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의 센터 발표. 고독한 싸움이 시작되다.
그러던 어느 날, 2기생 역사상 가장 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호리 미오나가 7th 싱글 ’바렛타’’의 센터에 발탁 된 것이다. 이 당시만 해도 노기자카라는 그룹의 센터자리에 섰건 것은 이코마 리나, 시라이시 마이 단 둘뿐. 그룹 가입 직후인 호리가 그 뒤를 이어 3번째 센터가 된 것이다. 1기생 중에서도 겨우 단 두 명 밖에 경험하지 못 한 큰 임무를 2기생이 짊어지게 된 것이다.
호리의 센터 발탁이 대중에게 발표 된 것은 2013년 10월 6일. 요요기 제 1 체육관의 거대 모니터에 ‘중대발표’라는 글자가 등장하고, 17명의 멤버들이 이름이 호명되는 순서대로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한 멤버가 바로 신 센터, 호리 미오나였다. 그 모습을 본 회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관객들의 술렁임이 잦아들지 않는 가운데, 무대에 선 호리가 입을 열었다. ‘처음 겪는 일들 뿐이라 불안합니다만, 저 나름대로 전력을 다 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호리의 말을 들은 멤버들이 박수를 치며 화답했다. 하지만 팬들은 당황을 숨기지 못했다. 그리고 그 날 심야에 방송된 ‘노기자카가 어디야?’에선 정식으로 선발 발표 내용이 발표 되었다. 스튜디오에 녹화를 견학하기 위해 와 있던 호리가 갑작스레 이름이 불리고, 눈물을 감추지 못 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안는 장면이 여과없이 방송되었다. 갑작스런 센터 발탁… 그 때 호리는 아직 연구생 신분이었다.
호리와 사이가 좋은 스즈키 아야네는 그 날의 일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참고로 스즈키는 이 때, 호리와 같은 방을 쓰고 있었다.
스즈키 아야네 (이하 ‘스’) : 그 날 밤은 아무 말도 못 했어요. 둘 다 지방 출신이라 이전부터 같은 방을 쓰게 되는 경우가 많아 사이는 좋았지만… 다음 날 아침, 함께 밥을 먹으면서 ‘힘 내’라고 이야기 해 주었어요. 그 때 이미 미오쨩은 마음을 굳힌 듯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었고, 불안해 보이는 표정도 안 짓고 있더라고요.
하지만… 연구생이 갑자기 센터로 발탁되어 불안하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애초에 호리는 자신의 걱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타입. 의연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마음속은 찢어지는 것 같았다고 한다.
호 : 그 때, 긴장감이 엄청났어요. 집에 있을 때 조차도 편히 있질 못하고 긴장의 연속이었거든요. 춤도 제대로 못 추었던 지라, 어떻게든 무리를 해서라도 선배님들 수준을 따라잡아야만 했어요. 매일 매일, ‘왜 이런 애가 그룹에 들어 온 거야?’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어요. 아무리 자신이 없어도 자신이 있는 척 했었고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기에 긴장감에 견디다 못해 갑자기 눈물이 나올 때도 있었어요. 집에서, 녹화 현장에서, 그 외 여러 곳에서 갑자기 눈물을 쏟곤 했지요. 기본적으로 눈물이란 거,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 나오는 거잖아요. 근데 갑자기 뜬금없이 눈물을 쏟는다는 건, 감정 조절을 제대로 못 했다는 얘기겠지요. 몇 번인가 ‘아 이거 더 이상은 못 버티겠어’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너무 힘들 땐 ‘왜 내가 이렇게 힘들어 해야 하는건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 둬야겠다’고 생각 한 적도 수 없이 많았습니다. 아이돌은 관두고 그냥 다른 길을 찾아볼까도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런 건 결국 일시적인 감정이었고, 찬찬히 생각을 해 보면 객관적으로 봐서 좋은 포지션을 받은 것이었고, TV에 나오는 것도 즐거웠던 데다가, 팬 분들꼐서도 응원 해 주시는 것도 사실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조금씩 이런 환경을 받았다는 것을 즐길 수 있게 되었어요. 애초에 노기자카에 들어 온 건 제가 원했던 일이고, 장래에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목표도 갖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일로 그만두면 이도저도 아니게 되잖아요. 워낙에 성격부터가 지기 싫어하는 부분도 있었고요. 약해 빠진 게 문제지만요…
호리의 센터 발탁은 1기생들은 물론이고 동기들에게도 큰 충격을 안겼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같이 레슨을 받던 동기가, 아니 오히려 주말에만 레슨에 참가하던 아이가 어느 사이엔가 인기 아이돌그룹의 센터에 서게 된 것이니 말이다.
