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물/출판물-노기자카 + 182
- 2016.10.03 이지리 오카타의 일본 아이돌 - 노기자카 부분 1
- 2016.09.26 OVERTURE 008 - 키타노 히나코 'Nogizaka Calling'
- 2016.09.05 월간 엔타메 1610 - 이쿠타, 미리아, 아야네, 란제 대담
- 2016.09.02 BUBKA 1610 - 이노우에 사유리 인터뷰 1
- 2016.08.30 BRODY 10월호 - 시라이시 마이 인터뷰
- 2016.08.29 BRODY 10월호 - 이코마 리나 인터뷰
- 2016.08.17 EX대중 1609 - 사유링고군단 망상노트 1화
- 2016.08.16 월간 ENTAME 1609 - 사이토 아스카 인터뷰
- 2016.08.08 BUBKA 1609 - 이토 마리카 인터뷰
- 2016.08.04 BUBKA - 하시모토 나나미 인터뷰
- 2016.08.03 BUBKA 1609- 이코마 X 키타노 대담
- 2016.07.27 OVERTURE 007 - 사쿠라이 레이카 인터뷰
- 2016.07.18 AKB 신문 2016/07 - 이코마X히라테 대담
- 2016.07.14 BUBKA 1608 - 마츠무라 사유리 인터뷰
- 2016.07.04 월간 ENTAME 8월호 2기생 인터뷰
- 2016.07.04 별책 카도카와 - 아키모토 야스시 인터뷰 2
- 2016.07.01 스즈키 아야네 연재 - AyaNeAir
- 2016.04.20 별책 카도카와 vol.1 - 후카가와 마이 인터뷰
- 2016.04.05 사이토 아스카 연재 - '사이토 아스카, 쓰다' 1회
- 2016.04.05 스즈키 아야네 연재 - AyaNeAir
- 2016.04.01 노기자카46이라는 '희망' - 2장 머리말
- 2016.04.01 노기자카46이라는 '희망' - 1장 2절
- 2016.03.30 노기자카46이라는 '희망' - 1장 1절
- 2016.03.24 OVERTUER 006. 와카츠키 유미 인터뷰
- 2016.03.06 고교졸업 2016 - 호시노 미나미
- 2016.03.03 노기자카46이야기 - 외전 (책에선 19장)
- 2016.03.03 노기자카46 이야기 - 14 (책 ver.)
- 2016.01.18 노기자카46 이야기 (책 ver.) - 05
- 2016.01.05 다카야마 카즈미 단편 - 캐리 오버
- 2015.12.25 노기자카46 이야기 (책 ver.) - 04
노기자카 ①
‘시라이시 마이, 이쿠타 에리카, 와다 마아야, 하시모토 나나미를 대하는 방법’
노기자카46와는 ‘NOGIBINGO!’를 함께 하기 전에 이미 ‘노기도코’에 게스트로 출연 한 바 있었습니다. 방송국 관계자, 사무소 사람들과 ‘어느 레벨까지 괜찮은가’를 두고 상담을 하며 함께 출연 했었지요.
빙고에선 처음에 대기실에 잠입하는 기획을 하였으며, ‘노기도코’에선 ‘세미리얼 네오키돗키리 선수권’이라는 코너를 하였지요. 이 기획은 노기자카 멤버 각자가 스스로의 ‘네오키돗키리’를 프로듀스 해서 선보이는 기획이었습니다. 말 하자면 ‘자작자연’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렇다고 해도 ‘아가씨’ 캐릭터를 갖고 있는 노기자카 멤버들을 상대로 어느 수위까지 허용되는 지 판단하는 게 상당히 힘들었지요.
예를 들자면, 멤버들의 립스틱을 핥는다던가 입 안에 넣는다던지 하는 것도 망설이게 된다고 할까요.
일례로 시라이시 마이쨩이 쓴 종이컵에 대고 고속베로를 하려다가 순간 망설여져서 ‘아, 아무래도 못 하겠어’라고 이야기 하니 본인이 ‘이지리상이라면 괜찮아요’라고 이야기 해 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영 망설여져서 그만 두었지요.
그 뿐 아니라 녹화를 앞두고 사전에 ‘이런 건 안 됩니다’라고 주의를 받은 경우도 있었네요.
이쿠타 에리카쨩 같은 경우, 아버님이 사주신 발마사지기를 정말 소중히 여기고 있기에, 사전에 스태프를 통해 ‘이지리상에게 이 말은 꼭 전해 주세요. 제겐 정말 소중한 마사지기이니, 그 마사지기만은 지켜 주세요’라고 이야기를 해 오기도 했지요.
사실 이쿠타쨩 같은 경우에는 딱 봐도 ‘아가씨’라는 느낌이 있어서, 당시에는 버라이어티는 좀 안 맞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최근 들어선 정말 물이 올랐죠.
그 아이가 얼마나 재미있는 아이인 지 겨우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예상 못 했던 반응을 자연스럽게 하는 점이 정말 매력적이지요.
와다 마아야쨩 덕분에 새롭게 개발한 기술도 있습니다.
그녀가 15살 정도였던 때라 기억하는데, 와다쨩의 네오키돗키리를 하러 침실에 들어 가 보니, 침대에 스티머가 놓여 있더군요. 얼굴에 증기를 쬐게 하는 스티머 말입니다. 그래서 그 스티머를 틀고 나오는 증기에 대고 혀를 낼름거렸지요.
이렇게 하면 정작 본인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제 예능 풍조인 ‘아 좀 싫다’하는 느낌은 연출 할 수 있거든요.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정말로 ‘새로운 기술’을 제공 해 준 점, 그녀에게 감사해야 하겠지요.
사실 AKB 같은 경우에는 저 역시 ‘울릴’각오로 일에 임하고, 멤버들 역시도 백전연마랄까요. 엄청 단련이된 멤버들이 많기에 어떤말을 해도 괜찮다는 분위기가 있습니다만, 노기자카는 AKB와는 조금 달라요. 아직 ‘지켜주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나 할까요.
아무래도 그룹이 갖는 ‘이미지’를 멋대로 부수어 버려서는 안 되니까 말이죠.
다만, 저 나름대로는 그런 의식을 갖고 일에 임하는 데 비해, 멤버들이 저의 고속베로 같은 것에 익숙 해 져 버려서 어지간한 ‘페로페로’ 정도로는 반응을 해 주지 않는 상황이 되어버렸어요.
누가 한 말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심지어 ‘이지리상의 혀 움직임은 잘 보면 참 깔끔해요’라고 냉정하게 평가를 한 멤버도 있을 정도죠.
때로는 ‘이지리상은 실제론 좋은 사람’이라 이야기 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 마다 저는 ‘그건 영업방해니까 그만 해’라고 받아치곤 합니다.
노기자카의 ‘쿨 뷰티’, 하시모토 나나미쨩이 사진집을 냈을 때, 사인과 메세지를 적어 제게 준 적이 있어요. 그 메세지가 어떤 것이었냐 하면 ‘(방송이 아닌) 이지리상은 이 사진집을 보고 페로페로 하지 않으실 거란 거, 잘 알아요’라는 내용이었지요.
‘쿨’하달까요. 정곡을 찌르는 코멘트였지요.
노기자카46 ②
‘사이토 아스카, 이토 카린… 노기자카46의 멤버 전원의 이름을 외우다’
‘NOGIBINGO!’에서 MC를 맡게 된 뒤, 금세 멤버들의 이름을 외웠지요. 다들 이름표를 차고 있었기에 1, 2번째 녹화 때 집중해서 외웠습니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있었던 녹화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오늘은 실수로 이름표를 준비하지 못 했습니다’라며 스태프분이 사과를 하신 적이 있는데, 그 때 ‘괜찮아요’라고 답하고 녹화에 임하기도 했지요.
아, 물론 ‘풀네임’을 외웠지요.
예를 들자면 ‘사이토’는 사이토 아스카쨩, 사이토 치하루쨩, 사이토 유리쨩 세 명이나 있으니 말이죠.
아스카쨩, 최근 18살이 된 것으로 아는데요, 지금이야 센터에도 서서 활약을 하고 있지만, 처음 만났을 땐 나이도 14살였고, 정말 작아서 말 그대로 ‘어린 아이’라는 인상이 강했습니다.
딱 한 번 사이토 유리쨩을 다른 이름으로 부른 적이 있는데, 이건 정말로 두고두고 지금까지 미안한 마음 뿐이에요.
지금이야 모든 멤버의 이름을 절대 틀리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만.
노기자카는 현재 1기생이 24명, 2기생이 11명 있으며 새롭게 3기생이 12명 들어 왔지요.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작년엔 ‘케야키자카46’도 결성 되었습니다.
그룹 결성에 발맞추어 시작 된 ‘케야키라고 못 써?’의 MC는 제가 아닙니다만, 그룹 아이돌이 늘어나면 아무래도 이름이나 얼굴을 외우는 게 큰 일이지요.
이름을 외우는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토 카린쨩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사실 틀려도 별로 신경은 안 씁니다만, 가능하다면 인토네이션은 카린⤵이 아니라 카린⤴으로 해 주셨으면 해요. 기린⤴처럼요’라고.
글로 쓰고 나니 뭔 소린지 알기가 힘들긴 한데, ‘기린’을 발음하듯이 어미를 올리는 인토네이션으로 발음 해 달라는 얘기였죠.
노기자카46 ③
‘시라이시 마이를 울리고 니시노 나나세를 쉬게 하다?!’
초창기 ‘NOGIBINGO!’ 녹화 땐 항상 누군간 울고 있었지요.
딱히 울리려고 한 건 아니지만, 멤버들이 버라이어티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어쩌면 좋을 지 몰라’ 울어 버리곤 했어요.
디렉터 분께서도 미리 ‘이 아이는 버라이어티 요원이에요. 말도 잘 하는 편이니 잘 안 풀린다 싶으면 얘한테 말을 거세요’라던지 ‘이 아이는 선발 자리에 앉아 있지만, 말은 잘 못 해요’라는 식으로 알려 주셨고, 저 스스로도 노기자카 멤버들을 울릴 생각은 없었고 말이죠.
시라이시 마이쨩 같은 경우는 잘 울지 않는 아이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생각지도 못 한 때에 울어 버린 적이 있어요. 제스쳐 게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정답에 엄청 가까운 대답을 했음에도 스탭분이 오답 처리를 하고, 제가 그걸 보고 ‘아깝네!’라고 이야기 한 순간, 어지간히 분했는지 갑자기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저도 깜짝 놀라서 ‘에?! 거기서 울어?’라고 이야기 했는데, 그게 방송에 그대로 나간 적도 있지요.
정말 의외였던 게, 그토록 싫어하는 뱀을 얼굴 가까이에 갖다 대도 울지 않는 아이잖아요.
보통 여자 아이돌 얼굴에 크림포를 쏘면 울거나 벙찌거나 하는데도, 오히려 기뻐하며 ‘감사합니다!! 꼭 해 보고 싶었어요!!’라고 이야기 하는 아이니까 말이죠.
니시노 나나세쨩은 초기 앙케이트에다가도 ‘버라이어티가 힘들다’고 쓸 정도였던 데다가, 실제로 ‘니시노상은 어떻게 생각하나요?’라고 말을 건 것 만으로 눈물을 쏟을 정도였지요. 그래서 ‘니시노상, 무리해서 대답 할 필요는 없어. 특별히 싫은 주제로 녹화 할 때 두 번 쉴 수 있게 해 줄게’라고 이야기 한적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바로 그 다음 촬영때 다른 일이랑 겹쳐서 녹화에 참가를 하지 못 했어요.
그 녹화때 하필이면 2화 분량을 촬영했기에, 방송적으로는 정말로 ‘두 번 쉰’ 것 처럼 보이게 되어 버린 거예요. 방송을 보는 분 입장에서는 ‘정말로 2번 쉬었네. 그렇게 이 방송 녹화가 싫은 건가’라고 오해를 살만 했지요.
실제로 ‘버라이어티’를 힘들어하긴 했지만, 2회 분량을 쉰 건 정말로 우연히 그 때 일이 있어서 못 왔던 것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밝혀두고 싶네요.
그런 니시노 나나세쨩도 뱀이나 이구아나, 카멜레온을 보러 가는 로케 땐 엄청 신나서 말을 해 주었지요. 그래서 ‘(파충류) 좋아하니?’라고 물어보니 정말 눈부시는 미소를 띈 채 ‘네! 좋아해요!’라고 대답 하더군요.
노기자카46 ④
‘와카츠키 유미, 나가시마 세이라, 노죠 아미, 아키모토 마나츠, 이코마 리나…’
오랜 기간동안 노기자카와 함께 일을 해 오고 있는데다가, AKB처럼 자매그룹들이 여럿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말하자면 한 가족 같은 느낌을 받곤 합니다.
저보다 오랜 기간 함께 해 오고 있는 ‘바나나맨’은 ‘공식 오빠’, 저는 ‘공식 삼촌’이라 불리더군요.
다만, 가족에 가까운 느낌이라 해도 녹화가 끝난 뒤엔 바로 각자의 대기실로 돌아 가는데다가,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아요.
그렇기에 어떻게 보면 멤버들에 대해서 아는 점은 팬분들보다 적을 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와카츠키 유미쨩에게는 정말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앉은 자리가 저랑 가깝기도 해서 더욱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제가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그녀가 전부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곤 했어요. ‘이지리상, 아까 나온 얘기는 이러이러한 얘기예요. 노기자카는 이러이러한 이벤트를 하거든요’라는 식으로 말이죠. 정말로 똑부러지고, 멤버들 사이에서도 ‘남자답’다며 인기가 좋은 멤버입니다.
‘와카츠키가 정말로 남자라면 사귀고 싶다’고 하는 멤버들도 많을 정도예요.
그렇기에 저 역시 그녀에게는 ‘와카츠키’라고 말을 놓고 편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룹을 졸업 해 저희 사무소로 온 나가시마 세이라도 그렇고 버라이어티 담당이라 할 수 있는 노죠 아미쨩도 비교적 빠른 시간에 편하게 부르게 되었죠.
그렇게 하는 편이 방송에서 그녀들이 가진 순발력을 발휘하기 좋거든요.
아키모토 마나츠쨩 역시 진행에 도움을 많이 주었어요. 그녀는 머리가 정말로 좋은데다가, 자신이 정한 캐릭터를 흔들리지 않고 지켜나갈 줄도 알기에 방송을 진행하는 데 있어 정말 감사한 존재지요.
이코마 리나쨩 역시 곤란 할 때 기댈 수 있는 존재입니다. 마가 뜨거나 (방송 등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붕 뜨는 것) 할 때 반드시 치고 들어 와서 오디오를 채워 주거든요. 그래서 항상 내심 ‘고마워!’라고 이야기 하곤 하죠.
이코마쨩은 잠시 AKB 겸임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 그녀는 ‘AKB의 라이벌로 만들어 진 노기자카의 멤버가 어째서 AKB에 가야 하는 것인가’를 두고 많이 고민했어요.
실제로 그녀가 처음으로 AKB의 팬 앞에 서게 된 ‘세이부돔 악수회’ 때, 걱정이 되길래 찾아가서 ‘이코마 괜찮니?!’라고 물었는데, 웃으며 ‘긴장 되네요’라고 대답 하더군요.
팬들의 반응이 어떨 지 무서웠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새 멤버를 소개합니다! 이코마쨩입니다!!’라고 소개 된 순간, 팬분들이 세이부돔을 흔들 정도로 환호를 보내 주셨지요
그 모습을 보며 정말로 친척 꼬마를 보는 삼촌이 된 것 같았어요.
‘정말 잘 됐어. 받아들여졌구나. AKB 멤버들 사이에서 이코마쨩이 노래하고 춤 추고 있네!!’라며 혼자 기뻐하며 무대를 보았어요.
노기자카46 ⑤
‘마츠무라 사유리와 호시노 미나미의 변화, 변함 없는 다카야마 카즈미’
오랜 기간 함께 해 오다 보면 역시 멤버들의 성장이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죠.
예를 들어 마츠무라 사유리쨩 같은 경우, 초기엔 ‘엉덩이가 크다’며 놀림당하기 일쑤였지만, 최근엔 살을 엄청 뺐죠.
얼마나 말라버렸는 지, 걱정이 되어 ‘어디 아프다던가, 무리해서 살을 빼거나 하는 건 아니지?’라고 물은 적이 있는데, ‘네. 언제나 잔뜩 먹는걸요’라고 활기차게 대답 해 주었습니다. 건강하게 다이어트를 한 덕분인지 예전보다도 더 아름다워지는 모습을 보며 마치 아버지라도 된 것 처럼 괜히 제가 다 기쁘곤 해요.
호시노 미나미쨩은 정말 사고방식이 많이 바뀌었어요.
‘NOGIBINGO!’ 초창기엔 정말로 말 그대로 ‘어린 아이’였기에, 다른 멤버들이 항상 ‘그렇게 많이 먹으면 살 쪄’라고 이야기 할 정도였는데, 최근 2년 사이에 정말 ‘언니’가 다 되었어요. 생각하는 것 역시 많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바뀌었고요.
어떻게 보면 저는 어느 사이엔가 멤버들을 ‘보호자’ 입장에서 보고 있는 지도 모르겠네요.
‘시쿠지리 선생’을 보다가 다카야마 카즈미쨩이나 이쿠타 에리카쨩이 나오면 괜히 긴장해서 보곤 합니다.
다카야마 카즈미쨩은 ‘NOGIBINGO!’에서도 발군의 코멘트능력을 자랑하는 멤버인지라, 항상 저를 도와주곤 해요. 그녀가 코멘트를 하면 반드시 웃음 포인트가 생기거든요. 본인이 그런 걸 계산해서하는 지 아닌 지는 모르지만, 진지한 코멘트가 필요 할 땐 진지한 코멘트도 할 줄 알고, 그런 진지한 코멘트 뒤에 웃음도 남길 줄 아는 타고난 코멘테이터라 할 수 있겠네요.
최근 들어서는 이쿠타 에리카쨩도 자주 의표를 찌르는 멋진 코멘트를 남기곤 합니다. 아이돌임에도그런 의표를 찌르는 코멘트를 할 줄 아는 건 대단한 일이라 생각해요.
캡틴
사쿠라이 레이카의 책임감, 그리고 아키모토 선생님의 노래가 갖는 매력
‘NOGIBINGO!’는 노래가 들어가지 않는 ‘버라이어티 방송’이었기에 초창기에는 사실 그녀들이 노래 하는 모습을 보지 못 했었지요.
14년 2월, 요코하마 아리나에서 있었던 ‘버스데이 라이브’때 처음으로 그녀들의 라이브를 보았는데, ‘노기자카는 정말 스타구나!’라는 것을 실감하고 놀라기도 했습니다.
실수도 많고 덜렁거리는 모습 때문에 평소엔 ‘퐁코츠’라 놀림 받곤 했던 캡틴, 사쿠라이 레이카쨩이 멤버들을 딱딱 통솔하는 모습을 보며 ‘퐁코츠 같은 게 아니구나’라고 실감했었지요.
분명 다른 멤버들의 힘을 빌리는 타입의 캡틴일 지는 모르지만, 그녀 자신 역시 ‘내가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강하게 갖고 있어요.
실제로 캡틴이라는 입장은 여러 모로 힘들 거라 생각하거든요. 캡틴이 선발에서 떨어져서도 안 되고 말이죠. 그런 여러 압박감을 견디며 분투학고 있는 겁니다.
바로 그 ‘요코하마 아리나’는 정말로 캡틴을 비롯하여 모든 멤버들이 눈부시게 빛나는 무대였습니다. 화장실에 갔을 때 우연히 바나나맨의 시타라군과 만났는데, ‘멤버들 정말 대단하네’라고 이야기 하니, 시타라군이 ‘그렇죠. 다들 스타예요’라고 하더군요. 거기에 대해 ‘그러게. 스튜디오에서 녹화 할 때는 몰랐어.’라고 대답 할 정도로 감동을 받았습니다.
물론 그 뒤로도 스튜디오에서 만나면 그 때의 감동은 어디갔나 싶을 정도로 평소와 다름 없이 대하고 있습니다만.
노기자카의 노래는 가사도 정말 좋아요.
제가 10대 때, 노래는 즐겨 들었지만 딱히 그 곡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지 까지는 신경쓰지 않았거든요. 특히 엔카 같은 경우, 어떤 의미인 지 깊이 생각 한 적도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언제였는 지 확실히 기억은 안 나는데, 노기자카의 노래가 나오는 것을 바라보며 아래에 흘러나오는 가사를 무심코 읽다가 ‘와, 하나같이 가사가 주옥같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새삼 아키모토 선생님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죠.
노기자카 멤버들 역시 ‘정말 좋은 곡을 받는다’고 감사하고 있는데, 아이돌로서 ‘좋은 곡’을 받을 수 있다는 건 정말 축복받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선발과 언더
1기생 x 2기생, 선발 x 언더의 대항의식
노기자카는 멤버들이 다들 친하기에 얼핏 보기에는 라이벌심 같은 것은 없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자신있게 그렇다고 단언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각자가 말은 안 해도 내심 생각하고 있는 것도 있을 것이고, 그런 게 없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니까요.
선발과 언더의 격차가 확실히 나뉘어 있고, 선발 멤버가 아니면 TV에 그다지 노출되지 않으며, 싱글 타이틀 곡을 부를 수 없기에 경쟁심이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1기생과 2기생 사이에도 분명 경쟁심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방송 초창기에 1기생과 2기생 대결 기획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스태프분께서 ‘이번에는 노골적으로 2기생 편을 들어달라’고 이야기 하셨지요. 그래서 그대로 진행을 했더니, 1기생 멤버들이 진심으로 제가 2기생 편을 든다고 생각하고 울상이 되더군요.
그 때, 나가시마 세이라가 ‘2기생보다는 언더’라고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나중이 되어서야 ‘2기생 편만 들지 말고 언더 멤버들에게도 스포트라이트를 비춰 달라’는 메세지가 담겨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발 멤버들은 주목을 받지만, 언더멤버들은 방송 출연조차 적었으니까요. 그런 상황에서도 언더 멤버들이 얼마나 필사적으로 노력 하는 지를 잘 아는 나가시마 였기에 그런 말을 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MC를 하는 NOGIBINGO!는 다른 방송들에 비해 언더 멤버들의 출연이 많은 편이기에, 저 역시 가급적이면 언더멤버들에게도 기회를 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14년부터 ‘언더 라이브’가 시작되었고, 그 라이브가 ‘대단하다’는 평이 팬들 사이에 퍼져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언더 라이브를 보기 위해 모이기 시작했지요.
Zepp 롯폰기 블루 시어터라는 900명가량을 수용하는 라이브 하우스를 가득 채운 뒤에는 아리아케 콜로세움에서 8000명을 모으고, 일본 무도관 공연마저 실현 시켰습니다.
15년 12월에는 4일 연속으로 일본 무도관 공연이 잡혔는데, 무려 첫 이틀간은 언더 라이브였지요!! 아리아케도 그렇고 무도관도 그렇고, 언더 멤버들의 파워가 대단했고, 객석 분위기도 최고였습니다. 모든 멤버가 빛났지요.
노기자카 멤버들을 보며 느끼는 것은 ‘방송 초기와 비교 해 봐도 전혀 닳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홍백에 나가고, 드라마에도 나가고 하며 여러 경험들을 했음에도 스튜디오에서 NOGIBINGO의 녹화가 시작되면 수년 전, NOGIBINGO를 갓 시작했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니시노 나나세쨩은 그 때나 지금이나 ‘그 얘기, 저에게 던지지 말아 주세요’라는 아우라를 내뿜고, 능글맞게 다가오지 않는다던가, 이코마 리나쨩이나 와카츠키쨩은 예나 지금이나 믿음직한 존재이지만 자기 차례나, 자기가 필요할 때가 아니면 쓸 데 없이 나서지 않는다던가.
그런 면에서 보자면 기본적으로 예나 지금이나 전체적으로 소극적인 면이 있다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네요.
저 역시 앞으로 그녀들이 어떻게 성장 해 나갈 지 지켜 볼 생각입니다.
개중에는 저랑 40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아이도 있기에, 삼촌이나 큰아버지 간병한다는 느낌으로 접해 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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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gizaka Calling
Part 1. 키타노 히나코와 ‘패션’
수 많은 멤버들이 패션잡지의 전속모델로 활약중인 노기자카46.
그 중에서도 ‘캐주얼’ 패션을 대표하는 멤버가 바로 키타노이다.
그녀의 패션에 대한 고집과 수집벽을 파헤쳐본다.
키타노 : 이번 취재에는 각기 다른 3패턴의 패션을 선보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사실 평소에는 캐주얼 계열 옷이 많거든요. 그 중에서도 특히 구제풍 옷을 좋아해요. 하지만 정말 구제옷은 못 입거든요. 결벽증까지는 아니지만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썼던 것을 쓰는 것도 안 좋아해서요. (웃음)
중학생때 농구부였는데요, 다른 아이들이랑 같은 농구화를 신는 게 싫었어요. 하지만 집 근처 신발가게에서 사면 아무래도 종류가 정해져 있잖아요. 그래서 엄마 아빠한테 한 소리 들어가면서 일부러 인터넷으로 샀어요. (웃음) 다른 사람들이랑 같은 것을 싫어하는 건 아무래도 장녀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노기자카에 들어 와 1년 정도는 흰 원피스만 입고 다녔어요. 하지만 카린이 ‘안 어울린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그 뒤로는 카린이 추천 해 준 브랜드에서 옷을 샀어요. 의외로 다른 사람 말에 휩쓸리거나 세뇌당하기 쉬운 타입이거든요. (웃음) ‘나 다움’을 내보여도 된다는 것을 깨달은 뒤로는 다른 멤버들이 잘 안 사는 브랜드를 찾아서 옷을 사곤 해요. 애초에 다른 멤버들이 어떤 옷을 입는 지 잘 안 보고요.
다만 모험은 하지 않는 주의이기에 한 번 마음에 드는 가게를 찾으면 그 가게만 가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마리카상에게 코디를 부탁드려보고 싶어요. 마리카상은 다른 사람이라면 쉽사리 소화하기 힘든 표범무늬 옷 같은 것도 멋지게 소화하시잖아요. 그런 센스가 정말 부러워요.
‘Zipper’의 전속모델이 된 뒤 패션에 대한 의식이 바뀌었어요. 레슨복장을 그대로 입은 채 집으로 가지 않게 되었다던가. (웃음) 사는 옷들도 ‘Zipper’스타일인 옷들 위주로 사게 된 것 같고요. 이전까지는 사실 여성 팬들이 많지 않았는데, 그 이후로 많이 늘었고요. 연상 여성 팬분들께서 악수회에 오시는 경우도 많이 늘었어요. 촬영때 입었던 브랜드의 옷들에도 도전 해 보고 싶지만, 아직은 용기가 필요하네요.
패션에 있어 애착이 있는 소품들은 베레모와 구두에요. 베레모는 평소에도 즐겨 쓰지만, 특히 가을 겨울 그라비아 촬영 때는 베레모를 쓰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코디네이트를 할 땐 먼저 구두를 정하고 아래에서 위로 맞추어 가는 경우도 있고, 먼저 베레모를 고르고 위에서 아래로 맞추어 가는 경우도 있어요. (웃음)
엄마는 ‘살 지 말 지 망설여진다면 사렴’이라고 말씀 하시곤 해요. 안 사면 나중에 후회 할 가능성도 높고, 그 옷에 어울리는 코디네이트를 하면 될 일이니 실제로 사놓고 나중에 손해보는 경우는 없거든요. 반드시 언젠간 그 옷을 살릴 기회가 있고요. 아, 물론 옷 살 땐 제 돈으로 사요. (웃음) 그러다 보니 방 안은 온갖 소품들로 가득하고요.
아, 한 가지 아쉬운 건 딱 한 번만 신거나 한 신발들을 줄 상대가 없다는 거예요. 1기생 선배님들께 드리는 건 좀 이상한 얘기고, 2기생들은 나이가 비슷한데다가 케야키자카 멤버들은 대화를 제대로 나눠 본 적도 없다보니… 언젠가 3기생들에게 신발을 물려주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Part 02. ‘Zipper’와 키타노 히나코
개인 일 중에서도 키타노가 빛날 수 있는 장소를 제공 해 주는 ‘Zipper’.
그녀는 ‘Zipper’에선 대체 어떤 표정을 보여주고 있을까.
카네코 요코(‘Zipper’ 편집장)
키이쨩은 평소 보여주는 천진난만하고 백치미 있는 모습(미안해요)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센스가 있어요. ‘Zipper’의 전속 모델로 발탁하게 된 것 역시 그런 점을 평가 한 것이었고요.
‘Zipper’같은 스트리트계열 여성 패션잡지가 원하는 ‘표정’은 웃는 얼굴도, 정색한 얼굴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 밸런스가 절묘하게 잡힌 표정이기에 ‘센스’가 없으면 애초에 모델로 활약 할 수 조차 없지요.
하지만 키이쨩은 처음으로 촬영을 했을 때에도 그런 절묘한 표정을 멋지게 표현 해 냈어요. 그리고 그런 ‘센스’가 그녀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였지요. 걸리한 복장은 물론이고 개성적인 복장도 잘 소화 해 내기에 어떤 기획이건 믿고 맡길 수 있다는 것 역시 매력적이고요.
아, 그리고 정말 노력가라는 점도. SPRING호 촬영 때, 엄청 추운 날에 밤 늦게까지 로케를 했기에 스탭들조차도 추워서 떨고 있었거든요. 그런데도 키이쨩은 여름 옷을 걸친 채로 아무런 불평 불만 없이 끝까지 웃으며 노력 해 주었어요. 그 모습을 보고 스탭들은 입을 모아 ‘근성이 있다’고 감탄 했지요. 동시에 때로는 그 귀여운 목소리로 아이돌 답지 않은 4차원스러운 발언을 한다던가 하는 일면도 있어, 촬영 현장을 즐겁게 해 주는 무드 메이커이기도 하기에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고 있답니다.
신죠 사유리 (헤어메이크)
키이쨩이랑은 보통 메이크업을 하면서 시덥잖은 얘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 때로는 곁에 앉아 있는 다른 멤버들에게 장난을 치거나 하기도 하며, 언제나 현장의 분위기를 떠들썩하고 즐겁게 만들어 줍니다. 저 역시 그런 모습을 보며 힘을 얻곤 하고요.
하지만 동시에 진지한 얘기를 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그 때마다 심지가 굳은 아이라는 것을, 항상 많은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아, 그리고 멤버들이나 스태프분들께서 사시이레를 주시는 경우가 많거든요. 메이크 업 같은 경우에는 일 하는 중에는 손을 뗄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땐 키이쨩이 메이크 담당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일일히 챙겨주곤 해요. 어린 아이처럼 솔직하고 다정한 아이랍니다.
Part 03. MD 키타노와 멤버들
우주형제, 운명 공동체, 시오아이스, 호리키타콤비…
수 많은 ‘특별한 인연’들을 매고 있는 키타노. 멤버들은 그런 키타노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앙케이트 내용
Q1 : 키타노 히나코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Q2 : 키타노와의 에피소드
Q3 : 키타노의 장점/단점
Q4 : 키타노에게 기대하고 있는 점은?
Q5 : 키타노에게 한 마디.
이토 쥰나
1 : ‘강아지’. 히나코는 완전 강아지예요.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 하며, 항상 시끌벅적하게 뛰어 다니는 것 하며, 폴짝폴짝 뛰는 모습 하며… 정말 귀여운 강아지랍니다. (웃음)
2 : 에피소드라… 정말 많지만 그 중에서 하나 고르자면, 예전에 호텔에서 같은 방을 쓴 때 얘기를 해 볼게요. 제가 먼저 목욕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욕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선 제가 목욕하는 모습을 보며 꺄~ 꺄~ 소리 지르더라고요. 이 얘기는 요즘도 자주 얘기하긴 하지만요.
3 : 장점은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줄 안다’는 점. 단점은 ‘웃음 소리가 시끄럽다’는 점.
4 : 지금도 존경할만한 부분이 많이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라이브에 진지하게 임하는 자세가 대단합니다! 앞으로는 더 대단해 질 거라 생각해요!!
5 : 히나코!! 최근 들어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선발에서 활약하는 히나코의 모습이 정말 빛나보이고,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지 잘 느껴져서 쥰도 더 노력해야 하겠다고 생각하게 돼! 밥 먹으러 가자! 러브!!
사가라 이오리
1 : ‘분주함’. 언제나 항상 고민하고 있고, 감정 기복이 격해요. 그리고 제 곁에 있을 땐 항상 끊임없이 뭔가 얘기하고 있거든요.
2 : 제가 복귀해서 처음 스테이지에 서게 되었을 때, 전날 밤 늦게까지 함께 춤 연습을 해 주었어요. 그 때 히나코가 없었다면 전 첫 무대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 한 채 멍하니 서 있기만 했을거라 생각하기에, 히나코에겐 정말 고마운 마음 뿐이에요.
3 : 장점은 ‘기운찬’ 것과 ‘항상 미소 짓는’ 점. 단점은 ‘목소리가 너무 큰’ 점.
4 : 인기도 많고, 2기생을 이끌어주는 존재이기에, 너무 부담은 갖지 말고 앞으로도 선배들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앞으로 나아가 주었으면 해요!
5 : 항상 고마워. 놀러 가기로 한 약속, 밥 먹기로 한 약속들을 잔뜩 했는데 빨리 갈 수 있으면 좋겠다! 내게 있어 히나코와 나는 ‘떨어지고 싶어도 떨어 질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해. 고민거리가 있다면 언제건 이야기 해 줘! 앞으로도 잘 부탁해. 사랑해!
테라다 란제
1 : ‘항상 기운찬 사람’ 풀 죽는 일이 있어도 결국 잊고 부활 해 내는 이미지예요. 그저 단순히 ‘잊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의미로 ‘플러스 사고’를 갖고 있기 때문에 잊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2 : 언더 멤버에 있을 땐 대칭에 서게 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자주 이야기를 하곤 했어요. 예전에는 제가 승격이 늦었기에 정규멤버와 연구생으로 나뉘거나, 승격 한 뒤로도 저는 3열에 서는 경우가 많았기에, 사실 키타노는 동기 중에서도 거리가 있는 존재였어요. 개인적으로는 12번째 싱글 언더곡인 ‘헤어질 때 더 좋아져’에서 키타노가 프론트에, 그리고 저는 3열에 서게 되었을 때 ‘반드시 앞질러 줄거야’라고 마음 먹기도 했어요. 그 다음 싱글 언더곡에서 자리가 대칭이 된 뒤로 라이브 때 세세한 부분 조정을 위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연락을 주고 받게 된 것 같아요.
3 : 단점 ‘시끄러운’ 점, 장점 ‘시끄러운’ 점. 키타노의 단점은 장점이고, 키타노의 장점은 단점이기도 해요.
4 : 저 스스로도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네거티브한 멤버들이 많은 노기자카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태양’같은 아이이기에, 앞으로도 지금 이대로 ‘태양’같은 밝은 부분을 잃지 않았으면 해요.
5 : 한 마디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할 말은 많은데도 막상 말 하려 하니 정리가 잘 안 되네… 각자 목표를 높게 잡고, 절대로 포기 하지 말자. 앞으로도 잘 부탁해.
와타나베 미리아
1 : ‘태양’. 제가 개인적으로 울적해 하고 있을 때, ‘미리아 기운내’라고 이야기 하며 과자를 세 개나 가져다 주었어요. 제 기분을 알아 채 준 그 다정함이 정말 고마웠어요.
2 : 둘이 있을 땐 신나서 동영상을 찍거나 음악을 틀어놓고 막춤을 추곤 해요.
3 : 장점 ‘가족을 생각하는’ 점, 단점은 ‘메일을 보내도 무시하는’ 점.
4 : 노래.
5 : 앞으로도 형님으로 모시겠어요!!
사이토 아스카
1 : 귀여운 아이. 얼굴이나 분위기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귀엽달까요. 귀여운 것도 ‘어린 아이’에게서 느껴지는 귀여움이에요.
2 : 예전 얘기이긴 한데, 지방에 일을 하러 가서 호텔에 묵었을 때 처음으로 같은 방을 쓰게 되었는데, 그 때 밤을 새워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리고 키타노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지요. 사이가 좋아지게 된 계기가 이 일이었고요.
3 : 장점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 할 줄 아는’ 점, 그리고 ‘솔직한’ 점. 단점은 ‘힘들 때도 웃는’ 점.
4 : 노기자카의 분위기를 바꾸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5 : 언제나 생각 해 온 거지만, 수박 너무 많이 먹어.
나카모토 히메카
1 : ‘새로운 자신’, ‘새로운 포지션 확립’ 등 언제나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 아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룹 전체적으로 봐도 큰 변화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해요.
2 : 작년 여름, 키타노가 처음으로 언더 프론트에 발탁 되었을 땐 ‘내가 키타노를 받쳐 줘야지’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로부터 반년이 지나고 제가 처음으로 언더 센터가 되었을 때 가장 힘이 되어 준 것이 키타노였어요. 올 해 여름 싱글에서 함께 선발에 들어 간 것도 제게 있어서는 의미가 커요. 그녀는 제게 있어 마음이 든든해 지는 아군인 동시에 가장 두려운 존재이기도 합니다.
3 : 장점은 ‘주변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 주는’ 점, ‘멤버들의 마음 속에 살포시 들어 갈 줄 아는’ 점, ‘스스로의 의지를 관철 해 낼 줄 아는’ 점, ‘다른 사람들을 주의 깊게 보고 있는’ 점, ‘눈부신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점. 단점은 ‘서투른’ 점, 키이쨩의 약한 부분은 저의 그것과도 비슷해서 공감 할 수 있기에 뭐라 할까요… 보고 있으면 조마조마 해 져요.
4 : 키이쨩 본인은 언제나 현재에 만족하는 타입은 아니라 생각하기에. 주변에서 뭐라 하건 구애되지 않고 점점 변신 해 갈 것이라 생각해요.
5 : 근본적으로 뜨거운 무엇인가를 가슴 속에 품고 있기에,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다음 날에는 훌훌 떨쳐 버리고 오는 키이쨩의 그런 모습이 정말 부러워. 언제까지고 반짝반짝 빛나줘. 항상 고마워!!
Part 04. ‘정말로 사이 좋은 가족’
블로그 등을 통해 꾸준히 소개 된 키타노가의 일화.
그런 ‘가족애’는 어떤 식으로 쌓여 온 것일까.
- 키타노가는 정말로 가족간에 사이가 좋은 것 같아요.
키타노 (이하 ‘키’) : 엄마가 ‘이렇게 좋은 아빠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말씀 하실 정도니까요. 쉬는 날이면 항상 어딘가에 데리고 가 주셨어요. 봄이면 꽃구경, 운동회 때면 항상 큰 도시락을 들고 음료수를 잔뜩 사서 와 주셨고요.
- 좋은 가족이네요.
키 :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보고 내 행동을 고친다’는 게 중요하단 말을 자주 하시긴 했지만, 혼을 내시거나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물론 제가 괜히 심술나서 부모님 말씀을 듣지 않거나 하는 경우는 있지만요. (웃음) 저를 존중하면서도 자유롭게 길러 주셨어요. 학교 같은 데에서 자주 괴롭힘을 당하곤 했기에, 부모님만은 저를 부정하지 않으셨어요. ‘히나코는 히나코답게 지내면 돼’, ‘학교 가는 게 싫다면 안 가도 된단다’라고 말씀 해 주셨죠. 제가 네거티브한 이야기를 해도 항상 ‘그런 거 신경 쓰지 말’라고 이야기 해주셨어요. 거기서 부모님이 ‘선생님이랑 상담 해 보자’라고 하셨으면 더 위축되었을텐데, 엄마가 그렇게 가볍게 말씀 해 주시는 것을 보고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그렇게 힘들진 않을 지도 몰라’라고 생각 할 수 있었죠.
하지만 우연히 밤중에 엄마랑 아빠가 이야기 나누는 것을 듣고 ‘내가 이지메를 당함으로 해서 가족들마저 힘들어하는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때 부터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서건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하지만 한 편으로는 그 때부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어서, 그런 성향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요.
- 그 당시, 키타노상에게 있어 어머니란 어떤 존재였나요?
키 : 항상 제게 ‘도망칠 곳’을 만들어 주셨어요. 그 덕분에 저 역시 마음의 여유를 조금이나마 갖고, ‘너무 필사적으로 발버둥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 할 수 있었죠.
- 하지만 그런 어머니는 노기자카에 들어가는 것을 반대하셨다고 하던데요.
키 : 제가 버린 응모용지를 친구가 주워서 응모 한 게 1차심사를 통과했었죠. 1차심사를 통과했다는 통지가 집에 왔을 때, 엄마가 엄청 화를 내셨어요. 엄마 나름대로는 ‘눈에 띄는 일을 했다가 이지메가 더 심해지거나,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일을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마음이었다고 해요.
아빠는 밴드를 했었기에 제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직업을 갖는 데 대해 그다지 부정적이지 않았고, 오빠는 그냥 ‘올~ 대단한데!’ 정도의 반응이었지만요. (웃음) 결국 엄마는 ‘오디션은 사회 견학이라 생각하고 해 보라’면서 응원 해 주셨지만, 2차 심사, 3차 심사에 통과 하면서 매번 ‘그만 둬야지?’ ‘그만둘거지?’라고 확인 했어요.
- 이제는 가족들이 노기자카 활동을 응원 해 주시죠?
키 : 기본적으론 무슨 일이건 칭찬 해 주세요. 아빠는 제가 나온 라디오를 찾아 듣곤 ‘이 부분이 좋았어’ 라던지 ‘이번엔 성과를 냈구나’라고 라인을 몇 번이나 보내기도 해요 (웃음) 라이브를 보러 오셔선 제가 춤 추는 모습을 보며 ‘좋았다’고 해주거나, 블로그에 댓글을 남겨 주거나 하기도 하죠.
- 활동을 하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때 가족들에게 화풀이 하거나 하나요?
키 : 요즘은 조금 그럴 때도 있어요… ‘고마워’라는 말이 점점 하기힘들어 질 때가 있어요. 엄마가 말을 걸 때 세 번 정도 무시하면 ‘지금은 기분이 안 좋구나’라고 눈치 채고 말을 안 걸어 주는데, 아빠는 끈질기게 ‘오늘은 무슨 일을 했냐’고 묻곤 하기에 ‘아 짜증나!’라고 화를 내 버리곤 해요. (웃음)
- ‘치네’는요?
키 : 아무리 그래도 그 말은 더 이상 안 해요. (웃음)
- 작년 3월에 쓴 블로그에 ‘부모님께 내가 평범한 고교 생활을 보내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썼었죠.
키 : 동생이 내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든요. 그래서 그 얘기를 하다가 엄마가 ‘히나코가 졸업식에서 노래 하는 모습도 보고 싶었다’고 하시기에… 평범한 부모들의 행복을 빼앗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면목이 없었어요. 자녀의 졸업식이라는 거, 부모들에게 있어서 소중한 추억이라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제가 현재 있는 곳은 ‘끝’이 없다고나 할까요… 그런 곳이다 보니, 저는 노기자카에 들어 온 고2때에 멈춰 서 있고, 저희 부모님 역시 저와 마찬가지로 저의 고 2때에 멈춰 서 계시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작은 있지만 끝이 없었다고 할까…
- 그 대신 노기자카에서 그만큼 만회해야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나요?
키 : 공부 이외에는 무슨 일이건 최고를 목표로 노력 해 왔기에, 노기자카에서도 최고가 되어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싶어요!
Part 05. 키타노 히나코와 ‘과거’
파란만장한 청춘시절을 보내 온 키타노.
그 ‘불합리한’ 세계에서 뛰쳐 나올 생각을 하게 해 준 것은 바로
노기자카46의 2기생 오디션이었다.
유소년기 : 태풍이 온 날에도 밖에서 놀 정도로 활발한 아이었어요. 외발 자전거를 탄 채 쥬스를 마시곤 했지요. 그만큼 다치기도 많이 다쳤고요. 엄마랑 백화점에 가서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천정을 보고 누워서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큰 소리로 울곤 했기에 ‘대걸레’라고 불리기도 했어요. (웃음)
초등학교 : 초등학생이 된 뒤엔 탁구부나 칼라가드(기수단)에 들어갔어요. 주말이면 아빠의 코치 아래 미니 농구를 하기도 했고요. 3학년때 ‘어떤 남자아이가 키타노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퍼진 뒤, 한 여자아이에게 ‘너 학교에 치마 입고 오지 마’라는 말을 듣기도 했죠. 그리고 그 날 이후로 거의 매년 이지메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 중학생 땐 3년동안 농구부였어요. 제 2쿼터랑 4쿼터에 출전하는 존재였기에 즐거웠지요. 다만, 중학생 때도 이지메는 계속되었어요. 주눅들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준 게 오히려 반감을 샀던 것 같아요. 중 1때는 그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만으로 따돌려졌고, 중 2때는 이지메를 당하던 아이를 감싸주었다는 이유로 이지메를 당하게 되었지요. 물론 그렇게 되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당시에는 정의감이 강했거든요. 제일 힘들었던 건 중 3때였어요. 지금 생각 해 보면 웃음이 나지만요. 당시 제게 있어서 한 숨 돌리는 수단은 구멍가게에서 불량식품들을 잔뜩 사는 것 정도였어요. 2000엔 어치 산 적도있을 정도예요. (웃음) 1만엔짜리를 내서 가게 할머니가 곤란해 하신 적도 있고요.
고등학교 : 같은 지역 고등학교로 가면 이지메를 당할 것은 뻔했기에 일부러 사립 학교로 들어갔어요. 하지만 거기서도 따돌림을 당했기에 ‘이젠 됐어’라고 포기하고 혼자 행동하게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학교에 가 보니 제 실내화가 쓰레기통에 들어 가 있더라고요. 당시 담임 선생님이 신참 선생님이셨기에 폐를 끼치는 것도 죄송해서 ‘범인 안 찾으셔도 된다’고 했어요. 너무 유치했거든요. 노기자카46의 오디션을 받은 이유 중, ‘이런 좁은 세상, 이젠 싫어’라고 생각했던 것도 있어요.
Part 06. 키타노 히나코와 ‘가족’
앞서 이야기 한 바 있는 ‘가족애’.
바로 그 ‘가족’이 이야기하는 키타노의 다정함이, 밝음이, 신비함이 묻어나는 에피소드들.
여동생이 언니에 대해
언니가 초등학생이던 때, 엄마한테 혼나고 가출을 하려 했던 적이 있어요. 저는 그런 언니를 막으려고 언니가 짐 싸는 모습을 옆에서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지요. 그런데 언니가 갑자기 종이 봉투를 들고 책장 앞에 서서는 ‘짱구는 못말려’ 만화책을 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리곤 ‘가출한다’며 뜬금없이 짐을 들고 2층으로 올라 가선 ‘오늘부터 여긴 내 집이야!’라고 이야기 했지요. 이 에피소드는 지금도 가장 마음 깊이 각인 되어 있답니다.
오빠가 여동생에 대해
히나코는 이해하기 힘든 감성을 갖고 있어요. 그 중 하나가 시가라키야키(시가현 코가시 일대에서 만들어지는 도자기. 주로 오브제로 사용되는 너구리상이 유명하기에, 그 너구리상을 나타내기도 함.)에 대한 반응이지요. 일반적으로 집 현관 같은 데 세워두는 너구리상 말입니다. 고 1때, 가족끼리 외식으로 하러 나갔었는데 길 도중에 있던 시가라키야키를 본 히나코가 갑자기 고개를 홱 돌리고 고개를 푹 숙이더군요. 왜 그러냐 물으니 ‘너구리가 무섭다’고. 아까 본 시가라키야키 이야긴가 싶어 휴대전화로 시가라키야키 사진을 검색해서 보여주니 ‘무리무리무리무리’를 연발하며 전력으로 거부반응을 보였지요. 이후로 몇 번이나 방심하고 있을 때를 노려 시가라키야키 사진을 보여준다거나, 휴대전화 배경을 시가라키야키로 바꾸어 주곤 했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꽤나 진지하게 화를 내기에 시가라키야키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만. 이상 제가 ‘히나코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감성을 갖고 있다’고 느낀 이야기였습니다.
어머니가 딸에 대해
중학생 때 부활동이 끝난 뒤 돌아오는 길에 길고양이를 세 마리나 데리고 왔어요. 고양이들은 하나같이 상당히 쇠약해 져 있었기에, 바로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서 건강 해 질 때까지 히나코 스스로 돌보아 주었습니다. 집에는 칩(애견)이 있었기에 고양이를 키울 수 없어, 결국 새로운 주인을 찾아주게 되었을 때에도 먼저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 결국 새로운 입양처를 찾아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었지요. 앞으로도 그런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는’ 히나코의 모습은 변함 없었으면 해요.
아버지가 딸에 대해
고 1때, 경음악부의 친구와 밴드를 결성해서 supercell의 ‘사요나라 메모리즈’를 연습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저 역시 예전에 밴드를 했던 경험이 있기에 뭔가 도울 일이 없나 싶어 악기를 준비하고 연습중인 스튜디오에 들어갔지요. 하지만 세팅을 해도소리가 나오지 않아 제가 초조해 하는 모습을 보던 히나코가 마이크를 들고 와선 갑자기 개인기를 하기 시작했지요. 그 덕분에 분위기도 풀리고 다들 즐겁게 웃을 수 있었지요. 결국 무사히 설정 해 둔 악기도 소리가 나게 되고, 밴드 연습도 즐거운 분위기에서 끝이 났습니다. 정말 즐거운 하루였지요. 딸과 함께 보낸 제 청춘의 한 페이지라고 할 수 있겠네요.
Part 07. 키타노 히나코와 ‘노기자카46’
이번 싱글에서 선발에 발탁 된 키타노가 이야기 하는 언더와 선발.
그녀가 선발에서 본 경치와 갈등.
그리고 거기서부터 도출된 ‘대답’이란?
- 15번째 싱글에서 선발에 뽑히고, 투어까지 끝낸 지금 느끼는 점이 있다면?
키 : 음… 선발에 든 뒤로 스스로의 무력함을 절감하고 있어요.
- 그렇게 비관 할 것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키 : 선발에 엄청 들고 싶었고, 실제로 든 뒤엔 정말 기뻤기에 선발로서 지금까지 해 온 것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지만…. 아무 결과도 남기지 못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 어휴 그럴리가요. 라이브나 음악 방송에서 키타노상을 볼 때마다 즐기고 계시다는 게 느껴지는데요.
키 : 음… 그저 ‘즐기고만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라고 생각하거든요. 8번째 싱글때 처음으로 선발에 들었을 땐 완전히 마이너스였었고. 이젠 평범하게 일을 소화 해 낼 수는 있게 되었지만, 딱히 선발에 남을 정도로 성과를 남긴 것은 아닌 것 같아요.
- 다른 멤버들이랑 비교해도 손색 없는 활약이었다고 생각합니다만…
키 : 정말로 더욱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기에, 그러기 위해서라도 절대적인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어요. 언더에 있을 땐 선발에 대해 좀 삐딱하게 보기도 했지만 정작 선발로서 활동 한 뒤로는 선발이 왜 선발인지 알게 되었고요.
- 구체적으로 말씀 해 주세요.
키 : 프로로서의 의식이 높아요. 아무리 스케줄이 아침 일찍이라 해도, 아무리 바빠도 맡은 일은 확실히 해 내는 모습을 보고 ‘이게 프로구나’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죠. 스태프분께서는 ‘그걸 알게 된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해 주셨지만, 전 그것만으로는 싫거든요. 물론 ‘그렇게 위치에 연연하지 마라, 아무리 언더 3열에 있어도 빛이 나는 사람은 결국 눈에 띄게 되어 있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그런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연연하고 싶’거든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아이돌’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앞 쪽에서 춤을 추어야 하고요. 센터곡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컴플렉스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상 에투아르에서 센터곡이 없는 건 저 뿐이고요. 노기자카의 대단한 점 중 하나가 ‘많은 멤버들이 센터에 설 수 있’다는 점이라 생각하거든요.
- 선발 단골 멤버 중에도 센터곡이 없는 멤버들이 꽤 있을텐데요.
키 : 그런 얘기가 아니예요…. 음… 아무래도 제가 너무 연연하는 게 안 좋은 걸까요. 이런 집착을 버리는 게 나을까요. 언더 라이브를 할 땐, 역시 집착을 갖는 편이 좋았던 것 같거든요. 하지만 선발에 들어 온 뒤로 입장도, 환경도 바뀌어서 지금은 단순히 언더에서 쌓아 온 자신을 내보이는 것 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 언더에서 프론트를 했을 때, 자신의 생각을 자신만의 말로 옮긴 덕분에 드라마가 탄생했죠.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키타노상은 착실히 언더의 주인공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고 생각해요. 선발에선 똑같은 일이 힘들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 정도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
키 : 선발은 ‘노기자카46’이라는 그룹의 이름을 짊어진 존재이기에 통일감이나 아이돌다운 모습이 중요하다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가장 힘들어하는 게 그런 것들이기도 하고요… 다른 사람들과 같은 색으로 물들기는 싫지만, 그래야만 하니까요. 스스로를 억누르는 데 저항이 있기도 하고…
- 예를 들자면 사이토 아스카상은 스스로의 색을 잃지 않고 센터 자리까지 나아가지 않았나요?
키 : 아스카쨩은 그런 게 받아들여졌고, 더더욱 앞으로 나갈 수 있었던 거죠. 지금 저 자신에겐 ‘이런 것이 키타노 히나코다’라고 당당히 이야기 할 만할 자신이 없어요. 키타노 히나코는 아직 노기자카46의 ‘무기’가 아니라는 거죠. 문제는 어떻게 해야 ‘무기’가 되는 지 모른다는 거고.
- 키타노상 특유의 밝은 모습은 하나의 무기가 될 것 같은데요.
키 : 이 캐릭터를 지닌 채 프론트까지 갈 수 없다면 이 캐릭터를 버려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개인일을 늘리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만, 개인적으론 그건 좀 다르다고 보거든요.
- 그렇다고 해서 언더로 돌아간다 해도 그 ‘무기’를 갈고 닦을 수는 없다?
키 : 선발과 언더는 역할이 다를 뿐이라 생각하긴 합니다만, 지금 생각하는 건 ‘선발에 남고싶다’는 것 뿐이에요. 앞만 보고 달려가기로 했으니까요. 선발로서 노래하고 춤 추는것이 ‘아이돌’이라 생각하거든요.
- 그렇게 ‘아이돌’로서의 자각은 언제쯤부터 생겼나요?
키 :언제부터였죠… 2기생으로서 들어 온 직후에는 사실 ‘스포트라이트를 잔뜩 받으면서 열심히 해야지~’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을 알게 되었죠. 한 때는 ‘그렇게 타고 난 거야’라고 반쯤 자포자기하기도 했지만, 금세 그건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자, 그럼 나란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이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 보니, 지기 싫어하고 언제나 최고를 목표로 하는 데 가슴 설레어 하고, 즐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 매 싱글마다 낙담했다가도 부활하는 모습을 보면 아직 괜찮겠구나 싶기도 한데요.
키 : 그렇죠. (웃음) 매 싱글마다 적어도 한 번은 엄청 낙담하죠. 후헤헤헤헤. 선발이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와 동시에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지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기껏 잡은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 하는 스스로에게 화가 나곤 해요. 최근 들어선 매미들을 보면 괜히 서글퍼지고, 눈물이 나곤 해요. 미래가 정해 져 있고, 짧은 시간밖에 살지 못 하면서도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는 것 처럼 보여서.
- 눈 앞에 있는 매미 말고 더 멀리 보았으면 해요.
키 : 그룹에 3기생이 들어 왔기에, 아마도 미오나처럼 금방 선발에 뽑히는 아이도 나올 것이라 생각해요. 그런 식으로 환경이 변하는 것 자체도 싫지만, 그렇다고 변하는 것은 없다고 할까요, 주변 환경이 전부 변하는데 저 혼자면 변화하지 않는 것도 좀 아닌 것 같거든요. 예를 들어 계절이 봄 여름 가을 겨울 변해가는데 혼자만 계속 탱크톱을 입고 다니는 건 좀 웃기는 일이잖아요. 그렇기에 요즘은 낙담하다가도 문득 박차고 일어서서 ‘그렇다면 내가 전부 바꿔주면 되지!’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지금까지 있어왔던 ‘당연한 것’들을 전부 깨 부수어 버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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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쿠타 에리카 X 테라다 란제 X 스즈키 아야네 X 와타나베 미리아
‘이쿠타 선배님과 더 사이 좋아지기’ 좌담회
‘이쿠쨩이 빤히 바라 볼 때 시선을 피하면 지는 것?’
- 이쿠타상 말씀에 따르면 ‘노기중’ 밸런타인데이 기획 이후로 2기생들과의 거리가 확 줄어들었다고 하던데요?
