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슈링이 이야기하는 ‘지금까지’, 그리고 ‘지금부터’
사이토 아스카 브레이크 히스토리
‘최연소’라는 점을 무기로 한 ‘딸기우유’ 캐릭터
- 초등학교 3학년 때 까지는 ‘누구와도 사이 좋게 지내고, 혼자 있는 아이를 보면 먼저 다가가 말을 거는 밝은 아이’였다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사이토 아스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동급생들과의 관계가 원만히 흘러가지 않게 된 결과, 점차 다른 이들에 대해 마음을 닫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이토 본인은 그 시절을 되돌아보며 그 때가 자신의 인생에 있어 ‘바닥’을 쳤다고 표현한다. 그렇게 다른 이들에게 마음을 닫고 지내던 소녀는 중 1 여름때 노기자카의 오디션에 응모함으로 하여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당시 AKB48이나 하로프로를 좋아했던 그녀는 이미 과거에도 수 차례 인터뷰를 통해 ‘아이돌 덕분에 도움을 받았지요. 그렇기에 저 역시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런 마음으로 노기자카의 오디션을 받기로 했어요’라고 이야기 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오디션을 받은 이유를 물어 본 결과, 아무래도 오디션에 응모하게 된 이유는 그것 뿐만이 아닌 듯 하다.
사이토 (이하 ‘아’) : 물론 그것도 큰 이유예요. 하지만 아는 분께서 오디션을 보는 게 어떻겠냐고 추천 해 주신 것도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엄마가 ‘넌 성격이 어두우니까 오디션 받아보는 것도 좋을거야’라며 적극적으로 밀어붙였기에 한 번 받아봐야겠다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예전부터 같은 나이 또래보다는 연상들이랑 잘 맞았거든요. 학교에서도 동급생들보단 선배들이랑 잘 지냈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빨리 어른들의 세계에 들어가고 싶었던 것도 있었을 지 모르겠네요.
오디션 때는 사실 긴장감 보다는 불안한 마음이 컸어요. 주변에 있는 게 온통 예쁜 언니들 뿐이었으니까. 심지어 엄청나게 연구해서 캐릭터를 만들어 오는 아이나 자기 어필을 위해 엔카를 부르는 아이도 있었기에 그런 모습을 보며 ‘다들 엄청 진지하게 오디션을 받는구나’라고 느꼈습니다. 저는 사실 그 오디션에 ‘인생을 건다’는 생각은 없었기에 나중에 합격 발표가 난 뒤에는 제가 합격했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어요..
- 합격 당시 그녀의 나이는 13세, 그룹 내 최연소 멤버였다. 초창기에는 ‘명실상부한 아이돌’ 캐릭터로 갈 생각이었기에, 좋아하는 음식을 ‘딸기우유’라 소개하기도. 오미타테회에서도 ‘딸기우유를 주는 사람이랑은 금세 친해진다’고 어필 하기도 했다.
아 : ‘아이돌’이 좋아할만한 음식이 뭐가 있나 생각 해 본 결과 ‘딸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 ‘딸기를 좋아해요’라 하면 너무 노린 티가 날 것 같아서 ‘딸기우유’라는 결론에 도달했지요. 그리고 당시에는 지금보다도 더 ‘나만의 무기’라 할만한 게 없었기에 ‘최연소’라는 점을 무기로 삼아야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이야 그 ‘딸기우유’가 제게 있어 흑역사지만 (웃음) 당시에는 저 나름대로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아이돌상을 표현해야만 한다 생각했거든요. 아, 그렇다고 무리했었다는 건 아니에요. 그 땐 그래도 지금보다는 순진한 구석이 있었거든요. (웃음) 아이돌이 된 이상 그런 식으로 어필하는 건 당연한 거라 생각했었거든요.
- 데뷔 싱글 ‘구루구루 커튼’에서 선발에 뽑힌 사이토, 하지만 2nd 싱글 ‘오이데 샴푸’에선 선발에서 탈락 해 버렸다. 그리고 그 ‘선발 탈락’을 통해 지금껏 맛보지 못 했던 ‘분함’을 맛 보았다는 그녀.
