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화
조명이 들지 않는 아이돌
팬들에 대한 첫 피로연 스테이지를 무사히 끝낸 히라가나 케야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악수회에 오는 사람들이 늘어 난 것은 아니었다. 멤버들은 변함 없이 텅 빈 악수회 레인에 서서 시간만 보내야 했다.
그런 와중에 반가운 소식이 날아 들었다. 첫 단독 이벤트, '히라가나 오모테나시회' 개최 소식이었다.
지금껏 경험 해 보지 못 한 긴 레슨과 아이돌이라는 직업의 냉엄함을 처음으로 직면한 멤버들은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주는 가운데 서서히 '유대감'이라는 것을 만들고, 강화 해 나갔다.
그리고 찾아 온 2016년 10월 28일. 이벤트 당일 아침이 밝았다.
12명이 선보인 '사이마조'
도쿄 미나토구에 위치한 라이브 하우스, '아카사카 블리츠'. 약 1000여명의 팬들이 스탠딩석을 가득 메운 가운데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 12명이 무대 위에 올랐다.
이벤트는 나가하마 네루의 인사로부터 시작되었다.
나가하마 : "오늘 이렇게 와 주신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멤버 일동 여러분과 만나기를 기대 해 왔습니다. 오늘은 히라가나 케야키의 첫 단독 이벤트입니다. 마지막까지 느긋하게 즐겨 주세요."
이벤트 전반은 가공의 '부 활동 발표회'라는 설정으로 이루어졌다.
멤버 12명을 각각 코러스부, 댄스부, 사회진행을 담당한 방송부로 나누어 지난 2주동안 연습 해 온 퍼포먼스를 선 보인 것이다.
우선 방송부 소속 이구치 마오가 입을 열었다.
이구치 : "사실 불안한 마음 밖에는 들지 않습니다만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뒤에 이어진 이구치의 토크는 말 그대로 '두려움을 모르는' 무쌍상태였다. 이구치의 토크에 회장 분위기는 한 층 달아올랐다.
뒤를 이어 사사키 미레이, 우시오 사리나 등 총 6명이 소속 된 코러스부의 차례가 돌아왔다. 코러스부는 '히라가나 케야키', '사이마조' 등을 아카펠라로 선보였다.
대기실에서 연습 할 때만 해도 '그다지 노래 잘 하지도 않는 우리가 반주도 없이 노래 하면 비웃음만 살 것'이라며 불안해 하던 멤버들도 스테이지 위에 오르자 마치 언제 그런 걱정을 했냐는 듯이 3부 화음을 넣으며 멋진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사람의 목소리란 건, 사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악기라 할 수 있어. 그러니까 너무 불안해 하지 말고 자신 있게 목소리를 내 줬으면 좋겠다."
는 스태프의 조언을 듣고 자신들의 목소리의 특징을 찾고, 밸런스를 맞추어 가며 연습 한 성과였다.
한편 댄스부는 실전 직전까지 난관에 허덕이고 있었다. 지금껏 경험 해 본 적 없는 힘든 안무를 외워야 했을 뿐 아니라, 솔로파트 때는 각자의 특기도 선보여야 했기 때문이다.
이 '특기' 중에는 실패 가능성이 높은 것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카게야마는 축구공을 이용하여 리프팅을 했고, 히가시무라는 마칭용 라이플을 돌렸다.
실제로 리허설 때는 전원이 한 번에 성공 한 적이 없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본 무대에 올라서는 누구 하나 실패하지 않고 훌륭히 특기를 선보였다.
댄스부에 이어 무대에 선 연극부 땐 12명의 멤버 전원이 즉흥극에 도전하였는데, 때때로 대사를 더듬거리기는 했어도 눈에 띄는 큰 실수는 없이 무난하게 완수 해 냈다.
이후 히라가나 케야키가 라이브 경험을 쌓아가며 그녀들의 대명사로 자리잡게 될 '승부에 강한 측면'이나 '무대 그 자체를 즐기는 자세'는 이미 이 때부터 발휘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이벤트에 있어 정말 문제였던 것은 다름아닌 후반부에 있었던 라이브 파트였다.
