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자유로워진다’고 하는 것.
3-1. ‘철인 왕’ (예정), 자유를 논하다.
나는 철인 왕이 될 거야! (원피스 패러디)
- 갑자기 그게 뭔 소린가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것도 아니고.
호리우치 선생님, 저 대사 모르세요? 현대 일본 사회에 찬란하게 빛나는 ‘철학의 결정’, 오다 에이치로 선생님의 ‘원피스’라는 작품에서 주인공 루피선배님이 하신 명언이잖아요.
저 역시 언젠가 어떤 식으로건 연기 해 보고 싶어요. 루피 선배님을.
자, 호리우치 선생님 함께 해요. 뒤로 돌아서서 왼 손을 들어보세요! (주 1)
아, 하는 김에 팔에 X자도 그릴까요? 펜 갖고 있어요.
- 아니, 원피스 대사라는 건 알아요. 아니 그것보다 그거 유성펜이잖아요. 그만 두시죠.
그리고 원래 대사는 ‘해적왕이 되겠다’는 것 아닌가요? 애초에 원피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 작품이 시작 된 건 제가 고등학생 때예요. 독자로 지낸 짬이 다르다고요. 제가 원피스를 보기 시작했을 때 스토상은 만화를 볼 수 있을 나이도 아니었을텐데요?
사실 저 1996년생이에요. 루피 선배님이랑 같은 해에 이 ‘대 철학시대’ (원피스 패러디. ‘대 해적시대’)에 태어 난 셈이지요!!
- 아.. 그래요?
부러우신가봐요?
- 뭐, 그렇다고 해 두죠. 하지만 분명 ‘철학자’와 ‘해적’사이에는 유사한 점이 적지 않다고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예를 들자면 해적이고 철학자고 평온하게 잘 살아가는 남들의 인생을 쑥대밭으로 만든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구석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고, 민폐만 끼치는 족속이라는 점도…
네? 무슨 말씀이신지?
- 생각 해 봐요. 철학자들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나요? ‘불행하게’ 만드는 경우가 더 많지 않나요?
행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서 학교에 가고, 그럭저럭 공부해서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나이가 들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고, 가족들이 지켜 봐 주는 가운데 행복하게 일생을 마감하는 평범한 삶에 ‘철학’이라는 게 어떤 도움이 되겠어요? 필요도 없을 거고요.
오히려 철학자라는 족속들은 그렇게 평범하게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사는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냐’, ‘그런 삶에 어떤 가치가 있냐’ 같은 막돼먹은 질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작자들이지요.
에… 뭔가 눈치 엄청 없는 사람들이라 해야하나… 분위기 파악을 못 한다 해야하나…
- 그런 사람들 싫어하나요?
음… 이런 말 하면 좀 이상하게 보실 지 모르지만, 오히려 좋아해요.
- 오호라?!
아니 그렇게 질문을 하는 게, ‘타인의 행복한 삶’이 배 아파서 그런 것을 부정하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어디까지나 순수하게 ‘인생의 의미란 무엇인가?’, ‘인생의 가치란 무엇인가’가 궁금해서 묻는 것 뿐이지요. 자신들은 ‘인생의 의미’나 ‘인생의 가치’를 알 수 없기에 그런 것을 알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있는 것 뿐이잖아요? 그런 질문을 멋대로 왜곡해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건 어디까지나 듣는 이의 문제일거고요.
- 음…
- 자 그럼 얘기를 좀 바꾸어 보지요. 스토상은 ‘원피스’의 어떤 부분을 좋아하나요?
오, 원피스 얘기를 물으시는 거예요? 개인적으로는 작품 안에 ‘정의란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성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라는 명제들이 가득 들어 있기에, 그런 점이 ‘철학의 영원한 테마’와도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하기에 좋아해요.
- 호오. 그렇군요. 확실히 그렇게 생각 할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누가 뭐라 해도 캐릭터들이 매력적이라는 게 커요. 루피 선배님의 꾸밈없고 올곧은 삶의 방식을 보며 ‘자유란 이런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곤 하죠.
- 저도 동감입니다. 저 역시 루피를 좋아해요. 말 한 대로 ‘자유’ 그 자체라는 느낌.
그렇죠. 기본적으로는 어린애 같은 성격인데, 그게 제멋대로라는 느낌이 아니라 어딘가 낙천적이라는 느낌. 어느 곳에도 속박되지 않는 모습이라던가… 정말로 ‘자유’로운 사람이라 생각해요. 순진무구하고 어린아이 같은 그런 ‘자유’를 잃지 않으면서 성장 해 나간다는 거, 정말 멋지지 않나요?
- …
에? 왜 그러세요? 갑자기 말씀이 없으시네.
애니메이션은 일본이 자랑하는 문화라고요! 애니메이션 좋아한다고 창피해 할 건 아니잖아요!
