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화
히라가나란 무엇일까?
2018년 1월 30일부터 2월 1일에 걸쳐 3일간 일본무도관(이하 부도칸)에서 열린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의 단독 공연. 당초 예정상으로는 3일 중 이틀은 한자 케야키가 공연을 하기도 되어 있었으나, 공연 개최를 약 2주 가량 남긴 시점에 사정은 급변, 히라가나 케야키가 3일 공연을 전부 담당하는 것으로 계획이 수정되었다.
갑작스러운 변경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 하는 멤버들, 하지만 그런 가운데도 마음을 다잡고 ‘사람들을 놀라게 해 주자’, ‘전설에 남을 라이브를 보여주자’고 서로를 다독이며 무대에 섰다.
그리고 ‘서커스’를 테마로 한 컬러풀한 세계관으로 장식 된 스테이지에서 관객들을 매료하며 3일간에 걸친 공연은 성황리에 마무리 되었다.
또한 이 공연 마지막에 히라가나 케야키의 단독 앨범 발매 소식이 서프라이즈로 발표 되어, 그룹 활동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다음 곡 센터가 2기생이라 해도 괜찮아요’
부도칸 공연이 마무리 된 지 며칠이 지나 2월 12일,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2기생들에게는 첫 단독 이벤트인 ‘오모테나시회’가 개최되었다. 이는 선배에 해당하는 한자 케야키와 히라가나 케야키 1기생들 역시 각각 통과 해 온 그룹 전통의 이벤트이다.
그리고 이번 무대는 부도칸 공연을 성공시킨 히라가나 케야키의 기세를 과시하기라도 하듯 치바현 마쿠하리 멧세라는 큰 회장에서 열리게 되었다.
마쿠하리 멧세는 작년에 있었던 전국 투어 파이널 공연의 장소로, 2기생들에게 있어서는 무대 데뷔를 이루어 낸 장소이기도 했다. 투어 때는 1기생들과의 합동곡 1곡만 참가하였으나, 이번에는 7,000명에 달하는 관객들 앞에서 2기생만으로 8곡 라이브를 포함한 퍼포먼스를 성공리에 선보이며 자신들의 잠재력을 뽐냈다.
그리고 2월 하순,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에게 좋은 소식이 찾아왔다. 봄 개편부터 히라가나의 칸무리방송이 두 편이나 시작된다는 소식이었다. 지금까지 한자 케야키의 칸무리방송인 ‘케야카케’ 등에 드문드문 출연하기는 했지만, 그 방송은 어디까지나 선배인 한자 케야키의 방송에 ‘게스트’로서 출연했던 것이었기에 자신들만의 칸무리방송이 시작된다는 것은 히라가나 멤버들에게 있어 꿈만 같은 일이었다.
사이토 쿄코는 ‘아이돌 활동에 있어 TV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지’에 대해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가입 초기 ‘케야카케’에 나와 자신의 특징인 낮은 목소리와 라면 마니아라는 점을 어필하였기에 비교적 빠른 시기에 팬층에게 주목을 받고, 그 결과 악수회 인기도 높아졌으며, 유닛곡에서 센터를 맡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 조차도 자신들이 칸무리방송을 할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 했다.
‘지금까지 그룹의 목표 중 하나로 칸무리방송을 언급 해 왔습니다만, 사실은 이룰 수 없는 꿈이라 생각했기에 입 밖으로 그 얘기를 꺼내는 것 조차 부끄러웠어요. 하지만 그 꿈이 이렇게 이루어 지다니… 저희는 정말 축복받은 그룹 같아요.’
새롭게 시작된 히라가나의 칸무리방송의 제목은 ‘히라가나오시!’와 ‘KEYABINGO!4 히라가나 케야키는 어떤 그룹?’이었으며, 두 방송 모두 4월부터 시작되었다. 또한, 그룹 전원이 출연하는 첫 연극무대 ‘아유미’ 역시 4월에서 5월에 걸쳐 상연이 확정되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악수회 외에는 일거리가 없었고, 한자 케야키가 음악 방송에 출연할 때 도맷금으로 함께 출연을 하더라도 조명조차 비춰지지 않았던 히라가나 케야키. 그 때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 했던 일들이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현실로 바뀌어가는 나날을 보내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던 멤버들도 있었다. 다카모토 아야카는 당시를 이렇게 되돌아본다.
