 한자의 등 뒤에 서 있을 뿐 스스로 앞으로 나서려 하지 않았던 자신에 대한 분함이었다. 한자 케야키의 팬인 미레이에게도 아느 사이엔가 ‘우리는 우리야. 우리 역시 하나의 그룹으로서 앞으로 걸어 나가야만 해’ 라는 마음이 싹 터 있었던 것이다.
이 곡에서 가장 압권인 부분은 2절 후렴구 이후의 퍼포먼스였다. ‘두고 보라고’를 부르면서 멤버들이 미소를 띈 채 주먹을 들어 올리는 부분이다. 과거의 안타까움, 분함, 그리고 눈 앞에 버티고 서 있는 높은 벽들마저 미소를 지으며 극복 해 나가겠다는 ‘히라가나 케야키’ 다운 각오가 표현 되어 있는 퍼포먼스이기 때문이다.
부도칸에서 처음으로 이 곡을 선보였을 때, 곡이 끝날 즈음하여 얼굴 가득 미소를 띄우며 ‘히라가나 포즈’를 한 미레이의 얼굴이 모니터에 비추어 진 순간 회장은 따뜻한 박수소리로 가득 찼다.
모니터에 비춘 그녀의 얼굴은 정말이지 그녀 다운, 너무나도 상냥하고 다정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라이브의 마지막 날, 공연이 끝날 때쯤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서프라이즈가 기다리고 있었다.
전설로 남은 ‘다레토베’ 더블 앙코르
그것은 마지막 공연의 앙코르로 ‘두고 보라고’를 선보인 뒤, 멤버들이 다음 곡 준비를 위해 무대 위에서 이동 하기 시작했을 때의 일이었다. 회장 뒤에 설치 된 모니터에 갑작스럽게 이런 메시지가 나타났던 것이다.
‘멤버 여러분, 3일간 공연 정말로 수고 많았습니다!’
메시지가 사라진 뒤, 지난 3일간의 공연을 요약한 다이제스트 영상이 흘러나왔다. 어저께, 그리고 그저께의 일임에도 오래 된 추억만 같아 멤버들 중에는 눈물이 맺힌 멤버들도 있었다.
하지만 서프라이즈는 그 때 부터였다.
‘부도칸 공연을 성공리에 마친 히라가나 케야키의 새로운 성장을 위한… 다음 시련은…’
뒤이어진 메시지. 그 곳에 자리잡은 ‘시련’이라는 두 글자에 멤버들은 비명을 질렀다.
지금까지 있었던 서프라이즈 발표에서는 항상 괴로운 추억밖에는 없었던 그녀들에게 있어 이 다음에 이어질 메시지는 두려움일 뿐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표시 된 메시지는 그녀들의 그런 예상을 멋지게 빗나간 것이었다.
‘히라가나 케야키 단독 앨범! 발매 결정!’
뒤이어진 메시지를 본 멤버들은 마치 폭발하듯 환희에 차서 소리를 질렀다. 생각조차 하지 못 했던 기쁜 발표에 표정 관리를 하지 못 하고 서로 얼싸안은 멤버들을 보며 회장 안은 떠나갈 듯한 환성소리로 가득찼다.
발표의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은 채, 사사키 쿠미가 그룹을 대표하여 짧게 감상을 이야기했다.
‘이렇게 저희의 꿈이 이루어 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 했기에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만… 기쁘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자신들 명의로 CD 데뷔를 한다는 것은 작년 투어 도중에 멤버들끼리 의견을 나누며 결정한 목표 중 하나였다. 지금까지 한자 케야키 명의 CD의 커플링 곡에만 참가 해 왔던 그녀들에게 있어 자신들만의 이름으로 작품을 낸다는 것은 너무나도 심플하지만 명확한 목표였으며, 동시에 가장 이루기 힘든 목표로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1년 가까이 이어진 투어를 무사히 완주 해 내고, 부도칸 3days 공연이라는 크나큰 도전에 승리한 히라가나 케야키는 어느 사이엔가 단독 데뷔에 걸맞는 그룹으로 성장 해 있었다.
그리고 이 날 공연의 마지막에는 관객들의 ‘더블 앙코르’ 요청에 답하여 ‘누구보다 높이 뛰어!’를 선보였다. 초창기, 자신들만의 노래가 거의 없을 무렵부터 관객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어느 부분에 어떻게 객석을 띄울 지’, ‘어떻게 해야 우리들의 마음이 곡에 더 잘 묻어 나올 지’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그룹과 함께 성장 해 온 히라가나 케야키의 대표곡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룹의 중심에 서서 목소리를 높여 이끌어 온 사사키 쿠미는 이 날의 이 더블 앙코르에서 지금까지 느끼지 못 했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들이 소리를 내는 그 몇 배, 몇 십 배로 환성이 되돌아오네. 엄청 즐거워!’
연출 스태프들 역시 분위기를 타고 인이어 모니터를 통해 ‘좀 더 객석 분위기를 띄워! 지금 한창 분위기 좋으니까 좀 더 띄워봐!’라고 지시를 내렸고,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카케야마가 ‘여러분! 더 더 즐겨 봐요!’라고 소리를 질렀다. 상당히 기분이 업 되었는지 목소리가 뒤집혀 쇳소리가 날 정도였지만 아무도 그 점은 신경쓰지 않았다.
곡의 분위기에 취하기라도 한 듯 멤버들도, 회장을 메운 관객들도 리미터가 풀려 있었던 것이다. ‘다레토베’라고 하는 곳이 가진 진정한 잠재력이 최대한으로 발휘 된 순간이었다.
라이브가 끝난 뒤, 모두가 ‘해 냈다’는 달성감과 기분 좋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가운데, 카키자키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신기한 느낌에 휩싸여 있었다.
‘당장 내일도 여기서 라이브를 할 것 같아. 이대로 또 한 번, 3일 공연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히라가나 케야키의 이 부도칸 공연은 TV, 인터넷 할 것 없이
크게 다루어졌다. 그녀들에게는 ‘부도칸 3일 공연을 성공리에 마무리 한, 요즘 가장 기세가
좋은 그룹’이라는 높은 평가가 주어졌다. 그녀들의 큰 도전이
확실히 그녀들의 ‘미래’로 이어 져, 그룹을 둘러 싼 환경을 크게 바꾸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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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화
10명이서 맞이한 투어 파이널
2017년 봄에 시작된 히라가나 케야키의 첫 전국투어도 어느 사이엔가 치바현 마쿠하리 멧세의 이틀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리고 투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마쿠하리 멧세는 12월 12일, 13일 양일에 걸쳐 14,000명을 동원하는 큰 규모로 진행되었다. 지금껏 그녀들이 경험 해 본 적도 없는 규모였다.
하지만 지금껏 전국적으로 라이브 뷰잉을 한 덕분인지 히라가나 케야키의 팬층은 투어 개시시와 비교해서 괄목할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기에, 투어 파이널 공연 티켓은 판매가 시작되자마자 즉시 매진될 정도였다.
그리고 이번 투어 파이널 공연을 통해 처음으로 무대에 서게 된 2기생들도 1기생들과 함께 1, 2기 합동곡인 ‘NO WAR in the future’의 안무 레슨에 임했다.
이렇게 차근차근 과거 최대규모의 투어 파이널을 향해 준비가 되어 가고 있었다.
공연 이틀 전에 일어난 사고
이틀에 걸친 치바 공연 세트리스트에는 총 20곡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날 처음으로 선보이는 ‘NO WAR in the future’를 비롯한 히라가나 케야키의 오리지널 곡들을 필두로 지금까지 투어에서 불러 온 한자 케야키의 곡들을 전부 더한 숫자였다.
거기에 더하여 탭댄스나 드럼 마치 등 지금까지 전국을 돌며 선보여 온 퍼포먼스도 전부 선보이게 되어 있었기에, 말 그대로 히라가나 케야키의 1기생들이 9달에 걸쳐 선보인 전국투어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그리고 이 치바공연에서 처음으로 선보이게 되는 퍼포먼스가 있었다. 바로 ‘롤러스케이트 퍼포먼스’ 였다. 비록 어릴 때 롤러스케이트를 탄 경험이 있는 멤버가 많았다고는 하나, 그것을 신고 퍼포먼스를 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헬멧은 물론이고 팔목, 무릎, 팔꿈치에도 프로텍터를 착용하여 최대한 안전 대책을 세웠다고는 하지만, 연습을 하며 수 차례 넘어지는 과정에서 롤러스케이트 자체에 대하 공포심을 느끼게 된 멤버도 있었다. 특히나 롤러스케이트에 대하여 공포를 안고 있었던 다카모토 아야카와 사사키 미레이 등은 겨우겨우 지지대에서 손을 떼고 연습을 한 뒤, 곧바로 손잡이로 돌아 가 꼭 붙들고는 놓지 않았다. 롤러스케이트 퍼포먼스가 정해진 직후부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걸 해 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은데 어떻게 하지?’라고 불안해 했던 사이토 쿄코는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속도를 내기는커녕 걷는 것 조차 고전 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실전 연습을 겸해 이른 아침부터 도쿄도내의 대형 롤러스케이트장을 빌려 리허설을 하게 되었다. 처음 경험 해 보는 넓은 롤러 스케이트장의 미끄러운 바닥에 고전한 멤버들은 수 없이 넘어져가며 리허설을 진행했다. 그리고 롤러스케이트 강사가 그녀들을 한 데 모아 구두로 요령을 설명해 주던 도중, 이변이 발생했다.
‘죄송한데 기분이 안 좋아요…’
이렇게 이야기 하며 카키자키가 갑자기 쭈그려 앉았던 것이다. 얼굴에도 핏기가 없이 창백했다. 이상을 감지한 스태프들은 곧바로 그녀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저녁이 되어 멤버들이 리허설 스튜디오에 모여 노래 연습을 하고 있을 무렵, 스태프들과 함께 카키자키가 돌아왔다. 그녀의 왼 팔은 삼각건으로 고정되어, 목에 걸려있는 채였다.
이런 카키자키의 모습을 본 순간, 사이토 쿄코는 ‘설마!’라는 생각이 들어 소름이 돋았다. 아침에 카키자키가 쭈그려 앉을 때만 해도 그 누구도 그녀가 이토록 크게 부상을 당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카키자키와 함께 서 있던 스태프가 입을 열었다.
‘다들 보면 알겠지만, 카키자키의 왼 팔이 골절되었습니다. 마쿠하리 라이브에도 참가 할 수 없습니다.’
갑작스러운 충격 발표에 멤버들 대다수가 울기 시작했다.
사실 이 날, 대망의 라이브까지는 겨우 이틀 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위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나가노현에서 태어나고 자란 카키자키 메미는 어째서인지 어릴 때부터 다른 이들의 주목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유치원 때나 초등학생 때 학예회에서는 딱히 자신이 입후보 하지 않았음에도 친구들의 추천으로 공주 역할에 발탁 되기도 하였다. 그런 활발한 성격은 커서도 변하지 않아, 친구도 많이 생겼으며 중학생이 되어서는 미술부 부장이나 학생회 서기에 뽑히기도 하였다.
히라가나 케야키 오디션 합격 발표때에도 그녀의 위치는 단상 한 가운데였고, 히라가나 케야키의 첫 오리지널곡인 ‘히라가나 케야키’에서도 그녀는 나가하마와 더불어 더블 센터 자리에 서게 되었다.
가입 당시 14살로 그룹 최연소 멤버였던 카키자키의 별명은 ‘껌딱지(※원문은 ‘ひっつき虫’, 원래는 도깨비바늘처럼 종자 끝에 갈고리 등이 있어서 다른 동물이나 사람에게 붙어서 씨앗을 퍼뜨리는 식물을 뜻함)’. 그 정도로 항상 다른 멤버들에게 딱 붙어서 응석을 부리곤 했지만 그런 평소 모습과는 달리 때로는 매우 격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 뿐 아니라. 히라가나의 세 번째 오리지널 곡인 ‘우리들은 사귀고 있어’에서 센터인 나가하마의 뒤, 다시 말 해 1.5열 정도의 애매한 위치에 서게 되었을 때에는 분한 모습을 감추지 못 하기도 하였다. 물론 단순히 ‘센터에서 탈락했기 때문’에 분해 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분해한 까닭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실력 부족’을 실감했기 때문이고, 동시에 ‘내 실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니까, 이렇게 어중간하게 뒤로 보내지 말고 아예 확 뒷줄로 보내주지…’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본디 카키자키가 센터에 서는 한자 케야키의 ‘후타리 세종’에서 이구치가 솔로 댄스파트를 소화하게 되었을 때, ‘센터는 메미가 서면 되는데 왜 하필이면 나야?’라고 투덜대는 이구치를 보았을 때는 진심으로 화를 내기도 했다.
카키자키는 그런 이구치를 보며 ‘아무리 울어봤자 변하는 건 없으니까 하기로 결정 된 건 최선을 다 할 수 밖에 없잖아’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카키자키 역시 센터에 서면서 수 없이 눈물을 흘려 왔지만, 단 한 번도 ‘못 한다’고 이야기 한 적은 없었다. 그렇듯 그녀의 끈기와 한 번 정한 일은 어떻게든 끝까지 해 내는 근성은 거의 기품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카키자키를 잃게 된 것이다. 그것도 마쿠하리에서 열리는 큰 무대를 앞두고.
사실 카키자키 본인도 넘어져서 손을 짚었을 때, ‘아, 이거 큰일이네’라고 실감을 했다고는 하지만, 병원에 가서 X선을 찍고, 의사의 입으로 ‘골절’이라는 진단을 받은 순간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얼마나 펑펑 울었으면 의사가 깜짝 놀랐을 정도였다. 자신이 히라가나의 멤버로서 노력 해 온 1년 반의 성과를 선보이는 라이브에 참가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 바로 그 때 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시간 뒤, 리허설 스튜디오에 돌아 온 카키자키는 다른 멤버들이 그녀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도 의연하게 하늘만 쳐다보며 눈물을 참고 있었다. 그녀는 그 때, 마음 속으로 이렇게 되뇌고 있었다. .
‘여기서 내가 울면 안돼. 지금 내가 울어서 다른 멤버들 마음이 흐트러진다면 마쿠하리 공연은 성공시키지 못 해’
카키자키가 라이브에 참가하지 못 하게 되어, 본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 타이밍에 모든 곡의 포메이션을 변경해야만 하게 되었다. 그것은 ‘다른 멤버들이 메미의 파트를 커버하며 최고의 공연을 선보이겠다’는 팀 전체의 의지에 따른 선택이었다.
그리고 카키자키 역시 리허설 내내 스튜디오를 떠나지 않고 다른 멤버들의 연습 상황을 지켜보았다. 라이브에 참가 할 수 없게 되어 가장 분한 것은 본인일텐데도 다른 멤버들을 생각하여 눈물을 참았던 그녀의 심경을 헤아리기라도 했는지 다른 멤버들도 그녀에게 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자세는 그 곳에서 연습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
평소에는 마음이 약한 편인 카토 시호조차 ‘이제 와 울어봤자 변하는 것 없다’는 스태프의 말에 단호하게 ‘지금 우는 건 슬퍼서 우는 게 아니에요. 분해서 우는 거지’라고 받아 칠 정도였다. 카토 뿐만이 아니었다. 카키자키와 함께 무대에 설 수 없다는 ‘분함’이 멤버들의 투지에 불을 붙인 것이었다.
그렇게 투지에 불타는 선배들을 바로 곁에서 보고 있던 것이 바로 들어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2기생들이었다. 그녀들은 1기생의 기세에 휩쓸려 덩달아 달아오른 스태프들과 선배들이 서로 팽팽한 긴장 상태를 유지하던 현장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지만, 그 때 자신들의 눈으로 목격한 리허설 광경은 바로 그 날 이후 그녀들이 일에 임하는 자세에 크게 영향을 끼친 결정적인 장면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마치 폭풍과도 같던 이틀이 지나, 결전의 날이 찾아왔다.
‘여기서 이대로 멈춰 설 수 없어’
라이브의 막을 연 것은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의 첫 오리지널곡 ‘히라가나케야키’. 해당 곡의 더블 센터인 나가하마 네루, 카키자키 메미 두 명이 모두 빠지고 10명이서 퍼포먼스를 했던 것이다.
카키자키는 그 날도 스테이지 옆에 설치된 모니터 앞에 앉아 멤버들의 퍼포먼스를 지켜보고 있었다. 라이브가 시작 된 직후에는 자신이 그 곳에 서 있지 않는다는 분함과 자신 탓에 모두가 힘들게 준비 해 온 롤러 스케이트 퍼포먼스가 중지되었다는 죄책감에 몇 번이고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 스테이지에 선 것은 10명만이 아니었다. 라이브를 앞두고 모두가 빙 둘러서 원진을 짰을 때, 카키자키도 그 원진에 포함 되어 있었으며, 누군가가 ‘네루쨩’이라고 이야기 하자, 사사키 쿠미가 목소리를 높여 ‘네루쨩 자리는 비워 줘! 자, 그럼 12명 전원이 온 힘을 다 해 라이브에 임하자!’ 라고 이야기 했던 것이다.
1기생들에게 있어서는 말 그대로 ‘지금까지의 노력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 라이브였기에, 남은 멤버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나가하마 네루, 카키자키 메미의 몫까지 더한 12명 전원의 해피 오라’를 관객들에게 전하겠다는 의식이 싹 터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가슴 속에 품고 넓은 마쿠하리의 스테이지 위에서 노력하는 10명의 모습을, 겨우 10명이서 그 큰 무대를 꽉 채우고 있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며 무대 옆에 서 있던 카키자키의 심경도 점점 변해갔다.
‘라이브라는 거, 보고 있기만 해도 이렇게 기운이 나는 거구나. 당장 나만해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야. 정말이지 히라가나케야키 멤버들이 좋아.’
그리고 카키자키는 이 날, 멤버들이 옷을 갈아 입으러 들어 올 때나 유닛곡 교대를 위해 스테이지 옆을 지날 때 마다 웃으며 ‘힘 내!’라고 격려했다.
이 날 이렇게 새롭게 한 걸음을 내딛은 것은 카키자키만이 아니었다. 그룹의 미래를 만들어 나갈 2기생들 역시 역사적인 첫 걸음을 뗀 것이다.
라이브가 중반에 다다랐을 무렵, 2기생들이 한 명씩 무대 위로 올라 와 자기 PR을 하였다. 그리고 2기생들의 자기소개가 끝난 뒤, 1기생들이 합류하여 ‘NO WAR in the future’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4박자의 비트에 맞추어 주먹을 높게 든 채 점프를 하는 등 격렬한 안무가 군데군데 들어 간 파워풀한 곡이었다.
간주중에는 멤버 전원이 한 데 모여 거대한 ‘히(ひ)’자를 만들었다. 스테이지 위쪽에 설치한 카메라는 이 모습을 모니터에 비추어 냈다. 이는 다인원 그룹이 되었기에 가능했던 다이내믹한 포메이션이었다.
2절 A멜로디에는 1기생과 2기생이 한 명씩 팀을 이루어 차례차례 무대 앞으로 나아가 포즈를 취하는 파트도 준비 되었다. 말하자면 이 곡의 안무는 1기생과 2기생 사이의 융합을 촉구하는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 안무에는 멤버들이 몰랐던 숨겨진 테마가 있었다. 바로 ‘멤버들이 카메라를 의식하게 만든다’는 테마였다.
그녀들의 선배인 한자 케야키자카46의 라이브에서는 멤버들의 얼굴조차 분간이 안 될 정도로 강한 역광을 준 상태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연출이 자주 사용되곤 한다. 이는 보는 이들을 도취시킬만큼 환상적인 광경인 동시에, 여타 다른 아이돌의 무대와는 확연히 다른 컬러를 보여주는 장치로 활용된다. 이 당시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의 라이브 역시 큰 틀에서는 한자의 그것을 답습하는 방향으로 연출의 방향성이 잡혀 있었다.
하지만 선배들의 연출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히라가나만의 색을 내기 위해 준비 한 것이 바로 ‘모니터를 향한 어필’이었다. 멤버 각자가 자신이 언제 원샷을 받게 될 지를 의식하고, 자신의 타이밍에 맞추어 보는 이들에게 어필을 하는 스타일은 어찌 말하자면 아이돌 라이브의 기본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들의 대선배인 노기자카46의 라이브에서도 너무나도 당연히 실시하는 것이고 말이다.