이쿠타 (이하 ‘이’) : 네. 미리아쨩에게 고백 할 때 입후보 했었거든요. 결과적으로 차이긴 했지만, 나중에 ‘사실 이쿠타상에게도 고백 하고 싶었어요’라고 하더라고요. 그 때를 계기로 사이가 엄청 좋아졌어요.
- 결국 이쿠타상과 와타나베상 두 분이서 밥 먹으러 가긴 하셨나요?
이 : 아직 못 갔어요.
와타나베 (이하 ‘미’) : 가자는 얘기는 자주 하지만요.
이 : 투어 리허설이다 뭐다 갑자기 바빠져서 말이죠. 아, 그리고 3월에 촬영차 괌에 갔을 때, 연상팀과 연하팀으로 나뉘었었는데, 그 땐 란제쨩이랑 얘기를 많이 했지요.
테라다 (이하 ‘테’) : 사진도 많이 찍었죠.
이 : 지금까지의 인생 얘기를 많이 했어요.
테 : 아, 적토(赤土) 있는 데 말씀이군요.
- 예? 적토요?
테 : 사진집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적토가 쌓인 곳에서 촬영을 했거든요.
이 : 응. 거기.
테 : 둘이 나란히 양산을 쓰고 서서는, 왠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살아 온 얘기를 했어요.
이 : 란제쨩이 갑자기 ‘저 사실 엄청 바보거든요’ 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테 : 후후후. 저는 이쿠타상 어머님 얘기도 들었어요.
이 : 저같은 경우에는 먼저 말을 거는 타입이 아니다보니, 그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아야네쨩은 노기빙고 2때 함께 기획을 했었는데 (2014년 2월) 그 뒤로는 좀처럼 이야기 할 기회가 없었어요. 하지만 최근 들어 아야네쨩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어요. 아야네쨩과 함께 언더라이브를 하면서 아야네쨩에 대해 깊이 알게 된 윳땅이나 키이쨩이 ‘아야네, 사실 이런 일면도 있다’고 자주 알려 주거든요. 그 때부터 이렇게 (아야네를 응시하며) 지켜보고 있는 중이에요.
스즈키 (이하 ‘스’) : 무… 무섭네요.
테 : 이쿠타상, 가끔씩 엄청나게 다른 멤버들을 응시하곤 해요.
이 : 응. 하지.
테 : 뭔가 그럴 때 시선을 피하면 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웃음)
- 아하하하!! 이쿠타상, 다른 사람들 관찰하는 걸 좋아하시나 봐요?
이 : 말은 잘 못 걸지만 흥미는 엄청 있어요.
‘2기생 3인이 이야기하는 ‘이쿠타의 첫인상’’
- 그럼 세 분이 보기에 이쿠타상은 어떤 사람인가요?
테 : 처음 만난 게… ‘16명의 프린시펄 deux’ 때, 2기생을 한 명씩 선보였을 때였어요. 대기실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레이카상이랑 이코마상이 일부러 인사를 하러 와 주셨죠. 그 모습을 보고 ‘와!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정말 있긴 있구나!’라고 감탄 했는데, 그 뒤를 보니까 이쿠타상이 엄청 점프하고 계셨어요.
이 : 응? 정말로? 나 점프하고 있었어? (웃음)
테 : 이쿠타상은 저런 타입이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제게 있어 이쿠타상의 첫 인상은 그거였지요.
이 : 나 엄청 바보같네 (웃음) 의젓하게 딱 서 있었으면 좋았을걸.
스 : 제가 이쿠타상을 처음 만났을 때는요.
- 뭔가 ‘이쿠타상과의 첫만남’ 코너처럼 되어버렸네요. (웃음) 말씀 해 주세요.
스 : 저도 ‘프린시펄’ 때였는데요, 무대에 오르기 전에 처음 만난 이쿠타상은 진한 무대용 화장을 필사적으로 닦아내고 계셨지요.
이 : 아, 사카에 역할 했을 때다!! (웃음)
미 : 저, 사실 노기자카에 들어오게 된 계기가 이쿠타상이에요.
이 : 에?! 정말?
미 : ‘달려라! Bicycle’ 때 이쿠타상을 보고 ‘와 귀엽다!’고 생각해서 노기자카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거든요. 저 역시 처음 만난 건 ‘프린시펄’ 때였는데, 눈이 마주치니까 생긋 웃어 주셨어요. 근데 그 미소의 각도가 엄청 멋졌지요. ‘대단하다’고 생각했죠.
이 : 아, 로비였지? 미리아쨩이랑 눈이 마주쳤던 거 기억해. 하지만 그렇게 웃으면 무섭지 않아?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아서 (웃음) 하지만 정말로 ‘귀여운 아이구나’라고 생각해서 웃은 거니까 무서워 하지 마!
- 괜찮을 것 같은데요. (웃음) 이쿠타상이랑 더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있나요?
테 : 네. 미리아는 먼저 다가가는 타입이니까 ‘함께 밥 먹으러 가자’는 얘기도 나오지만, 저나 아야네 같은 경우는 먼저 다가가지 못 하는데다가, 이쿠타상도 먼저 와 주시는 타입이 아니다 보니…
- 계속 평행선을 그리는 거죠. (웃음) 하지만 테라다상은 ‘연극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잖아요?
테 : 네. 이쿠타상이 다카라즈카를 보고 오셔서 감상을 말씀 해 주시는데, 그게 정말 즐거워요.
이 : 사실 작년쯤부터 다카라즈카를 보러 다니고 있거든요. 물론 저보다 란제쨩이 더 잘 알지만, 보고 올 때마다 보고 왔다고 이야기 하곤 해요. (웃음)
테 : ‘이 배우는 이 점이 좋았어!’ 라며 자세하게 말씀 해 주세요.
- 참고로 테라다상이 좋아하는 배우는 누구죠?
테 : 아사미 쥰님이요.
- 그럼 이쿠타상은?
이 : 음… ‘바람의 검심’에서 2인자가 누구였지?
테 : 에… 누구였죠?
이 : 잠깐만요. 좀 검색 해 볼게요.
(심각한 표정으로 검색)
- 나왔나요?
이 : 못 찾겠어요…
‘만약 이쿠쨩이 세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는다면’
- 이쿠타상은 내년, 유명 뮤지컬 두 가지에 출연하게 되셨는데요,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테라다상이라면 누구보다도 더 잘 아실 것 같네요.
테 : 이쿠타상이 ‘로미오와 줄리엣’에 출연하신 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우와아아아아!!’ 라며 놀랐어요.
이 : (연출가인) 코이케 슈이치로선생님은 정말 멋진 분이시거든요.
테 : ‘이 작품 멋지다’ 싶으면 항상 코이케상이 연출이시더라고요.
이 :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카라즈카를 검색하고 있다)
- 아직도 신경이 쓰이시나 봐요.
이 : 아! 찾았다! 이 사람!!
테 : 노조미 후우토상이네요.
이 : 아! 맞아! 노조미 후우토상을 좋아해요! 항상 이렇게 란제쨩에게 묻곤 해요. (웃음)
- 스즈키상은 ‘악기’라는 공통점이 있지요?
스 : 그렇긴 한데요. 평소 그렇게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은 아니예요.
이 : 그러게. 지금까지 중 오늘 가장 많이 이야기 한 것 같은데.
- 에이 설마요.
이 : 그러고 보니 아야네쨩, 처음에는 멤버 대부분에게 낯을 가렸는데, 요즘에는 1기생들이랑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 하지? 엄청 변했어.
스 : 네. 하지만 아무래도 이쿠타상의 취미라던가 좋아하시는 게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있다 보니, 저랑 공통점이라 해도 좋을 지 어떨 지 모르겠어서…
이 : 그렇지도 않아. 아야네쨩, 프라모델 이외에 좋아하는 건 뭐야?
테 : ‘책 좋아하는 점’도 공통점 같은데.
스 : 이쿠타상은 평소 어떤 책을 읽으세요?
이 : 이사카 코타로(현대 소설가)상이라던가.
스 : 아… 전 현대소설은 잘 안 읽는데…
이 : 어떤 거 읽어?
스 : 민속학을 좋아하기에 야나기다 쿠니오(민속학자, 언어학자)상의 책이나 이즈미 쿄카(일본의 근대를 대표하는 여류작가, 민담이나 설화, 전통 풍습 등에 기반한 환상문학, 기담을 주로 썼다.) 상의 책을 주로 읽어요.
이 : (눈을 깜빡이며) 그거 악기에 관련된 책 아니지?
스 : 네. 지방에 전해지는 전통문화나 전승 같은 거…
이 : 와. ‘공부’계열 책들이구나.
스 : 아, 그런 건 아니에요. ‘공부’라고 할 정도는…
이 : 하지만 판타지는 아니지?
스 : 하지만 물이 뿜어 져 나오게 된 유래를 설명한다던가, 의외로 판타지스러운 부분도 많아요.
- 자 그럼 이쿠타상과 와타나베상 사이의 공통점을 말해보죠. 아무래도 두 분이라 하면 ‘대식가’라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누가 더 잘 먹나요?
이 : 경쟁 해 본 적은 없어서 모르겠어요. 미오나랑 밥을 먹으러 간 적이 있는데, 그 땐 딱 배가 불러오는 타이밍도 같았고, ‘이쯤이면 딱 디저트까지 들어가겠다’ 싶은 타이밍도 같았지만요.
- 그럼 미리아상, 미리아상은 호리상이랑 비교했을 때 어떤가요?
미 : 저도 비슷해요. 하지만 저랑 같이 먹으면 미오나가 조금 남기는 경우도 있어요.
이 : 미오나, 최근 다이어트 하기 때문에 먹는 게 많이 줄었어요.
- 이쿠타상이 만약 여기 있는 후배들을 데리고 밥을 먹으러 간다면 뭐 드실건가요?
이 : 음.. 야키니쿠는 다들 질렸을 것 같고… 뭐가 좋으려나?
테 : 음… 저는 영양만 섭취 할 수 있다면 뭐건 상관 없어요. 흙이나 진흙 같은 것만 아니면.
- 하하하!! 아무리 그래도 진흙을 퍼먹이지는 않겠죠.
테 : ‘이상한 것’만 아니라면 괜찮다는 의미예요. (웃음)
이 : 개인적으로는 일정식을 좋아하는데요, 아무래도 여럿이 먹으러 가는 거라면 다 함께 나눠 먹을 수 있는 게 좋을 것 같단 말이죠. (진지하게 생각하더니) 샤부샤부는 어때? 야키니쿠는 아무래도 기름지지만 샤부샤부는 건강에도 좋고, 고기 뿐 아니라 채소도 먹을 수 있잖아!
테 : 오오!!
스 : 그거 좋네요.
미 : …이쿠타상, 요 전에도 같은 말 했는데요. (웃음)
스 & 테 : (폭소)
이 : 줏대가 있는 거라 해 두자. (웃음)
미 : 이쿠타상이랑 ‘뭐 먹으러가지?’라는 얘기를 하다 ‘일단 야키니쿠는 빼 놓고 얘기하자. 그 틈을 타서 샤부샤부는 어때?’라고 하셨어요.
스 : 야키니쿠의 ‘어떤 틈’을 타면 샤부샤부가 되는 걸까 (웃음)
이 : 일단 ‘고기’라는 점은 남겨두고, 너무 건강식이면 뭔가 심심하잖아. 그러니까 ‘고기’와 ‘건강식’ 틈에 위치하는 게 샤부샤부.
- 그럼 마지막으로, 선발에서 활약하기 위한 포인트 중 하나가 바로 ‘버라이어티 능력’이라 생각합니다. 후배들에게 그런 ‘버라이어티 능력’을 키우는 비법을 전수 해 주신다면?
이 : 음… 오히려 저는 아무런 무기도 없어요. 최근에는 아야네쨩이 ‘노기중’에서 활약중이잖아요.
스 : 어휴 설마요.
이 : 아야네쨩처럼 독특한 스탠스를 유지하다 보면 스태프 분들도 그런 점을 깨달아 주실 거라 생각해요. 그러니까 너무 캐릭터를 만들 생각 하지 말고 스스로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다 보면 누군가는 그 노력을 보고 평가 해 줄 거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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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간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
‘고마워’라고 하고 싶어.
‘나와 마리카’
- 15번째 싱글 ‘맨발로 Summer’에 실린 이노우에상과이토 마리카상의 유닛곡, ‘갈 곳 없는 우리들’ 숏 무비를 보았는데요, 정말 너무나도 멋졌어요.
이노우에 (이하 ‘사’) : 정말요? 기뻐요!! 처음 이 곡을 받았을 때 정말 울 것만 같았지요.
- 울 것 같았다고요? 왜요?
사 : 제목 듣고는 ‘나는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웃음)
- 아하하. 이번 숏 무비 촬영을 앞두고 감독인 유아사씨랑 1대 1로 대화를 나누셨다고 들었는데요.
사 : 네. 처음엔 마리카와 저에 대한 밀착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만들 생각이었거든요.
- 이번 싱글에서 선발에서 탈락한 두 사람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 본다는 얘기였나보네요.
사 : 네.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면 팬 여러분이 슬퍼하실 것 같아서 그건 좀 아니다 싶었지요. 그리고 저희가 아니라도 다른 아이돌에서도 그런 건 많이들 찍곤 하시잖아요. 저 개인적으로는 ‘아이돌’들이 힘들어 하는 모습이나 슬퍼 하는 모습은 그다지 보고 싶지가 않기에 유아사상과 면담을 하게 되었을 때, 그런 제 마음을 솔직하게 말씀 드리면서 다른 식으로 만들 순 없을까 상담을 했어요.
- 아이돌의 고뇌와 갈등은 배제한 작품이요?
사 : 오히려 그런 게 나오는 게 당연한 것인가 싶은데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뇌하고 갈등하잖아요. 그렇기에 그렇게 ‘나는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어요!’ 라는 식으로 티를 내는 건 좀 아니다 싶었어요.
- 그런 것 보다는 다른 시도를 해 보고 싶었다는 거죠?
사 : 네. 마리카와는 따로 면담을 했었는데, 마리카도 저와 같은 생각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오히려 저희가 ‘어떤 마음으로 아이돌을 해 나가고 있는가’가 전해지는 작품을 해 보고 싶었어요.
- 그래서 결국 내용도 바뀌고, 지금까지 두 분이 쌓아 오신 연기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작품이 완성 된 것이군요.
사 : 그렇죠. 마리카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연기 하는 것을 좋아하니까요. 저희밖에 만들 수 없는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 이번 숏 무비는 2년 전에 나왔던 ‘그 날, 나는 갑작스레 거짓말을 했다(이하 ‘돗사’)’ MV의 속편에 해당되는 스토리지요?
사 : 처음 대본을 본 순간, 정말 펑펑 울었어요. (웃음) 이 작품 역시 ‘돗사’때 처럼 제 등이 비추어지는 시퀀스로 시작되는데요, 내용 면에서는 전작으로부터 2년이 흐른 시점의 ‘우리들의 이야기’지요.
- 이노우에상은 대학교에 가서도 계속 연극을 한다는 설정이지요.
사 : 설정 하나 하나에 의미가 담겨 있어요. ‘돗사’는 영화 ‘벚꽃 동산’의 오마쥬격인 작품인데요 이번 작품에서 연극부가 하는 연극은 다름아닌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죠. (역주 : 벚꽃 동산 원작 역시 안톤 체호프. ‘벚꽃 동산’, ‘갈매기’, ‘바냐 삼촌’, ‘세 자매 이야기’를 일컬어 체호프의 4대 희극이라 부른다)
- 그 둘 사이에 연관이 있는 것이군요.
사 : 정말이지 유아사 감독님은 대단해!! 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엄청 감동 받았어요.
- 체육관신에선 두 분 다 엄청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시던데요.
사 : 사실 그 신은 대본에 없는 장면이에요. 사실 돗사 촬영 뒤 2년만에 그 학교를 다시 찾은 건데, 오랜만에 다시 가게 되니 정말로 반갑더라고요.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게 마리카에게 ‘정말 그립네’라고 이야기 했는데, 그 순간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하더군요. 그렇기에 사실 그 장면은 연기가 아니라 말하자면 ‘에튀드(즉흥연기)’라고 해야겠네요. 하지만 대본에 있는 대사들도 하나 하나가 정말 가슴에 스며드는 좋은 문장들 뿐이었어요. 현장에서 연기를 하면서도 우는 신이 아님에도 감정이 복받쳐 올라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요.
- 연기를 하면서 마음 속에 담아 두었던 것들이 터져 나온 건가요?
사 : 옥상 신 이야기인데요, 원래는 마리카가 ‘오늘 이 순간도 언젠간 웃으며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하면 ‘응’이라고 대답을 했어야 했거든요. 하지만 그 순간, 머릿 속에 ‘정말 그런 날이 올까?’ 라던가 ‘다시 이 곳으로 돌아 와 버리게 된다면 어떻게 하지?’ 라는 말들이 가득 차서 ‘응’이라는 단 한 마디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더라고요.
- 두 분이 함께 통곡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어디까지가 연기고 어디까지가 리얼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사 : 옥상에 올라 간 바로 그 순간, 2년 전 그 날 그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어요.
- 그 날의 기억은 ‘좋은 추억’인가요? 아니면 ‘괴로운 기억’ 인가요?
사 : 두 가지 모두예요. 2년 전… 힘든 일도 많았고 갈등도 많이 했지만 동시에 ‘우리 미래는 밝아!’ 라고 희망을 갖고 있었고, ‘반드시 위로 올라 가 주겠다’는 의욕도 갖고 있었지요. 하지만 그 때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2년 전에 서 있던 곳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죠. ‘과연 우리는 2년 전 그 때보다 조금이라도 성장 한 것일까?’나 ‘그 당시 그토록 갈등하면서도 앞만 바라보며 달려갔던 그 때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도 들었죠…
- 하지만 그 때에 비해 개인 일도 많이 늘었고, 지난 1년간은 안정적으로 선발에도 뽑히셨잖아요. 2년 전 그 때와 비해서 확실히 성장하셨다고 생각하는데, 본인은 그런 실감이 없으신가봐요?
사 : 음… 사실 14번째 싱글 활동기간은 저 나름대로 꽤 성과를 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특촬 작품에도 나갔었고, 여러 무대에도 설 수 있었고. 정말 바쁘고 힘들었지만 그만큼 충실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랬던 것이…
- 그렇게 열심히 했음에도 결과를 남기지 못했다… 그런 얘긴가요?
사 : ‘성과를 낸다면 노력 한 건 반드시 보답 받는다’는 것을, ‘노력하는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보답 받는다’는 것을 언더 멤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렇기에 개인 일도 최선을 다 했고, 그 결과 조금이나마 저 나름대로 서서히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찌 해야 할 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었죠.
‘약한 소리’
- 그렇다면 선발 발표로부터 시간이 지난 지금은 다시금 ‘괴로워도 앞만 보고 발버둥 치는’ 모습으로 돌아 오셨나요?
사 : 불과 얼마 전 까지만해도 정말 ‘눈 앞이 캄캄’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앞이라니, 그게 어디 얘기야?’라고나 할까요. 카메라를 향해서도 어떤 표정을 지어야 알 수 없었고요.
- 그 정도로 코너에 몰려 있었군요.
사 : 그런 제 모습을 보고 마리카가 ‘그래선 안돼!’라고 끈질기게 설득 해주었어요. ‘사유가 그렇게 의기소침해 져 있으면 나도 의기소침해진단 말이야!’ 라면서 엄청 혼 냈어요. 거의 매일같이.
- 그럼 지금은 조금이나마 그 ‘앞’이 보이기 시작했나요?
사 : 저 스스로도 ‘이대론 안 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억지로라도 ‘앞’을 보려고 노력하는 중이긴 합니다만…
- 숏 무비에서 이노우에상이 ‘힘 내라는 말은 때때로 마음을 도려내는 것 같아’라고 이야기 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지금까지 수 많은 사람들이 ‘힘 내’라고 이야기 해 주지 않았나요?
사 : 사실 ‘힘 내’라는 말에 정말로 ‘힘 내라’는 의미를 담아 이야기 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사실 반쯤 인사 같은 느낌이랄까…
- 그럼 지금까지 ‘힘 내’라는 말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 왔나요?
사 : 저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 해 발버둥치는데, 그럼에도 기대에 부응하지 못 하니까…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 왔어요. 사실 그 대사, 예전에 제가 모바메로 보냈던 문장을 그대로 이야기 한 것이거든요. 지금까지는 제가 약한 소리를 하면 팬 여러분께서 곤란해하실 것 같아 항상 ‘나는 괜찮아’라고 이야기 해 왔거든요. 강한 척 하며 ‘난 괜찮아’라고 이야기 해 왔던 거예요. 사실은 엄청 약해빠진 주제에 허세를 부리는 안 좋은 버릇이 있다 보니… 하지만 이젠 절 응원해 주시는 팬 여러분께는 숨기지 말고 약한 소리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 그렇게 마음이 변하게 된 계기 같은 게 있었나요?
사 : 악수회 때, 울면서 ‘사유리쨩은 왜 약한 소리를 한 번도 안 해?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가 받쳐 줄 테니까 혼자 힘들어 하지 말고 이야기 해 줘’라고 말씀 해 주신 팬분들이 계셨거든요. 한 분 뿐이 아니라 여러 분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가 받쳐 준다’고 이야기를 해 주시는 것을 보고 저 역시 강한 척 하지 말고 제 솔직한 마음을 말씀 드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멋진 사유리스트 분들이시네요.
사 : 정말 기뻤어요. 하지만 동시에… 뭐랄까요, 정말로 면목이 없었어요. 팬 여러분들도 각자 학교나 회사 같은 데에 다니시면서 힘들고 괴로운 경험을 하시잖아요. 그런 분들께 파워를 드려야 하는 입장인 제가 팬분들께 ‘도와주세요’라고 이야기 하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기에 악수회 때 눈물이 날 것 같을 땐 일부러 기침을 하는 척 하며 레인 뒤로 들어가서 한바탕 울고 나오는 한이 있어도 강한 모습을 보여드리려 했던 거였는데… 그렇기에 지금 팬분들께 갖고 있는 마음은 ‘고마움’도 고마움이지만 ‘미안함’ 쪽이 더 큰 것 같아요
- ‘미안하다’니 대체 뭐가요?
사 : 모든 점이요. 정말 저란 애는…
- 그런 말 했다간 또 마리카상한테 혼날 것 같은데요.
사 : 네. 제가 이런 말 하면 마리카가 엄청 화 내요. ‘왜 그런 말을 하냐’면서.
- 그 정도로 좋은 팬들이 많이 계시고, 개인적으로도 연극 오퍼를 받고 있다는 것만 봐도 이노우에상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다시 말 해 이노우에상은 정말로 ‘가치 있는 존재’라는 거죠.
사 : 그런 것이라면 정말 좋겠네요. 이런 저에게 ‘가치’를 부여 해 주시는 건 전부 주변에 계시는 여러분들이시죠. 그렇기에 저는 그런 분들의 은혜에 대해 최대한 보답 할 수 있는 아이돌이 되고 싶어요.
- 숏 무비의 마지막 장면은 ‘희망’이 느껴지는 신이었는데요. 지금 이노우에상에게 있어 ‘희망’이란 선발 복귀를 뜻하나요?
사 : 음… 선발이랄까요, 노기자카46이라는 그룹에 있어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어요.
- ‘복신에 들어간다’ 같은 목표는 없나요?
사 : 있어요. 요즘은 그런 얘기 잘 안 하긴 하지만, 그런 마음은 변함 없습니다. 초창기부터 제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목표니까요. 작년 여름 투어 오프닝 영상에서 ‘노기자카의 센터에 서고 싶다’고 오랜만에… 아니다 그렇게 직접적으로 언급 한 건 처음이네요. (웃음)
- 직구도 아니고 돌직구였죠. (웃음)
사 : 기껏 아이돌이 되었으니까요. 죽기 전까지 한 번 정도는 센터에 서고 싶어요. 응원 해 주시는 여러분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되지 않는 게 면목 없는 일이고요.
- 아까 말씀하신 체호프의 ‘갈매기’는 배우 지망생인 니나의 슬픈 사랑을 그린 연극이지요. 니나의 절망, 인내, 그리고 희망을 테마로 하는 작품이라고 하는데요.
사 : 우와!! 역시 유아사감독님은 대단해요.
- 어쩌면 유아사 감독님께서 그런 설정들을 통해 이노우에상에게 메세지를 보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사 : 와… 정말이지… 유아사상 ‘신’ 아니신가요? 유아사상 특집 인터뷰 한 번 해 주세요! (웃음)
‘앞만 보며 똑바로’
- 이노우에상, 자주 ‘정의’라는 단어를 쓰시죠.
사 : 네. 사실 처음으로 블로그 맺음말을 ‘정의’라고 한건 단순히 히어로물을 좋아해서 쓴 것 뿐이었어요. 하지만 어느 사이엔가 저의 상징이 되어 있더라고요.
- 캐릭터를 만든 건가요?
사 : 처음엔 그런 의미도 없지 않았어요. 하지만 결국 그 ‘정의’가 제 삻의 방향성에도 연관이 되기 시작했죠.
- 자신답게, 자신만의 정의를 관철 해 나가고 싶다는 얘기인가요?
사 :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앞만 보며 똑바로 나아 갈 수 밖에 없거든요. 좀 더 여유를 갖고 유연하게 생각 하는 것도 좋겠지만, 거짓말도 못 하고…
- 애초에 왜 ‘정의’라는 단어를 고른 건가요?
사 : 부모님께서 복지 관계 일을 하고 계신데요, 어릴 적 부터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다른 사람의 힘이 되고싶다’고 생각 해 왔거든요. 하지만 정작 실제로는 아무 것도 하지 못 했지요. 그래서 여기저기 봉사활동을 간다던가 하다 보니 어느 사이엔가 ‘바른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 질문에 대해서는 아직도 답을 못 내리고 고민 중이지만요.
- 그럼 ‘아이돌에게 있어서 정의’란 무엇일까요?
사 : 아이돌에게 있어서 정의라… 음… (침묵)
- 그럼 이노우에상 본인에게 있어 ‘정의’란 무엇인가요?
사 : 음… 뭐라 해야 하나요. 어렵네요 이거. (오랜 침묵)
- 뭔가 고민거리를 안겨드린 것 같아 죄송하네요. 그럼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이야기 해 주시겠어요?
사 : 몸도 마음도 ‘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자기 자신에게 자신을 갖고 싶어요. 그런 사람을 동경하거든요.
- 그런 자신의 ‘이상’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지고 있나요?
사 : 음… ‘히어로’는 절대로 약한 소리를 하지 않잖아요.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울지 않고. 그런 면에서 보면 저는 히어로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네요.
- 하지만 눈물을 흘리고 약한 소리를 하는 히어로가 있다면 엄청 친근감이 느껴질 것 같은데요. 히어로도 이래저래 힘들겠구나… 라고 공감도 되고.
사 : 후후후.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렇다면 약한 사람이 강한 척 하는 것도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 그렇죠. 자기 자신의 약함을 알면서도 이를 악물고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 : 최근 들어 악수회에서 ‘요즘 힘든 일이 있는데, 사유냥을 보면 나도 힘 내야겠다고 생각하게 돼’라고 말씀 해 주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이노우에상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힘을 내요’라고 이야기 해 주시는 분도 계셨고. 뭐라 하죠, 저같이 약해빠진 인간도 다른 사람들의 힘이 되어 줄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죠.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 이노우에상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용기를 얻는 팬 분들도 많이 계실 거예요.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이노우에상 역시 팬분들께 있어서는 일종의 ‘히어로’가 아닐까요?
사 : 어우 설마요. 하지만 그렇게 말씀 해 주시니 기분이 좋네요. 감사합니다.
- 그럼 마지막으로 사유리스트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사 : ‘감사합니다’라는 말 밖에는…
- 다행히도 ‘미안해요’가 아니군요. (웃음)
사 : 네. ‘감사합니다’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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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노기자카46의 미래는?
‘노기자카를 선택한 데 후회는 없어요’
- 이번에 ‘브로디’를 재창간(부정기 간행 무크지에서 정기간행물로 재창간)하면서 창간호 표지를 시라이시상에게 부탁드리게 되었네요.
시라이시 (이하 ‘시’) : 감사합니다!
- 작년 8월에 처음으로 브로디를 발매 할 때도 시라이시상이 표지셨고, 권두 그라비아 역시 시라이시상이셨죠. 그리고 그 덕분에 잡지의 이미지가 정해지기도 했고요. 결과적으로 시라이시상 덕분에 저희 브로디에 ‘멋진’ 이미지가 정착되었다고 할까요.
시 : 과찬이세요. (웃음) ‘브로디’에는 맛츙과 함께 등장 한 적도 있었죠. 분명 정말 ‘멋진’ 분위기가 맴도는 잡지라 생각해요.
- 시라이시상이 아니었다면 그런 이미지가 정착되기는 힘들었을 거라 생각해요. 본인은 어떠신가요? 스스로가 인기 있다는 점이 잘 느껴지시나요?
시 : 설마요. (웃음) 하지만 조금은… 무서워요. 사실.
- 무섭다고요?
시 : 네. 사실 저 스스로는 인기가 있다던가 하는 자각은 전혀 없는데다가, 말하자면 노기자카라는 그룹에 들어 와,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 나가는 것 뿐이거든요. 그런데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분들이 저를 알게 되셨다는 거잖아요. 매우 감사한 일이지만 동시에 무섭게도 느껴져요. 물론 저를 알아 봐 주신다는 건 정말 기쁜 일이고, 정말 대단한 일이지만요.
- 하지만 동시에 미디어 노출이 늘어나면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어떤 것을 기대하고 있는 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었다는 얘기군요?
시 : 조금씩이긴 하지만 말이죠. 물론 저 역시도 그런 ‘기대’를 충족시켜 드리고 싶고, 저 스스로가 참가하는 작품에 힘이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하지만 역시 생각 해 보면 참 신기한 일이거든요. 이런 게 ‘연예인’이 된다는 것인가 새삼스레 생각 해 보기도 하고 말이죠. 평범하게 살아 왔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 자신이 ‘연예인’이라는 자각은 하고 있나요?
시 :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그렇게 많이 하고 있진 않은 것 같아요. (웃음) 매일 매일이 일 하러 갔다가 집에 돌아와서 자고, 일어나서 다시 일 하러 가는 것의 반복이니까요. 딱히 특수한 일을 하고 있다기보다는 그냥 평범한 직장인과 다를 바 없다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사실 그렇게까지 ‘나는 연예인’이라는 자각은 없는 것 같아요. 가끔 길을 걷다가 알아 봐 주시는 분이 계실 때 ‘아, 나 연예인이구나’라고 깨닫게 되기는 하지만요.
- 그렇군요. 그럼 ‘아이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예를 들어 노기자카에 들어 오기 전에 갖고 있던 ‘아이돌’이라는 직업의 이미지는 어땠었나요?
시 : ‘힘든 직업이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바빠 보이기도 하고,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는 이미지였거든요. 당시에는 저 자신이 그런 일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죠. (웃음)
- 그럼 실제로 아이돌이 되고 보니 지금까지의 ‘이미지’와는 달랐나요?
시 : 불안한 일도, 힘든 일도 많았지요.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몇 배는 힘든 직업이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힘든 만큼 여러 일을 경험 할 수 있었기에 지금껏 저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알 수 있었지요. 또 다양한 분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일의 즐거움도 알 수 있었어요. 그렇기에 노기자카에 들어오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이렇게 이야기를 듣다 문득 떠오른 것입니다만, 보통 ‘아이돌’이라 하면 ‘반짝반짝 빛난다’던가 ‘귀엽다’ 같은 말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인데 시라이시상은 ‘힘들어 보인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는 얘기네요.
시 : 감춰진 뒷면을 상상 해 보는 버릇이 있거든요. (웃음) 반짝반짝 빛나보이지만, 그러기 위해 사람들이 보지 않는 뒷편에서 얼마나 힘들게 노력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기에 ‘힘든 직업’이리라 생각했던 것이죠. 그리고 그렇게 뒷편에서 힘들게 고생 했기에 스테이지 위에서 빛날 수 있는 것이리라 생각하기도 했고요. 애초에 본질적으로 사고방식이 네거티브하다 보니 말이죠. (웃음)
- 하지만 평소에는 그런 ‘네거티브한 면’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시는 것 같은데 말이죠.
시 : 일 할 땐 드러내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혼자 있을 때라던가 집에 돌아 간 뒤라던가, 안 좋은 일이 있는 때라던가 할 때는 엄청 침울해져요.
- 그렇게 침울 해 지는 경우가 많나요?
시 : 예전엔 정말 많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요즘은 예전에 비해 많이 긍정적으로 바뀌었어요.
- 그렇군요. 말씀하신 대로 ‘일을 할 땐 네거티브한 면을 내보이지 않는다’는 것만 봐도 프로의식이 느껴지네요.
시 : ‘프로의식이 강하다’고 말씀 해 주시는 분들은 계십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웃음) 어디까지나 그런 게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거든요. 일을 할 땐 일에 최선을 다 하고, 여유를 즐길 수 있을 땐 최선을 다 해 여유롭게 보내고… 그런 ‘기분 전환’은 확실히 하고 있을 지 모르지만요.
- 아, 그리고 시라이시상 하면 건강하달까? 튼튼하다는 이미지가 있어요.
시 : 어릴 적 부터 몸 하나는 튼튼했어요. (웃음) 아마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것이겠죠.
- 예전에 하시모토상에게 ‘시라이시상의 대단한 점’을 물었을 때, ‘몸이 튼튼한 점. 정말로 존경스럽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시라이시상은 건강 관리를 철저히 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시 : 항상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기에 아무리 바빠도 밥은 거르지 않고 챙겨 먹어요.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런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하는 것. 그 정도랄까요.
- 그럼 특별하게 뭔가를 한다던가,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비법이 있다던가 한 건 아니네요.
시 : 그렇죠. 물론 과식을 했을 때라던가 거울을 보고 ‘살 쪘다’고 생각 될 땐 밸런스를 고려 해 가며 먹는 양을 조절하긴 하지만, ‘궁극의 다이어트 비법’같은 건 딱히 갖고 있지 않아요.
- 그렇게 자신의 페이스대로 생활 하기에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시 :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정말 그런 부분이 클 지도 모르겠어요.
- 좀 뜬금없는 질문일지도 모르겠는데, 노기자카 활동에 있어 빼 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악수회죠. 사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 시라이시상과 악수를 하면 푹 빠져들게 된다’고 말씀 하시던데요.
시 : 아하하하하. 그런가요?
- 악수회에 임할 때, 중점을 두고 있는 게 있나요?
시 : 그냥 평범한데요. 처음 오시는 분께서도 즐겨 주셨으면 하기에 언제나 변함없이 자연스럽게 대해요. 사실 악수회에와 주시는 팬분들 중에 ‘시라이시 마이 덕분에 노기자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씀 해 주시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그런 얘기를 들을 때 마다 ‘개인 일 덕분에 노기자카 일도 충실해 졌구나. 일 열심히 하길 잘 했다’ 라고 느끼기도 하고, ‘더 열심히 하자’는 생각도 들어요.
- 그렇군요.
시 : 하지만 그렇게 와 주신 분들이 결국 다른 멤버들로 오시헨 해 버린단 말이죠. (웃음) ‘처음엔 마이얀 오시였지만 지금은 미나미쨩이 좋아’라던가 (웃음) 그런 얘기를 들으면 슬프기도 하지만 그래도 결국 노기자카를 응원 해 주신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하게 돼죠.
- 그럼 다른 멤버들은 악수회 때 어떨 지 궁금하거나 하나요?
시 : 아뇨. 저는 그다지… 신경이 쓰인다고 하면 마나츠 정도? 어떤 식으로 사람들을 낚는 지 보고 싶어요 (웃음)
- 실제로 팬들과 함께 악수회 줄에 서 본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시 : 악수회 가도 마나츠에게 푹 빠지거나 하진 않을 것 같은데요 (웃음) 하지만 악수회 때 쓸 수 있는 ‘필살기’를 잔뜩 갖고 있을 것 같아요. 그것도 분명 큰 무기라 할 수 있겠고요.
- 그렇죠. 이 책이 발매 될 때 쯤 (8/25발매)은 노기자카가 5년째를 지나 (8/21) 6년차에 돌입했을 시점이지요. 지난 5년 동안 인상이 가장 많이 변한 멤버는 누구인가요?
시 : 다들 어른이 되었지요… 그 중에서도 이코마는 사고방식이나 행동거지 모든 면에서 가장 많이 변했다고 생각해요. 좋은 의미로 가장 변하지 않은 건 사쿠라이라고 생각하고, 나나밍도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나쨩도 내면이 엄청 긍정적으로 변했어요. 라이브 때엔 먼저 의견도 내고 앞장서서 이끌어 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역시 동년배 여자 아이들이 함께 노력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한데다가, 노기자카에서 활동 할 수 있는 파워를 받곤 합니다.
- 이전 인터뷰에서 ‘15번째 싱글이야말로 진정 승부를 걸 때’라고 말씀하신 적 있는데요, 15싱글 이후로 싸워 나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시 : 앞으로 새로운 노기자카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아이를 길러 내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보면 아스카가 센터에 서서 새로운 노기자카의 얼굴이 되어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노력 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 ‘함께 노력하자’가 아니라 ‘노력 해 주었으면 좋겠다’ 라고요?
시 : 네. (웃음) 물론 함께 노력 하는 거야 당연한 것이지만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린 멤버들이 앞으로 노기자카라는 그룹을 이끌어 갈 수 있을 정도로 힘을 길러내는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언니 멤버들이 그룹을 떠나게 되더라도, 여동생들을 믿고 맡길 수 있을 정도로 성장 해 주길 바라요.
- 마지막 질문입니다. 아까 전에 ‘아이돌이라는 직업은 힘든 일이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노기자카에 들어 오길 잘 했다’고 말씀하셨는데, 만약 인생을 다시 한 번 살 수 있다면 그래도 노기자카에 들어 오실 건가요?
시 : 음… 음… 아마도 다시 들어 올 것 같아요. 음… 에… 들어오고 싶은 마음, 아닌 마음 반반이라 해야 하나. (웃음) 노기자카에 들어 와, 평범하게 살아 왔다면 경험 할 수 없는 경험을 했고, 그 덕분에 지난 5년간 인간면으로도 크게 성장 할 수 있었기에 노기자카에 들어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동시에 노기자카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보낼 수 있었을 평범한 삶, 다시 말 해 진학한다던가 취직한다던가 하는 생활도 나쁘지 않을 것 같거든요.
- 그렇게 보면 ‘반반’이라는 말은 정말 솔직한 의견이었네요.
시 : 그렇죠. (웃음) 하지만 지금 이 인생에 후회는 없어요. 100% 노기자카에 들어오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노기자카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대체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요?
- 그대로 전문학교에 다니면서 음악을 배웠다면 어땠을 것 같아요?
시 : 음악의 길은 만만한 길이 아니니, 지금쯤 푸타로(프리터,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사람, 혹은 무직자)였지 않을까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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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한 결의를 가슴에 품고’
이코마 리나
- 우선 꼭 여쭤보고 싶었던 얘긴데… ‘FNS 여름 축제’ 때 말인데요…
이코마 (이하 ‘이’) : 아 다들 그 말씀 하시더라고요. (웃음)
- 다들 묻나요. (웃음) 그 날 한정으로 48&46 드림팀을 이루어 ‘사일런트 마조리티’를 선보였죠. 그 때 이코마상이 센터에 서서 퍼포먼스를 하셨는데, 곡이 끝난 뒤 ‘봤냐!! 이게 이코마 리나다!!’라고 소리 치고 싶을 정도로 가슴이 두근거리더군요.
이 : 감사합니다. (웃음) ‘사일런트 마조리티’는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곡이기에 한 번 꼭 해 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게 TV에서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 했기에 정말 놀랐지만요.
- 그것도 와타나베 마유상이나 사시하라 리노상 등 쟁쟁한 멤버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센터자리에 서게 된 것이니 부담이 크셨겠어요.
이 : 지상파 방송에서 센터에 서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었던지라 긴장이 되긴 했지만, 의외로 냉정하게 즐길 수 있었어요. 아, 나중에 녹화 한 것을 보면서 ‘이 곡은 지금의 내겐 어울리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하긴 했지만요.
- 무슨 말씀이신가요?
이 : ‘어른들에게 지배당하지 마’라는 가사는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이 10대 멤버들이기에 그 정도로 임팩트를 줄 수 있는 거라 생각하거든요. 케야키자카46이 선보이는 ‘사일런트 마조리티’는 말하자면 ‘레지스탕스’같은 곡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저같은 경우엔 아무리 애 써도 ‘과거에 레지스탕스였던 사람’으로 밖엔 보이지 않지요. 그렇기에 ‘어른들에게 지배 당하지 마’라는 말이 본 뜻 그대로가 아니라 뭔가 다른 뜻으로 들리지요. 개중에는 ‘제복 마네킨’ 당시의 제 모습을 겹쳐 보시는 분들도 계셨을 지 모르지요. 예전부터 저를 지켜 봐 주신 분들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이런 감정은 저밖에는 느끼지 못 했으리라 생각해요. 표현 방식이 비슷해 보일 지는 모르지만 실제로는 전혀 달랐습니다. 저 역시 그 당시의 제가 아니거든요. 저는 더 이상 ‘반란군’이 되지는 못 하게 되었어요.
- 그렇군요. 그래도 노기자카의 이코마 리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날, ‘사일런트 마조리티’ 퍼포먼스를 보고 기뻐하셨으리라 생각하는데요.
이 : 그렇게 생각 해 주신다면 감사하죠. 실제로 멤버들 중에서도 ‘아쉽게도 너의 이름은 희망이 선택받지는 못 했지만, 이코마가 그렇게 퍼포먼스 해 줘서 마음이 편해졌어’라고 이야기 해 준 멤버도 있어요.
- 자신들의 노래가 아니라 후배인 케야키자카의 노래가 뽑혀 아쉬워 한 멤버도 있었을 법 한데요.
이 : ‘THE MUSIC DAY 여름의 시작’ 때 ‘이대로 져선 안 되겠다’라고 다들 불이 붙었죠. (웃음)
- 노기자카가 ‘계기’를 선보이던 도중, 케야키 멤버들이 등장해서 함께 퍼포먼스 했던 그 공연 얘기군요.
이 : 이전까지는 저희가 AKB48 여러분과 함께 무대에 선다던가 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노기자카도 그 당시의 AKB분들과 같은 입장이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 날, 무대가 끝난 뒤 멤버들끼리 모여 그런 이야기를 했죠.
- 케야키자카의 활약에 자극을 받아 팀이 일치단결하게 되었다는 건 좋은 일 같네요.
이 : 네. 최근 들어서는 서프라이즈 발표가 있어도 냉정하게 ‘네. 알겠습니다. 열심히 할게요’라는 식으로 받아들이곤 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대로 져선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새삼 ‘다들 사이가 좋다’는 걸 느꼈어요. 위기감을 느꼈을 때, 지기 싫어하는 애들끼리 결속력이 엄청나지거든요.
- 하하하하 (웃음) 함께 무대에 서 보고 느낀 ‘케야키자카의 이미지’는 어떤가요?
이 : 노기자카와는 전혀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하지만 구체적으로는 저희보다 여러분들이 더 많이 알고 계실 것 같아요. 사실 케야키와 그다지 접점이 없어서… 히라테쨩과 연락을 주고받긴 하지만.
- 그러고 보니 그런 얘기도 들은 적 있네요. 상담을 해 주거나 하나요?
이 : 그럼요… 하지만 한 편으론 안돼보이기도 해요. 아무 것도 모르는 채 센터에 세워졌잖아요… ‘세워진다’는 거, 정말 힘든 일이거든요. 호리쨩을 보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지만.
- 하긴, 호리상이 센터에 섰을 때도 이코마상이 많이 도와줬던 기억이 있네요.
이 : 저 같은 경우에는 저 뿐만 아니라 모두들 처음 겪는 일들 뿐이었기에 ‘누구에게도 상담 할 수 없’었다는 느낌이었거든요. 요즘이야 다들 알고 있으니까 힘들단 말도 할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약한 소리 할 수가 없었어요. 그렇기에 적어도 히라테쨩에게 ‘그 기분 잘 알아’라고 이야기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히라테쨩은 저랑은 전혀 다른 타입이라 생각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룹 이름에 46가 들어간다는 것만으로도 비교를 당하게 되죠. 그런 건 저도 싫고, 히라테쨩도 가여워요.
- 하긴, 한 때 ‘이코마 리나의 후계자’ 같은 기사도 나왔었죠.
이 : 그런 말 하는 거, 저희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증거라 생각해요. (웃음)
- 하하하하 (웃음)
이 : 후계자도 아닐 뿐더러, ‘여동생’도 아니니까요. 히라테쨩은 어디까지나 히라테쨩이예요. 그런 처지에 처한 아이들을 할 수 있는 한 돕고 싶다는 마음만은 있지만 말이죠.
- 저 역시 이코마상과 히라테상은 전혀 다른 타입이라 생각해요. 하물며 ‘후계자’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라 보고요. 하지만 어떻게 보자면 이코마상이나 히라테상, 두 분 다 애초에 아이돌이 좋아서 들어 온 것도 아니고, 비 리아쥬(현실에 충실한 사람. ‘현실충’)에 가까운 사람들이라 ‘이런 자신을 바꾸고 싶’어서 그룹에 들어 왔다는 점에선 닮은 면도 많긴 하다고 보거든요.
이 : 음, 아뇨. 저랑은 생각하는 방식부터가 전혀 달라요. 딱 맞는 표현이 안 떠오르는데, 저 보다 훨씬 ‘깊은’ 아이라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다들 쉽사리 히라테쨩을 ‘천재’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그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분명 천재적인 면을 가진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뭉뚱그려 표현 해 버리는 건 절대로 옳지 않아요. 본인도 그런 말에 신경이 쓰일 것이 분명한데다가, 만에 하나 그런 평가가 바뀐다면 상처받는 건 히라테쨩 본인이니까…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그러고 보니 저희같은 사람들도 주의를 해야 하겠네요.
이 : 사실 ‘이제 겨우 15살밖에 안 된 아이한테 대체 어디까지 부담을 안길 생각이지?’라는 생각이 들때도 있어요. 그리고 천재라 해도 노력을 안 하는 건 아니잖아요. 이쿠쨩처럼.
- 그건 그렇죠.
이 : ‘노력하는 천재’이기에 매번 120%를 내 보일 수 있는 거예요.
- 히라테상에 대해서도 그렇고, 이쿠타상에 대해서도 그렇고 ‘천재’라는 한 마디로 그 사람을 표현해 버리면 그 뒤에 숨겨진 노력이 가볍게 여겨지게 되는 법이죠. 그런 건 분명 좋지 않고요. 자, 그럼 이 자리를 빌려 히라테상에게 어드바이스 해 줄 것이 있다면?
이 : 히라테쨩은 멋진 곡이고 귀여운 곡이건 다 잘 소화 해 낼 수 있는 ‘올마이티’ 아이돌이라 생각합니다. 그 말을 해 주고 싶어요.
- 마지막으로 이코마상 본인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 볼게요. 이전부터 이코마상은 ‘연예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고 이야기 해 왔지요. 개인적으로는 최근 들어 조금씩 이 세계에 이코마 리나라는 존재가 설 자리가 확립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에 대해서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 확실히 TV방송이라던가 나가는 경우가 조금씩 늘었어요. 그런 기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조금이나마 ‘이코마를 써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분이 늘어나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점에 대해서는 정말 순수하게 기쁘고 감사하지요. 하지만 ‘노기자카46’라는 브랜드가 있기에 써 주시는 점 역시 무시 할 수 없기에, 하루 바삐 저 개인의 능력으로 출연 할 기회를 늘려 낼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라도 주어지는 기회에서 결과를 남기기 위해 매번 매니저분과 작전회의를 하며 녹화 현장에 가거나 해요.
- ‘연예계에서 살아남고 싶다’는 의식은 점점 강해지나요?
이 : 네. 점점 강해져요. 예전까지는 아이돌을 졸업하면 연예계도 졸업해야겠다 생각했었는데, 이 세계를 그만두면 저에게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이 곳에서 사는 것 밖에 배우지 못 했고 말이죠. 만약 연예계를 나가 평범한 생활로 돌아간다 해도 그 생활에 익숙해 지는 데는 시간이 걸리잖아요. 그 시간동안 ‘일’이 없다면 제 사생활은 할 게 아무 것도 없거든요. 일을 하다가 가끔씩 휴일을 받는 건 정말 좋지만, 때로는 슬퍼져요. ‘아무 것도 없는 자신’을 새삼 깨닫게 되거든요. (웃음) 그렇게 생각하면 이렇게 연예계에서 살아가야 즐거운 인생을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에 어떻게든 저만이 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 내서 이 세계에서 살아남고 싶어요.
- 최근엔 이코마상이 혼자 방송에 나와도 예전보다 위화감은 안 느껴지게 되었어요.
이 : 예전에는 정말 아무 것도 몰랐으니까요. 지금까지도 매번 심사숙고하고, 여러 모로 연습 해 왔듯 앞으로도 그럴 생각입니다. 그 모습을 여러 분들께서 보아 주신다면 기쁠 것 같네요.
- 앞으로 연예계에서 살아남는 데 있어 무기가 될만 할, 아이돌을 했기에 손에 넣을 수 있었던 무기나 배운 교훈 같은 게 있나요?
이 : 아이돌은 여러 장르의 일을 할 수 있거든요. 그 덕분에 ‘아이돌인데도 XX을 할 줄 안다’며 무기가 되는 경우도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그런 부분이 아이돌의 강점이라 생각해요. 아이돌은 말하자면 ‘해결사 (万事屋, 의뢰를 받으면 어떤 일이건 해 주는 사람)’ 같은 존재예요. 물론 사람에 따라 잘 하는 것 못 하는 것이 갈리겠지만, 어떤 일이건 조금씩이나마 경험 해 볼 수 있기에 어떤 오퍼가 오건 ‘아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 할 수 있지요. 어지간해선 경험하기 힘든 일들도 ‘아이돌’이라면 경험 해 볼 수 있죠. 만약 제가 노기자카46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혼자 힘으로 ‘산마고텐’이나 ‘SMAP X SMAP’같은 방송에 나가지 못 했을 것이고, ANNA SUI의 광고에 실리지도 못 했을 거거든요.
- 그렇군요. 그렇게 보면 분명 해결사랑 비슷한 면이 많은 듯도 싶어요. 그럼 그런 ‘아이돌’이라는 직업을 해 나가는 데 있어, 본인이 가진 가장 큰 무기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이 : ‘평범하다’는 것이요.
- ‘평범’?
이 : 네. ‘평범’하다는 것. 주변에 있는 아이들 중에 귀여운 아이들도, 노래를 잘 하는 아이도, 연기를 잘 하는 아이들도 많아요. 그렇게 여러 ‘재능’들이 넘치는 아이들 가운데 제가 있으니 오히려 그게 튀어보이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저는 그런 재능이 없는 ‘평범’한 아이니까. 눈치 보지 않고 ‘평범’하게 의견을 이야기 할 수도, 재능 있는 사람들을 돋보이게 할 수도 있어요. 그렇기에 ‘평범’하다는 것이 오히려 보기 드문 무기가 된 것 같아요.
- 대단한 분석력이네요. 언제나 이코마상을 보면 느끼는 것인데, 사고방식이 성숙하신 것 같아요.
이 :아뇨. 그렇게 성장 시켜 준 게 바로 노기자카46일 뿐이죠.
- 감사하나요?
이 : 당연히 감사하죠. 지금 이렇게 제가 빛 날 수 있는 것도 노기자카 덕분이잖아요. 만약 이 그룹에 들어 오지 않았다면… 정말로 시시한 인생을 보냈으리라 생각해요. 노기자카가 저를 바꾸는 계기가 되어 준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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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링고군단 망상노트
1화 기획회의
‘망상’에서 시작된 군단이 라이브에서 곡을 피로하기까지
- 새삼스러운 질문일지도 모르지만 ‘사유링고군단’이 결성 된 건 언제쯤인가요?
마츠무라 (이하 ‘마’) : 1년 정도 전인 것 같아요.
- 사유링고군단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던 것이 작년 2월쯤이었던 것 같아서 말이죠. 분명 마츠무라상과 후카가와상의 대담 때. 마츠무라상의 상상 속에서 결성, 테라다상과 사사키상을 멤버로 넣었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요.
일동 : 헤에~
마 : 사유링고군단이라는 기획을 멋대로 망상 속에서 만들어 내고, 란제쨩과 코토코쨩을 포섭해야겠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말을 꺼내지는 못 했던 때였던 것 같네요. 아무래도 ‘이 이야기를 멤버들에게 해야겠다’고 생각 해도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 그 대담 취재로부터 2주쯤 뒤, 본지 (EX대중)에 연재중인 ‘노기메이트’ 취재차 마츠무라상, 사사키상, 이노우에상을 다시 만나게 되었지요. 그 때 사사키상에게 ‘사유링고군단’에 대해 물어 봤는데 전혀 모르는 눈치더라고요. 비슷한 시기에 테라다상과 와카츠키상의 대담도 있었기에 그 때 테라다상에게 물어봐도 전혀 모른다고만…
테라다 (이하 ‘란’) : 아. 그런 적 있었죠!
마 : 멋대로 결성하고 멋대로 신나하는 주제에 정작 본인들에겐 말을 못 하다니, 맛츙의 인간성이 이렇게 드러나네요. (웃음)
- 그 ‘망상’으로부터 1년 반이 지나, ‘사유링고군단’ 명의로 곡까지 받고, 라이브에서 선보이기에 이렀는데요.
사사키 (이하 ’코’) : 라이브 정말 즐거웠어요.
란 : 멤버도 멤버인데다가, 활동 자체도 그렇게 빡빡하지 않거든요. 사유링고군단에게 있어 ‘빡빡하게 굴지 않는다’는 건 의외로 굉장히 중요한 점이라 생각해요. 생각 해 보면 ‘상품’인 싱글의 커플링곡을 받고, 관객분들이 ‘돈’을 내고 참석하시는 라이브에서 곡을 선보인다는 거, 엄청 대단한 일이잖아요. 그런데도 곡을 선보이기 직전에 손으로 사과 모양을 만들고 ‘간바리맛츙!’이라고 원진을 짠 순간, 마치 다른 아이돌 그룹이 노기자카의 라이브에 찬조공연을 나온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기가쨩’처럼 말이죠.
마 : 란제 말 잘했다!
카린 (이하 ‘카’) : 그러게. 말 잘 했어.
코 : 그러게. 말 잘 했어.
란 : 정말? 에헤헤. 하여간 그렇기에 ‘백미님’을 선보일 땐 ‘노기자카의 멤버 테라다 란제’가 아니라 ‘사유링고군단 군단원 테라다 란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카 : 솔직히 지금까지는 라이브 같은 데에서 환성이 일어도 ‘저기에서 나에게 환성을 보내주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었거든요. 하지만 ‘백미님’을 피로 할 때 들은 환성은 ‘내가 아닌 다른 멤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유링고군단을 좋아 하기에 보내주는’ 환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기에 환성을 들은 순간, 소름이 쫙 돋았죠.
란 : 마츠무라상에게 오타게를 하는 안무가 있는데요, 리허설 땐 사실 카린 혼자 열심히 하고 저나 코토코쨩은 좀 약하게 했었거든요. 하지만 한 편으론 ‘공연땐 카린을 깜짝 놀라게 해 주자’고 코토코쨩이랑 입을 맞추어 두었었기에 본공연땐 전력으로 오타게를 했어요.
코 : 그랬죠.
마 : 그거 뭐야~ 귀여워~
카 : 저는 대기실에서 이코쨩이랑 오타게 같은 걸 자주 하지만 란제나 코토코는 리허설때도 별로 하지 않길래 ‘아무래도 부끄러운가보네’라 생각했어요. 그렇기에 공연때 두 사람이 전력으로 오타게를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지요.
마 : 사실 그 오타게, 제 등 뒤에서 하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거든요.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팬분들께서 열심히 따라 해 주시는 걸 보고 ‘셋 다 열심히 하고 있구나’라 생각했어요.
프랑스에 진출한 뒤, USJ에 어트랙션화도?!
- 이번 화는 앞으로 이 연재를 어떻게 진행 해 나갈 지에 대해 기획 회의를 해 보고자 해요. 저희측에선 ‘사유링고군단을 전 세계로 퍼뜨리자’ 라던가 ‘한 층 발전된 귀여움을 추구한다’던가 ‘세계를 평화롭게 만든다’던가 ‘하고 싶은 걸 한다’는 4가지 주제를 생각 해 봤는데요.
카 : 저는 사유링고군단을 피규어화 하고 싶어요.
란 : 에~ 옷 안을 훔쳐보거나 할 수 있잖아. 부끄러워~
마 : 아~ 헤어 어레인지 같은 것도 해 보고 싶네요. 아, 아예 짧게 커트 해 본다던가.
