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카에데는 기숙사 정문을 뛰어 들어갔다.
맨발인 채였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교무실에 있을 터인 미야가와 선생님을 부르러 간 것이다.
“선생님! 선생님!”
카에데는 교무실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왜 그러니?”
교무실 문이 열리고 미야가와 선생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다.
카에데는 그런 선생님의 표정을 보며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 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카에데는 주저하면서도 천천히 일어난 일에 대하여 설명하기 시작했다.
설명이 끝난 뒤, 카에데와 미야가와 선생님, 그리고 학교 수위는 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아까 전과 마찬가지로 현장에는 아무런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아스미가… 방 창문으로… 뛰어내렸어요. 정말이에요! 거짓말이 아니라고요!”
카에데의 말을 들은 선생님과 수위는 서로 얼굴을 한 번 마주보고는 입술을 삐죽였다.
“사이죠상 방이라…”
선생님은 수상쩍다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카에데는 문득 고개를 들어 아스미의 방을 바라보았다. 아까까지 열려 있던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펄럭이던 커튼 역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방안을 가리고 있었다.
“어…?”
대체 누가 창문을 닫은 걸까…
닫은 게 아니라면 혹시…
“야마무로상, 일단 사이죠상 방으로 함께 가 볼까요?”
미야가와 선생이 말을 이었다. 카에데 역시 그 말에 동의하고 아스미의 방 앞으로 갔다.
아스미의 방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별달리 이상이 있었던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미야가와 선생은 방 문을 노크하며 아스미를 불렀다.
“사이죠상, 방 안에 계신가요?”
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미야가와 선생이 몸을 돌려 카에데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읽어 낼 수 없는 복잡미묘한 표정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문 손잡이가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방 문이 열리고, 아스미가 고개를 내밀었다.
“무슨 일 있나요?”
살짝 짜증이 난 것 같은 표정이다.
“아, 아니에요. 방 안에 있었다면 다행이네요.”
“네?”
미야가와 선생과 대화를 끝낸 뒤 돌아서는 아스미의 시선과 카에데의 시선이 한 순간 마주쳤다. 카에데를 향한 아스미의 시선은 마치 수상한 무언가를 보고 있는 듯 차갑기만했다.
“그럼 쉬세요.”
아스미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일단 오늘은 일찍 자고 내일 천천히 이야기 해 봅시다.”
미야가와 선생은 카에데에게 이 한 마디를 남기고 교무실로 돌아갔다.
카에데는 지금의 상황에 할 말을 잃고 어쩔줄 모른 채 멍하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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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평소와 다름 없이 아침이 밝았다.
카에데는 무거운 마음으로 교실로 향했다. 통학이라 해 봤자 기숙사에서 교실까지 가는 것 뿐이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함께 위치한 프리지아 여학원의 부지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겠지만- 매우 넓었다.
누군가가 갑자기 카에데의 축 쳐진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좋은 아침! 좀 더 서두르지 않으면 지각한다!”
고개를 돌려 보니 아스미가 서 있었다. 평소와 다름 없는 그녀의 모습에 카에데는 뭐라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멍하니 아스미의 뒷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아스미가 갑자기 뒤돌아 보며
“나 먼저 간다?”
라고 말을 걸어왔다.
카에데는 미소 지으며 다시 등을 돌려 교실로 달려가는 아스미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돌렸다.
교실에서도 아스미의 모습은 변함 없었다. 평소처럼 유즈키나 호노카와 명랑하게 수다를 떠는 아스미의 모습에서는 어제 본 참혹한 모습, 창문 아래 널부러져 있던 모습은 눈꼽만큼도 찾을 수 없었다.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카에데의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것일까, 아스미가 문득 카에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카에데는 다시 한 번 아스미의 시선을 피해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그런 부자연스러운 두 사람의 모습을 히지리가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 하고 있었다.
수업과 부 활동이 다 끝난 뒤, 기숙사에 저녁식사 시간이 찾아왔다.
카에데는 교복을 입은 채 식당에 자리 잡았다. 그녀의 앞에는 밥을 담는 트레이가 놓여 있었고, 트레이 위에는 정갈하게 차려진 저녁식사가 놓여 있었다.
소위 ‘이상적인 식단’으로 평가 받는 1국 3반찬으로 이루어진 메뉴를 앞에 하고도 카에데는 식욕이 생기지 않았다. 양 손은 무릎 위에 올린 채 멍하니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젓가락을 들 기력조차 없는 것 처럼 보였다.
