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 6. 16:07
8-1. '속보', '중간발표'에 흔들리는 멤버들과 팬들.
드디어 찾아온 6월 23일. 신곡 '나미다 서프라이즈'가 발매되었다.
이곡은 요미우리신문 창간 135주년 응원곡인 동시에 요미우리 자이언츠 창설 75주년 기념 응원곡으로도 선정되어, 발매 이전부터 TV, 라디오, 유선방송에서 빈번히 흘러나왔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자동적으로 PR이 되어, 결과적으로 오리콘 등장 첫 주 2위를 마크하게 되었다. 이는 AKB48 결성 이후 최고의 성적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싱글 내에 동봉되었던 'AKB48 선발 투표권'을 이용하여 인기 30위 멤버들을 정하는 총선거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 완전히 새로운 '순위 매기기'가 얼마나 획기적이고 가혹한 것이었는가를 살펴보자.
현실적으로 AKB48 뿐 아니라 모든 아이돌 그룹은 필연적으로 멤버들 간에 인기 격차가 생기게된다. 그리고 그런 인기의 격차를 실감 할 수 있는 것은 누가 선발되고, 누가 자주 센터에 서느냐를 통해 '느끼는 것' 뿐이었다. 결국 멤버간의 '암묵의 양해'라는 룰로 인기 순위를 매겨두는 것이 상식이었던 아이돌계에, '멤버들 사이에서 누가 가장 인기가 많은 지를 공식으로 순위매기는' 이 총선거라는 방식이 나타난 것이었다. 이는 AKB48이 일본 아이돌계에서 터부시 되던 일에 직접적으로 도전 한 것에 다름아니었다.
오랫동안 금기(터부)시 되던 암묵의 룰에 도전한다. 그것도 멤버들이 아닌 '팬'이라는 절대적 존재의 힘을 빌린 '투표'라니... 이는 대중에게 'AKB48라는 그룹은 보통 아이돌 그룹이 아니다'라는 인상을 주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대중의 입장이었고, 멤버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을 해 보면 엄청난 일이 되는 것이었다. 지금껏 자신을 응원해 주던 팬들의 손에 의해 '너는 인기 몇 등'이라는 선언이 내려지고, 자신과 다른 멤버들의 차이가 명확 해 지게 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쭉 선발에 들었던 멤버로서는 '당연히 선발 순위에 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선발권에서 맴돌던 멤버들에게는 '자칫 잘못하면 선발에 못 들거야'라는 불안이, 마지막으로 지금껏 선발멤버에 들지 못했던 멤버들에게는 '이번이 내게 주어진 몇 안 되는 기회일지도 몰라'라는 기대감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것이다.
이런 멤버 각자의 마음을 담은 채, 시간은 흘러... 싱글 발매 다음날인 6월 24일, '속보결과'가 발표, 7월 1일에는 '중간결과'가 발표되었다. (순위에 대해서는 아래에)
10위 이내에는 지금껏 선발멤버에 포함되었던 인기멤버들의 이름이 많이 보였지만, 11위 이하에서는 예상을 뒤엎고 지금껏 선발멤버로 뽑히지 못한 멤버들의 이름도 들어있었다. 이는 지금껏 솔직히 말해 '존재감이 옅었던' 멤버의 팬들이 '내가 응원하는 멤버에게는 어쩌면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 지 모른다', '이럴 때야말로 내가 응원해야만 할 때다'라는 식으로 투표 초기에 힘을 모아 표를 던졌던 것이다.
8-2. 파리 공연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속마음은...
2009년 7월 초순, 한창 열기를 띄어가는 총선거와 동시에 AKB48는 큰 이벤트를 맞이하게 된다. 일본의 만화, 애니메이션 등을 소개할 목적으로 매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는 'JAPAN EXPO'의 2009년 초대가수로 AKB48가 선정, 참가하게 된 것이었다.
멤버들 중 22명은 '파리 그룹'으로 선정되어 파리로 가서 현지 팬들 앞에서 공연을 한다. 불과 250명이 들어가는 아키하바라의 작은 공연에서 시작 된 AKB48가 드디어 일본을 넘어 유럽에까지 그 활동무대를 넓히게 된 것이다.
파리에서 있었던 콘서트에 대해 카사이 토모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솔직히 파리에 가기 전에 엄청 걱정이 많았어요. 파리 사람들 중에 저희에 대해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원래 긴장 하면 눈물이 나거든요. 그래서 무대에 오르기 전에 엄청 긴장 해 버려서 무대에 오를 때에도 눈물이 계속 나더라고요. 하지만 정작 백스테이지에 가 보니 큰 소리로 AKB! AKB!라고 외쳐주는 분들이 계셔서...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닭살이 확 돋았어요."
