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realsound.jp/2017/09/post-106434.html
케야키자카46의 현 상황, AKB48의 다큐멘터리 영화 등으로 고찰 해 보는 '아이돌의 피폐함을 이야깃거리로 삼는다'는 것의 위험성.
2017년 8월은 케야키자카46에게 있어 '라이브'로 보낸 한 달이었다.
바로 전달에 발매된 자신들의 첫 앨범 '새하얀 것은 더럽히고 싶어져'를 들고 전국 6곳의 공연장에서 총 11번의 공연을 소화하는 아리나 투어가 8월 한달간 빼곡하게 들어 차 있었으며,
투어 사이사이의 막간을
이용하여 『TOKYO IDOL
FESTIVAL 2017』『ROCK IN JAPAN FESTIVAL 2017』『SUMMERSONIC 2017』 등 대규모
음악페스티벌에도 출연하는 스케줄이었다.
상설 극장이 없는 '사카미치 시리즈'인 케야키자카46는 이번 여름동안 급속도로 라이브 경험치를 쌓게 된 것이다.
한 편으로는 라이브로 점철된 스케줄을 소화하는 가운데 멤버들이 급격하게 피폐해져 간다는 점 역시 화제가 되었다.
특히 센터에 선 히라테 유리나가 콘서트 도중에 중도 퇴장을 하거나 결석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것은 어쩌면 데뷔 직후부터 노기자카46, AKB48 그룹의 초창기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기세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히라테를 절대적인 중심축으로 놓고 그룹 그 자체를 '표현' 해 온 케야키자카46라는 그룹이 안고 있는 잠재적인 과제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과제'는 대규모 라이브가 계속 이어진 8월, 라이브 퍼포먼스에서 현저하게 두드러졌다.
그룹이 갖고 있는 이런 역경에 대하여 케야키자카의 팬인지 아닌지 여부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SNS상에서 언급하였으며, 이는 일종의 토픽으로 발전하였다.
퍼포먼스 그 자체보다 멤버들의 피폐한 모습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그 모습은 또 다시 다양한 해석과 억측을 불렀으며,
때로는 그룹 전체가 운영측에 의해 '혹사당하'는 아이돌그룹의 구조 자체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하였다.
애시당초 이런 식으로 소속 탤런트들이 피폐해 지는 데 대해 운영측이 무리하게 '혹사시킨다/혹사를 강요당한다(탤런트 본인, 혹은 외부의 힘에 의하여 운영 의지와 상관없이 혹사당하는 것)' 는 접근,
다시 말 해 혹사의 주체나 구조 그 자체에만 논점을 두는 접근 방식에 있어서는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런 논점은 아이돌이라는 장르에 있어 벌써 수십년 이상 이어져 내려 온 일종의 전형적인 도식에서 출발, 퍼포먼스의 주체가 탤런트인가 아닌가의 유무까지도 이어지는 시대착오적인 논의와도 결부되여 논점 자체가 쓸 데 없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탤런트인 아이돌 자신이 유형무형의 방법을 통해 스스로의 컨디션을 발신할 수 있는 툴이 적게나마 생겨 났으며, 아이돌 시장 그 자체도 어느 정도 실천자들의 셀프 프로듀스를 중심에 둔 표현의 장소로 변해가고 있는 요즘,
아이돌의 혹사/컨디션 관리/퍼포먼스의 주체성을 둘러 싼 논의를 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비해 더욱 더 섬세하게 접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운영스태프와 탤런트 쌍방의 의사가 아무리 잘 소통되고, 둘 사이의 균형을 잘 잡는다고 하여도 때로는 도를 넘는 피폐상태에 빠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운영측이 혹사 시키지 않고' '탤런트 본인이 자발적으로 한 행동으로 인해 스스로가 피폐해졌'다고 해서 그것이 문제가 없는가? 그것은 아닐 것이다.
주체성'을 어디에 두는가에 논점을 맞출 경우, 이런 식으로 모순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러니 이런 소모적 논점에서는 일단 벗어 나, '탤런트가 코너에 몰려 결국 피폐해 지는 모습'을 하나의 콘텐츠로서 소비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지를 생각 해 볼 필요가 있다.
