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다녔던 유치원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는 건 이상한 것들 뿐이에요. 낮잠 시간 때 선생님들이 아이들이 잠을 자나 안 자나
보고 다니셨는데, 그 선생님이 무서워서 잠도 안 오는데 자는 척 했던 거나 그 선생님이 간식을 주셨는데, 제가 좋아하는 사과인 줄 알고 깨물었더니 파프리카였던 것이다. 솔직히
엄청 맛 없었는데 그렇다고 무서운 선생님께 돌려 드리는 것도 무서워서 집에 갈 때 까지 깨작깨작 먹었던 기억이 있네요.
그리고 팔에 상처가 날
정도로 제 팔을 깨문 아이가 있었어요. 당시에는 '아 물렸네… 짜증나'라는 정도로만 생각 하고 크게 반응하지 않을 정도로 얌전한
아이였지요.
지역 이벤트 중에 '라테르네'라는 게 있었는데 풍선 안에 라이트를 넣고 그 풍선을 들고
행진을 하는 행사였어요. 그런데 한 번은 그 풍선에 그리는 그림 디자인을 제가 했었답니다. 디자인이 호평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때부터 그림 그리는 재능이
있었던 것 같네요.
초등학생시기
달리기가 엄청 느렸기에
운동회 때 달리기를 하면 항상 5명 중 5등이었어요. 하지만 그림은 여전히 잘 그렸습니다. 그림으로 상을 받은 적도 있을
정도니까요. 아니, 초등학생 레벨의 '잘 그린다'와 어른들의 '잘
그린다'는 다르잖아요. 정말로 초등학교 때는 완벽했다니까요.
하지만 수업중에는 손도
들지 않을 정도로 소극적이었어요. 2학년 때 뮤지컬 '애니'를 보고 뮤지컬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지요. 물론 당시에는 '꿈'이라 할 정도는 아니었고, 가볍게
'한 번쯤 저 무대에 서 보고 싶다'는 정도였지요.
중학생시기
중학생 때는 엄청 진지하고
성실한, 선생님들이 좋아하시는 타입의 학생이었어요. 중 2때 학급위원이 된 뒤로 '똑바르게 행동해야 해'라는 부담감을 느꼈어요. 그리고 그 뒤로는 어딘지 얽매인 느낌이었지요.
그렇게 보내 온 제게 있어
중학교 3년 중 유일한 '청춘'은 중 3때 갔던 수학여행이었지요.
원래 일정은 여러 절들을 돌아다니며 견학하는 것이었지만, 같은 조에 있던 리더격 아이가
선도해서 다들 중간에 빠져나가 카모가와에 가서 물장난을 하고 놀았지요. 인생 첫 '반항'이었지요. (웃음)
노기자카에 들어 온 것은
중 3때의 일인데요, 솔직히 '아이돌이 되고 싶다'는 이유 보다는 '소니'라는 대기업이 기획한다는 것이 응모 한 큰 이유였어요. 합격 한 뒤 같은 반 아이들이 '이쿠타상이 왜?'라고 반응했었어요.
고등학생시기
고등학교 3년단은 정말 힘들었어요. 그룹이 시작 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이었기에
학업에 전념 할 수가 없었거든요. 친한 친구가 둘 있었는데요, 요즘은
만나면 '밝아졌다'고 놀라곤 해요. 저 스스로는 기억이 없는데, '에리카쨩,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적이 있다'고 할 정도였지요. 친구들 역시 '피곤할 테니 말 걸면 안 되겠지'라고 생각했다고 하더라고요. 학부모 면담때 선생님께서도 '이쿠타상은 '말 걸지 마 아우라'를
내뿜었어요'라고 하셨던 것을 생각
해 보면 뭔가 내뿜긴 했나 보네요. (웃음)
Part 5
'가족들의 이야기'
어머니가 딸에게
어릴 때부터 '한가한데 뭐 할까?'라는 고민을 한 적이 없는 아이였어요.