백스테이지를 나서서 프랑스 팬들이 기다리는 무대 위로 뛰쳐 나갔다. 그 순간 쏟아지는 환성과 박수. 그것은 먼 나라인 프랑스에까지 AKB48의 이름이 전해 졌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카사이가 말을 잇는다 "콘서트가 끝난 뒤, 사인회를 열었지요. 그러자 서툰 일본어로 '매우. 좋아. 해요'라고 말을 걸어 준 분도 계셨고, '치유우'라고 쓰여 져 있는 보드를 만들어서 들고 와 주신 팬 분, 저와 메탄 (오오호리 메구미)가 함께 부르는 '오시베 메시베와 밤의 나비들'의 분홍색 무대의상을 만들어서 입고 와 주신 분도 계셨지요. 이 먼 곳에서, 일부러 인터넷 등을 이용하면서까지 저희를 응원해 주시고, '좋아' 해 주시는 거예요. 프랑스에서 있었던 그 날의 일은 잊을 수 없을거예요."
이 때 일본에서는 중간 결과가 한창 발표되고 있었다. 한 편, 프랑스 체재 마지막 날을 맞이한 7월 6일, 멤버들은 파리 관광을 하고 있었다.
카사이가 말을 잇는다. "마지막 날 일정은 그냥 평범하게 관광 하는 거였어요. 일본이었다면 저희가 그렇게 몰려다니고 있으면 '아, AKB48아냐?'라고 사람들이 물어 오기 마련인데... 그 날은 그런 일도 없이, 마치 그냥 수학여행을 온 여학생들마냥 자유롭게 떠들며 놀았지요. 정말로 즐겁고 꿈만같은 한 때였어요. 하지만, 일본에 돌아가면 바로 그 다음날이 총선거 발표날이었기에 모두들 '사실 일본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라고 이야기 하곤 했지요. '일본으로 돌아가면 다시 현실로 돌아가는' 거였거든요."
하지만 시간은 흘러, 파리 그룹은 일본으로 돌아오게 된다. 동시에, 2주간에 걸친 투표기간도 종료되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이돌 역사상 초유의 '그룹 내 인기투표' 결과가 발표되는 날이 왔던 것이다.
8-3. 투표결과 발표. 울고 웃는 멤버들.
2009년 7월 8일, 아카사카 BILTZ. 'AKB48 13싱글 선발 총선거 [하느님께 맹세합니다. 진심이예요,]'가 열렸다. 총선거 시작은 18시, 밖에는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 역사적인 순간을 직접 목격하기 위하여 1천명의 팬들이 몰려들어 회장은 만원이었다.
투표 결과 발표가 시작되기에 앞서 '나미다 서프라이즈' 라이브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공연을 하는 멤버들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 져 있었었다. 모두들 불안과 긴장으로 웃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곡이 끝난 뒤, 이번 총선거에 출마 한 AKB48, 연구생, SKE48 멤버들이 한 명씩 무대 위로 등장하였다. 인사를 한 멤버들은 무대를 내려와서 관객석 전열에 마련된 좌석(※1)에 앉았다. 팬들과 항상 얼굴을 맞대고 서로를 바라보던 관계에서, 팬들 앞에 등을 보이고 앉는다는 변형된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드디어, 투표 결과가 회장으로 반입되었다. 공정을 기하기 위하여 변호사를 동반 한 상태였다. 총선거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AKB48 극장의 지배인인 토가사키 토모노부가 '21위'라고 쓰여 져 있는 봉투를 가위로 개봉해서는 내용물을 꺼냈다.
"21위, 팀 K소속 쿠라모치 아스카"
발표와 동시에 회장에서는 환성이 들려왔다.
쿠라모치 아스카. 그녀의 지금까지 순위는 속보 14위, 중간 15위였다.
'아, 순위 변동이 꽤 크구나!' 회장에 참석 해 있는 모두가 그런 생각을 했다. 속보에서 중간까지의 과정보다, 중간에서 최종까지 오는 기간 사이에 '이대로라면 내 오시멘이 떨어 져 버린다'는 위기감을 느낀 팬들이 늘어 난 것이다.
