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가이자 아이돌 오타쿠인 오오모리 노조무는 다카야마 카즈미 작 ‘트라페지움’을 어떻게 읽었는가?
노기자카46의 다카야마 카즈미가
드디어 첫 장편소설을 간행, 당당히 작가로서 데뷔하였다. 이에 필자는 그녀의 데뷔작 ‘트라페지움’을 읽어 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데뷔
장편으로서는 부족함 없는 작품이었다. 작품의 아이디어, 캐릭터, 디테일 모두 훌륭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카야마 카즈미라 하면
‘노기자카 활자부’의 부장인 동시에 출판물에
대한 정보를 다루는 잡지인 ‘다 빈치’에 컬럼을
연재 할 정도로 독서광이 아니던가. 컬럼에서 시작 된 그녀의 활동은 곧 이어 동 잡지에 단편소설을
발표하고, 장편을 연재한 뒤 내용을 대폭 손 보아 단행본까지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혜성처럼 문단에 나타나 화려하게 데뷔 한 것이 아니라 4년 가까운
시간에 걸쳐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이 곳까지 다다르게 된 것이다. 팬들 입장에서도 기다리고
기다린 데뷔작 출판이었기에 책이 발매 된 직후, 여기저기서 품절이 속출, 발매 다음날에 벌써 3쇄 6만부에 달하는 인기작품 반열에 오른 것도 이해가 된다.
내용을 살펴보자면 한 마디로 ‘청춘
아이돌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잘 알려진
미스터리 소설 팬, 그 중에서도 미나토 가나에의 팬으로 유명한 다카야마 카즈미가 ‘내가 정말로 써 보고 싶은 것, 나만이
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을 거듭한 결과, ‘아이돌’이라는 것을 주제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이상 다 빈치 1월호에
실린 롱 인터뷰에서 발췌)
아이돌 소설이라고는 해도 주인공이 아이돌이 되는 이야기는 아니라…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 하자면
주인공 자신도 아이돌이 되기는 하지만, 멤버를 모아 아이돌 유닛을 만드는 이야기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말하자면 프로듀서 겸 멤버의 입장에서 아이돌 그룹의 이야기를 엮어 나가는 것이 이 작품이 가진 최대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컨트리 걸즈시기의 츠구나가 모모코의 말을 빌자면) ‘플레잉 매니저’의 이야기라고나 할까.
이야기의 무대는 지바현 보소반도 (추정) 어딘가이다. 주인공인 아즈마 유우는
조슈히가시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며 아이돌이 된다는 꿈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솔로 아이돌이 아닌 그룹 아이돌을 지향하고 있기에, 비밀리에 멤버를 모을 계획을 세우게 된다.
「내가
다니는 학교가 동(※東, ‘히가시’)쪽에
있기에, 나머지 서/남/북에서 미소녀들을 한 명씩 스카우트하여 ‘동서남북’으로 구성된 4인 유닛을 만들자!, 그렇게 되면 화제성도 생기고 주목도 받을 수 있을 거야!」
라는 원대한 계획 하에, 주인공 아즈마 유우가
전철을 타고 멀리 떨어진 학교들로 원정을 가서 ‘서, 남, 북의 미소녀들을 발굴, 친구가 된다’는 작전이 시작된다.
….라는 설정 자체가 발군이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사무라이 7명’ 같은 경우만 보아도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영화 초반에 사무라이들이 모여드는 장면이 아니던가. 게다가
지바현은 뿔뿔이 흩어진 8명의 동료들을 모아 주인의 복수를 하는 옛 이야기 ‘난소사토미핫켄덴’의 주요 무대이기도
하기에 ‘멤버를 모으는’ 이야기를
펼치기에는 이만큼 어울리는 배경 설정도 드물다. 애초에 다카야마 카즈미
본인이 지바현 미나미보소시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설정 자체가 고향의 자랑인 ‘핫켄덴’에 대한 오마주라 봐야 할 지도 모르겠다. 말 하자면
‘트라페지움이라는 작품은 여성 아이돌 버전 핫켄덴’이라
할 수도 있으리라.
그래서(?) 유우가 처음으로 찾아
간 것은 남쪽에 위치한 아가씨들이 다니는 학교, 세이난 테넬리타스 학원이었다. 테니스부에서 발견한 카토리 란코는 다테마키롤(※소위 ‘일라이자
머리’, 혹은 ‘내린
소라머리’라고 하는 헤어스타일.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세로방향으로 굵은 컬을
넣어 만 머리)에 리본을 달고 다니며, 항상 상대를 내려다보는 엄청난 미녀였다. 말 그대로
‘에이스를 노려라!’ (※ 고전 테니스 만화. 일본
여성 스포츠만화의 선조라고 볼 수 있으며, 작중 카토리 란코의
별명인 ‘나비부인’ 역시
이 작품에서 나온 설정)의 ‘나비부인’을 그대로 옳겨 놓은 듯한 모습이지만, ‘나비부인’과는 달리 테니스 실력이 형편없다… 라는
설정이 꽤나 흥미로운 캐릭터이다.