그런 면에서 생각하자면 이런 식의 ‘아이돌스러운’ 면모와 ‘쿨한’ 면모를 동시에 선보이면서도 확실히 구분 하는 점에서 히라가나 케야키 특유의 ‘노기자카와 케야키자카의 복합체’적인 면모는 이미 이 라이브에서 어느 정도 정립 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라이브 마지막 부분에서는 카키자키 메미를 포함하여 1기생 전원이 ‘W-KEYAKIZAKA의 노래’를 불렀다. 골절을 당한 왼 팔을 히라가나 케야키의 깃발로 감싼 카키자키가 무대 위로 올라 와, 마이크를 잡자 회장의 분위기는 폭발할 듯 끓어올랐다.
‘지금 이 무대에 11명 전원이 설 수 있어 정말로 행복합니다.’
카키자키를 비롯한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1기생 멤버들은 그룹 가입 직후부터 일부 팬들에게 ‘케야키자카46에 언더 그룹 따윈 필요없어’라 야유를 받았던 일을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 하고 있었다. 그랬던 자신들이 지금은 이리도 넓은 마쿠하리 멧세가 자신들의 이름이 새겨진 타올을 든 사람들로 가득 채워진 광경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기분과 동시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행복을 느꼈다.
그렇게 이틀간 이어진 라이브의 마지막 MC에서 사사키 쿠미는 이렇게 이야기를 하였다.
‘저희들은 네루쨩 한 명으로 시작되어, 12명이 힘을 모아 지금껏 활동 해 왔습니다만, 어느 사이엔가 11명이 되고, 이제는 2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네루쨩의 의지는 저희가 이어 갈 생각이며, 지금은 저희들을 그 자체로 좋아 해 주시고 응원 해 주시는 분이 이렇게나 늘었습니다. 그렇기에 저희는 여기서 이 상태로 머물러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한참 미숙한 저희입니다만, 9명의 후배들과 함께 더욱 더 믿음직스럽고, 더 멋지고, 해피 아우라를 뿜어내는 그룹이 될 수 있도록 20명 전원이 노력 해 나가고자합니다.’
그녀가 문장 하나 하나에 진심을 담아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동안, 객석을 가득 메운 팬들은 마치 한 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숨죽여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 세워진 모니터에는 지난 1년 1반 동안의 일들을 떠올리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멤버들의 얼굴이 크게 클로우즈 업 되어 흐르고 있었다.
이렇게 카키자키 메미의 골절이라는 불의의 사고를 극복 해 내며 치러진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최대의 라이브는 무사히 그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 직후에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큰 시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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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는 게, 2년 전에 처음으로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만났을 땐 ‘빨리 케야키자카의 히라테 유리나로 돌아가고 싶다’, ‘케야키자카의 히라테 유리나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지금 내겐 가장 소중하다’고 이야기 했었잖아? 그런데 지금 이야기 하는 것을 들으면 어떻게 보면 그 얘기와 정 반대의 얘기를 하고 있는 것 처럼도 들리거든.
히 : 아, 그렇네요. 뭔가 좀 무서운 걸요. 인간이란 게 이렇게 바뀔 수도 있네요. (웃음)
-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두 가지 발언이 모두 굉장히 히라테다운 발언이라고 생각해.
히 : 저도 그래요.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게 얘기 한 적 있네요. 기억 나요. 그 때만 해도 싱글을 3장 정도밖에 안 냈었을 때잖아요. 그러고 보면 저희 노래중에서 4번째 싱글 이후로 엄청 센 곡들이 많지 않나요? (웃음) 아마 그 영향도 있을 거라 봐요. 그 뿐 아니라 그만큼 시간이 지나기도 했고요. 지금까지의 경험 같은 것이 쌓이고 쌓여 이렇게 된 거겠죠.
- 그렇게 보면 참 신기해. 2년 전에는 그토록 ‘케야키자카의 히라테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이야기 했었는데 말이지.
히 : 그렇죠. 당시엔 뭔가 좀 발랄했네요. (웃음) 제가 생각해도 굉장히 생기 넘쳤던 것 같아요.
- 그렇다는 건 그만큼 ‘노래’가 주는 영향이 크다는 얘기겠지. 곡에 대한 ‘해상도’가 높다 해야하나.
히 : 다른 사람들과는 해석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말씀인가요?
- 뭐라 해야할까. 웃고 있는 사람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되게 즐겁게 웃고 있다’고 이야기 하지만, 히라테만은 ‘웃고는 있지만 즐거워 보이진 않다’고 이야기 하는 느낌?
히 : 아, 그런 경우는 가끔 있어요. 그런 걸 ‘해상도’라고 하는군요.
- 그런 케이스, 엄청 많을 것 같은데.
히 : 네. 꽤 있어요. 다른 사람들과는 뭔가 좀 다른 경우. 다른 사람들 말을 듣고 ‘어? 정말?’이라고 놀라는 경우도 있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어? 몰랐어?’라고 놀라는 경우도 있고요.
- 뭔가를 보거나, 듣거나, 누군가와 만나거나 하다 보면, 그 순간 자신의 마음 속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감정과 자기 자신이 일체화 되는 경우가 있지. 그건 그 순간 순간 다른 감정이기에 매일, 아니다 매 초마다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고 해야 할까.
히 : 말하자면 ‘지금의 심정’ 같은 건가요.
- 흔히들 ‘1분 1초 똑 같은 시간은 없다’고들 하잖아? 그 말이야 말로 아까 말 한 내용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라 생각해.
히 : 네. 확실히 ‘같은 시간’은 없을 지도 모르겠네요. 매일매일이 다르니까요. 애초에 매일매일 하는 일 자체도 다르고요. 그 날 그 날 날씨나, 듣는 음악으로 인해 바뀌기도 하고. 정말 ‘똑 같은 날’은 없네요. (웃음)
- 응. 다시 아까 이야기 하던 주제로 돌아 가 보자. ‘안비바’ 때 그룹으로 돌아 와, 눈 앞에 닥친 일들을 필사적으로 해치워야 하는 날들이 다시 시작되었잖아? 그 당시는 어땠어?
히 : 그 당시도 사실 눈 앞에 닥친 일들밖에는 보이지 않았어요. ‘안비바’는… 아, 그 당시 춤을 추는 게 왠지 좀 부끄럽게 느껴졌어요. ‘안비바’의 출발점은 거기서부터 시작이었지요. 레슨과 보이스 트레이닝을 하고 퍼포먼스에 임했습니다. 말 하자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 가 하나씩 하나씩 쌓아 올린다는 느낌이었어요.
- 말 하자면 ‘케야키자카46의 히라테 유리나’가 어떻게 해 왔는지를 잊어버렸다는 얘기로도 들리는데?
히 : 아무래도 환경이 확확 달라졌으니까요. ‘히비키’ 촬영 때도 혼자였기에 그룹 활동을 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를 조금 잊었던 것 같아요.
- 방금 그런 질문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어. 사실 예전부터 느낀 건데, ‘케야키자카의 히라테’는 ‘히라테 유리나’라는 인물이 연기하는 ‘내가 아닌 또 다른 자신’이라는 느낌이 강했거든. 물론 너 자신이 원해서 하는 거라곤 생각 하지만.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고 해야 하나, 지금은 ‘케야키자카의 히라테’라는 캐릭터가 ‘히라테 유리나’ 본인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는 것으로 바뀐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
히 : 음… 코마스상이 어떤 말씀 하시는 지 알 것 같긴 해요. 두 모습 모두 저 자신이긴 하지만 퍼포먼스를 할 때의 저는 뭔가 좀 다르기도 하지요. 그렇기에 제가 저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환경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음… 뭔가 어렵네요.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연기를 한다는 생각은 없는데… 좀 신기한 감각이네요.
- 예전 같은 경우에는 ‘케야키자카의 히라테’로서 무대에 서면 자신 안에 숨겨진 무언가를 해방시킨달까? 무대 위에서만 보여주는 모습이 있었거든. 그런 히라테는 정말 반짝반짝 빛나 보였고. 그런 모습이 지금은 약간 달라 보인다고 해야 할까.
히 : ‘후타리 세종’ 때 까지는 엄청 반짝반짝거렸다라는 말씀은 실제로도 많이 들어요. 저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지금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역시 사고방식이 변한 점 일까요.
- 아까도 노래에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노래가 변했기에 히라테가 변했다기 보다는 히라테가 변했기에 그에 맞추어 노래도 변했다고 생각하거든. 말하자면 ‘안비바’라는 곡을 받았기에 ‘안비바’의 히라테가 만들어 지는 게 아니라, ‘안비바’에 어울리는 히라테가 있기에 ‘안비바’라는 곡이 나오는 거라는 얘기지.
히 : 에?! 정말요? 그럼 제가 없었다면 ‘안비바’라는 곡도 없었다는 얘기네요!
- 내가 보기에는 그래. ‘안비바’라는 곡이 다음 싱글로 결정되었을 때, 너 자신도 ‘이 곡을 부르고 싶다’, ‘이 곡에 참여하고 싶다’고 생각 했을 거 아냐? 그건 다시 말 해서 히라테 유리나라는 사람의 내면에 이미 ‘안비바’라는 곡과 공명하는 부분이 있었다는 얘기지.
히 : 아, 그건 확실히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이 없었다면 부르지 못 했을 거예요. 아마도 부르고 싶다고 생각했기에 부른 것이라 보고요.
- 단순히 ‘곡이 좋으니까 부르고 싶어’ 라기 보다는 ‘이 곡은 내가 해야만 해’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하지 않아?
히 : (웃음) 네. 그렇죠.
- ‘안비바’ 라는 곡이 갖고 있는 메시지가 히라테 유리나라는 사람 속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를 깨운 게 아닐까 싶어.
히 : 정말이지 ‘가사’에 공감하지 못 하면 그 곡에 몰입하지 못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 그렇게 ‘안비바’로 활동을 재개하고 여름에는 ‘케야키공화국’이 있었지. 물론 굉장히 훌륭한 라이브였다고 생각하는데, 본인이 생각하기엔 어땠어?
히 : 음… ‘공화국’ 역시 사실 제가 마음 속으로 생각하던 이상적인 라이브와는 거리가 있었어요. 역시 마음 한 구석에는 ‘좀 더 좋은 공연을 해야 해’ 라던가 ‘좀 더 이렇게 하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이 남아 있었지요.
- 그렇구나. 그럼 본인에게 있어 최고의 라이브란 어떤 것일까?
히 : 음… 뭐라 해야 하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를 따졌을 때 어느 것 하나도 포기 할 수가 없어서요… 물론 스태프분들, 팬 여러분, 그리고 멤버들이 공연을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출이나 테마가 허술한 것은 싫고, 동시에 공연을 통해 보시는 분들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생각하거든요. 고르기가 힘드네요. 전부 중요하니까. 그 뿐 아니라 저 개인에 대한 기대도 있으실 거고…
- 그럼 공연 영상 같은 거 가끔씩 보곤 해?
히 : 네. 봐요. 연출이 어땠는지, 무대에서 떨어져서 보면 어떻게 보이는 지 같은 부분에 관심이 있어서 몇 번이고 보죠.
- 그럼 ‘라이브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 해야 한다면, 일단 본인의 시선에서 보는 게 아니라 자신까지 포함하여 전체를 보는 경우가 많겠네?
히 : 네. 그렇기 때문에 ‘공화국’으로 예를 들자면 ‘깃발을 세웠으면 좋겠다’라던가 좀 더 강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색 배치를 이렇게 하면 좋겠다던가 하는 단계에서부터 라이브에 참여 했거든요. 그래서인지 그런 제반 상황이 확실히 정해져 있지 않으면 저 역시도 퍼포먼스에 몰입 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긴 합니다.
- 그럼 ‘공화국’과 그 뒤에 이어진 전국투어 사이에는 어떤 연결고리 같은 게 있는걸까?
히 : 음… 어쩌면 전국투어는 공화국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콘셉트는 완전히 다르지만 하고 싶었던 것도, 그럼에도 다 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 면에서도 이어져 있다고 할까요. 그래서 사실은 계속 ‘나 자신이 납득이 가지 않는 스테이지에 계속 이렇게 서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고 갈등하기도 했습니다. 매 공연마다 스태프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이번 공연에 나갈 지 말 지를 정했지요.
- 하지만 계속 무대에 섰지.
히 : 네. 계속 무대에 섰어요. 어찌저찌.
- 이 정도로 괜찮은 걸까? 라고 고민하면서 말이지.
히 : 네. 아까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이번 라이브들은 연출면에서나 스토리면에서나 중심 축이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던 게 아니었거든요. 뿐만 아니라 저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이나 상상해 왔던 것들과도 완전히 달랐고요. 그렇기 때문에 무대에 서면서도 항상 ‘왜 난 이 무대에 서야 하는 거지?’라고 고민을 했어요. 사실 보러 와 주신 분들께도 죄송한 일이잖아요. ‘이런 공연을 보러 온 게 아닌데’라고 생각 하시는 분도 계셨을 지 모르고.
- 그럼 그렇게 고민 하면서도 어떻게 자신을 독려해서 움직였던 거야?
히 : 음… 뭐였을까요. 지금 생각 해 보면 공연에 안 나갈 때는 또 안 나간 것 때문에 죄책감이 들어서 괴로웠던 것 같아요. 물론 공연에 나가면 또 그것 나름대로 괴로웠지만, 안 나가면 더 후회 할 것 같았다고 할까요. 솔직히 말씀 드리면 매 공연 100% 최고의 공연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저 자신도 그렇지는 못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매 공연마다 멤버들에게도 미안한 마음뿐이었어요.
- 그럼 마지막 공연은 기억 해? 마지막 공연은 정말 공연 시작 직후부터 히라테의 퍼포먼스가 엄청났지.
히 : 어, 정말요?
- 정말로. ‘아, 완전히 모든 것을 이 무대에 쏟아 부을 생각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 정작 본인은 기억이 안 나는 모양이네.
히 : 네. 기억이 안 나요. 정작 그 때 찍은 동영상은 봤는데도요.
- 그럼 동영상을 봤을 땐 어떤 느낌이었어?
히 : ‘아 저건 춤도 아니다’… 라고 생각했어요. 춤도 춤 같지 않았고, 함께 보던 사람들에게 ‘저건 그냥 괴물 같아’라고 이야기 했죠. 하하하하. 정말 무서웠어요. 정말이지 괴물 같았으니까.
- 하지만 바로 그런 ‘괴물 같은 자신’이 지금 히라테상 안에 숨어 있다는 거잖아.
히 : 그렇네요. 무섭네요. 인간이란 거.
- 그 나이대의 사람 외에는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자신? 인건가?
히 : 그런 거 아니에요. 이 나이대라고 해서 매일 저런 식이면 무섭잖아요. (웃음)
- 하지만 그런 괴물의 ‘씨앗’은 언제나 히라테상 자신 안에 품고 있는 거잖아.
히 : 씨앗이라… 네. 그렇죠. (웃음)
- 하지만 이렇게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 ‘난 대체 뭐지?’ 이런 생각이 들려나?
히 : 아, 그렇게 생각하긴 해요. 매번… 특히 그 당시의 기억이 없을 땐 더더욱. 아, 나 이런 것도 할 줄 아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런 거, 사실 ‘해 보라’고 지시를 받아도 하지 못 하는 거잖아요. 솔직히 제가 뭐 무대에서 떨어지고 싶어서 떨어졌겠어요?
- 무대에서 떨어졌을 때의 일, 전혀 기억 안 나?
히 : 전혀 기억 안 나요. 한시라도 빠르게 복귀하고 싶어서 병원에서 억지로 일어나려 했던 것 같은데, 그걸 보신 의사 선생님이 ‘병원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고 혼 내시더라고요. 그리고 그 순간 정신이 확 들었어요. 그 뒤로부터는 기억하고 있고요. W(케야키자카의 노래) 때의 기억은 있어요.
- ‘W’ 때의 기억은 있구나. 그럼 그 때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어?
히 : 정확히 어떻게 생각 했더라? 음… 아마도 ‘무대에 서고 싶다’고 생각 했던 것 같아요. 마지막 곡에 참가해서 그 공연을 잘 마무리 짓고 싶었어요. 멤버들에게도 무대 나가고 싶다고 이야기 했었지요. 몇 번이나.
- 어째서 그렇게 ‘무대에 나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거야? 조금 자세히 들려줄래?
히 : 음… 딱히 ‘저는 무사하니 안심 해 주세요’라는 어필을 하려는 건 아니었어요. 아마도 ‘이 멤버로 하는 마지막 투어를 제대로 마무리 짓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 생각 외에는 없었던 것 같아요.
-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은 자신이 ‘케야키자카의 히라테’가 되어 참가해야만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이 공연을 끝낼 수 없다고 생각 한 거구나?
히 : 네. 끝낼 수 없었어요.
- 그럼 공연 자체가 꽤나 감개가 깊었겠네?
히 : 아뇨. 오히려 부정적인 것들만 생각한 걸요.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다.’ 보다는 ‘좀 더 이렇게 하면 좋았을걸’ 이라던가 ‘그 때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같은 생각만 들었어요. 무엇보다 ‘역시 난 다른 사람들에게 폐만 끼치는구나’ 라는 생각이 강했지요.
- '난 평범하게 공연을 끝맺는 때가 없구나…' 싶었나봐?
히 : 분명히 그렇죠. 평범하게 공연을 마무리 해 보고 싶어요, 언젠가는. 정말 ‘나란 애는 안 되겠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대로 공연을 끝낼 수 없어’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케야키자카라는 그룹이 준 것들에 대하여 보은도 해야 한다 생각했고, 봐 주신 분들께도 제대로 인사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그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 그만큼 ‘케야키자카’라는 그룹에 대한 부채의식 같은 게 있는 거구나.
히 : 네. 있어요.
- 아까 전에도 ‘안비바’ 때 그룹으로 돌아 왔을 때 그런 인식이 강하졌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지금은 어때? 아직도 그렇게 생각해?
히 : 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요. 특히나 영화 촬영을 하며 그런 생각이 강해졌어요.
- 다시 말하자면 혼자서 영화 현장에 가서 여러 가지를 보고 느끼면서 ‘역시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구나’ 라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는 걸까?
히 : …네. 물론 영화를 찍기 전에도 그룹 활동을 혼자 만들어 간다는 생각은 안 하고 있었지만요. 멤버들, 스태프분, 감독님, TAKAHIRO선생님이 안 계시면 만들어 낼 수 없잖아요. 그런 생각은 예전부터 했지만, 영화 촬영을 하며 더 강하게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부채의식은 제가 그 모든 것들에 제대로 보은 할 때 까지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요. ‘검은 양’ 제작기간 동안에도 감독님께 비슷한 얘기를 계속 했거든요. 그렇기에 MV촬영 당시 감독님도 저를 독려하기 위해 ‘케야키자카를 위해 열심히 해야지’라고 말씀 해 주셨어요.
- 어폐가 좀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말 하자면 ‘케야키자카에 보은해야한다’ 하는 생각이 든 순간, 마음이 좀 편해졌달까? 노력 해야 할 이유가 보였다고 할 수 있겠구나.
히 : 당시 마음이 편해졌는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그 말씀을 들으니 그렇게 생각 했던 것 같기도 해요. 후련해 졌달까요. 노력 해야 할 이유라… 네. 그런 것 같아요.
- 케야키자카에 어떻게 해서든 보은을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돌보지 않는 한이 있어도 노력 해야 한다… 그런 건가.
히 : 네. 아마 그런 느낌이랑 가장 가까울 거예요.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기 전에는 대체 어떤 생각을 했었던 걸까가 궁금해요. 물론 좋은 곡을 듣는 분들께 전해드리고 싶다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으니, 이전에는 그런 생각만으로 활동을 했던 걸까 싶기도 하고요. 어쩌면 최근에도 목적이라 해야 하나요? 제가 해야만 하는 일들이 또 늘어 났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 히라테 유리나라는 사람에게 있어 그것 역시 큰 변화라고 할 수 있겠네.
히 : 네. 그렇죠. 저 자신의 생각에도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고요.
- 지금껏 자신을 위해 노력 해 온 사람이 무언가 다른 것을 위해 노력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으려나. 정확한 표현은 아니겠지만. 이에 대해 본인은 어떻게 생각해?