“카에데, 무슨 일 있어?”
사복 차림으로 카에데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미노리가 말을 걸었다.
하지만 카에데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런 카에데의 모습을 보며 미노리는 자세를 고쳐 앉고는 묵묵히 젓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에데가 옆자리를 곁눈질하며 ‘그래도 미노리라면 내 얘기를 믿어주지 않을까?’라 생각 한 순간, 옷을 갈아 입고 온 아스미가 카에데의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아~ 배고파!”
아스미는 그렇게 말하며 밥공기에 담긴 밥을 먹기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왕성한 식욕이었다.
분주하게 밥을 입 속으로 옮겨넣던 아스미가 문득 카에데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 수학여행 가서 찍은 사진말이야, 앨범에 넣었어?”
아스미의 말에 순간적으로 어제 본 참상이 카에데의 눈 앞을 스쳤다.
“…내 말 듣고 있어?”
“아… 응… 아직 안 넣어뒀어.”
허둥대며 카에데가 대답했다. 그런 카에데의 모습을 보며 아스미는
“흐음.. 그렇구나. 아, 그거 안 먹을거야? 내가 먹는다?”
라고 이야기 하며 카에데의 접시에 놓여 있던 고깃덩어리를 집었다.
아스미는 집어 든 고기를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아스미가 고기를 씹는 소리 사이사이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분 나쁜 소리가 섞여 들리는 듯 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진 카에데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에데, 왜 그래?”
카에데는 걱정스러운 듯 묻는 미노리의 말을 뒤로하고 출구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런 카에데의 뒷모습에 아스미와 히지리의 시선이 꽂혔다.
다른 학생들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왁자지껄 떠들며 식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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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으로 돌아온 카에데는 책상 위에 엎드렸다.
어찌저찌 옷은 갈아 입었지만 답답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혼잣말을 해 보지만 당연히 답은 알 수 없었다.
카에데는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사진 어플을 열어 수학여행때 찍었던 사진을 보기 시작했다.
사진들 중에는 잠비마을에서 찍은 사진도 여러 장 있었다.
바람개비 뒤로 유이가 사진을 찍는 장면이 찍힌 사진도 있었다.
‘잠비마을이라…’
마을의 이름은 분명 모리구치인가 하는 남자가 가르쳐 주었었다.
뒤이어 마을 어디에선가 보았던, 짚인형을 손에 들고 있던 소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외에도 작은 사당, 거울, 부적, 바람개비 등 자신들이 우연히 마을에 들어 가 맞닥뜨린 것들이 차례로 머릿속을 스쳤다.
“잠비마을이라…”
카에데는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인터넷 즐겨찾기에 등록되어 있던 ‘잠비마을의 민속과 전승’을 터치했다.
곧바로 예의 그 ‘영상’이 시작되었다.
‘…어?!’
춤을 추는 사람이 쓰고 있는 가면, 그 가면에 붙어 있는 부적이 묘하게 신경 쓰였다. 카에데는 동영상을 잠시 멈추고 화면을 확대시켜 보았다. 자세히 보니 부적에는 어떤 글자가 적혀있었다. 분명 이전에도 같은 영상을 보았을 터인데 갑자기 위화감이 느껴졌다.
조금 더 자세히 화면을 보니, 그 글자는 ‘終, 끝날 종’자를 좌우 반전해서 적은 것이었다.
“끝이라고?”
그 순간 카에데는 깜짝 놀라 침을 삼켰다. 그 글자는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는 글자였던 것이다. 다름 아니라 신사에 있던 작은 사당, 그 안에 붙어있던 글자와 똑같았다.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보아버렸다는 생각이 든 카에데는 황급히 인터넷 브라우저를 닫고 스마트폰을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
‘끝이라는 글자, 그것도 좌우반전… 대체 무슨 의미지?’
아무리 생각 해 보아도 의미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의문은 카에데의 마음에 가시처럼 박혀 찝찝한 뒷만을 남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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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종소리가 들린다.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여러분, 숙제는 잊지 말고 꼭 해 오세요.”
교과서를 덮으며 미야가와 선생님이 말을 맺었다. 미노리의 구령에 맞추어 학생들이 일어섰다.
카에데는 아스미의 모습을 곁눈질 하다 순간적으로 움직임이 늦어버렸다.
전원이 기립 한 뒤,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카에데의 시선은 아스미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카에데의 곁에 미야가와 선생님이 다가왔다.
