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화
아무도 모를 눈물의 이유
2016년. 히라가나 케야키의 추가멤버 오디션에 합격, 새로운 길을 걷게 된 11명의 소녀들.
거기에 지금껏 홀로 활동 해 온 나가하마 네루를 더하여 총 12명 체제를 갖춘 '히라가나 제 2장'이 시작 된 것이다.
신체제 첫 일거리는 자신들을 소개하는 오리지널곡 '히라가나 케야키'의 녹음이었다.
하지만 이 곡이 실리게 된 2번째 싱글 '세상에는 사랑뿐이야' 때부터 나가하마는 한자 케야키와 히라가나 케야키를 겸임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가하마의 스케줄 문제로 히라가나 멤버들과 함께 레슨을 받을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히라가나 멤버들과 한자 멤버들의 대면이 이루어졌다.
언젠간 '한자' 멤버가 되고 싶어?
히라가나 케야키 추가 멤버들이 활동을 시작했을 무렵부터 멤버들끼리 자주 나누던 이야기가 있다.
'언젠가는 한자 멤버가 되고 싶어? 아니면 계속 히라가나 멤버로 남고싶어?'
물론 여기서 말하는 '한자'와 '히라가나'는 '한자 케야키'와 '히라가나 케야키'를 의미한다.
이런 질문이 이상하지 않았던 것이, 애초에 그녀들이 추가 멤버 오디션을 받았을 당시만 해도 히라가나 케야키는 어디까지나 '한자 케야키의 언더 그룹'이라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언더'라는 것을 선배 그룹인 노기자카의 예를 들어 설명을 해 보자면, 언더는 싱글 타이틀곡을 부르는 멤버들을 뽑는 '선발'과정에서 선택을 받지 못 한 멤버들을 의미한다. '선발'과 '언더'는 매 싱글마다 바뀌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멤버들 사이에 극심한 경쟁이 벌어지게 된다.
노기자카의 이런 시스템을 잘 알고 있는 멤버들 입장에서는 결국 '언더 그룹'이라 함은 곧 '언젠가는 선발인 한자 케야키에 들어 갈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여 졌던 것이다.
하지만 히라가나 케야키를 '언더 그룹'이라 한 의미가 정확히 무슨 의미로 한 것이었는지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새롭게 만들어진 이 그룹이 어떻게 활동을 해 나갈 지 역시 당연히 정해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멤버들은 각자 '언더'라는 단어를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케야키자카46의 칸무리방송 '케야카케'가 방송되지 않는 나가노현 출신 카키자키 메미는 인터넷을 통해 히라가나 케야키 오디션을 알게 되고, 이 그룹이 '언더 그룹'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조차 거의 생각 못 한 채 오디션을 받은 케이스였다.
아이돌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던 히가시무라 메이는 '언더라는 건 말 그대로 케야키자카라는 그룹 산하 그룹이라는 얘긴가?'라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오디션을 받았다.
반면 노기자카의 팬으로 언더 라이브에도 가 본적이 있는 카토 시호는 '언더'라는 단어에 딱히 마이너스 이미지는 갖고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히라가나 케야키 오디션에 합격 한 뒤, '한자 케야키 멤버들은 다 귀엽겠지? 드디어 나코쨩이랑도 만날 수 있겠다!'라고 단순히 기뻐했다.
마찬가지로 이전부터 케야키자카46 멤버들의 블로그를 열심히 읽을 정도로 팬이었던 사사키 쿠미에게도 한자 케야키 멤버들은 말 그대로 '구름 위의 존재'였다. 그렇기에 자신이 그런 멤버들과 섞여 함께 활동을 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앞서 이야기 한 질문, 다시 말 해 '앞으로도 계속 히라가나 멤버로 남고 싶냐'는 질문에 대한 멤버들의 대답은 대부분 다음과 같았던 것이다.
'저는 지금 이대로 히라가나 멤버로 남고 싶어요. 이 멤버로 계속 활동하고 싶어요.'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 중 일부는 가슴속에 은밀히 자신만의 미래상을 그리고 있는 멤버도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멤버가 바로 사이토 쿄코였다.