히 : 음… 하지만 분명 저 스스로가 다른 무엇인가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는 생각해요. 그리고 예전부터 ‘해 내야만 한다’는 마음은 계속 갖고 있었어요. 아니 어쩌면 ‘해야만 한다’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해 왔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지도 모르겠네요. ‘해 내지 않으면 끝 맺을 수 없다’고 매번 생각하는걸요.
- 그럼 그런 마음가짐이 자신을 움직이는 최후의 주문 같은 거네 ‘어떻게든 해 내야 한다’는 게.
히 : 아, 그렇게 말 할 수도 있겠네요. 매번 ‘해야만 한다’ 고 생각하는 걸요. 영화를 찍을 때 감독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 주셨어요. ‘너는 일단 시작하고 나면 괜찮은데 시작하기 까지가 힘든 타입이야. 너무 깊이 생각하거든’ 이라고. 그 말을 듣고 ‘아, 그런 부분이 문제였구나. 시간을 너무 낭비하는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요즘은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한 번 생각하기 시작하면 계속 생각만 하고 있거든요. MV 촬영 같은 때에도 일단 촬영이 시작되면 아무렇지 않거든요. ‘시작 된 거, 어떻게든 해 내야 한’'고, ‘해 내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는 계속 생각만 하고 있는 거예요. 새삼스럽지만 그 부분이 문제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하지만 그런 부분이 ‘히라테 유리나’ 다운걸. (웃음)
히 : 이런 버릇 안 고쳐지려나요… 고쳐졌음 좋겠는데.
- 하지만 반대로 자신이 매사에 설렁설렁 ‘뭐, 일단 그럼 해 보긴 할까요? 같은 타입이었다면 어땠을 것 같아?
히 : 인생이 엄청 편했을 것 같은데요. 투어도 그렇고 되게 편했을 것 같아요. 아니, 투어 뿐 아니라 모든 일이 쉽게 넘어 갔을 것 같긴 하네요.
- 하지만 그런 자신의 모습을 상상 할 수 있어?
히 : 전혀요. 애초에 매사에 확실히 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니까요.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 돼요.
- 그렇지? 자, 그럼 주제를 바꿔보자. ‘검은 양’ 얘기도 돌아 가 볼게. 히라테상은 이 작품에 임하면서 ‘케야키자카에 보은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지?
히 : 네. 그런 마음가짐으로 임했는데… 어느 시점인가부터 그런 생각을 못 하게 되었어요. 그런 생각 하고 있을 여유조차 없어져서… 물론 좋은 작품을 전해드리고 싶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고, 이 곡이 좋다는 생각 역시 변함 없지만요…
- 그래도 결국 ‘보은하고 싶다’는 마음은 담겨 있는 거잖아?
히 : 네. 그런 마음은 담겨 있어요. 결과적으로 보은 하지는 못 했지만.
- 그럼 그런 ‘보은하고 싶다’는 마음이랑 ‘검은 양’이라는 곡이 갖고 있는 메시지 사이에 연결고리 같은 것은 있을까?
히 : 아뇨. 딱히 별다른 연관관계는 없는 것 같아요. 어째서일까요… 저 자신은 스스로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룹에 보은하고 싶기는 한데… 하지만… 이런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겠지… 라는 생각을 하곤 해요. 이대로 아무런 보은도 못 하고 끝나버리는 걸까… 같은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경우가 많죠.
- 하지만 ‘어떻게든 해 내야 하’는 거잖아.
히 : 네. 어떻게든 해 내야죠.
- 내가 보기에 그런 ‘어떻게든 해 내야 한다’는 거, 사실 굉장히 히라테다운 이유라고 생각하거든.
히 : 네?! 정말요?
- 뭐라 하지,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걸요’ 라는 말 보다 ‘해야만 하니까 하는 거예요’라고 하는 편이 훨씬 더 리얼하거든.
히 : 물론 저 역시 ‘하고 싶어서 하는’ 부분도 있지만, ‘해야만 하니까 하는’ 측면이 좀 더 커요. 그걸 책임감이라 해야 하나요? 케야키자카의 멤버로 있는 한 져야만 하는 책임. 이 곡을 마지막까지 책임지고 완성 시키고, 많은 분들께 전해 드리는 것이 바로 멤버로서의 책임. 이겠지요.
- 그렇군. 역시 히라테 유리나라는 사람에게 있어 무대에 서는 것이나 케야키자카의 멤버로 활동한다는 건 100% 즐거운 일 만은 아니라는 거지. 책임감도 느낄 것이고, 자신이 해야만 하니까 자기 자신을 북돋아 가며 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니까.
히 : 예를 들어 ‘안비바’ 때도 그랬지만, 보통 싱글을 제작 할 때 MV를 가장 처음 찍고, 그 뒤에 녹음을 한 뒤에 프로모션을 하는 순서로 진행이 되거든요. 보통 MV를 만들 땐, 함께 노력 해 주는 사람들과 힘을 모아 만들어 나가는 실감이 나는데, 레코딩이 끝나고 프로모션 때는 거의 혼자거든요. 제가 가장 크게 주저않게 되는 포인트가 그 부분이라는 것을 최근 들어 실감하게 되었어요. 혼자이기에 저 자신이 스스로를 북돋으며 노력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 되니까요.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제가 가장 고전하는 부분이 그 부분이라는 점을 최근에 깨달았으니까요.
- 그렇게 보자면 2018년 한 해는 ‘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극복 해 온 1년이라 해도 되겠네.
히 : 그렇게 말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그럼 2018년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 지 정리 해 볼까?
히 : 어떤 한 해였느냐… 음… 말하자면 뭔가에 쫓기듯 살아 온 1년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게 책임감인지 시간인지 그도 아니면 다른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일 수도 있겠고요. 여러 가지에 쫓기며 살았던 것 같아요. 물론 그렇다고 다른 해에는 쫓기듯 살지 않았냐 하면 그런 건 아니지만 작년이 특히 쫓기며 살아 온 느낌이 있어요.
- 사실 지금도 그럴 것 같은데.
히 : 지금은 제작이 일단락 되어서 제작 일정에 쫓기고 그런 건 없어요. 그리고 프로모션도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이라 TV 출연 같은 스케줄도 없어서 지금은 마음이 좀 편한 시기네요. 하지만 TV 출연 직전이 되거나 시작되거나 하면 또 다른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겠죠.
- 그러고 보니 아까 전에, 투어 마지막 날에 ‘역시 나는 모두에게 폐를 끼친다’고 생각했다 했잖아? 그거 혹시 자책했던 거야?
히 : 네. 엄청 자책했던 것 같아요. 나란 인간은 이런 인간이다, 저런 인간이다 라며 계속 혼자서 깊이 생각 하거나 중얼거리거나 해요. 사실 예전에 ‘히라테는 요즘 아이들의 상징 같은 존재’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요즘 아이들’ 이란 저 같은 느낌일까요? 어린 아이들, 예를 들어 중, 고등학생이라 하면 왠지 발랄하고 기운차며 친구들도 많고 잘 놀 것 같은 이미지가 있잖아요. 하지만 ‘요즘 아이’들 중엔 저와 비슷한 아이들이 많아서 그런 얘기를 들은 걸까 싶어서 좀 신기하기도 했어요.
- 그렇구나. 모두들 마음 깊은 곳에는 다들 ‘검은 양’이 한 마리씩 있을 거라 생각해.
히 : 에? 정말요?
- 하지만 그런 부분을 남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숨기는 방법을 알고 있거나, ‘알고는 있지만 별 수 없지’라고 체념 한 경우도 있을 거야. 말하자면 사실 모두가 검은 양이지만 그런 자신의 모습을 끝까지 겉으로 보이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아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 한 사람도 있다는 얘기지. 하지만 히라테는 자신이 검은 양이라는 것을 숨길 수 있어도 딱히 숨기려 하지 않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거고.
히 : 그렇군요!
- ‘이렇게 하면 싫은 기억을 잊을 수 있어’ 라는 방법이 있어도 잊는다 해서 그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
히 : 아, 그렇죠. 그렇게 생각하곤 해요.
- 그래서 ‘검은 양’의 MV는 대단하다고 생각해. 사람을 이렇게까지 몰아 붙일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도 드는 동시에 ‘이렇게까지 몰아붙이지 않으면 이만한 감동은 얻을 수 없겠지’라는 생각도 들거든.
히 : 에~ 그런가요.
- MV를 찍을 땐 어떤 생각을 하며 찍었어?
히 : 음.. 애초에 곡의 테마가 ‘절망’을 그린 곡이었거든요. 모두의 ‘절망’을 MV에 담아야 했기에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힘들었는데, 그렇다고 많은 분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도 없고요. 특히 1, 2절 때는 엄청 힘들었네요. 제 역할은 다른 사람들의 ‘절망을 공유’하는 역할이었기에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그 사람들을 안아 주는데, 제 포옹을 받아들여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치는 사람도 있었거든요. 1절 때는 그나마 조금이라도 제 포옹을 받아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어찌저찌 버틸 수 있었지만, 2절에 들어가면 제 포옹을 받아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에 정말 괴로웠어요. MV에 나오는 피안화가 ‘저’를 상징하는 꽃이었는데 2절 도입부에서는 저 스스로조차 그 피안화를 버리고 시작하잖아요. 진짜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상태에서 촬영을 시작했는데, 계단을 올라가는 장면을 찍는 순간까지 계속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아마 한 번에 OK를 받지 못 하고 여러 번 찍은 것 같긴 한데… 사실 2절 찍을 때의 기억도 거의 없거든요. 거기서는 ‘제’가, 그리고 곡의 주인공이 정말 너덜너덜해 질 정도로 거부 당하기에… 정말 힘들었어요. 그리고 앞으로 MV를 볼 때도 마음이 편치는 않을 것 같아요.
아, MV에선 소도구들도 많이 사용했고, 의상도 여러 버전이 있었던 데다가, 사실 나오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부 캐릭터가 있거든요. 하지만 TV 버전에서는 그런 것들을 전부 보여 드릴 수도 없기에 조금 다른 시도를 해 보았어요. MV와는 다른 안무도 짰고, 좀 더 이러 저러한 것들을 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교환하면서 퍼포먼스를 완성 했기에 MV에서 보신 것과는 다른 느낌을 드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아까 전에 곡이 먼저 변하느냐 히라테 본인이 먼저 변하느냐에 대해 이야기 한 적 있는데, 이번 곡이야 말로 정말 그런 느낌이었구나. 말 하자면 지난 1년간 느꼈던 ‘해야만 하니까 하는 거다’, ‘돌아 가야 하는 곳이니 돌아간다’는 히라테 본인의 각오가 이 곡을 불러들였달까, 태어나게 했달까 하는 생각이 드네.
히 : 그렇군요!
- 이렇게 말 하면 어떻게 들릴 지 모르겠는데, 히라테상은 이 곡을 처음 접하고 뭔가 기뻤을 것 같아. ‘아 내 지난 1년이 이렇게 인정 받는구나’ 라고.
히 : 네.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구나’ 라고 느꼈어요. 케야키자카라는 그룹에게 이 곡이 주어져서 저 역시 제가 이 곳에 있어야 할 의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구원받았다’ 고 하면 좀 거창한 것 같지만요. 아, 내가 이런 감정도 표현 할 수 있구나. 이게 지금까지 내 마음 한 구석에서 날 고민하게 만든 감정이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MV 촬영 때는 부담감, 책임감 등 수 많은 감정들이 섞여 있었거든요. 물론 그런 감정들이 작품에 반영 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지 모르지만…
하지만 지금은 MV때랑 다른 감정으로 이 곡을 대하고 있어요. 네. 그렇네요. 앞으로도 이 곡을 할
때마다 저 자신을 조금씩 ‘긍정’ 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어쩌면 이 곡에 대해 반감이나 의문이 없는 이유는 제가 긍정받는
곡이기 때문일지도요. 솔직히 앞으로 TV에서 선보이게
될 퍼포먼스에 대해서도 그리 크게 걱정하고 있지 않거든요. 지금까지 해 온 곡들은
퍼포먼스를 앞 두고 조금 거슬리는 부분 등이 있었는데 말이죠. 아… 그런 이유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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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테 유리나
1년 4개월만의 롱 인터뷰
본지가 그녀와 인터뷰를 하는 것은 1년 4개월만의 일이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작년 6월, 영화 잡지 ‘CUT’에 실린 ‘히비키’ 인터뷰 기사를 위해 그녀와 인터뷰를 한 바 있으나, 그녀 자신에 대하여 이야기를 듣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다.
이미 본지에서는 그녀와 두 차례에 걸쳐 같은 콘셉트로 인터뷰를 한 바 있으나, 이번 인터뷰는 과거 두 차례의 인터뷰보다 조금 더 농도가 짙고 진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2018년 1년간 그녀가 느낀 갈등과 염원, 그녀 자신이 그룹에서 떨어 져 있는 동안 느꼈던 점, 그녀가 갖고 있던 고민들, 케야키자카의 멤버로서 자신의 의의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런 고민들에도 불구하고 케야키자카46로 돌아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에 대한 해답은 찾아 내었는가, 멤버들에 대한 마음은 어떤가, 전국 투어는 어떠하였는가, ‘엠비벌런트’와 ‘검은 양’이라는 곡을 지금 부르게 된 의미와 지금 불러야 하는 이유까지 우리가 평소 묻고 싶었던 거의 모든 것들을 질문하고 정리 하였다.
가능한 한 정중하게, 하나 하나 순서대로 질문을 이어갔다.
2시간 18분에 걸친 긴 인터뷰를 끝낸 뒤, 그녀에게 ‘말 한 것 중에 잡지에 실리지 않았으면 하는 부분 있니?’라고 물었다. 그녀는 ‘없어요.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히라테라는 사람은 지금까지도 그런 사람이었지만, 오랜만에 인터뷰를 하고 나서 느낀 것은 그녀가 ‘변화’ 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무언가 거대한 하나의 순환을 거친 듯 한, 계절이 시작되고 끝나기까지의 과정을 가만히 지켜 보기라도 한 듯한, 너무나도 작지만 ‘본질적’인 변화였다. 단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무언가 달관한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물론 히라테라는 사람은 코 앞의 미래마저도 읽어내기 힘든 사람이지만.
이제 와서 그녀를 ‘이 왜곡되어버린 시대’의 상징이라느니 ‘시대가 낳은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아이콘’이라느니 떠받들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대가 흐르며 그 안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느낄 법 한 뒤틀림이나 개개인들이 발산하는 비명과도 같은 읊조림들과 공명하며 대변하는, 꽃을 피우지 못 하는 덧없는 무성화와 같은 존재가 누구인가를 거론한다면 아마 히라테 유리나라는 존재를 빼 놓고는 이야기 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지는 크나큰 기대를 견뎌내며, 퍼포먼스를 위해 자신의 생명력마저 불태워 보는 이들을 압도하는 존재 역시 히라테를 빼 놓고는 이야기 하기 힘들다.
오늘 하루도 매 분 매 초, ‘잘못 된’ 순간들을 쌓아가며 살아가는 히로인, 히라테 유리나의 생생한 목소리를 찬찬히 읽어 주시기 바란다.
- 잘 지냈니?
히라테 (이하 ‘히’) : 네. 잘 지냈어요.
- 요즘 보기 좋더라.
히 : 아하하하
- 깜짝 놀랄 정도로 잘 지내는 것 같더라고.
히 : 아, 정말요? 왜일까요… 올 해 들어서 마음이 좀 후련해졌는데, 그 영향도 있을 것 같네요.
- 새 해가 밝으면서 기분이 확 바뀐거야?
히 : 아무래도 연말에는 부상 때문에 일을 못 했잖아요. 그게 좀 힘들었거든요. 그랬던 것이 일단 좀 진정이 되었으니까요. 아, 요즘은 ‘검은 양’ 프로모션 기간이라 안무를 숙지하는 시기예요.
- ‘검은 양’ 엄청난 곡이더라고.
히 : 그렇죠. 사실 좀 불안하기도 해요. (웃음)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도 여러분께 전해드리고 싶은 것들이 많아요. 아니 이번 작품은 그 ‘전하고 싶은 마음’만으로 활동할까 싶을 정도예요.
- 기대가 되네. 지난 인터뷰로부터 1년 이상 시간이 지났기도 하잖아. 2018년 1년 동안 이래저래 일들이 많기도 했고. 이번 인터뷰는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며 히라테 유리나라는 사람의 1년간을 활자로 옮겨 보고자 해. 네가 지난 1년을 살아 온 증거랄까?
히 : 네. (웃음) 저 개인적으로도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서 일일이 전부 기억도 못 할 정도예요.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지’라는 말을 들으면 ‘아, 그런 일도 있었지’라고 떠올릴 정도.
- 하지만 어떤 일이 생길 때 마다 하나 하나 전부 해결 해야 했잖아. 느끼는 것도 다 달랐을텐데… 그래서 힘들었을거고.
히 : 네. 그건 그렇죠.
- 어떤 감정이었는지, 이미 지나 버린 일이라 생각 안 나려나?
히 : 정말로 기억이 안 나요. 감정 뿐 아니라 어떤 일이 있었는 지 조차.
- 아무래도 여러 가지 일들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그런걸까?
히 : 아뇨. 오히려 저는 작년 한 해가 엄청 길게 느껴졌어요. 무엇보다도 ‘히비키’ 이전 전반부가 너무 다사다난해서, 5, 6월쯤에 벌써 ‘아 아직도 반년이나 남았네’라고 생각했는 걸요.
- 그렇구나. 아무래도 작년 연말이 힘들었을 테니. 그 때 느낀 괴로움은 지금까지 느껴 본 것들이랑은 달랐을거고.
히 : 네. 전혀 달랐어요. 말로는 다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죠.
- 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지만 할 수 없고, 몸도 생각처럼 움직여 주지 않았으니… 마음과 육체 사이에 갭이 있었지.
히 : 그것도 그랬지요. 작년 연초에는 ‘유리를 깨라!’ 시기였잖아요. 그 때는 유이쨩즈, 코바야시 유이쨩이랑 이마이즈미 유이쨩 두 명이 더블 센터에 서 주었고요. 작년 전반기는 정말 그 둘이 그룹을 이끌어 주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연말에는 이마이즈미도 졸업 해 버려서… 이대로 코바야시에게 맡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마음 한 구석에 있었지만… 뭐랄까 엄청 복잡한 마음이었어요.
- 조금 듣기 힘든 말일지도 모르는데, 사실 자신이 없는 사이에도 달려 나가는 케야키자카라는 그룹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 하거든? 그런 모습을 보고 ‘저기에 내가 들어가서 그룹을 이끌어 나가는’ 이미지가 잘 그려지지 않았던 것일까?
히 : 음.. 뭐라 해야 하죠… 하지만 제가 부상으로 이탈 한 뒤, 개인적으로 ‘코바야시가 센터를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사실 그렇게 되었어도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요.
- 그렇구나. 2018년 한 해 동안 정말 다양한 일들이 있었는데, 본인에겐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히 : …다양한 일이 있었지만, 사실 좋은 일은 거의 없었네요. (웃음) 아, 물론 좋았던 일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는 일들도 많이 있었지만 그래도 뭔가 전체적으로 좀 이건 아니다 싶달까요. 그게 제 선택 문제인지, 사고 방식 문제인지, 아니면 뭔가를 하는 방식 문제인지는 몰라도.
- 히라테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문제 뿐 아니라 그룹 내에서 졸업을 결의하는 멤버가 나왔다는 점이나 스태프들, 멤버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등 주변 영향도 적지 않았을 것 같은데?
히 : 아… 분명히 그런 면은 있네요. 전체적으로 그룹의 중심 축이 흔들렸다고 해야 하나요. 그런 이미지가 있어요. 개인적으로 그런 2018년을 상징하는 곡이 ‘엠비벌런트’(양가감정) 아닐까 싶어요. 그럴듯하죠?
- 오, 센스 있는걸?!
히 : 정말로 ‘안비바’야 말로 2018년을 묘사 한 곡인 것 같아요.
- 급박하면서도 거대한 흐름 안에서 무언가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는 그런 느낌?