“야마무로상, 오늘 방과후에 시간 있나요?”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을 하기 위해 잠시 시선을 거둔 그 찰나의 사이에 아스미는 교실을 나서고 말았다.
‘빨리 쫓아가야 되는데’
황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카에데의 팔을 잡는 손이 있었다. 미야가와 선생님의 손이다.
“야마무로상, 정말로 당신이 걱정되어서 그래요.”
미야가와 선생은 다시 한 번 카에데의 손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 선생님의 눈빛은 너무나도 자상해보였다.
“혹시 고민 같은 것이 있거든 꼭 선생님에게 상담 해 주세요.”
미야가와 선생님의 다정한 말에도 카에데의 신경은 온통 아스미에게 집중 되어 있었다. 카에데는 선생님의 손을 떨쳐 내고는 아스미의 뒤를 따라 복도로 뛰쳐나갔다.
저 멀리 어딘가로 걸어가는 아스미의 모습이 보였다. 카에데는 아스미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계단을 올라 가는 것을 보면 화장실을 가려는 걸까?
카에데의 예상대로 아스미는 화장실 문을 열었다.
잠시 후 아스미가 화장실에서 나와 교실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 한 뒤, 카에데 역시 화장실로 들어갔다.
가장 문과 가까운 화장실 문을 열어 보았다. 내부는 전통식 변기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두 번째 화장실은 좌변기가 놓여있다는 것 외에는 마찬가지로 별다른 특이점이 없었다.
그렇다면 마지막 화장실은 어떨까.
다른 두 개의 화장실과는 달리 마지막 화장실은 문을 당겨서 여는 방식이었다. 비단 이 층 뿐 아니라 모든 층이 동일하게 문과 가장 먼 화장실 문은 당기고 나머지 두 개는 미는 문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카에데는 손잡이를 잡고 문을 당겨 열었다.
‘…!!’
좌변기 뚜껑은 내려 간 채였고, 그 뚜껑 위에는 길고 검은 물체…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널부러져 있었다.
머리카락 뿌리 부근에는 모근, 심지어 피부까지도 붙어 있어 끔찍한 모습이었다.
카에데는 자신도 모르게 그 머리카락을 손에 들어 확인했다. 가발 같은 게 아닌 틀림 없는 사람 머리였다.
“…지금 뭐 하는거야?”
갑자기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에데는 깜짝 놀라 튀어 오르듯이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아스미가 서 있었다.
아스미의 표정은 수상한 것을 보는 듯 의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왜 내 뒤를 쫓아 다니는거야?”
아스미는 그렇게 말 하고 혀로 입술을 핥았다. 순식간에 일어 난 일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확실히 이야기를 하던지.”
아스미는 카에데를 추궁하며 몰아붙였다. 뒷걸음질 치던 카에데는 조금씩 화장실 칸막이 속에 고립되기 시작했다.
카에데는 긴박한 상황에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오지 마.”
카에데의 목소리도 점점 커졌다.
“오지 마! 이쪽으로 오지 마! 저리 가 버려!!”
카에데의 절규에도 아스미는 동요하지 않았다.
“카에데, 너 좀 이상해.”
아스미는 그렇게 말하며 카에데의 팔을 붙잡았다.
“카에데.”
“건드리지 마!!!!!”
카에데는 절규하며 아스미를 밀쳐냈다. 그 뒤 생긴 틈을 타 화장실에서 뛰쳐나갔다.
하지만 겨우 화장실을 벗어났다고 생각 한 순간, 카에데의 눈 앞이 캄캄해졌다.
그리고 카에데는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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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카에데의 의식이 돌아왔다.
눈을 뜨긴 했지만 초점이 맞지 않아 모든 것이 뿌옇게 보였다.
잠시간 시간이 지난 뒤,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은 하얀 천장과 거기 설치 된 형광등이었다.
‘여긴 어디지?’
생각 해 보니 침대 위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실에서도 하루 종일 멍하니 있었고, 어제 저녁도 제대로 먹지 않더라고요. 수학여행에서 돌아 온 이후로 계속 상태가 이상했어요.”
아스미의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려 보니 흰 커튼 사이로 아스미와 미야가와 선생님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게… 확실히 평소와는 좀 달랐지.”
미야가와 선생님도 아스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카에데가 정신을 차렸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일까, 아스미가 카에데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스미…”
“아무리 불러도 정신을 못 차리길래 죽은건가 했어.”
