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늙은이’
이토 리리아의 경우
이토 리리아는 오키나와현 출신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3학년 때 까지는 도쿄에 살았었다고.
“어릴 적에 연예계 생활을 했었어요. 사실 연예계 일이란 게 어른들에 둘러싸이기 마련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소위 말하는 ‘애 같은 애’가 아니었지요.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이야기 하지 못 하’고 ‘어리광도 부리지 못 하’는 그런 아이요. 학교 친구들은 다들 순진무구한데 저는 그렇지 않았지요. 힘든 일이 있어도 전부 ‘괜찮다’고 이야기 하곤 했어요. 그런 탓에 저 스스로에 대해 ‘싫은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아 왔지요.”
그래서였을까, 오키나와로 이사를 가게 된 그녀는 ‘이사 가면 내 기분을 솔직하게 말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마음 먹고, 성격을 바꾸려 노력하게 되었다.
그런 그녀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어느 날, 어린 그녀의 마음을 빼앗는 일이 생겼다.
“그 당시 R의 법칙에 출연하시던 사이토 아스카상을 보고는 한 눈에 반해버렸어요. 어느 정도 좋아했냐면… 이런 일이 있었어요. 한 번은 게스트로 덴파구미 inc.의 모가미 모가상이 나오셨었거든요? 모가상은 스스로를 ‘보쿠’라고 부르시는데 그 모습을 본 아스카상이 조그맣게 ‘귀여워…’라고 말씀 하셨거든요. 그 말을 듣고 ‘아니 그 독설캐 아스카상이 귀엽다고 하시다니!’라고 충격을 받았어요. (웃음) 그리고 ‘나도 나 부를 때 보쿠라고 해야지’라고 마음 먹고, 그 다음날부터 바로 스스로를 ‘보쿠’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사실 지금도 친구들을 만나면 저도 모르게 스스로를 ‘보쿠’라고 하곤 해요. (웃음)”
자기 자신을 부르는 말조차도 바꾸게 될 만큼 사이토 아스카를 동경했던 이토. 중학교 1학년 2월 때 노기자카 3기생 모집 광고를 본 그녀는 부모님을 설득하여 오디션을 받게 되었다. 결과는 합격.
“설마 도쿄에 돌아 올 수 있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하지만 항상 동경 해 온 노기자카의 일원이 되어 활동 할 수 있게 된 것, 그리고 11명의 동기들을 만나게 된 것이 정말로 기뻤어요. 희망으로 가슴이 가득 찼지요.”
‘항상 울고 있던 소녀’
오오조노 모모코의 경우
“유치원 때를 떠올려 보면 항상 울고 있었던 기억밖에 없어요. 주저하다 화장실에 못 가서 옷에 실례를 하고 울고, 혼나서 울고… 가족들과 함께 디즈니 랜드에 갔을 때는 늑대 인형탈을 쓴 스태프분을 보고 겁 먹고 울면서 도망다니다가 미아가 되기도 했어요.”
오오조노 본인의 말에 따르면 과거 기억은 언제나 ‘울었던 기억 밖에는 없’었다고 한다. 초등학생이 된 뒤로도 그런 성향은 변함이 없어,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힐 정도였다고.
“중학생이 된 뒤로도 우는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어요. 같은 반 아이랑 말싸움을 하게 되었을 때도 감정이 갑자기 복받쳐 올라서 펑펑 울기도 했고요. 고등학생이 된 뒤로도 계속 울었고요.”
그리고 그녀가 고 2가 된 해의 봄.
오오조노가 잘 따르던 선배가 ‘노기자카 3기 오디션 한 번 봐 보라’고 그녀를 설득했다.
“제가 따르던 선배님이 세 분 계셨는데요, 그 중 한 분이 이쿠타상 팬이셨어요. 그 선배님이 오디션을 한 번 보라고 하시길래 별 생각 없이 폰으로 응모를 했더니 어느 날 ‘2차심사 보러 오세요’라는 편지가 오더라고요. 선배님께 그 일을 이야기 했더니 ‘가고시마시에서 오디션이 있으니까 오디션 끝나고 시내에서 놀다 오면 되겠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좋아하던 선배님이기도 했으니 함께 놀 수 있겠다는 생각에 ‘네! 그럼 참가 할게요!’라고 이야기 하고 즐겁게 2차심사를 받으러 갔어요. 하지만 정작 2차심사 오디션 회장에서는 너무 긴장해서 펑펑 울었어요. 하지만 오디션이 끝나고 선배님들이랑 다시 만나, 함께 고기 먹고 ‘오늘 정말 즐거웠어’라며 집으로 돌아 왔지요.”
