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화
선택받은 자들
2015년 8월, 노기자카46의 뒤를 잇는 ‘사카미치 시리즈’ 제 2탄, 케야지자카46가 결성되었다. 한편, 어머니의 맹렬한 반대로 케야키자카46 최종 오디션장에 참가하지 못 한 소녀도 있었다.
이후 그 ‘소녀’ 나가하마 네루가 그룹에 뒤늦게 가입하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그녀는 케야키자카46의 자매그룹격인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의 유일한 멤버로 활동하게 된다.
이듬해인 2016년 5월, 히라가나 케야키46의 추가 멤버 오디션을 거쳐 나가하마와 활동을 함께 하게 될 11명의 멤버들이 그룹에 가입하며 히라가나 케야키는 그룹으로서 본격적인 시동을 걸기 시작한다.
한 발 앞서 데뷔한 한자 케야키는 데뷔곡인 ‘사일런트 마조리티’부터 사회 현상 수준의 붐을 일으키며 일약 인기 그룹으로 발돋움, 데뷔한 해에 홍백 가합전 무대에 서는 등 승승장구한 반면, 히라가나 케야키의 지명도는 미미한 채, 활동 기회조차 변변히 부여받지 못 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런 그녀들에게 기회가 주어진 것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2017년 3월부터 전국의 라이브 하우스를 도는 소규모 전국 투어가 열리게 된 것이다. 이 투어를 계기로 12명의 멤버들간의 유대가 깊어지고 하나가 되어 가던 그녀들에게 시련이 주어진다. 투어가 시작된 지 불과 한 달 뒤인 4월에 열린 ‘케야키자카46 데뷔 1주년 기념 라이브’에서 그녀들을 깜짝 놀라게 할 발표가 있었던 것이다.
같은 꿈을 쫓는 동세대 소녀들
2017년 4월 6일. 도쿄 요요기 제 1체육관에서 ‘케야키자카46 데뷔 1주년 기념 라이브’가 열렸다. 이 라이브는 1년 전 같은날에 데뷔 싱글 ‘사일런트 마조리티’가 발매 된 것을 기념하여 열린 라이브로, 지난 1년간 발표한 4장의 싱글에 실린 곡 전곡을 선보이는 라이브였다. 말 그대로 그룹이 지금껏 해 온 라이브 중 최대 규모의 라이브라고 할 수 있었다.
토미타 스즈카는 홀로 이 라이브 회장에 와 있었다. 가족들이 음악을 좋아하는 관계로 예전부터 가족들과 함께 한류 아이돌, 일본 아이돌은 물론이고 얼터너티브 록 공연에도 간 적이 있지만, 혼자서 라이브를 보러 온 것은 이 날이 처음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동경해 온 케야키자카46의 스테이지를 보고 싶어 겨우겨우 손에 넣은 티켓이었다.
자신의 눈 앞에서 격렬하게 춤을 추는 케야키자카46 멤버들을 본 토미타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소녀들이 이런 식으로 자신의 꿈을 쫓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마저 느꼈다.
이 날 공연에는 히라가나 케야키도 참가하여 커플링곡으로 수록된 자신들의 노래를 몇 곡인가 선보였다. ‘우리들은 사귀고 있어’를 부를 땐 멤버들끼리 손을 잡고 토롯코에 탄 채 회장 내부를 휘젓기도했다.
한자 케야키의 팬으로 입덕을 하긴 했지만,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인 카토 시호의 악수회에도 간 적이 있던 토미타는 내심 ‘히라가나는 한자와는 다르게 말 그대로 아이돌스러운 느낌이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본공연이 끝나고 앙코르를 위해 멤버들이 무대 위로 등장한 순간 서프라이즈 발표가 있었다.
‘긴급공지!’
‘히라가나 케야키 증원 결정!’
‘올 해 여름에 오디션 개최!’
쉴 새 없이 스크린에 표시되는 발표에 회장 내부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멍하니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던 토미타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한 팬이 말을 걸어 왔다.
‘저 오디션 받을거야?’
갑작스러운 질문에 토미타는 웃으며 ‘에이, 제가 뭘요.’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이미 응모 할 생각을 정해둔 상태였다.