20위는 당시 팀 B 소속이었던 오오타 아이카의 이름이 불리웠다. 오오타는 무대에 올라서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리고, "기뻐서 우는 것은 오디션 이후 처음 인 것 같아요. 손이 떨려요."라고 감상을 말하였다. 이 때의 일에 대해 오오타는 "저는 선발에 들은 적이 거의 없었어요. 처음으로 팀 B 출신이 선발에 들었던 것이 '빙고'때였는데.. 그 땐 마유랑 카시와기쨩, 그리고 낫쨩 (히라지마 나츠미) 뿐이었거든요. 저는 뽑히지 못해서 너무 억울했어요. '난 왜 선발멤버에 들어 갈 수 없는거지?'라고 생각했지요. 집에 돌아 갈 때 전차 안에서 계속 울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때 선발멤버 (20위)에 들었을 때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어요. 진심으로 '이번에도 선발에 들지 못하면 AKB48를 그만둘거야'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 기뻤어요."라고 후술하였다.
계속해서 이름이 불리웠고, 오오타가 그러했듯이 그녀들도 한결같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찾아 온 17위 발표. "제 17위. 팀 B 우라노 카즈미!" AKB48가 시작 될 때 부터 함께 해 왔지만 단 한 번도 선발에 들지 못했던 우라노 카즈미가 17위에 랭크 된 것이었다. 우라노는 이 날의 일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정말이지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어요. AKB48에 들어 와 3년 반... '아이타캈타' 선발에 들지 못했을 때를 생각 해 보면 그 때 기억이 날아 갈 정도로 울었었고, 그 뒤로도 한 번도 선발에 든 적이 없었어요. 엄마도 '어째서 카즈미가 선발에 들지 못 하는 걸까'라고 말하면서 둘이 부둥켜 안고 울고는 했었거든요. 솔직히 그 날, 엄마와 함께 부적을 신사에 가서 기도 드리고 부적까지 사서 선거회장까지 왔었다니까요. 사실 그 선거가 제게 있어 '최초이자 최후의 기회'라고 생각했었어요. 제게 있어서 '선발 멤버에 들어간다'는 것은 어느 사이엔가 '꿈'이 되어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17위에 제 이름이 불렸을 대... 너무 너무 기뻤고, 팬 여러분들께는 감사한 마음뿐이었습니다."
이어서 16위. 16위는 미네기시 미나미였다.
미네기시는 이렇게 말한다. "선거가 진행되던 2주간, 팬 여러분이 얼마나 감사한 존재인지를 알 수 있었어요. 총선거 이벤트가 시작되기 직전에 초기멤버들이 모인 자리에서 앗쨩이 이런 말을 했었어요. '다행이다. 이번엔 우리 모두 (초기멤버들) 선발멤버에 들 수 있겠네.'라고요. '초기멤버는 모두들 들어 갈 수 있을거야. 미네기시도 너무 걱정마'라고 얘기했지요. 물론 앗쨩이야 항상 함께 있으니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해 왔는지 알 수 있었기에 그렇게 말을 할 수 있고, 자신이 있었던 거예요. 평소에는 감정을 잘 내보이지 않는데다가, 그다지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앗쨩이 그렇게 팀 A를, 오리지널 멤버인 우리를 신경 써 주었다는 게 기뻤어요."
이어서 15위가 발표되었다. 마찬가지로 오리지널 멤버인 사토 유카리의 이름이 불리웠다.
사토는 이 일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라노 이름이 불렸을 때, 너무 기뻤어요. 극장이 처음 오픈했을 때 부터 함께 고생 해 온 사이였으니까요. 하지만 16위에 미이쨩이름이 불렸을 때에는 '나... 난 힘들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솔직히 제가 미이쨩보다 높은 순위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거든요. 그래서 제 이름이 불리운 순간에는 믿을 수가 없었어요. '나를 응원 해 주는 사람들이 [아직]있구나'라는 생각과 '내가 어떻게 해야 그 분들께 이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더군요. 무대 위에 놓인 제 자리에 가서 앉고 보니 옆에 우라노가 있었어요. 겨우 진정되었었는데 눈이 마주치자 우라노가 갑자기 울기 시작하더라고요. 그걸 보고 있으려니 저도 눈물이 계속 흘러나와서... '다행이야'라고 이야기하면서 둘이서 무대 위에서 울었어요."
8-4. 미디어 선발 발표로 뜨거워지는 분위기.
이날의 총선거에서 선발에 들어가는 것은 총 21명이었다. 하지만 사실 이 '선발'이라는 것은 엄격히 나누어 보아 또 다시 두 분류로 나눌 수 있었다.
