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이즈미 유이
첫 사진집 촬영은 첫 날부터 편안하게 임할 수 있었다.
8월 7일, 케야키자카46에서 졸업한다는 것을 발표하여 팬들을 놀라게 한 이마이즈미 유이. 그녀눈 8월 15일에 발매 된 케야키자카의 7번째 싱글 ‘앰비벌렌트’ 활동을 마지막으로 그룹을 떠나게 되었다. 아쉽게도 전체곡에는 참가하지 않았지만, 통상반에 실린 솔로곡 ‘해가 뜰 때 까지’를 통해 싱글에는 참가하게 되었다. 또한, 10월 3일에는 케야키자카의 멤버로서는 마지막 활동이 될 첫 솔로 사진집 ‘아무도 모르는 나’가 발매 되었다.
본지에서는 아마도 마지막이 될 이번 인터뷰를 통하여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그녀의 근간이 되는 모습들, 그룹의 일원으로서의 활동 등 지금까지의 궤적, 그리고 졸업을 결의하기까지의 과정과 앞으로의 활동 방향에 대하여 그녀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 보고자 하였다.
우선 몇 주 뒤(인터뷰 시점)면 발매되는 첫 솔로 사진집 이야기부터. 솔로 사진집을 내는 것은 자신에게 있어 큰 목표 중 하나였다는 그녀에게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처음으로 사진집 얘기를 들었을 땐 엄청 놀랐지요. 사실 제 올 해 목표 중에 사진집을 내는 것이 있었기에, 그 목표를 달성했다는 생각에 기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괜찮으려나? 나로 괜찮으려나?’ 라는 생각이 들어 불안해졌어요.
처음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이미 다른 멤버들이 하나 둘 사진집을 내기 시작 한 때라, 사진집이 결정 된 멤버들이 촬영을 앞두고 몸을 만든다던지, 촬영기간 동안 어떻게 하는 지 등을 가까이서 지켜 봐 왔기에 사진집 촬영이 예상보다 훨씬 힘든 일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거든요. 그렇기에 솔직히 ‘내가 견뎌 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불안했어요.’
사진집 촬영이 이루어 진 곳은 이탈리아 나폴리 교외였다. 그리고 이마이즈미는 촬영을 앞두고 약 두 달에 걸쳐 준비를 하였다고 한다.
‘촬영 두 달 전부터 몸을 만들어야 했지요. 솔직히 제가 그 시기를 견뎌 낼 수 있을 지 불안했어요.
촬영에 앞서 멤버들의 사진집은 물론이고 다른 분들의 사진집을 많이 보았습니다. 정말이지 수십권씩 사서는 ‘이런 화장이나 의상 괜찮네’, ‘이런 포즈 괜찮네’라며 공부 했어요.
그렇게 다양한 사진집을 보다 생각 한 건데, 지금까지는 거의 웃으며 찍은 사진이 많았기에 이번에는 좀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자, 20살이 된 이후에 나오는 사진집이니 지금까지는 거의 보여드린 적 없는 성숙한 표정을 보여드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촬영 장소가 이탈리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지금까지 해외에 나가 본 적이 없기에 이탈리아가 어떤 이미지인지 상상도 되지 않았어요. 나폴리에 갑니다. 라는 말을 들어도 어떤 식으로 가는 지 모르니까 아무렇지 않게 그 자리에서 ‘아, 알겠습니다.’라고 대답 해 버렸습니다. (웃음) 나중에 듣자니 편집부 분께서 이탈리아의 밝은 이미지가 저와 딱 맞는다 생각해서 골라 주셨다는 것 같더라고요. 애초에 나폴리가 이탈리아 어느 부분인지도 모르는 상태였기에, 일부러 자세한 정보는 찾아보지 않고 일단 가서 즐겨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가 보니 편집부 분 말씀대로 저와 잘 맞는 곳이라 금세 익숙해 지더라고요. (웃음)’
촬영 자체도 릴렉스한 분위기에서 진행 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그런 촬영으로 타지에서 묵게 될 때는 거의 호텔 방을 혼자 쓰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하지만 이번에는 집… 이라 해야 하나요? 빌라를 빌려 묵었어요. 한 집에서 카메라맨분, 스태프분, 저까지 모두들 함께 묵었지요. 밥을 먹을 때도 다 함께 장을 보러 나가서, 함께 요리를 하고 함께 먹고, 잘 때도 ‘그럼 여러분 안녕~’이라고 방으로 돌아 와서 잤어요. 이런 경험은 처음 해 보는 것인데, 합숙… 아니 마치 가족 같아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저 뿐 아니라 카메라맨분도 밥을 먹으며 ‘이런 경험 처음이야! 절대 못 잊을거야’라고 해 주셨는데, 그 말씀이 정말 기뻤어요. 촬영 자체도 첫 날부터 마지막 날 까지 시종 편안하게 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어쩌면 이번 촬영 방식이 지금 제게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촬영 자체도 거의 이 빌라를 중심으로 이뤄졌어요. 실제로 실린 사진 중 80%가까이가 집이나 정원에서 찍은 사진이거든요. 가끔씩 ‘오늘 점심은 밖에서 먹을까?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같은 식으로 외출을 했지요. 바다에도 갔었는데, 그 때도 사실은 아무 계획 없이 외출 했다 돌아가는 길에 ‘근처에 바다 있는데 바다나 가 볼까?’ 라는 느낌이었지요.