토미타는 사실 이전에도 몇 번인가 연예인 소속 사무소의 스카우트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중 한 번은 꽤 잘 알려진 유명 소속사에 면담을 하러 갔지만 인연이 아니었는지 아쉽게 소속 연예인이 되지는 못 한 경험도 있었다. 그러한 경험 때문인지 토미타의 마음 한 구석에는 계속해서 연예계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 토미타에게 있어 우연히 가게 된 콘서트에서 히라가나 케야키의 추가 멤버 모집 오디션 개최 발표를 보게 되었다는 것은 일종의 운명적인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 주는 것이었다.
‘무대 위에 서 있는 저 소녀들처럼, 내게도 꿈을 이룰 기회가 주어진거야.’ 토미타는 그렇게 느꼈다.
시간이 흐르고, 오디션 접수가 시작되었다.
토미타는 접수 개시 직후 오디션에 응모했다.
‘나도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히라가나 케야키 추가 멤버 오디션에는 스태프들이 예상한 것 이상의 응모가 몰렸다. 오디션에 응모한 후보자들의 수는 무려 약 1만 5천여명.
지금까지의 활동 내용을 보면 사실상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 하는 백댄서 취급인데다가 단독 데뷔는 커녕 그룹의 존속마저도 명확하지 않은 그룹의 오디션에 이만큼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은 경악할만한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의외였던 것은 응모자 중에 ‘히라가나 케야키의 라이브를 보았다’, ‘히라가나 케야키의 팬’이라는 응모자들이 많았다는 점이었다.
사실 그 해 3월에 시작된 히라가나 케야키의 투어는, 회장인 전국의 라이브 하우스는 물론이고 일부 영화관에서 라이브 뷰잉이 진행되었다. 이 덕분에 전국적으로 히라가나 케야키의 팬층은 서서히이긴 하지만 저변이 넓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라이브 뷰잉을 보며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가 될 마음을 갖게 된 응모자 중에는 코사카 나오도 있었다. 코사카는 초등학생 때 AKB48의 팬이 된 후 아이돌 오타쿠로 발전, 노기자카46나 케야키자카46에도 빠져 가족과 함께 응원을 해 왔다. 하지만 그녀의 ‘덕질’은 어디까지나 TV나 CD 같은 미디어를 통한 것에 그쳐, 실제로 라이브나 콘서트를 보러 간 적은 없었다. 그런 코사카가 히라가나 케야키의 라이브 뷰잉을 보러 간 것은 그녀가 중 3때, 같은 반에 있었던 ‘히라가나 케야키의 팬’인 친구의 권유에 의한 것이었다.
5월 31일, 그 날은 히라가나 케야키의 전국투어 오사카 공연이 열린 날이었다. 코사카는 오사카 시내의 한 극장에서 화면을 통해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이 춤 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이 날 공연은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이 지금까지의 노선에서 방향 전환을 시도한 중요한 공연이었다. 한자 케야키의 이미지가 강한 ‘사이마조’나 ‘불협화음’은 봉인하고 그 대신 ‘제복과 태양’, ‘미소가 슬퍼’ 같은 상대적으로 유순한 분위기의 곡들을 세트리스트에 주로 포함시켰다. 그런 세트리스트에 맞추어 미소를 지으며 무대에 임하는 멤버들의 모습은 회장 뿐 아니라 라이브 뷰잉이 진행되는 영화관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며 보는 이들의 기분마저도 밝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 반짝거리는 멤버들의 모습을 보며 코사카의 마음 속에서도 지금껏 생각 해 본 적 없는 새로운 마음이 싹텄다.
‘아이돌이라는 존재가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을 미소짓게 만드는구나. 혹시 나도 아이돌이 된다면 저렇게 밝게 웃을 수 있을까?’
코사카는 초등학생 때 부터 학교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성적은 좋은 편이었지만 친구가 많지 않았기에 학교라는 공간이 어색했다. 한 번은 일부러 밝게 행동해서 반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여자아이들 그룹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별로 가고싶지도 않은 약속에 억지로 따라가고 하다 보니 ‘이건 진짜 내 모습이 아니야’라는 고민이 생겨서 결국 그 아이들과도 거리를 두게 되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그런 상황은 변함이 없어 성격은 점점 더 소극적으로 변했고 집 밖으로 한 발짝 나가는 것 만으로도 남들 눈을 의식해서 전전긍긍하기에 이르렀다. 학교에서도 몇몇 친구들 말고는 교류를 거의 하지 않고 항상 조용히 지내는 아이가 되었다.
‘다른 애들하고 이야기를 해 봤자 재미 있을 리도 없는데 뭐.’