- 어? 그러고 보니 코토코상, 머리 자르셨나요?
코 : …아뇨…
카 : 아, 머리를 접어 넣어서 보브 형식으로 하고 있을 뿐이에요.
란 : 남자분들은 잘 모르실 거예요. 가끔 저렇게 보브 형식으로 머리를 접어 올리거나 하면 죽을 만큼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웃음)
카 : (기획서를 보며) 아, 이건 꼭 하고 싶어요!
마 : 응? 뭐?
카 : ‘군단장이 없는 틈을 타, 카린, 란제, 코토코 셋이서 오카야마현에 복숭아 따러 가기 기획’ 이거요. (웃음) 코토코, 복숭아 좋아하잖아.
코 : 응.
마 : 왜 맛츙은 없는데?
- 9월에 언더 라이브로 오카야마현에 가잖아요. 그 때 겸사겸사 로케 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웃음)
마 :에~ 맛츙도 복숭아 엄청 좋아하는데에~
란 : ‘3기생 스카우트’ 기획도 괜찮을 것 같은데.
마 : 아, 스카우트 한다면 마이얀 어때? 하하하하!!
란 : 백미님이네요. (웃음)
마 : 맛츙은 유치원에서 라이브 해 보고 싶어.
란 : 그거 괜찮을 것 같네요.
마 : 최근 들어 어린 애들이 너무 좋아서 말이죠. 어제 택시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줄 서 있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어린 애들을 데리고 있는 엄마들이었단 말이죠. 그 아기들 꼭 안아주고 싶었어요.
- 프랑스에서 라이브를 해 본다던가?
카 : 왜 프랑스인가요.
- 애니메이션을 비롯해서 일본 문화가 인기 있는 나라잖아요.
란 : 마스다 세바스챤(패션 디자이너, 캬리 파뮤파뮤의 컨셉 및 미술 감독도 맡은 바 있음)상에게 아트 디렉션을 부탁하고 프랑스에 간다면 완벽하게 모 하라주쿠계 아티스트(캬리…)분이랑 비슷할 것 같은데요.
마 : 그러고 보니 그렇네!
란 : 오, 목표가 생겼네요.
마 : 응. 그러게. 그리고 나중엔 유니바(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에 우리를 컨셉으로 한 어트랙션을 만드는 거야. (웃음)
- 스케일이 점점 엄청나게 커지네요 (웃음)
마 : 정말로 프랑스에서 먹힐 것 같기도 한데요. ‘(프랑스어 흉내를 내며) 솨유륑고군돤~’
카 : 발음 좋네. (웃음)
마 : 2년 전, 노기자카가 파리에 갔을 때 느낀 건데 사유링고 팬이 참 많이 계셨단 말이죠. 마이얀도 ‘사유링의 이름이 들어 간 우치와랑 타올을 들고 계신 분들이 많았다’고 이야기 했었고요. 아무래도 겉모습이 딱 봐서 알아보기 쉬워서 그런 것 같긴 하지만. 뭐, 사유링고군단의 의상도 눈에 띄기 쉬운 의상이니, 어쩌면 프랑스에 먹힐지도 모르겠네요.
란 : 그러고 보면 그럴지도!! 신천지를 개발 해 볼까요.
- ‘개척’도 아니고 ‘개발’이라니 뭔가 의미가 달라지는 것 같은데 말이죠. (웃음)
란 : 외국 분들께 얼굴을 알릴 기회가 있을 지도 모르잖아요.
- 그 외국 팬분들이 인터넷으로 사유링고군단의 활동기록 영상을 보고 계실지도 모르지요.
카 : 그렇다면 활동기록에 프랑스어 나레이션이라도 넣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마 : 번역 곤약 (도라에몽의 도구 중 하나)이 필요하겠네 (웃음) 코토코는 프랑스랑 잘 맞을 것 같아.
코 : 그런가요?
카 : 만약 프랑스에 가게 된다면, 제가 멤버들의 의상을 코디네이트 해 줄 거예요.
마 : 응. 잘 부탁해. 맛츙, 의외로 패션 센스가 없으니까.
카 : 에… ’의외’가 아닐 거라 생각하는데…
마 : 에? 나야말로 ‘아냐~ 센스 있어!’라고 커버 쳐 줄 거라 생각했는데?! (웃음)
카 : 예전보다야 좋아졌다고 생각은 해. (웃음)
- 그 외에 해 보고 싶은 일 있나요?
란 : 다카라즈카 출신이신 분들을 만나뵙고 발성법을 배우고 싶어요. 행복해 하며 연습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미소)
마 : ‘백미님’을 실제로 쌀이랑 타이업 하고 싶어요. 농협에 어필하러 가야하나.
카 : 의지 진짜 대단하네! (웃음)
마 : 직접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시작되지 않으니까.
란 : AKB분들이 예전에 쌀을 먹는 CM(농림수산성 홍보)에 나오신 적 있었는데, 그런 식으로 되면 좋겠어요.
카 : 저는 장기 스승님이신 토베 선생님댁이 사실 ‘일본에서 가장 비싼 쌀’을 생산하는 농가거든요.
마 : 오! ‘쌀’이랑 관계 있는 사람이 있었네!! 영업을 하러 가기 위해선 사유링고군단의 명함이 필요한데… 그리고 그 명함을 광고대리점에 뿌리고 다니는 거야!!
- 갑자기 뭔가 되게 적나라한 얘기가 되었는데요. (웃음) 대담종류는 어떤가요? 예를 들어 vs ‘여고조’ (아키모토 마나츠, 사쿠라이 레이카, 나카다 카나, 와카츠키 유미) 라던가.
마 : 아, 농담이 아니라 ‘여고조’는 정말로 라이벌이었는데요.
카 : 먼저 한 방 먹었죠.
란 : 앨범 ‘각자의 의자’에서 여고조가 먼저 곡을 받았을 때, 내심 분했어요.
코 : 이젠 저희 사유링고군단도 곡을 받았으니 다행이지만요.
- 여고조는 아무래도 여성스러움 면에서 한 수 위인 것 같은데요.
마 : 아, 그 점에서는 순순히 패배를 인정합니다.
카 : 바느질 종류라면 저도 할 줄 알아요. 베이킹도 할 줄 알고요. 카린토 만주 만들어 온 적도 있는데 기억 안 나요?
마 : 아! 그랬었지!
코 : 응. 맛있었어.
카 : 그러니까 우리도 안 져요.
마 : 뭐 저 쪽도 레이카쨩은 전력이 안 될 것 같고 말이지.
란 : 저도 사실 ‘퐁코츠’소리를 듣는 편인데, 레이카상에게선 저랑 같은 냄새가 나요.
마 : 아하하하하!!
마유코까지 해서 5명이 ‘아웃X디럭스’에 출연?!
카 : 얘기가 조금 옆으로 새는 것 같긴 한데, 저희 넷이 함께 ‘아웃 X 디럭스’ (마츠코 디럭스가 진행하는 버라이어티. 주로 ‘일반적이지 않은(=OUT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눔)나 ‘아리요시 반성회’에 나가고 싶어요. 아니다, 마유코(매니저) 까지 5명이서.
- 만약 그렇게 되면 마유코상이 스포트라이트를 독점 할 것 같은데요.
카 : 아 그건 그렇네요. (웃음) 그럼 마유코는 빼고.
란 : 근데 어느 부분이 ‘아웃’이라 우리가 나가는 거야?
카 : 전부. (웃음)
마 : 사유링고군단 자체가 노기자카 전체로 보면 ‘아웃’이잖아. 후후후후
란 : 아, 연재 제목은 정해졌나요?
- 아직 정하진 않았는데, ‘월간 사유링고군단’ 처럼 심플하게 하면 어떨까 싶긴 하네요.
란 : ‘사유링고군단 성장기’는 어떤가요?
마 : 음… MV의 이미지를 차용해서 ‘사유링고군단 망상노트’는 어때?
- 오! 그거 좋네요! 망상을 하나씩 이루어나가는 방식으로 기획을 만들어 나가면 될 것 같고. 그럼 마츠무라상,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 주시겠어요?
마 : 에… 음… 사유링고군단의 자유로운 부분은 잃지 않으면서, 이번 연재를 통해 지반을 단단히 다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 마치 선거라도 나가시는 것 같네요. (웃음)
마 : 그러게요. (웃음) 사유링고군단이 잘 부각되고, 읽다보면 응원 해지고 싶어지는 그런 연재를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아, 이 정도면 마무리 잘 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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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 아스카 브레이크 히스토리
‘최연소’라는 점을 무기로 한 ‘딸기우유’ 캐릭터
- 초등학교 3학년 때 까지는 ‘누구와도 사이 좋게 지내고, 혼자 있는 아이를 보면 먼저 다가가 말을 거는 밝은 아이’였다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사이토 아스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동급생들과의 관계가 원만히 흘러가지 않게 된 결과, 점차 다른 이들에 대해 마음을 닫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이토 본인은 그 시절을 되돌아보며 그 때가 자신의 인생에 있어 ‘바닥’을 쳤다고 표현한다. 그렇게 다른 이들에게 마음을 닫고 지내던 소녀는 중 1 여름때 노기자카의 오디션에 응모함으로 하여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당시 AKB48이나 하로프로를 좋아했던 그녀는 이미 과거에도 수 차례 인터뷰를 통해 ‘아이돌 덕분에 도움을 받았지요. 그렇기에 저 역시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런 마음으로 노기자카의 오디션을 받기로 했어요’라고 이야기 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오디션을 받은 이유를 물어 본 결과, 아무래도 오디션에 응모하게 된 이유는 그것 뿐만이 아닌 듯 하다.
사이토 (이하 ‘아’) : 물론 그것도 큰 이유예요. 하지만 아는 분께서 오디션을 보는 게 어떻겠냐고 추천 해 주신 것도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엄마가 ‘넌 성격이 어두우니까 오디션 받아보는 것도 좋을거야’라며 적극적으로 밀어붙였기에 한 번 받아봐야겠다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예전부터 같은 나이 또래보다는 연상들이랑 잘 맞았거든요. 학교에서도 동급생들보단 선배들이랑 잘 지냈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빨리 어른들의 세계에 들어가고 싶었던 것도 있었을 지 모르겠네요.
오디션 때는 사실 긴장감 보다는 불안한 마음이 컸어요. 주변에 있는 게 온통 예쁜 언니들 뿐이었으니까. 심지어 엄청나게 연구해서 캐릭터를 만들어 오는 아이나 자기 어필을 위해 엔카를 부르는 아이도 있었기에 그런 모습을 보며 ‘다들 엄청 진지하게 오디션을 받는구나’라고 느꼈습니다. 저는 사실 그 오디션에 ‘인생을 건다’는 생각은 없었기에 나중에 합격 발표가 난 뒤에는 제가 합격했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어요..
- 합격 당시 그녀의 나이는 13세, 그룹 내 최연소 멤버였다. 초창기에는 ‘명실상부한 아이돌’ 캐릭터로 갈 생각이었기에, 좋아하는 음식을 ‘딸기우유’라 소개하기도. 오미타테회에서도 ‘딸기우유를 주는 사람이랑은 금세 친해진다’고 어필 하기도 했다.
아 : ‘아이돌’이 좋아할만한 음식이 뭐가 있나 생각 해 본 결과 ‘딸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 ‘딸기를 좋아해요’라 하면 너무 노린 티가 날 것 같아서 ‘딸기우유’라는 결론에 도달했지요. 그리고 당시에는 지금보다도 더 ‘나만의 무기’라 할만한 게 없었기에 ‘최연소’라는 점을 무기로 삼아야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이야 그 ‘딸기우유’가 제게 있어 흑역사지만 (웃음) 당시에는 저 나름대로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아이돌상을 표현해야만 한다 생각했거든요. 아, 그렇다고 무리했었다는 건 아니에요. 그 땐 그래도 지금보다는 순진한 구석이 있었거든요. (웃음) 아이돌이 된 이상 그런 식으로 어필하는 건 당연한 거라 생각했었거든요.
- 데뷔 싱글 ‘구루구루 커튼’에서 선발에 뽑힌 사이토, 하지만 2nd 싱글 ‘오이데 샴푸’에선 선발에서 탈락 해 버렸다. 그리고 그 ‘선발 탈락’을 통해 지금껏 맛보지 못 했던 ‘분함’을 맛 보았다는 그녀.
아 : 제 안에서 ‘노기자카’라는 존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 당시가 지금보다 작았어요. 하지만 선발에서 탈락했을 때 느끼는 분한 마음의 크기는 지금보다 그 때가 더 컸던 것 같네요. 정말 너무나도 분해서 어찌 할 줄을 모를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프론트에 서고 싶다던지 한 건 아니고, 선발 3열에 서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지요.
‘센터란 자리는 즐겁기만 한 자리는 아니구나…’
- 3rd 싱글 ‘달려라! Bicycle’ 때도 사이토가 선발에 복귀하는 일은 없었다. 전국악수회의 미니 라이브때 선발 멤버들이 ‘달려라! Bicycle’을 피로하였을 때, 언더인 사이토는 천을 들고 선발들의 모습을 가려주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런 연출에 분함을 느낀 사이토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하지만 동시에 같은 싱글에 실린 커플링곡 ‘해류의 섬이여’에서는 센터에 발탁되기도 한 사이토. 그녀에게 있어 ‘해류의 섬이여’는 정말로 의미 깊은 곡이라고 한다.
아 : 당시 언더 멤버들은 미디어에 출연 할 기회가 거의 없다시피했어요. 그렇기에 유닛곡의 센터를 하게 된 것은 정말로 기뻤어요. 지금도 ‘해류의 섬이여’를 좋아한다는 팬 분들이 계시고요.
하지만 요즘 들어 버스데이 라이브 등지에서 ‘해류의 섬이여’를 피로 할 땐 당시의 신선한 기분이 되살아 나지 않아서… 팬분들께서도 ‘마쿠하리 버스데이 라이브 (2013)때의 ‘해류’가 가장 좋았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으시고요. 올 해 버스데이 라이브 땐 그 때의 신선한 기분이 되살아났으면 좋겠어요.
- 관객들이 참가하는 뮤지컬 ‘16명의 프린시펄 deux’ 당시에는 본공연이 끝난 뒤 라이브 때, 공연에 참가하지 않았던 호시노 미나미를 대신하여 이코마 리나, 이쿠타 에리카와 함께 프론트에 서 ‘너의 이름은 희망’, ‘샤키이즘’ 등을 퍼포먼스 하기도 했던 그녀. 이전까지는 ‘쿨한 모습’을 잃지 않기 위하여 노력했던 그녀 역시 주목도가 오름에 따라 ‘웃으면서’, ‘전력을 다 해’ 퍼포먼스 하는 데에 주목하게 되었다고 한다. 라이브를 통하여 그녀를 알게 되고, 팬이 되는 사람도 적지 않았기에 본인 역시 ‘그런 기회들을 통하여 라이브에 대한 마음이 바뀌었다’고 이야기 한다.
아 : 당시에는 아무래도 순진했었기에 그저 단순히 프론트에 서서 퍼포먼스를 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즐거웠어요. ‘샤키이즘’의 ‘날려 가는’ 안무를 하며 ‘즐겁다’고 생각하곤 했어요. 사실 이전까지는 ‘전력을 다 한다’는 것을 내보이는 것이 아무래도 좀 창피했거든요. 하지만 그 때부터는 전력으로 웃으며 노래하고 춤 추는 데 대한 거부감이 사라졌어요.
- 뒤이어 발매된 4번째 싱글 ‘제복 마네킨’에선 선발에 복귀하였지만, 5번째 싱글 ‘너의 이름은 희망’, 6번째 싱글 ‘걸즈 룰’에서는 다시금 언더가 되어버리는 등, 한동안 사이토는 선발과 언더 사이를 왔다갔다하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존재감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 6번째 싱글의 커플링곡 ‘선풍기’에서는 센터에 서기까지. 그리고 그 ‘선풍기’는 팬들의 ‘아아아~!’라는 환성과 함께 라이브의 분위기를 띄우는 데 빼 놓을 수 없는 곡이 되었다. 또한, 비슷한 시기 NHK의 ‘R의 법칙’ 레귤러로 발탁, 개인 활동도 늘어나게 되었다.
아 : 처음 언더곡 센터로 서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딱히 그다지 부담감이 있진 않았어요. 어느 쪽이냐 하면 단순히 기뻤다고 할까요. 하지만 정작 MV촬영 때, 역 V자 포메이션의 맨 앞에 서고 보니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데에서 외로움과 ‘센터라는 자리의 어려움’을 알게 되었지요. ‘센터란 자리는 즐겁기만 한 자리는 아니구나…’라는 것을 실감했지요.
그리고 지금도 고민하고 있는 문제점을 깨닫기 시작 한 것 역시 그 때였어요. ‘나에겐 개성이라 부를만한 게 없다’는 점을 깨닫곤 엄청 초조해지기 시작했지요. ‘뭔가 한 가지 특출한 것을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몰랐’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그 뒤로도 한동안 그런 초조함은 이어졌습니다.
- 자기 자신의 개성을 어떻게 내보여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고뇌하던 와중에 2기생 호리 미오나가 센터 자리에 서게 된 파격적인 싱글 ‘바렛타’가 릴리스 되었다. 이 작품을 통해 오랜만에 선발에 복귀한 사이토는 ‘선발 3열과 언더 중 어느 쪽이 더 많은 사람의 눈에 들지’에 대해 답답함을 느낀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선발에 합류한 나카모토 히메카와 의기투합, ‘격차사회 콤비’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아 : 미오나가 센터에 섰다는 데에 대해선 딱히 초조함이라 할만한 건 없었어요. 다만 ‘어른들은 꼭 저렇게 어그로를 끄는구나’라는 생각은 했지만요. (웃음) 함께 선발에 든 히메탄이랑은 처한 환경이나 사고방식이 여러 모로 비슷했기에 자주 이야기 하게 되었지요. 당시에는 재미삼아 삐딱하게 이야기 하곤 했는데, 요즘 들어선 아예 생각하는 것 마저 삐딱해 져 버렸네요. (웃음)
‘노기단’에서 느끼게 된 ‘유대감’, ‘드럼’이라는 이름의 ‘개성’
- 8번째 싱글 ‘깨닫고 보니 짝사랑’에서 사이토는 다시금 언더로 내려앉게 되었다. 그리고 사이토 본인에게 있어 가장 괴로웠던 시기가 시작되었다.
아 : ‘깨닫고 보니 짝사랑’때 처음으로 ‘뮤직스테이션’에 나갔잖아요. 그 모습을 보며 ‘아, 노기자카도 드디어 일반 대중에게 퍼지기 시작했구나’라고 실감하게 되었습니다만, 동시에 그런 자리에 나갈 수 없었다는 현실도 느끼게 되었죠.
싱글 특전으로 언더 라이브가 열리게 되었기에, ‘이젠 마이얀같은 선발 멤버들이랑은 아예 다른 그룹이야’라고 억지로 자신을 추스렸어요.
-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깜깜한 어둠 속을 방황하는 것만 같은 나날을 보내던 그녀에게 한 줄기 빛이 비추었다. 키시단과의 대결 이벤트였던 ‘노기자카46 vs 키시단 ~학생복 반역동맹~’을 앞두고 ‘노기단’이라는 밴드를 결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선보인 사이토의 드럼 실력은 팬들 뿐 아니라 키시단의 멤버들마저도 절찬할 정도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남들이 칭찬을 해 주는 것이 일치 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고 회상하는 사이토. 지금껏 그토록 간절히 찾아 왔던 ‘개성’이 드디어 꽃을 피운 순간이었다.
아 : 사실 드럼 자체는 초등학생 때 부터 해 보고 싶다 생각 해 왔었어요. 하지만 그런 꿈이 노기자카46에서 실현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죠. 물론 자신있게 ‘나의 무기’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치는 것은 아니지만, 세이부돔에서 열린 버스데이 라이브 때 노기단으로서 연주를 한 일이나, 방송에서 드럼을 치거나, 잡지 (OVERTURE 003호)에서 아야노코지 쇼(키시단 리더)상과 대담을 하는 등, 드럼을 통해 수 많은 가능성이 열렸다는 건 정말로 기뻐요.
그리고, 밴드라 하면 역시 끈끈한 유대감이잖아요. 사실 이전까지는 ‘유대감이 뭐야’라며 반쯤 비웃곤 했었는데 (웃음) 노기단을 통해 ‘유대감’이라는 것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었어요. 노기단 활동을 하면서 ‘아, 이게 유대감이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요. 노기단이 앞으로도 계속 된다면 좋겠어요.
- 싱글 특전에 불과했던 언더 라이브가 정기 공연화 되며, 사이토는 언더의 프론트이자 중심 멤버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센터에 선 이토 마리카, 이노우에 사유리를 곁에서 보좌하는 동시에 ‘너희들(お前ら)’로 시작되는 도발적이고 독특한 독설 MC를 거침없이 내뱉는 사이토의 모습은 어느 사이엔가 그녀의 또 다른 ‘개성’이 되었다.
아 : 솔직히 예전에는 ‘필사적으로 열심히 하는 것’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게 아무래도 꼴사납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제가 ‘필사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며 팬분들께서 기뻐 해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 때부턴 전력으로 퍼포먼스 하게 되었지요. 특히 2014년 10월에 있었던 언더 라이브 세컨드 시즌을 통해 의식이 180도 바뀌었어요. 진심으로 노기자카라는 그룹을 대하게 된 계기가 바로 그 라이브였지요.
프론트 멤버이긴 했지만 센터가 아니었기에 비교적 자유로웠다는 것이 컸던 것 같아요. 제가 어느 정도 판을 벌려놔도 마리카나 사유리가 수습을 해 주었거든요.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많지 않았고, 저 스스로도 저 자신에게 특정한 이미지를 씌우고 싶진 않았거든요.
- 그런 ‘언더 라이브’는 그룹 전체를 휩쓰는 바람이 되었다. 2014년 12월 12일에는 ‘아리아케 콜로세움’이라는 큰 무대를 ‘언더’만으로 메우는 수준으로 까지 성장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사이토의 마음 속에는 ‘선발과 언더’의 관계에 대한 위화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아 : 아리아케에서 열린 언더 라이브는 개인적으로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아요. 지금도 라이브를 할 땐 ‘아리아케 때 처럼은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을 할 정도입니다.
언더만의 힘으로 큰 무대를 가득 메운 건 물론 정말 대단한 일이고 기뻤지만, 동시에 ‘시험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순수하게 즐길 수가 없었어요. 멤버나 팬분들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라이브의 구성이나 타이밍 같은 부분이 ‘응? 이건 좀…’싶은 부분이 많았거든요.
‘CUTiE’ 전속모델을 통해 자신감을 얻다. 그 뒤 찾아온 ‘복신’진입
- 2015년이 시작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 사이토에게 터닝 포인트가 찾아온다. 패션잡지 ‘CUTiE’의 단독 표지에 발탁 된 사이토는 바로 그 다음달, ‘CUTiE’ 역사상 최초의 ‘전속모델’로 기용되기에 이른다. 노기자카46의 멤버로서 패션지의 전속모델로 발탁 된 것은 시라이시 마이에 이어 두 명째였다.
아 : 스케쥴을 받아 보니 거기에 ‘‘CUTiE’ 표지’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뭔가 착오가 있나’ 싶었는데 그 다음날 새로 받은 스케쥴표에도 ‘‘CUTiE’ 표지’라고 적혀 있었어요. 그 때부터 ‘어떻게 해야 ‘CUTiE’의 세계관을 망치지 않을까’로 고민하게 되었죠. 정작 표지 사진 자체는 권두 특집 기사 촬영을 하면서 찍힌 사진 중 한 장이 쓰였기에 그렇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말이에요.
이전까지는 카메라에 찍히는 것 자체가 좀 고역이었는데, ‘CUTiE’ 표지가 호평을 받은 뒤로는 ‘화장이 바뀐다면 내가 사진에 찍혀도 괜찮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점점 사진 찍히는 것이 즐거워졌어요.
모델 일을 시작하고 나서 사진 찍히는 것을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예쁘게 찍힐까를 고민하게 되었으며, 악수회를 할 때도 복장이나 머리 모양 같은 데에 더 신경쓰게 되었어요. 다만, 모델 일을 하면 할 수록 제게 어떤 부분이 부족한 지 알게 되어서 요즘엔 오히려 예전보다 더 어렵게 느껴지곤 해요.
- 언더 라이브에서의 활약 덕분일까, 11번째 싱글 ‘생명은 아름다워’에선 다시금 선발에 복귀하게 되었다. 커플링곡 ‘미리 이야기하는 로맨스’에선 호시노 미나미와 함께 더블 센터에 서기도. 다만 일부 팬들 사이에선 ‘역시 선발 3열보다는 언더 프론트가 낫지 않느냐’는 평가도 있었다.
아 : 개인적으론 그 당시는 제 실력이나 인기보단 아무래도 ‘CUTiE’ 덕분에 선발에 들었다고 생각하거든요. 팬분들께서 ‘선발 맨 뒷줄보단 언더 맨 앞줄이 나은 거 아냐?’라고 말씀하실 때 마다 ‘어차피 이 자리는 ‘CUTiE’가 만들어 준 자리인걸요’라고 마음속으로 되뇌곤 했어요. 그렇기에 선발로서의 일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CUTiE’에 최선을 다했던 것이고요. 그렇게 하다보면 제 힘으로 선발에 머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 하지만 그 ‘CUTiE’는 얼마 지나지 않아 7월호를 마지막으로 무기한 휴간에 들어가게 된다. 사이토는 같은 출판사 (다카라지마샤)의 잡지 ‘sweet’의 레귤러 모델로 옮겨가게 되었다. 동시에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ANNA SUI의 2015년 가을 콜렉션 아시아권 비주얼 모델로 발탁되기도 하였으며, 만화잡지의 표지를 장식하는 경우도 늘어나게 되었다.
이에 발맞추어 12번째 싱글 ‘태양 노크’, 13번째 싱글 ‘지금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에선 2열에 진입, 처음으로 10복신에도 들게 되었다.
아 : 복신에 들었을 때, 솔직히 기쁜 것 보다는 ‘미나미의 대칭으로 뽑혔을 뿐’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요. ‘기쁨’을 느꼈다기 보다는 ‘사명감’ 같은 것을 느꼈다고 할까요. 맡겨진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어요.
지금도 그 때 저를 복신으로 뽑아주신 건 제 실력때문이 아니라 ‘기대치’로 뽑아주셨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물론 ‘복신’에 뽑혔다는 것만으로도 의식의 변화는 있었지요. 모바메도 성실하게 보내려 노력하게 되었고, 방송에서 말을 시키셨을 때 ‘무리예요’라고 이야기 하지 않도록 노력했고, 제가 이야기 하지 않을 땐 최대한 미소 지으려 노력했고… 저 나름대로는 엄청 노력하게 되었지요.
- 2016년, 14번째 싱글 ‘하루지온이 필 무렵’에선 복신에 다시금 진입하였을 뿐 아니라, 버라이어티 방송을 통해서도 본인의 개성을 발휘 할 수 있게 된 사이토. 발렌타인데이 기획 때 2기생들에게 선택을 받지 못 해 울음을 터뜨린다던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까지 음료수 캔을 따 본 적이 없는 사이토를 위해 ‘홀로서기 기획’이 방송된다던가 하는 등, ‘노기중’에서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아 : 딱히 의도 한 건 아니지만 말이죠. (웃음) ‘노기도코’와 ‘노기중’ 초기에는 녹화 한 걸 보곤 했는데, 제 분량이 늘어 난 뒤론 차마 보기가 힘들어지더라고요. 제 모습을 보면서 ‘이 녀석 참 재미 없구만’이라고 생각하게 되는지라. (웃음)
대체적으로 팬분들께서 ‘이 회에 나온 아스카가 참 좋았다’고 하시는 회차는 대부분 제가 부끄러운 일을 했을 때거든요. 특히 라디오 체조가 나온 회 같은 경우에는 제 무지가 들통 난 회차잖아요. (웃음) 아, 하지만 발렌타인데이 기획 때 운 것을 보고 팬이 되신 분도 계신데다가, 예전부터 응원 해 주시던 팬분들께서도 ‘예전에 비해선 인간다운 부분이 드러난다’고 기뻐 해 주시기도 했어요.
‘아이돌답지 않아도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희망
- 언더 라이브를 통해 얻은 퍼포먼스 능력 향상과 의식 변화, 그리고 ‘CUTiE’, ‘sweet’ 모델 활동을 통해 얻은 경험, ‘노기중’으로 부각된 인간미, 악수회 인기 상승… 온갖 긍정적인 요소가 모이고 모인 결과, 15번째 싱글 ‘맨발로 Summer’에서 처음으로 센터에 서게 된 사이토. 선발 발표 당시에는 ‘밝은 곡이랑은 정말 어울리지 않기에 정말 죄송하단 말 밖엔 드릴 말씀이 없어요… 요즘 노기자카 기세가 좋은데 저 때문에 CD판매량이 떨어 져 버릴 거예요’라며 네거티브한 발언을 하였으나, 현재는 긍정적으로 센터라는 자리에 서고 있다고 한다.
아 : 지금은 머릿속 정리가 다 되었기에 마음을 다잡았어요. 밝은 곡도 소화 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리허설 때도 지금까지보다 더욱 더 진지하게 임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이코마쨩이 엄청 신경을 많이 써 줬거든요. 선발 발표 직후에도 가장 먼저 말을 걸어 주었고, 그 뒤로도 함께 일을 할 때마다 적어도 한 번은 꼭 ‘센터로서의 사이토 아스카’를 칭찬 해 주고요.
이코마쨩 본인은 기억 못 할 지도 모르겠는데, 언젠가 ‘언더에 있는 아이들에게 있어 아스카는 희망이야’라고 이야기 해 준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이 정말 기뻤어요. 언더에 있었던 때와 선발에 있었던 때가 거의 반반인데다가, 언더에 있는 멤버들의 마음도 알고 있기에, 현재 언더에 있는 어린 멤버들이 저를 보고 ‘아이돌답지 않은 사이토 아스카조차도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는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제 힘만으로 뭔가를 바꿀 수는 없는 일인데다가, 지금 당장 노기자카라는 그룹을 바꿀 필요도 없지만, 제 존재가 미래로 이어지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네요.
- 작년 8월 9일에 열린 ‘한 여름의 전국투어 2015’ 나고야 공연 땐 사이토 아스카를 부각시칸 오프닝 영상이 상영되었다.
다카야마 카즈미의 ‘아스카는 가장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는 멤버라고 생각한다’는 내레이션이 흘러 나온 뒤, ‘아스카가 노기자카의 중심에 서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말이 이어졌다. 이 때 화면에 뜬 자막은 ‘아스카 노기자카 미래’라는 세단어였다.
그리고 그 영상으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그 영상에서 이야기 했던 ‘미래’가 ‘현실’이 되었다. 그룹의 중심에 선 사이토 아스카의 모습은 다름아닌 노기자카라는
그룹의 현재인 동시에 미래를 상징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으리라.
‘노기자카 공사중’ 프로듀서가 이야기하는
‘사이토 아스카가 브레이크 한 이유’
- 사이토 아스카상 본인은 스스로가 버라이어티 면에서 많이 변했다고 이야기 하시던데, 프로듀서분께서 보시기엔 어떠신가요?
프로듀서 (이하 ‘프’) : 아스카는 기본적으로 먼저 말을 꺼내는 타입이 아니었잖아요. 그랬던 것이 작년 말에서 올 해 초 즈음해서 ‘아 얘 변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어요. 중 1때 노기자카에 들어 온 뒤, 언더와 선발을 오가고, 모델 일을 하기도 한 데다가 고등학생이 되며 정신적으로도 성숙해 졌다고나 할까요. 이런 말을 하면 본인은 ‘아녜요’라고 부정할 것 같긴 하지만, ‘일’과 ‘인간적 성장’이 절묘하게 맞물린 결과라고 생각해요. 저도 예전부터 ‘힘 내’라고 얘기하곤 했거든요. ‘무슨 말을 해도 바나나맨이 살려 줄 테니까 아스카는 아스카 답게 하면 돼’라고.
- 어쩌면 발렌타인데이 기획이 본인에게 있어 하나의 계기였던 것 같은데요.
프 : 발렌타인데이 기획 이후로 바나나맨이 ‘아스카쨩~’이라고 좀 더 쉽게 놀릴 수 있게 되었죠. 사실 그 회 녹화 뒤에 시타라상이 ‘요즘 아스카가 열심히 한다’고 칭찬을 하시기도 했고요.
- 제멋대로 라디오 체조도 재미있었죠.
프 : 해 본 적이 없다는 게 정말 흥미로웠어요. 사실 저희 세대만 해도 라디오체조를 모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으니까요. 대체 얘는 지금껏 어떻게 살아 온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 때 부터 구성회의 때 ‘재미 있는 아이’를 거론할 때 아스카의 이름이 나오게 되었어요.
- 방송이 시작 된 지 5년이나 되어서 새로운 캐릭터가 추가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프 : 네 그렇죠. 게다가 아스카는 성실하기까지 하니까 말이죠. 사실 방송 초기만 해도 아스카가 본인의 본모습 뿐 아니라 방송적인 면까지 생각해서 행동 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말을 시키면 ‘에~’라고 이야기 하면서 그 짧은 시간동안 생각해서 발언을 하죠. ‘노기중’은 녹화 방송이니까 그 ‘에~’부분은 편집하면 되거든요. 어휘력도 있고 말을 고르는 센스도 있는데다가, 독설을 종종 하긴 하지만 그런 부분까지도 미워 할 수 없는 매력이 있고 말이죠. 뭐, 처음엔 솔직히 ‘건방진 꼬맹이구만’ 이라 생각했었지만 말입니다. (웃음)
- ‘센터’ 사이토 아스카상에 대해 기대하고 있는 게 있다면?
프 : 아스카는 센터라곤 해도 이끌어 가는 타입의 센터는 아니기에, 지금까지처럼 방송에 임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애초에 버라이어티 타입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무리하지 말고 본래 자신의 모습을, ‘사이토 아스카’라는 인간을 끌어 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아스카가 버라이어티라는
‘상자’안에 들어 갔을 때 어떤 발언을 할 지, 기대가 되네요.
퍼포먼스로 보는 ‘변화’와 그 ‘이유’
- 인상 깊었던 라이브는 언제였나요?
아 : 작년 크리스마스 라이브입니다. ‘멋있는’계열의 곡들을 초반에 배치 한 라이브는 처음이었기에 신선했고, 크리스마스다운 기획을 하면서도 라이브 전체의 템포가 엉키지 않았으니까요.
- 퍼포먼스 면에서 변화의 계기는?
아 : 첫 번째 계기는 언더 라이브 세컨드 시즌입니다. 퍼포먼스의 통일성에 대해 그룹 전체가 하나가 되어 생각 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거든요. 두 번째 계기는 ‘CUTiE’의 모델로 발탁 된 일입니다. 모델 경험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춤을 추면서도 예쁘게 보일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되었거든요. 세 번째 계기는 비교적 최근이네요. 표정이 풍부하지 않아 밝은 곡을 하는 데 대해 걱정이 있었지만, 최근 들어 의식해서 표정을 지으려 하고 있거든요.
- 팬 여러분께서 흔드시는 사이리움이나 타올, 잘 보이나요?
아 : 네. 눈에 확 들어와요. 예전에는 사이리움이나 타올이 적어서 의기소침해지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일부러 안 보기도 했지만요.
- 투어를 앞두고 있는데, ‘맨발로 Summer’가 첫 곡이 될 가능성도 있겠네요.
아 : 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첫 곡에서 실망하시지 않도록 노력 할 거예요. 팬 분들께서 절 보면서 ‘무리하고 있네’라고 생각하시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북돋을 생각입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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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부정 해 왔던 아이돌로서의 자신을 이제서야 되찾았어요’
‘마릿카의 귀환’
‘개성’과의 사투
- 후카가와상의 졸업 콘서트를 본 뒤, 여러 잡자의 기고자들, 그리고 편집자들이 모여 함께 밥을 먹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오늘 콘서트에서 누가 괜찮았느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날 공연의 주인공이었던 후카가와상 이외에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것이 다름 아닌 이토상이셨어요. ‘이토의 퍼포먼스가 좋았다’며 말이죠. 실제로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었기에, 그 때 ‘아, 인터뷰를 해야겠구나’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인터뷰를 청하게 되었습니다.
이토 (이하 ‘마’) : 감사합니다! 기쁘네요!
- 그럼 새삼스럽긴 하지만 라이브 얘기를 좀 여쭈어 볼게요. 후카가와상의 졸업 라이브가 열린 이틀동안은 평소와는 달리 기합이 더 들어 갔었나요?
마 : 네. 우선 그렇게 큰 회장에서 라이브를 하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었기에, 하루 바삐 라이브를 하고 싶었던 것도 있고, 거기다가 마이마이의 졸업이라는 의미도 더해져 평소보다 더 의욕이 넘쳤지요.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쌓였던 것들을 풀어 낼 수 있는 기회가 라이브뿐인데다가, ‘최선을 다 해 활동하고 있다’고 어필 할 수 있는 곳 역시도 라이브 뿐이었기에… 매번 라이브를 할 때마다 마음 속으로 ‘누구보다 내가 가장 이 라이브를 즐길거야’라고 다짐하곤 하거든요.
- 그런 마음이 퍼포먼스에 잘 나타났던 것이군요.
마 : 그랬나요? 정말 다행이네요! 전력을 다 하길 잘 했네요.
- 이런 말을 하면 정말 실례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내심 ‘15번째 싱글에서 선발에서 떨어졌기에 동기부여가 안 되는 건 아닐까’하는 걱정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라이브가 시작 되고 보니, 누구보다도 라이브를 즐기는 게 눈에 보였기에 보는 저마저 감동을 받았지요. 안심도 되는 동시에 ‘마리카상 대단하네!’라고 재확인 할 수 있었어요.
마 : 그러셨군요. 하긴, 선발 발표 직후였지요. 선발에서 떨어 진 데 대해서는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 부분도 있었기에, 한 편으로는 ‘왜 언더로 떨어졌을까’라 생각하면서도 그런 기분을 라이브에 반영시켜서는 안 된다고, 오히려 단순히 저 자신을 내 보일 수 있는 장소로 삼자고 생각했지요. 지난 1년동안 선발 3열에 서서 저 나름대로는 스스로를 열심히 어필했다 생각하고, 실제로 그런 것들이 ‘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기에 그런 면에서는 만족하는 부분도 있습니다만, 다르게 생각하면 저 자신이 만족을 하느냐 마느냐와 주변에서 제게 무엇을 원하느냐는 조금 다른 것 같거든요. 그런 것을 깨닫게 된 건 선발 활동 후반기였습니다만. 뭐, ‘너 그런 면에서는 아이돌성이 부족한 것 아니니?’라고 지적을 받긴 하지만요. (웃음)
- 누가 그런 얘기를 했나요?
마 : 스태프분께서요. 처음에는 저도 ‘아뇨, 저는 저 나름대로 해 나갈 거니까 괜찮아요’라며 고집을 부렸지요. 그러다 보니 점점 그렇게 되어 가더라고요. 팬층도 많이 변했고.
- 아무래도 서브컬쳐쪽에 관심 많은 분들이 모이시나요?
마 : 저 스스로가 그런 쪽으로 가다 보니, 아무래도 그렇게 되더라고요. 아, 물론 그렇게 취향이 맞는 팬분들이 늘어 난다는 건 참 기쁜 일이고, 좋은 경향이라 생각해요. 저 스스로도 저 자신의 그런 부분을 많은 분들께서 알아 봐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고. ‘그게 내 개성이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했었거든요. 하지만 동시에 ‘아이돌’다웠던 시절의 저 자신을 어느 사이엔가 잊고 있었던 것이지요.
- 그렇게 보면 정말로 ‘중요한 것’을 되찾으신 것 같은데요. 라이브만 봐도.
마 : 그렇죠. 정말로 어느 사이엔가 완전히 잊고 있었지요. 스태프분께서 그런 점을 지적하셔도 ‘그건 어디까지나 과거의 자신이고, 그런 과거에 속박되는 건 싫어요’라고 이야기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웃음) 아니, 잊었다기 보다는 ‘부정’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신나서 뛰놀던 아이돌다운 저 자신의 모습을 말이죠. 그렇게 아이돌스러운 모습이 ‘저의 좋은 점’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물론 아이돌답게 활동하던 때는 그 때 나름대로 즐거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시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던 건 아니었거든요. 당시에는 사진도 귀엽게 나온 것만 올리고 장난스럽게 찍은 건 전혀 안 올릴 정도였고… 반대로 ‘난 이제부턴 개성을 살릴거야’라고 정한 뒤에는 오히려 설정 사진밖에 안 올리게 되었어요. 이모티콘도 안 쓰게 되었고, 문장에도 패기가 없어졌달까요. (웃음) 하지만 그런 정 반대의 일들이 독립 된 게 아니라 결국은 하나로 이어 져 있었다는 것을 정말 최근 들어서야 알게 되었어요.
- 결과적으로 가장 좋은 방식으로 되돌아 오신 거네요.
마 : 지금 생각 해 보면 ‘왜 그 때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던 걸까?’, ‘이런 것들을 선발에 있을 때 알아 챘더라면 더욱 더 아이돌답게 빛날 수 있었을텐데’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그대로 지금이라도 눈치 채서 다행이다’라 생각해요. 정말이지 팬 여러분이나 스태프분들께도 걱정을 끼쳤기에…
‘부활의 계기’
- 아이돌로서의 모습… 음, ‘마릿카’라고 하죠. 그 ‘마릿카’의 모습을 다시 되찾아야 하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마 : 계기라… 정말 최근 일인데요, 언더 MV촬영 때였던 것 같아요. 언더에 갔지만, 앞줄에 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거든요. 그렇게 제게 스포트라이트가 주어진 것은 정말 오랜만의 일이기도 하고, MV의 내용 자체가 귀엽고 왁자지껄한 내용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촬영을 겪으면서 ‘아,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구나’라고 깨닫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순간, 예전의 자신을 되찾을 수 있었고요. 아마 이 작품을 보신다면 ‘아, 마릿카가 돌아왔구나’라고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 MV이외에도 도 한 가지 특전영상에 나가게 되었는데, 그 작품에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었거든요. 그 작품에서도 정말 오랜만에 ‘영상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내 보였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개인 PV들을 제외하면, 제가 나온 영상물 중 이 정도로 만족이 되는 건 1년만에 보는 것 같아요.
- 지금까지는 말 하자면, ‘내가 하고 싶은 것만을 하고, 그것에 대해 평가를 받으면 된다’는 스탠스였던 것인가요?
마 : 네. 아무래도 주변에 있는 다른 멤버들의 개성이 강하다 보니 그 가운데 저 자신을 어떻게 어필 할까 하는 고민의 결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그것을 통해 좋아하는 것들을 일로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기로 했었으니까요. 어느 정도는 실제로 성취하기도 했고.
- 그렇게 된다면 정말 좋은 일이지요.
마 : 네. 좋은 일이죠. 하지만 아이돌로 활동하는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밸런스가 치우쳐버리거든요. 이전에 부브카상과 인터뷰를 했을 때, ‘마릿카’와 ‘마리카’간의 밸런스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당시에는 아무래도 ‘이토 마리카’가 혼자 너무 앞서나가서 어느 사이엔가 ‘마릿카’의 존재가 지워지고 있었던 것이죠.
- 마리카와 마릿카, 둘 다 개성이 강하다 보니 아무래도 서로 충돌 해 버리는 것이군요.
마 : 네. 그래서 한 때는 ‘둘 사이에 상성이 안 좋은 것은 아닌가’ 싶어서 고민이 되었어요. 팬 여러분께서도 ‘마리카는 이대로도 괜찮아’라고 해 주시고 ‘이대로도 괜찮으니까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달려 가면 돼’라고 해 주셨기에 ‘아, 이대로 해도 되는구나’라고 착각 한 면도 있고요. (웃음) 물론 팬 분들의 탓은 아니라, 결국 제가 착각 한 게 문제라는 얘기예요.
- 그런 가운데 맞이한 ‘오랜만의 라이브’, 그것도 ‘후카가와상의 졸업’이라는 요인 덕분에 더더욱 기합이 들어갔다?
마 : 아무래도 마이마이는 정말로 특별한 존재이기에… 최선을 다 해 보내주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선발 발표 직후였기에 거기서 주눅 든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던 것도 있고요. 억지로라도 웃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미 끝난 얘기니까 마음을 다잡아야 하겠다고도 생각했고요. 아마도 마음 어딘가에서 ‘변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네요. 스스로가 잃었던 부분들을 이번 투어를 통해 되찾고 싶다고 마음한 구석에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 선발에서 떨어졌다는 결과는 절대로 ‘좋은’ 결과라고는 못 하겠지만, 그런 일을 겪으면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 것이네요. 스스로를 더욱 더 좋게 하기 위하여 심사숙고 할 수 있는 크나 큰 계기가 되었으니까 말이죠.
마 : 네. 그런 계기가 되었지요. 정말 좋은 계기였어요. 그렇기에 앨범곡인 ‘계기’ 가사를 보면 마음에 사무치지요. (웃음)
‘존재의의’
- 아, 아까 얘기로 돌아가는데, 이번 라이브를 보면서 ‘역시 이토상은 무대 위에서의 잠재력이 큰 사람’이라는 점을 재확인 할 수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무대를 본 수 많은 사람들이 ‘마리카가 좋았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겠고요. 본인은 ‘난 무대 위에서 빛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나요?
마 : 과거 언더 라이브를 통해 갈고 닦은 경험이 크다고 생각해요. 언더 라이브를 통해 ‘라이브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배울수 있었고, 선발에 간 뒤로는 객관적으로 언더 라이브를 보면서 ‘그럼 전체 라이브에선 어떻게 해야하느냐’를 생각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언더 라이브는 누구라도 빛날 수 있는 무대거든요. 그렇기에 자기가 노력만 한다면 누구라도 칭찬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 개인적으로는 이번 라이브를 보면서 초창기의 이토상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즐겁게, 활발하게 춤을 추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기에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마 : 정말 다행이네요. (웃음) 저 스스로도 ‘지금껏 잃고 있었던 것을 되찾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사실 이 점에 대해선 언젠가 꼭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고 싶었거든요. 그렇기에 이번에 이 취재를 하게 된 것이 정말 좋아요. 지난 1년동안은 이런 기회를 받아도 제 그런 기분이 정리되지 않았었고, 다른 방식으로 노력을 하는 데에서 그치고 있었으니까요. 물론 지난 1년여간의 제 모습을 탐탁찮게 보시는 분들도 계실 지 모르지만, 저 나름대로는 그 시간을 통해 저 자신의 개성이 확립되었다고 생각하기에 후회는 하지 않아요.
- 몰두하지 않았다면 ‘개성’도 확립되지 않았다는 얘기군요.
마 : 지금까지는 ‘앞으론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염두에 두고 활동 해 왔던 점도 있어요. 아무래도 가장 가까웠던 아이들이 졸업을 하면 저 역시도 의식하게 되잖아요. 졸업 한 뒤에 어떻게 활동을하는 지도 눈에 보이고. 최근에 언더로 간 뒤, 처음으로 블로그에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고 썼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대놓고 쓴 적이 없었거든요. 지금까지는 그렇게 감정을 쓰기보단 스스로의 감정을 억누르고 ‘나는 3열에 있지만, 나만의 개성으로 어떻게든 해 내야지’라는 부분이 컸거든요.
- 하지만 이토상, 실제로 3열에 있어도 정말 ‘어떻게든 해 내는’ 사람이었잖아요. 어떻게 해야 자신이 빛나는 지를 알고 있다고 해야하나. 그 점이 다른 멤버들과 다른 점이라 생각해요. 어느 그룹이건 ‘앞으로 나가지 않아도 알아서 빛 나는’ 사람이 있고, 이토상은 그런 타입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앞으로 나가는 것’에 소극적인 면에, 팬분들은 부족함을 느끼셨을 수도 있겠네요.
마 : 네. 물론 팬분들 탓을 하는 게 아니라, 전부 제가 잘못 한 것이지만 말이죠. 이제는 향상심도 솟아오르고, 더욱 더 앞에 나가서 춤 추고 싶다는 의욕으로 가득합니다. 저, 전성기땐 ‘마리카 센터설’까지 돌았었다고요. (웃음)
- 전성기는 이제부터 아닌가요. (웃음)
마 : 예전에 있었어요. 그럴 때가. 아마 10번째 싱글 (2014/10 ‘몇 번째 보는 푸른 하늘인가?’) 때였던 것 같은데, ‘이 다음에는 마릿카가 뜬다’며 일종의 ‘차세대’ 멤버로 뽑아 주셨었지요. 이제 와 얘기지만 당시에는 그런 분위기가 좀 거북했어요. 그런 식으로 다루어 지는 건 좀 아닌 것 같았고, 저는 저 나름대로의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선발에 들어 가 안정기가 왔을 땐, 그런 ‘저 나름대로의 길’을 걸었고요. 이제야 그런 ‘흐름’이 파악되지만요.
- 꽤나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계시네요. 하지만 ‘앞으로 나가고 싶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해요. 기억하실 지 모르지만, 2년 전 가을쯤에 ‘내년에는 치고 나가겠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작년에는 선발에 들어 여러 분야에서 활약을 하셨지요. 작년 여름에 다른 잡지의 취재로 만났을 때, 이토상께서 ‘하고 싶은 일을 소리 내서 이야기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 실감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죠.
마 : 에, 정말요? 완전히 잊고 있었네요. (웃음)
- 그렇다는 것은, 지난 1년간의 활동기간 동안 그런 마음을 잊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마 :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지난 1년 동안 활동을 하면서 이 그룹이 얼마나 ‘두터운’ 그룹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어요. 언더에 돌아 온 뒤에도 그런 마음은 변하지 않았기에 ‘이런 프로 집단이 있다니! 나 정말로 엄청난 그룹에 들어 왔구나’라는 감탄과 동시에 ‘나도 예전에는 그런 그룹의 선발에 있었구나’라는 분한 마음이 들었어요. 이런 말을 하면 변명으로 들릴 지 모르지만, ‘하루지온’이나 ‘계기’를 부른 멤버 분, 사유와 저만이 복신 경험이 없거든요. 그렇기에 함께 복신 자리를 목표로 했었어요. 그도 그럴 게, 몇 작품이나 연속으로 선발에 들었는데 복신 경험이 한 번도 없다는 건 좀 아깝잖아요.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 그렇다면 이토상이 선발로서 더욱 더 앞으로 나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건 무슨 이유죠?
마 : 지금까지는 팬분들과 관계 없이 저 자신을 위해 활동 해 온 부분이 컸었기에, 앞으로는 제 팬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활동 하고 싶어서라는 게 가장 큰 이유이고, 그 다음으로는 저 스스로도 새로운 경험을 더 하고 싶어서예요. 더 많은 분들께 저라는 존재를 알리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나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아스카가 센터에 서는 모습을 보고, 저 역시 앞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 자신이 이 그룹에 있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곤 하나요? 자신이 이 그룹에 +가 되는가 아닌가라는 고민이라던가.
마 : +가 된다고 생각해요. 객관적으로 생각해서 그룹에는 여러 타입의 아이들이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저처럼 쓸 데 없이 패션에 대한 지식이 있고, 영상을 좋아하고, 제작에도 관심이 있는 타입의 멤버가 있다면 그런 쪽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서 그룹에도 관심을 가져 주실테니까요. 카린쨩의 장기 역시 큰 개성이잖아요. 그런 독특한 개성들의 집합이 노기자카라는 그룹이라 생각해요. 그렇기에 예전보다 더욱 더 ‘앞으로 나가서 나의 개성을 발휘해야’하겠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그런 목표를 이루지 못 한 채 졸업 해 버리기는 싫기에, 주어 진 기간동안 향상심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 할 생각이에요!
- 이렇게 긍정적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안심이 되네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나요?
마 : 아, 한 가지만요. 요즘들어 ‘마리카는 언더로 가니까 빛나네?’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요, 그런 게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히 해 두고 싶어요. 제가 자각하는 게 늦어서 타이밍이 이렇게 된 것 뿐이라는 걸. (웃음) 언더로 돌아오자마자 프론트에 서게 되었으니 그렇게 생각 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 봅니다만, ‘역시 마리카는 언더에 있는 게 어울려’라는 말을 들으면 아무래도 분하죠. 그건 좀 다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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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l me it’s real
도쿄에 대해
- 오늘 취재에 참고를 해 볼까 하는 마음에 하시모토상의 블로그를 들어 가 보았어요. 그랬더니 세가와 아야카상과 함께 식사를 했다는 글이 올라 와 있더군요. 분명 세가와상은 아사히카와에서 보낸 고교시절 당시 동급생이셨지요?
하시모토 (이하 ‘하’) : 아, 세가와쨩이요!
- 홋카이도에서 청춘을 함께 보낸 동급생과, 그것도 연예계라는 같은 분야에서 함께 노력하고 있는 친구와 도쿄에서 재회하다니. 정말 멋진 일이네요.
하 : 세가와쨩은 고등학교 당시부터 학교의 아이돌격인 존재였어요. 저랑은 전혀 다른 타입이랄까, 저는 남자 아이들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거든요. (웃음)
- 후후후…
하 : 아, 사이가 안 좋았다고 하기보다는… (웃음) 애초에 엮일 일 자체가 거의 없었어요. 농구부 매니저였기에 농구부원 외에는 남자 아이들이 말도 잘 걸지 않았거든요.
- 고등학교 다닐 때에도 세가와상과 장래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나요?
하 : 아뇨. 진로에 대해 얘기 나눌만한 것도 없었고요. 상경 할 때 처음으로 ‘아! 도쿄 가는구나!’ 라고 이야기한 정도예요.
- 하시모토상은 도쿄를 동경했었나요?
하 : 처음엔 해외로 나가려 했었어요. 하지만 딱히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막연히 ‘해외에 가 보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지요. 뭐라 하죠… 살면서 한 번 밖에 할 수 없는 특별한 체험을 해 보고 싶었어요. 아무래도 좁은 시골에서만 살았다 보니, 새로운 것들을 보고 느끼고 싶다는 마음은 나날이 커져만 갔지요. 하지만 해외에 가고싶다고 해서 바로 갈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렇다면 우선 도쿄라도’라는 생각으로 상경을 결심했습니다. 상경해서 ‘도쿄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들을 하면 해외에 대한 동경도 조금은 충족되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들었고요. 제가 살던 아사히카와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도쿄에서는 볼 수 있을 것 같았고요. 그렇기에 이유를 만들기 위하여 ‘홋카이도에서는 배울 수 없지만 도쿄에서는 배울 수 있는 것’을 선택하여, 부모님의 반대도 무릅쓰고 상경 한 것이지요. 도쿄라는 도시 자체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기 보다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 했던 새로운 경험들을 하고 싶었다’는 게 더 정확하겠네요.
- 그렇게 상경하신 뒤 벌써 5년이나 지났지요.
하 : 네. 5년이나 지났지요. 올 해로 6년차예요.
- 도쿄는 어떤가요? 마음에 들어요?
하 : 좋아졌어요! 4년차쯤부터 좋아하게 되었어요. (웃음)
- 아무래도 초반에는 거리가 있었나요?
하 : 홋카이도에 갈 때 마다 ‘이대로 홋카이도에 있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거든요. 3~4년쯤 지난 시점부터 제 생활 사이클 속에서 도쿄를 즐기는 방법을 알게 되었어요.
- 하시모토상은 도쿄의 매력이 어떤 점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하 : 홋카이도로 돌아가면 항상 가족들과 함께 있지만, 도쿄에선 기본적으로 혼자지요. 그럴 때 마다 느끼는 게 ‘도쿄라는 도시는 외톨이들에게 참으로 친절한 도시’라는 점입니다. 아사히카와는 가게들이 대부분 저녁 8시면 문을 닫거든요. 술집 같은 데 말고 젊은 여성이 혼자 갈 만한 가게는 말이에요. 하지만 도쿄는 대부분 10시 정도까지는 가게들이 문을 여는데다가, 여성이 혼자 밤에 돌아다녀도 걱정이 안 될 정도로 밝기도 하고 말입니다. 가끔씩 외로워질때면 츠타야에 가면 어떻게든 되고 말이죠. (웃음)
- 아하하하하
하 : 가끔 밤에 외로울 때가 있는데 그럴 땐 밖에 나가요. 나가면 ‘아, 나처럼 혼자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지요. 바로 그런 점이 도쿄의 좋은 점이라 생각해요.
- 하시모토상은 쿠루리의 ‘도쿄’를 좋아한다고 들었는데요, 그 노래를 들으면서 홋카이도에서 상경 해 온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보곤 하나요? (쿠루리 - 도쿄)
하 : 네. 제 지론이기도 한데요, 노래 제목에 ‘도쿄’가 들어가는 곡 치고 나쁜 곡은 없다고 생각해요. YUI상의 ‘TOKYO’도 좋은 곡이고 말이죠. 음…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 쿠와타 케이스케상이나 이노우에 요스이상, 키노코제국, 긴난 보이즈… 후쿠야마 마사하루상 곡 중에도 제목에 ‘도쿄’가 들어 간 곡들이 있지요.