그런 환경 덕분에 저 역시 지금까지 보여드린 적 없는 표정을 보여드릴 수 있었어요. 진짜 데굴데굴 구를 정도로 폭소 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고요. 너무 웃어서 배가 아파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로 폭소하는 장면도 사진집에 실려 있습니다. 사람이 이렇게나 웃을 수 있구나 싶어서 저 스스로도 깜짝 놀랐어요. (웃음)’
작년 12월에는 여성 패션잡지 ‘ar’의 레귤러 모델로도 발탁, 다른 멤버들에 비해 그라비아 등 사진에 찍힐 기회는 많은 편이던 이마이즈미. 지난 3년을 거치며 피사체로서의 감각에 변화가 있었을까?
‘그렇게 크게 변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초창기에는 표정이 미소짓는 표정 딱 한 가지뿐이었던 것 같아요. ‘케야카케’만 해도 초창기에는 항상 웃고만 있었잖아요. 쿨한 표정 같은 걸 잘 못 지었지요.
그러다가 한 번, 카메라맨분께서 ‘다른 표정도 지을 수 있어?’라고 물어 보셨거든요. 그 질문을 듣고 ‘아, 나 항상 웃기만 하는구나. 항상 같은 표정이구나’라고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고 보니 어떤 잡지를 봐도 항상 웃는 모습만 실려있어’라는 것도 깨닫게 되어서 다양한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하게 되었어요.’
그런 그녀의 풍부한 표정이 가득한 이번 솔로 사진집. 그렇다면 본인이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사진은 어떤 것인지 궁금해 져 질문을 해 보았다. 그러자 굉장히 적극적인 태도로 대답하였다.
‘음… 마음에 드는 사진이 너무 많아요! 뭘 고르지… 아, 이 사진은 꼭 봐 주셨으면 하는데요, 검은 수영복을 입고 풀사이드에서 포즈를 잡은 사진이요! 이 사진은 제가 봐도 지금껏 본 적 없는 표정인데다가 몸 라인도 되게 예쁘게 찍혀서 감동했거든요. 이 사진은 부디 많은 분들께서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정말로! 그림자가 절묘하게 져서 복근이 예쁘게 찍혀 있기도 하기에 개인적으로 이 사진이 제일 마음에 들어요!
사실 수영복만 입고 사진 찍는 거, 전혀 싫지 않아요. 어쩌면 피팅 단계에서 익숙해 진 것일지도 모르지만요. 열심히 노력해서 몸을 만들었으니 그 몸을 빨리 보여드리고 싶다고나 할까요. 그런 마음이 더 큰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수영복 촬영 때, 스태프분들께서 ‘좀 더 풋풋한 모습을 보여 줘!’라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아마 그 때는 당당하게 ‘나를 봐 줘!’라는 분위기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연기라도 좋으니 좀 수줍어 해 줘’라는 말까지 나와서 다들 엄청 폭소했죠. (웃음)
촬영을 하는 불과 며칠 사이에 지금 제 모습을 전부 끌어 냈다고 생각하고, 촬영이 끝난 뒤에는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불살라 버린 것 같았어요. 그래서인지 촬영 마지막 날에 엄청 울었습니다. 특히 ‘이번 컷이 마지막이야’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엉엉 울었지요. 그리고 화장을 고치는데, 화장 고쳐주시는 코디분도 울고 계시더라고요. (웃음) 그 모습을 보고, 저 뿐 아니라 모든 분들이 촬영을 즐겨 주신 것 같아서 기뻤습니다.
