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화
부도칸 3days라는 도전
2017년 봄에 시작된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의 첫 전국 투어는 같은 해 12월, 치바현 마쿠하리 멧세에서 이틀간에 걸쳐 열린 파이널 공연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마지막 공연을 이틀 앞둔 날, 카키자키 메미가 팔에 골절상을 입어 라이브에 참가 할 수 없게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하지만 ‘메미 몫은 다른 멤버들이 커버하여 최고의 라이브를 선사하겠다’는 굳은 다짐 아래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는 모든 곡의 포메이션을 급하게 수정하여 마쿠하리 멧세의 무대에 서게 되었다. 또한 그룹에 가입 한 지 4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2기생 9명도 그 날 처음으로 무대를 밟게 되었다.
이렇게 이틀간 1만 4천명을 동원한 ‘과거 최대규모’의 스테이지는 성공리에 막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공연 직전에 터져 나온 ‘한 번 놀라게 해주자’
시간은 흘러 2018년 새 해가 밝았다. 새 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1월 어느 날, 한자/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의 합동 공연이 발표되었다. 두 그룹이 함께 3일간 부도칸 무대에 선다는 소식이었다. 상세한 내용은 ‘1월 30일에 히라가나가 무대에 서고 다음날인 1월 31일과 마지막 날인 2월 1일에는 한자가 무대에 선다’는 것이었다. 음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 꾸는 ‘음악의 성지’인 부도칸에서 단독 공연을 하는 것은 한자, 히라가나 할 것 없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일은 생각처럼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았다. 1월 중순, 스태프가 히라가나 멤버들을 불러 모았다. ‘중요한 전달사항이 있다’며 입을 연 스태프의 말은 히라가나 멤버들에게 있어서 상상조차 하지 못 했던 내용이었다.
‘히라가나 케야키, 너희들에게 부도칸 공연을 3일 전부 맡기고 싶은데, 해 줄 수 있겠어?’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발표에 사사키 쿠미는 머릿 속이 새하얗게 되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 대답을 할 지 모르’는 것 이전에 ‘지금 무슨 말을 들었는 지’ 조차도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사키 뿐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상황은 비슷했기에 스태프가 거듭 ‘할 수 있겠어?’라고 재촉하듯 물었음에도 대답을 하지 못 하고 그저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던 것이다.
일이 이렇게 급변한 것은 사실 한자 케야키의 센터인 히라테 유리나가 전치 1개월짜리 부상을 입어 부도칸에 참가 할 수 없게 되어, 스태프들이 이 건에 대해 한자 멤버들과 대화를 나눈 결과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동안 히라테의 포지션을 메우고,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퍼포먼스를 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불과 한 달여 전에 성공리에 단독 전국투어를 마치고 한층 성장한 히라가나 케야키에게 3일간의 부도칸 공연을 전부 맡기겠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이다.
이 결단은 운영측에 있어서도,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을 믿을 수 밖에 없는 도박이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들의 마음 속은 여러 가지 생각들로 복잡했다.
사이토 쿄코는 ‘3일이나 공연을 한다니, 과연 체력이 버텨 주려나…’라며 불안해 했으며, 사사키 쿠미는 ‘우리들 만으로 3일이나 공연을 한다니, 객석이 채워 질 리도 없을 거고 한자 선배님들의 라이브를 보기 위해 오신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실 지 무서워’라고 마음이 약해져 있었다.
다카모토 아야카는 ‘뭐, 결국은 한자 선배님들도 라이브에 참가 하실거야. 팬 여러분 뿐 아니라 나도 솔직히 한자 선배님들 라이브가 보고 싶은걸’이라며 당초 예정대로 부분적이나마 양 그룹이 함께 공연을 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렇듯 각각 마음의 준비가 다 되지 않은 상태로 시작된 리허설은 지금까지 겪었던 그것에 비해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부담이 막중했다.
우선 투어 때와는 전혀 다른 콘셉트로, 새로운 연출이 많이 가미 되었기에 그에 맞추어 안무나 동선 자체가 크게 변경되었다. 예를 들어, 한자 케야키의 곡인 ‘이야기한다면 미래를…’의 경우, 히라가나 멤버들은 지금까지 이 곡을 선보인 적인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생소한 곡이었을 뿐 아니라, 부도칸 공연을 위해 새로운 구성이 이루어 져, 2층으로 세워 진 세트를 재빠르게 올랐다 내렸다 하며 퍼포먼스를 해야만 했다.