- 아니, 딱히 스토상을 오타쿠라 생각 한 건 아니에요. 뭐, 저도 만화나 애니메이션 좋아하기도 하고.
다만, 예전부터 생각했던 것인데, 얘기를 하면 할수록 스토상이 천재인지 천연인지 갈피를 잡기가 힘들어 져서 말이지요.
에… 풀어서 말씀 해 보신다면?
- 음… 자, 그럼 스토상이 이야기 한 ‘자유’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볼까요?
오! 부탁드립니다. 오랜 시간동안 철학의 테마로 다루어졌던 ‘자유!’
3-2.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함’ 혹은 ‘리바이어던’.
- 자 그럼 얘기를 이어 가 보지요. 아까 ‘루피는 어린아이같다’고 이야기 한 뒤, 그것에 대해 ‘자유롭다’고도 했지요?
네
- 그렇다면 다시 묻지요. ‘어린아이는 자유로운가’요?
음… 대체적으로 그렇다 생각해요. 어린아이들은 뭐랄까… 존재 자체가 자유롭다고 할까요… 어른이 되면서 여러 가지에 속박되게 되며 점점 부자유스럽게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 그렇군요. 자, 그럼… 아, 타이밍이 딱 맞았네요. 저기 저 창 밖으로 걸어가는 가족, 보이지요?
아! 아기가 참 귀엽네요! 서너살 정도려나? 남자 아이일까요? 쇼윈도우에 찰싹 달라 붙었네요. (웃음) 조금 더 커서 제 스테이지도 저렇게 집중해서 봐 주었으면 좋겠네요. 아… 장난감 가게였네요. 아이 어머니가 곤란해 하고 계신 것 같아요. 어디 바쁘게 가는 도중이었나 봐요? 에…. 울기 시작했네요…. (쓴웃음)
- 그러게요. (쓴웃음)
자, 화제를 바꾸어 보지요. 저기 저 아이는 ‘자유로운’가요?
딱 잘라 말 하기는 힘들겠지만 저 모습을 봐선 그렇게 자유로워 보이지 않네요. 갖고 싶은 장난감을 눈 앞에 두고도 손에 넣지는 못 하니까요. 저 아이는 자유롭지 못한 것 같아요.
- 그렇군요. 자기 눈 앞에 장난감이 있는데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저 아이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그런 ‘부자유’는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가장 먼저 생각 해 볼 수 있는 건 역시 ‘어린아이’이기 때문일까요? 어른이라면 자기 힘으로 돈을 벌어서 사고 싶은 장난감을 살 수 있었을 테니 말이지요.
- 호오… 결과적으로 저 아이에겐 ‘스스로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이군요. 자, 그럼 이렇게 생각 해 보죠. 저 아이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면 저 아이는 ‘자유로워’ 질까요?
음… 저 아이가 커서 고등학생이 되어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급료를 받았다고 해도, 전적으로 자기 마음대로는 쓸 수 없을 것 같네요. 어떤 것을 사느냐에 따라 부모님 허락이 필요 할 수도 있겠고… 능력이 있다고 해도 다른 이가 그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금지한다면 자유롭지 않다고 해야 하겠네요.
- 오. 좋은 생각이네요. 자, 그렇다면 욕망을 충족시킬 능력이 있고, 그 능력을 발휘 할 수 있을 경우, 그런 상태를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음… 그것도 조금 다른 것 같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그렇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다른 이들에게 속박되지 않았으니 그런 면에서는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네요.
- 음. 위화감을 느낀 것 같네요. 그런 ‘위화감’을 무시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자, 그건 그렇고… 지금까지 우리가 나눈 이야기가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명제에 대한 무수한 답변 중 가장 유력한 답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시 말하자면 ‘자유란,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춤과 동시에 외부적인 구속/제한 등의 저항물/장해물이 없는 상태’라고 정리 할 수 있겠네요.
오! 꽤 심플하네요. 오오… 자유란 결국 ‘구속받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겠네요. 나 외의 다른 누구도 나를 얽맬 수 없어!! 나는 철학왕이 될ㄱ…
- 자, 잠깐!! 진짜 중요한 얘긴 지금부터.
참고로 ‘자유’를 지금 이야기 한 방식으로 정의 한 사람 중 대표적인 철학자는 ‘토마스 홉스(주 2)’를 들 수 있겠네요.
아, 그 사람 알아요! ‘리바이어던’(주 3) 쓴 사람이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말로 유명하죠!! 네, 우리는 각각의 자유를 위해 투쟁해야만 하는 거예요!!
- 음… 뭐, 개인적으로는 그런 사고방식 싫어하진 않습니다만, 홉스가 주장한 바는 오히려 그와는 반대에 가까워요. 찬찬히 짚어보도록 하지요.