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 말이다. 분명 수학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던 버스 안에서 아스미가 했던 말이다. 아스미는 전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음… 뭔가 오랫동안 악몽을 꾼 것 같아.”
카에데의 말에 아스미는 카에데의 머리맡에 다가오며 나직이 속삭였다.
“금방 괜찮아 질 거야.”
걱정스러운 듯 카에데를 바라보는 아스미의 표정은 예전과 다름 없었다.
아스미는 가슴 위에 포개져 있는 카에데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카에데도 자연스럽게 포갰던 손을 풀고 아스미의 손을 꼭 쥐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요 며칠간 계속되었던 신경전은 어느 사이엔가 눈 녹듯 사라지고 없었다.
미야가와 선생님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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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짙게 드리워진 교내에 종소리가 울려퍼진다.
고요한 학교 성당 안에 미야가와 선생이 홀로 앉아있다.
쭉 늘어 선 촛대에 설치 된 양초의 빛이 성당 내부를 따뜻하게 채우고 있었다.
미야가와 선생은 성호를 긋고는 가슴께에서 손을 모으더니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녀의 기도가 어떤 내용인지, 그리고 그녀가 기도하는 대상은 누구인지… 그것은 본인 이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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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았다.
학교 체육관에서는 체육 수업이 한창이었다.
그 날 수업 종목은 농구였다.
한 반을 여러 팀으로 나누어 시합을 하는 형식이었다.
“카에데! 패스!”
아스미의 말을 들은 카에데가 재빠르게 아스미를 향해 공을 던졌다.
카에데의 패스를 받은 아스미는 한 차례 페인트를 섞어 수비를 제끼고는 그대로 점프 슛을 날렸다. 아스미의 손을 떠난 공은 네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결국 시합에서 이긴 것은 카에데의 팀이었다.
“예이!”
아스미와 카에데는 하이파이브를 하며 승리를 자축했다.
“아, 잠깐 얼굴 좀 씻고 올게.”
아스미가 체육관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카에데는 딱 기분 좋을 정도의 나른함을 느꼈다.
아스미와의 관계가 예전처럼 되돌아 간 것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하지만 히지리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아스미를 응시하고 있다는 것까지는 알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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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미는 수돗가로 가기 위해 계단을 올랐다.
먼저 물을 마시러 갔던 반 친구들 네 명이 계단을 내려 오는 것이 보였다.
유이, 키우치 카나, 세키 아즈사, 혼다 쿄코였다.
“걔 졸라 짜증나지 않냐?”
유이가 웃으며 다른 아이들에게 이야기 했다.
“짜증나.”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아 그나저나 아까 그거 봤어?”
“봤어.”
“개 웃기지 않았냐?”
유이의 말을 들은 나머지 셋이 말을 주고 받았다.
얘기만 들어도 유이 그룹이 누군가를 이지메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스미는 그런 이야기들을 못들은 척 하며 유이 그룹을 지나쳤다.
그리고 수돗가에 다다랐을 때, 아니나 다를까 누군가가 울고 있었다.
등을 돌린 채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던 것은 사쿠라 스즈네였다.
양갈래로 묶은 머리 사이로 땀이 송글송글 맺힌 흰 목선이 보였다.
아스미는 그런 모습을 보며 어찌 할 줄 모르고 그저 우두커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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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아스미는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고 있었다. 샤워부스 문 건너편에서 카에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스미, 나 먼저 간다.”
“응!”
아스미의 대답을 들은 카에데는 샤워실을 나섰다.
아스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머리를 감았다. 샴푸 거품과 함께 뽑힌 머리카락이 물처럼 흘러내렸지만 아무런 상관 없다는 듯 머리를 감고 있는 것이다.
샤워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 온 아스미의 등 뒤로 꽃병에 꽂힌 바람개비가 보였다. 바람개비의 날개는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람개비 뒤편에는 사진 액자가 놓여 있었다. 액자 안에는 친구들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이 장식 되어 있었다.
아스미는 자리에 앉아 발톱에 패디큐어를 바르기 시작했다. 패디큐어 솔의 움직임에 따라 그녀의 엄지 발가락 발톱이 크게 움직였다.
아스미는 덜렁덜렁거리는 발톱을 손에 쥐고 좌우로 흔들더니 천천히 떼어냈다.
