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물/출판물-히나타자카 + 35
- 2020.07.20 히라가나 케야키 스토리 21화
- 2019.09.21 히라가나 케야키 스토리 20화 (시즌 3 1화)
- 2019.06.28 히라가나케야키 스토리 - 19화
- 2019.05.07 히라가나케야키 스토리 - 18화
- 2019.05.07 히라가나케야키 스토리 - 17화
- 2019.03.06 Graduation 2019 고교졸업 1. 니부 아카리
- 2018.10.14 히라가나 케야키 스토리 - 16화
- 2018.10.02 히라가나 케야키 스토리 - 15화
- 2018.09.26 히라가나 케야키 스토리 - 14화
- 2018.09.11 히라가나 케야키 스토리 - 13화
- 2018.09.03 히라가나 케야키 스토리 - 12화 (시즌 2 1화)
- 2018.07.11 히라가나 케야키 스토리 - 11화
- 2018.07.10 히라가나 케야키 스토리 - 10화
- 2018.07.07 히라가나 케야키 스토리 - 9화
- 2018.07.05 히라가나 케야키 스토리 - 8화
- 2018.07.03 히라가나 케야키 스토리 - 7화
- 2018.07.02 히라가나 케야키 스토리 - 6화
- 2018.06.30 히라가나 케야키 스토리 - 5화
- 2018.06.29 히라가나 케야키 스토리 - 4화
- 2018.06.27 히라가나 케야키 스토리 - 3화
- 2018.06.26 히라가나 케야키 스토리 - 2화
- 2018.06.25 히라가나 케야키 스토리 - 1화 2
- 2018.06.24 히라가나 케야키 스토리 - 1화 1
- 2018.03.19 EX 대중 1804 - 다카모토 X 카토 X 히가시무라 인터뷰
- 2018.03.14 퀵 재팬 vol. 135 카키자키, 이구치, 카토 인터뷰
- 2018.03.07 BUBKA 1804 사사키 미레이 X 카키자키 메미 대담
- 2018.01.23 월간 엔타메 다카모토 아야카 X 히가시무라 메이 대담
- 2018.01.18 20 SWEET 카토 시호 인터뷰
- 2018.01.16 20 SWEET 사이토 쿄코 인터뷰
- 2017.08.17 BUBKA 1709 카키자키 메미 인터뷰 '나와 유리나'
제 21화
'달아나고싶어'라 적었던 나날
멤버 내 오디션
2기생들이 오디션을 거쳐 그룹에 합류한지 얼마 되지 않은 9월 초 어느날.
'테스트 촬영을 한다'는 명목으로 2기생 멤버들이 소집되었다. 특이한 것은 멤버들을 두 팀, 다시 말해 지방에 살고 있는 멤버들과 도쿄에 살고 있는 멤버들로 나누어 소집하였던 점이다.
그리고 소집일, 지정된 장소에 모인 멤버들에게 날아든 소식은 멤버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 했던 것이었다.
'얼마 전에 히라가나 주연 드라마 소식 나온 건 알고 있지? 사실 그 드라마에 나오는 중요한 역할 중 한 자리가 아직 미정이거든. 지금부터 그 자리에 들어 갈 사람을 정하기 위해 오디션을 볼거야.'
그렇다. 8월 말 치바 마쿠하리멧세에서 열린 케야키자카46 사상 첫 전국투어 파이널 무대에서 히라가나케야키 주연 드라마, 'Re'mind' 제작 발표가 있었던 것이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것은 10월부터였고 대략적인 줄거리와 키 비주얼은 이미 공개 된 상황이었다.
2기생들 역시 관객석에 앉아 드라마 제작 발표를 보았지만,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자신들이 드라마에 출연할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제대로된 레슨조차 시작되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무대 위에 서 있는 선배 멤버들을 바라보는 그녀들은 말하자면 '팬과 다름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오디션'에 어찌 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는 2기생 멤버들. 하지만 스탭들은 아랑곳않고 멤버들에게 각자의 이름이 적힌 조끼와 오디션용 대본을 건네주었다.
소집을 받고 이 날 아침에 고향(야마구치현)에서 올라온 카와타 히나는 아이돌이 되어 처음으로 받은 '일'에 의욕이 가득했다. 비록 첫 '일'이 춤이나 노래가 아닌 연기, 그것도 9명 중 단 한명만을 뽑는 오디션이라는 것은 예상 못 했던 일이지만 '기왕 할 거면 꼭 합격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전력을 다했다.
하지만 실제로 심사위원들 앞에 서자 긴장을 한 탓인지 몇 번이나 대사를 더듬었다. 그런 일이 되풀이되다 보니 자신이 생각했던 자신의 모습과 실제 자신의 모습간의 괴리에 낙담하게 되어, 자신감을 잃은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져만 갔다.
'이거 어쩌지.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
카와타의 머릿속이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차 갈피를 못 잡고 허둥대던 와중에 오디션이 끝났다.
심사위원들은 카와타에게 '오디션에 대한 감상'을 요구하였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눈물을 참으며 고개를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TV나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하는 '연기' 라는 것이 실제로는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리고 불과 얼마 전까지 '해 낼수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무력감'은 카와다 뿐 아니라 이번 오디션을 겪은 모든 멤버들이 공통적으로 뼈저리게 느낀 바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연기'로 심사위원들을 깜짝 놀라게 한 멤버가 있었다. 바로 와타나베 미호였다.
그녀가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인 대본의 내용은 '내가 좋아하는 선배가 알고보니 내 친구에게 고백을 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된 상황'을 그린 것이었다. 이 상황을 멤버 둘이서 연기 해 내야 하는 것이었다.
멤버 대부분이 친구를 위해 희생하는 '착한 아이'를 연기한 가운데, 와타나베만은 감독의 조언에 따라 대본을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여 '악녀'를 연기했다. 다른 멤버들과 같은 대사를 받았음에도 해석 하나로 캐릭터를 정반대로 가져갔던 것이다.
그리고 와타나베의 연기를 뒤에서 보고 있던 니부 아카리는 그 순간 '아, 이번엔 얘가 합격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한다. 니부 뿐 아니라 와타나베의 상대역이었던 토미타 스즈카 역시 '나도 오디션에 붙고 싶긴 하지만, 상대가 미호면 별 수 없지'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오디션으로부터 이틀이 지난 어느 날, 와타나베는 드라마 촬영이 한창이던 스튜디오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이 오디션에 합격하게 되었다는 점과, 그 날부터 바로 촬영에 합류하게 되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내가 합격하다니, 뭔가 잘못된거야.'
'처음 뵙겠습니다. 와타나베 미호라고 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촬영 현장 문을 열고 들어선 와타나베는 처음 만나는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선배'들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긴장감에 심장이 터질듯했다.
2기생으로서 들어 온 와타나베가 처음으로 1기생 선배들을 만난 이 자리는 1기생 멤버들에게 있어서도 처음으로 '2기생이 이 드라마에 참가한다'는 것을 알게 된 자리이기도했다.
1기생들 역시 뜨거운 박수로 '후배'를 맞아 주기는 했지만 사실 처음 생긴 후배를, 그것도 혼자 찾아 온 후배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다른 멤버들이 어찌할 줄 모르고 있던 와중에 가장 먼저 행동을 취한 것은 카게야마 유카였다. 카게야마는 적극적으로 와타나베에게 다가 갔다. 우두커니 서 있던 와타나베를 이끌어 자기 옆자리에 앉히고 지금까지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 해 준 것도, 와타나베의 사인을 함께 만들어 준 것도 카게야마였다.
사실 카게야마는 이미 2기생들과 접점이 있었다. 2기생들이 오디션 때 걸쳤던 조끼에 2기생들의 이름을 적은 것이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
2기생들의 드라마 오디션이 결정된 날, 스태프가 조끼에 이름을 쓰고 있을 때 우연히 근처를 지나던 카게야마는 '저도 도울게요'라고 자원하여 일을 도우며 2기생들의 이름을 완벽하게 외웠다.
이 오디션 뿐 아니라 앞으로도 리허설 등이 있을 때 마다 그녀들이 착용하게 되는, 말하자면 '아이돌이 된 자만이 입을 수 있는 유니폼'과 같은 의미 깊은 조끼에 이름을 적어 넣은 것이 바로 카게야마라는 이야기이다.
생각 해 보면 카게야마는 추가 멤버 오디션 당시에도 자신의 메세지를 통해 'OO번(후보자)은 사실 정말 성실한 아이예요.', 'XX번은 이러이러한 특기가 있답니다.' 라는 식으로 후보자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런 카게야마가 '홀로 낯선 환경에 떨어진' 와타나베를 돕고, 1기생과 2기생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어쩌면 운명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와타나베 본인은 든든한 선배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고민을 끌어안고있었다. 바로 '연기 경험이 없다'는 점이 그녀의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감독으로부터 자주 '감정이 아직 덜 잡혔다'고 지적을 받기도 했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여러번 연기 워크숍에 참가하여 '자연스러운 감정을 표현하는 연기 방식'을 배운 1기생들과는 애초에 출발선 자체가 달랐던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와타나베가 맡은 역은 설정상 다른 멤버들의 그것과는 다른 '특별한' 역할이었기에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프로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어야 하는 일도 많았다.
한 번은 그녀가 그룹에 가입하기 전부터 TV에서 보았던 배우와 단둘이 연기를 해야 하게 된 적도 있었다. 그 날 역시 감독에게 여러 가지 사항을 지적받았고, 프로 배우 앞에서 이어지는 감독의 지적에 '난 정말 연기를 못 하는 한심한 인간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 날 촬영이 끝나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와타나베는 조용히 홀로 울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나 말고 다른 아이가 붙는 게 더 나았을 지도 몰라. 내가 합격한 건 뭔가가 잘못 된 거야.'
와타나베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메모 해 두는 버릇이 있다. 그리고 드라마 촬영 기간동안 그녀가 적은 메모에는 이런 말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힘들어', '도망가고싶어', '그만 둬 버릴까'
가슴 가득 희망을 품고 '아이돌 세계'에 한 발을 내딛은 순간,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그런 감정이었다.
'합격한 딸 앞에서 눈물을 보인 어머니'
와타나베 미호는 중학생 때 부터 농구를 해 왔다. 사실 그녀가 시합에 처음 나선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언니의 연습을 보러 갔을 때, '시합이 있으니 나와달라'는 권유를 받고 처음으로 시합에 나간 것이었다.
우연히 데뷔를 하긴 했지만, 어린 아이때부터 남자 아이들보다도 활발했던 데다가 운동신경도 좋았던 와타나베는 금세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않아 시합을 할 때마다 '쟤는 어디 팀 소속이야?'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성장했다.
이렇게까지 빠르게 성장한 데에는 물론 그녀의 타고난 소질도 있었겠지만 그에 못지않은 그녀만의 '강점'이 있었다.
중학생이 되어 정식으로 농구부에 들어 갔을 때의 일이다. 때마침 입부한 학생 중에 와타나베보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라이벌격 존재가 있었다. 그리고 와타나베는 그 '라이벌'에게 자신의 포지션이었던 포인트 가드 자리를 빼앗겼다. 그리고 그 때 와타나베는 '앞으로는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코트 구석구석까지 뛰어다녀야겠다'라고 마음먹었다.
주전자리를 빼앗긴 뒤로는 좀처럼 경기에 나서지도 못하는 나날이 이어졌지만 와타나베는 연습 때에도 다른 누구보다도 열심히 코트 구석구석을 누볐다. 그리고 그 결과 포인트가드 자리를 되 찾는데에 그치지 않고 주장 자리를 거머쥐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가짐은 그 뒤로도 변함없이 이어져, 고등학생이 된 후에는 주장으로서 팀을 사이타마현대회 8강으로 이끌기까지 했다. 앞서 말한 '와타나베의 강점'이란 바로 이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노력하는 재능' 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남들에게 말 못할 비밀이 있었다. 그 비밀은 다름아닌 '아이돌에 대한 동경'. 어릴 때 부터 헬로! 프로젝트나 AKB48을 좋아했던 그녀는 내심 '아이돌이 되고싶다'는 꿈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중학교 2학년 때 오디션 지원용지를 프린터로 뽑아 본 적도 있었다. 비록 '농구부 활동을 해야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해서 지원을 하지는 않았지만 솔직한 이유는 '자신에게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가 고 3 진로상담 때 선생님과 어머니 앞에서 '저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연예계로 나가고 싶어요.'라고 밝혔을 때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 지는 상상이 될 것이다.
물론 그녀의 그런 폭탄선언에 주변 어른들은 맹반대했다. 와타나베의 어머니는 딸에게 '난 네가 평범하게 대학을 가서, 평범한 인생을 살았으면 한다'고 설득하기도 하였다.
언제나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렴'이라고 말 해왔으면서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용기를 내서 말 하니 반대하는 어머니가 미워졌다. 동시에 '결국 나한테는 아무런 선택권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무력한 자신에게 화가 나 눈물이 쏟아졌다.
결국 이 날 진로상담에서는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 한 채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교문을 나선 순간 짜증과 무력감, 서러움 등 온갖 감정이 폭발하여 휴대전화를 힘껏 바닥에 패대기쳤다.
사실 어머니가 반대를 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란 다름아닌 와타나베가 고 2때 받았던 오디션, '노기자카46 3기생 오디션' 때의 기억이었다.
자신에게 자신이 없던 와타나베가, 항상 '농구부' 핑계를 대며 정작 중요한 순간에 도망쳤던 와타나베가 심기일전하여 '핑계'를 대지 않고 끝까지 해 내기로 '결심'했던 오디션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허무하게도 불합격. 와타나베는 그 때의 충격에서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하고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울기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딸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던 어머니는 자신의 딸이 두 번 다시 그런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반대 의사를 내비친 것이었다.
하지만 주변 어른들의 반대에도 와타나베의 의지는 굳건했다. 우선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와타나베는 PC를 켜서 문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우선 적은 것은 그녀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노기자카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자신의 목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그녀의 '궁극적인 목표' 역시 변해 있었던 것이다.
그 '목표'는 다름아닌 '배우'가 되는 것. 어릴 때 부터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했던 그녀였기에 어쩌면 당연한 변화였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목표를 세운 와타나베는 '연기에 대한 열정'을 어떻게 현실로 만들어 나갈 것인지를 서류에 적어나갔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모아 연기 학원에 들어간다', '우선 오디션을 여러 번 봐서 소속사에 들어간다' 등 자신이 얼마나 이 길에 진심이며, 어떤 계획으로 움직일 것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자료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때 때마침 열리고 있던 것이 바로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추가 멤버 모집' 오디션이었다. 비록 아이돌이 된다는 꿈은 접은 와타나베였지만 그럼에도 '오디션에 붙는다면 내 마음을 알아 주겠지'라는 마음에 응모를 결심했다.
와타나베가 오디션에 합격, '엄마가 많이 놀라겠지?'라 생각하며 집에 돌아 왔을 때, 그녀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딸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엄마는 네가 하고 싶은 일에 반대하는 게 아니야. 네가 어떤 길을 걷건 네 미래를 응원한단다.'
와타나베 모녀는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한동안 눈물을 흘렸다한다.
'동기에게조차 말 못할 고민'
그렇게 힘들게 들어 온 아이돌 세계인데, 시작부터 난관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꿈꾸었던 연기에서.
배우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매일같이 영화를 보고, 감상을 노트에 적고, 자신이 목표로 하는 배우를 분석하고, 자신이라면 어떻게 연기 했을 지까지 노트에 정리 할 정도로 갈구하던 '연기' 일이 어느 사이엔가 '도망가고 싶은' 대상이 되어 있던 것이다.
약 두 달에 걸친 촬영을 거쳐 드라마 'Re:mind'가 크랭크업 되었다. 마지막 촬영이 끝난 뒤, 1기생들은 입을 모아 '좀 더 이 촬영을 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와타나베는 자신의 차례에 이렇게 감상을 말했다.
'아무래도 2기생이 저 혼자다보니 부담감이 컸어요. 물론 기쁘기도 했지만…'
와타나베는 오열하면서도 말을 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이제 와 생각 해 보면 '연기를 해 본 적이 없으니 못 하는 게 당연하다'는 전제 하에 연기 워크숍에 참가하고, 다른 멤버들과 함께 촬영을 하며 조금씩 성장 해 나갈 수 있었던 1기생들과는 달리 '오디션'이라는 과정을 통해 '선발'된 와타나베는 '당연히 잘 해야만한다'는 부담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렇다고 '떨어진' 동기들에게 그런 마음을 상담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녀는 말 그대로 혼자서 '선택 받은 자의 책무'를 짊어 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 인사에서 그녀가 오열한 것은 어쩌면 지금껏 누구에게도 터놓지 못하고 억눌러만 왔던 감정들이 폭발 한 것이라 봐야 할 지도 모르겠다.
물론 와타나베 외의 2기생들 역시 머지않아 그런 '선택받은 자의 책무',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이라는 그룹에 뽑힌 자의 책무'를 뼈저리게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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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화
선택받은 자들
2015년 8월, 노기자카46의 뒤를 잇는 ‘사카미치 시리즈’ 제 2탄, 케야지자카46가 결성되었다. 한편, 어머니의 맹렬한 반대로 케야키자카46 최종 오디션장에 참가하지 못 한 소녀도 있었다.
이후 그 ‘소녀’ 나가하마 네루가 그룹에 뒤늦게 가입하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그녀는 케야키자카46의 자매그룹격인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의 유일한 멤버로 활동하게 된다.
이듬해인 2016년 5월, 히라가나 케야키46의 추가 멤버 오디션을 거쳐 나가하마와 활동을 함께 하게 될 11명의 멤버들이 그룹에 가입하며 히라가나 케야키는 그룹으로서 본격적인 시동을 걸기 시작한다.
한 발 앞서 데뷔한 한자 케야키는 데뷔곡인 ‘사일런트 마조리티’부터 사회 현상 수준의 붐을 일으키며 일약 인기 그룹으로 발돋움, 데뷔한 해에 홍백 가합전 무대에 서는 등 승승장구한 반면, 히라가나 케야키의 지명도는 미미한 채, 활동 기회조차 변변히 부여받지 못 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런 그녀들에게 기회가 주어진 것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2017년 3월부터 전국의 라이브 하우스를 도는 소규모 전국 투어가 열리게 된 것이다. 이 투어를 계기로 12명의 멤버들간의 유대가 깊어지고 하나가 되어 가던 그녀들에게 시련이 주어진다. 투어가 시작된 지 불과 한 달 뒤인 4월에 열린 ‘케야키자카46 데뷔 1주년 기념 라이브’에서 그녀들을 깜짝 놀라게 할 발표가 있었던 것이다.
같은 꿈을 쫓는 동세대 소녀들
2017년 4월 6일. 도쿄 요요기 제 1체육관에서 ‘케야키자카46 데뷔 1주년 기념 라이브’가 열렸다. 이 라이브는 1년 전 같은날에 데뷔 싱글 ‘사일런트 마조리티’가 발매 된 것을 기념하여 열린 라이브로, 지난 1년간 발표한 4장의 싱글에 실린 곡 전곡을 선보이는 라이브였다. 말 그대로 그룹이 지금껏 해 온 라이브 중 최대 규모의 라이브라고 할 수 있었다.
토미타 스즈카는 홀로 이 라이브 회장에 와 있었다. 가족들이 음악을 좋아하는 관계로 예전부터 가족들과 함께 한류 아이돌, 일본 아이돌은 물론이고 얼터너티브 록 공연에도 간 적이 있지만, 혼자서 라이브를 보러 온 것은 이 날이 처음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동경해 온 케야키자카46의 스테이지를 보고 싶어 겨우겨우 손에 넣은 티켓이었다.
자신의 눈 앞에서 격렬하게 춤을 추는 케야키자카46 멤버들을 본 토미타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소녀들이 이런 식으로 자신의 꿈을 쫓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마저 느꼈다.
이 날 공연에는 히라가나 케야키도 참가하여 커플링곡으로 수록된 자신들의 노래를 몇 곡인가 선보였다. ‘우리들은 사귀고 있어’를 부를 땐 멤버들끼리 손을 잡고 토롯코에 탄 채 회장 내부를 휘젓기도했다.
한자 케야키의 팬으로 입덕을 하긴 했지만,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인 카토 시호의 악수회에도 간 적이 있던 토미타는 내심 ‘히라가나는 한자와는 다르게 말 그대로 아이돌스러운 느낌이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본공연이 끝나고 앙코르를 위해 멤버들이 무대 위로 등장한 순간 서프라이즈 발표가 있었다.
‘긴급공지!’
‘히라가나 케야키 증원 결정!’
‘올 해 여름에 오디션 개최!’
쉴 새 없이 스크린에 표시되는 발표에 회장 내부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멍하니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던 토미타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한 팬이 말을 걸어 왔다.
‘저 오디션 받을거야?’
갑작스러운 질문에 토미타는 웃으며 ‘에이, 제가 뭘요.’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이미 응모 할 생각을 정해둔 상태였다.
토미타는 사실 이전에도 몇 번인가 연예인 소속 사무소의 스카우트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중 한 번은 꽤 잘 알려진 유명 소속사에 면담을 하러 갔지만 인연이 아니었는지 아쉽게 소속 연예인이 되지는 못 한 경험도 있었다. 그러한 경험 때문인지 토미타의 마음 한 구석에는 계속해서 연예계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 토미타에게 있어 우연히 가게 된 콘서트에서 히라가나 케야키의 추가 멤버 모집 오디션 개최 발표를 보게 되었다는 것은 일종의 운명적인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 주는 것이었다.
‘무대 위에 서 있는 저 소녀들처럼, 내게도 꿈을 이룰 기회가 주어진거야.’ 토미타는 그렇게 느꼈다.
시간이 흐르고, 오디션 접수가 시작되었다.
토미타는 접수 개시 직후 오디션에 응모했다.
‘나도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히라가나 케야키 추가 멤버 오디션에는 스태프들이 예상한 것 이상의 응모가 몰렸다. 오디션에 응모한 후보자들의 수는 무려 약 1만 5천여명.
지금까지의 활동 내용을 보면 사실상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 하는 백댄서 취급인데다가 단독 데뷔는 커녕 그룹의 존속마저도 명확하지 않은 그룹의 오디션에 이만큼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은 경악할만한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의외였던 것은 응모자 중에 ‘히라가나 케야키의 라이브를 보았다’, ‘히라가나 케야키의 팬’이라는 응모자들이 많았다는 점이었다.
사실 그 해 3월에 시작된 히라가나 케야키의 투어는, 회장인 전국의 라이브 하우스는 물론이고 일부 영화관에서 라이브 뷰잉이 진행되었다. 이 덕분에 전국적으로 히라가나 케야키의 팬층은 서서히이긴 하지만 저변이 넓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라이브 뷰잉을 보며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가 될 마음을 갖게 된 응모자 중에는 코사카 나오도 있었다. 코사카는 초등학생 때 AKB48의 팬이 된 후 아이돌 오타쿠로 발전, 노기자카46나 케야키자카46에도 빠져 가족과 함께 응원을 해 왔다. 하지만 그녀의 ‘덕질’은 어디까지나 TV나 CD 같은 미디어를 통한 것에 그쳐, 실제로 라이브나 콘서트를 보러 간 적은 없었다. 그런 코사카가 히라가나 케야키의 라이브 뷰잉을 보러 간 것은 그녀가 중 3때, 같은 반에 있었던 ‘히라가나 케야키의 팬’인 친구의 권유에 의한 것이었다.
5월 31일, 그 날은 히라가나 케야키의 전국투어 오사카 공연이 열린 날이었다. 코사카는 오사카 시내의 한 극장에서 화면을 통해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이 춤 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이 날 공연은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이 지금까지의 노선에서 방향 전환을 시도한 중요한 공연이었다. 한자 케야키의 이미지가 강한 ‘사이마조’나 ‘불협화음’은 봉인하고 그 대신 ‘제복과 태양’, ‘미소가 슬퍼’ 같은 상대적으로 유순한 분위기의 곡들을 세트리스트에 주로 포함시켰다. 그런 세트리스트에 맞추어 미소를 지으며 무대에 임하는 멤버들의 모습은 회장 뿐 아니라 라이브 뷰잉이 진행되는 영화관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며 보는 이들의 기분마저도 밝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 반짝거리는 멤버들의 모습을 보며 코사카의 마음 속에서도 지금껏 생각 해 본 적 없는 새로운 마음이 싹텄다.
‘아이돌이라는 존재가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을 미소짓게 만드는구나. 혹시 나도 아이돌이 된다면 저렇게 밝게 웃을 수 있을까?’
코사카는 초등학생 때 부터 학교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성적은 좋은 편이었지만 친구가 많지 않았기에 학교라는 공간이 어색했다. 한 번은 일부러 밝게 행동해서 반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여자아이들 그룹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별로 가고싶지도 않은 약속에 억지로 따라가고 하다 보니 ‘이건 진짜 내 모습이 아니야’라는 고민이 생겨서 결국 그 아이들과도 거리를 두게 되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그런 상황은 변함이 없어 성격은 점점 더 소극적으로 변했고 집 밖으로 한 발짝 나가는 것 만으로도 남들 눈을 의식해서 전전긍긍하기에 이르렀다. 학교에서도 몇몇 친구들 말고는 교류를 거의 하지 않고 항상 조용히 지내는 아이가 되었다.
‘다른 애들하고 이야기를 해 봤자 재미 있을 리도 없는데 뭐.’
재미도 없고 밝지도 않은 자신의 모습이 정말로 싫었다. 하지만 히라가나 케야키같은 그룹에 들어 갈 수 있다면 그런 자신의 모습도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라이브 뷰잉을 보았던 그 날, 히라가나 케야키의 추가 멤버 오디션 접수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같은 날, 코사카는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인생에 한 걸음을 내딛었다.
첫 라이브뷰잉이 끝나고, 코사카는 그 때 느낀 즐거움을 다시 한 번 느끼기 위해 다음 공연의 라이브뷰잉을 신청했다. 이번에는 코사카가 친구에게 함께 가자고 권유 했던 것이다.
부모님 앞에서 ‘서약서’에 지문을 찍다.
‘왜? 어째서 오디션을 보지 말라는 거야? 이유라도 알려줘요!’
미야타 마나모가 어머니를 향해 질문 공세를 펼쳤다. 손에는 갈기갈기 찢어진 서류가 들려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찢어진 서류는 다름아닌 히라가나 케야키 오디션 1차 심사 통과통지서였다. 격해져 있는 감정과는 반대로, 어머니를 몰아세우는 그녀의 말투는 무서울정도로 냉정하고 침착했다.
외동딸로 태어난 미야타는 어릴 때 부터 독서와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주변에서 ‘아가씨들이 다니는 학교’라 불리는 명문 사립중학교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것도, 수험공부를 해서 결국 원하던 중학교에 들어 간 것도 전부 그녀 자신이 선택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들어 간 중학교에서 그녀는 ‘아이돌’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빠져버렸다.
그 당시는 TV를 켜기만 하면, 아니 TV를 보지 않아도 여기저기 붙어있는 광고에, 잡지에, 어딜 보아도 AKB멤버가 눈에 들어오는 시기였다. 미야타 역시 AKB의 팬이 되어 자신의 오시멘인 오오시마 유코를 비롯한 어리고 귀여운 여자아이들이 노력하는 모습, 춤 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CD를 사거나 거실에서 아이돌이 나오는 방송을 보지는 못했다. 연예계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어머니 앞에서는 ‘아이돌’이라는 화제를 입에 올리는 것 조차 거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억압받으면 억압 받을수록 그녀가 안고 있던 ‘동경’은 커져만갔다. 결국 미야타는 아이돌 뿐 아니라 만화, 애니메이션 등 비슷한 분야의 서브컬쳐로도 발을 뻗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고2였던 때, ‘친구가 티켓을 줬다’는 핑계를 대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러 갔던 성우 아티스트의 라이브가 그녀의 마음 속에는 너무나도 큰 흔적을 남기게 되었다.
‘나도 언젠간 저렇게 귀여운 의상을 입고 무대 위에서 춤 춰 보고 싶어’
그나마 고등학교 때 까지는 학교 댄스부 활동을 하거나 발레 교실에 다니며 춤을 추기는 했지만 대학생이 되어 그나마도 하지 않게 된 뒤, 오히려 ‘라이브’에 대한 열망이 커져만 갔다. 그리고 바로 그 타이밍, 그녀가 대학에 들어 온 지 2달도 채 되지 않은 타이밍에 히라가나 케야키의 오디션 응모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니 하고 싶은 일들은 전부 해 보자’ 라는 모토로 살아 온 미야타는 오디션 광고를 보고 부모님께는 비밀리에 오디션에 응모를 했다.
머지않아 문제가 생겼다. 1차 심사 합격 통지서를 아무 생각 없이 어머니 앞에서 뜯었고, 그 내용을 그녀의 어머니가 확인 한 순간, 집안이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집 앞 편의점을 갈 때에도 꼭 어머니가 붙어서 데리고 갈 정도로 애지중지 키워 온 외동딸이 자기 몰래 아이돌 오디션에 응모했다는 것을 안 그녀의 어머니가 격노하여 딸이 보는 앞에서 합격 통지서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이 때는 딸도 가만 있지는 않았다. 지금껏 크게 반항도 안 했던 미야타이지만 이 날 만큼은 집요하게 어머니에게 맞서 결국 아버지를 자기 편으로 하는 데에 성공, 두 분 부모님 앞에서 서약서를 작성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대학은 4년 딱 맞추어 졸업 할 것’
‘대학에 다니는 동안 사서 자격증을 딸 것’
이 두 가지 조건이 적힌 서약서에 지장을 찍고 나서야 겨우 오디션을 봐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이 때까지만 해도 딸이 아이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실제로 미야타가 최종 심사에 합격한 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그녀의 어머니는 ‘너 정말로 아이돌 할 생각이야?’라고 질문을 했다. 그리고 미야타는 이런 어머니의 질문에 딱잘라 대답했다.
‘응. 할 거야. 여기까지 와 버렸는걸.’
미야타는 어릴 때 부터 친구들과 놀러 가는 것 보다 부모님과 함께 외출하는 것을 좋아했을 정도로 가족애가 강한 아이였다. 지금껏 부모님의 말에 거스른 적도 없었지만 이 오디션에 대해서만큼은 시종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던 것이다.
본인은 기억하지 못 하는 듯 하지만, 그녀의 부모님에 의하면 이런 ‘자신이 정한 일에 대해서는 의지를 굽히지 않는 면’은 사실 어릴 때 부터 종종 드러났다고 한다.
차 안에서 질렸다는 듯 혀를 내두르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미야타는 ‘나, 이렇게 강한 면도 있었구나’ 라고 내심 놀랐다고 한다.
떨어진 후보생들이 남기고 간 편지
그런 미야타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일이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최종심사날에 있었던 일이다. 최종심사를 앞두고 운영측은 후보생들을 10명 정도씩 나누어 각자 다른 대기실에서 기다리게 했다. 미야타가 속해있던 그룹은 같은 방이 된 뒤, 한 차례 자기소개를 하고는 다들 침묵을 지켰다. 숨막힐듯한 침묵과 어색한 분위기 안에서 후보생들은 그저 자기 차례가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였다. 옆 방에서 어떤 소리가 들렸다.
‘아!!’
옆 방 멤버들은 방 안에서 발성 연습을 하고 있는 듯 했다. 그 소리를 시작으로 큰 소리로 노래 연습을 하는 소리, 자기 소개를 연습하는 소리가 왁자지껄 들려왔다.
사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날 미야타와 같은 방을 썼던 후보자 중 최종 합격 한 것은 미야타 한 명 뿐이었다. 반면 왁자지껄했던 옆 방 멤버들 중에서는 토미타 스즈카, 니부 아카리, 마츠다 코노카, 와타나베 미호, 코사카 나오 총 5명이 합격했다.
옆 방에서는 토미타나 와타나베가 개인기를 하며 다른 후보생들을 웃기는 등, 시종 좋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미야타를 놀라게 한 ‘아!’라는 소리도 그 방에 있던 누군가가 ‘이번이 마지막 심사니 최선을 다 하고 싶다’는 말에, 전원이 벽을 향해 ‘아!’하고 소리를 지르기로 한 데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옆방 멤버들은 마지막까지도 ‘다 함께 힘 내자’며 서로를 다독였다. 방에서 나와 무대 뒤에서 대기를 할 때엔 감정이 벅차올라 서로를 끌어안기도 했다. 코사카와 와타나베도 이 때 ‘힘 내자’며 서로를 끌어 안았다. 둘은 그 날 처음 만난 사이였다. 사실 평소 같았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이후 히라가나 케야키로 활동을 시작 한 뒤로도 각별한 관계가 이어져 오고있다.
그런 좋은 분위기는 최종심사에도 이어졌다. 한 멤버가 자기소개를 할 때면 다른 멤버들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합격자가 발표 된 후, 불합격한 후보자는 먼저 귀가하고 합격자들만이 남아 사진을 찍게 되었다. 미야타와 옆방에서 합격한 5명 외에도 카네무라 미쿠, 카와타 히나, 하마기시 히요리가 합격했다.
합격자들은 사진을 찍은 뒤, 대기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대기실은 이미 텅 비어 있어, 불합격한 후보자들의 모습은 없었다. 하지만 테이블 위에는 편지가 한 통 놓여있었다.
‘우리 몫까지 열심히 해 줘! 응원할게!’
메시지 아래에는 떨어진 아이들 전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최종심사에 임하기 전에 함께 찍은 사진과 이 편지만이 떨어진 아이들이 이 곳에 함께 있었다는 증거였다.
2017년 8월 13일.
이 날 열린 최종심사 결과, 9명의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의 추가 멤버가 확정되었다. 1만 5천명이나 되는 후보자 중에서 선택을 받은 9명의 멤버들은 히라가나 케야키의 2기생으로서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녀들의 선배, 히라가나 케야키 1기생들의 활동이 ‘한자 케야키와는 다른, 히라가나 케야키다움’을 모색하는 과정이었다면 2기생들의 활동은 다름아닌 ‘선택받은 자의 책임을 다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 중 하나가 바로 ‘선택받은 자로서, 자기 스스로도 무엇인가를 선택해야만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9명의 멤버 중 가장 먼저 이런 힘든 선택을 강요받게 된 것이 바로 하마기시 히요리였다.
너무 울어 퉁퉁부은 눈으로 올려다 본 호텔 천장
하마기시는 언니의 영향으로 3살때부터 발레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발레 교실을 바꾸어 엄격한 선생님의 지도를 받게 된 이후로는 발에 잡힌 물집이 터져 발이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연습을 계속하고, 학교에 있을 때 조차 발레 노트를 읽을 정도로 발레에 몰두했다. 그녀에게 있어 장래 희망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발레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그 뿐 아니라 초등학생 때 부터 패션잡지를 즐겨 읽었던 그녀는 청소년 대상 잡지는 물론이고 20대 대상 패션지까지 섭렵했다. 사실 패션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예쁜 모델을 보는 것이 좋았기 때문에 패션지를 읽었다고 하는 그녀는 중학생이 되어, 오디션을 받을 수 있는 연령이 되자 스스로 오디션에 응하여 2년 연속으로 최종 후보자에 들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합격은 하지 못 했다. 패션잡지 오디션에 떨어져 낙담해 있는 하마기시에게 ‘이런 오디션도 있는데 받아볼래?’라고 어머니가 권해주신 것이 바로 히라가나 케야키의 추가 멤버 오디션이었다.
사실 하마기시는 나가하마 네루의 팬이었다. 하마기시는 당시만 해도 한자/히라가나 겸임이었던 나가하마의 귀여운 얼굴과 목소리에 푹 빠져있었다. 게다가 발레 발표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귀여운 의상을 입고 춤을 출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결국 하마기시는 어머니가 권해 준 오디션을 받았고, 보기 좋게 합격 해 냈다.
하지만 합격 직후, 예상도 못 했던 일이 벌어졌다. 하마기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머니가 발레 교실에 전화를 해서 그만 두겠다고 말을 한 것이다.
‘왜 엄마 맘대로 선생님한테 전화 했어? 왜? 왜? 왜?!’
사실 이 때 하마기시는 처음으로 중요한 역할에 발탁되어 이미 두 달 넘게 맹연습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안무도 완벽히 숙지하였고 자기 몸에 맞춘 의상도 완성이 되어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10년 이상 발레를 해 오면서 꿈에도 그리던 큰 무대가 코 앞에 있었다.
하마기시는 집을 박차고 나와 발레 선생님에게 라인을 보냈다.
‘저 이번 역할 포기 안 해요. 발레도 절대로 그만두지 않을 거예요.’
집으로는 돌아가기 싫어 밖에서 펑펑 울고 있으려니 차를 타고 하마기시를 찾으러 나온 아버지와 맞닥뜨렸다. 우는 딸의 모습을 본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하마기시를 한 호텔로 데려 가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주었다. 말하자면 부모님이 허락한 가출이었다.
딱히 TV를 볼 마음도 들지 않고 그렇다고 샤워를 할 생각도 들지 않아 그저 침대 위에서 이리저리 뒹굴거리던 하마기시는 너무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호텔 천장을 가만히 올려다 보았다. 천장을 가만히 보다 보니 여러 생각들이 밀려왔다. 언제나 내 편이던 어머니가 어째서 자신에게서 발레를 빼앗으려 한 것일까,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그 때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두 가지를 모두 양립한다는 건 무리겠구나. 아이돌이 되기 위해선 발레를 그만 둬야 하는 거구나. 엄마도 그걸 알고 나를 위해 선생님께 연락 드려 준거야…’
하마기시는 그 전까지는 막연하게 두 가지를 모두 양립해 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 해 보면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가 되어 활동을 한다는 것은 발레를 그만두고 도쿄로 상경하여 ‘아이돌’이라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선택 받은’ 자들은 자신들 스스로도 ‘선택’을 해야만 하는 법이라는 잔인한 섭리를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발레 교실을 그만둔 뒤, 적어도 자신이 나올 예정이었던 무대는 보러 갈 생각이었지만 그조차도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본디 자신이 서 있어야할 곳에 다른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9명의 선택받은 소녀들은 각자의 사정을 가슴 속에 품은 채, 화려하지만 험난한 아이돌의 길로 한 걸음을 내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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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화
히라가나란 무엇일까?
2018년 1월 30일부터 2월 1일에 걸쳐 3일간 일본무도관(이하 부도칸)에서 열린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의 단독 공연. 당초 예정상으로는 3일 중 이틀은 한자 케야키가 공연을 하기도 되어 있었으나, 공연 개최를 약 2주 가량 남긴 시점에 사정은 급변, 히라가나 케야키가 3일 공연을 전부 담당하는 것으로 계획이 수정되었다.
갑작스러운 변경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 하는 멤버들, 하지만 그런 가운데도 마음을 다잡고 ‘사람들을 놀라게 해 주자’, ‘전설에 남을 라이브를 보여주자’고 서로를 다독이며 무대에 섰다.
그리고 ‘서커스’를 테마로 한 컬러풀한 세계관으로 장식 된 스테이지에서 관객들을 매료하며 3일간에 걸친 공연은 성황리에 마무리 되었다.
또한 이 공연 마지막에 히라가나 케야키의 단독 앨범 발매 소식이 서프라이즈로 발표 되어, 그룹 활동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다음 곡 센터가 2기생이라 해도 괜찮아요’
부도칸 공연이 마무리 된 지 며칠이 지나 2월 12일,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2기생들에게는 첫 단독 이벤트인 ‘오모테나시회’가 개최되었다. 이는 선배에 해당하는 한자 케야키와 히라가나 케야키 1기생들 역시 각각 통과 해 온 그룹 전통의 이벤트이다.
그리고 이번 무대는 부도칸 공연을 성공시킨 히라가나 케야키의 기세를 과시하기라도 하듯 치바현 마쿠하리 멧세라는 큰 회장에서 열리게 되었다.
마쿠하리 멧세는 작년에 있었던 전국 투어 파이널 공연의 장소로, 2기생들에게 있어서는 무대 데뷔를 이루어 낸 장소이기도 했다. 투어 때는 1기생들과의 합동곡 1곡만 참가하였으나, 이번에는 7,000명에 달하는 관객들 앞에서 2기생만으로 8곡 라이브를 포함한 퍼포먼스를 성공리에 선보이며 자신들의 잠재력을 뽐냈다.
그리고 2월 하순,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에게 좋은 소식이 찾아왔다. 봄 개편부터 히라가나의 칸무리방송이 두 편이나 시작된다는 소식이었다. 지금까지 한자 케야키의 칸무리방송인 ‘케야카케’ 등에 드문드문 출연하기는 했지만, 그 방송은 어디까지나 선배인 한자 케야키의 방송에 ‘게스트’로서 출연했던 것이었기에 자신들만의 칸무리방송이 시작된다는 것은 히라가나 멤버들에게 있어 꿈만 같은 일이었다.
사이토 쿄코는 ‘아이돌 활동에 있어 TV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지’에 대해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가입 초기 ‘케야카케’에 나와 자신의 특징인 낮은 목소리와 라면 마니아라는 점을 어필하였기에 비교적 빠른 시기에 팬층에게 주목을 받고, 그 결과 악수회 인기도 높아졌으며, 유닛곡에서 센터를 맡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 조차도 자신들이 칸무리방송을 할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 했다.
‘지금까지 그룹의 목표 중 하나로 칸무리방송을 언급 해 왔습니다만, 사실은 이룰 수 없는 꿈이라 생각했기에 입 밖으로 그 얘기를 꺼내는 것 조차 부끄러웠어요. 하지만 그 꿈이 이렇게 이루어 지다니… 저희는 정말 축복받은 그룹 같아요.’
새롭게 시작된 히라가나의 칸무리방송의 제목은 ‘히라가나오시!’와 ‘KEYABINGO!4 히라가나 케야키는 어떤 그룹?’이었으며, 두 방송 모두 4월부터 시작되었다. 또한, 그룹 전원이 출연하는 첫 연극무대 ‘아유미’ 역시 4월에서 5월에 걸쳐 상연이 확정되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악수회 외에는 일거리가 없었고, 한자 케야키가 음악 방송에 출연할 때 도맷금으로 함께 출연을 하더라도 조명조차 비춰지지 않았던 히라가나 케야키. 그 때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 했던 일들이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현실로 바뀌어가는 나날을 보내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던 멤버들도 있었다. 다카모토 아야카는 당시를 이렇게 되돌아본다.
‘예전에는 아무리 저희가 열심히 하려 해도 노력할 기회조차 없었어요. 그렇기에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 지 고민했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죠. 하지만 그런 예전의 기억이 있기에 지금 이렇게 바쁜 것이 너무나도 기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이렇게 계속 노력한다면 저희들도 언젠간 노기자카 선배님들이나 한자 선배님들처럼 멋진 아이돌이 될 수 있겠지요?’
이런 식으로 그녀들의 심경이 변한 데에는 전국투어부터 부도칸 공연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라이브를 하며 1기생들 자신의 평가가 착실히 쌓아 왔다는 점, 그리고 2기생들의 가입으로 인해 그룹 자체의 폭이 넓어 진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멤버들은 알지 못 하는 곳에서 또 다른 거대 프로젝트가 시동이 걸렸다.
다름 아닌 ‘사카미치 그룹 합동 신규 멤버 모집 오디션’ 이었다.
‘사카미치 그룹’으로 불리는 세 그룹, 다시 말 해 노기자카46, 케야키자카46,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이 동시에 오디션을 연다는 이야기였다. 노기자카, 케야키자카라는 ‘선배 그룹’과는 별개로 히라가나 케야키의 새 멤버를 받는다는 것은 업계 관계자들은 물론 팬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가 발표 되었을 당시, 히라가나 케야키의 2기생들은 활동을 시작한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갑작스러운 발표에 동요하는 2기생들. 그 모습은 1년 전, ‘추가 멤버 오디션’ 개최 소식을 알았을 때의 1기생의 그것과 비슷했다.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간다면 나가하마 네루의 가입과, 히라가나 케야키 결성 발표를 알게 되었을 때의 한자 케야키 멤버들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2기생들의 모습을 본 우시오 사리나는 자신들이 1년 전에 비해 확실히 강해졌다는 것을 실감했다.
‘사실 저희도 2기생 모집을 알았을 때 엄청 울었거든요. 그런데 합동 오디션 얘기를 들었을 때는 크게 불안하지 않았어요. 아마 2기생들이 들어 와 준 덕분에 방송이나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늘었고, 그 결과 그룹 전체가 크게 성장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3기생이 새롭게 들어 와 준다면 히라가나 전체가 더욱 더 밝은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어요.’
사실 이미 이 때부터 코사카 나오를 비롯한 2기생들이 단독으로 잡지 표지를 장식하곤 했다. 그렇게 2기생들의 미디어 노출이 늘어나며 그룹 전체의 지명도가 나날이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1기생들은 실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카토 시호 역시 스태프에게 자신의 본심을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저 개인적으로는 다음 곡 센터는 2기생이 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귀여운 아이가 한 가운데 서는 게 좋잖아요. 저는 뒤에서 최선을 다 해 그 아이의 버팀목이 되어 주고 싶어요.’
부도칸 공연 이후 그룹에 불어 온 변화의 바람이 멤버들을 정신적으로 성장시켜 준 것이다. 그런 가운데 말 그대로 ‘인생 최대의 결단’을 내린 멤버도 있었다.
그룹 최연장자, 이구치 마오 이야기이다.
지금껏 그려 온 인생 설계가 어긋난 순간
이구치 마오가 히라가나 케야키의 오디션을 받은 이유는 ‘심사위원들을 놀라게 해 주고 싶어서’ 라는 것이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이구치는 친구들 사이에선 무드메이커로 통했다. 그녀는 거의 매일같이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서 특유의 ‘음치’를 숨기지 않으며 친구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다름 없이 AKB의 노래를 부르며 ‘아이돌 놀이’를 하고 있으려니 한 친구가 갑작스레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마오, 아이돌이 되는 건 어때? 마오가 오디션에 간다면 심사위원들도 깜짝 놀랄걸’. 그런 친구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스마트 폰으로 ‘아이돌 오디션’을 검색해서 나왔던 것이 히라가나 케야키의 오디션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응모했었기에 본인은 합격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 했지만, 쇼룸 심사 때 몇 시간이나 하이 텐션으로 즐겁게 이야기 하는 그녀의 모습은 이미 팬들 사이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그렇게 최종 합격자에 이름을 올린 그녀.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로서 정식 데뷔를 한 이후, TV에서나 악수회에서나 음치임을 숨기지 않고 전력으로 노래를 부르고, 거리낌 없이 인기 배우의 흉내를 내는 그녀의 독특한 캐릭터는 금새 팬들 사이에 침투 하였다.
하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고민거리가 늘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그녀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덜컥 아이돌이 되어, 미디어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처음으로 참가한 MV ‘누구보다 높게 뛰어!’가 유튜브에 공개 되었을 때에도 댓글란에는 이구치의 어설픈 춤을 지적하는 댓글이 가득했다.
그녀 본인이야 지금까지와 다를 것 없이 ‘즐거운 일들을 했’을 뿐인데 어느 사이엔가 불특정 다수에게 그런 행동 하나 하나를 평가받는 입장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나쁜 평가를 받다니, 내 인생도 끝장났구나… 이렇게 가다간 취직도 못 하고 결혼도 무리겠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이름도 바꾸고 인생을 다시 시작할까’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언젠가는 안무 연습 때 혼이 나서 우울한 상태로 사사키 쿠미의 댄스를 보고는 ‘나랑 같은 대학 3학년인데 저렇게나 필사적으로 연습 하다니… 아예 나랑은 사는 세계가 다른 것 같아’라 생각하고 혼자 멋대로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다. 예전에 항상 늦게까지 놀러 다니던 친구들이 그룹 라인에 올리는, 즐거워 보이는 사진을 보며 아이돌이 된 것에 대해 후회 하는 날도 많았다.
그룹에게 세 번째 오리지널 곡 ‘우리들은 사귀고 있어’이 주어졌을 때는 때 마침 그녀가 4학년 진학을 목전에 두고 있는 타이밍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 그녀는 그룹을 그만두고 진지하게 취업 활동을 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몇 번이나 다른 멤버들에게 ‘사무소로 가서 그만 둔다고 말 하려고’ 라 이야기 했다가, 멤버들이 울며 말려서 그만 뒀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윽고 그녀의 마음이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신기하게도 그녀의 마음 속에서 ‘그만 둬야지’라는 마음이 정점에 달했던 타이밍이기도 했다.
전국 투어 첫 공연이었던 제프 도쿄 공연에서 ‘후타리 세종’ 솔로댄스를 추게 되었던 그 때 말이다.
그녀는 내심 ‘이번 라이브만 끝나면 바로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채, 우시오에게 부탁 하여 울면서 솔로 댄스 연습에 매진했다. 그렇게 힘들게 연습을 했음에도 실제 무대에서 안무를 틀린 순간, 이구치의 머릿 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다음 번에는 더 잘 추고 싶어. 일단 다른 멤버들 방해는 되지 말아야지. 그럼 일단 첫 목표는 다음 공연에서 한 번도 틀리지 않는 것으로 하자.’
물론 아쉽게도 이후로 이어지는 공연, 적어도 부도칸 공연까지 이어진 공연 중 그녀가 ‘한 번도 안 틀리고’ 끝을 맞이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라이브 횟수를 더하면 더할수록 그녀의 마음 속에 ‘다른 멤버들과 함께 더 열심히 하고 싶다’는 생각은 커져갔다.
그렇게 그녀의 인생 설계, 다시 말 해 ‘대학을 나와 취직하고 결혼한다’는 계획은 서서히 변해서 부도칸 공연을 끝내고, 대학을 졸업했을 무렵에는 굉장히 단순한 것으로 변해 있었다.
‘뭐, 생각 해 보면 아이돌에서 실패 하면 니이가타로 돌아가면 되지. 지금까지는 타이밍을 놓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만 했지만, 인생 어차피 한 번 뿐이니까 즐기지 않으면 손해야.’
생각을 바꾸니 마음이 편해졌다. 노래방에 가서 친구들을 즐겁게 해 주거나 쇼룸에서 ‘일반적인 아이돌’들이 하지 않을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때, 자신이 빛나 보였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찬찬히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 해 본 결과, ‘언젠가 가게를 차리고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그 결과 떠오른 것이 바로 ‘지친 샐러리맨이나 아이돌 팬들이 부담없이 와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스낵 같은 가게를 열고, 내가 그 가게의 마마를 하면 매일매일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거기까지 생각 한 이구치는 곧바로 악수회에서 ‘스낵 마오’라는 가상의 가게를 오픈, 2기생 미야타 마나모를 설득하여 블로그와 쇼룸 등에서도 이 기획에 대하여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아이돌 답지 않은 그녀의 발상과 행동력은 다시 한 번 화제를 불러 일으키며, 이후 히라가나 케야키의 칸무리 방송에서도 대대적으로 다루어 지기에 이른다.
이 ‘스낵 마오’는 물론이고 아이돌로서의 이구치 마오가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이구치는 ‘자신이 즐거운’ 일을 할 때의 자신이 가장 빛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히라가나란 무엇일까’를 찾아 온 시간들
처음에는 ‘한자 케야키의 언더 그룹’으로 시작된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하지만 구체적으로 ‘언더’가 어떤 의미인지, 어떤 위치인지 명확해지지 않은 상황 하에서 멤버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자신들의 존재의의를 찾아 왔다.
2017년, 전국 투어를 하며 그룹의 상징인 ‘해피 아우라’를 찾아냈고, 그것을 계기로 그룹의 색이 변하기도 했다. 카게야마 유카는 이 전국 투어에 대하여 ‘히라가나란 무엇인가를 찾는 시간’ 이었다고 술회한다.
이후 나가하마 네루의 겸임 해제, 2기생의 가입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거쳐 히라가나 케야키는 단독으로 부도칸 3days 공연을 성공 시키기에 이른다. 그 뒤로 이어진 ‘단독 앨범 데뷔’는 지금껏 라이브를 통해 성장 해 온 이 그룹이 ‘앞으로 새로운 단계에 돌입함’을 나타내는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그룹의 선두에 서서 자신의 생각을 말로 나타내 왔던 사사키 쿠미는 ‘지금이라면 우리가 케야키자카46과는 다른 그룹이라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고도 밝혔다.
‘지금까지는 저희의 활동에 대하여 ‘한자 선배님들의 활동을 그대로 이어 받으면서도 거기에 해피 아우라를 더한 느낌’이라 설명 해 왔습니다만, 앨범 데뷔가 정해지고 2기생들이 들어 와 준 지금은 ‘저희는 한자 케야키와 다른,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입니다’라고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도 저희 히라가나 케야키는 멤버들 사이의 끈끈한 우정을 느끼실 수 있는, 보고 있으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해피한 그룹이 되고 싶습니다.’
그룹을 둘러 싼 환경은 크게 바뀌었지만, 사사키 미레이가 이루고 싶은 목표는 그룹 결성 초기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히라가나 멤버들 끼리 전국 47개 도도부현을 돌며 투어 해 보고 싶어요. 아, 그리고 양로원에 가서 춤을 춘다거나 멤버들과 함께 할머니 할아버지 수발을 든다던지 해 보고 싶네요.’
어릴 적에 인도네시아에 살았으며,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우시오 사리나 역시 초창기에서 지금까지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
‘언젠간 해외에서 라이브를 하고, 일본과 세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어요. 최근에는 악수회에도 해외에서 오신 팬분들이 늘어 났기에, 다음번엔 저희가 직접 만나러 가서, 노래를 통해 ‘감사합니다’라는 저희의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어요.’
2018년 6월 20일 릴리스 된 히라가나 케야키의 데뷔 앨범 ‘달려 나가는 순간’은 첫 주에만 15만장을 팔며 오리콘 주간 앨범 랭킹 1위를 획득, 음원 순위도 1위를 차지하며 첫 출발부터 2관왕을 달성하였다.
시즌 2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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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화
부도칸 3days라는 도전
2017년 봄에 시작된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의 첫 전국 투어는 같은 해 12월, 치바현 마쿠하리 멧세에서 이틀간에 걸쳐 열린 파이널 공연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마지막 공연을 이틀 앞둔 날, 카키자키 메미가 팔에 골절상을 입어 라이브에 참가 할 수 없게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하지만 ‘메미 몫은 다른 멤버들이 커버하여 최고의 라이브를 선사하겠다’는 굳은 다짐 아래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는 모든 곡의 포메이션을 급하게 수정하여 마쿠하리 멧세의 무대에 서게 되었다. 또한 그룹에 가입 한 지 4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2기생 9명도 그 날 처음으로 무대를 밟게 되었다.
이렇게 이틀간 1만 4천명을 동원한 ‘과거 최대규모’의 스테이지는 성공리에 막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공연 직전에 터져 나온 ‘한 번 놀라게 해주자’
시간은 흘러 2018년 새 해가 밝았다. 새 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1월 어느 날, 한자/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의 합동 공연이 발표되었다. 두 그룹이 함께 3일간 부도칸 무대에 선다는 소식이었다. 상세한 내용은 ‘1월 30일에 히라가나가 무대에 서고 다음날인 1월 31일과 마지막 날인 2월 1일에는 한자가 무대에 선다’는 것이었다. 음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 꾸는 ‘음악의 성지’인 부도칸에서 단독 공연을 하는 것은 한자, 히라가나 할 것 없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일은 생각처럼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았다. 1월 중순, 스태프가 히라가나 멤버들을 불러 모았다. ‘중요한 전달사항이 있다’며 입을 연 스태프의 말은 히라가나 멤버들에게 있어서 상상조차 하지 못 했던 내용이었다.