아 : 제 안에서 ‘노기자카’라는 존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 당시가 지금보다 작았어요. 하지만 선발에서 탈락했을 때 느끼는 분한 마음의 크기는 지금보다 그 때가 더 컸던 것 같네요. 정말 너무나도 분해서 어찌 할 줄을 모를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프론트에 서고 싶다던지 한 건 아니고, 선발 3열에 서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지요.
‘센터란 자리는 즐겁기만 한 자리는 아니구나…’
- 3rd 싱글 ‘달려라! Bicycle’ 때도 사이토가 선발에 복귀하는 일은 없었다. 전국악수회의 미니 라이브때 선발 멤버들이 ‘달려라! Bicycle’을 피로하였을 때, 언더인 사이토는 천을 들고 선발들의 모습을 가려주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런 연출에 분함을 느낀 사이토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하지만 동시에 같은 싱글에 실린 커플링곡 ‘해류의 섬이여’에서는 센터에 발탁되기도 한 사이토. 그녀에게 있어 ‘해류의 섬이여’는 정말로 의미 깊은 곡이라고 한다.
아 : 당시 언더 멤버들은 미디어에 출연 할 기회가 거의 없다시피했어요. 그렇기에 유닛곡의 센터를 하게 된 것은 정말로 기뻤어요. 지금도 ‘해류의 섬이여’를 좋아한다는 팬 분들이 계시고요.
하지만 요즘 들어 버스데이 라이브 등지에서 ‘해류의 섬이여’를 피로 할 땐 당시의 신선한 기분이 되살아 나지 않아서… 팬분들께서도 ‘마쿠하리 버스데이 라이브 (2013)때의 ‘해류’가 가장 좋았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으시고요. 올 해 버스데이 라이브 땐 그 때의 신선한 기분이 되살아났으면 좋겠어요.
- 관객들이 참가하는 뮤지컬 ‘16명의 프린시펄 deux’ 당시에는 본공연이 끝난 뒤 라이브 때, 공연에 참가하지 않았던 호시노 미나미를 대신하여 이코마 리나, 이쿠타 에리카와 함께 프론트에 서 ‘너의 이름은 희망’, ‘샤키이즘’ 등을 퍼포먼스 하기도 했던 그녀. 이전까지는 ‘쿨한 모습’을 잃지 않기 위하여 노력했던 그녀 역시 주목도가 오름에 따라 ‘웃으면서’, ‘전력을 다 해’ 퍼포먼스 하는 데에 주목하게 되었다고 한다. 라이브를 통하여 그녀를 알게 되고, 팬이 되는 사람도 적지 않았기에 본인 역시 ‘그런 기회들을 통하여 라이브에 대한 마음이 바뀌었다’고 이야기 한다.
아 : 당시에는 아무래도 순진했었기에 그저 단순히 프론트에 서서 퍼포먼스를 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즐거웠어요. ‘샤키이즘’의 ‘날려 가는’ 안무를 하며 ‘즐겁다’고 생각하곤 했어요. 사실 이전까지는 ‘전력을 다 한다’는 것을 내보이는 것이 아무래도 좀 창피했거든요. 하지만 그 때부터는 전력으로 웃으며 노래하고 춤 추는 데 대한 거부감이 사라졌어요.
- 뒤이어 발매된 4번째 싱글 ‘제복 마네킨’에선 선발에 복귀하였지만, 5번째 싱글 ‘너의 이름은 희망’, 6번째 싱글 ‘걸즈 룰’에서는 다시금 언더가 되어버리는 등, 한동안 사이토는 선발과 언더 사이를 왔다갔다하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존재감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 6번째 싱글의 커플링곡 ‘선풍기’에서는 센터에 서기까지. 그리고 그 ‘선풍기’는 팬들의 ‘아아아~!’라는 환성과 함께 라이브의 분위기를 띄우는 데 빼 놓을 수 없는 곡이 되었다. 또한, 비슷한 시기 NHK의 ‘R의 법칙’ 레귤러로 발탁, 개인 활동도 늘어나게 되었다.