‘예전에는 아무리 저희가 열심히 하려 해도 노력할 기회조차 없었어요. 그렇기에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 지 고민했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죠. 하지만 그런 예전의 기억이 있기에 지금 이렇게 바쁜 것이 너무나도 기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이렇게 계속 노력한다면 저희들도 언젠간 노기자카 선배님들이나 한자 선배님들처럼 멋진 아이돌이 될 수 있겠지요?’
이런 식으로 그녀들의 심경이 변한 데에는 전국투어부터 부도칸 공연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라이브를 하며 1기생들 자신의 평가가 착실히 쌓아 왔다는 점, 그리고 2기생들의 가입으로 인해 그룹 자체의 폭이 넓어 진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멤버들은 알지 못 하는 곳에서 또 다른 거대 프로젝트가 시동이 걸렸다.
다름 아닌 ‘사카미치 그룹 합동 신규 멤버 모집 오디션’ 이었다.
‘사카미치 그룹’으로 불리는 세 그룹, 다시 말 해 노기자카46, 케야키자카46,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이 동시에 오디션을 연다는 이야기였다. 노기자카, 케야키자카라는 ‘선배 그룹’과는 별개로 히라가나 케야키의 새 멤버를 받는다는 것은 업계 관계자들은 물론 팬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가 발표 되었을 당시, 히라가나 케야키의 2기생들은 활동을 시작한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갑작스러운 발표에 동요하는 2기생들. 그 모습은 1년 전, ‘추가 멤버 오디션’ 개최 소식을 알았을 때의 1기생의 그것과 비슷했다.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간다면 나가하마 네루의 가입과, 히라가나 케야키 결성 발표를 알게 되었을 때의 한자 케야키 멤버들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2기생들의 모습을 본 우시오 사리나는 자신들이 1년 전에 비해 확실히 강해졌다는 것을 실감했다.
‘사실 저희도 2기생 모집을 알았을 때 엄청 울었거든요. 그런데 합동 오디션 얘기를 들었을 때는 크게 불안하지 않았어요. 아마 2기생들이 들어 와 준 덕분에 방송이나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늘었고, 그 결과 그룹 전체가 크게 성장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3기생이 새롭게 들어 와 준다면 히라가나 전체가 더욱 더 밝은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어요.’
사실 이미 이 때부터 코사카 나오를 비롯한 2기생들이 단독으로 잡지 표지를 장식하곤 했다. 그렇게 2기생들의 미디어 노출이 늘어나며 그룹 전체의 지명도가 나날이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1기생들은 실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카토 시호 역시 스태프에게 자신의 본심을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저 개인적으로는 다음 곡 센터는 2기생이 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귀여운 아이가 한 가운데 서는 게 좋잖아요. 저는 뒤에서 최선을 다 해 그 아이의 버팀목이 되어 주고 싶어요.’
부도칸 공연 이후 그룹에 불어 온 변화의 바람이 멤버들을 정신적으로 성장시켜 준 것이다. 그런 가운데 말 그대로 ‘인생 최대의 결단’을 내린 멤버도 있었다.
그룹 최연장자, 이구치 마오 이야기이다.
지금껏 그려 온 인생 설계가 어긋난 순간
이구치 마오가 히라가나 케야키의 오디션을 받은 이유는 ‘심사위원들을 놀라게 해 주고 싶어서’ 라는 것이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이구치는 친구들 사이에선 무드메이커로 통했다. 그녀는 거의 매일같이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서 특유의 ‘음치’를 숨기지 않으며 친구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다름 없이 AKB의 노래를 부르며 ‘아이돌 놀이’를 하고 있으려니 한 친구가 갑작스레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마오, 아이돌이 되는 건 어때? 마오가 오디션에 간다면 심사위원들도 깜짝 놀랄걸’. 그런 친구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스마트 폰으로 ‘아이돌 오디션’을 검색해서 나왔던 것이 히라가나 케야키의 오디션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응모했었기에 본인은 합격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 했지만, 쇼룸 심사 때 몇 시간이나 하이 텐션으로 즐겁게 이야기 하는 그녀의 모습은 이미 팬들 사이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그렇게 최종 합격자에 이름을 올린 그녀.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로서 정식 데뷔를 한 이후, TV에서나 악수회에서나 음치임을 숨기지 않고 전력으로 노래를 부르고, 거리낌 없이 인기 배우의 흉내를 내는 그녀의 독특한 캐릭터는 금새 팬들 사이에 침투 하였다.