‘히라가나 케야키, 너희들에게 부도칸 공연을 3일 전부 맡기고 싶은데, 해 줄 수 있겠어?’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발표에 사사키 쿠미는 머릿 속이 새하얗게 되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 대답을 할 지 모르’는 것 이전에 ‘지금 무슨 말을 들었는 지’ 조차도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사키 뿐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상황은 비슷했기에 스태프가 거듭 ‘할 수 있겠어?’라고 재촉하듯 물었음에도 대답을 하지 못 하고 그저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던 것이다.
일이 이렇게 급변한 것은 사실 한자 케야키의 센터인 히라테 유리나가 전치 1개월짜리 부상을 입어 부도칸에 참가 할 수 없게 되어, 스태프들이 이 건에 대해 한자 멤버들과 대화를 나눈 결과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동안 히라테의 포지션을 메우고,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퍼포먼스를 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불과 한 달여 전에 성공리에 단독 전국투어를 마치고 한층 성장한 히라가나 케야키에게 3일간의 부도칸 공연을 전부 맡기겠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이다.
이 결단은 운영측에 있어서도,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을 믿을 수 밖에 없는 도박이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들의 마음 속은 여러 가지 생각들로 복잡했다.
사이토 쿄코는 ‘3일이나 공연을 한다니, 과연 체력이 버텨 주려나…’라며 불안해 했으며, 사사키 쿠미는 ‘우리들 만으로 3일이나 공연을 한다니, 객석이 채워 질 리도 없을 거고 한자 선배님들의 라이브를 보기 위해 오신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실 지 무서워’라고 마음이 약해져 있었다.
다카모토 아야카는 ‘뭐, 결국은 한자 선배님들도 라이브에 참가 하실거야. 팬 여러분 뿐 아니라 나도 솔직히 한자 선배님들 라이브가 보고 싶은걸’이라며 당초 예정대로 부분적이나마 양 그룹이 함께 공연을 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렇듯 각각 마음의 준비가 다 되지 않은 상태로 시작된 리허설은 지금까지 겪었던 그것에 비해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부담이 막중했다.
우선 투어 때와는 전혀 다른 콘셉트로, 새로운 연출이 많이 가미 되었기에 그에 맞추어 안무나 동선 자체가 크게 변경되었다. 예를 들어, 한자 케야키의 곡인 ‘이야기한다면 미래를…’의 경우, 히라가나 멤버들은 지금까지 이 곡을 선보인 적인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생소한 곡이었을 뿐 아니라, 부도칸 공연을 위해 새로운 구성이 이루어 져, 2층으로 세워 진 세트를 재빠르게 올랐다 내렸다 하며 퍼포먼스를 해야만 했다.
‘퍼포먼스를 한다면 통일성이 중요하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사사키 미레이의 경우, 특히 유닛곡의 완성도가 낮다는 사실에 불안감을 갖고, 리허설이 끝난 뒤에도 스튜디오에 남아 적극적으로 추가 연습을 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연습을 하여도 자신이 목표로 하는 레벨에 도달하지 못 해, 불안함과 초조함을 감추지 못 했다.
또한, 그 시기는 두 달 뒤에 발매될 새 싱글 제작기간과도 완벽하게 겹쳐 있었기에, 공연 리허설에 전념 할 수 있었던 시간은 사실상 1주일 정도뿐이었다. 그 뿐 아니라 이구치 마오, 우시오 사리나, 카게야마 유우카 등 몇몇 멤버들은 그런 얼마 되지 않는 리허설 조차도 학교에 가느라 참가하지 못 하는 경우마저 있었다.
그렇기에 택한 방식은 ‘일단 참가하지 못 하는 멤버들의 대역으로 댄서를 넣고 리허설을 진행 한 뒤, 그것을 동영상으로 찍어, 그 동영상을 보며 각자 연습을 하는’ 방식이었다. 사실은 모든 멤버들을 모아놓고 함께 리허설을 하면서 바로바로 틀린 부분을 고쳐가며 정확도를 높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런 것이 가능한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 하에서 각자 자신이 해야 할 것들을 수행하는 것 만으로도 벅찼기에, 어느 사이엔가 멤버들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져갔다. 공연 직전에 열린 게네프로(※의상, 연출까지 전부 실제 공연과 동일하게 한 최종 리허설)를 본 연출가가 멤버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질책하기까지 했다.
‘너희들 왜 예전처럼 해피 아우라를 뿜어내지 못 하는 거야? 부도칸에서 공연을 할 각오가 부족한 것 아니니?’
부도칸 공연 티켓은 선행 판매 시점에 이미 회장의 수용 인원을 한참 상회하는 수의 응모가 들어 왔을 정도였다. 멤버들이나 스태프들이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히라가나 케야키의 부도칸 공연을 기대하는 팬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수 많은 팬들이 자신들에게 기대를 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된 멤버들은 잔뜩 고무되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우리를 기다려 주고 계시잖아. 이렇게 된 이상 한 번 놀라게 해 드리자고. 전설에 남을 라이브를 보여드리자.’
‘더 이상 도망 갈 수 없는 곳 까지 와 버린 이상, 지금의 불안을 뛰어 넘어,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갈 수 밖에 없어.’
큰 무대를 눈 앞에 두고 멤버들은 서로에게 이렇게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부도칸 공연에서 모두를 놀라게 해 주자!’
‘전설에 남을 라이브를 보여주자!’
그런 멤버들의 각오와 함께 3일간 3만명을 동원한 ‘그룹 결성 이래 최대의 도전’은 막을 올렸다. 그리고 이 공연은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는 ‘격동의 2018년’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의 컬러풀한 세계
부도칸 공연의 오프닝에선 화려한 롱코트를 입은 멤버들이 지팡이와 중절모를 이용하여 댄스를 선보였다. 그리고 그녀들이 발을 딛고 서 있는 무대는 형형색색의 색전구들로 장식되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화려하고 컬러풀한 세트 구성이었다.
지난 해, Zepp tokyo에서 시작된 전국 투어 때는 아무래도 서게 되는 무대가 ‘라이브 하우스’ 였기에 연출을 최대한 자제한 심플한 스테이지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 이 부도칸 공연에서는 처음으로 테마가 있는 ‘쇼’ 형식의 연출이 적용 되었다. 그리고 이 날의 ‘테마’는 다름아닌 ‘서커스’. 부도칸을 하나의 거대한 서커스 천막으로 가정하고 멤버들이 차례로 나와 쇼를 선보이는 설정이었던 것이다.
아리나석에서 천장 부근까지 객석으로 꽉 찬 한가운데에 무대가 위치한, 마치 ‘절구통’ 모양을 한 부도칸의 중심에 선 순간, 사사키 쿠미의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부도칸은 지금까지 서 온 무대들과는 전혀 다르구나. 360도 모든 방향에서 관객들이 지켜 보고 있어. 보는 사람들의 함성이 회장 안을 가득 메우며 마치 땅이 울리는 것 같아.’
공연 시작 직전까지 필기한 메모를 몇 번이고 필사적으로 읽고 또 읽으면서 어찌 할 줄 몰라했던 우시오 사리나 역시 스테이지 위에 선 순간 기분이 확 바뀌었다. ‘여기 이렇게 서 있으니 마치 우주 한 가운데 떠 있는 것 같아. 팬분들의 사이리움이 마치 별처럼 반짝 거리네. 지금까지 준비하는 건 힘들었지만 이렇게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니… 우리들 정말 너무나도 행복한 사람들이구나.’
히라가나 케야키의 라이브에서도 빠질 수 없는 곡, ‘후타리세종’ 때는 전국 투어때와 마찬가지로 이구치 마오의 솔로 댄스 파트가 들어갔다. 이 퍼포먼스는 마쿠하리 때의 그것과 비교하여 퀄리티가 많이 올라 가 있었다.
사실 ‘부도칸에서도 솔로댄스를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이구치는 그녀 답지 않게 단호하게 거절을 했다 한다.
‘부도칸에서 3일 연속으로 공연을 한다는 거, 분명 뉴스에서도 다룰텐데 그런 중요한 무대에서 춤이 제일 서툰 제가 솔로로 춤을 추는 건 웃음거리밖에 안 되잖아요. 투어 때도 참고 했으니까 이번에는 다른 사람을 시켜 주세요.’
하지만, 사실 수 없이 눈물을 흘려가며 셀 수 없을 정도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결과, 조금씩이나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온 이구치였기에 부도칸에서 솔로 댄스라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자격이 있는 것이었다.
스태프들과 멤버들로부터 거의 ‘질타’에 가까운 설득을 받은 뒤, 이구치 역시 결심을 굳혔다. 자신이 춤 추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수 없이 돌려 보며 ‘여기랑 여기는 움직임이 좀 기분 나쁜데 어떻게 해야 좀 멋있게 출 수 있을까요?’ 라며 댄스 선생님에게 하나하나 세세한 곳 까지 확인한 것은 물론이고, 부도칸 공연이 한창일 때에도 자신이 무대에 서 있지 않을 땐 대기실에서 쉬지 않고 연습을 거듭했다. 그리고 그 결과, 본인 스스로도 ‘지금까지 해 왔던 것 중 최고 걸작’이라 자신 할 수 있을 정도의 퍼포먼스를 해 낼 수 있었고, 팬들 사이에서도 그녀의 성장이 화제가 될 정도였다.
이구치의 이 퍼포먼스, 불과 30초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솔로 댄스에는 1년 가까이 노력 해 온 그녀의 지금까지의 시간은 물론이고 ‘사람은 노력하면 성장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부도칸 공연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가 바로 ‘100년 기다리면’ 이라는 곡이었다. 이 곡은 나가하마 네루가 히라가나의 멤버일 때 나온 나가하마의 솔로곡으로, 부도칸 공연에서 1기생 전원이 이 곡을 커보 했던 것이다. 이 곡을 선보일 때, 무대 위에는 멤버들 뿐 아니라 곡예가, 피에로, 댄서, 어린 아이들도 등장하여 ‘서커스’와 ‘뮤지컬’을 융합시킨듯 한 화려하고 팝한 세계관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사실 한자, 히라가나 할 것 없이 무대 위에 멤버 이외의 사람이 올라오는 연출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 한 것이 바로 이 무대였다. 그리고 이 연출은 ‘모두 하나가 되어 즐겁게 즐긴다’ 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개방적인 분위기를 표현한 연출이기도 하였으며, 그 특유의 컬러풀한 세계관은 ‘스타일리시하고 흑백 대조가 강렬한’ 한자 케야키의 세계관과 대조를 이루며 양 그룹의 차이를 한 층 더 돋보이게 해 주는 연출이었다.
양 그룹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 연출이 다른 곡도 아닌 ‘나가하마 네루의 솔로곡’에 처음 쓰였다는 것은 어쩌면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이라는 그룹은 사실 나가하마 네루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역사를 생각 해 보았을 때, 필연이라고도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이 날, 부도칸의 객석에서 ‘나가하마 네루’의 이름이 쓰여진 타올을 본 다카세 마나는 ‘지금 이 자리에 네루쨩은 없지만, 역시 모두와 함께 있는 것이나 다름 없구나’라고 실감 했다.
그리고 부도칸 공연 이틀차에는 바로 그 나가하마 네루 역시 부도칸의 객석에 앉아 멤버들의 공연을 지켜 보았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뒤에는 멤버들을 찾아 감상을 이야기 하기도 하였다.
‘오늘 공연은 히라가나 케야키답게 해피 아우라가 가득 한 스테이지였어. 정말 엄청 감동했어. 100년 기다리면을 함께 불러 줘서 고마워.’
멤버들에게 감상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리는 나가하마의 모습을 보며 카토 시호는 ‘나가루 왜 울어’라며 웃어 주었다.
나가하마는 히라가나 케야키와 한자 케야키 겸임 당시, 항상 ‘한자 흉내에 그쳐선 안 돼. 히라가나만의 특징은 뭘까’라고 자신에게 묻곤 했다. 하지만 어느 사이엔가 자신이 떠난 뒤에 남겨진 멤버 들이 ‘해피 아우라’라는 ‘답’을 도출 해 내고, 자신들만의 것으로 삼은 뒤, 미소 지으며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지난 해 연말에 있었던 마쿠하리 멧세 공연때는 일부의 곡에서 무대를 맛 보는 데 그쳤던 2기생들 역시 더욱 더 파워업 한 스테이지를 보여주었다. 솔로 댄스나 ‘NO WAR in the future’ 뿐 아니라 매일 센터를 바꾸어 가며 노기자카46의 곡을 3곡씩 커버 했던 것이다. 비록 등장은 적었고, 커버 무대이긴 했지만 그녀들의 무대는 지금까지의 한자 케야키나 히라가나 케야키의 그것과는 다른 ‘새로운 바람’을 무대에 일으켰다.
그리고 이 라이브의 앙코르 때 처음으로 선보인 것이 1기생들의 신곡 ‘두고 보라고 (イマニミテイロ)’였다. 이 곡은 이 부도칸 공연의 상징과도 같은 곡이며,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라는 그룹의 미래에 대한 각오를 담담하게 풀어 낸 곡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중요한 곡의 센터에 선 멤버는 다름 아닌 사사키 미레이였다.
새벽 4시, 잠을 이루지 못 한 채 보낸 메시지
사사키 미레이는 히라가나 케야키에 들어 왔을 때부터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모든 분야에서 높은 잠재력을 지닌 멤버로 손꼽혔다. 나가하마 네루 역시 그녀를 보고 ‘뭐든 다 잘 하는 아이가 있다’고 놀랐을 정도였다. 그녀 자신이 주목을 받거나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서려 하는 타입이 아니었기에 그렇게 눈에 띄는 존재는 아니었지만, 그룹 전체로 봐서도 댄스 면에서는 최고로 손꼽히는 히가시무라 메이조차도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사사키 미레이에게 조언을 구하곤 할 정도였다.
그랬던 그녀의 존재감이 급격히 커 지고, 스태프들이 그녀에게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드라마 ‘Re:Mind’ 무렵부터였다. 이전까지는 항상 맨 뒷줄의 끄트머리 포지션에 서는 경우가 많았지만, 무대 위에 섰을 때 보여지는 그녀만의 깔끔한 모습은 말 그대로 ‘센터’에 적합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것 처럼 보였다.
그런 미레이가‘새롭게 발걸음을 옮기려 하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얼굴로 발탁 된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나 비교를 싫어하는 그녀의 성격상, 지금껏 센터라는 포지션을 의식 한 적은 없었다. 신곡의 포지션 발표 때에도 ‘센터, 사사키 미레이’라는 발표를 듣고 ‘아, 2열 중간에 서는구나’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정작 본인이 상황을 파악하기 전에 주변 멤버들이 그녀를 위해 박수를 쳐 주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우시오 사리나는 감격하여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누구보다 높이 뛰어!’에서 미레이와 대칭점에 선 이후 서로를 인정하며 ‘영원한 대칭점’이라고 부를 정도로 사이가 좋은 우시오였기에, 언제나 ‘나는 괜찮다’며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기만 하는 상냥한 미레이가 인정을 받은 것이 마치 자신이 인정 받은 것 마냥 기뻤다.
‘미팡은 언제나 생글생글 웃고 있는 태양 같은 존재이며, 히라가나 케야키를 상징하는 사람이라 생각해. 우리들이 자신을 갖고 자랑 할 수 있는 센터야.’
포지션 발표가 있었던 당일 밤, 처음으로 맡게 된 센터라는 자리의 중압감에 잠을 못 이루던 미레이는 새벽 4시경, 멤버들이 있는 그룹 라인에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오늘 제가 센터라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놀랐습니다. 저는 악수회에서도 인기가 없고, 얼굴도 귀엽지 않기에 센터에 서서 잘 해 낼 수 있을지 불안합니다만, 미팡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또한, 그녀는 ‘두고 보라고’ MV 촬영 당시에도 모니터에 비친 자신의 딱딱한 표정을 보며 크게 낙담하기도 하였다.
‘이대로라면 아무 것도 표현 못 하겠는걸. 이건 그냥 ‘무’의 표정일 뿐이야.’
이렇게 이야기하며 낙담하는 미레이를 보며 안무가인 TAKAHIRO는 ‘그렇다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분하고 아쉬웠던 때를 떠올려 봐’라고 조언 해 주었다.
‘어느 날 갑자기 어른들이 ‘해 보지 않을래’라고 이야기 했어. 어떻게 할 거니? 겁쟁이야’
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두고 보라고’라는 곡은 부도칸 공연을 갑작스레 맡게 된 그녀들의 심경을 그대로 그려 낸 곡이었다. 그리고 그 ‘시련’으로부터 등을 돌려 달아나지 않고 맞설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이야말로 곡의 제목인 ‘두고 보라’는 마음가짐이었다.
‘다른 누군가의 등 뒤에서 이 세상을 훔쳐보기만 했지. 내 차례가 되면 패스는 할 수 없는 룰이야. 두고 보라고, 지금 내가 보여주는 색은 어떤 색인지. 입술을 곱씹으며 지금껏 노력 해 온 색인걸.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몇 번이고 되뇌었어. 말이란 어떤 색일까? 언젠가 내가 보여 줄 색이야.’
미레이는 이 곡을 부르며 지난 날 분했던 기억들을 곱씹었다. 예를 들어 악수회에 사람들이 전혀 와 주지 않았던 날을, ‘케야키 공화국 2017’ 때 앙코르가 끝난 뒤 전체 인사에서 히라가나는 제외 되었던 날을… 그러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한자 케야키’에 대한 라이벌심에서 느낀 분함이 아니라, 한자의 등 뒤에 서 있을 뿐 스스로 앞으로 나서려 하지 않았던 자신에 대한 분함이었다. 한자 케야키의 팬인 미레이에게도 아느 사이엔가 ‘우리는 우리야. 우리 역시 하나의 그룹으로서 앞으로 걸어 나가야만 해’ 라는 마음이 싹 터 있었던 것이다.
이 곡에서 가장 압권인 부분은 2절 후렴구 이후의 퍼포먼스였다. ‘두고 보라고’를 부르면서 멤버들이 미소를 띈 채 주먹을 들어 올리는 부분이다. 과거의 안타까움, 분함, 그리고 눈 앞에 버티고 서 있는 높은 벽들마저 미소를 지으며 극복 해 나가겠다는 ‘히라가나 케야키’ 다운 각오가 표현 되어 있는 퍼포먼스이기 때문이다.
부도칸에서 처음으로 이 곡을 선보였을 때, 곡이 끝날 즈음하여 얼굴 가득 미소를 띄우며 ‘히라가나 포즈’를 한 미레이의 얼굴이 모니터에 비추어 진 순간 회장은 따뜻한 박수소리로 가득 찼다.
모니터에 비춘 그녀의 얼굴은 정말이지 그녀 다운, 너무나도 상냥하고 다정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라이브의 마지막 날, 공연이 끝날 때쯤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서프라이즈가 기다리고 있었다.
전설로 남은 ‘다레토베’ 더블 앙코르
그것은 마지막 공연의 앙코르로 ‘두고 보라고’를 선보인 뒤, 멤버들이 다음 곡 준비를 위해 무대 위에서 이동 하기 시작했을 때의 일이었다. 회장 뒤에 설치 된 모니터에 갑작스럽게 이런 메시지가 나타났던 것이다.
‘멤버 여러분, 3일간 공연 정말로 수고 많았습니다!’
메시지가 사라진 뒤, 지난 3일간의 공연을 요약한 다이제스트 영상이 흘러나왔다. 어저께, 그리고 그저께의 일임에도 오래 된 추억만 같아 멤버들 중에는 눈물이 맺힌 멤버들도 있었다.
하지만 서프라이즈는 그 때 부터였다.
‘부도칸 공연을 성공리에 마친 히라가나 케야키의 새로운 성장을 위한… 다음 시련은…’
뒤이어진 메시지. 그 곳에 자리잡은 ‘시련’이라는 두 글자에 멤버들은 비명을 질렀다.
지금까지 있었던 서프라이즈 발표에서는 항상 괴로운 추억밖에는 없었던 그녀들에게 있어 이 다음에 이어질 메시지는 두려움일 뿐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표시 된 메시지는 그녀들의 그런 예상을 멋지게 빗나간 것이었다.
‘히라가나 케야키 단독 앨범! 발매 결정!’
뒤이어진 메시지를 본 멤버들은 마치 폭발하듯 환희에 차서 소리를 질렀다. 생각조차 하지 못 했던 기쁜 발표에 표정 관리를 하지 못 하고 서로 얼싸안은 멤버들을 보며 회장 안은 떠나갈 듯한 환성소리로 가득찼다.
발표의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은 채, 사사키 쿠미가 그룹을 대표하여 짧게 감상을 이야기했다.
‘이렇게 저희의 꿈이 이루어 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 했기에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만… 기쁘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자신들 명의로 CD 데뷔를 한다는 것은 작년 투어 도중에 멤버들끼리 의견을 나누며 결정한 목표 중 하나였다. 지금까지 한자 케야키 명의 CD의 커플링 곡에만 참가 해 왔던 그녀들에게 있어 자신들만의 이름으로 작품을 낸다는 것은 너무나도 심플하지만 명확한 목표였으며, 동시에 가장 이루기 힘든 목표로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1년 가까이 이어진 투어를 무사히 완주 해 내고, 부도칸 3days 공연이라는 크나큰 도전에 승리한 히라가나 케야키는 어느 사이엔가 단독 데뷔에 걸맞는 그룹으로 성장 해 있었다.
그리고 이 날 공연의 마지막에는 관객들의 ‘더블 앙코르’ 요청에 답하여 ‘누구보다 높이 뛰어!’를 선보였다. 초창기, 자신들만의 노래가 거의 없을 무렵부터 관객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어느 부분에 어떻게 객석을 띄울 지’, ‘어떻게 해야 우리들의 마음이 곡에 더 잘 묻어 나올 지’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그룹과 함께 성장 해 온 히라가나 케야키의 대표곡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룹의 중심에 서서 목소리를 높여 이끌어 온 사사키 쿠미는 이 날의 이 더블 앙코르에서 지금까지 느끼지 못 했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들이 소리를 내는 그 몇 배, 몇 십 배로 환성이 되돌아오네. 엄청 즐거워!’
연출 스태프들 역시 분위기를 타고 인이어 모니터를 통해 ‘좀 더 객석 분위기를 띄워! 지금 한창 분위기 좋으니까 좀 더 띄워봐!’라고 지시를 내렸고,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카케야마가 ‘여러분! 더 더 즐겨 봐요!’라고 소리를 질렀다. 상당히 기분이 업 되었는지 목소리가 뒤집혀 쇳소리가 날 정도였지만 아무도 그 점은 신경쓰지 않았다.
곡의 분위기에 취하기라도 한 듯 멤버들도, 회장을 메운 관객들도 리미터가 풀려 있었던 것이다. ‘다레토베’라고 하는 곳이 가진 진정한 잠재력이 최대한으로 발휘 된 순간이었다.
라이브가 끝난 뒤, 모두가 ‘해 냈다’는 달성감과 기분 좋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가운데, 카키자키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신기한 느낌에 휩싸여 있었다.
‘당장 내일도 여기서 라이브를 할 것 같아. 이대로 또 한 번, 3일 공연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히라가나 케야키의 이 부도칸 공연은 TV, 인터넷 할 것 없이
크게 다루어졌다. 그녀들에게는 ‘부도칸 3일 공연을 성공리에 마무리 한, 요즘 가장 기세가
좋은 그룹’이라는 높은 평가가 주어졌다. 그녀들의 큰 도전이
확실히 그녀들의 ‘미래’로 이어 져, 그룹을 둘러 싼 환경을 크게 바꾸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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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화
10명이서 맞이한 투어 파이널
2017년 봄에 시작된 히라가나 케야키의 첫 전국투어도 어느 사이엔가 치바현 마쿠하리 멧세의 이틀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리고 투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마쿠하리 멧세는 12월 12일, 13일 양일에 걸쳐 14,000명을 동원하는 큰 규모로 진행되었다. 지금껏 그녀들이 경험 해 본 적도 없는 규모였다.
하지만 지금껏 전국적으로 라이브 뷰잉을 한 덕분인지 히라가나 케야키의 팬층은 투어 개시시와 비교해서 괄목할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기에, 투어 파이널 공연 티켓은 판매가 시작되자마자 즉시 매진될 정도였다.
그리고 이번 투어 파이널 공연을 통해 처음으로 무대에 서게 된 2기생들도 1기생들과 함께 1, 2기 합동곡인 ‘NO WAR in the future’의 안무 레슨에 임했다.
이렇게 차근차근 과거 최대규모의 투어 파이널을 향해 준비가 되어 가고 있었다.
공연 이틀 전에 일어난 사고
이틀에 걸친 치바 공연 세트리스트에는 총 20곡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날 처음으로 선보이는 ‘NO WAR in the future’를 비롯한 히라가나 케야키의 오리지널 곡들을 필두로 지금까지 투어에서 불러 온 한자 케야키의 곡들을 전부 더한 숫자였다.
거기에 더하여 탭댄스나 드럼 마치 등 지금까지 전국을 돌며 선보여 온 퍼포먼스도 전부 선보이게 되어 있었기에, 말 그대로 히라가나 케야키의 1기생들이 9달에 걸쳐 선보인 전국투어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그리고 이 치바공연에서 처음으로 선보이게 되는 퍼포먼스가 있었다. 바로 ‘롤러스케이트 퍼포먼스’ 였다. 비록 어릴 때 롤러스케이트를 탄 경험이 있는 멤버가 많았다고는 하나, 그것을 신고 퍼포먼스를 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헬멧은 물론이고 팔목, 무릎, 팔꿈치에도 프로텍터를 착용하여 최대한 안전 대책을 세웠다고는 하지만, 연습을 하며 수 차례 넘어지는 과정에서 롤러스케이트 자체에 대하 공포심을 느끼게 된 멤버도 있었다. 특히나 롤러스케이트에 대하여 공포를 안고 있었던 다카모토 아야카와 사사키 미레이 등은 겨우겨우 지지대에서 손을 떼고 연습을 한 뒤, 곧바로 손잡이로 돌아 가 꼭 붙들고는 놓지 않았다. 롤러스케이트 퍼포먼스가 정해진 직후부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걸 해 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은데 어떻게 하지?’라고 불안해 했던 사이토 쿄코는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속도를 내기는커녕 걷는 것 조차 고전 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실전 연습을 겸해 이른 아침부터 도쿄도내의 대형 롤러스케이트장을 빌려 리허설을 하게 되었다. 처음 경험 해 보는 넓은 롤러 스케이트장의 미끄러운 바닥에 고전한 멤버들은 수 없이 넘어져가며 리허설을 진행했다. 그리고 롤러스케이트 강사가 그녀들을 한 데 모아 구두로 요령을 설명해 주던 도중, 이변이 발생했다.
‘죄송한데 기분이 안 좋아요…’
이렇게 이야기 하며 카키자키가 갑자기 쭈그려 앉았던 것이다. 얼굴에도 핏기가 없이 창백했다. 이상을 감지한 스태프들은 곧바로 그녀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저녁이 되어 멤버들이 리허설 스튜디오에 모여 노래 연습을 하고 있을 무렵, 스태프들과 함께 카키자키가 돌아왔다. 그녀의 왼 팔은 삼각건으로 고정되어, 목에 걸려있는 채였다.
이런 카키자키의 모습을 본 순간, 사이토 쿄코는 ‘설마!’라는 생각이 들어 소름이 돋았다. 아침에 카키자키가 쭈그려 앉을 때만 해도 그 누구도 그녀가 이토록 크게 부상을 당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카키자키와 함께 서 있던 스태프가 입을 열었다.
‘다들 보면 알겠지만, 카키자키의 왼 팔이 골절되었습니다. 마쿠하리 라이브에도 참가 할 수 없습니다.’
갑작스러운 충격 발표에 멤버들 대다수가 울기 시작했다.
사실 이 날, 대망의 라이브까지는 겨우 이틀 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위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나가노현에서 태어나고 자란 카키자키 메미는 어째서인지 어릴 때부터 다른 이들의 주목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유치원 때나 초등학생 때 학예회에서는 딱히 자신이 입후보 하지 않았음에도 친구들의 추천으로 공주 역할에 발탁 되기도 하였다. 그런 활발한 성격은 커서도 변하지 않아, 친구도 많이 생겼으며 중학생이 되어서는 미술부 부장이나 학생회 서기에 뽑히기도 하였다.
히라가나 케야키 오디션 합격 발표때에도 그녀의 위치는 단상 한 가운데였고, 히라가나 케야키의 첫 오리지널곡인 ‘히라가나 케야키’에서도 그녀는 나가하마와 더불어 더블 센터 자리에 서게 되었다.
가입 당시 14살로 그룹 최연소 멤버였던 카키자키의 별명은 ‘껌딱지(※원문은 ‘ひっつき虫’, 원래는 도깨비바늘처럼 종자 끝에 갈고리 등이 있어서 다른 동물이나 사람에게 붙어서 씨앗을 퍼뜨리는 식물을 뜻함)’. 그 정도로 항상 다른 멤버들에게 딱 붙어서 응석을 부리곤 했지만 그런 평소 모습과는 달리 때로는 매우 격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 뿐 아니라. 히라가나의 세 번째 오리지널 곡인 ‘우리들은 사귀고 있어’에서 센터인 나가하마의 뒤, 다시 말 해 1.5열 정도의 애매한 위치에 서게 되었을 때에는 분한 모습을 감추지 못 하기도 하였다. 물론 단순히 ‘센터에서 탈락했기 때문’에 분해 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분해한 까닭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실력 부족’을 실감했기 때문이고, 동시에 ‘내 실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니까, 이렇게 어중간하게 뒤로 보내지 말고 아예 확 뒷줄로 보내주지…’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본디 카키자키가 센터에 서는 한자 케야키의 ‘후타리 세종’에서 이구치가 솔로 댄스파트를 소화하게 되었을 때, ‘센터는 메미가 서면 되는데 왜 하필이면 나야?’라고 투덜대는 이구치를 보았을 때는 진심으로 화를 내기도 했다.
카키자키는 그런 이구치를 보며 ‘아무리 울어봤자 변하는 건 없으니까 하기로 결정 된 건 최선을 다 할 수 밖에 없잖아’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카키자키 역시 센터에 서면서 수 없이 눈물을 흘려 왔지만, 단 한 번도 ‘못 한다’고 이야기 한 적은 없었다. 그렇듯 그녀의 끈기와 한 번 정한 일은 어떻게든 끝까지 해 내는 근성은 거의 기품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카키자키를 잃게 된 것이다. 그것도 마쿠하리에서 열리는 큰 무대를 앞두고.
사실 카키자키 본인도 넘어져서 손을 짚었을 때, ‘아, 이거 큰일이네’라고 실감을 했다고는 하지만, 병원에 가서 X선을 찍고, 의사의 입으로 ‘골절’이라는 진단을 받은 순간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얼마나 펑펑 울었으면 의사가 깜짝 놀랐을 정도였다. 자신이 히라가나의 멤버로서 노력 해 온 1년 반의 성과를 선보이는 라이브에 참가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 바로 그 때 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시간 뒤, 리허설 스튜디오에 돌아 온 카키자키는 다른 멤버들이 그녀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도 의연하게 하늘만 쳐다보며 눈물을 참고 있었다. 그녀는 그 때, 마음 속으로 이렇게 되뇌고 있었다. .
‘여기서 내가 울면 안돼. 지금 내가 울어서 다른 멤버들 마음이 흐트러진다면 마쿠하리 공연은 성공시키지 못 해’
카키자키가 라이브에 참가하지 못 하게 되어, 본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 타이밍에 모든 곡의 포메이션을 변경해야만 하게 되었다. 그것은 ‘다른 멤버들이 메미의 파트를 커버하며 최고의 공연을 선보이겠다’는 팀 전체의 의지에 따른 선택이었다.
그리고 카키자키 역시 리허설 내내 스튜디오를 떠나지 않고 다른 멤버들의 연습 상황을 지켜보았다. 라이브에 참가 할 수 없게 되어 가장 분한 것은 본인일텐데도 다른 멤버들을 생각하여 눈물을 참았던 그녀의 심경을 헤아리기라도 했는지 다른 멤버들도 그녀에게 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자세는 그 곳에서 연습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
평소에는 마음이 약한 편인 카토 시호조차 ‘이제 와 울어봤자 변하는 것 없다’는 스태프의 말에 단호하게 ‘지금 우는 건 슬퍼서 우는 게 아니에요. 분해서 우는 거지’라고 받아 칠 정도였다. 카토 뿐만이 아니었다. 카키자키와 함께 무대에 설 수 없다는 ‘분함’이 멤버들의 투지에 불을 붙인 것이었다.
그렇게 투지에 불타는 선배들을 바로 곁에서 보고 있던 것이 바로 들어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2기생들이었다. 그녀들은 1기생의 기세에 휩쓸려 덩달아 달아오른 스태프들과 선배들이 서로 팽팽한 긴장 상태를 유지하던 현장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지만, 그 때 자신들의 눈으로 목격한 리허설 광경은 바로 그 날 이후 그녀들이 일에 임하는 자세에 크게 영향을 끼친 결정적인 장면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마치 폭풍과도 같던 이틀이 지나, 결전의 날이 찾아왔다.
‘여기서 이대로 멈춰 설 수 없어’
라이브의 막을 연 것은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의 첫 오리지널곡 ‘히라가나케야키’. 해당 곡의 더블 센터인 나가하마 네루, 카키자키 메미 두 명이 모두 빠지고 10명이서 퍼포먼스를 했던 것이다.
카키자키는 그 날도 스테이지 옆에 설치된 모니터 앞에 앉아 멤버들의 퍼포먼스를 지켜보고 있었다. 라이브가 시작 된 직후에는 자신이 그 곳에 서 있지 않는다는 분함과 자신 탓에 모두가 힘들게 준비 해 온 롤러 스케이트 퍼포먼스가 중지되었다는 죄책감에 몇 번이고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 스테이지에 선 것은 10명만이 아니었다. 라이브를 앞두고 모두가 빙 둘러서 원진을 짰을 때, 카키자키도 그 원진에 포함 되어 있었으며, 누군가가 ‘네루쨩’이라고 이야기 하자, 사사키 쿠미가 목소리를 높여 ‘네루쨩 자리는 비워 줘! 자, 그럼 12명 전원이 온 힘을 다 해 라이브에 임하자!’ 라고 이야기 했던 것이다.
1기생들에게 있어서는 말 그대로 ‘지금까지의 노력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 라이브였기에, 남은 멤버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나가하마 네루, 카키자키 메미의 몫까지 더한 12명 전원의 해피 오라’를 관객들에게 전하겠다는 의식이 싹 터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가슴 속에 품고 넓은 마쿠하리의 스테이지 위에서 노력하는 10명의 모습을, 겨우 10명이서 그 큰 무대를 꽉 채우고 있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며 무대 옆에 서 있던 카키자키의 심경도 점점 변해갔다.
‘라이브라는 거, 보고 있기만 해도 이렇게 기운이 나는 거구나. 당장 나만해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야. 정말이지 히라가나케야키 멤버들이 좋아.’
그리고 카키자키는 이 날, 멤버들이 옷을 갈아 입으러 들어 올 때나 유닛곡 교대를 위해 스테이지 옆을 지날 때 마다 웃으며 ‘힘 내!’라고 격려했다.
이 날 이렇게 새롭게 한 걸음을 내딛은 것은 카키자키만이 아니었다. 그룹의 미래를 만들어 나갈 2기생들 역시 역사적인 첫 걸음을 뗀 것이다.
라이브가 중반에 다다랐을 무렵, 2기생들이 한 명씩 무대 위로 올라 와 자기 PR을 하였다. 그리고 2기생들의 자기소개가 끝난 뒤, 1기생들이 합류하여 ‘NO WAR in the future’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4박자의 비트에 맞추어 주먹을 높게 든 채 점프를 하는 등 격렬한 안무가 군데군데 들어 간 파워풀한 곡이었다.
간주중에는 멤버 전원이 한 데 모여 거대한 ‘히(ひ)’자를 만들었다. 스테이지 위쪽에 설치한 카메라는 이 모습을 모니터에 비추어 냈다. 이는 다인원 그룹이 되었기에 가능했던 다이내믹한 포메이션이었다.
2절 A멜로디에는 1기생과 2기생이 한 명씩 팀을 이루어 차례차례 무대 앞으로 나아가 포즈를 취하는 파트도 준비 되었다. 말하자면 이 곡의 안무는 1기생과 2기생 사이의 융합을 촉구하는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 안무에는 멤버들이 몰랐던 숨겨진 테마가 있었다. 바로 ‘멤버들이 카메라를 의식하게 만든다’는 테마였다.
그녀들의 선배인 한자 케야키자카46의 라이브에서는 멤버들의 얼굴조차 분간이 안 될 정도로 강한 역광을 준 상태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연출이 자주 사용되곤 한다. 이는 보는 이들을 도취시킬만큼 환상적인 광경인 동시에, 여타 다른 아이돌의 무대와는 확연히 다른 컬러를 보여주는 장치로 활용된다. 이 당시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의 라이브 역시 큰 틀에서는 한자의 그것을 답습하는 방향으로 연출의 방향성이 잡혀 있었다.
하지만 선배들의 연출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히라가나만의 색을 내기 위해 준비 한 것이 바로 ‘모니터를 향한 어필’이었다. 멤버 각자가 자신이 언제 원샷을 받게 될 지를 의식하고, 자신의 타이밍에 맞추어 보는 이들에게 어필을 하는 스타일은 어찌 말하자면 아이돌 라이브의 기본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들의 대선배인 노기자카46의 라이브에서도 너무나도 당연히 실시하는 것이고 말이다.
그런 면에서 생각하자면 이런 식의 ‘아이돌스러운’ 면모와 ‘쿨한’ 면모를 동시에 선보이면서도 확실히 구분 하는 점에서 히라가나 케야키 특유의 ‘노기자카와 케야키자카의 복합체’적인 면모는 이미 이 라이브에서 어느 정도 정립 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라이브 마지막 부분에서는 카키자키 메미를 포함하여 1기생 전원이 ‘W-KEYAKIZAKA의 노래’를 불렀다. 골절을 당한 왼 팔을 히라가나 케야키의 깃발로 감싼 카키자키가 무대 위로 올라 와, 마이크를 잡자 회장의 분위기는 폭발할 듯 끓어올랐다.
‘지금 이 무대에 11명 전원이 설 수 있어 정말로 행복합니다.’
카키자키를 비롯한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1기생 멤버들은 그룹 가입 직후부터 일부 팬들에게 ‘케야키자카46에 언더 그룹 따윈 필요없어’라 야유를 받았던 일을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 하고 있었다. 그랬던 자신들이 지금은 이리도 넓은 마쿠하리 멧세가 자신들의 이름이 새겨진 타올을 든 사람들로 가득 채워진 광경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기분과 동시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행복을 느꼈다.
그렇게 이틀간 이어진 라이브의 마지막 MC에서 사사키 쿠미는 이렇게 이야기를 하였다.
‘저희들은 네루쨩 한 명으로 시작되어, 12명이 힘을 모아 지금껏 활동 해 왔습니다만, 어느 사이엔가 11명이 되고, 이제는 2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네루쨩의 의지는 저희가 이어 갈 생각이며, 지금은 저희들을 그 자체로 좋아 해 주시고 응원 해 주시는 분이 이렇게나 늘었습니다. 그렇기에 저희는 여기서 이 상태로 머물러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한참 미숙한 저희입니다만, 9명의 후배들과 함께 더욱 더 믿음직스럽고, 더 멋지고, 해피 아우라를 뿜어내는 그룹이 될 수 있도록 20명 전원이 노력 해 나가고자합니다.’
그녀가 문장 하나 하나에 진심을 담아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동안, 객석을 가득 메운 팬들은 마치 한 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숨죽여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 세워진 모니터에는 지난 1년 1반 동안의 일들을 떠올리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멤버들의 얼굴이 크게 클로우즈 업 되어 흐르고 있었다.
이렇게 카키자키 메미의 골절이라는 불의의 사고를 극복 해 내며 치러진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최대의 라이브는 무사히 그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 직후에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큰 시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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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생활은 어떠셨나요? 길게 느껴지셨나요? 짧았던 것 같나요?
니부 (이하 ‘니’) : 눈 깜빡할 사이에 끝나버린 것 같아요. 검도 자체는 초등학생 때 시작했지만, 고등학교 때는 내내 검도부 활동으로 가득 차 있었거든요. 주말에도 연습이다 시합이다 바빴기에 공부를 한다거나 친구들이랑 논다거나 하는 추억 보다는 검도부에서 보낸 기억들만 있는 것 같아요. 히라가나 케야키에 들어 온 이후로는 아이돌 활동과 학업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만, 그런 와중에도 어찌저찌 수학여행에는 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기뻤던 일 중 하나예요. 하지만 고 3으로 올라가는 타이밍에 연극 ‘아유미’의 연습 기간이 겹친 것을 시작으로 급격하게 바빠져서 결국 고 3 도중에 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반 년만 있으면 졸업이었던 지라 여러 모로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만 저 자신에게 있어 중요한 터닝 포인트라 생각해서 결단을 내렸지요. 검도부 고문 선생님께서 ‘남들보다 한 발 앞서 졸업 하는구나’라고 말씀 해 주신 것, 그리고 친구들이 앨범을 만들고, 롤링 페이퍼를 써 주었기에 마지막 날, 친구들과 얼싸안고 펑펑 울었어요. (웃음)
- 그렇다면 역시 고교 생활을 떠올릴 땐 학교 행사보다는 검도부 일이 더 먼저 떠오르시겠네요?
니 : 네. 운동회도 재미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은 검도부 합숙이네요. 합숙을 통해 친구들이 많이 생기기도 했고, 같은 부 동료들과 서로를 격려하며 힘든 연습을 극복 해 나가며 유대감도 깊어졌거든요… 누가 뭐래도 함께 밥을 먹고 같은 곳에서 잠을 자고, 마음 속 얘기를 나눈다는 게 정말 ‘청춘’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 소위 말하는 학교 내 서열이랑 니부상은 아무런 연이 없는 것 처럼 보이기는 합니다만…
니 : 애초에 여학교에 다녔었기에 서열 같은 건 없었어요. 여자 아이들만 있다 보니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좀 독특하고, 학교내 행사를 하면 분위기를 금방 타는 부분은 있었지만요. ‘이번 행사, 전력으로 해 보자~’ 뭐 이런 분위기였달까요? 그 중에서 저는 지금이랑 똑같이 ‘니부쨩’이라고 불리며, 모두에게 놀림 당하는 캐릭터였어요. 여러 모로 좀 특이한 애라 딴죽걸기 좋았다고나 할까요. (웃음)
- 딱히 교풍이 엄했더거나 한 건 아니고요?
니 : 네. 딱히 그렇게 엄청 엄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뭘 해도 괜찮은 것도 아니었고요. 아, 물론 몸 단장은 항상 확실히 하라고 이야기 하는 학교였습니다. 여학교라는 게, 사실 기본적으로 수평적인 관계가 강해지는 분위기거든요. 학교 내에서 남자들의 눈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 자신의 모습을 꾸미지 않고 친구들을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선지는 몰라도 아직도 연락을 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 친구들은 히라가나 케야키에 들어 오기 전의 제 모습을 알고 있기에, 자신을 꾸미지 않고, 너무 신경쓰지 않고 평범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잖아요. 정말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 올 봄부턴 니부상과 함께 학교에 다녔던 친구들도 각자 새로운 길을 걷게 되는데요, 니부상은 ‘더 이상 고등학생이 아니게 된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니 : 저는 사실 전학 하기 전에 이미 ‘진학은 하지 않고 히라가나 케야키 활동에 전념한다’고 마음을 굳힌 상태였기에, 남은 건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도록 주어진 것들 하나 하나에 최선을 다 하면 되는 것 뿐이었지요. 뭐, 아이돌 활동을 하다보면 교복이랑 비슷한 제복은 얼마든지 입을 수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다 맛 보지 못 한 학생 기분을 맛 보면 되지… 정도의 생각이었어요. (웃음)
- 그럼 딱 한 번, 시간을 거꾸로 돌려서 학생 때로 돌아 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요?
니 : 음… 사실 고교 시절에 있어 후회가 되는 건 거의 0에 가까워서… 굳이 얘기 한다면 시험 직전으로 돌아 갈 것 같아요. 입학 직후에 ‘고등학생이 되었다’는 점에 들떠서 공부를 거의 안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성적이 정말 말도 안 되게 처참했어요. 거기서부터 성적을 끌어 올리는 게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입학 직후 시기로 돌아 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완전히 후회되는 것이 없는 고교생활을 보내고 싶어요.
- 그렇군요. 하지만 현재 ‘후회되는 것이 거의 0에 가깝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요.
니 : 엄청 알찬 시간이었거든요. 일상생활도, 검도부 활동도, 학교 행사도… 모든 면에서 최선을 다 했다고 말씀 드릴 수 있어요. 물론 끝난다고 하니 아쉬운 마음은 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 그렇게까지 딱 잘라 단언 할 수 있다는 게 또 멋있네요. 그럼 고교생활을 마무리함에 있어 ‘아, 고등학생때 이런 식으로 고백을 받아 봤다면 좋았을걸’ 이라는 망상을 해 보며 인터뷰를 마무리 해 보죠.
니 : 와! 학교에서 고백을 받는다니, 엄청 멋지지 않나요? 그렇죠… 고백을 받는다면 역시 방과후죠. 상대방은 저랑 다른 부에 소속된 사람이고요. 부 활동이 끝난 뒤에 우연찮게 교실에 들렀다가 딱 마주치는 거예요. 사실 제가 보기에는 ‘우연히’ 만난 거지만, 상대방은 전부 우연을 가장해서 단둘이 될 수 있는 타이밍을 기다린 거죠. 끈기있게 (웃음) 상대방을 본 제가 깜짝 놀라며 ‘어? 왠일이야?’라고 입을 연 뒤, 잠시 잡담을 하다가 ‘그럼 슬슬 돌아갈까’라며 집에 가려는 순간 고백 받는 거예요.
- 고백의 내용은 담백하고 스트레이트한 내용이 좋은가요?
니 : 음. 뭔가 자세하게 물으시네요. 음… 생각하다 보니 부끄러워지는데요. 하지만
역시 스트레이트하게 마음을 말 해 줬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그런 말 들으면
‘헉!’하고 놀랄 것 같긴 하지만. 아, 물론 소리 내서 ‘헉!’이라고 말하지는 않을
지 몰라도 마음 속으로 말이죠. 아마 평소와 다름 없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놀랄 것 같네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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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화
처음 20명이서 춤춘 날
2017년 10월부터 방영 된 히라가나 케야키의 첫 주연 드라마 ‘Re:Mind’.
‘히라가나 케야키는 다들 연기를 잘 하는 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스태프의 응원에 힘입어 부단히 노력 한 결과,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은 연기의 재미에 눈뜨게 되었다.
그 뿐 아니라 연기에 있어 매우 중요한 ‘상대방을 잘 지켜본다’는 점 역시 의식하게 되어, 이후의 라이브에서 퍼포먼스의 질 역시 크게 향상되었다.
드라마의 촬영기간은 약 2개월. 이 시기에도 촬영 이외의 스케줄, 다시 말 해 라이브나 방송 출연 등의 활동은 계속 되었다.
아무도 앉지 않은 ‘네루쨩의 자리’
2017년 11월 6일. 후쿠오카현 선 팔레스홀에서 히라가나 케야키의 전국 투어 후쿠오카 공연이 열렸다.
공연의 오프닝 퍼포먼스는 멤버들의 컬러가드 퍼포먼스. 깃발이나 모형총기 등을 이용하여 마칭의 분위기를 띄우는 이 컬러가드는 사실 히가시무라가 중, 고등학교 시절을 바친 것이었다. 실제로 연습 때는 다른 멤버들을 가르쳐주고 이끌어 주기도 한 경험자 히가시무라는 이 날 퍼포먼스에서도 센터 자리에 서서 모형 총기를 휙휙 돌리다 위로 던지고 받아내기도 하는 듯 멋진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오프닝 퍼포먼스를 마무리했다.
사사키 쿠미는 이 후쿠오카 공연부터 자기 마음 속으로 한 가지 ‘게임’을 시작했다. 회장에 모인 팬들의 표정을 한 사람 한 사람 유심히 바라보고, 만약 웃고있지 않은 관객이 눈에 들어오면 그 사람이 웃을 때 까지 전력을 다 해 ‘해피 아우라’를 뿜기로 정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상대방이 웃으면 자신이 승리 한 것이다.
물론 이런 ‘게임’을 하게 된 것은 공연의 분위기를 더욱 더 띄우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드라마 촬영을 겪으며 자연스레 몸에 익혀진 ‘상대방을 잘 본다’는 의식 역시 무시 할 수 없는 원인 중 하나였다.
이 공연에서는 드라마의 주제곡인 ‘그럼에도 걸어가’가 처음으로 전 멤버에 의해 선보여지기도 하였는데, 이 곡은 센터인 사이토 쿄코 이외에도 모든 멤버들이 솔로파트를 소화해야 하는 첫 곡이었다. 그리고 전원이 센터 파트를 맡게 되었다는 긴장감 덕분에 그녀들의 정신력은 한 층 강해 질 수 있었다.
이 곡을 선보일 때는 소도구로서 의자가 12개 사용된다. 그리고 이 날 공연에서 무대 중앙에 놓여진 의자 한 개는 끝까지 아무도 앉지 않은 채였다. 멤버들은 이 빈 의자를 ‘네루쨩의 의자’라고 부르며, 지금껏 나가하마와 함께 12명이 만들어 온 히라가나 케야키자카의 역사를 상징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빈 의자’는 그런 상징적인 의미 이외에도 동선 이동이 많은 이 곡에 있어서 안무의 ‘기준점’으로서도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곡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멤버들이 12개의 의자들을 일렬로 세워 놓고 그 의자들을 뛰어 넘는 연출이 가미되었다.
‘태어 나서 죽는 날 까지
그래 그럼에도 걸어 가는 거지
그렇기에 그럼에도 걸어 가’
라는 가사대로 지금껏 히라가나 케야키가 걸어 온 과거와, 그런 과거를 떠나 다음 길로 걸어 나가겠다는 의지가 담긴 연출이었다.
사실 이 후쿠오카 공연 직전, 전국투어의 마지막 공연이 치바현 마쿠하리 멧세에서 열리게 되었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틀에 걸친 마지막 공연의 수용인원은 약 1만 4천명. 지금까지 전국 투어를 돌아 온 3000명 이하의 라이브 하우스와는 차원이 규모였다.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티켓은 이미 선행 판매 시점에서 낙선자가 다수 발생 할 정도로 날개 돋힌 듯 팔렸다. 이는 멤버는 물론이고 스태프들 조차도 차마 예상조차 하지 못 한 일이었다.
이런 성황의 숨겨진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되는 것이 바로 ‘라이브 뷰잉’이었다. 봄부터 시작 된 전국투어 내내 소위 ‘라이브 뷰잉’이라고 하는 동시 중계가 행해졌던 것이다. 이는 사실 아직 인지도가 부족한 히라가나 케야키가 하기에는 위험도가 높은 도전이었기에 라이브뷰잉을 성공시키기 위하여 여러가지 기획이 실행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매 공연마다 한자 케야키 멤버들이 두 명씩 동행하여 무대 뒷편 모습을 중계 하는 기획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런 중계를 통해 지방에서도 서서히 히라가나 케야키의 팬들이 늘어났고, 그와 더불어 2기생 가입, 나가하마 네루의 갑작스러운 이탈 등 그룹의 ‘스토리’가 많은 관객들에게 공유 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팬들 사이에서 ‘어쩌면 마쿠하리 공연에서 2기생들이 처음 공개 될 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며 기대감을 더하기도 하였다. 8월에 그룹에 들어 온 9명의 2기생들은 이전까지 팬들 앞에 서서 퍼포먼스를 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히라가나 케야키사상 최대규모의 원맨라이브로 향하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50미터 달리기로 생겨난 카토와 와타나베의 유대감
2기생들이 본격적으로 사람들 앞에 서기 전부터 그녀들의 레슨을 맡아 온 댄서 겸 안무가 TAKAHIRO는 처음으로 그녀들과 만난 날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그녀들의 인사가 너무나도 크고 우렁차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고, 지금까지 보아 온 한자 케야키나 히라가나 케야키 1기생들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의, 말 그대로 ‘새로운 세대’가 들어 왔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가입 직후, 그녀들은 의례적으로 케야키자카46의 칸무리 방송인 ‘케야카케’에 6주 연속으로 출연하게 된다. 그 뿐 아니라 여러 잡지에서도 앞다투어 그녀들을 다루었다. 지금까지 히라가나 케야키 1기생들이 노력 해 온 결과, 새롭게 가입한 2기생들에게 수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2기생들이 처음으로 1기생들과 함께 참여한 곡은 ‘NO WAR in the future’였다. 후쿠오카 공연이 끝나고 함께 모여 안무를 배울 때, 초창기 자신들의 모습과는 달리 어려운 안무에도 겁먹지 않고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2기생들의 모습을 보며 히라가나 케야키 1기생들은 ‘2기생들 대단하다’고 칭찬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건, 당사자인 2기생들의 마음 속은 불안으로 가득했다.
특히나 최연소인 하마기시 히요리는 발레 경험자라는 점을 살려 이 곡 퍼포먼스에서 마찬가지로 발레 경험자인 사사키 쿠미와 함께 발레 동작을 선보이게 되었는데, 첫 합동 연습때는 너무나도 긴장 한 나머지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였다. 갑작스레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어, 마음 속으로 ‘나 같은 게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맡다니 다른 사람들에게 면목이 없다’는 생각만이 가득해 잔뜩 위축되어 있었다.
‘케야키자카46의 노래를 알게 되고 인생이 변했다’고 할 정도로 그룹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니부 아카리 같은 경우에는 곡의 안무 중에 1기생들과 서로 껴안는 부분에서 너무나도 긴장한 나머지 하루 종일 선배들에게 아무 말도 걸지 못 했을 정도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 1기생 선배님들 다 좋은 분들인걸!’
2기생 중 유일하게 ‘Re:Mind’ 촬영에 참가하며 한 발 앞서 1기생들과 관계를 구축하고 있었던 와타나베가 동기들을 위로하였다. 특히 카토 시호와는 선/후배 관계라기 보다는 그냥 사이 좋은 친구와도 다름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
와타나베가 카토와 친해질 수 있었던 계기는 사실 드라마 현장에서 있었던 사소한 잡담이었다.
‘아, 사이타마 출신이라 했지? 사실 나도 사이타마 출신이야’ 라는 한 마디 말이다.
그리고 얼마 후에 있었던 ‘케야카케’ 녹화 때, 50미터 달리기를 하게 되었을 때 역시 카토가 먼저 ‘같이 뛰자’고 말을 걸어주었고, 근소한 차이로 이긴 카토가 ‘역시 빠르네’라고 칭찬 해 주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 되었던 것이다.
이 날 달리기에 참가한 것은 한자/히라가나 합해서 총 38명. 그리고 두 사람의 기록은 카토가 전체 1위, 와타나베가 전체 2위를 했을 정도로 좋은 기록이었다. 그리고 이 경기를 기점으로 두 사람의 거리는 순식간에 확 줄어들게 되었다.
