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적 아이돌’에서 ‘유일무이한 아티스트’로
‘중요한 것은 희로애락을 느끼며 사는 인생!’
호기심 왕성한 아이돌의 타협하지 않는 도전
~NMB48 야마모토 사야카상~
자신이 흥미를 갖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데 까지 해 보지 않고서는 성이 풀리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야마모토상. 어린 시절부터 시작 된 음악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아직도 식지 않아, 그녀가 갖고 있는 기타만 해도 벌써 10개가 넘는다고. 타고 난 탐구심과 향상심은 아이돌이 된 뒤로도 변하지 않았으며, 그런 성격 덕분에 여러 차례 벽에 부딪히면서도 꺾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여러 차례 시련을 겪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다고 이야기 하는 그녀에게 ‘지난 8년간의 아이돌 생활을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졸업 한 뒤에 그리는 미래상은 어떤 것인지를 물어 보았다.
‘학생회장’에서 ‘NMB48의 리더’로
- 어릴 적에는 자연스레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몰려드는 존재, 한 반의 중심적인 존재였다는 그녀.
‘초등학생 때부터 꽤나 활발한 아이였고, 다른 사람들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던 것 같아요. 처음 춤을 배우게 된 계기는 단순히 집 근처에 댄스 스튜디오가 있었고, 엄마가 체험 입학을 추천 해 주셔서 언니랑 저 둘이서 다니게 된 것이고요. 사실 처음엔 연습이 너무 힘들어서 엄마에게 ‘일단 3년만 해 보고 그만둬도 돼?’라고 빌었을 정도로 춤이라는 것 자체가 싫어지기도 했습니다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는 점점 재미있어 지더라고요. 중학생이 되었을 즈음에는 1주일에 최소 6일은 춤을 배우러 다녔지요. (웃음) 선생님께서도 칭찬 해 주시고, 노력만 하면 못 했던 동작들도 할 수 있게 되는데다가, 스튜디오를 대표하는 선발 멤버로 뽑히게도 되면서 어느 사이엔가 저 스스로도 하고자 하는 마음이나 자신감이 생겼고, 그 결과 춤이라는 것이 즐거워 졌어요. 그 때 느꼈던 ‘지금껏 못 했던 것들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의 즐거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도 느끼고 있습니다.
-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학생회장을 맡는 등, 여러모로 성장하였지만 ‘존재감’이 있는 본 모습은 변함 없었다.
‘저 같은 경우는 사실 회장보다는 회장을 서포트하는 부회장 정도가 딱 알맞은 사람이라 생각하는데요, 친구가 ‘네가 회장 나가면 밀어줄게’라고 이야기 하는 바람에 반쯤 떠밀려서 입후보 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회장이 되어서 일을 해 보니 힘들기는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엄청 괴롭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이전부터 선두에 서서 다른 사람들을 규합하는 타입이긴 했기에, 학생회장이 된 뒤로도 딱히 위화감은 느끼지 않았고요. 여고와 아이돌이라는 차이는 있을 지 모르지만, 학생회장을 하며 경험한 것들은 NMB48의 리더로서 팀을 이끌 때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인생을 바꾼 ‘기타와의 만남’
- 현재의 야마모토상에게 크게 영향을 준 것은 바로 ‘그 아티스트’였다.
‘기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에이브릴 라빈상이었어요. 엄마가 에이브릴상의 팬이었기에 함께 CD를 듣기도 하고, 라이브에 가기도 하다 보니 저 역시 팬이 되었지요. 기타를 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멋져 보였습니다. 때마침 오빠가 악기에 흥미를 갖고 엄마에게 기타를 사달라고 하던 때였기에, 함께 오빠의 기타를 사러 악기점에 갔을 때 제 것도 함께 사 달라고 했었지요. (웃음) 하지만 정작 기타를 손에 쥐고 나니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기에 제대로 소리도 내지 못 했어요. 그냥 띵가띵가 아무렇게나 치는 것으로 시작을 했지만, 오빠가 기타 공부하는 모습을 흉내내다 보니 조금씩이나마 칠 수 있게 되었어요. 기타도 댄스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잘 못 치니 재미가 없었지만, 조금씩 칠 수 있게 되면서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고, 특히 제가 좋아하는 곡을 쳐 보고 싶다는 마음이 엄청 강했기에, 그 의욕만으로 실력을 늘려갔다고 할 수 있겠네요. (웃음) 그런 의욕이 있었던 덕분인지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을 즈음에는 어렵지 않은 곡이라면 어느 정도 칠 수 있게 되었지요.’