아 : 처음 언더곡 센터로 서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딱히 그다지 부담감이 있진 않았어요. 어느 쪽이냐 하면 단순히 기뻤다고 할까요. 하지만 정작 MV촬영 때, 역 V자 포메이션의 맨 앞에 서고 보니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데에서 외로움과 ‘센터라는 자리의 어려움’을 알게 되었지요. ‘센터란 자리는 즐겁기만 한 자리는 아니구나…’라는 것을 실감했지요.
그리고 지금도 고민하고 있는 문제점을 깨닫기 시작 한 것 역시 그 때였어요. ‘나에겐 개성이라 부를만한 게 없다’는 점을 깨닫곤 엄청 초조해지기 시작했지요. ‘뭔가 한 가지 특출한 것을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몰랐’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그 뒤로도 한동안 그런 초조함은 이어졌습니다.
- 자기 자신의 개성을 어떻게 내보여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고뇌하던 와중에 2기생 호리 미오나가 센터 자리에 서게 된 파격적인 싱글 ‘바렛타’가 릴리스 되었다. 이 작품을 통해 오랜만에 선발에 복귀한 사이토는 ‘선발 3열과 언더 중 어느 쪽이 더 많은 사람의 눈에 들지’에 대해 답답함을 느낀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선발에 합류한 나카모토 히메카와 의기투합, ‘격차사회 콤비’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아 : 미오나가 센터에 섰다는 데에 대해선 딱히 초조함이라 할만한 건 없었어요. 다만 ‘어른들은 꼭 저렇게 어그로를 끄는구나’라는 생각은 했지만요. (웃음) 함께 선발에 든 히메탄이랑은 처한 환경이나 사고방식이 여러 모로 비슷했기에 자주 이야기 하게 되었지요. 당시에는 재미삼아 삐딱하게 이야기 하곤 했는데, 요즘 들어선 아예 생각하는 것 마저 삐딱해 져 버렸네요. (웃음)
‘노기단’에서 느끼게 된 ‘유대감’, ‘드럼’이라는 이름의 ‘개성’
- 8번째 싱글 ‘깨닫고 보니 짝사랑’에서 사이토는 다시금 언더로 내려앉게 되었다. 그리고 사이토 본인에게 있어 가장 괴로웠던 시기가 시작되었다.
아 : ‘깨닫고 보니 짝사랑’때 처음으로 ‘뮤직스테이션’에 나갔잖아요. 그 모습을 보며 ‘아, 노기자카도 드디어 일반 대중에게 퍼지기 시작했구나’라고 실감하게 되었습니다만, 동시에 그런 자리에 나갈 수 없었다는 현실도 느끼게 되었죠.
싱글 특전으로 언더 라이브가 열리게 되었기에, ‘이젠 마이얀같은 선발 멤버들이랑은 아예 다른 그룹이야’라고 억지로 자신을 추스렸어요.
-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깜깜한 어둠 속을 방황하는 것만 같은 나날을 보내던 그녀에게 한 줄기 빛이 비추었다. 키시단과의 대결 이벤트였던 ‘노기자카46 vs 키시단 ~학생복 반역동맹~’을 앞두고 ‘노기단’이라는 밴드를 결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선보인 사이토의 드럼 실력은 팬들 뿐 아니라 키시단의 멤버들마저도 절찬할 정도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남들이 칭찬을 해 주는 것이 일치 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고 회상하는 사이토. 지금껏 그토록 간절히 찾아 왔던 ‘개성’이 드디어 꽃을 피운 순간이었다.
아 : 사실 드럼 자체는 초등학생 때 부터 해 보고 싶다 생각 해 왔었어요. 하지만 그런 꿈이 노기자카46에서 실현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죠. 물론 자신있게 ‘나의 무기’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치는 것은 아니지만, 세이부돔에서 열린 버스데이 라이브 때 노기단으로서 연주를 한 일이나, 방송에서 드럼을 치거나, 잡지 (OVERTURE 003호)에서 아야노코지 쇼(키시단 리더)상과 대담을 하는 등, 드럼을 통해 수 많은 가능성이 열렸다는 건 정말로 기뻐요.