발톱이 뽑혀 버린 발가락이 아프지도 않은 걸까, 아스미는 뽑아 낸 발톱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천천히 눈을 감더니 가슴팍을 마구 긁어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하반신 쪽에서 예의 그 검은 혈관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얼굴을 향해 몸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괴로운 것인지, 아니면 적당한 통증을 즐기고 있는 것인지 모를 표정을 짓던 아스미가 갑자기 눈을 떴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탁한 흰색으로 변해 있었다.
아스미는 그대로 복도로 나가, 정처없이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양 팔은 축 늘어뜨리고, 고개는 힘 없이 휘청거리며, 맨발로 휘적휘적 배회하기 시작 한 것이다.
발톱이 빠진 자리가 아플 법도 한데,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아스미의 움직임에 맞추어 그녀가 지나가는 곳의 조명들이 빠르게 깜빡였다.
어디갔느냐 헤메고있느냐 어디갔느냐 숨어버렸느냐 어디갔느냐 돌아가버렸느냐
아님죽어버렸느냐 도망가라도망가라 땅이움직인다 손이뻗어온다 내일이온다
되살아나리라 되살아나리라 잠비가온다 바로네뒤에 바로네뒤에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잠비마을에서 들었던 동요가 어디선지도 모르게 울려퍼졌다.
때때로 복도 양쪽으로 검은 그림자 같은 것이 요동치며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 검은 그림자는 서서히 모습을 갖추어 갔다. 작은 지장보살과 손의 모습이었다. 잠비마을 부근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무수한 손과 지장보살의 그림자가 아스미를 감싼 채, 복도를 배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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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실에서 돌아 온 카에데는 침대에 걸터앉아 수학여행때 찍은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비마을에서 찍은 사진을 보던 중에 눈에 들어오는 사진이 있었다.
아스미의 사진이었다.
사진 속의 아스미는 잠비마을의 풍차 앞에서 양 손으로 브이자를 그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카에데의 입가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사진을 스와이프 하여 다음 사진을 보았다. 다음 사진은 유이가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찍은 단체사진이었다.
사진 아랫쪽에는 예의 그 바람개비가 찍혀 있었다.
‘…?!’
기분 탓인지 사진에 찍혀 있는 바람개비가 움직인 것 처럼 보였다.
찝찝한 마음에 카에데는 다시 한 번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바람개비 사진이 다시 한 번 움직였다. 조금씩이긴 하지만 확실히 바람개비가 움직이고 있었다.
카에데의 등 뒤로 소름이 돋았다. 눈을 떼지 못 하고 바라보고 있으려니 바람개비의 움직임이 조금씩 부드러워 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느리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확인 했지만 확실히 동영상 파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착시를 이용하는 사진도 아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겨우겨우 스마트폰에서 눈을 뗀 순간, 노크소리가 났다.
문에 설치된 불투명 유리 너머로 복도 조명이 깜빡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조명이 들어 올 때마다 누군가의 그림자가 비췄다.
‘누구지?’
카에데는 튀어 오르듯 침대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어 보니 히지리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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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에데는 히지리를 방 안으로 들여보냈다.
“이것 좀 봐 줄래?”
그렇게 말 하며 히지리가 카에데에게 내민 것은 스마트폰이었다.
스마트폰 화면에는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이거… 뭐야?”
히지리가 내민 사진은 교실에서 담소를 나누는 아스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하지만 묘하게도 아스미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아스미의 오른쪽 얼굴이 마치 누군가가 잡아 당기기라도 하는 듯 일그러져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것 처럼도 보였다.
“사실… 뭔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 했거든… 아스미 말이야… 그래서… 사진… 찍어 봤더니…”
히지리는 아스미의 친구인 카에데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듯 단어를 신중히 골라가며 말을 이었다.
카에데는 추하게 일그러진 아스미의 사진에서 눈을 돌리고 화면을 껐다. 오한이 느껴졌다.
“이 사진… 계속 보고 있으면 기분이 나빠져.”
히지리가 말을 이었다. 두 눈은 내리 깔고 카에데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이 사진,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카에데는 히지리에게 스마트폰을 돌려주며 질문했다.
“사실… 오늘 한 장 더 찍은 게 있거든..”
“뭐?”
“아스미 뿐 아니라 한 명 더 있었어…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상해서 찍어 봤는데..”
카에데는 히지리로부터 시선을 피했다.
…이 학교 내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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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에데는 히지리와 함께 어두컴컴한 도서실로 향했다.