카 : 사실 2기생 중에 누군가 선발에 뽑힐 거란 생각은 했어요. 그리고 그게 미오나였던 거죠. 하지만 설마 센터에 서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요.
야 : 2기생들의 선두에 서게 될 아이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했기에, 미오나가 힘 내 줬으면 했어요. 사실 누군가 선발에 들지 못한다면 많은 분들께서 2기생들의 존재 조차도 모르실 것 같았거든요. 그렇기에 무슨 일이 있다면 힘이 되어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4년 이상 전의 일이다보니 다들 어렸던 것도 사실이라, 힘이 되어줘야겠다 생각하는 아이도 있는 반면, 거기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던 아이들도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건 선발 발표가 있고 난 뒤,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이었어요. 2기생들은 모두들 울고 있었는데, 분하다거나 안타까워서 운다기보다는 갑작스레 벌어 진 사건에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 지 몰라 당황해서 나오는 눈물이었던 것 같았어요.
와 : 처음엔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물론 가장 힘든 게 미오나라는 것도 이해가 됐고요.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미오나랑 이야기를 해 본 적도 많지가 않았기에, 그 일이 있은 뒤로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어떤 포지션으로 다루어야 할 지 판단이 되지 않았어요.
호리 본인도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헤매고 있었다. 선발 일이란 전력을 다 해서 임해야만 하는 일이지만, 호리로서는 선배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이코마 리나가 선발 발표 시점부터 누구보다 먼저 호리를 웃으며 반겨주었고, 아키모토 마나츠 역시 ‘괜찮아. 무슨 일 있으면 언제건 연락 줘’라고 연락을 해 주었다. 호리 본인에게 뭐라 이야기 하는 선배는 한 명도 없었지만…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지레 겁을 먹고 의식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
당시 1기생들과 2기생들 사이에는 미묘한 분위기가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경우, 일반적으로는 후배들이 한 발 물러서는 경우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키 : 1기생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카린이 솔선해서 이끌어 주었어요. 예를 들어 버스에 탈 때 조금 기다렸다가 선배들이 다 탄 뒤에 2기생들이 탄다던가, 준비를 해야 할 게 있으면 2기생들이 먼저 가서 준비를 해 둔다던가. 물론 1기생 선배님들도 ‘고마워’라면서 바로 와서 같이 도와 주셨지만요.
호리를 신경쓰이게 하는 것은 1기생들의 시선뿐만이 아니었다. 2기생들의 시선 역시 그녀가 의식해야만 하는 것이었던 것이다. 자신이 놓인 특수한 상황이나 그런 상황에서 야기되는 복잡한 감정을 진정으로 이해 해 줄 수 있는 동기도 없었을 뿐더러, 센터라는 기회를 받은 ‘축복받은’ 자신이 약한 소리를 하는 건 배부른 소리로 받아들여 질 테니까. ‘바렛타’의 커플링 곡, ‘달의 크기’ MV촬영 내내 고독과 싸우던 호리는 ‘내 고민 같은 건 어차피 작은 거잖아’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리고 그 뒤로 한동안 호리는 선발 멤버로서 스케줄을 소화했다. 당연하게도 동기들과 떨어 져, 둘 사이에 거리가 생기게 된 것이다.
선발 안에서 서로를 지탱해 준 둘.
11월 27일에 발매 된 ‘바렛타’는 호리의 불안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오리콘 차트 1위를 기록했다. 판매량 역시 전작 ‘걸즈 룰’의 첫 주 판매량을 6만장 이상 상회하는 성적을 냈다
그리고 2014년, 노기자카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4월 2일에 발매된 8th 싱글 ‘깨닫고 보니 짝사랑’에서 니시노 나나세가 처음으로 센터에 발탁 된 것이다. 니시노는 악수회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기록하며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기에 그런 그녀가 센터에 선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센터의 등장에 기존 센터, 호리는 프론트, 5복신의 일원으로 내려섰다. 당시 호리는 ‘센터 자리에 연연하지는 않아요. 활동 자체가 즐거운걸요’라고 인터뷰를 하였지만, 2기생 전체적인 시점에서 보자면 호리의 포지션 변화보다 큰 의미를 갖는 사건이 일어났다. 키타노 히나코가 선발에 든 것이다.