‘히라가나에 들어 와 줘서 고마워’
전체 그룹에서도 손꼽히는 운동신경의 소유자, 카토 시호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 때 까지의 기간을 연식 테니스에 바친 스포츠 소녀였다. 그녀는 같은 반 아이들 중에서 확 눈에 띄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연식 테니스 부 활동을 할 때는 두각을 나타내, 중학생 때는 도쿄 도대회에 단골로 출전 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었다. 당시에는 잘 하는 선배 뒤를 쫄쫄 쫓아 다니며 묵묵히 테니스 기술을 배우거나, 집에 가서도 매일같이 벽치기 연습을 할 정도로 테니스에 매진했다.
그리고 그런 타고난 성실함은 이후 히라가나 케야키에 들어 와서도 자주 발휘되었다.
그룹에 가입한 직후, 매니저가 별다른 생각 없이 ‘레슨 때 집중하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 카토는 그런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는 히라가나 케야키를 더 좋은 팀으로 만들고 싶어요. 내일 한 시간 일찍 와서 레슨하기 전에 자율연습 해도 될까요?’라고 대답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런 성실한 일면과 더불어 매사에 부정적이고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 역시 카토의 특징이다.
처음으로 잡지 취재를 하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10분 정도 가볍게 사진을 찍고 난 직후, 갑자기 카토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카메라 뒤에 서서 촬영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는 스태프들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지금 나 보고 못생겼다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다. 전국 투어 오사카 공연 때 ‘제복과 태양’의 센터에 지명되었을 때도 사사키 쿠미에게 ‘왜 하필이면 나지. 센터 같은 거 못 해’라고 울면서 호소했을 정도였다.
그런 카토에게 있어 아이돌로서 활동을 한다는 것은 ‘연약한 자신을 극복하’는 하루하루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카토이기에 2기생들이 들어오고, 와타나베가 홀로 촬영현장에 나타났을 때, 홀로 남겨진 와나타베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 역시 중학생때, 테니스 대회에 선배들과 함께 나가서 고독함, 그리고 부담감과 싸워가며 필사적으로 공을 쳤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카토는 예전의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한 와타나베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있을 수 있도록 일부러라도, 아무 의미 없는 시시한 이야기라도 걸려고 노력 했던 것이다.
와타나베 또한 카토와 닮은 구석이 많은 아이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10년간이나 농구에 모든 것을 바쳐왔고, 고등학생이 된 뒤로는 농구부 주장으로서 현 대회에 단골로 참가 해 왔던 그녀 역시 카토와 마찬가지로 ‘체육계 특유의 스토익함’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카토와 마찬가지로 본성은 고민이 많고 부드러운 성격이었던 것이다. 그런 두 사람이 서로 공명 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처음 2기생 모집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아무리 스태프들이 ‘이건 히라가나 케야키에게 있어 좋은 일이다’라고 설득을 해도 납득 할 수 없었던 카토. 하지만 애초에 노기자카의 팬이며, 아이돌을 좋아했던 그녀는 2기생들과 처음 만나, 인사를 한 그 순간 이미 그런 마음의 응어리는 싹 사라져 있었다.
‘이렇게 귀여운 아이들이 히라가나에 들어 와 줬잖아. 한자 선배님들의 언더 그룹이라는 소리만 들어 온 우리 히라가나에 들어 와 줘서 정말 고마워.’
드디어 20인 체재를 갖춘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20명이서 하나 되어 순조롭게 마쿠하리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맞이 할 것으로 보였던 그녀들 앞에는 아직도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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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화
새로운 자신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에게 있어 첫 ‘본격 드라마 출연작’이 된 ‘Re:Mind’. 밀실을 무대로 한, 거의 완전한 ‘회화극’인 이 작품은 그만큼 각자의 대사 전달력, 연기력이 요구되는 어려운 작품이었다.
사전에 열린 워크숍에서 불안을 토로하는 멤버들도 많았지만, 정작 촬영이 시작되자 점차 연기를 하는 재미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두 달 반에 걸친 드라마 촬영 기간 동안 연기력 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크게 변화를 보인 멤버들이 두 명 있었다.
인생을 사는 데 딱히 웃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드라마 촬영이 시작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감독의 목소리가 갑작스레 리허설이 한창이던 녹화 스튜디오를 가득 메웠다.
‘다카세라고!!’
갑작스러운 감독의 고함소리에 깜짝 놀란 다카세 마나는 어찌할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은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다른 멤버들의 말을 받아 자신의 대사를 이어가야 하는 타이밍이었으나, 그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 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런 에피소드가 재미 있었던 멤버들 사이에서는 그 후 한동안 ‘다카세라고!’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 유행했다고 한다.
사실 다카세는 전체 멤버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다가가기 힘든’ 멤버 중 한 명이었다. 드라마 설정상 다카세와 서로 마주보고 연기를 해야 했던 다카모토 아야카는 드라마 촬영을 통해 다카세와 친해져 어느 정도 가벼운 얘기를 주고 받을 수 있게 된 뒤, 이렇게 털어 놓은 바 있다.
‘지금까지 마나피라 하면 솔직히 말 걸기 힘들었어요. 잘 웃지도 않고,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도 없었거든요. 하지만 알고 보니 정말 특이하고 재미있는 아이였지요.’
다카세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중학교 1학년 때 까지의 기간을 부모님 일 관계로 영국에서 보냈다. 현지 학교에 다니던 당시, 같은 학교에 일본인은 다카세 한 명 뿐이었지만 금세 현지 아이들과 친해져서는 라크로스, 테니스, 수학 클럽 등 여러 방면으로 활동을 했다고 한다. 선생님의 수업 내용을 필기하는 것 뿐 아니라 교재를 갖고 스스로 공부 하는 영국식 수업이 정말 즐거웠다고도 한다.
그리고 일본으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그녀는 친구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다.
‘나, 일본에 돌아가면 유명해져서 TV에 나올 테니, 꼭 봐 줘’
물론 당시만 해도 ‘꿈’이나 ‘목표’라고 하기에는 너무 막연했고, 그리 강하게 의식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다카세 본인이 드라마와 뮤지컬을 좋아한다는 점도 있어 당시부터 막연하게나마 연예계를 동경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즐거웠던 영국 생활에 비해 일본 학교 생활은 너무나도 따분했다. 그렇기 때문일까,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는 동안 친구라고 부를만한 사람도 거의 없었다. 당시 그녀가 항상 생각했던 것은 ‘인생을 사는 데 있어 딱히 웃을 필요는 없지 않나’라는 것이었다고.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무리해서 웃기보다는 차라리 혼자 있는 편이 편했던 것이다.
고 3때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가 된 뒤로도 좀처럼 다른 멤버들 사이에 섞여들지 못 하고 겉돌았다. 다른 멤버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뭔가 쑥스러웠기에 상대방이 말을 걸어 줄 때 까지 아무 말도 않고 잠자코 기다리기만 했다. 그 뿐 아니라 사진을 찍을 때도 미소를 짓는 것이 어색해서 입 꼬리가 올라가는 교정용 굿즈를 사용하거나 남들 몰래 웃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그룹에 들어 와 어느 정도 지나 ‘W 케야키자카의 노래’의 MV 촬영이 있었다. 이 곡은 한자 케야키 멤버들과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 전원이 참여하는 첫 합동곡이었는데, 그런 의미깊은 곡의 MV 촬영임에도 다카세는 학업 관계상 참가하지 못 했다. 그리고 이 촬영에 불참한 것 역시 다카세 단 한 명 뿐이었다.
완성된 뮤직 비디오가 공개 된 뒤, 다카세의 스케줄이 빈 때를 찾아 다시 한 번 ‘전원 버전’ 촬영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전원’이 촬영에 참가하게 되어 기뻐하는 히라가나 멤버들을 보고 다카세가 입을 열었다.
‘마나 탓이야. 미안해’
그룹에 있어 의미 깊은 곡의 MV에 참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뻤지만, 이렇게 자신 때문에 멤버들, 그리고 스태프들이 재촬영이라는 번거로운 일을 해야만 했다는 점이 면목이 없었던 것이다.
멤버들과 거리를 두고 있었던 다카세는 자신과 함께 촬영을 할 수 있다고 기뻐 해 주는 멤버들을 보며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들 어렵게 여기던 다카세. 하지만 그녀가 ‘사실 사랑스러운 성격이다’라는 점을 가장 먼저 알아 차린 것은 다름아닌 카키자키 메미였다. ‘Re:Mind’ 촬영 현장에서 다카세의 옆자리에 앉았던 카키자키는 ‘공부를 잘 하면서 대사는 잘 못 외우’고 ‘자주 깜빡하’며 ‘자주 멍 때리고 있’는 다카세의 의외의 일면을 알게 되었고, 그런 점들을 갖고 다카세를 놀리기 시작했다. 카키자키의 그런 모습을 본 다른 멤버들도 자연스레 다카세 주변으로 몰려 들게 된 결과, 촬영 후반의 다카세는 일약 모두의 아이돌적인 존재로까지 변해 있었다.
다카세 본인도 드라마 촬영을 통해 서서히 변해갔다. 처음에는 ‘아이돌’로서의 수치심을 버리지 못 해 연기에 몰입하여 울거나 소리 지르거나 하는 모습을 선보이지 못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몸이, 감정 표현이 따라오게 되었던 것이다. 심지어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하는 시간이 길어 져, 어떤 모습이 진짜 자신의 모습이고 어떤 모습이 극중 역할인지 구분이 안 되는 신기한 경험마저도 했을 정도였다. 사실 그녀가 카키자키와 사이가 좋아 진 것에는 드라마에서 두 사람이 콤비로 묶였던 것이 큰 영향을 주기도 했던 것이다.
드라마 촬영이 끝난 뒤, 멤버들은 다카세에게 이런 말을 했다.
‘마나피, 드라마 촬영 때부터 엄청 변했어. 요즘은 엄청 잘 웃는걸’
다카세 본인도 스스로가 예전과는 많이 변했다는 점을 깨닫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큰 변화는 다름 아닌 ‘멤버들과 함께 활동하는 시간이 정말 즐겁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웃는 표정을 짓기 위해 샀던 ‘입꼬리를 올려주는 교정 굿즈’는 어느 사이엔가 그녀의 가방 구석에 들어 가 있을 뿐이었다.
오디션에 떨어져서 싹 튼 감정
‘Re:Mind’를 통해 새로운 즐거움에 눈 뜬 또 다른 멤버는 다름 아닌 다카모토 아야카였다.
다카모토는 사실 아이돌, 연예계에 관심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고 2때 우연찮게 보게 된 ‘마지스카 학원’에 푹 빠져 버린 뒤로 AKB48 그룹의 팬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당시 SKE48 소속이었던 마츠이 레나에게 빠져들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녀가 마츠이 레나의 팬이 된 직후, 마츠이가 그룹 졸업을 발표했다. 다카모토는 어쩌면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지 모르는 ‘마츠이의 노래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보고 싶었기에 마츠이의 졸업 콘서트를 보러 갔다. 참고로 콘서트 회장까지는 그녀의 아버지가 직접 운전을 해서 오고 갔다고 하며, 이 콘서트가 그녀가 처음으로 본 아이돌의 라이브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시기에 케야키자카46이 결성되었다.
사실 다카모토는 케야키자카46 오디션에도 참가 한 적 있다. 아이돌에 관심이 없었던 그녀가 오디션에 참가 한 이유는 너무나도 단순했다. ‘아이돌이 된다면 마츠이 레나와 만날 수 있을 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케야키자카46의 오디션에서는 도중에 탈락하였지만, 태어 나 처음으로 심사위원들 앞에서 춤 추고, 노래하고, 자기소개를 하며 그녀의 마음 속에서 새로운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만약 내가 그 때 오디션에 붙었다면 지금쯤 어떤 활동을 하고 있을까? 저 옷을 입고 나도 함께 TV에 나간다면 자기 소개는 어떻게 했을까?’
그런 상상은 특히 ‘케야카케’를 볼 때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자신이 아이돌이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를 수 없이 상상하던 어느 날, 나가하마 네루라는 존재가 나타났고,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이 새롭게 만들어 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다카모토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오디션에 응모하였다.
그로부터 수 달 뒤,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가 되어 처음으로 나가하마와 만난 날, 다카모토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자신이 그토록 바랐지만 결국 도중에 탈락했던 오디션에서 자진 사퇴했음에도 결과적으로 합격한, 하지만 그 덕분에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을 만들고 그 첫 멤버가 되어 자신을 아이돌 세계로 이끌어 준 존재가 자신의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다카모토에게 있어 나가하마라는 사람은 이미 ‘특별함’을 넘어 선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 다카모토가 아이돌로서 경험한 다양한 분야의 일들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경험으로 꼽는 것이 바로 ‘Re:Mind’였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는 ‘연기 참 무섭다’고 지레 겁을 먹고 연기, 표현한다는 것 차제에 두려움을 안고 있었다. 촬영이 시작 된 직후, 첫 신을 찍을 때에도 자기 마음대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초조함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한 번 눈 딱 감고 크게 소리를 낸 뒤로부터 서서히 연기라는 것이 즐겁게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촬영 현장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이 작품에 관여 된 스태프들은 전원 사이가 좋은데다가, 멤버들에 대해서도 화를 내기보다는 차분하게 성장을 지켜 봐 주고 기다려 주는 스태프들이었다. 드라마의 설정상 스토리에 맞추어 한 명씩 등장인물들이 사라져 가는데, 그 때마다 멤버들의 이름에서 특징을 따 점토로 오브제를 만들어 세트장에 숨겨 놓으며 멤버들을 즐겁게 해 줄 정도로 재치도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촬영을 하며 다카모토는 현장 운영쪽에도 흥미를 보였다.
‘카메라 옆에 붙어 있는 이거, 뭔가요? 어떻게 쓰나요?’
매일같이 자신이 잘 모르는 것들을 새롭게 발견해서는 스태프들에게 질문을 했다. 결국 자신도 같은 일을 해 보고 싶어 져, 본방등(※외부에서 보았을 때, 촬영중임을 알 수 있는 등. 온에어 표식판 같은 역할)을 사 와서는 ‘그럼 본방등 켜겠습니다!’라고 스태프 흉내를 낸다던가, 무대 제작이나 세트 장식을 돕기도 했다. 자신의 캐릭터가 마지막 출연을 끝낸 뒤, ‘내일도 현장에 와서 스태프 일을 돕고 싶다’고 이야기를 꺼냈다가 매니저에게 제지 당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그토록 두려워 했던 ‘드라마’가 이토록 좋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된 뒤, 제작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이 180도 변한 것이다.
그런 경험을 한 지금, 다카모토의 목표는 더욱 더 표현력을 길러 언젠가 다시 이 드라마 팀과 함께 드라마를 찍는 것이다.
‘히라가나는 연기를 잘 하는 팀이 되었으면 해’
이 ‘Re:Mind’의 주제가로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5번째 오리지널 곡인 ‘그럼에도 걸어간다’가 발탁되었다.
‘인생이란 넘어지는 거야. 무릎은 까지라고 있는 거지.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서면 돼. 나는 그럼에도 걸어 갈 거야.
인생이란 무엇일까? 승패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그래 그럼에도 걸어 가는 거지.
그렇기에 나는 그럼에도 걸어 가.’
지금까지 그녀들이 불러 온 밝고 상큼한, 말 그대로 ‘아이돌’다운 곡들과는 달리 포크송 곡조에 맞추어 ‘인생’에 대해 논하는 진지한 곡이었다.
센터는 그런 곡조에 맞는 어른스러운 분위기와 강렬한 목소리를 갖춘 사이토 쿄코가 발탁되었다. 지금까지 나가하마 네루가 혼자 센터에 서거나 나가하마와 카키자키가 더블 센터를 서 왔던 히라가나 케야키의 센터 자리가 바뀐 순간이었다.
이 곡의 포지션 발표는 드라마 촬영과 병행되었던 이 곡의 안무 레슨 때 있었다. 스태프가 아무렇지 않게 ‘센터 자리에는 쿄코’라고 이야기를 했고, 이 말을 들은 사이토는 ‘네?!’라고 얼빠진 듯한 대답을 했다. 그리고 이런 사이토의 모습을 보며 다른 멤버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센터 교체’라는 중차대한 사건에서도 히라가나 케야키다운 모습을 잃지 않은 것이었다.
이와 더불어 싱글 발매 직전에 가입한 2기생 9명 중, 와타나베 미호가 드라마 촬영에 참가하게 되었다. 드라마에 출연할 한 명을 가리기 위해 급히 2기생들만을 대상으로 간단한 오디션을 열고, 그 결과 와타나베가 선택 받은 것이다.
와타나베는 오디션에서 합격 한 그 날 바로 촬영 스튜디오로 가서 처음으로 1기생들과 대면하였다. 히라가나 케야키 2기생들의 스토리가 본격적으로 시작 된 순간이었다.
약 2달간에 걸친 드라마 ‘Re:Mind’ 촬영.
촬영이 종료되는 날, 마지막 장면을 보기 위해 모든 멤버들이 스튜디오에 모였다. 촬영이 전부 끝난 뒤, 축하의 의미로 받은 꽃다발을 든 멤버들이 한 사람 한 사람 소감을 이야기하였다.
어릴 때부터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카게야마 유우카는 ‘더욱 더 유명한 배우가 되어 다시 돌아오겠습니다’라고 선언하였다. 멤버들의 리더 역이자 누구보다도 오래 스튜디오에 있었던 사사키 쿠미는 ‘연기를 하는 것이 처음인 저희들이기에 부족한 부분도 많았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여러분께서 정말 상냥하게 대해 주셔서 즐겁게 촬영 할 수 있었습니다. 평생 잊지 못 할 추억입니다’라고 그룹을 대표하여 감사 인사를 남겼다.
그리고 이 때, 멤버들은 스태프들에게 선물을 주었다. 드라마 촬영기간 약 2달간의 추억이 담긴 노트였다. 사이토는 자신에게 주어 진 페이지만으로는 모자랐는지, 별도로 편지를 써서 감독인 우치카타에게 전달했다. 무려 편지지 세 장이 빼곡하게 들어 찰 정도로 수 많은 추억이 담겨 있던 그 편지에는 워크숍에서 눈물을 흘린 뒤, 감정이 복받쳐 올라 ‘감사합니다’라는 말도 제대로 못 했던 자신의 모습을 두고두고 후회하는 그녀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우치카타는 워크숍 당시부터 멤버들에게 ‘히라가나 케야키를 연기를 잘 한다는 소리를 듣는 팀으로 만들자’고 이야기 하며 멤버들을 다독여 왔다. 그리고 그녀들이 그 말을 따라 우직하게 노력 한 결과, 우치카타의 말은 예언이 되었다.
그리고 우치카타는 연기에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덕목, ‘상대방을 똑바로 바라본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알게하기 위하여 멤버들에게 ‘라이브를 할 때, 객석에 앉아 있는 손님들을 똑바로 응시 하라’고 주문하였다. 그리고 이런 주문은 결과적으로 연기 뿐 아니라 그녀들의 라이브 퍼포먼스의 수준 향상으로도 이어졌다.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에게 다양한 성과를 안겨 준 ‘Re:Mind’의 촬영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멤버들의 마음 속에 빛나는 보물과도 같은 추억을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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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화
첫 드라마
2017년 봄에 시작된 히라가나 케야키의 단독 전국투어는 그룹 전체의 전국투어 일정에 의해 잠시간 중단된 뒤, 9월 홋카이도 공연을 시작으로 재개되게 되었다. 하지만 투어 재개 직전, 히라가나 케야키의 유일한 오리지널 멤버인 나가하마 네루가 히라가나 케야키를 떠나 한자 케야키 전임 멤버가 된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남겨진 11명의 멤버들은 불안과 상실감을 가슴 속에 품은 채, 라이브 리허설과 첫 주연드라마인 ‘Re:Mind’ 촬영에 임했다. 그런 힘든 매일매일을 견딜 수 있게 해 준 것이 바로 ‘해피 아우라’라는 말이었다.
라이브 전날, 히라가나 멤버들은 나가하마 네루와 이야기를 나누며 12명의 유대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홋카이도 팬들의 따뜻한 환대 덕분에 멤버들은 다시 한 번 걸어 나갈 힘과 자신을 얻게 되었다.
허들이 높은 ‘밀실 내 대화극’
2017년 3분기에 편성이 된 심야 드라마이자 히라가나 케야키의 첫 주연 드라마 ‘Re:Mind’.
그녀들이 드라마에 출연 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이전에 방영된 한자 케야키의 두 번째 드라마 ‘잔혹한 관객들’에 전원이 출연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 때는 마지막화에 겨우 5분 가량 게스트 출연한 것이 전부였기에, 실질적으로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에게 있어서 바로 이 ‘Re:Mind’가 첫 ‘드라마 출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그녀들에게 있어 ‘연기’를 할 기회 역시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사실은 첫 드라마 주연이 결정되었을 때에도 많은 멤버들이 솔직하게 기뻐하지 못했다. 새로운 장르의 일에 대하여 막연하게 불안함을 느꼈던 사사키 쿠미는 ‘내가 연기를 잘 할 수 있을까. 한 번 해 보자는 마음보다는 괜찮을까 하는 불안이 더 커’라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또한, 한자 케야키의 드라마 메이킹 영상을 보고 생각하는 대로 연기가 따라주지 않아 울먹이는 선배들의 모습이 인상에 깊이 남아 있던 다카모토 아야카 역시 ‘나도 연기를 하면 저렇게 될까? 연기란 거 엄청 무서운데’라고 겁을 먹고 있었다.
사실 연기 경험이 없는 그녀들에게 이 작품은 허들이 매우 높은 작품이었다.
히라가나 케야키의 종합 프로듀서인 아키모토 야스시가 원작을 담당한 이 작품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갑자기 본 적도 없는 방안에 감금되어 버린 11명의 소녀들이 실종된 동급생의 기억을 떠올리며 누가 어떤 목적으로 자신들을 감금하였는 지 추리한다’ 는 것이 바로 그 스토리이다.
말하자면 밀실에서 이뤄지는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극화시킨 것으로, 그만큼 대사와 리액션 등 기본적인 연기력만으로 승부해야 하는 극이다. 그 뿐 아니라 대부분의 장면을 멤버들만으로 진행하기에 연기 경험이 많은 공연자들에게 의존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런 어려운 과제에 임하게 된 멤버들을 위하여 드라마 촬영에 앞서 연기 워크숍이 열렸다. 워크숍에서 멤버들에게 연기를 지도 해 준 것은 주로 형사 드라마나 서스펜스 드라마 등에서 수 많은 실적들을 올려 온 연출가, 우치카타 아키라씨였다. 그는 기존 연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기 워크숍을 여러 번 열어 온 바 있으며, 신인 연기자들의 육성에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이번에는 주/조연 연기자 전원이 연기 경험이 없는 특수한 케이스였기에 지도 역시 여러 번에 걸쳐 이루어졌다.
워크숍은 우치카타씨의 개요 설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앞으로 이 워크숍을 통하여 ‘연기란 이런 것이다’라는 기본적인 것들을 알려 드릴 테니 꼭 기억 해 주십시오. 이 기본들은 이번 드라마 뿐 아니라 앞으로 하시게 될 연극, 나아가 노래나 뮤직비디오 등에서도 통용되는 내용들입니다. 말하자면 기초 스탭이라 할 수 있겠지요.’
당시 우치카타씨가 멤버들을 처음 만나고 한 생각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초짜들이다’라는 점이었다. 아무리 신인 배우라 할 지라도 연예인이 된 이상 자기 자신을 멋지게 보이려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인데, 심지어 다른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일인 아이돌이라면 자연스럽게 자존심이 높고 까다로우리라 생각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들은 처음부터 겸허하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불안함이나 긴장감을 숨기지 못 한다는 점은 한 눈에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들이 워크숍 첫 날, 하루만에 확연히 변했다. 두 명이 한 조를 이루어 한 명이 ‘그만두지 마’ 라고 이야기 하면 나머지 한 명이 ‘나도 그만두고 싶지않아’라고 대답하는 연습을 하였을 때의 일이었다.
제일 처음 이 연습을 시작 한 것은 사사키 미레이와 카게야마 유우카였다.
사사키가 ‘그만두지 마’라고 입을 열었다. 어딘지 모르게 진심이 담긴 목소리, 호소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차분하게 그 말에 ‘나도 그만두고 싶지 않아’라고 받아치던 카게야마의 표정이 점점 고조되더니 결국엔 펑펑 울며 ‘나도 그만두고 싶지 않아’라고 절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결국 마지막즈음엔 두 사람 모두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어갔고, 연기가 끝난 뒤에도 서로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바로 이것이 우치카타씨가 중시하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생리(감정)에서 촉발된 연기’의 핵심이었다. 두 사람의 뒤를 이어 연습에 임한 멤버들도 역시나 그들과 마찬가지로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 중에서도 이 ‘나도 그만두고 싶지 않아’라는 대사에 대한 멤버들의 반응이 너무나도 민감했다. 여기에는 대사를 시킨 우치카타 본인마저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이는 냉혹한 연예계에서 활동을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슴 속에 품었을 ‘그만두고 싶다’는 감정을, 혹은 실제로 다른 멤버들에게 ‘그만두고 싶다’고 상담을 했던 날을 떠오르게 했기 때문이 아닐까.
히라가나 멤버들은 케야키자카46의 전국투어 기간중에도 없는 짬을 내어 이 워크숍에 참가하였다. 그리고 9월 중순, 드디어 크랭크인 날이 밝았다.
처음으로 경험한 과호흡, 뼈저리게 느끼게 된 ‘연기의 힘’
‘오래된 저택에나 있을 법 한 음침한 방. 방 한 가운데에는 큰 탁자가 놓여있고 그 탁자 주변에는 11명의 소녀가 붉은 두건을 뒤집어 쓴 채 잠들어 있다.’
드라마는 그런 그녀들이 한 명씩 한 명씩 눈을 뜨고, 자신들이 놓여 있는 상황을 인식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 한 장면을 찍기 위해 며칠씩이나 같은 장면을 찍고 또 찍어야 했다.
여기서 소리지르며 눈을 떠야만 했던 다카모토는 연기에 감정이 이입되지 않아, 드라마 초반 감독을 맡았던 우치카타에게 이렇게 상담을 했다.
‘저, 여기서 더 크게 비명을 질러야 하나요?’
사실 ‘크게 소리 질러야 한다’는 건 이미 대본에도 적혀 있을 터, 이론의 여지가 없었지만 그래도 다카모토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우치카타에게 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 떨어지기 시작했다. 연기라곤 해 본 적도 없는 초보가 ‘비명을 질러야 한다’는 점에 너무나도 부담을 느낀 나머지 극도의 긴장에 휩싸여, 그나마 할 수 있는 연기마저도 하지 못 하게 되는 전형적인 예였다.
그 뿐 아니었다. 눈물이 많은 멤버들 중에서도 특히 눈물이 많은 히가시무라 메이가 우는 모습을 보고 걱정이 된 우치카타가 그룹의 대표격인 사사키 쿠미에게 ‘히가시무라, 오늘 무슨 일 있었니? 위로 해 주는 편이 나으려나?’라고 상담을 하였을 때, 사사키가 ‘아뇨, 언제나 저러니까 너무 신경 안 쓰셔도 돼요’라고 대답 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실제로 그녀의 말대로 울게 내버려 둔 지 얼마 되지 않아 히가시무라는 울음을 그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주변 멤버들과 어울려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우치카타는 ‘신기한 방식으로 사이가 좋은 아이들’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그 가운데, 첫 드라마 촬영에 기대를 한껏 부풀리고 있던 멤버도 있었다. 바로 이구치 마오였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드라마를 좋아했고, 심지어 ‘드라마 배경으로 자주 나올만한 동네에 살고 싶다’는 일념으로 수도권에 있는 대학에 응시하여 고향인 니이가타를 떠나 왔을 정도로 드라마 광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 드라마 세트나 카메라가 줄지어 서 있는 광경은 그저 바라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들뜨는 것이었다.
워크숍 당시 자신의 대사를 말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이구치는 자신의 연기에 대해 자신을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드라마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스태프들은 그녀의 잠재력, 다시 말 해 감정이나 대사의 흐름을 읽어내는 능력에 대해 평가하고 있었다.
반대로 우시오 사리나는 발음도 좋았고 대사를 이야기하는 면에서도 발군의 능력을 보였다. 평소에도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의 성격에 딱 맞는 장점이었다.
이렇듯 멤버 각자의 개성과 적성에 맞추어 각본 역시 수 차례 수정이 가해졌다. 이 작품의 경우, 매 회가 진행 될 때마다 등장 인물이 한 사람씩 줄어드는 설정이었는데, 특이한 것은 연기면에서 잠재력을 인정 받은 멤버들이 초반에 제거되는 경향이 있었다는 점이다. 모든 역시 제거되기 전에 긴 대사를 부여받아, 자신의 연기력을 선보일 기회가 주어졌기에 연기력이 있는 멤버들을 초반에 제거함으로 하여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런 노림수는 적중하여, 우시오가 제거되는 장면에서는 ‘미안해요, 미안해요’라며 사과를 하는 우시오의 귀기서린 연기가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실제로 이 장면을 주의 깊게 보면 다른 멤버들 역시 우시오의 연기에 압도되어 눈에 눈물이 맺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시오 본인은 이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과호흡 상태에 빠질 정도로 흥분 해 있었고, 그런 우시오의 모습을 본 멤버들 역시 그녀에게 몰입하게 되어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연기라고 하는 것에 빠져들어 버리면 때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과호흡을 일으킬 정도로 몸과 마음이 동요되기 마련.
‘커트’라는 감독의 지시가 내려진 뒤, 우시오는 걱정하며 자신의 어깨를 감싸 안아주는 멤버들 사이에서 ‘진심을 담아 연기를 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텐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연기라는 것이 가진 근원적인 힘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미레이가 열심히 한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차례차례 등장인물들이 줄어드는 가운데, 극의 화자로서 작품을 이끌어 온 멤버 중 한 명이 바로 사사키 미레이였다. 상대방의 대사를 주의깊게 듣고, 자신의 감정을 대사에 실어 연기하는 그녀에 대해서는 이미 워크숍 당시부터 평가가 좋았다. 드라마 안에서도 냉정하게 상황을 추리하여 수수께끼의 핵심에 다가서는 우등생 역할을 맡았으며, 분량 역시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런 미레이 역시 극이 중반에 이르렀을 즈음, 어째서인지 대사가 입에서 나오지 않게 되었던 적이 있었다.
드라마 촬영기간 중, 연출팀이 멤버들에게 요구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무슨 뜻인지 몰라도 좋고 어떤 식으로 말 할 지 의식하지 않아도 되니까 우선 대사를 외우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대사량이 많아, 심할 때는 한 사람의 대사가 10페이지에 이르는 이 작품의 대사를 통째로 암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전까지는 어찌저찌 대사를 머릿속에 욱여 넣었던 사사키에게도 역시 슬럼프가 찾아왔다. 그 날은 어째서인지 아무리 노력해도 대사가 외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촬영은 중단되고 식사 시간을 가졌는데, 식사를 하면서 대본을 몇 번이고 외워도 대사가 머릿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초조함에 눈물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대본을 몇 번이고 넘기고 있는 사사키의 모습을 보던 해당 화의 감독, 이시다 유스케씨는 그녀를 스튜디오 밖으로 불러냈다.
‘미레이, 네가 지금까지 대사를 제대로 외워 왔고, 엄청 열심히 했다는 거 잘 알아’
드라마 촬영장에서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던 자신의 모습을 지켜 봐 준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사사키는 긴장의 끈이 탁 풀리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촬영이 재개 된 뒤, 별다른 문제 없이 촬영을 끝마칠 수 있었다.
스태프들의 기대를 받고, 본인 스스로도 어려운 역할에 도전한 멤버도 있었다. 사이토 쿄코는 11명의 등장 인물 중 유일하게 항상 분노하고,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개성이 강한 캐릭터를 연기하였다. 그녀에게 이 역할을 맡긴 것은 사실 스태프들에게 있어서도 일종의 도박이었다.
이 역할은 개성 있고 특이하게 보이지만 사실상 일반 시청자의 입장에 가장 가까운 캐릭터였다. '이거 말이나 돼?' 나 '뭐가 뭔지 모르겠네'라는 식으로 현재 상황에 대해 숨김 없이 직구를 날리는 그녀의 대사는 현실에서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일반적인 사람들이 가장 먼저 내뱉을 그러한 대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캐릭터야말로 비정상적인 캐릭터가 득시글거리는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현실적'인 캐릭터이며, 동시에 시청자와 극을 이어주는 매개체로서 빼 놓을 수 없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사실 워크숍 시점, 사이토는 성격면에서나 연기력 면에서나 이 역할에 어울릴만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사실 사이토는 이 드라마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가장 불안해 했던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그녀의 궁극적인 목표는 어디까지나 가수, 그렇기에 노래와 춤 연습에 매진 해 온 사이토는 내심 '나는 연기를 못 한다'라고 정해놓고 있었던 것이다.
워크숍이 진행되던 어느 날, 연습이 끝난 뒤 우치카타가 사이토를 따로 불러냈다. 연기에 대한 조언을 해 주기 위해서였다. 우치카타는 '사이토라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마음에 조언을 해 준 것이었지만, 사이토 본인은 '역시 내가 제일 못 해서 따로 불린 거겠지'라고 오해를 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던 도중에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남들 앞에서는 절대로 울지 않는 사이토가, 한자 케야키 멤버들과 만나 처음으로 눈물을 보인 이래로 처음 눈물을 보인 때가 이 때였다.
그토록 연기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던 사이토이지만, 정작 촬영이 시작되자, 지금까지의 일이 마치 거짓말이기라도 한 듯 편하게 연기에 몰두하였다. 본인 특유의 낮은 목소리와 싹싹한 말투가 배역과 절묘하게 매치되었던 것이다.
사이토는 촬영에 들어가기에 앞서 감독인 우치카타로부터 어떤 조언을 받았다.
'이 역은 매우 중요한 역할이야.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사이토밖에 없어. 그러니까 너에게 다 맡길게.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 사이토를 미워하게 되실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는 것은 네가 이 어려운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 해 냈다는 얘기니까 슬퍼 할 일이 아니야.'
사이토의 연기는 다름 아니라 이런 조언을 듣고, 그 조언대로 자신을 맡긴 덕분에 할 수 있는 연기였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40일 이상에 걸친 드라마 촬영 가운데, 멤버들은 서서히 연기라는 것에 눈을 떠 가기 시작했다. 'Re:Mind'라고 하는 연속 드라마는 완전한 픽션인 동시에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의 멤버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변화 한 것은 연기면 뿐만이 아니었다. 이 기간을 거치며 인간적으로도 크게 성장한 멤버들이 있었다. 다름 아닌 다카세 마나와 다카모토 아야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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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화
해피아우라, 그리고 12명의 유대감
2017년 8월, 약 1개월에 걸쳐 케야키자카46의 전국 투어가 실시되었다. 이 투어는 직전에 발매 된 첫 앨범, ‘새하얀 것은 더럽히고 싶어져’의 수록곡들을 중심으로 하는, 케야키자카46의 첫 전국 투어였다.
히라가나 케야키 역시 이 전국투어에 참가, 신곡인 ‘영원의 흰 선’을 비롯한 수 곡을 선보였다. 또한, 투어와 병행하여 시간이 날 때마다 가을에 시작 될 히라가나 케야키의 첫 주연 드라마 ‘리:마인드’의 연기 워크숍에도 참가하였다. 그 뿐 아니라 8월 중순즈음에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2기생 오디션 최종심사가 열려, 그 결과로 9명의 신멤버가 그룹에 들어오게 되었다.
8월 말, 케야키자카46의 전국투어도 마지막 공연을 맞이하였다. 전국 투어가 끝난 뒤에는 잠시 중단 되어 있었던 히라가나 케야키의 라이브하우스 투어가 재개 될 예정이었다.
겸임이 한계에 다다른 여름 투어 기간
9월 후반의 어느 날. 도쿄 도내 모 스튜디오에서 ‘케야카케’ 녹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날 녹화에는 히라가나 멤버들도 함께 참가 하는 녹화였는데 선배인 한자 케야키보다 빨리 녹화를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 온 히라가나 멤버들에게 스태프가 이런 말을 꺼냈다.
‘앞으로 나가하마 네루는 히라가나 케야키와 한자 케야키 겸임을 마치고 한자 케야키 전임 멤버가 됩니다. 한자 케야키, 히라가나 케야키 스케줄이 점점 더 바빠 질 텐데, 나가하마 본인의 건강을 생각 한 결과 이렇게 되었어요. 이번 달 26일에 열리게 될 히라가나의 Zepp Sapporo 공연에도 참가하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발표에 히라가나 멤버들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렸다. 나가하마는 히라가나 케야키에 있어 유일한 ‘오리지널 멤버’인 동시에 지금까지 히라가나가 경험 해 온 모든 무대가 나가하마를 중심으로 구성되고 운영 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런 나가하마가 그룹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
실제로 나가하마는 히라가나 케야키와 한자 케야키의 겸임이 결정 된 이후로 쭉 스케줄 면에서 고민을 해 왔다. 2017년 봄에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전국투어가 시작되어 히라가나의 단독 활동이 본격화 되었는데, 그 당시 나가하마가 히라가나의 투어와 병행하고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 한자 케야키의 드라마 ‘잔혹한 관객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찌저찌 버텨 오던 그녀가 결국 겸임에 대처하지 못 하게 된 타이밍이 바로 2017년 여름에 열린 케야키자카46의 전국투어 때였던 것이다.
케야키자카46라는 그룹에 있어 첫 전국 투어인 동시에 공연곡 중 반수 이상이 신곡인 상황이었기에 그녀 뿐 아니라 모든 멤버들이 처음으로 경험하는 승부처였던 이 시기, 나가하마는 신곡의 안무 연습, 투어 리허설은 물론이고 각종 음악 페스, 미디어 출연을 병행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짬을 내서 히라가나 케야키의 연습에 합류, 짧은 시간 안에 히라가나의 곡 리허설까지 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런 나날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심지어 그녀가 히라가나의 신곡 ‘영원의 흰 선’ 안무를 배운 것이 해당 곡을 처음으로 선보이기 전날이었을 정도였다.
그 뿐 아니었다. 투어 내용면에서 보아도 그녀는 양 그룹에 모두 참가하고 있는 데다가 솔로곡까지 소화해야 했기에 쉴 틈 없이 계속 무대 위에 서 있어야 했다.
나가하마를 곁에서 지켜 봐 온 카토 시호는 이 시기의 그녀에 대해 ‘언제나 울먹이는 얼굴만 떠오른다’고 이야기한다. 히라가나의 리허설에 도중부터 참가하여 안무 숙지가 잘 되지 않아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미안해’라고 사과하는 나가하마를 보며 카토는 ‘제일 힘든 건 본인일텐데 왜 우리에게 사과하는걸까’라고 생각했다 한다. 사사키 미레이 역시 ‘네루쨩이 거기 있어 주는 것 만으로도 고마운 일인데, 항상 사과하고 있어. 정말 겸허한 아이구나’라고 느꼈다고.
하지만 한 사람이 동시에 두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그런 모순된 상황은 결국 스케줄 면에서도 체력 면에서도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모든 일에 최선을 다 하려는 나가하마를 대신하여 운영측이 결단을 내려야만 했던 것이다.
멤버들에게 나가하마의 겸임 해제 소식이 전해 진 며칠 뒤, ‘케야카케’ 방송과 동시에 운영측의 코멘트가 발표되었다.
‘(이하 운영 발표 일부 발췌) 히라가나 케야키 주연 드라마 건에 대해 이야기가 나온 뒤, 드라마 촬영도 준비 했습니다만, 전국투어가 끝난 뒤에는 한자 케야키로서의 활동 역시 더더욱 바빠 질 것으로 사료되는 가운데, 나가하마가 한자 케야키와 히라가나 케야키를 겸임하는 데 있어 본인의 건강을 생각 한 결과, 이 이상은 힘들것이라 판단하였습니다.
운영측에서 협의를 거듭한 결과, 나가하마는 한자 케야키에 있어 소중한 멤버라는 점을 알게 되었고, 히라가나 케야키는 신멤버들을 맞이하여 새로운 걸음을 걸어나가야 하는 타이밍이기에 이 타이밍에 나가하마의 겸임을 해제하고 한자 케야키 전임멤버로 활동 할 것을 결정하였습니다.’
그 말대로 그룹에 도중 가입한 이후로 계속해서 한자 케야키 멤버들과 함께 활동 해 왔고, 히라가나 케야키의 추가멤버(1기생)들이 들어 온 뒤로는 두 그룹을 겸임 해 온 나가하마였기에 한자 케야키에 있어서 그녀는 이미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존재였다. 동시에 히라가나 케야키는 잠시 중단되어 있었던 전국 투어도 재개되고, 동시에 그룹의 첫 주연 드라마 촬영도 시작되고, 2기생들이 합류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 하는 시기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 하에서 나가하마를 지켜주기 위해 운영측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이 바로 겸임해제, 그리고 한자 케야키 전임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운영측의 이런 결정에 대하여 사이토 쿄코는 ‘아 결국 이 순간이 왔구나.’라고 생각했다. 사이토 뿐 아니라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 모두가 ‘언젠간 나가하마의 겸임이 해제 될 것’이라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다카세 마나가 ‘역시나 한자 전임이 되는구나. 하긴, 네루쨩은 한자 멤버들과 함께 있을 때 반짝 반짝 빛나는걸’이라고 생각했던 것 처럼 멤버들 역시 나가하마의 한자 케야키 전임을 인정 할 수 밖에 없었다. TV화면에 비춰지는 한자 케야키, 그리고 나가하마 네루에 반해 오디션을 받은 그녀들에게 있어 ‘나가하마 네루’라는 존재는 언제나 자신들보다 한 발짝 앞서 있는, 빛나는 존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가하마가 그룹에서 없어진 지금, 남겨진 자신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 속에서 알게 된 ‘해피 아우라’
3월에 열린 도쿄 공연을 시작으로, 매 공연 세트리스트를 바꾸어 가며 오사카, 나고야 등지를 돌아 온 히라가나의 전국투어 역시 나가하마의 이탈로 인해 대대적으로 수정이 가해졌다. 지금까지 12명이 퍼포먼스 해 왔던 곡들의 포메이션을 전부 11명 버전으로 수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가하마의 노래 파트 역시 다른 멤버들에게 나눠져야 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드라마도 본격적으로 촬영이 시작되어 평소보다도 적은 시간을 짜 내 리허설을 해야만 했고, 그런 적은 리허설 시간 안에서 파트 배분 및 수정, 새로운 세트리스트 작성 등도 소화 해야만 했다.
‘그럼 여기는 네루 자리에 카키자키가 들어 가고 다른 멤버들은 무대 오른쪽으로 모여서… 아, 이런! 여기 네루 파트 아무도 배정이 안 되어 있잖아!’
멤버들 뿐 아니라 스태프들 역시 허둥지둥 눈에 보이는 대로 수정할 점들을 찾아내서는 멤버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데 필사적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히라가나의 전국 투어는 매 공연마다 색다른 것에 도전 해 보는 ‘챌린지 기획’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나가하마가 빠진 직후의 공연이었던 홋카이도 공연에선 마칭 드럼을 선보이게 되어 있었다. 멤버들은 드라마 촬영과 리허설을 병행하며, 그 적은 시간을 쪼개 새롭게 수정된 안무와 곡을 연습하는 동시에, 드러머의 휴식시간을 빌려 스튜디오 구석에 모여 마칭 드럼 연습도 해야만 했다.
이렇게 물리적인 부담이 큰 가운데, 멤버들을 불안에 떨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정신적인 상실감’이었다.
히라가나 케야키의 곡에서 나가하마와 함께 더블 센터를 맡고 있었고, 나가하마에게 있어서도 마음을 터 놓는 상대가 되어 준 카키자키 메미는 나가하마를 생각 할 때 마다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왜 네루가 여기 없는걸까. 외로워… 나는 지금껏 네루에게 기대기만 해 왔기에 정작 네루가 없으니 아무 것도 못 하는구나…’
다카모토 아야카는 지금껏 해 본 적 없는 드럼 촬영과 라이브 리허설에 매진하는 가운데 가슴 속에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히라가나 케야키는 애초에 네루쨩으로 시작된 그룹인데 정작 그런 히라가나 케야키에 네루쨩이 없다는 건 결국 아무 의미도 없는 것 아닐까? 우리들을 보기 위해 와 줄 사람이 있긴 할까?’
나가하마가 빠진 지금,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은 더 의상 존재의미가 없다는 생각은 비단 다카모토 뿐 아니라 남겨진 멤버 모두가 품고 있는 생각이었다. ‘나가하마’를 보기위해 먼 홋카이도까지 와 준 팬들이 야유를 보내지는 않을까라는 생각마저 들어 가뜩이나 불안하던 마음에 박차를 가했다.
그런 생각은 예전, 아무런 일이 주어지지 않은 채 방치되어 ‘해고’까지 각오했던 때 그녀들이 느꼈던 종류의 부정적인 생각이었다. 물리적,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심신이 모두 너덜너덜 해 진 결과, 리허설을 할 때 조차 고개를 떨구고 바닥만 바라보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사사키 쿠미가 갑작스레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밝게 행동하며 말을 꺼냈다.
‘아, 맞아. 해피 아우라야, 해피!!’
그녀를 따라 만면에 미소를 띄우고 연신 ‘해피!’ ‘해피!’라고 이야기 하다 보니 어느 사이엔가 자신들도 모르게 기운이 나고, 웃음이 나왔다.
사사키 쿠미가 이 ‘해피 아우라’라는 말을 알게 된 계기는, 고민하던 그녀를 본 한 스태프의 한 마디였다.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에도 그저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바로 그 자세야말로 너희 히라가나 케야키가 갖고 있는 해피 아우라라고 생각해.’
그 말을 들은 순간, 사사키 쿠미는 마음 속 짐이 덜어지고 구원을 받은 느낌이 들었다. 라이브를 거듭하는 가운데 얼핏 보이는 것도 같았던 ‘히라가나 케야키만의 색’… ‘보고 있는 사람들을 웃게 만들자’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기본 이념이 고스란히 담긴 단어가 바로 이 ‘해피 아우라’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케야키자카46의 전국투어기간동안 사사키 쿠미는 때때로 이 단어를 입에 올렸고, 그녀가 이 ‘해피 아우라’라는 말을 할 때마다 다른 멤버들 역시 자연스레 미소가 번졌다.
카게야마 유우카는 이 ‘해피 아우라’라는 단어가 바로 자신들이 지금껏 해 온 것들과 앞으로 해 나가야 할 것들을 일직선으로 관통하고, 서로 이어주는 단어라는 점을 깨달았다.
“3월에 있었던 도쿄 공연이 끝난 뒤, 멤버 전원이 정했던 ‘관객분들과 하나가 되어 신나게 즐긴다’는 목표가 바로 이 ‘해피 아우라’라는 단어와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어요. 앞으로 저희들이 갖고 있는 ‘해피 아우라’를 여러분께 전해 드린다는 마음가짐으로 무대 위에 선다면 저희만이 할 수 있는 라이브가 될 것 같아요.”
전국 투어가 끝날 때쯤, 어느 사이엔가 ‘해피 아우라’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들 사이에서 하나의 ‘암호’가 되어 있었다. 한자 케야키가 ‘쿨’한 그룹이라는 평가를 받는 데 반해 자신들은 아무런 장점이 없다고 좌절하던 그녀들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그녀들만의 개성, 그것이 바로 ‘해피 아우라’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단어는 나가하마 네루가 빠져버려 불안함에 사로잡혀 있던 멤버들을 북돋아 앞으로 걸어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홋카이도 공연을 하루 앞둔 날, 카키자키는 블로그에 이런 글을 적었다.
‘새롭게 2기생들이 들어 와 20명 체제가 된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아마도 이 곳이 저희들의 진정한 출발점이리라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0인 상태에서 하나씩 하나씩 쌓아 올려 가, 초심과 감사하는 마음, 겸허, 상냥함, 유대감을 잊지 않고 저희들답게 해피 아우라를 힘껏 펼쳐 보이며 모든 분들께 사랑 받는 멋진 그룹으로 성장 해 가겠습니다’
멤버들의 마음 속, 그리고 노래 속에 존재하는 나가하마 네루
9월 26일, 홋카이도 삿포로시에 위치한 라이브하우스, Zepp Sapporo에서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의 전국투어 홋카이도 공연이 열렸다.
오프닝은 모두들 걱정했던 ‘드럼 퍼포먼스’. 단 한 명도 경험자가 없는 상황에서 출발하여 조금씩 조금씩 연습을 해 온 그녀들은 무거운 드럼을 품에 안고 어려운 기술에도 도전하였다. 도전 과정에서 기기가 떨어 져 연주 할 수 없게 된 멤버들도 있었고, 콤비네이션이 제대로 되지 않아 고전한 부분도 있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연주를 끝마쳤다. ‘나가하마 네루가 없는 히라가나 케야키’가 팬들에게 받아들여질까 걱정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그녀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자신들의 무기인 ‘해피 아우라’를 의식하여 미소 지으며 퍼포먼스를 하는 것 뿐이었다.
이 날, MC 때 사사키 쿠미는 이런 말을 남겼다. 마치 다짐하는 듯한 말투였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네루쨩은 여기 없습니다. 저희는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사사키의 이 말에 객석에서는 ‘힘 내!’라는 말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 말의 뒤를 잇듯이 지금껏 들어 본 적 없을 정도로 우렁찬 성원이 그녀에게 쏟아졌다. 그렇게 성원을 보내주는 팬들 중에는 ‘나가하마 네루’라는 이름이 쓰여진 오시타올을 들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라이브가 시작되기 전에는 ‘우리를 보러 와 주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고 불안해 했던 다카모토 아야카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한 가지 확신을 얻었다.
‘우리를 믿고 지지 해 주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있다니. 이 분들이 계신다면 앞으로도 계속 노력 할 수 있어.’
이 날, 처음으로 11명이 스테이지에 서서 총 12곡을 선보였다. 포메이션이나 파트분배를 변경한 탓인지 무대 위에서 서로 부딪히거나 안무가 어긋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녀들은 시종일관 ‘해피 아우라’를 뿜어내며 앞으로 앞으로 전진해 나갔다. 특히 ‘히라가나 케야키’를 비롯한 히라가나 케야키의 오리지널 곡을 선보일 때는 부드럽고 밝은 표정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센터를 맡았던 나가하마 네루가 갖고 있던 ‘태양과도 같은 분위기’를 방불케했다.
‘영원의 흰 선’의 경우 멤버 각자가 자신의 특기나 특징을 나타내는 포즈를 취하는 구간이 있다. 이 날 공연에서 ‘영원의 흰 선’을 선보일 때, 멤버들은 각자 자신의 포즈를 취한 뒤, 전원이 뺨에 손을 포개고 눈을 감는 포즈를 취했다. 이것은 ‘자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으로, ‘네루 (※나가하마의 이름인 ‘ねる’와 잠을 잔다는 의미인 ‘寝る’가 같은 발음인 것을 이용함)가 아직 함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고안해 낸 포즈였다.
앙코르곡까지 끝나고 난 뒤, 마지막 MC 때 사사키 쿠미는 감정에 복받쳐 때때로 목이 메어가면서도 자신의 감상을 이야기하였다.
“나가하마 네루쨩 단 한명으로 시작 된 히라가나 케야키가 12명이 되고, 이토록 많은 분들께 응원을 받을 정도로 성장하였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네루쨩의 노력, 그리고 저희들은 알 수도 없을 정도의 엄청난 고생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리허설 때, 네루쨩의 빈 자리를 메워야 한다는 것이 정말로 슬펐습니다. (중략) 하지만 히라가나 케야키의 12명의 멤버들이 함께 만들어 온 역사는 사라지지 않지요. 지금껏 12명이 해 온 것들을 발판삼아, 새롭게 들어 올 믿음직한 9명의 멤버들을 더해, 총원 20명이 여러분들께 사랑 받는 그룹이, 더 큰 그룹이 되기 위하여 노력 할 생각이니 앞으로도 저희들을 응원 해 주세요.”
나가하마 네루는 그 장소에는 없었을 지 몰라도, 멤버들의 마음 속에, 히라가나 케야키의 노래 속에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처음으로 마음이 통한 30분
사실 공연 하루 전, 홋카이도로 출발하기 전에 열린 마지막 리허설 때, 나가하마 네루가 찾아 왔었다. 겸임 해제 발표 이후로 히라가나 멤버들과 만나지 못 했던 나가하마 본인이 멤버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없는 시간을 짜 내어 레슨 스튜디오를 찾은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겨우 30분. 스태프들에게 자리를 비켜달라 하고 멤버들끼리 30분간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나가하마는 멤버들에게 사과했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함께 라이브에 가지 못 해서 미안해. 나도 함께 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되어 버린 거, 어떻게 할 수 없잖아… 서로 주어진 환경을 받아 들이고 최선을 다 하자…”
나가하마는 멤버들에게 사과하며 다른 멤버들을 최대한 북돋아 주려 햇지만, 사실 가장 크게 상처를 받은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가하마 본인이었다. 그녀 역시 전국투어 기간동안 ‘내가 어중간하게 양 쪽 그룹 모두에 발을 걸치고 있는 탓에 두 그룹 모두 퍼포먼스 질이 떨어지는 거야’라고 생각 해 왔던 그녀는 투어 마지막 공연을 맞이한 날, 블로그에 이렇게 선언한 바 있다.
‘저 자신의 부족함을 통감하였기에 올 한 해는 퍼포먼스를 더더욱 갈고 닦는 한 해로 하고자 합니다. 물론 이렇게 이야기 하기 보다는 묵묵히 연습을 하다가 다른 사람들이 알아 주는 게 더 멋있긴 하지만 저는 아직 그 정도로 강하진 못 하기에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선언하고 노력하고자 합니다. 제게 있어 이번 한 해는 새롭게 시작하는 한 해로 만들겠습니다.’
그녀가 하고자 했던 말은 아마도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 해 겸임 활동에 임하겠다’는 이야기였으리라. 그리고 그런 그녀의 각오가 무색하게 곧바로 겸임이 해제 되었던 것이다. 자신에게 좀 더 힘이 있었다면 히라가나 멤버들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을 수 있었을텐데… 라고 생각하니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고, 동시에 멤버들에 대한 미안함이 가슴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히라가나 멤버들은 그런 그녀의 ‘사과’에 ‘위로’로 답했다.
“네루쨩이 사과 할 건 없어. 우리들은 네루쨩에게 감사하는 마음 뿐인걸. 우리들은 네루쨩이 안심하고 한자 케야키 전임으로 활동 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열심히 할 거야.”
나가하마는 사실 이 때 까지 히라가나 멤버들 앞에서는 항상 아무렇지 않은 척 강한 척 하고 있었다. 멤버가 자신 혼자뿐이었던 그룹에 들어 와 준 11명의 ‘후배’들을 위하여 항상 강한 모습만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강한’척’에 불과했다.
‘이 아이들은 어째서 항상 나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는 것일까. 이 다정함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이야. 이렇게나 이 아이들이 나를 사랑 해 주는데 왜 좀 더 일찍 이 아이들과 마음을 터놓지 못했을까.’
나가하마는 겸임이 해제 되어서야 비로소 다른 멤버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고, 그제서야 마음이 하나로 통했다고 느꼈다. 그리고 자신과의 이별을 눈물로 아쉬워 해 주는 멤버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저기… 케야키자카46라는 그룹은 말이야. 한자 케야키자카와 히라가나 케야키자카 2팀으로 이루어 져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내가 한자 전임이 된다고 해도 모두 같은 ‘케야키자카46’의 멤버라는 점은 변함 없는 거지… 그러니까 오늘 이렇게 헤어진다 해도 그게 영원히 헤어지는 건 아니야.”
