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화
처음 20명이서 춤춘 날
2017년 10월부터 방영 된 히라가나 케야키의 첫 주연 드라마 ‘Re:Mind’.
‘히라가나 케야키는 다들 연기를 잘 하는 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스태프의 응원에 힘입어 부단히 노력 한 결과,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은 연기의 재미에 눈뜨게 되었다.
그 뿐 아니라 연기에 있어 매우 중요한 ‘상대방을 잘 지켜본다’는 점 역시 의식하게 되어, 이후의 라이브에서 퍼포먼스의 질 역시 크게 향상되었다.
드라마의 촬영기간은 약 2개월. 이 시기에도 촬영 이외의 스케줄, 다시 말 해 라이브나 방송 출연 등의 활동은 계속 되었다.
아무도 앉지 않은 ‘네루쨩의 자리’
2017년 11월 6일. 후쿠오카현 선 팔레스홀에서 히라가나 케야키의 전국 투어 후쿠오카 공연이 열렸다.
공연의 오프닝 퍼포먼스는 멤버들의 컬러가드 퍼포먼스. 깃발이나 모형총기 등을 이용하여 마칭의 분위기를 띄우는 이 컬러가드는 사실 히가시무라가 중, 고등학교 시절을 바친 것이었다. 실제로 연습 때는 다른 멤버들을 가르쳐주고 이끌어 주기도 한 경험자 히가시무라는 이 날 퍼포먼스에서도 센터 자리에 서서 모형 총기를 휙휙 돌리다 위로 던지고 받아내기도 하는 듯 멋진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오프닝 퍼포먼스를 마무리했다.
사사키 쿠미는 이 후쿠오카 공연부터 자기 마음 속으로 한 가지 ‘게임’을 시작했다. 회장에 모인 팬들의 표정을 한 사람 한 사람 유심히 바라보고, 만약 웃고있지 않은 관객이 눈에 들어오면 그 사람이 웃을 때 까지 전력을 다 해 ‘해피 아우라’를 뿜기로 정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상대방이 웃으면 자신이 승리 한 것이다.
물론 이런 ‘게임’을 하게 된 것은 공연의 분위기를 더욱 더 띄우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드라마 촬영을 겪으며 자연스레 몸에 익혀진 ‘상대방을 잘 본다’는 의식 역시 무시 할 수 없는 원인 중 하나였다.
이 공연에서는 드라마의 주제곡인 ‘그럼에도 걸어가’가 처음으로 전 멤버에 의해 선보여지기도 하였는데, 이 곡은 센터인 사이토 쿄코 이외에도 모든 멤버들이 솔로파트를 소화해야 하는 첫 곡이었다. 그리고 전원이 센터 파트를 맡게 되었다는 긴장감 덕분에 그녀들의 정신력은 한 층 강해 질 수 있었다.
이 곡을 선보일 때는 소도구로서 의자가 12개 사용된다. 그리고 이 날 공연에서 무대 중앙에 놓여진 의자 한 개는 끝까지 아무도 앉지 않은 채였다. 멤버들은 이 빈 의자를 ‘네루쨩의 의자’라고 부르며, 지금껏 나가하마와 함께 12명이 만들어 온 히라가나 케야키자카의 역사를 상징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빈 의자’는 그런 상징적인 의미 이외에도 동선 이동이 많은 이 곡에 있어서 안무의 ‘기준점’으로서도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곡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멤버들이 12개의 의자들을 일렬로 세워 놓고 그 의자들을 뛰어 넘는 연출이 가미되었다.
‘태어 나서 죽는 날 까지
그래 그럼에도 걸어 가는 거지
그렇기에 그럼에도 걸어 가’
라는 가사대로 지금껏 히라가나 케야키가 걸어 온 과거와, 그런 과거를 떠나 다음 길로 걸어 나가겠다는 의지가 담긴 연출이었다.
사실 이 후쿠오카 공연 직전, 전국투어의 마지막 공연이 치바현 마쿠하리 멧세에서 열리게 되었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틀에 걸친 마지막 공연의 수용인원은 약 1만 4천명. 지금까지 전국 투어를 돌아 온 3000명 이하의 라이브 하우스와는 차원이 규모였다.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티켓은 이미 선행 판매 시점에서 낙선자가 다수 발생 할 정도로 날개 돋힌 듯 팔렸다. 이는 멤버는 물론이고 스태프들 조차도 차마 예상조차 하지 못 한 일이었다.