그리고, 밴드라 하면 역시 끈끈한 유대감이잖아요. 사실 이전까지는 ‘유대감이 뭐야’라며 반쯤 비웃곤 했었는데 (웃음) 노기단을 통해 ‘유대감’이라는 것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었어요. 노기단 활동을 하면서 ‘아, 이게 유대감이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요. 노기단이 앞으로도 계속 된다면 좋겠어요.
- 싱글 특전에 불과했던 언더 라이브가 정기 공연화 되며, 사이토는 언더의 프론트이자 중심 멤버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센터에 선 이토 마리카, 이노우에 사유리를 곁에서 보좌하는 동시에 ‘너희들(お前ら)’로 시작되는 도발적이고 독특한 독설 MC를 거침없이 내뱉는 사이토의 모습은 어느 사이엔가 그녀의 또 다른 ‘개성’이 되었다.
아 : 솔직히 예전에는 ‘필사적으로 열심히 하는 것’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게 아무래도 꼴사납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제가 ‘필사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며 팬분들께서 기뻐 해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 때부턴 전력으로 퍼포먼스 하게 되었지요. 특히 2014년 10월에 있었던 언더 라이브 세컨드 시즌을 통해 의식이 180도 바뀌었어요. 진심으로 노기자카라는 그룹을 대하게 된 계기가 바로 그 라이브였지요.
프론트 멤버이긴 했지만 센터가 아니었기에 비교적 자유로웠다는 것이 컸던 것 같아요. 제가 어느 정도 판을 벌려놔도 마리카나 사유리가 수습을 해 주었거든요.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많지 않았고, 저 스스로도 저 자신에게 특정한 이미지를 씌우고 싶진 않았거든요.
- 그런 ‘언더 라이브’는 그룹 전체를 휩쓰는 바람이 되었다. 2014년 12월 12일에는 ‘아리아케 콜로세움’이라는 큰 무대를 ‘언더’만으로 메우는 수준으로 까지 성장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사이토의 마음 속에는 ‘선발과 언더’의 관계에 대한 위화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아 : 아리아케에서 열린 언더 라이브는 개인적으로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아요. 지금도 라이브를 할 땐 ‘아리아케 때 처럼은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을 할 정도입니다.
언더만의 힘으로 큰 무대를 가득 메운 건 물론 정말 대단한 일이고 기뻤지만, 동시에 ‘시험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순수하게 즐길 수가 없었어요. 멤버나 팬분들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라이브의 구성이나 타이밍 같은 부분이 ‘응? 이건 좀…’싶은 부분이 많았거든요.
‘CUTiE’ 전속모델을 통해 자신감을 얻다. 그 뒤 찾아온 ‘복신’진입
- 2015년이 시작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 사이토에게 터닝 포인트가 찾아온다. 패션잡지 ‘CUTiE’의 단독 표지에 발탁 된 사이토는 바로 그 다음달, ‘CUTiE’ 역사상 최초의 ‘전속모델’로 기용되기에 이른다. 노기자카46의 멤버로서 패션지의 전속모델로 발탁 된 것은 시라이시 마이에 이어 두 명째였다.
아 : 스케쥴을 받아 보니 거기에 ‘‘CUTiE’ 표지’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뭔가 착오가 있나’ 싶었는데 그 다음날 새로 받은 스케쥴표에도 ‘‘CUTiE’ 표지’라고 적혀 있었어요. 그 때부터 ‘어떻게 해야 ‘CUTiE’의 세계관을 망치지 않을까’로 고민하게 되었죠. 정작 표지 사진 자체는 권두 특집 기사 촬영을 하면서 찍힌 사진 중 한 장이 쓰였기에 그렇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말이에요.
이전까지는 카메라에 찍히는 것 자체가 좀 고역이었는데, ‘CUTiE’ 표지가 호평을 받은 뒤로는 ‘화장이 바뀐다면 내가 사진에 찍혀도 괜찮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점점 사진 찍히는 것이 즐거워졌어요.