사실 저 같은 경우에는 첫 날부터 마지막날을 떠올리며 혼자 울곤 했거든요. (웃음) 첫 날 밤, 촬영 마지막날을 맞이하는 꿈을 꿨는데 그 꿈 때문에 자면서 펑펑 울었지요. 눈물 콧물 할 것 없이 엄청 흘리면서요. 그 결과, 다음날 얼굴이 퉁퉁 부어서 그 모습을 보신 스태프분께서 걱정 하시더라고요.’
‘무조건 아이돌이 될 거야!’라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왔다.
그럼 이제부터는 이마이즈미의 내면을 좀 더 자세히 파 들어 가 보고자 한다. 케야키자카46에 들어 와 3년간 활동하면서 자신의 성격이나 사고방식이 변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원래부터 그리 어두운 성격은 아니지만, 낯은 많이 가리는 편이었어요. 초기에는 현장에서 만나는 스태프분들에게도 말을 거의 못 걸 정도였는데, 지금은 낯가림이 완전히 사라져서 현장에 가면 스태프분들과 친해지려고 적극적으로 말을 거는 성격이 되었습니다.
어째서 이렇게 변했는지 저 자신도 잘 모르겠는데요, 다시 만날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던 사람과 다시 만났을 때, 엄청 기쁘잖아요. 그렇기에 일단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친해져서, 나중에 ‘와! 다시 만났네요’ 라고 기뻐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함께 일 해 주신 분께서 ‘다음에 또 같이 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 해 주시면 기쁘잖아요.
사실 학교에 다닐 때는 먼저 말을 건다던가 하는 게 힘든 타입이었어요. 언제까지고 말 걸어주기만 기다린다 해야 하나요? 지금이랑 정 반대의 성격이었죠. 형제라곤 오빠들 뿐이었기에 같은 또래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감이 안 왔거든요. 그러다보니 학교 다니는 게 괴로워서 (웃음) 혼자 있을 때가 많았어요. 예를 들어 수업 때 두 명이 한 조를 이뤄야 할 때에도 반 인원이 홀수면 한 사람이 남잖아요. 저는 항상 그렇게 마지막까지 혼자 남게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웃음)
하지만 이제 와서 성격을 바꾸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기에 그냥 전부 인정하고 받아 들였지요. 별 수 없다고 말이죠. 제 어릴 때 성격을 아는 엄마도 케야키자카에 들어 와 변한 제 모습을 보시고는 ‘사람이 이렇게도 변할 수 있구나’라고 놀라곤 하세요.
케야키자카라는 그룹도 신기한 게, 비슷한 성격인 아이들이 몰려 있잖아요. 그래서 초창기에는 솔직히 여러 모로 힘들었어요. (웃음) 일단 저 같은 경우는 몇날 며칠 함께 있으면 자연스레 마음을 여는 타입이다 보니, 초창기에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있었기에 멤버들과 자연스럽게 친해 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드라마인 ‘누가 도쿠야마 다이고로를 죽였는가?’ 촬영 기간을 거친 것 역시 컸다고 생각하는데요, 같은 스튜디오에서 몇 시간씩 함께 있다 보니 상대방의 장단점을 전부 이해 하게 되었거든요. 그리고 멤버들도 그 때쯤부터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 하게 되었지요.’
그녀가 이야기 해 준 어릴적 에피소드 중에 특징적인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었다.
‘사실 어릴 적에는 카메라에 찍히는 걸 싫어했어요. 아빠가 카메라를 들이대시면 저 멀리 도망가서 ‘찍지 마!’라고 화 내곤 했거든요. (웃음) 그래서 시치고산(※어린아이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며 아이가 3, 5, 7살이 되었을 때 신사에 데리고 가서 기도를 드리는 행사) 때 사진도 엄청 뾰루퉁한 표정으로 찍혀 있지요. 사진사 분께서도 ‘혹시 따님 벌써 반항기인가요? 카메라 엄청 싫어하는데, 이 사진 한 번 봐 보세요.’라고 하셨다고 그러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어릴 적 사진이 거의 없어요.
마지막으로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은 온천 여관에 가서 제가 노래하고 춤 추는 모습을 찍은 사진인데요, 그 이후로는 찍은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아, 하지만 그 때부터 노래하는 건 정말로 좋아했지요.’