히 : 그런 것 같아요. 일단 ‘가라스’ 활동 도중부터 활동에서 빠지고, 그 뒤에 ‘히비키’ 기간이 있었고… 그룹 활동으로 돌아 온 것이 바로 ‘안비바’였죠. 그룹 활동에 복귀 할 때도 ‘뭔가 좀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기억에 남아 있어요. 개인적으로 ‘이런 식으로 바뀌면 좋겠다’거나 ‘이렇게 되면 좋겠다’라는 것들이 있기에, 그룹으로 돌아 온 뒤 이래저래 생각 할 거리가 많았지요. 물론 안 좋은 의미 뿐 아니라 좋은 의미도 포함해서 말이에요. 멤버가 졸업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슬펐어요. 물론 졸업을 결정 한 것은 그 멤버 개인의 선택이므로 진심으로 축하 해 주고 싶었지만… 졸업하는 멤버 전원으로부터 ‘사실 나는 이런 목표가 있어서 졸업하는 거야’ 라던가 ‘사실 이런 꿈이 있어 졸업하는 거야’라고 들은 것도 아니니까요… 그게 정말로… 네, 정말 슬펐어요.
- 그럼 그룹으로 돌아왔을 때, 개인적으로는 어떤 감정이 컸어?
히 :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어? 우리 그룹 이런 그룹이었나?’라는 느낌이 컸어요. 저 스스로가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상이 너무 커서 기준이 너무 올라 가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요. 물론 제가 모르는 곳에서 다들 엄청나게 고생 했을거라 생각하기에 제가 멋대로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요.
- 그룹에서 떨어져 있는 동안 자신이 변했다는 생각은 안 들어?
히 : 저 자신이요? 아, 물론 혼자서는 해 낼 수 없는 일들도 많기 때문에 ‘멤버들 없이는 전할 수 없는 메시지도 있고, 멤버들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 것도 많다’는 점을 엄청 느꼈어요. ‘안비바’ 때부터 멤버들과 엮이는 안무가 많아지기도 했고요. 이전까지는 저 혼자 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지만, ‘안비바’ 때는 멤버들과 함께 해야 하는 것이 많아져서 더더욱 그렇게 느낀 것일지도 모르지만요.
- 그 말을 들으니 누구보다도 히라테상 본인이 그 동안 엄청 변한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히 : 하지만 그런 시간이 없었다면 저는 ‘안비바’에는 들어가지 못했을 거라 생각해요. 일단 그룹을 떠나 있었던 것이 제게 있어 엄청 나게 의미가 있었고, 그런 시간을 가지길 잘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시간을 갖지 않고 계속 변함 없이 케야키자카에 있었더라면 ‘안비바’는 나오지 못 했을거라 생각해요.
- 어째서 그렇게 생각해?
히 : 제가 영화 ‘히비키’에 출연 하기로, 영화라는 세계에 발을 들여 놓기로 결심한 계기가 무엇인가를 생각 해 보면 역시 케야키자카라는 그룹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애초에 저라는 존재는 케야키자카의 일원이기에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고요. 케야키자카에 돌아 온 것 역시 그렇기 때문입니다. 물론 ‘돌아가야만 한다’는 마음과 동시에 한 편으로는 ‘하지만 좀…’이라는 망설임도 있었지만요.
- 그렇군. 그러면 그룹을 떨어 져 있던 몇 달 동안 계속 ‘그룹에 보은해야 해’, ‘돌아가야만 해’ 라는 마음으로 보냈다는 얘기네. 그럼 그 동안은 힘들었어? 아니면 그런 마음이 난관을 이겨 나가는 버팀목이 되어 주었을까?
히 : 아무래도 ‘버팀목’이라 하기에는 조금 힘들 것 같아요.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할까’를 엄청 고민하기도 했고.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이대로는 아무 것도 안 돼’라는 생각은 갖고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마음 먹고 결단을 내린 결과가 케야키로 돌아간다는 결론이었지요.
- 하지만 한 편으로는 위화감도 있었을 것 같은데?
히 : 음… 그건 그렇네요. 지금이야 이렇게 생각 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이렇게 생각 할 여유조차 없었으니까. 당시에는 정말이지 케야키로 돌아 간다는 것, 그리고 눈 앞에 닥친 영화 제작에 쫓겨서 정신이 없었어요. 그렇기에 지금처럼 주변을 볼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 그저 필사적으로 주어진 것들을 해 내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고 해야겠네.
히 :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것 밖에 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항상 ‘어떻게 하지’라고 고민 했고요.
- 바로 그 ‘어떻게 하지?’라는 기분은 ‘내게 요구되는 것은 어떤 행동인가?’라는 의미일까? 아니면 ‘나는 케야키자카라는 그룹에서 어떤 존재여야 하느냐’에 대한 의문일까?
히 : 아, 그렇게 생각 해 본 적은 없어요. 제가 케야키자카의 일원이라 생각하는 점은 변함이 없으니까요. 지금까지 계속 센터에 서 오긴 했지만, 제가 정녕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곳에 있거든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선 ‘작품’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잖아요. 그렇기에 굳이 말한다면 ‘작품을 위해서 케야키자카라는 그룹을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 같네요.
- 아, 그렇게 생각 해 왔기에 복귀 하겠다고 결정한 때, 혹은 복귀를 했던 시점에는 이미 그런 다짐이 다 되어 있었던 거구나.
히 : 네. 전부 결정이 되어 있었던 거죠. 아마 ‘히비키’ 촬영 후반쯤 부터는 마음이 정해 져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미 크랭크 업 날짜도 정해져 있었기에 하루하루 타임 리밋이 다가 오는 셈이잖아요. 그게 의외로 꽤나 힘들었어요. 가급적이면 다른 생각은 안 하려고 노력 했는데 ‘히비키’ 촬영을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케야키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아서 그 밸런스를 잡는 게 힘들었어요.
- 그럼 ‘히비키’ 촬영이 끝나고 ‘안비바’ 제작에 들어 갈 땐 이미 각오가 되어 있었다는 얘기네?
히 : 네. 어중간한 마음가짐으로는 참여하지 못 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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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생활은 어떠셨나요? 길게 느껴지셨나요? 짧았던 것 같나요?
니부 (이하 ‘니’) : 눈 깜빡할 사이에 끝나버린 것 같아요. 검도 자체는 초등학생 때 시작했지만, 고등학교 때는 내내 검도부 활동으로 가득 차 있었거든요. 주말에도 연습이다 시합이다 바빴기에 공부를 한다거나 친구들이랑 논다거나 하는 추억 보다는 검도부에서 보낸 기억들만 있는 것 같아요. 히라가나 케야키에 들어 온 이후로는 아이돌 활동과 학업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만, 그런 와중에도 어찌저찌 수학여행에는 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기뻤던 일 중 하나예요. 하지만 고 3으로 올라가는 타이밍에 연극 ‘아유미’의 연습 기간이 겹친 것을 시작으로 급격하게 바빠져서 결국 고 3 도중에 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반 년만 있으면 졸업이었던 지라 여러 모로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만 저 자신에게 있어 중요한 터닝 포인트라 생각해서 결단을 내렸지요. 검도부 고문 선생님께서 ‘남들보다 한 발 앞서 졸업 하는구나’라고 말씀 해 주신 것, 그리고 친구들이 앨범을 만들고, 롤링 페이퍼를 써 주었기에 마지막 날, 친구들과 얼싸안고 펑펑 울었어요. (웃음)
- 그렇다면 역시 고교 생활을 떠올릴 땐 학교 행사보다는 검도부 일이 더 먼저 떠오르시겠네요?
니 : 네. 운동회도 재미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은 검도부 합숙이네요. 합숙을 통해 친구들이 많이 생기기도 했고, 같은 부 동료들과 서로를 격려하며 힘든 연습을 극복 해 나가며 유대감도 깊어졌거든요… 누가 뭐래도 함께 밥을 먹고 같은 곳에서 잠을 자고, 마음 속 얘기를 나눈다는 게 정말 ‘청춘’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 소위 말하는 학교 내 서열이랑 니부상은 아무런 연이 없는 것 처럼 보이기는 합니다만…
니 : 애초에 여학교에 다녔었기에 서열 같은 건 없었어요. 여자 아이들만 있다 보니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좀 독특하고, 학교내 행사를 하면 분위기를 금방 타는 부분은 있었지만요. ‘이번 행사, 전력으로 해 보자~’ 뭐 이런 분위기였달까요? 그 중에서 저는 지금이랑 똑같이 ‘니부쨩’이라고 불리며, 모두에게 놀림 당하는 캐릭터였어요. 여러 모로 좀 특이한 애라 딴죽걸기 좋았다고나 할까요. (웃음)
- 딱히 교풍이 엄했더거나 한 건 아니고요?
니 : 네. 딱히 그렇게 엄청 엄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뭘 해도 괜찮은 것도 아니었고요. 아, 물론 몸 단장은 항상 확실히 하라고 이야기 하는 학교였습니다. 여학교라는 게, 사실 기본적으로 수평적인 관계가 강해지는 분위기거든요. 학교 내에서 남자들의 눈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 자신의 모습을 꾸미지 않고 친구들을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선지는 몰라도 아직도 연락을 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 친구들은 히라가나 케야키에 들어 오기 전의 제 모습을 알고 있기에, 자신을 꾸미지 않고, 너무 신경쓰지 않고 평범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잖아요. 정말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 올 봄부턴 니부상과 함께 학교에 다녔던 친구들도 각자 새로운 길을 걷게 되는데요, 니부상은 ‘더 이상 고등학생이 아니게 된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니 : 저는 사실 전학 하기 전에 이미 ‘진학은 하지 않고 히라가나 케야키 활동에 전념한다’고 마음을 굳힌 상태였기에, 남은 건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도록 주어진 것들 하나 하나에 최선을 다 하면 되는 것 뿐이었지요. 뭐, 아이돌 활동을 하다보면 교복이랑 비슷한 제복은 얼마든지 입을 수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다 맛 보지 못 한 학생 기분을 맛 보면 되지… 정도의 생각이었어요. (웃음)
- 그럼 딱 한 번, 시간을 거꾸로 돌려서 학생 때로 돌아 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요?
니 : 음… 사실 고교 시절에 있어 후회가 되는 건 거의 0에 가까워서… 굳이 얘기 한다면 시험 직전으로 돌아 갈 것 같아요. 입학 직후에 ‘고등학생이 되었다’는 점에 들떠서 공부를 거의 안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성적이 정말 말도 안 되게 처참했어요. 거기서부터 성적을 끌어 올리는 게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입학 직후 시기로 돌아 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완전히 후회되는 것이 없는 고교생활을 보내고 싶어요.
- 그렇군요. 하지만 현재 ‘후회되는 것이 거의 0에 가깝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요.
니 : 엄청 알찬 시간이었거든요. 일상생활도, 검도부 활동도, 학교 행사도… 모든 면에서 최선을 다 했다고 말씀 드릴 수 있어요. 물론 끝난다고 하니 아쉬운 마음은 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 그렇게까지 딱 잘라 단언 할 수 있다는 게 또 멋있네요. 그럼 고교생활을 마무리함에 있어 ‘아, 고등학생때 이런 식으로 고백을 받아 봤다면 좋았을걸’ 이라는 망상을 해 보며 인터뷰를 마무리 해 보죠.
니 : 와! 학교에서 고백을 받는다니, 엄청 멋지지 않나요? 그렇죠… 고백을 받는다면 역시 방과후죠. 상대방은 저랑 다른 부에 소속된 사람이고요. 부 활동이 끝난 뒤에 우연찮게 교실에 들렀다가 딱 마주치는 거예요. 사실 제가 보기에는 ‘우연히’ 만난 거지만, 상대방은 전부 우연을 가장해서 단둘이 될 수 있는 타이밍을 기다린 거죠. 끈기있게 (웃음) 상대방을 본 제가 깜짝 놀라며 ‘어? 왠일이야?’라고 입을 연 뒤, 잠시 잡담을 하다가 ‘그럼 슬슬 돌아갈까’라며 집에 가려는 순간 고백 받는 거예요.
- 고백의 내용은 담백하고 스트레이트한 내용이 좋은가요?
니 : 음. 뭔가 자세하게 물으시네요. 음… 생각하다 보니 부끄러워지는데요. 하지만
역시 스트레이트하게 마음을 말 해 줬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그런 말 들으면
‘헉!’하고 놀랄 것 같긴 하지만. 아, 물론 소리 내서 ‘헉!’이라고 말하지는 않을
지 몰라도 마음 속으로 말이죠. 아마 평소와 다름 없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놀랄 것 같네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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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명을 감싸는 부도칸의 빛과 함성
2018년 12월 3일, 오랫동안 기다려 온 ‘4기생 오미타테회’ 당일이 밝았다.
발매 개시 불과 2시간만에 매진이 된 프리미엄 티켓을 손에 쥐고 부도칸으로 몰려든 1만여명의 관객들. 이윽고 공연 개시시각이 되고, 회장의 불이 꺼져 어두워지자 객석 전체가 펜라이트의 불빛으로 가득 찼다. 한 명씩 이름이 불리며 등장한 멤버들. 그 중에서도 하야카와는 스테이지 위에 선 순간, 벅차오르는 감정에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하야카와 : 사실 그 때까지 라이브에도 간 적이 없거든요. 처음으로 경험하는 ‘무대’가, 보는 쪽이 아니라 그 위에 서는 쪽이라니! 애초에 ‘라이브’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도 모르고, 어떤 식으로 대응해야 하는 지도 몰랐어요. 왜 우는 지도 모른 채 눈물만 흐르더라고요.
타무라 : 사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스테이지 틈새로 객석을 훔쳐 봤거든요. 정말로 ‘와! 사람 엄청 많아!’라는 생각이 들어, 손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어요.
그녀들이 동요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애초에 불과 반년 전까지만 해도 연예계와는 관계 없는 평범한 소녀들이 어느 날 갑자기 노기자카46의 일원이 된 데다, 처음으로 겪는 무대가 1만명이 가득 들어 찬 부도칸이니 말이다. 마음 정리가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다들 동요를 감추지 못 하는 가운데 홀로 당당하게 행동하는 멤버도 있었다.
세이미야 : 학생회장 때, 전교생 800명을 앞에 두고 이야기 한 적도 많았어요. 그것도 체육관이 밝아서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까지 생생하게 보였거든요. 그 때와 비교하면 부도칸은 객석이 어두워서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이 확실히 보이지는 않았기에 그렇게까지 긴장하지는 않았어요.
츠츠이는 자기소개를 하는 내내 목소리가 떨렸다.
츠츠이 : 분명 목소리가 엄청 떨렸어요. 하지만 그건 긴장해서 떨린 게 아니었습니다. 객석에 와 주신 분들의 ‘힘 내!’라고 격려 해 주시는 목소리를 듣고 감동을 받아서 떨린 거죠. 엄청난 일이잖아요! 4기생으로 들어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나 따뜻하게 맞아 주신 거니까요!
하야카와는 자기 PR 도중, 5살 때부터 익혀 온 클래식 발레 경험을 살려 10바퀴 정도 턴을 선보였다. 카키는 특기인 일러스트를, 엔도는 중/고교 시절동안 취주악부에서 갈고닦은 클라리넷 실력을 선보였다. 카나가와는 1만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농구 롱 슛을 한 방에 성공시켰으며 시바타는 수구와 리본을 이용하여 리듬체조 실력을 뽐냈다. 세이미야는 앞구르기, 뒷구르기, 옆구르기, 브릿지를 순서대로 피로하였으며 츠츠이는 직접 짠 니트 모자를 관객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런 가운데 타무라는 자신이 갖고 온 야구 배트를 있는 힘껏 휘두른 뒤, 웃으며 ‘지금 보신대로 저는 만년 후보였어요’라고 입을 열었다.
타무라 : 그 날 이야기 한 건 전부 사실이에요. 실제로 8년동안 야구를 해 왔지만 정말로 ‘아주 가끔 한 번씩 시합에 나가는’ 정도의 선수였거든요. (웃음) 아마도 실력이 없었던 거겠죠?
항상 후보였던 그녀가 ‘노기자카46의 4기생’이라는, 말 하자면 주역의 자리에 서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인생 최대의 역전 홈런이라 할 수도 있으리라.
그리고 카케하시는 어쿠스틱 기타를 가져 와, ‘니게미즈’를 반주와 함께 불렀다. 언제나 집에서 홀로 벽을 보며 기타를 치던 소녀가 어느 사이엔가 1만명이 넘는 관객들 앞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기에 이른 것이다. 드라마 보다도 더 꿈만 같은 스토리가 아닌가.
카케하시 : 사실 긴장은 전혀 안 됐어요. 정말 순수하게 기분이 좋았지요. 아, 그리고 기뻤어요…
그렇게 다른 멤버들이 부 활동을 통해 배운 춤, 스포츠, 악기 등을 선보이고 있는 가운데, 독특하게도 ‘하늘’을 주제로 한 자작시를 발표하며 자신만의 세계관을 뽐낸 멤버도 있었다. 키타가와다.
키타가와 : 예전부터 하늘을 좋아했어요. 하늘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거든요. 배짱이 있는 편이냐고요? 어쩌면 있는 편일지도 모르겠네요.
쇼룸 심사때만 해도 언제나 보는 이들에게 사과하기만 해서 ‘사죄쨩’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야쿠보는 ‘예전부터 아이돌을 좋아했어요. 그렇기에 남들처럼 뭔가를 배우러 다니거나 공부를 한다던가 운동을 한다던가 하지 않고 그냥 제가 좋아하는 것들만 해 왔습니다. 그 결과, 여기서 여러분께 보여드릴만한 특기가 없어요. 그 대신 제가 노기자카의 라이브에 갔을 때의 모습을 재현 해 보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곤 ‘오이데 샴푸’의 콜을 선보였다. 콜이 끝난 뒤에는 ‘…아, 틀렸네요. 죄송합니다!’라며 변함 없는 ‘사죄쨩’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언젠가 찾아 올 꿈 같은 날을 기다리며 변하기 시작하다.
악수회가 걸린 추첨 다음 순서는 멤버들이 지난 한 달간 준비 해 온 라이브였다. ‘구루구루 커튼’은 세이미야, ‘제복 마네킨’은 시바타, ‘인플루언서’는 엔도가 각각 센터 자리에 섰다.
세이미야 : ‘구루구루 커튼’의 센터 자리에 서게 되었는데요, 긴장감이나 부담감 보다는 즐거움이 컸어요.
씩씩하게 감상을 말하는 세이미야와는 달리 시바타에게 있어 첫 센터 무대는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무대였다.
시바타 : 제게 있어 첫 목표는 오디션에 합격하는 것이었고, 그룹에 들어 온 뒤의 목표는 ‘오미타테회에서 센터에 선다’는 것이었어요. 목표가 있을 때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게 되잖아요. 그리고 그 목표가 이루어졌을 때, 불안감과 동시에 기쁜 마음도 있었어요. 사실 당일에 안무 동작 중 하나를 빼먹었거든요. 무대 위에 서 있는 동안은 꾹 참고 있었지만 무대 뒤로 들어 가 선생님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나더라고요. 다른 멤버들보다도 더 많이 가르쳐 주셨는데, 그럼에도 틀렸으니까요. 정말이지 죄송한 마음 뿐이었어요.
엔도가 센터에 서게 된 ‘인플루언서’는 다름 아닌 그녀가 노기자카에 빠지게 된 계기를 제공 해 준 곡이었다. 그런 의미 깊은 곡의 센터에 서게 된 그녀는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고 있었다.
엔도 : ‘인플루언서’를 공연하게 될 줄도 몰랐고, 하물며 제가 그 센터에 서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세이미야와 시바타) 둘이야 이미 춤이나 체조를 했던 아이들이지만 저는 그런 경험이 없었기에 불안했죠. 하지만 정작 부도칸에서 춤을 추고 나니, 작년까지는 TV에서만 보아왔던 선배님들에게 조금이나마 다가 선 것 같아서 기뻤습니다. 오디션을 받기 전의 자신과는 조금 달라졌구나, 나도 아이돌이… 되었구나. 라고 말이죠.
무수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처음으로 부도칸 무대에 선 그날, 그녀들의 ‘아이돌 인생’은 말 그대로 ‘시작’ 된 것이다. ‘오미타테회’로부터 며칠 지난 뒤, 그녀들의 심경을 들어 보았다.
