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물 +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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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03 별책 카도카와 180918 히라테 유리나 스페셜 인터뷰 (1/2)
- 2018.10.02 히라가나 케야키 스토리 - 15화
- 2018.09.26 히라가나 케야키 스토리 - 14화
- 2018.09.11 히라가나 케야키 스토리 -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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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9.03 히라가나 케야키 스토리 - 12화 (시즌 2 1화)
- 2018.09.03 BRODY 2018 10 야마시타 미즈키 2만자 인터뷰 (3/3)
- 2018.08.28 BRODY 2018 10 야마시타 미즈키 2만자 인터뷰 (2/3)
- 2018.08.27 BRODY 2018 10 야마시타 미즈키 2만자 인터뷰 (1/3)
- 2018.08.23 blt graph. vol.34 스즈모토 미유 10000자 인터뷰 (2/2)
- 2018.08.20 blt graph. vol.34 스즈모토 미유 10000자 인터뷰 (1/2)
- 2018.07.14 별책 카도카와 케야키자카46 총력특집판 - 와타나베 리사 14,000자 인터뷰
- 2018.07.11 히라가나 케야키 스토리 - 11화
- 2018.07.10 히라가나 케야키 스토리 - 10화
- 2018.07.07 히라가나 케야키 스토리 - 9화
- 2018.07.05 히라가나 케야키 스토리 - 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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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30 OVERTURE 014 - 이쿠타 에리카 인터뷰 'GENIUS' 1/2
이마이즈미 유이
첫 사진집 촬영은 첫 날부터 편안하게 임할 수 있었다.
8월 7일, 케야키자카46에서 졸업한다는 것을 발표하여 팬들을 놀라게 한 이마이즈미 유이. 그녀눈 8월 15일에 발매 된 케야키자카의 7번째 싱글 ‘앰비벌렌트’ 활동을 마지막으로 그룹을 떠나게 되었다. 아쉽게도 전체곡에는 참가하지 않았지만, 통상반에 실린 솔로곡 ‘해가 뜰 때 까지’를 통해 싱글에는 참가하게 되었다. 또한, 10월 3일에는 케야키자카의 멤버로서는 마지막 활동이 될 첫 솔로 사진집 ‘아무도 모르는 나’가 발매 되었다.
본지에서는 아마도 마지막이 될 이번 인터뷰를 통하여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그녀의 근간이 되는 모습들, 그룹의 일원으로서의 활동 등 지금까지의 궤적, 그리고 졸업을 결의하기까지의 과정과 앞으로의 활동 방향에 대하여 그녀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 보고자 하였다.
우선 몇 주 뒤(인터뷰 시점)면 발매되는 첫 솔로 사진집 이야기부터. 솔로 사진집을 내는 것은 자신에게 있어 큰 목표 중 하나였다는 그녀에게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처음으로 사진집 얘기를 들었을 땐 엄청 놀랐지요. 사실 제 올 해 목표 중에 사진집을 내는 것이 있었기에, 그 목표를 달성했다는 생각에 기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괜찮으려나? 나로 괜찮으려나?’ 라는 생각이 들어 불안해졌어요.
처음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이미 다른 멤버들이 하나 둘 사진집을 내기 시작 한 때라, 사진집이 결정 된 멤버들이 촬영을 앞두고 몸을 만든다던지, 촬영기간 동안 어떻게 하는 지 등을 가까이서 지켜 봐 왔기에 사진집 촬영이 예상보다 훨씬 힘든 일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거든요. 그렇기에 솔직히 ‘내가 견뎌 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불안했어요.’
사진집 촬영이 이루어 진 곳은 이탈리아 나폴리 교외였다. 그리고 이마이즈미는 촬영을 앞두고 약 두 달에 걸쳐 준비를 하였다고 한다.
‘촬영 두 달 전부터 몸을 만들어야 했지요. 솔직히 제가 그 시기를 견뎌 낼 수 있을 지 불안했어요.
촬영에 앞서 멤버들의 사진집은 물론이고 다른 분들의 사진집을 많이 보았습니다. 정말이지 수십권씩 사서는 ‘이런 화장이나 의상 괜찮네’, ‘이런 포즈 괜찮네’라며 공부 했어요.
그렇게 다양한 사진집을 보다 생각 한 건데, 지금까지는 거의 웃으며 찍은 사진이 많았기에 이번에는 좀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자, 20살이 된 이후에 나오는 사진집이니 지금까지는 거의 보여드린 적 없는 성숙한 표정을 보여드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촬영 장소가 이탈리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지금까지 해외에 나가 본 적이 없기에 이탈리아가 어떤 이미지인지 상상도 되지 않았어요. 나폴리에 갑니다. 라는 말을 들어도 어떤 식으로 가는 지 모르니까 아무렇지 않게 그 자리에서 ‘아, 알겠습니다.’라고 대답 해 버렸습니다. (웃음) 나중에 듣자니 편집부 분께서 이탈리아의 밝은 이미지가 저와 딱 맞는다 생각해서 골라 주셨다는 것 같더라고요. 애초에 나폴리가 이탈리아 어느 부분인지도 모르는 상태였기에, 일부러 자세한 정보는 찾아보지 않고 일단 가서 즐겨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가 보니 편집부 분 말씀대로 저와 잘 맞는 곳이라 금세 익숙해 지더라고요. (웃음)’
촬영 자체도 릴렉스한 분위기에서 진행 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그런 촬영으로 타지에서 묵게 될 때는 거의 호텔 방을 혼자 쓰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하지만 이번에는 집… 이라 해야 하나요? 빌라를 빌려 묵었어요. 한 집에서 카메라맨분, 스태프분, 저까지 모두들 함께 묵었지요. 밥을 먹을 때도 다 함께 장을 보러 나가서, 함께 요리를 하고 함께 먹고, 잘 때도 ‘그럼 여러분 안녕~’이라고 방으로 돌아 와서 잤어요. 이런 경험은 처음 해 보는 것인데, 합숙… 아니 마치 가족 같아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저 뿐 아니라 카메라맨분도 밥을 먹으며 ‘이런 경험 처음이야! 절대 못 잊을거야’라고 해 주셨는데, 그 말씀이 정말 기뻤어요. 촬영 자체도 첫 날부터 마지막 날 까지 시종 편안하게 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어쩌면 이번 촬영 방식이 지금 제게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촬영 자체도 거의 이 빌라를 중심으로 이뤄졌어요. 실제로 실린 사진 중 80%가까이가 집이나 정원에서 찍은 사진이거든요. 가끔씩 ‘오늘 점심은 밖에서 먹을까?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같은 식으로 외출을 했지요. 바다에도 갔었는데, 그 때도 사실은 아무 계획 없이 외출 했다 돌아가는 길에 ‘근처에 바다 있는데 바다나 가 볼까?’ 라는 느낌이었지요.
그런 환경 덕분에 저 역시 지금까지 보여드린 적 없는 표정을 보여드릴 수 있었어요. 진짜 데굴데굴 구를 정도로 폭소 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고요. 너무 웃어서 배가 아파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로 폭소하는 장면도 사진집에 실려 있습니다. 사람이 이렇게나 웃을 수 있구나 싶어서 저 스스로도 깜짝 놀랐어요. (웃음)’
작년 12월에는 여성 패션잡지 ‘ar’의 레귤러 모델로도 발탁, 다른 멤버들에 비해 그라비아 등 사진에 찍힐 기회는 많은 편이던 이마이즈미. 지난 3년을 거치며 피사체로서의 감각에 변화가 있었을까?
‘그렇게 크게 변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초창기에는 표정이 미소짓는 표정 딱 한 가지뿐이었던 것 같아요. ‘케야카케’만 해도 초창기에는 항상 웃고만 있었잖아요. 쿨한 표정 같은 걸 잘 못 지었지요.
그러다가 한 번, 카메라맨분께서 ‘다른 표정도 지을 수 있어?’라고 물어 보셨거든요. 그 질문을 듣고 ‘아, 나 항상 웃기만 하는구나. 항상 같은 표정이구나’라고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고 보니 어떤 잡지를 봐도 항상 웃는 모습만 실려있어’라는 것도 깨닫게 되어서 다양한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하게 되었어요.’
그런 그녀의 풍부한 표정이 가득한 이번 솔로 사진집. 그렇다면 본인이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사진은 어떤 것인지 궁금해 져 질문을 해 보았다. 그러자 굉장히 적극적인 태도로 대답하였다.
‘음… 마음에 드는 사진이 너무 많아요! 뭘 고르지… 아, 이 사진은 꼭 봐 주셨으면 하는데요, 검은 수영복을 입고 풀사이드에서 포즈를 잡은 사진이요! 이 사진은 제가 봐도 지금껏 본 적 없는 표정인데다가 몸 라인도 되게 예쁘게 찍혀서 감동했거든요. 이 사진은 부디 많은 분들께서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정말로! 그림자가 절묘하게 져서 복근이 예쁘게 찍혀 있기도 하기에 개인적으로 이 사진이 제일 마음에 들어요!
사실 수영복만 입고 사진 찍는 거, 전혀 싫지 않아요. 어쩌면 피팅 단계에서 익숙해 진 것일지도 모르지만요. 열심히 노력해서 몸을 만들었으니 그 몸을 빨리 보여드리고 싶다고나 할까요. 그런 마음이 더 큰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수영복 촬영 때, 스태프분들께서 ‘좀 더 풋풋한 모습을 보여 줘!’라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아마 그 때는 당당하게 ‘나를 봐 줘!’라는 분위기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연기라도 좋으니 좀 수줍어 해 줘’라는 말까지 나와서 다들 엄청 폭소했죠. (웃음)
촬영을 하는 불과 며칠 사이에 지금 제 모습을 전부 끌어 냈다고 생각하고, 촬영이 끝난 뒤에는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불살라 버린 것 같았어요. 그래서인지 촬영 마지막 날에 엄청 울었습니다. 특히 ‘이번 컷이 마지막이야’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엉엉 울었지요. 그리고 화장을 고치는데, 화장 고쳐주시는 코디분도 울고 계시더라고요. (웃음) 그 모습을 보고, 저 뿐 아니라 모든 분들이 촬영을 즐겨 주신 것 같아서 기뻤습니다.
사실 저 같은 경우에는 첫 날부터 마지막날을 떠올리며 혼자 울곤 했거든요. (웃음) 첫 날 밤, 촬영 마지막날을 맞이하는 꿈을 꿨는데 그 꿈 때문에 자면서 펑펑 울었지요. 눈물 콧물 할 것 없이 엄청 흘리면서요. 그 결과, 다음날 얼굴이 퉁퉁 부어서 그 모습을 보신 스태프분께서 걱정 하시더라고요.’
‘무조건 아이돌이 될 거야!’라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왔다.
그럼 이제부터는 이마이즈미의 내면을 좀 더 자세히 파 들어 가 보고자 한다. 케야키자카46에 들어 와 3년간 활동하면서 자신의 성격이나 사고방식이 변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원래부터 그리 어두운 성격은 아니지만, 낯은 많이 가리는 편이었어요. 초기에는 현장에서 만나는 스태프분들에게도 말을 거의 못 걸 정도였는데, 지금은 낯가림이 완전히 사라져서 현장에 가면 스태프분들과 친해지려고 적극적으로 말을 거는 성격이 되었습니다.
어째서 이렇게 변했는지 저 자신도 잘 모르겠는데요, 다시 만날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던 사람과 다시 만났을 때, 엄청 기쁘잖아요. 그렇기에 일단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친해져서, 나중에 ‘와! 다시 만났네요’ 라고 기뻐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함께 일 해 주신 분께서 ‘다음에 또 같이 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 해 주시면 기쁘잖아요.
사실 학교에 다닐 때는 먼저 말을 건다던가 하는 게 힘든 타입이었어요. 언제까지고 말 걸어주기만 기다린다 해야 하나요? 지금이랑 정 반대의 성격이었죠. 형제라곤 오빠들 뿐이었기에 같은 또래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감이 안 왔거든요. 그러다보니 학교 다니는 게 괴로워서 (웃음) 혼자 있을 때가 많았어요. 예를 들어 수업 때 두 명이 한 조를 이뤄야 할 때에도 반 인원이 홀수면 한 사람이 남잖아요. 저는 항상 그렇게 마지막까지 혼자 남게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웃음)
하지만 이제 와서 성격을 바꾸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기에 그냥 전부 인정하고 받아 들였지요. 별 수 없다고 말이죠. 제 어릴 때 성격을 아는 엄마도 케야키자카에 들어 와 변한 제 모습을 보시고는 ‘사람이 이렇게도 변할 수 있구나’라고 놀라곤 하세요.