재미도 없고 밝지도 않은 자신의 모습이 정말로 싫었다. 하지만 히라가나 케야키같은 그룹에 들어 갈 수 있다면 그런 자신의 모습도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라이브 뷰잉을 보았던 그 날, 히라가나 케야키의 추가 멤버 오디션 접수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같은 날, 코사카는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인생에 한 걸음을 내딛었다.
첫 라이브뷰잉이 끝나고, 코사카는 그 때 느낀 즐거움을 다시 한 번 느끼기 위해 다음 공연의 라이브뷰잉을 신청했다. 이번에는 코사카가 친구에게 함께 가자고 권유 했던 것이다.
부모님 앞에서 ‘서약서’에 지문을 찍다.
‘왜? 어째서 오디션을 보지 말라는 거야? 이유라도 알려줘요!’
미야타 마나모가 어머니를 향해 질문 공세를 펼쳤다. 손에는 갈기갈기 찢어진 서류가 들려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찢어진 서류는 다름아닌 히라가나 케야키 오디션 1차 심사 통과통지서였다. 격해져 있는 감정과는 반대로, 어머니를 몰아세우는 그녀의 말투는 무서울정도로 냉정하고 침착했다.
외동딸로 태어난 미야타는 어릴 때 부터 독서와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주변에서 ‘아가씨들이 다니는 학교’라 불리는 명문 사립중학교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것도, 수험공부를 해서 결국 원하던 중학교에 들어 간 것도 전부 그녀 자신이 선택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들어 간 중학교에서 그녀는 ‘아이돌’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빠져버렸다.
그 당시는 TV를 켜기만 하면, 아니 TV를 보지 않아도 여기저기 붙어있는 광고에, 잡지에, 어딜 보아도 AKB멤버가 눈에 들어오는 시기였다. 미야타 역시 AKB의 팬이 되어 자신의 오시멘인 오오시마 유코를 비롯한 어리고 귀여운 여자아이들이 노력하는 모습, 춤 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CD를 사거나 거실에서 아이돌이 나오는 방송을 보지는 못했다. 연예계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어머니 앞에서는 ‘아이돌’이라는 화제를 입에 올리는 것 조차 거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억압받으면 억압 받을수록 그녀가 안고 있던 ‘동경’은 커져만갔다. 결국 미야타는 아이돌 뿐 아니라 만화, 애니메이션 등 비슷한 분야의 서브컬쳐로도 발을 뻗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고2였던 때, ‘친구가 티켓을 줬다’는 핑계를 대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러 갔던 성우 아티스트의 라이브가 그녀의 마음 속에는 너무나도 큰 흔적을 남기게 되었다.
‘나도 언젠간 저렇게 귀여운 의상을 입고 무대 위에서 춤 춰 보고 싶어’
그나마 고등학교 때 까지는 학교 댄스부 활동을 하거나 발레 교실에 다니며 춤을 추기는 했지만 대학생이 되어 그나마도 하지 않게 된 뒤, 오히려 ‘라이브’에 대한 열망이 커져만 갔다. 그리고 바로 그 타이밍, 그녀가 대학에 들어 온 지 2달도 채 되지 않은 타이밍에 히라가나 케야키의 오디션 응모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니 하고 싶은 일들은 전부 해 보자’ 라는 모토로 살아 온 미야타는 오디션 광고를 보고 부모님께는 비밀리에 오디션에 응모를 했다.
머지않아 문제가 생겼다. 1차 심사 합격 통지서를 아무 생각 없이 어머니 앞에서 뜯었고, 그 내용을 그녀의 어머니가 확인 한 순간, 집안이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집 앞 편의점을 갈 때에도 꼭 어머니가 붙어서 데리고 갈 정도로 애지중지 키워 온 외동딸이 자기 몰래 아이돌 오디션에 응모했다는 것을 안 그녀의 어머니가 격노하여 딸이 보는 앞에서 합격 통지서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이 때는 딸도 가만 있지는 않았다. 지금껏 크게 반항도 안 했던 미야타이지만 이 날 만큼은 집요하게 어머니에게 맞서 결국 아버지를 자기 편으로 하는 데에 성공, 두 분 부모님 앞에서 서약서를 작성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대학은 4년 딱 맞추어 졸업 할 것’
‘대학에 다니는 동안 사서 자격증을 딸 것’
이 두 가지 조건이 적힌 서약서에 지장을 찍고 나서야 겨우 오디션을 봐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이 때까지만 해도 딸이 아이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실제로 미야타가 최종 심사에 합격한 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그녀의 어머니는 ‘너 정말로 아이돌 할 생각이야?’라고 질문을 했다. 그리고 미야타는 이런 어머니의 질문에 딱잘라 대답했다.
