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에서 22세 사이의 남성’들을 주 독자층으로 삼고
있는 본지의 특징에 맞추어 배우, 모델, 아이돌 등 여러 분야의 분들에게
스스로의 ‘18세에서 22세’ 까지를 들어 보는 기획인
‘1819202122~My 5years talk’.
그 첫 주자는 작년 12월에 노기자카46를 졸업, 2월 20일(화)에 첫 단독 사진집인 ‘에뜨랑제’를 내시는 이토 마리카상입니다.
그럼 이토상의 ‘18세’, 즉 2014년의 이야기를 들어 보도록 하지요.
18세 : ‘퍼포먼스라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한 해’
2014년 4월에 릴리스 된 8번째 싱글 ‘깨닫고 보니 짝사랑’을 기점으로 노기자카46는 ‘언더 라이브’를 시작한다. 이는 선발에 뽑힌 멤버 이외의
멤버들로 행하는 라이브이며, 그 시작은 전국 악수회장에서
열린 미니 라이브였다. 이후 시부아 O-EAST, 롯폰기 블루 시어터 등 점차
그 규모를 확대 해 가며, 12월에는 수용인원 1만명인 아리아케 콜로세움을
가득 메우며 팬들을 열광하게 하기도 하였다.
- 이토상의 18살 한 해는 8~9싱글 연속으로 언더 센터 자리에 서서 ‘언더 라이브’의 약진을 이끈 중심 멤버로서의 활약이 돋보인 해였습니다.
이토 (이하 ‘이’) : 제가 언더 센터에 선 타이밍에 언더 라이브가 시작 되었지요. 이전까지는 언더 멤버들에게
활동 할 기회가 거의 없었지만, 이 때를 기점으로 언더 멤버들 역시 활발하게 일을 받기 시작했어요. 지금 되돌아 보면 이 한 해는 정말이지 언더 라이브 하나만 보고 전념 해 온 한 해였던 것 같네요.
- 그럼 그 당시 이토상 본인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이 : 언더 라이브가 시작 되어 라이브 무대에 설 기회가 많이 늘어 난 덕분에…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퍼포먼스에 더욱 더 공을
들이게 되었어요. 사실 언더 라이브 이전까지는
퍼포먼스에 대한 ‘자각’이 없었거든요.
- 그렇군요. 그럼 ‘자각’을 갖게 된 뒤로는…
이 : 라이브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팬 분들과의 거리감을 의식하며 퍼포먼스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해에 열린 언더 라이브
때엔 평소 언더 멤버가 부르지 않는 유닛곡을 일부러 랜덤으로 넣어서 해 보거나, 멤버 각자에게 MC 시간을 몇 분간 준다던지 하는 등 안무면은 물론이고 다른 면에서도 여러 모로 새로운 도전을 했었어요. 그렇게 새로운 시도를 하며
라이브를 하다 보니 여러 미디어에서 ‘언더 라이브가 대단하다’는 식으로 다루어 주시기도 했지요. 물론 그런 식으로 말씀 해 주시는 것도 기뻤지만, 개인적으로는 팬 여러분께 저희들의 목소리가 가 닿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 정말 기뻤습니다.
- 언더 라이브가 시작되기 전에는
팬분들을 직접 접할 수 있는 활동이라 해 봐야 악수회 정도였지요?
이 : 네. 그런 활동을 중심으로 했었기에 활동을 시작한지 3년이야 되어서야 겨우 퍼포먼스에 자각을 갖게 된 건가 싶기도 하고요. (웃음) 17살 때 까지만 해도 저 자신이
갖고 있는 개성이나 무기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고, 저 스스로도 크게 생각을 안 한 채 활동을 해 왔어요. 엄마가 예전에 패션 디자이너를 하셨었기에 패션이라는 것 자체는 친숙한 편이었지만 그런 것이 저 자신의
무기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고요. 당시 제가 생각했던 제 유일한 무기는 어릴 적 부터 해 온 ‘춤’ 뿐이라 생각했는데 언더 라이브가 시작 된 뒤로는 바로 그 ‘춤’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지요. 그 덕분에 라이브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기회인지, 그리고 제가 갖고 있는 무기란
어떤 것인지를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