하 : 아, 맞아요. 제가 만들어 낸 가설인데, ‘상경 해 온 사람들은 제목에 도쿄가 붙은 곡들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 쿠루리의 ‘도쿄’에 빠지게 된 계기는 뭐였나요? 참고로 곡을 쓴 키시다 시게루상은 ‘교토에서 상경 해 와서 엄청 가난하고 불안한 시절을 보내던 가운데, 우연히 맞은 도쿄의 밤바람이 정말기분 좋아 이 곡을 썼다’고 말씀하신 바 있지요.
하 : ‘오늘 밤, 네게 전화를 걸고 싶어졌어’라는 가사가 있는데, 이 가사를 들을 때 마다 저기서 말하는 ‘너’는 내가 떠나 온 고향에 남아 있는 사람이겠지. 라고 생각하곤 해요. 그리고 ‘나’ 역시 얼마 전까지는 그 곳에 있었던 거고요.
- 아, 그렇군요.
하 : 그 당시 ‘나’와 함께 같은 시간을 보내던 ‘너’들은 당시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내’가 아직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고요. 저도 그런 ‘확인’을 자주 하는 편이거든요. 지금까지도 아사히카와를 떠나지 않고 계속 고향에서 지내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다행이다. 하나도 안 변했구나’라는 얘기를 들으면 저도 모르게 안심하곤 해요. 자신의 과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 해야하나, 당시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면 ‘아직 돌아 갈 곳이 있구나’라는 것을 느끼곤 해요. 그렇게 보자면 ‘도쿄’라는 곡은 ‘아직도 내겐 돌아 갈 곳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해 주는 곡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 하시모토상은 라디오 방송 ‘Girls Locks’ (school of lock! 의 코너)의 진행도 하고 계시지요. 언젠가 ‘청취자들과 함께듣고 싶은 곡’이라는 앙케이트에 사이토 카즈요시상의 ‘예전부터 좋아했어’를 언급하신 적 있는데요. 그 때 이 곡을 고른 이유로 ‘이 곡을 들으면 예전 마음을 잊지 않을 수 있다’고 하셨었지요. 방금 전에 ‘도쿄’를 좋아하는 이유로 하신 말씀도 그렇고, 하시모토상에게 있어 ‘변하지 않는다’는 건 큰 의미를 갖는가봐요?
하 : 그런 것 같아요. 살면서 가장 즐거웠던 때가 언제냐 하면 중학생 때였거든요?
- 오, 고등학교 때가 아니라 중학교 때요?
하 : 자기 자신에게 가장 솔직했고, 자유롭게 행동했던 것이 중학생 때였거든요. 중학생 때는 정말로 제가 좋아하는 일밖에 하지 않았어요. 지금도 당시에 좋아했던 곡들을 들으면 그 때가 떠오르는데, 정말로 당시에는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한다’고 이야기 했었지요.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당당하게 ‘좋아한다’고 이야기 하는 게 어려워진다고 할까요... 아무래도 다른 것들마저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이런 말을 하면 다음부터는 이런 걸 하기 힘들어지겠지? 라던가 이런 일을 하면 이렇게 오해를 사겠지? 같은 것 말이에요… 그렇게 쓸데없이 너무 깊이 생각을 하다 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어 버리죠. 그렇기에 앞으로 즐겁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중학생때의 감각을 되찾아야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앞으로는 중학교때 그러했듯이 ‘좋아하는 것을 진심으로 즐기며’ 살아가고 싶어요. 어떻게 보자면 그 장시에 대한 동경이 있다고도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네요.
‘청춘의 추억’
- 올 해 4월이었나요. 블로그를 통해 고등학교 시절 친구가 보낸 메일을 소개하셨었지요. 하시모토상에게 있어 그렇게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단순하게 향수에 젖어 있다기 보다는 과거의 자신과의 접점을 확인하는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하 : 네. 이런 세계에 있다보니 감각이 마비되어 가는 것 같았거든요.
- 네?
하 : 저라는 사람은 희노애락의 감정이 격한 편인 동시에 마음 한 구석에는 굉장히 냉철한 부분도 있거든요. 뭐라 하죠, 완전히 감정에 몸을 맡길 수가 없다 할까요. 엄청 화가 났을 때도 완전히 화를 내지 못 하고 마음 한 구석에선 ‘아, 나 지금 화 났구나’라고 스스로의 감정을 객관시해서 보곤 해요. 기쁠 때도 완전히 기뻐하기보다는 ‘이거 몰래카메라 아닐까?’라고 의심하게 되고. (웃음) 그렇게 ‘이 뒤에 뭐가 숨겨져 있을까?’라고 보는 건 그다지 좋은 버릇이 아닌 것 같지만 말이죠. 초등학생때부터 지금까지 일기를 쓰고 있는데, 초등학생때 썼던 일기장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어요. 가끔씩 다시 읽어 보면 정말 부끄럽지만, 동시에 제가 느꼈던 꾸밈없는 진심이 이런 거구나하는 생각도 들어요. 어디까지나 나만 읽을 생각으로 쓰는 것이다 보니 정말 솔직하게 써내려갔거든요. 이런 얘기를 듣고 감동을 받았다던가, 이런 일이 있어서 화가 났었다던가.
- 그 때 그 때 느낀 점을 상세하게 쓰셨나 보네요.
하 : 전력으로 매사에 부딛히는 자신의 모습이 일기 안에 적혀 있는 것을 보며 ‘나도 이런 시절이 있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예전에도 이랬으니까 언젠가 다시 그렇게 될 수 있을지도 몰라’라생각하곤 해요.
- 얘기가 좀 바뀌는데, 중학교 때 부터 고등학교 때 까지 ‘청춘’을 만끽했다고 생각하나요?
하 : 아뇨. 그 정도로 만끽은 못 했던 것 같은데요. (웃음)
- 아하하하
하 : 고등학교에 다닐 때엔 그래도 그럭저럭 만끽했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중학교 땐 음… 그 땐 정말 엉망이었지만, 솔직했던 때였던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에게 혼 나는 게 일상이었죠.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았으니 말이죠. 음… 그렇네요. 후후후
- 어떤 식으로 보내셨길래…
하 : 항상 인터넷에 빠져있었어요. (웃음) ‘와! 큐슈는 요즘 이런 게 유행이구나!’라던지 말이죠. 인터넷을 통해서 자신이 모르던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것이 정말 즐거웠어요. 그 외에는 몇 시간이고 친구랑 공원에서 떠들어 댄다던가…
- 크! 달콤 쌉싸름한 청춘이네요.
하 : 당시 친구가 좋아하는 선배가 있었는데, 그 선배가 매일 아침마다 공원에서 조깅을 한다는 소문을 듣고는 친구랑 둘이서 새벽부터 공원에서 죽치고 있기도 했죠. (웃음) 공원에서 그 선배가 오길 주구장창 기다렸어요.
- 하시모토상은 그런 ‘청춘 스토리’를 좋아하는 편인가요?
하 : 네. 좋아해요. 이런 거 있잖아요. 이거 제목이 뭐더라… (조용히 오쿠 하나코의 ‘가넷’을 흥얼거린다)
- 아, ‘시간을 달리는 소녀’ 말인가요?
하 : 아!네! 그리고 ‘귀를 기울이면’도 좋아해요.
- 그렇다면 그런 달콤쌉싸름한 세계에 자신이 들어 가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하 : 음… 제가 그 세계에 들어가는 건 좀 아닌 것 같긴 하네요. 그 당시에는 몰랐어도 시간이 지난 뒤에 문득 되돌아보았을 때 ‘아, 그땐 청춘이었구나’라고 깨닫는 것 정도로 충분해요. 스스로가 그런 세계에 들어 가는 것 보다는 나중에 되돌아 보며 ‘아, 내게 있어서는 그런 시절이 그 때였구나’라고 떠올릴 수 있는 정도가 딱 좋다고 생각해요.
- 그럼 시간이 더 지난 뒤에 떠올려 봤다고 쳤을 때, ‘2016년의 하시모토 나나미’는 청춘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 할 수 있을 것 같나요?
하 : 어떨까요… 음… ‘청춘’이라 느끼지는 않을 것 같아요. 애초에 힘든 때나 괴로울 때의 기억은금방 잊어버리기도 하고. (웃음)
- 그럼 ‘노기자카46’의 멤버로 활동 해 온 지난 5년간은 어떨까요?
하 : 음… 아무래도 저는 제가 나고 자란 곳에서의 기억이 ‘청춘’인 것 같아요. 노기자카는 어느 쪽이냐 하면 ‘수행의 장소’랄까요. 노기자카46에 있는 동안 어떤 것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저 나름대로는 명확하게 설정을 해 두고 있거든요. 그리고 지금은 그런 목표들을 하나하나 클리어 해 가고 있는 중이고요. 예를 들자면 ‘학자금 대출을 다 갚는다’는 것도 그런 목표 중 하나고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저 스스로가 쌓아 온 마이너스요소, 그리고 지금까지 짊어지고 왔던 책임들을 하나씩 해소 해 나가기 위하여 이곳에 있다는 느낌이지요.
- 하시모토상이 노기자카에서 활동을 하는 동기는 다른 멤버들에 비해 좀 특수하고, 현실적인 것 같네요. 그런 하시모토상이 ‘청춘’이라는 것에 대해 어떤 거리감을 갖고 계시는 지 이전부터 궁금했어요.
하 : 하고 싶은 일에 몰두 할 수 있는 것이 청춘이라고 생각해요. 19살 때, 20살이 되는 것이 정말두려웠어요. 이전까지는 ‘미성년’이라는 것에 일정부분 보호를 받았었던 것이, 갑작스레 제약이 없어 져 버리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정작 20살이 되고 보니 제 생각만큼 큰 변화는 없더군요. 그리고 실제로는 중, 고등학생 때 보다 더 심하게 제약을 받고있고 말이죠. 이렇게 여러 일을 할 기회를 받으면서 스스로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만 하는 경우도 늘어 나게 되고, 그럴 때 마다 ‘제약’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곰곰히 곱씹어 보게 되더라고요. 물론 그 덕분에 배울 수 있는 것도 참 많지만 말이죠. 아까 한 ‘청춘’의 정의와는 조금 다른 얘기긴 하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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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마 리나 X 키타노 히나코
‘불 타 올라라! 폭탄 소녀여!’
‘폭탄 시대’
- 키타노상이 처음 2기생으로 들어 왔을 때, 어떤 이미지였나요?
이코마 (이하 ‘이’) : 처음에는 ‘얘 괜찮으려나~’하는 생각이 들어 내심 걱정했어요.
키타노 (이하 ‘키’) : 우후후후 (웃음)
이 : 저뿐만 아니라 1기생들 전원이 같은 생각이었어요.
- 어떤 면에서 ‘괜찮을 지 모르겠다’는 거였나요?
이 : 처음엔 ‘그렇게 말 하면 듣는 쪽 기분도 좋지 않다’는 얘기까지 했었거든요. 다들 키이쨩 대할 땐 겁내했어요.
- ‘얘는 폭탄발언을 하는 애구나’ 라는 느낌이었군요.
키 : 초반에 ‘폭탄’이라고 불리긴 했어요. (웃음)
이 : 키이쨩 같은 경우에는 솔직한 아이다 보니까 생각나는 걸 그대로 얘기 해 버리거든요. 선발 발표때처럼 다른 멤버들이 민감할 때에도 그러니까 다들 그 모습을 보며 ‘에? 그거 말 해 버리는건가?’ 싶었을 정도예요.
키 : 선발발표? 8번째 싱글 선발발표 얘기예요?
이 : 응. 그 때. 키이쨩이 처음으로 선발에 뽑혔을 때 말이야. 사실 선발 발표 직후에는 ‘선택을 받았다’는 말 한 마디가 참 조심스러워지거든요.
- 바로 곁에 ‘선택을 받지 못 한’ 멤버들이 있으니 말이죠.
키 : 이제는 저도 그 마음을 잘 알아요. 아무래도 계속 언더에 있었기에… 선발에 뽑힌 멤버가 ‘왜 나 같은 걸…’이라 말 하는 걸 들으면 속으로 ‘그럴거면 나랑 바꿔줘요’라고 생각하곤 했거든요. 지금이야 ‘선발에 뽑힌 사람들은 그만큼 긍정적으로 열심히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 때는… 아, 그리고 같은 말이라 해도 말 하기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는 것도 그 땐 몰랐어요. 그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을 그대로 하는 것 만으로도 벅찼거든요. 정말이지 여러 의미에서 ‘솔직함이 지나쳤’던 것 같아요. (웃음)
- 아무래도 가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까 별 수 없었다고 생각해요.
이 : 그건 그렇지만 정도란 게 있으니까요. 학교만 잘 다녔어도 알 수 있는 일이잖아요.
키 : 어! 잠깐만요! 저 학교 하루도 안 빠지고 나갔는데요.
이 :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 (웃음) 그냥 필사적으로 생각하고 단어를 골라서 이야기 한다고 해도 그에 대한 의견은 결국 ‘좋다’와 ‘싫다’ 단 두 가지로만 나뉘니깐 말이죠. 저 역시도 아직 그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 다른 이들에게 ‘전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끼고 있지만 말이죠.
- 손이 많이 가는 후배가 들어왔구나… 싶었겠어요.
키 : 선배님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 지 전혀 몰랐어요. 9번째 싱글 활동 기간이 어느 정도 지났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언더 선배님들께서 저를 받아들여주셨던 때였지요. 그 때, 한 스태프분께서 ‘요즘은 선배들에게도 칭찬을 듣더라’라고 말씀 해 주셨지요. 아직도 기억이 나요.
- 받아들여지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네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키타노상 같은 후배들은 선배들에게 사랑받을 것 같은데 말이죠.
이 : 음… (웃음) 사실 2기생들이 ‘후배’라는 감각이 별로 없거든요. 생각 해 보면 2기생들이 활동을 시작한 게 7번째 싱글 때니까, 저희랑 1년 반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나잖아요. 오히려 2기생들과 함께 활동 해 온 시간이 더 길거든요. 솔직히 말하자면 2기생들이 가끔 ‘아뇨 저는 후배라…’고 하는 걸 그만 해 줬으면 싶을 정도예요. AKB에 비유하자면 1기생과 3기생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난단 말이죠.
- 하긴, AKB의 1기생인 미네기시상과 3기생인 카시와기상의 사이로 바꿔 생각 해 보면…
이 : 그렇죠? 그러니까 저 개인적으로는 ‘선배님들이니까 어려워’라는 생각은 전혀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키 : 음… 아무래도 2기생들은 연구생 시기가 길었던 데다가, 아직 자기 자신에게 자신감을 가질 정도로 뭔가를 이루지도 못 했기에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같은 그룹이라 해도 지금껏 함께 같은 시간을 보내왔냐 하면 그렇지도 않거든요. 같은 2기생들 조차도 걸어 온 길이, 보아 온 환경이 전혀 다를 정도. 그렇기에 ‘모두가 같다’는 의식을 갖기는 좀 힘든 게 아닐까 싶어요.
‘세컨드’
- 자, 그럼 지금은 키타노상의 이미지가 변했나요?
이 : 짧은 시간동안 급성장 했다는 이미지가 생겼어요. ‘아, 이젠 춤도 곧잘 추는구나!’랄까요. 언더 라이브를 겪으면서 단련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키 : 선배님들에게요? 덕분에 무럭무럭 자랐죠. (웃음)
- 이코마상이 생각하는 키타노상의 매력은?
이 : 매사에 굽히지 않고 직접 부딪히는 점이 매력이라 생각해요.
- 노기자카에는 어딘가 쿨한 이미지의 멤버들이 많은데, 그런 가운데 서투르면서도 우직하게 노력하는 모습이 키타노상의 매력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점은 이코마상의 매력과도 통한다고 보는데요.
이 : 그렇지도 않아요. 노기자카 내부에서라면 그런 식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실제로 비슷하냐 비슷하지 않냐로 나눈다면 전혀 다르죠.
- 그렇게나 다른가요?
이 : 키이쨩은 ‘아이돌’이거든요.
키 : 아뇨. 전 ‘폭탄’인걸요. (웃음)
이 : 태도도 그렇고, 행동거지도 그렇지만 ‘존재’ 그 자체가 정말이지 아이돌다워요. 보고 있는 모든 이를 미소짓게 하는데다가,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즐거워 지는 아이거든요.
- 키타노상처럼 천성적으로 밝은 성격은 노기자카에선 찾아보기 힘든 타입 같네요.
키 : 하지만 그런 성격이 ‘부등호’ 때까지 발목을 잡았어요. ’노기자카의 분위기가 아닌’ 저로는 안 되는 건가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죠. 이전까지는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고 생각 나는대로 살아 왔지만, 최근에는 매사에 일단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랬더니 오히려 웃을 수가 없게 되더라고요…
- 웃는 방법을 잊어 버렸다… 그런 건가요?
키 : 잊어버린 건 아니지만, 발목을 잡고 있던 개성을 지워 볼까… 해서.
이 : 그런 거 무리야. 나도 지워 보려 했지만 무리였어. 행동거지를 나쨩이나 마이얀처럼 조숙하게 해 보는 게 나으려나 해서 따라 해 보기도 했지만, 결국 그럴 필요까진 없다는 걸 알게 되었지. 그렇게 자기 개성을 지우고 획일화 되는 사람이 많으면 그룹 전체가 재미 없어지잖아. 그러니까 나는 나다운 게 좋다고 생각하게 됐어.
- 하지만 키타노상은 그런 자신을 아직 긍정하기 힘들다?
키 : 하고 싶은 일도 많고, 목표도 있는데 이렇게 고민만 할 바에는 차라리 전부 내려놓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거의 포기상태였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게 14번째 싱글 선발 발표였거든요.. 미오나 혼자 새롭게 선발에 들어가고 그 외에는 아무도 바뀌지 않았던 그 때…
- ‘선발의 벽이라는 게 이렇게나 높구나’라고 느낀 건가요.
키 : 상에토 활동을 통해서도 그렇고, 저 나름대로는 그래도 결과를 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넌 여기까지’라고 선이 딱 그어진 것만 같았어요. 말하자면 길게 줄을 서서 메론빵을 사려고 기다렸는데 내 바로 앞에서 전부 팔려버렸을 때의 기분… 우리는 여기까지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 : 음…
키 : 그 뒤로는 웃을 수도 없게 됐고, 2기생들과도 소통을 못 하고 고립되어 버렸어요. 그러던 어느날, 스태프분께서 ‘요즘 어떻게 지내?’라고 말을 걸어주셨는데, 때 마침 저스스로도 ‘나 자신을 위해서도 바뀌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기에 그런 얘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키타노 너는 일단 웃고 있으면 돼!’라고 말씀을 해 주셨어요. ‘그게 뭐예요!’라고 말 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런 조언도 들었으니 일단 웃어보자!라고 생각해서 웃기 시작했더니 기분도, 마음가짐도 달라지게 되었어요.
이 : 그거 다행인데!
키 : 그렇게 마음을 바꿔먹고 노력 한 결과, 15번째 싱글에서 선발에 들 수 있었습니다. 역시 이코마상이 아까 말씀하셨듯이 저라는 사람 역시 노기자카라는 그룹에 또 다른 색깔 하나를 더해주는 존재라는 걸 느끼게 되었지요.
이 : 다양한 형태와 다양한 색이 있는 것도 좋은 일이라 생각해.
키 : 초창기 노기자카를 만들어 오신 것은 이코마상이죠. 그 뒤로 시라이시상, 미오나, 나나세상, 이쿠타상… 센터에 서는 사람들이 바뀌면서 노기자카라는 그룹 역시 모습을 바꾸어가며 성장 해 왔지요. 하지만 아무래도 최근 들어 노기자카가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노기자카라는 그룹의 컬러와 이미지가 정착되었던 것도 사실이고, 그 이미지가 너무나도 높은 벽이었던 것도 사실이었지요.
- 확실히 노기자카의 이미지가 정착되어 가고 있지요.
키 : 하지만 그런 부분을 뛰어넘어 제가 목표로 하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런 정착된 이미지에 새로운 색을 불어넣어야만 하거든요. 하지만 지금 프론트에 서 계시는 선배님들은 선배님들 나름대로 ‘우리가 여기까지 이 그룹을 키워왔다’는 마음이 있으실테니까…
이 : 그런 거, 부숴버려도 돼.
키 : 에?!?!
- 키타노상의 생각에 찬동 해 주시는 ‘선배님’이 바로 곁에 계신걸요. (웃음)
키 : 에~ 이코마상, 히나코가 또 폭탄 되길 바라시는 거예요?
이 :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이제 와서 내가 뭔가 바꿀 수 있냐 하면 그건 아니라고보거든. 내가 다시 센터에 선다 해도 새로운 건 없잖아. 그렇다면 2기생이나, 어린 멤버들이 더더욱 앞으로 나와 주었으면 좋겠거든. 나는 마라톤으로 비유하자면 ‘급수 장소에서 런너들에게 물을 주는’ 서포터, 혹은 뒷정리를 하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 아무도 뒷수습을 안 하면 방 안이 더러워지니까 말이야.
- 내가 뒤에서 수습을 할테니, 하고 싶은 만큼 날뛰어 봐라. 라는 얘기네요. 듬직한 선배군요!
이 : 물론 그런 걸 너무 티 낼 생각은 없어요. 뒤에서 조용히 뒷정리를 하는 사람이랄까. (웃음)
- 권투에서 말하는 ‘세컨드’ 역할이네요. 링사이드에 서서 ‘서! 서란말이야 키타노!’ (만화 ‘내일의 죠’)라고 격려 해 주는 역할이랄까.
이 : 네. 인터벌 때 정신 차리라고 물도 부어주고 말이죠.
키 : 아하하하하 재미있네요.
이 : 저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요.
- 분명 그런 길도 생각 해 볼만 할 것 같네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시 이코마상이 ‘세컨드’가 아니라 ‘파이터’로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요.
이 : 그 밸런스가 참 미묘해요. 파이터로서의 제 모습을 보고 싶어하시는 분들의 마음도 잘 알지만, 지금의 노기자카는 입는 옷도, 만들어 내는 작품도 제가 중심에 있던 초창기의 그것들과는 전혀 다르니깐 말이죠. 물론 그렇다고 제가 전부 포기했다는 건 아닙니다만.
키 : 이코마상의 입장은 그룹 내에서도 정말 특수하니까요. 간단히 공감 하기도 힘든데다가, 아무리 멤버들이 ‘도와 주고 싶다’고 생각해도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니깐 말이에요.
이 : 키이쨩 정말 상냥하구나… 울 것 같아. 하지만 이런 식으로 키이쨩 처럼 이야기 해 주는 멤버들이 있고, 스태프분들이나 멤버들도 많이 이해를 해 주시기에 정말 많이 도움을 받았어요. 그 덕분에 이렇게 이 그룹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한참 전에 그만 뒀을 것 같거든요. 정말이지 감사하는 마음 뿐입니다.
‘두려워 해 주었으면’
- 15번째 싱글에선 두 분 모두 선발멤버에 뽑히셨지요.
키 : 네. 지금 선발 3열에서 즐기고 있어요.
이 : 3열, 정말로 재미있어요.
키 : 정말 시시한 장난 치면서 놀곤 하죠.
이 : 진짜 시덥잖은 일들만 하죠. (웃음)
- 선발 중에서 가장 자유도가 높은 포지션이라 할 수 있겠네요?
이 : 네. 쟈켓사진 촬영이나 MV 촬영 때도 정말 자유로워요. 처음엔 ‘모든 개는 천국에 간다’에 참가했던 당시 3열 멤버들이 ‘뭔가 재미있는 일을 하자’는 분위기를 만들었고, 그 뒤로부터는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가 3열의 독특한 전통이 되었어요. 그런 데에 키이쨩이 왔으니… ‘웰컴’ 이었죠 (웃음)
- 그런 분위기에 딱 맞는 ‘키타노 히나코’라는 인재가 들어 온 거네요.
키 : ‘폭탄 소녀’가 온 거죠. (웃음)
이 : 하지만 키이쨩은 더욱 더 기세 좋게 치고 올라 갔으면 좋겠어요.
키 : 아까도 말 했듯이 3열에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있어요. 그리고 전 지금 선발 멤버들의 분위기를 그런 3열의 분위기로 바꾸어 나가고 싶어요. 물론 ‘10복신’은 손도 안 닿는 존재이긴 하지만…
이 : 확실히 ‘거리’는 있을 지도 모르지. 내 눈에는 보이는 거리지만 그래도 결코 가깝지는 않은 거리.
- 그리고 ‘프론트’라는 벽은 더더욱 높고 말이죠.
키 : 하지만 전 그 벽을…
이 : 오!!
키 : 아, 아녜요. (웃음)
이 : 얘기 해, 얘기 해 버려!!
키 : 이대로 2기생들이 활약을 못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게 두려워요. 실제로 현재의 2기생들은 힘이 부족하고, 여기까지 오는 데만 해도 오래걸렸기에 더더욱… 게다가 곧 3기생들도 들어오니까요. 하지만 저는 이대로 2기생들이 없던 일이 되어 버리는 건 싫어요!
이 : 응. 나도 그런 건 싫어.
키 : 선배님들께서도 저희를 예뻐 해 주시고, 저희도 선배님들을 따르지만… 한 편으로는 저희를 좀 더 ‘두려워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 ‘요즘 키타노의 성장세가 엄청나다’ 라는 식으로 선배들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건가요?
키 :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요. 그렇게 하면 서로서로 자극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데다가, 그룹 자체를 더더욱 변화시켜 나가고 싶거든요.
- 역시나 폭탄 소녀는 폭탄 소녀군요.
이 : 그거 좋은 생각이다. 기폭제가 되어 줘.
키 : 하지만 정말로 ‘폭발’해서 한 번에 끝나버리는 건 싫은데요.
이 : 폭발 한 뒤 오랫동안 후폭풍을 남기면 되잖아!
키 : 자, 그럼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여러 개 준비 해 둘게요. 하나가 폭발 한 뒤, 곧이어 다음 게 폭발하고, 또 다른 게 폭발하고… 이런 식으로… (웃음) 정말 위험한 폭탄 소녀라고요!!
이 : 야 그거 무섭네. 키이쨩이 날려 버리러 올 거야~
키 : 날려 버리진 않아요~
이코마 리나 X 키타노 히나코
‘불 타 올라라! 폭탄 소녀여!’
‘폭탄 시대’
- 키타노상이 처음 2기생으로 들어 왔을 때, 어떤 이미지였나요?
이코마 (이하 ‘이’) : 처음에는 ‘얘 괜찮으려나~’하는 생각이 들어 내심 걱정했어요.
키타노 (이하 ‘키’) : 우후후후 (웃음)
이 : 저뿐만 아니라 1기생들 전원이 같은 생각이었어요.
- 어떤 면에서 ‘괜찮을 지 모르겠다’는 거였나요?
이 : 처음엔 ‘그렇게 말 하면 듣는 쪽 기분도 좋지 않다’는 얘기까지 했었거든요. 다들 키이쨩 대할 땐 겁내했어요.
- ‘얘는 폭탄발언을 하는 애구나’ 라는 느낌이었군요.
키 : 초반에 ‘폭탄’이라고 불리긴 했어요. (웃음)
이 : 키이쨩 같은 경우에는 솔직한 아이다 보니까 생각나는 걸 그대로 얘기 해 버리거든요. 선발 발표때처럼 다른 멤버들이 민감할 때에도 그러니까 다들 그 모습을 보며 ‘에? 그거 말 해 버리는건가?’ 싶었을 정도예요.
키 : 선발발표? 8번째 싱글 선발발표 얘기예요?
이 : 응. 그 때. 키이쨩이 처음으로 선발에 뽑혔을 때 말이야. 사실 선발 발표 직후에는 ‘선택을 받았다’는 말 한 마디가 참 조심스러워지거든요.
- 바로 곁에 ‘선택을 받지 못 한’ 멤버들이 있으니 말이죠.
키 : 이제는 저도 그 마음을 잘 알아요. 아무래도 계속 언더에 있었기에… 선발에 뽑힌 멤버가 ‘왜 나 같은 걸…’이라 말 하는 걸 들으면 속으로 ‘그럴거면 나랑 바꿔줘요’라고 생각하곤 했거든요. 지금이야 ‘선발에 뽑힌 사람들은 그만큼 긍정적으로 열심히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 때는… 아, 그리고 같은 말이라 해도 말 하기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는 것도 그 땐 몰랐어요. 그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을 그대로 하는 것 만으로도 벅찼거든요. 정말이지 여러 의미에서 ‘솔직함이 지나쳤’던 것 같아요. (웃음)
- 아무래도 가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까 별 수 없었다고 생각해요.
이 : 그건 그렇지만 정도란 게 있으니까요. 학교만 잘 다녔어도 알 수 있는 일이잖아요.
키 : 어! 잠깐만요! 저 학교 하루도 안 빠지고 나갔는데요.
이 :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 (웃음) 그냥 필사적으로 생각하고 단어를 골라서 이야기 한다고 해도 그에 대한 의견은 결국 ‘좋다’와 ‘싫다’ 단 두 가지로만 나뉘니깐 말이죠. 저 역시도 아직 그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 다른 이들에게 ‘전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끼고 있지만 말이죠.
- 손이 많이 가는 후배가 들어왔구나… 싶었겠어요.
키 : 선배님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 지 전혀 몰랐어요. 9번째 싱글 활동 기간이 어느 정도 지났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언더 선배님들께서 저를 받아들여주셨던 때였지요. 그 때, 한 스태프분께서 ‘요즘은 선배들에게도 칭찬을 듣더라’라고 말씀 해 주셨지요. 아직도 기억이 나요.
- 받아들여지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네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키타노상 같은 후배들은 선배들에게 사랑받을 것 같은데 말이죠.
이 : 음… (웃음) 사실 2기생들이 ‘후배’라는 감각이 별로 없거든요. 생각 해 보면 2기생들이 활동을 시작한 게 7번째 싱글 때니까, 저희랑 1년 반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나잖아요. 오히려 2기생들과 함께 활동 해 온 시간이 더 길거든요. 솔직히 말하자면 2기생들이 가끔 ‘아뇨 저는 후배라…’고 하는 걸 그만 해 줬으면 싶을 정도예요. AKB에 비유하자면 1기생과 3기생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난단 말이죠.
- 하긴, AKB의 1기생인 미네기시상과 3기생인 카시와기상의 사이로 바꿔 생각 해 보면…
이 : 그렇죠? 그러니까 저 개인적으로는 ‘선배님들이니까 어려워’라는 생각은 전혀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키 : 음… 아무래도 2기생들은 연구생 시기가 길었던 데다가, 아직 자기 자신에게 자신감을 가질 정도로 뭔가를 이루지도 못 했기에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같은 그룹이라 해도 지금껏 함께 같은 시간을 보내왔냐 하면 그렇지도 않거든요. 같은 2기생들 조차도 걸어 온 길이, 보아 온 환경이 전혀 다를 정도. 그렇기에 ‘모두가 같다’는 의식을 갖기는 좀 힘든 게 아닐까 싶어요.
‘세컨드’
- 자, 그럼 지금은 키타노상의 이미지가 변했나요?
이 : 짧은 시간동안 급성장 했다는 이미지가 생겼어요. ‘아, 이젠 춤도 곧잘 추는구나!’랄까요. 언더 라이브를 겪으면서 단련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키 : 선배님들에게요? 덕분에 무럭무럭 자랐죠. (웃음)
- 이코마상이 생각하는 키타노상의 매력은?
이 : 매사에 굽히지 않고 직접 부딪히는 점이 매력이라 생각해요.
- 노기자카에는 어딘가 쿨한 이미지의 멤버들이 많은데, 그런 가운데 서투르면서도 우직하게 노력하는 모습이 키타노상의 매력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점은 이코마상의 매력과도 통한다고 보는데요.
이 : 그렇지도 않아요. 노기자카 내부에서라면 그런 식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실제로 비슷하냐 비슷하지 않냐로 나눈다면 전혀 다르죠.
- 그렇게나 다른가요?
이 : 키이쨩은 ‘아이돌’이거든요.
키 : 아뇨. 전 ‘폭탄’인걸요. (웃음)
이 : 태도도 그렇고, 행동거지도 그렇지만 ‘존재’ 그 자체가 정말이지 아이돌다워요. 보고 있는 모든 이를 미소짓게 하는데다가,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즐거워 지는 아이거든요.
- 키타노상처럼 천성적으로 밝은 성격은 노기자카에선 찾아보기 힘든 타입 같네요.
키 : 하지만 그런 성격이 ‘부등호’ 때까지 발목을 잡았어요. ’노기자카의 분위기가 아닌’ 저로는 안 되는 건가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죠. 이전까지는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고 생각 나는대로 살아 왔지만, 최근에는 매사에 일단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랬더니 오히려 웃을 수가 없게 되더라고요…
- 웃는 방법을 잊어 버렸다… 그런 건가요?
키 : 잊어버린 건 아니지만, 발목을 잡고 있던 개성을 지워 볼까… 해서.
이 : 그런 거 무리야. 나도 지워 보려 했지만 무리였어. 행동거지를 나쨩이나 마이얀처럼 조숙하게 해 보는 게 나으려나 해서 따라 해 보기도 했지만, 결국 그럴 필요까진 없다는 걸 알게 되었지. 그렇게 자기 개성을 지우고 획일화 되는 사람이 많으면 그룹 전체가 재미 없어지잖아. 그러니까 나는 나다운 게 좋다고 생각하게 됐어.
- 하지만 키타노상은 그런 자신을 아직 긍정하기 힘들다?
키 : 하고 싶은 일도 많고, 목표도 있는데 이렇게 고민만 할 바에는 차라리 전부 내려놓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거의 포기상태였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게 14번째 싱글 선발 발표였거든요.. 미오나 혼자 새롭게 선발에 들어가고 그 외에는 아무도 바뀌지 않았던 그 때…
- ‘선발의 벽이라는 게 이렇게나 높구나’라고 느낀 건가요.
키 : 상에토 활동을 통해서도 그렇고, 저 나름대로는 그래도 결과를 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넌 여기까지’라고 선이 딱 그어진 것만 같았어요. 말하자면 길게 줄을 서서 메론빵을 사려고 기다렸는데 내 바로 앞에서 전부 팔려버렸을 때의 기분… 우리는 여기까지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 : 음…
키 : 그 뒤로는 웃을 수도 없게 됐고, 2기생들과도 소통을 못 하고 고립되어 버렸어요. 그러던 어느날, 스태프분께서 ‘요즘 어떻게 지내?’라고 말을 걸어주셨는데, 때 마침 저스스로도 ‘나 자신을 위해서도 바뀌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기에 그런 얘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키타노 너는 일단 웃고 있으면 돼!’라고 말씀을 해 주셨어요. ‘그게 뭐예요!’라고 말 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런 조언도 들었으니 일단 웃어보자!라고 생각해서 웃기 시작했더니 기분도, 마음가짐도 달라지게 되었어요.
이 : 그거 다행인데!
키 : 그렇게 마음을 바꿔먹고 노력 한 결과, 15번째 싱글에서 선발에 들 수 있었습니다. 역시 이코마상이 아까 말씀하셨듯이 저라는 사람 역시 노기자카라는 그룹에 또 다른 색깔 하나를 더해주는 존재라는 걸 느끼게 되었지요.
이 : 다양한 형태와 다양한 색이 있는 것도 좋은 일이라 생각해.
키 : 초창기 노기자카를 만들어 오신 것은 이코마상이죠. 그 뒤로 시라이시상, 미오나, 나나세상, 이쿠타상… 센터에 서는 사람들이 바뀌면서 노기자카라는 그룹 역시 모습을 바꾸어가며 성장 해 왔지요. 하지만 아무래도 최근 들어 노기자카가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노기자카라는 그룹의 컬러와 이미지가 정착되었던 것도 사실이고, 그 이미지가 너무나도 높은 벽이었던 것도 사실이었지요.
- 확실히 노기자카의 이미지가 정착되어 가고 있지요.
키 : 하지만 그런 부분을 뛰어넘어 제가 목표로 하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런 정착된 이미지에 새로운 색을 불어넣어야만 하거든요. 하지만 지금 프론트에 서 계시는 선배님들은 선배님들 나름대로 ‘우리가 여기까지 이 그룹을 키워왔다’는 마음이 있으실테니까…
이 : 그런 거, 부숴버려도 돼.
키 : 에?!?!
- 키타노상의 생각에 찬동 해 주시는 ‘선배님’이 바로 곁에 계신걸요. (웃음)
키 : 에~ 이코마상, 히나코가 또 폭탄 되길 바라시는 거예요?
이 :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이제 와서 내가 뭔가 바꿀 수 있냐 하면 그건 아니라고보거든. 내가 다시 센터에 선다 해도 새로운 건 없잖아. 그렇다면 2기생이나, 어린 멤버들이 더더욱 앞으로 나와 주었으면 좋겠거든. 나는 마라톤으로 비유하자면 ‘급수 장소에서 런너들에게 물을 주는’ 서포터, 혹은 뒷정리를 하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 아무도 뒷수습을 안 하면 방 안이 더러워지니까 말이야.
- 내가 뒤에서 수습을 할테니, 하고 싶은 만큼 날뛰어 봐라. 라는 얘기네요. 듬직한 선배군요!
이 : 물론 그런 걸 너무 티 낼 생각은 없어요. 뒤에서 조용히 뒷정리를 하는 사람이랄까. (웃음)
- 권투에서 말하는 ‘세컨드’ 역할이네요. 링사이드에 서서 ‘서! 서란말이야 키타노!’ (만화 ‘내일의 죠’)라고 격려 해 주는 역할이랄까.
이 : 네. 인터벌 때 정신 차리라고 물도 부어주고 말이죠.
키 : 아하하하하 재미있네요.
이 : 저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요.
- 분명 그런 길도 생각 해 볼만 할 것 같네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시 이코마상이 ‘세컨드’가 아니라 ‘파이터’로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요.
이 : 그 밸런스가 참 미묘해요. 파이터로서의 제 모습을 보고 싶어하시는 분들의 마음도 잘 알지만, 지금의 노기자카는 입는 옷도, 만들어 내는 작품도 제가 중심에 있던 초창기의 그것들과는 전혀 다르니깐 말이죠. 물론 그렇다고 제가 전부 포기했다는 건 아닙니다만.
키 : 이코마상의 입장은 그룹 내에서도 정말 특수하니까요. 간단히 공감 하기도 힘든데다가, 아무리 멤버들이 ‘도와 주고 싶다’고 생각해도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니깐 말이에요.
이 : 키이쨩 정말 상냥하구나… 울 것 같아. 하지만 이런 식으로 키이쨩 처럼 이야기 해 주는 멤버들이 있고, 스태프분들이나 멤버들도 많이 이해를 해 주시기에 정말 많이 도움을 받았어요. 그 덕분에 이렇게 이 그룹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한참 전에 그만 뒀을 것 같거든요. 정말이지 감사하는 마음 뿐입니다.
‘두려워 해 주었으면’
- 15번째 싱글에선 두 분 모두 선발멤버에 뽑히셨지요.
키 : 네. 지금 선발 3열에서 즐기고 있어요.
이 : 3열, 정말로 재미있어요.
키 : 정말 시시한 장난 치면서 놀곤 하죠.
이 : 진짜 시덥잖은 일들만 하죠. (웃음)
- 선발 중에서 가장 자유도가 높은 포지션이라 할 수 있겠네요?
이 : 네. 쟈켓사진 촬영이나 MV 촬영 때도 정말 자유로워요. 처음엔 ‘모든 개는 천국에 간다’에 참가했던 당시 3열 멤버들이 ‘뭔가 재미있는 일을 하자’는 분위기를 만들었고, 그 뒤로부터는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가 3열의 독특한 전통이 되었어요. 그런 데에 키이쨩이 왔으니… ‘웰컴’ 이었죠 (웃음)
- 그런 분위기에 딱 맞는 ‘키타노 히나코’라는 인재가 들어 온 거네요.
키 : ‘폭탄 소녀’가 온 거죠. (웃음)
이 : 하지만 키이쨩은 더욱 더 기세 좋게 치고 올라 갔으면 좋겠어요.
키 : 아까도 말 했듯이 3열에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있어요. 그리고 전 지금 선발 멤버들의 분위기를 그런 3열의 분위기로 바꾸어 나가고 싶어요. 물론 ‘10복신’은 손도 안 닿는 존재이긴 하지만…
이 : 확실히 ‘거리’는 있을 지도 모르지. 내 눈에는 보이는 거리지만 그래도 결코 가깝지는 않은 거리.
- 그리고 ‘프론트’라는 벽은 더더욱 높고 말이죠.
키 : 하지만 전 그 벽을…
이 : 오!!
키 : 아, 아녜요. (웃음)
이 : 얘기 해, 얘기 해 버려!!
키 : 이대로 2기생들이 활약을 못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게 두려워요. 실제로 현재의 2기생들은 힘이 부족하고, 여기까지 오는 데만 해도 오래걸렸기에 더더욱… 게다가 곧 3기생들도 들어오니까요. 하지만 저는 이대로 2기생들이 없던 일이 되어 버리는 건 싫어요!
이 : 응. 나도 그런 건 싫어.
키 : 선배님들께서도 저희를 예뻐 해 주시고, 저희도 선배님들을 따르지만… 한 편으로는 저희를 좀 더 ‘두려워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 ‘요즘 키타노의 성장세가 엄청나다’ 라는 식으로 선배들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건가요?
키 :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요. 그렇게 하면 서로서로 자극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데다가, 그룹 자체를 더더욱 변화시켜 나가고 싶거든요.
- 역시나 폭탄 소녀는 폭탄 소녀군요.
이 : 그거 좋은 생각이다. 기폭제가 되어 줘.
키 : 하지만 정말로 ‘폭발’해서 한 번에 끝나버리는 건 싫은데요.
이 : 폭발 한 뒤 오랫동안 후폭풍을 남기면 되잖아!
키 : 자, 그럼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여러 개 준비 해 둘게요. 하나가 폭발 한 뒤, 곧이어 다음 게 폭발하고, 또 다른 게 폭발하고… 이런 식으로… (웃음) 정말 위험한 폭탄 소녀라고요!!
이 : 야 그거 무섭네. 키이쨩이 날려 버리러 올 거야~
키 : 날려 버리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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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이 레이카 ‘캡틴 노기자카’
PART 01, 사쿠라이 레이카의 ‘패션 & 뷰티’
원래는 쿨한 계열의 옷을 좋아했었는데요, 노기자카에 들어 온 뒤 그 점에 대해 지적을 받는 경우가 늘었어요. 그리고 대학교에 들어 가기도 했기에 여성스러운 패션을 입게 되었습니다. 스태프 분께서 ‘사쿠라이가 인기가 없는 건 그 원인이 패션 때문 아닐까’라 말씀하신 적도 있고요.
노기자카 멤버들 중에는 여성스러운 패션을 즐겨 입는 멤버들이 많기에 그런 모습을 보며 ‘아, 저런 식으로 코디를 하면 되겠네’라고 배우는 경우가 많죠. 특히 마나츠를 보며 많이 참고 하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인기녀’ 패션이기에 그것을 참고하면서 저 나름대로 기준을 세워 노출만 최대한 억제하면 괜찮겠다고 생각했지요. (웃음)
요즘 들어서는 다시 쿨한 계열의 옷도 입게 되었는데요, ‘옛날에 입던 옷을 다시 입는다’기 보다는 그저 기분파다 보니 그 때 그 때 입고 싶은 옷을 입는 것 뿐이에요. 지금은 다시 그런 쿨한 계열의 옷이 끌리는 것 뿐이고, 다시 여성스러운 옷이 끌릴 때가 올지도 모르지요.
패션에 있어 중시하는 부분이요? 음…. 아무래도 키가 작다보니 옷의 길이에는 신경을 쓰고 있어요. 그리고 모노톤 옷이나 악세서리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 정도? 그래서 캡이나 백에 포인트를 주곤 합니다.
옷이나 소품은 주로 신주쿠 등지에서 사요. 요즘은 다이칸야마에도 자주 가네요. 개인적으로는 다이칸야마 진출은 정말 큰 진보랍니다! (웃음)
쇼핑은 혼자 가거나 엄마랑 둘이 가거나 해요. 엄마가 옷을 골라주실 때도 있지만, 보통은 충동구매 하는 경우가 많아요. 유행이란 건 돌고 돈다고 하잖아요. 엄마가 젊었을 때 유행하던 패션이 요즘들어 다시 유행하거나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제가 유행하는 아이템을 사면 엄마가 ‘너무 옛날풍이어서 촌스럽지 않니?’라고 묻곤 하죠. 그런 얘기를 들을 때 마다 ‘엄만 아무것도 모르면서’라는 생각이 들어 충돌하기도 해요. (웃음)
한 번에 옷을 잔뜩 사 버리곤 하는데, 사실 개인적으로는 좋은 걸 사서 오래 입는 것이 이상적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충동구매로 낭비하는 버릇을 고치려 하고 있습니다.
물론 시즌마다 마음에 드는 옷은 참지 못 하고 사 버리지만요. 일이 바쁘다 보니 인생의 낙이 옷 쇼핑 정도밖에 없는 걸요. (웃음)
PART 02, 키워드로 읽는 사쿠라이 레이카
‘아이돌’
개인적으로는 ‘아이돌은 말을 아끼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아이돌은 저같은 매사에 행복한 사람이랑은 정반대의 이미지랄까요. (웃음)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아이돌이 되는 건 사실 무리라 생각하니까 그냥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활동 해 나갈 생각입니다.
‘영화’
프랑스 영화를 좋아해요. 최근 작품중에는 ‘위험한 플로트’ (국내 개봉명 ‘인 더 하우스’)가 정말 재미있었어요. 프랑스 영화 중에는 예술성을 중시하다보니 내용이 난해한 작품도 많은데 이 작품은 이해 하기도 참 쉬웠고, 그럼에도 예술성이 높은 영화거든요. ‘비올레타’ (원제 ‘마이 리틀 프린세스’)도 주연 여배우가 참 귀여워서 좋았어요.
‘가족’
올 해는 생일때 휴가를 받았어요. 우연히 부모님도 그 날 쉬셨기에 함께 이탈리아 요리를 먹으러 갔어요. 그 때, 선물로 사사쿠라 텟페이씨의 그림을 받았던 게 참 기뻤어요. 물론 한 때, 반항기도 있었어요. 학교 관계로 부모님과 툭탁거리다가 분을 못 참고 나무로 된 티슈 케이스를 벽에 던졌는데, 벽에 구멍이 나 버렸어요. 그 때, 화 난 것도 잊고 엄청 초조해 했지요.
‘개그’
‘홉 스탭 그리고 휩’은 하라고 하면 언제건 하죠. 뭐, 사실 기세 하나로 살아가는 사람이니까요. (웃음) 악수회 때 ‘모든 개는 천국에 간다’ 공연때 했던 ‘곰방완탕면’(말장난)을 해 달라고 하는 분도 계신데, 그건 제가 생각 해 낸 게 아니란 말이죠!!
‘캡틴’
처음에는 제대로 해 내지 못해서 ‘내가 캡틴을 해도 되는 걸까’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요즘이야 그나마 이 그룹과 제 방식이 맞는다는 생각도 합니다만, 저란 사람은 스스로를 긍정하지 못 하는 성격이다 보니 조금이라도 안심해 버리면 순식간에 자신감이 사라 져 버리거든요. 주변 멤버들이 ‘레이카라서 좋은거야’라고 이야기를 해 주기에 마음이 다치지 않고 버틸 수 있어요.
‘케야키자카46’
지금부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일런트 마조리티’는 쿨한 분위기의 곡이었지만, 2번째 싱글, 3번째 싱글이 나와 보지 않으면 그룹의 방향성을 알 수 없으니까요. 주목하고 있습니다.
‘컴플렉스’
키가 작은 것, 어깨가 쳐진 것, 귀가 뾰족한 것, 눈코입이 큰것, 말투가 바보같은 것… 엄청 많아요. 여유가 있는 어른이 되고 싶네요.
‘3기생’
좋은 인재가 들어왔으면 좋겠지만… 동시에 불안한 마음도 있어요. 완성되어 있는 노기자카의 이미지에 새로운 색을 더해 줄 수 있는 아이가 들어 와 줬으면 해요.
‘매사에 행복한 녀석’
근본이 어두운 성격이다 보니까 일부러라도 긍정적이고 행복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편이 균형이 잘 맞는다고 생각하거든요.
‘바나나맨’
바나나맨 두 분은 정말 다정하셔요. ‘요전에 어떤 방송에 나왔었지?’라는 식으로 먼저 말도 걸어 주시고, ‘몸 안 좋았다면서? 괜찮니?’라고 걱정도 해 주셔요. 항상 저희들을 신경 써 주신답니다. 말 그대로 ‘공식 오빠’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연극’
‘죠시라쿠2’ 출연을 앞두고, 사실은 ‘시시한 잡담을 나눈다’는 스토리 라인을 어떻게 연기해야 할 지 걱정을 많이 했어요. 애초에 보케고 츳코미고 잘 못 하는데다가, 귀여운 역할도 하기 힘들고 말이죠. 하지만 실제로 연기를 해 보니 정말 즐겁더라고요.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나는 정말 연기를 좋아하는구나’라고 새삼 느꼈습니다. 언젠가 다시 연극을 하게 된다면 심지가 굳은 여자아이 역할을 해 보고 싶어요.
‘헤어스타일’
그다지 바꾸지 않죠. 태어나서 지금까지 짧게 쳤던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언젠가 회사 관계자분께서 ‘짧게 자르려면 잘라도 돼’라고 하시길래 솔깃하긴 했는데… 결국 자르기는 무서워서 그냥 기르기로 했죠. (웃음)
‘퐁코츠’
얼마 전에 도시락을 먹을 때 일인데요, 간장을 뿌려 먹으려고 미니 간장통을 열려 했거든요. 근데 아무리 애를 써도 간장통이 열리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힘 줘서 온 몸으로 열려 하다가… 도시락을 다 뒤엎어버렸어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는데, 그걸 들은 멤버들이 달려 와서 무릎 위에 널부러진 도시락 내용물들을 재빠르게 치워 주고, 코디네이터 분도 불러주고… 뒤치다꺼리를 전부 해 주었지요. 멤버들이 그렇게 해 주는 사이, 저는 ‘이거 어쩌지…’라고 벙쪄있었거든요. (웃음) 작년 전반기까지만 해도 ‘퐁코츠 이미지를 벗어버리려’ 했지만, 작년 여름 투어쯤 때부턴 그냥 포기했어요. 지금은 적당히 타협하고 있답니다. (웃음)
‘만화’
‘마말레이드 보이’를 엄청좋아해요. 어릴 때 부터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는데, 최근 들어서 ‘그러고 보니 만화책은 그다지 읽지 않네’라 생각해서 마말레이드 보이 만화책을 전권 샀지요. 등장인물이 전부 너무 귀엽고, 멋있는데다가 전개도 정말 좋아하는 식으로 전개가 되거든요. 그 외에는 ‘아이 엠 어 히어로’나 와카가 추천 해 준 ‘도쿄 구울’처럼 그로테스크한 작품도 자주 읽어요.
‘모노마네’
홍백가합전 회견 때 아야세 하루카상의 모노마네(흉내)를 했었는데, 지금 생각 해 보면 그런 상황에서 잘도 모노마네를 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웃음) ‘죠시라쿠2’에선 후루하타 닌자부로(추리 드라마, 그리고 동명의 주인공)의 모노마네를 하기도 했는데, 다들 좋아 해 주시더라고요. 사실 아빠가 후루하타 닌자부로를 좋아하셔서 어릴 때부터 자주 드라마를 보며 흉내를 내곤 했어요.
‘라이벌’
HKT48와 데뷔 타이밍이 거의 비슷했던 점도 있고, 저희보다 먼저 홍백가합전에 출장하시기도 했기에 HKT48 여러분께는 질 수 없다는 생각을 갖기도 했어요.
‘와카츠키 유미’
‘죠시라쿠2’ 때, 와카와 같은 역을 하게 되었는데 와카가 연습하는 것을 보고 ‘연기의 뿌리가 깊게 박혀 있어서 흉내 내려 해도 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존경하는 마음마저 생겼습니다. 최근에는 저와 와카의 관계성을 좋아 해 주시는 팬분들도 늘어나셔서, 때로는 ‘그렇게 우유부단하게굴다가는 마나츠에게 뺏길거야!’라고 이야기 해 주시기도 해요. (웃음)
PART 03, 캡틴이 말하는 ‘전 멤버 평가’
아키모토 마나츠
성실하고 다정해요. 다만 거절을 잘 하지 못하는 게 걱정됩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연극 힘 내’라는 식으로 일히 연락을 해 주기도 하고, 언젠간 원래 보러 올 계획도 없었으면서 ‘와 버렸어’라며 연극을 보러 왔더라고요. 걱정이 되어서 ’바쁘면 거절해도 돼’라고 하니,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괜찮아’라고 하더라고요.
이쿠타 에리카
예능을 하기 위해 태어난 아이.
이코마 리나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을 유지 할 줄 알죠. 처음에는 연기에 대해 불안함도 있었다고 하는데, ‘연기하는 거 좋네’라고 생각하게 된 순간부터 변한 것 같아요. ‘죠시라쿠1’의 간쨩 역할도 엄청 잘 소화 해 냈기에, 같은 무대에 서 보고 싶어요.
이토 마리카
자기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알고 있고, 좋아하는 것 역시 확실하며,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어떤 것들을 해야 하는 지 잘 알고, 실제로 하고 있지요. 존경스러워요.
이노우에 사유리
제 연기는 아직 안정되지 않았기에, 냥의 그 안정감 있는 연기를 보면 못 당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에토 미사
혼자 활동을 해도 충분히 잘 해 낼 것 같아요.아이돌보다는 탤런트 쪽이 잘 맞는 것 같고요. 스포츠 방송의 어시스턴트 같은 것도 잘 어울릴 것 같네요.
카와고 히나
다른 사람들을 꼼꼼히 관찰해요. 언젠가 코디분이 고민거리가 있음에도 숨긴 채 일을 하고 있으려니 히나가 조용히 불러서는 ‘고민거리 있죠?’라고 했다고 하더군요. 그 뿐 아니라 실제로 그 분이 어떤 것을 고민하고 있는 지도 맞췄다고 하더라고요.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는 데에 능숙한 아이지요.
카와무라 마히로
그룹이기에 롯티의 목소리가 더욱 더 부각되는 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마찬가지로 ‘그룹’이기에 롯티가 가끔씩 솔로로 노래를 부를 때 더욱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사이토 아스카
원래도 미소녀였지만 요즘 정말 물이 올랐어요! 모델 멤버로서 노기자카46를 이끌어 주길 바랍니다.
사이토 치하루
치-는 예뻐요!! 대학과 아이돌 활동을 병행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대학에서 연극공부도 열심히 했으면 좋겠어요.
사이토 유리
토크가 능숙하니까 어시스턴트MC 쪽 일이 잘 맞을 것 같아요.
시라이시 마이
마이얀은 마이얀이죠. 이미 완성되어 있기에, 앞으로는 한 명의 탤런트로서 자유롭게 활동해 줬으면 해요.
타카야마 카즈미
사람이 좋고 멤버들들을 많이 생각하는 아이입니다. 마이마이가 졸업한 지금, 노기자카46의 '치유역'을 이어 받아주면 좋겠네요.
나카다 카나
정말이지 제멋대로라니까요(웃음) 제가 들러붙으면 ‘짜증난다’고 하는 주제에 제가 지쳐 있을 땐 막 엉겨붙어요. (웃음)
나카모토 히메카
무슨 일이 있어도 참아버리곤 해요.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는 건 좋지만, 그게 너무 심하다 보니 손해를 보곤 하지요. 자기 생각을 이야기 해 줬으면 좋겠는데!
니시노 나나세
나-쨩은 정말 귀여워요! 정말로 좋아해요! 마음이 치유되는 것 같아요!
노죠 아미
노래도 댄스도 연기도 잘하죠. 뭐건 능숙하게 해 낸다고 해야 하나요.솔직히 처음 만났을 땐 무서웠어요. 마이클 잭슨 T셔츠를 입고 입술은 새빨갛게 칠하고 있었거든요. (웃음)화장실에서 마주쳤을 때 정말 공포를 느꼈을 정도였죠. (웃음)
하시모토 나나미
매일같이 더 예뻐지고 있지요. 요즘은 몸상태도 좋아 보이고, 즐거워 하는 것 같아 저 역시 안심이 됩니다. 존재감이 있는 나나밍의 기분이 좋으면 노기자카 전체의 분위기가 밝아진답니다.