카키 : 사실 얼마 전에 다큐멘터리 영화인 ‘눈물을 잊는 법’을 봤거든요. 니시노상의 어머님께서 ‘조금 더 나나세와 함께 있고 싶었다’고 말씀 하시는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지요. ‘아, 이거 지금 내 얘기구나’ 싶었어요. 지금껏 키워 주셨는데 갑자기 집을 떠나게 되어 죄송할 따름이에요.
그 말을 듣고 ‘그럼 당신이 지금 부모님을 위해 해 드릴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라고 질문 해 보았다.
카키 : 저희 부모님은 간사이 사람이다 보니 재미 있으면 기뻐 하셔요. 그러니 언젠간 TV에 나와 큰 웃음을 드려 기쁘게 해 드리고 싶어요. ‘우리 딸 윽수로 재미지네!’라고 말씀 하시도록 말이죠.
하야카와 : 지금 심경이요? 사실 아직 아이돌이 되었다는 실감이 안 나긴 하지만, 사실 저 지는 걸 굉장히 싫어하거든요. 미래의 저 자신이 후회하는 것은 싫으니까 우선은 지금 이 순간을 최선을 다 해 살아가고자 합니다.
카나가와 : 예전에 니시노상께서 ‘졸업 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후회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거든요. 그 말을 듣고 ‘아, 정말 멋지다’라고 생각했었어요.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 보았을 때, 그렇게 생각 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잖아요. 그렇기에 저 역시 노기자카46로서의 자신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할 수 있는 한 전부 해 보려 합니다.
카케하시 : 이번 ‘오미타테회’는 지금까지 1기생, 2기생, 3기생 선배님들이 노기자카라는 그룹을 유명하게 만들어 주신 덕분에 저희 4기생들에게 있어선 첫 일임에도 불구하고 부도칸이라는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것이잖아요. 그렇기에, 저희가 그 곳에 선 것이 저희들의 인기라고 착각하면 더 이상 성장 할 수 없다고 할까요? 저희 4기생들도 지금까지 선배님들이 해 오셨던 것 이상으로 고생하고 성장 해 나가고 싶습니다.
현재 노기자카는 1기생들이 서서히 졸업을 선택하는 시기이다. 그 결과 지난 7년여간에 걸쳐 만들어 온 노기자카라는 그룹의 색깔 뿐 아니라 그 위에 새로운 색이 덧칠해져야 하는 타이밍인 것이다. 자연스럽게 2기생, 3기생들은 물론이고 4기생들에게도 매우 무거운 사명이 주어 져 있는 것이다.
그녀들이 그 날, 부도칸 무대에서 부른
인플루언서의 가사,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영향을 주’는 아이돌이 될 수만 있다면 노기자카라는 그룹은 더더욱 재미 있어지지 않을까? 12만 9182명 중에서 선택을 받은
이 11명이라면 분명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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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9182의 경쟁률을 뚫고 선택받은 소녀들. 그 본래 모습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
아이돌이 태어난 날
각자의 생각 각자의 인생
2018년 3월 9일, ‘노기자카46’, ‘케야키자카46(한자)’, ‘케야키자카46(히라가나)’ 총 3 그룹이 새로운 멤버를 뽑는 ‘사카미치 합동 오디션’ 개최 발표가 있었다. 오디션에 합격 하여도 최종적으로 어떤 그룹에 들어 갈 지는 미정인, 처음 보는 형식의 오디션이었다. 응모 수가 129,182명에 달할 정도로 이례적인 규모를 뽐낸 이 오디션의 경쟁률은 약 3,400대 1. 참고로 세 그룹 중 ‘노기자카46’에 새로운 멤버가 가입하는 것은 약 2년만의 일이었다.
노기자카라는 그룹에게 있어 2018년은 변화가 많은 해였다. 이코마 리나, 카와고 히나, 카와무라 마히로, 사이토 치하루, 사가라 이오리, 노죠 아미, 와카츠키 유미가 그룹을 떠났으며, 에이스 멤버로 그룹을 견인 해 온 니시노 나나세 역시 졸업을 앞두고 있다. 이런 일대 변환기에 4기생 멤버 11명이 새롭게 그룹에 가세하게 된 것이다.
합격자 중 대부분은 ‘나도 TV에서 보던 노기자카의 멤버가 되고 싶다’는 일념으로 응모 한 경우였다. 물론 엔도 사쿠라 역시 그런 멤버 중 한 명이었다.
엔도 : 작년(2017년) ‘레코드 대상’ 때, 노기자카46이 ‘인플루언서’를 통해 대상을 탔잖아요. 그 때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정말 빛이 나는 것 같고 멋졌어요. 그리고 그 때를 계기로 조금씩 멤버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점점 더 빠져들었죠. 개인적으로 재미있는 사람을 좋아하는데요, 이쿠타 에리카상이나 무카이 하즈키상은 버라이어티 방송을 보면 그렇게 재미있는데도 사진이나 잡지에서 보면 엄청 예쁘시잖아요. 그 갭에 빠져버렸습니다. 재미있는데도 예쁜 사람, 엄청 동경하거든요. 저 역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 오디션에 응모하였지요.
TV나 잡지에서 활약하는 노기자카의 멤버들을 보고 용기를 얻어 오디션에 응모 한 것은 엔도 뿐만이 아니었다.
카키 하루카 : 제가 노기자카46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야마시타 미즈키상이었어요. TV에서 미즈키상을 보고 한 눈에 반해버렸습니다. 사실 유치원 다닐 때는 AKB48 여러분을 보고 아이돌이 되고자 했었습니다만, 커 가면서 점점 현실을 알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안 될거야’ 라고 포기하고 있었지요.
말하자면 어린 남자아이들이 ‘난 크면 파워레인저가 될거야’ 라는 식으로 카키 하루카 역시 ‘아이돌이 될 거야’라는 막연한 꿈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꿈을 포기 한 지 10여년이 지나, 고등학생이 된 카키 하루카에게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찾아 왔다.
카키 : 엄마가 ‘오디션이 열리는 모양인데’라고 이야기 해 주시더라고요. 사실 노기자카를 좋아하긴 했지만, 저 자신이 그 안에 들어 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잖아요. 그래서 응모를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는데, 오디션 캐치프레이즈가 ‘올 여름, 당신의 인생이 바뀝니다’ 더라고요. 그 캐치프레이즈를 본 순간, 이대로 포기하면 반드시 후회 할 것이라 생각했지요.
카키처럼 큰 결심을 품고 오디션에 임한 멤버도 있는 반면, 우연한 계기로 아이돌의 길을 걷게 된 멤버도 있다. 바로 하야카와 세이라이다. 실제로 대화를 나누어 보니 싹싹하게, 가식 없이 이야기 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멤버였다.
하야카와 : 사실 그냥 한 번 해 볼까? 하는 정도의 마음으로 응모한 거였어요. 그다지 아이돌에 대해 잘 아는 편도 아니었고요. 초등학생 때 반 장기자랑때 친한 친구가 ‘나 AKB48 춤 추고 싶어’라고 했거든요. 그때도 전 CD 재생버튼을 눌러주는 역할이었어요. 그랬던 제가 오디션을 통해 이렇게까지 변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물론 예전부터 아이돌이 되기 위하여 노력 해 온 멤버도 있다. 바로 시바타 유나가 그런 케이스이다.
시바타 : 어릴 때부터 아이돌을 동경 해 왔고, 초등학교 2학년 때에 이미 ‘난 아이돌이 될 거야!’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고 다녔을 정도예요. 그 얘기를 들은 주변 사람들이 ‘그게 될 리가 있냐’며 무시했기에, 그 뒤로는 그 꿈을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요.
아무도 자신의 꿈을 이해 해 주지 않아 포기하기 직전까지 몰렸던 때, 우연찮게 TV를 통해 노기자카라는 그룹을 알게 되고, 아이돌이 되겠다고 하는 정열에 다시금 불이 붙었다는 그녀. 결국 노기자카의 악수회에도 꼬박꼬박 출석하게 되었다.
시바타 : 음반이 나올 때 마다 CD를 샀고, 작년 여름에는 메이지진구에서 열린 라이브에도 다녀 왔어요. 특히 요다상의 악수회에 자주 갔었는데, 오디션을 앞두고 ‘합격 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고 올게요’라고 이야기 했었는데, 합격 한 뒤에 요다상을 만났을 때, 그 일을 기억 해 주셔서 정말 기뻤습니다.
카나가와 사야가 노기자카라는 그룹을 좋아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말 무렵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다른 멤버들과는 조금 다른 계기로 그룹에 빠져들었다.
카나가와 : 이쿠타상이 핀란드 민요를 부르시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지요. ‘이렇게 대단한 사람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검색을 한 결과 노기자카라는 그룹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MV를 본다던지 하면서 점점 빠져들었고요. 저희 집 같은 경우, 제가 장녀고 제 아래에 15살짜리 쌍둥이 동생이 있고, 7살짜리 막내가 있는 네 자매인데요, 자매 넷이 모두 사카미치 그룹의 팬이에요. 그래서 제가 오디션에 붙었을 때, 동생들도 엄청 기뻐 해 줬어요. 정말 귀여운 아이들이랍니다. (웃음)
네 자매의 맏이인 그녀가 동기 중 유일하게 ‘언니’라 부르는 멤버가 있다. 4기생 중 최연장자인 타무라 마유가 바로 그 멤버이다. 얼핏 보기에 얌전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어릴 적에는 하루 종일 야구에 빠져 살았다는 타무라.
타무라 : 초등학교 2학년때 오빠와 같은 야구팀에 들어 가 야구를 했고, 중학생이 된 뒤로는 언니가 있던 소프트볼부에 들어갔어요. 중학생때까지는 매일매일 운동 삼매경이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 간 뒤로는 아무런 부에도 들어가지 않고 평범한 여고생 생활을 보냈죠. 고등학교를 졸업 한 뒤에는 패밀리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중심으로 하여 여러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사카미치 합동 오디션’을 알게 되고, 응모하게 된 것도 이 때 쯤이에요.
참고로 노기자카46 1기생 중에 타무라와 동갑이 멤버가 있다.
타무라 : 사실 사이토 아스카상과 같은 98년 생이거든요. 아스카상은 일찍이 노기자카46로서 활약 하셨기에, 동갑인데도 인생 경험이 전혀 다르지요. 제 동경의 대상이십니다.
그런 타무라와는 대조적으로 최연소 합격 멤버도 있다. 바로 츠츠이 아야메이다. 현재 14살, 중2 학생인 그녀.
츠츠이 : 오디션에 응모하게 된 계기는, 친구네 어머니가 저희 엄마에게 ‘이런 오디션이 열린다’고 알려 주셔서, 저희 엄마가 저에게 ‘응모 해 볼래?’라고 말씀 해 주신 것이었어요. 저 역시도 별로 주저하지 않고 ‘재미 있어 보이는데 한 번 해 볼까~’정도의 마음으로 응모하게 되었습니다. 오디션을 받게 된 뒤에 노기자카46의 영상들을 보게 되었는데, 특히 오오조노상의 독특한 세계관에 매료되었어요. 지금은 하루 종일 오오조노상 영상만 보라 해도 할 수 있을 정도로 푹 빠져 있습니다.
여기까지 4기생 멤버들의 소개를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아이돌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크게 나누어 두 부류이다. 현재 자신의 생활을 바꾸고 ‘저 빛나는 아이돌 세계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별 생각 없이 분위기에 휩쓸려 도전 하게 된’ 사람들. 그리고 4기생 중 전자의 가장 궁극적인 예가 카케하시 사야카이다.
오디션을 받기 전에는 그저 매일매일 학교에 가고, 집에 돌아와서는 홀로 기타를 치며 하루를 보냈다는 그녀.
카케하시 : 사는 곳이 오카야마현 중에서도 시골이거든요. 전철이 한 시간에 한 대 밖에 없을 정도로요. 지금껏 본 적 없는 세상을 보고 싶어 ‘합동 오디션’에 응모하였습니다.
합격자들 중에서는 항상 생글생글 미소를 짓고 있는 아이도 있다. 세이미야 레이다.
세이미야 : 학교에선 자주 ‘시끄럽다’고 핀잔을 듣곤 했어요. (웃음) 하지만 공부도 성실하게 했답니다. 초등학생 때는 아동회장도 했었고, 중학생 때 역시 학생회장을 했어요. 아, 그리고 5년 정도 미국에서 살았기에 영어도 할 줄 알아요.
그 정도로 교내 행사에도 열심히 참가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성적도 좋았던 아이가 어째서 아이돌 오디션에 응모하게 된 것일까?
세이미야 : 예전부터 사카미치 그룹을 좋아하기도 했기에 분위기를 보러 세미나에 참가 했었어요. 회장에 귀여운 아이들이 많아서 ‘역시 오디션은 안 받는 게 낫겠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시드권을 얻게 되었지요. 그래서 이것도 좋은 기회다 싶어서 응모하게 되었습니다.
4기생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아이가 있다. 미국 출신인 소녀는 필자의 질문에 ‘음…’ 이라며 잠시간 생각을 하더니 신중하게 단어를 골라가며 인터뷰에 응했다.
키타가와 유리 : 제가 태어난 캘리포니아는 연중 따뜻하고 비도 얼마 안 내리는데다가 사람들도 여유가 있어요. 저 같은 경우, 그런 환경에서 자란 덕인지는 몰라도 빠릿빠릿한 맛이 없지요. 선생님께서도 제게 ‘넌 치유계(※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야’라고 말씀 해 주신 적도 있지요. 학교에서 점심을 먹을 때에도 점심시간 내에 다 먹지 못 할 정도로 먹는 속도가 느리고, 말 하는 속도도 느리지요.
어릴 때부터 해외에서 살아 온 그녀가 어째서 일본의 아이돌에 흥미를 갖게 되었을까?
키타가와 : 유치원생때 가족들과 뮤지컬을 자주 보러 갔었기에, 보고 있는 사람들을 미소짓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하게 되었지요. 물론 그런 계기라면 보통은 연극배우를 꿈꾸게 될 지도 모르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아이돌을 보며 힘을 많이 얻었거든요. 저도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습니다.
야쿠보 미오에게 있어 ‘아이돌’이란 수 없이 도전하고, 수 없이 좌절 한 끝에 겨우 손에 넣은 꿈에 다름 아니었다.
야쿠보 : 중학교 2학년 때, 쌍둥이 언니가 노기자카46의 MV를 자주 봤었기에 저 역시 자연스레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점차 악수회나 라이브에도 다니게 되었지요. 사실 이전에도 몇 번인가 아이돌 오디션을 받았었는데 결과적으로 부모님께서 반대하셔서 잘 되지 않았어요. 이번 오디션은 ‘이번이 마지막 찬스’라고 부모님과 약속을 하고 임했습니다. 그렇기에 ‘노기자카에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만은 누구보다도 강했다고 생각해요.
웃음을 부른 쇼쿠레포, 고난이도 댄스의 세례
이렇듯 나이도, 출신지도, 자라 온 환경도 제각각인 응모자들은 각자의 생각을 가슴에 품은 채 ‘사카미치 합동 오디션’에 임했다. 1차 심사 (서류), 2차 심사 (카메라 테스트) 순으로 심사가 진행됨에 따라 응모자들의 심경도 크게 변해갔다. ‘조금만 더 있으면 아이돌이 될 수 있다’는, 일반인과 연예인의 경계선에 선 순간 그녀들의 마음 속에서는 지금껏 경험 해 보지 못 했던 갈등과 중압감, 각오가 생겨났던 것이다.
하야카와 : 심사가 진행되면 될수록 ‘이러다 떨어지면 나 자신이 부정당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 무서워졌어요. 떨어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필사적으로 노력했어요. 그러다 보니 최종심사 직전즈음에 ‘이대로는 안돼. 변해야 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까지는 한 번도 생각 해 본 적 없는 감정, ‘예뻐지고 싶다’는 감정을 느낀 건 그 때가 처음이었어요.
타무라 : 쇼룸으로 심사를 하던 도중에 ‘매번 긴장이 되는데 이 이상은 무리야’라고 자신을 잃고 울었던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저희 집 강아지가 제 얼굴을 핥아주더라고요. 강아지가 눈물을 핥아 주는 모습을 보며 ‘아,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되지’라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처음 겪어보는 오디션에 어찌 할 줄 모르고 자신을 잃는 아이도 있는 반면, 시종일관 밝게 행동하는 아이도 있었다.
시바타 : 3차 심사때부터 쇼룸 심사까지 계속 레이 다음 번호라 항상 같이 있었는데요, 레이는 항상 활기차고,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아이었어요. 오디션 때, 한번은 마이센(※돈카츠, 카츠 샌드위치로 유명한 식당 체인) 도시락이 나왔거든요. 아직도 그 때 찍은 동영상이 핸드폰에 남아 있는데요, 레이가 회장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갑자기 도시락을 먹으면서 쇼쿠레포(※먹거리 리포트. 음식을 먹고 맛이나 분위기 등을 설명하는 것) 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웃음)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밝은 분위기는 아닐 것이라 쉬이 추측 할 수 있을 오디션 회장에서 쇼쿠레포… 세이미야 레이는 그 때 뿐만 아니라 최종심사 때도 자기 앞 순서 후보자들이 노래를 부르고 자기PR을 하는 것을 보며 시종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세이미야 : 다른 멤버들이 하는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듣다 보니 절로 웃게 되더라고요. 물론 긴장은 했지만 번호가 빠른 편이었기에 딱히 ‘아, 어떻게 하지?’라고 할 정도도 아니었고요.
8월 19일, 드디어 최종 심사가 끝났다.
얼마 뒤, 노기자카에 들어가게 될 멤버들이 결정되어 11월 30일에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하여 ‘4기생 오미타테회’ 개최가 공지되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레슨이 시작 된 것은 공연을 약 1달여 앞둔 때였다.
카키 : 시간이 너무나도 없었기에 하루만에 후렴구를 전부 외워야 하는 날도 있었어요. 생각대로 외워지지가 않아 다 함께 모여 울기도 했고요. 그 중에서도 ‘인플루언서’는 특히 힘들었지요. …레슨은 정말 힘들었어요.
중압감과 싸워가며, 서로 서로 격려 해 가며 눈 앞에 솟아 난 높은 벽에 맞서 싸운 11명의 멤버들. 특히 댄스 경험자인 카나가와는 솔선하여 다른 멤버들을 리드하며 레슨에 임했다.
카나가와 : 레슨 도중에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도 분명 있었어요. 댄스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갑자기 레슨을 받으면 힘들다는 것 쯤은 잘 알고 있었기에, 제가 할 수 있는 한 도와줘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키타가와 : ‘인플루언서’ 같은 경우에는 안무 동작이 빠른데요, 저는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행동을 빠르게 가져 간 적이 별로 없어서 불안했어요… 그런 저를 도와 준 것이 다른 멤버들과 안무 선생님이셨습니다. 이토록 축복받은 환경에 들어 올 수 있어 정말 감사 할 따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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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REAM 9월호
야마모토 사야카의 ‘음악삼매경 1화’
SKREAM! 독자 여러분, 처음 뵙겠습니다. 야마모토 사야카라고 합니다.
이번 회부터 새롭게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칼럼 연재는 처음이기에 정말 기쁩니다.
저는 현재 NMB48라는 아이돌 그룹에 소속되어 있습니다만, 얼마 뒤에는 그룹에서 졸업합니다. 그룹을 졸업 한 뒤에는 싱어송 라이터로서 음악 활동을 계속 해 나가고자 하는 25세 여성입니다.
제 경력에 대하여 간단하게 자기 소개를 해 드리자면, 초등학생 때 에이브릴 라빈을 동경하게 되고, 오빠와 함께 기타를 사게 된 것을 계기로 하여 기타를 시작하였으며, 한 때는 밴드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래저래 제 음악의 원류는 ‘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만, 어느 정도 머리가 굵어진 뒤로는 음악적으로 편식을 하는 것이 좀 아깝게 느껴 져, 요즘은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 관계로, 이 칼럼에서는 다양한 아티스트 분들의 음악들을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그럼 이번에 다루어 볼 작품은…
중/고등학생들을 중심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계시는 ‘코레사와’상의 새 앨범, ‘코레데쇼’입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멋진 곡들이 가득한 앨범입니다만, 이번에는 우선 2곡을 골라 보도록 하지요!