사이토 쿄코는 나가하마의 그런 진지한 말에 즉각 반응했다.
“응. 그렇지. 악수회에서도 만날 수 있고 말이야.”
평소와 다름없는 사이토의 핀트가 나간 반응에 멤버들은 ‘쿄코가 또 저러네! ’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사이토는 이 때, 나가하마의 눈물을 멈추기 위하여 일부러 핀트 나간 얼빠진 소리를 했던 것이다.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멤버들에게 있어 지금까지는 어딘지 모르게 멀게 느껴지고, 함께 있어도 신경을 써야 했던 존재인 나가하마 네루.
그런 나가하마와 처음으로 흉금을 터놓으며 이야기 하고, 함께 웃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때,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는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12명의 멤버가 있는 하나의 그룹’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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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화
정신 없이 달려 온 여름
2015년 8월 21일. 노기자카46의 뒤를 잇는 ‘사카미치 시리즈’의 제 2탄 그룹으로서 아이돌 그룹 ‘케야키자카46’가 새로이 결성되었다. 하지만 그 최종심사 직전, 한 후보자가 오디션을 사퇴 해 버리는 일이 벌어진다.
그 소녀의 이름은 나가하마 네루. 그녀의 존재를 계기로 새로운 그룹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이 시동을 걸게 된다. 나가하마 네루를 유일한 멤버로 하는, 소속 인원이 단 한 명 뿐인 아이돌 그룹이 결성 된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6년 5월 8일, 추가멤버 오디션에 합격한 11명이 그룹에 합류, 히라가나 케야키는 새로운 걸음을 떼게 된다. 하지만 그 직후 나가하마는 ‘겸임’이라는 명목으로 한자 케야키의 멤버로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데뷔 싱글 ‘사일런트 마조리티’의 폭발적인 히트에 힘입어 한자 케야키는 급속도로 성장, 히라가나 케야키는 한자 케야키의 그늘 안에서 빛을 보지 못하는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그녀들은 2017년 봄부터는 전국의 라이브하우스를 돌며 단독 투어를 시작, 조금씩이나마 성장 해 간다. 그리고 같은 해 여름, 히라가나 케야키의 전국 투어는 일단 중단, 한자 케야키를 중심으로 하는 아리나 투어에 함께하게 된다.
사사키 쿠미가 진심으로 소리 쳤던 날
2017년 8월 2일. 효고현 고베시의 한 대형 홀에서 케야키자카46의 전국투어가 시작되었다. 이 투어는 투어 직전에 발매 된 케야키자카46의 첫 앨범 ‘새하얀 것은 더럽히고 싶어 져’의 수록곡들을 중심으로 한 투어였다.
히라가나 멤버들 역시 이 투어의 첫 날부터 함께 하며 앨범에 수록된, 한자 케야키와의 합동곡인 ‘태양은 비춰주는 사람을 고르지 않아’ 등 여러 곡들을 선보였다.
그리고 그녀들이 선보이는 곡들 중에서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신곡인 ‘영원의 흰 선’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다들 먼저 포기하곤 해.
‘그래도 난 열심히 했어’라고 변명하면서
이 흰 선 그렇게까지 길게 긋지는 못 해
한계에 달하기 한참 전에
힘껏 뻗었던 손을 내려 버리고 말아
여기서 끝내도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꿈과 석횟가루는 아직 남아 있잖아?
아무도 가 보지 못 한 ‘영원’은 바로 이 앞인걸.’
꿈이라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간단히 이룰 수 없는 것, 하지만 꿈을 향해 끊임 없이 걸어가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그런 메시지가 담긴, 마치 응원 해 주는 듯 한 곡이었다.
이 곡의 간주 부분 안무는 다른 사람들에게 추월 당하면서도 각자 자신의 최선을 다 해 필사적으로 달리던 멤버들이 서서히 한 줄로 늘어서서 결국 하나의 ‘선’이 되어가는 모습을 표현하는 안무였다. 이것은 멤버 각자가 자신의 꿈을 좇아 가면서도 결국 12명의 멤버들이 단결하여 자신들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의 존재의의를 상징하는 것만 같은 안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당시 그녀들은 그 안무처럼 ‘하나의 그룹으로서 일치단결하’려는 의식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
이틀에 걸친 고베 공연이 끝난 직후인 8월 5일. 세계 최대의 아이돌 페스티벌 ‘도쿄 아이돌 페스티벌 2017’이 개최되었다. 그리고 이 무대에 한자/히라가나 케야키자카가 각각 참가하게 되었다. 그리고1년 전, 갓 활동을 개시한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은 바로 이 이벤트에서 ‘선배’인 한자 케야키의 퍼포먼스를 처음으로 보았었다.
처음으로 TIF무대에 선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 첫 공연은 이래저래 실수가 많은 공연이었다. 본디 전국투어용으로 만들었던 안무를 TIF 버전으로 수정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기에 혼란해 했었던 것이다. 특히 라인댄스처럼 일렬로 늘어서야 하는 장면이 많은 ‘영원의 흰 선’ 같은 경우는 포지션이 미묘하게 어긋나거나 타이밍이 안 맞는 등, 완성도가 많이 떨어졌다.
예전부터 한자 케야키의 팬이었고, 이 날 MC에서 ‘작년엔 이 무대에 선 한자 선배님들을 보기만 했는데 올 해는 저희가 이 무대에 설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고 이야기 했던 사사키 쿠미는 본 공연때 주변 상황을 본 뒤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자신들에게 있어 너무나도 소중한 이 스테이지에서 선배들처럼 정연하게 퍼포먼스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분했던 것이다.
사사키가 잔뜩 풀이 죽어 대기실로 돌아 가려 했을 때, 믿을 수 없는 말들이 그녀의 귓가로 날아들어왔다. 다른 멤버들이 ‘오늘 엄청 더웠어’. ‘땀 때문에 앞머리가 엉망이야’, ‘아, 춤 틀렸네.’ 라는 말들이었다.
이런 말들을 들은 사사키는 폭발 해 버리고 말았다.
‘아니 너희들은 분하지도 않아?!’
눈물범벅으로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그렇게 일갈하는 사사키의 모습에 대기실 안은 한 순간 얼어붙었다.
그 한마디는 언제나 온화했던 그녀가 처음으로 멤버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가감없이 드러 낸 순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룹의 앙상블
사사키 쿠미는 어릴 때부터 우등생이었다. 선생님의 말씀은 반드시 지켰고, 4살 때부터 배웠던 발레는 ‘매일 해야만 하는 일이 없어지만 나태해진다’는 이유로 중 3이 될 때 까지 1주일에 7일 빼놓지 않고 다녔다.
발레 뿐만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부터는 학교의 취주악부에 들어 트럼펫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악단 전원이 하나가 되어 앙상블을 이뤄야만 하는 취주악부의 세계는 그녀의 성격과도 너무 잘 맞았다고 한다.
중학생이 된 뒤로는 취주악을 그만두었지만,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다시금 취주악부에 들어갔다. 고교 취주악부에서는 콩쿨에 나가기 위하여 매일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고, 때로는 합숙까지 하며 매일매일 부 친구들과 함께 연주하는 것이 너무나도 즐거웠다는 그녀. 그토록 충실했던 매일매일은 수험을 위하여 부 활동을 은퇴할 때 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 가고 보니 자신이 주변 사람들에게서 붕 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장이나 옷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워하는 동급생들을 따라 가 보려 열심히 노력해서 또래 여대생처럼 단장도 해 보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파장이 맞지 않아 결국 서서히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리고 결국은 학교에서는 수업만 받고, 수업이 끝나면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매일매일이 찾아왔다. 예전 발레가 그러했듯이 자기 자신을 잡아 줄만한 존재도 없었으며, 취주악처럼 동료들과 유대감을 느끼게 해 주는 것도 없었다.
그녀의 그런 메마른 매일을 바꾸어 준 것이 바로 히라가나 케야키자카였다. 2016년 5월, 그룹의 추가멤버 오디션에 합격, 멤버가 되었을 때 그녀는 이미 20살, 대학교 3학년이었다.
사실 이 때만 해도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의 연예계 활동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아버지는 딸의 연예계 활동에 긍정적이었지만 어머니는 ‘네가 하겠다면 협력이야 하겠다만, 응원은 안 할 거야. 대학교 졸업하면 아이돌 같은 건 그만두고 제대로 취직 하는 거다?’라고 이야기 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어머니와 척을 지면서까지 선택한 아이돌의 길은 어떻게 보자면 그녀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선택한 것이라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 중에서 최연장자였던 데다가, 아이돌 생활에 대한 의욕도 있었던 그녀는 활동 초기부터 그룹을 앞장서서 견인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집에서는 막내로, 다른 사람에게 이래라 저래라 지시를 하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그녀가 그룹 내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방법은 어딘가 좀 독특한 부분이 있었다.
‘자 그럼 한 번 더 해 보자. 하나~ 둘~’
취주악부에서 악기 톤을 조율하듯이 전체를 하나로 취합하는 것이 그녀의 리더십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온화한 분위기는 그룹의 분위기에도 반영되어, 히라가나 케야키를 나타내는 이미지 중 하나로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히라가나 케야키의 단독 라이브하우스 투어가 시작 된 뒤로는 원진의 구호나 스테이지에서의 MC를 맡게 되는 경우도 늘어 났다. 초창기부터 꾸준하게 연예계 생활을 반대하던 그녀의 모친은 첫 공연에 직접 와서 딸의 모습을 본 뒤, 이렇게 이야기 했다 한다.
‘저기, 다른 팬분들이 들고 있는 펜 라이트라는 거, 엄마도 갖고 싶어. 아, 그리고 다음 라이브도 갈게’
그룹에 가입 한 지 1년 가까이 지난 시점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지금까지 내가 고른 길을 잘 걸어 왔구나’라고 느꼈다고 한다.
히라가나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들어 왔으면 좋겠어.
우등생스러운 성격, 취주악부에서 배운 앙상블 의식. 사사키 쿠미라는 사람을 이야기 하는 데 있어 빼 놓을 수 없는 핵심적인 단어들이다. 그런 그녀였기에, 그녀의 그룹이 TIF에서 보여 준 부정확하고 허접한 퍼포먼스는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목소리를 높여 화를 냈던 것이고, 다른 멤버들도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자신들의 실수를 다시 한 번 반성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다들 뭐가 중요한지에 대해 생각이 다른 것 같아. 시간이 없다는 것은 잘 알지만, 공연을 앞두고 화장에만 너무 신경 쓰는 아이도 있고 말이지. 이거 어떻게 해야 할까?”
불현듯 카토 시호가 이렇게 이야기 했을 때, 사사키의 대답은 이랬다.
“히라가나를 더 큰 그룹으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만은 다들 같을 거라 생각해. 하지만 각자 품고 있는 꿈이 다른데다가, 꿈을 이루기 위해 취하는 방법도 다른 거지.”
여름에 열린 케야키자카46의 첫 전국 투어 기간동안 사사키 쿠미와 카토 시호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언니’격인 존재인 여성 스탭과 빈번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 주제는 언제나 ‘어떻게 해야 이 그룹이 더 좋아질까’라는 것.
멤버 중에는 사사키 쿠미처럼 흔들림 없는 퍼포먼스를 추구하는 멤버가 있는 반면, ‘우리는 아이돌이니까 무엇보다 귀엽게, 객석을 향해 전력으로 어필을 하는 것이 팬 서비스이다’라고 생각하는 멤버도 있었다. 물론 두 가지 의견 모두 맞는 의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사사키 쿠미는 자신의 방식을 다른 멤버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최대한 단순하면서도 간결하게 멤버들을 독려했다.
“얘들아, 최선을 다 하자!”
라고.
8월 2일에 시작된 투어는 전국 6개 도시에서 11번의 공연을 한 뒤, 8월 30일에는 치바현 마쿠하리 멧세에서 마지막 공연을 맞이하였다. 한자 케야키에게 있어서도, 히라가나 케야키에게 있어서도 너무나도 진한 한 달이었다.
히라가나 케야키는 매 공연마다 멤버들끼리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 회의 때마다 나온 이야기는 ‘어떻게 해야 팬 여러분을 웃게 해 드릴까’, ‘우리가 선보이는 곡이 적은데, 어떻게 하면 팬분들께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멤버들의 의욕과 모티베이션을 지탱 해 준 것은 바로 멤버들이 투어를 앞두고 정한 ‘목표’였다.
‘히라가나 케야키 2기생은 히라가나를 좋아하는 아이가 들어 왔으면 좋겠어. 우리가 그런 그룹을 만들자’는 목표.
예전 ‘추가 멤버 오디션’ 개최 소식을 듣고는 자신들이 ‘전력 외 통보’를 받았다고 생각하여 격렬하게 거부반응을 보였던 히라가나 멤버들은 어느 사이엔가 강해 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이 그런 마음으로 한창 투어를 하고 있을 때, 바로 그 ‘히라가나 케야키 2기생’이 될 멤버들의 최종 오디션이 열리고 있었다. 바로 8월 13일의 일이다.
최종 오디션 결과 히라가나 케야키에 들어오게 된 것은 총 9명.
새로운 멤버들의 가세와 더불어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는 총원 21명의 그룹이 되어 새로운 출발점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출발에 맞추어 투어 막바지에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첫 주연 드라마 ‘리:마인드’의 방영 소식이 발표 되었다.
사실 멤버들은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투어 일정에도 짬짬이 시간을 내어 연기 워크숍에 다니는 등, 드라마를 대비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정신 없이 달려 온 그 해 여름. 그리고 그녀들의 그 소중한 시기를 상징하는 곡이 바로 ‘영원의 흰 선’이었다.
하지만 꿈을 향해 흰 선을 그리며 똑바로 달려 온 12명의 멤버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미래였다.
그룹의 유일한 오리지널 멤버이자, 히라가나 케야키에 있어 누구와도 바꾸기 힘든 존재였던 나가하마 네루가 그룹을 떠나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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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화
서지 못한 마지막 인사
2017년 4월 6일에 열린 ‘케야키자카46 데뷔 1주년 라이브’.
라이브 개시 직전,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은 우연히 자신들의 그룹에 추가멤버가 들어 오게 되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다.
지금껏 12명 체제로 운영되어 오던 히라가나 케야키가 더 이상 자신들의 그룹이 아니게 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멤버들. 한 때는 ‘이럴 바엔 모두 그만 둬 버리자’는 극단적인 이야기도 나왔지만 스태프들의 설명을 듣고 일단 진정하였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멤버들 사이에선 새로운 의식이 싹텄다. ‘앞으로는 한자 케야키의 언더 그룹이 아니라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독립된 그룹으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히라가나 케야키다움’이라는 것을 모색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런 가운데 동년 5월 31일, Zepp Namba에서 개최된 라이브에서는 세트리스트도 큰 폭으로 바꾸며 ‘새로운 히라가나 케야키’의 모습을 선보이게 된다.
‘모두 함께 히가시무라를 믿어주자’
Zepp Namba 공연이 종료된 그날 밤, 멤버들과 스태프들은 근처 음식점에서 공연이 무사히 끝난 것을 기념하며 회식을 가졌다.
멤버들이 한 명씩 차례대로 일어나 그 날 공연에 대한 감상과 다음 공연인 Zepp Nagoya 공연에 대한 각오를 이야기 하는 시간도 있었다. 멤버들은 다들 밝고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불과 얼마 전에 있었던 Zepp Tokyo공연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 날, 고향인 나라현에서 온 가족들 앞에서 노래를 했던 히가시무라 메이 역시 평소보다 밝고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다른 멤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실 이 날 공연이 시작되기 전, 리허설 때만 해도 히가시무라는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오사카 출신인 다카세 마나와 함께 듀엣곡인 ‘미소가 슬퍼’를 연습하고 있었을 때의 일이었다.
히라가나 케야키에 들어오기 전만 해도 노래방에서 남들 앞에서 노래하는 것 조차 부끄러워 좀처럼 마이크를 손에 들지 못 했던 히가시무라가 큰 라이브하우스의 관객들 앞에서 노래를 한다는 것은 사실상 엄청난 부담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히가시무라가 부담을 느낄 것이라는 점은 이미 스태프들도 예상하고 있는 바였다. 평소에도 얌전하고 목소리도 작은데다가 그룹 내에서 가장 눈물이 많은 그녀에게 솔로파트가 많은, 그것도 듀엣곡을 부르게 한다는 것은 시기상조가 아니냐는 지적 역시 스태프들 사이에서 오갔다.
‘히가시무라 괜찮으려나… 만에 하나 오늘 본무대에서 실수라도 하면 더 큰 상처가 될테고, 그러다 보면 아예 퍼포먼스 하는 것 자체를 무서워 하게 될 수도 있는데… 하지만 오늘 이 시련을 넘어서지 못 하면 성장 하지 못 할 거야. 모두 함께 히가시무라를 믿어주자’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히가시무라는 본 무대를 훌륭하게 소화 해 냈다. 그리고 주변 멤버들과 스태프들에게 ‘잘 했어’라고 칭찬을 받기도 하였다.
그 뿐 아니라 그녀는 같은 해 7월 6일에 열린 Zepp Nagoya 공연에서는 유닛곡인 ‘푸른 하늘이 달라’나 ‘놓쳐버린 버스’에도 참가하였고, 더 나아가 한자 케야키의 곡 중에서도 춤이 격렬한 편인 ‘이야기 한다면 미래를…’에서도 자신의 잠재성이 얼마나 큰 지를 멋지게 증명 해 보였다. 참고로 이 곡은 히가시무라가 예전부터 꼭 도전 해 보고 싶었던 곡이기도 했다.
3월부터 시작된 전국 투어를 통하여 히가시무라의 ‘퍼포머로서의 소질’은 급격하게 꽃을 피웠다. 그리고 그녀를 그렇게 급격히 성장시켜 준 것은 다름아닌 그녀 본인의 성격… 눈물이 많은 성격 그 자체였다.
지금 자신의 모습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는 강한 마음
히가시무라는 중학생때 부 활동으로 ‘컬러가드’라는 경기를 하며 운동능력을 키워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컬러가드 프로 퍼포머가 되고싶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 않았다.
당시 그녀는 장래에 치위생사가 되기를 꿈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치위생사라는 꿈 역시 딱히 무슨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막연하게 해 보고 싶었던 것 뿐이었다.
그런 그녀가 고 2가 되었을 무렵, 그녀의 언니가 히라가나 케야키 오디션을 보라고 추천하였다. 그녀 본인이 이 오디션에 응모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몸 움직이는 건 좋아하니까’ 라는 막연한 이유였다.
오디션 당시만 해도 스태프들은 그녀에게서 어떤 특별한 퍼포머로서의 재능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뿐 아니라 합격 이후, 댄스와 노래 레슨 때마다 툭하면 눈물을 터뜨리는 그녀를 보며 내심 ‘얘는 앞으로 잘 해 나갈 수 있을까’라는 불안이 더 컸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가 간과하고 있었던 점은, 그녀가 우는 이유가 단순히 그녀가 ‘약해서’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약하긴 커녕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녀 자신이 스스로에게 설정한 높은 기준과, 그 기준에 부합하지 못 하는 자신에 대한 회한이 부글부글 끓어 오르고 있었다.
‘왜 내 생각처럼 노래 하지 못할까. 속상하네. 내 마음처럼 퍼포먼스 하지 못 하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
말 하자면 그녀는 지금 자신의 모습에서 시선을 돌리거나 타협하지 않고 더 높은 경지를 추구하는 강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컬러가드 전국대회에 나가 금상을 땄을 때조차도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않고 더욱 더 자신을 채찍질하며 연습에 몰두했던 중학생때부터 변치 않고 그녀 마음 속에 존재 해 왔던 미덕이었다.
그렇기에 히가시무라 메이는 눈물을 흘릴 때마다 조금씩 성장 해 올 수 있었다. Zepp Namba 공연에서 ‘미소가 슬퍼’를 맡게 되었을 때에도 리허설 때는 눈물을 흘렸지만 공연이 끝난 뒤에는 그 경험을 자신감으로 바꾸어 냈듯이 말이다.
그 뿐 아니었다. 전국 투어 회가 거듭될수록 그녀는 눈에 띄게 성장하였다. ‘세카아이’에서 포에트리 리딩에 도전하거나, 케야키자카46의 곡들 중에서도 최고 난이도의 곡 중 하나인 ‘AM 1:27’의 가창 멤버에 발탁 되었을 때에도 그런 난관들을 하나씩 극복 해 가며 그녀의 노랫소리는 점점 커졌고, 그녀의 춤은 점점 더 활력을 띄게 되었다.
그리고 투어가 끝난 뒤 취재를 위해 멤버들에게 배부한 앙케이트의 ‘좋아하는 것’ 항목에 그녀가 적은 것은 ‘춤 추고 노래하는 것입니다’였다.
스테이지 뒤에서 흘린 두 사람의 눈물
Zepp Nagoya 공연이 끝난 뒤, 히라가나케야키의 전국투어는 9월까지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
그 동안에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케야키자카46로서 여름을 지냈던 것이다.
케야키자카46는 이 해 처음으로 전국 투어를 실시, 겨우 한 달이라는 시간동안 6개 회장에서 11공연이라는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 해 냈다. 그 뿐 아니라 ‘ROCK IN JAPAN FESTIVAL 2017’이나 ‘SUMMER SONIC 2017’ 등 록 페스티벌에도 다수 참가하였고, 거기에 더하여 각 방송국들의 여름 음악 특방에도 출연하였다.
그렇게 눈코뜰 새 없이 바쁜 여름의 시작을 알린 것이 바로 7월 22일, 23일 양일간 열린 그룹의 첫 야외 라이브, ‘케야키공화국 2017’이었다.
사실 1월에 있었던 1주년 라이브의 완성도에 만족할 수 없었던 케야키자카46 멤버들에게 있어 이 라이브야말로 리벤지 무대라고 할 수 있었다.
라이브 본 공연은 케야키자카의 깃발을 든 맴버들의 마칭 퍼포먼스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불꽃놀이 연출을 신호로 첫 곡인 ‘사이마조’가 흘러 나왔고, 뒤를 이어 ‘세카아이’, ‘후타리세종’ 등 싱글 타이틀곡들이 선보여졌다.
약 2시간 반에 걸친 본 스테이지가 끝난 뒤에는 객석을 향해 물을 뿌리는 등 지금껏 케야키자카46라는 그룹이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참신한 연출들이 시도되었다.
히라가나 케야키는 한자 케야키와 함께 부르는 곡인 ‘W KEYAKIZAKA의 노래’를 비롯하여 총 4곡에 참가하였으며, 중간에 있었던 댄스브레이크 때 사이토 쿄코가 스즈모토 미유와 함께 춤을 전보이는 장면도 있었다.
스즈모토는 전체 그룹을 통틀어 보아도 춤으로는 한 손에 꼽히는 멤버로 춤의 절도, 박력, 표현력 등 모든 분야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뽐내는 퍼포머라 할 수 있다.
그런 스즈모토와 마주보고 춤을 추게 된 사이토는 필사적으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였다. 때로는 한자/히라가나 케야키의 전곡 안무를 담당한 TAKAHIRO에게 직접 조언을 구하기도 하였다.
사이토가 ‘이렇게 하면 되나요?’라고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 하며 직접 춤을 추어 보이면 TAKAHIRO가 ‘좀 더 자신감 갖고 해 봐’라고 조언을 해 주는 식이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해 볼 수 있는 것이야말로 뒤를 좇는 자의 특권, 사이토는 그런 특권을 마음껏 구사하며 본 무대에서 지금껏 본 적 없는 멋진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히라가나 멤버들 중 자신의 껍질을 깨 부수고 새롭게 태어난 것은 히가시무라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라이브 이틀째 마지막 공연에서 다시 한 번 히라가나 멤버들은 큰 변곡점을 지나게 된다.
2016년 크리스마스에 열린 ‘케야키자카46 첫 원맨라이브 in 아리아케 콜로세움’이후로 전체 라이브의 마지막곡은 언제나 ‘W KEYAKIZAKA의 노래’로 정해져 있었다. 아무리 참가 곡수가 적다고 해도 이 곡을 통하여 히라가나 멤버들이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케야키 공화국’ 첫 날 공연 역시 마찬가지로 ‘W KEYAKIZAKA의 노래’로 끝을 맺었다.
하지만 2일째 마지막 공연은 앙코르로 W KEYAKIZAKA의 노래를 한 뒤 끝이 나지 않았다. 이 날은 더블 앙코르가 나왔기에 이에 응하여 한자 케야키 멤버들만이 무대에 서서 신곡인 ‘위태로운 계획’을 처음으로 선보였던 것이다.
이 곡은 공연 직전에 발매 된 케야키자카의 첫 앨범에 수록된 곡으로, 여름 페스티벌에 어울리는 신나는 곡이었다.
갑작스러운 신곡 피로에 회장 안을 메운 관객들은 열광하였다.
한자 케야키 멤버들 역시 그런 팬들의 열기에 화답하듯 있는 힘을 다 쥐어 짜 내며 퍼포먼스를 하였다.
신곡 피로가 끝난 뒤, 흥분상태에 있던 한자 멤버들이 일렬로 늘어 서 손을 잡고 객석에 인사를 했던 바로 그 순간, 이어모니터를 통하여 스태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 정말 최고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 뒤로 돌아 온 순간, 히라테 유리나가 갑작스럽게 무너져 내리더니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아 울기 시작했다.
히라테는 울먹이며 ‘너희들 정말 사랑해’라고 이야기 했고, 그런 히라테의 말을 들은 한자 멤버들은 서로 어깨를 부둥켜안고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룹 멤버들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 낸 완벽한 라스트신에 멤버들, 스태프들 할 것 없이 모두가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들의 기쁨의 눈물과는 또 다른 눈물이 무대 뒷편에서 흐르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우리도 팬분들께 마지막 인사 드렸으면 좋았을텐데’
웃으며 스테이지에서 내려오는 한자 케야키 멤버들을 보며 카토 시호가 입을 열었다. 눈에는 눈물이 잔뜩 맺혀있었다.
그리고 그런 카토의 모습을 보며 사사키 쿠미를 비롯한 주변 멤버들 역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사실 라이브 마지막에 ‘W KEYAKIZAKA의 노래’를 부르고, 객석에 인사를 한다는 것은 히라가나 멤버들에게 있어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아무리 오리지널 곡 수가 적고, 아무리 한자 케야키의 그늘 아래 숨겨 져 있어도 ‘우리 역시 이 라이브를 함께 만들어 온 그룹의 일원이다’라는 점을 느끼게 해 주는 순간이 바로 그 마지막 인사였기 때문이다.
1주년 기념 라이브에서의 추가 멤버 모집 발표를 계기로 ‘더 이상 한자 케야키의 언더 그룹이 아닌, 아무리 미약하다 해도 독립된 그룹으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의식을 갖게 되고, 전국 투어를 통하여 자신들의 성장을 확인하였던 히라가나 멤버들에게 있어, ‘자신들이 없어도 공연은 별 지장 없이 진행되고, 관객들도 성대하게 박수를 보내준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하여 히라가나 멤버들은 다시 한 번 자신들의 존재의의에 대하여 고민하고, 그 답을 찾기 위하여 모색하는 나날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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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화
우리들의 목표
Zepp TOKYO에서 열린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1st 원맨라이브'
이 라이브는 그룹에게 있어 의미 깊은 첫 단독 라이브였지만, 자신들의 경험 부족으로 인하여 달성감을 느끼지 못 할 정도의 결과만 남기게 되었다.
멤버들은 라이브가 끝난 뒤, 수 차례에 걸쳐 의견을 교환하면서 그룹의 새로운 방향성을 정했다. 바로 '관객들과 하나가 되어 즐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멤버들은 다시 한 번 마음이 하나로 모아 다시 한 번 달려나가려 하고 있었다.
한편, 케야키자카46의 데뷔 1주년을 맞이하여 개최 된 1주년 라이브 회장에서는 서프라이즈로 '히라가나 케야키 주가 멤버 모집' 발표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은 우연히 그 소식을 미리 알게 되어버렸다.
지금까지 12명이 함께 만들어 온 그룹이 더 이상 자신들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멤버들은 충동적으로 좁은 의상실에 틀어박혀버린다.
그리고 의상실에선 멤버들의 비통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우리 모두 함께 그만 둬 버리자'
지금의 자신들과 같은 길을 걸어 온 한자 케야키
2017년 4월 6일 도쿄 요요기 제 1체육관에서 열린 '케야키자카46 1주년 기념 라이브'
앙코르곡이 끝나고 진행되던 MC도중에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추가멤버 오디션' 소식이 VTR을 통해 발표되었다.
멤버들이 리허설 때 보았던 대로였다.
'히라가나 케야키 증원 결정!'
'올 여름 개최!'
객석을 가득 메운 12,000여명의 관객들이 술렁이는 가운데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사사키 쿠미에게 마이크가 건네졌다.
'지금 너무 깜짝 놀라서 머릿 속이 새하얀데요… 사실 저희도 지금 한자 케야키 선배님들 뒤를 쫓아 가는 것 만으로도 벅차기에, 이런 저희들이 선배가 된다는 게 너무나도 불안하기만 합니다… 저희도 한자 케야키 선배님들처럼 늠름한 선배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더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사실 멤버들 중 몇 명은 다리가 후들거려 서 있는것만 해도 벅찰 지경이었다.
관객들을 알 방법이 없었지만, 사실 다들 이 충격적인 소식을 가슴 속에 숨긴 채 지금껏 스테이지 위에 서 왔던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로 관객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각오만이 그녀들을 버틸 수 있게 해 주었다.
라이브가 시작되기 전의 이야기이다.
의상실에 틀어박힌 멤버들을 설득하기 위해 여성 매니저들이 달려 왔다.
어찌저찌 문을 열고 의상실로 들어 갔을 때, 매니저들이 가장 처음 본 것은 너무나도 울어서 엉망이 되어 있는 멤버들의 얼굴이었다.
매니저들이 멤버들을 위로하며 진정시키고 있으려니 다른 스태프들이 몰려 와 추가멤버 오디션에 대하여 설명을 해 주었다.
'우선 이 오디션은 히라가나 케야키를 위하여 여는 오디션이라는 점을 알아 주었으면 한다. 지금 이대로라면 결국 너희는 한자 케야키의 그늘에 가려져 한자의 언더 그룹으로 활동 할 수 밖에 없어. 그런 너희가 한자 케야키에 필적 할 수 있는 '정규군'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힘을 더해 한 단계 윗 레벨에 도달해야만 해. 그러기 위해 추가 멤버를 받는 거야. 그러니까 이 멤버 모집은 히라가나를 위한 거라는 거지. 우리를 좀 믿어 주면 좋겠다.'
하지만 예상치도 못 하게 발표 내용을 목격 한 직후였던 멤버들은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혼란에서 벗어 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들 대다수는 10대 소녀, 그것도 이 세계에 발을 들인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던 초짜들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들이 냉정하게 스태프들의 설명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사실상 무리가 있는 얘기였다.
물론 이런 멤버들의 사정따위, 현장에 모인 팬들이 알 바가 아니었다.
그녀들은 프로답게 힘든 티를 내지 않고 스테이지 위에 서야만 했다.
모두들 그것만은 이해하고 있었다.
뭐가 뭔지 모를 정도로 혼란한 상태로 울며 대기실로 돌아가던 사사키 쿠미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이시모리 니지카였다.
'괜찮니?'
이미 사정을 들어 알고 있던 이시모리의 위로를 받던 도중, 사사키 쿠미의 머릿속을 문득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우리가 들어 올 때, 한자 선배님들도 같은 마음이었겠구나'
자신들이 그룹에 들어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처음 한자 케야키와 대면했을 때, 한자 케야키 멤버들은 그저 당당하고 빛나는 '연예인'으로만 느껴졌다.
하지만 실제로는 한자 케야키 멤버들 역시 히라가나 멤버들에게 겁을 먹고, 어찌 대하면 좋을 지 몰라 화장실에 틀어 박히지 않았던가.
물론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 사건이 잡지 인터뷰로 밝혀 진 이후였지만 말이다.
'그 때 한자 선배님들은 지금 우리가 느낀 것과 같은 것을 느끼셨을텐데, 전혀 티도 내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셨었지. 추가 멤버 오디션을 받는 애들에게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우리도 그 아이들을 받아들여 줘야만 해. 한자 선배님들이 그러셨듯이.'
카토 시호 역시 머릿속에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이전, 라이브를 보러 오신 어머니의 말씀이었다.
'한자 멤버들 21명이 춤추는 것을 보다가 너희 12명이 춤추는 것을 보면 뭔가 텅 빈 것 같아.'
레슨에서 한자 케야키의 곡을 연습 할 때에도 '역시 사람 수가 적으니 좀 심심해 보이는데, 너희들이 보기엔 지금 히라가나 인원 수가 어떤 것 같니?'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카토는 항상 '언젠간 사람이 늘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히라가나의 단독 투어가 시작된 직후의, 그것도 겨우 멤버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었을 때 발표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 했기에 크게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다른 멤버들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을 때, 다른 멤버들보다 빠르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음 단계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멤버도 있었다.
카게야마 유카는 라이브가 끝난 직후에 있었던 밀착카메라 인터뷰에 홀로 임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
'언제까지고 쳐져 있을 수 만은 없으니까요. 2기생들이 들어 왔을 때 섞이기 편한 환경을 만들려 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바꾸어 다시 한 번 열심히 하겠습니다.'
히라가나 케야키 사상 최대의 사건이자 시련이었던 '추가 멤버 모집 발표'.
이것은 결과적으로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현재 모습을 다시 한 번 생각 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언더'라는 단어로부터 해방되다
1주년 기념 라이브가 끝난 며칠 뒤, 케야키자카46 운영 스태프는 한 통의 메시지를 받았다.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이 보낸 것이었다.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우리들의 목표
・더욱 더 큰 스테이지에서 라이브를 하고 싶습니다.
・전국 47개 도도부현을 돌며 투어를 하고 싶습니다.
・지명도를 올리기 위해 게릴라 악수회를 하고 싶습니다.
・히라가나만의 칸무리 방송을 갖고 싶습니다.
・언젠간 꼭 히라나가 케야키 명의로 CD를 내고 싶습니다.
등등…
멤버들이 주체적으로 자신들의 목표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그 결과를 정리하여 리스트를 만든 것이었다.
이 내용들은 어쩌면 '프로 아티스트'의 의사표명이라기엔 너무나도 유치한 내용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목표'에서는 '이제부턴 우리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히라가나 케야키자카 46'라는 그룹을 하나의 독립된 그룹으로서 인정받게 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있었다.
처음에는 '한자 케야키의 언더 그룹'으로 결성 된 히라가나 케야키.
이 순간, 그녀들은 바로 그 '언더'라는 단어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신들만의 길을 걸어가려고 한 것이다.
이는 '추가 멤버 모집'이라는 극약처방이 가져 온 의식개혁이자 그녀들의 자립심이 싹 튼 순간이기도 했다.
일단 방향성이 정해지고 나니 어떤 일을 해야 할 지는 간단했다. 5월 31일로 예정 된 Zepp Namba 공연을 멋진 공연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는 아쉬운 결과로 남은 Zepp Tokyo공연의 리벤지이기도 했다.
라이브를 성공시키기 위하여 멤버들은 수시로 스태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런 회의 도중,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사이마조나 불협화음은 한자 케야키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잖아. 그러니까 좀 더 히라가나다운 세트리스트를 생각 해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 순간, 이 한마디에 눈물을 쏟기 시작한 멤버가 있었다. 카토 시호였다.
'이렇게나 저희를 생각 해 주실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애초에 히라가나에는 한자 케야키를 동경해서 들어 온 멤버가 많았다.
그렇기에 더더욱 '한자 선배님들처럼 멋있게, 쿨한 곡을 선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멤버들이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이 '독자노선'을 생각하기 시작 한 뒤로는 어느 사이엔가 '한자 케야키를 상징하는 곡들을 꼭 불러야만 한다'는 의미는 흐려 져 있었다.
아니, 오히려 '히라가나 케야키다운 것은 무엇인가' 라는 것을 고민하고, 세트리스트에도 그런 '케야키다움'을 담아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하고 있었다.
1주년 기념 라이브 무대 뒤에서 스태프가 이야기 했던 '(스태프들이) 히라가나 케야키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었던 것이다.
모든 스태프들이 실제로 히라가나 케야키의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카토 시호가 눈물을 흘리게 된 것은 그런 스태프들의 마음을 느껴서였다.
결과적으로 Zepp Namba의 세트리스트는 이전 공연의 그것과는 크게 변경되었다.
비록 오리지널곡이 적어 한자 케야키의 곡을 빌려 올 수밖에 없었지만, 이미 춤까지 숙지하고 있었던 '사이마조'나 '우리들의 전쟁'을 세트리스트에서 제외하고 '교복과 태양', '석양 1/3', '미소가 슬퍼' 등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새로이 추가 된 곡들은 템포가 느리고 따뜻한 느낌이 드는, 말하자면 '히라가나 글자 같은 인상'을 가진 곡들이었다.
또한, Zepp Namba의 챌린지 미션이었던 탭댄스 역시 연습,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무대에 임했던 것이다.
처음으로 일체감을 느낀 스테이지
히라가나 케야키에게 있어 이번 라이브는 처음으로 '오사카'에서 열린 라이브였다.
심지어 한자 케야키조차 오사카에서는 라이브를 하지 못 했다.
그런만큼 멤버들은 기합이 확 들어 있었고, 그만큼 긴장감 역시 대단했다.
하지만 오프닝 액트로서 탭댄스를 선보인 시점에서 이미 지금까지의 라이브에서는 느끼지 못 한 것들이 느껴졌다.
'역시 오사카 사람들은 흥이 있어. 라이브라는 게 이렇게 즐거운 것인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어.'
히라가나 케야키에서 유일하게 오사카 출신인 다카세 마나는 당당히 고향에 개선한 기쁨을 느꼈다.
다른 멤버들 역시 적극적으로 반응 해 주는 관객들을 보며 용기를 얻고, 기분이 들뜨는 것을 느꼈다.
특히 MC에 대한 반응은 예상 이상이었다. 별다른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임했던 Zepp Tokyo에서의 MC 실패 경험에 비추어, MC내용 역시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누며 갈고 닦았다.
그리고 그 결과, 비록 서투르긴 해도 관객들의 호응을 불러냈던 것이다.
'오사카라 하면 타코야키죠. 여러분 한 번 상상 해 보시겠어요? 동그란 타코야키에~ 소스가 반짝반짝 빛이 나고~ 그 위에 김가루가 뿌려 져 있어요~ 정말 너무 좋지 않나요? 아, 물론 저는 타코야키 못 먹습니다만'
이라고 혼자 얼빠진 소리를 해 대는 네루의 MC에 다른 멤버들은 마치 콩트의 한 장면처럼 일제히 바닥에 쓰러졌다.
오사카 관객들 역시 멤버들과 함께 앞으로 쓰러지는 척 하며 회장의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중요한 것은 관객들과 하나가 되는 것' 그리고 이 순간이야말로 그녀들이 어떻게 해야 관객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지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퍼포먼스 면에서도 '히라가나 케야키다움'을 의식하여 최선을 다했다.
'세카아이' 도입부의 포에트리 리딩을 담당했던 카게야마는 일부러 대사 타이밍을 살짝 어긋나게 하여 곡에 드라마틱한 면을 더했다.
Zepp Tokyo공연 때는 한자 케야키의 CD를 그대로 외워서 히라테 유리나와 완전히 똑 같은 타이밍에 대사를 하려고 노력했던 점을 생각하면 엄청난 변화였다.
진로상담에 임하는 학생들의 불안함, 그리고 희망을 노래한 '교복과 태양'의 센터로는 카토 시호가 낙점되었다.
사실 처음 센터 자리에 이름이 불렸을 때, 카토는 자신이 없어 '왜 나지?'라고 울며 사사키 쿠미에게 상담을 했다.
하지만 정작 본무대가 시작되었을 때엔 카토 특유의 여성스러운 분위기와 올곧은 모습이 곡의 '청춘찬가' 적인 면과 완벽히 매치되어 회장 안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카세와 함께 듀엣곡 '미소가 슬퍼'를 부른 것은 히가시무라 메이였다.
라이브를 할 때마다 항상
울곤 했던 히가시무라는 이 투어에서 크게 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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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화
'우리 모두 그만 둬 버리자'라고 이야기 했던 날
첫 단독이벤트 '히라가나 오모테나시회' 이후 수 개월에 걸쳐 활약의 기회를 거의 받지 못 했던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자신들의 미래에서 아무런 희망도 느낄 수 없어진 멤버들은 그룹 해산의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Zepp Tokyo에서 첫 단독 라이브가 열리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일정은 2017년 3월 21일, 22일 양일간이었다.
히라가나 케야키가 단독으로 스테이지에 서는 것은 '오모테나시회' 때 이래, 5개월만의 일이었다.
멤버들 중에는 이구치 마오와 우시오 사리나처럼 비밀 특훈을 하며 라이브에 대비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개개인을 떠나 그룹 전체로 보자면 아직 해소되지 못 한 큰 불안이 아직 도사리고 있었다.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는 몸
'좀 더 퍼포먼스를 잘 하고 싶어!'
카키자키 메미가 입을 열었다.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맺혀 있었다.
라이브를 앞두고 리허설을 하던 어느 날, 스태프와 멤버들이 함께 회의를 하던 중에 일어 난 일이었다.
사실 그 당시, 멤버들 사이에는 '그룹 활동과 라이브에 대한 자세'에 대한 차이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일부 멤버들이 이야기 한 '아이돌이란 노래나 춤 실력보다는 우선 자신을 귀엽게 보이도록 연출하는 게 중요하지 않느냐'는 말에 대한 카키자키의 반론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라이브 연출가 역시 카키자키와 마찬가지로 '쇼로서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이 귀엽게 보이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멤버들끼리 더 협력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결국 스태프들과의 회의가 끝난 뒤, 멤버들끼리 따로 가진 회의에서는 '개인 플레이가 아니라 좀 더 팀으로서 퍼포먼스에 힘쓴다'는 결론이 났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큰 방향성의 이야기일 뿐 라이브를 성공시키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면 되는 지에 대한 지침이 내려 진 것은 아니었다.
아니, 아직 경험이 부족한 그녀들이 그런 구체적인 내용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었다.
그 뿐 아니라 첫 단독 라이브임에도 11곡이나 선보이게 되어, 체력적인 면에서도 불안이 남아 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여러 차례 마라톤대회서 우승하고 중학생 때는 거의 매년같이 육상 전국대회에 출전하기까지 했던 히가시무라 메이마저도 실전 리허설이 끝난 뒤에 '힘들어. 무리일지도…'라고 생각 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불안은 적중했다.
라이브 당일, 근육통과 피로가 다 낫지 않은 상태로 무대에 섰던 멤버들은 자신의 몸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며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예전부터 춤을 배워, 그룹 퍼포먼스의 중심축으로 활약하고 있었던 사사키 미레이조차도 무대 위에서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 해 초조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거 큰일인데. 이대로라면 어중간하게 보여 주고 싶은 것도 다 보여드리지 못 한 채 라이브가 끝나버리겠어'
나가하마 네루 역시 패닉상태에 빠져 있었다.
한자 케야키를 겸임하고 있었던 그녀는 이 당시 한자 케야키의 두 번째 주연 드라마인 '잔혹한 관객들' 촬영으로 눈코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기에 단독 라이브의 전체 연습에는 거의 참가하지 못 하고 개별 레슨을 받고 있었다.
결국 그녀가 멤버들 전체와 함께 리허설에 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라이브 당일에 있었던 최종 리허설 단 한 번 뿐이었다.
시간이 없었기에 그 리허설에서 그녀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개별적으로 외운 포지션이 틀리지 않는가 확인하는 것 뿐이었다.
부족한 라이브 경험, 스케줄면에서 오는 불편 등 수 많은 것들이 겹친 결과, 결국 멤버들은 무대를 즐길 수가 없었다.
실패를 겪으며 알게 된 '자신들이 목표로 해야 할 곳'
첫 단독 라이브에서는 케야키자카46의 4번째 싱글 '불협화음' 에 수록된 히라가나 케야키 명의의 커플링곡, '우리들은 사귀고 있어'가 처음으로 선보여지기도 하였다.
'우리들은 사귀고 있다고 소리치고 싶어져.
이대로 계속 비밀로 할 수는 없는걸.
친구들조차도 눈치 못 채게 한다니
바보 같은 일이잖아.
확실하게 공개 해 버리자'
연애 초창기의 두근거림과 어린 커플의 빛나는 생동감을 그려 낸 곡이었다.
전작인 '누구보다도 높이 뛰어!'가 객석을 열광하게 하는 신나는 무언가가 있는 곡이라 하면, 이 곡은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지는 따뜻한 곡으로, 히라가나 케야키의 라이브를 이끌어 갈 또 다른 '키 곡'이라 할 수 있는 곡이었다.
또한, 이 라이브 중에 서프라이즈로 '전국 Zepp 투어' 개최가 발표되기도 하였다.
도쿄 회장 다음 회장은 오사카부의 Zepp NAMBA이며, '탭댄스에 도전하는 챌린지 기획'이 예정되었다.
갑작스러운 서프라이즈 발표에 객석은 열광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 했듯이 다양한 불안을 안은 채 스테이지 위에 서 있던 멤버들은 그런 객석을 지켜 볼 여유조차 없이 그저 세트리스트대로 라이브를 하는 것 만으로도 벅찼다.
특히 별달리 준비도 하지 않고 즉석에서 짠 공연 MC내용에 대해서는 공연이 끝난 뒤, 연출가로부터 질책을 듣기도 하였다.
'MC는 말하자면 공연의 분위기를 띄우는 계단 같은 것인데, 오늘 MC는 그런 역할을 전혀 해 주지 못했어. 다른 멤버들이 이야기 하고 있을 때, 다들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 지 생각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 했고. 이래서는 관객분들과 하나가 되지 못 한다고'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멤버들은 'MC란 그저 그 때 느낀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라이브에 단계를 나누어 주고, 다음 곡으로 가기 위해 회장의 분위기를 형성 해 주는 MC라는 것이 그리 적당적당히 해서 될 것일 리가 없었다.
라이브가 끝난 뒤, 멤버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거듭하다 보니 자신들에게 지금 부족 한 것이 무엇인지가 조금씩이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비단 MC뿐 아니라 객석의 반응을 꼼꼼히 살피고, 그에 맞추어 회장의 열기를 끌어 올릴 수 있도록 퍼포먼스를 하여야만 '라이브가 하나의 쇼로서 성립 할 수 있는 조건'이자 '관객과 하나가 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때부터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팀'이 하나가 되어 목표로 해야 할 곳이 보이기 시작했다.
'관객분들과 함께 신나게 즐기자'
첫 단독 라이브의 실패를 통하여 겨우 자신들이 해야 할 것이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목표가 정해졌으니 남은 것은 체력을 길러 앞으로 남은 라이브에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임하는 것 뿐이었다.
Zepp Tokyo 공연에선 만족스럽게 리허설에 참가 할 수 없었던 나가하마 네루도 Zepp Namba공연부터는 미리미리 스케줄을 조정 해 달라고 운영측에 직접 부탁을 하였다.
이 때, 처음으로 히라가나 케야키 12명의 멤버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직후에 히라가나 케야키자카 사상 최대의 사건이 터질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니터에 비춰진 '긴급공지'라는 네 글자
1st 원맨라이브가 끝난 지 약 보름가량이 지난 2017년 4월 6일.
요요기 제 1체육관에서는 '케야키자카46 데뷔 1주년 기념 라이브'가 열리고 있었다.
이 날은 '사이마조'가 발매 된 지 1년이 되는 날로, 지금까지 케야키자카46가 릴리스 한 싱글의 수록곡들을 전부 선보이는 대규모 라이브로, 당연히 히라가나 케야키 역시 참가하는 라이브였다.
이 날, 다카세 마나는 리허설 시점에서 이미 뭔가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꼈다. 어째서인지 집중이 되지 않았고, 안무나 포메이션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쩌면 이것은 그 날 있을 사건에 대한 전조였을 지도 모른다.
오리지널 곡 수가 적은 히라가나 케야키는 이 날, 대기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었다.
그렇기에 공연을 앞두고 신경 쓰이는 부분을 체크하기 위하여 넓은 곳으로 이동하여 연습을 하려 했다.
이는 이 날 처음으로 이용하게 된 토롯코(사다리차)의 체크를 겸한 것이었다.
'여기서는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였던가?'
'아, 거기는 이렇게 이동해서 이렇게 하면 돼'
라고 서로 가르쳐 주기는 했지만, 어째서인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다들 어딘가 안절부절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였다. 히가시무라 메이가 문득 자신 옆에 있던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스태프들이 회장 전체의 모습을 모니터링 할 때 사용하는 모니터였다.
화면에는 리허설에 매진하는 한자 케야키 멤버들의 모습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한자 케야키 멤버들의 연습이 끝난 뒤, 갑작스럽게 모니터에 글자 네 자가 떠올랐다.
'긴급공지!'
히가시무라는 그 글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런 히가시무라의 모습을 눈치 챈 다른 멤버들도 곁으로 몰려 와 화면을 보며 '어… 이거…'라고 입을 뗐다.
그리고 화면에서 네 글자가 지워진 뒤, 곧이어 충격적인 내용이 떠올랐다.
'히라가나 케야키 증원 결정!'
'올 여름, 오디션 개최'
멤버들은 한 순간 지금 자신들이 보고 있는 글자들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 할 수 없었다.
멤버들 중 몇몇이 비명을 질렀고, 일부는 눈 앞에 있던 의상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본 나머지 멤버들도 서둘러 의상실로 뛰어들어갔다.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끔찍한 장면을 보기라도 한 듯 히라가나 멤버들은 작은 의상실에 숨을 죽이고 틀어 박혀 상황을 정리했다.
사실 이 때 그녀들이 목격한 VTR은 라이브가 끝날 때 서프라이즈로 발표 될 내용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절대로 멤버들이 볼 수 있는 곳에 틀어놓아서는 안 될 내용이었지만, 리허설을 겸해 영상 내용을 체크하기 위하여 스태프용 모니터에만 틀어 놓는다는 것이 실수로 흘러 나왔던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대기실에 있었어야 할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이 연습 및 확인을 위해 외부에 나왔다가 우연히 목격하게 된 것이었다.
'히라가나 케야키 인원을 늘린다'
이것은 곧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이 지금 있는 12명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는 뜻이었다.
Zepp Tokyo공연의 실패를 통하여 수 없이 반성회와 회의를 거치며 이제 겨우 마음이 하나가 되어 새롭게 출발하려 했던 그녀들에게 있어 그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이야기였다.
좁은 의상실에 틀어박힌 멤버들은 패닉상태에 빠져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갑자기 사사키 미레이가 의상실 문을 걸어잠그고는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이럴 바에는 그냥 모두 그만 둬 버리자!'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느니 차라리 그룹을 그만 둬 버리는 게 낫다는 이야기였다.
뒤이어 누군가가 '그냥 오늘 라이브도 나가지 말자'라고 말을 받았고, 주변 멤버들 역시 그 의견에 동의했다.
사이토 쿄코는 분노 해 있었다.
'대체 나는 지금까지 뭘 해 온 거야!'
중학생 때부터 이 세계에 들어오기 위해 수 많은 좌절을 이겨내며 노력을 아끼지 않아 온 그녀가 처음으로 자포자기한 순간이었다.
12명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 하며, 서로를 지탱 해 주면서 해 온 지금까지의 노력들이 하나도 인정 받지 못 한 채, '너희는 아무 쓸모가 없다'고 선고를 받은 것만 같았다.
거대한 요요기 제 1체육관 안의 한 작은 방 안에서 소녀들은 감정의 폭풍우에 휩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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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화
미소의 뒷편
히라가나 케야키의 첫 단독 이벤트인 '히라가나 오모테나시회'는 실전에 강한 멤버들의 실력과 스테이지를 즐기려는 자세, 그리고 멤버들끼리의 협력 덕분에 성공리에 마무리되었다.
또한, 케야키자카46의 3번째 싱글 '후타리세종'에 실린 히라가나 케야키의 2번째 오리지널곡 '누구보다도 멀리 뛰어!'는 라이브의 분위기를 띄워주는 그루비한 걸작으로 완성되었다.
하지만 '오모테나시회'가 끝난 뒤, 수 개월동안 히라가나 케야키에게는 활약의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우리들, 이대로 해산 해 버리는 걸까?'
불안감에 떠는 멤버들 사이에 항상 밝게 행동하는 우시오 사리나의 모습이 있었다.
오디션에 합격한 자의 '사명'
이야기를 2015년으로 되돌려보자.
이 해 연말, 우시오 사리나는 시계바늘과 눈싸움을 해 가며 열심히 휴대폰으로 뭔가를 쓰고 있었다.
이 날 23시 59분으로 마감이 되는 히라나가케야키 오디션 웹 응모 양식에 필요사항을 적고 있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기대 해 왔던 '홍백가합전' 조차도 노기자카의 스테이지만 보고, 바로 방에 틀어박혀서 몇 번이나 문장을 고쳐가며 응모 양식을 적은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겨우 송신 버튼을 누른 것은 마감시간 수 분 전이었다.
그녀가 히라가나 케야키의 오디션을 받기로 마음 먹은 것은 불과 며칠 전의 이야기였다.
"노기자카가 그렇게 좋으면 오디션이라도 받아보지?"
우시오가 노기자카의 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친구가 그녀에게 히라가나 케야키의 오디션을 추천 해 주었던 것이다. 이유는 '어차피 같은 사카미치 시리즈니까'.
우시오는 노기자카가 결성 된 직후부터 노기자카의 팬이 되었다. 노기자카의 칸무리 방송인 '노기도코'는 첫 회부터 녹화를 잊지 않고 보아왔고, 시라이시 마이와 니시노 나나세의 악수회에 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자신이 아이돌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노기자카 2기생 오디션에도 응모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랬던 그녀가 아무리 친구가 추천을 해 주었다고는 해도 히라가나 오디션에 응모를 하게 된 것은 타이밍 덕분이 컸다.
당시 고 3이었던 그녀는 이미 11월 시점에 추천시험(수시전형)으로 대학교에 합격, 진학이 정해 져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계속 해 온 클래식 발레도 이미 고 3이 되면서 그만 두었기에 입학식까지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타고 나길 성실한 성격이었던 그녀는 입시를 앞두고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뭔가 하긴 해야 할텐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 시점에 오디션을 권유 해 주고, '사진이 없으면 우리 집에서 찍어 줄게'라며 힘을 불어넣어주는 친구의 마음을 무시 할 수 없었기에 히라가나 케야키 오디션에 응모하게 된 것이었다.
응모 당시만 해도 '내가 붙을 리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본인의 그런 예상과는 반대로 그녀의 서류는 물 흐르듯 심사를 통과했다.
그리고 봄이 찾아왔을 무렵, 최종 후보자들은 인터넷 방송 서비스 '쇼룸'을 통해 개인 방송을 하게 되었다.
딸을 걱정한 모친은
'이제 막 대학교에 들어 갔는데 그렇게 인터넷에 얼굴이 팔리고나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니. '오디션 떨어진 애'라고 소문이라도 나면 친구 안 생길지도 몰라.'
라고 걱정스럽게 이야기 하였다.
딸과 마찬가지로 부모님들도 자신의 딸이 오디션에 합격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 했던 것이다.
그리고 우시오는 결국 부모님의 말을 따라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쇼룸 방송에 임했다.
최종 심사에도 갈까 말까 고민했지만 '앞으로 아이돌이 될 아이들을 직접 보기나 하자'라는 마음으로 참가했다.