‘퍼포먼스를 한다면 통일성이 중요하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사사키 미레이의 경우, 특히 유닛곡의 완성도가 낮다는 사실에 불안감을 갖고, 리허설이 끝난 뒤에도 스튜디오에 남아 적극적으로 추가 연습을 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연습을 하여도 자신이 목표로 하는 레벨에 도달하지 못 해, 불안함과 초조함을 감추지 못 했다.
또한, 그 시기는 두 달 뒤에 발매될 새 싱글 제작기간과도 완벽하게 겹쳐 있었기에, 공연 리허설에 전념 할 수 있었던 시간은 사실상 1주일 정도뿐이었다. 그 뿐 아니라 이구치 마오, 우시오 사리나, 카게야마 유우카 등 몇몇 멤버들은 그런 얼마 되지 않는 리허설 조차도 학교에 가느라 참가하지 못 하는 경우마저 있었다.
그렇기에 택한 방식은 ‘일단 참가하지 못 하는 멤버들의 대역으로 댄서를 넣고 리허설을 진행 한 뒤, 그것을 동영상으로 찍어, 그 동영상을 보며 각자 연습을 하는’ 방식이었다. 사실은 모든 멤버들을 모아놓고 함께 리허설을 하면서 바로바로 틀린 부분을 고쳐가며 정확도를 높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런 것이 가능한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 하에서 각자 자신이 해야 할 것들을 수행하는 것 만으로도 벅찼기에, 어느 사이엔가 멤버들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져갔다. 공연 직전에 열린 게네프로(※의상, 연출까지 전부 실제 공연과 동일하게 한 최종 리허설)를 본 연출가가 멤버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질책하기까지 했다.
‘너희들 왜 예전처럼 해피 아우라를 뿜어내지 못 하는 거야? 부도칸에서 공연을 할 각오가 부족한 것 아니니?’
부도칸 공연 티켓은 선행 판매 시점에 이미 회장의 수용 인원을 한참 상회하는 수의 응모가 들어 왔을 정도였다. 멤버들이나 스태프들이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히라가나 케야키의 부도칸 공연을 기대하는 팬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수 많은 팬들이 자신들에게 기대를 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된 멤버들은 잔뜩 고무되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우리를 기다려 주고 계시잖아. 이렇게 된 이상 한 번 놀라게 해 드리자고. 전설에 남을 라이브를 보여드리자.’
‘더 이상 도망 갈 수 없는 곳 까지 와 버린 이상, 지금의 불안을 뛰어 넘어,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갈 수 밖에 없어.’
큰 무대를 눈 앞에 두고 멤버들은 서로에게 이렇게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부도칸 공연에서 모두를 놀라게 해 주자!’
‘전설에 남을 라이브를 보여주자!’
그런 멤버들의 각오와 함께 3일간 3만명을 동원한 ‘그룹 결성 이래 최대의 도전’은 막을 올렸다. 그리고 이 공연은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는 ‘격동의 2018년’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의 컬러풀한 세계
부도칸 공연의 오프닝에선 화려한 롱코트를 입은 멤버들이 지팡이와 중절모를 이용하여 댄스를 선보였다. 그리고 그녀들이 발을 딛고 서 있는 무대는 형형색색의 색전구들로 장식되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화려하고 컬러풀한 세트 구성이었다.
지난 해, Zepp tokyo에서 시작된 전국 투어 때는 아무래도 서게 되는 무대가 ‘라이브 하우스’ 였기에 연출을 최대한 자제한 심플한 스테이지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 이 부도칸 공연에서는 처음으로 테마가 있는 ‘쇼’ 형식의 연출이 적용 되었다. 그리고 이 날의 ‘테마’는 다름아닌 ‘서커스’. 부도칸을 하나의 거대한 서커스 천막으로 가정하고 멤버들이 차례로 나와 쇼를 선보이는 설정이었던 것이다.
아리나석에서 천장 부근까지 객석으로 꽉 찬 한가운데에 무대가 위치한, 마치 ‘절구통’ 모양을 한 부도칸의 중심에 선 순간, 사사키 쿠미의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부도칸은 지금까지 서 온 무대들과는 전혀 다르구나. 360도 모든 방향에서 관객들이 지켜 보고 있어. 보는 사람들의 함성이 회장 안을 가득 메우며 마치 땅이 울리는 것 같아.’