우선 살펴 볼 것은 ‘이타이이타이 (아파 아파)’라는 곡부터.
이 곡은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을 잊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사랑 해 보려 하지만 결국 옛 사랑을 잊지 못하는 소녀의 감정 변화를 묘사한 곡입니다.
‘사랑이 시작되는 그런 키스는 알고 있었지만,
꿈에서 깨게 하는 키스가 있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되었어’
라는 가사와 함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신경 쓰이게 하며 듣는 이들을 가사의 스토리로 이끌어 들이는 A멜로디나
‘아파 아파
누군가 내게 ‘아픈 것 사라져라’라고 주문을 걸어 줘’
라며 상처 받은 소녀의 감정이 진하게 묻어나는 애달픈 후렴구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사며, 자연스레 소녀를 응원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게 합니다.
그리고 같은 앨범 8번째 수록곡인 ‘도쿄 고로케’를 살펴 보도록 하지요.
‘이타이 이타이’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곡으로, 이 곡은 오사카 출신인 코레사와상이 즐겨 먹었던 ‘도쿄 고로케’가 사실은 도쿄의 회사에서 만든 것이 아님을 알고, ‘난데야넹(이게 뭐여)’라고 가볍게 딴죽을 건다는 내용의 코미컬한 곡입니다. 오사카 출신다운 곡이지요.
마치 투덜대는 듯한 가사나 심플하고 뇌리에 남는 곡조 역시 캐치하고 참신합니다.
저 역시 같은 오사카 출신으로서 이 곡을 듣고는 ‘한 방 먹었네’라고 생각 했지요.
B멜로디에서 나오는 추임새나 후렴구 뒤에 나오는 ‘난데야넹!’이라는 부분은 라이브 때 따라하기 딱 좋을 것 같고요.
일단 한 번 듣고 나면 저도 모르게 흥얼거릴만한 노래입니다.
여러분도 한 번 들어 보시면 어떻까요?
네. 그럼 이번 회 소개는 여기까지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연재 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회도 기대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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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화
처음 20명이서 춤춘 날
2017년 10월부터 방영 된 히라가나 케야키의 첫 주연 드라마 ‘Re:Mind’.
‘히라가나 케야키는 다들 연기를 잘 하는 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스태프의 응원에 힘입어 부단히 노력 한 결과,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은 연기의 재미에 눈뜨게 되었다.
그 뿐 아니라 연기에 있어 매우 중요한 ‘상대방을 잘 지켜본다’는 점 역시 의식하게 되어, 이후의 라이브에서 퍼포먼스의 질 역시 크게 향상되었다.
드라마의 촬영기간은 약 2개월. 이 시기에도 촬영 이외의 스케줄, 다시 말 해 라이브나 방송 출연 등의 활동은 계속 되었다.
아무도 앉지 않은 ‘네루쨩의 자리’
2017년 11월 6일. 후쿠오카현 선 팔레스홀에서 히라가나 케야키의 전국 투어 후쿠오카 공연이 열렸다.
공연의 오프닝 퍼포먼스는 멤버들의 컬러가드 퍼포먼스. 깃발이나 모형총기 등을 이용하여 마칭의 분위기를 띄우는 이 컬러가드는 사실 히가시무라가 중, 고등학교 시절을 바친 것이었다. 실제로 연습 때는 다른 멤버들을 가르쳐주고 이끌어 주기도 한 경험자 히가시무라는 이 날 퍼포먼스에서도 센터 자리에 서서 모형 총기를 휙휙 돌리다 위로 던지고 받아내기도 하는 듯 멋진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오프닝 퍼포먼스를 마무리했다.
사사키 쿠미는 이 후쿠오카 공연부터 자기 마음 속으로 한 가지 ‘게임’을 시작했다. 회장에 모인 팬들의 표정을 한 사람 한 사람 유심히 바라보고, 만약 웃고있지 않은 관객이 눈에 들어오면 그 사람이 웃을 때 까지 전력을 다 해 ‘해피 아우라’를 뿜기로 정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상대방이 웃으면 자신이 승리 한 것이다.
물론 이런 ‘게임’을 하게 된 것은 공연의 분위기를 더욱 더 띄우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드라마 촬영을 겪으며 자연스레 몸에 익혀진 ‘상대방을 잘 본다’는 의식 역시 무시 할 수 없는 원인 중 하나였다.
이 공연에서는 드라마의 주제곡인 ‘그럼에도 걸어가’가 처음으로 전 멤버에 의해 선보여지기도 하였는데, 이 곡은 센터인 사이토 쿄코 이외에도 모든 멤버들이 솔로파트를 소화해야 하는 첫 곡이었다. 그리고 전원이 센터 파트를 맡게 되었다는 긴장감 덕분에 그녀들의 정신력은 한 층 강해 질 수 있었다.
이 곡을 선보일 때는 소도구로서 의자가 12개 사용된다. 그리고 이 날 공연에서 무대 중앙에 놓여진 의자 한 개는 끝까지 아무도 앉지 않은 채였다. 멤버들은 이 빈 의자를 ‘네루쨩의 의자’라고 부르며, 지금껏 나가하마와 함께 12명이 만들어 온 히라가나 케야키자카의 역사를 상징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빈 의자’는 그런 상징적인 의미 이외에도 동선 이동이 많은 이 곡에 있어서 안무의 ‘기준점’으로서도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곡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멤버들이 12개의 의자들을 일렬로 세워 놓고 그 의자들을 뛰어 넘는 연출이 가미되었다.
‘태어 나서 죽는 날 까지
그래 그럼에도 걸어 가는 거지
그렇기에 그럼에도 걸어 가’
라는 가사대로 지금껏 히라가나 케야키가 걸어 온 과거와, 그런 과거를 떠나 다음 길로 걸어 나가겠다는 의지가 담긴 연출이었다.
사실 이 후쿠오카 공연 직전, 전국투어의 마지막 공연이 치바현 마쿠하리 멧세에서 열리게 되었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틀에 걸친 마지막 공연의 수용인원은 약 1만 4천명. 지금까지 전국 투어를 돌아 온 3000명 이하의 라이브 하우스와는 차원이 규모였다.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티켓은 이미 선행 판매 시점에서 낙선자가 다수 발생 할 정도로 날개 돋힌 듯 팔렸다. 이는 멤버는 물론이고 스태프들 조차도 차마 예상조차 하지 못 한 일이었다.
이런 성황의 숨겨진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되는 것이 바로 ‘라이브 뷰잉’이었다. 봄부터 시작 된 전국투어 내내 소위 ‘라이브 뷰잉’이라고 하는 동시 중계가 행해졌던 것이다. 이는 사실 아직 인지도가 부족한 히라가나 케야키가 하기에는 위험도가 높은 도전이었기에 라이브뷰잉을 성공시키기 위하여 여러가지 기획이 실행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매 공연마다 한자 케야키 멤버들이 두 명씩 동행하여 무대 뒷편 모습을 중계 하는 기획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런 중계를 통해 지방에서도 서서히 히라가나 케야키의 팬들이 늘어났고, 그와 더불어 2기생 가입, 나가하마 네루의 갑작스러운 이탈 등 그룹의 ‘스토리’가 많은 관객들에게 공유 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팬들 사이에서 ‘어쩌면 마쿠하리 공연에서 2기생들이 처음 공개 될 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며 기대감을 더하기도 하였다. 8월에 그룹에 들어 온 9명의 2기생들은 이전까지 팬들 앞에 서서 퍼포먼스를 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히라가나 케야키사상 최대규모의 원맨라이브로 향하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50미터 달리기로 생겨난 카토와 와타나베의 유대감
2기생들이 본격적으로 사람들 앞에 서기 전부터 그녀들의 레슨을 맡아 온 댄서 겸 안무가 TAKAHIRO는 처음으로 그녀들과 만난 날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그녀들의 인사가 너무나도 크고 우렁차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고, 지금까지 보아 온 한자 케야키나 히라가나 케야키 1기생들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의, 말 그대로 ‘새로운 세대’가 들어 왔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가입 직후, 그녀들은 의례적으로 케야키자카46의 칸무리 방송인 ‘케야카케’에 6주 연속으로 출연하게 된다. 그 뿐 아니라 여러 잡지에서도 앞다투어 그녀들을 다루었다. 지금까지 히라가나 케야키 1기생들이 노력 해 온 결과, 새롭게 가입한 2기생들에게 수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2기생들이 처음으로 1기생들과 함께 참여한 곡은 ‘NO WAR in the future’였다. 후쿠오카 공연이 끝나고 함께 모여 안무를 배울 때, 초창기 자신들의 모습과는 달리 어려운 안무에도 겁먹지 않고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2기생들의 모습을 보며 히라가나 케야키 1기생들은 ‘2기생들 대단하다’고 칭찬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건, 당사자인 2기생들의 마음 속은 불안으로 가득했다.
특히나 최연소인 하마기시 히요리는 발레 경험자라는 점을 살려 이 곡 퍼포먼스에서 마찬가지로 발레 경험자인 사사키 쿠미와 함께 발레 동작을 선보이게 되었는데, 첫 합동 연습때는 너무나도 긴장 한 나머지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였다. 갑작스레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어, 마음 속으로 ‘나 같은 게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맡다니 다른 사람들에게 면목이 없다’는 생각만이 가득해 잔뜩 위축되어 있었다.
‘케야키자카46의 노래를 알게 되고 인생이 변했다’고 할 정도로 그룹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니부 아카리 같은 경우에는 곡의 안무 중에 1기생들과 서로 껴안는 부분에서 너무나도 긴장한 나머지 하루 종일 선배들에게 아무 말도 걸지 못 했을 정도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 1기생 선배님들 다 좋은 분들인걸!’
2기생 중 유일하게 ‘Re:Mind’ 촬영에 참가하며 한 발 앞서 1기생들과 관계를 구축하고 있었던 와타나베가 동기들을 위로하였다. 특히 카토 시호와는 선/후배 관계라기 보다는 그냥 사이 좋은 친구와도 다름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
와타나베가 카토와 친해질 수 있었던 계기는 사실 드라마 현장에서 있었던 사소한 잡담이었다.
‘아, 사이타마 출신이라 했지? 사실 나도 사이타마 출신이야’ 라는 한 마디 말이다.
그리고 얼마 후에 있었던 ‘케야카케’ 녹화 때, 50미터 달리기를 하게 되었을 때 역시 카토가 먼저 ‘같이 뛰자’고 말을 걸어주었고, 근소한 차이로 이긴 카토가 ‘역시 빠르네’라고 칭찬 해 주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 되었던 것이다.
이 날 달리기에 참가한 것은 한자/히라가나 합해서 총 38명. 그리고 두 사람의 기록은 카토가 전체 1위, 와타나베가 전체 2위를 했을 정도로 좋은 기록이었다. 그리고 이 경기를 기점으로 두 사람의 거리는 순식간에 확 줄어들게 되었다.
‘히라가나에 들어 와 줘서 고마워’
전체 그룹에서도 손꼽히는 운동신경의 소유자, 카토 시호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 때 까지의 기간을 연식 테니스에 바친 스포츠 소녀였다. 그녀는 같은 반 아이들 중에서 확 눈에 띄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연식 테니스 부 활동을 할 때는 두각을 나타내, 중학생 때는 도쿄 도대회에 단골로 출전 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었다. 당시에는 잘 하는 선배 뒤를 쫄쫄 쫓아 다니며 묵묵히 테니스 기술을 배우거나, 집에 가서도 매일같이 벽치기 연습을 할 정도로 테니스에 매진했다.
그리고 그런 타고난 성실함은 이후 히라가나 케야키에 들어 와서도 자주 발휘되었다.
그룹에 가입한 직후, 매니저가 별다른 생각 없이 ‘레슨 때 집중하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 카토는 그런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는 히라가나 케야키를 더 좋은 팀으로 만들고 싶어요. 내일 한 시간 일찍 와서 레슨하기 전에 자율연습 해도 될까요?’라고 대답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런 성실한 일면과 더불어 매사에 부정적이고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 역시 카토의 특징이다.
처음으로 잡지 취재를 하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10분 정도 가볍게 사진을 찍고 난 직후, 갑자기 카토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카메라 뒤에 서서 촬영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는 스태프들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지금 나 보고 못생겼다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다. 전국 투어 오사카 공연 때 ‘제복과 태양’의 센터에 지명되었을 때도 사사키 쿠미에게 ‘왜 하필이면 나지. 센터 같은 거 못 해’라고 울면서 호소했을 정도였다.
그런 카토에게 있어 아이돌로서 활동을 한다는 것은 ‘연약한 자신을 극복하’는 하루하루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카토이기에 2기생들이 들어오고, 와타나베가 홀로 촬영현장에 나타났을 때, 홀로 남겨진 와나타베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 역시 중학생때, 테니스 대회에 선배들과 함께 나가서 고독함, 그리고 부담감과 싸워가며 필사적으로 공을 쳤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카토는 예전의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한 와타나베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있을 수 있도록 일부러라도, 아무 의미 없는 시시한 이야기라도 걸려고 노력 했던 것이다.
와타나베 또한 카토와 닮은 구석이 많은 아이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10년간이나 농구에 모든 것을 바쳐왔고, 고등학생이 된 뒤로는 농구부 주장으로서 현 대회에 단골로 참가 해 왔던 그녀 역시 카토와 마찬가지로 ‘체육계 특유의 스토익함’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카토와 마찬가지로 본성은 고민이 많고 부드러운 성격이었던 것이다. 그런 두 사람이 서로 공명 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처음 2기생 모집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아무리 스태프들이 ‘이건 히라가나 케야키에게 있어 좋은 일이다’라고 설득을 해도 납득 할 수 없었던 카토. 하지만 애초에 노기자카의 팬이며, 아이돌을 좋아했던 그녀는 2기생들과 처음 만나, 인사를 한 그 순간 이미 그런 마음의 응어리는 싹 사라져 있었다.
‘이렇게 귀여운 아이들이 히라가나에 들어 와 줬잖아. 한자 선배님들의 언더 그룹이라는 소리만 들어 온 우리 히라가나에 들어 와 줘서 정말 고마워.’
드디어 20인 체재를 갖춘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20명이서 하나 되어 순조롭게 마쿠하리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맞이 할 것으로 보였던 그녀들 앞에는 아직도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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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Y YOU
BL의 세계
- ‘사야유우리’로 촬영하는 건 오랜만인지라 일부러 백합(여성 동성애물)스러운 설정으로 사진을 찍어 보았는데요, 최근에는 이런 분위기의 촬영은 잘 안 하시나요?
야마모토 (이하 ‘야’) : 요즘은 안 하네요.
오오타 (이하 ‘오’) : 안 해요.
야 : 오히려 초창기에 한 이래로 처음인 것 같은데요.
- 그럼 촬영 이외로 범위를 확대시켜 보면 작년 9월에 있었던 키노시타 모모카상 프로듀스 ‘백합극장’ 이후 처음인가요?
야 : 그렇네요. 그 ‘딸기우유향 입욕제’ 그거 말이죠. (웃음)
오 : 뭔가 반갑네요. (웃음)
- 이번에 이런 컨셉으로 촬영을 한 데는 이유가 있는데요, 작년에 오오타상과 인터뷰를 했을 때 ‘사야카상 댁에 자러 갈 때가 많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이어진 말이 ‘사야카상 댁에는 BL(남성 동성애물. Boy’s Love의 줄임말)책들이 많아서, 놀러 가서도 딱히 둘이 얘기를 나눈다기 보다는 각자 BL책을 본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야 : 아하하하하!!
오 : 그러고 보니 둘 다 말 한 마디 않고 BL 드라마 CD 틀어 놓은 적도 있었지?
야 : 있었어. 있었어. (웃음)
- 그런 이야기를 들었기에 촬영 때에도 그런 상황 설정을 살려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웃음)
오 : 헤헷 (웃음)
- 실제로 책장에 BL만화들이 많으신가요?
야 : 엄청 많아요.
- 막 수백권 있고 그런 느낌?
야 : 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을지도 몰라요. 다 합하면 1,000권은 있을 것 같은데요.
- 엄청나네요. 예전에 블로그에 방 사진 올리셨을 때는 팬들 사이에서 ‘방에 아무 것도 없네’라고 화제가 되었던 적도 있었잖아요.
야 : 네. 텅텅 비어 있었죠. (웃음)
- 그 때 있었던 게 담요, 기타, 그리고 액자에 들어 있는…
야 : 히지가타 토시조(신선조 부국장)의 포스터요. (웃음)
- 아하하하! 역시 대단하세요! 그럼 오오타상은 언제쯤부터 BL에 빠지기 시작하셨나요?
오 : 처음 BL 만화를 읽은 건 초등학생 때였어요… 4학년 땐가 5학년 땐가 였는데, 친구 중에 니코니코 동화나 하츠네 미쿠를 좋아하는 오타쿠 친구가 둘 있었는데요, 그 두 명이 모두 BL을 좋아 했었기에 저도 별 다른 편견 없이 ‘대단해~’정도로 생각 했었어요. 하지만 딱히 BL을 사거나 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NMB48에 들어 와 오타쿠 기질이 있는 멤버들과 만난 뒤, 새삼스레 ‘아 역시 이런 게 좋아’라고 눈 뜨게 되었습니다.
- 그렇게 공통된 취미를 가진 멤버들끼리는 이야기 하다 보면 즐겁지 않나요?
오 : 좋아하는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게 큰 것 같아요. 사실 멤버들이라는 게, 평소에 함께 활동을 하더라도 공통점이 없으면 이야기를 길게 하기 쉽지 않거든요.
- 일 얘기만 길게 하는 것도 좀 그렇죠. 그럼 사야네와 친해지게 된 것도 취미가 계기였나요?
오 : 2차원 덕분 아닌가? 그렇지?
야 : 같은 팀이 되어서 아닌가? 뭐, 그래도 취미도 관계가 없진 않네.
- 오카다 나나상 역시 의외로 그 쪽 사람인 것 같은데, 두 분 모두 오카다상과 사이 좋으시죠?
야 : 네.
오 : 나아쨩이랑 사이 좋아요.
- 역시나 같은 취미를 가진 동료랄까…
야&오 : (떨리는 목소리로) 저는…
야 : 후후후후
오 : 하하하하
야 : 저는 처음에 유우리랑 친해지고, 유우리를 통해 나아쨩이랑 이야기 하게 되었기에, 친해진 계기는 유우리라 해야 할 것 같아요.
오 : 저 같은 경우도 친해진 계기가 취미인 건 아니예요. 나아쨩이 쇼룸에서 ‘야미선발 (어딘지 모르게 사연이 있어 보이는 멤버들을 뽑은 선발)’을 뽑을 때 저를 뽑아 주었거든요. 물론 그 전에도 뮤비 촬영때 만나거나 해서 서로 면식은 있었지만 그리 깊은 관계까지는 아니었어요. 그러던 게 그 쇼룸을 계기로 제 멋대로 ‘나아쨩이랑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어느 사이엔가 친해 져 있더라고요.
- 멤버들이랑 있을 때, 오늘 찍은 그라비아 같은 (백합) 분위기가 되거나 하진 않나요?
야 : 그렇진 않아요. (웃음)
오 : 멤버들이랑 있을 땐 그런 분위기가 안 돼요. (웃음)
- 이지리 안나상이랑 있을 땐 그렇게 될 것도 같은데요.
오 : 이지리상이랑요? 전혀 안 그래요. 오히려 서로서로 일정한 거리를 지키는걸요. (웃음) 아, 한 번 이지리상이랑 교토에 놀러 간 적 있는데, 그 때 계단 옆에 있던 비스듬히 기울어진 돌 밟고 엄청난 기세로 미끄러 진 적이 있는데, 그 때 아주 잠시동안 만화적인 상황이 연출되긴 했어요. (웃음)
야 : 아하하하
오 : 하지만 결국 마무리는 ‘뭐해?(웃음)’ 라는 식으로 폭소로 마무리 되었지만요.
- 오오타상, 사야네 집에서 묵을 땐 사야네의 티셔츠를 파자마 대신으로 사용하신다던데요.
야 : 요즘은 아예 저희 집에 자기 파자마를 두고 다니는데요. (웃음)
오 : 네. 두고 다녀요. (웃음)
- 사실 오늘 찍은 사진 중에 그 설정인 것도 있어요.
야 : 아! 그래서 파자마 입고 찍은 거군요!