하지만 우시오는 이 최종심사를 통과 해 버리고 만다. 서류 응모 숫자를 생각 해 보면 경쟁률 1000:1이 넘는 좁은 문을 열고 들어 가 버린 것이다.
하지만 정작 오디션에 합격하고 나니, 부모님이 활동에 맹반대를 하시기 시작했다.
'아이돌이 되어 사람들 앞에 서다보면 상처받게 될 일도 많아 질 거야. 엄마는 사리나가 그냥 평범하게 대학을 졸업해서 안정된 직장을 갖고, 평범한 행복을 손에 넣었으면 하는데.'
부모님의 말은 어디 하나 틀린 부분이 없었다. 어쩌면 여기서 사퇴하는 것이 자신의 인생을 생각했을 때 옳은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 말씀을 순순히 따를 수도 없었다.
오디션이 진행되던 도중, 그녀는 한 명의 후보생과 친해지게 된다.
그리고 그 후보생이 중간에 탈락하게 되었을 때, 이런 말을 남겼던 것이다.
'사리나, 꼭 아이돌이 되어서 내 몫까지 활약 해 줘.'
그런 '친구'의 부탁 외에도 그녀가 아이돌을 포기 할 수 없는 이유는 더 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그녀는 '오디션 합격자 수는 미리 정해 져 있어서, 누군가가 합격하면 다른 사람이 떨어져야 하는 것'이라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이야 당연히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그녀는 친했던 후보생을 비롯하여 탈락 한 수 많은 후보생들에 대해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동시에 다름아닌 '자신'이 합격한 데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어쩌면 이게 나의 운명일지도 몰라. 이 운명을 받아들이고 다른 아이들 몫만큼 더 열심히 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사명일지도…'
이렇게 느낀 우시오는 부모님을 설득하여 겨우겨우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님들이 걱정하던 사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빠르게도 현실이 되었다.
노기자카46에게 배운 '미소의 힘'
최종심사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히라가나 케야키의 새 멤버 11명의 사진이 공개되었다.
그 사진은 최종심사일에 합격 발표가 있은 직후에 찍힌 것으로 머리 모양, 화장은 물론이고 의상에 이르기까지 너무나도 촌스럽고 초짜 티가 나는 멤버들의 모습이 담겨 있는 사진이었다.
자신의 시잔이 공개된 직후, 우시오는 인터넷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 해 보았다가 충격을 받았다.
'얘는 대체 어떻게 아이돌이 된 거래?'
'얘가 들어 올 수 있었다는 게 이해가 안 돼'
'오히려 내가 더 낫겠다' 등등…
심지어 그녀가 지금껏 살아 오면서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심한 말들도 적혀 있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왔던 친구가 뒤에서는 그녀에 대해 험담을 하고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된 뒤 부터는 항상 바닥만 보며 걷게 되었다.
우시오 본인이 '다른 사람이 없는 곳에서 험담을 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 하는 성격이었기에 충격은 더더욱 컸고, 인간불신 직전까지 가게 되었다.
아이돌이 된 뒤 처음으로 겪은 '좌절'이었던 것이다.
이대로라면 정신적으로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던 그녀는 스태프에게 면담을 청했다. 그리고 면담자리에서 그녀는 울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더 이상은 못 버티겠어요. 그만 두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말에 스태프는 이렇게 대답했다.
'노기자카 멤버들도 초기에 너 처럼 이렇게 울며 말 했었어. 하지만 지금은 '그 때 그만두지 않길 잘 했어요'라던가 '계속 하길 잘 했어요'라고 한단다. 여기서 그만두는 건 간단한 일이지만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오는 건 간단하지 않아. 머지 않아 '계속하길 잘 했다'고 생각하는 날이 올 테니 조금만 더 노력 해 보자.'
근본이 성실하고 진중한 우시오는 스태프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잠시 더 노력 해 보기로 결심했다.
인터넷을 봐 봤자 상처만 받기에 잠시동안 자신에 대한 정보에서 멀리 떨어지기로 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활동이 시작 된 뒤, 그녀는 아이돌이라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잡지 취재도, 악수회에서 팬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정말 즐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 것은 '춤'이었다.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발레를 해 왔던 우시오는 춤을 추는 것을 좋아했다.
평소에는 항상 헤실헤실 웃고 있지만 곡이 흘러나오고, 댄스 모드에 돌입하는 순간 마치 다른사람이 된 듯 표정이 변했다.
쿨한 곡도 정열적인 곡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멋지게 소화 해 내는 그녀의 표현력은 이미 다른 멤버들의 인정을 받은 무기였다.
'빙의형', '천재'라고 불리는 히라테 유리나와도 같은 무대에 서 온 나가하마 네루조차도 무대 위에 선 우시오의 풍부한 표정, 능숙한 표현력에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기에 우시오는 '히라가나 오모테나시회' 라는 무대에 선 것이 정말로 즐거웠고, 자신들만의 오리지널 곡이 늘어나고, 그에 따라 자신들이 선보일 춤이 늘어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하지만 '오모테나시회'가 끝난 뒤 몇 달동안 히라가나 케야키가 활약을 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한자 케야키와 함께 연말 'FNS음악제'에 나가기는 했지만 그녀들에게는 거의 스포트라이트가 주어지지 않았고, 녹화 된 영상을 보아도 자신들의 얼굴조차 구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힘들었다.
'히라가나는 대체 뭘까. 우리가 한자 선배님들과 같은 그룹이라는 게 의미가 있긴 할까. 그냥 버리는 패가 되어 금방 잘려 버리는 건 아닐까'
집에 있을 때는 거의 항상 울고만 있었다. 한 번 불안감이 머리를 가득 채우게 된 뒤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아, 밤에는 잠도 이룰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멤버들 앞에서는 항상 의연한 모습으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미소'는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노기자카46를 응원하며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떨 때라 해도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노력한다면 누군가가 그런 모습을 지켜 봐 줄 것이라는 것 역시.
그렇기에 우시오는 다른 멤버들을 고무시키기라도 하듯이 레슨장에서나 일 하는 현장에서나 밝게 행동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미 이 때부터 업계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은 되게 밝고 적극적이야. 함께 일을 하다보면 이 쪽까지 기분이 좋아진다니까.'
하지만 히라가나 멤버들과 함께 활동을 하면서도 동시에 그녀들을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었던 사람… 나가하마 네루가 보기에는 그런 업계 사람들 평가와는 달리, 히라가나 멤버들은 '본래부터 밝고 적극적'인 아이들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잘 울고 소극적인 아이들이 더 많다고 느껴졌다. 그저 결과를 낼 수 있는 기회 자체를 거의 받을 수 없었던 그녀들에게 있어 무리를 해서라도 스스로를 북돋아 주어진 일 하나 하나에 임하는 것만이 그녀들이 계속해서 활동 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행동했던 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히라가나 케야키의 자세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우시오 사리나라는 한 인간이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그녀들에게 다시 한 번 찬스가 찾아왔다.
'오모테나시회'가 끝난 지 5개월이나 지난 2017년 3월, 히라가나 케야키의 첫 단독 라이브가 열리게 된 것이다.
단 둘만의 비밀특훈
라이브 타이틀은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1st원맨라이브' 였다.
'오모테나시회'가 각각의 특기나 연기를 보여주는 자리였다면 이 라이브는 말 그대로 '노래'를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선보이기로 예정 된 곡들은 한자 케야키, 노기자카의 곡들을 더해 총 11곡. 심지어 잭슨 파이브의 'ABC'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곡은 어릴 적 자카르타에 살았던 우시오와 대만에 살았던 사사키 미레이, 영국에 살았던 다카세 마나 세 명, 다시 말 해 3명의 귀국자녀 (일명 '3인무스메')가 영어로 선보이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세계 일주를 꿈꾸어 왔고,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가 된 뒤로도 해외에서 라이브 하는 것이 목표였던 우시오에게 있어 라이브에서 외국곡을 부르게 되었다는 사실은 정말로 기쁜 소식이었다.
'히라가나 케야키에 들어 오길 잘 했어, 그 때 그만두지 않길 잘 했어'
우시오는 의욕에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그녀와는 달리 스테이지의 내용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있는 멤버들도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구치 마오였다.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춤을 못 추는 그녀가 케야키자카46의 3번째 싱글 '후타리세종'에서 솔로파트를 추게 된 것이다.
원곡을 부른 한자 케야키에서 이 부분을 소화하는 것은 히라테 유리나. 발레와 모던댄스를 융합시킨 어려운 안무 뿐 아니라 대담한 애드리브까지 소화 해 내는 히라테의 능력으로 크게 반향을 불러 일으킨 파트를 이구치가 담당하게 된 것이었다.
'농담하시는 거죠? 그거 무리잖아요. 애초에 왜 저를 고르신거예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질문을 하는 이구치에게 되돌아온 스태프의 대답은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그런 무책임한 대답을 들은 이구치는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전부터 발생 해 온 '멤버들과 스태프들의 오해'는 이 때도 어김없이 발생했던 것이다.
스태프가 이구치에게 전하려 했던 것은 '원래부터 춤을 잘 추는 아이들이 하는 것 보다 춤이 서툰 이구치가 필사적으로 춤 추는 것이 더 재미있고,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다른 사람들도 감동을 받을 것'이라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이구치 입장에서는 단순히 '재미있어 보인다'는 말만이 뇌리에 남게 된 것이다.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목놓아 울기 시작한 이구치를 보며 우시오도 울기 시작했다.
자신이 힘든 일이라면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밝게 행동 할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다 보니 감정이 이입되어 참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때부터 이구치를 위한 비밀특훈이 시작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도 오지 않은 이른 아침에 단 둘이 모여 스테이지에서 선보일 곡을 몇 번이고 반복하며 연습했다.
이구치가 보기에 우시오의 퍼포먼스는 너무나도 완벽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에 반해 자신은 박자조차 맞추지 못 하는 한심한 모습이었다.
특히 '후타리세종' 안무 중에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항상 잊어 버리는 부분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 부분 안무를 틀리지 않을까 고민 한 끝에, 해당 안무를 해야 할 때 우시오가 윙크를 해서 신호를 주기로 하였다.
그 결과, 이구치는 이 부분을 틀리지 않고 스무스하게 퍼포먼스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윙크의 효과는 특훈 때 뿐 아니라 본 무대에서도 발휘되었다. 이 윙크 덕분에 본방에서도 이구치는 안무를 틀리지 않고 춤을 출 수 있었다.
사실 연습 당시, 윙크 덕분에 안무를 틀리지 않은 이구치를 향해 우시오는 이런 말을 했다.
'이제 다 외웠으니 윙크 할 필요 없겠네'
그리고 이에 대한 이구치의 대답은
'아니, 앞으로도 사리나쨩이 윙크를 해 주면 좋겠어. 춤 출 때 사리나쨩 얼굴을 보면 기운이 나거든' 였다.
그리고 두 사람만의 비밀 신호는 그 이후로도, 아니 지금도 라이브 중에 남몰래 오고 가고 있다.
하지만 이 첫 단독라이브의
뒷편에는 아직 수 많은 문제점들이 숨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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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화
조명이 들지 않는 아이돌
팬들에 대한 첫 피로연 스테이지를 무사히 끝낸 히라가나 케야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악수회에 오는 사람들이 늘어 난 것은 아니었다. 멤버들은 변함 없이 텅 빈 악수회 레인에 서서 시간만 보내야 했다.
그런 와중에 반가운 소식이 날아 들었다. 첫 단독 이벤트, '히라가나 오모테나시회' 개최 소식이었다.
지금껏 경험 해 보지 못 한 긴 레슨과 아이돌이라는 직업의 냉엄함을 처음으로 직면한 멤버들은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주는 가운데 서서히 '유대감'이라는 것을 만들고, 강화 해 나갔다.
그리고 찾아 온 2016년 10월 28일. 이벤트 당일 아침이 밝았다.
12명이 선보인 '사이마조'
도쿄 미나토구에 위치한 라이브 하우스, '아카사카 블리츠'. 약 1000여명의 팬들이 스탠딩석을 가득 메운 가운데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 12명이 무대 위에 올랐다.
이벤트는 나가하마 네루의 인사로부터 시작되었다.
나가하마 : "오늘 이렇게 와 주신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멤버 일동 여러분과 만나기를 기대 해 왔습니다. 오늘은 히라가나 케야키의 첫 단독 이벤트입니다. 마지막까지 느긋하게 즐겨 주세요."
이벤트 전반은 가공의 '부 활동 발표회'라는 설정으로 이루어졌다.
멤버 12명을 각각 코러스부, 댄스부, 사회진행을 담당한 방송부로 나누어 지난 2주동안 연습 해 온 퍼포먼스를 선 보인 것이다.
우선 방송부 소속 이구치 마오가 입을 열었다.
이구치 : "사실 불안한 마음 밖에는 들지 않습니다만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뒤에 이어진 이구치의 토크는 말 그대로 '두려움을 모르는' 무쌍상태였다. 이구치의 토크에 회장 분위기는 한 층 달아올랐다.
뒤를 이어 사사키 미레이, 우시오 사리나 등 총 6명이 소속 된 코러스부의 차례가 돌아왔다. 코러스부는 '히라가나 케야키', '사이마조' 등을 아카펠라로 선보였다.
대기실에서 연습 할 때만 해도 '그다지 노래 잘 하지도 않는 우리가 반주도 없이 노래 하면 비웃음만 살 것'이라며 불안해 하던 멤버들도 스테이지 위에 오르자 마치 언제 그런 걱정을 했냐는 듯이 3부 화음을 넣으며 멋진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사람의 목소리란 건, 사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악기라 할 수 있어. 그러니까 너무 불안해 하지 말고 자신 있게 목소리를 내 줬으면 좋겠다."
는 스태프의 조언을 듣고 자신들의 목소리의 특징을 찾고, 밸런스를 맞추어 가며 연습 한 성과였다.
한편 댄스부는 실전 직전까지 난관에 허덕이고 있었다. 지금껏 경험 해 본 적 없는 힘든 안무를 외워야 했을 뿐 아니라, 솔로파트 때는 각자의 특기도 선보여야 했기 때문이다.
이 '특기' 중에는 실패 가능성이 높은 것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카게야마는 축구공을 이용하여 리프팅을 했고, 히가시무라는 마칭용 라이플을 돌렸다.
실제로 리허설 때는 전원이 한 번에 성공 한 적이 없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본 무대에 올라서는 누구 하나 실패하지 않고 훌륭히 특기를 선보였다.
댄스부에 이어 무대에 선 연극부 땐 12명의 멤버 전원이 즉흥극에 도전하였는데, 때때로 대사를 더듬거리기는 했어도 눈에 띄는 큰 실수는 없이 무난하게 완수 해 냈다.
이후 히라가나 케야키가 라이브 경험을 쌓아가며 그녀들의 대명사로 자리잡게 될 '승부에 강한 측면'이나 '무대 그 자체를 즐기는 자세'는 이미 이 때부터 발휘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이벤트에 있어 정말 문제였던 것은 다름아닌 후반부에 있었던 라이브 파트였다.
이 날 라이브에서 선보인 곡은 그녀들의 첫 오리지널 곡인 '히라가나 케야키'와 한자 케야키의 대표곡인 '사이마조'와 '세카아이'였다.
TV 음악 방송을 통하여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곡들을 선보인다는 것은 멤버들에게 있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도 21명으로 이루어진 한자 케야키의 곡을 12명이 선보여야 한다는 점부터가 엄청난 난관이었다.
'한자 케야키를 패러디 하는 것 처럼 보여서는 안돼.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
모든 곡에서 센터 자리에 섰던 나가하마의 뇌리는 이런 생각들로 가득했다. 물론 이런 생각은 나가하마 뿐 아니라 모든 히라가나 멤버들의 머릿속에 도사리고 있는 생각이었다.
멤버들은 불안을 공유하며 레슨에 임했다. 12명 버전으로 포메이션이 어레인지 된 '사이마조'는 아무리 연습을 해 보아도 한자 케야키만큼의 강렬한 포스가 나오지 않아 멤버들을 초조하게 했다.
그렇게 불안해 하던 그녀들을 도와주었던 것은 의외로 한자 케야키 멤버들이었다.
레슨 기간동안 한자 케야키의 댄스 리더격 존재, 사이토 후유카를 비롯한 한자 멤버들이 리허설 룸을 찾아 히라가나 멤버들에게 조언을 해 주었던 것이다.
오리지널 센터인 히라테 유리나 역시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스케줄과 스케줄 사이에 짬이 나면 리허설실을 찾아 다음 스케줄 직전까지 연습을 도와주거나, 자신이 스테이지 위에서 어떤 것들에 중점을 두는 지 등을 세심하게 조언 해 주기도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이벤트는 히라가나 멤버 12명만의 무대가 아닌 케야키자카46이라는 그룹과 그 주변 사람들이 모두 함께 힘을 모아 만들어 낸 무대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벤트 당일 무대 위에서 히라가나 케야키가 선보인 퍼포먼스는 비록 기술적으로도 부족하고 박력도 없었을 지는 몰라도, 얼굴에 경련이 올 정도로 필사적으로 미소짓고 퍼포먼스를 하는 그녀들의 모습은 관객들의 가슴을 울리는 데에는 충분하였다. 그녀들의 퍼포먼스에 감동을 받은 관객들은 그녀들에게 성대한 박수를 보냈다.
멤버들이 마지막 인사를 하고 무대 뒤로 사라진 뒤에도 관객들의 우렁찬 '히라가나' 콜은 멈출 줄 몰랐다.
공연이 끝난 뒤, 무대 뒷편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사사키 미레이는 이런 말을 남겼다.
"지금보다 더 성장하고 싶어요. '대단해'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이 당시, 12명의 멤버들은 자신들의 눈 앞에 펼쳐 질 밝은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높이 뛰어!'에 담긴 테마
이 해 11월 30일에 발매 된 3번째 싱글 '후타리세종'에 다시 한 번 히라가나 케야키의 곡이 커플링으로 실리게 되었다.
히라가나 케야키의 두 번째 오리지널곡의 제목은 '누구보다도 높이 뛰어!'였다.
전작인 '히라가나 케야키'의 차분한 분위기와는 정 반대로 디스코 뮤직풍의 경쾌한 사운드에 자유와 희망에 대한 갈망이 담긴 씩씩한 가사가 녹아 든 회심의 곡이었다.
'자 앞으로 크게 뛰어봐! 있는 힘을 다 해 다리를 들어!
따라잡지 못 할 정도로 큰 점프를!
희망의 날개를 태양이 비추어 주고 있어!
믿어 봐 You Can do! 할 수 있어 You can do! 조금만 더…'
이 곡의 안무 역시 명확한 테마가 설정 되어 있었다.
바로 '라이브 때 흥할 안무'라는 것이 그 테마였다.
한자 케야키에 비해 인지도가 압도적으로 부족한 히라가나 케야키. 오리지널 곡 수는 물론이고 인원 수 조차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었기에 한자 케야키와 함께 라이브를 해 봤자 아무런 임팩트를 주지 못 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관객들에게 임팩트를 주고, 분위기를 띄울 수 있는 신나는 안무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 임팩트 있는 안무를 만들기 위하여 댄스 레슨에서는 독특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우선 절반인 6명이 먼저 퍼포먼스를 하고, 나머지 6명은 건너편에 앉아 그 모습을 마치 관객인 듯 지켜보았다. 퍼포먼스를 하는 측은 지켜 보는 멤버들의 흥을 돋구기 위하여 실전처럼 퍼포먼스를 하고, 지켜보는 멤버들은 콜을 하면서 '어떻게 해야 관객들이 더 달아오를 수 있을 지'를 객관적으로 생각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이다. 또한, 후렴구에서는 멤버와 팬이 함께 점프를 할 수 있는 부분도 마련되었다.
그리고 히라가나 케야키의 오리지널 포즈, 일명 '히라가나 포즈' 역시 이 곡과 함께 쓰이기 시작했다. 멤버들 자신이 고안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번 곡은 지난 곡과는 달리 MV도 만들어졌다. 히라가나 멤버들에게 있어 MV촬영은 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었다.
원래부터 울보가 많은 그룹이기도 하지만, 이 MV를 찍을 때는 특히나 많은 멤버들이 울거나 의기소침 해지거나 했다.
예를 들어 어릴 때부터 발레를 배워 춤에는 자신이 있었던 사사키 쿠미는 카메라 앞에서 노래하며 춤 추려 한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 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히라가나 케야키'에 이어 2작품 연속으로 나가하마와 함께 더블 센터에 선 카키자키 역시 나가하마에 비해 안무 습득 속도가 느린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나 눈물을 흘렸다.
한편, 애초에 춤에는 자신이 없었던 이구치는 타이밍이 어긋나 혼이 나도 '항상 있는 일'이었기에 그렇게 크게 상심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MV가 공개 된 뒤, 자기 자신의 어설픔을 지적하는 무수한 댓글들을 보았을 때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이렇듯 당시만 해도 아직 미완성인 부분이 많았던 이 곡은 이후 히라가나 케야키를 상징하는 곡중 하나로 자리잡게 된다.
히라가나 케야키는 어느 사이엔가 첫 단독 이벤트를 성공리에 마무리 하면서 얻은 자신감과 라이브를 흥하게 하는 새 곡이라는 '자신들을 어필 하기 위한 새로운 무기'를 손에 넣은 것이었다.
괴로웠던 '노기자카 3기생들과의 공연'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 않았다. '오모테나시회' 이후로 몇 달이 지나도록 그녀들에게는 아무런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어 지지 않았던 것이다.
분명 같은 그룹일 터인 한자 케야키는 홍백 가합전 출장이 정해지고, 더욱 더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게 되었으며, 다시금 '전원 선발'로 발매 된 새 싱글 '후타리세종' 역시 전작을 상회하는 좋은 성적을 내었다.
한 편 같은 시기 히라가나 케야키는 새로운 일도 거의 받지 못 하고, 그저 주말에 있는 악수회만을 전전하며 시간을 보낼 따름이었다. 결성 당시만 해도 미디어의 취재가 줄을 이었지만 이 당시에는 이미 그런 취재 역시 거의 끊겨 있었다.
당시 아직 학교에 다니며 오사카에 살고 있었던 다카세 마나는 자신들을 가리켜 '완전히 커플링 악수회 아이돌'이라 자조했을 정도였다.
케야키자카46의 싱글에는 '커플링곡'에만 참가하고, 싱글 활동이라 해 봤자 주말에 있는 악수회가 전부인 자신들의 상황을 표현한 말이었다.
다카세와 마찬가지로 학교에 다니고 있던 멤버들은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로서 활동 했던 기억보다는 학생으로서 학교생활을 한 것이 더 기억에 남을 정도인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그런 자신들의 미묘한 위치를 깨닫게 해 주는 에피소드도 여러 번 있었다.
12월 중순에 방송 된 음악특방 '2016 FNS가요제' 때. 히라가나 케야키는 자매그룹인 노기자카46의 신 멤버, 3기생들과 함께 공연을 하게 되었다.
노기자카 3기생들은 그 해 9월 데뷔한 직후였기에 사실상 경력으로 따지자면 히라가나 케야키보다도 후배였고, 히라가나가 2곡이나 갖고 있는 오리지널 곡도 하나도 없는 말하자면 '생초짜'인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녀들이 함께 퍼포먼스를 하게 된 곡은 노기자카46의 '제복 마네킨'이었다.
나가하마가 센터에 서고 노기자카 3기생들이 그 옆에 서는 포메이션이었다.
하지만 나가하마 이외의 히라가나 멤버들의 자리는 맨 뒤쪽, 조명이 거의 들지 않는 곳이었다.
나가하마 이외에 화면을 통해 얼굴이 인식 가능한 멤버는 사사키 쿠미와 카토 시호 정도였기에 인터넷에서는 '나가하마 네루와 노기자카3기생들의 마네킨'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말 하자면 히라가나 멤버들은 그 존재조차도 잊혀졌던 것이다.
한자 케야키 멤버들은 이런 상황을 보고 '히라가나쨩, 전혀 화면에 비추지 않네. 안됐어.'라고 안타까워 해 주었다.
이후, 한자 멤버들의 이 발언을 전해들은 카키자키는 '우리들이 화면에 비추지 않는 건 당연한 건데 이렇게 걱정 해 주다니, 한자 선배님들 정말 다정하시네'라고 생각했다 한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던 어느 날, 멤버들끼리 패밀리 레스토랑에 갔을 때, 카토 시호가 '우리는 어쩌면 이런 취급을 받을 운명일지도 몰라'라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다른 멤버들 조차도 자조적으로 웃을 뿐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 했다.
연말에 열린 '케야키자카46 첫 원맨라이브 in 아리아케 콜로세움' 에서도 히라가나 멤버들이 참가 한 것은 오리지널곡 2곡과 한자 케야키와의 합동곡 '케야키자카의 노래'뿐이었고, 그 뒤로는 그저 무대 옆에서 조용히 한자 케야키를 응원할 뿐이었다.
그룹에 들어 오기 전, AKB48의 '드래프트 회의'라는 오디션에 참가 하였을 때, 이미 아리아케 콜로세움 스테이지에 서 본적이 있었던 카게야마에게 있어 다시금 이 스테이지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일종의 '운명'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공연 도중 '얘들은 누구야?'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관객들의 모습을 목격 한 뒤, '우리는 한자 선배님들의 '덤'으로 여기 서 있구나… 우리는 정말 작디 작은 존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말에 있었던 홍백 가합전 역시 히라가나 멤버들은 전원 집에서 TV를 통해 한자 케야키의 퍼포먼스를 보아야 했다.
한자 케야키의 멤버, 즉 '선발 멤버'가 되어 싱글 타이틀을 부르는 것이 목표였던 사이토 쿄코는 나날이 벌어져만 가는 한자 케야키와의 격차에
'아 이제 한자와 히라가나 멤버 교대는 없겠구나. 완전히 별개의 그룹이 되어버렸어'라고 생각했다.
자신들의 존재의의를 생각 하면 할수록 뭐가 뭔지 알 수 없어졌다.
심지어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이미 이 그룹이 한자만으로도 잘 굴러간다면 히라가나는 필요 없잖아. 조만간 스태프분이 '히라가나를 만든 건 실수였습니다. 오늘로 히라가나 케야키는 해산합니다'라고 말 해도 이상할 게 없겠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당시, 히라가나 멤버들은 자주 한 데 모여 고민을 이야기하곤 했다. 자신들이 지금 놓여 있는 상황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녹록치 않았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뭔가 해야만 했다.
하지만 뭔가 시도 해 보려 해도 그럴 기회조차 얻지 못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렇게 헛되게 오가는 대화 속에 멤버들의 마음은 조금씩 침식되어갔다.
하지만 그렇게 모두가 침울해 져 있을 때에도 남들 몫까지 밝게 행동하는 멤버가 있었다.
우시오 사리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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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화
첫 피로연과 첫 단독이벤트
2016년8월 상순, 히라가나 케야키 추가멤버 11명은 도쿄 도내에서 합숙을 실시하였다. 코 앞으로 다가 온 첫 피로연을 대비하여 집중적으로 레슨을 받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히라가나 케야키의 오리지널 멤버인 나가하마 네루는 한자 케야키와의 겸임으로 인하여 좀처럼 다른 멤버들과 함께 레슨을 받기가 힘들었다.
히라가나 케야키, 한자 케야키를 막론하고 케야키자카46의 모든 멤버들은 '언젠가 양 그룹간에 멤버가 교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에 복잡한 마음을 숨기고 있었다.
그리고, 첫 피로연 날 아침이 밝았다.
아무도 오지 않는 악수회
2016년 8월 13일. 하늘을 뒤덮은 구름 덕분인지 한여름의 찌는 듯한 무더위는 그나마 한 풀 가셔 있었다.
그 날은 아이치현 나고야시에 위치한 대형 이벤트 홀에서 케야키자카46의 2번째 싱글, '세상에는 사랑뿐이야' 전국 악수회가 개최 된 날이었다.
이 전국 악수회라는 이벤트는 싱글이 발매 될 때마다 전국 주요 도시들에서 열리는 이벤트로, 악수회 외에도 해당 싱글 수록곡들을 팬들에게 선보이는 미니 라이브 역시 개최되는 이벤트이다.
이 날은 2번째 싱글 활동 첫 전국악수회였다. 그리고 이 날은 2번째 싱글부터 활동에 참가한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을 팬들에게 처음으로 선보이는 피로연의 장이기도 하였다.
오전 11시, 회장안에 케야키자카46의 오버추어(공연 등이 시작 됨을 알리는 서곡)가 울려 퍼졌다.
오버추어의 뒤를 이어 시작 된 미니라이브는 우선 타이틀곡인 '세상에는 사랑뿐이야'를 필두로 싱글 수록곡 5곡이 연달아 선보여졌다.
그리고 그 중에는 나가하마 네루의 솔로곡인 '다시 만나 주세요'도 포함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가하마의 솔로곡이 끝난 뒤 울려 펴진 음악은 한자 케야키의 오버추어를 어레인지 한 히라가나 케야키의 오버추어였다.
자신들만의 오버추어에 맞추어 스테이지 위에 모습을 드러낸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 12명.
팬들 앞에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12명의 멤버들은 푸른 의상을 맞춰 입고 있었다.
이 의상은 한자 케야키의 2번째 싱글 활동 의상, 다시 말 해 흰 바탕에 푸른색 라인이 들어 간 원피스 제복을 색만 반전시킨 의상이었다.
파란 바탕에 흰 색 라인이 들어 간 원피스는 그녀들의 청초하면서도 풋풋한 모습을 더욱 더 돋보이게 해 주는 디자인이었다.
멤버들은 처음으로 이 의상을 받은 날, 다들 굉장히 신나하며 서로 사진을 찍었다.
특히나 아이돌 팬이었던 사사키 쿠미에게 있어 이 '오리지널 의상'은 '아이돌'의 상징인 동시에 그녀가 항상 동경 해 왔던 것이기도 하였다.
사사키 (쿠) : "이 의상은 정말로 제 몸에 완벽하게 딱 맞게 되어 있어요. 정말 엄청나죠. 말 그대로 저 하나만을 위한 옷이잖아요. 저희들, 정말로 아이돌이 됐네요."
의상 사이즈는 멤버 한 사람 한 사람의 체형에 맞추어 만들어 졌지만, 스커트 길이만은 조금씩 달랐다.
멤버 각자의 신장이나 다리 길이가 다 달라도 일렬로 섰을 때 밑단이 전부 같은 높이에 있도록 계산이 되어 만들어 진 스커트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의상을 입고 멤버들이 일렬로 늘어서면 치마 밑단에 들어 간 흰 선이 같은 높이에서 일직선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 해, 이 의상은 멤버 개개인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그룹으로서 통일감이 한 눈에 보이도록 많은 계산과 궁리를 하여 만들어 진 의상이라는 이야기이다.
이런 의미 깊은 의상을 걸치고, 처음으로 팬들 앞에 서서, 자신들의 첫 오리지널곡인 '히라가나 케야키'를 선보인 멤버들.
히라가나 케야키의 댄스는 케야키를 상징하는 격렬하고 스타일리시한 댄스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소박하면서도 나긋나긋한 안무였다.
그렇기에 언뜻 보기에는 쉬운 안무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곡 도중에 나오는 '멤버들이 지그재그로 교차하는 안무'에는 모든 멤버들이 한참 고생을 했다고 한다.
레슨 때에도 몇 번이나 연습을 거듭했음에도 생각처럼 잘 되지 않고 거듭 서로 부딪히거나 길을 막거나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부분 동작들을 보면 분명 간단한 안무라 할 수 있겠지만, 다른 멤버들과의 동선이나 호흡 등 신경 쓸 점이 많은 안무였던 것이다.
몇 번이나 거듭해서 안무 연습을 하는 가운데, 멤버들은 서로 눈을 바라보며 호흡을 맞추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노하우를 구사하여, 피로연 본 공연에서는 서로 부딪히지 않고 무사히 공연을 끝낼 수 있었던 것이다.
나가하마 네루와 함께 이 곡의 센터 자리에 선 카키자키 메미는 이 날의 공연에 대하여 이렇게 술회한다.
카키자키 :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을까요… 그저 아름다운 바다를 보는 것 같았어요."
어두컴컴한 회장을 가득 메운 수천 개의 사이리움. 회장에 모인 팬들은 케야키자카46의 그룹 컬러인 녹색 사이리움으로 멤버들에게 성원을 보내주었다.
카키자키의 말마따나 스테이지 위에 선 멤버들에게 이 광경은 마치 끝 없이 펼쳐진 녹색 빛의 바다처럼 보였으리라.
멤버들의 걱정과는 달리 팬들은 따뜻하게 히라가나 케야키를 맞이 해 주고, 성원 해 주며 새로운 멤버들의 출발을 축복 해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미니라이브가 끝난 뒤 이어진 악수회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수십분씩 기다려가며 악수를 해야 할 정도로 수 많은 사람들이 몰린 한자 케야키 멤버 레인에 비해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 레인에는 사람들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단 한명도 줄을 서지 않는 레인도 있었을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 우시오 사리나는 한자 멤버들의 레인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팬들과 가위바위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우시오 : "어차피 할 게 없다면 그냥 멍하게 있는 것 보다는 조금이라도 팬분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하면 팬분들도 즐거워 해 주시고, 저 역시 아무도 없어서 외롭고 쓸쓸한 상황인 것을 잊을 수 있잖아요."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은 사람이 오지 않는 상황에서도 좌절하거나 불행하다 여기지 않고, 자신들을 찾아 주는 많지 않은 팬들에게 성심성의껏 감사의 마음을 담아 대응했다.
아직 TV나 미디어에 제대로 나온 적도 거의 없는 생초짜 신인인 자신들에게 있어 그런 상황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준 시간
2번째 싱글 악수회는 약 2개월에 걸쳐 행해졌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 한자 케야키는 각종 이벤트, 페스는 물론이고 2편이나 되는 칸무리 방송을 비롯하여 각 방송국의 음악방송, 패션쇼 등 다양한 미디어에 출연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데뷔곡인 '사일런트 마조리티'가 일본 연예계 역사에 남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일까, 수 많은 사람들이 신성의 등장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냈던 것이다.
하지만 히라가나 케야키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변함없이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 쓸쓸한 악수회와 레슨, 이 두 가지만이 그녀들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심지어 유일한 오리지널 곡인 '히라가나케야키'의 안무 레슨이 끝난 뒤에는 그나마도 할 일이 없어 져, 그녀들은 다시 한 번 댄스와 보컬을 기초부터 다시 배우는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런 그녀들에게 터닝포인트가 찾아 온 것은 10월 어느 날이었다.
리허설룸에 모인 멤버들에게 스태프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단독 이벤트를 열 생각입니다'라고 입을 열었다.
생각도 못 했던 반가운 소식에 멤버들은 하나같이 들떠서 신나했다. 하지만 바로 이어진 스태프의 말은 그런 그녀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것 같은 말이었다.
'이벤트 개최일은 이번 달 말이고, 장소는 아카사카 블리츠입니다. 이번 이벤트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첫 단독 이벤트이자, 히라가나 케야키가 가진 실력을 보여 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합니다. 모두 힘을 합쳐 준비 해 주세요. 그럼 이만.'
개최 일자는 10월 말, 남은 시간은 불과 3주 남짓뿐이었다.
그녀들이 보유 한 오리지널 곡은 겨우 1곡 뿐인데다가 받는 레슨이라 해 봤자 기초 중의 기초만 하고 있는데 '단독' 이벤트를 잘 해 낼 수 있을까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안했던 것은 다름 아닌 인기…
악수회에도 한자 케야키의 수분의 1정도밖에 사람들이 오지 않는 자신들만의 힘으로 수용인원 1000명이 넘는 아카사카 블리츠를 채울 수 있을 지 걱정이 되었다.
처음으로 단독 이벤트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과, 현실적인 불안이 그녀들의 마음 속에서 어지러이 교차하며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이 이벤트의 제목은 '히라가나 오모테나시회'로 결정되었다.
'오모테나시회', 한자 케야키도 데뷔 직후에 같은 타이틀로 단독 이벤트를 연 바 있었다.
그 때는 멤버들이 각각 '부 활동'을 정하여, 마치 각 부의 발표회 형식으로 이벤트를 진행 한 바 있다.
이벤트를 앞두고 재개된 레슨 첫 날, 코러스부에 소속 되어 있던 카토 시호는 금세 난관에 봉착 해 있었다.
카토는 '생각만큼 노래가 안된다'며 울기 시작하여 스태프들을 당황케 하였다.
댄스부에 소속되어 있던 히가시무라 메이 역시 '안무가 안 외워진다', '라이플 돌리기가 잘 안 된다'며 자주 눈물을 흘렸다.
이 둘 외에도 많은 멤버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스태프들은 내심 '얘들이 잘 할 수 있을까?'라고 불안해 했다.
하지만 누군가 눈물을 흘리며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 다른 멤버들이 그 주변에 모여들어 위로 해 주며 '함께 해 보자'고 힘을 합하는 모습도 여기저기서 연출되었다.
그 모습은 마치 그녀들의 첫 오리지널 곡, '히라가나케야키'처럼 부드럽고 다정한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모습이었다.
매일 오랜 시간 레슨을 하다보니 때로는 지친듯한 모습을 비출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 조차도 휴식 시간에는 삼삼오오 모여서 동물 울음소리 흉내를 내며 노는 흐뭇한 모습은 예전과 변함 없었다.
한 가지 목적을 향하여 함께 시간을 보내는 가운데, 서로가 서로를 더 잘 알게 되고,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주는, 그룹으로서의 바람직한 모습 역시 서서히 완성되어갔다.
하지만 그런 그녀들의 모티베이션을 저하시키는 사건이 일어 났으니…
납득 할 수 없는 포지션
'오모테나시회'는 각각 '부'를 정해 성과를 발표하는 코너 이외에도 12명 전원이 참가하는 라이브 파트도 준비 되어 있었다.
한자 케야키의 '오모테나시회' 때에는 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였다.
이 날 라이브에서 선보이기로 되어 있던 곡들은 히라가나 케야키의 오리지널 곡 '히라가나케야키'와 한자 케야키의 데뷔곡 '사일런트 마조리티', '세상에는 사랑뿐이야' 총 세 곡이었다.
그녀들이 한자 케야키의 곡을 선보이는 것은 이 날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한자 케야키의 곡을 선보임에 있어 중요한 '포지션'은 레슨 성과를 보며 정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레슨 중에 스태프가 불쑥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부터 포지션을 결정 할 테니 춤 춰 봐.'
그 말을 들은 멤버들은 자신이 가진 온 힘을 다 해 최선의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스태프에게 어필하였다.
하지만 한 번 어필 한 것이 끝이 아니었다.
포지션이 결정되어 한 차례 연습을 하고 나면 곧바로 '아 그럼 XX는 3열로 가. 그리고 OO랑 YY가 자리를 바꿔'라는 식으로 포지션 체인지가 행해졌다.
이런 식으로 몇 번이고 포지션이 바뀐 뒤, 겨우 포지션이 결정되었다 싶었는데, 바로 다음날에는 또 다른 자리에서 춤을 추라는 지시가 내려왔던 것이다.
처음부터 누구는 어느 자리라고 딱 정해 주었더라면 자신이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해 춤을 배우고 연습 할 수 있었을텐데,
그렇게 하지 못 하고 몇 번이나 자리를 바꾸다 보니 멤버들 표정에서도 불안함이 묻어났다.
좋은 포지션에 서서 기뻐하다 포지션이 나빠 져 의기소침해 지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자리를 빼앗는 것 같아 괜시리 분위기가 서먹해지기도 하였다.
자연스레 리허설실의 분위기도 나날이 무거워 져만 갔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에 못 이겨 눈물을 흘리는 멤버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그 뿐 아니었다.
최종적으로 결정 된 포지션이 아무리 생각해도 퍼포먼스 능력과는 관계가 없는 포지션이었던 것이다.
의문을 갖게 된 멤버들이 '어째서 이 순서냐'고 물었을 때, 스태프가 내뱉은 대답은 '키 순서'라는 어이 없는 것이었다.
'히라가나케야키'에선 센터 바로 옆자리였던 다카세 마나는 '세카아이'에서는 키 순서대로 앞줄로 가고, '사이마조'에서는 마찬가지로 키 순서대로 맨 뒷줄로 가는 등 정신 없이 움직여야했다.
다카세 : "열심히 하면 앞으로 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결국 맨 뒤로 가게 되었지요. 아이돌이란 거 만만치 않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포지션이 변하기 전까지 열심히 외웠던 건 대체 다 뭘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어릴 때부터 댄스를 배워 왔기에 나름 춤에는 나신이 있었던 사이토 쿄코 역시 '키 순서'로 포지션을 정하는 단순한 방식에 납득 할 수 없었다.
사이토 : "저는 맨 뒷줄에서도 맨 끝자리였지만 딱히 분하거나 하진 않았어요. 비록 그 자리에 서긴 했지만 그렇다고 제가 여기서 춤을 제일 못 추느냐 하면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뭐, 말하자면 스태프분들이 적당히 정한 포지션이었고요."
물론 그룹 아이돌의 포지션이라는 것이 단순히 누가 춤을 잘 추느냐는 것을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21명이 선보이던 작품을 12명이 선보인다는 것은 결국 그만큼 객석에서 멤버 전원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스태프들은 그런 점을 감안, 모든 멤버들이 최대한 빛을 낼 수 있도록 계산해서 포지션을 짜는 것이다.
신장에 따른 밸런스 역시 그런 '감안할 점' 중 하나라 할 수 있기에, '사이마조'에서는 키가 큰 사사키 쿠미와 사사키 미레이 두 사람을 대칭을 이루도록 구성 한 것이다.
그렇기에 스태프가 이야기 했던 '키 순서'라는 말은 '거짓말'도, '적당히 정한' 것도 아니었다.
몇 번이나 포지션을 바꾸어 가며 연습을 시킨 것 역시 의미가 있어서, 어떤 포지션에서도 대응 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킨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스태프들의 의도를 멤버들이 이해 할 수는 없었다.
물론 스태프들이 어린 멤버들의 섬세한 마음을 배려 해 주지 못한 것 역시 오해를 부른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조금씩 발생하기 시작한 멤버들과 스태프들간의 오해는 이후 더 큰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예상 이상으로 모여 준 팬들
10월 중순.
팬들에게 '히라가나 오모테나시회' 개최가 발표 된 다음날, 멤버들이 참가하는 티켓 판촉 이벤트가 개최되었다.
이벤트 개최 소식은 당일 오전에 발표 되었고, 장소도 이벤트 개시 1시간 전에 공식 트위터에서만 발표되었을 정도로 게릴라 이벤트였다.
멤버들은 게릴라 개최에 평일 개최였다는 점도 있어 팬들이 모이지 않을 거라 불안해했다.
하지만 그 날 회장을 메워 준 것은 무려 700명 이상이나 되는 팬들이었다. 당일 판매분 티켓 매수를 훨씬 뛰어넘는 인원이었다.
사람이 안 와서 텅빈 악수회장을 지켜야만 했던 멤버들에게 있어 이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이 결과는 9월에 방송된 케야키자카46의 칸무리방송, '케야카케'에 히라가나 멤버들이 출연하여 다소 지명도가 올랐던 점, 그리고 그룹 전체를 통틀어서도 악수회 인기가 1, 2위를 다투는 나가하마 네루의 존재, 마지막으로 한자 케야키를 응원하던 팬들이 '히라가나의 첫 단독 이벤트'라는 의미 깊은 무대에 흥미를 가지고 참가 해 주었다는 점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으리라.
긴 여름 내내 '한자케야키'의 그늘에 가려 싹을 틔우지 못 했던 히라가나 케야키에게도 조금씩이나마 순풍이 불기 시작 한 것이었다.
그리고 10월 28일.
드디어 히라가나 케야키의
첫 단독 이벤트, '히라가나 오모테나시회' 개최일 아침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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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화
아무도 모를 눈물의 이유
2016년. 히라가나 케야키의 추가멤버 오디션에 합격, 새로운 길을 걷게 된 11명의 소녀들.
거기에 지금껏 홀로 활동 해 온 나가하마 네루를 더하여 총 12명 체제를 갖춘 '히라가나 제 2장'이 시작 된 것이다.
신체제 첫 일거리는 자신들을 소개하는 오리지널곡 '히라가나 케야키'의 녹음이었다.
하지만 이 곡이 실리게 된 2번째 싱글 '세상에는 사랑뿐이야' 때부터 나가하마는 한자 케야키와 히라가나 케야키를 겸임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가하마의 스케줄 문제로 히라가나 멤버들과 함께 레슨을 받을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히라가나 멤버들과 한자 멤버들의 대면이 이루어졌다.
언젠간 '한자' 멤버가 되고 싶어?
히라가나 케야키 추가 멤버들이 활동을 시작했을 무렵부터 멤버들끼리 자주 나누던 이야기가 있다.
'언젠가는 한자 멤버가 되고 싶어? 아니면 계속 히라가나 멤버로 남고싶어?'
물론 여기서 말하는 '한자'와 '히라가나'는 '한자 케야키'와 '히라가나 케야키'를 의미한다.
이런 질문이 이상하지 않았던 것이, 애초에 그녀들이 추가 멤버 오디션을 받았을 당시만 해도 히라가나 케야키는 어디까지나 '한자 케야키의 언더 그룹'이라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언더'라는 것을 선배 그룹인 노기자카의 예를 들어 설명을 해 보자면, 언더는 싱글 타이틀곡을 부르는 멤버들을 뽑는 '선발'과정에서 선택을 받지 못 한 멤버들을 의미한다. '선발'과 '언더'는 매 싱글마다 바뀌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멤버들 사이에 극심한 경쟁이 벌어지게 된다.
노기자카의 이런 시스템을 잘 알고 있는 멤버들 입장에서는 결국 '언더 그룹'이라 함은 곧 '언젠가는 선발인 한자 케야키에 들어 갈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여 졌던 것이다.
하지만 히라가나 케야키를 '언더 그룹'이라 한 의미가 정확히 무슨 의미로 한 것이었는지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새롭게 만들어진 이 그룹이 어떻게 활동을 해 나갈 지 역시 당연히 정해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멤버들은 각자 '언더'라는 단어를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케야키자카46의 칸무리방송 '케야카케'가 방송되지 않는 나가노현 출신 카키자키 메미는 인터넷을 통해 히라가나 케야키 오디션을 알게 되고, 이 그룹이 '언더 그룹'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조차 거의 생각 못 한 채 오디션을 받은 케이스였다.
아이돌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던 히가시무라 메이는 '언더라는 건 말 그대로 케야키자카라는 그룹 산하 그룹이라는 얘긴가?'라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오디션을 받았다.
반면 노기자카의 팬으로 언더 라이브에도 가 본적이 있는 카토 시호는 '언더'라는 단어에 딱히 마이너스 이미지는 갖고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히라가나 케야키 오디션에 합격 한 뒤, '한자 케야키 멤버들은 다 귀엽겠지? 드디어 나코쨩이랑도 만날 수 있겠다!'라고 단순히 기뻐했다.
마찬가지로 이전부터 케야키자카46 멤버들의 블로그를 열심히 읽을 정도로 팬이었던 사사키 쿠미에게도 한자 케야키 멤버들은 말 그대로 '구름 위의 존재'였다. 그렇기에 자신이 그런 멤버들과 섞여 함께 활동을 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앞서 이야기 한 질문, 다시 말 해 '앞으로도 계속 히라가나 멤버로 남고 싶냐'는 질문에 대한 멤버들의 대답은 대부분 다음과 같았던 것이다.
'저는 지금 이대로 히라가나 멤버로 남고 싶어요. 이 멤버로 계속 활동하고 싶어요.'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 중 일부는 가슴속에 은밀히 자신만의 미래상을 그리고 있는 멤버도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멤버가 바로 사이토 쿄코였다.
노력과 오디션으로 점철된 매일매일
히라가나 케야키의 현 멤버중에서도 톱클래스의 가창력과 댄스실력을 뽑내는 사이토 쿄코.
하지만 이런 능력은 천부적인 재능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명확한 목적의식을 갖고 갈고 닦아 온 노력의 결정체였다.
사이토는 초등학교 1학년 때에 발레를 시작하고, 2학년때부터는 댄스를 배워왔다.
춤을 배우며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하게 된 그녀는 장래 희망도 '프로 댄서'로 적을 정도로 춤에 푹 빠져 살았다.
초등학생 때 열린 댄스 발표회에서 가장 춤을 잘 추는 아이가 맨 앞 센터자리에 서 춤 추는 것을 뒤에서 바라보던 그녀는 '나도 춤 연습을 더 열심히 해서 언젠가 저기 서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고, 실제로 더욱 더 열심히 댄스 연습에 매진하였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에는 이미 춤이 생활의 중심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매일매일 춤에 빠져 살았을 정도였다.
이후 중학생이 된 그녀는 한 아이돌을 알게 된다.
AKB48 제 2회 싱글 선발 총선거에서 1위에 오른 오오시마 유코였다.
키는 작아도 누구보다 힘껏 손발을 쭉쭉 뻗으며 감정을 폭발시키듯 춤을 추는 오오시마의 퍼포먼스를 본 사이토는 오오시마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사이토는 오오시마가 실린 잡지나 굿즈 등을 모을 수 있는 한 모았을 정도로 열렬히 그녀를 응원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사이토 본인도 연예계에 대한 동경을 갖기 시작, 오디션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돌, 댄서, 배우… 여러 번 오디션을 받았지만 합격 하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들과 함께 온천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한 그녀에게 가족들의 칭찬이 쏟아졌다.
그녀가 '노래'에 관심을 갖게 된 날이었다.
그리고 중 3이 되어서는 댄스 스쿨을 그만두고 보컬 스쿨에 다니기 시작하였다.
그녀에게 있어 '노래'란 단순한 취미나 기분전환용 유흥거리가 아니었다.
노래방을 갈 때에도 친구들과 가기 보다는 혼자 가는 경우가 많았다.
단순히 친구들과 '놀러 가는' 곳이 아니라 '노래를 연습하러' 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홀로 노래방에 들어 가, 마이크를 잡고는 마스터 하기로 정한 곡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철저하게 익숙해 질 때까지 부르고 또 불렀다.
이전, 한 다큐멘터리 방송에서 오오시마는 '노력 한다면 누구나 오오시마 유코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네. 될 수 있어요. 물론 저와 같은 노력 한다는 게 그리 쉽지는 않을 걸요'라고 대답 한 바 있다.
스스로 그렇게 자불 할 수 있을 정도로 노력가인 오오시마 유코를 존경하고 있었던 사이토였기에 '자신의 꿈을 위해 하는 노력'은 전혀 괴로운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노래'와 '춤'이라는 두 가지 무기를 손에 넣은 사이토는 고등학교에 들어 간 뒤로는 아티스트가 되기 위하여 오디션을 받았다.
하지만 오디션 결과란 운에 좌우되기 쉬운 것, 연예계로의 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고 3이 되기 직전, 사이토는 이렇게 결심을 했다.
'이제 연예인이 된다는 꿈은 접자. 앞으로는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돌아 가, 진학 준비를 해야지'
매사에 진지하게 임해 온 그녀였기에 포기할 때 조차도 결연했다.
그토록 꿈꾸어왔던 연예계에 대한 동경을 단칼에 끊어내고 보컬스쿨마저 그만 둔 채 평범한 생활로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마치 기차가 급커브를 꺾는 것 같은 급격한 방향전환이었다.
하지만 꿈을 쫓아 달려 온 나날 동안 알게모르게 쌓아 온 작은 인연이 그녀를 다시 한 번 '연예계'라는 꿈으로 이끌어 주었던 것이다.
TV너머에 서 있던 옛 동료
사이토가 고3이 된 해의 가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새 방송 '케야카케'를 보고 있자니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 눈에 띄었다.
깜짝 놀라 라인으로 연락을 해 보니 TV에서 본 사람은 자신의 지인이 맞았다.
지인은 '케야키자카46라는 그룹의 오디션에 붙어, 멤버가 되었다'고 이야기 했다.
이 '지인'은 한자 케야키의 인기 멤버, 이마이즈미 유이였다.
사이토와 이마이즈미가 만난 것은 그녀가 고 1때의 일이었다
한 레코드 회사의 오디션 겸 라이브에 출전하였을 때, 사이토 바로 앞 순서로 노래 했던 것이 이마이즈미였다.
기본적으로 오디션장에서 만난 다른 후보자들이랑 친구가 되는 경우는 없었지만, 자신과 마찬가지로 가수가 되기 위하여 노래 실력을 갈고 닦던 한 살 아래의 이마이즈미와는 어째서인지 금새 의기투합, 연락처도 교환하며 친해지게 되었다.
그렇게 오디션장에서 만났던 친구가 지금 TV화먼 너머에 서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 같은 해 11월에 히라가나 케야키 추가 멤버 오디션 소식이 흘러나왔다.
연예인이 된다는 꿈을 접었던 사이토가 이 오디션을 받기로 한 데에는 이마이즈미의 존재와, 오디션이 '대학 입시 직전'이었다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가수나 댄서 오디션이라면 아깝게 떨어 진 적이 있지만, 아이돌 오디션은 금방 떨어지겠지. 하지만 대학생이 된 뒤에는 오디션 받기 힘들어 질 테니까 어차피 떨어 질 거 마지막으로 도전 해 보자'
라는 마음으로 사이토는 '인생 마지막 오디션'에 임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디션은 본인의 예상과는 달리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 중에서도 사이토 본인의 매력이 가장 잘 발휘되었던 것은 '쇼룸'을 통한 개인 방송에서였다.
인터넷 방송 서비스인 쇼룸을 통해 후보자들이 개인 방송을 한다는 이 기획은 비록 '심사결과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고는 했지만, 시청자의 수나 응원 수 등이 집계되는 포인트제로 운영되었다.
매사에 최선을 다 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사이토는 당연히 1위를 목표로 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방송을 하였다.
카메라 앞에서 춤을 추기도,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참고로 그녀의 대명사라고도 할 수 있는 낮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이야기 하는 모습은 이 때도 변함이 없어, 시청자로부터 '아나운서같다'는 평가를 받으며 화제를 일으켰다.
사실 이 말투는 초등학생 때 그녀의 부친이 엄하게 교육시킨 결과물이었다.
어릴 적에는 엄한 아버지 때문에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예상도 못 했던 곳에서 '그 당시 아버지가 엄격하게 가르쳐 주셔서 다행이야'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쇼룸을 통해 지금껏 자신이 해 온 노력들이, 지금껏 쌓아 온 모든 것들이 발휘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쇼룸 심사에서 1위를 차지한 사이토는 최종심사 때 케야키자카46의 '손을 잡고 돌아갈까'를 심사위원들 앞에서 당당히 노래하고, 오디션에 합격하였다.
합격 발표 직후 사진 촬영을 위하여 다른 합격자들과 함께 무대 위에 섰을 때, 그녀의 마음 속에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수 없이 받아 온 오디션 결과들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어. 모든 오디션이 결국 이 오디션으로 이어 진 거구나.'
집으로 돌아 간 그녀를 부모님이 반겨주었다. 부모님의 손에는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울기 싫어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고 있던 그녀는 그런 부모님의 모습에 속이 후련 해 질 만큼 울었다.
불안감에 틀어박힌 한자 케야키 멤버들
하지만 사이토에게 있어 오디션 합격은 어디까지나 '꿈의 시작'일 뿐 종착역이 아니었다.
그녀의 가슴 속에는 한 가지 목표가 있었다.
