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가나 케야키 결성 1주년 다큐멘트
'우리들의 바람'
한 발 늦게 찾아 온 소녀가 만들어 낸 '우연의 산물'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이하 '히라가나 케야키')는 나가하마 네루라고 하는 한 소녀가 '케야키자카46'이라는 그룹 안에 존재하기 위해 만들어 진 그룹이다. 라고 이야기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2015년 8월 21일, 이 날 열린 '토리이자카46' 오디션 최종심사 참가자수는 당초 46명으로 예정 되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이 날 오디션단상에 오른 소녀들은 45명이었다. 케야키자카의 팬분들이라면 다 아시다시피 이 날 결석한 소녀의 이름은 바로 '나가하마 네루'였다. 그녀는 최종심사 당일 아침, 가족의 손에 의해 고향 나가사키로 돌아가야만 했다.
나가하마 (이하 '네') "집에 돌아가서 인터넷으로 뉴스를 본 뒤에야 최종 합격자가 22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비록 최종심사에서 반수에 가까운 후보들이 탈락했다고는 하지만 저는 그런 심사를 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 한 채 돌아와야만 했다는 게 너무나도 슬프고 안타까웠어요. 시간이 지나 방송 (케야카케)이 시작되고, 그룹의 활동이 눈에 들어오게 된 뒤로도 그런 미련들이 항상 가슴 속에 남아 있었지요."
스스로의 운명을 바꾸어 보겠다는 각오로 뛰어 든 오디션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곧 새로이 '운명을 바꿀 기회'가 주어졌다. 그것이 바로 '케야지자카로의 도중참가'였다. 물론 그녀는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오디션을 끝까지 통과 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런 그녀에 대한 특별대우는 자연스레 반발을 살 것임이 분명했다. 이에 케야키자카46 운영측이 취한 방안이 바로 '그대로 그룹에 합류시키지 않고 언더에서 시작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우연의 산물이 바로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라는 그룹이었다.
네 "히라가나 케야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저 역시 케야카케 녹화 때 츠치다상 말씀을 듣고 처음 알게 되었지요.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이게 대체 무슨 얘기인지 감을 잡을 수도, 이해 할 수도 없었지요.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대로 그룹에 합류할 수는 없다'는 점에 대해선 이해하고 있었지요."
11명의 소녀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을 때, 나가하마는 현실을 직면했다.
같은 해 11월 말, '케야카케'에서 나가하마 네루의 가입과 히라가나 케야키의 결성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 모집이 시작되었다. 12월 31일까지 한 달에 걸친 멤버 모집기간동안 나가하마가 출연한 멤버 모집 광고가 단 한 차례 방송되기도 하였다. 비록 당시만 해도 인지도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케야키자카이지만, 그래도 언니 그룹인 노기자카의 팬들이 어느 정도 유입되어 있었기에 히라가나 케야키의 오디션에는 노기자카, 케야키자카의 팬인 소녀들이 다수 응모를 했다.
카토 시호 "노기자카 선배님들을 정말 좋아했었기에 토리이자카46 오디션때부터 주변 사람들이 '오디션 받아보라'고 권유를 많이 해 주었어요. 비록 당시에는 제가 응모 해 봤자 붙을 리 없다고 생각했기에 결국 응모를 하지는 않았지만요. 한자 케야키가 결성 된 뒤에는 팬이 되어서 '오미타테회'에도 갔었어요."
카키자키 메미 "노기자카 선배님들을 좋아해서 토리이자카 오디션도 관심은 있었지만, 오디션을 받겠다는 말을 꺼내지 못 했어요. 그 때 마음 속으로 '다음번에 또 오디션이 열린다면 그 땐 응모 해 보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나가노에는 '케야카케'가 방송되지 않아서 사실 처음엔 히라가나 케야키 오디션 소식도 모르고 있었어요. 우연히 공식사이트에 들어 갔다가 오디션 소식을 듣게 되었지요."