CD녹음을 할 때 자신의 목소리가 들어가고, PV에 출연 할 수 있는 것은 21명이었으나, 신곡의 선전을 위해 TV나 잡지 등지에 나올 수 있는 것은 '미디어 선발'이라 따로 나뉘어, 상위 12위 이내의 멤버들만이 그 '미디어 선발'에 들 수 있는 것이었다. 다시 말 해, 12위와 13위 사이에는 단순한 '1단계'의 차이가 아닌, 실로는 말로 형연할 수 없는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속보, 중간에서 모두 10위 이내에 들었던 팀 K, 미야자와 사에의 이름이 14위에서 불렸을 때, 회장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이다.
이름이 불리운 멤버들은 차례차례로 무대 위로 올라 가, 등수가 적힌 의자에 앉았다. 13위까지의 이름이 불리고, 12위의 이름이 아닌 22위에서 30위까지 '언더걸즈'의 이름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미디어 조'의 발표가 시작되었다.
사회를 맡고 있던 토가사키 지배인이 심호흡을 깊이 한 번 한 뒤, 이름을 불렀다.
"12위, 팀 K. 아키모토 사야카"
팀 K로 데뷔 한 이후, 지금껏 거의 대부분의 선발에 들어 온 아키모토였으나, '쥬넨사쿠라'이후로는 선발에 들지 못하고 있었다. 팬들 사이에서는 '이제 아키모토는 선발에 들이 힘들거야'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그런만큼 회장에 모인 사람들의 놀람과 감탄은 컸다.
아키모토는 이 날의 일을 이렇게 말한다. "솔직히 언더걸즈에 제 이름이 없었기 때문에 '난 이제 끝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적게나마 제게 투표 해 주신분들이 보고 계신다는 생각에 아무리 실망해도 자신없는 표정을 겉으로 내 보이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에, 제 이름이 불려서...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키모토의 이름이 12위에 불리운 순간, 무대 위에 앉아있던 14위 미야자와 사에는 얼굴을 파묻고 울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미야자와에게 물어 보았다. "중간발표 때엔 사야카 순위가 저보다 아래였거든요. 그래서 제 이름이 14위에 불린 순간... 사야카의 얼굴을 보니 '난 이제 무리야'라는 표정이더라고요. 그것도 사야카, 직전 선발에서 2연속으로 떨어졌었거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까 다시 함께 노래하고 싶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야카 이름이 불린 순간, 눈물이 나서..... 조금 진정 된 뒤, 사야카와 눈이 마주쳤는데... 서로에게 '응'이라고 말을 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러자... 또 다시 눈물이 났어요."
아이돌이, '자기 자신을 위해', 그리고 '팀을 위해'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눈물을 흘렸던 적이 앞서 있었을까...
이렇게 미디어 선발 결과가 발표되는 가운데, 아직 자신의 이름이 불리지 않은 멤버들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만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멤버들 가운데에서는 '난 이제 무리야'라고 포기하는 멤버들도 많아졌다. '그녀'역시 그런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멤버들 중에서도 가장 뒷자리에 앉아, 고개를 떨구고 아래를 보며 울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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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결과
미디어 선발 (1위 ~ 12위)
마에다 / 오오시마 (유) / 다카하시 / 코지마 / 와타나베 / 이타노 / 시노다 / 카사이 / 오노 / 미야자와 / 미네기시 / 미야자키
음반 선발 (13위 ~ 21위)
카시와기 / 쿠라모치 / 사토 (아) / 다카죠 / 마스다 / 우라노 / 사토 (유) / 마츠이 (쥬) / 키타하라
언더걸즈 (22위 ~ 30위)
아키모토 / 오오호리 & 히라지마 (동률) / 오오타 / 사시하라 / 카타야마 / 나카가와 & 니토 (동률) / 마츠이 (레)
중간발표
미디어 선발
마에다 / 오오시마 (유) / 다카하시 / 코지마 / 시노다 (2↑) / 와타나베 (1↓) / 이타노 (1↓) / 오노 (1↑) / 카사이 (1↓) / 미야자와 / 미야자키 (1↑) / 미네기시 (1↓)
음반선발
카시와기 / 마츠이 (쥬, 6↑) / 쿠라모치 (1↓) / 사토 (유, 3↑) / 마스다 / 사토 (아, 4↓) / 우라노 (1↓) / 오오호리 (3↑) / 다카죠 (5↓)
언더걸즈
오오타 (3↑) / 아키모토 (1↓) / 키타하라 (3↓) / 나카타 (新) / 요나자와 (新) / 사시하라 (1↓) / 히라지마 (5↓) / 마츠이 (레, 1↑) / 카타야마 (新)
※1 팀 A부터 차례차례 무대에 올라 간 뒤 내려왔기에, 가장 객석에 가까운 맨 뒷줄에 팀 A가, 그 앞으로 K, B 순서로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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