히구치 히나
색기도 있는 한편, ‘리젠트 머리를 한 사람이 좋아’라 말하는 의외의 일면도 갖고 있어서 한 번 그 매력을 알면 푹 빠져들게 됩니다. 앞으로 인기가 폭발 할 거라 생각해요.
후카가와 마이
일견 온화해 보이지만 정의감이 있는 아이랍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참아 버리는 이미지가 강하기에 졸업을 계기로 한 숨 돌리며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호시노 미나미
미나미는 ‘귀엽다’고 하는, 보기 드문 재능을 갖고 있으니까 지금 이대로 변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마츠무라 사유리
외모가 압도적으로 귀엽지만, 자신의 외모로 잘난척 하지 않지요. 노기자카46이라는 그룹은 전반적으로 조용하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맛츙이 선두에 서서 이런 점을 개척 해 나가 주었으면 해요.
와카츠키 유미
‘마지메(진지한) 캐릭터는 나쁘지 않아!’라고 이야기 해 주고 싶어요. 일부러 ‘귀여운’쪽으로 가지 않아도 충분히 매력이 있는 아이니까요!
와다 마아야
겉모습은 어른스러워졌지만, 그 내면은 변하지 않았어요. 연예계에 있으면서도 그 정도로 순수함을 유지하고 있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지요. 앞으로도 모두 함께 그 순수함을 지켜 주고 싶어요!
이토 카린
머리가 좋아요. 통솔력이 있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바로잡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캡틴이 되어 주었으면 할 정도예요. (웃음)
이토 쥰나
요즘 어린 여자아이라는 느낌? (웃음). 아미나 치-랑 분위기가 비슷하죠. 연상이건 연하건 상관 없이 편하게 대할 줄 아는 재능은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키타노 히나코
특유의 넘치는 의욕이 결국 결실을 맺어, 치고 올라오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 생각합니다. 이 모습을 잃지 말고 거리낌 없이 올라 와 줬으면 해요.
사가라 이오리
외모를 보면 굉장히 예쁜데,입을 열면 약간 바보같죠(웃음) 그런 갭이 더 널리 알려진다면 더욱 더 팬이 늘 것 같아요.
사사키 코토코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죠시라쿠2’를 통해 ‘진심으로 즐기면 엄청난 힘을 발휘 할 줄 아는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좀 더 자신을 가졌으면 좋겠네요.
신우치 마이
멤버들에게 상식을 가르쳐 주기 때문에 (캡틴 입장에선) 도움이 많이 되지요. 하지만 마이츙 본인은 이래저래 생각하는 게 많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스즈키 아야네
카메라 앞에 서면 얌전해 지지만, 평소에는 자기 생각을 똑부러지게 이야기 하는 타입입니다. 3기생이 들어오면 여러 모로 변할 것 같아요.
테라다 란제
초창기 마유유를 방불케하는 외모와 진지한 성격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기에, 언젠간 정말로 센터에 설 것 같습니다.
호리 미오나
자신이 처한 환경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 지를 계산 할 줄 아는, 머리가 좋은 아이예요. 노기자카라는 그룹의 미래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 나갈 것이라 생각해요.
야마자키 레나
멤버들에는 놀림받는 경우가 많지만, 알고 보면 책사같은 부분이 있어요. 블로그를 쓸 때도 그렇고, ‘조시라쿠2’ 당시 연기를 할 때도 그렇고 자기 나름대로 연구하여 한 번 더 어레인지 하는 모습을 보면 엄청난 노력가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와타나베 미리아
감이 좋아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순식간에 이해하고 적절하게 되받아 칠 줄 압니다. 일을 능숙하게 해결 해 내는 타입이지요.
PART 04, 사쿠라이 레이카와 ‘과거’
유소년기
엄청나게 드센 성격이었어요. 유치원 선생님을 좋아해서 같은 반 친구와 선생님을 두고 싸우곤 했지요. 엄마 몰래 엄마 립스틱을 바르기도 했고요. 큐티 하니나 세일러문도 엄청 좋아했답니다. ’노기빙고6’에서 세일러문 코스프레를 했을 땐 즐겁기도 하고 좀 보기 힘들기도 했어요. (웃음)
초등학생때
초등학생 때, 인기가 엄청 좋았어요. 정말이에요!! 반 친구들이 ‘레이카랑 이야기 하면 정말 즐거워!’라고 말 하곤 했다고요!! 학급 임원이나 응원단장, 합창 콩쿨 때는 지휘자도 하는 등, 학급의 중심에 서 있었답니다. 그 때만 해도 엄청 포지티브하고 책임감이 있는 아이었어요! …라고 믿어 주세요!!
중학생때
잠시 꽃꽂이부에 들어 갔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유령부원이었어요. 그 부에 친구가 있었기에 들어간 것 뿐이었거든요. 사실 들어가고 싶었던 건 댄스부였습니다. 유치원에서 중학교까지 에스컬레이터식 학교였는데, 중학교때 외부에서 전학 온 아이들의 말투나 분위기를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네요. 전체적으로 조용한 아이였습니다.
고등학생때
이 때 처음으로 연예계에 대한 관심이 생겨, 오디션을 볼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당시 사이 좋던 친구와 함께 집에 돌아가며 그런 이야기를 했었거든요.그런데 그 친구 역시 ‘나는 가수가 되고 싶어’라 이야기 하고는 얼마 안 돼서 ‘음악 전문학교에 간다’며 학교를 그만 둬 버렸어요. 그 친구, 지금은 의상 디자이너인데 카와고랑 일을 한 적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PART 05, 사쿠라이 레이카와 ‘가족’
아빠가 딸에게
외동딸인 레이카는 어릴 때 부터 응석받이였기에, 쉬는 날이면 가급적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어디든 나갈 땐 제가 안고다녔는데, 어느 사이엔가 그게 버릇이 되어, 초등학교에 들어 간 뒤에도 한동안은 ‘안아줘’ 라고 투정을 부릴 정도였지요. 언제부턴가 제 품에 뛰어드는 타이밍과 그것을 제가 받아서 감싸 안는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들어, 그런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는 사이에 내 딸이 이렇게 컸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감회가 새로웠던 적이 있었지요.
가족을 아끼는 솔직하고 착한 딸입니다.
엄마가 딸에게
어릴 땐 정말로 활기차고 밝으면서도 손이 덜 타는 아이였습니다. 어릴 때 부터 여러가지를 배웠었기에 밖에서 놀 시간도 별로 없었지요. 당시에는 학교까지 한 시간도 넘게 걸렸기에, 학교가 끝난 뒤 집에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너무나도 피곤한 나머지 선 채로 졸기도 했었다고 합니다만, 그럴 때도 불평불만 하나 없이 노력 해 왔지요.
쉬는 날에는가족끼리 놀러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레이카가 좋아했던 디즈니를 자주 갔습니다. 폐장시간까지 놀고도 ‘집에 가기 싫다’며 떼를 쓰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PART 06, 사쿠라이 레이카와 ‘노기자카46’
- 노기자카에 들어 온 이후 터닝포인트가 있었다면 언제였나요?
음….잘 모르겠네요.아, 작년 전국투어부터 홍백가합전 사이의 노도와도 같은 나날들은 몇 년 뒤에 되돌아 보아도 평생 기억에 남을 시간들이었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세간의 평가가 변해가는 것을 직접 느끼기도 했고, 그 기간을 통해 노기자카46이라는 그룹에 자신감을 갖게되었지요.
- 그런 노도와도 같은 나날을 보내면서 ‘마이페이스로는 안되겠다’는 초조함도 느꼈을 것 같은데요.
네. 엄청 초조했어요. 노기자카46의 ‘시대’가 순식간에 끝나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엄습해 오곤했거든요. 만약 홍백에 나가지 못한다면 노기자카는 한 번에 추락 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 느낌은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기에 정말 무서웠습니다.
- 그럼 노기자카46이라는 그룹의 브랜드는 커져만 가는 가운데, 자신은 그 기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거나 했나요?
지금도 그런걸요 뭐. (웃음)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요. 그룹만 저 멀리 앞서가고 있다는 생각은 항상 합니다.
- 에이, 그렇지 않아요. 사쿠라이상 같은 경우, ‘Mr. 카미나리’나 ‘모든 개는 천국에 간다’, ‘리본의 기사’ 등 여러 무대를 경험하면서 착실히 연기 스킬을 늘려가고 있잖아요.
음… 그렇긴 해도 그런 성장 속도가 그룹의 그것에 비하면 같은 속도라고는 하기 힘들 것 같아요. 어쩔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몰라도, 저자신의 속도가 느린 건 아닌가 조급해지곤 해요. 그리고 그런 초조함을 컨트롤하기 힘들어서 더더욱 불안해지곤 합니다.
- 불안한 마음이 들 때, 혼자 고민하는 편인가요? 암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상담하는 편인가요?
엄청 상담해요. (웃음)
- 주로 누구에게 상담을 하나요?
와카나 마나츠에겐 자주 상담 합니다. 상담을 청하면 ‘그래 밥 먹으러 갈까?’라고 말해주곤 하거든요. 얼마 전에는 마리카나 맛층, 마이마이에게도 이야기 했었네요. 매니저분도 제가 이야기를 하면 잘 들어 주시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싶었어요.
- 그 과정을 통해 결국 자신만의 해답을 내놓은 건가요?
음… 결국 명확한 해답은 찾아 내지 못했어요. 뭐,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노기자카에서 열심히 하겠다는 거지만요.
- 그렇다는 건 ‘졸업’도 염두에 두고 고민했다는 얘긴가 보네요.
아뇨. 딱히 ‘졸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정한 건 아니었고, 그저 ‘졸업’이라는 것을 조금 더 가깝게 느끼게 되었지요. 저희같은 경우에는 ‘AKB48의 공식 라이벌’이라는 타이틀로 시작했기에, 비교적 빠른 속도로 인기를 얻을 수 있었지요. 하지만 그렇다는 것은 인기가 떨어지는 속도 역시 빠를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었고, 그 점에서 위기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노기자카라는 그룹을 더 큰 그룹으로 키워 내어, 저 자신의 꿈 역시 이 그룹을 통하여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 그룹의 신진대사를 촉진시켜 더더욱 변화시켜 가고 싶다는 생각은 있나요?
변화는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너무 급격하게, 너무 많이 바꾸어 버리면 그룹의 축이 흔들리고 말거든요. 현재 노기자카라는 그룹은 좋은 상태이므로, 상황을 보아가며 조금씩 변화를 주는 것이 더 좋을것 같네요.
- 사쿠라이상 본인은 계속 아이돌을 하지는 않을 생각이시고요?
언젠가는 ‘아이돌’이 아닌 자신의 모습을 선보이고 싶어요. 팬 여러분께서도 그런 제 마음을 아시고 응원 해 주시고요.
- 팬분들과의 관계성이 참 좋은 것 같네요.
팬분들이란 참 신기한 존재시죠. ‘어떻게 이렇게나 날 잘 알고 계실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를 잘 이해하고 계시거든요. 생탄제 때 ‘사쿠라이 레이카 매뉴얼’이라는 것을 적어 주신 적이 있는데, 엄청 상세한데다가 내용도 딱 맞더라고요. 예를 들어 ‘바빠질 때가 되면 어째선지 블로그를 쓰고 싶하지만 정말로 바빠지면 블로그 갱신이 딱 멈춘다’ 라던가. (웃음)
- 작년 다이어리에 ‘2015년 11월 1일부터 2016년 11월 1일 사이에 하고 싶은 일’을 적었다고 하던데, 어떤 것들을 적었나요?
‘1년 사이에 연극 3편에 출연’, ‘CM 출연’, ‘1년 사이에 O번 잡지에 실린다, ‘사진집을 내고 싶다’ 같은 것들이에요. …생각 해 보니 꽤 많이 적었네요. (웃음)
- 왜 그런 것들을 적었죠?
게으름뱅이다 보니 목표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안 하려 들거든요. 일단 정리를 해 두어야 1년간 일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 앞에서 멤버들을 평가했듯이 ‘사쿠라이 레이카’라는 멤버에 대해 평가를 해 주세요.
저의 이상적인 ‘캡틴’상에 ‘밝고 명랑한 사람’이라는 조건이 추가 되었기에 지금 이대로 변치않고 가 볼까 싶어요. 제가 밝게 지냄으로 하여 다른 멤버들이 ‘즐거운 일이라도 있나?’라고 착각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웃음)
- 지난호에서 와카츠키상을 취재했을 때, ‘니시노상을 센터에 두고, 사쿠라이상, 와카츠키상이 프론트에 서는 동갑내기 프론트’에 대해 이야기 했었는데요.
저도 언젠간 그 셋이 프론트에 서 보고 싶어요. 그 셋은 함께 있으면 안심감이 들고, 강해진 것 같거든요.
- 사쿠라이상 본인은 센터에 서 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하나요?
음… 졸업하기 전에 한 번 정도는서 보고 싶어요. 그런 마음은 있답니다.
- 그럼 마지막으로 사쿠라이상의 장래 희망에 대해 이야기 해 보죠.
아이돌로 출발하셔서 성공적으로 배우로 정착하신 시노하라 료코상이 목표입니다. 최근에 방영한 ‘저는 결혼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겁니다’(2016년 2분기 드라마)를 보고 나카타니 미키상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미모는 물론이고 기품있는 캐릭터에서 집념이 강한 캐릭터까지 소화하시는 폭 넓은 연기폭에 동경하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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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테 유리나 X 이코마 리나 사상 첫 대담
- 노기자카 멤버와 케야키자카 멤버간의 대담은 사상 처음이네요.
두 사람 동시에 : 오오!!
이코마 (이하 ‘이’) : 오~ 처음!! 처음이라니!! 해 냈다!! (※1)
- 히라테상이 아이돌에 흥미를 갖게 된 계기가 바로 이코마상이 센터에 선 ‘제목 마네킹’ MV였다고 하던데요.
히라테 (이하 ‘히’) : 네. ‘메자마시 TV’였던가… 아침 정보 방송에서 MV가 나오는 것을 보고 닭살이 돋았어요.
이 : 몇 살 때였어?
히 : 11살이었던가… 12살이었던가. 여하튼 초등학생 때였어요.
이 : 에에?! 대단하네요.
히 : ‘와 멋있다’라고 생각했어요. 아이돌이라 하면 그저 귀엽기만 한 이미지였기에 정말 깜짝 놀랐어요. 특히 프론트 멤버 셋이 뒤에서 등장하는 첫 장면이나 후렴구의 손 포즈라던가가 멋졌어요.
이 : 사실 나도 그 부분 좋아해. (웃음) 고마운 일이네요. 아무래도 여성들의 의견이란 건 특히 귀중한데다가, 이렇게 실제로 아이돌이 된 아이가 이렇게 이야기 해 주는 경우는 정말로 드문 케이스거든요.
- 그로부터 2년이 지나, 케야키자카에 들어 와, ‘FNS 음악제’에 처음으로 출연하여 바로 그 ‘제복 마네킹’을 선보였다. 라는 얘기군요.
히 : 사실 뭔가 면목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제 자리가 바로 그 이코마상의 자리였기에… 정말 내가 그 자리에 서도 괜찮은 걸까 고민됐지요.
- 이코마상이 ‘등장한 뒤, 카메라가 단독 샷을 잡아 줄 때 살짝 미소 지어보면 어떨까?’라고 조언을 해 줬다고 하던데요.
히 : 네.
이 : 케야키 멤버 전원이 제복 마네킹 MV의 그 ‘쿨’한 세계관에 너무 매여있는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기껏 TV에 나오는 거니까 미소 한 번 정도 짓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한 마디 거들어 버렸죠. (웃음)
- 그래서 그 조언은…?
히 : 말씀대로 했죠. 에헤헤.
이 : 저도 MV 촬영 때는 전혀 웃지 않았지만, TV에 나오거나 라이브를 할 땐 꼭 웃곤 하거든요. 내내 ‘마네킹’이었지만 마지막 장면에선 인간으로 돌아 와 웃는다. 뭐 그런 느낌이랄까요. 개인적으로는 그런 점을 의식해서 안무를 추고 있기도 하고요. 아, 그리고 등장 한 뒤에는 꼭 원샷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웃음)
- 이코마상은 히라테상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계신지요.
이 : 데뷔곡이 ‘사일렌트 매저리티’라는 멋진 곡이었기에, 그 멋짐을 표현하는 게 힘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그럼에도 그 안에서 스스로 방향성을 발견 해 내고 더욱 더 갈고 닦고 있구나… 라는 이미지예요.
히 : 아무래도 ‘멋있는’ 계열의 노래는 표현하기 힘들어요. MV 촬영 역시 엄청 긴장했었고요. 립싱크 신을 찍는 것도 처음이었고, 혼자 촬영을 하는 것도 처음이었거든요. 정말 엄청 긴장했어요.
- 바로 그 ‘사일렌트 매저리티’는 MV가 크게 화제가 되었고, 히트를 하였지요.
이 : 전부 좋았어요. 곡도 히라테쨩의 분위기랑 완벽히 매칭되는 곡이었고, 히라테쨩 본인도 좋았고… 전부 좋은 데다가 타이밍까지 완벽하게 겹쳤다고 봐요.
- 그럼 히라테상, 히라테상은 이코마상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계신가요.
히 : ‘노기도코’를 가끔 보았었기에, 처음에는 귀엽고 마이페이스인 분일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FNS 출연을 앞두고 제복 마네킹을 연습 할 때 함께 연습을 하며 도와 주셨는데, 정말 열심히 가르쳐 주시는 것을 보고 ‘상냥하고 뜨거운 사람이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 엄청 연습하고 있길래 놀러 간 거였거든요. (웃음) 연습을 보면서 ‘아무래도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서는 아이니까, 조금은 조언을 해 주는 게 좋으려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사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 아이가 제일 잘 하니까 가운데 서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보기 마련이잖아요. 엄청 힘들었을 거라 생각해요.
히 : 그 말씀대로 압박감이 대단했어요.
- 세컨드 싱글인 ‘세상에는 사랑뿐이야’에서도 센터에 발탁되셨지요. ‘케야카케’ 포지션 발표 때는 눈물을 흘리셨는데요.
히 : 음…
이 : 지금은 울고 싶을 때 울어도 된다고 생각해. 저 역시 처음에는 선발 발표 때마다 울었었는데, 지금은 솔직히 우는 것 조차 잊곤 해요. 자연체로 있으면 있을수록 모순이 눈에 들어 오고, 괴로워 지거든요. 뭐, 10번째 싱글 정도까지는 그런 것들 신경쓰지 말고 그저 정면돌파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지만요. (웃음)
히 : ‘센터’의 부담감을 극복하는 방법 같은 게 있나요?
이 : 솔직히 그 점에 대해서는 나 역시 극복하지 못 했다고 생각해. 극복하지 못 한 채 6번째 싱글까지 가 버렸어. 그렇기에 오히려 ‘센터는 이래야만 한다’라는 ‘이상적인 센터상’은 딱히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거든. 사실 그런 센터상이라는 건 주변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 버리니까… 히라테쨩 같은 경우에는 ‘쿨한 센터’ 랄까, 아마 히라테쨩 본인이 잘 알지 못 하는 사이에 그런 이미지가 만들어 져 있거든… 사실 나 같은 경우에도 나 자신보다 주변의 반응이라던가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더 이미지를 만드는 데 열심이었어. 그러니까… 분명 힘든 일도 잔뜩 있을 거라 생각은 하지만, 가급적 그런 주변의 의견에 휩쓸리지 않았으면 해.
히 : (가만히 듣고 있다.)
이 :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의 바르게 맡겨진 일에 열중하는 것, 예를 들어 MV를 만들 때 그 작품에 최선을 다 하는 것이라 생각해. 그룹 전체를 챙기는 일이나 그룹을 이끌고 가는 건 사실 이후에 정해 질 캡틴이 해 줄 일이거든. 히라테쨩 혼자 전부 짊어 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즐기면서 해 줬으면 좋겠어.
히 : 확실히 주변에서 더 열심이라는 건 저도 느껴요. 사실 다른 멤버들이 저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고, 저보다 더 좋은 표정을 짓는데도 주목을 받는 건 저…라던가.. 사실 그런 것들이 다시 제게는 부담이 되거든요.
- 처음으로 M스테에 출연했을 때도 그랬었죠.
이 : 정말 그렇게 찍을 줄은 몰랐어요. 참신했지요. (웃음)
히 : 그룹 소개 VTR인데 어째서인지 저만 비춰주더라고요. 게다가 화면 아래에 ‘센터에 주목’이라는 자막까지 나와서 정말 부담이었어요.
이 : 너무 그렇게 부담스러워 하지 않아도 되는데…
- 두 분은 서로 연락을 하거나 하나요?
두 사람 함께 : (미소 지으며 서로를 바라본다)
이 : 연락처는 이미 알고 있어요.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다지 연락을 주고 받지는 않네요. 스스로 여러 가지 일들을 깨닫길 바라거든요. 사실 처음에는 히라테쨩이 이것저것 제게 질문을 했었는데, 그건 그것 나름대로 중요하다 보지만 그보다도 중요한 건 시행착오를 하면서 스스로 배우는 것이라 보니까요. 물론 중요한 포인트라 생각되는 때는 한 마디 거드는 정도는 하고 있습니다. ‘THE MUSIC DAY’ 때 히라테쨩이 ‘역시 저는 멋있는 계열을 해야 하려나봐요’라고 이야기 하길래 ‘벌써부터 그렇게 정할 필요는 없지 않아? 어느 쪽으로도 갈 수 있는 올마이티가 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라고 이야기 해 준 적 있었어요. 인상나 기술이나 마찬가지인데, 한 가지 이미지만 갖고도 승부 할 수 있는 건 사실 초기 단계 뿐이거든요.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가지를 요구받게 되니까 말이죠.
- 케야키자카는 ‘M스테’도 그렇고, 주연 드라마도 그렇고 엄청난 스피드로 치고 나가고 있지요.
이 : 확실히 엄청난 스피드죠. 솔직히 때론 저 역시 ‘에에! 벌써?’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긴 해요. 저희 같은 경우에는 M스테에 처음 나간 게 7번째 싱글이었거든요. 하지만 확실히 느끼는 건 지금까지는 AKB그룹이 범접하지 못 할 원톱이었다 한다면 지금은 조금이나마 ‘사카미치’에도 좋은 바람이 불고 있다는 점이예요. 재미있는 일이죠.
히 : 지금 이렇게 저희가 활동 할 수 있는 것은 노기자카 선배님들께서 활약 해 주신 덕분이라 생각해요. 요 전에 THE MUSIC DAY 때, 노기자카 선배님들의 백댄서로 출연 한 적이 있는데, 같은 무대에 선다는 게 정말 죄송할 정도였어요. 최소한 함께 무대에 서신 노기자카 선배님들께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본방 직전까지 안무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지요. 저 뿐 아니라 케야키자카 멤버들은 누구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 케야키자카는 사실 저희보다도 더 힘들 거라 생각해요.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존재도 그렇고 선발을 앞으로 어떻게 정할 것인가도 그렇고. 절대로 자포자기하지 말고 끝까지 극복 해 내길 바랍니다. ‘TV도쿄 음악제’ 때 처음으로 케야키자카의 신곡을 보았는데, 히라테쨩 다음으로 네루쨩이 노래 하는 것을 보고 엄청 놀랐어요.
기껏 ‘자매그룹’이 생겼으니 노기자카와 케야키자카가 함께 이벤트를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저희 역시 위기감이라 할까요, 이대로 질 수는 없으니 더 열심히 하자는 마음이 있어요.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자극하고 경쟁하며 둘 다 좋아지는 그런 좋은 라이벌이 되었으면 합니다.
히 : 저희들 입장에선 노기자카 선배님들은 차마 손이 닿지 않는 곳에 계시는지라… 하지만 언젠가는 꼭 ‘라이벌이라 할 수 있을만큼 성장했구나’라는 말씀을 듣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 : 벌써 팬 분들이 노기자카에서 케야키로 흘러가고 있어요. (웃음)
히 : 아니예요. 오히려 걱정이 더 큰걸요. 이렇게 잠깐 관심을 가져 봤는데 저희가 제대로 못 하면 바로 노기자카로 흘러 가 버리는 건 아닐까 싶어서…
이 : 말하자면 ‘연합군’을 결성하면 되겠네. 그렇게 하면 음악제 같은 데에서 ‘46’ 콜라보 같은 것으로 둘 다 한 번 던 등장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고. 가능성이 더 넓혀질 거라 생각해.
히 : 그렇게 말씀 해 주시니 정말 기뻐요. 이렇게 ‘함께 뭔가를 하고 싶다’고 말씀 해 주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솔직히 저희 같은 경우에는 너무 축복받은 환경이라 미움 받을지도 모른다고 지레 겁먹고 한 발 물러서게 되거든요.
이 : 미워 할 리가 있니. (웃음) 하지만 지금처럼 질투 할 정도로 기세가 좋은 건 좋은 일이라 생각해. 케야키자카는 지금까지 다른 아이돌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잖아. 지금까지 아이돌의 ‘왕도’를 AKB 여러분들이 만들어 오셨다면 지금부터는 노기, 케야키 ‘46’들이 새로운 왕도를 만들어 갈 수 있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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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부터 나는.’
‘변화의 계기.’
- 지난 6월 5일, ‘노기자카 공사중’에서 15th 싱글의 선발 멤버가 발표되었지요. 1년 반만에 복신으로 복귀 하셨는데, 솔직한 마음을 여쭈어도 될까요?
마츠무라 (이하 ‘마’) : 음… 뭐라 말씀 드리기가 힘드네요. 하지만 가장 큰 건 역시 기쁘다는 점입니다. 네.. 일단 기뻐요…
- 발표 직후, 바나나맨의 시타라상이 마츠무라상에게 코멘트를 요구하였을 때, 눈물을 흘리셨지요.
마 : 음… 네… 아무래도 그 동안 저 자신도 복신에 복귀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팬 여러분께서도 그런 저의 뒤를 받쳐 주셨으니까요… 그러니까, 복신에 복귀했으니 팬 여러분께서 기뻐 해 주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동시에 ‘이래도 괜찮은 걸까?’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뭐라 해야 하죠… 3열에서 활동 해 온 지난 1년 반을 되돌아 보면 정말 알찬 시간이었고, 3열에 있었기에 할 수 있었던 일들도 있었거든요. ‘죠시라쿠’ 라던가 ‘모든 개는 천국에 간다’ 라던가…
- 아까 ‘이래도 괜찮은 걸까?’라고 하셨는데 조금 자세하게 이야기 해 주시겠어요?
마 : ‘나로 괜찮을까?’ 라는 이야기인 동시에 ‘왜 나일까?’라는 의미이기도 해요.
- 하지만 데뷔 이후로 쭉 복신 단골이었잖아요. 예전에도 그런 생각 했었나요?
마 : 네. 항상 했어요.
- 그럼 이번 작품에서 오랜만에 복신에 복귀한 덕분에 예전부터 갖고 있던 질문이 새삼스레 떠올랐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여도 되는 건가요?
마 : 음… 정말로 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모르겠거든요. 멤버들과 함께 있다보면 다른 멤버들의 장점은 금방 알 수 있거든요. 하지만 저 자신의 장점은 보이지 않아서… 매일 고민했어요. 지금도 ‘왜 나일까?’라는 질문은 자주 합니다.
- 방송 뒤에 올린 블로그에서도 ‘복신이 아니었던 지난 다섯 작품동안은 힘든 시기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즐겁고 충실한 기간이었다’고 썼었지요. 그 ‘즐거움’과 ‘충실함’은 어디서 온 것이었나요?
마 : 음… 역시 ‘멤버’였던 것 같아요.
- 멤버들이 자신을 받쳐 주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는 이야기군요.
마 : 함께 선발로 활동하는 멤버들과는 물론 사이가 좋지만, 뭐라 할까요… 역시 멤버 개개인이 독립적이라 해야 하나… 그런 분위기가 자연스러운 터라 마음 한 구석에는 외로움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모든 개는 천국에 간다’ 무대를 하면서 멤버들과 더 가까워 질 수 있었어요. 자신있게 ‘친구가 되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로.
- 그러고 보니 블로그에 ‘무대를 통해 멤버들과의 인연이 더 깊어졌다’고 썼었죠.
마 : 제가 멤버들을 저희 집에 불렀을 정도인걸요.
- 오!
마 : 대단하죠?
- 언제나 마음 속 자신만의 ‘사과’에 갖혀 있었던 마츠무라상이? (웃음)
마 : 네. 뭐 괜찮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그러고 보니 블로그에 ‘나는 다른 사람들과 있는 것이 아무래도 어색하다’고 쓴 적 있었죠.
마 : 관계가 깊어 지면 깊어 질수록, 좋아했던 사람의 단점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잖아요. 그런 게 두려웠던 것 같아요.
- 어릴 적부터 그런 성격이었나요?
마 : 초등학생 때는 친구라고 부를 만한 아이가 딱 한 명 있었어요. 지금도 엄청 친하고.
-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마음을 완전히 터 놓을 수 있는 건 그 친구 정도?
마 : 고등학생이 된 뒤엔 사이 좋은 그룹이 생기긴 했지만,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은 그 아이 한 명 뿐이었어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하고 연락을 잘 하지 않거든요. 아니, 애초에 연락처도 모르고.
- 무엇이건 상담 할 수 있는 상대가 있으면 좋다고 생각 해 본 적은 없어요?
마 : 가끔씩은 그런 생각이 들긴 해요. 하지만 결국은 ‘필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지요.
- 뭐든 결국은 혼자 해 버린다는 얘기죠?
마 : 네. 메일이나 라인 같은 것도 거의 안 보고…
- 그랬던 마츠무라상이 이번에 처음으로 멤버들을 집으로 초대 했다는 얘기죠? 마음의 변화랄까, 결심이라도 한 건가요?
마 : 음… 앞으로는 더욱 더 마음을 열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 오.. 그거 좋은데요.
마 : 멤버들하고 함께 자기로 한 뒤, 결국 누구네 집으로 가느냐를 주제로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그 때 누군가가 ‘맛층네 집은 어때?’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예전 같았으면 ‘절대 안돼’라고 이야기 했을테지만.
- 후후후..
마 : 처음에는 집이 좁다느니 더럽다느니 하면서 거절했었는데, 그러던 중에, ‘계속 이러면 결국 언제까지나 변하지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다른 사람들이 자기 집 내부를 들여다 보는 게 불쾌하거나 하진 않았나요?
마 : 걱정은 했는데, 실제로 멤버들이 집에 오고 보니까 전혀 신경이 안 쓰이더라고요. 오히려 우리 집에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상황이 정말 재미있었어요. 저희 멤버들 같은 경우엔 엄청 성실하게 준비를 하는 편이거든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요리 하려고 물을 끓이거나 (웃음)
- 맛 들이는 거 아녜요?
마 : 맛 들일 것 같은데요. (웃음)
- 아까 말했던 ‘변해야 한다’는 마음은 예전부터 갖고 있었나요?
마 : 예전부터 생각 했어요. 하지만 ‘변해야겠다’고 머릿속으로는 생각 하는데, 행동으로 옮기기가 힘들더라고요. 아니, 행동으로 옮길 찬스가 없었다 해야 하나… 하지만 무대를 계기로 그 찬스를 얻을 수 있었지요.
-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어떻게 바꾸고 싶었나요?
마 : 음… 다른 사람들을 과도하게 경계하는 부분?
-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으면 딱히 저를 경계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요. 그렇다는 건 ‘여기까진 괜찮지만 이 이상은 안 된다’는 명확한 경계선이 있는 건가요?
마 : 네.
- 그리고 그 ‘선’이 조금씩이나마 완화 되었다는 거죠?
마 : 네.
- 사람들이 들어 올 수 있는 구역이 착실히 넓어지고 있다는 얘기고.
마 : 네.
- 아까부터 ‘네’라는 말 밖에 안 하는데요.
마 : 후후후후
‘역할’
- 그러고 보니 지난 5월 26일, 올 나잇 닛폰에 출연하셨을 때 테라다 란제상과 자신이 분위기, 사고 방식이 닮았다고 이야기 한 적 있었죠?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닮았나요?
마 : 개인적으로는 소위 말하는 ‘미국적인 사고방식’을 좋아하거든요. 마음에 담아두고 꾹꾹 참기보다는 화려하고 깔끔하게 말이죠.
- ‘과정 보다는 결과’라는 얘긴가요? 하긴 그러고 보면 마츠무라상은 그렇게 꾹꾹 담아두는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네요.
마 : 그리고 어린 아이들은 더 많이 칭찬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웃음)
- 왜 갑자기 그런 말이 나오는 지 모르겠는데 말이죠 (웃음) 하지만 뭐… 외국에 살다가 돌아 온 아이들이 일본식의 커뮤니케이션에 녹아들지 못 하고 겉도는 경우는 그리 드물지 않은 일이죠.
마 :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깔끔하게 표현 해 주는 사람이랑 잘 맞는 것 같아요. 애초에 제가 다른 사람들을 경계하는 이유 역시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라는 데에서 온 것이니까요. 상대가 아무 생각이 없다면 저도 아무 생각 안 해도 되거든요.
- 그런 사고방식이 맞는 사람은 아무래도 단체 생활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마 : 그렇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랑 관계를 맺는 것을 꺼려왔던 것 같아요. 아마도… 정말 쓸 데 없는 것 까지 걱정하게 되거든요. 이 사람이랑 함께 밥을 먹고 싶은데, 사실 이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어쩌나. 라던가.
- 어떻게 보면 극단적인 자의식 과잉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마 : 아. 그런 것 같아요!
- 그런 가운데 결성 된 사유링고 군단이나 가라아게 자매는 어땠나요?
마 : 사실 그건 ‘일’이자 제게 맡겨진 ‘역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개인적으로는 항상 ‘무언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거 하고 싶다, 저거 하고 싶다는 식으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다른 멤버들에게 사과 하는 경우가 많아요. 멋대로 끌어들여서 미안하다고.
- 함께 하는 멤버들도 즐기고 있는 것 같던데요.
마 : ‘바쁘신 가운데 죄송합니다만..’ 뭐 그런 느낌이라 해 두죠 (웃음)
- 마츠무라상 이외에 그렇게 솔선해서 항상 무언가를 하려 하는 멤버는 따로 없잖아요. 마츠무라상, 그 점에 대해서는 자각하고 있나요?
마 : 음.. 딱히 제가 솔선해서 분위기를 띄우려고 하는 건 아니에요. 단순히 제가 하고 싶은 아이디어를 이야기 하는 것 뿐.
- 노기자카 활동에 대한 모티베이션이 크다는 얘기군요.
마 : 이래저래 아이디어를 내는 걸 좋아하는 것 뿐이에요. 하지만… 내가 그렇게 아이디어를 내도 되나, 나서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 무슨 얘긴가요?
마 : 아무래도 예전에 ‘그 일’이 있었으니까…
- 아…
마 : 저 스스로도 ‘나는 앞에 서서는 안 되는 인간’이라 생각했었거든요. 그래서 한동안 계속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이고… 시간이 1년 정도 흐르고, 응원 해 주시는 분들도 늘어났기에 지금이라면 조금씩은 아이디어를 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 실제로 블로그에서도 ‘저 자신이 무언가 변했다는 것을 느낍니다’라고 했었죠. 그런 ‘변화’에 작년의 홍백가합전 출장이 적잖게 영향을 주었을 것 같은데요?
마 : 음… 그건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어떻게 보자면 홍백이 변화의 계기였을지도 모르겠네요. 홍백이라 해야 하나… 시간이 지난 덕분이라 해야 하나… 아… 울 것 같아요… (눈물을 흘리며) 아마 몇 년이 지나도 이 이야기를 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오랜 침묵. 마츠무라는 눈물을 억누르려는 듯 조용히 천정만 쳐다본다.)
‘눈물과 결의’
- …마츠무라상, 얼마 전에 있었던 ‘노기중’ 선발 발표때 복신 복귀에 대해 ‘선택을 받았다는 것의 의미를 곱씹고, 최선을 다 하겠다’고 소감을 이야기 하셨지요. 본인은 그 ‘선택을 받은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마 : (눈물을 닦으며) 음… 팬 여러분을 더욱 더 즐겁게 만들어 드리도록 노력하라는 얘기라고 생각해요.
- 아까도 한 말이지만, 지금 그룹 내에서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하려 하는 건 마츠무라상 정도니까요.
마 : 그런 건 아니에요. 하지만 아무래도 그런 식으로 뭔가를 새롭게 시도 할 때, 복신 멤버가 그 시도를 주도 하면 임팩트가 더 커지는 것은 사실이니까… 제게 그런 역할을 기대하시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 그리고 그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론 더욱 더 많은 아이디어를 실현 해 나가겠다는 얘긴가요?
마 : 음.. 그렇게까지 말씀 해 주시는데 면목 없습니다만… 저 자신이 그 정도로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데다가, 딱히 재미있는 일을 할 줄 아는 인간이라고도 보지 않거든요. 그렇기에 당당하게 ‘네, 그럴게요’라고는 말씀드리기가 힘드네요. 그저 ‘이 멤버랑은 이런 걸 해 보면 좋겠다’ 라던가 하는 생각들을 실행 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런 실행력이랄까 행동력이랄까는 갖고 있다고 생각 합니다.
- 하지만 그렇게 마츠무라상이 생각하는 것들은 결국 팬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마 : 음… 제가 생각해도 제 성격, 참 번거로운 성격이에요. 가라아게 자매도 한 두번이 아니라 몇 번이고 하고 싶다, 하고 싶다 이야기 한 결과물이거든요. 심지어 기획서까지 썼었다니까요. (웃음)
- 그런 멤버 보기 힘들텐데요. (웃음)
마 : 실현 될 때 까지 질리지도 않고 이야기 했지요. 사유링고 군단도 마찬가지였어요. 편집 같은 거 전혀 할 줄 모르면서 일단 동영상부터 찍고 봤을 정도니까요. 한 번은 카린쨩이 ‘먼저 말 꺼내놓고 질리거나 하면 안돼요’라고 일침을 놓더라고요. (웃음)
- 자,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이 얘기를 마지막으로 들어 보도록 하죠. 2014년 연말에 열린 ‘노기자카46 대감사제’ 때 마츠무라상은 스테이지 위에서 ‘조금 더 힘 내 보자고 생각했다’고 이야기 한 바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 때 그룹을 그만두는 편이 더 편했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노력 해 온 결과가 이번 복신 복귀라는 결과로 나타났다고 생각하는데요.
마 : 감사합니다.
- 그 ‘사건’ 직후, 저희 (부브카 14년 12월호)와의 취재에서 ‘지금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도망치지 않는 것’이라 말씀하신 적 있었죠. 개인적으로는 그 때의 말대로 ‘도망치지 않’고, 현실에서 등을 돌리지 않고 노력 한 결과로 ‘복신에 복귀’하신 거니까… 좀 더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딱히 미화시키는 것도 아니고 옛날 일을 미담으로 포장하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죠.
마 : (눈물을 흘리며) 솔직히 지금도 고민 할 때가 많아요. 역시 나는 그룹을 그만두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라던가 평범하게 대학에 갔어야 하는 건 아닐까 라던가… 진심으로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여러 번 있었지만 그 때마다 ‘사유링고를 더 오래 보고 싶다’고, ‘그 때 그만두지 않아줘서 고마워’라고 말씀 해 주시는 팬 분들이 계셔서…
- 그렇군요.
마 : (눈물을 닦으며) 가끔씩 저 자신을 만화 속의 등장인물이라 생각해 보기도 해요.
- 음?
마 : 멤버들 각자에게 각각의 스토리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제게는 그런 게 없어요. 지금까지는 만화에 나오는 ‘길 지나가는 사람 A’라고나 할까요. 그렇기에 ‘만약 내가 만화 주인공이라면’ 이라고 상상을 하는 거예요. 이런 장면에서는 이런 식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게 재미있겠다던지, 이렇게 하면 독자들이 좋아하겠다던지… 그렇게 생각 해 보면, 제가 좋아했던 만화가 갑자기 끝이 나면 싫을 것 같더라고요. 이 쪽은 더 읽고 싶은데!!
- 결국 만화가 갑자기 끝이 나는 건 마츠무라상이 그룹을 그만두는 것이고, 독자는 팬 여러분이라는 얘기네요. 그렇게 보면 ‘마츠무라 사유리’라는 주인공이 나오는 만화는 지금 엄청 흥미진진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마 : 네.
- 마츠무라상은 독자분들께 그 만화를 더 보여드리고 싶은 거군요.
마 : CanCam의 모델이 된 뒤, ‘사유링 지지 마!’라고 응원 해 주시는 여성 팬분들이 늘었어요. 여성들은 ‘강한 사람’에게 끌리기 마련이잖아요. 그렇기에 저 역시 그 여성 팬분들을 위해서라도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자’고 생각했어요. 아이돌인 이상 남들 앞에 서서 용기를 주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에 대해 자각하게 되었고요.
- 저는 벌써 용기가 샘솟는 것 같은데요. 뭐랄까, 엄청 기운을 북돋아 주는 만화를 한 편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 할까
마 : 시간이 좀 더 흐른 뒤,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고 싶어요. 사실 저, 엄청 겁쟁이거든요. 한 때는 무엇을 하건 자신이 없고 겁만 났어요. TV나 무대 위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도 부담이었고, 악수회 같은 데에서 팬분들의 눈을 마주보는 게 너무 힘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없는 용기를 쥐어 짜 일단 행동을 해 본 결과, 어떻게든 되더라고요. 물론 처음에는 반겨주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다 보면 지켜 봐 주는 사람도, 응원 해 주는 사람도 생겨나지요. 아무리 무섭고 두려워도 지지 않고 계속 해 나가면 자연스럽게 결과가 나오는 법이라는 이야기 말이에요… 음… 뭔가 강연회 같아졌지만. (웃음)
- 후후후… 그 강연회, 개최한다면 연락 주세요. 취재하러 갈 테니. 오늘 하루 취재 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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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명의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의 2기생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
1장) 사가라 이오리, 테라다 란제, 호리 미오나, 야마자키 레나
‘호리의 센터 발탁. 서로 교차한 각자의 마음’
- 2기생들이 가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호리상이 선발 멤버로 발탁되었지요.
사가라 (이하 ‘사’) : 당시에 저는 활동을 하지 않았었기에, TV를 보다 알게 되었어요.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고, 얼마나 큰 중압감으로 작용할 지 사실 알지 못 했지요. 그저 놀랐을 뿐입니다.
테라다 (이하 ‘테’) : 미오나랑은 평소에도 자주 밥을 먹으러 간다던지, 서로의 집에 놀러 갔을 정도로 친했었기에 솔직히 분한 마음도 있었어요. 사실 처음부터 미오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부분이 있었기에 ‘당연하다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납득 할 수 밖에 없었지만요. 가까이에서 지켜 봐 왔기에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고나 할까요.
야마자키 (이하 ‘야’) : 사실 2기생 중 누군가가 톱 배터로서 치고 나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나니 ‘나는 어쩌면 있건 없건 큰 상관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불안해졌지요.
호리 (이하 ‘호’) : 오히려 다른 아이들이 저를 배려 해 주었기에 기쁨과 동시에 미안한 마음도 있었어요. 저 때문에 복잡한 감정을 안게 되기도 했고…
- 사가라상은 도중 합류한 뒤, 바로 ‘생명은 아름다워’에서 선발에 들었지요. 그 때, 호리상이 느꼈을 갈등이나 망설임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나요?
사 : 제가 선발에 들었을 땐, 이미 선발에 미오나도 있었고 사이가 좋았던 사이토 아스카쨩도 함께 선발이었기에 딱히 혼자라서 불안하다던가 하는 건 없었어요. 그보다는… 아무래도 다른 2기생 멤버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 할 지가… 정말로 신경 쓰였지요.
테 : 아,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이오리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당시에 정말로 무서웠다’고. 하지만 저는 갑작스레 그룹에 돌아 와, 급변하는 환경에 처하게 된 이오리가 걱정되었어요. 그렇기에 이오리가 무서웠다고 하는 걸 듣고 왜 그 때 내가 먼저 말을 걸어주지 못했던 걸까 후회했지요.
사 : 요즘에야 웃으면서 ‘그 땐 무서웠어~’라고 옛날 얘기처럼 할 수 있게 되었지만요.
테 : 예전보다 이야기 나누는 빈도도 늘었고요. 그런 시기가 있었기에 더더욱 이렇게 돈독해 질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몰라요.
- 케야키자카46가 데뷔 하고, 얼마 있으면 3기생도 가입하게 될텐데, 그런 상황에서 2기생들에게 있어 올 해가 정말 중요하겠어요.
테 : 다른 어떤 그룹보다도 단결력이 강하다고 생각해요.
야 : 응. 하지만 아직 ‘2기생’에게 주어지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테 : 이런 타이밍이니까 더더욱 2기생 곡을 투어 같은 데에서 선보이고 ‘2기생들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그리고 그런 평가가 ‘2기생’들의 일거리로 이어지면 좋겠고요.
- 그렇게 더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인지를 받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아키모토상의 ‘머리 큰’ 캐릭터나 시라이시상의 ‘쿠로이시상’ 같은 캐릭터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1기생들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임팩트를 주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이는데요.
사 : 음… 하지만 미오나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방송 같은데서 아무도 예상 못 했던 생뚱맞은 이야기를 꺼내거나 하는 거…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호 : 에… 사실 난 그런 거 잘 모르겠는데…
-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테 : 이오리는 겉모습만 보면 쿨 뷰티 이미지이지만, 사실은 목소리도 귀엽고 춤도 굉장히 여성스럽게 잘 추는 아이에요. 이미지 컬러는 아무래도 파랑이겠지만.
호 : 잠깐만! 이오리 얘기 하니까 갑자기 말이 많아지네! 내 얘기 할 때는 한 마디도 안 하더니.
테 : (웃음) 미오나는 뭐… 아직까지도 제게 있어선 ‘미확인 생명체’니까. 이오리는 최근 들어 엄청 친해지기도 했으니까. 이미지 컬러는 파랑이지만 마음만은 핑크핑크한 이오리.
호 : 헐. 갑자기 이오리 얘기로 바뀌었네. (웃음)
사 : 응. 핑크야 핑크!! (웃음) 팬 여러분께도 좀 더 제 진정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자, 그럼 저는 란제쨩 이야기를 해 볼게요. 란제쨩은 말이죠~ 쪼그매요~ 그러니까 그렇게 작고 귀여운 모습을 더 적극적으로 어필하면 좋을 것 같아요. 겉모습과는 달리 어른스럽기에 자기가 먼저 어리광을 부리거나 하진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더 어리광 부려도 좋을 것 같아요!
호 : 이오리랑 란제랑 성격이 바뀌면 진짜 최고일텐데.
사 : 아! 그거 좋은 생각!!
호 : 자, 그럼 자키에 대해선 제가 이야기 할게요. 스타일이 엄청 좋으니까 그라비아 같은 것을 좀 더 했으면 좋겠어요.
야 : 최근 들어서 솔로 그라비아를 처음으로 찍었어요. 라이브도 그렇지만, 조금이나마 언제 어떻게 스위치를 넣으면 좋을 지 알게 된 것 같아요.
사 : 그 스위치, 좀 더 적극적으로 키고 다니면 좋을 것 같아.
호 : 음.. 나는 자키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좀 더 오프 (스위치가 꺼 진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는데.
테 : 블로그 같은 데에선 좀 느슨하게 ‘오프’ 모습을 보여주고, 라이브 같을 땐 확실히 스위치가 들어 간 모습을 보여주면 팬 분들도 ‘오오!!’ 라고 놀라실 거라 생각해.
야 : 많이 배워 갑니다~ (웃음)
2장 ) 스즈키 아야네, 키타노 히나코, 이토 카린, 신우치 마이
앞서 승격한 셋. 거기서부터 생겨난 ‘골’과 그 골을 메꾸는 법은.
- 호리상이 승격한 뒤, 2기생들의 부위기가 확 변했다거나 했었나요?
신우치 (이하 ‘신’) : 그다지… 없었지?
키타노 (이하 ‘키’) : 그다지 없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초조하기도 했어요. 아무래도 미오나랑 동갑이기도 하고… 언젠가 한 번은 ‘걸즈 룰’을 연습하던 도중에 갑자기 머릿속이 새하얘 져서 아무 것도 못 하고 멍하니 서 있었던 적도 있었거든요. 그 순간 ‘아, 나는 아이돌이랑 안 맞는구나’라고 생각했었지요.
- 하지만 다음 싱글인 ‘깨닫고 보니 짝사랑’에서 선발에 뽑혔던 것은 그런 키타노상이었죠.
키 : 사실 선발에 뽑혔다고 해도 제가 열심히 해서 따 낸 것이 아니라, 그저 준비 된 의자에 앉았던 것 뿐이니까요. 선발에 들어 가서도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 하고 허무하게 끝나버렸고요.
- 분한 마음이 있었다. 는 거죠?
키 : 제가 만약 그 때 성과를 냈었다면 그 다음 상글에서도 더 많은 2기생들에게 기회가 돌아 갔었겠죠. ‘키타노 같은 애도 성과를 냈으니까 다른 2기생들도 써 보자’고. 하지만 제가 정말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 했기에 그 ‘의자’ 자체가 치워 져 버렸던 거라 생각하거든요…
카린 (이하 ‘카’) : 사실 그렇지도 않은데 말이죠. 그저 남아 있던 저희 실력이 부족했던 것 뿐인데…
- 동기들이 승격 하는 멤버와 승격 하지 못 하는 멤버로 갈리기 시작한 뒤, 서로간에 골이 패이거나 하진 않았었나요?
카 : 패였었지요. 정규생과 연구생들은 함께 일을 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고, 서로 생각하는 것도, 보는 풍경도 전혀 달랐으니까 맞을 수가 없었달까요.
신 : 승격한 동기들에게 말을 걸 용기조차 없었어요.
카 : 물론 한 때는 그랬어요. 하지만 조금씩이나마 자신감을 갖게 된 뒤로는 딱히 다른 멤버들을 부러워하거나 하는 마음은 좀 사라졌던 것 같긴 하네요. 아야네는 어땠어?
스즈키 (이하 ‘스’) : 저는 애초에 출발부터 다른 멤버들보다 늦었었고, 다른 멤버들에 비해 노력도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고 있었기에 감히 다른 멤버들에게 비교를 할 엄두도 못 냈어요.
신 : 하지만 그렇게 ‘아무 것도 못 하는’ 아이들이 많았기에, 무언가를 달성 해 냈을 때의 기쁨이 더 컸던 것 같기도 해요. 연구생 때는 라이브에서 입는 의상도 선배들 의상을 빌려 입곤 했었는데, 처음으로 제 의상을 받았을 때 정말 감동했었어요.
- 그리고 전원이 승격하게 되셨지요.
카 : 사실 그 때, 뒤늦게 승격한 6명 보다 먼저 승격한 아이들이 더 기뻐 해 주었어요.
신 : 엄청 울더라고요. 오히려 승격한 6명이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리둥절해서는… (웃음)
- 하지만 ‘지금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에선 선발에 2기생이 한 명도 들지 못 했습니다.
키 : 처음으로 2기생 전원이 같은 곳에 모이게 된 것이지요. 사실 그 때 2기생들의 인연이 더더욱 깊어졌어요.
카 : 응. 사실 이전까지는 2기생들 사이에 유대감이라 부를만한 것이 그다지 없었거든요.
키 : 함께 언더 라이브를 꾸려 나가거나, 함께 활동을 하면서 2기생이 더욱 더 좋아졌어요.
카 : 동시에 ‘2기생은 지금 같아선 안 된다’는 초조함도 있었지요. 특히 히나코는 더더욱 그랬어요. 그 때가 때마침 아이돌로서 각성 한 때이기도 하고요.
- 이야기를 조금 바꾸어 보지요. 여러분, 자신이 오디션을 받았던 때는 기억하고 있나요?
카 : 네. 아야네를 보고 ‘오. 보석 원석인데!’ 라고 감탄했어요. (웃음)
스 : 원석이라니~ 아니야~
신 : 앞으로 더더욱 갈고 닦으면 되는 거지 뭐. 저는 히나코를 보고 ‘잘 떠드는 애구나’라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있네요. 쥰나랑 둘이 얼마나 떠들던지. (웃음)
스 : 저는 사실 별달리 기억에 남는 게 없어요… 사실 그 당시 기억 자체가 거의 없다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네요. 별다른 생각 없이 오디션을 받았던 걸까요.
키 : 반대로 카린은 오디션에 대해 의욕이 완전 이글이글 불탔었지. (웃음)
카 : 아, 확실히 기분 나쁠 정도로 의욕 충만했었지. (웃음). 하지만 1기생 오디션 때 보다는 얌전하게 있어야겠다고 신경 쓴 거라고.
- 그러고 보니 1기생 오디션 땐 서명을 받아 왔었죠?
카 : 네. ‘이토 카린을 노기자카46에 넣어달라’는 서명을 400명에게 받아 갔었어요. 그 서명을 2차 심사때 제출 했을 때, 옆자리에 있던 시라이시상이 질겁하시던 게 아직도 잊히지가 않네요. (웃음) 너무 의욕이 앞서는 것도 좋은 건 아니란 얘기죠.
키 : 하지만 오디션 자체는 재미 있었어요. 그 때 느낀 긴장감, 두근거림은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어요.
카 : 아, 그건 합격 했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이고.
키 : 카린은 항상 떨어졌을 때 어땠었다 하는 말을 하지?
카 : 그랬던가? (웃음) 하지만 그런 제 실패담이 오디션 꿈나무들에게 참고가 되면 좋겠네요. (웃음)
3장) 이토 준나, 사사키 코토코, 와타나베 미리아
전원 승격으로부터 1년. 그 날 이후로 변한 것은?
- 전원 승격으로부터 1년여가 지났는데,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 볼까 해요. 우선 3rd 버스데이 라이브에서 연구생이었던 멤버들이 전원 승격 하였지요. 블로그 등을 통하여 기쁜 마음을 토로하셨던 것으로 아는데, 지금 와서 그 때의 일을 냉정하게 생각 해 보면 어떤 것 같나요?
와타나베 (이하 ‘와’) : 솔직히 말해서 저는 ‘분하다’는 마음 뿐이었어요. 선발에 들면서 승격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시간이 되었으니까 6명 함께 올려준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그 승격은 그다지 기쁘지 않아요.
쥰나 (이하 ‘쥰’) : 미리아는 스토익 하니까요. 쥰나는 정말 솔직하게 기뻤어요. 물론 분한 마음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보다는 기쁨과, ‘열심히 하자’는 의욕이 앞섰어요.
사사키 (이하 ‘코’) : 그리고 한 명씩 승격하는 것 보다 6명의 동기들이 한 번에 승격했다는 것도 좋았어요.
- ‘보더’라는 명곡은 그 6명에게 주어진 곡인데요.
코 : 물론 ‘자유의 저 편’이라던가, 노래 자체에 참가 한 적은 있었지만… 제 목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확실히 실린 것은 보더가 처음이었어요. 그것만으로도 정말 기뻤습니다.
와 : 합창이나 코러스 뿐 아니라, 솔로 파트가 있었거든요. 그것도 적지 않게.
쥰 : 목소리가 이 모양이다 보니 듣다 보면 부끄럽기도 하지만 말이죠. (웃음) 안무도 정말 신선했어요.
코 : 그렇게 적은 인원이 안무 대형을 짠 것도 처음이었고요. 레슨 룸이 그렇게 넓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어요.
와 :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 한 것들을 느꼈다고 할까요.
- 지난 1년 동안 주변 환경도 많이 변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정규 멤버가 되어 ‘연구생 티’를 벗어내기 위하여 스스로 어떤 부분을 변화시켰고, 성장 해 왔다고 생각하나요?
쥰 : 선배님들과 사이가 좋아 진 것을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연구생 때는 무슨 일을 할 때건 ‘1기생’과 ‘2기생’으로 나뉘곤 했으니까.
와 : 리허설 때도 그랬어요. 2기생들끼리만 모여서 조촐하게 하곤 했지요.
쥰 : 언더 라이브 때도 ‘연구생’이다 보니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라고 제안을 하거나 하는 건 생각도 못 했거든요. 하지만 승격 한 뒤 1년이 지난 지금은 선배 후배 상관 없이 서로서로 떠들썩하게 잘 지낼 수 있게 되었어요. 진정한 의미에서 ‘동료’가 되었다고 할까요.
코 : 저는… 예전에 비해서 그래도 말 수가 많이 늘었… 다고 생각해요.
쥰 : 언더 라이브에서 MC도 혼자 할 수 있게 되었지요. 대단하죠.
코 : 라링상이 애드립으로 제게 말을 많이 걸어 주신 덕분에 제 생각을 말로 옮길 수 있게 되었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저 역시 선배님들과 사이가 좋아 진 게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선배님들과 사이가 좋아 진 덕분에 라이브를 즐길 수 있게 되었고요.
와 : 일 관계 없이 개인적으로도 만나서 놀 정도로 사이가 좋아졌어요!
쥰 : 특히 카나상이라던가.