호 : 사실 저를 2기생의 대표라고 보시는 경우가 많잖아요. 함께 활동하던 분들이 다 1기생들 분이시니까 여기서 제가 활약을 하지 못한다면 ‘노기자카는 역시 1기생들이지’라는 생각을 하시게 될 거고, 결국 그 이후로 2기생들이 선발에 들 확률이 낮아지게 되겠고요. 그렇기에 항상 ‘뭔가 남겨야만 한다’고 긴장을 했었지요. 그리고 그러다 보니 ‘아, 호리쨩 2기생이었지?’라고 2기생에 대해 관심을 가져 주시는 분도 계셨어요.
이렇게 홀로 고군분투하던 호리에게 있어 키타노의 선발 입성은 크나 큰 낭보였다.
호 : 정말 기쁜 일이었고, 든든하기도 했어요. 센터에 서서 무리를 한 뒤의 싱글이었던 것도 있고요. ‘바렛타’ 활동 당시에도 저를 많이 도와 준 동기가 히나코와 준나였거든요. 공연 리허설 때나 리허설 후에 함께 밥을 먹으러 가기도 했고요. 그렇게 항상 도와주던 동기가 선발에 들어 와 주었다는 데 정말 안심이 되었어요. 그렇기에 8th 싱글 시기동안은 히나코랑 항상 붙어 다녔어요. 그런 모습을 보신 선배 멤버분이 ‘호리쨩은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아이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잘 웃는구나’라고 이야기 하시더라고요. (웃음)
키 : 미오나의 생일이 가까워 진 어느날, 깜짝 파티를 준비했어요. 당시 미오나는 ‘바렛타’ 안무 연습을 해야 했기에 항상 호텔에 돌아오는 게 늦었거든요. 저랑 쥰나, 미오나가 한 방을 썼었는데 케이크를 사 놓고, 풍선을 불어 방 안을 가득 메워 두었어요. 미오나가 방으로 돌아 왔을 때 ‘축하해!’ 라고 축하 해 주었더니 미오나가 갑자기 울더라고요. 그리고 셋이서 고기 먹으러 갔던 것도 기억이 나요. 처음엔 저 자신이 선발에 들어가지 못 한 게 분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미오나를 지탱 해 줘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항상 자신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키타노가 자신의 뒤를 이어 선발에 들어 온 데 대해 안심한 호리, 하지만 키타노의 생각은 좀 달랐다.
키 : 선발에 들어서 기쁘기도 했지만, 사실 기쁨은 10%정도였어요. 사실 나머지 90%는 ‘왜 나지?’라는 의문이었지요. 그도 그럴 것이, 춤도 열등생이었고, 기껏 받은 일들에서도 좋은 결과를 못 냈었거든요. 그래서 ‘난 이제 끝났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선발에 불러주시더라고요. 선발 발표 직후에 2기생 대기실로 돌아가기가 좀 꺼려지더라고요. 다들 제가 춤을 못 춘다는 건 잘 알고 있는데다가, ‘왜 히나코가 뽑힌거지?’라고 의문을 갖고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 때, 미오나가 와서 ‘괜찮아. 같이 힘 내자’라고 말을 걸어 주었어요. 저도 모르는 사이, 전작 센터를 겪으며 미오나는 정말 많이 강해 져 있더라고요.
키타노와 호리가 2기생 대기실로 들어 간 순간, 나머지 2기생들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키타노에게 ‘너 춤 어쩌냐.’라고 농담을 건네고, 선발 입성을 축복 해 주었다.
호리와 키타노는 동년배이다. 오디션 때 이미 이 점을 알고 있었던 키타노는 합격 발표 직후에 호리에게 다가가 ‘우리 같은 나이지?’라고 말을 걸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딱히 거리가 좁혀질 일은 업었지만, 호리가 센터에 발탁 된 그 날, 호리를 걱정한 키타노는 ‘지금까진 그다지 이야기 할 기회가 없었지만, 앞으로는 좀 더 기대도 돼. 동기 중에 유일한 동갑내기잖니’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줄어들지 못했던 두 사람간의 거리는 두 사람의 공통된 친구, 이토 쥰나가 메워 주었다.
8번째 싱글기간은 말하자면 키타노를 실험 해 보는 기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뒤이어진 9번째 싱글 ‘한 여름의 Free & Easy’ 선발 멤버중에 키타노의 이름은 없었다.