우시오 사리나 "노기자카 선배님도 좋아했지만, 케야키자카도 좋아했어요. 케야카케는 첫 방송때부터 전부 녹화 해서 보았을 정도였지요. 오디션 개최 소식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처음엔 '벌써 신멤버를 뽑아? 너무 이르지 않나?'라는 생각 정도였어요. 그러던 중에 12월 30일, 친구들이랑 놀다가 친구가 '히라가나 케야키 오디션 한다던데 한 번 받아보지 그래? 너 케야키자카 좋아하는 거야 익히 알고 있는데다가, 노기자카 이야기만 나오면 눈을 반짝반짝 빛 낼 정도니까 오디션 꼭 받아봤으면 좋겠어'라고 이야기 해 주었어요. 만약 떨어진다 해도 오디션 받는 걸 아는 게 그 친구뿐이니 딱히 부끄럽지도 않겠지… 라는 생각도 들었고, 12월 31일에 홍백가합전 무대에 선 노기자카 선배님들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바뀌어서 마감 직전에 응모 했어요."
명문 진학고에 다니고 있던 카게야마 유카 역시 한 사람의 팬에서 출발하여 연예계로 뛰어 든 멤버 중 한 명이었다.
카게야마 "케야키자카라는 그룹이 좋아서 응모하긴 했지만, 아이돌이 꼭 되고 싶다는 열망보다는 왠지 끌렸기에 직감적으로 응모했다고 하는 편이 좀 더 정확할 것 같아요. 이전까지는 공부에 중점을 두어 왔기에 부모님께 오디션 이야기를 하는 게 좀 힘들긴 했지만, 정작 이야기를 꺼내니 부모님께선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렴'이라고 해 주셨어요."
가수가 되고 싶어 여러 차례 오디션을 받아 온 사이토 쿄코는 대학 진학을 앞둔 타이밍에 오디션에 대해 알게 되고, '이번이 마지막 오디션'이라는 각오로 오디션에 임했다.
사이토 "춤도 이전부터 배웠었기에 가수 뿐 아니라 아이돌 오디션도 한 번 받아볼까 싶었어요. 하지만 떨어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되어 고민하고 있으려니 엄마가 '일단 응모는 해 보지 그러니?'라고 하셔서 응모하게 되었어요. 지금 생각 해 보면 기적이었죠."
이렇듯 후보자들 중 대다수가 노기자카, 혹은 케야키자카의 팬이거나 아이돌이 되고 싶다는 열망으로 오디션에 응모하는 가운데 독특한 존재감을 풍기는 소녀가 한 명 있었다.
이구치 마오 "가라오케에서 노래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비록 음치이긴 하지만 노래를 부르고 분위기를 띄우는 게 정말 즐거워서 자주 아이돌 흉내를 내곤 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오디션 같은 거 한 번 받아보지 그래?'라고 해서 분위기에 휩쓸려 인터넷으로 '오디션'을 검색했는데 그 때 발견 한 게 히라가나 케야키 오디션이었어요. 사실 당시만 해도 케야키자카라는 그룹에 대해서 전혀 몰랐지만, 인터넷으로도 응모가 가능하길래 보내 봤어요."
그렇게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 모집 기간이 끝나고 2016년이 밝았다. 케야키자카는 CD데뷔를 목표로 차근차근 준비를 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데뷔 싱글을 부르는 멤버들 사이에서 나가하마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었다.
네 "그렇게 안달이 나거나 하진 않았어요. 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그건 당연한 것… 이라고 이야기 하면 좀 이상하게 들리긴 하지만… 일단 오디션을 중간에 그만 둔 건 사실이기에 갑작스레 다른 멤버들과 같은 출발선상에 설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사실 그 당시만 해도 다른 멤버들이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만이 저를 버티게 해 주는 버팀목이었어요."