이 학교 학생이라면 소등시간 이전까지는 언제는 이용해도 되는 시설이다. 그 뿐 아니라 카에데 본인이 도서위원이기에 이용하기 편한 곳이기도 했다.
책상 위에는 ‘주술 완전 매뉴얼’, ‘주술연구’ 같은 책들이 놓여 있었다.
히지리가 책을 한 권 더 가져왔다. 표지에는 ‘일본 고주술사’라고 적혀 있었다.
히지리는 조용히 페이지를 넘기다가 멈추어서는 소리내어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음양도(※陰陽道, 일본 전통 신앙 중 하나. 음양오행에 기초한 주술법)의 가르침에 따르면 오른쪽 얼굴은 ‘삶’을 상징하고 왼쪽 얼굴은 ‘죽음’을 상징한다.”
히지리의 말에 카에데는 문득 아까 본 사진을 떠올렸다. 카에데가 보고 있는 방향이 아니라 아스미 본인을 기준으로 했을 때 왼쪽 얼굴이 기묘하게 뒤틀려 있었던 사진을. 아스미 기준으로 오른쪽 얼굴은 평범해 보였지만 왼쪽 얼굴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는 듯 추악하게 일그러져 있지 않았던가.
“음양도라고?”
카에데의 질문에 히지리가 대답했다.
“음양도는 원래 주술이나 점성술의 체계를 말해. 물론 전통 신앙과도 관계가 있고. 예를 들자면 신사도 음양도와 관계 있지.”
“신사라…”
히지리는 카에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책 내용을 소리내어 읽었다.
“한 사람의 얼굴에 삶과 죽음, 그 두 가지가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 그런 사람은 잔미라고 부른다… 잔미가 뭐지?”
카에데는 수학여행때 들렀던 마을의 이름을 떠올렸다. 히지리는 계속 책을 읽어 나갔다.
“잔미는 살아 있으면서 죽은 존재이며, 죽어 있으면서 산 존재로서…”
카에데의 머릿속에 아스미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친구의 얼굴과 그 때 창밖으로 보았던 무참한 모습, 그리고 얼마 전 양호실에서 보았던 다정한 표정까지…
갑자기 카에데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래! 잠비마을 신사에 모셔진 것은 삶과 죽음 사이에 위치한 자들이었던 거야!”
이전에 보았던 동영상에 나왔던 이미지들, 다시 말 해 위아래가 뒤바뀐 도리이와 기묘한 사당, 그리고 그 주변에 꽂혀 있던 바람개비들이 어지러이 카에데의 머릿속을 채웠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자신들이 한 일이 무엇이었는 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잠비… 마을? 그게 뭐야?”
“그 때 우리들이… 잠비의 봉인을 풀었던 거야…”
카에데가 단언했다.
“우리가… 봉인을… 풀었어.”
갑작스러운 카에데의 말에 히지리는 할 말을 잃고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카에데를 바라 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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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에데와 히지리가 도서실에서 잠비에 대한 책을 읽고 있을 무렵.
아스미는 교실에 홀로 남아있던 학생을 덮쳤다.
뒷편에서 달려들어 몸을 움직이지 못 하게 한 뒤, 뾰족한 혀를 목덜미에 꽂아 버린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당했던 것 처럼 그 학생의 흰 목덜미를 콱 물어 버렸다.
아스미의 눈은 탁한 흰색이었고 얼굴에는 검은 혈관이 솟아있었다.
아스미에게 목덜미를 물린 소녀 역시 점차 온 몸에 검은 혈관이 솟아 오르더니, 이윽고 눈이 희게 변했다.
소녀의 이름은 시이나 미코토.
잠시 뒤, 아스미는 만족한 듯 미코토의 목에서 얼굴을 떼었다. 미코토는 마치 무너지듯 바닥 위로 쓰러졌다.
아스미의 입 옆으로 한 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에 비친 그녀의 입가는 처참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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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에데는 조용히 되뇌었다.
“그렇다면 아스미는 역시…”
상상하기도 싫었던 시나리오가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히지리는 깜짝 놀란 눈빛으로 카에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어디선가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갔느냐 헤메고있느냐 어디갔느냐 숨어버렸느냐 어디갔느냐 돌아가버렸느냐
아님죽어버렸느냐 도망가라도망가라 땅이움직인다 손이뻗어온다 내일이온다
카에데와 히지리는 당황한 나머지 어찌 할 줄 모른 채 도서실에 서 있었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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