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편지
총선거
지금이야 그룹의 연례 행사가 된 선발 총선거. 그런 총선거가 처음 발표 된 것은 2009년 4월 26일, 도쿄 NHK홀에서 열린 콘서트, '카미공연 예정 ~제반 사정에 의해 카미공연이 되지 않을 수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에서였다.
제 1회 총선거부터 실제 선거처럼 선거 포스터가 만들어지고, AKB48시어터 로비와 복도등에 게시 되었다. 그 뿐 아니라 정견방송 역시 DMM을 통하여 방영되었다.
투표이벤트가 실시 된 것은 도쿄 아카사카에 위치한 아카사카Blitz. 상위 21명이 선발멤버로 선정되어 13번째 싱글의 타이틀곡을 부를 권리를 손에 넣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상위 12등까지의멤버들은 소위 '미디어선발'로서 TV나 음악방송 등 미디어프로모션에 우선적으로 참가 할 수 있었으며, 선발에 뽑히지 못 한 멤버 중 22위~30위 멤버들은 커플링곡을 담당하는 '언더걸즈'가 되는 시스템이었다.
투표 결과 1위에 뽑힌 것은 팀 A소속 마에다 아츠코였다. 참고로 와타나베 마유는 4위, 카시와기 유키는 9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듬해 열린 제2회 총선거에서는 와타나베가 5위, 카시와기가 8위에 이름을 올렸다. (1위는 오오시마 유코)
일본 무도관에서 열린 3회때는 카시와기가 3위를, 와타나베가 5위를 차지하였다. (1위는 마에다)
제 4회 대회때는 와타나베가 2위, 카시와기가 3위를 차지하였다. (1위는 오오시마)
닛산 스타디움에서 열린 제5회 때는 와타나베가 3위를, 카시와기가 4위를 차지하였다. (1위는 사시하라 리노)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열린 6회 때는 와타나베가 처음으로 수위를 차지, 카시와기 역시 3위라는 호성적을 거두었다.
야후오쿠 스타디움에서 열린 7회 때는 카시와기가 2위, 와타나베가 3위를 차지하였으며 (1위는 사시하라)
그리고 카시와기의 또 다른 거점이라 할 수 있는 니이가타에서 열린 제 8회 대회에서는 와타나베가 2위를, 카시와기가 5위를 차지하였다. (1위는 사시하라)
그리고 올 해, 졸업을 염두에 두고 마지막 총선거에 나선 와타나베의 성적은 2위, 카시와기는 입후보를 단념하였다.
와타나베 마유 귀하.
뭔가 좀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어요.
네. 그것이 바로 '총선거'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순간 느낀 감정이었습니다.
소름이 쫙 돋았지요.
정체 불명의 무엇인가가 제 등을 타고 기어가는 것만 같았어요.
우와! 새로운 이벤트다! 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즐길 수가 없었지요.
To be, or not to be… 출마 하느냐 마느냐…
설마하니 올 해도 같은 주제에 대해 그렇게 고민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 했어요.
하지만 마유는 저 따위보다 훨씬 더 큰 중압감과 싸워왔었겠지요…
저 역시 입 밖으로 소리 내어
'1위가 되고 싶어'
그렇게 이야기 한 적이 있었지요.
하지만…
정말 진심으로 전력을 다 해 1위를 손에 넣기 위해 노력했냐고 물으신다면…
아마도 대답은 '아니오' 일 겁니다.
저를 응원 해 주시는 팬분들과의 거리를 조금이라도 좁혀 보려고,
계속 저를 사랑 해 주신 팬분들과 하나가 되어 무언가를 성취 해 보고자는 마음에, 뭔가를 남겨 보고자 하는 마음에
'1위가 되고 싶어'
라고 이야기한 것 뿐, '1위가 되어야만 한다'던가, '졸업을 하기 전에 한 번은 1위를꼭 해 보고 싶어…' 같은 생각을 진심으로 하지는 않았던 것이지요.