하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고민거리가 늘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그녀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덜컥 아이돌이 되어, 미디어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처음으로 참가한 MV ‘누구보다 높게 뛰어!’가 유튜브에 공개 되었을 때에도 댓글란에는 이구치의 어설픈 춤을 지적하는 댓글이 가득했다.
그녀 본인이야 지금까지와 다를 것 없이 ‘즐거운 일들을 했’을 뿐인데 어느 사이엔가 불특정 다수에게 그런 행동 하나 하나를 평가받는 입장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나쁜 평가를 받다니, 내 인생도 끝장났구나… 이렇게 가다간 취직도 못 하고 결혼도 무리겠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이름도 바꾸고 인생을 다시 시작할까’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언젠가는 안무 연습 때 혼이 나서 우울한 상태로 사사키 쿠미의 댄스를 보고는 ‘나랑 같은 대학 3학년인데 저렇게나 필사적으로 연습 하다니… 아예 나랑은 사는 세계가 다른 것 같아’라 생각하고 혼자 멋대로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다. 예전에 항상 늦게까지 놀러 다니던 친구들이 그룹 라인에 올리는, 즐거워 보이는 사진을 보며 아이돌이 된 것에 대해 후회 하는 날도 많았다.
그룹에게 세 번째 오리지널 곡 ‘우리들은 사귀고 있어’이 주어졌을 때는 때 마침 그녀가 4학년 진학을 목전에 두고 있는 타이밍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 그녀는 그룹을 그만두고 진지하게 취업 활동을 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몇 번이나 다른 멤버들에게 ‘사무소로 가서 그만 둔다고 말 하려고’ 라 이야기 했다가, 멤버들이 울며 말려서 그만 뒀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윽고 그녀의 마음이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신기하게도 그녀의 마음 속에서 ‘그만 둬야지’라는 마음이 정점에 달했던 타이밍이기도 했다.
전국 투어 첫 공연이었던 제프 도쿄 공연에서 ‘후타리 세종’ 솔로댄스를 추게 되었던 그 때 말이다.
그녀는 내심 ‘이번 라이브만 끝나면 바로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채, 우시오에게 부탁 하여 울면서 솔로 댄스 연습에 매진했다. 그렇게 힘들게 연습을 했음에도 실제 무대에서 안무를 틀린 순간, 이구치의 머릿 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다음 번에는 더 잘 추고 싶어. 일단 다른 멤버들 방해는 되지 말아야지. 그럼 일단 첫 목표는 다음 공연에서 한 번도 틀리지 않는 것으로 하자.’
물론 아쉽게도 이후로 이어지는 공연, 적어도 부도칸 공연까지 이어진 공연 중 그녀가 ‘한 번도 안 틀리고’ 끝을 맞이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라이브 횟수를 더하면 더할수록 그녀의 마음 속에 ‘다른 멤버들과 함께 더 열심히 하고 싶다’는 생각은 커져갔다.
그렇게 그녀의 인생 설계, 다시 말 해 ‘대학을 나와 취직하고 결혼한다’는 계획은 서서히 변해서 부도칸 공연을 끝내고, 대학을 졸업했을 무렵에는 굉장히 단순한 것으로 변해 있었다.
‘뭐, 생각 해 보면 아이돌에서 실패 하면 니이가타로 돌아가면 되지. 지금까지는 타이밍을 놓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만 했지만, 인생 어차피 한 번 뿐이니까 즐기지 않으면 손해야.’