노력과 오디션으로 점철된 매일매일
히라가나 케야키의 현 멤버중에서도 톱클래스의 가창력과 댄스실력을 뽑내는 사이토 쿄코.
하지만 이런 능력은 천부적인 재능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명확한 목적의식을 갖고 갈고 닦아 온 노력의 결정체였다.
사이토는 초등학교 1학년 때에 발레를 시작하고, 2학년때부터는 댄스를 배워왔다.
춤을 배우며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하게 된 그녀는 장래 희망도 '프로 댄서'로 적을 정도로 춤에 푹 빠져 살았다.
초등학생 때 열린 댄스 발표회에서 가장 춤을 잘 추는 아이가 맨 앞 센터자리에 서 춤 추는 것을 뒤에서 바라보던 그녀는 '나도 춤 연습을 더 열심히 해서 언젠가 저기 서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고, 실제로 더욱 더 열심히 댄스 연습에 매진하였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에는 이미 춤이 생활의 중심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매일매일 춤에 빠져 살았을 정도였다.
이후 중학생이 된 그녀는 한 아이돌을 알게 된다.
AKB48 제 2회 싱글 선발 총선거에서 1위에 오른 오오시마 유코였다.
키는 작아도 누구보다 힘껏 손발을 쭉쭉 뻗으며 감정을 폭발시키듯 춤을 추는 오오시마의 퍼포먼스를 본 사이토는 오오시마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사이토는 오오시마가 실린 잡지나 굿즈 등을 모을 수 있는 한 모았을 정도로 열렬히 그녀를 응원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사이토 본인도 연예계에 대한 동경을 갖기 시작, 오디션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돌, 댄서, 배우… 여러 번 오디션을 받았지만 합격 하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들과 함께 온천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한 그녀에게 가족들의 칭찬이 쏟아졌다.
그녀가 '노래'에 관심을 갖게 된 날이었다.
그리고 중 3이 되어서는 댄스 스쿨을 그만두고 보컬 스쿨에 다니기 시작하였다.
그녀에게 있어 '노래'란 단순한 취미나 기분전환용 유흥거리가 아니었다.
노래방을 갈 때에도 친구들과 가기 보다는 혼자 가는 경우가 많았다.
단순히 친구들과 '놀러 가는' 곳이 아니라 '노래를 연습하러' 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홀로 노래방에 들어 가, 마이크를 잡고는 마스터 하기로 정한 곡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철저하게 익숙해 질 때까지 부르고 또 불렀다.
이전, 한 다큐멘터리 방송에서 오오시마는 '노력 한다면 누구나 오오시마 유코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네. 될 수 있어요. 물론 저와 같은 노력 한다는 게 그리 쉽지는 않을 걸요'라고 대답 한 바 있다.
스스로 그렇게 자불 할 수 있을 정도로 노력가인 오오시마 유코를 존경하고 있었던 사이토였기에 '자신의 꿈을 위해 하는 노력'은 전혀 괴로운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노래'와 '춤'이라는 두 가지 무기를 손에 넣은 사이토는 고등학교에 들어 간 뒤로는 아티스트가 되기 위하여 오디션을 받았다.
하지만 오디션 결과란 운에 좌우되기 쉬운 것, 연예계로의 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고 3이 되기 직전, 사이토는 이렇게 결심을 했다.
'이제 연예인이 된다는 꿈은 접자. 앞으로는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돌아 가, 진학 준비를 해야지'
매사에 진지하게 임해 온 그녀였기에 포기할 때 조차도 결연했다.
그토록 꿈꾸어왔던 연예계에 대한 동경을 단칼에 끊어내고 보컬스쿨마저 그만 둔 채 평범한 생활로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마치 기차가 급커브를 꺾는 것 같은 급격한 방향전환이었다.
하지만 꿈을 쫓아 달려 온 나날 동안 알게모르게 쌓아 온 작은 인연이 그녀를 다시 한 번 '연예계'라는 꿈으로 이끌어 주었던 것이다.