이런 성황의 숨겨진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되는 것이 바로 ‘라이브 뷰잉’이었다. 봄부터 시작 된 전국투어 내내 소위 ‘라이브 뷰잉’이라고 하는 동시 중계가 행해졌던 것이다. 이는 사실 아직 인지도가 부족한 히라가나 케야키가 하기에는 위험도가 높은 도전이었기에 라이브뷰잉을 성공시키기 위하여 여러가지 기획이 실행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매 공연마다 한자 케야키 멤버들이 두 명씩 동행하여 무대 뒷편 모습을 중계 하는 기획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런 중계를 통해 지방에서도 서서히 히라가나 케야키의 팬들이 늘어났고, 그와 더불어 2기생 가입, 나가하마 네루의 갑작스러운 이탈 등 그룹의 ‘스토리’가 많은 관객들에게 공유 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팬들 사이에서 ‘어쩌면 마쿠하리 공연에서 2기생들이 처음 공개 될 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며 기대감을 더하기도 하였다. 8월에 그룹에 들어 온 9명의 2기생들은 이전까지 팬들 앞에 서서 퍼포먼스를 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히라가나 케야키사상 최대규모의 원맨라이브로 향하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50미터 달리기로 생겨난 카토와 와타나베의 유대감
2기생들이 본격적으로 사람들 앞에 서기 전부터 그녀들의 레슨을 맡아 온 댄서 겸 안무가 TAKAHIRO는 처음으로 그녀들과 만난 날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그녀들의 인사가 너무나도 크고 우렁차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고, 지금까지 보아 온 한자 케야키나 히라가나 케야키 1기생들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의, 말 그대로 ‘새로운 세대’가 들어 왔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가입 직후, 그녀들은 의례적으로 케야키자카46의 칸무리 방송인 ‘케야카케’에 6주 연속으로 출연하게 된다. 그 뿐 아니라 여러 잡지에서도 앞다투어 그녀들을 다루었다. 지금까지 히라가나 케야키 1기생들이 노력 해 온 결과, 새롭게 가입한 2기생들에게 수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2기생들이 처음으로 1기생들과 함께 참여한 곡은 ‘NO WAR in the future’였다. 후쿠오카 공연이 끝나고 함께 모여 안무를 배울 때, 초창기 자신들의 모습과는 달리 어려운 안무에도 겁먹지 않고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2기생들의 모습을 보며 히라가나 케야키 1기생들은 ‘2기생들 대단하다’고 칭찬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건, 당사자인 2기생들의 마음 속은 불안으로 가득했다.
특히나 최연소인 하마기시 히요리는 발레 경험자라는 점을 살려 이 곡 퍼포먼스에서 마찬가지로 발레 경험자인 사사키 쿠미와 함께 발레 동작을 선보이게 되었는데, 첫 합동 연습때는 너무나도 긴장 한 나머지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였다. 갑작스레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어, 마음 속으로 ‘나 같은 게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맡다니 다른 사람들에게 면목이 없다’는 생각만이 가득해 잔뜩 위축되어 있었다.
‘케야키자카46의 노래를 알게 되고 인생이 변했다’고 할 정도로 그룹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니부 아카리 같은 경우에는 곡의 안무 중에 1기생들과 서로 껴안는 부분에서 너무나도 긴장한 나머지 하루 종일 선배들에게 아무 말도 걸지 못 했을 정도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 1기생 선배님들 다 좋은 분들인걸!’
2기생 중 유일하게 ‘Re:Mind’ 촬영에 참가하며 한 발 앞서 1기생들과 관계를 구축하고 있었던 와타나베가 동기들을 위로하였다. 특히 카토 시호와는 선/후배 관계라기 보다는 그냥 사이 좋은 친구와도 다름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
와타나베가 카토와 친해질 수 있었던 계기는 사실 드라마 현장에서 있었던 사소한 잡담이었다.
‘아, 사이타마 출신이라 했지? 사실 나도 사이타마 출신이야’ 라는 한 마디 말이다.
