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화
정신 없이 달려 온 여름
2015년 8월 21일. 노기자카46의 뒤를 잇는 ‘사카미치 시리즈’의 제 2탄 그룹으로서 아이돌 그룹 ‘케야키자카46’가 새로이 결성되었다. 하지만 그 최종심사 직전, 한 후보자가 오디션을 사퇴 해 버리는 일이 벌어진다.
그 소녀의 이름은 나가하마 네루. 그녀의 존재를 계기로 새로운 그룹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이 시동을 걸게 된다. 나가하마 네루를 유일한 멤버로 하는, 소속 인원이 단 한 명 뿐인 아이돌 그룹이 결성 된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6년 5월 8일, 추가멤버 오디션에 합격한 11명이 그룹에 합류, 히라가나 케야키는 새로운 걸음을 떼게 된다. 하지만 그 직후 나가하마는 ‘겸임’이라는 명목으로 한자 케야키의 멤버로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데뷔 싱글 ‘사일런트 마조리티’의 폭발적인 히트에 힘입어 한자 케야키는 급속도로 성장, 히라가나 케야키는 한자 케야키의 그늘 안에서 빛을 보지 못하는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그녀들은 2017년 봄부터는 전국의 라이브하우스를 돌며 단독 투어를 시작, 조금씩이나마 성장 해 간다. 그리고 같은 해 여름, 히라가나 케야키의 전국 투어는 일단 중단, 한자 케야키를 중심으로 하는 아리나 투어에 함께하게 된다.
사사키 쿠미가 진심으로 소리 쳤던 날
2017년 8월 2일. 효고현 고베시의 한 대형 홀에서 케야키자카46의 전국투어가 시작되었다. 이 투어는 투어 직전에 발매 된 케야키자카46의 첫 앨범 ‘새하얀 것은 더럽히고 싶어 져’의 수록곡들을 중심으로 한 투어였다.
히라가나 멤버들 역시 이 투어의 첫 날부터 함께 하며 앨범에 수록된, 한자 케야키와의 합동곡인 ‘태양은 비춰주는 사람을 고르지 않아’ 등 여러 곡들을 선보였다.
그리고 그녀들이 선보이는 곡들 중에서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신곡인 ‘영원의 흰 선’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다들 먼저 포기하곤 해.
‘그래도 난 열심히 했어’라고 변명하면서
이 흰 선 그렇게까지 길게 긋지는 못 해
한계에 달하기 한참 전에
힘껏 뻗었던 손을 내려 버리고 말아
여기서 끝내도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꿈과 석횟가루는 아직 남아 있잖아?
아무도 가 보지 못 한 ‘영원’은 바로 이 앞인걸.’
꿈이라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간단히 이룰 수 없는 것, 하지만 꿈을 향해 끊임 없이 걸어가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그런 메시지가 담긴, 마치 응원 해 주는 듯 한 곡이었다.
이 곡의 간주 부분 안무는 다른 사람들에게 추월 당하면서도 각자 자신의 최선을 다 해 필사적으로 달리던 멤버들이 서서히 한 줄로 늘어서서 결국 하나의 ‘선’이 되어가는 모습을 표현하는 안무였다. 이것은 멤버 각자가 자신의 꿈을 좇아 가면서도 결국 12명의 멤버들이 단결하여 자신들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의 존재의의를 상징하는 것만 같은 안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당시 그녀들은 그 안무처럼 ‘하나의 그룹으로서 일치단결하’려는 의식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
이틀에 걸친 고베 공연이 끝난 직후인 8월 5일. 세계 최대의 아이돌 페스티벌 ‘도쿄 아이돌 페스티벌 2017’이 개최되었다. 그리고 이 무대에 한자/히라가나 케야키자카가 각각 참가하게 되었다. 그리고1년 전, 갓 활동을 개시한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은 바로 이 이벤트에서 ‘선배’인 한자 케야키의 퍼포먼스를 처음으로 보았었다.
처음으로 TIF무대에 선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 첫 공연은 이래저래 실수가 많은 공연이었다. 본디 전국투어용으로 만들었던 안무를 TIF 버전으로 수정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기에 혼란해 했었던 것이다. 특히 라인댄스처럼 일렬로 늘어서야 하는 장면이 많은 ‘영원의 흰 선’ 같은 경우는 포지션이 미묘하게 어긋나거나 타이밍이 안 맞는 등, 완성도가 많이 떨어졌다.
