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색 눈물, 그 이유
볕이 들지 않는 하나미치 아래서
2017년 7월 1일. 메이지 진구 야구장.
매년 연례행사로 자리매김한 노기자카46의 콘서트가 한창이었다.
이 날 가장 기대를 모은 기획은 1기생, 2기생, 3기생 멤버들이 각각 깃수별로 등장하여 따로 노래를 하는 기획이었다.
가장 먼저 무대에 오른 것은 3기생이었다. 작년 9월에 그룹에 들어 온 그녀들은 신인 특유의 풋풋함을 뽐내며 회장을 가득 메운 4만명의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그렇게 관객들이 3기생에게 열렬한 환호성을 보내주던 바로 그 때, 박수갈채를 한 몸에 받고 있던 3기생들의 발 밑, 무대 아래에선 2기생들이 자신들의 순서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키타노 히나코는 멀리서 들려오는 관객들의 함성과, 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관객들의 뜨거운 열기에 복잡한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키타노 (이하 ‘키’) : 무대 아래에서 3기생들에 대한 환성과 콜을 듣고 있으려니 불현듯 저희가 처음 가입했던 그 때, 4년 반 전 일이 떠오르더군요. 그 땐 참 힘들었지… 하면서. 우리가 경험하지 못 했던 것들을 3기생들은 벌써 경험하고 있구나… 라던가 우리도 더 많은 걸 경험 해 보고 싶었는데… 라던가. 딱히 저희 2기생들이 어땠다 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그저… 지나간 시간은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구나… 싶어서 기다리는 내내 마음이 아팠습니다.
담담히, 하지만 솔직하게 그 때의 괴로웠던 마음을 이야기하는 키타노. 어쩌면 그런 그녀의 마음이야말로 2기생들이 지난 보내 온 지난 4년 반이라는 시간을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들 외의 존재들만이 팬들 앞에 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고, 자신들은 그 한 켠, 빛이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곳에서 쓴 웃음만 짓고 있는 것이다. 마치 2기생들이 지금껏 경험 해 온 과거가 응축되기라도 한 것 같은 시간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느끼지는 않았을 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키타노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한 편 야마자키 레나도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헤매고 있었다. 때마침 멤버들의 등장위치 문제로 호리 미오나 이외의 2기생들은 무대 가운데에 삐죽하게 돌출된 하나미치(※가부키 등에서 주인공이 등/퇴장하는 길. 본무대와 서브무대를 잇는 길로 활용되거나 그 자체로 돌출무대 식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아래로 허리를 숙인 채 이동하고 있었다.
야마자키 (이하 ‘야’) : 사실 평소 같았다면 다른 멤버들에게 보내는 성원을 제가 계속 느낄 일은 없잖아요. 언더 라이브에서도 이런 일은 없었고요. 하지만 이동하고 대기하는 10분 가까운 시간 내내 저희는 다른 아이들에게 쏟아지는 성원을 무방비하게 듣고 있어야 했어요.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손에서 땀이 멈추질 않더군요. 남들과 비교하는 건 그리 좋지 못 한 일이라 생각은 합니다만, 3기생들은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밝고 풋풋한 맛이 있지요. 개개인의 능력도 그렇고 빛나는 부분도 있고요. 그러니 팬 여러분께서 3기생들에게 열광하시는 건 잘 알 것 같았어요. 하지만 그런 것을 바로 곁에서 느끼다 보니 ‘우리 차례에 집중해서 보아 주시긴 할까?’라는 생각이 들고, 자신도 없어져서 저도 모르게 이를 악 물게 되더군요. 이를 악 문 채 그 성원을 듣고 있을 수 밖에 없었어요.
불과 몇 분 전, 2기생들끼리 원진을 짜며 한 차례 젖어버렸던 키타노의 양 볼을 타고 다시 한 번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깜짝 놀라 눈물을 훔쳐 낸 그 순간, 3기생의 파트가 끝났다. 2기생들은 다시 한 번 자신을 달래며 스테이지 위로 뛰어올라갔다.
직접 교섭해서 따 낸 ‘질투의 권리’
진구 라이브 를 앞두고 준비가 시작되었다. 스태프진의 제의에 따라 이번 라이브의 컨셉은 ‘기수별 퍼포먼스’를 중심축으로 잡기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그런 컨셉에 맞추어 세트리스트가 정해졌다. 그리고 공연 당일 2기생들이 피로한 곡들은 다음과 같다.
