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기자카46이야기 Another Story
~세 번째 바람~
- 2016년 11월 3일. ‘노기자카 공사중’ 녹화가 끝난 스튜디오에서 3기생들은 처음으로 1기생, 2기생들과 대면하게 되었다. 눈 앞에는 항상 동경 해 왔던 인기 아이돌 그룹 ‘노기자카46’의 멤버들. 그녀들이 ‘노기자카 공사중’의 세트에서 이 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12명의 소녀들은 한 줄로 늘어서서 자기 소개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2학년…’
맨 끝에 서 있었던 무카이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곧바로 목이 메어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어느 사이엔가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 무카이 하즈키입니다. 노기자카의 팬이기에 지금까지 선배님들께서 만들어 오신 ‘노기자카 다움’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어찌저찌 인사를 끝내는 무카이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는 선배들. 하지만 무카이의 뒤를 이어 입을 연 멤버도 곧바로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고, 결국 모든 3기생들이 인사를 하다 눈물을 터뜨리기에 이른다. 오오조노 모모코 같은 경우에는 너무나도 긴장을 한 나머지 과호흡으로 쓰러지기까지.
동경의 대상이었던 노기자카46의 멤버들과 만난 그 순간, 소녀들은 멤버가 아닌 그저 한 사람의 팬에 불과했던 것이다.
12명의 소녀들.
‘3번째 바람’이라 불리게 될 그녀들은 대체 ‘어떻게’ 노기자카라는 곳을 향해 걷기 시작 한 것일까.
‘다른 이들에게 ‘힘을 낼 이유’가 되고 싶어’
우메자와 미나미의 경우
우메자와 미나미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중학교를 졸업하기까지 긴 시간을 배구에 쏟아부은 배구소녀였다. 힘든 연습, 그리고 인간관계에 지칠 때 마다 그녀의 마음에 위안을 주었던 것이 바로 노기자카의 노래였다고 한다.
“특히 중 3때 배구를 관두고 진학을 택해야 했던 때가 힘들었어요. 딱히 꿈이라 할 것도 없었기에 대체 장래에 뭘 하면 좋을 지 알 수가 없었지요… 대체 어떻게 뭘 노력해야 하는 건지 감도 잡히지 않았고요. 그 때는 항상 노기자카의 노래를 듣곤 했어요.”
꿈이 없고 무엇을 어떻게 노력해야 할 지, 아니 왜 노력해야 하는 지 조차 알 수 없었던 때…
그런 우메자와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 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은 다름 아닌 노기자카의 시라이시 마이라는 존재였다.
“패션 잡지에서 시라이시상을 처음 본 순간 바로 빠져버렸어요. 처음 시라이시상의 악수회에 갔을 때는 저오 모르게 눈물이 났지요. 그런 모습을 보고 시라이시상이 ‘어? 그러고 보니 입술에 점이 있는 게 나랑 같다. 대칭인 곳에 있네’라고 말씀 해 주셨지요. 사실 그 점, 어릴 때부터 콤플렉스였는데 그 말씀을 듣고 그 점마저 좋아졌어요.”
우메자와가 고 3이 된 해 2월, 노기자카 3기생 모집 공고가 발표되었다. 그리고 3기생 설명회를 위하여 현역 멤버들이 전국 각지의 설명회장을 돈다는 것도 동시에 발표 되었다.
우메자와가 사는 관동지역의 회장에는 시라이시, 나카다, 사이토 유리가 방문 할 예정이었다. 우메자와는 동경하는 시라이시의 말을 듣겠다는 일념으로 세미나에 참가하게 되었다. 물론 이 때 까지만 해도 노기자카의 멤버가 되겠다는 생각은 그다지 없었다고 하는 우메자와.
“기본적으로 성격이 부정적인데다가, 세상 누구도 저 따위를 좋아 해 줄 리 없다고 생각했었거든요. 하지만 그 세미나에 참가 한 덕분에 시드권을 얻어 1차심사를 면제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이왕 이렇게 된 거 2차 심사는 받아 보자. 어차피 붙을 리도 없는데 뭐’라고 생각 했지요.”
하지만 그런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순조롭게 심사를 통과 해 나가는 우메자와. 어느 사이엔가 쇼룸 심사까지 진출 해 있었다.
“쇼룸을 통해 처음으로 일반 팬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는데요, 학교 규칙상 얼굴을 내 보일 수 없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을 내보인 아이들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분들께서 와서 제 방송을 봐 주시고 응원 해 주셨어요. 화면에는 ‘엔트리 넘버 12’라는 영상뿐이고 목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데도 말이죠.”