‘응. 할 거야. 여기까지 와 버렸는걸.’
미야타는 어릴 때 부터 친구들과 놀러 가는 것 보다 부모님과 함께 외출하는 것을 좋아했을 정도로 가족애가 강한 아이였다. 지금껏 부모님의 말에 거스른 적도 없었지만 이 오디션에 대해서만큼은 시종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던 것이다.
본인은 기억하지 못 하는 듯 하지만, 그녀의 부모님에 의하면 이런 ‘자신이 정한 일에 대해서는 의지를 굽히지 않는 면’은 사실 어릴 때 부터 종종 드러났다고 한다.
차 안에서 질렸다는 듯 혀를 내두르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미야타는 ‘나, 이렇게 강한 면도 있었구나’ 라고 내심 놀랐다고 한다.
떨어진 후보생들이 남기고 간 편지
그런 미야타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일이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최종심사날에 있었던 일이다. 최종심사를 앞두고 운영측은 후보생들을 10명 정도씩 나누어 각자 다른 대기실에서 기다리게 했다. 미야타가 속해있던 그룹은 같은 방이 된 뒤, 한 차례 자기소개를 하고는 다들 침묵을 지켰다. 숨막힐듯한 침묵과 어색한 분위기 안에서 후보생들은 그저 자기 차례가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였다. 옆 방에서 어떤 소리가 들렸다.
‘아!!’
옆 방 멤버들은 방 안에서 발성 연습을 하고 있는 듯 했다. 그 소리를 시작으로 큰 소리로 노래 연습을 하는 소리, 자기 소개를 연습하는 소리가 왁자지껄 들려왔다.
사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날 미야타와 같은 방을 썼던 후보자 중 최종 합격 한 것은 미야타 한 명 뿐이었다. 반면 왁자지껄했던 옆 방 멤버들 중에서는 토미타 스즈카, 니부 아카리, 마츠다 코노카, 와타나베 미호, 코사카 나오 총 5명이 합격했다.
옆 방에서는 토미타나 와타나베가 개인기를 하며 다른 후보생들을 웃기는 등, 시종 좋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미야타를 놀라게 한 ‘아!’라는 소리도 그 방에 있던 누군가가 ‘이번이 마지막 심사니 최선을 다 하고 싶다’는 말에, 전원이 벽을 향해 ‘아!’하고 소리를 지르기로 한 데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옆방 멤버들은 마지막까지도 ‘다 함께 힘 내자’며 서로를 다독였다. 방에서 나와 무대 뒤에서 대기를 할 때엔 감정이 벅차올라 서로를 끌어안기도 했다. 코사카와 와타나베도 이 때 ‘힘 내자’며 서로를 끌어 안았다. 둘은 그 날 처음 만난 사이였다. 사실 평소 같았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이후 히라가나 케야키로 활동을 시작 한 뒤로도 각별한 관계가 이어져 오고있다.
그런 좋은 분위기는 최종심사에도 이어졌다. 한 멤버가 자기소개를 할 때면 다른 멤버들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합격자가 발표 된 후, 불합격한 후보자는 먼저 귀가하고 합격자들만이 남아 사진을 찍게 되었다. 미야타와 옆방에서 합격한 5명 외에도 카네무라 미쿠, 카와타 히나, 하마기시 히요리가 합격했다.
합격자들은 사진을 찍은 뒤, 대기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대기실은 이미 텅 비어 있어, 불합격한 후보자들의 모습은 없었다. 하지만 테이블 위에는 편지가 한 통 놓여있었다.
‘우리 몫까지 열심히 해 줘! 응원할게!’
메시지 아래에는 떨어진 아이들 전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최종심사에 임하기 전에 함께 찍은 사진과 이 편지만이 떨어진 아이들이 이 곳에 함께 있었다는 증거였다.
2017년 8월 13일.
이 날 열린 최종심사 결과, 9명의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의 추가 멤버가 확정되었다. 1만 5천명이나 되는 후보자 중에서 선택을 받은 9명의 멤버들은 히라가나 케야키의 2기생으로서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녀들의 선배, 히라가나 케야키 1기생들의 활동이 ‘한자 케야키와는 다른, 히라가나 케야키다움’을 모색하는 과정이었다면 2기생들의 활동은 다름아닌 ‘선택받은 자의 책임을 다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 중 하나가 바로 ‘선택받은 자로서, 자기 스스로도 무엇인가를 선택해야만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9명의 멤버 중 가장 먼저 이런 힘든 선택을 강요받게 된 것이 바로 하마기시 히요리였다.
