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화
'우리 모두 그만 둬 버리자'라고 이야기 했던 날
첫 단독이벤트 '히라가나 오모테나시회' 이후 수 개월에 걸쳐 활약의 기회를 거의 받지 못 했던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자신들의 미래에서 아무런 희망도 느낄 수 없어진 멤버들은 그룹 해산의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Zepp Tokyo에서 첫 단독 라이브가 열리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일정은 2017년 3월 21일, 22일 양일간이었다.
히라가나 케야키가 단독으로 스테이지에 서는 것은 '오모테나시회' 때 이래, 5개월만의 일이었다.
멤버들 중에는 이구치 마오와 우시오 사리나처럼 비밀 특훈을 하며 라이브에 대비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개개인을 떠나 그룹 전체로 보자면 아직 해소되지 못 한 큰 불안이 아직 도사리고 있었다.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는 몸
'좀 더 퍼포먼스를 잘 하고 싶어!'
카키자키 메미가 입을 열었다.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맺혀 있었다.
라이브를 앞두고 리허설을 하던 어느 날, 스태프와 멤버들이 함께 회의를 하던 중에 일어 난 일이었다.
사실 그 당시, 멤버들 사이에는 '그룹 활동과 라이브에 대한 자세'에 대한 차이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일부 멤버들이 이야기 한 '아이돌이란 노래나 춤 실력보다는 우선 자신을 귀엽게 보이도록 연출하는 게 중요하지 않느냐'는 말에 대한 카키자키의 반론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라이브 연출가 역시 카키자키와 마찬가지로 '쇼로서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이 귀엽게 보이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멤버들끼리 더 협력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결국 스태프들과의 회의가 끝난 뒤, 멤버들끼리 따로 가진 회의에서는 '개인 플레이가 아니라 좀 더 팀으로서 퍼포먼스에 힘쓴다'는 결론이 났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큰 방향성의 이야기일 뿐 라이브를 성공시키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면 되는 지에 대한 지침이 내려 진 것은 아니었다.
아니, 아직 경험이 부족한 그녀들이 그런 구체적인 내용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었다.
그 뿐 아니라 첫 단독 라이브임에도 11곡이나 선보이게 되어, 체력적인 면에서도 불안이 남아 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여러 차례 마라톤대회서 우승하고 중학생 때는 거의 매년같이 육상 전국대회에 출전하기까지 했던 히가시무라 메이마저도 실전 리허설이 끝난 뒤에 '힘들어. 무리일지도…'라고 생각 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불안은 적중했다.
라이브 당일, 근육통과 피로가 다 낫지 않은 상태로 무대에 섰던 멤버들은 자신의 몸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며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예전부터 춤을 배워, 그룹 퍼포먼스의 중심축으로 활약하고 있었던 사사키 미레이조차도 무대 위에서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 해 초조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거 큰일인데. 이대로라면 어중간하게 보여 주고 싶은 것도 다 보여드리지 못 한 채 라이브가 끝나버리겠어'
나가하마 네루 역시 패닉상태에 빠져 있었다.
한자 케야키를 겸임하고 있었던 그녀는 이 당시 한자 케야키의 두 번째 주연 드라마인 '잔혹한 관객들' 촬영으로 눈코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기에 단독 라이브의 전체 연습에는 거의 참가하지 못 하고 개별 레슨을 받고 있었다.
결국 그녀가 멤버들 전체와 함께 리허설에 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라이브 당일에 있었던 최종 리허설 단 한 번 뿐이었다.
시간이 없었기에 그 리허설에서 그녀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개별적으로 외운 포지션이 틀리지 않는가 확인하는 것 뿐이었다.
부족한 라이브 경험, 스케줄면에서 오는 불편 등 수 많은 것들이 겹친 결과, 결국 멤버들은 무대를 즐길 수가 없었다.
실패를 겪으며 알게 된 '자신들이 목표로 해야 할 곳'
첫 단독 라이브에서는 케야키자카46의 4번째 싱글 '불협화음' 에 수록된 히라가나 케야키 명의의 커플링곡, '우리들은 사귀고 있어'가 처음으로 선보여지기도 하였다.