공연 시작 직전까지 필기한 메모를 몇 번이고 필사적으로 읽고 또 읽으면서 어찌 할 줄 몰라했던 우시오 사리나 역시 스테이지 위에 선 순간 기분이 확 바뀌었다. ‘여기 이렇게 서 있으니 마치 우주 한 가운데 떠 있는 것 같아. 팬분들의 사이리움이 마치 별처럼 반짝 거리네. 지금까지 준비하는 건 힘들었지만 이렇게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니… 우리들 정말 너무나도 행복한 사람들이구나.’
히라가나 케야키의 라이브에서도 빠질 수 없는 곡, ‘후타리세종’ 때는 전국 투어때와 마찬가지로 이구치 마오의 솔로 댄스 파트가 들어갔다. 이 퍼포먼스는 마쿠하리 때의 그것과 비교하여 퀄리티가 많이 올라 가 있었다.
사실 ‘부도칸에서도 솔로댄스를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이구치는 그녀 답지 않게 단호하게 거절을 했다 한다.
‘부도칸에서 3일 연속으로 공연을 한다는 거, 분명 뉴스에서도 다룰텐데 그런 중요한 무대에서 춤이 제일 서툰 제가 솔로로 춤을 추는 건 웃음거리밖에 안 되잖아요. 투어 때도 참고 했으니까 이번에는 다른 사람을 시켜 주세요.’
하지만, 사실 수 없이 눈물을 흘려가며 셀 수 없을 정도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결과, 조금씩이나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온 이구치였기에 부도칸에서 솔로 댄스라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자격이 있는 것이었다.
스태프들과 멤버들로부터 거의 ‘질타’에 가까운 설득을 받은 뒤, 이구치 역시 결심을 굳혔다. 자신이 춤 추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수 없이 돌려 보며 ‘여기랑 여기는 움직임이 좀 기분 나쁜데 어떻게 해야 좀 멋있게 출 수 있을까요?’ 라며 댄스 선생님에게 하나하나 세세한 곳 까지 확인한 것은 물론이고, 부도칸 공연이 한창일 때에도 자신이 무대에 서 있지 않을 땐 대기실에서 쉬지 않고 연습을 거듭했다. 그리고 그 결과, 본인 스스로도 ‘지금까지 해 왔던 것 중 최고 걸작’이라 자신 할 수 있을 정도의 퍼포먼스를 해 낼 수 있었고, 팬들 사이에서도 그녀의 성장이 화제가 될 정도였다.
이구치의 이 퍼포먼스, 불과 30초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솔로 댄스에는 1년 가까이 노력 해 온 그녀의 지금까지의 시간은 물론이고 ‘사람은 노력하면 성장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부도칸 공연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가 바로 ‘100년 기다리면’ 이라는 곡이었다. 이 곡은 나가하마 네루가 히라가나의 멤버일 때 나온 나가하마의 솔로곡으로, 부도칸 공연에서 1기생 전원이 이 곡을 커보 했던 것이다. 이 곡을 선보일 때, 무대 위에는 멤버들 뿐 아니라 곡예가, 피에로, 댄서, 어린 아이들도 등장하여 ‘서커스’와 ‘뮤지컬’을 융합시킨듯 한 화려하고 팝한 세계관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사실 한자, 히라가나 할 것 없이 무대 위에 멤버 이외의 사람이 올라오는 연출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 한 것이 바로 이 무대였다. 그리고 이 연출은 ‘모두 하나가 되어 즐겁게 즐긴다’ 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개방적인 분위기를 표현한 연출이기도 하였으며, 그 특유의 컬러풀한 세계관은 ‘스타일리시하고 흑백 대조가 강렬한’ 한자 케야키의 세계관과 대조를 이루며 양 그룹의 차이를 한 층 더 돋보이게 해 주는 연출이었다.
양 그룹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 연출이 다른 곡도 아닌 ‘나가하마 네루의 솔로곡’에 처음 쓰였다는 것은 어쩌면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이라는 그룹은 사실 나가하마 네루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역사를 생각 해 보았을 때, 필연이라고도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이 날, 부도칸의 객석에서 ‘나가하마 네루’의 이름이 쓰여진 타올을 본 다카세 마나는 ‘지금 이 자리에 네루쨩은 없지만, 역시 모두와 함께 있는 것이나 다름 없구나’라고 실감 했다.
