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편지
'분기점'
2009년 8월, 일본 무도관에서 열린 'AKB 104선발 멤버 조각마츠리'에서 신팀으로의 조각이 발표, 새로이 '카시와기 팀 B'가 발족되었다. 새로이 팀 캡틴이 된 카시와기 유키와 팀 센터에 임명된 와타나베 마유의 '골든 콤비'가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 것이다.
'내가 어떻게든 해야지'라며 필요 이상으로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된 카시와기와
'도와 줄 수 있는 게 없어…' 라며 안타까워하면서도 자신에게 맡겨진 센터로서의 책무를 성실히 이핼하려 하는 와타나베.
이후 출연하게 된 방송에서 와타나베는 이 때 자신이 어떤 생각을 했었는 지에 대해 이야기 한 바 있다. 편지 형식을 빌린 와타나베의 말은 다음과 같다.
유키링에게.
유키링은 마치 엄마처럼 내 모든 것을 감싸 안아 주었고, 내 응석을 들어 주었어요.
하지만 저는 더러운 손을 유키링의 옷에 닦기도 하고, 화장품 파우치에서 멋대로 화장품을 빼 가기도 하고, 만화책을 빌리고선 돌려주지 않기도 했지요.
언제나 제멋대로 굴어서 미안해요.
하지만 제가 이렇게까지 본 모습을 드러 낼 수 있는 것은 유키링 앞 뿐인걸요.
함께 슈퍼마켓에 쇼핑을 하러 갔을 때, 제가 좋아하는 반찬을 사 줘서 고마웠어요.
유키링은 흥미도 없을 마니악한 이야기를 해도 언제나 '응, 그렇구나'라는 식으로 다정하게 들어주었지요.
올 해, 총선거에서
'마유가 2위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기쁘다'
라며 기뻐 해 줘서 좋았어요.
신 팀 B공연 레슨 때, 다른 일이 잡혀서 공연을 외울 시간이 전혀 없었지요..
그런 상황이 괴롭고 견디기 어려웠을 때, 저를 위로 해 주었었지요.
울고있는 저를 보며
'마유유는 대단해. 나는 아무리 해도 마유유에게는 못 이길걸'이라고 이야기 해 주었지요.
그 이야기를 듣고 더 열심히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뒤, 신 팀 B의 첫 공연이 끝나고, 다들 마음 먹은대로 잘 하지 못해서 의기소침 해 졌을 때, 캡틴이었던 유키링은
'전부 내 잘못이야'라며 무대 뒤에서 울었었지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저는 무슨 말을 해 줘야 할 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저 곁에 있어 줄 뿐…
저는 지금까지 유키링을 위하여 무언가 해 주기는 했던 것일까요?
유키링을 곁에서 지탱 해 주고 싶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일까요?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 불안해 지곤 합니다.
그러니까, 저 역시 유키링에게 지지 않을 만큼 노력 할 게요.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다정하고 믿음직스럽지만 때로는 적당적당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 제 '엄마'로 있어 주세요.
마유유가.
두 소녀의 인연은 영원히 이어 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2012년 8월 24일…
'AKB48 in TOKYO DOME ~1830m의 꿈~' 첫 날, 그런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크나큰 충격이었다.
'와타나베 마유, 팀 A이적'
두 사람의 길은 아마도 그 때를 기점으로 나뉘기 시작했던 것이 아닐까.
와타나베 마유 귀하.
남들 앞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울지 않는다…
그것은 저 자신과의 약속이었어요.
카시와기가 만든, 카시와기만의 룰.
백 보 정도가 아니라 천 보 양보한다 해서 '운다' 하면 그건 기쁨의 눈물만을 흘리자… 절대로 슬퍼서 눈물을 흘려선 안 돼…. 그런 룰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그 때만은, 아무리 애를 써도 눈물을 참을 수 없었어요..
언제까지고 마유와는 함께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마유와 함께 둘이서 B를 이끌어 나갈 것이라 생각했어요.
둘이 함께 만들어 낸 긍정적인 흐름을 그대로 살려, 본격적으로 시작 해 나가려고 의욕에 차 있었던 때였어요.
'마유가 팀 A로 이동한다고?'