'우리들은 사귀고 있다고 소리치고 싶어져.
이대로 계속 비밀로 할 수는 없는걸.
친구들조차도 눈치 못 채게 한다니
바보 같은 일이잖아.
확실하게 공개 해 버리자'
연애 초창기의 두근거림과 어린 커플의 빛나는 생동감을 그려 낸 곡이었다.
전작인 '누구보다도 높이 뛰어!'가 객석을 열광하게 하는 신나는 무언가가 있는 곡이라 하면, 이 곡은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지는 따뜻한 곡으로, 히라가나 케야키의 라이브를 이끌어 갈 또 다른 '키 곡'이라 할 수 있는 곡이었다.
또한, 이 라이브 중에 서프라이즈로 '전국 Zepp 투어' 개최가 발표되기도 하였다.
도쿄 회장 다음 회장은 오사카부의 Zepp NAMBA이며, '탭댄스에 도전하는 챌린지 기획'이 예정되었다.
갑작스러운 서프라이즈 발표에 객석은 열광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 했듯이 다양한 불안을 안은 채 스테이지 위에 서 있던 멤버들은 그런 객석을 지켜 볼 여유조차 없이 그저 세트리스트대로 라이브를 하는 것 만으로도 벅찼다.
특히 별달리 준비도 하지 않고 즉석에서 짠 공연 MC내용에 대해서는 공연이 끝난 뒤, 연출가로부터 질책을 듣기도 하였다.
'MC는 말하자면 공연의 분위기를 띄우는 계단 같은 것인데, 오늘 MC는 그런 역할을 전혀 해 주지 못했어. 다른 멤버들이 이야기 하고 있을 때, 다들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 지 생각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 했고. 이래서는 관객분들과 하나가 되지 못 한다고'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멤버들은 'MC란 그저 그 때 느낀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라이브에 단계를 나누어 주고, 다음 곡으로 가기 위해 회장의 분위기를 형성 해 주는 MC라는 것이 그리 적당적당히 해서 될 것일 리가 없었다.
라이브가 끝난 뒤, 멤버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거듭하다 보니 자신들에게 지금 부족 한 것이 무엇인지가 조금씩이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비단 MC뿐 아니라 객석의 반응을 꼼꼼히 살피고, 그에 맞추어 회장의 열기를 끌어 올릴 수 있도록 퍼포먼스를 하여야만 '라이브가 하나의 쇼로서 성립 할 수 있는 조건'이자 '관객과 하나가 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때부터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팀'이 하나가 되어 목표로 해야 할 곳이 보이기 시작했다.
'관객분들과 함께 신나게 즐기자'
첫 단독 라이브의 실패를 통하여 겨우 자신들이 해야 할 것이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목표가 정해졌으니 남은 것은 체력을 길러 앞으로 남은 라이브에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임하는 것 뿐이었다.
Zepp Tokyo 공연에선 만족스럽게 리허설에 참가 할 수 없었던 나가하마 네루도 Zepp Namba공연부터는 미리미리 스케줄을 조정 해 달라고 운영측에 직접 부탁을 하였다.
이 때, 처음으로 히라가나 케야키 12명의 멤버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직후에 히라가나 케야키자카 사상 최대의 사건이 터질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니터에 비춰진 '긴급공지'라는 네 글자
1st 원맨라이브가 끝난 지 약 보름가량이 지난 2017년 4월 6일.
요요기 제 1체육관에서는 '케야키자카46 데뷔 1주년 기념 라이브'가 열리고 있었다.
이 날은 '사이마조'가 발매 된 지 1년이 되는 날로, 지금까지 케야키자카46가 릴리스 한 싱글의 수록곡들을 전부 선보이는 대규모 라이브로, 당연히 히라가나 케야키 역시 참가하는 라이브였다.
