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걸고' 임한 오모테나시회
조금씩이긴 하지만 상황이 변화하기 시작한 2016년 여름도 어느덧 지나갔다. 10월 28일에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첫 단독 이벤트,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오모테나시회'가 아카사카 블리츠에서 개최되게 되었다. 12명의 멤버들이 각각 코러스부, 댄스부 등 여러 '부'로 나뉘어 그간의 성과를 선보이기도 하고, '히라가나 케야키', '사일런트 마조리티', '세상에는 사랑뿐이야' 등 여러 곡들을 퍼포먼스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의미 깊은 첫 단독 이벤트.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정말 손꼽아 기다려지는 이벤트이리라. 하지만 정작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은 이 이벤트를 '위기감'이라는 키 워드로 표현한다.
다카모토 "저는 당시에 항상 '히라가나 케야키 위험한 것 아닐까? 지금이 위기일거야'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렇기에 오모테나시회를 성공시키지 못한다면 이대로 저희의 인생 자체가 끝나버린다는 각오로 임했어요."
이구치 "오모테나시회를 준비하면서 '댄스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어요. 생각 해 보세요. 공연해야 하는 곡이 '사일런트 마조리티'잖아요. 힘들다느니 할 수 있다느니 그런 걸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던 거죠. 결과적으로 '할 수 밖에 없어. 어차피 할 거 최대한 열심히 해 내자'라고 각오를 다지로 무대에 임했어요."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이 연습에 매진하고 있을 시기, 나가하마는 11월 30일에 발매가 결정된 케야키자카의 3번째 싱글 '후타리세종'의 레코딩, MV촬영에 쫓기고 있었다. 오모테나시회 연습에 좀처럼 참가하지 못 하는 가운데 시간만 무심하게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네 "당시에는 정말 저 하나 건사하는 것만 해도 벅찼어요. 해야 할 게 많기도 했고, 둘 중 어느 것도 제대로 해 내지 못하고 있기도 했고. 하지만 한자케야키 레슨을 하다보면 느끼는 게, 누구 하나만 빠져도 퍼포먼스의 완성도가 확 떨어지는 거예요. 케야키의 안무는 모든 멤버들이 참여해야만 완성이 되는 안무이기에 결국 제가 빠지면 말그대로 '이가 빠진 채로' 연습을 해야하는 것이었지요. 히라가나 멤버들은 익숙치 않은 것들 뿐이라 힘들었을텐데도 항상 저를 보면 '수고했어'라던지 '네루쨩, 여기야 여기'라는 식으로 다정하게 대해 주었어요. 고맙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런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에 대해 자기혐오가 강해지더라고요. '다들 저렇게 나에게 잘 해 주는데 난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걸까'라는 식으로."
나가하마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던 것은 단순한 '자기혐오' 뿐만은 아니었다. 히라가나 케야키의 오모테나시회 버전 '사일런트 마조리티'에서 나가하마가 서게 된 위치는 다름아닌 히라테 유리나의 자리… 바로 '센터'였던 것이다. '센터에 서게 되었다'는 중압감 역시 나가하마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네 "히라테 이외의 멤버가 '사일런트 마조리티'의 센터 자리에 서 있는 모습을 본 적도 없었을 뿐더러, 하물며 그 자리에 제가 서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 했기에 압박감이 대단했어요. 히라가나 멤버들은 항상 한자 케야키의 영상을 보면서 자기들 나름대로 연습하고 연구하며 성장하고, '팀'으로서 완성되어 가는 데 반해 저는 시간이 맞지 않아 레슨에 나간 게 본 공연 이틀전이었거든요. 처음으로 멤버들과 동작을 맞추어 보았는데, 저 혼자 엄청 튀더라고요. 맨 앞에 서서 춤을 추다 보면 제 등을 통해 다른 멤버들의 기백이 전해져 오는데, 그 기백을 느끼면서 한 편으로는 '다른 멤버들이 필사적으로 쌓아 올린 것을 내가 전부 망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무서웠어요. 저 하나 때문에 히라가나 케야키의 '사일런트 마조리티'가 약하게 보이는 것은 아닐까, 퍼포먼스라고 부르기도 힘든 '흉내', '패러디'로 보이는 것은 아닐까… 너무 두려웠어요. 다른 멤버들이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오모테나시회에 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저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멤버들에 비해 '무대에 거는 결의'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오모테나시회는 제가 이 세계로 들어 와 두 번째로 겪은 '후회가 남는 무대'였어요."