나가하마가 홀로 고독해 하고 있던 그 때, 한 편에서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서류심사 결과가 나와, 각 후보자들의 집에 통지가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가창심사, 댄스심사를 거치며 최종 후보자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사키 쿠미 "제가 붙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 했기에 2차심사 안내통지문을 분실했을 정도예요. (쓴웃음) 기억을 더듬어 보니 오디션 개최 일시랑 회장에서 가장 가까운 역 정도가 기억 났기에 당일엔 일찌감치 그 역으로 가서 회장을 필사적으로 찾았죠. 사실 역 근처에서 기다리다가 귀여운 여자애들이 모여서 가는 데로 따라가자 생각했었는데, 도착한 시간이 너무 일러서 아무도 없더라고요! (웃음) '아, 이거 끝났네'라고 포기하려 했는데, 때마침 2차심사 안내문을 손에 들고 회장을 찾는 아이가 있더라고요. 그 아이도 회장이 어딘지 몰라 헤매는 것 같길래 다가가서 '오늘 오디션 받으러 왔어요?'라고 물으니 그렇다 하길래 함께 회장을 찾아 왔습니다."
이구치 "성인식이 끝나고 집에 와 보니 편지가 한 통 와 있더라고요. '이거 뭐지? 왜 소니가 나한테 편지를 보냈어?'라고 생각했어요. 오디션에 응모했던 것 조차 잊고 있던 거죠. (웃음) 나중에 친구한테 이 이야기를 했더니 '2차심사 다녀 와'라고 이야기 해 주어서 그 말대로 심사에 갔지요. 가창심사때 '헤비 로테이션'을 불렀는데, 심사위원분들이 노래를 듣다 말고 막 웃으시더라고요. (웃음) 내심 '쟈이안(도라에몽에 나오는 '퉁퉁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며칠 뒤에 '합격하셨습니다'라는 연락이 와서 '왜?'라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웃음)."
최종심사에 남은 멤버들은 4월 29일부터 5월 5일에 걸쳐 쇼룸을 통해 팬에게 어필을 하게 되었다. 학교, 보호자의 승인 등의 사정으로 인해 후보자들 중에 쇼룸 방송을 하지 못 하는 멤버도 있었으나, 이런 새로운 방식의 오디션은 이후 AKB48 그룹이나 노기자카의 3기생 오디션 때에도 사용되었다.
이구치 "쇼룸 심사는 정말 재미있어 보였어요. 뭐라하죠, 친구들을 상대로 방송을 하는 감각이라고나 할까요. 저희가 방송을 하면 그것을 봐 주는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코멘트를 해 주는 것이 정말 즐거웠어요."
사사키 미레이 "쇼룸 첫 방송때 와이파이가 연결되지 않아 제 방송 화질이 거의 모자이크 수준이었어요. 처음이라 긴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화면은 모자이크다 보니 결국 5분도 안 되어 방송을 끝낼 수 밖에 없었어요. 정말 울고싶었지요. 지금까지 살면서 그렇게 당황했던 적이 없었어요. 나중에 스태프분께서 전화를 하셔서는 '화질이 안좋던데 괜찮아요?'라고 물으시기도 했어요. (쓴웃음)"
우시오 "저희 부모님이 쇼룸 방송하는 걸 허락 해 주지 않으셔서 저는 방송을 하지 못 했지만 다른 멤버들이 방송하는 것은 봤어요. 다들 마지막 방송 때 울면서 방송을 했는데, 그 모습을 보며 저도 눈물이 나더라고요. 팬 여러분이나 응원 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고, 그 분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눈물이 난다는 것은 결국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눈물이잖아요. 그게 정말 아름다워 보였지요. 그 때 처음으로 '나, 아이돌이 되고 싶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쇼룸 심사가 끝난 날로부터 며칠이 흐른 5월 8일, 최종심사가 열렸다.
다카세 마나 "회장에 도착 해 보니 '쇼룸 방송때 봤던 아이들'이 있더라고요. 뭐라하죠. 연예인을 보는 느낌이었어요."