오 : 과연! (웃음)
수퍼 달링
- 사실 개인적으로는 그 쪽 장르에 문외한이라 이번 촬영에 앞서 BL 작가분께 여러 모로 질문을 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듣기로는 BL에는 ‘스파다리’라는 개념이 있다 하던데요.
야 : ‘수퍼 달링(원래 의미는 여러모로 조건이 좋은 상대방을 뜻하는 말이나, BL에서는 ‘수’에게 헌신하는 ‘공’에 대한 찬사)’ 말씀이시네요.
- 어떤 분께서 ‘오오타상이랑 야마모토상이라면 스파다리 설정이 딱일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야 : 헤에~
- 뭐 저는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잘 안 갔지만요. (웃음) 아, 두 분이 공통적으로 좋아하시는 ‘아이돌리시 세븐’ (휴대폰 게임)은 BL이랑 관계 없죠?
야 : 전혀 관계 없어요. 애초에 그런(BL)작품도 아니고요. (웃음)
- 아하하하. 아이돌 지망생들이 한 데 모여… 뭐 그런 내용인 걸로 아는데요, 현역 아이돌이신 두 분이라면 그 내용에 공감되는 부분도 많으실텐데요.
야 : 네. 엄청 공감됩니다. 그렇기에 게임을 하면서 괜히 마음이 아프거나 행복해하거나 해요. (웃음) 하지만 아이돌의 마음과 팬의 마음 양 쪽을 다 알 수 있는 좋은 게임이라 생각해요.
- 현역 아이돌이기에 더더욱 이해가 잘 되는 게임이라는 말씀이시군요.
야 : 제가 아이돌이기에 알 수 있는 면도 있지요. 선배가 갑자기 변해버렸을 때의 마음이라던가, 사무소와의 관계라던가. (웃음)
오 : 사무소와의 관계 부분이 가장 와 닿아요. ‘아, 그렇지…’ 라는 생각이 들지요. 하하하! 지금 매니저님이 저희 쪽 보시는데요! (웃음)
- 계속 이런 얘기만 나누면 팬분들이 뭐라 하실 것 같으니 슬슬 화제를 바꿔 볼까요. (웃음)
서로 공명하게 된 이유
- 사야네, 현재 고시엔 구장 전광판에서 흘러나오는 ‘롯코오로시(한신 타이거즈의 응원가)’를 담당하고 있죠?
야 : 네. 구장에서 자주 틀어 주십니다.
- 한신 팬 입장에서는 꿈만 같은 일일텐데요, 긴장 하지 않았어요?
야 : 사실 아이돌로서 큰 무대에 서게 된다면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긴장을 하는데요, 그 건은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이었기에 솔직히 잘 실감이 안 됐어요.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응원 해 온 구단을 공식적으로 응원하게 되고, 응원가도 부를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컸지요.
- 실제로 고시엔 구장에 가셔서 부르시기도 했지요.
야 : 네. 올 해도 불렀습니다.
- 사실 작년에 노래 부르실 때는 긴장하신 것 같았는데요.
야 : 긴장 했지요. (웃음)
- 올 해 보니 관록이… (웃음)
야 : 아하하! 올 해는 꽤나 편하게 불렀어요. 그것도 ‘와로타피포’를 선보였을 땐 혼자서 구장 여기저기로 뛰어다니기까지 했거든요. (웃음) 하지만 시구식 보다는 훨씬 즐거워요. 시구식은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이 ‘성지’에 관여된다는 느낌이라 엄청 긴장되는데, 노래를 부른다면 그래도 부담이 덜하거든요.
- 사실 영상을 보다 보면 ‘사야네, 엄청 거물이 되었어’라는 생각이 들어서 감개무량해집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무도관 공연에서 오오시마 유코상의 장난에 어찌 할 줄 모르고 헤맸었는데 말이죠.
야 : 아, 그런 적 있었죠. (웃음)
- 그러던 사야네가 시간이 지나 아이돌로서 여기까지 왔구나… 싶어서 말입니다.
야 : 별 말씀을요.
- 애초에 아이돌을 좋아해서 아이돌이 된 것도 아니잖아요?
야 : 그렇죠.
- 그랬던 사람이 벌써 8년이나 아이돌로 활동을 해 온 거니까요. 때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 일도 많았을텐데요.
야 : ‘아이돌’이라는 직업은 굉장히 폭 넓고 다양한 일들을 경험 할 수 있는 직업이고, 바로 그 점이 ‘아이돌’의 좋은 점이라 생각하기에 그 어떤 것도 개인적으로는 납득이 된다 해야 하나요. 보람이 있는 일들 뿐이었어요.
- 예전에는 수영복 그라비아 일도 많았죠?
야 : 네. (웃음)
- 사실 저희(부브카)와도 일을 많이 하셨는데, 그 때의 모습과 고시엔구장에서 롯코오로시를 부르는 모습 사이에 갭이 엄청나다고 생각했습니다.
야 : 그건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웃음) 하지만 수영복을 입고 사진을 찍을 때도 ‘이렇게 수영복을 입음으로 해서 다음 일로 이어질 것’이라 의식하며 수영복을 입었거든요. (웃음) 그렇기에 수영복 그라비아도 찍길 잘 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전국 중 고등학교 운동부 부실에는 반드시 사야네의 수영복 그라비아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는 전설도 있지요.
야 : 그 당시에도 순수하게 ‘아, 이렇게 날 좋아 해 주시는구나’라고 생각 했어요. 딱히 제 그라비아가 노출 수위가 있어서가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다들 순수하네~ 라고 생각 했지요. (웃음)
- 물론 좋아하게 된 계기가 그라비아 일지는 몰라도, 좋아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고 생각해요. (웃음) 그리고 후배들에게도 ‘나도 사야네처럼 이렇게 될 수 있을 지 몰라’라는 꿈을 주었다고 생각하고요. 물론 너무 높은 목표겠지만.
야 : 아녜요. 보잘것 없는 사람인걸요.
오 : 하지만 매사에 성실하게 임하는 것은 절대로 헛되지 않다는 것을 증명 해 난 건 사야카상이라 생각하는데.
야 : 아, 나도 그렇게 생각 해 주기를 바랐어.
오 : 사실 이 세상이라는 게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손해를 보는 구조잖아요. 특히 아이돌은 더더욱 그렇다고들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만도 않구나. 라고 알게 되었어요. 매사에 성실하게 임하다 보면 결국 그것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도 연결 되고 말이죠. 싫어하는 것도 참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 참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긴가요?
오 : 물론 너무 참기만 하면 사람이 망가져 버린다고 생각하는데요, 사야카상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며 한편으로는 참고 노력함으로 하여 이룰 수 있는 목표나 실현 될 수 있는 꿈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아이돌로서의 활동, 예를 들자면 그라비아도 그렇겠습니다만, 그런 활동들은 솔직히 말해서 아이돌을 졸업 한 뒤의 인생에는 그리 크게 영향을 못 줄 것 같거든요. 실제로 아무리 아이돌로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능력을 키워도 나중에 버라이어티 방송에 나가면 큰 도움이 안 되는 경우도 많고요. 하지만 사야네를 보고 있으면 그런 아이돌로서의 활동들이 결국 전부 이후의 인생과 이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 : 그렇기에 모든 것 하나하나 헛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야카상은 어느 한 순간도 버릴 것 없는 꽉 찬 8년간의 아이돌 인생을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 후배들 입장에서는 ‘위대한 선배’라는 거군요. 그렇다면 그런 선배를 대하는 방식 역시 그만큼 특별할 것 같은데요.
야 : 그런 거 없어요. 방금 전에도 턱을 만지작만지작 했는걸요. (웃음)
오 : 아무래도 처음에는 거리감도 있었고, 딱 ‘선배님’이라는 이미지였는데요, 사야카상은 모든 후배들에게 친근하게 대해 주셨기에 그걸 계기로 급속도로 친해 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일방적으로 친한 척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친해지지는 못 했을 거예요.
- 사야네 본인도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뒤에는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유해진 건가요?
야 : 그런 면이 크다고 생각해요. 후배면 후배일수록 더더욱 신경이 쓰이고요. 하지만 유우리 같은 경우에는 아마 저랑 닮은 부분이 있달까요… 사실 그룹 활동을 하다보면 ‘야생의 감’ 비슷 한 게 발동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오 : 그렇죠.
야 : 저도 그렇지만 유우리 역시 자기가 먼저 선배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타입이 아니에요. 보기보다 생각도 많고 투지도 넘치지만 그게 선배들 앞에서는 잘 발휘되지 않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런 아이들을 보면 정말 마음이 아파 질 정도로 공감이 되는 거죠. 그리고 저 아이를 좀 더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끌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우리와 같은 팀이 되어, 그룹이나 자신의 의욕에 대해 이래저래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사이에 자연스레 ‘내가 이 아이의 힘이 되어 주고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요시다 아카리상도 사야네상, 오오타상과 함께 ‘앞으로 이 그룹을 어떻게 끌어나가야 할 지’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눈다고 말씀하신 바 있는데요.
오 : 네.
- 그 얘기를 듣고 오오타상도 이젠 그룹을 이끌어가는 사람들 반열에 들었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야 : 그렇죠.
오 : 생각 해 보면 이상한 얘기지만요.
야 : 뭐가 이상해.
오 : 거기다가 시부야 나기사쨩까지 해서 넷이 자주 이야기 하곤 해요.
- 그럼 사야네상이 졸업한다는 이야기는 언제쯤 들으셨나요?
오 : 언제쯤 들었더라?
야 : 사실 졸업 발표를 한다는 것 조차도 실제 발표 직전에 결정 되었거든요. 하지만 이미 예전에 ‘아마 올 해 내로는 발표 할 거’라고는 이야기 했던 것 같은데?
오 : 그런 식으로 ‘낌새’를 풍긴 적은 엄청 많았죠. (웃음)
- 아하하하!
오 : 그렇기에 항상 각오는 하고 있었어요.
- 그러고 보면 오오타상도 올 초에 잠시 활동을 쉬셨잖아요?
오 : 네.
- 그렇게 쉬게 된 원인 중에 사야네의 졸업 사실도 있었던 건 아닌가요? 너무 크게 충격을 받았다던가.
야 : 아하하하, 그렇다면 너무 연약한데요. (웃음)
오 : 사실 휴식기를 갖기에 앞서 ‘아마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게 남지 않았을텐데, 이렇게 쉬어버리기엔 아쉽다’던가 ‘이제 함께 할 시간이 얼마 없네’라고 고민하긴 했어요. 그리고 휴식기 동안에도 그런 불안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요. 휴식을 할 지 말 지 결단을 내리는 데 망설였던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 요즘은 투어 기간이기에 이동 시간이라던가, 함께 있는 시간이 많겠네요.
야 : 그렇죠. 그러고 보니 요 전에 아카리랑 셋이 고기 먹으러 갔었지?
오 : 갔었죠.
- 그 얘기 듣고 꽤나 의외였어요. 사실 사야네는 고기를 싫어하는 이미지가 있었거든요. 셋이 함께 고기 먹으러 갔다는 얘기는 요시다상의 인터뷰에서 자세히 다룰 생각입니다만.
오 : 하지만 그 때 먹은 거 ‘그거’ 뿐이었죠?
야 : 하지만 최근에는 예전에 비해 고기가 땡기는 때가 늘었어요.
- 슬슬 사야네 다음 스케줄 문제도 있고 하니 마무리를 짓죠. 마지막으로 10월에 열리는 졸업 콘서트에 대해 여쭤보겠습니다. 어떤 내용으로 공연을 할 지는 정해졌나요?
야 : ‘이 곡은 꼭 하고 싶다’던가 ‘이 곡은 이 멤버로 하고 싶다’ 하는 건 머릿속에 있는데, 아직 제대로 회의를 하지는 않았어요. 현재로선 제 머릿속에만 있지요.
- 졸업 콘서트는 ‘태양의 탑’으로 유명한 만박기념공원에서 열리는데요, 가 본 적 있나요?
야 : 몇 번인가 가 본 적 있어요.
- 탑에는 들어 가 봤나요?
야 : 들어 가 본 적은 없어요. 항상 예약이 꽉 차 있어서.
- 개인적으로는 사야네가 갑자기 탑에서 등장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야 : 제가요?! (웃음) 대단한 연출인데요! 제가 태양의 탑에서 등장하다니. (웃음)
오 : 그것도 졸업 콘서트에서. (웃음) 그렇게 된다면 표정 한 번 보고 싶은데요. (웃음)
야 : 그것도 대단 할 것 같은데.
- 그럼 사야네가 어떻게 등장 할 지도 포함해서 졸업 콘서트, 기대하겠습니다.
야 : 감사합니다!
(야마모토 사야카, 퇴장. 이하 오오타 유우리의 단독 인터뷰)
- 사야네가 졸업 하네요.
오 : 네.
- 요시다 아카리상과 ‘사야네가 졸업 한 뒤, NMB48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계실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오 : 단순히 ‘큰 일이네’라고 이야기 하고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적어도 저와 아카링은 사야카상 졸업 이후의 NMB48에 대하여 기대되고 두근거리는 면이 더 큽니다. 사야카상도 ‘앞으로 NMB48가 어떻게 변해 갈 지’에 대해 기대 해 주고 있고, 졸업 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지켜 볼 생각이고, 신경이 쓰인다’고 말을 해 주었거든요. 사야카상의 졸업에 따라 NMB48에 있어 ‘한 시대가 끝난다’는 느낌은 있습니다만 그렇기에 저희가 더더욱 노력해서 또 다른 모습의 그룹으로 만들어 나가야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어요.
- 새로운 시대의 막이 열린다는 얘기네요.
오 : 그러니까 그저 ‘큰 일’이라고만 생각하지 않고, 앞으로가 기대되고 두근거리는 마음이 더 큰 것이지요. 어린 멤버들도 많이 들어 왔기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그룹이 될 것 같아요.
- ‘사야네를 대신해서 앞으로는 우리가 이끌어 나가야 해’는 부담은 없나요?
오 : 네. 하지만 제대로 해야 할 때는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사야카상이 지금까지 성실하게, 흔들림 없이 매사에 임해 오셨기에 지금의 NMB48가 있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야카상의 팬분들 뿐 아니라 다른 멤버들의 팬분들께서도 사야카상에 대해 신뢰를 갖고 계시니까요. 그런 것은 결국 사야카상의 지금까지의 행동의 결과라고 생각하기에, 그런 면에서는 저희가 중심이 되어 흔즐리지 않고 그룹을 이끌어 가야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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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with Erika Ikuta
- ‘여름 전국투어 2018’ 나고야 공연 (8/26) 때 선보이셨던 NOGIMETAL (이쿠타, 이토 리리아, 무카이 하즈키) 정말 충격적이었는데요.
이쿠타 (이하 ‘이’) : 히메탄 동생이 멤버이기도 해서 이전부터 BABYMETAL을 주목해 왔거든요. 그리고 그와 별개로 ‘박쥐여’를 한 번 불러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사실 ‘박쥐여’는 제 솔로곡인 ‘저체온의 키스’와 가까운 점이 많아 원곡대로 부르면 뭔가 좀 심심한 면이 있는데다가, 기껏 ‘지코츄 프로듀스 (멤버들이 자기 마음대로무대를 꾸미는 기획) 코너’에서 하는 거면 테마가 있는 편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때 떠오른 것이 ‘박쥐여를 BABYMETAL풍으로 불러 보면 재미있겠다’는 것이었지요.
- 듣기로는 리허설 중에 퍼포먼스 하는 것을 보고 리리아상과 무카이상을 멤버로 발탁하셨다는데요.
이 : 네. (웃음) 가장 처음 본 건 신장이었고요, 그 다음으로 본 건뭐랄까… 얼마나 전력을 다 하는가였어요. 그렇게 고른 두 사람이 제 예상보다 잘 해 줘서 기뻤습니다.
- 적은 인원으로 나고야돔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얻어서 기뻤겠지요.
이 : 사실 운동량이 많은 무대라 둘 다 힘들었을 거예요. 사실 이전에도 하즈키쨩이랑은접점이 있었지만, 리리아쨩과는 이번 무대를 계기로 사이가 확 가까워졌습니다.
- 혹시 리리아상, 무카이상에게 BABYMETAL의 ‘유이/모아(BABYMETAL의 멤버)’처럼 하라고 지시 하셨나요?
이 : 두 사람은 물론이고 의상 담당, 안무 담당자분께도BABYMETAL 영상을봐 달라고 말씀 드렸지요.
- 의상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오리지널 의상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기존 노기자카 의상 어레인지더군요.
이 : 네. 할로윈때 입었던 검은 의상에 붉은 천을 덧댄 것 뿐이에요.
- 그렇게 단 한 공연을 위해서 전력을 다 하는 모습이 이쿠타상답더군요.
이 : 별 말씀을요. 공연이 끝난 뒤에멤버들이 ‘멋있었어!’ ‘설마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이야!’라며 즐거워 해 줘서 기뻤습니다.
- ‘46시간 TV’ 때 보여주셨던 핀란드 민요도 마찬가지 연장선상에 있다고생각하는데요, 얼핏 보기에는 장난치는 것 같은 일에도 진지하게 임하는 모습이 말 그대로 엔터테이너의 참 모습이라 생각했어요.
이 : 컨셉은 차차 정해가며 하더라도, 퍼포먼스에는 전력을다 해야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라이브이기도 하고.
- 그 공연을 할 때, 나카모토상을 의식하셨나요?
이 : 의도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보내려 한 것은 아니에요. 말하자면 하다 보니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었달까요? 다만, 노래를 하고 있으면 스태프분께서 ‘그 모습을 보니 히메탄 생각이 난다’던가 히메탄 본인이 ‘고맙다’고 연락을 한다던가했기에, 그 퍼포먼스를 선보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 애초에 노기자카 이외에 아이돌을 찾아 본다던가 하시나요?
이 : 음… 거의 찾아보지 않아요. 아이돌에 그리 해박하지도않고요.
- 어? 분명 귀여운 여자아이들 사진을 모으신다고…
이 : 그렇긴 한데, 아이돌 사진은 없어요. 거의 모델이나 배우분들사진이라.
- 그럼 배우나 모델분들 중에서 특히 사진을 모으는 분은 누구신가요?
이 : 예전부터 카와구치 하루나상을 좋아했거든요. 그건 변하지 않네요.
- 카와구치 하루나상의 매력을 말씀 해 보신다면?
이 : 음… 이거 진심으로 이야기 하기 시작하면 한 시간으로도 모자랄텐데요. (웃음) 우선 생김생김이 아름다우시고꾸밈 없는 성격을 좋아합니다.
- 그럼 스스로도 카와구치 하루나상처럼 되고 싶다던가 하는 마음도 있나요?
이 : 그렇지는 않아요. 하루나쨩이 갑자기부릿코(예쁜척, 귀여운척)를 한다 해도 그건 그것 나름대로 좋고, 세상 만사에 짜증이 나서 매사에 시오대응을 한다 해도 그것 나름대로 좋을 것 같은데요.
- 그럼 ‘이런 여성이 되고 싶다’는 이상형은 있나요?
이 : 그건 그 때 그 때 다른데요, 한 때는 ‘일단 성숙한 모습을보여드리고 싶다’고 생각 한 적도 있지만 때로는 ‘좀 더 귀여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성격 자체가 엄청수시로 바뀌는지라 때로는 적극적이었다 때로는 차분하기도 하고, 때로는 다들 깜짝 놀랄 정도로 다른 사람들에게 다정해지기도 해요. (웃음)
- 주변 사람들도 그런 변화를 눈치 채나요?
이 : 어떠려나… 아, 자주 ‘알기 쉽다’는 얘기는 들어요. 생각하고 있는 게표정으로 드러나는 편이라.
- 무대에 서실 때나 곡에 몰입하셨을 땐 굉장히 어른스러워 보이면서도 노기자카의 라이브에서 MC를 하실 때를 보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순수하다는인상을 받습니다.
이 : 최근 들어서 ‘어른이 되었다’는 말을 자주 듣거든요. 하지만 사실 내면은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어요…. 아니, 사실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 거지만요. (웃음)
- 남들 말마따나 자신이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는 것이 있다면? 잘 몰라도 억지로라도 말씀 해 보신다면?