너무 울어 퉁퉁부은 눈으로 올려다 본 호텔 천장
하마기시는 언니의 영향으로 3살때부터 발레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발레 교실을 바꾸어 엄격한 선생님의 지도를 받게 된 이후로는 발에 잡힌 물집이 터져 발이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연습을 계속하고, 학교에 있을 때 조차 발레 노트를 읽을 정도로 발레에 몰두했다. 그녀에게 있어 장래 희망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발레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그 뿐 아니라 초등학생 때 부터 패션잡지를 즐겨 읽었던 그녀는 청소년 대상 잡지는 물론이고 20대 대상 패션지까지 섭렵했다. 사실 패션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예쁜 모델을 보는 것이 좋았기 때문에 패션지를 읽었다고 하는 그녀는 중학생이 되어, 오디션을 받을 수 있는 연령이 되자 스스로 오디션에 응하여 2년 연속으로 최종 후보자에 들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합격은 하지 못 했다. 패션잡지 오디션에 떨어져 낙담해 있는 하마기시에게 ‘이런 오디션도 있는데 받아볼래?’라고 어머니가 권해주신 것이 바로 히라가나 케야키의 추가 멤버 오디션이었다.
사실 하마기시는 나가하마 네루의 팬이었다. 하마기시는 당시만 해도 한자/히라가나 겸임이었던 나가하마의 귀여운 얼굴과 목소리에 푹 빠져있었다. 게다가 발레 발표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귀여운 의상을 입고 춤을 출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결국 하마기시는 어머니가 권해 준 오디션을 받았고, 보기 좋게 합격 해 냈다.
하지만 합격 직후, 예상도 못 했던 일이 벌어졌다. 하마기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머니가 발레 교실에 전화를 해서 그만 두겠다고 말을 한 것이다.
‘왜 엄마 맘대로 선생님한테 전화 했어? 왜? 왜? 왜?!’
사실 이 때 하마기시는 처음으로 중요한 역할에 발탁되어 이미 두 달 넘게 맹연습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안무도 완벽히 숙지하였고 자기 몸에 맞춘 의상도 완성이 되어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10년 이상 발레를 해 오면서 꿈에도 그리던 큰 무대가 코 앞에 있었다.
하마기시는 집을 박차고 나와 발레 선생님에게 라인을 보냈다.
‘저 이번 역할 포기 안 해요. 발레도 절대로 그만두지 않을 거예요.’
집으로는 돌아가기 싫어 밖에서 펑펑 울고 있으려니 차를 타고 하마기시를 찾으러 나온 아버지와 맞닥뜨렸다. 우는 딸의 모습을 본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하마기시를 한 호텔로 데려 가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주었다. 말하자면 부모님이 허락한 가출이었다.
딱히 TV를 볼 마음도 들지 않고 그렇다고 샤워를 할 생각도 들지 않아 그저 침대 위에서 이리저리 뒹굴거리던 하마기시는 너무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호텔 천장을 가만히 올려다 보았다. 천장을 가만히 보다 보니 여러 생각들이 밀려왔다. 언제나 내 편이던 어머니가 어째서 자신에게서 발레를 빼앗으려 한 것일까,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그 때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두 가지를 모두 양립한다는 건 무리겠구나. 아이돌이 되기 위해선 발레를 그만 둬야 하는 거구나. 엄마도 그걸 알고 나를 위해 선생님께 연락 드려 준거야…’
하마기시는 그 전까지는 막연하게 두 가지를 모두 양립해 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 해 보면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가 되어 활동을 한다는 것은 발레를 그만두고 도쿄로 상경하여 ‘아이돌’이라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선택 받은’ 자들은 자신들 스스로도 ‘선택’을 해야만 하는 법이라는 잔인한 섭리를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발레 교실을 그만둔 뒤, 적어도 자신이 나올 예정이었던 무대는 보러 갈 생각이었지만 그조차도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본디 자신이 서 있어야할 곳에 다른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9명의 선택받은 소녀들은 각자의 사정을 가슴 속에 품은 채, 화려하지만 험난한 아이돌의 길로 한 걸음을 내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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