모델 일을 시작하고 나서 사진 찍히는 것을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예쁘게 찍힐까를 고민하게 되었으며, 악수회를 할 때도 복장이나 머리 모양 같은 데에 더 신경쓰게 되었어요. 다만, 모델 일을 하면 할 수록 제게 어떤 부분이 부족한 지 알게 되어서 요즘엔 오히려 예전보다 더 어렵게 느껴지곤 해요.
- 언더 라이브에서의 활약 덕분일까, 11번째 싱글 ‘생명은 아름다워’에선 다시금 선발에 복귀하게 되었다. 커플링곡 ‘미리 이야기하는 로맨스’에선 호시노 미나미와 함께 더블 센터에 서기도. 다만 일부 팬들 사이에선 ‘역시 선발 3열보다는 언더 프론트가 낫지 않느냐’는 평가도 있었다.
아 : 개인적으론 그 당시는 제 실력이나 인기보단 아무래도 ‘CUTiE’ 덕분에 선발에 들었다고 생각하거든요. 팬분들께서 ‘선발 맨 뒷줄보단 언더 맨 앞줄이 나은 거 아냐?’라고 말씀하실 때 마다 ‘어차피 이 자리는 ‘CUTiE’가 만들어 준 자리인걸요’라고 마음속으로 되뇌곤 했어요. 그렇기에 선발로서의 일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CUTiE’에 최선을 다했던 것이고요. 그렇게 하다보면 제 힘으로 선발에 머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 하지만 그 ‘CUTiE’는 얼마 지나지 않아 7월호를 마지막으로 무기한 휴간에 들어가게 된다. 사이토는 같은 출판사 (다카라지마샤)의 잡지 ‘sweet’의 레귤러 모델로 옮겨가게 되었다. 동시에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ANNA SUI의 2015년 가을 콜렉션 아시아권 비주얼 모델로 발탁되기도 하였으며, 만화잡지의 표지를 장식하는 경우도 늘어나게 되었다.
이에 발맞추어 12번째 싱글 ‘태양 노크’, 13번째 싱글 ‘지금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에선 2열에 진입, 처음으로 10복신에도 들게 되었다.
아 : 복신에 들었을 때, 솔직히 기쁜 것 보다는 ‘미나미의 대칭으로 뽑혔을 뿐’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요. ‘기쁨’을 느꼈다기 보다는 ‘사명감’ 같은 것을 느꼈다고 할까요. 맡겨진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어요.
지금도 그 때 저를 복신으로 뽑아주신 건 제 실력때문이 아니라 ‘기대치’로 뽑아주셨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물론 ‘복신’에 뽑혔다는 것만으로도 의식의 변화는 있었지요. 모바메도 성실하게 보내려 노력하게 되었고, 방송에서 말을 시키셨을 때 ‘무리예요’라고 이야기 하지 않도록 노력했고, 제가 이야기 하지 않을 땐 최대한 미소 지으려 노력했고… 저 나름대로는 엄청 노력하게 되었지요.
- 2016년, 14번째 싱글 ‘하루지온이 필 무렵’에선 복신에 다시금 진입하였을 뿐 아니라, 버라이어티 방송을 통해서도 본인의 개성을 발휘 할 수 있게 된 사이토. 발렌타인데이 기획 때 2기생들에게 선택을 받지 못 해 울음을 터뜨린다던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까지 음료수 캔을 따 본 적이 없는 사이토를 위해 ‘홀로서기 기획’이 방송된다던가 하는 등, ‘노기중’에서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아 : 딱히 의도 한 건 아니지만 말이죠. (웃음) ‘노기도코’와 ‘노기중’ 초기에는 녹화 한 걸 보곤 했는데, 제 분량이 늘어 난 뒤론 차마 보기가 힘들어지더라고요. 제 모습을 보면서 ‘이 녀석 참 재미 없구만’이라고 생각하게 되는지라. (웃음)
대체적으로 팬분들께서 ‘이 회에 나온 아스카가 참 좋았다’고 하시는 회차는 대부분 제가 부끄러운 일을 했을 때거든요. 특히 라디오 체조가 나온 회 같은 경우에는 제 무지가 들통 난 회차잖아요. (웃음) 아, 하지만 발렌타인데이 기획 때 운 것을 보고 팬이 되신 분도 계신데다가, 예전부터 응원 해 주시던 팬분들께서도 ‘예전에 비해선 인간다운 부분이 드러난다’고 기뻐 해 주시기도 했어요.