항상 뭔가를 묵묵히 노력하고, 그런 노력을 힘들어 하지 않는 타입이거든요.
순수하게 다른 이들의 조언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가치관과 조화롭게 재구성하려 노력 하는 아이이긴 합니다만, 애초에 완고한 성격인지라 조언을 전부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거든요. 아마
자연히 취사선택 하고 있을 겁니다.
최근 들어서는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분들과 접하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늘어, 자극을 받아 시야가
넓어 진 것 같습니다. 축복받은 환경에 감사 할 따름이지요.
때로는 자기 능력 이상으로
일이 많아 고생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일 자체는 재미있고 보람이 있는 것 같아 다행이네요.
Part 6
'노기자카46'
- '무지개색 프렐류드' 이후로 그룹 외 연극 일이 많이 늘어 났는데요, 심정적으로 변화는 있었나요?
이 : 노기자카에 들어 온 뒤엔 사실 그렇게 고민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어요. 바쁘기도
했기에 '멈춰서서 고민할 바에는 일단 전진하자'고 생각했거든요. 어떻게 보자면 '기계적'이었다고
할 수 도 있을 거고, '깊이'가 없는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아이돌과는 달리 무대는 긴 시간을 들여 완성시켜 나가는 것이기에 자신의
능력을 뼈저릭 느낄 수 있거든요. 주변에 있는 분들이 워낙 쟁쟁한 분들 뿐이시다 보니 더더욱 저 스스로의
약함을 알고, 스스로를 마주봐야만 하는 것이지요. 그런 갈등을
겪으며 조금은 인간적이 된 것 같아요.
- 그러다 보면 갑자기 고민들이 몰아닥쳐서 당황하게 될 것 같은데요.
이 : 네. 엄청 패닉이었어요. 그럴
땐 혼자 고민 해 봤자 해결 될 게 없으니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요. 선배님들께 조언을
듣는 것도 중요하고, 때로는 그저 대화를 나누는 것 만으로도 도움이 되지요. 기본적으로 고민을 해결 하는 방법은 노력을 통해 제 능력을 키워 극복하는 것 밖에 없으니까요. 해 낼 수 밖에요.
- 이쿠타상은 스스로가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 전혀 없다고 생각해요.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못 하는 인간이기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부러워요. 뮤지컬을 하다보면 사전에 발성을 하지 않고도 갑자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요, 저는 노래를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는데다가, 목소리를
내는 것도 여러 모로 생각을 해서 내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감성만으로 해 낼 수 있는 타입이 아니다
보니…
- 많은 사람들이 이쿠타상을 보고 '천재형'이라 평가하는데요, 그런 타인들의 인식과 스스로의 의식 사이에 차이를
느끼거나 하신 적은 없나요?
이 : 피아노 교실을 다닐 때만해도 저보다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은 수두룩했던 데다가, 뮤지컬이나 드라마 오디션에도 수 없이 떨어졌는걸요. 애초에 저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그렇기에 지금처럼 일이 끊기지 않고 들어 오는 환경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 지는 잘 알고 있는데다, 항상 과거를 생각하며 초심을 잃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어요. 노기자카를 졸업 한다면 지금처럼 활동 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현실이 아니잖아요.
- 다른 사람을 질투하거나 한 적은 없나요?
이 : 질투라 해야 하나요. 저도 인간이다 보니 다른 이와 자신을 비교하게
되는 경우는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이니까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무엇을
하건 찬반이 나뉘는 것은 당연하니, 무엇을 하건 받아들여 주지 않는 사람은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고요. 하지만 응원 해 주시는 팬 분들께서 항상 '그렇게까지 날 생각 해
주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를 생각 해 주시기에 '이
분들을 항상 소중히 여겨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지요. 그런
분들을 위해서 노력 해 나가는 과정에서, 새롭게 저를 '괜찮다'고 생각 해 주시는 분들이 늘어나신다면 그 분들 역시 소중하게 여겨 나가는 것이지요. 아무래도 사람들이란 마이너스적인 것들에 주목하기 쉬운데요, 그런
상황에서도 잘 찾아보면 플러스적인 것들은 반드시 있으니까, 그런 플러스적인 것들을 발견 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 아까전에 '대화를 하는 것 만으로도 도움이 된다'고 하셨는데요, 노기자카 멤버들과 이야기를 하며 도움을 받거나 하시나요?