선배들의 응원 덕분일까, 2차 심사도 무사히 통과한 오오조노는 3차심사 참가를 위해 도쿄로 상경하게 되었다. 오오조노의 모친의 ‘도쿄 여행 겸사겸사 다녀오면 되겠네’라는 말에 다시금 두근거리며 도쿄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오오조노. 하지만 2차심사 때와 마찬가지로 정작 오디션 회장에서는 긴장 때문인지 눈물을 쏟아냈다.
“생각 해 보면 모든 심사 때 마다 울었던 것 같아요. 최종 심사때도 ‘노기자카의 좋은 점은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뭐라 대답하려 했었는 지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울었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오조노는 멋지게 오디션에 합격하였다. 심지어 잠정 센터에까지 뽑히는 의외의 결과가.
“기자회견이 끝나고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느 사이엔가 인터넷 뉴스에 오디션 얘기가 올라왔더라고요.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니까 저희들 사진이 올라 와 있는데, ‘아, 모모코가 한가운데야!’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또 눈물이 나더라고요. 솔직히 ‘아 나는 노기자카에서 잘 해 나갈 자신이 없어’라고 생각했어요.”
어릴 때부터 항상 울기만 하던 소녀는 자신답게 울면서 노기자카를 걸어 오르기 시작했다. 눈 앞에 펼쳐진 긴 언덕길은 눈물로 얼룩져 잘 보이지 않았다.
‘너무 분위기를 타 버려서…’
사토 카에데의 경우
“제가 다니던 학교는 중고등학교가 같은 재단인 학교였거든요. 당시 학교 친구들은 하나같이 재미있는 아이들 뿐이었어요. 사실 저 같은 경우, 주변 사람들이 띄워주면 분위기를 너무 타서 실수를 하곤 하는 타입이거든요. 예를 들어 중 1때 같은 반 아이 치마를 들추다가 선생님한테 혼난다던가, 친구랑 서로 지우개를 던지며 지우개 싸움을 하다가 친구 눈에 지우개를 맞추어 양호실로 보낸다던가…”
그러다 보니 선생님들에게 혼나는 건 일상다반사.
“저희 학교는 수학여행 때 과자를 갖고 오면 안 되었거든요. 그런데 팝콘을 숨겨서 갖고 가서는 밤에 팝콘을 먹고 있으려니 선생님들이 갑자기 저희 방으로 들어 오시는 거예요. 일단 입에 있는 팝콘을 빨리 삼켜버리려고 급하게 씹다가 딱딱한 옥수수를 잘못 씹어서 어금니가 깨졌어요. 물론 제 책임이긴 하지만 저도 억울한 게, 분위기를 타다가 큰 일이 나는 건 항상 저란 말이죠.”
항상 개구지고 실수투성이였던 그녀지만, 대학 입시에서는 한 차례 좌절을 맛 보았다. 항상 즐거웠던 중, 고교시절과는 달리 자신이 원했던 대학이 아닌, 성적에 맞추어 들어 간 대학생활은 너무나도 지루하고 심심한 매일매일이었다고.
“중학교, 고등학교 6년이 너무나도 즐겁고 농도 짙은 시기였기에 대학교 생활이 전혀 즐겁지가 않았어요. 항상 ‘이런 평범한 매일매일이 바뀌었으면 좋겠어’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던 와중에 3기생 모집 소식을 알게 되었지요. 물론 대학교 1학년이었기에 너무 늦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안 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니시노 나나세상도 좋아했고, 노기자카의 청순한 분위기도 좋아했기에 도전 해 봐야하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그러면 이런 지루한 매일매일이 바뀔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고요.”
그리고 오디션 결과는 합격.
“정말 기뻤어요. 사실 지금까지 인생을 살며 그렇게 열심히 노력을 했던 적이 없었기에 제 인생에서 가장 노력해야 할 시기가 바로 노기자카에 들어 온 지금이라 생각해요. 각오도 되어 있고요. 그리고 앞으로 몇 년이 지나건 간에 초심을 잊지 않겠다는 각오도 되어 있고요. 지금까지의 경험에서 보자면 분위기를 타면 항상 실수를 하니까요. (웃음)”
‘태어나자마자 연예계로 들어 온’
이와모토 렌카의 경우
노기자카46 최연소 멤버 이와모토. 올 해 겨우 13살에 불과한 그녀의 연예계 생활은 태어난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저 스스로는 기억 못 하고 있지만, 아기 때부터 모델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연예계에 관심이 있었어요.