키 : 8th 싱글 자켓 사진 촬영이 제 첫 선발 일거리였어요. 테마는 ‘눈물’. 멤버들을 모아 놓고 눈물이 난 멤버들부터 촬영을 진행했는데, 저는 아무리 슬픈 영화를 봐도, 슬픈 동영상을 봐도 눈물이 나지 않더라고요. 결국 제 촬영이 가장 나중으로 밀렸지요. 그리고 얼마 안 되어서 처음으로 그라비아 촬영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도 자연스럽게 표정이 지어지지 않아서 결국 촬영이 몇 번이나 중단되었어요. 사진을 찍는데 미소밖에 못 짓겠더라고요. 지금 생각 해 보면 ‘그라비아’라는 일에 대한 이해 자체가 없었던 거죠.
키타노 본인도 이야기 하듯이, 당시의 키타노는 아직 실력도, 경험도 부족했다. 다음 싱글에서 선발에서 탈락 한 것도 어찌 보면 타당한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싱글에서 위상이 변화한 것은 키타노만이 아니었다. 호리 역시 3열로 밀려버렸던 것이다. 2기생들 머리 위에는 뿌옇게 흐린 하늘이 햇빛을 가리고 있었다.
8번째 활동기간 동안 일어 난 일들 중에 이런 일도 있었다. 지금은 2기생들 사이에서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로 회자 되는 에피소드이다.
키 : 선배들이랑 아직 좀 거리감이 있던 시기였기에 저 역시도 보통은 2기생들이랑 있곤 했어요. 하지만 언제부턴가 2기생들하고 있는데도 좀 어색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제 난 여기서도 이해 받지 못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괴로웠어요. 제게 있어서 동기들과 부딪힌 건 그 때가 처음이었어요. 그리고 오해가 풀린 건 다음 싱글 언더 라이브때였어요. 라이브를 성공시키기 위해 멤버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만 하기에 ‘우리 동기잖아. 함께 열심히 하자’고 이야기를 했어요. 동기 사이에서 있었던 일들 중에는 그게 제일 인상적이었네요. 뭐, 이후로도 자주 부딪히곤 했기에 그거 하나하나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지만요. 미오나랑도 몇 번이나 부딪혔어요. 둘 다 물러서지 않는 타입이다 보니.
생각이 물렀던 우리들을 일깨워 준 선배님의 일갈
10번째 싱글 ‘몇 번째 보는 푸른 하늘인가?’ 땐 호리, 11번째 싱글 ‘생명은 아름다워’에선 호리와 사가라 이오리가, 12번째 싱글 ‘태양 노크’ 땐 신우치 마이가 선발에 입성하였다. 하지만 이 시기, 2기생들의 자리는 항상 3열이었다. 2014년 여름 이후로 한동안 2기생들은 2열의 벽을 깨지 못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선발에 든 2기생들은 연구생 딱지를 떼고 승격, 특수 케이스인 이토 카린을 제외하고는 ‘선발에 들면 정규 멤버가 된다’는 시스템이 확립되어 가고 있었다.
사가라 이오리 (이하 ‘사’) : 학교 사정으로 초기 때 레슨에만 참가하고 그 이후로는 학업에 전념했었거든요. 학업을 끝내고 복귀 한 것 까지는 좋았지만 다른 멤버들이 전부 안무를 마스터 하고 있는 반면 저는 하나도 모르고 있던 상황이라 정말 초조했어요. 집에서 동영상을 보며 연습하려고도 해 봤지만 맘처럼 되지 않더라고요. 언더 라이브에 처음 나갔을 때가 아직도 기억 나요. 솔직히 말 하자면 춤도 다 모르는 상태로 라이브에 나갔었거든요. 춤을 제대로 추냐 마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저 다른 멤버들의 동선을 방해하지 않는 것 만으로 벅찼어요. 초조함… 이라기 보다는 공포에 가까운 느낌이었지요. 활동을 재개하고 10달 정도 지났을 때, 갑자기 선발에 뽑아주시더라고요. 선배님들과의 경험 차이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초조해지더라고요. 하지만 선발 기간이란 건 너무나도 한 순간에 끝나버리거든요. 그래서인지 그다지 기억에 없어요. 선발에서 탈락했을 때는 너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아니, 애초에 제가 선발에 뽑힌 게 이상한 일이었으니까요.