히가시무라 메이 "카토 시호쨩이랑 이구치 마오쨩 둘이 엄청 친해보이더라고요. (웃음) 처음 만나는 것일텐데 강심장들이네… 라 생각했지요. 저는 엄청 긴장해서 마나피랑 바로 곁에 서 있었음에도 한 마디도 못 했거든요 (쓴웃음). "
이구치 "사실 최종심사 때 지각했어요. 기본적으로 오디션에 지각하면 떨어지잖아요. 근데 도착하고 보니 시호쨩이 '쇼룸 봤어'라고 말을 걸어줘서 금세 친해졌죠. 그 때 '뭐,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만족해'라고 생각했었는데 어째선지 합격하더라고요. 지금도 제가 왜 붙었는지 모르겠어요."
최종심사에서 뽑힌 11명은 그 날 바로 히라가나 케야키에 가입하게 되었다. 반년이라는 시간동안 홀로 히라가나 케야키를 지켜 온 나가하마의 곁에 새로운 동료들이 오게 된 기념비적인 날이었던 것이다.
다카세 "하지만 한 편으로는 '앞으로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걸까'라고 냉정하게 생각 해 보기도 했어요. 학교는 어쩌지? 같은 생각들을 하다 보니 불안한 마음도 생기더라고요."
합격 멤버들이 정해진 뒤, 나가하마가 무대 위로 올라 와 처음으로 '동료'들과 마주서게 되었다.
카게야마 "물론 합격한 멤버들도 빛나고 있었지만, 네루쨩은 한층 더 빛이 나서 차마 눈을 마주칠 수조차 없었어요. '케야카케'에서 보던 네루쨩… 아니 '나가하마상'과 같은 팀이 되어 활동하게 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어요."
히가시무라 "정말 귀여웠어요. 마음 속으로 '아, 네루쨩을 실제로 봤다'라고 생각했지요. (웃음)"
하지만 정작 나가하마는 이 날에 대해 이렇게 술회한다.
네 "사실 그 당시, '누가 도쿠야마 다이고로를 죽였는가?' 촬영기간이었거든요. 한자 케야키 멤버들이랑 직접 부대끼면서 거리감이 순식간에 줄어 든 때였어요. 한자 케야키 멤버들이 좋았고, 이대로 한자 멤버들이랑 함께 활동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요. 그렇기에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가 정해졌다'는 얘기를 들은 순간, 순식간에 현실로 되돌아 온 느낌이었어요. '아, 그래… 내가 있을 곳은 거기였지.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었어.'라는 현실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 최종발표 땐 솔직히 엄청 긴장했었어요. '어쩌지… 친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고.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동료들이 오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복잡한 마음이었어요."
나가하마는 그런 복잡한 마음을 가슴 속에 숨긴 채, 9개월 전에 자신이 서 있어야 했던 무대 위로 올라갔다.
네 "그 때 처음 느꼈던 감정은 '아, 그러고 보니 나는 이 무대를 경험하지 못했구나'라는 점이었어요. 그런 점이 굉장히 부담스러웠다고 해야 하나… 저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실감했지요. 그것도 합격한 히라가나 멤버들 사이에선 '전우'라고 할까요.. 굉장히 일치단결 해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에 '내가 이 곳에 있어서 면목이 없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각자 마음 속에 저마다의 생각을 품은 채, 12명의 소녀들은 드넓은 바다로 배를 띄웠다. 그리고 그 '바다'위에서 그녀들이 항해 해 나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돌이 되긴 했지만 '한자 케야키'를 우러러봐야만 했던 나날
히라가나 케야키의 오디션에 합격하여 멤버가 되기는 했지만, 합격 직후 한동안 그녀들에게는 특별한 일이 주어지지 않았다. 11명의 소녀들은 지금까지와 다름 없는 매일매일을 보냈다. 유일하게 변한 것이 있다면 주말에 레슨에 가야 했다는 것 정도. 한 편, 같은 때 한자 케야키는 '사일런트 마조리티'로 화려하게 메이저 데뷔, 신인그룹으로는 이례적인 인기를 끌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히라가나 멤버 대다수는 '내가 케야키자카의 멤버가 되었다'는 실감이 들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다카세 "레슨은 즐거웠어요. 아이돌이 된 것 같았거든요. 동시에 학교 클럽활동의 연장선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카키자키 "멤버들과 함께 있는 것이 가장 즐거웠어요. 멤버들에 대해 그리 잘 알지는 못했지만 레슨 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씩 알아가는 시기였지요."