생각을 바꾸니 마음이 편해졌다. 노래방에 가서 친구들을 즐겁게 해 주거나 쇼룸에서 ‘일반적인 아이돌’들이 하지 않을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때, 자신이 빛나 보였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찬찬히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 해 본 결과, ‘언젠가 가게를 차리고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그 결과 떠오른 것이 바로 ‘지친 샐러리맨이나 아이돌 팬들이 부담없이 와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스낵 같은 가게를 열고, 내가 그 가게의 마마를 하면 매일매일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거기까지 생각 한 이구치는 곧바로 악수회에서 ‘스낵 마오’라는 가상의 가게를 오픈, 2기생 미야타 마나모를 설득하여 블로그와 쇼룸 등에서도 이 기획에 대하여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아이돌 답지 않은 그녀의 발상과 행동력은 다시 한 번 화제를 불러 일으키며, 이후 히라가나 케야키의 칸무리 방송에서도 대대적으로 다루어 지기에 이른다.
이 ‘스낵 마오’는 물론이고 아이돌로서의 이구치 마오가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이구치는 ‘자신이 즐거운’ 일을 할 때의 자신이 가장 빛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히라가나란 무엇일까’를 찾아 온 시간들
처음에는 ‘한자 케야키의 언더 그룹’으로 시작된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하지만 구체적으로 ‘언더’가 어떤 의미인지, 어떤 위치인지 명확해지지 않은 상황 하에서 멤버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자신들의 존재의의를 찾아 왔다.
2017년, 전국 투어를 하며 그룹의 상징인 ‘해피 아우라’를 찾아냈고, 그것을 계기로 그룹의 색이 변하기도 했다. 카게야마 유카는 이 전국 투어에 대하여 ‘히라가나란 무엇인가를 찾는 시간’ 이었다고 술회한다.
이후 나가하마 네루의 겸임 해제, 2기생의 가입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거쳐 히라가나 케야키는 단독으로 부도칸 3days 공연을 성공 시키기에 이른다. 그 뒤로 이어진 ‘단독 앨범 데뷔’는 지금껏 라이브를 통해 성장 해 온 이 그룹이 ‘앞으로 새로운 단계에 돌입함’을 나타내는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그룹의 선두에 서서 자신의 생각을 말로 나타내 왔던 사사키 쿠미는 ‘지금이라면 우리가 케야키자카46과는 다른 그룹이라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고도 밝혔다.
‘지금까지는 저희의 활동에 대하여 ‘한자 선배님들의 활동을 그대로 이어 받으면서도 거기에 해피 아우라를 더한 느낌’이라 설명 해 왔습니다만, 앨범 데뷔가 정해지고 2기생들이 들어 와 준 지금은 ‘저희는 한자 케야키와 다른,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입니다’라고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도 저희 히라가나 케야키는 멤버들 사이의 끈끈한 우정을 느끼실 수 있는, 보고 있으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해피한 그룹이 되고 싶습니다.’
그룹을 둘러 싼 환경은 크게 바뀌었지만, 사사키 미레이가 이루고 싶은 목표는 그룹 결성 초기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히라가나 멤버들 끼리 전국 47개 도도부현을 돌며 투어 해 보고 싶어요. 아, 그리고 양로원에 가서 춤을 춘다거나 멤버들과 함께 할머니 할아버지 수발을 든다던지 해 보고 싶네요.’
어릴 적에 인도네시아에 살았으며,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우시오 사리나 역시 초창기에서 지금까지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
‘언젠간 해외에서 라이브를 하고, 일본과 세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어요. 최근에는 악수회에도 해외에서 오신 팬분들이 늘어 났기에, 다음번엔 저희가 직접 만나러 가서, 노래를 통해 ‘감사합니다’라는 저희의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어요.’
2018년 6월 20일 릴리스 된 히라가나 케야키의 데뷔 앨범 ‘달려 나가는 순간’은 첫 주에만 15만장을 팔며 오리콘 주간 앨범 랭킹 1위를 획득, 음원 순위도 1위를 차지하며 첫 출발부터 2관왕을 달성하였다.
시즌 2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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