코 : 아! 카나상에게 폭언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요 전에 카나상이 상어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왔었는데, 아무리 봐도 상어가 아니라 새송이버섯으로 보여서 ‘그 티셔츠 엄청 구려요’라고 이야기 했지요.
와 : 진짜 엄청 성장했구나 코토코… (웃음)
쥰 : 그 정도로 사이가 좋다는 거겠지. (웃음) 지금 언더 멤버들 사이는 정말 엄청 좋거든요. 만나기만 하면 말이 끊기질 않아서 시끄러울 정도예요 . (쓴웃음)
와 : 언더 라이브 무도관 공연이나 첫 홍백가합전 출연을 경험한 것 역시 컸다고 생각해요. 그런 큰 무대에 2기생들도 함께 함으로 하여 ‘나도 노기자카라는 이름을 짊어지고 있다’, ‘나도 노기자카의 일원이다’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지요.
- ‘지금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 때 선발에 2기생이 한 명도 들지 못 한 상황에 대해 여러분께서 ‘폭풍 전야의 고요’라고 하신 적 있는데요. 그 ‘고요함’은 언제 깨질까요?
쥰 : 이미 시작 된 것 같은데요. 미오나나 히나코가 15번째 싱글에서 선발에 들어 가기도 했기에 2기생들의 기세는 점점 더 강해 질 것이라 생각해요.
코 : 사실 현재 2기생은 그 둘이 이끌어 준다는 느낌이 있지요.
와 :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그 둘에게 모든 것을 맡겨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2기생 전원이 그 둘과 같은 선상에 설 정도로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쥰 : 저는 미오나와 히나코를 곁에서 지탱 해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현재 그 둘은 딱히 제가 ‘지탱’ 해 줄 필요도 없을 정도로 성장한데다가, 솔직히 지금 같아선 저는 그 둘 근처도 가기 힘들 지 모르지요. 그러니까 15번째 싱글 활동기간 동안 힘을 모았다가 다음 싱글에서 폭발 시키고 싶습니다. 그 둘을 따라 가, 아니 넘어서고 싶어요.
와 : 지금 저희가 하는 모든 것이 전부 기회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며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 생각하고요. 물론 선발까지는 아직 멀고 멀다고 생각하지만, 이번에야 말로 제 힘으로 길을 열어가고 싶어요.
코 : 저는 우선 다른 아이들이 하고 있는 것을 따라잡아야 할 것 같아요… 우선 블로그 갱신도 늘리고, 모바메도 좀 더 많이 보내고, 애고도 좀 더 익숙해 져야…
와&쥰 : 애교오?! (웃음)
코 : 아직 웃는 게 어색해서…
와 : 에~ 그래도 귀여운걸 뭐~
코 : 그래? (생긋 웃음)
쥰 응. 귀여워 귀여워. 천천히라도 좋으니 열심히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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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인터뷰
‘노기자카46의 크리에이션에 대해 생각 해 보다’
종합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
챕터 1)
노기자카46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공식 라이벌’이 탄생하게 된 경위.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 ‘공식 라이벌’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생겨난 순간이었다. AKB48 그룹이 있다는 전제 하에, ‘노기자카46’이라는 새로운 아이돌 그룹을 처음부터 만들어 나가기로 한 것은 어떤 경위로 내려진 결단인 것일까?
- 사실 소니는 산하 레이블인 ‘데프스타 레코즈(※1)’를 통하여 AKB48를 메이저 데뷔하게 해 준 바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무리 해도 판매량이 좋지 못했지요. AKB48이 본격적으로 히트하기 시작 한 것은 이후 레코드 회사를 킹 레코드로 이적 한 뒤였습니다. 그렇기에 마음 한 편에 소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있었던 것이지요.
사실 이 일에 대해 일반적으로는 ‘판매량이 좋지 못 했기에 소니측이 잘라 버렸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사실. 그렇기에 다소 유감인 부분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자신들을 잘라 버린 회사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느꼈다는 것은 놀라운 발언이 아닐 수 없었다.
- 사실 AKB가 히트 친 뒤, 소니측에서 ‘우리측이 판권을 갖고 있는 MV를 DVD화 시키고 싶다’는 오퍼가 오더군요. 그래서 장난으로 ‘제목을 놓친 물고기라고 붙인다면 DVD화 해도 괜찮다’고 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제목을 붙여서 발매하더라고요. 그렇게 과거 일에 대해 서로 농담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단계까지 간다면 더 이상 유감이니 뭐니 하며 고집을 부릴 순 없는 법이지요.
거기서부터 소니와 함께 새롭게 아이돌 그룹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사실 AKB 내부의 그룹 (자매그룹)을 소니에게 주는 것도 한 방법이었겠지만, 그것보단 적이라 할까… 라이벌이라 할까 그런 그룹을 만드는 것이 더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공식 라이벌 그룹’을 만들기로 했지요. 그래서 ‘숫자가 2 작아도 이길 수 있다’는 의미로 그룹 뒤에 46이라는 숫자를 붙이기로 한 것이고요.
그룹 이름은 노기자카 (SME 노기자카 빌딩- 소니뮤직 본사빌딩)에서 오디션을 열었으니까 ‘노기자카’로 해야겠다 생각했고요. AKB에 대항한다는 의미에서 보자면 AKB와 비슷하게 알파벳을 쓰는 게 맞겠지만, 노기자카는 무조건 한자표기 그대로 써야겠다고 고집했고요.
그렇게 이야기 했더니 소니뮤직측에서 ‘사실 이 빌딩은 노기자카보다는 로쿠반쵸에 가깝다’고 하길래 한 순간 ‘로쿠반쵸(六番町)46’으로 해야 하나하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웃음) 그 이름은 뭔가 확 끌리는 게 없어서 그냥 노기자카46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하마터면 ‘로쿠(六)’로 시작해서 ‘6’으로 끝나는 애매한 이름이 될 뻔 했던 노기자카.
이번 취재의 메인 테마는 ‘노기자카는 지금까지 어떻게 AKB48 그룹과의 차별화를 꾀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개성을 확립하여 왔는가’였다.
과연 프로듀서인 그의 눈에는 초창기부터 노기자카 46만의 콘셉트와 컬러가 파악 되었던 것인가? 그리고 그 당시 그가 생각한 콘셉트와 컬러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인가?
- 무엇보다도 큰 차이는 다름 아닌 ‘소니 뮤직’이라는 회사의 힘, 브랜드라고 해야 할 지 이미지라고 해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을 들 수 있겠지요.
그리고 개인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룹을 만들기로 한 순간부터 ‘프렌치 팝’을 기조로 해야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습니다. 파리의 리센느(※2)같은 분위기를 지닌 그룹을 만들어야겠다는 목표가 있었다고 할까요.
사실 예전부터 프렌치 팝을 좋아했거든요. ‘꿈 꾸는 샹송인형(※3)’ 이라던가 ‘아이돌을 찾아라(※4)’ 라던가… 기본적으로 프렌치 팝은 전부 좋아합니다만.
초기 싱글인 ‘구루구루 커튼’, ‘오이데 샴푸’는 말 그대로 프렌치 팝적인 감성이 담뿍 담긴 노선을 택한 싱글들이었다. 물론 그 뒤로 나온 ‘제복 마네킹’이나 ‘걸스 룰’ 같은 경우에는 그런 노선에서 벗어 나, 악곡의 스펙트럼이 넓어 진 느낌도 들지만 결성 초기부터 지금까지 음악적 방향성에는 명확한 비전이 있었다고 한다.
아니, 다르게 말하자면 바로 그 ‘프렌치 팝’을 근간에 둔 음악적 장르성이 노기자카46이라는 그룹의 이미지를 크게 정해 준 요소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노기자카46과 AKB48 그룹의 가장 큰 차이점을 들자면 다름 아닌 ‘전용극장의 유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AKB48 그룹은 전용 극장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이라는 전무후무한 콘셉트를 시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전용극장 이야기는 사실 처음부터 있었습니다. 시나가와 부근에 딱 좋은 곳이 있다는 구체적인 제안을 받기도 했고요.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예전에 했던 것을 다시 해 봤자 재미 없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어 끌리지 않았지요. 만나러 갈 수 있는 친근한 아이돌도 좋지만, 뭐랄까… 좀 더 세련된 방향으로 끌고 가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이쯤 되면 ‘그렇게 막연한 이미지만 갖고, 확실한 콘셉트 같은 것을 표시 한 것도 아닌데, 잘도 그룹 이미지에 잘 맞는 멤버들을 모았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건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 오디션 때 모여있는 후보생들의 얼굴을 딱 본 순간, 이미 AKB48와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소니라는 대기업이 오디션을 한 덕분일지도, AKB48 그룹이 아닌 ‘공식 라이벌 그룹’ 오디션이기 때문일 지도 모르지만요.
사실 ‘팔리는 상품’이라는 게 만들어지는 순간이란 건 수 많은 기적에 기적이 거듭 되는 순간이라 할 수 있지요. 소니라는 그룹이 가진 브랜드, 프렌치 팝적인 감성이란 막연한 이미지에, AKB48 그룹 오디션에서는 잘 보기 힘든 타입의 아이들, 다시 말 해 하시모토 같은 ‘멋 있는’ 아이, 시라이시 같은 ‘엄청난 미인’, 이쿠타 같은 ‘청초한 아가씨’, 이코마 같은 ‘소박한 아이’ 들이 모여 있는 오디션 현장을 보고 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바로 ‘AKB48이 도립고교라면 노기자카는 사립 여자고등학교…’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노기자카의 독자적인 컨셉이 머리 속에 떠올랐던 것이죠.
챕터 2)
창작 활동의 목표와 현실,
그리고 ‘카미곡’ 탄생의 배경.
앞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이젠 프렌치 팝 뿐 아니라 곡의 스펙트럼 역시 매우 넓어졌다. 악곡 제작이나 작사에 있어 AKB48그룹과 차별성을 두고 있는 점은 있는 것일까?
- 기본적으로는 딱히 구분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AKB48 그룹의 곡에 ‘키미’나 ‘보쿠’가 많이 쓰이기에 (※ 보쿠는 보통 남성이 쓰는 말) 노기자카는 그에 비해 여성 입장에서 곡을 쓴다던가 하지도 않고요. 곡을 쓸 때 있어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이 곡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할까’라는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렇게 보자면 노기자카라는 그룹에 있어 기적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너의 이름은 희망’이라는 곡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노기자카의 대표곡이라고도 할 수 있는 5번째 싱글 ‘너의 이름은 희망’. 일반적인 아이돌곡에선 쉽게 느끼기 힘든 ‘고독’과 ‘소외감’을 노래한 곡이다. 그리고 실제로 노기자카46 멤버 중에 과거에 이지메를 당했거나 등교거부를 하는 등 곡의 메시지와 같은 처지에 처한 멤버들이 많다는 점도 곡의 세계관과 멋지게 싱크로 한 곡이다.
- 음… ‘킨스마’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요. ‘다카하시 미나미와 실제로 그렇게 깊은 이야기를 나눈 적은 많지 않습니다만, 곡의 가사를 통해 다카하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말이지요. AKB48도 그렇지만 노기자카 역시 멤버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주로 매니저를 통해서 입니다. ‘누구누구는 이런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던가 말이죠. 물론 그런 개인적인 고민을 갖고 가사를 쓰거나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만, 저도 모르게 평소에 듣고 있던 이야기들이 무의식중에 쌓이고 쌓여 가사에 반영되는 경우는 있으리라 생각해요. ‘너의 이름은 희망’ 같은 경우도 가사를 쓸 때, 스기야마 카츠히코(※5)가 작곡한 멜로디를 듣고, 그 멜로디에 가장 어울리는 가사를 써야겠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당시 멤버들에 대해 여러 모로 이야기를 듣던 시기기도 했고요.
과연 곡이 완성되었을 때 ‘이 곡은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 음… 개인적으로도 엄청 마음에 드는 가사였지만, 곡을 들은 멤버들의 동요가 엄청났다고 하더군요. ‘카미곡이다’ 라고. (웃음) 아티스트라는 건, 말하자면 전골과도 비슷한 존재거든요. 여러 가지 재료와 육수를 넣고 어느 정도 끓이다 보면 ‘맛있는 전골’이 되는 타이밍이 있는 것이지요. 제가 보기에 노기자카라는 그룹이 가장 처음으로 ‘맛있는 전골’이 된 타이밍이 바로 이 ‘너의 이름은 희망’이라는 곡으로 활동 할 때였다고 생각해요.
노기자카의 활동을 이야기 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연극 ‘16명의 프린시펄’이다. 하지만 이 무대에 대한 아키모토의 평가는 의외로 매우 짰다.
- 사실 처음에는 프린시펄을 중심으로 활동하게 할 생각이었습니다. 당초 콘셉트는 프린시펄이라는 무대를 중심으로, 음악과 연기를 융합시킨 아이돌 그룹을 만드는 것이었거든요. 하지만 3번에 걸친 프린시펄 활동 동안 제가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무대가 완성되었던 거예요. 사실 무대 위에서 어필 타임을 갖는다던지, 인기 투표를 한다던지 하는 건 제가 생각했던 프린시펄의 모습이 아니었거든요. 제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것은 ‘코러스라인(※6)’ 같은 무대였어요.
쉽게 말해 처음에 퍼포먼스를 한 뒤에 인터벌 시간동안 투표를 하고, 후반에 누가 어떤 역을 할 지 정하는 그런 구조 말입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중에 ‘에드윈 드루드의 비밀(※7)’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1막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관객들이 투표를 해서 ‘범인’을 정하는 방식이거든요. 그런 식으로 프린시펄을 진행 해 나가고자 했는데, 그게 쉽지 않더군요. 앞으로의 과제랄까요.
노기자카46라고 하면 보통 ‘컬쳐계’나 ‘크리에이터에게 인기’라는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아키모토가 기대하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르다고. 아키모토가 목표로 하는 것은 멤버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정한 ‘표현자’가 되어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지도 모른다.
챕터 3)
점점 선명해 져 가는 노기자카의 ‘색’
‘노기자카 다움’이란 어떤 것인가?
이번 취재에서 꼭 질문하고 싶었지만 쉽사리 이야기를 꺼내지 못 했던 질문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AKB48 그룹의 경우, 서프라이즈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데 반해, 노기자카는 그 빈도가 적은 편인데 그것은 그룹의 이미지를 생각하여 의식적으로 계산 한 결과인가?’ 라는 질문이었다. 용기를 쥐어 짜 질문을 해 보니, 의외로 평범한 대답이 돌아왔다.
- 제 흥미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서프라이즈 발표’에 재미를 느끼던 시기냐 아니냐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체력적으로 예전만 못 하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겨우 그런 이유라고?!’ 라고 큰 소리를 내 버리고 말았다. 뭐 그것도 아키모토상 다운 말 돌리기라 해야 할 지도 모르겠지만.
- 너무 남에게 맡기기만 해서, 때로는 좀 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관여하는 편이 나을 거란 생각도 안 드는 건 아니지만… 지치거든요. 그런 거.
이런 적당한 대답에 대해 ‘하지만 너무 꾸미지 않은 담백한 모습이 노기자카라는 그룹 이미지와 잘 맞아서 좋은 건 아닐까요’라고 질문을 해 보았다.
- 뭐, 그것도 결국은 결과론이니까 말이죠. 인터넷을 통해 방송했던 46시간 TV도 재미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 있었던 장면은 다름 아닌 ‘멤버들이 피자를 주문하는 장면’이었지요. (웃음) 뭐, 이런 감상은 그리 중요한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멤버들이 피자 한 판을 몇 명이서 먹어치우는가, 얼마나 먹는가 하는 부분을 보며 얘들도 평범한 여자아이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재미 있었어요. 아마 제가 그 현장에 있었다면 ‘딱히 제한 두지 말고 먹고 싶은 걸 주문해’라고 했을 거예요. 하지만 그래서는 피자 주문 장면에서 느꼈던 재미를 느끼지 못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무래도 예상도 하지 못 했던 일이 일어나는 것이 재미있는 법이지요. 엔딩에서 사쿠라이가 멋지게 마무리를 하고, 감동을 받은 멤버들이 눈물을 흘리며 분위기 좋게 끝 내려 하는데 갑작스레 핀란드 민요(※8)를 부르기 시작하는 이쿠타의 모습이라던지 말지요. (웃음) 그런 게 재미있는 거예요.
때 마침 이쿠타의 이름이 나온 김에… 앞서 멤버들의 첫인상을 이야기 한 바 있는데, 그 뒤 멤버들의 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질문을 해 보았다.
- 예를 들어 니시노 같은 경우, 오디션 때는 전혀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지요. 하지만 나중에 스태프들이 이야기 하길, 악수회 인기가 대단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실제로 니시노를 만나보니 정말로 지켜주고 싶어지는 아우라가 대단하더군요. 마츠무라 같은 경우에는 머리도 좋고, 독특한 분위기도 갖고 있는 아이지요. 최근 결성한 ‘사유링고 군단’이 정말 재미있었기에 이 멤버로 곡을 만들어 볼까 싶어졌지요.
다카야마는 정말로 좋은 녀석입니다. 니시노가 사진집을 냈을 때, ‘올나잇 닛폰’에서 니시노와 함께 방송을 한 적이 있는데, 사진집을 내게 된 니시노를 질투 하기는커녕 진심으로 축복 해 주는 모습을 보며 참 기특하다고 생각했었지요. 사이토 아스카 역시 독특한 모델감이 있어 재미 있는 아이입니다.
그룹이 결성 된 지 5년째를 맞이하여, 멤버 각자의 캐릭터 역시 물이 올라 있고, 다방면에서 활약을 하고 있는 노기자카46. 아키모토 역시 그 성장을 기꺼워 하고 있는 듯 싶었다.
- AKB48와는 달리 아직 인원이 적기 때문에 멤버들을 알아보기 쉽다는 점도 있을 거라 봅니다. 작년 진구구장 라이브가 끝나고 열린 반성회에서 멤버들이 ‘노기자카 다움’이라는 말을 엄청나게 반복하더군요. ‘노기자카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면서 말이죠. 하지만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생각했습니다.
아르헨티나에 ‘카미니토(※9)’라는 거리가 있는데, 그 곳이 바로 ‘탱고’의 발상지인 것이죠. 항구 마을에 위치한 거리인데 멀리서 보면 희미하게 분홍 빛이랑 녹색이 아른아른 거려서 엄청 예쁜 곳이거든요. 하지만 가까이 가 보면 그 거리에 위치한 집들이 매우 강렬한 원색으로 칠해 져 있어요. 그것도 절반은 분홍색, 절반은 파랑색으로 칠한 집들도 있고 말입니다. 왜 그렇게 칠해져 있냐 하면, 배를 칠하고 남은 페인트로 집 벽을 칠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실제로는 엄청 강렬한 원색으로 제각각 색칠이 되어 있는데도 멀리서 보면 조화를 이루며 예쁘게 보인다는 얘깁니다.
그룹도 그런 법이에요. 모두들 같은 곳을 보면서 한가지 ‘~다움’을 추구하기보다는 각자 멋대로 자기 색을 내고, 그것이 서로서로 조화되는 순간, 지금껏 본 적 없는 아름다운 색이 탄생하는 법이지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노기자카 다움’이 아닐까 싶어요.
지금까지 순조롭게 성장 해 왔기 때문일까, 멤버 뿐 아니라 팬들도 ‘노기자카 다움’이라는 것에 더더욱 집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종합 프로듀서인 아키모토는 멤버들에게서 더욱 더 큰 가능성을 보고 있는 듯 하다.
- 처음부터 머릿속으로 계산해서 ‘여기는 핑크로 칠하고 저기는~’ 이라며 색을 칠한다고 카미니토의 그 아름다운 색을 낼 수는 없지요.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긴 한데, 프로듀서가 하는 일은 ‘0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이미 일어 난 일, 혹은 멤버들이 만들어 낸 것들을 어떻게 더 넓혀가느냐를 고민하는 일이라 할 수 있겠네요. 그렇기에 프로듀서는 ‘이런 일이 있을 땐 이렇게 바로 바로 반응’ 할 수 있는 순발력이 요구되지요. 그렇기에 항상 멤버들에게도 ‘힌트를 줘’라고 요구하고, 스태프들에게도 ‘안심하거나 만족하지 말라’고 이야기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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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데프스타 레코즈 :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가 2000년에 창설한 레이블. 이듬해 분사. 히라이 켄이나 the brilliant green, 킹기드라, BEAT CRUSADERS, 사립 에비스중학교 등이 소속되었다. 2014년에 다시금 소니 뮤직 레이블로 이관, 이듬해 SME레코즈에 흡수되었다. AKB48은 2006년부터 약 2년가량 데프스타에 소속되었다.
※2 리센느 : 리세 (프랑스의 중기 중등 교육기관)에 다니는 15~17세의 여학생. 일본에서는 198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전설의 컬쳐 잡지 ‘Olive’를 통해 ‘청초하고 시크한 패션, 혹은 라이프 스타일’을 상징하는 단어로 널리 쓰였다.
※3 꿈꾸는 샹송인형 : Poupée De Cire, Poupée De Son 프랑스의 기재 세르쥬 갱스부르가 작사 작곡, 프랑스 갈 (France Gall)이 부른 노래. 1965년 발매.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인 히트를 기록, 수 많은 가수들이 커버하였으며, 일본에서도 수 많은 아티스트들이 즐겨 부르는 명곡으로 이름 높다. TV 방송의 삽입곡이나 CM곡 등으로도 많이 쓰이며, 2015년 JUJU가 커버, 세븐 & 아이 홀딩스 (세븐일레븐) CM곡으로 쓰이기도. 원제는 ‘샹송인형’이 아니라 ‘납인형’이며, 사랑에 대해 모르면서 사랑을 노래하는 영혼없는 가수들을 비꼰 노래.
※4 아이돌을 찾아라 : La plus belle pour aller dancer 63년에 제작된 동명의 프랑스 영화에 삽입된 곡. 해당 영화에 출연하여 이 곡을 부른 가수, 실비 바르탕은 귀여운 외모와 허스키한 목소리로 일본에서도 ‘원조 아이돌’이라 불리며 인기를 구가하였다. 해당 곡은 일본 내에서도 100만장을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였다. ‘꿈꾸는 샹송인형’과 마찬가지로 나카오 에미나 히로타 미에코 등 수 많은 일본 가수들이 커버 하였다. 참고로 ‘아이돌을 찾아라’는 일본에서 붙인 제목이며 원제는 ‘춤 추러 갈 땐 가장 아름다운 아가씨와 함께’ 이다.
※5 스기야마 카츠히코 : 1982년생, 사이타마 출신. 작사가, 작곡가, 편곡가로서 활동하며 아라시, AKB48, SKE48, 코다 쿠미, 나카시마 미카 등 수 많은 아티스트들에게 곡을 제공하였다. 노기자카의 곡들 중에선 에포크 메이킹 (미증유의 물건, 사상 초유의 것)이라 할 수 있는 ‘제복 마네킹’ (작곡), ‘너의 이름은 희망’ (작/편곡) 등 히트곡들을 만들어 내며 팬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6 코러스 라인 : 1975년 첫 공연 이후 15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사랑 받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작품의 무대는 뮤지컬 작곡가 잭이 새로운 뮤지컬의 코러스 댄서를 모집하는 오디션. 댄서들은 배역을 따내기 위하여 진지하게 오디션에 임하며, ‘너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잭의 질문에 대해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토로하며 시작된다. 쇼 비즈니스 세계의 냉혹한 현실과 그 안에 숨겨진 꿈, 그리고 그 세계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인생이 그려내는 이 작품은 수 많은 상을 수상하고, 영화화 되기도. 일본에서도 극단 시키가 수 차례에 걸쳐 공연 한 바 있다.
※7 에드윈 드루드의 비밀 : 1985년에 초연. 관객들의 ‘투표’로 후반부의 전개와 결말이 변한다는 신선한 구조를 취한 코미디 뮤지컬. 영국의 문호 찰스 디킨스의 유작이기도 한 미완 미스터리 소설을 연극화 하여, 극중극으로 선보이며, 원작이 끝난 부분을 관객들의 ‘투표’로 정하여 극을 이어간다. 유니크한 구조와 발상이 호평을 받아 토니상을 5부문이나 수상하기도.
※8 핀란드 민요 : ‘이에반 폴카’는 핀란드의 전통적인 폴카 (체코에서 시작 된 민족무용곡)이다. 90년대 핀란드의 포크 콰르텟인 ‘로이츠마’가 커버하여 세계적으로 유행하였다. 이쿠타 에리카는 2016년 2월에 방송된 ‘46시간 TV’에서 이 곡을 피로하였다. 노래를 들으며 외웠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무대였기에 주일 핀란드 대사관이 공식 트위터를 통해 칭찬 하기도.
※9 카미니토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보카지구에 위치한 지역명. 스페인어로는 ‘오솔길’이라는 의미이다.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이 정착하면서 레스토랑, 바, 기념품 등에 대담하고 화려한 원색이 쓰이기 시작하였다. 관광지로서도 인기가 높으며, 탱고를 추는 사람들의 모습과 거리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이 거리를 밝게 수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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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yaNeAir
스즈키 아야네적 비행기애(愛)
연재 두 번째 편(便)
무엇보다도 안전이 제일! 철저한 안전 정비에 깜짝!
안녕하세요, 비행기에 푹 빠진 스즈키 아야네입니다. 이번 회 연재를 위하여 무려! ANA의 기체 정비공장에 다녀왔습니다. 그 뿐 아니라, 여러분께서 평소 이용하시는 비행기를 정비하시는 정비사, 츠네요시 케이토씨께서 비행기 정비에 대하여 여러 모로 친절하게 설명 해 주시기도 하였습니다. 전혀 몰랐던 것들 뿐이라 정말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우선 무엇보다도 ‘철저하게 안전을 중시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물론 비행기를 정비하는 이유가 ‘비행기를 안전하게 운행하기 위함’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는 이야기이겠지만, 너무나도 철저하게 안전을 추구하시는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정비사 여러분께서는 작은 실수도 저지르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의 작업을 철저히, 그리고 객관적으로 체크하십니다. 팀을 짜서 매사에 여러 명이 철저하게 체크하곤 하십니다. 출근 때, 일부러 손님들이 가득한 여객 터미널을 통하여 출근하신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공항 내에 가득한 탑승객들을 직접 보고, 본인들이 그 탑승객들의 안전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오늘 하루도 성실하게 작업에 임하자고 스스로를 다잡기 위함이라 합니다.
이번 취재에서 알게 된 것 중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다름 아니라 정비사 여러분께서 정비공장 내부에서 이동하실 때 세 발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신다는 점이었습니다. 두 발 자전거가 아니라 세 발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 역시 안전을 위해서라고 합니다. 두 발 자전거는 아무래도 쓰러질 수 있기에, 자전거 짐칸에 넣어 둔 소중한 부품이나 기구를 고장 내거나 잃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일부러 세 발 자전거를 이용한다는 것이지요. 비행기 부품은 아무리 작은 것, 예를 들어 볼트 하나만 해도 수 만엔씩 합니다. 블랙박스 정도 되면 수천만엔 정도는 우스울 정도지요. 그런 고가의 부품들을 운반 한다니… 제가 그런 부품이 실려있는 세 발 자전거를 몬다는 생각만 해도 긴장이 될 정도네요. (웃음)
정비사 분께서 사용하시는 공구에 숨겨진 ‘안전을 고려한 비밀’
정비사 분들께서 쓰시는 공구에도 안전을 고려한 비밀들이 숨겨 져 있습니다.
공구함은 3단으로 나뉘어 져 있는데, 각 칸마다 우레탄 수지가 깔려있고, 그 우레탄 수지에는 각 공구에 딱 맞는 모양의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 공구 모양대로 구멍이 뚫려 있는 이유는 지금 어떤 공구를 꺼내서 쓰고 있는 지 한 눈에 알 수 있게 (※다시 말 해, 어떤 공구가 없는 지) 되어 있습니다. 또한, 각 정비사 분마다 각각 관리번호가 주어 져 있어서, 다른 사람의 공구와 섞이는 것을 방지하고 있습니다.
크기가 큰 비행기를 정비하다 보니, 정비 할 때는 각각 구획을 정한 뒤, 자신이 담당한 구획의 정비에 필요한 공구를 확인하게 되는데, 이런 체크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여러 번 체크를 한다는 게 귀찮을 수도 있지만, 체크를 게을리 하다 기체 내부에 공구를 잃어버린다거나 하는 것 보다는 나으니까요. 만에 하나 공구 분실사건이 일어나거나 하면 전원이 비행기 전체를, 다시 말 해 비행기 내부는 물론이고 부품 하나하나, 각자의 주머니 속까지 전부 확인을 한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비행기를 컴퓨터로 제어 가능 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되었는데, 이런 고도화, 기계화는 정비 공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정비사분들이 공장 내부로 들어 갈 때는 필요 최소한의 공구만 갖고 들어 가고, 작업 중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공구실에서 빌린다고 합니다. 이 ‘공구실’ 내부에 있는 것들은 전부 일일이 바코드가 붙어 있어, 누가 언제 어떤 것을 빌려 갔는지는 물론이고, 어떤 비행기의 정비에 쓰였는지 등 온갖 정보가 컴퓨터로 관리되고 있다 합니다.
정비 내용도 시대에 맞추어 항상 진화 해 가고 있다.
취재를 하다, 츠네요시상께서 남기신 명언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경험이나 감에 의지하지 않는 것’ 이라는 말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정비사’라 하면 아무래도 ‘장인’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어요. 전통 공예에서는 ‘이 작업은 장인의 경험과 감에 의지한다’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만, 비행기 정비는 그와는 정 반대였습니다.
기체에 트러블이 일어났을 경우, 경험이 많은 정비사라면 본인의 경험과 감으로 대충 어떤 부분이 문제이리라는 것은 짐작 할 수 있을 터인데도, 절대 그렇게 하지 않고 메이커에서 만든 정비 매뉴얼에 입각하여, 정해진 순서대로 철저히 정비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그런 점이라고 하시는 모습을 보며 새로운 가치관을 발견 한 것 같았습니다.
자 그럼 여기서부터는 제가 이번 취재를 통해 직접 배운 비행기 정비에 대해 간단히 소개 해 드리고자 합니다.
비행기 정비는 각 비행기의 비행 시간에 따라 A체크와 C체크로 구분됩니다. 비행 시간이 500~600시간에 달할 때 마다 행하는 A체크는 정비사 10명 내외가 정비를 행하며, 비행 전날 밤을 새워 하는 정비입니다. 주요 내용은 비행기 내부 계기와 장비들이 제대로 동작하는가를 확인하며, 가동부분에 급유를 한다고.
C 체크는 비행시간이 6,000시간에 달했을 때 행하는 정비이며, A체크보다 훨씬 더 본격적인 정비를 행합니다. 정비사 30~40명이 두 팀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정비하는 팀과 오후 3시부터 심야 0시까지 정비하는 팀)으로 나뉘어 2주일이나 되는 긴 시간을 들여 철저하게 체크하는 정비입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고, ‘왜 B체크는 없냐’는 의문이 생기지 않으셨나요?
사실 예전에는 B체크, 그리고 D체크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B체크와 D체크는 각각 A체크와 C체크에 통합되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예전에 비하여 정비의 신뢰도가 높아졌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비행기가 ‘귀엽다’니!
정비사분들 역시 비행기를 사랑해 마지않는 분들!!
책임이 중대하면서 힘이 드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정비사분들이 힘을 낼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니라 정비사분들께서도 비행기를 좋아하는 분들이기 때문이라 합니다. 이번에 취재에 응해주신 츠네요시상 역시 어릴 때부터 정비사를 꿈꾸던 분이시며, ‘내가 몇 주일이나 고생해서 정비 한 비행기가 격납고에서 나가는 모습을 보면 감동을 받는다’고 하십니다. 심지어 츠네요시상은 비행기가 ‘귀엽다’고도 하시더군요. (웃음) 예전 기체들은 최신 기종들에 비해 정비하기 힘들다고 하시면서 그런 면 조차도 ‘귀여운 점’이라고 이야기 하신 뒤, ‘물론 최신 기종들도 귀엽지만’이라 덧붙이시는 츠네요시상. (웃음)
그런 ‘귀여운’ 비행기들 역시 언젠간 이별해야 할 때가 옵니다.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인데, 비행기는 ‘기본적으로 수명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합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만들어 진 지 50년이 넘은 비행기들이 현역으로 활약 중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오래 된 기체일수록 정비가 복잡하고, 더 철저하게 정비를 해야 하므로 막대한 금액과 시간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ANA는 약 20년을 주기로 비행기들을 바꾸어 주고 있다 합니다. 물론 쓸쓸한 느낌도 들긴 하지만, 그렇게 은퇴한 비행기들이 어딘가 다른 나라에서 하늘을 날거나, 다른 비행기의 부품으로서 새 생명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참고로 츠네요시상이 좋아하는 비행기는 저와 같은 ‘대형기종’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보잉 777 – 300ER을 특별히 좋아하신다고 하더군요. ‘동체가 가장 긴 기종이고, 엔진도 크기 때문에 박력이 있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역시 비행기라 하면 박력이 있는 대형기종이 멋진 법이지요. (웃음)
비행기의 취향은 같았습니다만, 역시 프로인 츠네요시상과 아마추어인 저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좋아하는 ‘부품’이었습니다. 제가 차마 상상도 못 했던 부품을 좋아하신다고 하더라고요. 츠네요시상이 좋아하시는 부품은 다름 아닌 ‘콕핏 창문’ 이었습니다.
덴노나 총리대신이 해외 순방을 다닐 때, 정부 전용기 콕핏 외부에 히노마루(일장기의 빨간 원, 태양을 상징)가 붙어 있는 것을 보신 분도 계실 지 모르겠네요.
보잉 767이나 777 같은 경우, 콕핏 창문을 열거나 바꿀 수 있습니다만, 창문을 바꿔 다는 것은 매우 힘든 작업이라 합니다. 현장에서 그런 일이 들어 올 경우, 대부분의 경우 츠네요시상께서 담당하시는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츠네요시상에게 있어 콕핏 창문을 바꾸어 다는 작업이야 말로 본인의 실력을 발휘 할 수 있는 무대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게 다른 정비사들이
자신의 실력을 믿고 맡겨 줄 때, 정비사로서의 보람을 느낀다는 츠네요시상의 모습을 보며, 저만의 ‘콕핏 창문’, 다시
말 해 ‘이건 스즈키 아야네에게 맡기면 틀림 없어’라고 자신을
가질 수 있는 것들을 더더욱 늘려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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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의 결단
올 해 1월 7일, 노기자카46에서 졸업 할 것을 발표한 후카가와 마이. 2011년 8월에 오디션에 합격, 1기생 멤버로서 활동을 시작 한 지 약 4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성모’라는 애칭과 그룹의 ‘치유’의 상징으로 사랑 받아 온 그녀는, 대체 어떻게 성장 해 온 것일까. 우선 시즈오카에서 보낸 그녀의 유소년기부터 짚어보도록 하자.
초등학교 때, ‘얌전한 아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았습니다만, 실제로는 나무 타기를 좋아했어요. 어릴 때부터 ‘봉’같은 게 있으면 우선 타고 올라가곤 했지요. (웃음) 밖에 나가서 놀이기구 같은 것을 타며 노는 걸 좋아했어요. 그렇게 보이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자연 속에서 컸거든요.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해서, 신문에 들어 간 광고 전단지 중에 뒷면이 백지인 것들을 모아서 거기다가 그림을 그리곤 했어요.
당시에 엄마가 톨페인팅 (※ 오래된 가구나 상자 같은 곳에 그림을 그려서 장식하는 인테리어 데코레이션의 일종) 교실을 하셨기에 나무에 그림을 그리거나 목공예 같은 건 일상이었거든요. 그렇게 엄마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며 저도 옆에서 ‘나도 그림 그릴래’ 라며 낙서를 하다 보니 그림을 그리게 되었던 것 같아요.
- 실제로는 활발한 편임에도 항상 얌전한 아이로 보이는 데에 대해 반발하기도 했다고 하는 그녀.
실제로도 얌전한 편이긴 하지만, 당시에는 저를 그렇게만 보는 주변 시선이 싫었어요. 그래서 ‘머리가 짧으면 활발한 아이로 봐 주겠지?’라 생각해서 엄청 짧게 잘랐던 적도 있을 정도랍니다.
물론 친한 친구들 앞에서는 장난도 잘 치고 본래 저 자신의 모습을 내보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친한 친구가 아닐 경우에는 스스로 말을 걸거나 하지 못 하는 편이었기에, 낯가림이 심하긴 했지만요. 하지만 노기자카에 들어 온 뒤, 일을 하면서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늘어, 요즘은 예전보다 덜 긴장하며 다른 사람과 이야기 나눌 수 있게 되었어요. 오히려 처음 만나는 분과도 ‘더 이야기 나누고 싶다’고 생각 할 정도가 되었지요.
- 어릴 때엔 어떤 직업을 갖고 싶었는지 물어 보았다. 어릴 적부터 연예계에 대한 동경은 있었느냐고.
초등학생 때엔 여러 분야에 관심이 있었어요. 자주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 하곤 했는데, 한 편으로는 와가시(※ 일본식 과자. ‘화과자’) 장인도 되고 싶었지요. (웃음) 뭔가를 만들어 내는 ‘크리에이티브한 직업’을 갖고 싶었던 것 같아요.
연예계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중학교 때 쯤이었던 것 같아요. 원래 여자아이들이란 중학생 때쯤부터 패션 잡지를 사기 시작하곤 하잖아요. 저 역시도 비슷했어요. 저랑 비슷한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엄청 귀엽고 블링블링한 화장을 하고 귀여운 옷을 입고 잡지에 실려 있는 것을 보며, 헤어 메이크 특집을 혼자 따라 해 보기도 하곤 했지요.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그 때 부터였던 것 같아요. 물론 그 당시에는 그렇다고 해서 오디션을 받으러 다니거나 하진 않고, 그저 잡지를 보는 정도였지만요.
-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그림’에 대한 열망은 중학교에 들어 갔을 때쯤부터 본격화 되었다고 한다.
중학교에 들어 가, 미술부에 들어 갔어요. 고등학교는 보통과와 예술과로 나뉘어 있는 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는데, 예술과를 선택했지요. 예술과는 보통과보다 미술 수업이 많은, 좀 특이한 커리큘럼이었어요. 고 2가 되었을 때 부터는 아예 수학 시간이 없어졌고, 미술 시간이나 각자의 전공 수업 시간이 많아졌지요. 체육이나 국어 같은 과목은 좋아했지만, 점차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를 만들거나 하는 데에 더더욱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 앞서 실린 이코마 리나, 이쿠타 에리카와의 대담에서 ‘노기자카46에 들어오기 전, 부 활동 같은 때에도 딱히 그렇게 상하관계가 엄격하지 않았다’고 이야기 한 후카가와. 부 활동 외에도 비교적 평화로운 학교 생활을 보냈던 것일까?
중학교 때엔 무서운 선배들도 있었어요. 예를 들어 주차장에서 진 치고 있다가 치마 길이가 좀 짧은 후배들이 지나가면 일일이 주의를 주는 선배라던가. (웃음) 하지만 부 활동 때는 그런 일이 전혀 없었어요. 딱히 운동부에 들어 갔던 것도 아니기에, 운동부에서 흔한 엄격한 상하관계 같은 건 느껴 본 적이 없네요. 테니스부였던 친구를 보면서 ‘힘들겠다’고 생각 한 적은 있지만, 제가 속해있던 미술부는 정말이지 평화 그 자체였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육상부에 들어갈 까 생각 하기도 했었는데, 장거리 종목이 쥐약이라… (웃음) 그래서 ‘그림 그리는 것 좋아하니까’ 라며 미술부를 골랐습니다.
-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후카가와는 의복 계열 전문학교에 진학하였다.
물론 그 당시에도 연예계에 대한 동경은 있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 한 직후, 아무 것도 없는 상태였기에, 상경해서 혼자 살 엄두는 내지도 못 했고요. 그래서 일단 뭔가 기술을 배워두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고야에 있는 전문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나고야에서의 생활이 제 생애 첫 홀로서기였는데, 나고야에서의 생활은 정말 즐거웠답니다. 시즈오카 출신이다 보니 나고야에 대한 첫 인상은 ‘도시’라는 거였어요. 사람도 많고, 나고야역도 엄청 넓고… 처음에는 지리도 잘 모르고 했기에 혼자 잘 해 낼 수 있을까 걱정도 많이 되었지만, 살다 보니 점점 익숙해지고, 살기 편한 곳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전문학교 친구들이 시내 이 곳 저 곳을 안내 해 주기도 했고, 함께 밥을 먹으러 다니기도 하는 등, 매일매일 즐거운 나날이었습니다.
- 전문학교를 졸업 한 뒤의 진로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을까?
전문학교는 2년제였어요. 그리고 졸업 한 뒤에는 평범하게 취직 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하지만 취직 해 버리면 연예인이 되겠다는 꿈은 접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취직을 하느냐 마느냐 결단하는 게 어떤 의미에선 마지막 결단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지요. 그리고 여기서 취직을 택하면 나중에 가서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렇기에, 잘 풀리지는 않을 지도 모르지만, 아예 해 보지도 않고 후회하기 보다는 도전이라도 해 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상경할 결심을 하게 되었지요. 아마 그 때 도쿄로 올라 올 결심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 때 도쿄로 갔어야 했는데’라고 언제까지고 후회했으리라 생각해요.
부모님과도 상담을 했는데, 부모님도 딱히 절대 안 된다고 강하게 반대하시는 타입은 아니라서 말이지요. 제가 어느 정도 생활 할 수 있을만한 돈을 모으고, 확실히 생활할 수 있다면 일단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시켜주시고, 응원 해 주시는 분들인지라 제가 도쿄로 올라가겠다고 했을 때도 ‘그럼 가기 전에 몇 년 해 보겠다고 확실히 정하고, 그 기간이 끝났을 때에도 성과가 없다면 돌아 오렴’이라 말씀 하시는 정도였지요.
- 후카가와는 그렇게 2011년 봄, 도쿄로 상경한다. 나고야에서 보낸 2년과는 또 다른 생활이 시작 된 것이다.
나고야와는 완전히 달랐지요. 처음 도쿄로 왔을 때, 대학 문제로 먼저 상경 해 있던 고향 친구가 시부야를 안내 해 줬어요. 마루큐 같은 곳에 처음 갔을 때, ‘와, 대단해!’ 라며 엄청 사진을 찍어댔지요. (웃음) 학생 때 읽었던 패션 잡지에 소개 된 가게들도 엄청 많았고요. 사실 그런 가게들, 잡지에서 보고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시즈오카에는 없는 가게들인지라 저랑은 연이 없다 생각했었거든요.
그렇기에 모델들이 입고 있는 그런 가게의 옷들을 보며 ‘예쁘다’고 생각만 할 뿐이었는데, 도쿄에 올라 오니 그런 가게들이 한 데 모여 있는데다가, 그런 가게들 이외에도 온갖 것들이 한 곳에 있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정말 엄청나게 놀랐어요.
당시에는 오디션을 받는 동시에 미용실의 컷 모델을 했어요. 미용실 비용이 비싸서 큰 부담이 되지만, 컷 모델을 하면 공짜로 자를 수 있었거든요. 그 뿐 아니라 사진도 예쁘게 찍어 주시기도 하니 일석이조였지요. 모델이나 배우에 대한 동경이 있었기에 그 쪽 오디션을 주로 받았어요. 사실 나이도 있고 하니 아이돌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안 했지요.
- 그랬던 그녀가 ‘노기자카46’이라는 아이돌의 오디션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1기생’을 뽑는다는 것에 끌렸어요. 아마 10기생 같은 기수였다면 오디션을 받지 않았을 것 같은데, 1기생으로서 처음부터 그룹을 만들어 간다는 것에 흥미가 갔지요. 그리고, 칸무리 방송이 확정 되어 있는 등, 여러 모로 축복받은 환경이기도 했고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한 번 응모 해 볼까?’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당시에는 아이돌에 대해서 거의 무지했거든요. AKB48의 노래를 제대로 들은 것도 전문학교 다닐 때, 친구에게 앨범을 빌려 들은 게 처음이었을 정도였고요. 물론 어릴 때 모닝구 무스메。를 좋아하긴 했습니다.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다가시야(※불량식품이나 간단한 군것질거리를 파는 구멍가게)에서 파는 모무스의 씰을 모았기에, 저로 원하는 멤버가 나오면 교환해서 파일에 모으곤 했어요. 초등학생 때는 사실 미니모니。에 들어가는 것이 꿈이기도 했고요. (웃음) 하지만 미니모니。 (※미니모니는 결성 당시 150cm 미만 멤버가 모여 만든 그룹이었음)에 들어가기에는 키가 커서… 노래 하고 춤 추는 것에 대한 동경은 있었어요.
- 모무스를 좋아하긴 했지만, 본인이 춤을 배우거나 노래를 배운 적은 없다는 그녀.
당시에는 춤이고 노래고 배운 적이 없어요. 친구들의 가족들과 함께 디즈니랜드에 간 적이 있거든요. 근데 디즈니랜드의 쇼 같은 데에서 ‘함께 춤 추자’며 관객들을 부르는 경우가 있잖아요? 함께 간 친구는 엄청 활발한 아이라서 바로 그 안으로 들어 가 춤을 추었어요. 저 역시 그 안으로 들어 가 함께 춤을 추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 했지요.
신나게 춤을 추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부럽다…’ 라는, 저도 모를 복잡한 마음이 생겼어요. 부럽기도 하고, 나도 나가서 함께 춤 추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 하고 ‘부끄럽다’는 마음이 앞서 버린 것이지요.
마음 한 편으로는 춤 추고 노래하는 데 대한 동경을 갖고 있으면서도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너무 부담되고 싫었던 아이, 학교에서 발표하는 것 조차도 싫어하는 아이였답니다.
- 그랬던 그녀는 이후 고교에 들어 가, 밴드 활동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경험을 살려 노기자카46에 들어 와서는 그룹 내의 밴드 유닛 ‘노기단’의 기타리스트로서 활약하게 된다.
고등학교 축제에서 밴드를 하게 되었어요. 제가 다니던 학교 예술과는 미술 전공과 음악 전공이 있었는데, 음악 전공 친구들이 ‘기타 칠 사람이 없는데 마이쨩이 기타 맡아 주지 않을래?’ 라고 이야기를 했거든요. 그 얘기를 듣고 연습을 시작했지요.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하는 것은 엄청 긴장 되었지만, 끝난 뒤에 느껴지는 달성감이 대단했어요. 나중에 ‘해 보지도 않고 못 한다고 단정짓지 않길 잘 했어’라고 생각했지요.
지금 생각 해 보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선보인다는 것의 원점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 노기자카의 오디션 얘기로 돌아 가 보자. 여러 차례에 걸친 심사들을 통과하며 그녀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을까.
정말로 어찌 될 지 몰라 불안했어요. 오디션 때, 제 곁에 있는 아이와 이야기를 하긴 했는데, 그 아이도 도중에 탈락 하거나 했기에 그런 모습을 보며 불안감은 점점 더 커졌지요.
아무래도 아이돌 오디션이다 보니 주변에는 온통 귀엽고 빛나는 아이들 뿐이기도 했고요. 다른 후보생들을 보며 ‘아, 이런 아이들이 연예인이 되는 거구나’라고 생각했지요.
- 그런 그녀 역시 38,934명의 응모자 중 36명만이 뽑힌 노기자카의 1기생에 뽑혔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로 요행이었다고,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아직도 어떤 기준으로 제가 뽑힌 것인 지를 모르겠거든요. 다른 멤버들과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저를 뽑은 건 아닐까 생각은 합니다만. (웃음)
솔직히 제 이름이 불렸을 때, ‘아… 오…’ 이런 정도의 느낌이었거든요. (웃음) 다큐멘터리 영화였던가… 제 이름이 불리는 순간이 찍힌 영상이 있었는데, 다른 멤버들은 이름이 불리면 울곤 하는데 저는 ‘에?’라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더라고요. (웃음)
물론 합격 한 것은 기뻤고, 기왕 여기까지 온 거 끝까지 가 보자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아이돌’이 된 뒤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전혀 감이 안 잡혔거든요. 하지만 도쿄에 올라 와 처음으로 합격 한 오디션이기도 했기에, 이왕 붙은 거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 당시 후카가와의 나이는 20세. 대부분의 멤버들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합격자 발표가 끝난 뒤, 유미네와 함께 주변 멤버들에게 ‘몇 살이니?’라고 물었어요. 사실 동갑인 멤버 (유미네)가 있어서 한 숨 돌리기는 했는데, 다른 멤버들 얘기를 들어보니 전부 저희보다 한참 어리더라고요. 마아야는 심지어 당시 13살이었고요. (웃음)
사실 이전까지는 이렇게 많은 어린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일이 딱히 없었거든요.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야 후배라고 해 봤자 1~2살 어린 아이들인데다가, 아르바이트를 함께 한 것은 대부분 연상이 많았고 해서, ‘이렇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 잘 지낼 수 있을까? 친해 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걱정도 많이 했어요. 다들 착한 아이들이라 정말 다행이지요.
- 아이돌로서 활동을 시작 한 뒤로 경험 한 것들은 대부분이 지금껏 경험 한 적 없는 것들, 익숙치 않은 것들 뿐이었다고 하는 그녀. 당시에는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고 하는데.
아이돌이라는 일은 제가 생각 했던 것 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어요. 전문학교 때 AKB의 앨범을 빌려서 듣거나, TV에서 보거나 하며 갖게 된, 막연한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지요. 그것도 초반에는 레슨이 주말에만 있었기에, 평일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다시피 했거든요.
당시에는 나쨩처럼 주말에만 도쿄에 올라 와 레슨을 받고, 월요일에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 가 학교에 다니곤 하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저나 나나밍처럼 아예 상경을 한 멤버들은 정말 할 일이 없었죠. 아르바이트도 하면 안 됐고, 돈이 없어서 놀러 다니지도 못 했고, 마찬가지로 돈이 없으니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니지도 못 했고요. 정말이지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불안할 따름이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 해 봐도 당시에 무슨 일을 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에요. (웃음)
- 그러던 와중에 그룹 내에 선이 그어진다. ‘선발’과 ‘언더’라는 선이.
데뷔 싱글 선발 멤버라던지 메이지 수제 초콜릿 CM 선발 같은 게 순식간에 정해졌지요. 그런 것을 보고 처음으로 ‘아, 이게 연예계구나’라고 느꼈습니다. 특히 ‘구루구루 커튼’ 선발 멤버에 뽑히지 않았을 땐, 의미 깊은 데뷔곡을 부르지 못 하게 되었다는 게 정말 슬펐습니다.
또, 데뷔 당초부터 함께 힘을 모아 걸어 온 멤버들 사이에 ‘선발’과 ‘언더’라는 선이 그어 진 것도 정말 충격적이었지요. 지금이야 언더 멤버들도 일을 많이 하지만, 당시 언더는 정말 할 일이 없었어요. 1, 2주일 연속으로 일이 아무 것도 없던 적도 있을 정도였지요. 뭔가 하고는 싶은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다가, 무엇을 어떻게 노력해야 좋을 지도 모르겠고… 지금까지 중에서 그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 그리고 첫 번째 싱글 선발 발표를 계기로, 연예계에 대한 후카가와 본인의 생각도 바뀌었다고.
다들 사이가 매우 좋긴 하지만, 그 선발 발표를 계기로 ‘이 곳은 학교와는 다르구나’ 라고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싱글이 발매 될 때마다 선발 멤버를 정하거나, 누가 선발에 들게 되면 누군가가 떨어지게 되는 그런 시스템은 정말로 괴롭습니다만, 그런 곳에 뛰어 든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 이미 발을 들인 이상, 그런 것들도 뛰어 넘어야만 하는 시련인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멘탈이 정말 튼튼해졌어요.
- 1st 싱글, 2nd 싱글 활동기간 동안 후카가와는 언더에서 활약하게 된다. 2nd 싱글에 수록 된 커플링곡, ‘늑대에게 휘파람을’ 에선 프론트 멤버로 발탁되기도 했던 그녀.
‘늑대’에서 프론트 멤버로 뽑혔을 때, 정말로 기뻤어요. 언더 곡 뮤직 비디오가 제작 된 것도 ‘늑대’가 처음이었기에 더더욱 기뻤지요.
선발에 들고 싶다는 의욕, 더욱 더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을 전부 그 곡에 쏟아 붓기로 마음 먹고, 언더 멤버 전원이 필사적으로 춤을 체크하고 또 체크했지요.
그렇기에 ‘늑대’는 지금도 제게 있어 너무나도 소중한 곡이에요. 버스데이 라이브 같은 데에서 그 곡을 선보일 때 마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만 같아서 기합이 팍 들어갑니다.
- 올 해는 수도권 내 콘서트장이 부족했기에, 2월 22일에 열려야 할 버스데이 라이브가 연기되었다. 그 대신 데뷔 4주년 기념 기획으로 인터넷 방송, ‘노기자카46. 4th Anniversary 노기자카 46시간 TV’가 방영되었다.
이 때 열린 스페셜 라이브는 후카가와가 지금껏 발매 된 13장의 싱글에서 한 곡씩을 뽑아 그 곡을 선보이는 형식이었다. 이 때 후카가와가 2nd 싱글에서 선곡 한 것이 바로 ‘늑대에게 휘파람을’ 이었다.
그리고 3rd 싱글에서 고른 곡은 후카가와가 처음으로 선발에 뽑힌 의미 깊은 곡, ‘달려라! Bicycle’이 아닌 언더곡 ‘눈물이 아직 슬픔이던 시절’ 이었다. 5th 싱글에서는 본인이 참가한 유닛곡인 ‘딱밤’이 아닌, 3월에 졸업을 앞 둔 나가시마 세이라가 처음으로 선발에 뽑힌 ‘너의 이름은 희망’을 선곡하기도 하는 등, 노기자카46이라는 그룹 자체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주기도 하였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 하시는 거에요? 기쁘네요. (웃음)
사실 정말로 선곡이 힘들었어요. 싱글마다 한 곡만 골라야 하는데다가, 발매 순서대로 진행해야만 했거든요. 좋아하는 곡들이 정말 많았기에 엄청나게 고민하고 고민 한 끝에 완성시킨 세트리스트였습니다. 하지만 라이브 세트리스트를 정하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재미도 있었고, 제가 고른 곡을 멤버들이 열심히 퍼포먼스 해 주는 모습을 보고 기쁘기도 했어요.
- 앞서 이야기 하였지만, 후카가와가 처음으로 선발에 뽑힌 것은 3rd 싱글, ‘달려라! Bicycle’이었다. 오디션에 합격 한 지 1년이 지난 시점의 일이었다. 그리고 후카가와는 그 뒤로 쭉 선발멤버의 일원으로서 활약 해 왔으며, 작년 10월에 발매 된 13번째 싱글 ‘지금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에서는 프론트 멤버로 발탁되기에 이른다.
일견 착실히 스텝 업 해 왔던 것 처럼 보일 지도 모르지만, 처음으로 선발에 든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약 3년 동안, 기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그녀.
처음 선발에 뽑혔을 땐 정말 기뻤지요. 하지만 금세 ‘다음 싱글에서도 선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그런 생각에 너무나도 사로잡힌 나머지 어깨에 들어 간 힘을 빼지 못 한 채 지낸 시기도 있었어요.
선발에는 들었지만 MV에는 거의 비춰지지 않았다는 것 역시 딜레마였고요. (웃음) 팬 여러분께 선발에서 활약하는 제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었기에, MV에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땐 좀 슬퍼지더라고요.
지금이야 분량이 적어도 ‘작품에 출연한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긍정적으로 생각 할 수 잇지만, 당시에는 마음에 여유가 없었고, 모든 것이 벅찼거든요.
- 그렇게 ‘긍정적’으로 변한 데에는 팬들의 존재가 컸다고 한다.
예를 들어 보자면… 이런 말 하면 좀 이상하게 들릴 지도 모르겠는데요…
팬이 아닌 분들께서 보시기에는 제가 ‘제복 마네킹’ MV에 얼마 나오지 않기에, 사실상 선발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냐는 식으로 받아들이실 수도 있을 거에요. 하지만 노기자카를 좋아 해 주시는 분들, 그리고 저를 좋아 해 주시는 분들께서는 제가 아무리 MV에 안 나오고 뒷자리에, 구석에 있어도 저를 찾아 내 주시거든요. 그리고 본인들의 감상을 악수회 같은 데에서 이야기 해 주시곤 하시거든요. 거기서 ‘아무리 맨 뒷 줄에 있다 해도 봐 주는 분들은 봐 주신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그것이 정말 큰 힘이 되었어요. 그리고 동시에 ‘어느 곳에 있건 간에 최선을 다 해야만 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 노기자카46의 활동을 해 오면서 힘들었던 일도 많았을 텐데, ‘그만 둬야겠다’고 생각 했던 적은 있었을까?