나가하마에게 있어 '처음으로 겪은 후회가 남는 무대'가 무엇인가는 나중에 다루어보기로 하고, 우선 오모테나시회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나가하마 이외의 멤버들 역시 '한자 케야키의 곡'을 퍼포먼스한다는 점도 있어, 기합이 팍 들어 가 있었다.
다카모토 "한자 케야키의 흉내만 내고 끝낼 수는 없었죠. 처음 '사일런트 마조리티', '세상에는 사랑뿐이야'를 퍼포먼스 해 보고 느낀 점은 다름 아니라 '한자 케야키와 저희는 분위기가 다르다'는 점이었어요. 애초에 받은 곡(히라가나 케야키')의 분위기도 다르고 말이죠. 그렇기에 자칫하면 그냥 흉내내는 것만으로는 만족 할 수 없었어요. 퍼포먼스를 할 땐 한자 케야키여러분에 대한 존경을 담아 퍼포먼스 해야겠다 생각했지요."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에게 있어 '첫 시련'이었던 오모테나시회는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이 이벤트를 거치면서 새로운 목표를 발견한 멤버도 있었고, 누군가는 현재의 과제를 발견하기도 하였다. 이 이벤트는 말하자면 멤버들에게 있어 '큰 영향을 준' 이벤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카게야마 "이제야 서로 속을 터 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사이지만, 당시에는 멤버들사이에 유대감이라는 것이 그렇게 확고하게 형성되어 있던 때는 아니었거든요. 그렇기에 그 이벤트를 겪으면서 멤버들 사이의 결속력이 매우 단단해졌다고 생각해요."
우시오 "저는 오모테나시회 정말 즐거웠어요! 진심으로 즐거웠어요. 처음 열린 '히라가나 케야키'의 단독 이벤트이기도 했고, 저희 히라가나 케야키를 보러 와 주신 분들이 계셨으니까요. 그렇게 저희를 지탱해 주시는 여러분께 뭔가 저희 나름의 감사 표시, 보은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어요. 과장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지 모르겠지만, 제게 있어서는 그 정도로 큰 전환점이었어요.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사사키(쿠)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만족하기 힘든 무대였어요. 뭔가 확실치 않게 얼버무려진 느낌이 있다고 해야하나요. 공연이 끝난 뒤, 뒤늦게 '이 정도로는 만족 못 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 날, '앞으로는 남들이 뭐라 하건 그 때 그 때 내 생각을 확실히 이야기하고, 어떤 스테이지를 만들어야 할 지 다름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같은 무대에서 느낀 '사카구미'로서의 자신
11월 30일에 발매된 '후타리세종'에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두 번째 오리지널곡 '누구보다도 높이 뛰어!'가 실렸다. 이 곡은 히라가나 케야키의 곡 중 처음으로 '뮤직 비디오'가 만들어 진 곡이며, 팬들 사이에서의 평가도 높은 곡이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24일, 25일에는 케야키자카의 첫 단독 라이브가 아리아케 콜로세움에서 개최되었다. 히라가나 케야키 역시 '케야키자카 46'의 일원으로서 이 라이브에 참가하였다. 양일, 세 번에 걸친 공연에 동원된 관객의 수는 2만 7천여명에 달했다.
이 공연을 위해 한자 케야키 멤버, 히라가나 케야키멤버 전원이 참가하는 'W케야키자카의 노래'가 만들어지고, 처음 선보여지기도 하였다. 이 '서프라이즈'는 회장을 가득 메운 팬들 뿐 아니라 멤버들에게 있어서도 의미 깊은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네 "후타리세종에 실린 '누구보다도 높이 뛰어!'를 보고 내심 '히라가나 케야키는 이대로 완전히 다른 노선을 걸을지도 모르겠네. 어쩌면 한자 케야키와는 엮이지 않는 독자 노선을 갈 지도 모르겠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타이밍에 'W 케야키자카의 노래'를 통해 두 그룹이 하나가 되는 기회가 생겼던 것이지요. 한자 케야키와 히라가나 케야키, 두 그룹이 한 데 어우러져 완전체 '케야키자카46'를 이룬다는 가사, 그리고 스테이징을 보며 히라가나 케야키가 가야 할 길이 조금이나마 보였고, 12명이서 더 열심히 노력해야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카게야마 "케야키자카라는 그룹이 좋아 오디션을 받은 제 입장에서 보자면 동경의 대상이었던 한자 케야키와 함께 같은 노래를 부르고, 같은 곡을 퍼포먼스 한다는 것이 정말 영광스럽고, 기뻤어요. 그렇기에 아리아케에서 처음으로 'W케야키자카의 노래'를 선보였을 땐 평소보다 훨씬 더 마음을 담아 퍼포먼스 했어요!!"