케야키자카라는 그룹도 신기한 게, 비슷한 성격인 아이들이 몰려 있잖아요. 그래서 초창기에는 솔직히 여러 모로 힘들었어요. (웃음) 일단 저 같은 경우는 몇날 며칠 함께 있으면 자연스레 마음을 여는 타입이다 보니, 초창기에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있었기에 멤버들과 자연스럽게 친해 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드라마인 ‘누가 도쿠야마 다이고로를 죽였는가?’ 촬영 기간을 거친 것 역시 컸다고 생각하는데요, 같은 스튜디오에서 몇 시간씩 함께 있다 보니 상대방의 장단점을 전부 이해 하게 되었거든요. 그리고 멤버들도 그 때쯤부터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 하게 되었지요.’
그녀가 이야기 해 준 어릴적 에피소드 중에 특징적인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었다.
‘사실 어릴 적에는 카메라에 찍히는 걸 싫어했어요. 아빠가 카메라를 들이대시면 저 멀리 도망가서 ‘찍지 마!’라고 화 내곤 했거든요. (웃음) 그래서 시치고산(※어린아이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며 아이가 3, 5, 7살이 되었을 때 신사에 데리고 가서 기도를 드리는 행사) 때 사진도 엄청 뾰루퉁한 표정으로 찍혀 있지요. 사진사 분께서도 ‘혹시 따님 벌써 반항기인가요? 카메라 엄청 싫어하는데, 이 사진 한 번 봐 보세요.’라고 하셨다고 그러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어릴 적 사진이 거의 없어요.
마지막으로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은 온천 여관에 가서 제가 노래하고 춤 추는 모습을 찍은 사진인데요, 그 이후로는 찍은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아, 하지만 그 때부터 노래하는 건 정말로 좋아했지요.’
어릴 때부터 아이돌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던 이마이즈미. 그 동경의 근원은 그녀가 유치원 때 불렀던 노래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을 때부터 노래 하는 건 좋아했어요. 당시엔 모닝구무스메。선배님이나 미니모니。 선배님 노래를 자주 불렀어요. 어릴 때부터 ‘무조건 모무스나 미니모니에 들어 갈 거야’라고 이야기 하고 다녔죠.
사실 3~4살쯤 되었을 때부터 ‘커서 아이돌이 될 거야. 무조건 될 거야!’라고 이야기 하던 아이였기에, 지금까지 그대로 온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끊임 없이 ‘아이돌이 될 거야’, 아이돌이 될 거야’ 라고 이야기 해 왔고, 졸업문집에도 ‘장래에는 아이돌이 될 것’이라고 썼을 정도지요. 하지만 단 한 번, 다른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어요. 일단 아이돌은 하되, 아이돌로 활동을 안 할 때는 부업으로 꽃집을 하고 싶다고 생각 했었지요. (웃음) 한 때 그런 생각도 했었다는 얘기예요.
아이돌이 되기 위해 오디션도 여러 번 봤지만, 전부 떨어졌어요. (웃음) 그럼에도 엄청 긍정적으로 ‘아직 어리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했었기에 16~7살 까지는 어떻게 해서든 아이돌이 되리라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요. 그리고 나이를 생각하면 이번이 마지막이겠구나… 라 마음먹고 응모한 것이 케야키자카의 오디션이었지요. 그렇기에 합격했을 때, 엄마고 오빠고 다들 울면서 기뻐 해 줬어요.’
어릴 때부터 오랜 시간동안 동경 해 온 아이돌. 그렇다면 실제로 아이돌이 되고 난 뒤,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없었을까?
‘사실 아이돌이 되기 전부터 아이돌이라는 직업의 숨겨진 뒷면을 찾아보는 게 취미였거든요. (웃음) AKB선배님들의 다큐멘터리 영화도 보러 갔었을 정도예요. 그렇기에 어느 정도는 숨겨진 면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기에 현실과 이상 사이에 그렇게까지 엄청나게 큰 간극은 없었어요. 뭐랄까, ‘잘 시간이 없어’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네요.’
아이돌이 되기는 했지만 17년 4월부터 8월까지, 그리고 같은 해 12월부터 이듬해에 걸쳐 그룹 활동에 참가하지 못하는 등, 이마이즈미의 3년간의 아이돌 생활은 빈말로도 순탄하다고는 하기 힘든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3년은 정말로 눈 깜빡할 사이였어요. 말씀하신대로 도중에 쉬기도 했지만, 그 시기동안 저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었고 그 경험이 지금 제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거든요.
물론 때로는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었지요. 작년 봄에 제가 휴식기를 가졌을 때가 마침 앨범을 제작하던 시기였기에, 몇 번인가 스태프분께 ‘어차피 앨범에 참가 못 할 것 같은데, 이 타이밍에 졸업을 하려 합니다’ 라고 상담을 했어요. 하지만 휴식에 들어가기 전에 팬 여러분께 ‘기다려 주신다면 감사하겠다’고 이야기를 했었기에… 제 자신이 한 말을 뒤집을 수는 없어서 몇 달이나 고민했었지요.’
하지만 그렇게 쉬는 동안에도 그녀는 독자적으로 보이스 트레이닝을 받으러 다니는 등, 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쉬는 동안에도 노래는 계속 해 나가려고 생각 했었기에, 보이스 트레이닝을 계속 했습니다.
보이스 트레이닝 시간 외에는 가급적 자연이 우거진 곳에 가 보거나, 아빠와 함께 당일치기로 시즈오카 여행을 다녀오거나 하며 주변 환경을 바꾸려고 했었어요. 보이스 트레이닝은 계속 하지만, 마음가짐을 리셋하면서 ‘아, 이제 괜찮겠다’ 싶은 타이밍에 스태프분께 말씀을 드렸죠.
처음으로 팬분들 앞에 선 것이 작년 마쿠하리였어요. 그 때 정말로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감동했습니다. 아마도 그 순간의 기억은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생각 해 보세요. 1만 몇 천명 앞에서 혼자 노래를 불러야 했잖아요! 긴장이 장난 아니었어요. (웃음) 사실 스테이지에 올라가기 직전까지 다른 사람들 손을 꼭 쥐고 ‘부탁이니까 괜찮을 거라 말 해 줘’라고 이야기 했을 정도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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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라이브는 즐겁게 하고, 전하고자 하는 것은 앙코르때 전한다
- 그럼 다시 아까 하던 얘기로 돌아 가 볼게. 개인적으로 케야키 공화국 세트리스트가 진짜 좋았거든.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흐름이 막힘 없이 스무스하게 진행되는 게 좋았어. 다른 아티스트들 공연을 보다보면 ‘아 지금 여기서 흐름이 딱 끊겼네’ 싶을 때가 있거든. 그런게 그런 게 전혀 없었어. 아, 그리고… 엔딩이랑 앙코르 얘기 여기서 해도 돼?
히 : 네.
- 보통 본 공연이 끝난 뒤에 앙코르를 할 때는 ‘그럼 마지막으로 화려하게 불 태워보자’라고 달리기 마련이잖아?
히 : 아, 그렇죠.
- 하지만 이번 공화국 앙코르는 그렇지 않았잖아. 앙코르 때도 뭔가 메시지를 전하려 했던 것 같은데?
히 : 오히려 ‘그 때’ 메시지를 전하려 했어요. 일단 본 공연은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즐기는 것을 메인으로 하자고 멤버들끼리도 정했었거든요.
- ‘두 사람의 계절’ 뒤에 ‘네가 없어’, ‘이제 숲으로 돌아갈까?’, ‘유리를 깨라!’로 이어지는 세트리스트였지. 그리고 뒤 무대 세트도 뭐라하지? 별처럼 반짝거리는 것으로 바뀌었고. 예를 들어 ‘네가 없어’ 같은 경우, 이번 라이브에 함께하지 못 한 멤버들에 대한 메시지 같았어. 그 곡 뿐 아니라 그 블록에 나온 곡들은 전부.
히 : 네.
- 하지만 마지막에 ‘유리를 깨라!’를 둠으로 해서 ‘언제까지 미련을 갖고 있을 수 만은 없어, 우리는 우리대로 걸어 나가야 해’라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한 것 아닌가 싶었어.
히 : 후후후후
- 아니 내 해석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도 안 알려주네 (웃음) 자, 그럼 ‘유리를 깨라’ 연출에 대해 말 해 보자. 보던 사람들 간담이 서늘했을 거야. 영상 속에서 유리나쨩이 쓰러진 순간, 아무도 없던 스테이지 위에 실제로 유리나쨩이 나타났잖아.
히 : 일단 멤버들하고 함께 빠진 뒤에, 안 들키도록 조심조심 기어서 스테이지로 돌아 와, 대기하고 있었어요. (웃음)
- 그리고 그 때, 영상 속의 유리나쨩이랑 무대 위의 유리나쨩의 움직임이 딱딱 맞더라고. 그건 어떻게 한 거야?
히 : ‘손은 여기’라는 식으로 정해져 있긴 했지만 그 이상은 별 거 없었어요. 영상 전환 스태프분이나 카메라맨분, 조명담당자분 등 관련 스태프 여러분이 잘 표현 해 주셨던 것 같아요.
- 아냐. 완벽했어. 그럼 그런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는거야?
히 : 음… 우선 그 때, MA1 (유리를 깨라!의 의상)로 갈아입어야 했는데요, 무대를 멈추고 옷 갈아입는 시간을 만드는 것 보다는 스토리성을 주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작년 투어 때 마지막에 ‘불협화음’을 선보였을 때 처럼 ‘가라스’로 들어가기에 앞서 뭔가 연출을 넣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죠.
- 그렇구나. 뭔가 어떤 이미지로 하고 싶었다던가 하는 건 없어?
히 : 이번 앙코르 공연에는 설정이 있었는데요, ‘세종’에서 ‘숲’ 까지는 주인공인 ‘나’라는 인물이 꿈 속에 있다는 설정이에요. 영상에서도 제가 혼자 춤을 추잖아요. 그 때도 사실 저는 꿈 속에서 춤을 추고 있는 거죠.
- 오오!!
히 : 영상 마지막 즈음에 철컥 하는 소리가 나고, 제가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잖아요. 거기가 바로 꿈에서 깨어 현실로 돌아오는 부분 인 것이지요. 그리고 제가 쓰러지고요. 아마 보시는 분들은 제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시고 ‘아 다음 곡은 불협이겠구나’라고 생각하셨을 것 같기도 한데…
-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렇게 생각은 했는데 솔직히 ‘그만 뒀으면 좋겠는데’라고도 생각했어. 이런 흐름에서 불협이 나오면 유리나쨩이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생각했거든. 뭐, 결국 ‘가라스’에서도 죽을 뻔 했던 것 같지만.
히 : 뻔 한게 아니라 죽었죠. 원래 그런 세계관이거든요.
- 개인적으로는 그 장면을 보고, ‘유리나쨩은 화면 속에는 있지만 지금 눈 앞에는 없다. 당신들이 믿고 있는 것은 대체 어떤 것이냐?’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했어.
히 : 아…
- 사실 지금 내 눈 앞에는 없어도 이 세상 어딘가에는 존재하는 것들도 있고, 어쩌면 화면 안의 세상이 진실일 수도 있잖아. 그런 모순점을 이야기 하고 있는건가… 싶었지. 아, 그리고 공화국에서 보여 준 마지막 ‘가라스’는 지금까지 본 것 중 최고였어. 기백도 그렇고 표정도 그렇고 정말 엄청났거든. 하지만 유리나쨩은 언제나처럼 기억에 없겠지?
히 : 네. 기억이 안 나요. (웃음)
이야기는 다시 한 번 히라테의 활동 중지 기간으로 돌아간다. 히라테가 라이브 활동을 재개 한 것은 케야키 공화국의 약 1달 전, ‘THE MUSIC DAY 전해주고 싶은 노래’(7월 7일 방송)를 통해서였다. 그리고 다음 날엔 ‘JUMP MUSIC FESTA’에 참가, 요코하마 아리나 무대에 서서 기다리고 있던 팬들에게 ‘완전 부활’을 신고하기도 하였다. 그 때, 히라테상이 마음 속에 품고 있던 것은 어떤 감정일까. 모두가 알고 싶어 하는 그 점을 질문 해 보았다.
- THE MUSIC DAY에 나가게 되었을 땐 어떤 기분이었어?
히 : 사실 그 당시는 이미 ‘앰비벌렌트’의 제작도 시작 된 시기였고, 케야키로서 활동을 재개 한 시점이었기에 들어 온 스케줄대로 출연 했어요.
- 아, 자연스럽게 출연 한 거구나. 딱히 ‘이 무대에 나가야지’라고 마음 먹고 움직인 건 아니었네?