TV너머에 서 있던 옛 동료
사이토가 고3이 된 해의 가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새 방송 '케야카케'를 보고 있자니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 눈에 띄었다.
깜짝 놀라 라인으로 연락을 해 보니 TV에서 본 사람은 자신의 지인이 맞았다.
지인은 '케야키자카46라는 그룹의 오디션에 붙어, 멤버가 되었다'고 이야기 했다.
이 '지인'은 한자 케야키의 인기 멤버, 이마이즈미 유이였다.
사이토와 이마이즈미가 만난 것은 그녀가 고 1때의 일이었다
한 레코드 회사의 오디션 겸 라이브에 출전하였을 때, 사이토 바로 앞 순서로 노래 했던 것이 이마이즈미였다.
기본적으로 오디션장에서 만난 다른 후보자들이랑 친구가 되는 경우는 없었지만, 자신과 마찬가지로 가수가 되기 위하여 노래 실력을 갈고 닦던 한 살 아래의 이마이즈미와는 어째서인지 금새 의기투합, 연락처도 교환하며 친해지게 되었다.
그렇게 오디션장에서 만났던 친구가 지금 TV화먼 너머에 서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 같은 해 11월에 히라가나 케야키 추가 멤버 오디션 소식이 흘러나왔다.
연예인이 된다는 꿈을 접었던 사이토가 이 오디션을 받기로 한 데에는 이마이즈미의 존재와, 오디션이 '대학 입시 직전'이었다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가수나 댄서 오디션이라면 아깝게 떨어 진 적이 있지만, 아이돌 오디션은 금방 떨어지겠지. 하지만 대학생이 된 뒤에는 오디션 받기 힘들어 질 테니까 어차피 떨어 질 거 마지막으로 도전 해 보자'
라는 마음으로 사이토는 '인생 마지막 오디션'에 임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디션은 본인의 예상과는 달리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 중에서도 사이토 본인의 매력이 가장 잘 발휘되었던 것은 '쇼룸'을 통한 개인 방송에서였다.
인터넷 방송 서비스인 쇼룸을 통해 후보자들이 개인 방송을 한다는 이 기획은 비록 '심사결과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고는 했지만, 시청자의 수나 응원 수 등이 집계되는 포인트제로 운영되었다.
매사에 최선을 다 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사이토는 당연히 1위를 목표로 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방송을 하였다.
카메라 앞에서 춤을 추기도,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참고로 그녀의 대명사라고도 할 수 있는 낮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이야기 하는 모습은 이 때도 변함이 없어, 시청자로부터 '아나운서같다'는 평가를 받으며 화제를 일으켰다.
사실 이 말투는 초등학생 때 그녀의 부친이 엄하게 교육시킨 결과물이었다.
어릴 적에는 엄한 아버지 때문에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예상도 못 했던 곳에서 '그 당시 아버지가 엄격하게 가르쳐 주셔서 다행이야'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쇼룸을 통해 지금껏 자신이 해 온 노력들이, 지금껏 쌓아 온 모든 것들이 발휘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쇼룸 심사에서 1위를 차지한 사이토는 최종심사 때 케야키자카46의 '손을 잡고 돌아갈까'를 심사위원들 앞에서 당당히 노래하고, 오디션에 합격하였다.
합격 발표 직후 사진 촬영을 위하여 다른 합격자들과 함께 무대 위에 섰을 때, 그녀의 마음 속에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수 없이 받아 온 오디션 결과들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어. 모든 오디션이 결국 이 오디션으로 이어 진 거구나.'
집으로 돌아 간 그녀를 부모님이 반겨주었다. 부모님의 손에는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울기 싫어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고 있던 그녀는 그런 부모님의 모습에 속이 후련 해 질 만큼 울었다.
불안감에 틀어박힌 한자 케야키 멤버들
하지만 사이토에게 있어 오디션 합격은 어디까지나 '꿈의 시작'일 뿐 종착역이 아니었다.
그녀의 가슴 속에는 한 가지 목표가 있었다.
'이 세계에 들어 온 이상 어중간한 건 싫어. 무조건 유명 해 질 거야. 히라가나가 한자의 언더 그룹이라면 난 히라가나 중에서 가장 열심히 노력해서 한자 선발에 들겠어.'