-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로 타협을 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데 까지 해 본다는 야마모토상. 그런 강한 마음은 ‘음악’이나 ‘춤’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아마도 지금 이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대학교에 가서 역사 선생님이 될 생각이었어요. 제가 학생일 때 저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의 수업이 정말 즐거웠고, 그 선생님 덕분에 역사를 좋아하게 되었거든요. 그렇기에 저 역시 그 선생님처럼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역사란 것은 교과서에 실려 있는 사실들도 그렇지만, 교과서에 실려있지 않은 것들, 예를 들어 ‘미나모토노 요시츠네는 사실 살아 있었다’ 처럼 잡학적인 부분이 재미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알아가는 것이 정말 즐거웠어요. 그 덕분에 역사 뿐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건 신경쓰이는 부분이 있으면 바로 찾아보고, 흥미가 생기면 깊게 파고드는 버릇이 생겼지만요. (웃음)’
그녀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목표 달성’
- 아이돌이라는 것에는 별달리 흥미가 없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오디션에 참가했다는 그녀.
‘당시에는 여러 오디션들을 받았는데요, 어느 것 하나도 생각처럼 되지 않았어요. 더 이상은 안되겠다고 포기할까 하던 때, 엄마가 NMB48의 오디션을 알아 오셔서는 받아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선배 그룹인 AKB의 선배님들께서 아이돌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병행하고 계셨기에, 저도 ‘아이돌과 음악 활동을 병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디션은 이걸 마지막으로 더 받지 말자’는 마음으로 오디션에 응모 했지요.’
‘그룹에 들어 간 직후엔 그 때 그 때 눈 앞에 닥친 일들을 해치우는 것 만으로도 필사적이었어요. 처음에는 제가 아이돌이라는 것에 대해 위화감도 많이 느꼈습니다만, 활동을 하면서 아이돌은 아이돌 나름대로 여러 분야의 일들을 경험 할 수 있고, 라이브 자체도 정말 즐거웠기에 점차 이 일의 좋은 부분을 알아 갈 수 있었지요.’
- 일본이 자랑하는 톱 아이돌의 멤버다 보면 1분 단위로 촘촘하게 스케줄이 짜여져 있을 정도로 정신 없이 바쁘기 마련이다. 그런 때는 어떻게 휴식을 취했을까?
‘멤버들과 사이가 매우 좋기에, 다 함께 외출해서 밥을 먹거나, 유원지에 가거나, 라이브를 보러 가거나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말 그대로 분 단위로 움직여 왔기 때문인지 이 일을 시작 한 뒤로 시간 관리를 하는 것이 능숙해 졌어요. 스케줄이 반나절만 비어 있어도 엄청 적극적으로 나돌아다니곤 합니다. (웃음) 물론 때로는 정신도 못 차릴 정도로 바쁠 때도 있지만, 한 팀의 멤버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아티스트로서 항상 나름대로의 목표를 세우고 있기에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 하면 된다고 봐요.’
‘인생의 분기점엔 항상 어머니가’
- 아이돌로서 다양한 활동을 해 봤지만, 가장 좋아했던 것은 역시나 가수로서의 활동이었다.
‘특히 라이브에서 노래를 하는 것은 특별했어요. 연기나 버라이어티 방송 등 여러 가지 일을 할 때, 예전에는 그 일에 맞추어 저 스스로를 바꾸었었는데요, 요즘에는 딱히 바꾸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솔로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 뒤에 저를 알게 되시고 저를 좋아하게 되셨다고 말씀 해 주신 게 계기 중 하나였는데요, 사실 이 얘기, 다르게 이야기 하면 솔로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저에게 흥미가 없으셨다는 얘기잖아요? (웃음) NMB48의 멤버로서 여러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저를 알아 주신 분들이 많으신 만큼, 어떤 일을 할 때도 야마모토 사야카는 야마모토 사야카라는 점을 느끼게 해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여러 활동을 하다 보면 그만큼 벽에 부딪히는 일도 늘어납니다만, 아무리 힘든 일이 있더라도 그것을 뛰어넘으면 반드시 행복한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 무언가를 생각하며 힘을 내는 것이지요. 때로는 풀이 죽기도 하고 부정적인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 건 자신의 생각을 바꾸면 얼마든지 넘어 설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최소한 제가 해야만 하는 것들은 확실히 해 두고 있습니다.’