‘아이돌답지 않아도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희망
- 언더 라이브를 통해 얻은 퍼포먼스 능력 향상과 의식 변화, 그리고 ‘CUTiE’, ‘sweet’ 모델 활동을 통해 얻은 경험, ‘노기중’으로 부각된 인간미, 악수회 인기 상승… 온갖 긍정적인 요소가 모이고 모인 결과, 15번째 싱글 ‘맨발로 Summer’에서 처음으로 센터에 서게 된 사이토. 선발 발표 당시에는 ‘밝은 곡이랑은 정말 어울리지 않기에 정말 죄송하단 말 밖엔 드릴 말씀이 없어요… 요즘 노기자카 기세가 좋은데 저 때문에 CD판매량이 떨어 져 버릴 거예요’라며 네거티브한 발언을 하였으나, 현재는 긍정적으로 센터라는 자리에 서고 있다고 한다.
아 : 지금은 머릿속 정리가 다 되었기에 마음을 다잡았어요. 밝은 곡도 소화 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리허설 때도 지금까지보다 더욱 더 진지하게 임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이코마쨩이 엄청 신경을 많이 써 줬거든요. 선발 발표 직후에도 가장 먼저 말을 걸어 주었고, 그 뒤로도 함께 일을 할 때마다 적어도 한 번은 꼭 ‘센터로서의 사이토 아스카’를 칭찬 해 주고요.
이코마쨩 본인은 기억 못 할 지도 모르겠는데, 언젠가 ‘언더에 있는 아이들에게 있어 아스카는 희망이야’라고 이야기 해 준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이 정말 기뻤어요. 언더에 있었던 때와 선발에 있었던 때가 거의 반반인데다가, 언더에 있는 멤버들의 마음도 알고 있기에, 현재 언더에 있는 어린 멤버들이 저를 보고 ‘아이돌답지 않은 사이토 아스카조차도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는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제 힘만으로 뭔가를 바꿀 수는 없는 일인데다가, 지금 당장 노기자카라는 그룹을 바꿀 필요도 없지만, 제 존재가 미래로 이어지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네요.
- 작년 8월 9일에 열린 ‘한 여름의 전국투어 2015’ 나고야 공연 땐 사이토 아스카를 부각시칸 오프닝 영상이 상영되었다.
다카야마 카즈미의 ‘아스카는 가장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는 멤버라고 생각한다’는 내레이션이 흘러 나온 뒤, ‘아스카가 노기자카의 중심에 서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말이 이어졌다. 이 때 화면에 뜬 자막은 ‘아스카 노기자카 미래’라는 세단어였다.
그리고 그 영상으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그 영상에서 이야기 했던 ‘미래’가 ‘현실’이 되었다. 그룹의 중심에 선 사이토 아스카의 모습은 다름아닌 노기자카라는
그룹의 현재인 동시에 미래를 상징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으리라.
‘노기자카 공사중’ 프로듀서가 이야기하는
‘사이토 아스카가 브레이크 한 이유’
- 사이토 아스카상 본인은 스스로가 버라이어티 면에서 많이 변했다고 이야기 하시던데, 프로듀서분께서 보시기엔 어떠신가요?
프로듀서 (이하 ‘프’) : 아스카는 기본적으로 먼저 말을 꺼내는 타입이 아니었잖아요. 그랬던 것이 작년 말에서 올 해 초 즈음해서 ‘아 얘 변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어요. 중 1때 노기자카에 들어 온 뒤, 언더와 선발을 오가고, 모델 일을 하기도 한 데다가 고등학생이 되며 정신적으로도 성숙해 졌다고나 할까요. 이런 말을 하면 본인은 ‘아녜요’라고 부정할 것 같긴 하지만, ‘일’과 ‘인간적 성장’이 절묘하게 맞물린 결과라고 생각해요. 저도 예전부터 ‘힘 내’라고 얘기하곤 했거든요. ‘무슨 말을 해도 바나나맨이 살려 줄 테니까 아스카는 아스카 답게 하면 돼’라고.