히 : 사실 ‘복귀한다’고 거창하게 뭔가 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딱히 그룹에서 나가서 활동 했던 것도 아니고.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나갈게요’라고 대답하고, 아무렇지 않게 나간 것 뿐이에요.
- 사실 유리나쨩이랑은 벌써 1년 넘게 라디오를 함께 하며 이래저래 이야기도 많이 하고 있는데, 유리나쨩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갖고 있는 듯 하면서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해. 실제로 ‘한자 한 글자로 자신을 표현한다면?’ 이라는 앙케트에도 ‘無’라고 썼었지?
히 : 네. 없을 무 자를 썼었죠.
- ‘히비키’를 보면서도 생각 한 건데, 유리나쨩은 자기 자신은 ‘무’인 상태로 두고 대신 ‘이럴 때 히비키라면 어떻게 생각할까’를 표현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어쩌면 그런 모습이 유리나쨩의 ‘자기 자신’이 아닐까 했지.
히 : 음… 하지만 ‘히비키’는 저 스스로도 그렇게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요.
- 계기는 그렇겠지. 하지만 예를 들어 케야키의 곡을 표현 할 때도 그렇잖아. 유리나쨩은 자신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그 곡의 주인공을 표현하려 한다고나 할까? 주인공이 되어 표현을 할 때는 히라테 유리나라는 존재는 ‘무’가 된다는 거지.
히 : 아, 사실 저도 그런 생각 한 적 있어요. 실제로.
- 솔직히 말해서 무언가를 표현 할 때, 자신을 좀 더 예쁘게 보이고 싶다던가 눈에 띄고 싶다던가 하는 욕구는 전혀 없지? 오히려 스스로는 눈에 안 띄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 아냐?
히 : 네.
- 라이브를 보는 입장에서 말하자면 다른 멤버들도 유리나쨩이 없는 만큼 자신들이 더 열심히 해야하겠다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렇게 해 왔다고 생각하거든? 그렇게 다른 멤버들 개개인의 표현력이 파워업 한 상황에서 유리나쨩이 돌아 오고, 곧바로 전국투어에 돌입한 이 흐름이 최고였다고도 생각하고. 실제로 돌아 와 보니 어땠어? 잠시 자리를 비우기 전의 케야키와 돌아 온 뒤의 케야키가 좀 달랐어?
히 : 음… 아직 잘 모르겠어요.
- 유리나쨩 자신도 ‘히비키’를 통해 케야키자카로서 활동 할 때와는 달라졌다고 생각하거든?
히 : 네. 그건 그렇다고 생각해요.
- 요 전에 ‘사카미치 그룹’의 합동 오디션이 있었지? 합격자들이 어느 그룹에 들어 갈 지는 아직 모르지만, 결국 새로운 멤버가 들어 오게 된 거잖아? 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히 : 솔직히 한자 멤버들은 지금 이대로 쭉 갔으면 좋겠는데요, 동시에 새로운 멤버도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해요.
- 그럼 새로운 멤버들이 그룹에서 어떤 역할을 하길 기대하고 있어?
히 : 제가 함부로 이런 말을 해도 될 지 모르겠는데요, 그룹에 새로운 자극을 가져다 주면 좋겠어요.
- 하긴 지금은 전 멤버가 타이틀곡에 참가 할 수 있지. 하지만 멤버가 늘어나면 한자 케야키도 다른 그룹처럼 선발 시스템이 도입 될 가능성도 있잖아?
히 : 오디션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이거, 어떻게 보면 한 사람의 소녀의 목숨? 인생을 빼앗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오디션에 붙어서 이 세계에 발을 들여버리면 대중에게 얼굴도 팔리고, 어쩌면 두 번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 할 가능성도 있고요. 그래서 스태프분들께는 ‘꼼꼼히 봐 주세요’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말이야, 팬 입장에서는 한자 케야키에 새로운 멤버가 들어온다는 사실이 아직까지도 납득이 안 된단 말이지.
히 : 팬 여러분 입장은 역시 그런가요…
- 팬들이 다 나같다고는 못 하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래. 개인적으로는 노기자카도 좋아하기에 쭉 지켜보고 있는데, 거기도 새로운 멤버가 들어오고, 기존 멤버들이 졸업하고, 원래 그 아이들이 서 있던 포지션에 다른 멤버가 서는 사이클이 뭔가 자연스럽게 느껴지거든? 하지만 한자 케야키는 그런 상상이 안 돼. 아니, 그 뿐 아니라 뭔가 좀 싫기도 할 정도. 이런 얘기, 새로 들어 올 멤버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말이야.
히 : 멤버들 중에서도 아직 마음 정리가 다 안 된 아이들도 있어요.
- 새로운 멤버들도 들어오고, 활동을 쉬는 멤버도 있고, 이마이즈미상은 졸업을 발표하기도 하고. 그렇게 보면 한자 케야키라는 그룹에 있어서는 변화의 시기라고 할 수도 있겠네.
히 : 나중에 되돌아 봤을 때, ‘앰비벌렌트’라는 싱글이 그룹의 터닝포인트가 되어 있을 수도 있겠네요.
- 그럴지도. 뮤비 처음에 멤버 전원의 이름이 올라 오잖아. 참가하지 않은 멤버들도 포함해서 21명 전부. 그건 어쩌면…
히 : 어떤 의미가 있는 지는 모르겠는데요.
- 팬들 입장에서는 ‘21’이라는 숫자가 변하는 것을 반기지 않는 마음이 있단 말이지. 그렇다고 지금 있는 이 21명이 언제까지고 계속되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한창때 소녀들인데다가 각자 생각하는 것도 있을테고. 여러 모로 영향을 받는 것도 있을 테니 결국은 자신들이 가고 싶은 길을 가 주었으면 좋겠다고는 생각해.
히 : 그렇죠. 어쩌면 멤버들도 ‘이번이 지금 멤버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활동일 지도 몰라’라는 생각은 내심 하고 있기에 지금 이렇게 견뎌 낼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죠.
- 그렇기에 팬들은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거지. 개인적인 망상이지만, 언제가 될 지는 몰라도 케야키자카가 언젠간 ‘해산’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어. 어쩌면 그런 마무리가 케야키자카랑 가장 어울릴 것 같기도 하고.
히 : 그럴 수도 있겠네요.
- 물론 해산하라고 하는 건 절대 아니고. 하지만 나도 모르게 그런 망상을 하곤 해. (쓴 웃음) 아키모토상이 만든 그룹, 예를 들어 48그룹은 아직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잖아. 노기자카도 새로운 흐름으로 바뀌어 가고 있고, 그렇기에 개인적으로는 케야키자카가 지금까진 없던 방식으로 종착점을 가져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히 : 아니 왜 갑자기 그렇게 급히 마무리 짓는 건가요. (웃음)
- 어디서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할 지 고민하다 결국 불시착 해 버렸네. (웃음) 그나저나 케야키자카는 앞으로 어떻게 변화 해 갈까? 유리나쨩은 어떻게 변했으면 좋겠다 싶은 거 없어?
히 : 아직 그런 곳 까지는 생각하지 못 하겠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뻔히 예상이 되면 재미 없잖아요?
- 그건 그래!
히 : 어떻게 될 지 모르고, 예측이 안 되는 게 재미 있는 법이죠!
- 유리나쨩 개인에 대해 얘기를 해 보자면, 지금 17살이지?
히 : 음… 나이보다는 마음가짐이 중요 한 것 같긴 하지만요.
- 케야키 같은 경우에는 특히 젊은 층의 마음을 대변한다는 특징이 있잖아. 그런 기분을 잃지 않으려면 분명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같네.
히 : 나이가, 외모가 어른이어도 마음이 젊으면 그런 발상은 가능할 거라 생각해요. 다카히로상만해도 어린아이 같은 부분이 많거든요. 신구상도 그렇고.
- 어른들이라면 하기 힘든 발상을 할 수 있는 분들이지.
히 : 네. 사실 케야키자카는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성립되는 그룹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 역시 그 두 분께 배운 거고요. 두 분과 만나서 정말 다행이고, 그 두 분이 안 계셨다면 지금 같은 표현은 못 했을거예요.
케야키에서 특유의 술렁임이 최고야!
히라테에게 있어 'GIRLS LOCKS!'는 단순히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소뿐만이 아니다. 청취자들이 보낸 메일을 읽고, 라이브로 통화를 하는 등 자신과 같은 세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한 것이다. 해당 방송 전체의 메인 진행자인 토오야마교장은 그녀가 'GIRLS LOCKS!'를 소중히 여기는 모습을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지켜 봐 온 사람이다. 이번 인터뷰의 마지막 파트에서는 그런 두 사람의 ‘사적’이고 ‘개인적’인 대화를 실어보도록 한다.
- 유리나쨩이랑 같이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기억에 남는 말들이 있었어. 녹음 때도 그렇고 잡담 때도 그렇고. 유리나쨩 본인도 같은 세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들이 많을거고.
히 : 네. 많아요.
-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그런 것 중에 좋은 얘기들이 많았거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이번 기회를 빌어서 해 보는 건 어때?
히 : 음…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지금은 17살이지만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더 이상 17살의 자신으로는 되돌아 올 수 없잖아요. 그렇기에 한 순간 한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해요.
- 그래, 그래! 유리나쨩은 바로 그런 생각들을 곡을 통해, 라이브를 통해, 그리고 이번에는 영화를 통해 끊임 없이 표현 해 왔잖아.
히 : 그런가요?
- 그렇다고 생각해. 그리고 그렇게 표현 해 오면서도 ‘주어’가 자기 자신이 아니라는 게 더더욱 대단한 부분이고.
히 : 주어가 제가 아니라고요?
- ‘내가’ 이렇게 하고 싶어서 이렇게 했다. 라는 게 아니라는 거지. 어디까지나 그 표현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을 정해놓고, 그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 표현 한다고나 할까?
히 : 하긴, 분명히 대상이 있긴 해요.
- ‘내가 이득을 보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거야. 아이돌, 아니 연예계라는 곳은 ‘내가 이득을 보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라 생각하거든. 기본적으로는 ‘내가’ 남들보다 돋보이기 위해 ‘나는 이렇게 예뻐요. 나를 봐 줘요’, ‘나는 이렇게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나를 봐 줘요’라고 주장하는 곳. 하지만 유리나쨩은 그렇지 않아. 희유(稀有, 희귀하다, 드물다)한 존재라고 생각해. 아, 희유가 무슨 뜻인지는 사전을 찾아보도록!
히 : 보기 드물다는 뜻인가요?
- 정답! 보통은 결과적으로 모든 화살표가 자신에게 향하도록 하거든? 하지만 유리나쨩의 화살표는 처음부터 끝까지 외부를 향해 있어. 전하고 싶은 대상을 갖고 있기에 그토록 다른 이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거라 생각해.
히 : 그런가요?
- 그렇다고! 좀 인정 할 건 인정 해! (웃음)
히 : 에~! (웃음)
- 자기 자신에 대해 전혀 모르지?
히 : 네. 원래 그런 성격인 것 같다고 신구 감독님이 그러셨어요.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 모르는 성격’이라고.
- 그런 성격이면 주변 사람들이 여러 모로 힘들거야. (웃음)
히 : 네. 주변 사람들이 힘들 거예요. (웃음)
- 그러니까 과자 같은 거라도 사 들고 가. 특히 여러 번 함께 일 하는 사람한테는.
히 : 항상 신세지는 분들께는 뭔가 해 드리는걸요.
- 정말? 뭘 하는데?
히 : 선물을 사 간다던가.
- 어? 나 아무 것도 못 받았는데?
히 : 예전에 뭔가 사 갔었는데요.
- ‘뭔가’라니. 자신도 기억 못 하는거야?
히 : 아 맞다. 니이가타에서 당고 사 갔잖아요. ‘히비키’ 촬영으로 니이가타 갔다 와서. ‘선물 같은 거 필요없어’ 라는 분위기였지만 결국 ‘사 와’라고 하셨잖아요. (웃음)
- 그리고 수달 인형도 사 왔었어.
히 : 그것도 기억 해요. 원래 저희 사무소에 있던 거 들고 왔지요.
- 그럼 그건 0엔짜리잖아! 아니 오히려 내가 더 많이 준 것 같은데?! 복숭아 만주라던가, 스타벅스 프리페이드 카드라던가. 참고로 그 카드 얼마 충전 되어 있었는 지 알아?
히 : 4600엔이요.