사사키(쿠) "한자 케야키여러분과 함께 부를 수 있는 곡, 32명의 멤버 전원이 함께 부르는 곡이라는 거… 이전부터 꿈꾸어 왔던 것이거든요. 그런 '꿈'이 이토록 빨리 실현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에 정말 기뻤어요. 가사에도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단어가 들어 가 있는데다가, 두 그룹이 하나가 되어 함께 펜라이트를 흔드는 안무도 기뻤고요."
사사키(미) "가사에 '케야키자카, 케야키자카'라는 부분이 있는데요, 첫 '케야키자카'부분은 한자로, 두 번째 '케야키자카'부분은 히라가나로 쓰여 져 있는 게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아, 우리도 사카구미로 인정을 받았구나'라는 실감이 들었어요."
이 곡을 통해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의 '아리아케 공연에 대한 마음'은 더더욱 깊어졌다.
사사키(쿠)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의 존재 자체는 알고 있어도 자세히는 모른다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퍼포먼스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사키(미) "아리아케에 와 계신 팬분들 중에 한자 케야키 팬분들이 많으신 거야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런 분들께서 '얘들이 여기 왜 나와'라는 생각을 안 하시도록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처음으로 한자 케야키와 함께 리허설을 하며 깨닫게 된 것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깨달음은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에게 큰 자극으로 다가왔으며, 그녀들의 결속력을 더욱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사사키(미) "한자 케야키 여러분의 연습을 보다 보니, 저희랑 너무 비교가 되어서 초조했어요. 무대가 무대기도 하다보니 정말 저희가 여기에 서도 되는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저 뿐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와, 이거 큰일이다. 이대로라면 그냥 공개처형 당하는 거 아냐?'라고 걱정했었지요."
다카모토 "한자케야키 여러분이 퍼포먼스 하시는 것을 보고 난 뒤, 저희가 무대에 서면 '여기는 이렇게 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어요. 레슨장에서 저희끼리 연습했을 때랑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지요. 그래서 멤버들끼리 모여서 그런 보완점들을 상담하거나, 누군가가 제안한 내용을 임기응변으로 대응 하면서 조금씩 바꾸어 나갔지요. 그렇게 보면 한자 케야키분들의 모습을 보면 저희들도 저희 나름대로 조금씩 의식이 높아졌던 것 같아요."
네 "그 때쯤부터 제가 춤을 잘 못 춘다는 사실도, 안무를 잘 외우지 못한다는 점도 멤버들에게 숨김없이 보여 줄 수 있게되었어요. 말 그대로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고 할까요. 조금씩이지만 저 여시 변해가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사이토 "사실 이전에 코다 쿠미상의 라이브를 보러 아리아케 콜로세움에 왔던 적이 있었기에 '와… 내가 코다상처럼 대단한 아티스트가 섰던 무대에 서는구나… 엄청난 곳까지 와 버렸네'라는 실감이 되더라고요. 꼭 그래서 그런 건 아니지만, 저도 모르게 다른 멤버들에게 '해 내자'고 이야기를 했어요. '엄청난 무대에 설 기회를 받았으니 최선을 다 해 전부 발산하자'고요. 무대 옆에서 기합을 넣었던 기억이 있네요."
사이토에게 질문을 해 보았다. '라이브 때 한자 케야키를 의식했었느냐'는 물음이었다. 나의 질문에 대해 사이토는 함박 웃음을 지으며 '한자 케야키상이 전곡을 피로하셨는데, 그 땐 다시 팬으로 돌아가 즐겁게 바라보았다'고 대답했다.