'이 세계에 들어 온 이상 어중간한 건 싫어. 무조건 유명 해 질 거야. 히라가나가 한자의 언더 그룹이라면 난 히라가나 중에서 가장 열심히 노력해서 한자 선발에 들겠어.'
그녀는 이미 오디션에 응모 했을 때부터 '한자 케야키' 멤버로서 싱글 타이틀곡을 부른다는 목표를 세웠던 것이다.
최연장자이면서도 춤에 자신이 없어 사이토와 함께 자주 자주연습을 했던 이구치 마오 역시 그런 그녀의 목표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녀는 실력도 의욕도 있는 사이토의 꿈이 이루어 지기를 진심으로 빌어 주었고, 객관적으로 보아도 사이토의 능력이라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2016년 8월 중순.
코 앞으로 다가온 피로연을 대비하여 집중 레슨을 받고 있으려니 갑작스레 한자 케야키와 히라가나 케야키의 합동 리허설을 하게 되었다.
나가하마 네루 이외의 멤버들에게 있어서는 선배들과 처음으로 대면할 기회였다.
리허설 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한자 케야키 멤버들이 차례차례 들어왔다.
'사이마조'로 데뷔하여 금새 '사회 현상'이라 불릴 정도의 붐을 일으키고, TV나 잡지 등 각종 미디어를 석권한 한자 케야키 멤버들이 사이토의 눈 앞에 일렬로 줄지어 섰다.
그리고 그 중에는 옛 친구, 이마이즈미 유이의 모습도 있었다.
초짜나 다름없는 자신들에 비해 한자 케야키 멤버들은 너무나도 세련되고 당당해 보였다.
눈 앞에 서 있는 20명의 '연예인'들이 뿜어내는 박력 때문일까, 리허설실의 분위기가 긴장감으로 가득찼다.
하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인사를 하며 울먹이는 멤버도 있었지만 선배를, 연예인을 앞둔 사람이라면 긴장하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하지만 갑자기 사이토가 목을 놓아 울기 시작했다.
오디션 때에도, 힘든 레슨 때에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사이토가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모습을 보며 주변 멤버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 했다.
그리고 전원이 '어째서 저렇게까지 우는거지?'라며 의문을 표했다.
이 때 그녀가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참 전부터 연예계를 동경하여 수 없이 오디션을 보고, 떨어졌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부단히 노력하여 겨우 '꿈이 시작'되는 출발선에 선 그녀가 이 때 어떤 생각을 했는 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다.
사이토 쿄코는 눈 앞에 서 있는 한자 케야키 멤버들의 당당한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아, 이건 무리다. 이 사람들은 이미 나와 차원이 달라. 내가 이런 대단한 사람들과 경쟁해서 선발에 들어 간다는 건 무리야.'
이것은 그녀 혼자만이 느낀 아이돌의 세례, 첫 '좌절'이었다.
하지만 사실 한자 케야키 멤버들 역시 이 때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을 보며 동요하고 있었다.
데뷔 싱글 '사이마조'와 2번째 싱글 '세카아이' 두 번 연속으로 전원 선발로 활동 해 왔던 그녀들은 자신들에, 히라가나 케야키와 겸임을 하게 된 나가하마를 포함한 21명의 멤버들이야말로 '케야키자카46'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당시 한자 케야키 멤버들이 자주 언급했던 이야기가 있다.
'케야키(느티나무 거, 欅)라는 한자는 21획으로 이루어 져 있어요. 그렇기에 이렇게 21명의 멤버가 모인 건 운명인 것이죠.'
어떻게 보면 매우 소녀감성을 자극하는 운명론적인 이야기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이야기에 의미를 둘 정도로 21명의 멤버들의 유대는 각별했던 것이다.
히라가나 케야키와 대면하기 직전, 한자 케야키 멤버들 대부분이 부끄러움, 불안함으로 화장실에 틀어박혀 있었을 정도였다.
사이토 쿄코와 한자 케야키 멤버들이 느낀 불안감, 공포는 그 뒤로도 오랜 기간동안 해소되지 못 한 채 앙금처럼 남아 있게 된다.
이것은 '언더'라는 단어 하나가 가져 온 저주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가운데 히라가나 케야키의 피로연 날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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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화
히라가나케야키
2016년 봄, 케야키자카46의 데뷔곡 '사이마조'가 한창 사회현상을 일으키고 있을 무렵, 히라가나 케야키의 추가 멤버 오디션 역시 막바지에 다다라 있었다.
최종심사 직정, 후보자들은 인터넷 방송 서비스인 '쇼룸'을 통해 각자 개인방송을 하게 되었다. 업계에서도 전례가 없는 시도였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방식을 통하여 그녀들 개개인의 매력이 발휘되어, 데뷔도 하기 전부터 팬들과의 인연을 맺는 멤버도 생겨났다.
그리고 5월 8일, 히라가나 케야키의 추가 멤버 11명이 결정되었다. 지금까지는 홀로 그룹을 짊어 져 온 나가하마 네루와 함께 총원 12명 체제로 '히라가나 제 2장'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례적인 속도로 만들어진 오리지널곡
합격자들의 활동은 꽤나 느긋한 페이스로 흘러갔다. 1, 2주에 한 번 정도 모여서 기초적인 댄스 스탭을 배우거나 레크리에이션 정도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명확하게 리더십을 발휘하는 멤버는 딱히 없었지만, 당시 20살이던 사사키 쿠미는 모든 멤버들에게 신경 써 주고 말을 걸어 주었고, 중 3에 불과했던 카게야마 유카는 레슨 중에 자신의 생각을 확실하게 이야기 하며 다른 멤버들이 의견을 내기 쉬운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전체적으로 보아 의사소통이 자유롭고 따뜻한 분위기의 팀이었던 것이다.
그녀들에게 있어 첫 번째 '일'은 케야키자카46의 2번째 싱글, '세상에는 사랑뿐이야'에 실린 커플링곡 녹음이었다.
일반적으로 새롭게 오디션에 합격한 멤버들이 이토록 빠르게 오리지널 곡을 받게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예를 들어 2015년 8월에 결성 된 한자 케야키가 처음으로 레슨을 시작 한 것은 같은 해 10월, 데뷔곡인 '사이마조' 녹음을 시작 한 것은 이듬해인 2016년 2월이었다. 약 반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린 것이다.
그에 비해 히라가나 케야키는 2016년 5월에 오디션에 합격 해서는 첫 녹음에 임한 것이 불과 같은 해 7월이었다. 말 그대로 이례적인 속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사실 우연히 그녀들이 가입했던 시기가 2번째 싱글 제작기간과 겹첬기에 갑작스레 결정 된 일이었다.
레코딩은 큰 스튜디오에 11명의 멤버가 전원 들어 간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노기자카의 팬으로, TV를 통해 노기자카의 레코딩 장면을 본 적 있던 카토 시호는 실제로 스튜디오에 들어 간 순간부터 가슴이 뛰었다.
'마이크가 엄청 크네. 이게 이전에 TV에서 봤던 거구나. 나도 이제부터 레코딩이란 걸 하는구나.'
레슨 때 생각대로 춤을 추지 못 해서 금새 좌절 해 버린 이구치 마오 역시 이 날의 일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나, 평범하게 살았더라면 경험하지 못 할 일을 하고 있네. 이거 대단한데? 나 지금 아이돌이네!'
하지만 아직 제대로 레슨도 하지 않았던 그녀들의 노래는 전체적으로 퀄리티가 낮았기에 디렉터가 몇 번이나 한심하다는 듯 지적을 했다.
'리듬이 엉망이야', '목소리가 제대로 안 들려', '음정이 부정확해' 등등…
헤드폰을 쓰고 있었기에 부스 밖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오는 지 확실히는 알 수 없었지만 분위기로 보아 자신들의 노래에 질려 버리고, 한심하게 보고 있으리라는 것은 유추 할 수 있었다.
녹음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두근거렸지만, 정작 녹임이 시작 된 뒤로는 자신들의 무능력함에 실망 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완성 된 음원은 그 당시의 풋풋한 그녀들 외에는 흉내 낼 수 없는 소박하면서도 천진스럽고 솔직한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히라가나 케야키46의 첫 오리지널 곡의 제목은 '히라가나 케야키'
말하자면 새롭게 출발한 그녀들의 자기소개와도 같은 곡이었다.
'앞으로 잘 부탁해 히라가나처럼 솔직한 자신의 모습 그대로
한 그루 느티나무부터 물들어 가듯 이 마을에 조금씩 녹아들었으면 좋겠어.
춤 추듯 떨어지는 낙엽들은 계절 따라 옷을 갈아 입고
어제와는 다른 표정을 한 푸른 하늘이 얼굴을 비추지'
이 곡에서 나가하마 네루와 함께 더블 센터를 맡은 카키자키 메미는 이 가사를 처음 보았을 때, '우리 얘기다'라고 느껴 져 기뻤다고 한다.
앞으로 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 곡을 부르며 자신들을 알리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기대감으로 부풀었다.
그 중에서도 후렴구의 '한 그루 느티나무부터~'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스테이지 위에서 노래 할 때, 이 부분에서 12명의 멤버들이 옆으로 죽 늘어서서 팔을 위로 들어 느티나무 가지를 표현하는 부분이 있다. 그 뒤, '사이마조'의 안무 일부분을 거쳐 마지막으로 멤버 전원이 큰 느티나무 모양으로 포메이션을 짜는 퍼포먼스를 하게 된다..
이 때만 해도 히라가나 케야키는 선배 그룹인 한자 케야키와 함께 한 그루의 큰 느티나무를 구성하는 일부분이자 함께 걸어 갈 존재였다.
'일반인들 사이에 연예인이 한 사람 있는 것 같았다'
새롭게 11명의 동료들을 맞이한 나가하마 네루는 이 때 이미 복잡한 입장에 처해있었다.
4월 말에 있었던 '사이마조' 발매 기념 악수회에는 결석 멤버들의 언더로서 미니 라이브에 참가, 한자 케야키의 곡을 3곡 함께 선보였다. 물론 그룹의 대표곡인 '사이마조' 역시.
또한, 히라가나 케야키의 합격자 발표 직후에 있었던 악수회에서 무대에 서게 되었을 땐, 한자 멤버 중 몇명인가가 원진을 짜며 '네루와 함께 스테이지에 서는 건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모두 힘을 합쳐 열심히 하자'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였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눈물을 흘리는 멤버들의 모습도.
그 뒤로도 딱히 히라가나 멤버들과 대면할 기회를 받지 못 한 채, 한자 케야키의 첫 주연 드라마 '누가 도쿠야마 다이고로를 죽였는가?'의 리허설에 참가, 그대로 다른 멤버들과 함께 드라마 촬영에 쫓기는 매일을 보내게 되었다.
어느 사이엔가 나가하마는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한자 케야키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 있었다.
6월, 나가하마에게 새로운 변환점이 찾아왔다.
케야키자카46의 칸무리 방송인 '케야카케' 녹화중에 '나가하마 네루는 2번째 싱글부터 한자 케야키와 히라가나 케야키를 겸임한다'는 내용이 발표 된 것이다.
그 순간, 나가하마를 비롯하여 여러 멤버들이 눈물을 흘리며 나가하마를 축복해 주었다.
이 결과 나가하마는 정식으로 한자 케야키의 일원이 되어 2번째 싱글 타이틀곡 '세상에는 사랑뿐이야'에도 참가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겸임'이라는 조치는 결과적으로 이후 나가하마를 괴롭히는 원인이 되며, 다른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이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고민하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하에서 히라가나 케야키의 11명의 멤버들은 조금씩이나마 레슨이나 취재 등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8월 상순에는 합숙도 하며 같은 달 13일로 예정 된 첫 이벤트에 대비하여 집중 레슨을 받았다. 추가 멤버들과 나가하마 네루가 함께 '활동'을 한 것은 사실상 이 합숙기간이 처음이었다.
양자가 처음으로 함께 '활동'을 한 것은 한 잡지의 촬영이었다.
당일 한자 케야키의 멤버로서 '도쿄 아이돌 페스티벌 2016'에 출연중이던 나가하마는 낮 공연과 밤 공연 사이에 회장을 빠져나와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들과 함께 잡지 촬영에 ㅇㅣㅁ했다.
사실 오디션이 끝난 뒤에 무대에서 스쳐 지난 정도의 관계였지만, 카토 시호나 다카모토 아야카 등 일부는 나가하마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었다.
"네루쨩이라 불러도 돼요?" 라는 질문에 나가하마는
"당연히 되지. 경어 안 써도 돼"라 대답하였다.
이틀 뒤 밤,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 12명이 한 자리에 모여 회식을 하였다.
명목은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의 친목회였지만 사실 그 의도는 나가하마와 다른 멤버들의 거리를 줄이기 위함이었다.
함께 합숙을 하며 사이가 돈독해 진 히라가나 멤버 가운데 나가하마만이 붕 떠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침없이 나가하마에게 다가오는 다른 멤버들에 비해 나가하마는 오히려 소극적인 모습이었다.
그런 자신의 모습에 대해 나가하마는 내심
'아, 나는 이번에도 늦어 버렸구나'라 생각했다.
한자 케야키에 '늦게' 가입한 뒤, 홀로 히라가나 케야키로서 활동 해 온 그녀.
겨우 동료가 생겼는데 자신의 스케줄 문제로 레슨에도 변변히 참가 하지 못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함께 오디션에 합격하여 함께 데뷔를 목표로 노력하고 있는 아이들의 그룹 안으로 들어 가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른 멤버들 역시 나가하마는 자신들과 다른 입장에 서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사카에서 올라 와 합숙에 참가했던 다카세 마나는 자신들과 나가하마의 관계를 '일반인들 사이에 연예인이 한 명 있는 것 같았다'고 표현한다.
카토 시호 역시 나가하마에 대하여 'TV에서 보던 사람'이라고 생각했었기에 사실상 자신과 같은 그룹의 멤버라는 실감이 들지 않았다.
이후로도 몇 번인가 함께 레슨을 받을 기회는 있었지만, 그 때마다 나가하마는 한자 케야키 멤버로서의 활동, 라이브나 TV촬영, 댄스 레슨 등 하드 스케줄로 인하여 항상 뒤늦게 연습에 참가하였고, 항상 '늦어서 죄송하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카게야마를 비롯한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은 맨얼굴인 자신들과는 달리 프로에게 메이크업을 받은 채 레슨을 받는 나가하마의 모습을 보며 '인기 아이돌 네루쨩과 함께 레슨을 받는다니 뭔가 신기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한다.
갑작스레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 리허설실
새로운 체제로 완성된 히라가나 케야키의 첫 피로연이 얼마 남지 않았던 어느 날, 한자 케야키와 히라가나 케야키는 합동 리허설을 갖게 되었다.
11명의 추가 멤버들에게 있어서는 이 날이 처음으로 선배 멤버들과 만날 기회였다.
나가하마 네루를 비롯한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이 리허설실에서 대기 하는 가운데, 한자 케야키 멤버들이 들어왔다.
12명의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과 20명의 한자 케야키 멤버들이 첫 대면하는 순간이었다.
'TV에서나 보던' 한자 케야키 멤버들이 눈 앞에 일렬로 늘어 서 있는 모습은 엄청난 박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선배들을 앞에 두고 히라가나 멤버들이 한 명씩 자기소개를 하였다.
이름을 이야기 하고, 특기나 좋아하는 음식을 이야기 하는 정도의 간단한 인사였지만, 긴장으로 목소리가 떨리거나 눈물을 흘리는 멤버도 있었다.
그러던 가운데, 한 멤버가 갑작스레 목을 놓아 울기 시작했다.
모두를 당황하게 만든 그 멤버의 이름은 사이토 쿄코.
사실 사이토는 남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타입이 아니다.
그런 그녀의 성격은 이미 다른 사람들도 익히 알고 있었기에 그런 그녀가 갑작스레 목을 놓아 울기 시작하였을 때엔 모두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이 때 그녀가 흘린 눈물에는 남모를 사정이 숨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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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화
카게야마 유카의 '두 번째' 오디션
2015년 11월. 히라가나 케야키의 유일한 멤버로 활동을 시작한 나가하마 네루. 초기에는 한자 케야키멤버와의 사이에 알력도 있었지만, 그녀의 성실하면서도 따뜻한 성격 덕분에 서서히 다른 멤버들과의 거리를 좁혀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않아 케야키자카46는 '사일런트 마조리티'로 화려하게 데뷔하였고, 비슷한 무렵 히라가나 케야키 추가 멤버 오디션 역시 막바지에 다다랐다.
이 오디션에서는 인터넷 방송 서비스 '쇼룸'을 이용, 최종 후보자들이 개인방송을 한다는 전대미문의 방식이 시도되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띈 것은 자신의 얼굴을 감춘 채, 딱 30분간 '라디오 방송'을 했던 후보였다. 당시 갓 중 3이 된 소녀, 카게야마 유카였다.
높은 능력 때문에 반감을 사다
2001년 도쿄에서 태어난 카게야마는 어릴 때부터 활발한 소녀로, 6살 때는 동네 축구팀에 들어갈 정도였다. 팀 내에서는 유일한 여자아이였지만, 남자 아이들에게도 뒤지지 않는 왕성한 체력을 자랑했다.
한 번은 상대방에 슬라이딩 태클에 넘어져, 손을 잘못 디디는 바람에 두 곳의 뼈가 동시에 부러지는 큰 부상을 당하기도 하였지만 그 때도 부모님께서는 '다음부터는 좀 조심하렴'이라 주의를 듣는 정도로 그쳤다. 결국 부상이 나은 뒤에는 자연스레 팀으로 돌아 가, 6학년때까지 축구를 계속했다.
그 뿐 아니었다. 유치원때부터 학원을 다니거나 영어 회화교실을 다니며 성적도 발군이었다. 학교 수업중에는 선생님의 질문이 있을 땐 항상 손을 들었고, 학급의 분위기를 선도하는 타입이었기에 자연스레 반장에도 선출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능력치가 높은 사람은 반감을 사기도 쉬운 법.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명문중학교 입시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반 아이들 중 일부가 '나댄다'고 험담을 하기 시작 한 것이다. 그 뒤로는 따돌림을 당하거나 심할 때는 누군가 필통을 훔쳐가기도 했다.
이렇게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그녀의 눈에 들어 온 것이 있었다.
다름아닌 AKB였다.
화려한 아이돌 세계에 마음을 빼앗긴 그녀는 자연스레 가족들 앞에서 AKB나 노기자카의 곡을 노래 하거나 춤 추어보이고는 했다.
힘들었던 중학교 입시가 끝나고 그녀는 일본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명문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중 1 끝무렵에 그녀에게 큰 전환기가 찾아왔다.
TV를 보고 있으려니 AKB48의 오디션 광고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 광고에 반응을 보였던 것은 의외로 그녀의 부친이었다.
"유카, 이 오디션 받아보지 그러니?"
이 때만 해도 그녀는 물론 그녀의 부모님조차 학업과 아이돌 활동의 양립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 그녀의 부친은 단순히 아이돌을 좋아하는 자신의 딸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았으면 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한 말이었던 것이다.
사실 카게야마 본인은 자신이 아이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았지만, 정작 아버지가 추천을 한 뒤로는 괜히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 한 켠에는 이런 마음도 숨겨져 있었다.
'보란듯이 아이돌이 되어서 지금까지 나를 괴롭힌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해 주고 싶어. 나한테 사인 해 달라고 조를 정도로 유명 해 지자.'
그런 마음을 가슴에 품은 채, 그녀는 인생 첫 오디션에 참가하게 된다.
해당 오디션의 명칭은 '제 2회 AKB48 그룹 드래프트 회의' 였다.
'3열 맨 구석자리'에 세워진 후보자
이 '드래프트 회의'란 AKB48그룹의 현역 멤버들이 후보자 중에서 자신의 팀원을 지명하는 유니크한 형식의 오디션이었다.
3차심사를 통과한 최종후보자들은 공식 홈페이지에 얼굴 사진과 프로필이 소개되었으며, 5박 6일에 걸친 혹독한 레슨 합숙 모습 역시 TV 카메라가 녹화, 방영되었다.
그리고 그 '최종 후보자' 둥에는 카게야마의 모습도 있었다.
2015년 5월 10일, 도쿄 아리아케 콜로세움에서 오디션 최종심사에 해당되는 '드래프트 회의'가 열렸다.
수천명의 팬들과 업계 관계자들이 지켜보고, 케이블TV가 생중계 하는 가운데 성대하게 열린 이벤트였다.
최종 후보자에 이름을 올린 것은 47명, 이 47명의 최종 후보자들은 합숙때 열심히 연습한 곡들을 스테이지 위에서 선보였다.
그 뒤, 그 모습을 본 현역 멤버들이 후보자 지명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카게야마의 이름은 마지막까지 불리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이 오디션에 임하면서 모친과 한 가지 약속을 했다.
'만약 오디션에 떨어진다면 평범한 생활로 돌아 간다'고.
아이돌이 되지 않더라도 학교로 돌아 가 평범한 중학생활을 보내면 되지 않느냐는 어머니의 바람이 담긴 약속이었다.
카게야마 역시 모친의 그 말을 순순히 받아들여, 드래프트 회의가 끝난 뒤에는 이전의 생활도 돌아 갔다.
하지만 사실 오디션을 거치면서 그녀 가슴 속에 새로운 꿈이 싹 터 있었다.
'사실 난 좀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나에게 맞는 오디션은 이 오디션이 아니라 따로 있을 지 몰라'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스테이지에서 부를 곡의 포지션이 발표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47명 중 3열 구석에 세워진 카게야마는 '벌써부터 이 자리면 데뷔 한다해도 아이돌로 활약하긴 힘들겠다'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덕분일까, 그녀는 지명을 받지 못했지만 그리 상처를 크게 받지는 않았었다.
실제로 당시 상황을 생중계한 영상을 보아도 다른 탈락자들이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 그녀만은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그녀가 드래프트에서 떨어 진 직후인 2015년 6월, 노기자카46의 후속 그룹이자 '사카미치 시리즈'의 제 2탄 그룹의 오디션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8월 21일에는 최종심사에 합격한 멤버들이 새 그룹 '케야키자카46'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카게야마는 이미 오디션 단계부터 이 새 그룹을 주목하고 있었다.
'노기자카는 아마 올 해는 반드시 홍백에 출전 할 거야. 사이토 아스카상을 비롯한 어린 멤버들도 버티고 있다는 점을 보면 분명 앞으로도 인기를 얻겠지. 그 여동생 그룹인 케야키자카도 노기자카의 기세를 타고 히트 칠 게 분명해'
사실 매사를 분석하곤 하는 것은 그녀의 버릇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의 성향이 잘 드러나는 것이 바로 '축구'.
그녀가 어떤 클럽을 응원 할 때는 단순히 팀의 전술 등에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 팀의 유스부터 대표에 이르기까지 클럽의 구조 전체를 분석해 보곤 하는 것이다.
10월이 되어 케야키자카46의 칸무리방송, '케야카케'가 시작된 뒤, 그녀는 완전히 케야키자카46의 팬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11월, 나가하마 네루의 가입과 동시에 히라가나 케야키의 추가멤버 오디션 개최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듣는 순간, 카게야마의 직감이 이렇게 외쳤다.
'어쩌면 이번이야 말로 그 순간일지도 몰라. 내가 다시 한 번 오디션을 받는다면 이 그룹밖에 없어' 라고
카게야마가 아이돌이 된다는 꿈을 아직 포기하지 못 하고 있다는 것은 그녀의 모친 역시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카게야마가 '한 번만 더 오디션을 받겠다'고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녀의 모친은 흔쾌히 딸의 부탁을 들어 주었다.
이렇게 카게야마 유카는 인생 두 번째 오디션에 임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3차심사까지 통과하였다.
일생을 관통하는 '페어 정신'
3차심사를 통과한 후보자들은 1주일간 쇼룸 방송을 하게 되었다.
요즘이야 노기자카, AKB그룹의 멤버들의 오디션에서도 같은 방식의 심사가 도입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일반인'인 후보자들에게 개인 방송을 시킨다는 것은 전대미문의 시도였다.
그 뿐 아니라 당시는 노기자카의 멤버나 케야키자카 멤버들조차도 아직 개인 쇼룸방송을 하기 전이었기에 더더욱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아 줄 지'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작 방송을 시작하고 보니 예상했던 것을 아득히 뛰어 넘는 수천명이나 되는 유저들이 그녀들의 방송을 보러 와 주었다. 처음에는 조심조심 단시간동안만 방송을 하던 후보자들도 2일째, 3일째가 되어 어느 정도 익숙해 진 뒤로는 방송 시간이 점점 길어졌고, 멤버에 따라서는 노래나 춤을 선보이면서 유저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 가운데 카게야마 유카는 소위 말하는 '라디오 방송' 형식으로 목소리만을 이용하여 방송을 하였다.
얼굴도 공개하지 않은 채 겨우 30분만을 방송하는 그녀의 방송에 대해 유저들 사이에선 '말을 재미있게 잘 한다', '아이돌부터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화제가 풍부하다'며 호평가가 줄을 이었다.
사실 얼굴을 공개한다면 할 수 있는 것들도 폭이 넓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보러 와 줄 것이다.
실제로 그녀처럼 처음에는 라디오 방송을 하다 서서히 얼굴을 공개한 후보자들도 있었다.
방송을 어떻게 진행 할 지는 개인의 자유, 카게야마는 그 자유를 이용하여 끝까지 '라디오 방송'을 관철 해 냈다.
그녀가 이렇게 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드래프트 회의 때 내 사진이나 영상이 많이 퍼졌으니 여기서 얼굴을 공개하면 그 당시 후보자였던 걸 금새 알 수 있을 거야. 물론 '얘 또 오디션 보네?'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건 별로 신경 안 쓰지만 내가 드래프트 후보생이었다는 게 화제가 되어 다른 후보들보다 주목을 받게 되면 나 혼자만 유리한 위치에서 출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잖아. 그런 건 절대로 싫어. 나는 내 힘만으로 승부 해 보고 싶어.'
이는 어릴 때부터 스포츠를 접해오며 그녀에게 뿌리박힌 '페어 정신'이었다.
그렇게 '라디오 방송'을 하기로 한 그녀는 이왕 하는 거, '진짜 라디오 방송'처럼 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다른 후보자들의 방송을 전부 보고 그 특징을 메모한 뒤, 다른 후보생들과 겹치지 않도록 화제를 고르고 자신만의 어필 포인트를 생각해 가미하였다.
이렇게 '라디오 방송'의 구성을 궁리한 결과, 매일매일 그 날에 대한 화제를 꺼내고, 정해진 시간이 되면 라이브로 노래를 두 곡 부른 뒤 유저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시간을 갖고, 마지막으로 히라가나 케야키에 대한 자신의 각오나 다음 방송에서 다룰 이야기에 대한 예고를 하는 방식으로 틀을 잡았다.
토크 능력 뿐 아니라 가창력 등도 주목을 받으며 그녀의 방송은 매 회 매 회 거듭 될수록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른 후보자들 역시 쇼룸 심사를 통해 자신만의 개성이나
매력을 전면에 내세우며 방송을 하였다. 그 결과 마지막 방송날에는 많은 멤버들이 '정말 즐거웠다', '계속 하고 싶다'며
눈물을 흘리는 예상도 못 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떻게 흘러 갈 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 했던 '쇼룸 개인방송'은 불과 1주일만에
각 후보자들의 매력을 이끌어내었고, 그 결과 그녀들은 오디션에 합격하기 전부터 '팬덤'이 형성 되게 되었던 것이다.
기대와 불안, 두 가지 감정을 느끼며
5월 8일, 도쿄 도내 모처에서 히라가나 케야키 추가 멤버 오디션 최종심사가 열렸다. 최종후보자들은 이 자리에서 처음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쇼룸 심사에서 포인트 랭킹 1위에 오른 사이토 쿄코는 개인방송을 통해 익혀 놓은 타 후보자들의 얼굴을 보면서 '모두 함께 쇼룸을 한 동료'라고 생각했다.
한편 당시 대학교에 갓 입학한 상태였던 우시오 사리나는 '그렇게 얼굴 팔려놓고 떨어지기라도 하면 학교 가서 친구 안 생긴다'며 부모님이 맹반대 하신 결과 쇼룸 방송을 하지 못 한 상태였다.
그녀는 그저 다른 후보자들의 방송을 보기만 했었기에, 자신 주변에 모여있는 다른 후보자들의 얼굴을 보며 '다들 연예인같아. 나는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라고 생각했다.
그 날 심사에서는 후보자들의 자기소개와 가창력심사가 진행 된 뒤, 심사위원들의 질의응답시간이 주어졌다. 그 날 심사위원들이 자주 물은 질문 중에는 쇼룸에 관한 질문도 많았다.
카게야마 유카는 마이크를 들고 무대 위에 올라서는 이렇게 자기소개를 했다.
"카게야마 유카, 중학교 3학년입니다. 오늘, 5월 8일은 제 15번째 생일입니다."
물론 최종심사일이 생일이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이었지만 그런 우연 역시 어쩌면 그녀가 히라가나 케야키의 오디션 광고를 보고 느꼈던 '이 오디션일지도 모른다'는 직감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마친 카게야마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팬이 된 모리타카 치사토의 '내가 아줌마가 되어도'를 불러 자신의 인생에 있어 두 번째 오디션에 당당히 합격하였다.
그리고 이 날의 심사를 통하여 '멤버가 단 한 명인 아이돌 그룹'의 유일한 멤버로 그룹을 짊어져 온 나가하마 네루와 함께 할 히라가나 케야키 추가멤버 11명이 결정되었다.
심사가 끝날 때까지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나가하마는 합격자 발표 직후 무대 위로 올라 와, 심사위원과 미디어, 그리고 새로운 멤버들의 앞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드디어 여러분과 함께 활동 할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지금은 기대로 두근거리는 마음이 큽니다만, 한편으로는 앞으로 어떻게 될 지에 대한 불안한 마음도 있어요.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끼고 있습니다만, 여러분과 함께 성장 해 나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케야키자카46이라는 그룹의 일부이지만 동시에 일반적으로 알려진 케야키자카46와는
다른,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이라는 미묘한 포지션이 주어
진 그녀들은 합격 직후로부터 다양한 벽들에 맞닫뜨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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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화
처음으로 '동료'가 된 날
케야키자카46의 오디션 최종심사 당일, 나가사키에서 도쿄로 상경 해 온 모친의 손에 이끌려 나가사키로 되돌아 가며 아이돌이 되는 것을 한 번은 단념했던 나가하마 네루.
하지만 노기자카46의 라이브를 본 그녀의 부모님은 생각을 바꾸어 딸의 꿈을 응원하기로 마음먹는다.
최종심사를 받지 않은 나가하마는 새롭게 결성되는 그룹, '히라가나 케야키'의 유일한 멤버로서 출발선에 서게 되었다.
하지만 케야키자카의 칸무리방송 '케야카케' 녹화 현장에서 처음으로 한자 케야키 멤버들을 대면하였을 때, 그녀는 한 멤버로부터 자신에 대한 확실한 '거부의사'를 목도하게 된다.
어릴 때 알게 된 '여자들, 무섭구나'
한자 케야키의 멤버 요네타니 나나미가 오디션을 받은 것은 고 1때의 일이었다. 오사카부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명문 진학교에 다니던 그녀는 학교 사정으로 심사에 늦기도 하고, 정식으로 가입하기 전부터 학업과 활동을 병행하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당연히 그녀의 부모님들 역시 아이돌이 되는 데 대해 맹반대를 하였지만, 그녀는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붙여가며 적극적으로 부모님을 설득하여 겨우겨우 케야키자카의 멤버로 합류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 앞에 갑작스레 '나가하마 네루'라는 새 멤버가 나타났던 것이다. VTR에선 부모님의 반대로 결국 오디션 최종심사를 포기하고 울기만 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특별하게 가입하게 된 것이었다.
'내가 과연 얘를 인정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든 요네타니는 거짓말을 못 하는 자신의 성격대로 두 번째 녹화가 시작되기 전에 나가하마에게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정말 미안한데, 난 너랑 친해지지 못 할 것 같다.'
나가하마는 당연히 이 선언에 큰 충격을 받았다. 곧이어 다음 녹화가 시작 되었지만, 녹화 내내 눈물을 참느라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나가하마가 이렇게 '뒤늦게 혼자 들어 와, 기존 멤버들에게 거절당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3살 때부터 나가사키현 고토열도에서 살며 '섬 주민은 모두 한 가족'이라는 환경 안에서 자라 왔던 그녀는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무렵 나가사키시의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었다. 그리고 전학 직후, 거대한 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주변 여학생들이 섬에서 자라온 붙임성 좋은 이 전학생을 '귀여운 척 한다'며 따돌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을 겪으며 나가하마는 초등학교 2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 인생관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여자들, 무섭구나. 조금이라도 눈에 띄면 바로 따돌림 당하는 거구나. 가급적 눈에 띄지 않게 다른 사람들에게 신경 쓰며 살아야겠다.'
이런 성격은 케야키자카의 멤버가 된 뒤로도 이어져, 나가하마는 다른 멤버들 안색을 살폈다.
아무리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멤버라 해도 반드시 '~상'을 붙여 불렀고, 화장을 할 때도 제일 나중에 했다. 어딜 들어 갈 때도 가장 먼저 가서 문을 열고, 다른 멤버들이 다 들어 갈 때 까지 문을 잡고 있었다.
'나는 나중에 들어 왔으니까 후배야'
라고 생각했던 나가하마는 그게 당연한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서로 끌어안았던 무대 구석
녹화일로부터 1개월 반이 지난 12월 후반, 케야키자카의 멤버들은 새로운 과제에 직면해 있었다.
2016년 1월에 개최 된 '신춘! 오모테나시회'라는 이벤트를 위하여 레슨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아직 오리지널 곡을 한 곡도 갖고 있지 않았던 케야키자카는 이 이벤트에서는 여러 '부'로 나뉘어 각자 준비한 것을 팬들에게 선보일 예정이었다.
이 때 '연극부'에 소속되었던 멤버는 총 7명. 그리고 그 안에는 나가하마와 요네타니의 모습도 있었다.
나가하마는 요네타니의 그 '선언' 뒤로 요네타니와는 이야기를 하지 못 했다. 물론 다른 멤버들에게도 쉽사리 접근하지 못 했다. '친한 척 군다'는 오해를 받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을 제외한 5명의 멤버들이 편의점에 가는 바람에 레슨장에는 나가하마와 요네타니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자연스레 레슨장 안에는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리고 그런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 해 보자 나가하마는 윗몸일으키기와 스쿼트를 시작했다.
'그럼 전 운동 할 테니까 저 신경 안 쓰셔도 돼요.'라는 의사표현이었다.
한편 요네타니는 말을 걸어야 할 타이밍을 놓쳐 초조해 하고 있었다.
사실 그녀가 당시에 썼던 블로그를 보면
'(나가하마가 가입한다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땐 혼란스럽고 불안했어요. 지금도 조금은 석연치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이젠 같은 케야키의 멤버니까요! 조금씩 조금씩 threh는 느릴 지 모르지만, 사이 좋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아직 완벽하게 모든 것을 떨쳐 낸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같은 그룹의 멤버로서 서로간의 거리를 가까이 하고 싶다는 솔직한 마음을 적은 블로그였다.
그 뿐 아니라 요네타니는 매니저에게도 나가하마와의 관계에 대해 상담을 하혼 했다. '어떻게 하면 그 때 자신이 내뱉어 버린 차가운 말을 사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그녀의 마음 한 구석에 앙금처럼 남아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의 관계가 극적으로 변화 한 것은 '오모테나시회' 당일의 일이었다.
나가하마의 가입이 발표되기 전 이미 '오모테나시회'를 경험한 바 있었던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이번 이벤트가 첫 이벤트였던 나가하마. 대기실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때부터 이미 불안함에 눈물이 흘렀다. 무대 구석에서 스테이지를 보고 있으려니 다리의 힘이 탁 풀리는 것만 같았다.
불안을 가슴에 안은 채 나가하마가 무대로 올라가려는 찰나, 누군가 나가하마의 등을 토닥여주며 말을 건넸다.
"힘 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요네타니가 서 있었다.
차마 상상조차 하지 못 했던 요네타니의 격려에 격앙된 나가하마는 결국 울음을 참지 못 하고 그 자리에서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요네타니 역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끌어안았다.
스테이지에 나가기 직전, 겨우 10여초에 불과한 일이었지만 이 일이야 말로 지금까지의 두 사람의 관계성을 완전히 역전시켜 서로를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동료'로 인식하게 된 계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서로 거리를 좁힌 나가하마와 요네타니는 이후 함께 공부를 할 정도로 절친해졌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 요네타니가 나가하마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미안해."
예전에 '너랑은 친해지지 못 할 것 같다'고 한 데 대한 사과였다.
더 이상 그 일을 신경쓰지 않았던 나가하마는 오히려 어리둥절해 하며 벙 쪄 있었다.
요네타니는 이렇듯 답답할 정도로 우직한 면이 있는 것이다.
물론 요네타니처럼 직접적으로 이야기는 하지 않더라도 나가하마의 뒤늦은 가입을 탐탁치 않게 보며 인정해 주지 않았던 멤버들은 많았다.
하지만 나가하마의 일견 도가 지나친 듯 보이는 '겸손' 안에 숨겨진 특유의 붙임성 덕분에 그런 멤버들도 서서히 나가하마를 케야키자카46의 멤버로 받아들여주기 시작했던 것이다.
2월, 케야키자카의 데뷔곡 '사일런트 마조리티'의 MV 촬영이 시작되었다.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인 나가하마 네루는 이 곡에 참가하지 못했지만 자주적으로 레슨에는 전부 참가하였고, MV촬영에도 참가하여 다른 멤버들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살이 에이도록 추운 한밤의 시부야역에서 익힌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안무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하는 멤버들.
태어 나 처음으로 경험 해 보는 MV촬영은 누구에게나 가혹한 것이었다.
하지만 추워하는 다른 멤버들을 위하여 촬영이 중지 될 때 마다 멤버들에게 따뜻한 스프를 퍼 주고, 손난로를 흔들어 가져다 주는 멤버가 있었다. 다름아닌 나가하마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따뜻함'에 이끌리기라도 한 듯 다른 멤버들도 하나 둘 그녀 주변으로 몰려 들었다.
'케야키자카46'에 나는 없어
3월이 되어 '사이마조'의 MV가 공개되었다. 그리고 그 직후 소위 '사이마조현상'이라 불릴 정도로 큰 반향을 얻게 되었다.
'너에겐 너답게 살아 갈 자유가 있어 어른들에게 지배당하지 마'
라는 메시지가 담긴 가사가 공감을 얻어, '사이마조'는 청소년 대상 잡지가 실시한 '좋아하는 곡' 앙케이트에서 1위로 뽑히기도 했다.
그 뿐 아니라 여름에 실시된 음악 특방의 아케이트에서도 AKB48, 노기자카46의 대표곡들을 누르고 1위에 뽑히는 등 데뷔곡만으로 아이돌 업계를 완전히 뒤집어 엎어버릴 듯한 기세를 뽐냈던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 '히라가나 케야키'의 유일한 멤버, 나가하마 네루의 모습은 없었다. MV촬영때와 동일하게 자켓 사진 촬영때도 함께 하긴 하였지만, 나가하마 혼자만은 카메라맨과 같은 곳에 서서 멤버들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때 본 자신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의 사진이 시부야의 패션 빌딩 벽면을 수 놓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신기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세상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는 케야키자카46라는 그룹에 내 자리는 없구나.'
2016년 4월 6일에 릴리스 된 데뷔 싱글 '사일런트 마조리티'에 수록 된 총 6곡 중에 그녀가 참가한 곡은 단 한곡. '놓친 버스'라는 곡이다.
이 곡은 '히라가나 케야키의 나가하마 네루가 센터에 선 곡'으로 만들어 진 곡이며, 그룹에 '늦게 올라 탄' 그녀의 심경을 가사로 표현한 곡이다.
'미안해 나 혼자 늦어버린 것 같아. 내가 가 보니 아무도 없었어.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랐어. 꿈으로 향하는 편도 티켓을 손에 쥔 채 언덕길 가운데서 어쩔 줄 몰라했지.'
나가하마는 이 가사를 처음 보았을 때 '신이 쓴 가사인가'라고 생각 했다고 한다.
특히 '언덕길 가운데서 어쩔 줄 몰라했다'는 부분은 오디션 최종심사날, 모친의 손에 이끌려 언덕길(나가사키는 언덕이 많음)을 오르던 자신의 모습을 하늘 위에서 신께서 보고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금세 그런 그녀에게도 '동료'가 생겼다.
전대미문의 오디션
전년 11월, 나가하마 네루의 가입발표와 함께 발표되었던 '히라가나 케야키 추가 멤버 오디션'은 케야키자카46가 '사이마조'로 데뷔하였을 때 즈음 마무리가 되었다.
4월 하순 시점에서 3차 심사를 통과한 후보자는 총 18명. 그리고 이 18명의 후보자들은 지금껏 누구도 경험 해 보지 못 한 독특한 시도를 하게 된다.
인터넷 동영상 방송 서비스 '쇼룸'을 통하여 개인 방송을 하는 것이었다.
'가상 라이브공간'을 표방한 '쇼룸'은 개개인이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을 이용하여 실시간으로 영상을 방송하는 서비스이다.
이후 한자 케야키 멤버들도 때때로 개인 방송을 하는 경우가 늘어나기도 하지만, 당시만 해도 케야키자카라는 그룹이 '쇼룸'을 이용 한 것은 이 오디션이 처음이었다.
노기자카나 AKB그룹을 포함해도 '쇼룸'을 '오디션'에 활용한 것은 이 케이스가 처음이었다.
주어진 기간은 딱 1주일. 오디션을 위해 마련된 특설 사이트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적혀 있었다.
'이벤트 기간중에 방송을 한 내용, 획득한 포인트, 순위 등을 오디션 심사 과정에 참고하겠습니다. 다만 이 내용들이 직접적으로 합격 여부에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쇼룸은 방송 중에 팬들이 보내 준 코멘트의 숫자나 소위 '선물'이라 불리는 아이템을 받은 개수 등을 포인트로 합산하는 시스템이다. 비록 '직접적으로 합격 여부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순위가 매겨지는 이상 아예 관계가 없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고, 심사하는 측도 남들 몰래 방송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모든 것이 처음인 후보자들이 이 '쇼룸'을 엄연한 심사 과정의 하나라 생각 하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었다. 심지어 심사위원들 이외에도 수천명의 유저들이 자신들을 평가하는 것이었다.
사이토 쿄코의 경우 '1등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1주일 내내 자신이 방송을 하지 않을 때는 다른 후보자들의 방송을 보는 생활을 보냈다. 그리고 그 결과, 목표로 했던 1위를 획득 해 냈다. 사이토는 이 때의 일을 '거의 '일'이라 생각하며 했다'고 술회했다.
한편 이구치 마오는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얼굴을 클로즈업 하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등 '아이돌 지망생'의 방송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자유분방한 방송을 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구치의 방송에선 유저들이 자신의 아이콘을 바꾸면 받을 수 있는 아바타, '달마(일본 장난감/장식품)'를 활용, 시청자들이 합심하여 달마 아바타를 착용하기도 하는 등 데뷔하기도 전부터 굳건한 팬 커뮤니티를 형성하기도 했다.
그러는 와중에 얼굴을 공개하지 않은 채, 목소리만으로 방송을 진행하는 특이한 후보자도 있었다.
당시 갓 중 3이
된 소녀, 카게야마 유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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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기자카46가 부모님에게 안긴 충격
집으로 돌아 갔을 때엔 이미 눈물도 더 나오지 않았다.
무표정하게 멍하니 TV를 보던 나가하마의 눈에 원래대로라면 자신이 받았어야 할 오디션의 결과를 알리는 뉴스가 비춰졌다.
활짝 웃으며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드는 합격자들의 모습.
그룹 이름은 당초 예정 되어 있었던 '토리이자카46'에서 '케야키자카46'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버지에게도 한 마디 상담 없이 독단적으로 네루를 데리고 돌아 온 어머니에게 네루의 언니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마지막까지 기회를 줬어야 하는 거 아냐? 위험해 보인다고 지레짐작해서 싹을 뽑아버리기 보다는 일단 하고 싶은대로 하게 해 보고 힘들어 할 때 도와주는 게 좋지 않았을까?"
네루의 모친 역시 아무 표정 없이 오디션 뉴스를 바라보는 네루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파왔다.
'어쩌면 내가 되돌릴 수 없는 잘못을 저질러 버린 것일지도 몰라.'
라는 생각이 들어 어머니의 마음도 혼란스러웠다.
가족들의 혼란해 하는 모습을 본 네루의 부친은 그 날 밤, 자신의 딸이 최종 심사를 받지 못 했던 바로 그 그룹, '케야키자카46'의 운영 스태프에게 전화를 했다.
"저희 아내가 딸을 데리고 돌아 와 버리기는 했습니다만, 저희가 이렇게 딸아이의 꿈을 막아버리는 것이 과연 잘 하는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애비로서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나 하는 생각에 이렇게 뻔뻔하게 연락을 드립니다."
솔직하게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하는 네루 부친의 말에는 듣는 이의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사실 이 때, 네루의 가족과 운영측 사이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신기한 인연이 양 측을 다시 이어주게 되었다.
최종심사 바로 다음날, 그리고 다다음날 이틀에 걸쳐 후쿠오카에서 노기자카46의 전국 투어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가하마 본인도 꽤나 전부터 티켓을 구입, 오매불망 기다려 온 콘서트였다.
운영 스태프의 결론은 바로 그 노기자카의 라이브에 나가하마의 부친, 모친을 초대하는 것이었다.
"일단 저희의 라이브를 한 번 봐 주세요. 라이브를 보시면 저희가 어떤 세계관을 만들고 있는 지 아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8월 23일 밤.
나가하마일가는 후쿠오카 국제센터에서 열린 노기자카46의 라이브 회장에 있었다.
그리고 나가하마 네루의 앞으로의 인생을 크게 바꾸어 버릴 무대를 목격하게 된다.
이 해 전국투어는 각 공연마다 특정 멤버에 대한 특별 VTR을 회장에 트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나가하마의 가족이 참가한 후쿠오카 공연에서는 아키모토 마나츠라고 하는 멤버와 그 아버지에 대한 VTR이 상영되었다.
아키모토 : "(노기자카에 합격했을 때) 엄마에게 전화를 했어요. 당연히 기뻐 해 줄 거라 생각했지만, 엄마의 반응은 '에…' 였지요."
아키모토는 중학교 입시를 통하여 중고 일관교인 진학교에 입학한 멤버로, 고등학생 때는 학생회장을 역임했을 정도로 우등생이었다. 그런 딸이 고 3때 갑자기 노기자카의 오디션을 받겠다고 나섰을 때, 아키모토의 부친은 맹반대를 했다. 그리고 부모의 반대로 인하여 아키모토는 오디션 합격 직후부터 활동을 쉬어야만 했다.
아키모토의 부친은 그 당시 본인이 느꼈던 갈등, 그리고 대학에 합격 한 뒤 노기자카에 복귀하여 지금 이렇게 TV안에서 자신만의 길을 열어가는 딸을 보며 느끼게 된 것에 대해 진심을 담아 적은 편지가 VTR과 함께 흘러 나왔다.
'지금껏 이야기 하지 못 했지만, 사실 지금은 활동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언제나 마나츠의 편입니다.'
라는 말로 끝맺어진 아키모토 부친의 편지를 보며 나가하마의 부친은 '내 마음과 통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다.
'아, 어느 부모건간에 다 이렇게 걱정하면서 딸을 연예계에 내보내는구나.'
나가하마의 모친 역시 콘서트를 보며 마음이 서서히 변해갔다.
지금껏 편견을 갖고 바라보았던 '아이돌'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화려한 것인지, 그리고 최선을 다 해 노력하는 멤버들의 모습이 얼마나 멋진지를 알게 된 것이다.
'이렇게 제대로 된 그룹이었구나. 우리 딸도 자신이 최선을 다 할 곳을 찾은 거구나. 그렇다면 부모로서 그 결정을 믿고 지지 해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위험하다고 과보호하기 보다는 우선 본인이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 지 이해 해 주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콘서트가 끝난 뒤, 나가하마의 양친은 운영 스테프에게 머리를 숙이며 부탁을 했다.
"이미 늦은 이야기입니다만, 부디 오디션 사퇴를 없던 일로 해 주실 수 없을까요."
하지만 최종심사를 받지도 않은 멤버를 그대로 그룹에 받아들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바로 이 순간, 나가하마 네루의 특이한 아이돌 인생이 시작 된 것이다.
나가하마 네루의 '동료'를 찾아주자
케야키자카 운영회에서는 곧바로 나가하마의 처우를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다시 한 번 최종심사 때와 같은 상황에서 오디션을 보게 하죠."
"나가하마를 그룹에 받아들일 지 말 지 팬들에게 판단 하도록 하자."
등등의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결정적이었던 것은 케야키자카의 종합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의 한 마디였다.
"부모님의 마음을 생각하면 나가하마 네루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 싶기는 한데, 이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멤버들에게 미안한 일이지. 그러니까 케야키자카46라는 그룹 내에 히라가나 표기인 별도 팀을 만드는 건 어떨까? 나가하마 네루는 그 팀의 첫 멤버로 받아들여, 그녀와 함께 활동을 할 '동료'를 뽑는 오디션을 따로 개최 하자고."
사실 케야키자카46은 당초 히라가나 표기인 케야키자카46이라는 이름으로 발표 할 예정이었다.
선배 그룹인 '노기자카46'가 그룹 이름을 지명에서 따 왔듯이 케야키자카 역시 도쿄 도내에 실존하는 '케야키자카(히라가나 표기)'에서 따 올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룹 이름을 성명학적으로 풀이 하러 갔을 때, 스태프가 실수로 점쟁이에게 한자로 표기한 '케야키자카'를 제시하였고, 점쟁이가 그 한자 표기 '케야키자카'가 엄청나게 좋은 운을 가진 이름이라 한 것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룹 이름이 한자 표기가 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 해,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명은 결국 '환상 속의 존재'로 남아버린 첫 기획을 재활용 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자 케야키와 다른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을 만듦으로 하여 나가하마에 대한 반감을 조금이나마 경감시키려는 의도였다.
아무리 운영측이 그녀에 대해 '합격 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했다 한들, 결국 그녀가 최종심사를 받지 않은 것은 사실. 그 점에 대해 그녀를 공격하는 팬들이 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를 '케야키자카의 후배'격인 포지션에 두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케야키자카의 일부분인 동시에 한자 케야키와는 다른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은 대체 어떻게 받아들이면 되는 것일까? 한자 케야키의 언더격인 존재? 하지만 지금껏 보지 못 한 완전히 새로운 형식의 무언가?
사실 이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의 위치에 대해서는 2018년 현재도 명확히 정리 되지 않았다. 운영 스태프들을 비롯하여 그 누구도 이 답을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의 역사는 다름 아닌 '소속 멤버들이 자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으며 걸어 온 여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말 잘 하고 낯가림 없는 아이'
오디션이 끝나고 약 한달여가 지난 9월 하순. 케야키자카의 매니저가 나가하마 네루를 만나기 위하여 나가사키로 향했다. 매니저의 곁에는 케야키자카의 칸무리방송인 '케야카케'의 디렉터의 모습이 보였다.
나가사키에서 나가하마와 만난 두 사람은 나가하마와 함께 그녀가 사는 마을을 걸으며 이 곳에서 어떤 생활을 해 왔는지, 그리고 최종심사날 당일에는 어떤 기분이었는 지 등을 물었다.
그리고 그 때 매니저가 느낀 감정은 '얘 잘 떠드네. 낯가림도 없고.' 였다고.
나가사키시내에서 태어난 나가하마는 3살 때부터 7살이 될 때까지 5년동안 고토열도의 한 섬에서 살았다.
그녀는 복잡한 해안선, 높낮이가 변화무쌍한 섬의 자연에서 자라난 그녀는 낚시를 해서 낚은 생선들을 뼈까지 먹고는, 나무를 타며 매일 매일을 보냈다.
맞벌이로 바쁜 부모님 대신 낮에는 이웃집 아주머니가 뒤치닥거리를 해 주는 등, 시골 특유의 '섬 사람은 모두 한 가족'이라는 분위기에서 자연스레 몸에 익혀 온 붙임성이야 말로 그녀의 성격을 이루는 근간이었다.
그녀의 운명을 바꾼 노기자카의 콘서트로부터 케야키자카에 합류하기까지 약 2개월동안은 그녀 특유의 붙임성 있는 성격을 숨기지 않고 지내 온 기간이기도 했다.
그녀가 도쿄로 상경 해 온 것은 10월. 그리고 거의 동시기에 케야키자카의 지방 출신 멤버들 역시 도쿄로 상경했다. 하지만 운영측은 일부러 나가하마의 존재를 다른 멤버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혹여 사무소에서 서로 마주치기라도 할 까 세심하게 신경을 썼고, 레슨 역시 나가하마 혼자 받도록 배려 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나가하마 본인은 새롭게 시작 될 도쿄에서의 새로운 생활에 기대를 감추지 못 하고 있었다.
오디션에 응모 했을 때만 해도 자신이 어째서 아이돌이 되고 싶은 지 잘 알지 못 했지만, 나중에 생각 해 보니 사실 탈출구가 '아이돌'이었건 아니건 상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남이 깔아 둔 레일 위를 걷기만 하는 인생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히라가나 케야키'로서 인생의 새로운 분기점을 맞이한 그녀는 혹독한 첫 '세례'를 받게 된다.
비명과 오열이 소용돌이치는 스튜디오
11월 어느 날.
'케야카케' 녹화가 이뤄지는 한 스튜디오에 나가하마가 나타났다.
그녀는 깜짝 등장을 위하여 다른 멤버들이 녹화 하고 있는 세트장 뒷편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만간 인생 처음으로 TV카메라 앞에 홀로 서게 된다고 생각하니 겁이 나고, 눈물이 났다.
스튜디오에 갑작스레 '긴급 발표! 케야키자카46 신멤버 가입'이라는 나레이션이 흘러나온 순간, 멤버들 사이에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9월에 나가사키에서 취재했던 내용이 담긴 VTR 소리를 들으며 나가하마는 오랜만에 고향 생각이 났다.
나가하마는 눈물을 닦고 세트 중심으로 걸어 가, 자기소개를 했다. 그녀의 '히라가나 케야키' 가입 소식과 함께 '히라가나 케야키 추가멤버 오디션 개최' 소식이 흘러나왔다.
사실 나가하마가 처음 등장한 '케야카케'에서는 케야키자카46 결성 후 첫 이벤트에서의 인기랭킹을 소개하고 있었다.
'CD데뷔를 위하여 모두 함께 힘을 합쳐'야 하는 시점에서 처음으로 '그룹 내 서열'이라는 것이 매겨진 데 대하여 멤버들이 충격을 받은 직후였던 것이다.
멤버들의 충격이 다 가시기도 전에 '추가 멤버 가입' 발표가 있고, '(나가하마는) 노기자카로 말하자면 언더 멤버'이며 '(이후 추가 오디션을 통해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이 들어 오면) 한자 케야키와 히라가나 케야키간에 멤버가 바뀔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발표가 이어 져, 눈물을 터뜨리는 멤버들도 있었다.
노기자카46의 언더 멤버란 싱글 타이틀 곡을 부르는 '선발' 멤버에 발탁되지 못 한 멤버들을 뜻한다.
노기자카는 매 싱글이 나올 때 마다 해당 멤버의 인기, 해당 멤버에 대한 기대치에 따라 선발과 언더를 나누는 형식이다.