- 그래, 46에 딱 맞춰서 줬다고! 가게 점원이 엄청 묻더라. ‘왜 4600엔’이냐고. ‘선물 드릴 상대방 생일이 4월 6일인가요? 의미가 담긴 선물이라니 멋지네요! 저도 나중에 따라 해 볼게요’라고 해서 뭐라 대답해야 할 지 모르겠더라고.
히 : 근데 금방 전부 다 써 버렸어요.
- 아니 뭐 사실 우리도 받는 게 많으니까 별 상관은 없어. ‘앰비벌렌트’라던가 ‘스튜던트 댄스’, ‘I’m out’ 이라던가. 멋대로 많이 받고 있잖아.
히 : 요즘에는 저희 신곡이 SCHOOL OF LOCK를 통해 해금되는 경우가 많죠.
- 사실 그거 은근 긴장한다고. 다들 엄청 주목하거든. 주목하는 시선이 따갑게 느껴져.
히 : 그게 바로 저희가 드리는 ‘선물’ 이죠.
- 또 한 방 먹었네! 언제나 부처님 손바닥 위에서 도망치는 것 같단말야.
히 : 곡 제목 잘못 말 하신 적 있던가요?
- 없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안 틀려.
히 : 그럼 싫어하는 건 틀리시나요?
- 싫어한다고 하면 좀 그렇고, 감정이 실리지 않으면 그럴 때도 있어. 틀릴 때는 대부분 감정이 확 들어 가 있지 않을 때거든.
히 : 결국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네요. 숨기려 해도 숨기지 못 하는.
- 뭐,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긴 해. ‘이 사람, 감정을 실어서 이야기 하는구나’ 싶을 때는 사실 틀려도 그리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거든.
히 : 그건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 하지만 신곡을 처음으로 해금 할 때는 정말 엄청 긴장돼. 절대로 틀려선 안 되고, 곡 틀기 전에 너무 말을 길게 하는 것도 뭔가 좀 없어 보이잖아. 아, 그러고 보니 공화국 마지막날에 더블앵콜로 ‘앰비벌렌트’를 처음으로 선보였잖아. 그 때 정말로 소름 돋았어. 보통은 신곡을 선보이기 전에 전광판 같은 데에 ‘8월 15일! 7번째 싱글 발매 결정! 신곡 타이틀은 ‘앰비벌렌트’!’라는 식으로 정보를 보여 준 뒤에 퍼포먼스를 할 텐데, 그 땐 진짜 아무 말도 없이 신곡이 시작됐잖아. 그거 최고였어!
히 : 최고였나요?
- 응. 최고였어. 퍼포먼스가 끝난 뒤에도 보통은 ‘이 곡이 곧 나오니,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홍보하기 마련인데 그런 말 한 마디도 없이 캡틴이 전체 인사를 하고 그대로 공연이 끝났잖아. 그거 진짜 깔끔하고 각오가 돋보였어. 사실 일반적으로는 그럴 때 뭔가 한 마디 하고 싶어지거든. 아무 말 없이 그냥 끝내면 안 될 것 같고 말이야. 그런 부분까지 전부 생각하고 한 거야?
히 : 네. 사실 처음에는 ‘다음 곡은 신곡입니다. 들어주세요’라고 하고 퍼포먼스로 들어가려 했어요. 하지만 왠지 좀 멋이 없더라고요. 결국 저희들도 아무 말 하지 않고, 영상 공지도 나중에 트는 것으로 정했죠.
- 그렇지. 공연이 전부 끝난 뒤에 전광판에 공지가 나왔어. 현장의 반응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쪽이 정답이었던 것 같아. 더블 앙코르 때, 멤버들이 듣도보도 못 한 의상을 입고 나와서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고 춤을 추기 시작했잖아. 그 때 객석이 엄청 술렁였는데, 그게 최고였지.
히 : 아, 객석쪽이 술렁였나봐요?
- 엄청 술렁였어. 사실 사전에 정보를 들어 알고 있었다면 인트로가 울리는 순간, ‘아, 이게 신곡이구나!’라고 생각했겠지만, 그 때는 무엇보다도 ‘이거 뭐지? 못 들어 본 음악인데?’ 라는 반응이 먼저 오고, 그 다음에 ‘어? 이거 신곡이잖아!’라고 이해 하게 되는 거잖아. 다른 아티스트의 공연에서는 절대 맛 볼 수 없는 감각이었지. 그리고 케야키 팬들도 대단한 게, 순식간에 상황을 이해 하더라고. 물론 거기에는 곡 자체가 가진 힘도 있겠지만, 금세 ‘오오오오오!’라고 따라 부르더라.
히 : 오오오오오! (웃음)
- 방금 전에 처음 들은 곡을 말이지. 대단하지 않아? 케야키의 라이브는 ‘보통은 이렇게 하지’라는 공식을 전혀 따르지 않아서 재미있어.
히 : 사실 라이브가 끝난 뒤에 전원이 일렬로 늘어서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케야키자카46이었습니다’라고 인사하는 게 자리 잡지는 않았죠. 요즘은 아예 캡틴이 ‘케야키자카46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면 다들 뿔뿔이 흩어져서 들어가거든요. 저희들끼리는 ‘얀챠바케 (제멋대로 흩어지는 것)’라고 부르는데요.
- 재미있는 이름이네. 누가 붙였어?
히 : 아마도 연출가분께서 붙이셨던 것 같아요. 요즘은 그냥 그게 당연한 게 되었지만.
- 아니 지금 그대로 문제 없다고 생각해. 앞으로도 변함 없이 케야키자카46 독자의 방식을 고수 해 주었으면 좋겠어. 아, 슬슬 시간이 다 됐다고요? 마무리 하라고요? 자… 그럼 안녕! (웃음)
히 : 안녕히 가세요. (웃음)
- 그럼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보자. 라이브, 또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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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테 유리나
도쿄 FM에서 평일 밤에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라디오 방송 '스쿨 오브 락'(정식 명칭은 '미래의 열쇠를 쥐고 있는 학교 SCHOOL OF LOCK!') 은 10대 청취자들에게 절대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프로그램이다.
히라테 유리나는 그 중에서도 매달 셋째 주에 방송되는 'GIRLS LOCKS!' 코너를 2017년 4월부터 담당,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 놓으며 자신과 동세대의 청취자들에게 다양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리고 이 방송에서만 볼 수 있는 히라테의 꾸밈 없는 모습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 봐 온 것이 이 방송의 메인 진행자인 토오야마교장 (본명 토오야마 다이스케씨)이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케야키 오타쿠'이며, 히라테에 대한 열광을 숨기지 않는다.
그런 토오야마씨가 이번엔 인터뷰어로서 히라테 유리나에게 인터뷰를 감행하였다. 그녀의 첫 주연 영화인 '히비키 ~HIBIKI~'를 시작으로 케야키자카46의 7번째 싱글인 '앰비벌렌트'에 대해, 2년째를 맞이한 야외 라이브 '케야키공화국', 그리고 신멤버가 가입 한 뒤의 예상까지…
그녀의 속마음을 잘 알고 있는 토오야마교장을 앞에 두고, 히라테 유리나가 솔직한 심경을 터놓았다.
- '히비키' 봤어. 2, 3일쯤 전에 시사회에 갔거든. 사실 영화를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히라테 (이하 '히') : 그럴 것 같아요.
- 그래? 오히려 '영화 많이 볼 것 같다'는 얘기는 자주 듣는데…
히 : 영화관이랑 그리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거든요. (웃음)
- 잠깐만, 어느 부분이 영화관이랑 안 어울린다는 거야?
히 : 얌전히 앉아 있는 거 힘들어 하실 것 같아요.
- 아 그런 얘기구나 (웃음) 보통 가만히 앉아 있으면 잠이 들어 버리긴 해. 그리고 영화 보다가 조금이라도 '이해가 안 되는데?' 싶은 부분이 있으면 거기부터 몰입이 전혀 안 되거든. 하지만 '히비키'는 정말 단 한 순간도 졸릴 틈 없이 끝까지 봤어. 정말 재미 있었거든.
히 : 정말 다행이네요.
- 스포가 될 지도 모르니 좀 애매하게 얘기를 하자면, 유리나쨩이 연기하는 히비키라는 인물에게 있어 정말 중요한 장면 있잖아? 집요하게 히비키를 추궁하는 어른들에 대고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데요?' 라고 되묻는 장면. 거기서 상대방이 뻔한 말을 하니까 거기다 대고 '다른 데에서 들어 본 적 있는 말은 필요 없어요. 당신 자신만의 말로 이야기 해 주세요' 비슷한 말을 하잖아. 개인적으로는 그 장면이 제일 좋았어.
히 : 역시 라디오 진행을 하시니까 '말'이 가진 힘을 중요시 하시는 거죠?
- 그럴 지도 모르겠네. 그리고 이렇게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나와 여러 면에서 얽매이게 되면 내심 '사실은 이렇게 생각하지만, 이런 건 이야기 못 하지'라고 포기 해 버리는 부분이 누구에게나 있단 말이지. 그런 '이야기 하느냐, 마느냐'의 절묘한 경계선을 확 찔러버리는 듯 한 영화였어. 히비키는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솔직히 이야기 하는 사람이잖아. 그런 모습이 정말 멋졌어.
히 : '히비키'는 어떤 장르라고 생각하세요?
- 장르?
히 : 최근 들어서 여러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해요. 어떤 것 같으세요? 일단 로맨스물은 절대 아닐거고.
- 응. 로맨스는 아니지. 전혀 (웃음) 음… 어떤 장르다 하고 나누기가 힘든데.
히 : (츠키카와 쇼) 감독님도 이 영화는 장르를 나누기 힘들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그런 부분도 전부 히비키답다'고 하셨지요. 어떤 장르의 틀에도 맞춰지지 않는 것이 말예요.
- 응. 그렇기에 내가 여기서 '휴먼 드라마'라느니 뭐라느니 흔해빠진 말로 장르를 나눠 봤자, 실제 히비키가 눈 앞에 있다면 '그딴 거 아니야'라고 부정 당하겠지. 아, 어쩌면 날아차기 한 방 맞을지도. (웃음)
히 : 제가 여러 사람들에게 묻고, 들은 대답들 중에 분명 그 '휴먼 드라마'라는 의견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 분도 '아, 아닌가? 그것 뿐만이 아니라 뭔가 더 있는 것 같은데'라고 덧붙이셨지만요.
- 정해진 한 개의 답 같은 건 없잖아. 영화를 본 사람들이 각자 생각 하면 될 일이고.
히 : 저도 '히비키'에 대해서 이건 이거다! 라고 정할 생각은 없어요. 제가 먼저 '이런 캐릭터' 라던가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라고 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 내가 시사회에서 봤던 버전은 엔드롤 부분이 제작도중이라 엔딩 테마곡이 안 나왔었거든. 하지만 본 상영때는 거기 노래 나오지? 어떤 곡을 쓸지는 결정 되었어?
히 : …제 솔로곡...
- 목소리 되게 작네! (웃음) 지금 뭐라 했어? 진짜로 안 들렸어서 묻는거야.
히 : 제 솔로곡이요.
- 아! 그렇구나! 어떤 곡이야?
히 : 가사도 엄청 좋고 저도 부르다가 금방 감정이 실려서 기분이 좋았어요. 하지만 딱히 그 노래가 안 들어갔어도 문제 없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 안 들어갔어도 문제 없었을 거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히 : 저는 영화를 다 보고나서 가장 먼저 '이 뒤로 히비키는 어떻게 될까?' 라는 게 신경 쓰였거든요. 그렇기에 그런 여운을 남긴 채로 끝나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 하긴, 여운에 잠겨 있을 때 노래가 나오면 그 곡의 가사에 신경이 팔리기 마련이니까. 어쩌면 가사에 따라서는 영화 전체의 인상도 바뀔 수도 있고.
히 : 딱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던가 하는 얘기는 아니에요. 다만 이 영화는 주제가가 있건 없건 어느 쪽으로도 성립 되었을 거라는 생각은 들어요.
- 그럼 이곡은 누가 부른 곡이야? 히라테 유리나? 아니면 아쿠이 히비키?
히 : 둘 다예요. 아키모토상도 이 곡은 저와 히비키를 떠올리며 썼다고 하시더라고요.
- 그거 재미있네. 히라테 유리나라는 사람에 대한 노래인 동시에 영화의 주인공인 아쿠이 히비키에 대한 노래이기도 한 거잖아.
히 : 아키모토상은 저와 히비키 두 사람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위치에 계시니까요. 그런 분이 가사를 쓰면 이런 가사가 나오는구나… 싶어서 좀 신기하기도 했어요. 저 자신을 대입시켜 보았을 때 '이해 된다' 싶은 부분도 많았고, '아 이건 히비키가 한 말이네' 싶은 부분도 많았고요.