제게 있어 '1위' 란 것은 언제나 마유… 당신을 나타내는 말이었으니까요.
순위가 하나 올랐다던가, 순위가 두 계단 내려갔다던가..
솔직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순위가 오르면 기쁘고, 순위가 떨어지면 분한 마음이 들지요.
하지만 그런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겠다는 것이 저 나름대로 정한 '룰'이었습니다.
다른 사람 보기에 어떨 지를 신경 쓴 것이 아니라 그저 제 생각에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는 것이 꼴사납게 느껴졌거든요.
그렇기에 그 '룰'만은 항상 지켜 왔습니다.
때로는 저도 모르게 폴짝폴짝 뛰며 기뻐하고 싶을 때도 있었고, 때로는 한 시라도 빨리 무대에서 내려 가서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라 해도 항상 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대 위에 서 있었지요.
순위가 오르면 아주 살짝 미소를 짓고, 순위가 떨어졌을 땐 잠깐동안만 고개를 갸웃 거리며.
그런 한 순간 외에는 평소의 '카시와기 유키'와 다름 없이 행동했습니다.
부담감을 느낀 적은 없나고요? 아마 없었다고 해야 할 것 같네요.
그도 그럴 것이, 1위를 해 본 적이 없으니 그 자리를 지켜야만 한다고 부담을 느낄 필요도 없었거든요.
그런 제 모습을 계속 지켜 봐 온 마유라면 이 편지를 읽고
'유키링답네'라며 웃어 줄 것 같네요.
그렇죠?
그런 저라 해도 마유의 순위만은 항상 신경이 쓰였어요.
1회 대회 때 마유가 4위였을 때는
'잘 했어. 역시 우리 3기생의 에이스 마유유야!!'
라고 기뻤고, 마유가 너무나도 아쉽게도 2위에 머물렀던 4회 대회 때는
'아 정말 아쉬워'
라며 남모르게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그렇기에…
마유가 처음으로 1위가 되었을 땐 정말… 전심으로… 정말 정말로… 기뻤습니다.
제 이름이 3위에서 호명되고, 남은 것은 마유와 삿시…
둘 다 사이가 좋은 멤버들이었기에 누가 1위가 되길 바랐던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정말 순간적으로 마유, 당신이 1위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진심으로… 마음속 깊이 그리 생각했어요.
왜냐고요?
그 누구보다도 노력하고,
그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AKB를 걱정하고,
그 누구보다도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은 마유라고 생각 했으니까요.
'순위를 매긴다', 그리고 '순위가 매겨진다'라는 것…
처음에는 마치 목에 걸린 뼛조각처럼 껄끄럽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안타깝고 내 마음대로 되지않는 데 대한 아쉬움만 늘어 갔습니다.
하지만 그 때만은, 마유가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을 때 만은 마유의 노력이 '1위'라는 수치로 드러났다는 게 기뻤어요.
반대로 싫었던 때는… 음.. 아니네요.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었던 때는…
제가 마유보다 윗 순위를 차지했던 두 번이었어요.
'왜?' '말도 안 돼' '이럴리가 없어'
저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되고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네요.
음… 굳이 표현하자면 '납득이 되지 않았다'고 할까요.
결과적으로 자신을 갖고 마유 곁에 설 수 있게 되기는 했지만요.
마유의 곁에 있어도 되는, 그런 자격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 할 수 있게 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제게 있어 가장 이상적인 순위는 마유가 1위, 그리고 제가 2위를
차지하는 것 같네요.
유키링에게
총선거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 한 것은… 처음으로 2위에 올랐던 제 4회 대회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그 전 대회에선 유키링이 처음으로 3위가 되어,
'유키링 해 냈네!'
라고 솔직히, 단순히, 있는 힘껏 기뻐 했었는데 말이죠…
그리고.. '유키링, 내년에는 2위 해야 해'라며 들떠 있었지만,
정작 제가 2위가 된 순간, 문득 위를 올려다 보니 남은 건 1위 밖에 없더군요.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지만…
하지만 처음으로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땐,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어요.