2012년, 많은 사람들이 다카하시 에이키 감독이 연출한 AKB48의 다큐멘터리 영화 『DOCUMENTARY of AKB48 Show must go on 소녀들은 상처입으면서도 꿈을 꾼다』를 보고 강한 임팩트를 받았다고는 하나, 그것이 반드시 긍정적인 반향만은 아니었다.
해당 작품에서 가장 큰 반향을 얻은 장면은 '세이부돔 공연을 앞두고 현저하게 피폐해 진 AKB48 멤버들', 그 중에서도 '마에다 아츠코가 극한 상황엣도 스테이지를 소화 해 내는 모습'을 담은 장면이었다.
물론 장면 자체는 엄청난 박력을 뽐내며 보는 이들을 압도하는 장면이었지만, 동시에 스케줄 관리체제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기에 '극한 상황'에 노출 된 멤버들이 피폐해 져 가는 상황을 콘텐츠화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장면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 장면은 '아이돌'이라는 존재를 긍정하는 사람들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비판성을 띈 장면이라 할 수 있으며, 동시에 그 의도성 때문에 해당 작품이 주는 감동이라는 것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입맛이 쓰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룹 아이돌은 일종의 '군상극'으로서의 측면을 갖고 있다. 이는 하나의 거대한 소구력이 되며, 소속 멤버들은 스스로 그 '군상극'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셀프프로듀스하게 된다.
그렇기에 그룹 내의 우여곡절을 담아 낸 '다큐멘터리'가 하나의 큰 오락거리가 되는 것은 어찌 보자면 필연적이며, 그 자체에는 선악의 잣대를 들이댈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이야깃거리' 요소의 일종으로서 멤버들의 피폐해 진 모습을 다루는 행위가 '감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엔터테인먼드의 중추를 장악하고 있다는 현실은 결국 '아이돌 역시 살아있는 인간'이라는 점을 망각하게 만든다.
'잔혹성'이 '엔터테인먼트'로 포장 될 때는 언제나 누가 보더라도 '미담'으로 보일만큼 교묘하게 분장을 하고 사람들에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물론 아직 미완성품인 아이돌들이 '일정한 목표를 위해 일시적으로 정신과 신체를 극한 상황에 몰아넣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기는 힘들다.
무대 위에서 라이브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이 퍼포먼스 향상을 위해 심신을 혹사시키는 것이 필수적인 스토이즘인가 아닌가에 대해 확실한 경계선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으며,
어느 정도 선에서 중지를 시켜야 하는 지에 대한 보편적인 가이드라인이나 정답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AKB48건 케야키자카46건간에 무대 위에서 자신의 신체를 이용하여 허구의 세계관을 높은 수준으로 표현 해 내기 위하여 일정 수준의 긴장상태를 유지 해 올 필요는 있었다.
그렇게 스스로의 신체를 고양시키고, 긴장시키는 것이 어느 정도는 불가결하기에, 더더욱 그녀들이 '피폐 해 가는 모양'이 우리들도 인식하지 못 하는 사이에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로서 변질되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결국 '창작활동'의 주체와 객체 모두에게 '극한 상태'를 일종의 드라마로서 공급/소비하도록 유혹하게 되는 것이다.
역경에 맞서 싸우고, 그것을 극복 해 성장하는 구도는 너무나도 고전적이고 정형화된 서사구조이다.
그렇기에 피폐 해 져서 극한상황에 몰린 상태에서도 이를 악 물고 퍼포먼스를 하는 아이돌의 모습 역시 너무나도 간단히 '감동'이라는 분류로 포장되곤 한다.
라이브를 만들어 가는 가운데, 무대 위에 서는 이들은 물론이고 그 무대를 보러 오는 이들 역시
한 인간이 피폐해지는 데에서 생겨나는 가짜 '감동'이 그 본인의 심신을 과도하게 좀먹고 있는 지는 않은가라는 질문을 항상 의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