- 엄청 기대되는걸. 빨리 듣고 싶어.
이름도 바꾸고 싶었어요. ‘아쿠이 히비키’가 되고 싶었죠
각종 미디어에서 보도가 된 바와 같이, 히라테는 올 봄부터 여름에 이르는 기간동안 케야키자카46로서의 활동을 중지했었다. 올 해 초에 부상으로 닥터 스톱이 걸렸던 것을 감안하면 결과적으로 연초부터 7월까지 그녀의 퍼포먼스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절대적인 센터의 부재는 그룹 입장에서는 큰 위기였다. 하지만 남은 멤버들은 라이브에서 히라테를 대신하여 센터에 서며 그녀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하여 지금까지 해 온 것 이상으로 전력을 다 해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그 결과 크게 성장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 본 것은 팬들 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히라테 자신도 그 과정을 지켜 본 사람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 이제 생각 해 보면 ‘아, 그 때 히비키 촬영을 했겠구나’라고 이해가 되지만, 한동안 케야키자카 활동을 중지 했던 적이 있잖아.
히 : 네. 올 해 4월 말부터 6월 초까지였죠.
- 그 사이에도 그룹은 활동을 계속 했잖아. 물론 당시에는 연기 하는 데 주목 했었겠지만, 때로는 그룹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어?
히 : 제 소속 그룹이니 당연히 생각은 했죠.
- 생각은 했지만 좀 더 ‘히비키’에 집중하고 싶었던 거구나. 그럼 촬영 기간동안 멤버들과 만나기도 했어?
히 : 미팅때 잠깐 만난 정도예요. 스케줄이 거의 영화 촬영으로 꽉 차 있었거든요.
- 멤버들과 만나지 못 할 때, ‘다른 멤버들 잘 하고 있으려나’ 같은 생각은 했어?
히 : 그런 생각을 할만한 여유가 없었어요. (쓴웃음)
- ‘히비키’ 촬영이 끝났을 때, ‘히라테 유리나’는 어떤 감정이었을까?
히 : ‘계속 히비키인 채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말로 이름도 바꾸고 싶었어요. 아쿠이 히비키가 되고 싶었지요.
- 정말이야?
히 : 아키모토상에게도 말 했는걸요. ‘개명 하고 싶다’고. 그랬더니 아키모토상은 ‘하고 싶으면 하라’고… (웃음)
- 하고 싶으면 하라니!! ‘안녕하세요 케야키자카46의 아쿠이 히비키입니다’라고 자기 소개 하면 엄청 당황스러울 것 같은데 말이야.
히 : 에? 정말요? 뭔가 되게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 적어도 원작자인 야나모토 (미츠하루) 선생님은 곤란해 하실 것 같아.
히 : 아 그건 그렇네요. 야나모토 선생님은 곤란해 하실 것 같아요. (웃음)
- 뭐, 그렇다는 건 그 정도로 진지하게 영화에 임했다는 얘기겠지.
히 : 네. 진지했어요. 지금도 약간 그 영향이 남아 있고요. 아니, 이 기분은 평생 안 없어질 것 같아요.
- 아, 아까 말했던 개명 얘기, 멤버들에게 하면 엄청 놀랄걸. 캡틴이 뭐라 할 것 같아?
히 : 의외로 ‘아, 그럼 오늘부터 히비키쨩이라 부를게’라 할 것 같은데요. (웃음)
- 아하하하!! (폭소) 하긴, 스가이라면 그럴 것 같다.
히 : 후유카도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히비키~’라고 불러 줄 것 같고요.
- 그러게. 뭔가 눈에 선하다. 그럼 반대로 의외의 반응을 보일 것 같은 사람은 누구야?
히 : 코이케는 ‘에?!’라고 깜짝 놀랄 것 같아요.
- 아니 그건 다들 그런 반응일 것 같은데!
히 : 그러게요. 다들 그러겠지요? (웃음)
- 그럼 ‘앰비벌렌트’는 언제쯤부터 제작을 시작했어?
히 : ‘히비키’ 촬영이 끝난 직후부터요.
- 마음 정리는 다 됐었어?
히 : 마음 정리라 할 것도 없었어요. 고민할 틈도 없이 바로 레슨장으로 향했으니까요. (웃음) 활동한 지 오래 되었기에 다시 댄스레슨부터 보이스 트레이닝까지 해야 했거든요.
- 그런 기초부터 다시 했구나.
히 : 제가 하고 싶다고 스태프 분들께 부탁을 드렸어요. 물론 영화 촬영이 끝난 직후에 쉬지도 않고 바로 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지만요. 기초 레슨이 끝난 뒤에 멤버들과 만나 함께 안무를 배웠는데, ‘앰비벌렌트’ 안무는 빠르기도 빠르고 어려운데다가 진짜 오랜만에 안무를 배우는 거라 힘들어서 울고 싶어질 정도였지요.
- 멤버들과 재회 한 기쁨을 만끽할 여유도 없었구나. (웃음) 새삼스럽긴 하지만 솔직하게 이야기 해 볼게. ‘앰비벌렌트’, 엄청 멋있지 않아?
히 : 멋있죠. 좋아하는 곡이에요. 뭐, 딱히 싫어하는 곡은 없지만 안비바는 특히 좋아요.
- 어떤 부분이 좋아? 구체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히 : A멜로디에 나오는 랩 비슷한 파트라던가. 최근 트렌드랑 잘 맞는다고도 생각하고, 여름 음악 페스티벌이나 라이브에서 부르면 분위기가 확 달아 오르는 곡이라 생각해요. 춤 출 때 다른 멤버들도 다들 되게 즐거워 보이고요. 단, 안무가 격렬하다 보니 체력 소모가 엄청나지만요.
- 좋아하는 부분이 나랑 같네. A멜로디의 노래 하는 방식이나 랩처럼 읊조리는 게 최신 트렌드랑 잘 맞아서 멋있어. 이 곡을 처음 딱 들었을 때, 현재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곡들의 좋은 부분을 쏙쏙 골라서 따 왔구나 하고 생각했지. 하지만 두 번째 들었을 때 부터는 이 곡, 케야키자카의 곡이구나… 라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고. (웃음) 딱 들어도 케야키자카의 곡, 그 중에서도 가장 멋진곡이랄까. 그렇게 수십번 반복해서 노래를 듣고 있으려니 MV가 올라오더라고. 그리고 그 뮤직비디오가 또 엄청나게 멋졌고!
히 : 그렇게 말씀 해 주시니 기쁘네요. 감사합니다.
- 사실 ‘안비바’ 뮤비에 대해서 묻고 싶은 게 엄청 많은데… 다른 데에서 많이 이야기 해서 식상하려나?
히 : 요즘은 어딜 가나 ‘히비키’ 얘기만 하지, ‘안비바’ 얘기는 거의 안 해요.
- 그래? 그럼 물어봐야겠다! (웃음) 뮤비 촬영 즐거웠어?
히 : 힘들었어요. (웃음) 지금까지 촬영 해 온 뮤비 중 가장 힘들었지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제가 나오거든요. 아무래도 뮤비 테마가 ‘제가 다른 멤버들을 해방한다’는 것이다 보니.
- 하긴, 생각 해 보면 멤버들이 축 늘어져서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데에서 시작하지. 말하자면 생명이 없는 것 처럼 늘어져 있고. 그리고 거기에 유리나쨩이 와서 각성시키고 말이야.
히 : 그렇죠. 그러다 보니 거의 모든 컷에 나와야 했기에 시종 현장에서 움직이고 있었어요.
- 1절 후렴구 직전에 나오는 B 멜로디 부분에 계단 장면이 있잖아. 다른 멤버들이 축 늘어져 있는 데에 유리나쨩이 나타나서 팔을 휘두르며 멤버들의 봉인 같은 걸 풀어내는 장면. 그 장면은 어떤 식으로 디렉팅이 된 거야?
히 : 사실 요즘 별다른 지시 없이 알아서 하라는 경우가 많거든요.
- 알아서 하라니 그게 뭔 얘기야. (웃음)
히 : 사실 제 파트는 댄스건 연기건 다른 멤버들이랑은 다르게 구성 되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이 타이밍에 펀치’ 라는 식으로 지시는 받지만, 기본적으로는 제 자유에 맡겨 주시죠.
- 그 때 그 때 떠오르는 움직임을 가져가면 된다는 얘긴가?
히 : 네. 인트로 부분에서 혼자 걸어가는 장면만 해도 정해진 안무가 있기는 해도, 감독님께선 ‘네 느낌 가는대로 해’라고…
- 그렇구나! 그럼 그 장면에서는 어떤 생각을 하며 카메라 앞까지 걸어 온 거야?
히 : 기억이 안 나요.
- 기억이 안 나? 하긴, 항상 그랬지.
히 : 애초에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못 해요. 메이킹 영상을 봤을 때, 신구 감독님이나 다카히로상이 저한테 엄청 ‘좀 더! 좀 더!’ 라고 말씀 하시더라고요.
- 오, 좀 더 하라고 재촉하는구나!
히 : 언젠가 한 번 케야키 뮤비 촬영 현장에 와 주셨으면 좋겠어요. 사실 뮤비에는 현장의 소리는 안 들어가잖아요. 사실 다카히로상이랑 신구 감독님이 엄청 소리 지르시거든요. 감독님 같은 경우, 이전에 한 번은 소리를 너무 쳐서 성대결절이 오셨을 정도예요.
- 우와!! 정말? 하긴 그 정도로 만드는 사람들이 한계를 돌파해서 만들면 보는 사람들도 빠져들기 마련이겠지.
히 : 그리고 그렇게까지 해 주시는 덕분에 좋은 작품이 만들어 지는 면도 있을 거고요.
- 예를 들어서 1절 A멜로디에서 ‘얘기 들을 생각도 없다’ 부분이 엄청 멋있었는데, 거긴 어땠어?
히 : 거기도 감독님이 ‘좀 더! 좀 더!’라고 계속 소리 치셨어요. 그것도 바로 옆에서 (웃음) 감독님 같은 경우, 립신 (상반신 클로즈업) 때 엄청 지시 해 주시는데요, 어떻게 하면 텐션이 오르는 지 정말 잘 알고 계셔요. 그것도 감독님 의도대로 되지 않으면 끝내 주시지도 않고. 감독님이 납득 할 때 까지 영원히 이어져요.
- 그렇게까지 하니 좋은 작품이 나올 수 밖에. (웃음) 뭐, 실제로 실적도 내 왔고 말이야. 감독님 지시대로 자신을 잘 드러내면 엄청 멋진 작품이 나오고, 그걸 본 전세계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평가 해 줄 거라는 확신이 있는 거잖아.
히 : ‘유리를 깨라!’ 때도 사실 뮤비에서 저 혼자 나오는 장면은 ‘전부 자유롭게 하라’고 하셨거든요.
- 아, 1절에서 2절 넘어가는 댄스 브레이크 말하는 거지?
히 : 사실 안무가 A멜로디랑 B멜로디, 후렴 부분 밖에 없었어요. 간주라던가 안무가 없는 부분은 ‘자유롭게 춤 춰도 된다’고 하셔서 그렇게 했더니 몇 번인가 리테이크 한 결과, 가장 좋은
- 그렇게 믿고 맡겨 주고, 끈기 있게 기다려 주면 맡겨진 쪽도 기뻐지잖아. 그렇지?
히 : 하지만 사실 지금까지 만족한 뮤비는 없어요.
-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 했다는 거야? 그룹 전체적으로 만족 못 했다는 거야?
히 : 저 자신에게요.
- 완성된 작품을 되돌아 보았을 때, ‘여기 정말 괜찮네’ 싶은 부분보다 ‘여기는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걸’ 이라거나 ‘지금이라면 더 잘 할 수 있을텐데’ 싶은 부분이 많다는 거지?
히 : 네. 멤버들이 나온 부분 중에 마음에 드는 부분은 있지만 제 부분은 전혀.
- ‘앰비벌렌트’에서 유리나쨩, 그토록 멋지게 나왔는데도? 대단하네.
바로 그 ‘앰비벌렌트’를 처음으로 선보인 곳이 7/20-22에 걸쳐 후지큐 하이랜드에서 개최된 ‘케야키공화국 2018’이었다. 작년에 이어 2년차를 맞이한 야외 콘서트이다. 사전에 공개된 이번 콘서트의 테마는 ‘물에 흠뻑 젖어 즐기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테마 대로 멤버들이 객석에 물을 들이붓는 연출도 가미되었다. 세트 구성, 세트리스트, 무대 연출 역시 케야키자카스러운 면이 가득했고, 무엇보다도 앙코르 공연까지 끝낸 뒤에 가슴에 남는 감정은 케야키자카가 아니면 줄 수 없는 것이었다.