‘바렛타’
‘깨닫고 보니 짝사랑’
‘질투의 권리’
MC
‘그런 바보같은…’
‘사람은 왜 달리는 걸까’
MC
‘헤어질 때 더 좋아져’
‘보더’
‘빙수 짝사랑’
‘계기’
MC를 제외하고 전 9곡. 하지만 정작 연습 초기에는 이 세트리스트와 미묘하게 다른 곡들을 받아들었었다 한다.
이토 쥰나 (이하 ’쥰’) : 처음에 받았던 세트리스트에는 ‘질투의 권리’가 들어 있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 곡은 2기생 전원이 언더에 있을 때 받은 의미 깊은 곡이거든요. ‘바렛타’ 때 미오나가 선발이 된 것은 저희 2기생들에게 큰 의미를 갖습니다만, 그와 마찬가지로 ‘질투의 의미’ 역시 저희들에게는 빼 놓을 수 없는 의미 깊은 곡이에요.
신우치 마이 (이하 ‘신’) : 저는 어떻게든 ‘질투’를 저희 세트리스트에 넣고 싶었어요. 그래서 2기생 전원에게 ‘질투를 넣어달라고 하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하지만 대답을 해 준 건 미오나와 카린쨩 둘 뿐이었지요. 사실 평소에 자기 의견을 잘 안 내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래서 다들 그런가보다 싶기는 했지만… 저 역시 그런 성격임에도 용기를 내서 의견을 낸 거라 다른 멤버들이 거기에 대해 의견을 이야기 해 주길 바랐던 건 사실이에요. 그리고 멤버들의 그런 반응을 보고 솔직히 좀 불안했지요. 마음 한 편으로 ‘아 괜한 얘기를 했나’싶기도 했고. 당연히 세트리스트를 정하는 건 제가 아니니까 결국 마지막엔 카린쨩이 스태프분께 ‘이런 이야기가 있는데요’라고 이야기를 해 줬고, 그 덕분에 저희 세트리스트에 ‘질투’를 넣을 수 있었습니다.
2기생들에게 할당된 시간 제한상 처음에는 ‘질투’가 빠져 있었으나, 멤버들의 열의가 담긴 제안으로 인해 결국 ‘질투’는 2기생들의 세트리스트에 들어가게 되었다.
어느 학교에나 발표를 해야 할 때에도 좀처럼 손을 못 들고 우물쭈물 거리는 학생은 있기 마련. 노기자카의 2기생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진구라는 스테이지는 그녀들에게 있어 너무나도 의미가 큰 무대였다. 평소 자신의 모습과는 달리 의견을 낸 것은 신우치뿐만이 아니었다.
야 : ‘헤어질 때 더 좋아져’는 저 이외의 보더팀 (2015년 6월 세이부돔 공연 때 승격한 6명) 멤버들에게 있어 승격 후 처음 받는 언더곡이었지요. 그렇기에 그 곡도 꼭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런 마음을 이야기 했습니다. 팬 여러분께도 의미가 있는 곡일테고요.
테라다 란제 (이하 ‘테’) : 왜 ‘질투’가 안 들어가 있는 건지 의문이었어요. ‘질투’와 ‘헤어질 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부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모두 함께 행동을 했습니다. 이 곡들은 꼭 세트리스트에 넣자고. 2기생들은 사실 기는 센데 겁이 많은 아이들이 많거든요. 그런 2기생들이 단체로 움직인 거예요. (웃음)
리허설이 시작된 것은 6월 모일. 각 깃수별로 퍼포먼스를 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멤버들도 다 알고 있었다. 모든 멤버가 모인 리허설룸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은 각 깃수별로 나뉘어 각자의 파트를 연습하던 때에 일어났다.
테 : 2기생들이 리허설을 할 땐 1기생과 3기생들이 그 리허설을 지켜 보는데요,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우리 리허설을 지켜보고 있다는 그 상황이 뭔가 좀 두려웠어요. ‘와, 다들 보고 있네.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리허설을 하기 전에 일단 한 차례 모여서 ‘여기는 이렇게 하면 되지?’라고 서로 확인을 했지요.