카토 "당시만 해도 한자 케야키 여러분과는 접점이 없었어요. 그렇기에 음악 방송에 나오시는 것이나 드라마 같은 건 한 명의 팬 입장에서 보곤 했지요."
우시오 "이런 말 하면 좀 이상할 지 모르지만, 그 땐 그다지 분하다던가 하는 마음은 없었어요. 뭐라하죠, 높디 높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느낌? 저 역시 멤버라는 자각이 부족했던 것도 있겠지요. 그저 한 사람의 팬으로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정도였어요."
다카모토 아야카 "당시엔 프로의식이 부족했던 것이죠.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레슨받는 것 외에는 별달리 활동도 안 하면서 프로 운운하는 것도 오히려 잘난척 하는 것 같아 보였어요. 그럴만한 환경도 아니었고."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보며 멤버들 사이에서도 조금씩 불안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사사키(쿠) "합격하고 레슨이 시작되기 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 한자케야키분들은 2번째 싱글 발표도 나고, 드라마 방영도 결정이 되었기에 그 모습을 보며 '우리는 잊혀진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쓴웃음)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멤버들 연락처를 아는 것도 아니고, 딱히 그런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도 없었지요."
사이토 "당시엔 자주 '우리 히라가나케야키의 존재의의는 뭐지?'라고 생각하곤 했어요. 이대로 활동을 하다보면 알게 될까? 라는 생각도 했고요. 객관적으로 보면 한자 케야키가 이미 아이돌로서 완벽하게 완성이 되어 있는 상황이었기에 저희가 그 안에 들어가서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거든요."
우시오 "히라가나 케야키는 사실 한자 케야키가 엄청난 기세로 달려나갈 때 만들어 진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처음에는 '우리는 필요 없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멤버들 모두 엄청 고민했지만, 저희들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요. 당시엔 멤버들 모두가 자신이 없을 때이기도 했기에 다들 엄청 부정적이었어요. 개인적으로는 그 당시, 중학교때 알던 애가 저에 대해 '왜 저런 애가 아이돌이 된거야?'라고 험담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인간불신 직전까지 가 있었거든요. 결국 스태프분께 '저 무서워요. 이 이상은 힘들지도 모르겠어요.'라고 상담을 했는데, 그 때 그 스태프분께서 '다들 처음에는 그런 벽에 부딛히곤 해. 하지만 언젠간 '그 때 노력하길 잘했다'고 생각할 때가 올 테니까, 조금만 더 노력 해 보자'라고 말씀 해 주셔서, 한 번 각오하고 들어왔으니 한 번 끝까지 해 보자고 마음을 다잡았지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나가기 시작한 '히라가나 케야키'의 앞에 한 줄기 빛이 드리워진 것은 어느 초여름날의 일이었다. 8월 10일에 발매된 케야키자카의 2번째 싱글 '세상엔 사랑뿐이야' 통산반에 히라가나 케야키의 첫 오리지널곡 '히라가나 케야키'가 실린다는 것이 결정 된 것이었다. 그리고 싱글 발매 3일 뒤인 8월 13일에 열린 나고야 전악에서 '히라가나 케야키'의 첫 피로가 결정되기도 했다. 처음으로 '눈에 보이는 활동'을 시작하게 된 기쁨을 숨기지 못하는 히라가나 멤버들과는 대조적으로 나가하마는 한자 케야키와 히라가나 케야키의 겸임의 가혹한 세례를 받게 되었다.