- 케야키공화국, 마지막 날에 보러 갔었는데, 제일 처음 든 생각이 바로 ‘세트리스트가 참 훌륭하다’는 거였어.
히 : 사실 저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요.
- 뭐라고?! 보통은 ‘감사합니다’가 나올 타이밍인데~
히 : 아, ‘감사합니다’. (웃음)
- 케야키공화국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어?
히 : 처음에 결정한 건 오프닝이랑 엔딩을 어떻게 할 지였어요.
- 작년은 오프닝에서 깃발을 휘두르는 퍼포먼스를 보여줬었지. 마칭 퍼포먼스라고 하던가?
히 : 네. 올 해는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예전에 유튜브에서 보고 ‘이거 재미있다’ 싶었던 ‘집단행동’을 한 번 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키모토상도 그거 괜찮겠다고 해 주셔서 하게 되었습니다.
- 일단 엔딩 얘기는 나중에 하고. 그래서 내용은 어떻게 정한거야?
히 : 전국투어랑 차이를 두어야겠다고 생각 했거든요. 여름이고, 야외고 하니 ‘놀아보자’는 분위기도 좋겠다 싶었지요. 안무도 최대한 멤버들이 객석 가까이 가도록 조정했고, 관객분들은 물론이고 멤버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라이브로 만들고 싶었어요.
- 아 그래서 첫 곡으로 업템포인 ‘위태로운 계획’을 고른 거야?
히 : 사실 그 곡을 첫곡으로 한 건 작년 공연과의 접점을 만들려는 의도였어요.
- 아, 그렇구나! 작년 케야키공화국 마지막 곡이 바로 ‘위태로운 계획’이었으니까!
히 : 작년에도 와 주신 분들은 눈치 채 주시겠지라고 내심 생각 했지요. 뭐, 신나는 곡이기도 하고요.
- 첫 곡부터 오시타올을 엄청 휘둘러댔어. 아, 그리고 물을 사용한 연출도 엄청 좋았어. 첫 곡부터 객석을 향해 물 엄청 뿌려댔잖아.
히 : 스테이지에 설치 되어 있던 방수장치, 사실은 70m까지 물을 쏠 수 있다더라고요. 소리 엄청났죠?
- 응. 엄청났어. 첫 곡부터 완전 흠뻑 젖어버렸지.
히 : 아싸! (웃음)
- 거기서 ‘아싸’는 좀 이상하지 않니? (웃음)
히 : 개인적으로 이번 공화국의 숨은 테마로 ‘관계자석까지 전부 흠뻑 적셔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 그랬어? 아니 왜 그런 거야~
히 : 관계자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공연을 볼 때도 팔짱끼고 가만히 앉아서 보잖아요. 객석에 물을 뿌려도 ‘아, 물 뿌리네’ 정도로만 보고, 남일처럼 생각하니까… 그 사람들이 팔짱 풀고 당황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어요.
- 관계자석 보고 짜증이 났었다던가? (웃음)
히 : 그런 부분도 있을 지 모르겠네요. (웃음) 사실 그래서 리허설이 시작되자마자 가장 먼저 관계자석에 물 뿌리는 테스트부터 했어요. 스테이지에 서서 관계자석을 향해 물을 쐈죠.
- 그것 말고도 해야 할 일 많았을텐데 (웃음) 하긴 아키모토 선생님도 ‘내가 한 방 먹었네’ 라고 하면서 곤란해 하시던데.
히 : 사실 처음에 회의 하면서 ‘관계자석에도 물 뿌려보고 싶다’고 하니 반대 의견이 나왔거든요. 하지만 나중에 스태프분께서 아키모토상에게 확인을 했을 때, 아키모토상이 ‘괜찮겠다’고 해 주신 덕분에 하는 방향으로 결정 되었어요. ‘기대된다’, ‘나도 물 맞고 싶다’고도 하셨다고 하니까, 내심 아키모토상도 기뻐 해 주셨을 거라 생각해요. (웃음)
- 이것도 같은 이유일 지 모르겠는데, 사실 물을 뿌리는 게 뭐가 좋냐 하면, 누구나 물을 맞으면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지르잖아. 그리고 그 순간부터 완전히 스위치가 켜 지는 거지.
히 : 바로 그거예요! 물 맞는 순간 조이고 있던 나사가 풀어지는 거죠! 사실 보시는 분들이 어린아이로 돌아 가 줬으면 했거든요. 다른 사람들 시선 신경쓰지 않고 왁자지껄하게 뛰어노는, 어느 사이엔가 잊고 있던 감정을 떠올려 줬으면 했죠.
- 아, ‘팔짱 낀 모습이 짜증나서’가 아니라? (웃음) 뭐, 소리를 지른다는 건 다르게 말 하면 목을 푼다는 얘기니까 어쩌면 라이브에서 물을 맞기 전에는 잠겨있던 목소리도 잘 나올 수 있게 되겠네.
히 : 엄청 많이 젖으셨어요?
- 응. 젖었어. 물 뿌릴 때 엄청 높은 각도로 뿌렸잖아. 하늘로 물이 올라가서 어? 안 보이네? 라고 방심하고 있을 때 쏴아~하고 쏟아지더라고.
히 : 아하하하. 그 시간차, 재미있죠?
- 샤워기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였어. 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으니까. 멤버들도 여러 모로 힘들지 않았어? 무대 뒷편에서 급하게 의상을 말리거나 짧은 시간안에 화장을 고치거나 해야 했을 테니.
히 : 아무리 서둘러도 시간에
맞출 수가 없어서 다들 포기했었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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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화
새로운 자신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에게 있어 첫 ‘본격 드라마 출연작’이 된 ‘Re:Mind’. 밀실을 무대로 한, 거의 완전한 ‘회화극’인 이 작품은 그만큼 각자의 대사 전달력, 연기력이 요구되는 어려운 작품이었다.
사전에 열린 워크숍에서 불안을 토로하는 멤버들도 많았지만, 정작 촬영이 시작되자 점차 연기를 하는 재미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두 달 반에 걸친 드라마 촬영 기간 동안 연기력 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크게 변화를 보인 멤버들이 두 명 있었다.
인생을 사는 데 딱히 웃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드라마 촬영이 시작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감독의 목소리가 갑작스레 리허설이 한창이던 녹화 스튜디오를 가득 메웠다.
‘다카세라고!!’
갑작스러운 감독의 고함소리에 깜짝 놀란 다카세 마나는 어찌할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은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다른 멤버들의 말을 받아 자신의 대사를 이어가야 하는 타이밍이었으나, 그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 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런 에피소드가 재미 있었던 멤버들 사이에서는 그 후 한동안 ‘다카세라고!’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 유행했다고 한다.
사실 다카세는 전체 멤버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다가가기 힘든’ 멤버 중 한 명이었다. 드라마 설정상 다카세와 서로 마주보고 연기를 해야 했던 다카모토 아야카는 드라마 촬영을 통해 다카세와 친해져 어느 정도 가벼운 얘기를 주고 받을 수 있게 된 뒤, 이렇게 털어 놓은 바 있다.
‘지금까지 마나피라 하면 솔직히 말 걸기 힘들었어요. 잘 웃지도 않고,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도 없었거든요. 하지만 알고 보니 정말 특이하고 재미있는 아이였지요.’
다카세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중학교 1학년 때 까지의 기간을 부모님 일 관계로 영국에서 보냈다. 현지 학교에 다니던 당시, 같은 학교에 일본인은 다카세 한 명 뿐이었지만 금세 현지 아이들과 친해져서는 라크로스, 테니스, 수학 클럽 등 여러 방면으로 활동을 했다고 한다. 선생님의 수업 내용을 필기하는 것 뿐 아니라 교재를 갖고 스스로 공부 하는 영국식 수업이 정말 즐거웠다고도 한다.
그리고 일본으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그녀는 친구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다.
‘나, 일본에 돌아가면 유명해져서 TV에 나올 테니, 꼭 봐 줘’
물론 당시만 해도 ‘꿈’이나 ‘목표’라고 하기에는 너무 막연했고, 그리 강하게 의식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다카세 본인이 드라마와 뮤지컬을 좋아한다는 점도 있어 당시부터 막연하게나마 연예계를 동경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즐거웠던 영국 생활에 비해 일본 학교 생활은 너무나도 따분했다. 그렇기 때문일까,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는 동안 친구라고 부를만한 사람도 거의 없었다. 당시 그녀가 항상 생각했던 것은 ‘인생을 사는 데 있어 딱히 웃을 필요는 없지 않나’라는 것이었다고.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무리해서 웃기보다는 차라리 혼자 있는 편이 편했던 것이다.
고 3때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가 된 뒤로도 좀처럼 다른 멤버들 사이에 섞여들지 못 하고 겉돌았다. 다른 멤버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뭔가 쑥스러웠기에 상대방이 말을 걸어 줄 때 까지 아무 말도 않고 잠자코 기다리기만 했다. 그 뿐 아니라 사진을 찍을 때도 미소를 짓는 것이 어색해서 입 꼬리가 올라가는 교정용 굿즈를 사용하거나 남들 몰래 웃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그룹에 들어 와 어느 정도 지나 ‘W 케야키자카의 노래’의 MV 촬영이 있었다. 이 곡은 한자 케야키 멤버들과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 전원이 참여하는 첫 합동곡이었는데, 그런 의미깊은 곡의 MV 촬영임에도 다카세는 학업 관계상 참가하지 못 했다. 그리고 이 촬영에 불참한 것 역시 다카세 단 한 명 뿐이었다.
완성된 뮤직 비디오가 공개 된 뒤, 다카세의 스케줄이 빈 때를 찾아 다시 한 번 ‘전원 버전’ 촬영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전원’이 촬영에 참가하게 되어 기뻐하는 히라가나 멤버들을 보고 다카세가 입을 열었다.
‘마나 탓이야. 미안해’
그룹에 있어 의미 깊은 곡의 MV에 참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뻤지만, 이렇게 자신 때문에 멤버들, 그리고 스태프들이 재촬영이라는 번거로운 일을 해야만 했다는 점이 면목이 없었던 것이다.
멤버들과 거리를 두고 있었던 다카세는 자신과 함께 촬영을 할 수 있다고 기뻐 해 주는 멤버들을 보며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들 어렵게 여기던 다카세. 하지만 그녀가 ‘사실 사랑스러운 성격이다’라는 점을 가장 먼저 알아 차린 것은 다름아닌 카키자키 메미였다. ‘Re:Mind’ 촬영 현장에서 다카세의 옆자리에 앉았던 카키자키는 ‘공부를 잘 하면서 대사는 잘 못 외우’고 ‘자주 깜빡하’며 ‘자주 멍 때리고 있’는 다카세의 의외의 일면을 알게 되었고, 그런 점들을 갖고 다카세를 놀리기 시작했다. 카키자키의 그런 모습을 본 다른 멤버들도 자연스레 다카세 주변으로 몰려 들게 된 결과, 촬영 후반의 다카세는 일약 모두의 아이돌적인 존재로까지 변해 있었다.
다카세 본인도 드라마 촬영을 통해 서서히 변해갔다. 처음에는 ‘아이돌’로서의 수치심을 버리지 못 해 연기에 몰입하여 울거나 소리 지르거나 하는 모습을 선보이지 못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몸이, 감정 표현이 따라오게 되었던 것이다. 심지어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하는 시간이 길어 져, 어떤 모습이 진짜 자신의 모습이고 어떤 모습이 극중 역할인지 구분이 안 되는 신기한 경험마저도 했을 정도였다. 사실 그녀가 카키자키와 사이가 좋아 진 것에는 드라마에서 두 사람이 콤비로 묶였던 것이 큰 영향을 주기도 했던 것이다.
드라마 촬영이 끝난 뒤, 멤버들은 다카세에게 이런 말을 했다.
‘마나피, 드라마 촬영 때부터 엄청 변했어. 요즘은 엄청 잘 웃는걸’
다카세 본인도 스스로가 예전과는 많이 변했다는 점을 깨닫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큰 변화는 다름 아닌 ‘멤버들과 함께 활동하는 시간이 정말 즐겁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웃는 표정을 짓기 위해 샀던 ‘입꼬리를 올려주는 교정 굿즈’는 어느 사이엔가 그녀의 가방 구석에 들어 가 있을 뿐이었다.
오디션에 떨어져서 싹 튼 감정
‘Re:Mind’를 통해 새로운 즐거움에 눈 뜬 또 다른 멤버는 다름 아닌 다카모토 아야카였다.