호 : 이오리가 그룹에 돌아 왔을 때, 2기생들은 엄청 혼란스러워했어요. 선발에 드는 것도 빨랐고, 복귀하자마자 여러 잡지에도 나갔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이오리의 복귀가 2기생들에게 하나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마이츙이 처음 선발이 되었을 땐 OL겸임 아이돌로서 주목을 받았던 때이기에 납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이츙 같은 경우에는 활동 내내 즐거워 보이기도 했지요.
신 : 선발에 든 게 큰 기회였지요. 하지만 제가 그 기회를 잘 살리지 못했어요. 매일 새로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새로운 것들을 많이 경험하긴 했지만, 생각할 시간이 없었거든요. 녹화 해 둔 방송들을 보며 공부 할 시간조차도 없었거든요. 예를 들어, 음악 방송에 나갔을 때, 시간이 없어 체크를 하지 못 한 결과 제 나쁜 자세를 교정하지도 못 했을 정도예요. 선발 기간이 끝난 뒤에야 그런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느꼈는데, 이미 때는 늦었었죠.
카 : 저 같은 경우에는 사실 그냥 나이가 많아서 승격 시켜 준 것 같아요. (웃음) 승격 기준이 뭐였는 지는 아직도 모르겠고요. 사실 학생도 아니었기에 시간이 많아서 활동을 좀 더 많이 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시간은 많은데 활동 자체가 별로 없으니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더군요. 그 당시에는 정말 눈 앞이 깜깜해서 아무런 희망이 없었어요.
그리고 그런 힘든 시기에 시작 된 것이 바로 ‘언더 라이브’였다. 2014년 4월, 마쿠하리 멧세에서 열린 무료 라이브를 시작으로 선발이 아닌 ‘언더’ 멤버들이 퍼포먼스를 선보일 기회가 생겨 난 것이다. 하지만 마쿠하리, 그리고 5월달의 도쿄 시부야, 나고야로 이어진 일련의 라이브에도 신우치 이외의 2기생들은 참가하지 못했다.
2기생들이 처음으로 전원 참가 가능하게 된 것은 6~7월, 롯폰기와 시부야에서 열린 언더 라이브때 부터였다. ‘Vol.1’이라는 번호가 붙여 지지는 않았지만, 실질적인 ‘언더 라이브 시즌 1’ 공연이라 부를만 한 공연이었다.
이 공연에 참가 한 것은 1기 언더 멤버들과 호리를 제외한 2기생들 (호리가 깜짝 출연하여 ‘바렛타’를 선보이긴 했지만, 그 공연에도 2기생들이 전원 출연하진 못했다)이었다.
그리고 이 공연때, 2기생들의 뇌리에 깊숙이 각인 될 사건이 발생했다.
라이브라는 것을 거의 경험하지 못 한 2기생들은 라이브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지 조차 감을 잡지 못했다. 호리 이외의 2기생들이 ‘바렛타’를 공연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제대로 된 연습도 해 보지 못 한 채 리허설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2기생들의 모습을 본 나가시마 세이라가 결국 폭발했다.
카 : 라링상이 엄청 화 내셨어요. ‘왜 비는 시간에 좀 더 연습을 안 한 거야? 기껏 라이브에 나올수 있게 되었잖아. 겨우 언더 멤버들에게도 빛이 비추어지게 되었는데 왜 그러는거니?라고… 생각 해 보면 그 말이 맞았어요. 스테이지를 대하는 저희의 생각이 너무나도 물렀던 거죠. 그 일이 있을 뒤 한동안은 리허설을 하러 가는 게 좀 무서워 질 정도로 트라우마가 되었어요. 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무대를 대하는 자세가 많이 변했지요.
와 : 그 날, 혼 났던 건 아직도 기억해요. 사실 그 때 말고도 리허설 때 마다 혼이 났었지요. 처음 전국 투어에 참가 했을 때도 리허설 때 1기생 선배들에게 혼이 났었어요. ‘좀 더 미소를 지어’라던지 ‘객석 분위기를 유도 할 땐 관객분들을 바라보며 해야지’라던가. 사실 저 나름대로는 한다고 한 거였지만, 모니터로 확인을 해 보니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 때는 선배들이 좀 많이 무섭게 느껴졌어요.
이 일의 가장 큰 원인은 역시 1기생들과 2기생들의 경험, 경력의
차이에서 기인 한 것이리라. 일을 대하는 자세, 마음가짐
자체가 너무나도 달랐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2기생들이
선발에 들어가는 건 시기상조였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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