예전부터 한자 케야키의 팬이었고, 이 날 MC에서 ‘작년엔 이 무대에 선 한자 선배님들을 보기만 했는데 올 해는 저희가 이 무대에 설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고 이야기 했던 사사키 쿠미는 본 공연때 주변 상황을 본 뒤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자신들에게 있어 너무나도 소중한 이 스테이지에서 선배들처럼 정연하게 퍼포먼스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분했던 것이다.
사사키가 잔뜩 풀이 죽어 대기실로 돌아 가려 했을 때, 믿을 수 없는 말들이 그녀의 귓가로 날아들어왔다. 다른 멤버들이 ‘오늘 엄청 더웠어’. ‘땀 때문에 앞머리가 엉망이야’, ‘아, 춤 틀렸네.’ 라는 말들이었다.
이런 말들을 들은 사사키는 폭발 해 버리고 말았다.
‘아니 너희들은 분하지도 않아?!’
눈물범벅으로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그렇게 일갈하는 사사키의 모습에 대기실 안은 한 순간 얼어붙었다.
그 한마디는 언제나 온화했던 그녀가 처음으로 멤버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가감없이 드러 낸 순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룹의 앙상블
사사키 쿠미는 어릴 때부터 우등생이었다. 선생님의 말씀은 반드시 지켰고, 4살 때부터 배웠던 발레는 ‘매일 해야만 하는 일이 없어지만 나태해진다’는 이유로 중 3이 될 때 까지 1주일에 7일 빼놓지 않고 다녔다.
발레 뿐만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부터는 학교의 취주악부에 들어 트럼펫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악단 전원이 하나가 되어 앙상블을 이뤄야만 하는 취주악부의 세계는 그녀의 성격과도 너무 잘 맞았다고 한다.
중학생이 된 뒤로는 취주악을 그만두었지만,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다시금 취주악부에 들어갔다. 고교 취주악부에서는 콩쿨에 나가기 위하여 매일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고, 때로는 합숙까지 하며 매일매일 부 친구들과 함께 연주하는 것이 너무나도 즐거웠다는 그녀. 그토록 충실했던 매일매일은 수험을 위하여 부 활동을 은퇴할 때 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 가고 보니 자신이 주변 사람들에게서 붕 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장이나 옷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워하는 동급생들을 따라 가 보려 열심히 노력해서 또래 여대생처럼 단장도 해 보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파장이 맞지 않아 결국 서서히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리고 결국은 학교에서는 수업만 받고, 수업이 끝나면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매일매일이 찾아왔다. 예전 발레가 그러했듯이 자기 자신을 잡아 줄만한 존재도 없었으며, 취주악처럼 동료들과 유대감을 느끼게 해 주는 것도 없었다.
그녀의 그런 메마른 매일을 바꾸어 준 것이 바로 히라가나 케야키자카였다. 2016년 5월, 그룹의 추가멤버 오디션에 합격, 멤버가 되었을 때 그녀는 이미 20살, 대학교 3학년이었다.
사실 이 때만 해도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의 연예계 활동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아버지는 딸의 연예계 활동에 긍정적이었지만 어머니는 ‘네가 하겠다면 협력이야 하겠다만, 응원은 안 할 거야. 대학교 졸업하면 아이돌 같은 건 그만두고 제대로 취직 하는 거다?’라고 이야기 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어머니와 척을 지면서까지 선택한 아이돌의 길은 어떻게 보자면 그녀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선택한 것이라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 중에서 최연장자였던 데다가, 아이돌 생활에 대한 의욕도 있었던 그녀는 활동 초기부터 그룹을 앞장서서 견인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집에서는 막내로, 다른 사람에게 이래라 저래라 지시를 하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그녀가 그룹 내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방법은 어딘가 좀 독특한 부분이 있었다.
‘자 그럼 한 번 더 해 보자. 하나~ 둘~’
취주악부에서 악기 톤을 조율하듯이 전체를 하나로 취합하는 것이 그녀의 리더십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온화한 분위기는 그룹의 분위기에도 반영되어, 히라가나 케야키를 나타내는 이미지 중 하나로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히라가나 케야키의 단독 라이브하우스 투어가 시작 된 뒤로는 원진의 구호나 스테이지에서의 MC를 맡게 되는 경우도 늘어 났다. 초창기부터 꾸준하게 연예계 생활을 반대하던 그녀의 모친은 첫 공연에 직접 와서 딸의 모습을 본 뒤, 이렇게 이야기 했다 한다.