이 : 당연하죠. 예전에는 좀 냉정한 부분이 있어서 '숙제 해야하는데 왜 다들 떠드는거야'라며 '내 세계를 방해하지 말아 줘'라는 아우리를 뿜었었는데요, 요즘은 다른 멤버들이랑 대화를 나노는 게 즐거워요. 아, 물론 다들 해야 할 때는 하는 아이들이기도 하고요.
- 그러고 보면 '튤립'의
일원이시기도 하지요.
이 : 네. (웃음) 아마 예전
같았으면 들어가지 않았을 거예요. 지금은 완전히 물들어 버렸지만 (웃음)
- 작년 말에는 MTV 언플러그드에 출연하시기도 했지요. 세트리스트는 스스로 정하셨나요?
이 : 노기자카 곡들 중에는 좋은 곡들이 많은데요, 리듬감이 중요한 곡들이
많은 편이잖아요. 그런 리듬감이 있는 곡들을 천천히 곱씹으며 불러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선보일기회가 많지 않은 유닛곡, '나, 일어나'를 오프닝 액트로 해 보거나, 단순한 노래방 분위기가 되는 것도 곤란하니 블록을 나누어 본다던지.
- 하시모토상의 솔로곡 '나이모노네다리'나 나카모토상이 센터에 서신 곡 '너는 나와 만나지 않는 편이 좋았으려나'도 부르셨는데요. 아이돌 활동에 '졸업'은 떼어 놓을 수 없는 일입니다만, 멤버들이 좋업을 할 때마다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있으신가요?
이 : 6년 이상이나 함께 해 온 멤버들이니까요. 아무래도 쓸쓸해지죠.
- 도쿄 돔에서 있었던 더블 앙코르 때 나카모토상과 함께 걸으며 눈물을 흘리시는 이쿠타상의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어요.
이 : 기본적으로는 멤버들이 졸업 할 때엔 웃으며 응원을 담아, 밝게 보내주려는
편이거든요. 하지만 역시 히메탄 같은 경우, 졸업을 발표
한 뒤 함께 일을 할 기회가 없었고, 돔 공연때도 함께 부르는 곡이 없었기에 정말로 그 더블 앙코르곡이
'겨우 함께 설 수 있는' 스테이지 였기에 엄청나게 감정이
복받쳐 올랐어요. 제게 있어 히메탄의 졸업과 함께 노기자카라는 그룹의 제 1장이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존재였습니다. 히메탄은.
- 이쿠타상을 돌봐 줄 멤버가 졸업한 것이기도 하지요.
이 : 그렇지요~ 다른 멤버들은 저를 못 본 척 하는 방법을 알아 버렸기에
요즘은 주로 3기생들에게 접근하곤 해요. (웃음) 아직은 어울려 주거든요. 특히 하즈키쨩이나 미즈키쨩이.
- 이쿠타상, 지금처럼 끊임 없이 일이 들어 온다면 졸업 하실 필요는
없지 않나요?
이 : 팬 여러분께서 '졸업 하지 마'라고
말씀 해 주십니다만, 현재로선 졸업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제가
이렇게 제 꿈을 좇아 갈 수 있는것도 전부 제가 노기자카라는 그룹에 있는 덕분이라 생각하거든요. 노기자카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연예계라는 꿈 자체를 포기 했을 지도 모르지요. 그런 식으로 그룹에 신세를 진 만큼, 그룹에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마음, 이 그룹에서 새로운 발견을 하고싶다는
마음이 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