사실 저, 아시다 마나상보다 한 살 위거든요. 마나상이 나왔던 드라마 ‘마루모의 법칙’을 처음 보았을 때, 정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쟤는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인데도 저렇게 연기를 잘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그 날 이후로 배우라는 일에 관심이 생겨서 초등학교 4학년때 연예 사무소에 들어 갔어요.”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된 한 장의 사진이 그녀에게 새로운 충격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언니가 노기자카 팬이었거든요. 그 영향으로 저도 별 생각 없이 노기자카의 사진을 찾아보곤 했어요. 그러다가 사이토 아스카상 사진을 보게 되었지요. 정말이지 너무나도 눈부시게 빛나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와 진짜 여신이다! 나도 아스카상 같은 아이돌이 되고 싶어!’라고 결심했지요.”
그녀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던 해, 노기자카 3기생 모집이 시작되었다. 이와모토는 자신이 속해있던 사무소를 그만두고 오디션을 선택하였다.
“물론 고민 했지요. 하지만 노기자카에 들어 가, 활약 한다면 더 많은 분들께 응원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노기자카에 들어 가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철이 들기 전부터 연예계에 몸을 담아 온 이와모토는 이렇게 새로운 한 걸음을 걷게 된 것이다.
‘진성 팬에서 멤버가 된’
무카이 하즈키의 경우
무카이 하즈키는 자타가 인정하는 ‘노기자카 팬’이었다. 심지어 팬 활동을 시작 한 때가 초등학교 6학년때였을 정도이다.
“저 사실은 ‘노기도코’ 1화부터 빠짐없이 봤어요. 소위 말하는 ‘고참 오타’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악수회나 라이브를 찾아다니기 시작 한 것은 ‘너의 이름은 희망’ 때 부터였고요. 그 이후로 빠짐없이 악수회에 다녔었지요. 참고로 오시멘은 호시노 미나미상입니다.”
언제나 생글생글 웃으며 낯가림도 별로 없는 무카이는 여학교였던 모교에서는 이미 유명한 인기인이었다. 그런 그녀가 노기자카의 오디션을 받게 된 것은 고 2때였다.
“사실 개인적으로 3기생을 모은다는 점에는 반대입장이었어요. 1기생과 2기생 여러분이 만들어 온 당시의 노기자카라는 그룹을 좋아했었기에 ‘3기생 따위 필요 없어!’라는 자세였거든요. 하지만 한 편으로는 ‘재미 삼아 응모나 해 볼까’라는 생각도 했어요. 때마침 응모 요강에 ‘핸드폰 사진도 무방’하다고 되어 있었기에 적당히 사진을 찍어서 보냈어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DSLR까지 동원하여 본인 사진을 찍은 무카이.
“그런데 사진이 엄청 잘 나온 거예요! 그 덕분에 1차 심사에 무사히 통과 한 거라 생각해요. 그렇게 보면 DSLR에게 감사해야겠지요?”
그 뒤로도 순조롭게 심사를 통과하여 최종심사까지 진출한 무카이.
“사실 최종심사를 앞두고 여름 전국투어 파이널 진구구장 공연을 보러 갔었어요. 그런데 그 때 이상하게도 ‘객석에서 보는 노기자카 라이브는 이게 마지막이겠네. 다음번에는 멤버로서 참가하게 될 거야’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딱히 자신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꼭 붙겠다’는 마음 때문에 그렇게 느낀 게 아닌가 싶어요.”
최종 심사 결과, 무카이는 멋지게 합격하여 노기자카의 일원이 되었다.
“예전부터 팬이었던 노기자카에 들어 왔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실제로도 합격 발표 이후 첫 댄스레슨까지 한 달 정도 공백기가 있었기에 더더욱 실감이 나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요.
이렇게 말 하면 변명같긴 하지만, 합격했다는 기쁨 때문인지 갑자기 엄청 식욕이 땡겨서 며칠간 계속 밤에 야식을 먹곤 했어요. 그러다 보니 11월이 되어 오랜만에 멤버들을 만났을 때는 체중이… 회사 입장에서는 저한테 사기를 당한 느낌이셨을 거예요.”
언제나 생글생글 웃는 사랑받는 캐릭터, 무카이. 그리고 누구보다도 그룹을 사랑했던 그 소녀는 이렇게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노기자카를 오르기 시작 했던 것이다.