'설마'라는 말로는 다 표현이 안 될 정도의, 조금 과장을 보탠다면 지구를 한 바퀴 다 돌고 나서도 모자랄 정도로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 순간, 지금 내가 들은 말이 무슨 말인지조차 이해가 안 될 정도였고, 머릿 속에서 '와타나베 마유'라는 단어와 '팀 A'라는 단어가 어지럽게 교차하는 것만 같았어요.
제게 닥친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아직도 그 때 일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덩그러니 무대 위에 서 있더군요.
평소같았다면 반짝반짝 빛나는 것 처럼 보였던 조명들도, 팬분들의 성원마저도 색이 바래 온통 흑백으로 색칠 된 칙칙한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만 같았어요.
마유… 그리고 당신 역시 마치 길을 잃은 강아지처럼 '어떻게 하지?'라는 표정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무대를 내려 갈 때까지만 참아보자'며… 전후좌우로 정신없이 비산하는 감정을 필사적으로 추스리려 했었지요.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거기까지…
무대를 내려 가, 마유와 눈이 마주친 순간… 동시에 서로에게 달려들어 꽉 껴안았지요.
네… 더 이상 '룰'같은 것을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어요.
거기서 안 울면 언제 울겠어요.
'그래, 울고 싶으면 마음껏 울어도 돼'
누군가가 그렇게 이야기 해 준 것 같았어요.
굵은 눈물 방울들이 방울방울 뺨을 타고 흘러 내렸지요.
울지 않는 것으로는 그룹 내에서 투탑이라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다른 사람 눈은 신경도 쓰지 않고 얼싸안고 울고 있었던 겁니다.
마유가 팀 A로 이적 한 직후, 저는 완전히 영혼이 빠져나간 껍데기 같았어요.
물론 아주 잠시동안 얘기지만요..
감정은 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움직일 수도 없었다고나 할까요.
'힘 내자'고 해 봐도 몸 구석구석까지 힘이 돌지 않고, 기력이 생기지 않았어요.
저 스스로에게 질려버릴 정도로 매사가 힘들었어요.
그리고 그런 저를 구해 준 것 역시 마유, 당신이었어요.
팀 A로 이적을 한 뒤로도 변함 없이 당당한 마유,
망치로 후려치건 펜치로 세게 비틀어대건 변함 없이, 확고한 신념을 마음 속에 품고 팀의 중심에서 질주하는 마유의 모습은 팀 B때와 다름이 없었지요.
그런 마유의 모습을 보며 얼마나 용기를 얻었던지요.
'나도 이대로는 안 되겠어'
'지금 이 모습대로라면 마유의 옆에 설 자격이 없어'
라는 생각에 다시 한 번 스타트 지점에 돌아 갈 수 있었어요.
표현이 좀 이상할 지는 모르지만, 카시와기 유키라는 사람으로 돌아 가, 그 곳에서부터 다시 한 번 새롭게 걸어 나갈 수 있었지요.
이제 와서 이야기 하는 거지만…
그렇게 잠시나마 마유와 떨어 져 지낸 것은 나쁜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각자 자신이 있을 곳을 찾아 내고, 새로운 동료들과 함께 최고의 결과를 내기 위하여 다시 한 번 새롭게 노력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저는… '카시와기 유키'로서,
마유는 '와타나베 마유'로서…
각자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동시에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조금이나마… 정말 조금일지는 몰라도 성장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저 상대방에게 의지 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때로는 팀 메이트들이 의지 할 수 있는 기둥이 되어 주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가 서로에게 가르쳐 주기도 하고, 때로는 함께 울기도, 함께 웃기도 하며… 물론 마유를 대신 할 사람은 없었지만, 다른 멤버들과 새로운 관계성을 만들연서 '지금껏 알지 못 했던 새로운 자신'을 찾을 수 있었지요.
동시에 마유에 대한 마음 역시 더더욱 깊어졌지요.
제게 있어 마유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마유가 곁에서 사라 진 뒤에야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어요.
마유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해 준다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유키링에게
물론 저 역시 유키링과 마찬가지 기분이에요.