다카모토는 사실 아이돌, 연예계에 관심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고 2때 우연찮게 보게 된 ‘마지스카 학원’에 푹 빠져 버린 뒤로 AKB48 그룹의 팬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당시 SKE48 소속이었던 마츠이 레나에게 빠져들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녀가 마츠이 레나의 팬이 된 직후, 마츠이가 그룹 졸업을 발표했다. 다카모토는 어쩌면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지 모르는 ‘마츠이의 노래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보고 싶었기에 마츠이의 졸업 콘서트를 보러 갔다. 참고로 콘서트 회장까지는 그녀의 아버지가 직접 운전을 해서 오고 갔다고 하며, 이 콘서트가 그녀가 처음으로 본 아이돌의 라이브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시기에 케야키자카46이 결성되었다.
사실 다카모토는 케야키자카46 오디션에도 참가 한 적 있다. 아이돌에 관심이 없었던 그녀가 오디션에 참가 한 이유는 너무나도 단순했다. ‘아이돌이 된다면 마츠이 레나와 만날 수 있을 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케야키자카46의 오디션에서는 도중에 탈락하였지만, 태어 나 처음으로 심사위원들 앞에서 춤 추고, 노래하고, 자기소개를 하며 그녀의 마음 속에서 새로운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만약 내가 그 때 오디션에 붙었다면 지금쯤 어떤 활동을 하고 있을까? 저 옷을 입고 나도 함께 TV에 나간다면 자기 소개는 어떻게 했을까?’
그런 상상은 특히 ‘케야카케’를 볼 때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자신이 아이돌이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를 수 없이 상상하던 어느 날, 나가하마 네루라는 존재가 나타났고,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이 새롭게 만들어 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다카모토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오디션에 응모하였다.
그로부터 수 달 뒤,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가 되어 처음으로 나가하마와 만난 날, 다카모토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자신이 그토록 바랐지만 결국 도중에 탈락했던 오디션에서 자진 사퇴했음에도 결과적으로 합격한, 하지만 그 덕분에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을 만들고 그 첫 멤버가 되어 자신을 아이돌 세계로 이끌어 준 존재가 자신의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다카모토에게 있어 나가하마라는 사람은 이미 ‘특별함’을 넘어 선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 다카모토가 아이돌로서 경험한 다양한 분야의 일들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경험으로 꼽는 것이 바로 ‘Re:Mind’였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는 ‘연기 참 무섭다’고 지레 겁을 먹고 연기, 표현한다는 것 차제에 두려움을 안고 있었다. 촬영이 시작 된 직후, 첫 신을 찍을 때에도 자기 마음대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초조함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한 번 눈 딱 감고 크게 소리를 낸 뒤로부터 서서히 연기라는 것이 즐겁게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촬영 현장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이 작품에 관여 된 스태프들은 전원 사이가 좋은데다가, 멤버들에 대해서도 화를 내기보다는 차분하게 성장을 지켜 봐 주고 기다려 주는 스태프들이었다. 드라마의 설정상 스토리에 맞추어 한 명씩 등장인물들이 사라져 가는데, 그 때마다 멤버들의 이름에서 특징을 따 점토로 오브제를 만들어 세트장에 숨겨 놓으며 멤버들을 즐겁게 해 줄 정도로 재치도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촬영을 하며 다카모토는 현장 운영쪽에도 흥미를 보였다.
‘카메라 옆에 붙어 있는 이거, 뭔가요? 어떻게 쓰나요?’
매일같이 자신이 잘 모르는 것들을 새롭게 발견해서는 스태프들에게 질문을 했다. 결국 자신도 같은 일을 해 보고 싶어 져, 본방등(※외부에서 보았을 때, 촬영중임을 알 수 있는 등. 온에어 표식판 같은 역할)을 사 와서는 ‘그럼 본방등 켜겠습니다!’라고 스태프 흉내를 낸다던가, 무대 제작이나 세트 장식을 돕기도 했다. 자신의 캐릭터가 마지막 출연을 끝낸 뒤, ‘내일도 현장에 와서 스태프 일을 돕고 싶다’고 이야기를 꺼냈다가 매니저에게 제지 당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그토록 두려워 했던 ‘드라마’가 이토록 좋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된 뒤, 제작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이 180도 변한 것이다.
그런 경험을 한 지금, 다카모토의 목표는 더욱 더 표현력을 길러 언젠가 다시 이 드라마 팀과 함께 드라마를 찍는 것이다.
‘히라가나는 연기를 잘 하는 팀이 되었으면 해’
이 ‘Re:Mind’의 주제가로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5번째 오리지널 곡인 ‘그럼에도 걸어간다’가 발탁되었다.
‘인생이란 넘어지는 거야. 무릎은 까지라고 있는 거지.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서면 돼. 나는 그럼에도 걸어 갈 거야.
인생이란 무엇일까? 승패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그래 그럼에도 걸어 가는 거지.
그렇기에 나는 그럼에도 걸어 가.’
지금까지 그녀들이 불러 온 밝고 상큼한, 말 그대로 ‘아이돌’다운 곡들과는 달리 포크송 곡조에 맞추어 ‘인생’에 대해 논하는 진지한 곡이었다.
센터는 그런 곡조에 맞는 어른스러운 분위기와 강렬한 목소리를 갖춘 사이토 쿄코가 발탁되었다. 지금까지 나가하마 네루가 혼자 센터에 서거나 나가하마와 카키자키가 더블 센터를 서 왔던 히라가나 케야키의 센터 자리가 바뀐 순간이었다.
이 곡의 포지션 발표는 드라마 촬영과 병행되었던 이 곡의 안무 레슨 때 있었다. 스태프가 아무렇지 않게 ‘센터 자리에는 쿄코’라고 이야기를 했고, 이 말을 들은 사이토는 ‘네?!’라고 얼빠진 듯한 대답을 했다. 그리고 이런 사이토의 모습을 보며 다른 멤버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센터 교체’라는 중차대한 사건에서도 히라가나 케야키다운 모습을 잃지 않은 것이었다.
이와 더불어 싱글 발매 직전에 가입한 2기생 9명 중, 와타나베 미호가 드라마 촬영에 참가하게 되었다. 드라마에 출연할 한 명을 가리기 위해 급히 2기생들만을 대상으로 간단한 오디션을 열고, 그 결과 와타나베가 선택 받은 것이다.
와타나베는 오디션에서 합격 한 그 날 바로 촬영 스튜디오로 가서 처음으로 1기생들과 대면하였다. 히라가나 케야키 2기생들의 스토리가 본격적으로 시작 된 순간이었다.
약 2달간에 걸친 드라마 ‘Re:Mind’ 촬영.
촬영이 종료되는 날, 마지막 장면을 보기 위해 모든 멤버들이 스튜디오에 모였다. 촬영이 전부 끝난 뒤, 축하의 의미로 받은 꽃다발을 든 멤버들이 한 사람 한 사람 소감을 이야기하였다.
어릴 때부터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카게야마 유우카는 ‘더욱 더 유명한 배우가 되어 다시 돌아오겠습니다’라고 선언하였다. 멤버들의 리더 역이자 누구보다도 오래 스튜디오에 있었던 사사키 쿠미는 ‘연기를 하는 것이 처음인 저희들이기에 부족한 부분도 많았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여러분께서 정말 상냥하게 대해 주셔서 즐겁게 촬영 할 수 있었습니다. 평생 잊지 못 할 추억입니다’라고 그룹을 대표하여 감사 인사를 남겼다.
그리고 이 때, 멤버들은 스태프들에게 선물을 주었다. 드라마 촬영기간 약 2달간의 추억이 담긴 노트였다. 사이토는 자신에게 주어 진 페이지만으로는 모자랐는지, 별도로 편지를 써서 감독인 우치카타에게 전달했다. 무려 편지지 세 장이 빼곡하게 들어 찰 정도로 수 많은 추억이 담겨 있던 그 편지에는 워크숍에서 눈물을 흘린 뒤, 감정이 복받쳐 올라 ‘감사합니다’라는 말도 제대로 못 했던 자신의 모습을 두고두고 후회하는 그녀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우치카타는 워크숍 당시부터 멤버들에게 ‘히라가나 케야키를 연기를 잘 한다는 소리를 듣는 팀으로 만들자’고 이야기 하며 멤버들을 다독여 왔다. 그리고 그녀들이 그 말을 따라 우직하게 노력 한 결과, 우치카타의 말은 예언이 되었다.
그리고 우치카타는 연기에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덕목, ‘상대방을 똑바로 바라본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알게하기 위하여 멤버들에게 ‘라이브를 할 때, 객석에 앉아 있는 손님들을 똑바로 응시 하라’고 주문하였다. 그리고 이런 주문은 결과적으로 연기 뿐 아니라 그녀들의 라이브 퍼포먼스의 수준 향상으로도 이어졌다.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에게 다양한 성과를 안겨 준 ‘Re:Mind’의 촬영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멤버들의 마음 속에 빛나는 보물과도 같은 추억을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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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화
첫 드라마
2017년 봄에 시작된 히라가나 케야키의 단독 전국투어는 그룹 전체의 전국투어 일정에 의해 잠시간 중단된 뒤, 9월 홋카이도 공연을 시작으로 재개되게 되었다. 하지만 투어 재개 직전, 히라가나 케야키의 유일한 오리지널 멤버인 나가하마 네루가 히라가나 케야키를 떠나 한자 케야키 전임 멤버가 된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남겨진 11명의 멤버들은 불안과 상실감을 가슴 속에 품은 채, 라이브 리허설과 첫 주연드라마인 ‘Re:Mind’ 촬영에 임했다. 그런 힘든 매일매일을 견딜 수 있게 해 준 것이 바로 ‘해피 아우라’라는 말이었다.
라이브 전날, 히라가나 멤버들은 나가하마 네루와 이야기를 나누며 12명의 유대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홋카이도 팬들의 따뜻한 환대 덕분에 멤버들은 다시 한 번 걸어 나갈 힘과 자신을 얻게 되었다.
허들이 높은 ‘밀실 내 대화극’
2017년 3분기에 편성이 된 심야 드라마이자 히라가나 케야키의 첫 주연 드라마 ‘Re:Mind’.
그녀들이 드라마에 출연 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이전에 방영된 한자 케야키의 두 번째 드라마 ‘잔혹한 관객들’에 전원이 출연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 때는 마지막화에 겨우 5분 가량 게스트 출연한 것이 전부였기에, 실질적으로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에게 있어서 바로 이 ‘Re:Mind’가 첫 ‘드라마 출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그녀들에게 있어 ‘연기’를 할 기회 역시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사실은 첫 드라마 주연이 결정되었을 때에도 많은 멤버들이 솔직하게 기뻐하지 못했다. 새로운 장르의 일에 대하여 막연하게 불안함을 느꼈던 사사키 쿠미는 ‘내가 연기를 잘 할 수 있을까. 한 번 해 보자는 마음보다는 괜찮을까 하는 불안이 더 커’라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또한, 한자 케야키의 드라마 메이킹 영상을 보고 생각하는 대로 연기가 따라주지 않아 울먹이는 선배들의 모습이 인상에 깊이 남아 있던 다카모토 아야카 역시 ‘나도 연기를 하면 저렇게 될까? 연기란 거 엄청 무서운데’라고 겁을 먹고 있었다.
사실 연기 경험이 없는 그녀들에게 이 작품은 허들이 매우 높은 작품이었다.
히라가나 케야키의 종합 프로듀서인 아키모토 야스시가 원작을 담당한 이 작품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갑자기 본 적도 없는 방안에 감금되어 버린 11명의 소녀들이 실종된 동급생의 기억을 떠올리며 누가 어떤 목적으로 자신들을 감금하였는 지 추리한다’ 는 것이 바로 그 스토리이다.
말하자면 밀실에서 이뤄지는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극화시킨 것으로, 그만큼 대사와 리액션 등 기본적인 연기력만으로 승부해야 하는 극이다. 그 뿐 아니라 대부분의 장면을 멤버들만으로 진행하기에 연기 경험이 많은 공연자들에게 의존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런 어려운 과제에 임하게 된 멤버들을 위하여 드라마 촬영에 앞서 연기 워크숍이 열렸다. 워크숍에서 멤버들에게 연기를 지도 해 준 것은 주로 형사 드라마나 서스펜스 드라마 등에서 수 많은 실적들을 올려 온 연출가, 우치카타 아키라씨였다. 그는 기존 연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기 워크숍을 여러 번 열어 온 바 있으며, 신인 연기자들의 육성에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이번에는 주/조연 연기자 전원이 연기 경험이 없는 특수한 케이스였기에 지도 역시 여러 번에 걸쳐 이루어졌다.