이 날, 다카세 마나는 리허설 시점에서 이미 뭔가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꼈다. 어째서인지 집중이 되지 않았고, 안무나 포메이션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쩌면 이것은 그 날 있을 사건에 대한 전조였을 지도 모른다.
오리지널 곡 수가 적은 히라가나 케야키는 이 날, 대기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었다.
그렇기에 공연을 앞두고 신경 쓰이는 부분을 체크하기 위하여 넓은 곳으로 이동하여 연습을 하려 했다.
이는 이 날 처음으로 이용하게 된 토롯코(사다리차)의 체크를 겸한 것이었다.
'여기서는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였던가?'
'아, 거기는 이렇게 이동해서 이렇게 하면 돼'
라고 서로 가르쳐 주기는 했지만, 어째서인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다들 어딘가 안절부절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였다. 히가시무라 메이가 문득 자신 옆에 있던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스태프들이 회장 전체의 모습을 모니터링 할 때 사용하는 모니터였다.
화면에는 리허설에 매진하는 한자 케야키 멤버들의 모습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한자 케야키 멤버들의 연습이 끝난 뒤, 갑작스럽게 모니터에 글자 네 자가 떠올랐다.
'긴급공지!'
히가시무라는 그 글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런 히가시무라의 모습을 눈치 챈 다른 멤버들도 곁으로 몰려 와 화면을 보며 '어… 이거…'라고 입을 뗐다.
그리고 화면에서 네 글자가 지워진 뒤, 곧이어 충격적인 내용이 떠올랐다.
'히라가나 케야키 증원 결정!'
'올 여름, 오디션 개최'
멤버들은 한 순간 지금 자신들이 보고 있는 글자들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 할 수 없었다.
멤버들 중 몇몇이 비명을 질렀고, 일부는 눈 앞에 있던 의상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본 나머지 멤버들도 서둘러 의상실로 뛰어들어갔다.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끔찍한 장면을 보기라도 한 듯 히라가나 멤버들은 작은 의상실에 숨을 죽이고 틀어 박혀 상황을 정리했다.
사실 이 때 그녀들이 목격한 VTR은 라이브가 끝날 때 서프라이즈로 발표 될 내용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절대로 멤버들이 볼 수 있는 곳에 틀어놓아서는 안 될 내용이었지만, 리허설을 겸해 영상 내용을 체크하기 위하여 스태프용 모니터에만 틀어 놓는다는 것이 실수로 흘러 나왔던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대기실에 있었어야 할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이 연습 및 확인을 위해 외부에 나왔다가 우연히 목격하게 된 것이었다.
'히라가나 케야키 인원을 늘린다'
이것은 곧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이 지금 있는 12명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는 뜻이었다.
Zepp Tokyo공연의 실패를 통하여 수 없이 반성회와 회의를 거치며 이제 겨우 마음이 하나가 되어 새롭게 출발하려 했던 그녀들에게 있어 그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이야기였다.
좁은 의상실에 틀어박힌 멤버들은 패닉상태에 빠져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갑자기 사사키 미레이가 의상실 문을 걸어잠그고는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이럴 바에는 그냥 모두 그만 둬 버리자!'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느니 차라리 그룹을 그만 둬 버리는 게 낫다는 이야기였다.
뒤이어 누군가가 '그냥 오늘 라이브도 나가지 말자'라고 말을 받았고, 주변 멤버들 역시 그 의견에 동의했다.
사이토 쿄코는 분노 해 있었다.
'대체 나는 지금까지 뭘 해 온 거야!'
중학생 때부터 이 세계에 들어오기 위해 수 많은 좌절을 이겨내며 노력을 아끼지 않아 온 그녀가 처음으로 자포자기한 순간이었다.
12명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 하며, 서로를 지탱 해 주면서 해 온 지금까지의 노력들이 하나도 인정 받지 못 한 채, '너희는 아무 쓸모가 없다'고 선고를 받은 것만 같았다.
거대한 요요기 제 1체육관 안의 한 작은 방 안에서 소녀들은 감정의 폭풍우에 휩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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