쇼룸에서의 경험을 통해 발동이 걸린 우메자와.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던 그 때 시라이시라는 존재가 자신에게 ‘힘을 낼 이유’가 되어 주었듯이 자신도 다른 이들의 ‘힘을 낼 이유’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 있어 제가 ‘힘 낼 이유’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마음이 저를 지탱 해 주는 거죠.”
‘하늘을 날고 싶었던 소녀’
나카무라 레노의 경우
‘얌전한 아이’, ‘조용하지만 알고 보면 4차원’이라는 오해를 사기 쉬운 나카무라 레노. 하지만 그런 오해와는 달리 어릴 때만 해도 항상 밖에서 뛰어노는 활기찬 아이였다고.
“운동 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특히 달리기를 좋아했습니다. 정신 없이 달리다가 넘어져서 다친 적도 있었고요. 눈 앞에 넓은 공간이 있으면 저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려서 뛰지 않고는 못 견디는 아이였어요. 전력질주 하면서 ‘이대로 하늘을 날았으면 좋겠다’라고 상상하곤 했지요.”
중학교로 진학해서도 그런 성격은 변함이 없어, 매년 운동회 때 마다 릴레이 선수로 발탁되곤 했다. 하지만 그러던 그녀도 어느 사이엔가 더 이상 달리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중학생이 되어 미용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그 결과 처음에 들어가고 싶던 테니스부도 ‘피부가 탄다’는 이유로 포기하고 대신 실내활동이 많은 봉사활동부에 들어 갔을 정도였지요. 그 때즈음부터 그렇게 좋아하던 운동도 안 하게 된 것 같아요. ‘뛰면 지치니까’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운동회 때 외에는 거의 뛰지 않았던 것 같아요.”
중학생이 된 나카무라는 운동 대신 친구들과 노는 쪽을 택하게 되었다. 친구들과 노는 것 역시 재미 있고 즐거웠지만 예전, 운동을 하던 때 만큼 그녀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TV를 보다 보니 ‘케야키라고 못 써?’가 새롭게 시작 했더라고요. 그래서 보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히라테 유리나상이 저랑 동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M스테에 케야키자카 여러분들이 나오셨을 때, ‘사일런트 마조리티’를 처음 보고… 정말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결성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토록 변하는구나! 나도 변하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리고 그 경험을 계기로 예전부터 좋아했던 노기자카의 오디션을 받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어요.”
소녀의 마음 깊은 곳에서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두근거림’이 다시금 되살아났다.
소녀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드넓고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며 ‘날아오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꼭 이루고 싶은 꿈’
사카구치 타마미의 경우
“저, 사실 초등학생 때부터 히구치 히나상이 좋았어요. 예전에 우연히 거리를 걷다 만나뵈었을 때, 악수를 해 주셨거든요. 그 때 정말 다정하게 말씀을 해 주셔서 더더욱 좋아졌습니다.”
초등학생이었던 사카구치에게 있어 히구치 히나라는 존재는 단순한 ‘동경의 대상’이나 ‘아이돌’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어느 날을 기점으로 그녀의 스토리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그녀가 초등학교 졸업을 눈앞에 둔 어느 날이었다, 거리를 걷다 연예 사무소의 스카우트를 받은 사카구치는 아이돌로서 데뷔하게 되었다.
“처음 경험 하는 아이돌 활동은 정말 즐거웠어요. 하지만 딱히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때로는 멤버들보다 적은 관객분들 앞에서 공연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정말 힘든 일들도 많았지요.
…당시 제가 자주 읽던 책이 다름 아닌 ‘노기자카46이야기’였거든요. 그 내용 중에 와카츠키상이 ‘히나치마는 다른 누구보다 먼저 연습실에 와서 춤 연습을 한다’고 말씀 하시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 대목을 읽고 ‘아, 내가 좋아하는 히구치상도 이렇게 열심히 하시는구나.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위안을 얻었어요.”
- 2016년 2월.
노기자카46 3기생 모집 소식이 발표되었다. 이를 본 사카구치는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린다.
“그 전부터 솔직히 알고는 있었어요. 제가 되고 싶은 것은 단순히 아이돌이 아니라 노기자카46라는 점을요. 물론 이전에 속해있던 그룹에서도 많은 것들을 배웠고, 응원 해 주시고 저를 지탱 해 주신 팬 여러분께는 감사하는 마음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기자카의 일원이 되고 싶었어요. 그렇기에 3기생 오디션 소식을 본 직후 사무실에 가서 그만 두겠다는 이야기를 꺼냈지요.”
배수의 진을 치고 임한 오디션은 순조롭게 풀려 어느 사이엔가 최종심사 날이 다가왔다. 최종 심사에서 부를 자유 가창곡은 다름아닌 히구치가 센터에 섰던 곡 ‘시크릿 그래피티’였다. 머리 모양도 MV에 나온 히구치의 그것과 같은 포니테일. 아이돌 활동을 경험했다는 점을 어필하기 위해 노래 뿐 아니라 안무까지 곁들여 가며 무대를 선보였다.