그녀는 이미 오디션에 응모 했을 때부터 '한자 케야키' 멤버로서 싱글 타이틀곡을 부른다는 목표를 세웠던 것이다.
최연장자이면서도 춤에 자신이 없어 사이토와 함께 자주 자주연습을 했던 이구치 마오 역시 그런 그녀의 목표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녀는 실력도 의욕도 있는 사이토의 꿈이 이루어 지기를 진심으로 빌어 주었고, 객관적으로 보아도 사이토의 능력이라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2016년 8월 중순.
코 앞으로 다가온 피로연을 대비하여 집중 레슨을 받고 있으려니 갑작스레 한자 케야키와 히라가나 케야키의 합동 리허설을 하게 되었다.
나가하마 네루 이외의 멤버들에게 있어서는 선배들과 처음으로 대면할 기회였다.
리허설 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한자 케야키 멤버들이 차례차례 들어왔다.
'사이마조'로 데뷔하여 금새 '사회 현상'이라 불릴 정도의 붐을 일으키고, TV나 잡지 등 각종 미디어를 석권한 한자 케야키 멤버들이 사이토의 눈 앞에 일렬로 줄지어 섰다.
그리고 그 중에는 옛 친구, 이마이즈미 유이의 모습도 있었다.
초짜나 다름없는 자신들에 비해 한자 케야키 멤버들은 너무나도 세련되고 당당해 보였다.
눈 앞에 서 있는 20명의 '연예인'들이 뿜어내는 박력 때문일까, 리허설실의 분위기가 긴장감으로 가득찼다.
하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인사를 하며 울먹이는 멤버도 있었지만 선배를, 연예인을 앞둔 사람이라면 긴장하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하지만 갑자기 사이토가 목을 놓아 울기 시작했다.
오디션 때에도, 힘든 레슨 때에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사이토가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모습을 보며 주변 멤버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 했다.
그리고 전원이 '어째서 저렇게까지 우는거지?'라며 의문을 표했다.
이 때 그녀가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참 전부터 연예계를 동경하여 수 없이 오디션을 보고, 떨어졌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부단히 노력하여 겨우 '꿈이 시작'되는 출발선에 선 그녀가 이 때 어떤 생각을 했는 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다.
사이토 쿄코는 눈 앞에 서 있는 한자 케야키 멤버들의 당당한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아, 이건 무리다. 이 사람들은 이미 나와 차원이 달라. 내가 이런 대단한 사람들과 경쟁해서 선발에 들어 간다는 건 무리야.'
이것은 그녀 혼자만이 느낀 아이돌의 세례, 첫 '좌절'이었다.
하지만 사실 한자 케야키 멤버들 역시 이 때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을 보며 동요하고 있었다.
데뷔 싱글 '사이마조'와 2번째 싱글 '세카아이' 두 번 연속으로 전원 선발로 활동 해 왔던 그녀들은 자신들에, 히라가나 케야키와 겸임을 하게 된 나가하마를 포함한 21명의 멤버들이야말로 '케야키자카46'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당시 한자 케야키 멤버들이 자주 언급했던 이야기가 있다.
'케야키(느티나무 거, 欅)라는 한자는 21획으로 이루어 져 있어요. 그렇기에 이렇게 21명의 멤버가 모인 건 운명인 것이죠.'
어떻게 보면 매우 소녀감성을 자극하는 운명론적인 이야기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이야기에 의미를 둘 정도로 21명의 멤버들의 유대는 각별했던 것이다.
히라가나 케야키와 대면하기 직전, 한자 케야키 멤버들 대부분이 부끄러움, 불안함으로 화장실에 틀어박혀 있었을 정도였다.
사이토 쿄코와 한자 케야키 멤버들이 느낀 불안감, 공포는 그 뒤로도 오랜 기간동안 해소되지 못 한 채 앙금처럼 남아 있게 된다.
이것은 '언더'라는 단어 하나가 가져 온 저주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가운데 히라가나 케야키의 피로연 날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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