이 : 예전보다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게 되었어요. 무언가 할 때, 주변 사람들을 보고‘이 사람들은 어떻게생각할까?’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내가 즐거우면 된다’는 생각에서 ‘함께 즐겨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지요.
- 그렇게 바뀌게 된 데는 역시 연극 경험이 크게 작용했나요?
이 : 연극 무대에 선 것이 크다고 생각해요. 연극 무대에선 대선배님들과함께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제 생각도 정리가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한 번은 언제나 밝고 쾌활한 선배님께 ‘어떻게 하면 그렇게항상 밝을 수 있죠?’라고 여쭌 적이 있는데, 선배님께서 ‘나 사실은 엄청 소심하거든’ 이라 하시더라고요. 자신이 약하기에 다른사람들에게 다정 해 질 수 있다는 조언을 받은 거죠. 그릇이 큰 사람이란 다른 이들의 아픔을 알아주는 사람이라는 것도, 약한 사람들은 결국약하기에 서로가 서로를 지탱 해 주면서 살아 가야만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룹 외부 일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 지알게 된 것이지요.
- 이쿠타상은 1류 무대에 서는 동시에 노기자카로서도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이런 모습은 지금까지의 아이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길을 개척 해 나가시고 있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것 같습니다. 이쿠타상 본인은 이런 데 대한 자각이 있으신지요?
이 : 사실 그 얘기도 다른 분들께서 ‘새로운 아이돌상이네’라고 말씀 해 주시는것을 듣고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라고 깨닫게 되었어요. 저는 그저 예전과 변함 없이 제 일을 한 것 뿐인데 말이죠.
- 그렇게 새로운 길을 가는 만큼 어려움도 많았을텐데요.
이 : 예전부터 지금까지 변함 없이 ‘프로’ 분들과 같은 무대에서게 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지는 느끼고 있습니다.
- 외부 뿐 아니라 노기자카 내부적으로도 본인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셨을 것 같은데요.
이 : 단순히 ‘나는 이렇게 하고 싶다’고 주장만 하는 것이아니라 일단 제가 해야 할 일들을 먼저 끝낸 뒤에 서로가 이해 할만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거죠. 사실 저에 대해 ‘연극이나 아이돌 둘중 하나에 집중하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있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연극, 아이돌 두 가지 길모두 소중하게 생각하거든요. 지금 제가 이런 상황에 서 있기에 가능한 것도 있고요. 지금까지 뮤지컬을 본 적 없는 분들께서 저를 통해 뮤지컬을 보러 와 주시는 것도 기쁘고, 저 역시 뮤지컬을통해 경험 한 것들로 저 자신의 폭이 넓어졌다 생각하고요. 그렇게 경험을 쌓아 알게 된 것들을 다시 팬분들을 즐겁게 해 드리는 데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말이죠. 앞으로도 두 가지 분야를 모두 소중히 여기며, 여기서만 볼 수 있는 경치, 여기서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더욱 더 늘려 갈 수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제가 아이돌이 아니었다면 ‘이쿠타 에리카’라는 사람에게 흥미를 가져 주는 사람은 엄청 적었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그렇기에 ‘노기자카46의 이쿠타 에리카’ 명의로 라이브를 해보고 싶어요.
- 앞으로도 ‘노기자카’라는 곳을 소중히 여기겠다는 말씀이시군요.
이 : 외부 현장에 가는 경우가 많기에 그만큼 더 노기자카라는장소의 소중함을 실감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 최근 들어서는 다카야마상, 야마시타상과 영화를 보러 간다던지 하며 멤버들과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계신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만.
이 : 사실 그건 분위기를 중시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뿐인데요. (웃음) 사실 ‘카메라를 멈추지 마!’를 보러 가고 싶었는데, 다들 ‘엄청 재미있다’고 하니 허들이 너무높아 져 버렸어요. 그렇게 되면 오히려 뭔가 볼까 말까 망설이게 되잖아요. 하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보러 가면 그 영화가 재미있건 없건간에 같은 경험을 공유 할 수 있으니까두 사람에게 갑자기 말을 걸었던 거예요. 되게 가볍게 ‘갈래?’정도 분위기로. (웃음) 사실 그 날 밥도 근처 푸드코트에서 먹었는걸요.
- 푸드코트에서 밥을 먹는 아이돌 세 사람이라… 그림이 나오네요.
이 : 뭔가 수학여행 온 것 같아 즐거웠어요. (웃음)
- 노기자카에 들어 오신지도 7년이 지나갔네요.
이 : 최근 들어 옛날 얘기를 하다 보면, 다들 너무 어려서잔뜩 가시 돋혔던 시절 얘기도 나오거든요. 그럴 때 마다 ‘그런 때도 있었지’라며 웃곤 합니다. (웃음) 이미 멤버들이랑은 산전수전 다 겪은 노부부 같은 관계예요.
- 예전에는 분명 대기실에서 ‘나 공부하는데 시끄럽게 구네’라고 다른 멤버들을 야속하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고 들었는데요.
이 : 그건 그것 나름대로 예전의 제가 여러 모로 대단한 아이였다고는생각해요. (웃음) 인간적으로는 속 좁은 인간이었다고 생각하지만.
- 그 때에 비하면 요즘은 어깨에 들어 갔던 힘이 많이 빠진 것 같아요.
이 : 네. 요즘은 완급을 조절 해 가며 밸런스있게 활동 하고 있다고생각합니다.
- 아이돌이 되기 전에는 지금 같은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셨나요?
이 : 전혀요. 사실 아이돌이 되어서도 성인이 되기 전에는 졸업 할 거라생각하고 있었을 정도인걸요. 중3조에서 가장 먼저 졸업하는 건 100% 저라고 생각했었고, 이코마쨩이 저보다 먼저 졸업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하지만 의외로 아직까지 남아 있네요. 이대로 다른 1기생들이 전부 졸업한 뒤에도 저 혼자 남아서, 제가 졸업 할 때 남은 후배들이 저 신경쓴다고 다들 편지 써 와서 읽고 그러면 어쩌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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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 앞에서는 단 한 번도 일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노래’에 대해 남다른 정열을 갖고 있는 이마이즈미가 앞으로 도전 해 보고자 하는 분야는 다름아닌 연기. 올 해 7월에 방송된 드라마‘사랑의 달’에 사카키 사토코역으로출연 한 바 있다. 물론 이전에도 케야키자카의 드라마에서 멤버들과 함께 연기를 한 경험은 있지만 단독으로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기를 하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다 보니, 처음에는 감을 잡기가 힘들었어요. 지금까지는 잘 모르는 것이 있을 때, 멤버들이 대신해서 물어 봐 주기도했는데 이번에는 제가 직접 물어봐야만 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 해서 조금은성장 한 것 같기도 합니다.
같은 작품에 나오시는 분들도굉장히 다정하시고 ‘도쿠야마~’ 때 신세를 진 스태프 분도 몇 분인가 계셔서 현장 분위기에 금새 녹아 들 수 있었어요. 그리고 케야키의 ‘이제 숲으로 돌아갈까?’ 뮤비의 감독님이 이 작품의 감독님이셔서 ‘이런 곳에서 다시 뵙네요!’라고 기뻤지요.
이런 식으로 인연을 맺는 것을좋아하기에, 연예계가 좋습니다. 이렇게 다른 형태로 다시 만나게 되면 기쁘고, 앞으로도 이런 기쁨을 더욱 더맛보고 싶어요.
이번에는 조금밖에 나오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더욱 더 연기 일을 많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습니다. 아직 연기를 그리 잘 하는 편은 아니기에 더욱 더 실력을 갈고 닦아서, 다음번에는 더욱 더 성장한 모습으로 이번에 같이 일 한 분들과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것도 이번에 처음으로 역할에몰입했거든요. 지금까지는 ‘역할에 몰입한다는 게 어떤 걸까?’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연기한 사카키 사토코 역은 순간순간 역할에 몰입 한 적이 있어서, ‘아, 연기를 좀 더 많이 하고싶어!’라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촬영 당시부터 계속 ‘연기 더 하고 싶다’고 스태프 분들께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만약 다시 연기를 할 기회가있다면 이번처럼 학생 역할 말고 지금보다 더 연상 역할… 한 25살 정도의, 남자 주인공이 바람 피우는 상대방역할 같은 것 해 보고 싶어요! (웃음) 물론 그런 경우를 경험 해 본 적이 없으니 연기하기 쉽지는 않겠지만 상상조차 되지 않기에 더더욱 연기 해 보고 싶어요.
연기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그녀에게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일’이 무엇이냐 물어보았다. 그러자 예상조차 하지 못 한 대답이 돌아왔다.
‘개인적인 목표인데요, 언젠간 ‘히루난데스’(닛테레의 정보방송)에 나가보고 싶어요. (웃음) 히루난데스를 정말로 좋아해서 매일 녹화해서 보곤 하거든요. 특히 목요일 코너를 좋아해서, 지금 개인적인 목표 중 하나가 바로 ‘언젠가 히루난데스에 나간다’는 것이에요. 그렇게 되려면 엄청나게 노력해야하겠지만요.’
케야키자카46에서 졸업 한 뒤엔 탤런트로서 활동 할 것임을 공언한이마이즈미. 버라이어티 방송에도 적극적으로 출연하고 싶다고 한다.
‘버라이어티 방송에도 적극적으로 도전 해 보고 싶어요! 케야키자카로 활동하던 때도 버라이어티는 좋아했고, 특히 ‘케야카케’에서 이야기 했던 ‘시로누리 이마이즈미’(본인이 하고싶다고 기획한 것)는 정말 하고 싶었어요. (웃음)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 없어서, 언젠가 꼭 할게요! (웃음) 얼굴에 크림을 맞는 거나, 먹물 맞는 것도 해 보고 싶어요.
예전부터 AKBINGO!를 보며 자랐기에, AKB멤버 분들께서 얼굴에 크림을맞는 모습을 보며 ‘나도 해 보고 싶다’고 생각 했었고, 이 세계에 들어오면 당연히 하는 것이라 생각했었거든요. (웃음) 그런데 요 3년동안 그런 일이 들어 온 적이 없어서 오히려 깜짝 놀랐지요. 내심 그런 건 정식 데뷔 전부터 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아무 거나 괜찮아요. 사실 저는 아무 거나 들어오는대로 하고 싶은데, 스태프분들께서 안 된다고 제지하시거든요. (웃음)
예를 들어 제가 블로그나 메시지어플에 헨가오(이상한 표정을 짓는 것) 사진을 올리려 하면 스태프분께서 ‘아, 이 표정은 안되겠네요.’라고 제지를 하시거든요… 저 나름대로는 선을 지킨다고 지킨건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도가 지나치다고… (쓴웃음)
사실 저는 뭔가를 숨기거나 하는게 싫어요. 그래서 팬분들께도 제 모습을 숨김없이 보여드리고 싶고요. 팬분들에게라면 부끄러울 것도 없고요. 어쩌면 가족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게 더 부끄러울 지도 모르겠네요. 저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오히려 보여 줄 수 없는 부분도 있고, ‘크림을 맞고 싶다’는 얘기도, 헨가오를 보여 준 적도 별로 없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하고 싶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웃음)’
가족들에게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 하는 이마이즈미, 실은 가족들에게 그룹활동에 대한 상담 같은 것도 전혀 하지 않는다고.
‘일에 관련해서 상담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어떤 일을 해 보고 싶다던가, 졸업 후에는 어떤 것을 해 보고 싶다던가 하는 얘기도 한 적 없거든요. 학생 때는 이래저래 상담도 많이 했는데, 이 일을 시작 한 이후로는 집에서일 얘기는 안 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아빠도 집에서는 일 얘기 안 하시거든요. 그런 환경에서 자랐다 보니 일은 일이고 가정은 가정이라는 식으로 나누어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들도 그렇게 집요하게저한테 묻거나 하지 않거든요. 졸업 때도 발표 전날에 ‘아, 맞다. 나 내일 졸업 발표해’라고 전한 게 다였지요. (웃음) 활동을 쉬었을 때도 활동 휴지에 들어 간 뒤에 ‘아, 나 일 쉬기로 했어’라고 사후에 보고 한 게 다고요. 사전에 이야기 하면 걱정을 너무 많이 하시기에 가볍게 ‘내일부터 일 쉽니다’ 정도의 느낌이랄까요.
그런 행동을 용남 해 주는 가족이기에다행인 거죠. 물론 안 보이는 데에선 엄청 걱정 해 주시겠지만요. 요 전에 오빠랑 아빠가 주고받은 메일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내용을 보고 ‘아, 이런 얘기를 하시는구나’라고 깜짝 놀랐어요. 특히나 아빠가 표현이 서투른 분이라 가끔 ‘요즘 어떻니? 고민은 없고?’라고 물어 보시곤 하는데, 저는 그럴 때 마다 강한 척 하며 ‘없어’라고 대답 하거든요. 하지만 그렇게 강한 척 허세 부리는 건 그만큼 부모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아무 말 안 해도 다 알아 주시고 받아들여 주시니까요.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케야키자카 졸업에 대해서도 가족들과는 상담하지 않고 스태프들과이야기를 진행시켰다. 그런 그녀에게 새삼스럽지만 졸업을 결의하게 된 계기에 대해 물어 보았다.
‘3일간에 걸친 2주년 라이브가 끝난 순간, 지금까지 느낀 적 없는 느낌을 받았어요. 모든 것을 불태운 느낌이랄까. 그리고 그 뒤로도 그런 느낌이 한동안 계속 이어져서, ‘아, 이제 때가 됐구나’라고 실감했습니다.
1주년 애니버서리 라이브 때 느낀 감각과는 전혀 달랐어요. 1주년 때는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데다가, 휴식기를 갖는다는 얘기도 하기 전이었거든요. 그렇게 보자면 그 때가 여러의미에서 일단락 지어지는 타이밍이었다고 할 수도 있을 지 모르겠네요.
2주년 라이브가 끝난 직후 스태프분과 상담을 했습니다. 몇 번인가에 걸쳐 대화를 하면서 스태프분께서도 여러 번 저를 말리셨지만 이미 저 자신은 마음을 굳히고있었어요.
그렇기에 7번째 싱글에도 참가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말씀을 드렸더니 스태프분께서 ‘아무 것도 참가하지 않고 졸업하는건 좀 섭섭하지 않니? 마지막으로 솔로곡을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말씀 해 주시더라고요. 지금까지 일도 자주 빼먹었는데그렇게까지 생각 해 주시는 게 뭔가 죄송스러웠기에, 마지막으로 그 분들의 마음에보답한다는 생각으로 소중한 커플링곡 중 한 곡을 받게 되었습니다.’
졸업, 그리고 앞으로의 활동에 대하여 같은 한자 케야키의 멤버들에게도상담을 하지 않았다는 그녀.
‘저 혼자 정했다는 느낌이에요. 멤버에게 이야기 꺼내기가 힘들었습니다. 다만 (히라가나 케야키의) 사이토 쿄코쨩에게는 이야기 했어요. 같은 한자 멤버보다는 히라가나 멤버가 객관적으로 보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멤버들 중에서 알고 지낸 기간도 가장 길어서 상담하기 편하기도 했고요.’
이마이즈미가 케야키자카에 남긴 마지막 곡은 싱글 ‘앰비벌렌트’ 통상반에 실린 ‘해가 뜰 때 까지’이다. 이마이즈미의 현재심경이 담긴 아름다운 발라드 곡이다.
‘처음 들었을 땐 가사가 제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한 느낌이라 펑펑 울어버렸지요. 사실 졸업을 앞두고 아키모토 선생님께도 제 마음을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선생님께서 ‘그럼 졸업 전에 솔로곡을 불러줬으면좋겠다’고 해 주셨거든요.
후렴구에 ‘앞을 바라봐도 될까요?’라는 가사가 있는데, 그거 사실 제가 아키모토 선생님과의 면담에서 이야기 했던 말이거든요. 선생님께 ‘제가 아직 앞을 (미래를) 바라봐도 되나요?’라고 여쭤 본 적이 있는데, 가사에서 그 부분을 보고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 같았어요.
그러다 보니 녹음도 큰 일이었지요. 제가 담담하게 노래를 하고 나오니 엔지니어 분께서 ‘이번 건 좀 뭔가 달라. ‘살며시’나 ‘부탁해’ 같은 부분은 좀 더 속삭이듯이 노래 해 봐’라고 말씀 해 주셔서 그 말씀대로했더니 훨씬 낫더라고요. 완성된 곡을 듣고나서 ‘아, 엔지니어님께서 생각하셨던 게 이런 거구나’라고 알게 되어 제 노래임에도 괜히 제가 다 감동을 받았지요. (웃음)’
아쉽게도 케야키자카의 일원으로서 라이브에서 이 노래를부르는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언젠가 한 번 쯤은 이 노래를 선보이게 될 날도 올 것이다.
‘정말로 죄송해요. (쓴웃음) 하지만 언젠가 꼭 부르고 싶어요.’
노래도 하고 싶지만, 그 이상으로 팬 여러분을미소짓게 만들고 싶다.
이토록 노래에 대해 애착을 갖고 있는 그녀가 어째서 그룹졸업 뒤, 가수가 아닌 탤런트의 길을 선택했을까?
‘제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에 대해 여러 모로 생각을 해 본 결과, 노래는 물론 계속 부르고 싶지만 그 이상으로 팬 여러분들을 미소짓게 만들고 싶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노래는 물론이고 토크라던지, 뭔가 재미있는 것에 도전한다던지 여러 모로 여러분들을 미소짓게 만들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어요. 그리고 그 결과,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 길(탤런트)가 가장 알맞은 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한 가지에만 얽매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 역시 강했거든요. 그러던 차에 여러가지 것들을 경험 할 수 있는 아이돌이 되었기에, 한 가지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마음이 더 강해진 것 같기도 해요.’
어릴 때부터 동경 해 온 아이돌이라는 길에서 벗어나게된 데 대한 미련은 없을까?
‘저 사실은 (NMB48 멤버였던) 와타나베 미유키상을 엄청 좋아해서 그런 아이돌이 되고 싶었어요. 그렇기에 지금 제 자신이 그런 아이돌이 되었느냐, 이제 만족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이미 하고 싶은 일을 발견 했거든요. 물론 그것도 아이돌이 되어 여러 세계를 경험 한 덕분에 인생에 있어 선택지가 많이 늘어 났다고 생각하고요. 실제로 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니까요.
앞으로는 홀로 활동을 하게 됩니다. 물론 힘든 일도 많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힘듦 역시 맛보고 싶습니다. 그렇기에 각오를 다지고 걸어나가려 해요.
그리고 졸업 한 뒤에도 팬분들과만날 기회는 꼭 가질 생각입니다. 제가 활동을 하면서 팬 여러분께 도움을 받은 적도, 위로를 받은 적도 많았기에 직접적으로 팬분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잃고 싶지 않아요.
사진집이 나오면 도쿄와 오사카에서전달회가 열립니다. 오랜만에 팬분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에 벌써부터 기대가 돼요. 오시는 분들 중에서는 사진집을 보시고 찾아 와 주시는 분도 계시잖아요. (웃음) 스태프분 이외의 분들께서 어떻게느끼셨는지 감상을 듣고 싶었기에 기대가 많이 됩니다.’
이번 인터뷰 내내 보여 준 망설임 없는 눈빛, 만면에 띈 미소, 흔들림 없는 발언등으로 그녀의 결의가 얼마나 굳건한 지 알 수 있었다. 그녀라면 수 많은 불안도 전부 특유의 긍정적인 모습으로 날려 버리며 탤런트로서 활약 해 나갈 수 있으리라는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그녀가 필자에게 질문을해 왔다. 너무나도 그녀다운 질문이었기에 그 자리에 있던 스태프 전원이 자신들도 모르게 폭소하였다.
‘저기… 졸업 한 뒤에도 만나 뵐 수 있을까요? 다시 한 번 같이 일 할 수있을까요? 오늘이 마지막은 아니겠지요? 저, 이래봬도 엄청 걱정이 많은 편이거든요. (웃음)’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이렇게일로 만나 뵌 분들과는 언젠가 꼭 다시 만났으면 하거든요. 이 세계에서 계속 일을 하다보면 언젠가 꼭 다시 만나 뵐 기회가 있겠지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 함께 일을해 주신 분들께도, 무엇보다도 응원 해 주시는 분들을 위해서도 더욱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드릴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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