이 날 라이브에서 선보인 곡은 그녀들의 첫 오리지널 곡인 '히라가나 케야키'와 한자 케야키의 대표곡인 '사이마조'와 '세카아이'였다.
TV 음악 방송을 통하여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곡들을 선보인다는 것은 멤버들에게 있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도 21명으로 이루어진 한자 케야키의 곡을 12명이 선보여야 한다는 점부터가 엄청난 난관이었다.
'한자 케야키를 패러디 하는 것 처럼 보여서는 안돼.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
모든 곡에서 센터 자리에 섰던 나가하마의 뇌리는 이런 생각들로 가득했다. 물론 이런 생각은 나가하마 뿐 아니라 모든 히라가나 멤버들의 머릿속에 도사리고 있는 생각이었다.
멤버들은 불안을 공유하며 레슨에 임했다. 12명 버전으로 포메이션이 어레인지 된 '사이마조'는 아무리 연습을 해 보아도 한자 케야키만큼의 강렬한 포스가 나오지 않아 멤버들을 초조하게 했다.
그렇게 불안해 하던 그녀들을 도와주었던 것은 의외로 한자 케야키 멤버들이었다.
레슨 기간동안 한자 케야키의 댄스 리더격 존재, 사이토 후유카를 비롯한 한자 멤버들이 리허설 룸을 찾아 히라가나 멤버들에게 조언을 해 주었던 것이다.
오리지널 센터인 히라테 유리나 역시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스케줄과 스케줄 사이에 짬이 나면 리허설실을 찾아 다음 스케줄 직전까지 연습을 도와주거나, 자신이 스테이지 위에서 어떤 것들에 중점을 두는 지 등을 세심하게 조언 해 주기도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이벤트는 히라가나 멤버 12명만의 무대가 아닌 케야키자카46이라는 그룹과 그 주변 사람들이 모두 함께 힘을 모아 만들어 낸 무대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벤트 당일 무대 위에서 히라가나 케야키가 선보인 퍼포먼스는 비록 기술적으로도 부족하고 박력도 없었을 지는 몰라도, 얼굴에 경련이 올 정도로 필사적으로 미소짓고 퍼포먼스를 하는 그녀들의 모습은 관객들의 가슴을 울리는 데에는 충분하였다. 그녀들의 퍼포먼스에 감동을 받은 관객들은 그녀들에게 성대한 박수를 보냈다.
멤버들이 마지막 인사를 하고 무대 뒤로 사라진 뒤에도 관객들의 우렁찬 '히라가나' 콜은 멈출 줄 몰랐다.
공연이 끝난 뒤, 무대 뒷편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사사키 미레이는 이런 말을 남겼다.
"지금보다 더 성장하고 싶어요. '대단해'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이 당시, 12명의 멤버들은 자신들의 눈 앞에 펼쳐 질 밝은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높이 뛰어!'에 담긴 테마
이 해 11월 30일에 발매 된 3번째 싱글 '후타리세종'에 다시 한 번 히라가나 케야키의 곡이 커플링으로 실리게 되었다.
히라가나 케야키의 두 번째 오리지널곡의 제목은 '누구보다도 높이 뛰어!'였다.
전작인 '히라가나 케야키'의 차분한 분위기와는 정 반대로 디스코 뮤직풍의 경쾌한 사운드에 자유와 희망에 대한 갈망이 담긴 씩씩한 가사가 녹아 든 회심의 곡이었다.
'자 앞으로 크게 뛰어봐! 있는 힘을 다 해 다리를 들어!
따라잡지 못 할 정도로 큰 점프를!
희망의 날개를 태양이 비추어 주고 있어!
믿어 봐 You Can do! 할 수 있어 You can do! 조금만 더…'
이 곡의 안무 역시 명확한 테마가 설정 되어 있었다.
바로 '라이브 때 흥할 안무'라는 것이 그 테마였다.