그리고 부도칸 공연 이틀차에는 바로 그 나가하마 네루 역시 부도칸의 객석에 앉아 멤버들의 공연을 지켜 보았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뒤에는 멤버들을 찾아 감상을 이야기 하기도 하였다.
‘오늘 공연은 히라가나 케야키답게 해피 아우라가 가득 한 스테이지였어. 정말 엄청 감동했어. 100년 기다리면을 함께 불러 줘서 고마워.’
멤버들에게 감상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리는 나가하마의 모습을 보며 카토 시호는 ‘나가루 왜 울어’라며 웃어 주었다.
나가하마는 히라가나 케야키와 한자 케야키 겸임 당시, 항상 ‘한자 흉내에 그쳐선 안 돼. 히라가나만의 특징은 뭘까’라고 자신에게 묻곤 했다. 하지만 어느 사이엔가 자신이 떠난 뒤에 남겨진 멤버 들이 ‘해피 아우라’라는 ‘답’을 도출 해 내고, 자신들만의 것으로 삼은 뒤, 미소 지으며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지난 해 연말에 있었던 마쿠하리 멧세 공연때는 일부의 곡에서 무대를 맛 보는 데 그쳤던 2기생들 역시 더욱 더 파워업 한 스테이지를 보여주었다. 솔로 댄스나 ‘NO WAR in the future’ 뿐 아니라 매일 센터를 바꾸어 가며 노기자카46의 곡을 3곡씩 커버 했던 것이다. 비록 등장은 적었고, 커버 무대이긴 했지만 그녀들의 무대는 지금까지의 한자 케야키나 히라가나 케야키의 그것과는 다른 ‘새로운 바람’을 무대에 일으켰다.
그리고 이 라이브의 앙코르 때 처음으로 선보인 것이 1기생들의 신곡 ‘두고 보라고 (イマニミテイロ)’였다. 이 곡은 이 부도칸 공연의 상징과도 같은 곡이며,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라는 그룹의 미래에 대한 각오를 담담하게 풀어 낸 곡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중요한 곡의 센터에 선 멤버는 다름 아닌 사사키 미레이였다.
새벽 4시, 잠을 이루지 못 한 채 보낸 메시지
사사키 미레이는 히라가나 케야키에 들어 왔을 때부터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모든 분야에서 높은 잠재력을 지닌 멤버로 손꼽혔다. 나가하마 네루 역시 그녀를 보고 ‘뭐든 다 잘 하는 아이가 있다’고 놀랐을 정도였다. 그녀 자신이 주목을 받거나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서려 하는 타입이 아니었기에 그렇게 눈에 띄는 존재는 아니었지만, 그룹 전체로 봐서도 댄스 면에서는 최고로 손꼽히는 히가시무라 메이조차도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사사키 미레이에게 조언을 구하곤 할 정도였다.
그랬던 그녀의 존재감이 급격히 커 지고, 스태프들이 그녀에게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드라마 ‘Re:Mind’ 무렵부터였다. 이전까지는 항상 맨 뒷줄의 끄트머리 포지션에 서는 경우가 많았지만, 무대 위에 섰을 때 보여지는 그녀만의 깔끔한 모습은 말 그대로 ‘센터’에 적합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것 처럼 보였다.
그런 미레이가‘새롭게 발걸음을 옮기려 하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얼굴로 발탁 된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나 비교를 싫어하는 그녀의 성격상, 지금껏 센터라는 포지션을 의식 한 적은 없었다. 신곡의 포지션 발표 때에도 ‘센터, 사사키 미레이’라는 발표를 듣고 ‘아, 2열 중간에 서는구나’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정작 본인이 상황을 파악하기 전에 주변 멤버들이 그녀를 위해 박수를 쳐 주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우시오 사리나는 감격하여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누구보다 높이 뛰어!’에서 미레이와 대칭점에 선 이후 서로를 인정하며 ‘영원한 대칭점’이라고 부를 정도로 사이가 좋은 우시오였기에, 언제나 ‘나는 괜찮다’며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기만 하는 상냥한 미레이가 인정을 받은 것이 마치 자신이 인정 받은 것 마냥 기뻤다.
‘미팡은 언제나 생글생글 웃고 있는 태양 같은 존재이며, 히라가나 케야키를 상징하는 사람이라 생각해. 우리들이 자신을 갖고 자랑 할 수 있는 센터야.’
