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화
서지 못한 마지막 인사
2017년 4월 6일에 열린 ‘케야키자카46 데뷔 1주년 라이브’.
라이브 개시 직전,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은 우연히 자신들의 그룹에 추가멤버가 들어 오게 되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다.
지금껏 12명 체제로 운영되어 오던 히라가나 케야키가 더 이상 자신들의 그룹이 아니게 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멤버들. 한 때는 ‘이럴 바엔 모두 그만 둬 버리자’는 극단적인 이야기도 나왔지만 스태프들의 설명을 듣고 일단 진정하였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멤버들 사이에선 새로운 의식이 싹텄다. ‘앞으로는 한자 케야키의 언더 그룹이 아니라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독립된 그룹으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히라가나 케야키다움’이라는 것을 모색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런 가운데 동년 5월 31일, Zepp Namba에서 개최된 라이브에서는 세트리스트도 큰 폭으로 바꾸며 ‘새로운 히라가나 케야키’의 모습을 선보이게 된다.
‘모두 함께 히가시무라를 믿어주자’
Zepp Namba 공연이 종료된 그날 밤, 멤버들과 스태프들은 근처 음식점에서 공연이 무사히 끝난 것을 기념하며 회식을 가졌다.
멤버들이 한 명씩 차례대로 일어나 그 날 공연에 대한 감상과 다음 공연인 Zepp Nagoya 공연에 대한 각오를 이야기 하는 시간도 있었다. 멤버들은 다들 밝고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불과 얼마 전에 있었던 Zepp Tokyo공연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 날, 고향인 나라현에서 온 가족들 앞에서 노래를 했던 히가시무라 메이 역시 평소보다 밝고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다른 멤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실 이 날 공연이 시작되기 전, 리허설 때만 해도 히가시무라는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오사카 출신인 다카세 마나와 함께 듀엣곡인 ‘미소가 슬퍼’를 연습하고 있었을 때의 일이었다.
히라가나 케야키에 들어오기 전만 해도 노래방에서 남들 앞에서 노래하는 것 조차 부끄러워 좀처럼 마이크를 손에 들지 못 했던 히가시무라가 큰 라이브하우스의 관객들 앞에서 노래를 한다는 것은 사실상 엄청난 부담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히가시무라가 부담을 느낄 것이라는 점은 이미 스태프들도 예상하고 있는 바였다. 평소에도 얌전하고 목소리도 작은데다가 그룹 내에서 가장 눈물이 많은 그녀에게 솔로파트가 많은, 그것도 듀엣곡을 부르게 한다는 것은 시기상조가 아니냐는 지적 역시 스태프들 사이에서 오갔다.
‘히가시무라 괜찮으려나… 만에 하나 오늘 본무대에서 실수라도 하면 더 큰 상처가 될테고, 그러다 보면 아예 퍼포먼스 하는 것 자체를 무서워 하게 될 수도 있는데… 하지만 오늘 이 시련을 넘어서지 못 하면 성장 하지 못 할 거야. 모두 함께 히가시무라를 믿어주자’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히가시무라는 본 무대를 훌륭하게 소화 해 냈다. 그리고 주변 멤버들과 스태프들에게 ‘잘 했어’라고 칭찬을 받기도 하였다.
그 뿐 아니라 그녀는 같은 해 7월 6일에 열린 Zepp Nagoya 공연에서는 유닛곡인 ‘푸른 하늘이 달라’나 ‘놓쳐버린 버스’에도 참가하였고, 더 나아가 한자 케야키의 곡 중에서도 춤이 격렬한 편인 ‘이야기 한다면 미래를…’에서도 자신의 잠재성이 얼마나 큰 지를 멋지게 증명 해 보였다. 참고로 이 곡은 히가시무라가 예전부터 꼭 도전 해 보고 싶었던 곡이기도 했다.
3월부터 시작된 전국 투어를 통하여 히가시무라의 ‘퍼포머로서의 소질’은 급격하게 꽃을 피웠다. 그리고 그녀를 그렇게 급격히 성장시켜 준 것은 다름아닌 그녀 본인의 성격… 눈물이 많은 성격 그 자체였다.
지금 자신의 모습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는 강한 마음
히가시무라는 중학생때 부 활동으로 ‘컬러가드’라는 경기를 하며 운동능력을 키워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컬러가드 프로 퍼포머가 되고싶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 않았다.
당시 그녀는 장래에 치위생사가 되기를 꿈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치위생사라는 꿈 역시 딱히 무슨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막연하게 해 보고 싶었던 것 뿐이었다.