네 "그 당시는 TIF시기이기도 했기에 매일 아침, 오후때 라이브를 해야 했어요. 히라가나의 레슨에 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침 라이브와 오후 라이브 사이뿐이었지요. 스케쥴도 빡빡했지만 여러가지로 정말 힘들었어요. 제가 없는 사이에도 히라가나 멤버들은 계속 레슨을 해서 점점 실력도 늘고, 서로 친해지는 것도 눈에 보였거든요. 결국 혼자 안무를 배우게 되었는데 그 때 '아, 여기서도 혼자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혼자 거울을 보며 춤 연습을 했어요. 이런 비유가 적당한 지는 잘 모르겠는데, 말하자면 '혼자 나중에 수영교실에 들어 와, 혼자 기초를 배우는 사람' 같았다고나 할까요. 다른 멤버들은 서로 사이가 좋아지고, 하나가 되어가는데 저 혼자 그 그룹에 던져진 느낌도 들었거든요. (웃음) 사실 어릴 때 이사를 자주 다녀서 그런 '홀로 나중에 합류하는' 상황에 대해 트라우마도 있었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일단은 제가 '선배'이기에 다른 멤버들보다 뒤쳐져서는 안된다는 생각,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래저래 머릿속이 복잡해서 레슨장에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지요. 레슨장에서도 전부 내보여선 안된다는 생각을 했기에 거리감을 느끼곤 했지요."
그리고 찾아온 전국악수회. 이 날, 리허설을 끝낸 히라가나 멤버들은 다시 한 번 '한자 케야키와 자신들의 격차'를 절감하게 되었다.
다카모토 "멤버들과 함께 TIF를 보러 갔었거든요. 제가 아이돌이 된 뒤 처음 보는 아이돌 공연이 바로 그 때 본 한자 케야키상의 공연이었어요. 그리고 그 한자 케야키의 퍼포먼스를 보고 저도 모르게 감동을 받아 눈물이 나더라고요. (웃음) 무엇보다도 일체감이 엄청났어요. 그걸 보고나니 '아, 우리들은 아직 아이돌이라 불릴 자격이 없구나'라고 실감했습니다."
사사키(쿠) "전국악수회 리허설 때 한자 케야키 여러분이 '세카아이'를 연습하시는 것을 봤어요. 그것도 숨소리마저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정말 발걸음 하나조차도 딱딱 맞는 그 퍼포먼스였지요. 그 누구도 '이 정도면 되겠지'라고 설렁설렁 하지 않는다는 게 너무 잘 느껴졌고, 동시에 아직 저희들에게는 그런 면이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했지요. 본 공연도 아닌 리허설을 보고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맞이한 첫 라이브 퍼포먼스. 겨우 한 곡 뿐이긴 했지만, 그녀들은 빽빽히 들어 선 관객 앞에서 풋풋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자신들의 존재감을 어필했다.
카키자키 "나고야 전악 미니라이브가 시작되기 전에 한자 케야키여러분과 함께 원진을 꾸렸어요. 그 때 처음으로 '아, 나도 이 그룹의 일원이구나'라고 실감했지요."
히가시무라 "물론 불안하기도 했지만, 불안보다는 즐거움이 더 컸어요. 히라가나 케야키에 들어오기 전에는 클럽활동으로 기수단을 했었는데, 그 때 사이타마 수퍼 아리나에 섰던 적이 있거든요. 긴장한 정도로 따지자면 그 때가 더 긴장했었기에 라이브는 즐겁게 해 낼 수 있었어요. (웃음)"
사이토 "큰 무대에서 노래를 한다는 제 오랜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기도 했기에,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하지만 처음으로 스테이지 위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거니까 울면 안된다고 마음을 다잡았죠. 팬분들께서도 제가 웃으면서 춤 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실 거라 생각했고요. 평범한 여자아이가 아니라 '아이돌'로서 무대에 서는 것이니까, '나는 아이돌이다'라는 자각을 갖고 미소를 보여드려야지!'라고 생각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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