결과는 합격.
합격자로서 단상에 선 자신들을 향해 수 없이 점멸하는 카메라 플래시 불빛…
“믿을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이전에 있던 그룹에서 졸업을 할 때, 마지막 무대에서 팬 여러분께 ‘저는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어요’라고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저희를 향해 터지는 카메라 불빛들을 보면서 ‘지금까지 저를 지탱 해 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 노력하겠다는 다짐’, 그리고 ‘지금까지 해 온 활동도 평생 잊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돌을 쫓아’
요시다 아야노 크리스티의 경우
요시다 아야노 크리스티는 이름과는 달리 혼혈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순 일본인인 그녀에게 ‘크리스티’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단순히 부모가 ‘나중에 하와이에서 살 예정이니까 일본, 하와이 양 쪽에서 모두 쓸 수 있는 이름을 짓겠다’며 아야노 크리스티라는 이름을 지은 것 뿐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다른 이들의 기대를 저버리며 살아 온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웃음) 다들 ‘혼혈이지?’라던가 ‘영어로 말 해봐’라고 이야기 하는데, 영어는 한 마디도 못 하거든요. 거기다가 뭔가 발전이 없다고 해야 하나요. 예를 들어 그네를 탄다는 단순한 일에도 이상한 버릇이 있어서 가끔씩 그네를 타다보면 떨어지곤 하거든요. 보통은 한 번 떨어지면 조심해서 안 떨어지게 할텐데, 저는 발전이 없는 사람이라 몇 번이고 똑 같은 방식으로 떨어지곤 해요. 물론 그러다가 한 번 크게 혼쭐이 나면 ‘아 이런 식으로는 하면 안 되겠다’고 방법을 바꾸긴 하지만요.”
이렇게 말하는 엉뚱한 소녀는 어릴 때부터 아이돌을 동경 해 왔다. 고등학생 때는 NMB48의 요시다 아카리의 팬이 되어 악수회를 찾아 다닐 정도였다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오사카의 회사에 취직이 되어서 고향인 오이타를 떠났거든요. 사실 오이타에서 NMB48의 악수회를 다니는 게 여러모로 힘들었기에 오사카에 산다면 악수회 가기 좋겠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웃음)”
‘아이돌’을 위해 생활의 터전마저 오사카로 옮긴 요시다. 하지만 덕질을 위해 찾은 오사카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또 다른 ‘터닝 포인트’였다.
“오사카에 간 뒤부터 ‘노기자카 공사중’을 보게 되었어요. 오이타에선 방송이 되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그 때부터 노기자카의 팬이 되어, 3기생 오디션도 알게 되었지요. 나이면에서도 이번이 마지막 기회겠구나 싶어 응모 해 봤는데, 합격 해 버렸지요.
사실 호기심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웃음)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해 나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앞으로도 많이 다치고, 혼쭐이 나면서 경험을 하고 배워 나갈 거라 생각합니다.”
아이돌을 좋아 해서 오이타를 떠나 오사카로, 다시 도쿄 노기자카까지 오게 된 요시다. 그녀의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 될 것이다.
‘성실하게만 살아 온 소녀’
쿠보 시오리의 경우
쿠보 시오리는 ‘어릴 때부터 외부의 충격에 약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항상 혼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살아 왔어요. 숙제도 거르지 않고 했고, 준비물도 꼼꼼하게 챙기고, 뭔가를 잃어버리거나 하지도 않았고요. 딱 한 번 키우던 개가 숙제 프린트를 물어 뜯은 적이 있는데, 그 때 엉엉 울면서 학교에 전화를 해서 선생님한테 사과를 했었지요. 선생님께서 ‘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 없는데…’라고 말씀 해 주셨지만 당시의 제게 있어서는 거의 목숨이 걸린 일 처럼 느껴졌어요.”
그런 소녀에게 있어 ‘혼난다’는 것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런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녀는 ‘성실해지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혼나지 않기 위해 항상 조용히 살아 왔던 소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돌이라는 존재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다.
“언니가 아이돌을 좋아했거든요. 그런 언니의 영향으로 초등학교 6학년 때 노기자카를 알게 되고, 팬이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2016년 2월 22일… 인터넷 방송 ‘노기자카46시간 TV’를 통해 노기자카46의 3기생 모집 소식이 발표되었다.