어릴 때부터 아이돌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던 이마이즈미. 그 동경의 근원은 그녀가 유치원 때 불렀던 노래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을 때부터 노래 하는 건 좋아했어요. 당시엔 모닝구무스메。선배님이나 미니모니。 선배님 노래를 자주 불렀어요. 어릴 때부터 ‘무조건 모무스나 미니모니에 들어 갈 거야’라고 이야기 하고 다녔죠.
사실 3~4살쯤 되었을 때부터 ‘커서 아이돌이 될 거야. 무조건 될 거야!’라고 이야기 하던 아이였기에, 지금까지 그대로 온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끊임 없이 ‘아이돌이 될 거야’, 아이돌이 될 거야’ 라고 이야기 해 왔고, 졸업문집에도 ‘장래에는 아이돌이 될 것’이라고 썼을 정도지요. 하지만 단 한 번, 다른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어요. 일단 아이돌은 하되, 아이돌로 활동을 안 할 때는 부업으로 꽃집을 하고 싶다고 생각 했었지요. (웃음) 한 때 그런 생각도 했었다는 얘기예요.
아이돌이 되기 위해 오디션도 여러 번 봤지만, 전부 떨어졌어요. (웃음) 그럼에도 엄청 긍정적으로 ‘아직 어리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했었기에 16~7살 까지는 어떻게 해서든 아이돌이 되리라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요. 그리고 나이를 생각하면 이번이 마지막이겠구나… 라 마음먹고 응모한 것이 케야키자카의 오디션이었지요. 그렇기에 합격했을 때, 엄마고 오빠고 다들 울면서 기뻐 해 줬어요.’
어릴 때부터 오랜 시간동안 동경 해 온 아이돌. 그렇다면 실제로 아이돌이 되고 난 뒤,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없었을까?
‘사실 아이돌이 되기 전부터 아이돌이라는 직업의 숨겨진 뒷면을 찾아보는 게 취미였거든요. (웃음) AKB선배님들의 다큐멘터리 영화도 보러 갔었을 정도예요. 그렇기에 어느 정도는 숨겨진 면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기에 현실과 이상 사이에 그렇게까지 엄청나게 큰 간극은 없었어요. 뭐랄까, ‘잘 시간이 없어’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네요.’
아이돌이 되기는 했지만 17년 4월부터 8월까지, 그리고 같은 해 12월부터 이듬해에 걸쳐 그룹 활동에 참가하지 못하는 등, 이마이즈미의 3년간의 아이돌 생활은 빈말로도 순탄하다고는 하기 힘든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3년은 정말로 눈 깜빡할 사이였어요. 말씀하신대로 도중에 쉬기도 했지만, 그 시기동안 저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었고 그 경험이 지금 제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거든요.
물론 때로는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었지요. 작년 봄에 제가 휴식기를 가졌을 때가 마침 앨범을 제작하던 시기였기에, 몇 번인가 스태프분께 ‘어차피 앨범에 참가 못 할 것 같은데, 이 타이밍에 졸업을 하려 합니다’ 라고 상담을 했어요. 하지만 휴식에 들어가기 전에 팬 여러분께 ‘기다려 주신다면 감사하겠다’고 이야기를 했었기에… 제 자신이 한 말을 뒤집을 수는 없어서 몇 달이나 고민했었지요.’
하지만 그렇게 쉬는 동안에도 그녀는 독자적으로 보이스 트레이닝을 받으러 다니는 등, 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쉬는 동안에도 노래는 계속 해 나가려고 생각 했었기에, 보이스 트레이닝을 계속 했습니다.
보이스 트레이닝 시간 외에는 가급적 자연이 우거진 곳에 가 보거나, 아빠와 함께 당일치기로 시즈오카 여행을 다녀오거나 하며 주변 환경을 바꾸려고 했었어요. 보이스 트레이닝은 계속 하지만, 마음가짐을 리셋하면서 ‘아, 이제 괜찮겠다’ 싶은 타이밍에 스태프분께 말씀을 드렸죠.
처음으로 팬분들 앞에 선 것이 작년 마쿠하리였어요. 그 때 정말로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감동했습니다. 아마도 그 순간의 기억은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생각 해 보세요. 1만 몇 천명 앞에서 혼자 노래를 불러야 했잖아요! 긴장이 장난 아니었어요. (웃음) 사실 스테이지에 올라가기 직전까지 다른 사람들 손을 꼭 쥐고 ‘부탁이니까 괜찮을 거라 말 해 줘’라고 이야기 했을 정도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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