홉스는 인간 생존의 기초를 ‘자기 보존의 욕구(주 4)’라 봅니다. 자연상태에서의 인간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끊임없이 움직이는 존재라고 보는 것이지요. 물론 ‘자연 상태’이기에 인간을 얽매는 제약은 없다고 치면, 그 인간은 스스로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의 힘을 ‘자유롭게’ 구사하겠지요. 때로는 자신이 살기 위하여 타인을 공격하고, 타인의 것을 빼앗아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런 것은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권리’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모든 인간이 각자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하여 투쟁한다’는 것이 바로 홉스가 생각한 ‘자연상태의 인간’입니다.
그렇군요. 음… 그런데 그건 자유라고 하면 자유라고 할 수 있기야 하겠지만… 음… 오히려 ‘무질서’에 가까운 느낌인데요.
- 정확한 지적이네요. 말 하자면 ‘모든 인간은 누구나 남들에게는 늑대와 같다’랄까요.
아우~
- 오, 절묘한 맞장구 고마워요. 하지만 스토상 본인이 그런 ‘자연상태’에서 살아가야만 한다면 어떨 것 같아요?
음… 그건 싫어요. 무섭잖아요. 물론 제가 싸움을 엄청 잘한다면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자신을 얽매는 것이 아무 것도 없으니 자유로울 것이고요.
- 스토상, 저는 스토상의 그런 부분이 참 좋아요. 이렇게 ‘자연상태’의 인간을 이야기 할 때, 대부분은 도덕적인 면을 생각해서 ‘완력만으로 모든 것을 정하는 것은 자유가 아닌 부도덕함이다’ 라는 식으로 사회의 도덕률을 이야기하곤 하거든요. 하지만 그런 ‘브레이크’랄까 자기규제랄까는 사실 철학을 하는 데 있어서는 정말 성가신 방해물이거든요. 하지만 스토상은 그런 부분에서 꽤 자유로워서 좋아요. 브레이크가 고장 나 있다 해야하나.
브레이크가 고장났다니… 칭찬이 아닌 것 같은데요.
- 칭찬 맞아요.
자, 아까 얘기로 돌아 가 보지요. 남들보다 조금 힘이 센 사람이라 해도 결국 ‘약자’들이 모여서 무리를 이루면 이길 수 있을까요?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결국은 사람이니, 머릿수에서 밀리면 이길 수 없을테지요.
루피 선배님이라면 이길 수 있…
- 그건 특수 케이스고요.
이런 점에 착안한 홉스는 재미있는 발상을 하게 됩니다. 인간은 결국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에서는 안심하고 살 수 없다는 것이지요. 언제 어디서 습격을 당할 지 모르잖아요. 그렇기에 그런 불안을 불식시키기 위하여 인간들은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의 자유 중 일부’를 ‘개개인을 초월한 존재’에게 위탁하게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그런 ‘개개인을 초월한 존재’가 바로 ‘국가’라는 것이지요. 홉스의 표현대로라면 ‘커먼웰스(집합체/연합체)’라고도, ‘리바이어던’이라고도 하는 존재입니다. 개개인을 초월하여 존재하며, 개개인으로부터 일정부분 자유를 빼앗는 대신 평화를 가져다주는 ‘괴물’이죠.
그렇군요. 결국 인간들은 스스로의 자유를 포기함으로 하여 자기자신의 생명의 위기와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이야기네요.
- 음… 교과서에서 다루는 홉스는 ‘자유’보다 ‘질서’를 중시하는 사람이기에,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는 건 좀 독특한 견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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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 원피스의 명장면. 알라바스타의 공주인 비비에게 ‘우리는 동료’라는 것을 암암리에 알리기 위하여 X자가 새겨진 왼 팔을 들어올리는 장면. 이 장면이 나온 뒤, 한 때 팔에 X자를 그리는 것이 유행했지요. (개인적으로. 리리퐁)
주 2 : 토마스 홉스 -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제가 좋아하는 명언인 ‘다른 이의 결점을 비웃는 것은 스스로가 겁쟁이라는 증거이다’를 남긴 분이지요. 이 시대에 91세까지 장수하셨다고 합니다. 대단하죠! (리리퐁)
주 3 : 리바이어던 – 스스로의 목숨을 지키고자하는 욕구를 나타낸 은유. 홉스선배님께선 ‘인간은 선천적으로 이 리바이어던과 동시에 다른 이들보다 우월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허영심’을 갖고 있다’고 하셨지요. (리리퐁)
역주 : 구약성서 욥기에 나오는 바다괴물. 레비아탄이라고도 한다.
주 4 : 자기 보존의 욕구 – 이 책 삽화에 ‘거인’으로 그려 져 있는 ‘리바이어던’의 몸을 자세히 보면 무수히 많은 인간들의 군집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금
기분 나쁘기도 해요. 머리는 ‘주권자’, 몸은 ‘민중(인민)’을 의미하며, 결국 이 리바이어던이라는 거인은 ‘정치체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지요. (리리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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