신 : 3기생들이 리허설을 하고 있을 때, 2기생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했어요. ‘맞춰야 할 부분은 확실히 맞추자’는 식으로 서로 인식을 공유 할 필요가 있었거든요. 개성을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확실히 맞출 땐 맞춰야 멋이 있잖아요. 그 당시 저랑 히나코, 미오나 셋은 연극 ‘아사히나구’에 출연 할 때라 연습에 그다지 참가하지 못 했었거든요. 연출가분께서도 ‘맞출 땐 맞춰주지 않으면 선배로서 체면이 안 산다’고 몇 번이나 강조하셨고요.
야 : 최소한 3기생 이상의 것을 보여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기에 리허설 때 느끼는 초조함은 대단했지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모여들어서 의논을 시작했지요. 하지만 쥰나 혼자만 2기생들이 모여 의논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해서 1기생들 옆에서 3기생 연습을 보고 있더라고요. (웃음) 물론 나중에 ‘이런 얘기를 했다’고 정리해서 이야기 해 줬지만요.
2기생들은 초조해하고 있었다. 3기생들의 리허설에서는 풋풋함과 신선함이 뚝뚝 떨어지는 것 처럼 보였다. 그리고 1기생들은 감히 쫓아가기도 힘들 눈부신 스타성을 갖추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여주어야 하는 건 무엇인가?’
2기생의 아이덴티티란 무엇인가를 묻기라도 하는 듯한 큰 무대가 눈 앞에 다가 온 순간, 2기생들은 ‘이대로라면 안된다’는 현실을 깨닫고, 떨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날부터 2기생들의 움직임이 점점 더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호리, 키타노, 신우치, 카린, 야마자키가 중심을 잡아주며 ‘콘서트 당일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의논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2기생들은 지금껏 느껴보지 못 했던 단결감을 맛보게 된 것이다.
2기생 탄생. 각각의 나날.
2기생들이 쌓아 온 4년 반이라는 역사에 있어 그녀들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시간은 의외로 매우 적었다. 노기자카라는 그룹 자체가 ‘1기생과 2기생’이라는 식으로 나뉜 게 아니라 ‘선발과 언더’라는 식으로 나뉘어 활동의 장을 구분하는 그룹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노기자카라는 그룹의 활동 주축 뿐 아니라 팬들의 인식 역시 선발과 언더를 큰 기준으로 나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그녀들은 ‘2기생’이라는 식으로 묶이는 일을 거의 겪어보지 못 한 채 4년 반의 역사를 보내 왔던 것이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 해 보면 애초에 노기자카가 2기생을 모집한다는 것 자체가 당시에는 꽤나 충격적인 뉴스였다.
오디션에 응모한 이유 역시 각각 달랐고, 대부분의 응모자들이 노기자카라는 그룹, 1기생들을 동경해서 그룹에 들어오고자 하였다.
사사키 코토코 (이하 ‘사’) : 응모를 한 이유는 여러가지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제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인 ‘마기’의 엔딩 테마가 ‘손가락 망원경’이었던 거였어요. 노기자카 자체는 오빠가 좋아했기에 그런 그룹이 있다는 건 이전부터 알았지만요.
2012년 12월부터 2013년 1월에 걸쳐 열린 응모기간동안 원서를 보낸 소녀들의 수는 약 1만 6천명 이상. 그리고 그 중에서 뽑혀 노기자카 2기생이 된 것은 불과 14명에 불과했다. 경쟁률은 1000:1 이상이었다. 알기 쉽게 싱글로 설명하자면 오디션 응모기간은 4번째 싱글, ‘제복 마네킨’이 발매 되었을 때쯤이었다.
야 : 오디션 때 있었던 일 중에서 기억나는 것은 발표 때 제 번호를 건너뛰고 발표 된 것이랑 쥰나가 엄청나게 청순해 보였던 것 정도네요 (웃음) 푸른 원피스에 찰랑찰랑한 머릿결을 늘어뜨리고 있었어요. 부잣집 아가씨인가 싶었네요.
이토 카린 (이하 ‘카’) : 3차심사 때가 기억나요. 화장실 앞에서 마이츙이랑 만났는데, 그 때 마이츙은 번호가 적힌 팀조끼(젯켄)를 떼었다가 다시 붙이려 하고 있었지요. 그러던 와중에 힘을 너무 줬는지 그 조끼를 찢어버렸어요. 오디션은 시작도 안 됐는데 (웃음) 완전히 두 조각으로 찢어진 조끼를 손에 든 채 ‘이걸 어쩐담…’이라고 제게 말을 걸었는데, 그게 마이츙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뭔가 좀 어설픈 아이였지요. (웃음)
호리 미오나 (이하 ‘호’) : 4차심사때부터 스즈키 아야네랑 사이가 좋아졌지요. 둘 다 지방에서 상경하기도 했기에 말이 통했고요. 그리고 그 날, 함께 도쿄역까지 갔었어요.