‘기나 긴 출발점’
야마시타 미즈키의 경우
야마시타 미즈키가 처음으로 아이돌을 꿈꾸게 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아이돌이라는 꿈을 갖게 된 그녀는 곧바로 레슨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레슨만 받던 시기가 정말 길었어요. 실제로 제 실력이 충분한 지 어떤 지도 자신이 없었기에 ‘나는 재능이 없구나’ 싶어서 결국 그만두게 되었지요.
아이돌의 길을 포기 한 뒤, 새롭게 들어 간 연예 사무소는 배우 사무소였지요. 하지만 아이돌에 대한 꿈을 완전히는 포기 할 수 없어서 연극이나 드라마 오디션을 받으러 다니면서도 매일 레슨을 받으러 다녔어요. 아무리 오디션을 받아도 결국 합격하는 것은 없었지요. 그런 상황이 1년이나 이어지다 보니 ‘역시 내겐 재능이 없어. 무리야’라고 생각이 들어 중 3이 되었을 때엔 ‘다 포기하고 공부해서 고등학교 진학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사무소를 그만 두게 되었어요.”
연예계에 대한 꿈을 접은 야마시타는 수험 공부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2년간이나 연예인이 되기 위해 공부를 등한시 했던 공백은 상상 이상으로 큰 것이었다. 결국 야마시타는 고교 입시에서도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원했던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 한 것이다.
“아, 정말 인생 전부 끝장났구나… 싶었지요. 정말 절망적이었어요. ‘중 1때부터 중 3때까지 뭐 하나 제대로 한 게 없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심지어 연예계로 나가기 위해 사무소에 들어갔었다는 게 같은 반 아이들에게 발각나서 인간관계도 파탄이 나 버렸지요.”
원했던 학교는 아니지만 그래도 고등학교에 진학 한 야마시타는 ‘이제부터는 평범한 여자아이로 살자’고 마음을 다졌다.
그랬던 그녀에게 노기자카 3기생 모집 소식이 들려 온 것은 그녀가 고 2가 되었던 때의 일이었다.
“아이돌이 된다는 꿈은 이미 포기 한 상태였어요. 하지만 너무나도 길고 힘들었던 중학교 시절동안 저를 버티게 해 준 것 역시 아이돌이었거든요. TV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돌들이야말로 제게 있어 한 줄기 빛이요, 희망이었어요. ‘비록 나는 재능이 없지만, 그래도 언젠간 나도 저들처럼 희망이 넘치는 인생을 살아보고 싶어’라는 꿈만이 제 마음을 지탱 해 주는 구원과도 같은 것이었지요.”
힘든 중학 시절을 보낼 때 자신의 마음을 단단하게 잡아 준 존재, ‘아이돌’의 존재가 다시 한 번 야마시타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지금까지 매사에 어중간하게 살아 왔었기에 ‘이번에야말로 자신에게 응석을 부리지 말고, 스스로를 채찍질 하며 마지막까지 해 내 봐야지. 어차피 이번이 마지막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노기자카에 마지막 찬스를 걸어보고 싶어’라고 생각 했지요.
이미 지나 간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과거처럼 힘든 경험을 두 번 다시 하지 않기 위하여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 나가는 건 가능하잖아요.”
야마시타의 뜨거운 마음은 결실을 맺어, 노기자카 3기생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중 1때부터 아이돌이 되기를 꿈꾸어 온 소녀는 5년이라는 긴 시간을 들여가며 결국 그 출발점에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출발점에 서기까지 5년이나 걸렸네요. (웃음) 이제 서장이 시작 된 거죠. 정말 힘들었지만 이번에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 2016년 11월 3일.
‘노기자카 공사중’이 끝난 녹화 스튜디오에서 3기생들은 1, 2기생들과 처음으로 대면하게 되었다.
긴장감에 거의 전원이 눈물을 터뜨렸던 그 날… 3기생들은 그 날에 대해 입을 모아 ‘아직 팬 티를 못 벗었던 것이라 생각해요. 선배님들께 죄송할 따름이죠.’라고 이야기 한다.
각자 자신만의 스토리를 가슴 속에 품은 채 노기자카라는 언덕길 아래 모인 12명의 소녀들. 어쩌면 그녀들이 그 날, ‘노기자카를 동경하는 평범한 소녀’ 였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물 뒤에 숨겨진
그녀들의 눈동자에는 굳건한 결심과 희망의 빛이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후 ‘세 번째 바람’이라 불리게 될 소녀들의 이야기가 시작 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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