- 어쩌면 발렌타인데이 기획이 본인에게 있어 하나의 계기였던 것 같은데요.
프 : 발렌타인데이 기획 이후로 바나나맨이 ‘아스카쨩~’이라고 좀 더 쉽게 놀릴 수 있게 되었죠. 사실 그 회 녹화 뒤에 시타라상이 ‘요즘 아스카가 열심히 한다’고 칭찬을 하시기도 했고요.
- 제멋대로 라디오 체조도 재미있었죠.
프 : 해 본 적이 없다는 게 정말 흥미로웠어요. 사실 저희 세대만 해도 라디오체조를 모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으니까요. 대체 얘는 지금껏 어떻게 살아 온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 때 부터 구성회의 때 ‘재미 있는 아이’를 거론할 때 아스카의 이름이 나오게 되었어요.
- 방송이 시작 된 지 5년이나 되어서 새로운 캐릭터가 추가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프 : 네 그렇죠. 게다가 아스카는 성실하기까지 하니까 말이죠. 사실 방송 초기만 해도 아스카가 본인의 본모습 뿐 아니라 방송적인 면까지 생각해서 행동 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말을 시키면 ‘에~’라고 이야기 하면서 그 짧은 시간동안 생각해서 발언을 하죠. ‘노기중’은 녹화 방송이니까 그 ‘에~’부분은 편집하면 되거든요. 어휘력도 있고 말을 고르는 센스도 있는데다가, 독설을 종종 하긴 하지만 그런 부분까지도 미워 할 수 없는 매력이 있고 말이죠. 뭐, 처음엔 솔직히 ‘건방진 꼬맹이구만’ 이라 생각했었지만 말입니다. (웃음)
- ‘센터’ 사이토 아스카상에 대해 기대하고 있는 게 있다면?
프 : 아스카는 센터라곤 해도 이끌어 가는 타입의 센터는 아니기에, 지금까지처럼 방송에 임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애초에 버라이어티 타입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무리하지 말고 본래 자신의 모습을, ‘사이토 아스카’라는 인간을 끌어 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아스카가 버라이어티라는
‘상자’안에 들어 갔을 때 어떤 발언을 할 지, 기대가 되네요.
퍼포먼스로 보는 ‘변화’와 그 ‘이유’
- 인상 깊었던 라이브는 언제였나요?
아 : 작년 크리스마스 라이브입니다. ‘멋있는’계열의 곡들을 초반에 배치 한 라이브는 처음이었기에 신선했고, 크리스마스다운 기획을 하면서도 라이브 전체의 템포가 엉키지 않았으니까요.
- 퍼포먼스 면에서 변화의 계기는?
아 : 첫 번째 계기는 언더 라이브 세컨드 시즌입니다. 퍼포먼스의 통일성에 대해 그룹 전체가 하나가 되어 생각 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거든요. 두 번째 계기는 ‘CUTiE’의 모델로 발탁 된 일입니다. 모델 경험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춤을 추면서도 예쁘게 보일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되었거든요. 세 번째 계기는 비교적 최근이네요. 표정이 풍부하지 않아 밝은 곡을 하는 데 대해 걱정이 있었지만, 최근 들어 의식해서 표정을 지으려 하고 있거든요.
- 팬 여러분께서 흔드시는 사이리움이나 타올, 잘 보이나요?
아 : 네. 눈에 확 들어와요. 예전에는 사이리움이나 타올이 적어서 의기소침해지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일부러 안 보기도 했지만요.
- 투어를 앞두고 있는데, ‘맨발로 Summer’가 첫 곡이 될 가능성도 있겠네요.
아 : 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첫 곡에서 실망하시지 않도록 노력 할 거예요. 팬 분들께서 절 보면서 ‘무리하고 있네’라고 생각하시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북돋을 생각입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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