다시 말 해, 모든 멤버들이 '언더'인 나가하마가 들어옴으로 하여 케야키자카에서도 결국 그룹 내 경쟁이 격화 될 것이라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런 어수선한 상황에서 첫 번째 촬영을 끝내고 두 번째 촬영이 시작되려는 찰나, '사건'이 터졌다.
나가하마의 옆에 앉아있던 멤버가 나가하마에게 '선언'을 했던 것이다.
"정말 미안한데, 난 너랑 친해지지 못 할 것 같다."
그룹에 들어 온 순간, 같은 그룹 멤버에게 엄청난 반감을 사게 된 것이었다.
멤버가 단 한명뿐인 아이돌 그룹 '히라가나 케야키'는 이렇게 파란만장한 가운데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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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화
멤버가 한 명 뿐인 아이돌그룹
2015년 8월 21일. 도쿄 도내의 한 회장에서는 후일 '케야키자카46'이라는 이름으로 데뷔 하게 될 멤버들의 최종 오디션이 열리고 있었다.
심사를 앞두고 사진촬영을 하기 위하여 무대 위에 줄지어 선 후보자들. 하지만 '후보자 번호 17번'의 자리에는 어째서인가 아무도 서 있지 않았다.
사실 이 자리에 서 있어야 할 소녀는 최종심사 당일, 나가사키에서 상경 해 오신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나가사키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 있었다.
이 소녀의 이름은 나가하마 네루.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줄여서 '히라가나 케야키'라 불리는 아이돌 그룹이 걸어 온 기구하면서도 농밀한 스토리는 다름아닌 그녀의 개인적인 사정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충동적으로 참가 한 오디션
1998년 나가사키 시내에서 태어 난 나가하마 네루.
'네루'라는 독특한 이름은 '심사숙고하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이름이다. 그런 이름 덕분일까, 어릴 대부터 총명하고 책을 좋아했던 그녀는 고등학교 역시 현내에서 1, 2위를 다투는 명문 진학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공부 자체는 싫어하지 않았기에 고등학교에 들어 간 이후로는 시험을 앞 둔 때엔 하루에 16시간씩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곤 했다. 하지만 마음 안은 언제나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고.
이 당시에 겪었던 일 중 그녀의 뇌리에 깊게 남아 있는 풍경이 있다.
그녀가 고 1이던 어느 겨울날, 학교가 끝나고 평소와는 다른 길로 집에 돌아가기 위하여 자주 타지 않는 전철을 탔을 때 보았던 풍경이다. 해안가를 따라 깔린 선로를 달리는 전철에서 보이는 나가사키의 바다가 저녁놀에 물들어 오렌지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과,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에서 때 마침 흘러나온 노기자카46의 앨범, '투명한 색'을 듣는 순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런 자신의 모습에 자기 자신도 크게 놀랐지만, 흘러 내리기 시작한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고 한다.
당시 그녀는 진학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세상 물정을 모를 어릴 때부터 해외 여행을 여러 번 경험했고, 나가사키의 국제 교류단체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기도 했던 나가하마는 막연하게 장래 희망으로 공항의 그라운드 스태프 (지상근무직원)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고등학교를 졸업 한 뒤에는 해당 분야의 전문학교에 진학 할 생각이었지만 학교측에서는 당연하게도 그런 그녀의 생각에 반대, 4년제 대학에 진학하라고 그녀를 설득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대해 그녀는 '결국 난 누군가가 깔아 놓은 레일 위에서 벗어나지 못 한 채, 학교가 원하는 대로 진학하겠지'라는 불만을 갖고 있었다.
그 결과, 자기 자신의 미래조차도 어떻게 흘러 갈 지 상상이 되지 않고 흐릿하게만 느껴졌다. 그 뿐 아니라 인간관계를 극도로 신경 쓰는 그녀 자신의 성격 탓에 교실 안에서도 어찌 해 볼 수 없는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에 응어리져 있던 것들이 눈물이 되어 흘러 나온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때는 노기자카의 뒤를 이을 새로운 프로젝트의 멤버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나왔던 때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부활동으로 PC부에 소속되어, PC로 AKB의 영상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곤 했던 그녀는 'AKB의 공식 라이벌'로 결성 된 노기자카를 초창기부터 응원 해 왔다. 당시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졌던 노기자카를 '나만의 아이돌'이라 부를 정도였다고.
물론 그녀의 마음은 어디까지나 팬으로서의 마음일 뿐, 딱히 자신이 멤버가 되고 싶다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기에 노기자카의 2기생 오디션이 열렸을 때에도 응모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이어폰에서 흘러 나오는 노기자카의 곡들을 들으며 좋아하고 행복해 했을 뿐.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고, 매일매일 갈등에 시달리면서 결국 그녀는 충동적으로 이 '프로젝트'에 응모하게 된다.
물론 응모 당시만 해도 자신이 아이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기에, 응모서류의 '지원동기'란에는 아무 것도 쓰지 않은 채 제출 했던 것이다.
'S' 평가를 받은 소녀
현재 한자 케야키와 히라가나 케야키를 운영하는 스태프들은 그녀의 응모서류를 지금까지도 잘 기억하고 있다.
우선 무엇보다 '네루'라는 독특한 이름이 눈길을 끌었고, 그녀가 다니고 있는 학교가 매우 유명한 명문 진학고라는 점도 특이했다. 그리고 응모서류에 붙어 있는 그녀의 사진 속 큰 눈동자에서는 '아이돌성'이 느껴졌다. 수 없이 보내져 온 수 많은 응모서류 중에서도 그녀의 서류는 특별하게 빛을 발하는 것 처럼 보였다.
서류심사를 통과한 나가하마는 후쿠오카에서 열린 2차 심사에 진출하였다.
그리고 심사위원들 앞에서 자신의 특기인 '원숭이 팔 (팔 관절을 역으로 꺾는 것)'을 선보인 뒤, 노기자카의 멤버인 이토 마리카의 '마릿카 '17'을 불렀다.
''우등생'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보니 밝고, 말도 잘 하는데다가 서류 사진보다도 훨씬 귀여운 아이' 이 시점에서 그녀의 오디션 서류에는 'S' 평가가 내려졌다. S는 말할 것도 없이 Special의 머릿글자. '합격' 수준을 나타내는 A보다도 더 뛰어난 경우에만 주어지는 특별한 평가였다. 이 오디션에 참가한 2만명 이상의 소녀들 중에서 S평가를 받은 것은 불과 수 명에 지나지 않았다.
2차심사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그녀의 귀에 들어 간 것은 그녀가 런던에 살고 있는 숙모의 집에 홈스테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사실 본인이 알기 전에 나가사키의 양친들에게는 연락이 갔었지만, 그녀의 부모님들은 그녀에게 그 소식을 전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가 오디션을 받았다는 것은 가족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기념삼아 응모' 한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오디션에 합격 한 뒤에도 평소와 다름 없이 학교에 다닐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 때 이미 '사건'의 씨는 뿌려졌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 때만해도 나가하마 본인은 '어차피 최종심사에선 떨어질거야'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도쿄에서 열린 3차 심사는 어디까지나 도쿄 구경을 간다는 느낌으로 참가했던 것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3차심사 역시 아무 문제 없이 통과, 오기 전에 예약 해 두었던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급하게 취소하고 운영측이 잡아 둔 호텔에 묵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가족들이 이 일에 대해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 한 것 역시 이 때가 처음이었다.
영상통화를 받은 모친의 표정에서는 숨길 수 없는 당혹감이 느껴졌다.
다음날 개최 될 예정이던 최종 오디션에 참가하는 후보자의 수는 나가하마를 포함하여 46명.
나가하마의 모친은 '어쩌고46이니까 저 46명이 전부 합격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불안해졌다.
물론 전원이 다 합격하는 것은 아니지만, 만에 하나 자신의 딸이 합격이라도 해 버린다면 이름과 얼굴이 대중에게 팔리게 된다. 기껏 열심히 공부해서 들어 간 명문 고등학교를 그만두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양친과 언니가 모여 오랜 기간 이야기를 나누어 본 결과는 '네루의 결정을 응원 해 주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가하마의 모친은 다음 날 아침, 딸을 도와 최종심사에 함께 참여하기 위하여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자신을 데리고 가기 위해 온 어머니에게 내뱉은 한 마디
오디션 당일 아침, 오디션 담당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호텔에 있던 스태프가 건 긴급 전화였다.
'나가하마 네루상이 최종심사를 사퇴, 어머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고 하는데요.'
갑작스런 소식에 깜짝 놀란 담당자는 급히 네루의 모친에게 연락을 취해, 겨우겨우 이야기 나눌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양측의 대화는 냉랭한 분위기에 금세 끝나 버렸다. 네루의 모친은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고, 본인은 한 마디 말도 없이 그저 울고만 있었다.
이 이상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어 진 담당자는 마지막으로 두 사람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주제넘은 이야기일 지도 모르겠지만, 이번 일은 기본적으로 부모와 자식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문제라 생각합니다. 네루쨩, 아이돌이 되고 싶다면 자기 마음을 어머님께 확실히 말씀 드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 어머님, 따님의 이야기를 잘 들어 보시고 다시 한 번 생각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결국, '후보자번호 17번'의 자리는 공석인 채, 최종심사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어째서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가족회의를 통해 '응원하자'고 이야기 했던 모친이 갑자기 네루를 데리고 돌아 가겠다고 이야기 하게 된 것일까?
사실 네루의 양친은 두 분 모두 나가사키의 학교에서 근무하는 선생님들이다.
견실하게 세 명의 아이들을 길러 온 양친이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엄격하게 군 적도 없었다.
나가하마 본인도 부모님으로부터 '공부 해'라던지 '그거 하지 마' 라는 식으로 주의를 받은 기억이 없다.
오디션을 받는다고 했을 때 역시 걱정하며 '응원 해 주겠다'고 해 주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쩌고46'이라는 그룹에 대해 잘 알지 못 하는 모친에게 있어 연예계라는 세계는 자신들이 알지 못 하는 미지의 세계였다.
나가사키를 떠나 하네다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홀로 가만히 생각을 하면 할수록 마음 속에는 불안만이 커져갔다.
그리고 도쿄에 내릴 때 즈음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네루를 데리고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이 확고해졌다.
어머니가 '자신을 응원하러 와 준다'고 생각하고 있던 나가하마는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돌아가자'고 말을 꺼내는 어머니의 모습에 아연실색했다.
아무리 '여기까지 온 거, 끝까지 하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해 보았지만, 지금껏 부모님에게 제대로 된 반항이라 할 것도 해 보지 않은 그녀는 결국 이번에도 부모님의 말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전, 고등학교에서 진로 문제로 고민 했던 때 처럼 다시 한 번 '다른 사람이 정한 레일 위를 걸어 갈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느낀 그녀의 마음 속에는 슬픔만이 가득했다.
지금까지 그토록 다정했던 어머니가 우격다짐으로 자신의 미래를, 가능성을 빼앗으려 든다는 점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네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던 그녀는 어머니에게 단 한 마디를 남겼다.
독기가 가득 서린 한 마디였다.
"엄마, 이제
만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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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가나 케야키의 보폭
마이페이스인 히가시무라와 카토, 다카모토는 의외로 똑부러지는 성격?
- 지난 2월, USJ에 가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다카모토 (이하 ‘다’) : 메이메이랑 사사키 미레이, 다카세 마나까지 해서 넷이 다녀왔지요.
카토 (이하 ‘카’) : 저는 사사키 쿠미랑 이틀 일정으로 다녀왔는데요, 이틀째 아침에 우연히 아야카네 일행이랑 만나서 잠시 여섯명이서 함께 돌아다니다 ‘바이바이’라고 헤어졌어요.
- 그 때 뭔가 해프닝 같은 건 없었나요?
카 : 해프닝이라 할 건 없지만, 여섯명이서 함께 헐리웃 드림 더 라이드랑 더 플라잉 다이노서를 타러 갔는데, 다카세 마나는 짐만 지켰지요. (웃음)
다 : 다카세는 절규계 코스터 종류 못 타거든요. 저희가 놀이기구 타러 간 사이에 짐 지키면서 키티쨩이랑 사진 찍고 왔더라고요. (웃음) 아, 맞다. 헐리웃 드림에 탔을 때, 잘못해서 안전벨트를 헐겁게 매가지고… 평소라면 신나서 소리 질렀을 텐데, 안전벨트가 헐겁다는 걸 알고는 벙쪄서 아무 말도 못 했어요.
- 히가시무라상은 절규계 놀이기구 타실 줄 아나요?
히가시무라 (이하 ‘히’) : 좋아해요.
- 타시면 어떤 식으로 리액션 하시나요?
히 : 그냥 엄청 소리질러요. (웃음)
- 그러신가요. 평소에는 워낙 조용하셔서 상상이 잘 안 되는걸요. 다카모토상과 사이가 좋으신 것으로 아는데, 두 분이 유원지에 놀러가신 적도 있나요?
히 : 네. 둘이서 후지큐 하이랜드에 다녀 간 적 있어요.
다 : (히가시무라와 시선을 맞추며) 후지야마 탔던가? 아… 맞다 도돈파 탔었지.
히 : 후후후후.
- 히가시무라상은 그 날 어떠셨나요? 막 들뜨셨나요?
다 : 네. 엄청 들떠서 시종일관 막 소리를 질러댔어요. 메이메이는 들뜨면 소리 지르는 타입이거든요.
- 카토상은 절규계 놀이기구 괜찮으신가요?
카 : 아뇨. 애초에 높은 곳도 싫어하는걸요. 하지만 다 함께 신나서 즐기고 싶은 마음도 있고, 무엇보다 바보라(웃음) 타 버리곤 해요. 그리고 나서 후회하지만.
- 후회 하시는 건가요. (웃음)
카 : 하지만 그러고 나서 또 타고 싶어지곤 해요. 발전이 없는거죠 (웃음)
다 : 제트 코스터 탈 때마다 뭔가 혼잣말을 계속 하는데요, 잘 들어보면 살려달라고 그러는 거예요. (웃음)
카 : 사실 예전에 사사키 쿠미가 ‘무서우면 나코 나코라고 외쳐봐, 그럼 편해질거야’라고 해서 그렇게 하고 있어요. 아, 그리고 절규계 놀이기구 타면 자기자신과 대화를 하는 거, 저 뿐만이 아니에요. 사사키 쿠미도 혼잣말 엄청 하거든요. ‘와, 대단한데’라는 식으로. 엄청 아줌마처럼 혼자 중얼거려요. (웃음)
- 히가시무라상과 카토상은 어딘지 모르게 ‘마이페이스’스러운 부분이 있는데, 다카모토상은 어떠신가요?
다 : 저도 마이페이스예요. (웃음) 다른 사람과는 다른 저만의 시간이 흐른다고 생각하거든요.
- 히가시무라상과 카토상 중에서는 어느 분이 더 마이페이스신가요?
카 : 누구라 할 것 없이 둘 다 시간 개념이 좀 느슨해요. 하지만 둘 중 누가 더 느슨하냐 하면 무조건 메이메이요.
- 히가시무라상, 카토상이 저렇게 말씀하시는데요?
히 : 어… 음… 네. 제가 봐도 제가 더 느슨한 것 같아요.
-얼레, 그냥 인정 해 버리시네요. 그럼 어떤 부분이 느슨하신가요?
히 : 놀기로 약속 했을 때에 한정된 얘기긴 하지만, 준비를 엄청 느긋하게 하곤 해요.
다 : 보통 준비를 시작하는 건 같은 타이밍인데 메이메이는 엄청 오래 걸려요.
히 : 후후후후.
다 : 그런 거 잘 아니까 저도 그냥 느긋하게 기다려요. 메이메이를 채근 하고 싶지도 않고요.
- 이렇게 상냥한 사람이니까 히가시무라상이 그토록 따르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드네요.
히 : 네. 그렇지요.
- 히가시무라상이 보시기에 카토상은 마이페이스인가요?
히 : 마이페이스요? 음… 네. 그냥 평범하게 마이페이스라 생각해요.
카 : 저도 일 관련된 게 아니면 자주 늦는 타입인데요, 최근에는 그래도 늦어도 20분 정도예요. 예전에 비하면 엄청 좋아졌죠.
- 아니 대체 예전에는 어떠셨길래…
카 : 음… 제일 심할 땐 3시간까지 늦은 적 있어요.
- 그거 완전 그거네요. 약속시간이 되어서도 안 와서 친구가 ‘어디야?’라고 전화 하니까 거기에 대고 ‘미안, 아직 집이야’라고 얘기하는 거. 대체 어쩌다가 그렇게까지 늦으신 거예요?
카 : 어째선지 ‘서두르자’라는 생각이 안 들어요.
히 : 아, 알 것 같아.
카 : 물론 저 나름대로는 ‘적어도 이 때 까지는 나가야지’라고 생각은 하는데요, 아무리 노력해도 그 시간에 맞추지를 못해요. 그러다 10초만 늦어도 ‘어차피 늦었는데 뭐 여유있게 준비하자’고 생각 해 버리죠. 그 때문에 매일같이 엄마한테 혼 났어요.
히 : 응. 저도 자주 ‘왜 그렇게 서두를 생각도 안 하냐’고 혼나곤 했어요. 후후후후.
- 카토상과 히가시무라상 두 분이 약속을 하시면 어떻게 될 지 궁금하네요.
카 : 둘이서만 놀러 가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아마 엄청 잘 맞을 것 같은데요. (웃음)
- 서두르지 않는 사람들 끼리. (웃음)
카 : 사사키 쿠미도 의외로 시간 개념이 느슨해요. 둘이서 자주 놀러 다니곤 하는데, 제가 늦어서 ‘오늘 몇 분 정도 늦을 것 같아’라고 연락을 하면 ‘어? 나도!’라고 대답하곤 해요.
- 그렇군요. 다카모토상, 지금 저 두 분이 어떤 말 하는 지 이해 되세요?
다 : 저 같은 경우, 멤버들과의 약속에는 안 늦지만, 고향 친구들과 만날 때는 자주 늦곤 하거든요. 그렇기에 생각했던 시간이 지났을 때 자포자기하는 그 마음은 알 것 같아요. (웃음)
- 알고 보면 다카모토상도 같은 부류… (웃음)
다 : 도쿄에 있을 땐 그래도 똑부러지는 편이지만, 카나가와에 돌아가는 순간 루즈해 진다 해야 할까요. (웃음)
- 카토상, 히가시무라상. 대기실에서는 엄청 활달하시다고 들었습니다.
히 : 네. 헤헤헤헤.
카 : 멤버들이랑 함께 있으면 즐거워서 저도 모르게 엄청 시끄러워져요. (웃음)
신곡 ‘두고 봐’에 담겨 있는 뜨거운 마음.
- 다카모토상, 예전에 카토상과 히가시무라상에 대해 ‘순수하다’고 이야기 하신 적 있는데요.
다 : 네. 순수하다고 생각해요.
카 : 메미라던가 사사키 쿠미도 자주 저한테 ‘순수하다’는 말을 하는데, 사실 어떤 뜻으로 하는 말인지 모르겠어요.
- 다른 사람의 말을 금방 믿어버린다는 뜻 아닐까요.
카 : 네. 그런 점은 분명 있어요. 경계해야 하는 사람이 아닌 한, 그다지 의심을 안 하거든요.
- 그럼 최근 들어 의심 없이 믿어 버린 적은 있나요?
카 : 매일 그러는걸요. (단호하게)
- 잘 모르고 들으면 엄청 좋은 얘기 한 줄 알겠어요. (웃음) 다카모토상은 히가시무라상의 어떤 부분을 보고 ‘순수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다 : 화가 나거나 슬프거나 할 때 금새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정을 숨기지 않는 부분을 보면 순수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히 : 후후후후.
- 마음을 허락한 다카모토상 앞이라 그런 게 아닐까요.
다 : 딱히 그렇지도 않아요. 언제나 어디서나 그러는걸요. (웃음)
- 그런가요. (웃음) 사소한 일에도 감정이 풍부하신 건가요.
히 : 음… 작년 제프 투어 레슨 때 포이 (저글링용 도구)를 집에 깜빡하고 두고 왔을 때 운 적이 있긴 해요.
- 결국 가지러 가셨나요?
히 : 아뇨. 집이 멀었기에 가지러 갈 수 없었어요. ‘꼭 가져와야 한다’고 하셨는데 너무 죄송해서 그만…
- 책임감 때문에 운 거군요. 카토상과 히가시무라상 두 분 초조해지실 때는 있나요?
히 : 타야 할 전철이 출발할 것 같을 때 초조해져요. 미리 가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되다 보니 항상 아슬아슬하게 역에 도착하거든요.
다 : 토시쨩은 초조할 때 자기 입으로 ‘아 초조해’라고 얘기 해요. (웃음)
카 : 응. 얘기 하지. (웃음) 특히 화장 할 때 자주 그래요. 예전에는 정말 화장에 목숨 건다 해도 좋을 정도로 화장을 중요하게 생각 했기에, 화장 과정을 하나라도 건너 뛰면 ‘아 어쩌지…’라고 초조해 지고, 슬퍼져요.
- 작년 여름, 카토상은 마쿠하리 라이브 때 넘어지셨지요. 평소에도 자주 넘어 지시나요?
카 : 아, 네. 자주 넘어져요.
- 히가시무라상은요?
히 : 저도 자주 넘어져요. 요 전에 편의점에 갔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뛰다가 넘어졌어요. (웃음) 양 손에 봉지를 들고 있었거든요.
- 위험했네요.
(다카모토와 히가시무라가 서로를 바라보며 킥킥 웃는다.)
- 왜요?
다 : 그 때, 케이크만은 지켜보겠다고 엄청 소중하게 끌어 안았거든요. (웃음)
히 : (가만히 얼굴을 붉힌다)
- ‘케이크는 지켜야해’라고 생각 하신 거예요?
히 : 무의식적으로 지켰어요. (웃음)
- 케이크가 눈 앞에 있으면 텐션이 오르나요?
히 : 네. 올라요.
- 그럼 그 외엔 어떤 때 또 텐션이 오르나요?
(다카모토와 히가시무라가 또 다시 서로를 바라보며 킥킥 웃는다)
히 : 레슨이 끝나고 방으로 돌아 가, 그 날 배운 춤을 복습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엄청 텐션이 올라요. (웃음)
- 춤 추는 거 좋아하시는군요.
히 : 네. 좋아해요.
- 아까 전부터 두 분이 서로 바라보며 웃으시는데요, 히가시무라상은 다카모토상의 어떤 점을 좋아하시는 건가요?
히 : 에… 음… 집에 놀러 가면 감을 깎아 주거나, 제가 이런 성격이다 보니 항상 도움만 받아요.
- 다카모토상이 남자였다면 결혼도 생각 해 봤을만 했을까요?
히 : 에?! (웃음) 하지만 역에서 ‘여기로 와’라고 팔을 잡아 이끌어 주곤 해요.
- 완전 훈남이네요. (웃음) 카토상이 보시기에 다카모토상은 똑부러지는 성격 같으신가요?
카 : 텐션은 완전 요즘 여고생인데, 근본적으로는 성실하고 진중한 편이라 생각해요.
다 : 오늘 여기 있는 셋 중에서는 비교적 똑부러지는 편이라 할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평범한 환경에서 보자면 그냥 평범한 편이었을 거예요. (웃음)
- 분명 이 셋 중에선 가장 똑부러진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웃음) 그러고 보니 여러분, 1월 30일부터 2월 1일에 걸쳐 열린 부도칸 공연에서 멋진 퍼포먼스를 선보여 주셨는데요, 부도칸이라는 유서 깊은 공연장에서 3일이나 라이브를 해 보시고 나니 자신감이 좀 생기셨나요?
카 : 부도칸에서 3일이나 라이브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솔직히 ‘관객분들 안 오시는 것 아닌가’하고 걱정을 했는데요, 결과적으로 추가좌석까지 열 정도로 마무리 되어서 정말 기뻤어요. 히라가나 케야키를 응원 해 주시는 분들이 이렇게나 늘어 났구나 라는 것을 실감 했어요.
다 : 1년 전을 생각 해 보면 저희가 이토록 큰 회장에 설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만으로도 엄청 감동적이었어요. 그룹이 성장하는 스피드에 뒤쳐지지 않도록, 부도칸의 크기에 압도당하지 않는 퍼포먼스를 보여드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어요.
히 : 부도칸에서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보여드렸어요. 서프라이즈로 히라가나 케야키 명의의 앨범을 내게 되었다는 발표가 있었던 것도 기뻤어요.
- 부도칸 공연 앙코르에서 히라가나 케야키 1기생의 신곡 ‘두고 봐’를 처음으로 선보이셨는데요, 이 곡을 부르실 땐 어떤 마음으로 부르셨나요?
히 : 부도칸에 임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곡이기도 하기에, 그 마음을 담아 노래 했습니다.
다 : ‘두고 봐’라는 제목만 들어서는 오해 하시기 쉬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곡, 결국 마지막에는 행복 해 지는 곡이거든요. 그런 가사가 여러분께 전해지도록 그 점을 의식해서 불렀습니다.
카 : 갓 완성 된 따끈따끈한 곡이었기에, 부도칸 땐 사실 안무가 틀리진 않을 지, 가사가 틀리진 않을 지 걱정을 많이 했어요. 앞으로 점점 더 많이 부르다 보면 더더욱 좋아 질 거라 생각합니다.
- ‘앞으로 히라가나 케야키가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싶은 목표가 있다면 가르쳐 주세요.
카 : ‘부도칸 사상 가장 지명도가 낮은 그룹’이라는 말을 들었기에, 더욱 더 많은 분들께 저희 히라가나 케야키의 이름을 알려 드리고 싶어요.
다 : 그러기 위해서라도 히라가나 케야키 명의로 음악 방송에 나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히 : 에… 에… 음… 음… USJ에서 라이브를 하는 게 목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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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히라가나, 동경을 넘어 마주한 미래
히라가나 케야키에게 있어 2017년이란 나가하마 네루의 겸임 해제와, 2기생들의 가입이라는 복잡한 감정을 남긴 한 해였다. 결성 당시에는 한자 케야키의 ‘언더 그룹’이라고 인식되었던 그녀들은 차차 조금씩 단독 활동을 늘여 가며 한자 케야키와는 다른 개성을 뽐내는 ‘히라가나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 2017년에는 제프 투어를 비롯하여 첫 주연드라마 ‘리마인드’, 2기생 가입 등 히라가나 케야키 여러분들의 단독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 된 한 해라고도 할 수 있을텐데요, 여러분께서는 지난 한 해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카키자키 (이하 ‘카’) : 라이브로 기억되는 한 해 였어요. 히라가나의 단독 투어가 3월에 시작되어, 여름에는 한자 선배님들과 함께 투어를 하기도 했기에, 지금 생각 해 보면 일년 내내 라이브를 했던 것 같아요. 라이브 준비 기간까지 감안하면 정말 마쿠하리에서 있었던 투어 파이널 (8월 30일) 까지는 말 그대로 라이브 활동을 이어 왔던 것 같아요.
이구치 (이하 ‘이’) : 제게 있어서는 ‘바쁜 한 해’ 였어요. 작년에는 어느 쪽이냐 하면 아이돌로서 활동하지 않은 날이 더 많았던 것 같을 정도인데요, 올 한 해는 이런 비중이 역전 된 한 해였거든요. 여유 있게 생각을 할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바빴고, 주어진 스케줄을 소화하는 것 조차도 벅찰 정도였는걸요.
카토 (이하 ‘시’) :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 많았고 그 덕분에 성장 할 수 있었던 한 해라고 생각해요. 투어라던가 드라마 촬영은 물론이고, 개인적으로는 ‘걸즈 어워드 2017 F/W’ 때 처음으로 런웨이에 서게 된 게 정말 의미 있었어요.
- 그렇게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내면서 한자 케야키와 히라가나 케야키 사이의 관계에 변화가 있었나요? 특히 카키자키상과 카토상은 한자 오디션도 보셨기에 한자 케야키에 대한 마음이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이 : 저는 딱히 변한 게 없는 것 같아요.
시 : 관계면에서는 그다지 변한 것 같지 않아요. 제게 있어서는 언제까지고 동경의 대상인 선배님들이신걸요.
카 : 저는 조금 변한 것 같아요. 처음에는 한자 케야키가 ‘구름 위 존재’ 처럼 까마득한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여름 투어 즈음해서부터는 조금씩이지만 ‘지기 싫어’라던지 ‘따라잡고 싶어’ 같은 마음이 생겼어요. 투어를 같이 하며 가까이서 한자 선배님들의 리허설을 볼 기회가 생겼는데, 저희와의 차이가 너무나도 뼈저리게 느껴지더라고요. 오리지널곡 수도 비교가 안 되는데다가, 스테이지 연출면에서도 엄청 멋졌기에 ‘아… 부럽다’라고 생각했지요. ‘우리도 저런 거 해 보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고요.
- 카키자키상은 ‘이대로 질 수는 없다’는 라이벌심이 생기신 거군요. 그럼 멤버들끼리도 두 그룹을 비교 해 보곤 하나요?
카 : 7월에 있었던 ‘케야키 공화국’ 공연 이틀째에 더블 앙코르가 있었는데, 그 때 저희는 스테이지에 서지 못 하고 그저 무대를 바라 볼 수 밖에 없었어요. 그 때, 그런 상황에 대해 ‘분하다’거나 ‘슬프다’고 이야기 하는 멤버들이 많았기에 저도 그 모습을 보며 ‘아, 나 뿐 아니라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구나’라고 깨닫게 되었어요. 그리고 네루가 겸임해제가 되고 처음 맞이한 공연 (제프 삿포로 공연) 때에도 멤버들끼리 모여 ‘네루가 없는 히라가나는 못 쓰겠다는 말을 듣기는 싫다’는 이야기를 하며 엄청 기합을 넣었어요. 그 덕분에 마음이 실린 공연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피할 수 없는 ‘비교’의 굴레를 넘어
- 점차적으로 활동 경험을 쌓아가며 ‘어쩌면 우리 개성은 이것일지도 모르겠다’고 깨닫게 된 점은 있나요?
시 : 여름 전국투어 때, 관계자분께서 ‘히라가나 케야키가 등장한 순간, 회장의 분위기가 확 바뀌더니 확 달아올랐어’라고 칭찬 해 주셨는데, 그게 정말 기뻤어요. 그 때부터 히라가나의 매력은 ‘해피 아우라’를 뿜어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 : 저도 시호쨩과 마찬가지로 히라가나 케야키의 매력은 ‘해피 아우라’라고 생각해요.
시 : 이구치, 의식한 적은 없겠지만 너한테도 엄청 나와!
이 : 그래? 전혀 모르겠는데. (웃음)
카 : 최근에는 그냥 할 말 없으면 일단 ‘해피 아우라’라 이야기 하고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웃음) 음.. 아직 히라가나에는 그것 외에 딱히 내세울 게 없는 걸까…
- 첫 주연 드라마도 히라가나 케야키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중요한 일이었다 생각하는데요.
카 : 드라마 촬영, 정말 즐거웠어요. 끝나는 게 정말 아쉬웠어요.
시 : 한자 케야키 선배님들께서 몇 번이나 ‘드라마 촬영 엄청 힘들었다’고 말씀 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기에, 처음 드라마 얘기가 나왔을 땐 ‘설마..’라고 생각했어요. 정말로 마이너스한 생각밖에 안 들었지만, 실제로 워크숍에 참가 하고, 촬영이 시작 되고 나서는 정말 좋은 감독님, 스태프 분들 덕분에 연기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고, 힘든 일 같은 건 하나도 없었어요. 매일매일 정말로 즐거웠지요. 아,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건 좀… (웃음)
이 : 저도 선배님들께서 들었던 얘기에 비해서는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았어요. 아, 물론 첫 화에서 퇴장 해 버려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요. (웃음) 아까 전에 ‘차분히 생각 할 시간조차 없었다’고 말씀 드렸지만, 드라마 촬영 기간은 그래도 여유가 조금 있었어요. 오랜만에 예전으로 돌아 간 것 같았지요. (웃음)
- 히라가나 케야키 특유의 ‘해피 아우라’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시리어스한 분위기의 드라마였는데요, 정작 연기를 하는 분들은 즐기셨다는 얘기군요.
시 : 한자 케야키 선배님들과는 그룹 분위기 자체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처음에는 저희들 자신도 ‘학교를 무대로 한 러브 스토리가 아닐까?’라고 망상하곤 했어요. 정작 제작이 시작되고 보니 러브스토리는 커녕 좁은 곳에 감금되는 스토리였지만요. (웃음) ‘아, 한자 케야키 선배님들이랑 같은 분위기네! 이거 비교 당하겠는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열심히 한 것 같기도 해요.
- 한자 케야키와 비교 당한다는 점은 자각하고 계신 건가요?
시 : 네. 항상 매사에 비교 당한다는 의식은 갖고 있습니다. 뭐,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나 친구들 조차도 기본적으로 케야키자카라고 하면 한자 케야키자카 분들밖에 모르지만요.
이 : 아, 저도 아는 사람에게 ‘노기자카에도 히라가나 노기자카가 있어?’라는 질문 받아 본 적 있어요.
일동 : (웃음)
이 : 그래서 ‘사실 처음에는 우리, 노기자카 선배님의 언더 멤버 개념으로 시작했는데, 어느 사이엔가 완전 다른 그룹처럼 되어 버렸어’라고 설명 했습니다. (웃음)
- 이구치상 말씀대로 여러분께서 히라가나 케야키로서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언더가 아닌 다른 그룹’ 처럼 되어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흐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시 : 기뻐요. 네루쨩이 겸임해제가 될 때만 해도 네루쨩의 겸임 해제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했거든요. ‘우리는 결국 평생 언더 취급만 받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솔직히 낙담 했어요. 하지만 2기생들이 들어오고, 활동 자체도 마치 다른 그룹처럼 하게 되며 어딘지 모를 미묘한 상황이 되긴 했지만, 그 ‘미묘함’이 또 기쁜 ‘미묘함’이라 해야 할 것 같아요.
이 : 저는 흐름에 몸을 맡기는 타입이거든요. 사생활면에서는 선택을 해야 할 때 즐거운 것을 고르는 성격이지만 이런 상황에 있어서는 어느 쪽이 ‘즐거운’ 지 모르겠고, 사실 그런 거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웃음)
- 한자 케야키의 퍼포먼스, 그리고 그룹 이미지의 중심에는 히라테상이 계셔서, 히라테상이 전체적인 톤을 조절하고 계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히라가나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 멤버는 누가 있을까요?
시 : 그런 멤버가 없기에 현재 있는 멤버 전원이 항상 의식을 높이 갖고 있을 수 있고, 그런 점이 히라가나의 특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곡마다 그 곡에 맞는 주인공이 나타나는, 변화무쌍하고 컬러풀한 이미지라고나 할까요. 그 점이 히라가나의 장점 아닐까요.
- 지난 8월, 히라가나에 2기생들이 9명 추가 되었고, 5번째 싱글에는 히라가나 전원의 곡인 ‘NO WAR in the future’가 수록되었지요.
카 : 사실 그 곡, 2기생들은 따로 녹음을 했어요. 이전까지는 2~3명이 한 파트를 불렀는데, 이 곡에서 처음으로 한 파트에 5명씩 부르게 되어서 처음에는 깜짝 놀랐지요. (웃음)
이 : 멤버가 20명이 되며 안무도 한층 어려워졌어요. 사람이 많다보니 동선도 꼬이고, 다른 애들하고 부딪히다 보니 원래 가야 하는 자리에 못 가게 된 경우도 있었어요. (웃음)
시 : 2기생들이 들어 온 뒤로부터는 대기실이 엄청 떠들썩해요. 사실 1기생들 중에는 이구치처럼 평소에는 얌전한 멤버들이 많거든요. 이전까지는 다들 조용한 가운데 저랑 쿠미가 까불거리는 느낌이었는데, 2기생들은 그런 저랑 쿠미가 얌전해 보일 정도로 활달해요. (웃음) 일단 전원이 함께 라이브를 하고 싶어요. 20인으로서 더욱 더 많이 활동을 해서 팀으로서의 힘을 더 키우고 싶어요.
이 : 저도 히라가나 20명이 더 친해져서, 더 많은 경험들을 하고 싶어요.
- 경험이요? 예를 들자면?
이 : 예를 든다라.. 음… 버라이어티요! 히라가나 20명이 버라이어티 방송을 해 보고 싶어요!
카 : 저도 2기생들과 더 친해지고 싶어요.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렇게 한자 선배님들이랑 완전히 따로 가는 건 아닌가 싶어서 쓸쓸해지기도 하고, 좀 그렇네요. 가능하다면 히라가나 케야키가 더 큰 그룹이 되어, 양면 A면 싱글로서 히라가나/한자가 각각 타이틀 곡을 부를 수 있을 정도까지 성장 했으면 좋겠습니다.
- 한자 케야키와의 혼성 유닛도 앞으로 늘어 날 지 모르죠.
이 : 혼성 유닛이라… 저는 일단 히라가나의 곡들만이라도 완벽하게 소화 해 낸 뒤에야 생각 해 볼 수 잇겠네요. (웃음) 자신들의 곡 마저도 아직 부족한데 유닛 같은 생각을 할 여유가 없어요.
시 : 하지만 마오, 예전에 비하면 춤 엄청 늘었어. 다들 마오의 춤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 안돼! 안돼! 아니 정말로 안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웃음)
카 : 저는 유닛을 한다면 유리나랑 해 보고 싶어요. 예전에 유리나가 저에게 ‘같이 유닛 해 보고 싶어’라고 이야기 해 줬기에, 저 역시 언젠가 꼭 해 보고 싶어요.
시 : 이전부터 이야기 해 왔는데요, 나코쨩이랑 유닛 해 보고 싶어요. 실제로 스태프 분들께 직접 상담을
한 적도 있는데요, 멋지게 무시 당했단 말이죠. (웃음) 나코쨩이랑 유닛을 짜서 귀여운 MV를 찍는 것이 꿈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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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봐’에 담긴 진의
생각지도 못 했던
- 부도칸에서의 3데이즈 공연이 끝난 지 2주 가량이 지났습니다만, 공연을 끝낸 솔직한 감정은 어떠신가요?
카키자키 (이하 ‘카’) : 저는 다시 한 번 그 무대에 서고 싶어요.
- 오 믿음직스러운걸요!
카 : 3일째 공연이 끝난 뒤, 자연스럽게 ‘내일도 공연을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신기했지요.
사사키 (이하 ‘사’) : 응. 그랬지. 다들 ‘내일도 공연 할 것 같아’라고 했어요.
- 그랬군요. 3일 연속으로 한 번에 2시간이 넘는 공연을 한다는 거, 솔직히 체력적으로 부담이 큰 일이리라 생각하는데요, 그럼에도 ‘더 하고 싶으셨다’는 얘기인가요?
카&사 : 네!
-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셨나요?
사 : 3일 연속으로 라이브를 한다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기에 이대로 계속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음… 뭐라 해야 할까.. 그게 당연한 일상처럼 받아들여졌달까요.
-부도칸이 일상이라니… 엄청 멋진데요. (웃음)
카&사 : 후후후
- 그렇게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는 사람 그다지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말하자면 ‘라이브 하우스 부도칸’ 같은 느낌이네요. (웃음) 이야기 순서가 좀 뒤죽박죽이 되었는데, 당초 부도칸 공연은 1공연 뿐이었지요? 그러던 게 이래저래 사정이 겹쳐 3공연으로 늘어 나셨고. 심지어 그 3공연이 3일 연속 공연이라… 처음 그 얘기를 들으셨을 땐 솔직히 어떤 기분이셨나요?
카 : …충격이었어요. (쓴웃음) 상상조차 하지 못 했었기에 솔직히 말 하자면 무서웠어요. 다들 처음엔 못 해 낼거라 했었지?
사 : 응. 저도 처음에는 ‘우리 뭐 잘못했나?’라고 생각했어요.
- 네?
사 : 아, 처음에 스태프분께서 저희에게 ‘할 말이 있다’며 말을 꺼내셨거든요. 그래서 ‘우리 뭐 잘못했나?’라는 생각부터 들었어요. ‘아, 혼나겠다…’라고 이야기 했을 정도로. 그도 그럴게, 분위기가 엄청 심각했거든요. 그러던 와중에 갑자기 ‘부도칸 공연이 3데이즈 공연이 되었다’는 얘기가 나와서 다들 너무 놀라버려서 스태프분께서 ‘히라가나 여러분, 해 주실 수 있어요?’라고 질문 하셨을 때 대답도 못 했을 정도였지요. 말 그대로 ‘무’의 경지였어요. 뭐가 일어나고 있는 지 현실감이 없어서 솔직히 할 수 있다 없다를 생각 할 정도의 여유도 없었어요. 정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도 파악이 안 될 정도였으니…
카 : 사실 그 얘기를 듣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다들 ‘취소 될 거야’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 아 결국은 하루 정도는 줄어 들 거라고요?
카 : 그렇죠. ‘3일 연속으로 우리가 할 리는 없어’라고 했지요.
사 : 그랬지. 계속 그 얘기 했었어. 연습 시기에 들어가서도 ‘에이 설마. 결국은 한자분들이 하실거야’라고 얘기 했었고.
- 하지만 결국 실제로 3일간 공연을 하셨지요. 실제로 그렇게 되었을 때는 어떻게 마음을 다잡으셨나요?
카 : 어떻게라…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땐 ‘네?’라고 의아했지만 솔직히 말 해서 부도칸이라는 무대에서 3일 연속으로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라는 거, 쉽사리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번 기회가 얼마나 큰 기회인지를 생각하니 절로 ‘제대로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사 : 저는 공연 이틀 전에 매니저 분께서 ‘이기러 가자!’고 말씀을 해 주셨어요. 그 말씀을 듣고 다들 ‘그래 이기러 가자!!’ 라고 서로를 격려하며 연습에 임했어요.
- 그랬군요. 그렇다면 이번 신곡 ‘두고 봐’의 가사처럼 ‘갑자기 어른들이 한 말’에 휘둘렸다는 복잡한 기분은 없었나요?
사 : 음… 하지만 사실 이번에는 시간 자체가 엄청 촉박했었기에 그런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어요. 완전 구석에 몰려 있었지요. 그 덕분에 부정적인 생각 할 시간도 없었지만요.
- 카키자키상은요?
카 : 부정적인 생각이라 해야 하나… 갑자기 공연이 없어 진 한자 분들 생각을 하면 솔직히 마음이 복잡했어요. 정말로 저희가 3일 다 해 버려도 괜찮은 건지 고민도 되었고, 팬 여러분께서도 솔직히… 최근 들어서 한자 케야키 콘서트가 없었던 것도 있어서 한자분들의 공연을 기대 하셨을 거라 생각했기에 정말로 죄송한 마음 뿐이었어요.
- 히라가나 케야키 여러분께서는 작년 12월, 마쿠하리 멧세 이벤트홀에서 전국 투어를 끝내신 지 그리 두 달도 지나지 않으셨던 시점이었지요. 그렇다고 해도 솔직히 투어를 끝내신 지 얼마 되시지도 않았는데 투어 때와 부도칸 공연이 그토록 구성이 다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에 저 역시 내심 굉장히 놀랐어요. 이토록 단기간에 이 정도로 완성도 높은 공연을 하신 데 대해 본인들이 느끼시는 달성감도 크셨을 것 같은데요.
카 : 음…
사 : 그것도 그렇지만, 솔직히 좀 더 잘 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컸어요. 3일 중에서 마지막 공연이 가장 달성감이 있었는데, 그 공연조차도 좀 더 잘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걸요.
- 그렇군요. 그런 아쉬움을 느끼신 부분은 어떤 부분이신가요?
사 : 특히 유닛 부분이요. 확실하게 맺음을 맺지 못 한 부분이 많아서, 좀 더 잘 할 수 있었던 여지가 많았다고 생각해요.
- 카키자키상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카 : 연출면에서 처음 도전 해 보는 것들이 많았거든요. 보시는 분들께서 그 새로운 것들을 즐겨주셨다면 기쁘겠지만, 한 편으로는 퍼포먼스나 안무 면에서 좀 더 맞출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 해 아쉬운 부분이 있어요.
- 카키자키상의 경우에는 특히 부상으로 작년 12월에 있었던 마쿠하리 공연에 나서지 못 하셨기에 이번 공연에 거는 마음이 남다르셨을 것 같은데요.
카 : 네. 그렇기에 이번 부도칸 공연을 통해 만회 할 찬스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정말 기뻐요.
사 : 마쿠하리 공연에 나서기 전에 멤버들이 모여서 ‘우리 1기생들끼리 무대에 서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구나’라고 이야기 했었는데, 이렇게 다시 기회가 올 줄은 몰랐어요.
카 : 그렇지.
라이벌?
- 방금 전에 ‘이기러 가자’고 하셨는데요, 두 분이 보시기에 이번 부도칸 공연은 ‘이기신 것’ 같나요?
카 : 이겼으려나요?
사 : 그러게… 솔직히 무대에 선 입장에서는 저희가 잘 했는 지 못 했는 지 잘 모르겠어요.
- 그럼 이번 공연에서 좋았던 부분이나 좋았던 퍼포먼스를 들어 보신다면요?
카 : 마지막 날에 했던 ‘후타리 세종’일까요?
사 : 아. 맞아.
카 : 이틀째 공연을 끝내고 반성회를 하며 ‘너희들이 생각하기엔 후타리 세종이 아름답기만 한 곡이라 생각 할 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 곡은 자신의 감정을 분출하는 곡이야’라는 지적을 받았거든요.
사 : 그래서 3일째 땐 그 점을 의식해서 노래 면에도 더욱 더 공을 들였지요.
- 히라가나 케야키 1기생은 겨우 11명이지요. 노기자카, AKB 같은 다른 그룹들에 비해 인우너 수가 매우 적은 편이신데요 이렇게 인원이 적다는 게 좋은 점이 있다면 어떤 점이 있을까요?
카 : 마쿠하리 공연이 끝난 뒤, 네루가 ‘1기생들끼리 무대를 하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잘 보여’라고 이야기 해 줬어요. 11명이라는 인원 수라면 한 사람 한 사람의 퍼포먼스도, 표정도 잘 보인다는 것이 큰 장점이라 생각해요.
- 확실히 그럴 수 있겠네요. 특히 부도칸 정도 되는 회장에서 공연을 한다면 그런 장점이 더 잘 드러 날 테고요. 거기에 더해 2기생 9명만으로도 무대를 꾸릴 수도, 1, 2기를 합쳐 20명으로 무대를 꾸릴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능성이라는 면에서 매우 폭이 넓어졌다고 할까요 그러고 보니 두 분께선 어제 열린 2기생들의 ‘오모테나시회’에도 다녀 오셨다던데요.
카&사 : 네.
- 생각 해 보면 자신들의 곡을 다른 사람들이 퍼포먼스 하는 것을 본다는 거, 쉽게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지요.
카 : 그렇지요.
사 : 2기생들의 안무를 보며 타카히로 선생님께서 저에게 주의를 주시는 게 어떤 부분이었는 지 느낄 수 있었어요. 정말 공부가 많이 된 무대였습니다.
-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는 말씀이군요. 참고로 두 분이 생각하시기에 2기생들의 성장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때마침 2기생 분들이 들어 오신 지도 반년이 지났는데요.
사 : 성장 속도가 빠르다고 생각해요. 물론 처음 들어 왔을 때 부터도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요. 저희 1기생들 중에는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아이들이 많거든요. 그렇기에 레슨 때에도 다들 뒷자리에 서려 하는 경우가 많고요.
카 : 후후후…
사 : 1열로 나아가려는 아이들이 없죠. 하지만 2기생들은 겁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아이들이 많아, 그 점은 정말 존경스러워요. 어제도 오모테나시회를 보면서 역시 1기생들과는 다른 분위기가 있구나라고 느꼈어요. MC 때도 크게 긴장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 갔고요.
- 그럼 다시 부도칸 공연 얘기로 돌아 가 보죠. 앙코르 때 처음으로 신곡 ‘두고 봐’를 선보이셨는데요, 이 곡을 처음 들으셨을 때 어떤 느낌이셨나요?
카 : 엄청 직설적인 가사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사 : 그렇지.
-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돌려 말하고 하는 거 없는 가사지요.
사 : 네. 어딘지 모르게 저희의 부도칸 공연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할 수 밖에 없었다’는 내용도 그렇고, 정말 가사 자체가 저희들 이야기 같았어요.
- 그렇다면 여러분들 마음속에도 ‘두고 봐’라는 마음이 있다는 말씀인가요?
사 : 글쎄요…
카 : 앙코르 직전에 나온 영상만 보시면 마치 저희가 한자 분들께 ‘두고 보’라고 말하는 것 처럼 보일 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런 건 아니에요. 오히려 저희가 ‘두고 보’라고 말하는 대상은 지금까지 ‘히라가나 따윈 어차피’라는 식으로 저희를 보셨던 분들이라 해야 할 것 같아요.
사 : 응. 그렇지.
- 다시 말 해 히라가나를 ‘한자의 언더’라던가 ‘한자의 대타’라는 식으로 밖에는 생각하지 않는 누군가를 향한 메시지라 할 수 있겠군요.
카 : 네.
- 하지만 말씀하신 그 영상은 솔직히 ‘선전포고’로 보이던걸요.
사 : 실제로 그렇게 받아들이시는 분들도 꽤 많아요. 그래서 멤버들끼리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말이지’라고 이야기 하곤 했어요. 기본적으로 한자 선배님들 엄청 좋아하는걸요.
카 : 응.
- 하긴, 애초에 히라가나 멤버분들 중에 한자 케야키를 보고 좋아져서 들어 오신 분들도 많으실 거고요. 그렇기에 한자 케야키분들에 대한 마음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동경하는 선배님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사 : 그렇죠.
- 그렇다면 라이벌 의식 같은 것은요?
카 : 라이벌 의식 없어요.
사 : 전혀 없어요.
카 : 애초에 적도 아닌걸요.
사 : 사실 ‘라이벌’이라 생각해야만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아무리 해도 그런 생각이 안 들어요. 정말 좋아하는 선배님들이신걸요.
- 그럼 한자 케야키가 라이벌로 보이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어디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사 : 그룹의 방향성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라이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카 : 그렇죠. 하지만 솔직히 최근에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해요.
- 거리가 멀어진다고요?
카 : 2기생들이 들어 온 뒤로는 아예 다른 활동을 하게 되는 경우가 이전보다도 더 늘어났거든요. 그러다 보니 요즘에는 악수회 때 빼고는 만나지 못 하는 경우도 있어요.
- 그렇군요. 부도칸 공연이 끝나고 한자 케야키 멤버 중에 공연 감상을 이야기 해 준 멤버가 있나요?
카 : 네루가 ‘엄청 좋았어’라고 말 해 줬어요.
사 : ‘함께 그 자리에 있고 싶었다’고도 해 줬어요. 언젠가 다시 같은 무대에 섰으면 좋겠어요.
카 : 그러게.
꿈은 커져만 가고
- 마지막 공연 앙코르 때 서프라이즈로 히라가나 케야키의 단독 앨범 발매가 발표 되었습니다. 히라가나 멤버분들은 이전부터 인터뷰 때 ‘히라가나 명의의 음반을 내고 싶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요, 그 꿈이 드디어 실현 된 것이지요.
카 : 네!!
- 하하하하!
사 : 솔직히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땐 정말 놀랐어요. 스크린에 가장 먼저 나온 글자가 ‘단독’이라는 두 글자였잖아요. 당연히 ‘단독 라이브’라고 생각했거든요.
- 그렇군요.
사 : 내심 3일째에 뭔가 발표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멤버들 끼리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캡틴, 부캡틴 발표일 거라 생각했었거든요.
- 아 그랬군요. 하긴 2기생들도 들어 왔으니.
사 : 그렇죠. 그렇기에 앨범이 발매된다는 것을 알고는 정말 깜짝 놀랐어요.
- 아직 발매 시기는 미정입니다만, 어떤 곡들이 실릴 지가 기대 되네요. 두 분은 어떤 곡들을 불러 보고 싶으신가요?
카 : 글쎄요. 엄청 귀여운 곡을 해 보고 싶어요. 우후후
사 : 응 어울릴 것 같아.
- 카키자키상이 항상 이야기 해 왔던 ‘인형이 되고 싶다’는 꿈을 대 폭발 시켜 보시겠다고. (웃음)
카 : 네. (웃음) 우후후후
- 미레이상이 보시기에 카키자키상은 어떤 사람인가요?
사 : 응석쟁이고, 항상 찰싹 붙어 따라오는 아이요. (웃음) 아,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자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 해서 이동중에 자고 있을 때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툭툭 쳐서 깨우고는 ‘들어 봐, 들어 봐’라고 말을 걸곤 해요. (웃음)
- 아하하하!! 그런 분이셨군요!
사 : 가입 직후에는 의식해서 의젓하게 굴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알고 보면 정말 응석쟁이에요.
- 카키자키상, 근육질이니까 어깨를 툭툭 치기만 해도 꽤나 아플 것 같은데요.
사 : 그 뿐 아니라 머리가 되게 무거워요! 가끔씩 제 어깨에 머리를 기대곤 하는데, 엄청 무겁다니까요!
카 : 우후후
- 카키자키상 의외로 응석쟁이셨군요. 본인도 인정하시나요?
카 : 네… (웃음)
사 : 게다가 거리감도 엄청 가까워요. 말을 할 때, 얼굴을 이만큼이나 (라고 이야기 하며 얼굴을 상대방 얼굴 바로 앞까지 들이대며) 가까이 하고 말을 하거든요.
- 그 얘기만 들으면 이상한 사람 같은데요. (웃음) 카키자키상, 뭔가 반격 하시는 게 낫지 않나요? 사사키상은 어떤 사람인가요?
카 : 미팡은 항상 기운이 넘쳐요.
- 분명 발랄한 이미지시죠.
카 : 응석을 부리거나 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 천진난만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미레이상의 인상이라 하면, 히라가나 케야키의 ‘밝고 미소 넘치는 즐거운 분위기’를 상징하는 멤버라는 인상인데요.
사 : 우후후후 감사합니다. (웃음)
- 하지만 연초부터 이렇게 큰 일들이 차례차례 벌어지면, 앞으로 남은 1년 동안 무슨 일이 있을 지 알 수 없게 되지 않나요? 올 해 어떤 일들이 있을 것 같나요?
카 : 멤버들끼리 자주 하는 말이, 작은 곳이라도 좋으니 라이브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해요.
사 : 앨범이 나오는 것을 기회로 전국 투어를 할 수 있다면 현지에서 차를 타고 움직여도 좋으니 한 곳씩 한 곳씩 많은 곳을 돌고 싶어요.
카 : 그런 거 해 보고 싶어.
- 그러게요. 여름방학 기간 동안이라던가, 꼭 실현 되었으면 좋겠네요.
사 : 일단 라이브를 잔뜩 하며 마치 ‘무사수행’을 하듯 저희들을 갈고 닦고 싶어요.
- 다시 말하자면 그룹의 강점을 ‘퍼포먼스’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신 거죠?
카&사 : 네.
- 작년 전국투어를 하며 겪으신 것들이 마음 속에 크게 남아 있으신 것 같네요. 작년 투어가 시작되기 전에는 솔직히 히라가나 케야키만으로 얼마나 라이브를 해 낼 수 있을 지 불안하기도 하셨을 것 같은데요.
사 : 네. 그렇기에 전국투어 첫 공연(제프 도쿄) 때는 사실 달성감이라 부를만한 것이 전혀 없었어요. 지금 생각 해 보면 정말이지 보러 와 주신 분들께 면목이 없는 일이지만, 두 번 다시 그런 라이브는 해선 안 되겠다는 일념으로 지난 1년 동안 노력 해 왔습니다.