뒤이어 ‘서’쪽 멤버는 니시(※西, 서쪽)테크노 공업 고등전문학교 학생인 타이가 쿠루미. 작중
시간으로 전년도 학교의 로봇 콘테스트에 출장했을 당시 엄청난 미모로 붐을 일으킨 ‘로봇
연구회의 아이돌’인 동시에 스스로 로봇의 프로그램을 짜는 ‘이과 소녀’이기도 하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작가 본인이 고등 전문학교에 다니는 미소녀를 꼭 등장시키고 싶어했다는 점이다.)
마지막 ‘북’쪽 멤버는 우연히 집 근처 서점에서 재회한 초등학교 동창, 조슈 키타 (※北,북쪽) 고등학교에 다니는 카메이 미카였다. 초등학생
때는 평범했었지만 어느 사이엔가 외모가 물이 올랐고, 성격마저 좋아 봉사활동에도
열심인 캐릭터이다. 그녀의 이러한 면이 데뷔 후에 알려지면 호감도가 높아 질 것이라는
점까지 치밀하게 계산하는 책사 아즈마 유우의 모습도 언뜻 비춰진다.
아까 언급했던 작가의 인터뷰에 따르면, ‘제가
아이돌이 된 뒤에 ‘아이돌이 될 줄 알았다면 좀 더 이렇게 살 걸’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있었거든요. 그런
것들을 전부 아즈마에게 시켜 본 거예요’라는 언급이 있기도
했다. 결국 이 소설은 ‘이미
아이돌이 된 자신’에서 여러 요소들을 역산하여 ‘다시 고 1때로 돌아가 이상적인
아이돌이 되는’ 이야기이며, 작가이자
아이돌인 다카야마 카즈미 입장에서 보자면 리플레이물(인생 2회차를 그리는)의 일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 본인이 아이돌이라는 존재가 주변 사람들 눈에는 어떻게 비추어지는 지 잘 알기 때문일까, ‘트라페지움’의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는 주인공이 누군가를 스카우트할 때, 상대방의 경계심을 낮추기
위하여, ‘아이돌 활동에 대해서’ 일절 거론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타 작품들처럼 ‘함께 아이돌 활동을
하자!’고 권유하여 동료들을 모아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숨긴 채 은밀하게 접근하여, 우선
친구가 된 뒤에 자연스레 팀을 만들어 가는 ‘비밀 작전’에 가까운 모습이다. 물론 때로는 그런 주인공의
계산이 너무 잘 흘러갈 때도 있고,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는데, 그런 모습들이 또한 유머러스하다.
최강 멤버 4명을 모아 어찌저찌
아이돌 유닛을 만든다고 쳐도, 멤버 전원의 꿈이 같을 리가 없다. 과연 4명의 미소녀를 기다리고
있는 운명은 어떤 것일까?
앞서 언급한 작가 인터뷰에 따르면 제목인 ‘트라페지움’은 오리온 대성운의 중심부근에 있는 산개성단의 이름 (※한국명 사다리꼴성단)에서
따 왔다고 한다. 애초에 trapezium이라는
단어 자체가 영국식 영어에서는 ‘사다리꼴’, 미국식
영어에선 ‘부등변사각형’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말 하자면 각기 변의 길이가 다른 ‘이 사각형’은 결과적으로 어떤
미래를 맞이할까?
보통 이런 소설에서 좋게 좋게 결말을 내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지만, 이 소설의 경우에는 마지막 장면 역시 깔끔하게 마무리가 되었다. ‘아이돌’ 부분을 빼고 보아도
일종의 프로젝트로서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참고로 남성 아이돌 중에서는 NEWS의 카토
시게아키가 소설 단행본을 5권 내며 작가로서 대 활약중이며 지난 10월에는 SKE48 출신 마츠이 레나가
슈에이샤의 잡지 ‘소설 스바루’ 11월호에
첫 단편 소설 ‘닦아도 닦아도’를 발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소문에 따르면 11월 호가 다른 때에 비하여 2배 이상
팔렸다는 얘기도.) 마츠이의 소설은 결벽증을 가진 애인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는 아라사(※30세 전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을 뜻함) 여성의 고민을 그려
낸 소설로, 데뷔작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문장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마츠이 레나는 실력파 프로 작가들이 우글대는 격전구에 뛰어 든 케이스라 하겠지만, 다카야마 카즈미의 경우에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투영한 장편으로 승부를 본 케이스이다.
어쩌면 여성아이돌 중 현역 톱 아이돌이 장편 소설을 간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일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 해 보면 이토록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하겠지만, 그런 외부적인 사정을 배제하더라도 이 ‘트라페지움’이라는 소설은 청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한 번 읽어 볼만한 가치는 있는 작품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