‘도망가고 싶다’고 생각 한 적은 여러 번 있었어요. (웃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이유로 졸업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더라고요.
물론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 한 적은 많았어요. 특히 ‘16명의 프린시펄’ 때는 ‘빨리 마지막 공연 다음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 한 적이 많았어요. (웃음)
- 그럼 졸업을 의식하게 된 것은 언제일까?
약 1년쯤 전이에요. 스태프 분이나 다른 사람에게 상담을 한 것은 아니지만, 저 스스로 자연스레 졸업을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졸업을 생각한 적은 없었고, 졸업이라는 것 자체를 생각 한 적도 없었거든요. ‘졸업 할 타이밍이 오면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라 생각했기에 의식을 안 한 것도 있었고요. 하지만 약 1년 전, 세이부 돔에서 열린 버스데이 라이브 때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이 곳에 있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버스데이 라이브는 노기자카에게 있어 1년에 한 번 뿐인 중요한 이벤트거든요. 이 날 아니면 부르기 힘든 곡들도 있기에, 그런 곡들을 부르면서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이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정식으로 매니저 분께 말씀 드린 것은 13번째 싱글 제작이 끝난 뒤였어요. 매니저 분께 상담 하고 난 뒤, 역시 지금까지 신세를 진 관계자 분들이나 팬 여러분께도 확실하게 인사를 드린 뒤에 졸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기에 다음 싱글인 14번째 싱글까지 활동을 하기로 정했지요.
- 실제로 나 자신도 여러 차례 그녀를 취재하던 중, 어느 순간부턴가 ‘아, 뭔가 개운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던 바 있다. 그것이 바로 13번째 싱글에 대한 취재였던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 개운해 보였던 것은 과연 ‘졸업’을 결의했기 때문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프론트 멤버로서 그룹의 최전선에 서서 싸울 각오를 했었기 때문일까?
그런 느낌을 받으셨었군요. 생각 해 보면 지난 번에 취재를 해 주셨던 것이 딱 13번째 싱글 제작을 끝냈던 때이기에, 어쩌면 제가 졸업을 결의했던 그 때와 겹칠 지도 모르겠네요. (웃음)
- 졸업을 결의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장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을까?
아직 장래에 대해서는 블로그에도, 악수회 등지에서도 확실히 말한 적이 없어요. 그렇기에 팬 여러분께서도 제 미래에 대하여 의문을 갖고 계시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하지만 아무 생각도 없이 졸업을 하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다가, 해 보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물론 앞으로 일이 어떻게 흘러 갈 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에, 어디까지나 제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닐까 싶기는 하지만요.
물론 노기자카에 남아 있다면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 스스로가 졸업을 정한 이상, 그런 것에 미련을 갖고 흔들려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노기자카46은 정말로 마음 편하고 좋은 그룹인데다가, 멤버 모두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역시 한 명의 인간으로서 제 미래를 생각하면… 이런 말을 하면 팬 여러분께서 ‘결혼이라도 하는 건가?’라고 오해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결혼 하는 건 아니랍니다. (웃음) 여성에게 있어 ‘25살’이라는 나이는 결혼 적령기라고도 할 수 있기에, 그런 오해를 사는 것도 별 수 없다고는 생각 합니다만, 그런 의미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이 타이밍에 인생의 전환기를 갖고 후회 없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 생각 해 보면 확실히 ‘25살’이라는 나이에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사람은 적지 않은 편이다. 20대… 다시 말 해 ‘어른’이 된 지 5년이 되는 해이자, 대학에 간 사람이라면 대학을 졸업한 뒤 3년째를 맞이하는 이 타이밍에 자신의 인생에 대해 새롭게 생각 해 보는 기회를 갖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하나의 기준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저 역시 25살이라는 나이를 제 인생의 전환기로 삼아, 그룹을 졸업하여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작년 연말, 처음으로 NHK 홍백가합전에 출장한 데다가, 최근 들어서는 멤버들의 TV 출연도 급증하는 등 노기자카46의 기세가 대단한 지금, 졸업을 결단하는 데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으리라. 그룹 입장에서도 선발, 그 중에서도 프론트에 선 멤버가 졸업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 후카가와의 미래만큼이나 ‘노기자카46’이라는 그룹이 어떻게 변화 해 나갈 지 역시 관심을 끄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후카가와 본인은 ‘자신이 없는 노기자카46’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상상 할 수 있는데요. (웃음) 물론 그런 모습을 보면 쓸쓸해 질 것 같긴 해요.
졸업한 뒤, 라이브를 보러 갔을 때 제가 했던 곡들… 특히 ‘성격 급한 달팽이’나 ‘딱밤’같은 유닛곡들은 더더욱 그럴 것 같긴 한데… 제가 있던 곳에 다른 멤버가 서 있고, 팬 여러분이 다른 멤버의 이름을 외치는 것을 들으면 더더욱 쓸쓸해 질 것 같기는 합니다만, 제가 예전에 그 자리에서 그 곡을 불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잖아요.
곧 3기생 모집도 시작되니 노기자카는 더더욱 새롭게 변해 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멤버들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어요. 만약 올 해도 홍백에 나갈 수 있다면, 작년 홍백때 느꼈던 것과는 다른 마음으로 그 모습을 보며 응원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마도 집에서 TV로 홍백을 보며, 멤버들을 응원하면서 감동 받아 울고 있겠지요? (웃음)
- 그리고 지난 3월 23일, 후카가와가 처음으로 센터 자리에 서게 된 신곡, ‘봄망초가 필 무렵’ 이 발매되었다. ‘센터’라는 자리에 서서 보게 된 풍경은 지금껏 본 적 없는 풍경이었다고 한다.
안무 배울 때부터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어요. 지금까지는 0번 자리 (댄스 포지션에서 ‘가운데 자리’, 곧 센터를 의미)에서 앞뒤로만 움직였던 적이 없었거든요. 아, 그리고 눈 앞에 아무도 없기에 절대로 틀려서는 안 된다는 공포도 컸고요.
비록 저는 졸업 하지만, 이 곡 센터 자리에는 다른 멤버가 서 주리라 생각해요. 물론 졸업을 이미지한 가사이기는 하지만, 이 곡은 ‘제 노래’가 아니라 ‘노기자카’의 노래니까요. 앞으로도 노기자카의 ‘봄 노래’로서 많은 분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날이 왔을 때, 들어주시는 분들께서 ‘그러고 보니 이 곡, 예전에 후카가와 마이라는 아이도 부른 적 있지’라고 떠올려 주셨으면 좋을 것 같아요.
- 아직 명확하게 졸업 날짜가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블로그에서는 ‘5, 6월까지 활동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그녀. 결국 노기자카의 오디션을 받기 시작 한 때로부터 만으로 5년이 되는 타이밍에 졸업을 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아, 그게 그렇게 되나요. 음…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눈 깜빡 할 사이였네요. 5년이란 시간 말이에요.
사실 그룹에 갓 들어왔을 땐, 멤버들끼리 ‘노기자카라는 그룹은 몇 년이나 갈까’라거나 ‘우리는 언제까지 이 그룹에 있을 수 있을까?’ 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어요. 그 때마다 대부분 ‘3년 정도 아닐까?’라고 이야기 했었지요. (웃음)
지난 나날들을 떠올려 보면 3년이라는 시간은 정말 한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사실 정신이 들고 보니 벌서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것 같은 느낌인걸요. 당시 16살이었던 이코마쨩이나 마리카도 벌써 20살 아가씨가 되었고 말이지요.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다른 멤버들의 성장을 보며 4, 5년이라는 시간이 정말 큰 의미가 있구나 라고 새삼 놀라곤 합니다.
4, 5년이라는 시간이 큰 의미가 있다는 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나 여성들에게 있어서 그 의미는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 아직 이런 이야기를 하기에는 조금 이를 지도 모르지만, 후카가와 마이에게 있어 ‘20대 전반’ 5년간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음… 그렇네요. 노기자카의 활동은 ‘일’이긴 했지만, 일반적인 ‘회사’와는 다른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요. 사실 학교를 졸업 한 뒤, 이렇게 많은 또래 여자아이들과 함께 무엇인가를 하거나 항상 함께 있거나 할 기회는 잘 없으리라 생각하거든요.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이렇게 멤버들이 하나가 되어 라이브를 준비하거나, 함께 작품을 만들어 나간다는 건 일반적으로는 쉽사리 경험하기 힘든 일이라 생각합니다. 정말이지 감사하게도 그런 흔치 않은 경험을 듬뿍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저는 20살 때 전문학교를 나와 새롭게 노기자카라는 학교에 입학하여 멤버들과 함께 청춘 시대를 보냈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 그럼 20대 후반은 어떤 인생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지.
글쎄요…
예전에 점을 보러 갔을 때, ‘인생 전반부는 고생을 많이 하겠지만, 30살이 넘어가면 인생이 잘 풀릴 것’이라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말이죠. (웃음) 그런 것도 있고 해서 지금은 앞으로 어떻게 될 지 기대가 더 커요.
노기자카46이라는, 제 인생에 있어 정말로 의미가 큰 존재를 잃게 된다는 것은 잃게 되겠지만, 어떤 미래가 기다리는 지 모른다는 지금 상황은, 예전에 무작정 상경 해 왔을 때의 제 모습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비록 다시 출발점에 서게 되겠지만, 그것이 제로(0)로 돌아간다는 것은 아니잖아요. 노기자카에서 경험하고 배운 것들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에, 그런 것들을 가슴에 품고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다시 ‘준비 기간’이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30살이 될 때 까지의 준비기간 말이에요. (웃음)
- 졸업 후에도 끊임 없이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무언가를 느끼고, 배울 멤버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멤버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 주고 싶은 지?
음… 뭐가 있을까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해’ 주었으면 해요.
하지만 제 모습을 보며 배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 하는데 말이지요… 저는 보고 배울 만큼 큰 존재가 아니니까요. (웃음)
- 후카가와가 노기자카46 밖에서 노력 해 나간다는 것은, 남은 멤버들에게도 큰 희망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럴까요? (웃음)
하지만 멤버들은 각자 자신 나름대로,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 해 그룹 생활을 즐겨주었으면 좋겠네요.
- 그럼 본인은 노기자카46 활동에 있어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지?
네. 그렇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 때 이렇게 했다면 더 좋았을텐데…’ 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있긴 합니다만, 제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 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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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 아스카, 쓰다.
1회.
인터넷에 ‘연예인’ 이라 검색 해 보면 이런 설명이 나옵니다.
‘연예인이란 예능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을 뜻한다. 본래 ‘관객 앞에서 재주를 선보이는 것을 업으로 삼은 사람’을 뜻한다’
여러분께서는 ‘연예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는지요?
노기자카46에 가입 한 지 약 5년.
저는 ‘사람들이 자신을 지켜본다’는 것이 정말 무서운 일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어떤 책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인간은 시야가 좁아지면 상대방과 자신을 동일시 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지요.
자신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하려 들기도 하고요. 나아가 그런 자신만의 기준에 맞추어 상대방을 바꾸려 하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마음이 갖고 있는 욕구가 발현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일은 어째서 일어나는 것인가.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귀여워’, ‘내가 좋아’.
그것으로 된 거라 생각해요.
저 역시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며 살아 왔습니다. 비록 저 자신에게서 마음에 드는 부분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이돌이라는 직업은 매우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직업입니다. ‘보여지는 것’이 일입니다.
결국 제가 하는 행동, 제가 하는 말, 제가 쓴 글 그 모든 것이 사람들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동시에 ‘판단 재료’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제가 하는 모든 행동이 평가 받습니다.
너무나도 무서운 일이지요.
저 자신에 대해 글을 쓰기에 앞서, 주변에서 저를 어떻게 평가하는 지에 대해 간단히 써 보겠습니다.
‘성격이 꼬여있다’, ‘부정적이다’, ‘어둡다’, ‘츤데레’, ‘냉정하다’, ‘미스터리어스’
주로 내면에 대한 이야기들을 적어 보았습니다.
네, 제 직업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것’ 입니다. 많은 분들께서 저를 보아 주셔서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거울을 보았을 때 ‘나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요?
거울을 보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자신이 보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 보이곤 합니다.
영상으로 남은 제 자신을 보았을 때, 제 외모에서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울을 통해 자신을 보았을 땐,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사진은 어떨까요?
‘모루(盛る, 과장하다, 연출하다)’라는 말이 있듯이,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어떻게 보이느냐가 변하곤 하지요.
동영상 역시 찍히는 법만 알면 보여지는 방법을 생각대로 바꿀 수 있습니다.
거울이건 사진이건 사실 본디 자신의 얼굴은 변함이 없는데 말입니다.
그럼 여러분께선 저를 어떻게 보고 계실까요?
앞서 이야기 했던 ‘주변에서 저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에 대해 부정 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저를 보고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지요.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더라도 사실 스스로의 본성을 내 보일 필요도 없는 것일지 모르고요.
애초에 모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 질 만한 타입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것을 바라지 않고요.
때로는 저 스스로가 잘못 된 이미지를 갖고 스스로를 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들어 ‘운동신경이 좋다’는 자주 듣습니다.
전문적으로 운동을 하신 분께도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17년을 살아오면서 저 스스로는 ‘나는 운동신경이 나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수영도 못 하고, 달리기도 느리고.
그런 건 결국 제 착각이 불러들인 것일까요.
저 자신의 일인데도 알지 못 하는 점이 매우 많습니다.
저는 매사에 기대하지 않습니다.
어째서냐 하면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무섭기 때문입니다.
자주 의료 관련 방송을 보곤 합니다만, 그런 곳에서 ‘병의 원인’으로 자주 거론 되는 것이 있습니다. 스트레스. 저 역시 실제로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스트레스랑 피로가 원인이네요.’
그런 거, 너무하지 않나요? 악순환이지요!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게 하기 위해 피곤 해 지고 피곤하기에 스트레스가 쌓이고…. 부(負)의 연쇄란 무서운 것입니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쌓고 또 쌓아가다 보면 언젠간 폭발 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전전긍긍하는 것 역시 싫습니다.
이런 ‘부의 연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제가 찾은 답은 ‘기대와 집착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기대했던 것이 충족되지 못 할 때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합니다.
생각 해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입니다만, ‘내가 생각했던 것이랑 달라…’ 라는 생각 그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 하다가 저는 저 나름대로 답을 내게 되었습니다.
‘지금 내가 놓인 상황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겠다’고 말입니다. ‘집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지요.
사실 자주 듣는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저는 그 때서야 ‘아, 이런 얘기였구나’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한 발짝 어른에 다가섰습니다. 저.
여기서부터는 제가 멋대로 생각 해 본 것을 이야기 해 볼까 합니다.
‘기대를 한다’고 하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이기적인 지배욕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누구나 기대를 한다니 그것 참 제멋대로 아닌가요.
그렇게 제 멋대로 일방적인 기대를 해 놓고 그게 충족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니, 그건 정말로 너무나도 이기적인 일이고요! 지배욕이 아주 흘러 넘치는 것 아니냐 이겁니다!!
예를 들어보지요.
원하는 것이 자신의 손에 들어 오리라는 확신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 기대를 할 필요도, 집착 할 필요도 없기 마련입니다.
원하는 것이 자신의 손에 들어오기를 기대하기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지요.
사람간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상대가 이렇게 해 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상대방을 지배 하고자 하는 집착’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미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얻지 못 하게 되는 것이지요.
아… 알아버렸어…
…라고 가볍게 이야기 했습니다만, 사실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저 자신에 대해 자신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집착을 해 버리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런 것들을 손쉽게 믿어버린다고 하는 (의외로 퓨어하고 어린아이 같은) 버릇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상대방에게 기대하게 됩니다.
이기적인 말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기대가 충족되지 못 했을 때 느끼는 실망은 너무나도 큰 것입니다…
그렇기에
애초에 처음부터 기대를 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한다면 실망감도, 스트레스도 느끼지 않지 않을까?라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포자기 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은 확실히 합니다. 최선은 다 합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 해도 제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경우에는, 별 수 없다 생각하고 깔끔하게 포기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
그 뒤로는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중요한 것이지요.
이렇게 생각하게 된 뒤로부터 스스로의 마음에 대한 부담감이 줄어 든 것 같습니다.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 하는 것 같습니다만, 저는 저 자신에게 자신이 없습니다.
초등학생 때도, 중학생 때도 그다지 기억에 남는 일은 없었습니다. 어떻게 지냈었는 지에 대해서도 그다지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학년 때는 그래도 순수하고, 밝고, 친구들과 노는 것을 좋아하는 귀여운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성격이 꼬여있’는 인간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다른 사람 표정을 보며 분위기 맞추기 위해 억지로 웃거나….
누구나 이런 방식들을 다른 이들로부터 배우며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결국 인간의 본질을 밝히네 마네 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한 것이 아닐까요?
여기까지 글을 쓰면서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이 나라는 사람을 적나라하게 알아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읽으면서 안심했습니다. 어느 사이엔가 저는 저 특유의 논점 흐리기를 알아내고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렇기에, 너무 열심히 이 글을 읽지는 말아주세요.
여기까지 읽고 ‘사이토 아스카는 중2병이다’ 라 생각하는 분도 계실 지 모르겠습니다.
뭐, 그런 감상도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닙니다만, 앞으로를 위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쓴 ‘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이렇게 쓰고 나니 뭐랄까…
정말 이것으로 된 걸까요?
저는 저를 신용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여기에 적은 정보들도 너무 믿지는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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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yaNeAir
스즈키 아야네적 비행기애(愛)
연재 첫 번째 편(便)
유치원 때부터 그녀의 앞마당이었던 아키타 공항의 추억.
아마 알고 계시는 분들도 계실 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비행기를 매우 좋아합니다.
작년, 도쿄로 상경하여 현재 혼자 살고 있습니다만, 도쿄로 올라 온 뒤로는 비행기를 보러 외출하는 기회를 좀처럼 갖지 못 했어요. 그런 와중에 이번 연재를 기회로 하네다 공항 근처에 있는 죠난지마 해변공원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도쿄의 새로운 일면을 개척 해 나가는 것 같아 두근거렸지요.
첫 회인 이번에는 우선 ‘제가 어째서 비행기를 좋아하게 되었는가’, ‘비행기의 어떤 점을 좋아하는가’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고향인 아키타현에 살았을 때, 틈만 나면 비행기를 보러 가곤 했었어요. 할아버지가 집에 놀러 오시면 함께 아키타 공항에 데려 가 주시곤 했거든요. 비행기에 타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보러’ 가는 것이었지요. 비행기를 보고 난 뒤에 공항에서 밥을 먹고 하는 게 좋았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가장 처음으로 공항에 갔던 것은 유치원 때의 일이었습니다. 비행기를 그다지 많이 탄 것도 아닌데 비행기나 공항에 대해서는 친근감을 갖고 있어요.
요즘 들어서는 아키타 공항까지 갈 수 있는 자동차 전용 도로가 생겼습니다만, 예전에는 일반 도로를 이용해서 공항까지 가곤 했지요. 그리고 그건 그것 나름대로 즐거운 것이었지요. 겨울이면 사방에 쌓인 눈 위에 동물들 발자국이 찍혀 있기도 했는데, 그런 발자국들을 찾아내며 즐기고 있으려면 머리 위로 여객기가 날아가며 그림자를 드리우곤 했습니다. 동물의 발자국과 비행기 그림자가 겹치는 그 순간이 참 좋았지요.
어릴 적부터 이렇게 생활 환경 가까이에 공항이 있는 곳에서 살다 보니, 가족들 머릿속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비행기 취항 스케쥴이 들어 가 있곤 했어요.
가족들끼리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비행기 엔진소리가 들리면 ‘아, 도쿄에서 오는 비행기구나’라고 말하곤 했지요.
가족 중에서 가장 비행기를 좋아하는 것은 저입니다만, 비행기 소리에 가장 민감한 것은 엄마에요. (웃음)
비행기 모형을 많이 갖고 있는데, 전부 본가에 있답니다. 도쿄 집에 장식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비행기 모형을 보고 있으면 아키타로 돌아가고 싶어지거든요.
기체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노기자카에 가입한 뒤.
에어버스의 스타일리시한 모습에 한 눈에 반했다고.
CA (항공기 승무원)이 되고 싶기도 했었기에, 기본적으로 항공업계 전반에 대해 흥미는 갖고 있었습니다만, 노기자카46에 들어 온 뒤로는 ‘기체’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기체는 ‘에어버스 A380’이에요.
기본적으로 대형 여객선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 중에서도 이 A380은 현행 여객기 중 가장 큰 기체 중 하나입니다. 그것도 내부가 2층 구조로 되어 있지요.
그 외에는 ‘보잉 747’도 좋아합니다. 특히 비행기 머리 부분이 2층 구조로 되어 있기에, 그 부분만 다른 부분에 비해 불룩 튀어 나와 있는 모습이 귀여워 보여요. 최근 들어서는 주로 화물선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만, 제가 어릴 적에는 ANA (전일본공수)의 ‘포켓몬 제트 (포켓몬 그림으로 래핑한 비행기)’로도 활약 한 기체랍니다.
최근 들어 관심이 생긴 것은 ‘보잉 787’입니다. 타 보신 적이 있는 분이라면 잘 알고 계시겠지만, 이 기종은 ‘전자 커튼(플라스틱 차양을 수동으로 여닫는 것이 아니라, 색/음영을 이용해서 조절 할 수 있도록 함)’을 채용한 기체이지요!! 비행기에 탔을 때, 커튼을 닫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전자 커튼’이 있다면 그런 고민이 필요 없지요! (웃음)
일단 외견만으로 보자면 에어버스가 가장 ‘스타일리시’한 이미지가 있어요. 보잉사의 기체들은 ‘강인함’을 느끼게 하고요. 이런 점 역시 나름대로 멋지고 좋긴 합니다만. 사실 이런 차이는 저 개인의 감각적인 차이이기에 말로 설명하는 게 좀 힘듭니다만, 기회가 되신다면 한 번 꼼꼼히 비교하며 보시는 건 어떨까요? 제 말에 공감하시는 분도 계실 거예요!
에어버스, 보잉 기체들 말고도 흥미가 있는 기체는 최근 들어 언론 노출 빈도가 높은 ‘국산 (일본산) 제트 비행기’ 입니다. ‘MRJ (미츠비시 리저널 제트기, Regional Jet, 주로 지역간을 연결하는 노선에서 쓰이는 소형 제트기)’나 ‘Honda Jet’가 현재 개발 중입니다만, 여러분, 알고 계셨나요?
일본의 기술력이 집대성 된 기체이기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두 기체 모두 소형기이기에 대형 여객선을 좋아하는 제 입장에서는 조금 더 지켜 볼 여지가 있을 것 같아요. 시간은 오래 걸릴 지 모르겠지만, 언젠간 국산 대형 여객기의 시대가 오기를 기대 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강점인 디자인성, 기능성을 살린 기체, 한 번 쯤은 꼭 타 보고 싶어요.
거대하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보면 의외로 심오한 부분이 많은,
비행기의 매력을 공유하고파.
이쯤 되면 제가 얼마나 비행기를 좋아하는 지에 대해 조금이나마 전해졌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왕이면 혼자보다는 더 많은 사람과 함께 이 감동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아키타에 살았던 때엔 일종의 계획도 세운 적 있어요. ‘비행기 친구’ 늘리기 대작전이라고나 할까요.
집 있는 곳이 시골이었기에, 주변 이웃분들께서 채소 같은 것을 나누어 주시곤 하셨는데요, 서로 나눌 때 그런 채소를 갖고 오는 게 대부분 제 동급생들이곤 했습니다. 그리고 채소에 대한 답례로 비행기 장난감 같은 것을 주고는 했어요. 그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흥미를 가져 주었으면 했거든요.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하네다 공항 한정 휴대폰줄 같은 것을 사 놓기도 했었고요. (웃음) 그 결과, 친구 중 한 명이 비행기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그 때는 정말로 기뻤지요.
그런 추억들이 가득 담긴 아키타를 떠나 도쿄에 온 뒤로는 제 ‘비행기 생활’이 주로 잡지나 인터넷에서 정보를 모으는 방식으로 변했습니다. 문학 역시 좋아하기에 서점에 자주 가곤 합니다만, 그 때마다 가장 먼저 가는 곳이 잡지… 그 중에서도 비행기 잡지 코너에요. 인터넷을 통해 사진을 찾기도 하는데, 주로 느긋하게 차를 마시면서 비행기 사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하지요.
그 중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다름 아닌 비행기 ‘타이어’랍니다. 가끔씩 비행기 잡지에 두 페이지에 걸쳐 큰 비행기 사진이 실리곤 하는데, 그럴 경우 페이지와 페이지 접히는 부분에 타이어가 겹쳐서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하지만 인터넷에 올라 온 사진은 타이어는 물론이고 타이어를 수납하는 기구까지 볼 수 있어서 굉장히 감사히 활용하고 있지요. (웃음)
비행기 초심자 여러분께선 제가 ‘타이어’에 관심을 갖듯이 어떤 한 부분에 대해 집중 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것이 날개이건, 비행기의 머리 부분이건 타이어건 좋습니다. 어느 한 부분에 집중 하시다 보면 각 기체가 가진 개성이 점차 눈에 들어오실 거에요.
물론 이런 말을 하는 저 역시 아직 공부중인 몸입니다만, 이 연재를 통하여 비행기를 좋아하는 ‘동료’들을 늘리고, 저 자신도 여러 ‘비행기 스팟’에 가 보고자 합니다. 격납고라던가, 정비장이라던가 가 보고 싶어요~
여러분, 함께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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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백합’과 유토피아
2015년 1월 7일. 메이저 데뷔로부터 3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 첫 앨범인 ‘투명한 색’이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는 데뷔곡인 ‘구루구루 커튼’ 부터 당시 최신 싱글이었던 10번째 싱글, ‘몇 번째 보는 푸른 하늘인가?’까지 전 싱글의 타이틀곡과 더불어, 니시노 나나세와 이쿠타 에리카의 솔로곡 등 신곡 몇 곡, 그리고 팬들의 리퀘스트로 선정 된 커플링곡들이 실려 있었다. 말 그대로 ‘노기자카 46의 집대성’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내용이었다.
자연스레 이 시기에는 멤버들이 미디어에 출연 할 때 마다 앨범 선전이 이루어지곤 했다. 그 중에서도 앨범이 릴리스 된 직후인 1월 9일에 출연 한 ‘음악의 시간 ~Music Hour~’ (후지 TV 계열)에서 앨범 이야기가 나왔을 때, 당시 사회자였던 후쿠이 요시히토 아나운서가 ‘구루구루 커튼’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여성이 다른 여성을 좋아하는 내용을 그린 곡이지요?”
‘가사를 읽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이야기 하는 후쿠이 아나운서를 보며 멤버들이 ‘아니예요. 소녀들 사이의 우정을 그린 곡입니다’ 라고 웃으며 정정 해 주는 훈훈한 광경으로 이 해프닝은 마무리 되었지만, 사실 바로 그 후쿠이 아나운서의 해석이야말로 ‘노기자카46의 표현 세계’를 관통하는 공통적인 정서를 날카롭게 통찰 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키모토 야스시씨가 작사 한 ‘구루구루 커튼’의 가사는, ‘두 소녀가 교실 창가 커튼을 둘둘 말고 그 안에 들어 가, 창 밖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과 햇볕을 느끼며 둘만의 비밀을 공유하고, 때로는 서로를 격려 해 주는’ 모습을 서정적으로 그려 낸 것이다. 물론 가사에서 느껴지는 뉘앙스는 사이 좋은 두 소녀가 비밀리에 나누는 이야기가 ‘연애 고민’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같은 것이기에, 두 소녀의 관계가 연애관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두 소녀가 있는 ‘커튼 속’이라는 공간이 ‘남자들은 들어 올 수 없는’ 소녀들만의 세계, 더 나아가 ‘다른 여성들조차 들어 올 수 없는’ 당사자 둘만의 세계라는 점을 감안하면 두 소녀의 관계가 다분히 ‘배타적’이고 극히 ‘친밀’하다는 것 역시 알 수 있다. 후쿠이 아나운서가 ‘여성과 여성간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라 생각하게 된 것 역시 이런 측면에 착안한 탓일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그렇다면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이미지 중, 어느 쪽이 더 작사가의 의도에 가까운 지 알아보기 위하여 ‘구루구루 커튼’의 MV를 분석 해 보자.
원래 사진작가인 쿠리가미 카즈미가 감독을 맡은 이 MV는 멤버들이 무대의상을 입고 노래하고 춤 추는 ‘퍼포먼스’ 파트와, 세라복을 입고 가사의 세계관을 연기하는 흑백 ‘이미지’ 파트로 이루어 져 있다. 이번에 우리가 분석 해 볼 것은 MV 러닝타임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이 ‘이미지’ 파트이다.
이 MV는 한 학교의 교실을 흑백 영상으로 비추어 주며 시작된다. 카메라가 천천히 맨 앞자리부터 맨 뒷자리까지 교실을 훑어 주는데, 마치 잠이라도 자듯 책상 위에 엎드려 있는 멤버들 뒤로 비추어 지는 것은 교실 창가에 걸려있는 새하얀 커튼과, 그 커튼 안에 들어 가 있는 네 쌍의 멤버들의 실루엣이다.
이 원샷은 카메라에 가까운 책상과 그 위에 엎드려 있는 멤버들을 ‘어둡고 흐릿’하게 처리하고, 빛이 들어오는 창가, 그 곳에 걸려 있는 흰 커튼과 그 안에 들어 가 있는 멤버들을 밝고 눈부시게 처리하여 두 공간을 확연히 구분짓고있다. 이는 다시 말 해 ‘교실’과 ‘커튼 속’이라는 두 공간을 구분 지음으로 하여 ‘커튼 속’이라는 공간을 더욱 더 ‘특별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다.
영상은 이후, 소녀들이 모여서 떠들고, 즐기는 ‘쉬는 시간’ 풍경이나 커튼 속에 들어 간 소녀들의 모습 등을 묘사 해 간다. 그리고 그 중에는 검으로 풍선을 불어서는 가까이 대는 등 ‘키스’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나 커튼 속에 들어 가 있는 한 소녀의 발이 다른 소녀의 발에 가볍게 닿는 모습, 어깨를 손으로 감싸는 장면, 상대방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대서 귓속말을 하는 모습 등도 포함되어 있다. 동시에 바람에 펄럭이는 커튼 틈 새로 숨으려 하는 소녀들의 모습을 묘사하며 어딘가 일말의 ‘금기’를 떠올리게 하는 묘사도 있다. 이런 일련의 ‘이미지’ 영상은 남성, 어른 등 그 어떤 외부 존재도 개입 할 수 없는 ‘소녀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효과를 내며, 동시에 ‘커튼 내부’라는 공간을 ‘특권화’ 시킴으로써 ‘소녀들의 관계’를 더욱 더 특별하고 친밀한 것으로 보이게 한다.
MV ‘구루구루 커튼’에서 사용 된 표현이 곡 자체가 갖고 있는 ‘소녀들의 친밀한 관계’라는 테마를 순화하는 동시에 극대화 시킨 것이며, 그 결과, 그런 소녀들의 관계성을 말하자면 ‘백합’적인 것으로 보이게 하는 여지를 준다.
여기서 말하는 ‘백합’이란, 쉽게 말 해 ‘여성간의 애정관계’를 칭하는 단어이다. 이 단어의 어원은1970년대에 발간되었던 ‘장미족’이라는 남성 동성애를 주로 다루던 잡지로 인해, 남성간의 애정관계를 일컬어 ‘장미/장미족’이라 불렀던 데 대응하는 의미로 여성간의 애정관계를 ‘백합/백합족’이라 불렀던 데에서 기인한다. 이렇게 생겨 난 ‘백합’이라는 단어는 점점 일반 대중에게도 받아들여지게 되는데, 당시에 주로 쓰였던 것은 ‘남성 대상 포르노그래피 시장’의 은어로, ‘레즈비언물’을 지칭 할 때였다.
한 편, 소녀들을 주 독자층으로 상정하는 소위 ‘순정/소녀 소설’ 분야에서 ‘백합’이라는 단어가 생겨나기 한참 전, 다이쇼시대(1912~1926)에도 여학생들간의 친밀한 관계나 젊은 여성들의 애정을 그린 작품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작품을 들자면 요시야 노부코가 쓴 ‘꽃 이야기’등이 그 범주에 든다.
당시에는 이런 관계를 ‘시스터후드 (Sisterhood)’의 이니셜을 따서 S(에스)라고 불렀으며, 이 ‘에스’라는 은어는 쇼와 (1926~1989) 초기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상기한 바와 같이, 1970년대 이후로는 ‘백합’이 그 자리를 완벽하게 차지하고, 현재까지 폭 넓게 사용되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백합’이라는 단어는 문학적인 뉘앙스나 플라토닉한 뉘앙스까지 포함한 광의적인 개념이 되었으며, 특히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라는 매체의 대두에 따라 ‘여성간의 애정’을 그리는 ‘장르’ 자체를 포괄하는 단어로 쓰이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그러한 여성 캐릭터에 대해 독자들이 행하는 ‘독해 행위’ 그 자체도 ‘백합’이라 부르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백합’이라는 단어는 의미나 적용 범위가 매우 광범위하기 때문에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극히 힘든 광의적인 개념이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 사용하는 ‘백합’의 범위를 설정하고자 한다. 이 책에서 사용하는 ‘백합’의 범위는 이전 ‘에스’라고 불렸던 개념에 가깝게, 다시 말 해 1. 연애 감정으로도 해석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호의를 동반하는 친교관계, 2. 육체적 관계, 혹은 동성애까지는 발전하지 않지만 일관되게 성적 기호를 표현하는 것 에 한정하도록 한다.
작가주의적 설명에 자주 등장하는 말 중 ‘처녀작에는 그 작가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말이 있다. 노기자카46의 표현은 기본적으로 다양한 크리에이터를 통해 형태를 갖추게 되는 경우가 많기에, 어느 것이 처녀작이라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노기자카46 명의의 영상작품’ 중 처녀작을 뽑자면 바로 첫 번째 싱글 타이틀 MV인 ‘구루구루 커튼’이 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처녀작’안에 표현 된 ‘소녀들만의 세계’, 그리고 ‘백합’을 연상시키는 묘사는 ‘처녀작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말을 구체화 하여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이후에 만들어 지는 노기자카46의 영상 작품, 그 중에서도 특히 ‘스토리’성을 중시한 작품들에서 자주 나타나게 된다.
곡 자체는 한없이 이성애적인 내용을 표현하고 있음에도 MV의 표현 양태가 일종의 ‘특권성’을 갖고 표출된다고도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소녀들만의 세계’, 그리고 ‘백합’.
이런 요소들은 노기자카46의 표현세계의 ‘핵심’을 찾는 데 있어 중요한 실마리로서 작용 할 것이며, 이번 2장에서는 그런 요소가 잘 드러난 MV 작품들을 분석함으로 하여 노기자카46의 표현세계의 ‘핵심’에 도달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참고로 2장에서 다루는 스토리 MV의 등장인물들이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멤버의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는 것 역시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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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절. 노기자카46와 MV
‘뮤직 비디오’라는 것은 본디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 분야에서 쓰이는 개념으로, ‘곡’에 영상을 씌우는 식으로 제작하는 영상작품을 뜻한다. 보통 CD 판매를 촉진하기 위하여 제작되기 때문에 PV (프로모션 비디오)라 불리는 경우도 흔한 편. MV는 TV의 보급과 궤를 맞추어 새로이 등장한 표현 매체라 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1960년대 비틀즈가 근원이라 알려 져 있다. 너무나도 대단한 인기를 구가하던 비틀즈였기에, 모든 방송에 직접 나갈 수 없었고, 그럴 때 자신들이 출연하는 대신, 연주하는 모습이나 이미지를 영상화, 곡에 덧씌워 방송국측에 넘겨주었던 것이 그 시초라는 것이다. 그 뒤 1980년대 미국에서는 MV를 전문으로 틀어주는 케이블 방송국, ‘MTV’가 등장하여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기에 이르렀으며, 이런 일대 붐을 통하여 MV라는 표현매체는 더더욱 음악업계 및 대중문화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일본 역시 팝 문화의 영향을 받아, 1980년대 중반 즈음하여 MV 제작을 채택하는 아티스트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며, 1990년대 들어서는 신곡 PR의 일환으로 MV를 제작하는 것은 말 그대로 ‘당연한’ 일이 되었다. 당시에는 일부 음악방송을 제외하고는 풀사이즈 MV를 틀어주는 경우가 적었으며, 끽해봐야 TV 선전에 MV의 일부를 활용하는 정도로 그쳤지만, 요즘 들어서는 상술한 바 있는 ‘CD 특전으로서의 DVD’에 수록되거나, 케이블 방송국의 음악 전문 채널,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의 공식/비공식 업로드 등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MV를 시청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통하여 MV는 ‘판매 촉진’에 있어 유효한 표현매체로서, 혹은 아티스트가 가진 독특한 세계관을 표현 해 내는 창구로서 작용하며 음악 제작자와 소비자 쌍방에게 있어 불가결한 존재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에는 더욱 더 다양한 표현 방식이 MV에 요구되게 되었으며, 아티스트 중에서는 MV제작에 거액을 들여 최신 기술을 도입한다거나 대작 영화 규모의 MV를 만드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이곤 한다. 하지만 ‘표현 형식’이라는 면에서 보자면 제 대작 MV라 해도 결국 그것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퍼포먼스’, ‘이미지’, ‘스토리’ 이다.
우선 ‘퍼포먼스’라 함은 곡의 연주, 가창, 안무 등 ‘아티스트’의 행위 일체를 시각적으로 표현 해 내는 요소이며, ‘이미지’라 함은 예를 들어 배경, 소품, 그래픽 영상 등 ‘퍼포먼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곡의 테마, 혹은 아티스트의 세계관을 표현하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MV에 포함되는 다큐멘터리 영상이나 메이킹 영상 등도 이 ‘이미지’에 포함된다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스토리’라는 것은 광의적으로 보았을 때, ‘이미지’의 일종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협의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일련의 영상을 통하여 시청자에게 명확한 이야기’를 전하는 요소이다. 이런 스토리를 통하여 시청자는 마치 TV 드라마나 극영화를 보는 듯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으며, 이런 스토리 요소가 강한 MV는 말하자면 ‘단편 극영화’나 ‘숏 드라마’에 가까운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MV 영상이라는 것은 결국 이상 3대 요소가 조화를 이루며 구성하는 것이다. 아티스트의 MV에 있어 가장 보편적인 것은 ‘퍼포먼스’와 ‘이미지’를 강조 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최근에는 ‘스토리’ 요소를 강조하는 MV작품들이 주류를 이루며 하나의 ‘장르’로서 정착되어가는 추세이다.
앞서 제 1절에서 이야기 한 바 있듯이 아이돌에게 있어 ‘매력’이라는 것은 비단 ‘곡’뿐만이 아니라 외모, 댄스 퍼포먼스 등에도 크게 좌우되는 것이기에, 아이돌의 MV에서는 ‘퍼포먼스’ 요소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그 중에서도 그룹 전체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쉬운 ‘히키(카메라를 뒤로 뺌, 원거리 촬영)’ 샷과 멤버 개개인의 움직임과 표정 등을 파악하기 쉬운 ‘요리 (클로즈 업)’ 샷을 적절히 섞어서 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대 인원 그룹의 경우에는 멤버 개개인을 ‘요리’샷으로 잡은 뒤, 그 ‘요리’샷을 ‘히키’샷 사이사이에 삽입하는 방식을 자주 취하는 편이다.
노기자카46 역시 예외는 아니며, 삼대 요소 중 ‘퍼포먼스’ 요소가 부각된다는 것 역시 여타 아이돌 그룹과 비슷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노기자카46의 MV가 여타 아이돌 그룹의 그것과 다른 점은 ‘퍼포먼스’ 요소가 다른 요소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노기자카46 MV의 특성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것이 바로 ‘스토리’ 요소가 강하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노기자카46이 발표 한 57작품 (2016년 2월 기준) 중, 29작품이 일련의 ‘이야기성’을 중시 한, 다시 말 해 ‘스토리’ 요소를 강조한 작품이라는 것만 보아도 그런 특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가 붙은 작품들은 ‘곡’이 흐르지 않는, 영상만으로 구성 된 부분이 들어가는 등 ‘곡’ 자체의 길이보다 MV의 길이가 길다거나, 스토리와 깊이 관계가 있는 음성이 ‘대사’로 들어가는 등 특수한 구성을 택하고 있는 등, 상기한 ‘단편 극영화’ 혹은 ‘숏 드라마’에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노기자카46의 MV 중, 스토리성이 강한 29작품은 이하와 같다.
‘만나고 싶었을 지도 몰라’ (쿠보 시게아키 감독) ★
‘물방울 무늬’ (마루야마 켄지 감독) ★
‘오이데 샴푸’ (다카하시 에이키 감독) ★
‘늑대에게 휘파람을’ (후쿠이 히데아키 감독) ★
‘눈물이 아직 슬픔이던 시절’ (세키 카즈아키 감독)
‘샤키이즘’ (야나기사와 쇼 감독) ★
‘걸즈 룰’ (야나기사와 쇼 감독) ★
‘바렛타’ (에코 코지 감독) ★
‘달의 크기’ (오오쿠보 타쿠로 감독)
‘그런 말도 안 되는…’ (마루야마 켄지 감독) ★
‘첫 사랑 그 사람을 지금도’ (타도코로 타카시 감독)
‘깨닫고 보니 짝사랑’ (야나기사와 쇼 감독) ★
‘로맨스의 시작’ (마루야마 켄지 감독) ★
‘고독형제’ (이케다 카즈마 감독)
‘과묵한 사자’ (유아사 히로아키 감독) ★
‘몇 번째 보는 푸른 하늘인가?’ (우치다 켄지 감독) ★
‘쓰러진 종을 울려라!’ (마루야마 켄지 감독) ★
‘나, 일어나’ (야나기사와 쇼 감독) ★
‘그 날, 나는 갑자기 거짓말을 했다’ (유아사 히로아키 감독) ★
‘기운 차리는 중’ (유아사 히로아키 감독) ★
‘미안해, 항상…’ (야마토 유우키 감독) ★
‘너는 나와 만나지 않는 편이 나았으려나’ (야마다 아츠히로 감독) ★
‘태양 노크’ (미츠이시 나오카즈 감독) ★
‘물고기들의 LOVE SONG’ (나카무라 타이코 감독)
‘무표정’ (츠키타 시게루, 야마모토 아츠히코, 시바타니 마이 감독)
‘헤어질 때 더욱 좋아져’ (야마기시 산타 감독) ★
‘지금,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 (하리와라 켄타로 감독) ★
‘질투의 권리’ (이노우에 츠요시 감독) ★
‘어른이 되는 지름길’ (유아사 히로아키 감독) ★
노기자카46의 ‘스토리’ 요소가 강한 MV 중에는 마루야마 켄지 감독, 야나기사와 쇼 감독, 유아사 히로아키 감독의 작품이 각각 4작품씩 들어 가 있으며, 그 중에서도 야나기사와 감독, 유아사 감독은 MV에 반드시 ‘스토리’ 요소를 강하게 넣어 제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식으로 노기자카의 MV에는 감독 본인의 지향성이 반영되는 경우가 많은 편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해도 수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돌아가며 감독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과반 이상이 ‘스토리성이 강한 MV’로 분류 된다는 것은 다시 말 해 ‘노기자카46’라는 그룹의 표현 방식에 있어 ‘스토리성 MV’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 한 대로 ‘노기자카46라는 그룹의 표현’에 있어 ‘스토리’ 지향성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점은 확실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요소는 수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MV제작에 참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를 관통하는 표현 경향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런 경향성은 결국 ‘노기자카46가 갖고 있는 작가성’의 발현이라고 보아도 무리 없지 않을까.
그리고 앞으로는 이런 ‘작가성’에 주목함으로 하여 ‘노기자카의 표현 세계’의 ‘핵심’을 살펴보도록 하자.
다음 장에서는
‘노기자카46의 스토리
MV’를 분석, 그 표현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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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기자카46이라는 ‘희망’
-그녀들의 표현세계가 이야기하는 ‘또 하나의 목소리’-
제 1장 ‘노기자카46라는 건 대체 어떤 그룹인가?’
제 1절. 노기자카46과 AKB48 –유사점과 차이점-
노기자카46는 ‘AKB48의 공식 라이벌 그룹’을 기치로 발족한 그룹으로, AKB48과 그 자매그룹으로 이루어 진 ‘AKB48그룹’에 속하지 않는 별개의 그룹을 칭한다. 2015년에는 처음으로 NHK 홍백가합전에 단독출장 하는 등, 현재 (2016년) 인기가 급상승 하고 있는 그룹이며, 전국적인 인지도도 가파르게 오르는 중인 그룹이다. 다만, AKB48의 자매그룹으로 인식되거나, ‘다른 그룹이라고는 해도 실질적으로는 AKB48의 자매그룹이나 다를 바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본 1절에서는 우선 이 문제에 대하여 검토 해 보고자 한다. 노기자카46의 설립경위, 활동 내용 등을 분석, AKB48 그룹과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이야기 해 보도록 하겠다.
노기자카46는 소니 뮤직 레이블에 속해있다. 그리고 현재는 킹레코드에 소속되어 있는 AKB48 역시 2006년에 나온 데뷔 싱글부터 8번째 싱글까지는 소니 뮤직의 산하 레이블인 데프스타 레코즈 소속으로 활동을 했었다. AKB48은 2008년, 킹레코드로 이적을 하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데프스타를 떠나 킹레코드에 새 둥지를 튼 뒤, AKB48은 본격적으로 일대 붐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에 데프스타측에서는 2010년, AKB48이 데프스타에 재적하던 시기에 나온 싱글들을 집대성한 베스트 앨범 ‘SET LIST ~그레이티스트 송즈~ 완전반’과, 해당 싱글들의 MV 모음집인 ‘놓친 물고기들 ~싱글 비디오 콜렉션’을 동시에 발매한다. MV 모음집의 제목은 데프스타측의 자학적인 유머가 녹아 든 타이틀로 한 때 회자되기도 하였다.
이 베스트 앨범 / MV 모음집 제작 기획기간 중, 소니 뮤직측은 AKB48의 종합 프로듀서인 아키모토 야스시측에게 새로운 기획을 타진하게 되고, 이 결과 이듬해인 2011년 6월, ‘공식 라이벌 그룹’ 결성을 정식으로 발표하기에 이른다. 같은 해 8월에는 최종 오디션이 행해 져, 그 합격자들로 이루어 진 ‘아키모토 야스시가 프로듀스하는 새로운 아이돌 그룹’이 탄생하기에 이른다. 이 새로운 그룹이 바로 ‘노기자카46’이라는 것은 말 할 것도 없다.
그룹의 명칭은 최종 오디션이 열린 ‘SME(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노기자카 빌딩’에서 따 왔으며, ‘AKB의 48보다 작은 수이지만 지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아 ‘46’이라는 번호가 붙게 되었다.
결성 이후 각종 이벤트나 TV 아이치 계열에서 방송 된 칸무리 방송, ‘노기자카가 어디야? (이하 ‘노기도코’) 등의 미디어 활동을 거치며 이듬해인 2012년 2월 22일, 아키모토 야스시가 작사를 맡은 데뷔 싱글 ‘구루구루 커튼’을 통해 메이저에 데뷔하게 되었다.
이상 결성경위를 보면 알 수 있듯, 노기자카46의 종합 프로듀서는 AKB48와 같은 아키모토 야스시씨이다. 아키모토씨는 그룹이 참가하는 각종 기획에도 기획자, 프로듀서로서 참가하고 있다. 또한 데뷔 싱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곡의 작사를 아키모토씨가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나 CD 구입자를 대상으로 악수회 등 팬 대상 이벤트를 연다는 것 역시 AKB48와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노기자카46가 AKB48 그룹의 일부라는 오해를 사는 이유 중 대부분은 이런 공통점에서 온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실질적으로 AKB48 그룹의 일부’라고 보는 사람들이 드는 이유로는 상기한 이유 외에도 다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 노기자카46의 운영모체인 ‘노기자카46 합동회사’는 소니뮤직과 노스리버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 ‘노스리버’는 주로 영상관련업무를 담당하는 회사로, AKB48의 운영에도 관여하고 있다.
□ 노기자카46의 칸무리방송인 ‘노기도코’ (TV 아이치 계열, 2011~2015)의 제작협력사에 AKB48의 운영관리회사인 AKS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전 AKS의 대표이사겸 사장이었던 쿠보타 야스시씨가 수퍼바이저 자리에 있다는 점. ‘노기도코’의 후속방송인 ‘노기자카 공사중(이하 ‘공사중’, TV 아이치 계열. 2015~)’ 역시 마찬가지로 쿠보타씨가 수퍼바이저를 담당하고 있음.
□ 노기자카의 칸무리 방송인 ‘NOGIBINGO!’ (니혼 테레비, 2013, 2014, 2015)는 애초에 ‘노기자카46 X HKT48 칸무리방송 배틀!’ 때 썼던 기획이었으며, 방송 타이틀 역시 AKB48의 칸무리방송인 ‘AKBINGO!’에서 따온 것이다. 또한, 해당 방송 역시 기획 협력자로 쿠보타 야스시씨의 이름이 올라 있다는 점. (단, NOGIBINGO! 5에서는 쿠보타씨의 이름이 삭제됨)
□ 노기자카46의 첫 드라마 출연은 AKB48 멤버인 와타나베 마유가 주연을 맡은 ‘사바돌’ (TV 도쿄, 2012)였다.
□ 노기자카46의 데뷔곡인 ‘구루구루 커튼’은 노기자카46의 라이브나 이벤트가 아닌 AKB48의 이벤트 ‘리퀘스트아워 2012’에서 처음으로 발표되었다는 점
□ ‘구루구루 커튼’의 커플링곡인 ‘만나고 싶었을 지도 몰라’는 단순히 AKB48의 대표곡인 ‘만나고 싶었어’를 마이너 어레인지 한 것 뿐이며, MV 역시 ‘만나고 싶었어’를 의도적으로 카피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MV에 당시 AKB48의 에이스인 마에다 아츠코가 카메오 출연하기도 하였다.
□ 두 번째 싱글인 ‘오이데 샴푸’ MV에 당시 AKB48의 인기 멤버였던 사시하라 리노가 카메오 출연하였다.
□ 2014년부터 2015년 사이에 ‘교환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이코마 리나가 노기자카/AKB48을, 마츠이 레나가 SKE48/노기자카 겸임을 했던 것. (이코마 리나는 겸임기간 중, AKB48 팀 B 극장 공연에도 참가하였으며, AKB48의 싱글인 ‘마음의 플래카드’, ‘희망적 리플레인’, ‘Green Flash’의 선발 멤버로서도 활동하였다. 해당 기간중에 열린 총선거 및 가위바위보 대회에도 참가.)
□ 2014년에는 AKB48의 인기멤버 코지마 하루나와 노기자카46 멤버 15명 (이코마 리나, 이토 쥰나, 카와고 히나, 카와무라 마히로, 사이토 유리, 사가라 이오리, 사사키 코토코, 스즈키 아야네, 테라다 란데, 나카다 카나, 나가시마 세이라, 노죠 아미, 야마자키 레나, 와타나베 미리아, 와다 마아야)이 ‘코지자카46’라는 유닛을 결성, AKB48의 38번째 싱글 ‘희망적 리플레인’ 커플링곡인 ‘바람의 나섬’과 노기자카46의 첫 앨범 ‘투명한 색’의 수록곡인 ‘경사지다’를 부른 바 있다. 또한, 2015년에 열린 노기자카46의 라이브 ‘3rd Year Birthday Live’ 때에도 코지마 하루나가 게스트로 참가, ‘코지자카’의 ‘경사지다’를 피로 한 바 있다.
□ 2013년, AKB48의 이벤트인 ‘AKB48 홍백대항가합전’에서 와타나베 마유가 노기자카46의 곡인 ‘너의 이름은 희망’을 피로하였으며, 이 때 피아노 반주를 한 것은 노기자카46의 이쿠타 에리카였다. 2014년에는 같은 이벤트에서 HKT48의 사시하라 리노와 노기자카46 멤버 7명 (아키모토 마나츠, 에토 미사, 사이토 아스카, 사가라 이오리, 사사키 코토코, 후카가와 마이, 호리 미오나)이 ‘사시자카46’ 명의로 노기자카의 곡인 ‘몇 번째 보는 푸른 하늘인가?’를 선보이기도 하였다.
이상 다양한 ‘공통점’들을 감안하면 노기자카46과 AKB48그룹간에는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노기자카46과 AKB48간의 차이점은 어떤 점을 들 수 있을까?
노기자카46과 AKB48의 차이점을 거론할 때,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룹 이미지’의 차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노기자카의 이미지를 표현 할 때 빼 놓지 않고 거론 되는 것이 바로 ‘사립 여학교 분위기’라는 이야기이다. 때로는 AKB48의 이미지를 ‘공립학교’로 비교하면서 사용되기도 하는 예시이지만, 본디 의미는 어디까지나 ‘활발하고 밝은 이미지’를 가진 AKB를 체육계열 부활동에 비유하였을 때, 노기자카에는 ‘청초함’이나 ‘기품’등의 단어가 잘 맞는 ‘아가씨’ 이미지, 혹은 ‘문화계열 부활동’에 걸맞은 이미지가 강하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말하자면 그룹 운영면에서도 그만큼 명확한 차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AKB48과는 달리 사진집 이외의 매체에서는 노출도가 높은 수영복 그라비아를 찍지 않는다는 점 역시 이런 이미지의 차별화를 의도 한 이미지전략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곡에서도 이런 차별화를 찾아 볼 수 있는데, 노기자카의 곡 중에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아이돌 노래’ 특유의 캐치하고 활발한 이미지의 곡들 뿐 아니라, 2015년 홍백가합전에서 선보인 바 있는 ‘너의 이름은 희망’으로 대표되는 피아노, 현악기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곡조의 곡들이나 자칫 잘못하면 네거티브하게 받아들여 질 수도 있을 정도로 메시지성이 강한 가사의 곡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또한 이런 ‘메시지성이 강한 가사’의 주류를 이루는 것이 ‘자신이 없고 소극적인 성격이고, 삶이나 사랑에 대해 겁을 내는 화자’를 그린 것이라는 것 역시 특징적이다. 이런 인물상은 물론 AKB48의 곡에서도 가끔 등장하는 것으로 이는 작사가인 아키모토 야스시가 ‘아이돌’의 주 소비층인 젊은 층을 대상으로 작사를 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으나, 노기자카46의 가사는 특히나 그런 메시지성이 한 층 세련된 문학적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보통 아이돌의 노래에는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노래들이 많기 마련이나, 노기자카의 ‘연애 노래’는 사랑이 시작되어 설레는 마음을 그린 곡들보다는, 사랑에 따르는 애절함, 덧없음, 아픔 등의 어두운 면을 표현한 작품이 더 많다는 것 역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깨닫고 보니 짝사랑’에서는 지나간 사랑에 상처를 받은 여성이 새롭게 싹터가는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려하는 심경을 그린 곡이며, ‘그 날 나는 갑작스레 거짓말을 했다’나 ‘너와 나는 만나지 않는 편이 좋았을지도 몰라’에서는 연애에 대한 뒤늦은 깨달음을 그린 곡이라 할 수 있다. ‘이 곳에 있는 이유’ 에서는 사랑하는 대상에 집착을 그리고 있으며, 소녀의 연애감정을 노래한 ‘헤어질 때 더욱 더 좋아져’나 ‘질투의 권리’에서조차 사랑의 풋풋한 뿐 아니라, 사랑에 빠진 소녀의 순수함으로 인한 ‘무거움’을 주요 테마로 다루고 있다.
또한 노기자카46의 노래 중에는 ‘삶’이나 ‘생명’ 등 무거운 주제를 다룬 곡들이 많다. 퍼스트 앨범을 대표하는 곡인 ‘내가 있는 곳’에서는 자신이 죽은 뒤, 홀로 남게 될 상대에 대한 깊은 사랑을 그리고 있으며 ‘생명은 아름다워’에서는 영원하지 않은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표현한 곡이다. 이런 테마는 일반적인 아이돌 노래에서는 그다지 다루지 않는 테마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곡을 통하여 ‘시리어스’함과 ‘나이브’함을 아낌없이 표현 해 내는 것이야말로 노기자카46의 ‘표현세계’의 고유성이라 할 수 있는 것이며, 여타 아이돌 그룹과의 차별성을 부여하는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사가는 AKB48와 마찬가지로 아키모토 야스시씨이지만, 이토록 명확하게 ‘세계관을 구분’함으로 하여 두 그룹간에 차별성을 두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이러한 노기자카46의 ‘곡’의 특징은 팬 뿐 아니라 당사자인 멤버들 역시 자각하고 있으며, 공유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일례로 사이토 아스카는 ‘생명은 아름다워’ 릴리스 당시 출연했던 TV방송에서 ‘이 곡은 일반적인 아이돌 노래답지 않게 심각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테마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 하기도 했다.