그렇기에 스피치 때
'혹시 내년에도 총선거가 열린다면 1위를 하고 싶어요. 저는 아직 미숙합니다만 내년에는 반드시 센터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라는 말 밖엔 할 말이 없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이듬해 저의 성적은 3위…
그 때 역시
'어떤 멤버보다도 저 자신을 AKB에 바쳐 왔다는 자신이 있기에, 앞으로도 그런 마음을 가슴속에 품고 활동하겠습니다. 이 3위라는 순위는 아직 올라 갈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는 순위라고 생각하기에 그런 희망을 갖고 앞으로도 노력 하겠습니다. 내년 총선거에서야말로 이름이 마지막에 불리웠으면 좋겠습니다.'
라는 말 밖에는 할 수가 없었지요.
너무나도… 너무나도… 너무도 괴로웠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허리를 곧게 피고 얼굴을 바로 든 채 정면을 바라보았습니다.
언제나와 변함 없는 모습을 유지하는 것만을 생각했습니다..
처음으로 1위가 되었던 그날… 물론 잘 기억하고 있어요.
아침에 너무나도 개운하게 눈이 떠 지더라고요.
'어쩌면 잘 될 지도 모르겠다… 아니, 반드시 잘 될 거야'
그렇게 좋은 예감이 들었던 것은 아마도 AKB3기 오디션 최종심사날 아침 때 이래로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제 인생에 있어 두 번째 경험하는 기적… 신께서 머리 위에서 춤 추듯 내려오셨던 날이었지요.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요?
아직도 그 답은 잘 모르겠어요.
지금까지의 노력에 대한 보답이라 해야 할까요?
네… 그렇다고 해 두지요.
그 날, 무대 위에서 본 경치는 정말이지…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제게 있어 너무나도 소중한 보물입니다.
12살 때 AKB에 들어 와, 1위 자리에 선 것은 20살…
유키링도 잘 알고 있듯이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그룹은 점점 커져만 가고, 그룹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감이 잡히지 않게 되고,
선배님들이 한 명씩 한 명씩 졸업 해 가고…
제가, 그리고 유키링이 좋아하고 동경 해 온 AKB48는 어딜 향해 가고 있는 걸까… 라며 고민도 많이 했어요.
유키링이나 저나 사람 얼굴을 보며 그런 말을 나누는 게 서투른 사람들이기에 직접 이야기를 한 적은 없지만,
마음만은 같았을 거예요.
괴롭고, 힘들고… 차라리 어딘가로 도망 가고 싶어졌던 때도 손으로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었울 거예요.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그럴 때에도 도망가지 않고 노력 해 온 보상이 바로 그 1위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지켜내고 싶어'
그런 마음이 없었냐고 물으신다면… 역시마음 한 구석에는 그런 마음이 있었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라는 정도로까지 생각하지는 않았지만요…
이듬해, 제 순위는 3위. 그리고 그 다음해는 2위…
어느 사이엔가 마음이 닳고 닳가… 혼자서는 견디기 힘들어지고, 중압감에 짓눌려 버릴 것만 같았어요.
하지만 동시에 한 번 1위를 차지했던 덕분에, 꿈만 같았던 그 광경을 한 번 보았던 덕분에…
'한 번 했으니 괜찮을지도 몰라'
라는 식으로 생각 하기도 했었지요.
'졸업 해야겠어'
라고 마음을 정할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자신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계속 이 곳에 있다면 새로운 자신을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중간한 채 보내고 싶진 않았어요.
네, 그것이 제 진심입니다.
제게 1위라는 멋진 선물을 주셨던 신께 맹세해도 좋아요.
하지만… 어쩌면… 정말 조금은..
그 때 1위를 했으니 졸업 해도 괜찮겠지…
그런 마음이 마음 어딘가에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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