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명이 넘는 팬들을 앞에 두고 자기소개, 라이브 퍼포먼스를 펼친 뒤, 처음으로 악수회를 체험하게 된 3기생. 부도칸 공연 레슨을 계기로 지방 출신 멤버들 중 대부분이 도쿄로 이사를 오기도 하는 등,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부모와 헤어져 홀로 상경한다는 것은
중, 고등학생들에게 있어 크나큰 결심이었다. 특히 지금껏
삶을 함께 해 오던 가족, 친구들과의 이별은 아직 어린 소녀들에게 있어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요다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엄청 친했거든요. 그래서 친구들이 환송회를
세 번이나 열어주었어요 첫 번째 환송회는 친한 여자아이들이랑 라운드원(※일본의 복합 레저시설)
에 가서 가라오케에서 울면서 '여행을 떠나는 날에(※카와시마 아이의 노래. 일본에서 손에 꼽히는 졸업송이며
교과서에도 실린 명곡)'를 불렀지요. (웃음) 두 번째 환송회는 학교에서 열렸는데,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을 활용해서
열어 주셨어요. 그 때는 노기자카의 '슬픔을 잊는 법'을 배경음악으로 깔고 친구들이 편지를 읽어주었지요. 그걸 들으며 또
한 번 울었어요. 마지막으론 다 함께 고기를 먹으러 갔어요. 거기서
다 저에게 '힘 내'라면서 큰 봉지가 가득 찰 정도로 과자를
싸 줬지요. 그래서 '이거 다 못 먹어'라고 이야기 하면서도 받아 와선 도쿄까지 가져 왔어요. 사실 아직도
다 못 먹었답니다. (웃음)"
오오조노 "도쿄로 떠나기 전날 밤, 할머니 댁에 다 같이 모여서 스키야키를
만들어 먹었어요. 초등학교때 친구부터 저에게 오디션을 추천해 주었던 선배까지 해서 20명 정도가 모여주었는데, 각자 '열심히
하라'며 선물까지 준비 해 주었어요. 그 덕분인지 그래도
조금은 마음 편하게 떠나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챠쨩(어머니)은 엄청 우셨어요. 아빠는 '잘
다녀와라. 만약 돈 떨어지면 할아버지한테 용돈 보내달라 그러고!'라고
농담 하시더라고요. (웃음) 아, 잠깐만… 스키야키가 아니라 샤부샤부였던가?"
각자 큰 각오를 하고 임한
도쿄에서의 새로운 생활은 지금껏 익숙했던 고향에서의 생활과는 크게다른 것이었다.
이토 "오키나와에 있을 땐 매일 바다에서 산책을 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는데,
도쿄에선 매일같이 일을 하거나 레슨을 하거나 하는 등, 주변 환경이 180도 달라졌어요. 그런 변화에 쫓아 가는 것 만으로도 벅찼습니다. 그리고 느낀 게 하나 있는데, 도쿄 사람들 걷는 속도가 엄청 빠르다는
거였어요!"
오오조노 "모두들 가고시마 사람들보다 야무져보이긴 했지만… 동시에
다들 기가 세 보여서 무서웠어요."
각자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란 12명의 소녀들이 도쿄에 모여. 노기자카라는 그룹으로서
생활을 시작했다. 그 날부터 그녀들의 '아직 명확하지 않은
거대한 꿈'을 막연히 쫓아가는 나날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3기생들의 결속력을 끈끈하게 만들어 준 큰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12월 14일에 방영된 'FNS가요제' 때의 일이었다.
나카무라 "리허설때 히라가나케야키46분들과 함께 리허설을 하게 되었어요. 히라가나케야키46 분들을 보니 인사도 예의 바르게 잘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저희 3기생들은 뭘 해도 허둥대고 야무지지 못해서 이코마
선배님께 '인사랑 예의는 중요하다'고 주의를 들었을 정도였지요."
존경하는 선배에게 주의를
들었던 것 때문일까, 3기생들은 자체적으로 모여 긴급 회의를 열었다.
사토 "'오늘 히라가나케야키분들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어? 느낀
점을 차례대로 얘기 해 보자'라는 얘기로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왜 노기자카에 들어 왔는지, 뭘 이루고 싶은지'라는 얘기까지 하게 되었어요."
요다 "미즈키가 '우리들이 여기 모인건 일을 하러 모인거지, 학교 친구들이 아니니까 해야 할 땐 제대로 하자'고 하더라고요."
쿠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눈물이 났어요. 결국 모두들 울면서
이야기를 했지요. 그리고 '여기서 이렇게 이야기만 해 봤자
아무런 결론이 안 나니까 레슨룸 열어달라 해서 연습 하자'는 의견이 나와서 그렇게 했지요. 그 때부터 모두 하나가 되었던 것 같아요."
그 날 그 대화에서 멤버들을
하나로 규합했던 멤버는 3기생들 사이에서 '리더격 존재'로 불리는 우메자와 미나미였다. 멤버들 중에서 최연장자도 아닌 우메자와가
리더격 존재가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여기에는 그녀 나름의 '노기자카에
강한 의지'가 반영 된 것이었다.
우메자와 "남들에게 미움받는 것을 겁낸다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다가, 12명이나 되는 멤버들 중 한 명 정도는 미움 받는 것을 겁내지 않는 사람이 있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노기자카를 위해서도 3기생 중 한 명 정도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최종심사가 끝난 지 3개월여가 지나, 처음으로 '동료'가 될 수 있었던 3기생들. 이렇게
서로서로 굳게 단결한 그녀들은 '격동의 2016년'을 지나 '시련과 비약의 2017년'을 맞이하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들에게 2017년 첫 시련이 닥쳤다. 2월
2일부터 12일에 걸쳐 개최 된 '3명의 프린시펄' 이었다. 그녀들은 노기자카46 멤버들의 '통과의례'로도 불리는 무대 위에서 자신들의 전력을 선보이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