- 아직 그 공연으로부터 1년이 지나지도 않았지요. 그럼 그 1년간 자신은 좀 생기셨나요?
사 : 음… 아직 자신은 없어요.
카 : 저 역시 아직 자신이 없어요. 하지만 팬 여러분께서 ‘히라가나 케야키의 라이브는 정말 즐거워’라고 말씀 해 주시기에, 그런 면에서는 조금이나마 성장 했구나… 하고 느끼게 됩니다.
- 그럼 개인적으로 올 해 도전 해 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말씀 해 주시겠어요?
카 : 저는 작년 도전했었던 드라마 (리마인드) 촬영이 정말 즐거웠기에, 다시 한 번 연기에 도전 해 보고 싶어요.
사 : 저는 올 봄에 대학생이 되기에, 빨리 하이힐을 신어 보고 싶어요.
- 어? 고등학생이라 해도 하이힐 정도는 신을 수 있지 않나요?
사 : 안 되는 건 아닌데요, 개인적으로 하이힐이라 하면 대학생이라는 이미지가 있거든요. 벌써부터 두근거리네요.
- 대학생이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하이힐이군요. (웃음)
카 : 미팡
재미있어.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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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모토 아야카 X 히가시무라 메이
'두 사람의 우정 성장 스토리'
'친해지고 싶다'며 히가시무라에게 맹대쉬한 다카모토
- 우선 두 분이 친해지게된 계기를 알려 주세요.
다카모토&히가시무라 : 음… (서로를 바라본다)
- 서로 바라보시는 게 무슨 커플같네요. (웃음)
다카모토 (이하 '다') : 히라가나 케야키가 결성 될 때부터 메이메이를 보고 '엄청 귀엽다'고 생각했거든요. 마침 나이도 동갑이겠다, 친해지고 싶어서 말을 걸었는데, 좀처럼 마음을 열어 주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그런 도도함에 오히려 '무조건 친해질 거야'라고 도전심에 불이 붙었지요. 그 뒤로는 일부러 더 말을 걸어댔던 것 같아요. (웃음)
히가시무라 (이하 '히') : 하하하하하 (웃음)
다 : 메이메이가 멤버들 중에서 가장 먼저 마음을 열어 준 건 아마도 저일걸요.
히 : 응. 아마 그럴 걸 (웃음) 저 사실 엄청 낯가림이 심한데도 아야가 먼저 말을 걸어 준 덕분에 친해질 수 있었어요..
- 서로의 첫인상은 어떠셨나요?
다 : 모든 것이 다 작고 앙증맞았어요. 오디션회장에 들어 와, 메이메이를 본 순간 '아 엄청 조그마한 아이도 있네'라고 생각했지요. (웃음)
히 : 아야의 첫인상은 '얼굴 작다'는 거였어요. 스타일도 좋고.
- 두 분 하면 사이가 좋으신 것으로 유명한데요, 싸우실 때도 있나요?
다 : 장난으로 싸우는 척 하는 경우는 있어요. (웃음)
- 네? 무슨 뜻이죠?
다 : 말 하는 도중에 일부러 '지금 시비거는 거야?'라던지 '지금 뭐라 했어?'라는 식으로 화난 척을하는 거죠. 실제로는 화 안났지만.
히 : 뭔 일만 있으면 자주 그래요. (웃음)
- 왜 그런 일을 하나요?
다 : 쿠미가 '옛날에 친구들끼리 저런 식으로 이야기했다'고 하길래 흉내 내기 시작한 게 계기였어요.
- 그럼 실제로 싸워 본 적은 없나요?
다 : 지금까지 싸운 적 없지?
히 : 응. 없어.
- 서로에 대해 질투하거나 하는 경우는요? 11월에 방송된 'Re:Mind' 7화 기념 쇼룸 넷플릭스 선행 감상회 때는 러브러브한 두 분의 모습을 보고 쿠미상이 질투하시는 모습도 보였었는데요.
다 : 사실 쿠미도 메이메이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쿠미가 있으면 메이메이는 쿠미랑 는 경우가 많지?
히 : 응? 아닐걸. 아야랑 있는 경우가 많아요.
다 : 아무래도 그렇다는 것 같네요. (웃음)
- 두 분 중 누가 리드를 하는 편인가요?
히 : 아야요. 어딘가 갈 때도 아야가 먼저 열차 시간을 조사해서는 '몇 시 몇 분 차로 가면 돼'라고 이야기 해 주거든요. 저는 그 말에 따르기만 하는 경우가 많아요.
- 메일이나 전화로 연락을 자주 하나요?
히 : 전화를 하기보다는 그냥 항상 같이 있는 편이라… (웃음)
- 우리 관계는 기계 따위에 의지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말씀이군요. (웃음) 그럼 상대방의 좋은 점은 어떤 부분이라 보시나요?
다 : 뭐니뭐니해도 귀엽잖아요. 몸도 아담하고 전체적으로 병아리 같기도 하고요. 머리 모양도 아무것도 안 했을 때가 엄청 귀엽거든요. 진짜 모든 점이 다 귀엽단 말이죠! 아, 그리고 함께 있으면 즐겁다는 것 역시 좋은 점이에요.
- 성격이 잘 맞으시는군요. 그럼 히가시무라상은요?
히 : 음… 음…(웃음) (잠시동안 부끄러워 하더니) 이래저래 많이 챙겨주는 모습이 좋아요.
- 이래저래 챙겨 준다라…
히 : 아야는 감 껍질을 엄청 잘 벗기거든요. (웃음) 엄청 빨리 벗겨내요. 그러다보니 감을 먹을 땐 주로 아야가 껍질을 벗겨주곤 해요.
- 감 껍질 벗겨주는 건 점수가 높네요. (웃음)
다 : 헐, 그냥 감 껍질 잘 벗겨서 좋다는 거야? (웃음)
히 :아하하하하 제가 좀 여러모로 맹하다 보니까 똑부러지는 아야에게 의지를 많이 해요.
- 그럼 반대로 상대방이 고쳤으면 하는 점이 있다면?
다 : 쓰레기를 안 버리고 모아두는 버릇이요. 오죽하면 요즘엔 메이메이 근처에 전용 쓰레기통을 만들었을 정도예요.
- 히가시무라상, 어째서 쓰레기를 안 버리시는 건가요?
히 : 쓰레기통이 멀리 있어서, 귀찮거든요…
- 히가시무라상 안방도 아닌데… (웃음) 그럼 반대로 다카모토상의 고쳤으면 하는 점은 뭔가요?
히 : 저 같은 경우 제 침대 위에 누가 올라 오는 걸 엄청 싫어하거든요. 아야는 그 사실을 알게 된 뒤로 일부러 제 침대 위에 올라와요. (웃음) 기본적으로 외출 할 때 입은 옷 입은 채로 침대 위에 올라 오는걸 싫어해서 저 같은 경우에도 침대에 올라 갈 때는 반드시 옷을 갈아 입는데 아야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올라오곤 해요.
다 : 아니 침대 위에 올라가기 전에 목욕도 하는데도 화를 낸다니까요.
히 : 아무래도 침대 위는 청결하게 유지하고 싶잖아요. 그래서…
- 청결 얘기를 하시는 분이 쓰레기를 안 버리신다니… 그것도 좀… (웃음)
히 : 이상한 데에서 깔끔을 떨어요. 참고로 아야가 일부러 침대 위에 올라 오면 저도 일부러 큰 소리로 '꺄아!'하고 소리를 질러요. (웃음) 아무래도 그런 반응이 웃겨서 일부러 침대 위에 올라오는 것 같기도 하지만…
다 : 그렇죠. 그리고 침대옆으로 밀어내는 것도 재미있어요.
히 : 침대 옆에 공간이 있는데요, 요 전에는 저를 거기로 밀어내더라고요. (폭소)
다 : 일부러 떨어뜨려 봤지요. (웃음)
- 히가시무라상은 다카모토상 침대에 올라가서 복수 하거나 하지 않나요?
다 : 안 그러더라고요.
히 : 역시 침대 위는 신성한 곳이니까요.
서로의 집에 머무르며 이야기 했던 '이상적인 데이트'
- 두 분은 서로의 집에 잠을 자러 가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요, 주로 어느 분 집에 가서 주무시나요?
히 : 아야네 집에 가는 경우가 많아요.
다 : 저희 짐이 좀 더 넓고, 깨끗하거든요. (웃음) 메이메이네 집에 놀러 가려 해도 매번 '집 더러워서 안돼'라고 거절하고요.
히 : 그렇지.. (웃음) 정리를 해도 금방 다시 어질러지거든요.
- 자주 놀러가신다면 다카무라상 댁에 히가시무라상 물건들이 놓여 있고 그런가요?
히 : 놓아 뒀던가?
다 : 도라에몽 인형이라면 우리 집에 있어.
히 : 아. 그 인형, 베개 대신 갖고 갔다가 그냥 깜빡하고 두고 왔나보네요. (웃음) 아, 그리고 컬러 가드 (군악대의 군기병)용 모형 라이플도 두고 왔네요.
- 보통 두고 온다 하면 칫솔 같은 게 일반적인데요.
히 : 칫솔이야 뭐 항상 들고 다니는걸요. 아, 하지만 저희 집에 아야의 칫솔이 놓여 있긴 해요.
다 : 그렇죠. 메이메이 방에 칫솔 세트를 두고 왔어요. 사실 오늘 갖고 와 주려나 기대를 했었는데 안 갖고 왔더라고요. (웃음)
히 : 아, 저는 '이 칫솔 안 쓰니까 여기 둬도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줄 알았어요. 필요 없어서 두고 갔겠거니… 하고 안 들고 왔지요.
- 서로의 집에 놀러 가서 보통 어떤 얘기를 하고 노세요?
다 : 기본적으로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놀아요. 아까 얘기했듯이 갑자기 '싸울래?'라고 말 한다던가.
히 : 일부러 싸운다던가 하죠. (웃음)
다 : 기본적으로 항상 하는 말이 별 내용이 없는 말들이에요. 까불었던 기억 밖에는 없는걸요.
-진지한 얘기는 안하나요?
다 : 아주 가끔 하기는 해요.
히: 음…함께 히라가나 케야키가 나오는 드라마, Re:Mind를 본다던지 하기도 하고요.
- 다카모토상은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신다고 알고 있는데요, 묵으러 가서 이상적인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하진 않나요?
다 : 가끔 해요. 데이트를 한다면 어떤 데이트가 좋냐는 식으로. 저는 드라이브가 좋겠다고 했던 적이 있고요. 전에 그런 얘기했었지?
히 : 기억 안 나 (웃음)
다 : 메이메이는 분명 그 때 '공장 야경을 보러 가고 싶다'고 했던 것 같은데요.
히 : 아! 그 말 한 기억은 난다!
- 히가시무라상은 어떤 데이트를 해 보고 싶으신가요?
히 : 도쿄에서 일루미네이션을 본 적이 없으니 일루미네이션 보러 가 보고 싶어요.
- 두 분이서 일루미네이션 보러 가신 경우는 없나요?
히 : 아직 없어요.
다 : 사실 제가 일루미네이션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작은 목소리로)
히 : 그럼 공장 야경 보러 갈래? (웃음)
다 : 공장 야경은 한 번 보러 가면 완전 푹 빠질 것 같은데. (웃음)
- 참고로 최근에 함께 놀러 가신 곳은 어디인가요?
다 : 함께 구두 사러 갔었어요.
히 : 커플 구두를 사려 했는데 없더라고요.
- 옷 취향은 어떠신가요? 비슷한가요?
히 & 다 : 네. 비슷해요.
다 : 악수회 때 서로 옷을 빌려주기도 하고요.
히 : 한 번은 악수회 때 '이 옷, 다카모토 옷 아니야?'라고 하시더라고요. '어?어떻게 알았지?'라고깜짝 놀랐었어요.
- 두 분이 친해지시고 처음으로 함께 놀러 갔던 곳이 어디인지 기억 하시나요?
다 : 어디 갔더라? 음.. 하라주쿠였던가.
히 : 응. 오므라이스 먹으러 갔었지.
다 : 아,그래,오므라이스 먹으러 갔었어!
- 하라주쿠처럼 사람이 많은 곳 괜찮으신가요?
히 : 처음 갔을 땐 진짜 사람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어요. 다케시타 도리 같은 데는 거의 걸을 수도 없더라고요.
다 : 메이메이는 키가 작으니까 금새 안 보이게 되거든요.
히 : 그래서 길을 걸을 땐 아야가 자주 저를 이끌어 주곤 해요. '메이메이, 여기야 여기'라는 식으로.
- 남자답게 리드 해 주는군요. 앞으로 함께 가 보고 싶은 곳은 있나요?
히 & 다 : (서로를 마주보며)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이요.
다 : 절규계 어트랙선 함께 타고 싶어요.
히 :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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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에는 쿨해보이지만 실제로는 유머러스한 성격. 무표정한 얼굴은 차가워 보이지만 그만큼 때때로 보여주는 미소가 더 멋져보인다. 거기에 더해 파괴적인 매력까지 겸비한 그녀. 본인은 다른 이의 '갭'에 빠져든다 하지만 그런 그녀야 말로 '갭' 덩어리라는 것이 흥미롭다.
- 악수회와 성년식 날짜가 겹치셨는데, 카토상은 악수회를 선택하셨지요.
카토 (이하 '카') : 네. 그렇게 결정을 내렸어요. 악수회를 쉬기 싫었던 것도 있고,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성인식에 나가야만 한다고 생각 한 것도 아닌지라 악수회를 선택했습니다. 그 대신 할머니, 어머니가 대를 이어 입으셨던 후리소데를 입고 사진을 찍을 생각이에요. 다만, 그 기모노 같은 경우엔 무늬나 디자인이 굉장히 고풍적이기 때문에 오늘 이렇게 촬영을 통해 현대적인 기모노를 입은 것을 보시면 엄마도 굉장히 기뻐 하실 것 같아요.
- 그렇군요. 그럼 본론으로 들어 가 보겠습니다. 우선 어릴 적에 생각하셨던 '자신의 20세'는 어떤 이미지였는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카 : 중학생 때 까지만 해도 '20살에는 결혼 해야지'라고 생각했어요. 가능하면 아이도 낳고… 그런 망상을 하곤 했는데, 정작 그 때가 되니 전혀 다른 미래가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 실제로 20세를 목전에 둔 심경은 어떠신가요?
카 : 아직 그냥 어린 애예요. 어릴 적에는 20살이라 하면 엄청 어른 같았거든요. 하지만 정작 지금은 딱히 10대 때와 다른 게 없는 것 같아요. 배가 고프면 풀이 죽고, 졸리면 컨트롤이 안 되고… 그런 모습을 보면 '아직 어린애구만' 싶어요. 본능에 진다고나 할까요.
- 그럼 본인이 생각하시기에 어른은 어떤 사람이라 생각하세요?
카 : 주변에 계신 스태프 분들이 어른이라 생각해요. 아무리 피곤하셔도 항상 저희들을 위해 노력 해 주시거든요. 그렇게 다른 이들을 위해 노력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른이라 생각하고, 저 역시 그런 어른이 되고 싶어요.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 한 것은 히라가나 케야키에 들어 온 이후부터입니다만, 이전까지는 솔직히 아무런 생각도 안 하고 살아 왔거든요. (웃음)
- 그렇다고는 해도 인생을 바꾸게 된 터닝 포인트는 있지 않나요?
카 : 고등학교에 들어 간 뒤,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편의점 아르바이트였지요. 솔직히 지금도 경어에 자신이 없는데, 그 때 아르바이트를 안 했더라면 정말 하나도 못 썼을 거예요. 중학생 때 까지는 가족이나 학교 선생님, 선배님 이외의 어른들과는 크게 엮일 일이 없었는데요 아르바이트를 시작 한 뒤로부터 잘 모르는 어른들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어요. 인간관계라는 것도 많이 배울 수 있었지요. 아직도 낯가림은 있지만, 그래도 나름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생겼어요.
- 그런데 '편의점'을 택한 특별한 이유 같은 게 있나요?
카 : 집 바로 근처에 있었거든요. 언니도 거기서 아르바이트를 했기에, 따라 한 거죠.
- 언니분 영향이었군요. (웃음) 문화쪽 취향면에서는 아버님 영향이 크셨다고 하던데.
카 : 네. '스타워즈'의 팬이 된 계기가 아빠 영향이었거든요. 사실 처음에는 강제적으로 보게 하신 거지만(웃음) 어느 정도 이해력이 생긴 중학생 때쯤부터 '아, 이런 의미였구나!'라고 깨닫게 되었어요. 그 때부터 이야기가 하나로 연결이 되면서 완전히 빠져버렸어요.
- 그렇게 '스타워즈'를 알게 되면서 인생관에 영향이 있거나 하셨나요?
카 : 음… 누구에게나 마음 한 구석에 다크사이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 그런 다크사이드가 생겨나기에, 마음이 건강하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 알게 되었지요.
- 하지만 아나킨 스카이워커나 카이로 렌처럼 마음에 어둠을 숨기고 있는 캐릭터들이 매력적인 것도 사실이잖아요.
카 : 그건 그렇죠. 눈을 뗄 수가 없죠. 하지만 그 둘에게 마음이 가는 건 당장이라도 어둠에 빠질것 같은 위태로워 보이는 사람에 끌리는 타입이라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와, 이렇게 생각하니 저 행복해지긴 그른 것 같은데요.
- 그럼 주제를 바꿔서 카토상이 생각하시는 '어른의 연애'에 대해서도 여쭈어 보고 싶네요. '어른의 연애'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카 : 음… 어릴 때는 누군가가 좋아지면 시야가 좁아지잖아요. 하지만 어른의 연애는 그렇게 되지 않고, 주변 상황도 전부 시야에 넣고 연애와 일상 생활을 양립시킬 수 있는 연애라 생각해요.
- 사랑에 빠지면 눈이 먼다는 얘기도 있지요.
카 : 그렇지요. 하지만 어른들의 연애는 그렇게 눈이 멀지 않는 연애라 생각해요. 잘은 모르지만요 (웃음)
- 그럼 어떻게 만났으면 좋겠어요?
카 : 사랑에 빠진다면 한 눈에 반했으면 좋겠어요. 한 눈에 반해서 짝사랑을 하다가 마음이 통해 사랑에 빠지고, 결혼 했으면 좋겠네요. 저희 부모님만 해도 고등학교 때 아는 사람을 통해 만나, 사귀시다 결혼 하셨거든요.
- 짝사랑이라… 짝사랑 기간이 있는 편이 좋으신건가요?
카 : 짝사랑 하는 동안이 가장 두근거리잖아요. 작은 일에도 기쁨을 느낀다던지 하고… (웃음)
- 두근두근 거리게 되는 포인트가 있으신가요?
카 : 갭에 약해요. 겉보기에는 좀 가벼워 보이는 사람이 알고 보면 성실한 사람이라던가 하는 그런 '의외성'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려요. 물론 '갭'이라곤 해도 '겉보기엔 성실해 보이는 사람이 알고보면 가볍다'던가 하는 갭은 싫어요. 기본적으로 껄렁껄렁하고 가벼운 사람은 싫어하기도 하고.
- 갭이면 다 좋은 건 아니란 말씀이군요. 자 그럼 카토상이 현재 사랑에 빠져 있는 것이 있다면?
카 : 뭐가 있을까요… 아, 요즘 팥 소에 푹 빠져있어요. 팥 양갱이라던가 도라야키를 거의 매일 먹는걸요. 그 중에서도 코시앙(팥을 삶은 뒤 으깨고 체등에 받쳐 곱게 간 것)이 좋아요. 츠부앙(팥을 삶은 뒤 으깬 소. 코시앙에 비해 입자가 크고 팥 껍질 등이 씹히는 것이 특징)은 특유의 팥 껍질이 씹히는 식감이 좀 별로라서… (웃음) 사실 팥 소에 빠지게 된 계기는 나코쨩이었는데요, 나코쨩이 화과자를 좋아하신다고 해서 생일 선물로 드리려고 도라야키를 샀었어요. 하지만 드릴 타이밍을 놓치고, 어느 사이엔가 유통기한이 다 되어 가길래 별 수 없이 제가 먹었거든요. 그 때 먹은 도라야키가 너무나도 맛있었기에 푹 빠지게 되었어요.
- 그렇게 보니 나가사와상에 대한 카토상의 마음은 '사랑'이랑도 비슷한 감정인 것 같은데요.
카 : 애초에 나코쨩의 비주얼로 입덕을 했거든요. 외모로 시작해서 방송을 찾아보다 보니 나코쨩 특유의 캐릭터가 좋아지게 되었어요. 그 뒤로는 완전 푹 빠져들었고요. 히라가나에 들어 와서 나코쨩이랑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냥 이야기를 하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깨끗해 지는 것 같아요. 나코쨩 본인은 '시호는 대체 왜 나 같은 걸 좋아할까?'라고 생각한다는 것 같은데, 본인이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인 지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 나가사와상과 카토상은 노기자카의 아키모토 마나츠상을 존경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카 : 마나츠상처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 해 주는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사실 저 같은 경우에는 미소가 되게 어색하거든요. 멤버들도 '넌 정색하는 게 더 자연스러워'라고 할 정도인걸요. (웃음) 그래서 곰곰이 생각 해 봤는데 정말로 사진 찍을 때도 그다지 웃은 적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히라가나 멤버들과 함께 있으면서 저도 어느 사이엔가 조금씩이나마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전에는 이렇게 촬영을 하면서 '웃어 보'라는 주문에 울음을 터뜨리곤 했거든요. 자연스럽게 웃지를 못해서… 하지만 조금씩이지만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되었기에 히라가나에 들어 온 것은 제게 의미가 큰 사건이라 생각해요.
- 만일 히라가나 케야키에 들어 오지 않았더라면 어떤 일상을 보냈을 것 같아요?
카 : 음… 옷 판매 같은 것도 해 보고 싶었기에 그런 아르바이트를 했을 거라 생각해요. 솔직히 관심이 있는 게 그 정도밖에 없었기에 아무런 꿈도 없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하고 싶은 일, 해 보고싶은 일이 잔뜩 생겼기에 그것만으로도 행복해요.
- 그럼 앞으로 어떤 어른이 되고 싶으신가요?
카 :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아, 이 사람 인생 즐겁게 사는구나'라던가 '이 사람처럼 살아보고 싶어'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어요. 제 머리를 관리 해 주시는 코디네이터분이 정말로 취미와 일을 즐기며 사시는 분이신지라, 알찬 인생을 보내시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분이 가까이에 계시다 보니 더더욱 저런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 그럼 현재 생활은 어떠신가요? 알차다고 생각하세요?
카 : 네. 정말 행복해요. 원래부터 노기자카 선배님의 팬이었고, 케야키도 결성 직후부터 좋아했었기에 그런 동경의 무대에 제가 서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해요. 하지만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 질 지 모르는 거잖아요. 세상에는 끝이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언젠가는 멤버들이 졸업을 할 지도 모르지요. 그때는 남은 멤버들이 슬퍼 질 지도 모르기에 저희 히라가나 1기생들이 함께 운명을 함께 하자고 이야기 한 적이 있어요. 물론 그 때가 되어 봐야 알 수 있겠지만,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 질문 순서가 조금 바뀐 것 같긴 합니다만,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행동이나 사고방식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카 : 자기 자신을 제어 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즐겁고 신나는 상황이라 해도 필요 할 땐 냉정하게 판단 할 줄 아는 힘을 갖고 싶어요. 아 그리고 많은 사람들 앞에 서도 긴장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생각하고 이야기할 줄 아는 것이 어른이라 생각해요. 멤버 중에서는 사사키 쿠미가 그런 어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저는 사람들 앞에 서면 긴장해서 생각했던 것들도 말로 표현을 잘 못하거든요. 하지만 쿠미는 긴장하지 않고 조리있게 말을 잘 해요. 저 역시 히라가나 안에서는 연장자에 속하기에, 쿠미처럼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아마 이런 똑부러지지 못한 말투만 고쳐도 겉보기에는 많이 나아 져 보일 거라 생각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안 되더라고요.
- 사사키 쿠미상도 '스타워즈'를 좋아하시던데. '포스'의 존재를 믿으시나요?
카 : 물론 믿어요! 쿠미도 뭔가 들어 올리거나 할 때 '포스!'라는 말을 자주 하고요. 그리고 해리 포터에 '루모스'라고, 불이 들어오는 주문이 있는데, 자전거 램프를 켤 때 그 주문을 외곤 해요. 엄마는 그 모습을 보며 '바보아냐'라고 하시지만요. (웃음)
- 어른이 되시더라도 그런 동심을 잃지 않고 싶으신가요?
카 : 네. 역시 판타직한 마음은 잃고 싶지 않아요. 마음이 식어버리면 매일매일이 그냥 똑 같은 일상이 되어 버리잖아요. 판타지의 정신을 갖고 즐겁게 살고 싶어요.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의외의 모습이 발견된다. 어른스러운 면을 보였다가는 곧바로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부분을 보여주는 그녀. 어딘지 모르게 일관성이 없어보이지만 알고 보면 심지가 굳기도 하고… 결국 그녀의 존재 자체가 판타지라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언제나 포스가 그녀와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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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적인 낮은 목소리 때문일까, 내게 있어 그녀의 이미지는 왠지 차분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최근 들어서는 더더욱 본인 나이에 걸맞은 어른스러움을 뽐내는 그녀. 하지만 정작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과는 아직 거리가 멀다고 이야기한다. 지금부터 그녀의 마음을 들어보도록 하자.
- 20살이 되신 지도 벌써 4개월이나 지났습니다만, 본인이 생각하시기에 변했다고 실감하시는 부분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사이토 (이하 '사') : 이번에 히라가나 케야키에 2기생들이 들어 와, 총 20명 체제가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나이로 위에서 세 번째이기도 하고 20세라는 기념할 만한 나이가 되기도 했기에 올 해 생각이 많이 변했어요. 기본적으로 지식도 부족하고 어휘력도 부족하기에 그런 부분에 있어서도 더 어른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좀 더 진지하게 살아야 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 진지하게 산다고요?
사 : 고등학교 때 정도까지는 말 그대로 그 때 그 때 기분에 따라 살아 왔거든요. 더 이상은 그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언어 능력이라던가… 상식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들을 모르거나 하는 경우가 많기에 좀 더 상식을 익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전까지는 그런 부분에 대해 '뭐, 딱히 상관 없지 않나'라고 적당히 넘기는 경향이 있었는데, 언제까지고 그렇게 해서는 어른이 되지 못 할 것이라는 자각이 생겼어요. 이런 생각이 생긴 것은 역시 '20'세라는 나이가 가진 의미가 크기 때문인 것 같네요. 어릴 때 부터 '20살을 넘으면 어른'이라는 이미지가 있었기에 슬슬 생각을 바꿔야 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익히고 싶으신가요?
사 : 아, 운전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요. 운전 할 줄 알면 편할 것 같거든요. 뭐, 그렇다고 꼭 면허를 따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리고… 요리도 배우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요리를 하나도 못했거든요. (웃음) 나이도 나이다 보니 일단 가사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알아는 둬야 할 것 같아요.
- 음…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데요, 식칼 잡아 보신 적은 있나요…?
사 : 아… 일단 있기는 있어요. 채소를 썰어 본 적이 있거든요. 프라이팬도 일단 만져 본 적 있고요. 하지만 식품이라던가 생활 필수품 종류를 사러 가 본 적이 거의 없네요. 물건 사러 나가기는 하지만, 대부분 화장용품이나 옷을 사러 나가는 '쇼핑'이거든요. 하지만 역시 '어른이 된다'는 데에는 '독립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러기 위해서라도 요리, 청소, 세탁 등 전반적인 가사를 혼자 해 내는 것을 목표로 하여 공부 할 생각이에요.
- 자신이 꿈꾸어 온 '20살의 자신'과 비교하여 보았을 때, 현재 자신의 모습은 어떤가요? 어른인가요? 어린아이인가요?
사 : 제가 상상 해 왔던 20살의 저 자신에 비해서는 아직 한참 어린애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학생 때 보다는 조금 어른이 된 것 같네요.
- 이번에 다른 멤버들과 인터뷰를 하다 보니 가장 많이 나왔던 이야기가 '입맛이 변했다'는 점이었는데요, 사이토상은 어떠신가요?
사 : 아, 예전에는 기름이 둥둥 떠 있을 정도로 기름진 라멘을 좋아했는데요 요즘엔 별로… 입맛이 변한 이유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몸이 받아들이지 않게 되다고 할까요, 기름진 음식에 거부반응을 보이게 되었어요. 아버지도 '나이가 들면 기름기가 없는 산뜻한 라멘이 좋아진다'고 이야기하신 적이 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어 가는 것 같아요. 물론 요즘도 가장 좋아하는 라멘은 '지로계(※도쿄에 위치한 '라멘 지로'가 원조인 라멘종류. 기본적으로 국물 자체에도 기름기가 많고, 부재료에도 돼지 비계를 이용하여 매우 묵직한 맛이 특징)이긴 하지만, 비계는 가급적 빼고 먹게 되었네요. (웃음)
- 평생 드실 비계를 벌써 다 드신 게 아닐까요. (웃음)
사 : 아, 그리고 고기를 먹을 때도 예전엔 갈비를 가장 좋아했는데요, 요즘은 갈비를 먹고 나면 속이 더부룩하더라고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맛있게 먹었는데…
- 조금씩 변화하고 계시다는 얘기군요. 그 외에 '나 이런 부분이 변했구나'라고 자각하고 계신 건 없나요?
사 : 아, 옷 취향이 많이 변했어요. 어른이 되어서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심플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이 좋아졌어요. 예전에는 좀 화려한 무늬나 쇼킹핑크 같은 색을 좋아했는데요, 요즘은 검은색이 가장 좋아요. 소품 같은 것도 검은색이나 갈색종류를 많이 사게 되었고요. 예전에는 핑크 위주였지만 요즘은 핑크는 거의 안사요.
- 취향이 많이 변하셨다는 말씀이군요..
사 :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할까요, 한 마디 한 마디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예를 들자면, 신경에 거슬리는 소리를 들어도 일일이 '왜 저럴까'라고 신경쓰지 않고 '뭐 그런가보지'라고 들어 넘긴다던가 해요. 다른 사람들 말 하나하나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도록 신경 쓰고 있습니다. 어린 멤버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도 '아 시끄러워'라고 받아들이기 보다는 '뭐, 저 나이 때는 그렇지 뭐'라고 넘기려 해요. 저도 저 나이 땐 저랬고.
- 심신양면으로 차분해 졌다고 할 수 있겠네요.
사 : 음… 사실 처음부터 그리 텐션이 높은 캐릭터도 아니었고, 저 스스로도 가급적 차분하게 있으려고 하거든요. 물론 친구들을 만나면 저도 모르게 '와~'하고 텐션이 오르긴 하지만요. (웃음) 그럴 때 외에는 가급적이면 조용하게 있으려 해요. 애초에 성격 자체도 그리 시끄러운 거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지금은 할 수 있는 데 까지 차분 해 져 볼까 하는 마음도 있어요.
- 왜 그런 생각을 하셨는 지는 나중에 생각 해 보시면 알게 되실 지도 모르겠네요. 자 그럼 지금까지 살아 오신 20년을 돌아 보셨을 때, 본인의 인생에 있어 큰 분기점은 언제였던 것 같으신가요?
사 : 에? 언제였을까요… 엄청 옛날, 아마도 초등학교 4, 5학년때쯤이었던 것 같은데요. 주변 아이들과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어요. 솔직히 저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시기였는데요, '이 이상은 내가 뭘 해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모님께 상담을 했어요. 그랬더니 부모님께서 '네 의견만 주장하지 말고 상대방의 의견도 들어 보렴', '친구들에게 다정하게 대해 보렴'이라고 조언을해 주셨어요. 그래서 바로 다음 날부터 그 말씀을 실천했더니 지금까지와는 세상을 보는 방식이 완전히 변하더라고요. 결과적으로 친구들과의 트러블도 거의 없어지고, 저를 좋아 해 주는 친구들도 많이 늘었어요. 그 뒤로는 정말로 제 험담을 거의 들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인생이 크게 바뀌었어요. 지금 생각 해 보면 그 때가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초등학생때 그렇게 고민을 많이 한 덕분에 중학생 때, 고등학생 때는 친구들과의 관계로 고민한 적은 거의 없었어요. 아, 아예 안 한 건 아니고요. (웃음) 어디까지나 엄청 심각 해 진 적이 없다는 얘기예요.
-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하여 우선 다른 이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말씀이시네요. 그 순간 어른이 되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는 말씀이시겠고요. 얘기가 조금 비약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른의 연애'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사 : '어른의 연애'요? 아, 바에 간다던가? 그런 이미지가 있어요. 저 자신은 갈 엄두가 안 날 정도로 '바'는 어른의 이미지가 있네요. (웃음)
- 그럼 바 중에서도 카운터는 특히 어른스러운 이미지일까요? (웃음)
사 : 아,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도 어른의 연애라는 이미지예요. 학생이라면 동거 같은 건 무리일거라 보거든요. 일을 해야만 함께 사는 것도 가능 할 거라 보고, 애초에 동거라는 건 결혼직전의 상황이라고 보거든요. 그렇게 보면 완전 어른이라 생각해요.
- 그렇군요. 그럼 본인은 어떤 연애를 해 보고 싶으신가요? 아, 망상이라도 상관 없어요.
사 : 음… 함께 살아 보고 싶어요. 지금까지 가족 이외의 사람과 함께 살아 본 적이 없어서, 말하자면 제겐 미지의 세계이기도 해서 흥미가 있거든요. 이상을 이야기 해 보자면… 엄청 당연한 얘기일 지도 모르지만 가능한 한 싸움은 하지 않고 싶고요. 아무래도 남들끼리 사는 거니까 싸울 일도 많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싸우더라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아니다 세 달에 한 번 정도로 끝냈으면 좋겠어요. 물론 함께 살게 되는 거야 서로에 대해 상당히 많이 알게 된 뒤의 이야기라 생각하거든요. 그렇다면 이미 그 시점에서 싸울 일이 많아 질 것 같기는 하네요. (웃음) 제가 갖고 있는 인상에 따르면 처음에는 서로 사이가 좋다가 사귄 지 반년 정도 지난 뒤부터 충돌이 심해지는 이미지가 있는데요, 함께 살 정도로 관계가 진전되면 이미 엄청 싸울 일이 많을 거 같기에, 싸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은 있어요. 딱히 특별한 걸 할 필요는 없지만 언제까지고 둘이서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그렇게 보면 제게 있어 '이상적인 연애'란 건 서로 싸우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 멋진 생각이네요. 그럼 언제쯤 결혼하고 싶다 하는 목표는 있나요?
사 : 음, 몇 살이건 상관 없어요. (웃음) 그런 면에서는 정말 몇 살이라도 상관 없어요.
- 말씀하시는 것 보면 딱히 결혼에 흥미 없어 보이시기도 하네요.
사 : 아, 결혼에 흥미가 있냐 없냐가 아니라, 어차피 몇 살에 결혼 하더라도 딱히 변할 게 없다고 생각하는 편일 뿐이에요. 저희 엄마가 결혼을 일찍하셔서 저를 25살 때 낳으셨거든요. 사실 엄마 얘기만 들었을 때는 25살에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었는데, 제가 나이가 들고 생각 해 보니 역시 좀 이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오늘 이렇게 질문을 듣기 전에는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계획'을 세운 적이 없었어요. 저는 그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만족해요.
- 그럼 지금 사이토상이 '사랑에 빠진' 것이 있다면?
사 : 노래하는 것. 일까요. 물론 이건 딱히 요즘에 국한 된 얘기가 아니고, 항상 노래 하는 것을 가장 좋아했어요. 노래 실력을 더더욱 갈고 닦기 위하여 MISIA선배님이나 DREAMS COME TRUE(의 보컬 요시다 미와)선배님, 아야카 선배님 같은 레벨이 다른 위대한 선배님들의 노래를 항상 들어요. 조금이라도 그 분들 실력에 근접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사이토상의 한층 더 발전된 가창력, 기대되네요. 그럼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금까지의 인터뷰를 총괄 하면서, 20대를 어떻게 보내고 싶다는 포부 같은 게 있으신지.
사 : 일단 10대 때 인간관계로 고민을 많이 했었기에 지금과 같은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고, 그렇게 보자면 좋은 경험을 했다고도 생각합니다만, 앞으로는 더더욱 인간관계를 배우고, 누구와도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희 멤버 중 이구치 마오가 딱 그런 타입인데요, 싹싹하면서도 모두와 똑같이 사이가 좋거든요. 평소에는 침착 차분하고 그 나이대 여자아이다운 점도 있고요. 마오의 그런 점을 좋아하기에 저 역시 20살이라는 나이에 걸맞게 차분해지고 싶어요. 그리고 아무리 안 좋은 일이 있어도 일희일비 하지 않고, 화도 안 내는 마음이 넓은 여성이 되고 싶습니다.
남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정 받기 위하여 우선 자신이 타인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 하는 그녀.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벌써 '받아들임'의 미덕을 숙지하고 있는 그녀는 나이면에서 성인이 되기 이전에 이미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더욱 더 넓은 마음을 갖고 싶다'고 원하는 그녀, 이는 자신의 이상이기도 한 '쿙코하트'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기 위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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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키자키 메미 ‘나와 유리나’
‘머스마 같음’
- 카키자키상이라 하면 ‘프랑스 인형이 되고 싶다’던 발언도 있고 해서 소녀 같은 이미지가 강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이래저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오히려 반대로 심지가 굳은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매니저분께서 해주신 얘기를 듣자 하니 ‘성격만 보면 완전 훈남’이라는 평가도 있던데요.
카키자키 (이하 ’카’) : 후후후. ‘인형이 되고 싶다’는 얘기는 사실 초등학생때부터 해 왔어요. 하지만 실제 성격은 머스마 같은 성격이에요. (웃음)
- 그럼 평소에도 남자애들처럼 놀고 하시나요?
카 : 네. 밖에서 나무를 타곤 했지요. (웃음)
- 개구쟁이였군요. (웃음) 소꿉장난보다 그런 놀이가 더 좋았던 건가요?
카 : 유치원 때만해도 언니랑 인형 갖고 놀곤 했어요. 말하자면 소꿉장난이랑 나무타기 둘 다 좋아했다 해야 할까요? 물론 최근에는 나무를 탄다던가 하지 않아요. (웃음)
- 고등학생이나 되어서 나무를 타는 여자아이는 상상하기 힘드네요 (웃음) 사실 카키자키상에 대해 ‘심지가 굳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된 데는 이유가 있어요. 히라가나 케야키의 도쿄 공연 뒤에 카키자키상이 멤버들에게 ‘나는 퍼포먼스에 더욱 더 힘쓸거야’라고 역설하셨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이 때 어떤 이야기를 하셨는지 좀 더 자세히 알려주시겠어요?
카 : 단순히 ‘귀엽게 보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무엇보다 먼저 본분이라 할 수 있는 춤과 노래를 더더욱 갈고 닦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사실 그 때 살짝 화가 나 있었거든요. (웃음) 함께 있는 멤버들끼리 뭔가 생각하는 게 일치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기에 함께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던 가운데 한 말이었어요.
- 화가 났었다? 그럼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한 건가요?
카 : 아마도 울면서 이야기 했던 것 같아요. 저와 같은 생각을 했던 아이들도 있었을 것 같은데, 아무도 그에 대해 말을 하지 않더라고요. 그런 게 진짜 싫었기에 일부러 제가 먼저 말을 꺼낸 거예요.
- 원래 성격이 할 말은 하는 성격인가요?
카 : 주변에서 그런 성격이라고 하더라고요.
- 의외네요. 보통 카키자키상에 대해 ‘연약한 소녀’라던가 ‘얌전한 아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이런 걸 갭모에라고 하던가요. 아 그러고 보니 의외인 정보가 하나 더 있었네요. 카키자키상, 알고 보면 굉장히 근육질이라 하던데요? 특히 팔 근육이 대단하다고… 그 얘기 사실인가요?
카 : 아하하하! 왠지 뉘앙스가 별론데요. (웃음)
- 반응을 보아하니 사실인 모양이네요. (웃음) 자 그럼 얘기를 되돌려보죠. 케야키자카에 들어오기 전에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곤 했나요?
카 : 그런 편이었어요. 사실 중 2때 미화부 부부장을 했고, 중 3때는 학생회 서기였어요.
- 그랬군요. 그럼 멤버들의 분위기를 정리한다던가 하는 똑부러지는 성격은 그 때 길러진 거라 봐도 되겠네요?
카 :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선생님들께도 똑부러진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어요.
- 진지하고 성실하다 해야하나… 정의감이 강한 타입이었군요.
카 : (부끄러워하며) 후후후… (쓴웃음)
- 매니저분께서 이야기하시길 ‘우는 멤버들을 보면서 ‘쟨 왜 울지?’라는 식으로 쳐다 볼 때가 있다’고 하시더군요. 그런 걸 보면 소위 말하는 ‘남자다운’ 성격이기도 한가 봐요.
카 : 그런 것 같아요. 자주 성격이 시원시원하다는 말을 듣기도 하고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분명히 여성스러운 면도 있다고요!
- 에?! 정말요?
카 : 처음엔 저를 귀여워 해 주던 멤버가 요즘은 메이메이만 예뻐하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괜히 질투가 나서 일부러 붙어 다녔더니 요즘은 귀찮아하더라고요. (웃음) 평범하게 대해준다면 그렇게 제가 먼저 들러붙는 경우는 없지만요.
- 그런 일면도 있군요.
카 : 저도 메이메이 좋아하긴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키쿠쨩 뺏어가는 건 싫어요. (웃음)
- 아하하. 아무리 똑부러지는 성격이라 해도 결국 히라가나 안에서 제일 어린 멤버니까 때로는 다른 멤버들에게 응석 부리고 싶어지는 건 당연하겠지요. 때로는 똑부러지게 보지 않는 경우도 있지 않아요?
카 : 네. 있어요. 그러다 보니 자주 ‘이미지랑 전혀 다르네’라는 말을 들어요. 하지만 그것도 케야키자카에 들어 온 다음에야 듣게 된 거고, 오히려 예전에는 무서워 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 그런가요?
카 : 미술부 친구가 ‘처음 봤을 땐 보스격 존재인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 실제로는 어땠나요?
카 : 보스 타입이랑은 거리가 멀어요. (쓴웃음)
- 친구가 그런 오해를 할 정도면 후배들도 비슷하게 오해 했었겠네요?
카 : 어땠을까요? 후배들이랑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취하거나 하지 않았기에 무서워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 후배들에게 신뢰받기보다는 선배들에게 사랑 받는 타입이었나봐요?
카 : 그랬던 것 같기도 하네요. 저 역시도 연상들과 지내는 게 편하고요.
- 이야기 하다 보니 그런 거 잘 알겠어요.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말씀하시는 것도 침착하셔서 대등한 위치에서 이야기 나누기가 편하네요.
‘히라가나의 각오’
- 아까 하던 얘기로 돌아 가 보죠. ‘나는 더욱 더 퍼포먼스에 힘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 어떻게 하기 시작한 건가요?
카 : 사실 그룹에 들어오기 전에는 아이돌 그룹이라 하면 노기자카 선배님 정도밖에는 몰랐어요. 하지만 히라가나 케야키에 들어 온 뒤로는 다양한 아이돌분들을 연구하게 되었지요. 특히 큐트 선배님을 보고 감동을 받았어요. 역시 퍼포먼스가 부족하면 ‘멋지다’는 평가를 받기도 힘들고,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도 불가능하다 생각하거든요. 그 결과 ‘외모가 귀여운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그럼 그런 카키자키상과 비교해서 다른 멤버들은 어떤가요?
카 : 카게야마 유카는 정말로 프로의식이 대단해요. 물론 모든 멤버들이 프로의식이 대단하지만 유카는 특히. 지난번처럼 멤버들끼리 이야기를 하며 의식이 바뀐 멤버들도 있고 말이죠. 사실 최근 들어서 히라가나 케야키는 춤 연습을 할 때 가라오케 음원을 틀어놓고 실제로 노래를 부르면서 춤 연습을 해요.
- 그런가요? 그렇게 하기로 한 건 멤버들의 아이디어였나요?
카 : 네. 멤버들끼리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들 노래 연습 많이 부족하지?’라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래서 그걸 어떻게 할까 이야기 하다가 가라오케 음원을 틀어놓고 노래 하면서 연습 하기도 했지요.
- 엄청 좋은 아이디어네요.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의 이야기를 듣자 하니 의식이 바뀐 데에는 오사카 공연이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하던데, 카키자키상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카 : 저도 오사카 공연이요. 정말 즐거운 공연이었고 지금까지 한 중 가장 좋은 공연이기도 했다고 생각해요.
- 이전까지 했던 공연들과 비교해서 어떤 부분이 좋았던 건가요?
카 : 관객분들의 반응이 달랐어요. MC도 그렇지만 우선 저희들이 무대를 즐기고, 관객분들께서 그런 저희를 보면서 즐겨 주셨던 공연이었거든요. 도쿄 공연은 아쉽게도 그런 부분이 부족했다고 할까요… 무엇보다도 저희들 자신이 공연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거든요.
- 그렇군요. 분명 아이돌의 공연을 볼 때, 멤버들이 무대를 즐기고 있으면 보는 사람들도 기분이 들뜨기 마련이지요.
카 : 하지만 퍼포먼스면에서는 사실 오사카 공연도 아쉬웠어요. 특히 리허설 때 느슨하게 힘을 빼는 경우가 가끔 있기에, 그런 부분을 보완하고 리허설부터 확실하게 한다면 아마도 오사카 이상으로 좋은 라이브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더 발전한다는 얘기군요.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으면 생각 한 건데, 지는 거 싫어하죠?
카 : 그런가요? 저 자신은 그런 점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최근 들어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조금씩 자각이 되긴 해요.
- 타협을 모르는 성격이죠?
카 : 음. 그런 것 같아요.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납득될 때 까지 계속 파고 들어요.
- 가라오케 음원을 틀어두고 연습 한다는 것도 그렇고,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 전체가 ‘제대로 해 보겠다’는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카 : 그런 점엔 투어 직전에 멤버들끼리 나눴던 이야기가 크게 작용했다 생각해요. 물론 그 전부터도 멤버들끼리 ‘히라가나는 지금 이대로라면 안되겠지?’라는 위기감이 있긴 했지만요. ‘우리들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라고 고민하던 타이밍에 ‘투어’라는 찬스가 주어 진 게 컸어요.
- 그룹 초기부터 동기부여는 확실히 되어 있었던 거군요. 아까 하신 말씀 중에 ‘히라가나는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는 얘기는 한자 케야키의 인기에 비해 히라가나가 떨어지고, 일도 적다는 데에 대한 위기감이었나요?
카 : 그렇죠. 물론 그 뿐 아니라 퍼포먼스면에서도 한자분들에게 상대가 안 되고, 지명도도 천지차이이기에 이대로라면 안되겠다 싶었어요.
- 그래서 고민을 하셨던 거군요. 아무래도 일반적으로 케야키자카46이라 하면 한자 케야키 멤버들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으니, 우리 히라가나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라는 고민 말이에요.
카 : 저희들의 존재의식에 대해서는 모두들 처음부터 의식하고 있었어요. 사실 초기에 멤버들끼리 ‘이대로 히라가나로서 활동 하는 것과 한자에 들어 가 활동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나을까’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었는데, 저는 그 때도 ‘이대로 히라가나로서 해 나가고 싶다’고 이야기 했었지요.
- 왜 그랬나요?
카 : 단순한 이유예요.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이 좋아서 이대로 12명 멤버들이 함께 활동 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 뿐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고요.
- 저 개인적으로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에 카키자키상이 들어 와 주셔서 정말 잘 됐다고 생각해요. 이토록 지기 싫어하면서 스토익한 사람이 조금 늦게 출발한다는 그림… 사실 가장 보는 사람들을 불타게 만드는 그림이거든요.
카 :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지금은 단순히 ‘해 내겠다’는 생각뿐입니다.
둘 사이의 우정
- 그럼 오늘 인터뷰의 또 다른 테마, 히라테 유리나상에 대해 여쭤볼게요. 카키자키상과 히라테상 두 분이 사이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떻게 친해지신 건가요?
카 : 처음엔 아리아케 라이브가 끝난 뒤에 유리나가 갑자기 뒤에서 절 안아 준 데서 시작됐어요. 사실 이전부터 유리나를 동경했었기에 유리나가 저를 안아 주었을 때, 너무 놀라서 울면서 턱이 덜덜덜 떨렸어요. (웃음) 그 일로 거리감이 조금 줄어들었지요. 그리고 4월에 있었던 애니버서리 라이브 때, 유리나가 혼자 무대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제가 조용히 다가가서 와락 안아 줬어요 (웃음) 사실 안아주기 직전까지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엄청 고민했는데, 나가루가 있길래 ‘유리나 안아주고 싶은데 어쩔까?’라고 상담했지요.
- 상담 내용이 엄청 솔직하네요. (웃음)
카 : 후후후… 그랬더니 나가루가 ‘괜찮지 않아? 다녀오렴’이라고 편을 들어 준 덕분에 용기 내서 유리나를 안아 주었지요. (웃음)
- 히라테상의 반응은 어땠나요?
카 : 엄청 놀라더라고요. 처음엔 ‘어? 누구야?’라고 하던데요. (웃음) 사실 그 전부터 나가루가 ‘유리나가 메미랑 친해지고 싶대’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기에 대충 알고는 있었어요. 그래서 라이브가 끝난 뒤에 있었던 악수회 때 쉬는 시간에 유리나에게 가서 이야기를 했어요. 그리고 그 날, ‘그럼 유리나라고 부를게’라고 할 정도로 친해졌지요.
- 히라테상을 ‘유리나’라고 부르는 것만 봐도 사이가 좋다는 건 잘 알겠네요. 다른 멤버 중에서 ‘유리나’라고 부르는 멤버 별로 없잖아요. 그것만 봐도 두 분 사이가 특별한 것 같아요. 아, 그건 그렇고 이름을 부르기 이전에 서로의 연락처는 알고 있었나요?
카 : 알고는 있었지만 하는 이야기가 ‘언제 한 번 밥 먹자’, ‘네. 잘 부탁드려요.’ 정도의 인사치레 정도였어요.
- 그렇군요. 사실 오늘 이렇게 이야기를 듣다가 느낀 건데, 두 분 성격이 참 잘 맞겠구나… 란 생각이 들었어요. 두 분 모두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분들인데다가, 타협을 모르는 사람들이니까요. 히라테상을 보고 ‘천재’라느니 ‘야마구치 모모에의 재림’이라느니 떠받드는 사람은 많을 지 몰라도 스스럼없이 다가가서 뒤에서 안아 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생각 해 보면 그 때, 히라테상은 카키자키상이 안아주셔서 정말 기뻤을 것 같아요.
카 : 전 그저 제가 안아주고 싶었던 것 뿐인걸요. (웃음)
- 대담하시네요 (웃음) 그리고 그렇게 친해져서 함께 놀러다니게 되신 거죠?
카 : 네. 하지만 스케줄을 맞추기가 힘들어서요. 결국 ‘이 날은 시간이 조금 나는데 잠깐 나갔다 올까?’라는 식으로 놀러다니는 정도예요.
- 아, 블로그에서 읽었어요. 함께 스타벅스 간 얘기죠? 동갑 친구인 히라테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카 : 유리나는 정말로 스트레이트한 아이에요. 갑작스레 ‘보고 싶다’고 직구를 날리곤 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지만요. 일반적으로 생각하시는 이미지와는 달리 귀여운 부분도 많고 응석도 많아요. 라인으로 특이한 스탬프를 연속으로 몇 개씩 보내기도 하고. (웃음) 단 디저트도 좋아하고… 정말 귀여워요.
- 그 나이또래 소녀다운 면이네요. 또 어딘가 놀러 갈 계획은 없나요?
카 : 시간이 맞는다면 함께 디즈니에 갈 생각이에요.
- 아, 그거 꼭 가셨으면 좋겠네요. 그럼 평소에는 어떤 이야기를 하시나요?
카 : 정말 별 거 없는 얘기들을 해요. 케야키자카에 대해서 이야기 한 건 딱 한 번 있는데, 평소엔 일 얘기 잘 안 하는 편이에요.
- 왜요?
카 : 유리나가 저를 ‘메미는 그냥 친구같다’고 이야기 해 주었거든요.
- 그렇군요. 정말로 좋은 관계네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기쁘시겠어요.
카 : 네. 기뻤어요. 그렇기에 더더욱 평범하게 사는 얘기를 하곤 하지요. (웃음) 아, 요 전에 유리나가 갑자기 ‘동물원 가고 싶다’ 라고 하길래 제가 ‘난 수족관이 더 좋은데’라고 하니 ‘그럼 어쩌지?’라고 고민 하다가 결국 두 곳 다 가기로 했어요. (웃음)
- 무슨 커플 같네요. (웃음) 그러고 보니 SCHOOL OF LOCK! 에서 히라테상이 카키자키상에게 전화를 했던 방송, 들었는데요 저도 듣다가 눈물이 나더군요.
카 : 사실 그 때 유리나가 전화를 해 준 게 너무 기뻐서 펑펑 울어버렸지요. 사실 친해진 지 얼마 안 되어서 유리나가 목소리가 안 나오게 되어 휴대전화로 대화를 하는 게 일반적이었거든요. 목소리가 회복되기 직전에 장난으로 ‘유리나 목소리가 나오게 되면 그게 더 적응 안 될지도 몰라’라고 했더니 ‘에~ 그러지 마~’라고 했었거든요. 그랬었기에 목소리가 나오게 된 직후에 그렇게 전화를 해 줬다는 게 정말 놀라웠고 기뻤어요.
- 그 전화 이후에 함께 놀았나요?
카 : 같이 밥 먹으러 갔어요. (웃음) 밥 먹으러 가서 유리나가 ‘너무 먹고싶다’ 하길래 메뉴를 정하기도 전에 아이스크림부터 먼저 시켜 놓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뭐 먹지?’라고 메뉴를 봤지요.
- 밥 먹기 전에 아이스크림부터 먹다니… 스토익하네요 (웃음)
카 : 후후후후. 결국 저는 함박스테이크, 유리나는 파스타를 시켰어요.
- 메뉴조차 청춘스럽네요. 팬 여러분께서도 두 분의 우정을 보며 가슴이 뛰는 것을 느끼실 것 같아요. 아,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의 히라테상은 어떤 사람인가요?
카 : 이미지와는 달리 엄청 천진난만해요. 요 전에 치크콩(히요코마메)이 들어 간 스프를 먹은 적이 있는데, 메뉴에 ‘히요코(병아리)가 들어 가 있다’고 쓰여 있더라고요. 저는 그게 치크콩(히요코마메)가 들어있다는 뜻이라는 걸 알았지만, 유리나는 정말로 병아리로 맛을 낸 스프라고 생각했는지 엄청 겁을 내더군요. 정말 귀여웠어요.
- 아하하하!! 그런 모습을 보며 놀리기도 하나요?
카 : 네. 놀려요. 요 전에 유리나가 파란 컬러렌즈를 끼고 와선 ‘멋지지?’라고 자랑을 하길래 ‘어. 엄청 멋있네’라고 놀렸어요. (웃음)
- 히라테상 엄청 귀엽네요 (웃음) 다음번엔 꼭 두 분 함께 인터뷰를 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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