포지션 발표가 있었던 당일 밤, 처음으로 맡게 된 센터라는 자리의 중압감에 잠을 못 이루던 미레이는 새벽 4시경, 멤버들이 있는 그룹 라인에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오늘 제가 센터라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놀랐습니다. 저는 악수회에서도 인기가 없고, 얼굴도 귀엽지 않기에 센터에 서서 잘 해 낼 수 있을지 불안합니다만, 미팡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또한, 그녀는 ‘두고 보라고’ MV 촬영 당시에도 모니터에 비친 자신의 딱딱한 표정을 보며 크게 낙담하기도 하였다.
‘이대로라면 아무 것도 표현 못 하겠는걸. 이건 그냥 ‘무’의 표정일 뿐이야.’
이렇게 이야기하며 낙담하는 미레이를 보며 안무가인 TAKAHIRO는 ‘그렇다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분하고 아쉬웠던 때를 떠올려 봐’라고 조언 해 주었다.
‘어느 날 갑자기 어른들이 ‘해 보지 않을래’라고 이야기 했어. 어떻게 할 거니? 겁쟁이야’
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두고 보라고’라는 곡은 부도칸 공연을 갑작스레 맡게 된 그녀들의 심경을 그대로 그려 낸 곡이었다. 그리고 그 ‘시련’으로부터 등을 돌려 달아나지 않고 맞설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이야말로 곡의 제목인 ‘두고 보라’는 마음가짐이었다.
‘다른 누군가의 등 뒤에서 이 세상을 훔쳐보기만 했지. 내 차례가 되면 패스는 할 수 없는 룰이야. 두고 보라고, 지금 내가 보여주는 색은 어떤 색인지. 입술을 곱씹으며 지금껏 노력 해 온 색인걸.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몇 번이고 되뇌었어. 말이란 어떤 색일까? 언젠가 내가 보여 줄 색이야.’
미레이는 이 곡을 부르며 지난 날 분했던 기억들을 곱씹었다. 예를 들어 악수회에 사람들이 전혀 와 주지 않았던 날을, ‘케야키 공화국 2017’ 때 앙코르가 끝난 뒤 전체 인사에서 히라가나는 제외 되었던 날을… 그러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한자 케야키’에 대한 라이벌심에서 느낀 분함이 아니라, 한자의 등 뒤에 서 있을 뿐 스스로 앞으로 나서려 하지 않았던 자신에 대한 분함이었다. 한자 케야키의 팬인 미레이에게도 아느 사이엔가 ‘우리는 우리야. 우리 역시 하나의 그룹으로서 앞으로 걸어 나가야만 해’ 라는 마음이 싹 터 있었던 것이다.
이 곡에서 가장 압권인 부분은 2절 후렴구 이후의 퍼포먼스였다. ‘두고 보라고’를 부르면서 멤버들이 미소를 띈 채 주먹을 들어 올리는 부분이다. 과거의 안타까움, 분함, 그리고 눈 앞에 버티고 서 있는 높은 벽들마저 미소를 지으며 극복 해 나가겠다는 ‘히라가나 케야키’ 다운 각오가 표현 되어 있는 퍼포먼스이기 때문이다.
부도칸에서 처음으로 이 곡을 선보였을 때, 곡이 끝날 즈음하여 얼굴 가득 미소를 띄우며 ‘히라가나 포즈’를 한 미레이의 얼굴이 모니터에 비추어 진 순간 회장은 따뜻한 박수소리로 가득 찼다.
모니터에 비춘 그녀의 얼굴은 정말이지 그녀 다운, 너무나도 상냥하고 다정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라이브의 마지막 날, 공연이 끝날 때쯤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서프라이즈가 기다리고 있었다.
전설로 남은 ‘다레토베’ 더블 앙코르
그것은 마지막 공연의 앙코르로 ‘두고 보라고’를 선보인 뒤, 멤버들이 다음 곡 준비를 위해 무대 위에서 이동 하기 시작했을 때의 일이었다. 회장 뒤에 설치 된 모니터에 갑작스럽게 이런 메시지가 나타났던 것이다.
‘멤버 여러분, 3일간 공연 정말로 수고 많았습니다!’