멤버들에게 합격통지가 간 직후, 곧바로 레슨이 시작되었다.
테 : 당시에 어땠었는지 솔직히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낯가림 심한 아이들이 많다보니 좀 서먹서먹했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도 반이 바뀐 직후에는 그렇잖아요. 그런 서먹서먹함이 있었어요. 그런 와중에 키이쨩이 항상 신나서 와~ 와~ 거리면서 떠들썩하게 굴었던 기억이 있네요.
호 : 저는 레슨이 있을 때는 야간버스를 이용해서 기후현에서 도쿄까지 왔다갔다 했어요. 가능하다면 매일 레슨에 나가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장기체재가 힘들었기에 레슨은 주말에만 참가했지요. 하지만 다른 아이들에게 뒤쳐지는 건 싫었기에 주말이면 호텔에서 맹연습했어요. 레슨이 끝나면 바로 호텔로 돌아 갔는데, 어디서 밥을 먹어야 하는 지 알 수가 없어서 항상 편의점에서 때우곤 했지요. 기껏 도쿄까지 왔는데도 도쿄를 만끽하지는 못 했어요. 물론 마음에 여유가 없던 것도 있고요.
레슨은 약 한 달에 걸쳐 이어졌다. 보통 한 달에 걸친 레슨이라면 동기들간의 유대감이 깊어 질 절호의 기회가 되겠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않았다.
카 : 미오나와 아야네쨩은 레슨때만 지방에서 도쿄로 오는 생활을 했었기에 전원이 모이기가 힘들었어요. 딱히 서로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대감이 깊어지지도 않았지요. 사실 그 때만 해도 ‘노기자카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이지?’라는 막연한 생각도 들었고, 저나 마이츙 같은 연장자 멤버들은 좀 더 현실적인 것을 생각하고 있기도 했고요. 다른 멤버들은 학교는 어떻게 하냐느니, 앞으로의 희망 같은 것들을 이야기 할 때, 저희 둘은 아무래도 현실적인 면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멤버들끼리 나이 차이가 좀 있는 편이다 보니 아무래도 어린 아이들이랑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가 힘들었던 점도 있었고요.
호 : 개별적으로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모두를 규합하거나 하는 일이 없었기에 단결력이라 부를만한 것도 없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각자 자신이 해야 할 일만으로도 벅찼었던 상황이었고요. 지금도 기억나는 게 하나 있는데, 언젠가 제가 울고 있으려니 쥰나가 제가 좋아하는 명란젓빵을 주면서 ‘괜찮아’라고 위로 해 주었던 거예요.
와타나베 미리아 (이하 ‘와’) : 레슨은 키 순서대로 서서 받았어요. 저나 카린, 란제처럼 키가 작은 멤버들이 맨 앞에 서서 춤을 추었기에 지금도 가끔 농담으로 ‘그 때가 우리 전성기였어’라던가 ‘그 때는 카린이 센터였는데’라고 이야기 하곤 해요. 뭐 2기생들은 자학개그를 많이 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2기생이 처음으로 팬 앞에 공개 된 것은 레슨기간이 끝난 5월의 일이었다. 그리고 소개 무대는 아카사카 ACT 시어터에서 있었던 ‘16명의 프린시펄 deux’ 무대였다. 2기생들은 한 공연마다 한 명씩 소개가 되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특기를 선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공개가 된 뒤, 공식 사이트에도 2기생들의 프로필이 공개, 팬들 사이에서도 2기생들이 화제가 되었다.
카 : 2기생들의 유대감을 이야기 할 때, 가장 먼저 피크에 달했던 것은 8월 4일이었어요. ‘걸즈 룰’ 도쿄 전국악수회 때 2기생들이 퍼포먼스를 했거든요. 그 때 저희가 선보인 것은 ‘달려라! Bicycle’이랑 ‘만나고 싶었을 지도 몰라’였지요. 전악 직전 며칠동안은 전원이 모여 엄청 연습을 했어요. 그 때 처음으로 동기들이 하나가 되었던 것 같아요. 공연을 끝내고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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