한자 케야키에 비해 인지도가 압도적으로 부족한 히라가나 케야키. 오리지널 곡 수는 물론이고 인원 수 조차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었기에 한자 케야키와 함께 라이브를 해 봤자 아무런 임팩트를 주지 못 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관객들에게 임팩트를 주고, 분위기를 띄울 수 있는 신나는 안무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 임팩트 있는 안무를 만들기 위하여 댄스 레슨에서는 독특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우선 절반인 6명이 먼저 퍼포먼스를 하고, 나머지 6명은 건너편에 앉아 그 모습을 마치 관객인 듯 지켜보았다. 퍼포먼스를 하는 측은 지켜 보는 멤버들의 흥을 돋구기 위하여 실전처럼 퍼포먼스를 하고, 지켜보는 멤버들은 콜을 하면서 '어떻게 해야 관객들이 더 달아오를 수 있을 지'를 객관적으로 생각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이다. 또한, 후렴구에서는 멤버와 팬이 함께 점프를 할 수 있는 부분도 마련되었다.
그리고 히라가나 케야키의 오리지널 포즈, 일명 '히라가나 포즈' 역시 이 곡과 함께 쓰이기 시작했다. 멤버들 자신이 고안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번 곡은 지난 곡과는 달리 MV도 만들어졌다. 히라가나 멤버들에게 있어 MV촬영은 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었다.
원래부터 울보가 많은 그룹이기도 하지만, 이 MV를 찍을 때는 특히나 많은 멤버들이 울거나 의기소침 해지거나 했다.
예를 들어 어릴 때부터 발레를 배워 춤에는 자신이 있었던 사사키 쿠미는 카메라 앞에서 노래하며 춤 추려 한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 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히라가나 케야키'에 이어 2작품 연속으로 나가하마와 함께 더블 센터에 선 카키자키 역시 나가하마에 비해 안무 습득 속도가 느린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나 눈물을 흘렸다.
한편, 애초에 춤에는 자신이 없었던 이구치는 타이밍이 어긋나 혼이 나도 '항상 있는 일'이었기에 그렇게 크게 상심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MV가 공개 된 뒤, 자기 자신의 어설픔을 지적하는 무수한 댓글들을 보았을 때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이렇듯 당시만 해도 아직 미완성인 부분이 많았던 이 곡은 이후 히라가나 케야키를 상징하는 곡중 하나로 자리잡게 된다.
히라가나 케야키는 어느 사이엔가 첫 단독 이벤트를 성공리에 마무리 하면서 얻은 자신감과 라이브를 흥하게 하는 새 곡이라는 '자신들을 어필 하기 위한 새로운 무기'를 손에 넣은 것이었다.
괴로웠던 '노기자카 3기생들과의 공연'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 않았다. '오모테나시회' 이후로 몇 달이 지나도록 그녀들에게는 아무런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어 지지 않았던 것이다.
분명 같은 그룹일 터인 한자 케야키는 홍백 가합전 출장이 정해지고, 더욱 더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게 되었으며, 다시금 '전원 선발'로 발매 된 새 싱글 '후타리세종' 역시 전작을 상회하는 좋은 성적을 내었다.
한 편 같은 시기 히라가나 케야키는 새로운 일도 거의 받지 못 하고, 그저 주말에 있는 악수회만을 전전하며 시간을 보낼 따름이었다. 결성 당시만 해도 미디어의 취재가 줄을 이었지만 이 당시에는 이미 그런 취재 역시 거의 끊겨 있었다.
당시 아직 학교에 다니며 오사카에 살고 있었던 다카세 마나는 자신들을 가리켜 '완전히 커플링 악수회 아이돌'이라 자조했을 정도였다.
케야키자카46의 싱글에는 '커플링곡'에만 참가하고, 싱글 활동이라 해 봤자 주말에 있는 악수회가 전부인 자신들의 상황을 표현한 말이었다.
다카세와 마찬가지로 학교에 다니고 있던 멤버들은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로서 활동 했던 기억보다는 학생으로서 학교생활을 한 것이 더 기억에 남을 정도인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그런 자신들의 미묘한 위치를 깨닫게 해 주는 에피소드도 여러 번 있었다.
12월 중순에 방송 된 음악특방 '2016 FNS가요제' 때. 히라가나 케야키는 자매그룹인 노기자카46의 신 멤버, 3기생들과 함께 공연을 하게 되었다.