메시지가 사라진 뒤, 지난 3일간의 공연을 요약한 다이제스트 영상이 흘러나왔다. 어저께, 그리고 그저께의 일임에도 오래 된 추억만 같아 멤버들 중에는 눈물이 맺힌 멤버들도 있었다.
하지만 서프라이즈는 그 때 부터였다.
‘부도칸 공연을 성공리에 마친 히라가나 케야키의 새로운 성장을 위한… 다음 시련은…’
뒤이어진 메시지. 그 곳에 자리잡은 ‘시련’이라는 두 글자에 멤버들은 비명을 질렀다.
지금까지 있었던 서프라이즈 발표에서는 항상 괴로운 추억밖에는 없었던 그녀들에게 있어 이 다음에 이어질 메시지는 두려움일 뿐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표시 된 메시지는 그녀들의 그런 예상을 멋지게 빗나간 것이었다.
‘히라가나 케야키 단독 앨범! 발매 결정!’
뒤이어진 메시지를 본 멤버들은 마치 폭발하듯 환희에 차서 소리를 질렀다. 생각조차 하지 못 했던 기쁜 발표에 표정 관리를 하지 못 하고 서로 얼싸안은 멤버들을 보며 회장 안은 떠나갈 듯한 환성소리로 가득찼다.
발표의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은 채, 사사키 쿠미가 그룹을 대표하여 짧게 감상을 이야기했다.
‘이렇게 저희의 꿈이 이루어 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 했기에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만… 기쁘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자신들 명의로 CD 데뷔를 한다는 것은 작년 투어 도중에 멤버들끼리 의견을 나누며 결정한 목표 중 하나였다. 지금까지 한자 케야키 명의 CD의 커플링 곡에만 참가 해 왔던 그녀들에게 있어 자신들만의 이름으로 작품을 낸다는 것은 너무나도 심플하지만 명확한 목표였으며, 동시에 가장 이루기 힘든 목표로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1년 가까이 이어진 투어를 무사히 완주 해 내고, 부도칸 3days 공연이라는 크나큰 도전에 승리한 히라가나 케야키는 어느 사이엔가 단독 데뷔에 걸맞는 그룹으로 성장 해 있었다.
그리고 이 날 공연의 마지막에는 관객들의 ‘더블 앙코르’ 요청에 답하여 ‘누구보다 높이 뛰어!’를 선보였다. 초창기, 자신들만의 노래가 거의 없을 무렵부터 관객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어느 부분에 어떻게 객석을 띄울 지’, ‘어떻게 해야 우리들의 마음이 곡에 더 잘 묻어 나올 지’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그룹과 함께 성장 해 온 히라가나 케야키의 대표곡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룹의 중심에 서서 목소리를 높여 이끌어 온 사사키 쿠미는 이 날의 이 더블 앙코르에서 지금까지 느끼지 못 했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들이 소리를 내는 그 몇 배, 몇 십 배로 환성이 되돌아오네. 엄청 즐거워!’
연출 스태프들 역시 분위기를 타고 인이어 모니터를 통해 ‘좀 더 객석 분위기를 띄워! 지금 한창 분위기 좋으니까 좀 더 띄워봐!’라고 지시를 내렸고,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카케야마가 ‘여러분! 더 더 즐겨 봐요!’라고 소리를 질렀다. 상당히 기분이 업 되었는지 목소리가 뒤집혀 쇳소리가 날 정도였지만 아무도 그 점은 신경쓰지 않았다.
곡의 분위기에 취하기라도 한 듯 멤버들도, 회장을 메운 관객들도 리미터가 풀려 있었던 것이다. ‘다레토베’라고 하는 곳이 가진 진정한 잠재력이 최대한으로 발휘 된 순간이었다.
라이브가 끝난 뒤, 모두가 ‘해 냈다’는 달성감과 기분 좋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가운데, 카키자키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신기한 느낌에 휩싸여 있었다.
‘당장 내일도 여기서 라이브를 할 것 같아. 이대로 또 한 번, 3일 공연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히라가나 케야키의 이 부도칸 공연은 TV, 인터넷 할 것 없이
크게 다루어졌다. 그녀들에게는 ‘부도칸 3일 공연을 성공리에 마무리 한, 요즘 가장 기세가
좋은 그룹’이라는 높은 평가가 주어졌다. 그녀들의 큰 도전이
확실히 그녀들의 ‘미래’로 이어 져, 그룹을 둘러 싼 환경을 크게 바꾸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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