그런 그녀가 고 2가 되었을 무렵, 그녀의 언니가 히라가나 케야키 오디션을 보라고 추천하였다. 그녀 본인이 이 오디션에 응모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몸 움직이는 건 좋아하니까’ 라는 막연한 이유였다.
오디션 당시만 해도 스태프들은 그녀에게서 어떤 특별한 퍼포머로서의 재능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뿐 아니라 합격 이후, 댄스와 노래 레슨 때마다 툭하면 눈물을 터뜨리는 그녀를 보며 내심 ‘얘는 앞으로 잘 해 나갈 수 있을까’라는 불안이 더 컸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가 간과하고 있었던 점은, 그녀가 우는 이유가 단순히 그녀가 ‘약해서’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약하긴 커녕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녀 자신이 스스로에게 설정한 높은 기준과, 그 기준에 부합하지 못 하는 자신에 대한 회한이 부글부글 끓어 오르고 있었다.
‘왜 내 생각처럼 노래 하지 못할까. 속상하네. 내 마음처럼 퍼포먼스 하지 못 하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
말 하자면 그녀는 지금 자신의 모습에서 시선을 돌리거나 타협하지 않고 더 높은 경지를 추구하는 강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컬러가드 전국대회에 나가 금상을 땄을 때조차도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않고 더욱 더 자신을 채찍질하며 연습에 몰두했던 중학생때부터 변치 않고 그녀 마음 속에 존재 해 왔던 미덕이었다.
그렇기에 히가시무라 메이는 눈물을 흘릴 때마다 조금씩 성장 해 올 수 있었다. Zepp Namba 공연에서 ‘미소가 슬퍼’를 맡게 되었을 때에도 리허설 때는 눈물을 흘렸지만 공연이 끝난 뒤에는 그 경험을 자신감으로 바꾸어 냈듯이 말이다.
그 뿐 아니었다. 전국 투어 회가 거듭될수록 그녀는 눈에 띄게 성장하였다. ‘세카아이’에서 포에트리 리딩에 도전하거나, 케야키자카46의 곡들 중에서도 최고 난이도의 곡 중 하나인 ‘AM 1:27’의 가창 멤버에 발탁 되었을 때에도 그런 난관들을 하나씩 극복 해 가며 그녀의 노랫소리는 점점 커졌고, 그녀의 춤은 점점 더 활력을 띄게 되었다.
그리고 투어가 끝난 뒤 취재를 위해 멤버들에게 배부한 앙케이트의 ‘좋아하는 것’ 항목에 그녀가 적은 것은 ‘춤 추고 노래하는 것입니다’였다.
스테이지 뒤에서 흘린 두 사람의 눈물
Zepp Nagoya 공연이 끝난 뒤, 히라가나케야키의 전국투어는 9월까지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
그 동안에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케야키자카46로서 여름을 지냈던 것이다.
케야키자카46는 이 해 처음으로 전국 투어를 실시, 겨우 한 달이라는 시간동안 6개 회장에서 11공연이라는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 해 냈다. 그 뿐 아니라 ‘ROCK IN JAPAN FESTIVAL 2017’이나 ‘SUMMER SONIC 2017’ 등 록 페스티벌에도 다수 참가하였고, 거기에 더하여 각 방송국들의 여름 음악 특방에도 출연하였다.
그렇게 눈코뜰 새 없이 바쁜 여름의 시작을 알린 것이 바로 7월 22일, 23일 양일간 열린 그룹의 첫 야외 라이브, ‘케야키공화국 2017’이었다.
사실 1월에 있었던 1주년 라이브의 완성도에 만족할 수 없었던 케야키자카46 멤버들에게 있어 이 라이브야말로 리벤지 무대라고 할 수 있었다.
라이브 본 공연은 케야키자카의 깃발을 든 맴버들의 마칭 퍼포먼스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불꽃놀이 연출을 신호로 첫 곡인 ‘사이마조’가 흘러 나왔고, 뒤를 이어 ‘세카아이’, ‘후타리세종’ 등 싱글 타이틀곡들이 선보여졌다.
약 2시간 반에 걸친 본 스테이지가 끝난 뒤에는 객석을 향해 물을 뿌리는 등 지금껏 케야키자카46라는 그룹이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참신한 연출들이 시도되었다.
히라가나 케야키는 한자 케야키와 함께 부르는 곡인 ‘W KEYAKIZAKA의 노래’를 비롯하여 총 4곡에 참가하였으며, 중간에 있었던 댄스브레이크 때 사이토 쿄코가 스즈모토 미유와 함께 춤을 전보이는 장면도 있었다.