‘저기, 다른 팬분들이 들고 있는 펜 라이트라는 거, 엄마도 갖고 싶어. 아, 그리고 다음 라이브도 갈게’
그룹에 가입 한 지 1년 가까이 지난 시점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지금까지 내가 고른 길을 잘 걸어 왔구나’라고 느꼈다고 한다.
히라가나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들어 왔으면 좋겠어.
우등생스러운 성격, 취주악부에서 배운 앙상블 의식. 사사키 쿠미라는 사람을 이야기 하는 데 있어 빼 놓을 수 없는 핵심적인 단어들이다. 그런 그녀였기에, 그녀의 그룹이 TIF에서 보여 준 부정확하고 허접한 퍼포먼스는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목소리를 높여 화를 냈던 것이고, 다른 멤버들도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자신들의 실수를 다시 한 번 반성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다들 뭐가 중요한지에 대해 생각이 다른 것 같아. 시간이 없다는 것은 잘 알지만, 공연을 앞두고 화장에만 너무 신경 쓰는 아이도 있고 말이지. 이거 어떻게 해야 할까?”
불현듯 카토 시호가 이렇게 이야기 했을 때, 사사키의 대답은 이랬다.
“히라가나를 더 큰 그룹으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만은 다들 같을 거라 생각해. 하지만 각자 품고 있는 꿈이 다른데다가, 꿈을 이루기 위해 취하는 방법도 다른 거지.”
여름에 열린 케야키자카46의 첫 전국 투어 기간동안 사사키 쿠미와 카토 시호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언니’격인 존재인 여성 스탭과 빈번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 주제는 언제나 ‘어떻게 해야 이 그룹이 더 좋아질까’라는 것.
멤버 중에는 사사키 쿠미처럼 흔들림 없는 퍼포먼스를 추구하는 멤버가 있는 반면, ‘우리는 아이돌이니까 무엇보다 귀엽게, 객석을 향해 전력으로 어필을 하는 것이 팬 서비스이다’라고 생각하는 멤버도 있었다. 물론 두 가지 의견 모두 맞는 의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사사키 쿠미는 자신의 방식을 다른 멤버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최대한 단순하면서도 간결하게 멤버들을 독려했다.
“얘들아, 최선을 다 하자!”
라고.
8월 2일에 시작된 투어는 전국 6개 도시에서 11번의 공연을 한 뒤, 8월 30일에는 치바현 마쿠하리 멧세에서 마지막 공연을 맞이하였다. 한자 케야키에게 있어서도, 히라가나 케야키에게 있어서도 너무나도 진한 한 달이었다.
히라가나 케야키는 매 공연마다 멤버들끼리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 회의 때마다 나온 이야기는 ‘어떻게 해야 팬 여러분을 웃게 해 드릴까’, ‘우리가 선보이는 곡이 적은데, 어떻게 하면 팬분들께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멤버들의 의욕과 모티베이션을 지탱 해 준 것은 바로 멤버들이 투어를 앞두고 정한 ‘목표’였다.
‘히라가나 케야키 2기생은 히라가나를 좋아하는 아이가 들어 왔으면 좋겠어. 우리가 그런 그룹을 만들자’는 목표.
예전 ‘추가 멤버 오디션’ 개최 소식을 듣고는 자신들이 ‘전력 외 통보’를 받았다고 생각하여 격렬하게 거부반응을 보였던 히라가나 멤버들은 어느 사이엔가 강해 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이 그런 마음으로 한창 투어를 하고 있을 때, 바로 그 ‘히라가나 케야키 2기생’이 될 멤버들의 최종 오디션이 열리고 있었다. 바로 8월 13일의 일이다.
최종 오디션 결과 히라가나 케야키에 들어오게 된 것은 총 9명.
새로운 멤버들의 가세와 더불어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는 총원 21명의 그룹이 되어 새로운 출발점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출발에 맞추어 투어 막바지에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첫 주연 드라마 ‘리:마인드’의 방영 소식이 발표 되었다.
사실 멤버들은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투어 일정에도 짬짬이 시간을 내어 연기 워크숍에 다니는 등, 드라마를 대비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정신 없이 달려 온 그 해 여름. 그리고 그녀들의 그 소중한 시기를 상징하는 곡이 바로 ‘영원의 흰 선’이었다.
하지만 꿈을 향해 흰 선을 그리며 똑바로 달려 온 12명의 멤버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미래였다.
그룹의 유일한 오리지널 멤버이자, 히라가나 케야키에 있어 누구와도 바꾸기 힘든 존재였던 나가하마 네루가 그룹을 떠나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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