당시, 머릿속이고 마음속이고 할 것 없이 구멍이 뻥 뚫린 것만 같았어요. 정말 보여 줄 수만 있다면 꺼내서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유키링을 생각했고, 유키링을 좋아해요.
지금의 제가 있는 것은 유키링 덕분인걸요.
이전까지는 제 시야 어딘가에는 반드시 유키링이 있었어요.
유키링이 제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있어도 기척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지요.
그리고 그 덕분에 안심 할 수 있었는데, 어느 사이엔가 그런 존재가 사라 진 거예요.
그 때 느낀 불안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그 곳에 있을 리가 없는 유키링을 저도 모르게 찾은 적도 한두번이 아닙니다.
'AKB의 센터는 마유뿐이야'
유키링은 항상 제게 그렇게 말 해 주지만, 제가 봤을 때, 유키링이야말로 아이돌 중에서도 프로페셔널한 아이돌인걸요.
팬분에 대한 대응도 '역시 유키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인데다가, TV에 나올 때도 그런 프로 아이돌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요.
녹화 스튜디오에 들어가는 순간 카메라 수와 위치를 확인하고, 카메라 리허설 영상을 빠짐없이 체크 하며
'아, 여기선 이 각도로 찍히는구나' 라며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 보거나
'여기서 1초 클로즈업 신을 받으니까 그 때 윙크를 하자'는 식으로 계획을 세우기도 하지요.
그룹으로 음악방송에 나갈 때는 사람이 많기에 화면에 비추어지는 횟수, 초 수가 정해 져 있는데… 유키링만큼 철저하게 프로페셔널하게 임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반면 저는… 저는…
흉내조차도 낼 수가 없어요.
TV에 나갈 때 생각하는 건 그저 '열심히 하자'는 생각 뿐, 그 외에는 아무 것도, 단 1mm조차도 생각 하지 못 하는걸요.
아이돌로서 활동을 하는 것, 아이돌다운 것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해 내지 못 하지요…
때로는 '팬분들께선 어째서 이런 나 같은 걸 응원 해 주시는 걸까'라고 신기해 질 때가 있어요.
어째선지 그런 제 본래 모습과 일반적인 이미지는 정반대인 것 같지만요…
곰곰히 생각 해 보면 저와 유키링은 달과 태양, 북극과 남극, 긴 직선의 양 끝과 같은 존재 같아요.
옷 취향도 전혀 다르고, 좋아하는 음식도 전혀 다르고…
저는 동물을 좋아하지만 유키링은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요.
'저기 좀 봐. 저 강아지 귀엽지?'라고 이야기 해도 관심 없는 듯 '어, 그러게'라고 시선은 스마트폰에 고정 시킨 채 대답했던 적도 있었지요.
저는 연극을 좋아하지만 유키링은 관심이 없기도 하고요.
최근에서야 겨우 유행에 맞추어 드라마나 영화를 챙겨보게 되었지요?
뭐, 그런 점은 분명 진보 한 것 같지만요.
저와 유키링은 성격도, 사고방식도, 행동도 전부 정 반대예요.
개그 콤비로 비유하자면 제가 보케, 유키링이 츳코미라 할 수 있겠네요.
예전에는 (물론 '예전'이라 할 정도로 옛날 얘기는 아니지만) 어느 쪽이냐 하면 우아한 아가씨 타입이었기에 지금처럼 타이밍 좋게 츳코미를 날리거나 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아, 지금 이 얘기 듣고 화 났으려나요?
하지만 이거, 칭찬이에요.
그것도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
왜냐면 예전 유키링의 모습보다도 지금 유키링의 모습이 100배, 아니 1000배, 10000배는 더 좋은걸요.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쟤들 바보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 의미 없는 시시한 얘기만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도 유키링 뿐이고…
제게 있어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랍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유키링을 좋아하게 된 걸까요.
말로 표현하기는 좀 힘들지만, 제가 저로서 존재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무엇인가와 유키링이 유키링으로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무엇인가는 어디선가 분명 하나로 연결 되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졸업을 하고 나서는 유키링과 함께 있을 시간이 엄청 줄어들겠지요.
하지만… 하지만…
유키링을 생각하는 마음만은 앞으로도 변함 없을 거예요.
유키링도 같은 마음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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