노기자카 3기생들은 그 해 9월 데뷔한 직후였기에 사실상 경력으로 따지자면 히라가나 케야키보다도 후배였고, 히라가나가 2곡이나 갖고 있는 오리지널 곡도 하나도 없는 말하자면 '생초짜'인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녀들이 함께 퍼포먼스를 하게 된 곡은 노기자카46의 '제복 마네킨'이었다.
나가하마가 센터에 서고 노기자카 3기생들이 그 옆에 서는 포메이션이었다.
하지만 나가하마 이외의 히라가나 멤버들의 자리는 맨 뒤쪽, 조명이 거의 들지 않는 곳이었다.
나가하마 이외에 화면을 통해 얼굴이 인식 가능한 멤버는 사사키 쿠미와 카토 시호 정도였기에 인터넷에서는 '나가하마 네루와 노기자카3기생들의 마네킨'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말 하자면 히라가나 멤버들은 그 존재조차도 잊혀졌던 것이다.
한자 케야키 멤버들은 이런 상황을 보고 '히라가나쨩, 전혀 화면에 비추지 않네. 안됐어.'라고 안타까워 해 주었다.
이후, 한자 멤버들의 이 발언을 전해들은 카키자키는 '우리들이 화면에 비추지 않는 건 당연한 건데 이렇게 걱정 해 주다니, 한자 선배님들 정말 다정하시네'라고 생각했다 한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던 어느 날, 멤버들끼리 패밀리 레스토랑에 갔을 때, 카토 시호가 '우리는 어쩌면 이런 취급을 받을 운명일지도 몰라'라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다른 멤버들 조차도 자조적으로 웃을 뿐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 했다.
연말에 열린 '케야키자카46 첫 원맨라이브 in 아리아케 콜로세움' 에서도 히라가나 멤버들이 참가 한 것은 오리지널곡 2곡과 한자 케야키와의 합동곡 '케야키자카의 노래'뿐이었고, 그 뒤로는 그저 무대 옆에서 조용히 한자 케야키를 응원할 뿐이었다.
그룹에 들어 오기 전, AKB48의 '드래프트 회의'라는 오디션에 참가 하였을 때, 이미 아리아케 콜로세움 스테이지에 서 본적이 있었던 카게야마에게 있어 다시금 이 스테이지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일종의 '운명'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공연 도중 '얘들은 누구야?'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관객들의 모습을 목격 한 뒤, '우리는 한자 선배님들의 '덤'으로 여기 서 있구나… 우리는 정말 작디 작은 존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말에 있었던 홍백 가합전 역시 히라가나 멤버들은 전원 집에서 TV를 통해 한자 케야키의 퍼포먼스를 보아야 했다.
한자 케야키의 멤버, 즉 '선발 멤버'가 되어 싱글 타이틀을 부르는 것이 목표였던 사이토 쿄코는 나날이 벌어져만 가는 한자 케야키와의 격차에
'아 이제 한자와 히라가나 멤버 교대는 없겠구나. 완전히 별개의 그룹이 되어버렸어'라고 생각했다.
자신들의 존재의의를 생각 하면 할수록 뭐가 뭔지 알 수 없어졌다.
심지어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이미 이 그룹이 한자만으로도 잘 굴러간다면 히라가나는 필요 없잖아. 조만간 스태프분이 '히라가나를 만든 건 실수였습니다. 오늘로 히라가나 케야키는 해산합니다'라고 말 해도 이상할 게 없겠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당시, 히라가나 멤버들은 자주 한 데 모여 고민을 이야기하곤 했다. 자신들이 지금 놓여 있는 상황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녹록치 않았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뭔가 해야만 했다.
하지만 뭔가 시도 해 보려 해도 그럴 기회조차 얻지 못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렇게 헛되게 오가는 대화 속에 멤버들의 마음은 조금씩 침식되어갔다.
하지만 그렇게 모두가 침울해 져 있을 때에도 남들 몫까지 밝게 행동하는 멤버가 있었다.
우시오 사리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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