그리고 얼마 후에 있었던 ‘케야카케’ 녹화 때, 50미터 달리기를 하게 되었을 때 역시 카토가 먼저 ‘같이 뛰자’고 말을 걸어주었고, 근소한 차이로 이긴 카토가 ‘역시 빠르네’라고 칭찬 해 주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 되었던 것이다.
이 날 달리기에 참가한 것은 한자/히라가나 합해서 총 38명. 그리고 두 사람의 기록은 카토가 전체 1위, 와타나베가 전체 2위를 했을 정도로 좋은 기록이었다. 그리고 이 경기를 기점으로 두 사람의 거리는 순식간에 확 줄어들게 되었다.
‘히라가나에 들어 와 줘서 고마워’
전체 그룹에서도 손꼽히는 운동신경의 소유자, 카토 시호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 때 까지의 기간을 연식 테니스에 바친 스포츠 소녀였다. 그녀는 같은 반 아이들 중에서 확 눈에 띄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연식 테니스 부 활동을 할 때는 두각을 나타내, 중학생 때는 도쿄 도대회에 단골로 출전 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었다. 당시에는 잘 하는 선배 뒤를 쫄쫄 쫓아 다니며 묵묵히 테니스 기술을 배우거나, 집에 가서도 매일같이 벽치기 연습을 할 정도로 테니스에 매진했다.
그리고 그런 타고난 성실함은 이후 히라가나 케야키에 들어 와서도 자주 발휘되었다.
그룹에 가입한 직후, 매니저가 별다른 생각 없이 ‘레슨 때 집중하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 카토는 그런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는 히라가나 케야키를 더 좋은 팀으로 만들고 싶어요. 내일 한 시간 일찍 와서 레슨하기 전에 자율연습 해도 될까요?’라고 대답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런 성실한 일면과 더불어 매사에 부정적이고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 역시 카토의 특징이다.
처음으로 잡지 취재를 하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10분 정도 가볍게 사진을 찍고 난 직후, 갑자기 카토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카메라 뒤에 서서 촬영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는 스태프들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지금 나 보고 못생겼다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다. 전국 투어 오사카 공연 때 ‘제복과 태양’의 센터에 지명되었을 때도 사사키 쿠미에게 ‘왜 하필이면 나지. 센터 같은 거 못 해’라고 울면서 호소했을 정도였다.
그런 카토에게 있어 아이돌로서 활동을 한다는 것은 ‘연약한 자신을 극복하’는 하루하루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카토이기에 2기생들이 들어오고, 와타나베가 홀로 촬영현장에 나타났을 때, 홀로 남겨진 와나타베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 역시 중학생때, 테니스 대회에 선배들과 함께 나가서 고독함, 그리고 부담감과 싸워가며 필사적으로 공을 쳤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카토는 예전의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한 와타나베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있을 수 있도록 일부러라도, 아무 의미 없는 시시한 이야기라도 걸려고 노력 했던 것이다.
와타나베 또한 카토와 닮은 구석이 많은 아이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10년간이나 농구에 모든 것을 바쳐왔고, 고등학생이 된 뒤로는 농구부 주장으로서 현 대회에 단골로 참가 해 왔던 그녀 역시 카토와 마찬가지로 ‘체육계 특유의 스토익함’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카토와 마찬가지로 본성은 고민이 많고 부드러운 성격이었던 것이다. 그런 두 사람이 서로 공명 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처음 2기생 모집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아무리 스태프들이 ‘이건 히라가나 케야키에게 있어 좋은 일이다’라고 설득을 해도 납득 할 수 없었던 카토. 하지만 애초에 노기자카의 팬이며, 아이돌을 좋아했던 그녀는 2기생들과 처음 만나, 인사를 한 그 순간 이미 그런 마음의 응어리는 싹 사라져 있었다.
‘이렇게 귀여운 아이들이 히라가나에 들어 와 줬잖아. 한자 선배님들의 언더 그룹이라는 소리만 들어 온 우리 히라가나에 들어 와 줘서 정말 고마워.’
드디어 20인 체재를 갖춘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20명이서 하나 되어 순조롭게 마쿠하리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맞이 할 것으로 보였던 그녀들 앞에는 아직도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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