- 그녀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음악’, 그런 음악만큼이나 소중한 존재가 있다. 바로 ‘어머니’이다.
‘때때로 ‘만약 엄마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하곤 할 정도로 엄마라는 존재는 제게 있어 위대한 존재입니다. 춤은 물론이고 노래, 기타에도 흥미를 갖게 된 것은 엄마가 계기였고, NMB48에 들어가게 된 것도 엄마의 조언 덕분이니까요.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에는 항상 엄마가 계셨죠.’
‘새로운 발견 없이 성장은 이룰 수 없다’
- 야마모토상에게는 큰 꿈이 있다.
‘아티스트로서의 목표는 솔로로 홍백가합전에 나가는 것, 그리고 월트투어를 열 수 있을 정도의 아티스트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조금 더 나아가서 제가 신세를 진 AKB그룹에 제 곡을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앞으로 인생 경험을 쌓아가다 보면 지금과는 다른 곡들을 쓸 수 있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 점이 굉장히 기대가 됩니다. 후배들을 위해 곡을 쓰고, 그 곡으로 상을 받고, 작품으로 평가 받는 그런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 야마모토상이 생각하는 ‘풍요로운 인생’이란 어떤 것일까?
‘보통 풍요로운 인생이라 하면 무엇보다 먼저 돈이 많은 것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만, 저는 워낙에 구두쇠라 딱히 돈을 많이 쓰지 않고도 살아가는 데에는 불편이 없기 때문에, 제게 있어 ‘풍요로운 인생’이란 돈과는 큰 관계가 없을 것 같아요. (웃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희로애락, 이 네 가지 감정이 확실히 느껴지는 인생이라 생각합니다. 8년이라는 시간동안 아이돌 그룹에서 활동하면서 깨달은 점이지요. 그룹으로 활동을 하며 지금껏 기억에 남아 있는 것들은 대부분 슬펐던 일, 힘들었던 일들이 많습니다만, 그 덕분에 드물게 느낄 수 있었던 ‘즐거운 일’들이 더욱 더 크게 느껴지고,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기에 인생을 사는 데 있어 즐거운 것 만이 좋은 것은 아니며, 때로는 힘들고 싫은 일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운이 매우 좋아서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었기에, 말하자면 꽤나 충실하게 살아 온 인생이라 생각하거든요. ‘일’은 물론이고 사생활 면으로도 매일같이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었기에, 저 스스로도 이렇게 성장 할 수 있었고, 성장을 실감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지금까지의 인생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걸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Profile
야마모토 사야카(山本 彩)
1993년 7월 14일생. 2010년, 『NMB48오프닝 멤버 오디션』에 합격, NMB48의 일원으로 활동을 개시. 이듬해 NMB48의 캡틴으로 취임한 이래로 오랜 기간 동안 그룹의 리더로서 멤버들을 견인했다. 제 67회 NHK홍백가합전 당시, 방송의 기획으로 실시된 ‘홍백선발’에서는 당당히 제 1위를 차지하기도. '18년 7월, NMB48 졸업을 발표 한 뒤, 10월 17일에는 졸업 싱글인 ‘나도 울어버려’를 발매, 10월 27일에는 만박기념 공원 히가시노 광장에서 졸업 콘서트가 예정되어 있다.
홈페이지 : http://yamamotosayaka.jp
원문 : https://www.meijiyasuda.co.jp/dtf/daily/lifeevent/181025sp009.html
'미디어 > 미디어-NMB'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델 프레스 - 스토 리리카 라스트 인터뷰 (0) | 2017.08.30 |
---|---|
스토 리리카 블로그 - 선배님들과의 조우 3 '번외편' (0) | 2016.04.05 |
야마구치 유우키 160327 블로그 (0) | 2016.03.28 |
스토 리리카 블로그 - 선배님과의 조우 '할머니 할아버지편' (0) | 2016.03.08 |
스토 리리카 블로그 - '선배님과의 조우 -프롤로그-' (0) | 2016.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