사이토 "솔직히 라이브가 시작되기 전에는 함께 활동을 하는 동료라는 느낌이었는데, 라이브가 시작되고, 한자 케야키상의 퍼포먼스를 보고 있자니 다시 팬으로 되돌아 가 버리더라고요. 하지만 동시에 '아직 우리는 박력이 부족해'라던가 '역시 인원수가 다르네' 같은 생각도 들었어요. 한 편으로는 '우리가 같은 그룹이 아니었다면 엄청 비교되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어 뭔가 좀 묘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런 사이토의 걱정과는 달리 이 공연에서 히라가나 케야키, 특히 '누구보다도 높이 뛰어!'의 퍼포먼스는 팬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는 받는 좋은 퍼포먼스였다. 미디어 관계자들 중에서도 이 곡을 통해 '히라가나 케야키'의 매력을 느낀 사람들이 적지 않았으며, 이 퍼포먼스를 통해 히라가나 케야키를 좋아하게 된 사람도 적지 않았으리라.
사사키(쿠) "사실 아리아케 무대는 서브무대가 있어서, 앞뒤로 관객분들이 있는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했기에 안무도 평소와는 다른 안무였어요. 이동도 많아서 '여기선 이렇게 나가고, 이 타이밍에 반대편으로 돌아'라던지 하는 게 많았기에 다들 혼란스러워했지요. 그것도 연습기간중에 전국악수회도 있었기에 이 안무랑 저 안무랑 온통 뒤섞여서 다들 어찌 할 줄 몰라했어요. 그래서 나중에 팬 여러분께서 '아리아케 때 그 곡 멋있었어'라고 평가를 들었을 때에서야 처음으로 '아, 우리 안 틀리고 잘 했구나'라고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카키자키 "그 라이브때 했던 '누구보다도 높이 뛰어!'는 정말 즐거웠어요. 지금까지 활동 해 오면서 가장 즐거웠던 것 같아요."
아리아케 콜로세움 공연을 성공리에 끝낸 뒤, 한자 케야키 멤버들은 대형 뮤직페스티벌인 '카운트다운 재팬 16/17', 그리고 '제 67회 홍백가합전'에 차례차례 출전하며 데뷔 첫 해를 화려하게 마무리지었다. 그리고 이 날은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들이 오디션에 응모 한 지 1년을 맞이하는 날이기도 했다. 오디션 1주년 날에, 나가하마가 포함된 21명의 '한자 케야키'멤버들이 홍백에 등장하는 모습을 지켜 본 히라가나 멤버들의 감상은 어땠을까?
다카모토 "저는 같은 그룹 멤버 입장에서 정말 기뻤습니다. 정말 두근거려서 인터넷으로 홍백 리허설 사진을 전부 찾아 보았을 정도예요. '아, 이마이즈미상이다! 스즈모토상도 있어!' 라고 흥분했었지요. (웃음) 어쩌면 그 때는 잠시나마 예전으로, 팬이었던 시절로 돌아갔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정작 케야키자카의 무대를 보고 난 뒤에는 케야키자카라는 그룹이 엄청 멀게만 느껴지기도 했어요 불과 얼마 전, 함께 라이브를 했을 땐 가깝게만 느꼈었는데.."
카게야마 "아리아케 라이브때 바로 곁에서 지켜보았던 사람들이 홍백 무대에 서 있다는 게 뭔가 되게 신기했어요. 하지만 저희는 한자 케야키의 뒤를 쫓아가고 있다는 자각은 하고 있었기에 그렇게까지 크게 안달이 나거나 불안하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우시오 "인생이란 거, 어떤 일이 일어 날 지 모르는 거구나… 라고 실감하며 홍백을 봤어요. 불과 1년 전에 친구들이랑 놀지 않았더라면, 작년에 홍백을 보지 않았더라면 오디션에 응모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실패가 두려워하지 말고 무슨 일이건 일단 부딛혀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새삼 실감했어요. 그렇기에 한 순간 한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활동 해 나가려 해요.."
사이토 "홍백을 보긴 했지만 딱히 분하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물론 언젠간 저희도 저 자리에 서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요."
다카모토 "홍백은 궁극적인 목표죠. 현재 목표는 음악방송에 히라가나
케야키 단독으로 불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언젠간… 홍백에도
나갈 수 있는 그런 그룹이 되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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