스즈모토는 전체 그룹을 통틀어 보아도 춤으로는 한 손에 꼽히는 멤버로 춤의 절도, 박력, 표현력 등 모든 분야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뽐내는 퍼포머라 할 수 있다.
그런 스즈모토와 마주보고 춤을 추게 된 사이토는 필사적으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였다. 때로는 한자/히라가나 케야키의 전곡 안무를 담당한 TAKAHIRO에게 직접 조언을 구하기도 하였다.
사이토가 ‘이렇게 하면 되나요?’라고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 하며 직접 춤을 추어 보이면 TAKAHIRO가 ‘좀 더 자신감 갖고 해 봐’라고 조언을 해 주는 식이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해 볼 수 있는 것이야말로 뒤를 좇는 자의 특권, 사이토는 그런 특권을 마음껏 구사하며 본 무대에서 지금껏 본 적 없는 멋진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히라가나 멤버들 중 자신의 껍질을 깨 부수고 새롭게 태어난 것은 히가시무라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라이브 이틀째 마지막 공연에서 다시 한 번 히라가나 멤버들은 큰 변곡점을 지나게 된다.
2016년 크리스마스에 열린 ‘케야키자카46 첫 원맨라이브 in 아리아케 콜로세움’이후로 전체 라이브의 마지막곡은 언제나 ‘W KEYAKIZAKA의 노래’로 정해져 있었다. 아무리 참가 곡수가 적다고 해도 이 곡을 통하여 히라가나 멤버들이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케야키 공화국’ 첫 날 공연 역시 마찬가지로 ‘W KEYAKIZAKA의 노래’로 끝을 맺었다.
하지만 2일째 마지막 공연은 앙코르로 W KEYAKIZAKA의 노래를 한 뒤 끝이 나지 않았다. 이 날은 더블 앙코르가 나왔기에 이에 응하여 한자 케야키 멤버들만이 무대에 서서 신곡인 ‘위태로운 계획’을 처음으로 선보였던 것이다.
이 곡은 공연 직전에 발매 된 케야키자카의 첫 앨범에 수록된 곡으로, 여름 페스티벌에 어울리는 신나는 곡이었다.
갑작스러운 신곡 피로에 회장 안을 메운 관객들은 열광하였다.
한자 케야키 멤버들 역시 그런 팬들의 열기에 화답하듯 있는 힘을 다 쥐어 짜 내며 퍼포먼스를 하였다.
신곡 피로가 끝난 뒤, 흥분상태에 있던 한자 멤버들이 일렬로 늘어 서 손을 잡고 객석에 인사를 했던 바로 그 순간, 이어모니터를 통하여 스태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 정말 최고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 뒤로 돌아 온 순간, 히라테 유리나가 갑작스럽게 무너져 내리더니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아 울기 시작했다.
히라테는 울먹이며 ‘너희들 정말 사랑해’라고 이야기 했고, 그런 히라테의 말을 들은 한자 멤버들은 서로 어깨를 부둥켜안고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룹 멤버들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 낸 완벽한 라스트신에 멤버들, 스태프들 할 것 없이 모두가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들의 기쁨의 눈물과는 또 다른 눈물이 무대 뒷편에서 흐르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우리도 팬분들께 마지막 인사 드렸으면 좋았을텐데’
웃으며 스테이지에서 내려오는 한자 케야키 멤버들을 보며 카토 시호가 입을 열었다. 눈에는 눈물이 잔뜩 맺혀있었다.
그리고 그런 카토의 모습을 보며 사사키 쿠미를 비롯한 주변 멤버들 역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사실 라이브 마지막에 ‘W KEYAKIZAKA의 노래’를 부르고, 객석에 인사를 한다는 것은 히라가나 멤버들에게 있어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아무리 오리지널 곡 수가 적고, 아무리 한자 케야키의 그늘 아래 숨겨 져 있어도 ‘우리 역시 이 라이브를 함께 만들어 온 그룹의 일원이다’라는 점을 느끼게 해 주는 순간이 바로 그 마지막 인사였기 때문이다.
1주년 기념 라이브에서의 추가 멤버 모집 발표를 계기로 ‘더 이상 한자 케야키의 언더 그룹이 아닌, 아무리 미약하다 해도 독립된 그룹으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의식을 갖게 되고, 전국 투어를 통하여 자신들의 성장을 확인하였던 히라가나 멤버들에게 있어, ‘자신들이 없어도 공연은 별 지장 없이 진행되고, 관객들도 성대하게 박수를 보내준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하여 히라가나 멤버들은 다시 한 번 자신들의 존재의의에 대하여 고민하고, 그 답을 찾기 위하여 모색하는 나날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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