“이런 무거운 테마를 가진 곡을 아이돌이 부른다면 아무래도 ‘항상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돌의 이미지와는 갭이 생기겠지요. 그렇기에 다른 분들께서 어떻게 받아들이실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노기자카에는 의외로 어두운 부분을 가진 멤버들이 많기에, 그런 아이들이 이런 무거운 곡을 부른다면 노래를 듣는 10대 여러분께도 그 의미가 더 전달이 잘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015년 4월 1일, NHK ETV ‘R의 법칙’ 중에서)
사이토의 말에 따르면 노기자카46 멤버 중 대다수가 소위 말하는 ‘아이돌 답지 않은’ 어두운 부분을 갖고 있으며, 그렇기에 이런 심각한 테마의 곡을 잘 표현 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노기자카46의 멤버들의 성격에 대해서는 노기자카46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슬픔을 잊는 법’ 극중에서 캡틴, 사쿠라이 레이카의 언급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부정적이고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많고, 외로움을 타는 아이들이 많아요. 하지만 동시에 의외로 똑 부러지는 면들도 갖추고 있기에, 자신들이 가진 약한 점이나 부정적인 면을 바꾸기 위해 평소 부단하게 노력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앞서 이야기 한 ‘그룹 이미지의 차이’는 이런 멤버 개개인의 성격에서 기인하는 바도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지금껏 극히 단순하게 설명 한 바와 같이, 노기자카46은 그룹 이미지, 곡, 멤버의 성격 면에서 AKB48를 비롯한 다른 아이돌 그룹과는 차이를 보인다. 물론 이런 점은 어떻게 보자면 ‘선행 그룹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의도한 운영’의 일환이며, 실질적으로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런 ‘의도적인 차별화’의 결과 생겨난 ‘지금까지와는 다른’ 점은 어디까지나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것을 만들어 냈기에 생겨 난 것으로, 단순히 운영이 의도한다고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의 목적 역시 앞서 이야기 한 ‘새로운 것’에 대해 규명 해 보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한 분석은 제 2장 이후에 자세히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그럼 운영시스템이나 활동내용 면에서는 두 그룹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 지 알아보자. 우선 가장 알기 쉬운 차이점이라면 AKB48의 그룹 운영 시스템을 일약 센세이셔널하게 만든 일대 이벤트, ‘싱글 선발 총선거’가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싱글 선발 총선거’란, 그 이름대로 AKB48의 싱글을 부를 선발 멤버 및 퍼포먼스 포지션을 ‘투표’로 정한다는 것으로, 실제 투표와는 달리 투표권이 1인당 1표로 제한 된 것이 아니기에 열성적인 팬들이 투표권리를 얻기 위하여 CD를 대량구매하여 미디어에 사회문제로 다루어지기도 한 이벤트이다. 최근 들어서는 결과발표 이벤트를 지상파 방송국이 골든타임에 생중계를 하는 등, AKB48을 상징하는 일대 이벤트요, 운영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AKB48은 물론이고 SKE48, NMB48, HKT48 등 자매그룹의 멤버들 역시 ‘총선거’ 입후보 자격이 있으나, 노기자카46의 멤버들은 이 이벤트에 대한 입후보 자격이 없다.
총선거 뿐 아니라 48그룹의 멤버들이 센터 포지션, 혹은 솔로 데뷔 기회를 두고 겨루는 이벤트인 ‘가위바위보 대회’에 있어서도 노기자카 멤버들의 참가 자격은 인정되지 않다는 것만 보아도 ‘노기자카46이 AKB48의 자매그룹이 아니다’라는 것은 잘 알 수 있다.
재적 멤버가 100명이 넘는 AKB48에 비해 2016년 2월 기준 멤버가 37명밖에 되지 않는 노기자카46에서도 싱글 발매때는 멤버들을 ‘선발’과 ‘언더’로 나누며, 그런 ‘선발’ 중에서도 일부만이 AKB48의 ‘카미7’에 해당하는 ‘복신’에 뽑히게 된다. 하지만 노기자카46의 경우, 이 선발 과정에 팬이 개입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며, 선발은 전적으로 운영측이 정하게 된다.
물론 이런 운영 시스템까지 갈 것 없이, 눈에 보이는 가장 큰 차이점을 이야기 하자면 ‘전용 극장’의 유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요즘에는 TV를 틀기만 하면 누군가 한 명은 반드시 AKB48그룹의 멤버를 보게 된다고 할 정도로 TV 노출이 많은 AKB48 역시 그 ‘참신함’의 근원은 다름 아닌 운영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 기존 아이돌들이 ‘TV’를 메인 스테이지로 하여 활동 해 왔다면, AKB48는 그와는 달리 ‘TV 없이도 성립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AKB48은 본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키하바라 (AKihaBara)에 위치한 ‘AKB48 전용극장 (AKB48 시어터)’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그룹으로, ‘국민적 아이돌’이 되어 TV 출연이 끊이지 않는 지금까지도 그 ‘원점’인 극장 공연은 여전히 매일같이 행하고 있다.
TV를 메인 스테이지로 하여 활동 해 오던 기존 아이돌 업계에선 데뷔 한 지 얼마 되지 않거나 인기를 본격적으로 얻기 전인 아이돌은 시청자들에 대한 노출이 쉽지 않고,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은 아이돌은 말 그대로 ‘구름 위의 존재’가 되기 십상이었다. 이런 업계의 상식을 뒤엎은 것이 바로 AKB48의 메인 컨셉인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이라는 전략이었다.
AKB48의 팬은 극장 스테이지에서 가까운 곳에 앉아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들을 직접 바라 볼 수 있고, 아이돌로서 성장 해 가는 멤버들을 지속적으로 지켜보고, 응원 할 수 있다. 또한 공연에서는 멤버들이 자신에게 성원을 보내주는 팬에게 반응을 보여주거나 (레스폰스), 악수회 등의 이벤트를 통해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것 마저 가능하게 함으로 하여 ‘친근한 존재로서의 아이돌’이라는 개념을 말 그대로 ‘발명’ 해 냈다.
이는 팬 뿐 아니라 아이돌 본인에게도 득이 되는 시스템으로, TV 등의 미디어가 찾아주지 않는 비인기멤버라 해도 지속적으로 활동 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 할 수 있으며, 관객 앞에서 자주 공연을 하며 스스로의 퍼포먼스 능력을 단련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을 통하여 기존의 ‘권위적인 미디어’에게서 일정부분 독립 된 위치를 차지함으로 하여 AKB48라는 그룹은 그룹의 아이덴티티를 확고히 하고, 성장 및 확대의 길을 걸어 왔던 것이다.
본체인 AKB48 이외에도 자매그룹인 SKE48, NMB48, HKT48, JKT48, SNH48 역시 각각 그룹의 연고지 (나고야시 사카에 SaKaE, 오사카시 남바 NaMBa, 후쿠오카시 하카타 HaKaTa, 단, 극장이 있는 곳은 하카타구가 아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JaKarTa, 중국 상하이 ShaNgHai)에 전용 극장을 갖추고 있다. 2015년에 결성 된 NGT48 역시 2016년 1월, 니이가타시 (NiGaTa)에 전용극장 시설을 갖추었다.
이에 비해 노기자카46은 전용극장을 갖추고 있지 않다. 그룹의 이름인 ‘노기자카’은 특별히 전용극장이 그 곳에 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 아니라 단순히 운영주체인 소니뮤직의 본사 빌딩이 있는 곳의 이름을 딴 것 뿐이다. 이런 차이점은 AKB48 그룹과 노기자카46의 활동 내용이나 표현 방식에도 영향을 주며, 노기자카46의 독자성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차이점을 토양으로 하여 싹 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아이돌’이란 관객들의 눈에 많이 띄면 띌수록 좋은 존재이다. 그렇기에 AKB48그룹처럼 전용 극장을 가진 특별 케이스가 아닌 한, 데뷔 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인그룹이 갖는 최대의 문제라 하면 다름 아닌 ‘사람들 눈에 띌 기회가 없다’는 것을 들 수 있다. 하지만 노기자카46의 경우에는 다른 신인 아이돌 그룹에 비해 매우 유리한 배경을 지니고 있었다. 다름 아닌 ‘AKB48’의 존재였다. 노기자카는 ‘AKB48의 공식 라이벌 그룹’이라는 독특한 위치로 인하여 데뷔 초기부터 주목을 받았고, 결성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칸무리 방송이라는 큰 기회도 잡을 수 있었다. 이 점에서 생각하면 결성 직후, 노기자카46이 ‘AKB48가 닦아 온 길’을 걸어 온 것도, AKB48의 덕을 본 것 역시 틀림 없는 사실이라 해야 하겠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AKB48과의 차별성’을 요구받고, 그룹 이미지 구축, 표현 방식 개척 등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매우 중요하면서도 시급한 과제를 안고 있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그리고 이 때 노기자카가 선택한 ‘표현방식’이 있었다. 전용극장도 갖고 있지 않은, 칸무리 방송 이외에는 미디어 출연도 거의 없는 노기자카가 선택한 차별화 전략, 그것은 다름 아닌 ‘뮤직 비디오를 중심으로 한 영상 작품에 힘을 쏟는다’는 선택지였다.
아이돌은 ‘노래’ 뿐 아니라 외모, 퍼포먼스 등 시각적 요소에 크게 좌우되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DVD플레이어가 보편화 된 2000년대 이후로는 아이돌의 CD에는 특전DVD가 붙는 것은 거의 일반 상식화 되었다. 그룹에 따라, 혹은 싱글 수록곡 분위기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바뀌기는 하였으나 기본적인 틀 자체는 크게 바뀌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경우 DVD의 내용물은 MV가 일반적이었다.
물론 노기자카 역시 MV를 수록한다는 점에서는 여타 그룹들과 다름 없으나,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노기자카의 고유성’을 살린 것이 바로 노기자카 고유의 콘텐츠, ‘개인 PV’였다. (11, 12번째 싱글에선 멤버 두 명당 하나씩 ‘페어 PV’를 수록) 이는 멤버 개개인과 크리에이터, 감독을 매칭하여 다양한 단편 영상작품을 만드는 기획이었다. 이런 ‘개인 PV’는 멤버들의 미디어 출연이 적었을 때에도 각자의 개성과 매력을 발휘, 전파하는 효과를 냈으며, 멤버들의 지명도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현재에도 멤버 개개인의 ‘새로운 매력과 가능성’을 끌어내는 효과를 내고 있다.
또한 노기자카의 MV는 특전 DVD 수록이나 음악 방송 등에서의 노출 뿐 아니라, 인터넷에도 공식적으로 업로드 됨으로 하여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접근 할 수 있도록 하고있다. 이렇게 노기자카46는 단순히 곡 뿐 아니라 MV, 개인 PV 등 수십 종류의 영상작품을 매 싱글마다 릴리즈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영상작품의 제작에 있어서도 주목 받는 신인들을 적극적으로 등용, 만드는 내용에 있어서도 자유도를 부여함으로 하여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극장이 없는’ 아이돌 그룹인 노기자카46에게 있어 ‘영상 작품’이란 미디어 노출, 라이브, 이벤트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노출 기회’인 동시에 아이돌 그룹으로서의 세계관과 멤버 개개인의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는 데 있어 필요 불가결한 중요 요소라는 점은 이미 명백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중에서도 MV는 본디 매체가 갖는 특성 (곡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선전매체)상, 소비자들에게 ‘노기자카46’라는 아이돌 그룹의 표현세계를 알리는 접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MV에는 그룹의 표현 세계를 상징하는 ‘핵’이 응축 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에 이 책의 2장 이후에서는 MV의 표현양식에 대하여 분석을 해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하여 노기자카46의 표현세계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 ‘핵심’에는 어떤 테마가 응축되어 있는 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이런 고찰을 시작하기 전에, 다음 2절에서는 MV라는 표현매체에 대하여, 그리고 노기자카46의 MV가 갖는 특징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 해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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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 한 것인지 아닌지, 특유의 진지하기 그지없는 성격 덕분에 차례차례 생겨나는 캐릭터들.
이번 기사에선 ‘캐릭터에 사랑 받는’ 아이돌, 와카츠키 유미를 철저하게 분석 해 보도록 하겠다.
1; FASHION
- 와카츠키 유미와 ‘패션’ –
파트 1에선 그녀의 사복과 백 안의 내용물에서 미용에 이르기까지 와카츠키 유미의 ‘패션관’을 소개 하도록 하겠다. 아, 언제나 백 안에 넣고 다닌다는 ‘사탕’과 ‘인감’의 의미도.
일이 없는 날이면 일어난 순간의 기분에 맞추어 그 날 패션을 정하곤 해요. 젠더리스 (성별 구분 없는) 계열의 스타일링을 할 때도 있고, 록 스타일의 패션을 입을 때도 있지만, 때론 여성스러운 스타일링을 하기도 합니다. 아, 패션이라는 것을 즐겨 보기 위해서 일부러 레이스가 치렁치렁한 옷을 입어 본 적도 있지요. (웃음) 입는 옷이 변하면 그에 맞춰 행동거지도 바뀌곤 해요.
머리 모양도 패션의 일부로서 즐기고 있는 편이기에, 아마 노기자카46 내에선 제 머리 모양이 가장 변화무쌍 할 거예요. 아이돌에게 있어선 같은 머리모양을 계속 하며 사람들에게 인상을 남기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머리 스타일이 아니라 ‘얼굴’을 기억 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구두는 50켤레 정도 갖고 있어요. 신발장에 넣을 곳이 없을 땐 본가에 보내기도 합니다. 아, 그리고 구두는 아빠가 사 주시는 경우도 많아요. 요 전에 신었던 디즈니 콜라보 구두가 바로 아빠가 사 주신 것이었지요.
미용을 위해 빼먹지 않고 마사지를 합니다. 목욕 한 뒤에 크림보다는 흡수가 잘 되는 베이비 오일을 바르면서 림프 있는 곳을 마사지 하곤 해요. 잘 땐 항상 압박 양말을 신고 자고요. 이런 흐름은 어느 사이엔가 습관이 되어 버려서, 빠뜨리거나 하면 뭔가 안정이 안 될 정도예요.
고 1때, 굵은 다리가 콤플렉스였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다리가 예뻐질까 여러 모로 검색 해 본 결과, 지금 하고 있는 저 마사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무슨 일이건 금방 검색 해 보는 버릇이 있는데, 그러다 보면 꼭 모순점에 맞닥뜨리게 된다는 것이 바로 포인트이지요. 예를 들어 ‘요거트는 아침에 먹는 것이 좋다’는 것이 정설이라 알고 있었는데 정작 검색을 해 보면 ‘사실은 밤에 먹는 게 좋다’는 의견도 찾을 수 있거든요. 그런 ‘모순점’을 보면 과연 ‘밤에 먹는 게 좋다는 이유’를 철저히 따져서 두 의견 중 제게 더 잘 맞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여 그 방법을 택하는 것이지요.
2. LADY
- ‘여성’으로서의 와카츠키 유미-
훈남 캐릭터가 정착 되어 있는 와카츠키 유미.
그런 일면 뒤에 숨겨진 여성스러운 생활 모습과 쉽사리 볼 수 없는 ‘응석쟁이’ 와카사마에 대하여.
올 해 발렌타인데이 땐 멤버들과 스태프 분들께 생초콜릿 (초콜릿에 크림이나 머랭 등을 넣어 부드럽게 만든 초콜릿)을 만들어 드렸습니다. 사실 시간만 된다면 가토쇼콜라나 자허토르테를 만들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어요. 이래 뵈도 과자 만드는 걸 좋아하거든요.
사실 성격은 여성스러운 면이 강한 편이예요. 기본적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 앞에서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확 내보이는 편입니다. 노기자카 내에서는 마나츠나 나나미 정도 앞에서나 그러는 것 같긴 한데, 그런 사람들 앞에서는 엄청 사소한 일에 응석을 부리거나 제멋대로 굴거나 하기도 해요. 마실 것 가지러 갈 때에 ‘같이 가자~’고 들러붙고, 만약 같이 가 주지 않으면 억지로 끌고 가기도 합니다. (웃음) 뭐 팬 여러분 앞에서 그런 모습을 내보일 기회는 거의 없지만요.
노기자카46은 말하자면 특수한 환경이라 해야 할 것 같긴 한데, 사생활 면에서는 마나츠와 비슷한 관계를 맺고 있는 친구들이 더 많아요. 만약 결혼을 한다면 저의 그런 일면이 더 많이 나올 것 같네요. 물론 아이가 생긴다면 ‘강해져야’ 할 테니 남자다운 제 일면이 더 강해지겠지만요. (웃음)
요리 하는 것도 좋아해요, 냉장고를 열어서 그 때 그 때 있는 재료들로 요리를 만들어 먹는 걸 좋아합니다.
3. STAGE
- 와카츠키 유미와 ‘무대’-
노기자카에 들어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취재에서 ‘장래 희망’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질문을 받았을 때 정말 놀랐습니다. ‘아이돌이란 다음 단계의 꿈을 가져야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거든요. 그 당시에는 ‘CM에 나오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 했었지요. 사실 암기 과목을 잘 못 했기에, 배우는 대사를 외워야 하니까 힘들 거라 생각했었거든요.
제 꿈에 변화가 온 것은 2012년 9월에 열린 첫 무대, ‘16명의 프린시펄’이 그 계기였습니다. 관객여러분이 멤버들의 자기소개를 듣고, 연기를 보고 싶은 멤버에게 투표 하시면 그 결과에 따라 선택 받은 멤버들이 앨리스의 세계관을 뮤지컬로 표현 해 내는 무대였지요. 그 때 연출가 분께서 저희들에게 ‘너희는 뮤지컬 오디션을 받으러 온 고등학생이라는 설정이야’라고 말씀 해 주셨어요. 그 설명을 듣고 ‘아, 나는 더 이상 노기자카46의 멤버인 와카츠키 유미가 아니구나. 내게 맡겨진 역할을 충실히 연기해야 하는 것이구나’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 진 자기소개를 통해 ‘연기’라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것인 지를 알게 되었어요.
두 번째 ‘프린시펄’ 무대는 첫 번째 무대보다 훨씬 본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만, 역할에 따라 각자 다른 ‘자기 자신’을 연기 할 수 있었기에, 다양한 역을 연기하는 재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첫 번째, 두 번째 프린시펄 시기가 그렇게 힘들거나 정신적으로 몰리거나 하진 않았어요. 다만, 세 번째 프린시펄에서는 ‘예능의 벽’이 얼마나 높은 지를 알게 되었지요. 이전 두 번의 무대에선 어쨋건 노력만 하면 어떻게든 인정을 받을 수 있었지만, 세 번째 무대는 센스가 요구되는 ‘코미디’가 큰 비중을 갖고 있었기에, ‘코토코의 국어책 읽는 연기가 재미 있다’던가 ‘미나미가 대놓고 대본을 손에 들고 연기하는 게 웃긴다’는 등의 평가가 많았거든요. 결국 그런 부분이 결여 된 저로서는 크나 큰 벽에 부딪혔던 것이지요.
처음엔 콩트 동영상을 보며 연구했었어요. 특히 토모치카(여성 핀게닌)상이나 나카가와케(콩트 분야가 강점인 개그 콤비), 지쵸카쵸(개그 콤비) 분들의 즉흥 콩트를 보며 많은 것을 배웠지요. 특히 공감이 되는 것과 전혀 공감 되지 않는 것 틈새를 절묘하게 파고드는 게 대단했어요. 하지만 결국 그런 노력도 본성에는 이기지 못 하더라고요.
그룹 외부의 무대를 처음으로 경험 한 ‘2LDK (2013년 10월)’는 2인극이었는데, 저 개인에 대한 적나라한 지적이 기뻤습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 10월에 출연했던 ‘살아 있는 것은 없는가?’ 땐 다른 무대와는 달리 ‘연기에 힘을 빼 달라’는 주문을 받았지요.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일상적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제 3자에게 그렇게 신경 쓰진 않으니까’ 였습니다.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기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 한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저를, 관객들이 멋대로 훔쳐본다는 상황 설정이었지요.
그리고 ‘뱀파이어 기사 (2015년 1월, 7월)’ 같은 경우에는 원작이 따로 있는 작품이었기에, 캐릭터를 만들기는 쉬웠습니다만, 직전에 참여 했던 ‘살아 있는 것은 없는가?’ 때의 버릇이 남아 있었던 지 ‘연기에 발랄함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원작이 순정만화이기에, 순정만화 주인공 특유의 ‘어딘지 좀 모자라 보일 정도로 밝은’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밝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정도로는 부족했던 것이지요. 그 땐 스즈키 나나(일본의 탤런트, 모델)상의 동영상을 보며 ‘천진난만함’에 대해 공부 한 결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람이 바뀐 것 같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밝아졌던 적도 있습니다.
‘모든 개는 천국에 간다 (2015년 10월)’ 에선 네코제 츠바키(배우)상, 토리이 미유키(개그맨, 배우)상 등 일류 배우분들과 함께 연기를 하게 되었기에, 그 분들과 저 사이의 어마어마한 경험의 차이를 메우기 위해 필사적이었습니다. 같은 연극에 참가했던 노기자카46의 ‘개 멤버’ 8명은 그 연극을 계기로 엄청 친해졌어요. 서로의 연기를 보며 그 안에서 각자의 장점, 강점을 발견 했기에 서로가 서로를 존경하는 사이라고나 할까요.
라이브 땐 ‘여러분과 함께’ 즐기는 편이지만, 연기를 할 땐 관객 분들을 제 연기에 집중하도록 만들어야 하거든요. 그만큼 연기를 끝낸 뒤의 해방감이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짜릿합니다. 앞으로도 연극 무대에 계속 설 수 있으면 좋겠어요.
4. CREATIVE
- 와카츠키 유미와 ‘크리에이티브’ -
이과전 2년 연속 입선, 노기자카 굿즈 디자인 등 크리에이티브 방면으로 재능을 뽐내는 와카츠키. 그녀의 그런 재능은 어떻게 길러 져 온 것일까.
할아버지가 미술 선생님이시기도 하고, 저 역시도 유치원 때부터 회화 교실에 다녔기에 그림에 대해선 친근감을 갖고 있어요. 할아버지께 직접 그림을 배운 적은 없지만, 제가 그린 그림을 보여 드리면 매우 기뻐 해 주셨던 것은 기억하고 있어요.
중학교에 들어 간 뒤로는 컴퓨터를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학교 미술 수업도 좋아했고요. 다른 수업과는 달리 ‘정답’이라는 것이 없는 과목이었기에 제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고, 그것에 대해 다른 이들의 평가를 듣는 것이 좋았거든요.
미술 분야 중에서 가장 좋아했던 것은 추상화였어요. 중학교 미술 수업 때에도 제 감정을 그대로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구상화 (소묘, 풍경화 등 실재하는 사물을 묘사하는 것)는 아무래도 실재하는 모델이 있기에, 그 모델과 그림을 비교하게 되고 차이점을 한 번에 알 수 있지만, 모델이라 할 게 없는 ‘감정’을 추상화로 표현하는 데에는 ‘정답’이라는 게 없으니까요. 추상화는 그 때 그 때 그림을 그릴 때의 기분에 따라 그려내기에, 이해하기는 힘들어도 그런 게 또 좋았거든요.
중2병이라는 소리를 들을 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답이 있는 것’을 싫어해요. 비교 당하는 것에 대해 콤플렉스가 있다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네요. 초등학생 땐 성적이 좋았거든요. 반에서 1, 2등을 도맡아 했었는데, 중학교 수험을 거쳐 사립 중학교에 들어 가 보니 이게 왠걸, 저 뿐 아니라 그런 ‘1, 2등을 도맡아 하던’ 애들이 모여 있는 게 아니겠어요? 결국 ‘아, 승산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아예 노력 자체를 그만 둬 버렸어요.
미술관을 다니는 걸 좋아해서, 지금까지 여러 작품들을 보았어요. 물론 다른 사람의 작품을 보며 흉내를 내거나 참고로 한다거나 한 적은 없었지만, 사과를 그려놓고 빨강, 파랑, 보라색으로 칠 해 놓은 작품을 보면 ‘아, 이런 식으로 표현 할 수도 있구나’, ‘역시 그림을 그릴 땐 자유롭게 생각해도 되는구나’ 라는 식으로 깨닫게 되는 것도 많았지요. 성격은 매사에 진지한 편이지만 그림을 그릴 때 만은 최대한 자유를 추구하거든요. (웃음)
요즘은 기분이 내킬 때 그 때 그 때 그림을 그리곤 합니다. 휴대전화 배경을 바꾸고 싶으니 오랫만에 그림이라도 그려 볼까? 싶으면 그리는 식이지요. 물론 티슈나 토트백 등 노기자카 공식 굿즈에 제 디자인이 채택되면 엄청 기뻐요. 언젠가는 의상 디자인도 해 보고 싶어요.
5. HISTORY
- 와카츠키 유미와 ‘과거’ -
현재의 ‘와카츠키 유미’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의외로 느껴 질 그녀의 과거.
스스로 이야기 하는 ‘쓰레기’ 같았던 자신.
유소년기
다른 친구들보다 1년 먼저 유치원에 들어갔거든요. 덕분에 유치원을 4년이나 다니게 되었지만요. 당시에는 울지 않는 아이였다고 해요. 지금과는 180도 다르게 엄청 낯가림도 심하고 나서지 않는 아이였다고도 하고요. 세츠분 때, 다른 아이들은 신나서 뛰어 다니면서 콩을 주워대고 있는데 저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기만 했지요. 물론 저 역시 콩을 줍고 싶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어요. 그냥 봉투를 든 채 멍하니 서 있는 게 고작이었어요. 아버지가 과묵한 분이셨기에 아버지 영향이 컸던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나 오빠가 있긴 하지만, 언니 오빠 입장에선 들러 붙는 제가 귀찮았던 것 같기도 하고요.
초등학생 때
초등학교에 들어 간 뒤로는 항상 남자 아이들과 술래잡기를 하거나 강에 들어 가 민물 게를 잡으러 다니곤 하는 활기찬 아이였어요. 괄괄한 여자아이들끼리 팀을 짜서 대나무 숲 속에 비밀기지를 만들기도 했지요. 학교에서 쓰는 것들은 하나같이 언니가 썼던 것들을 물려받았기에 처음엔 그런 낡은 걸 쓰는 게 싫었어요. 다른 애들은 새 것을 쓰는데 나만 다르구나 싶어서. 좀 지난 뒤엔 ‘뭐, 쓸 수 있으면 되지’라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떼를 써서 부모님께 돈을 쓰게 하는 것 보다는 다른 유익한 곳에 쓰게 하는 편이 낫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거든요.
중학생 때
중학생 때는 공부에서 좌절을 맛 보고 아예 ‘노력’이라는 것 자체를 포기 해 버렸지요. 항상 혼자 그림만 그리고 있었습니다. 반 내에 파벌이 몇 개인가 있었는데 그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모든 파벌이랑 인사 정도는 하는 관계를 맺고 있었어요. 순서대로 따돌림을 당하는 흐름 때문에 자연스레 따돌림을 당한 적도 있었고요. 중학교 때 부활동은 연극부였습니다만, 다니던 학교가 일관교였기에 무대 위에 서는 건 고등부 선배들이 대부분이었고, 대부분 한 건 잡일이었어요. 당연히 ‘배우가 된다’던가 하는 생각은 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고등학생 때
저, 고등학생 때는 진짜 쓰레기 같았어요. 노력을 하지 않는 건 변함 없었고, 거기에 더해 매사를 삐딱하게 보며 의문을 품었지요. ‘왜 공부라는 걸 해야 하는 거지?’ 라던가, ‘공부 같은 거 할 바엔 그 시간동안 다른 걸 하면 더 낫다’던가 하는 생각만 했었기에 제대로 수업에 집중 한 건 윤리 시간 정도였어요. 결국 다른 아이들은 차근차근 수험 준비를 하기 시작했기에 어느 사이엔가 뒤쳐져 버렸지요. 행사 같은 게 있을 때에도 열광하며 신나 하는 다른 아이들을 차갑게 바라보곤 했습니다. 매사에 흥미가 없었다고 해야 하나요. 그러던 도중, 노기자카46의 오디션에 대해 알게 되고, 오디션을 받아 보기로 결심 했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연극부가 아닌 미술부에 들어 갔었기에, 노기자카에 들어 오기 전에 무대에 선 경험은 없어요.
6. TESTIMONY
- 가족들이 말하는 와카츠키 유미 -
진중하고 똑부러지는 이미지를 가진 와카츠키, 그런 이미지는 어릴 적부터 변함이 없다고 증언하는 가족들.
가족들이기에 알 수 있는 ‘와카츠키 유미’의 본 모습은 어떤 것일까.
언니가 동생에 대해
유미쨩은 막내임에도 형제 중에서 가장 똑부러지는 아이입니다. 첫째인 제가 천하태평하고 믿고 맡기기 힘든 타입이라 그런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항상 중심에 서서 가족들을 규합 해 주는 것이 유미쨩이지요. 어릴 적부터 함께 놀러 나가거나 함께 목욕을 하거나 하는 경우가 잦아,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많았기에 사실상 자매라기 보다는 친구 같은 관계라 할 수 있겠네요. 나이 차이가 8살이나 나는데도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유미쨩의 정신 연령이 높기 때문이겠지요. 유미쨩이 초등학생일 때, 저는 이미 도쿄에 나와 혼자 살고 있었는데, 혼자 도쿄에 놀러 와서는 엉망인 제 방을 치워주기도 하고, 제가 본가에 돌아 갈 때면 생일 선물을 잊지 않고 챙겨 주기도 하는 등, 다른 사람을 배려 할 줄 아는 동생입니다.
오빠가 동생에 대해
스스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좀 쑥스럽습니다만, 오빠를 잘 따르는 아이였습니다. 나이 차이가 있어서인지 어릴 적부터 돌보아 주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언젠가 제가 가족들에게 혼 나고 있을 때, 유미쨩 혼자서 ‘오빠는 잘못 없다’며 저를 변호 해 준 적이 있습니다. 워낙에 어릴 때 일이기에 유미 본인이 그 당시 상황에 대해 확실히 이해 하고 저를 변호 해 줬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동생의 그 반응에 엄청나게 감동했던 기억이 있네요. 말 그대로 이야기에나 나올 법 한 좋은 여동생이었습니다. 저 뿐 아니라 제 친구들도 유미를 귀여워 했습니다. 실제로 친구들 중에 여동생이 있는 아이도 얼마 없었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분명 제 여동생인데도 제 친구들이 멋대로 자기 여동생이라 인식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실제로 제 친구 중 몇 녀석은 유미가 10대일 때 세뱃돈을 주기까지 했으니까요. (웃음) 지금도 이렇게 사이 좋은 여동생이 있다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엄마가 딸에 대해
어릴 때부터 운동신경이 좋고 활발한 아이였습니다. 이벤트를 기획하는 것을 좋아해서 선생님의 송별회 등 여러 행사를 기획하곤 했어요. 막내임에도 사고 방식이 어른스러웠기에 부모인 제 상담 상대가 되어주거나, 언니 오빠와 제가 싸우기라도 하면 유미가 중재를 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습니다. 제가 무거운 것을 들고 있기라도 하면 말 없이 스윽 다가와서는 대신 들어주곤 하는 다정한 아이였습니다.
아빠가 딸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확실히 표현하는 아이였습니다. 유미가 유치원생이었을 때의 일입니다만, 시즈오카시에 있는 도카이대학 해양과학 박물관이 주최하는 ‘물고기 알 그리기 대회’에서 특선에 뽑힌 적이 있습니다. 표창식에 참가하기 위해 회장으로 향하는 길에 입선작품들을 전시 해 두었었는데, 다른 그림들을 찬찬히 보더니 ‘내 그림은 이것 보다 못 그렸는데’라고 하더군요. 솔직히 그 당시 그린 그림은 추상화에 가까웠거든요. 아, 지금도 ‘구상화’는 힘들어 하는 것 같습니다만. (웃음)
7. NOGIZAKA46
- 와카츠키 유미와 ‘노기자카46’-
최근 있었던 ‘어떤 일’을 계기로 모든 것이 변했다는 와카츠키.
그런 그녀가 말하는 지금까지의 자신과, 앞으로의 자신. 그 모든 것.
- 고등학생 때, 주변 친구들에게 뒤쳐졌었다고 했었지요?
와 : 다른 아이들은 모두들 수험 공부에 전념하고 있었지만, 저는 딱히 가고 싶은 대학도 없었고, 배우고 싶은 것도 없었거든요. 그러던 와중에 초등학생 때 ‘천재 텔레비군’을 보며 ‘이 안에 들어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을 떠올리고 연예계를 목표로 삼게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노기자카의 오디션을 받게 된 것이고요.
- 노기자카에 들어 온 뒤, 동급생들의 반응은 어떻던가요?
와 :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사실 학교에서 페이드 아웃 하듯이 사라졌거든요. 여름 방학 때 오디션에 붙었는데, 당시 다니던 학교가 연예계 활동을 인정하지 않는 학교였기에 2학기가 시작 되기 전에 전학을 가 버렸거든요. 그렇기에 반 친구들은 TV나 잡지에서 노기자카에 들어 온 저를 보며 ‘원래 이런 애가 아닌데’라고 생각 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 그런 여러 면이 전부 와카츠키상을 이루는 요소인 것이지요?
와 : 그럴 지도 모르지만, 저는 적극적으로 저 자신을 바꾼 경우거든요. 노기자카46에 들어 와, 지금까지의 자신을 리셋하고 0부터 다시 시작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여기서 노력을 한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결론을 도출 해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학생 때는 ‘노력’이라던가 ‘최선’이라던가 하는 말이 정말 싫었지만, 이 곳에서는 진심으로 ‘노력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노기자카에 들어 온 뒤,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사건은 있었나요?
와 : 막연하던 제 ‘꿈’을 발견하게 된 ‘프린시펄’ 이외에 터닝 포인트라… 아, 최근에 있었어요. ‘젓가락군’ 이라고.
- ‘젓가락’이요?!
와 : 사실 그 당시, 마아야가 제 흉내를 내기 시작했던 때라 그 모습을 보며 ‘아, 나 저런 행동을 하는구나’ 싶어서 부끄러웠거든요. 제 딴에는 최선을 다 한다고 한 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재미 있어 보인다는 게 좀 괴롭기도 했고요. 블로그에 쓰는 문장들을 보고 팬 분들께서 ‘포에머’ (poemer. 시인(poet)과는 조금 다른 말. 놀리는 말)라고 놀리시는 것도 마음이 아팠고요. 딱히 ‘시’를 쓰고 싶어서 블로그를 쓰는 건 아니니까요.
어느 사이엔가 그런 것들이 괴로워졌고, 마음 속에 갈등이 생겨서 갑자기 눈물이 나곤 했어요.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더라고요. 스태프 분들께 ‘내가 전하고 싶은 것들이 항상 다르게 전달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며 상담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 힘든 마음을 한 방에 날려 준 것이 바로 ‘젓가락’이었습니다.
- ‘노기자카 공사중’에서 처음으로 젓가락을 주제로 코바나시(라쿠고 등에 등장하는 단편 개그)를 선보였을 땐 어떤 마음으로 임했던 건가요?
와 : 와카바야시 선생님께서 제게 가르쳐 주시는 모습이 담긴 VTR을 본 순간부터 ‘아, 이거 안 되겠는데’라고 생각했어요. 제대로 이해도 하지 못 한 주제에 그것을 스튜디오에서 선보인다는 건 실례기도 하고요. 내내 ‘어쩌지, 어쩌지’라고 초조해 했습니다.
그리고 생각 해 낸 결론이 ‘연기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연기에 집중하면 창피 한 것도 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결과적으로 연기에 몰입했기에 사실 당시 스튜디오에서 어떤 기분이었는 지 거의 기억에 없어요.
- 그렇게 끝까지 해 내는 모습이 멋졌어요.
와 : 그 ‘젓가락’ 사건을 계기로 흉내에도, ‘포에머’라 불리는 것에 대한 마음가짐도 바뀌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그 모습에 웃을 수 있다면 된 것 아닌가 싶어 졌지요. 사실 같은 그룹 멤버 내에도 화제로 삼기 쉬운 멤버, 힘든 멤버가 나눠지기 마련이고, 특히나 4년이나 같이 활동을 하다 보면 그런 선이 더더욱 확실해 지기 마련입니다만, 저는 ‘화제 삼기 쉬운’ 멤버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 남들이 어떻게 보건간에 결국은 매사에 진중한 사람이 결과를 남기는 경우가 많지요.
와 : 아, 감사합니다. 얼마 전에는 처음으로 나레이션을 녹음 할 기회가 있었는데, 저를 캐스팅 해 주신 분께서 ‘요 전에 우연히 밤에 TV를 켰더니 와카츠키상이 젓가락을 들고 뭔갈 하고 있더라고요. 그 연기를 할 때의 목소리가 마음에 들어서 와카츠키상에게 나레이션을 부탁하게 되었어요’라고 말씀 해 주셨어요. 그 말씀을 듣고 ‘이런 식으로 기회를 얻을 수도 있구나’라고 새삼 깨닫게 되어 기뻤어요. 보아 주는 사람은 언제나 항상 어떤 방식으로건 보아 주고 있다는 것, 작은 계기가 어떻게 발전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포에머’라 놀림 받는 것 역시 결국은 제가 쓴 블로그를 부끄러워 한다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무슨 소리를 듣건 간에 저 스스로가 여러분께 정보를 발신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아무리 놀림을 받더라도 저는 저, 저 다움을 끝까지 관철 해 나갈 생각이예요. 사실 ‘46시간 TV’에서 선보였던 ‘매일 와카츠키’는 그 결과물이었습니다.
- 정말로 ‘젓가락’이 터닝 포인트였군요. 퍼포먼스 면에서도 뭔가 변한 게 있나요?
와 : 현재로선 마아야상의 흉내를 내는 정도랄까요. (웃음)
- 미카와 켄이치(거물 엔카가수)상이 고롯케(모노마네 게닌, 미카와 켄이치 흉내가 대표 개그)상 흉내를 낸다는 식이군요. (웃음)
와 : 아니예요. 저 같은 경우에는 정말로 마아야 흉내예요. 마아야와 제가 서로 윈-윈 하기 위해서 마아야에게 맞춰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최근에는 (제복 마네킨때) 마나츠가 공을 치는 시늉을 하고, 제가 그 소리를 듣는 척 하는 식으로 구체화 시켰을 정도예요. 다음 번 공연 땐 마이마이가 공을 던지는 장면부터 시작 해 볼까 상의하는 중입니다. (웃음)
- 현재 그룹 내에서 자신의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와 : 지금 제 가장 큰 목표는 ‘연기를 통해 노기자카라는 그룹의 폭을 넓히는 것’입니다. 작년 한 해 동안 그룹 내에서 모델로 데뷔 한 아이들이 많았는데, 이번엔 ‘노기자카 멤버 중에는 배우가 많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그리고 46시간 TV 때 MC를 했었는데, 다른 아이들이 자유롭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며 그런 장면을 컨트롤 하는 것이 제게 맞는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는 멤버들의 재미있는 부분을 이끌어 내고, 때로는 츳코미도 넣어 가는 역할을 해 보고 싶어요. 뭐, 저는 ‘예능의 벽’에 가로 막혀 있으니까 말이죠 (웃음)
- 센터에 서고 싶다 하는 생각은 없나요?
와 : 한 때는 센터에 서고 싶기도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나세가 센터에 서고 저와 사쿠라이가 그 곁에서 나나세를 보좌하는 포지션이 가장 이상적인 포지션이 아닐까 생각해요.
- 94년 조!!
와 : 나나미, 미사, 마이얀, 맛층 세대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룹을 지탱 해 왔으니까요. 그렇다고 차세대라 하면 역시 미나미나 아스카지요. 그러니까 사유리까지 해서 저희 94년조가 그 가운데에서 그런 이미지를 조금씩 바꾸어 가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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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노 미나미
‘벚나무 아래에서’
- 지금부터 고등학교 생활에 대해 여쭈어 보고자 합니다만, 우선 노기자카46 활동과 학업을 양립한다는 것은 역시 힘들었나요?
“즐겁긴 했지만, 확실히 힘들었어요. (쓴웃음) 평일에는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학교에 가고, 학교가 끝난 뒤부터 노기자카46의 활동을 했던데 다가. 기본적으로 주말에는 일을 했었기에 정말이지 쉴 시간이 없었습니다. 항시 ‘풀 가동’시키고 있다고나 할까요?”
- 시험이나 숙제 같은 것도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특히 시험이 말이죠…
지금도 기억이 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여름의 Free & Easy’ MV 촬영 도중에 빠져나가서 학교에 가 시험을 보고 와서 다시 촬영에 참가했던 적이 있어요. 실제로 완성된 MV를 봐도 제가 중간부터 사라지고 없고요. MV 장면 중에 ‘점프’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점프 할 때는 제가 있는데 착지 할 때는 제가 없거든요. 물론 착지하는 장면을 찍을 때, 시험을 보러 갔었기에 안 나와 있는 것인 것, 팬분들 사이에서는 ‘왜 미나미가 없어진 거야?’ 라던가 ‘착시 아니야?’ 라는 식으로 화제가 되었다는 것 같더라고요. 사실은 단순히 그 장면 찍을 때 시험 보러 가서 찍지 못 했던 것 뿐입니다. (웃음)”
- 다른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자리에 없었던 것 뿐이군요. (웃음) 그런 ‘하드 스케줄’을 어떻게 버텨 낸 것인지요?
“가끔 쉴 짬이 생기면 엄마랑 가마쿠라에 놀러가거나, 쉬는 시간이 있으면 친구들과 카페에 가서 잡담을 하거나 했어요. 그러다 보면 마음 속에 응어리 져 있던 것들이 해소되어 기분도 많이 편해지곤 했어요. 아, 가끔은 수업시간에 자면서 피로와 스트레스가 함께 풀리기도 했고요. (쓴웃음) 선생님께서 정말 좋은 분이셔서 제가 졸고 있어도 딱히 깨우거나 하지 않으셨거든요.
점심시간에도 너무 피곤해서 엄마가 만들어 준 도시락도 먹지 않고 자 버렸던 적도 있어요.”
- 아, 학교에 갈 땐 전차로 등하교 했었나요?
“네. 아빠가 출근하실 때 함께 집을 나서서 함께 전차를 이용해 학교에 가곤 했습니다. 사실 성격상 혼자서는 만원전철에 비집고 들어가질 못 하는데, 아빠가 힘껏 밀어 넣어 주시곤 했어요. (웃음)”
- 학교 친구들과의 관계는 어땠나요?
“고 1때 노기자카에 대해 잘 모르는 친구랑 친해져서 3년간 그 아이랑 항상 함께 보냈어요. 그 외에도 항상 점심을 함께 먹는 친구가 5명 정도 있고요.
어째선지는 모르겠는데, 다른 동급생들은 저를 좀 무서워했다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말 걸지 못 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웃음)
다른 동급생들이 제 친구에게 ‘미나미쨩은 어떤 아이야?’라고 물었는데, 제 친구들이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얘기 해 보지?’라고 이야기 했더니 ‘말 걸기 힘든데다가 뭔가 무서워. 항상 피곤해 보이고’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하더라고요.”
- 뭐가 그리 무서워 보였던 걸까요.
“물론 저는 무서운 사람이 아닙니다만 (웃음) 학교에서는 보통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던 데다가 수업이 끝나면 바로 집에 돌아 가 버리곤 했기에 그런 인상이 생겨도 별 수 없다고는 생각해요.”
-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는 얘기를 듣자 하니, 평소에는 그다지 말 수가 없고 얌전한 타입인가 보네요?
“그렇게 막 활달한 타입은 아니예요. 다만, 사이 좋은 친구들과는 엄청 떠들어대는 타입이예요. 제가 좋아하는 ‘오와라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친구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준다던가, 학교 근처에 괜찮아 보이는 가게가 생기면 ‘다음 번에 꼭 가자’며 약속을 한다던가.”
- 운동회나 학교 축제(문화제) 등 학교 행사에는 참가 했나요?
“음… 나가노에서 열렸던 학교 스키 합숙에 참가 한 정도일까요… 그 때 처음으로 스키를 타 봤는데, 고글을 낀 순간 굉장히 자유로운 기분이 들어서 엄청 즐거웠어요. 비록 저희 학교의 축제에는 참가 하지 못 했습니다만,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의 축제에 놀러 간 적은 있기에, 학교 축제가 어떤 분위기인지 맛 보긴 했어요.”
- 친구들과의 추억 중 가장 인상에 남은 것이 있다면?
“선생님들에게 별명을 붙인다던가, 노트에 캐리커처를 그리거나 했었던 거요.”
- 별명이라… 예를 들자면 어떤 별명들이 있나요?
“’히코냥’ (원래는 시가현의 마스코트 캐릭터)이라던가, ‘새끼손가락’이라던가… 히코냥 선생님은 칠판에 판서 할 때 글을 엄청 크게 쓰는 선생님이시고, 새끼손가락 선생님은 대머리인 선생님이신데, 머리 모양이 왠지 새끼손가락 같아서 새끼손가락 선생님이라 부르게 되었어요. (웃음)
아, 머리가 곱슬머리라서 ‘바하’라 부르던 선생님도 계셨고요.”
- 바하 선생님은 거의 모든 학교에 한 명은 있는 것 같네요. (웃음) 만약 본인이 노기자카46 멤버가 아니었다면 어떤 고교생활을 보내고 싶었나요?
“개인적으로 해 보고 싶었던 건 축구부나 농구부 매니저를 해 보고 싶었어요. 매니저라 하면 어째선지는 몰라도 항상 공을 열심히 닦고 있는 이미지가 있습니다만.”
- 그럼 반대로 노기자카46에서의 활동이 학교 생활에 도움이 된 점이 있다면?
“수업시간에 발표 할 때 긴장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요. 그리고 딱히 그렇게 하려고 의식을 한 것은 아닌데, 교과서를 읽을 때 큰 소리로 읽어서 다른 친구들이 듣기 편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 있어요.”
- 고등학교 3년동안에 대해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이나 줄 것 같아요?
“음… 좀 후하게 점수를 줘서 80점 정도? 20점 깎은 이유는 수업시간에 많이 졸았기 때문에 깎았어요.”
- 졸업을 앞두고 지난 고교생활을 되돌아 보았을 때, 후회되는 점은 없나요?
“없어요. 엄마가 만들어주신 도시락을 들고, 아빠와 함께 만원전철에 타는 매일매일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좀 아쉽지만요.
지금까지는 ;오늘은 일이 없으니 학교네…’ 라고 실망하거나 한 적도 있지만 조금 더 지나면 그런 시절도 그리워 질 것 같아요.
요즘은 이미 수업을 안 하기에 딱히 아침에 알람을 맞추고 자지 않는데도, 아침 7시만 되면 절로 눈이 떠 져요. 그렇기에 제가 진정한 의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것’은 더 이상 7시에 절로 눈이 떠 지지 않게 되는 때일지도 모르겠네요.
아, 비록 학교는 졸업하지만 그래도 교복이 어울리는 소녀인 채로 남고 싶다는 소망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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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ry over
다카야마 카즈미
나는 어렸을 때 이지메를 당했다.
이지메의 이유는 그저 '집이 가난하다'는 너무나도 단순한 것이었지만, 그렇게 '원인을 알아도 개선 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
예를 들어보자면 입는 옷이 다양하지 못 했다는 점. 단 세 벌 뿐이었던 트레이너는 프린트 된 그림이 벗겨지고, 색이 바랠 때 까지 대체 몇 년이나 입었던지...
학교 행사로 열린 크리스마스 파티 당시, 천엔 정도 범위에서 친구들과 선물을 교환하게 되었는데 당시 우리 어머니가 내게 주었던 돈은 200엔 뿐이었다. 결국 나는 UFO 크레인 게임에 그 돈을 투자해서 큰 것을 뽑아 선물로 하려 했지만 결과는 실패... 내 손에 남은 것은 100엔 뿐이었다. 별 수 없이 와타파치(솜사탕형태의 캔디. 불량식품의 일종)를 사서 파티에 나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이지메 주동자들에게 딱 찍혀버렸던 것이다.
'돈이 전부는 아니잖아!'라며 등장하는 정의의 히어로같은 아이가 한 명 쯤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당시 나는 주변 아이들에 비해 잘난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아이였기에 결국 '아무 것도 못 하는 놈 + 가난하기까지 = 친구가 되기는 싫은 놈' 이라는 공식에 완벽하게 들어맞았던 것이다.
다시 말 해, 내 편을 들어주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는 거다.
그렇기에 나의 '돈에 대한 집착'은 날이 흐를 수록 나아지기는 커녕, 나이를 먹으면 먹을 수록 강해져만 갔다. 주변 아이들의 덩치가 커지면서 이지메의 강도 역시 심해졌기에, 결국 나는 완전히 세상에, 타인에게 마음을 닫아버렸다.
힘도 없고 머리도 나쁘지만 돈만 있다면... 돈만... 이 생각만을 끊임 없이 머릿 속에서 되풀이했다.
그런 지옥과도 같은 나날을 어찌저찌 견뎌낸 나는, 드디어 내 힘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때를 맞이하였다.
그렇게 일을 시작 한 지 한 달이 경과 된 날, 집에 가기 위해 전철에 탄 나는, 전철 손잡이 부분에 시선을 빼앗겼다.
'신세대 점보 복권 (일본 복권협회에서 판매하는 복권 브랜드 이름). 1등 상금 100억엔! 지금 사시면 '감정'도 덤으로 드립니다.'
"백... 억엔이라..."
그 돈이 손에 들어 온다면 불가능한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이미 내 안에서 용솟음 치는 것은 어딘가 비틀어진 망상들 뿐이었다.
지금까지 나를 이지메 한 놈들에게 복수 할 거야... '그 쪽' 방면 프로들을 돈으로 사서 놈들의 행복을 철저히 짓밟아 주마... 전부 절망의 구렁텅이에 떨어뜨려 주마...
그런 망상에 찬 나는 미소 지으며 복권 매장을 찾았다.
본디 복권이란 건 10장이 1세트로, 여러 장을 살 땐 '바라' 와 '연번' 중에서 고르는 게 보통이지만 (연번 : 복권을 순서대로 사는 것. 일련번호가 이어지기에 '연번'이라 함. '바라'는 그와 반대로 여기저기서 조금씩 사 들이는 것으로, 여기저기 퍼져 있다는 '바라바라'에서 따 옴) 이 복권은 특이하게도 한 장에 삼만엔이나 했다.
말도 안 될 정도로 비싼 가격인데, 이는 덤으로 준다는 '감정' 이라는 옵션이 그만한 가치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장 한 장 각자 성격이 달라서 재미있다우~ 애완동물 산다고 생각하면 그닥 비싼 가격도 아니잖수~?"
복권 매장 판매원 아주머니는 복권을 사라고 강요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머니의 온화한 미소를 보며 호감마저 느껴지는 분이셨다. 다행히도 내 가방 안에는 방금 전에 받은 첫 월급이 소중하게 보관 되어 있었기에, 복권 한 장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당선 발표까지 남은 시간은 약 3주. 기껏 '꿈'을 샀으니, 아낌 없이 꿔 봐야지.
하지만 대체 '감정'을 덤으로 준다는 건 무슨 의미였을까?
집에 도착한 나는 단순한 '종잇조각' 인 복권을 꺼내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종잇조각'이 벌떡 일어서는 게 아닌가.
"저를 사 줘서 고마워요."
"헐... 말을 하네?!"
그것이 녀석과의 첫 만남이었다.
자세히 보니 가운데 접힌 부분을 입처럼 써서 이야기를 하는 듯 했다. 아, '감정이 있다'는 게 이런 뜻이었구나...
어릴 때 부터 '말을 한다'는 행위에 혐오감을 느껴왔던 나는 그런 녀석을 보며 어딘가 기분이 나빠졌다. 녀석도 그런 내 표정을 보더니 그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로부터 이틀 뒤, 깜빡하고 알람을 설정하는 것을 잊은 나는 기상시간이 지난 시간에도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저기... 아침인데요. 어제 일어 난 시간은 이미 지났다고요. 괜한 얘기 하는 거라면 미안하지만... 일단 보고 드리는 거예요."
그 3만엔짜리 종잇조각이 엄청 주저하면서 나를 깨웠던 것이다. 그 덕분에 그 날, 어찌저찌 지각은 면할 수 있었다.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너무 기를 살려주면 신나서 떠들어 댈 것 같아서 딱히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일단은 '100억엔 예비군'이었기에, 밖에 나갈 땐 소중하게 지갑 속에 넣고 다녔다. 개찰구에 스이카 (교통카드)를 댈 때마다 약하게 전기가 통하는 지, 매번 '앗!' 이라고 중얼거리는 게 시끄럽긴 했지만.
나는 정기적으로 인터넷에서 '신세대 점보 복권'에 대해 검색을 해 보았다.
'감정 같은 거 필요 없어~ 내가 산 복권은 너무 시끄러워서 확 찢어버렸어 ㅋㅋㅋ 아, 이거 당선되면 울고싶겠지 ㅋㅋㅋㅋ'
...3만엔이나 하는 걸 찢어버리다니...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짓이었다.
눈을 감으면 100억엔이라는 거금속에 파묻힌 내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엄청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내가 거금을 손에 넣는다면 그 냄새를 맡고 꼬여드는 놈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놈들이 있다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 물어 보리라. 만에 하나 조금이라도 무시하는 기색을 보이는 순간, 잔인한 방법으로 처리 해 주리라... 후후후후
한동안 상상에 젖어 있다가 눈을 떠 보니 '100억엔 예비군'이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네 편이야."
그런 말이 들려왔지만 애써 무시했다. 하지만 다시금 눈을 감아 보아도 다시는 그 환상이 떠오르지 않았다.
복권을 산 지 2주가 되던 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이 세상에 단 한 명 뿐이던 가족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예전부터 병에 걸려 계시던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손도 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어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집에 치료를 받을 돈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 분명 어머니는 당신을 위해서 그 돈을 쓰려 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내 학비를 대기 위해, 집세와 식비를 충당하기 위해, 그리고 아버지가 남기고 간 빚을 갚기 위해 번 돈을 전부 들이 부었기에 병원에 갈 수가 없었던 것이리라...
그렇게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만들어 주신 생활인데... 그 생활 때문에 '가난하다' 며 놀림받고, 이지메를 당하고, 때로는 폭행까지 당했던 나는 그저 '살아가는 데' 필사적이었기에 그런 어머니의 고생에 제대로 눈을 돌리지 못 했던 것이다.
돈만 있었다면... 구할 수 있는 목숨이었다.
돈이 없으면... 돈이 없다면..
어머니는 내 책상 맨 윗 서랍에 편지를 남겨 두셨다.
'아들 보아라.
풍족한 생활을 하게 해 주지 못 한 점,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한단다. 많은 것들을 참아야만 했었지? 정말로 미안해. 엄마를 미워해도 좋아.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소중하게 대하렴. 상냥하게 대해주렴. 그렇게 한다면 언젠가 꼭 행복해 질 거란다.
이 엄마는 너와 함께 지낸 나날들이 행복했단다. 고마워.
엄마가'
나는 목 놓아 울었다. 어머니를 낫게 해 드리고 싶었다. 녀석은 그런 내 곁에 쭉 함께 있어 주었다.
"미안해, 미안해... 아무 힘도 되어주지 못 해서 정말로 미안해..."
녀석은 그렇게 말하며 끊임없이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슬픔에 빠진 나는 어느 사이엔가 의식을 잃었다.
얼마만큼 잠이 들었던 것일까... 눈을 떠 보니 녀석은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계속 그렇게 나를 보고 있었던 것 처럼.
"헤어질 때가 온 것 같아."
"응?"
"오늘, 신세대 점보 복권 당첨 발표날이었어. 그리고 축하해. 너, 100억엔 당첨되었어. 이제 나를 은행에 갖고 가서 바꾸면 돼.
아, 그리고 미안해... 당첨이 조금만 더 빨랐어도 어머니 병 나으셨을지도 모르는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즐거웠어. 넌 내 소중한 친구야. 앞으로도 잊지 않을게."
'친구' 라...
나는 지금까지 언제나 '돈'만을 갈구하며 살아왔다.
'돈'보다 가치 있는 것을 알지 못 했기에.
결국 나는 은행에 가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금, 내게 남은 '내 편'은 한 명도 없었기에.
하지만 녀석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해졌다. 사악한 생각을 하는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있을 때, '즐거웠다'
돈이 전부가 아닌 것이다.
평범하게 일을 하고,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돈을 모아 행복 해 져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처음 생긴 '친구'와 함께.
'신세대 점보 복권. 당첨금이 이번에도 이월되었습니다. 이번에 1등이 되시면 상금은 8조엔!! 지금 사시면 감정도 덤으로 드립니다."
저 복권, 지금까지 당첨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아니, 어쩌면 나처럼 붙어놓고도 안 나타나고 있는 것 뿐일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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