“솔직히 저는 소심한데다가 남의 눈에 띄는 것도 싫어하고 저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었어요. 하지만 도전은 해 보고 싶었지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합격 하고 싶었어요. 저 스스로 생각해도 ‘이 세상에 나만큼 노기자카에 들어가고 싶다고 기도하는 사람은 없을거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소녀의 그런 ‘기도’가 결실을 맺은 것일까, 그녀는 순조롭게 심사를 통과하였다
“하지만 오디션에서 눈에 띌만한 건 하나도 하지 않았어요. 게다가 화장도 안 했고… 그저 매사 진지하게 아무 재미도 없는 이야기를 열심히 했을 뿐이지요. 지금 생각해도 왜 제가 붙었는 지 이해가 안 될 정도예요.”
지금껏 그저 ‘혼나지 않기만’을 바라며 매사에 성실하게 살아 온 소녀. 하지만 아이돌이라는 세계는 단순히 성실한 것만으로 통하는 만만한 세계는 아니었다.
“물론 그러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를 바꿀 생각은 없었어요. ‘성실한 사람들은 손해 보기 마련’이라고들 하지만, 저는 오히려 ‘매사에 성실한 사람이 그 성실지함을 무기로 하여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주겠어’라고 생각했지요. 저와 마찬가지로 매사에 성실하게 묵묵히 노력하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연약한 성격, 그리고 성실함. 아이돌 세계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 크게 도움이 되는 무기라고는 할 수 없는 두 가지 특성을 갖고도 소녀는 두 손으로 그 무기들을 꼭 쥐고, 길면서도 급경사인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섬에서 자란 소녀’
요다 유우키의 경우
요다 유우키는 후쿠오카현의 한 섬 출신이다. 초등학교는 전교생이 20여명이었고 집에서 ‘염소를 기를’ 정도로 자연 안에서 자라 온 소녀였다.
“엄청 새까맣게 타서는 온 몸에 상처 투성이였어요. 산으로 들로 다니며 벌레를 잡거나 가재를 잡기도 하고 가까이 있는 섬까지 수영으로 건너가기도 했지요. 중학생이 되어서는 조금 큰 학교로 진학하게 되었지만요.”
그녀가 진학하게 된 중학교는 섬에 있던 초등학교보다 큰 학교였다.
하지만 그 학교에는 근처 초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대다수였기에 요다와 일부의 ‘이방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미 친한 사이였던 것이다. 작은 섬마을 초등학교 출신인 요다의 자리는 없었던 것이다.
“초등학교 때는 남녀 구분이 없었기에 싸울 땐 진짜 서로 치고 받으며 싸웠거든요.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 가, 처음으로 다른 사람 험담을 하거나 모함을 하는 것을 보게 되어, 정말 무서웠어요. 그 때문에 한동안 학교에 갈 수 없었지요. 집에서 하루 종일 TV나 DVD를 보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요다는 노기자카46의 논픽션 다큐멘터리 영화 ‘슬픔을 잊는 방법’을 보게 된다.
이코마 리나, 니시노 나나세 등 학교에서는 주목을 받지 못 했던 소녀들이 아이돌이 되어 빛을 발하는 과정을 알게 된 것이다.
“저 역시도 전혀 눈에 띄는 타입이 아니었기에 ‘나와 비슷했던 사람들이 노기자카라는 그룹에 들어 가 이렇게나 빛나게 되었다’는 것이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그리고 그 날부터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노기자카46라는 그룹에 대한 동경이 싹트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학교를 쉬었었는데, 선생님이나 친했던 친구들이 집까지 찾아 와 준 것도 있고 해서 용기를 내어 학교에 나가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힘들어도 노력해서 모두와 친해지게 되었지요. 졸업식 때는 ‘졸업하기 싫다’고 생각 할 정도였는걸요. 지금 생각 해 보면 초등학교 시절이 너무나도 특수했던 환경이었기에 평범한 생활에 익숙해지지 못했던 것이라 생각하지만요.”
고등학생이 된 요다는 파벌이 있었던 중학교와는 다른, 새로운 환경에서 힘들지 않게 친구들을 만들게 되었다. 마치 꿈만 같은 즐거운 고교생활이 펼쳐 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귀에 노기자카 3기생 모집 소식이 들려왔다.
“처음에는 ‘어차피 내가 붙을 리는 없으니까 일단 하는 데 까지만 해 보자’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정작 최종심사까지 남고 나니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중학교 때 고민을 많이 했던 만큼, 고등학교 생활이 너무나도 즐거웠던 것도 있고, 친구들과 헤어지기도 싫었기에 그것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게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 이상으로 노기자카 멤버가 되고 싶었지요.”
많이 고민을 하고, 힘들게 멀리 빙 돌아 손에 넣은
행복. 요다가 고민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새로운 길을 택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자신의 ‘미래’를 손에 넣기 위한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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