워크숍은 우치카타씨의 개요 설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앞으로 이 워크숍을 통하여 ‘연기란 이런 것이다’라는 기본적인 것들을 알려 드릴 테니 꼭 기억 해 주십시오. 이 기본들은 이번 드라마 뿐 아니라 앞으로 하시게 될 연극, 나아가 노래나 뮤직비디오 등에서도 통용되는 내용들입니다. 말하자면 기초 스탭이라 할 수 있겠지요.’
당시 우치카타씨가 멤버들을 처음 만나고 한 생각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초짜들이다’라는 점이었다. 아무리 신인 배우라 할 지라도 연예인이 된 이상 자기 자신을 멋지게 보이려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인데, 심지어 다른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일인 아이돌이라면 자연스럽게 자존심이 높고 까다로우리라 생각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들은 처음부터 겸허하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불안함이나 긴장감을 숨기지 못 한다는 점은 한 눈에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들이 워크숍 첫 날, 하루만에 확연히 변했다. 두 명이 한 조를 이루어 한 명이 ‘그만두지 마’ 라고 이야기 하면 나머지 한 명이 ‘나도 그만두고 싶지않아’라고 대답하는 연습을 하였을 때의 일이었다.
제일 처음 이 연습을 시작 한 것은 사사키 미레이와 카게야마 유우카였다.
사사키가 ‘그만두지 마’라고 입을 열었다. 어딘지 모르게 진심이 담긴 목소리, 호소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차분하게 그 말에 ‘나도 그만두고 싶지 않아’라고 받아치던 카게야마의 표정이 점점 고조되더니 결국엔 펑펑 울며 ‘나도 그만두고 싶지 않아’라고 절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결국 마지막즈음엔 두 사람 모두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어갔고, 연기가 끝난 뒤에도 서로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바로 이것이 우치카타씨가 중시하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생리(감정)에서 촉발된 연기’의 핵심이었다. 두 사람의 뒤를 이어 연습에 임한 멤버들도 역시나 그들과 마찬가지로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 중에서도 이 ‘나도 그만두고 싶지 않아’라는 대사에 대한 멤버들의 반응이 너무나도 민감했다. 여기에는 대사를 시킨 우치카타 본인마저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이는 냉혹한 연예계에서 활동을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슴 속에 품었을 ‘그만두고 싶다’는 감정을, 혹은 실제로 다른 멤버들에게 ‘그만두고 싶다’고 상담을 했던 날을 떠오르게 했기 때문이 아닐까.
히라가나 멤버들은 케야키자카46의 전국투어 기간중에도 없는 짬을 내어 이 워크숍에 참가하였다. 그리고 9월 중순, 드디어 크랭크인 날이 밝았다.
처음으로 경험한 과호흡, 뼈저리게 느끼게 된 ‘연기의 힘’
‘오래된 저택에나 있을 법 한 음침한 방. 방 한 가운데에는 큰 탁자가 놓여있고 그 탁자 주변에는 11명의 소녀가 붉은 두건을 뒤집어 쓴 채 잠들어 있다.’
드라마는 그런 그녀들이 한 명씩 한 명씩 눈을 뜨고, 자신들이 놓여 있는 상황을 인식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 한 장면을 찍기 위해 며칠씩이나 같은 장면을 찍고 또 찍어야 했다.
여기서 소리지르며 눈을 떠야만 했던 다카모토는 연기에 감정이 이입되지 않아, 드라마 초반 감독을 맡았던 우치카타에게 이렇게 상담을 했다.
‘저, 여기서 더 크게 비명을 질러야 하나요?’
사실 ‘크게 소리 질러야 한다’는 건 이미 대본에도 적혀 있을 터, 이론의 여지가 없었지만 그래도 다카모토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우치카타에게 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 떨어지기 시작했다. 연기라곤 해 본 적도 없는 초보가 ‘비명을 질러야 한다’는 점에 너무나도 부담을 느낀 나머지 극도의 긴장에 휩싸여, 그나마 할 수 있는 연기마저도 하지 못 하게 되는 전형적인 예였다.
그 뿐 아니었다. 눈물이 많은 멤버들 중에서도 특히 눈물이 많은 히가시무라 메이가 우는 모습을 보고 걱정이 된 우치카타가 그룹의 대표격인 사사키 쿠미에게 ‘히가시무라, 오늘 무슨 일 있었니? 위로 해 주는 편이 나으려나?’라고 상담을 하였을 때, 사사키가 ‘아뇨, 언제나 저러니까 너무 신경 안 쓰셔도 돼요’라고 대답 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실제로 그녀의 말대로 울게 내버려 둔 지 얼마 되지 않아 히가시무라는 울음을 그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주변 멤버들과 어울려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우치카타는 ‘신기한 방식으로 사이가 좋은 아이들’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그 가운데, 첫 드라마 촬영에 기대를 한껏 부풀리고 있던 멤버도 있었다. 바로 이구치 마오였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드라마를 좋아했고, 심지어 ‘드라마 배경으로 자주 나올만한 동네에 살고 싶다’는 일념으로 수도권에 있는 대학에 응시하여 고향인 니이가타를 떠나 왔을 정도로 드라마 광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 드라마 세트나 카메라가 줄지어 서 있는 광경은 그저 바라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들뜨는 것이었다.
워크숍 당시 자신의 대사를 말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이구치는 자신의 연기에 대해 자신을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드라마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스태프들은 그녀의 잠재력, 다시 말 해 감정이나 대사의 흐름을 읽어내는 능력에 대해 평가하고 있었다.
반대로 우시오 사리나는 발음도 좋았고 대사를 이야기하는 면에서도 발군의 능력을 보였다. 평소에도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의 성격에 딱 맞는 장점이었다.
이렇듯 멤버 각자의 개성과 적성에 맞추어 각본 역시 수 차례 수정이 가해졌다. 이 작품의 경우, 매 회가 진행 될 때마다 등장 인물이 한 사람씩 줄어드는 설정이었는데, 특이한 것은 연기면에서 잠재력을 인정 받은 멤버들이 초반에 제거되는 경향이 있었다는 점이다. 모든 역시 제거되기 전에 긴 대사를 부여받아, 자신의 연기력을 선보일 기회가 주어졌기에 연기력이 있는 멤버들을 초반에 제거함으로 하여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런 노림수는 적중하여, 우시오가 제거되는 장면에서는 ‘미안해요, 미안해요’라며 사과를 하는 우시오의 귀기서린 연기가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실제로 이 장면을 주의 깊게 보면 다른 멤버들 역시 우시오의 연기에 압도되어 눈에 눈물이 맺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시오 본인은 이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과호흡 상태에 빠질 정도로 흥분 해 있었고, 그런 우시오의 모습을 본 멤버들 역시 그녀에게 몰입하게 되어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연기라고 하는 것에 빠져들어 버리면 때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과호흡을 일으킬 정도로 몸과 마음이 동요되기 마련.
‘커트’라는 감독의 지시가 내려진 뒤, 우시오는 걱정하며 자신의 어깨를 감싸 안아주는 멤버들 사이에서 ‘진심을 담아 연기를 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텐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연기라는 것이 가진 근원적인 힘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미레이가 열심히 한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차례차례 등장인물들이 줄어드는 가운데, 극의 화자로서 작품을 이끌어 온 멤버 중 한 명이 바로 사사키 미레이였다. 상대방의 대사를 주의깊게 듣고, 자신의 감정을 대사에 실어 연기하는 그녀에 대해서는 이미 워크숍 당시부터 평가가 좋았다. 드라마 안에서도 냉정하게 상황을 추리하여 수수께끼의 핵심에 다가서는 우등생 역할을 맡았으며, 분량 역시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런 미레이 역시 극이 중반에 이르렀을 즈음, 어째서인지 대사가 입에서 나오지 않게 되었던 적이 있었다.
드라마 촬영기간 중, 연출팀이 멤버들에게 요구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무슨 뜻인지 몰라도 좋고 어떤 식으로 말 할 지 의식하지 않아도 되니까 우선 대사를 외우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대사량이 많아, 심할 때는 한 사람의 대사가 10페이지에 이르는 이 작품의 대사를 통째로 암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전까지는 어찌저찌 대사를 머릿속에 욱여 넣었던 사사키에게도 역시 슬럼프가 찾아왔다. 그 날은 어째서인지 아무리 노력해도 대사가 외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촬영은 중단되고 식사 시간을 가졌는데, 식사를 하면서 대본을 몇 번이고 외워도 대사가 머릿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초조함에 눈물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대본을 몇 번이고 넘기고 있는 사사키의 모습을 보던 해당 화의 감독, 이시다 유스케씨는 그녀를 스튜디오 밖으로 불러냈다.
‘미레이, 네가 지금까지 대사를 제대로 외워 왔고, 엄청 열심히 했다는 거 잘 알아’
드라마 촬영장에서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던 자신의 모습을 지켜 봐 준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사사키는 긴장의 끈이 탁 풀리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촬영이 재개 된 뒤, 별다른 문제 없이 촬영을 끝마칠 수 있었다.
스태프들의 기대를 받고, 본인 스스로도 어려운 역할에 도전한 멤버도 있었다. 사이토 쿄코는 11명의 등장 인물 중 유일하게 항상 분노하고,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개성이 강한 캐릭터를 연기하였다. 그녀에게 이 역할을 맡긴 것은 사실 스태프들에게 있어서도 일종의 도박이었다.
이 역할은 개성 있고 특이하게 보이지만 사실상 일반 시청자의 입장에 가장 가까운 캐릭터였다. '이거 말이나 돼?' 나 '뭐가 뭔지 모르겠네'라는 식으로 현재 상황에 대해 숨김 없이 직구를 날리는 그녀의 대사는 현실에서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일반적인 사람들이 가장 먼저 내뱉을 그러한 대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캐릭터야말로 비정상적인 캐릭터가 득시글거리는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현실적'인 캐릭터이며, 동시에 시청자와 극을 이어주는 매개체로서 빼 놓을 수 없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사실 워크숍 시점, 사이토는 성격면에서나 연기력 면에서나 이 역할에 어울릴만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사실 사이토는 이 드라마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가장 불안해 했던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그녀의 궁극적인 목표는 어디까지나 가수, 그렇기에 노래와 춤 연습에 매진 해 온 사이토는 내심 '나는 연기를 못 한다'라고 정해놓고 있었던 것이다.
워크숍이 진행되던 어느 날, 연습이 끝난 뒤 우치카타가 사이토를 따로 불러냈다. 연기에 대한 조언을 해 주기 위해서였다. 우치카타는 '사이토라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마음에 조언을 해 준 것이었지만, 사이토 본인은 '역시 내가 제일 못 해서 따로 불린 거겠지'라고 오해를 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던 도중에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남들 앞에서는 절대로 울지 않는 사이토가, 한자 케야키 멤버들과 만나 처음으로 눈물을 보인 이래로 처음 눈물을 보인 때가 이 때였다.
그토록 연기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던 사이토이지만, 정작 촬영이 시작되자, 지금까지의 일이 마치 거짓말이기라도 한 듯 편하게 연기에 몰두하였다. 본인 특유의 낮은 목소리와 싹싹한 말투가 배역과 절묘하게 매치되었던 것이다.
사이토는 촬영에 들어가기에 앞서 감독인 우치카타로부터 어떤 조언을 받았다.
'이 역은 매우 중요한 역할이야.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사이토밖에 없어. 그러니까 너에게 다 맡길게.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 사이토를 미워하게 되실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는 것은 네가 이 어려운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 해 냈다는 얘기니까 슬퍼 할 일이 아니야.'
사이토의 연기는 다름 아니라 이런 조언을 듣고, 그 조언대로 자신을 맡긴 덕분에 할 수 있는 연기였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40일 이상에 걸친 드라마 촬영 가운데, 멤버들은 서서히 연기라는 것에 눈을 떠 가기 시작했다. 'Re:Mind'라고 하는 연속 드라마는 완전한 픽션인 동시에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의 멤버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변화 한 것은 연기면 뿐만이 아니었다. 이 기간을 거치며 인간적으로도 크게 성장한 멤버들이 있었다. 다름 아닌 다카세 마나와 다카모토 아야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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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화
해피아우라, 그리고 12명의 유대감
2017년 8월, 약 1개월에 걸쳐 케야키자카46의 전국 투어가 실시되었다. 이 투어는 직전에 발매 된 첫 앨범, ‘새하얀 것은 더럽히고 싶어져’의 수록곡들을 중심으로 하는, 케야키자카46의 첫 전국 투어였다.
히라가나 케야키 역시 이 전국투어에 참가, 신곡인 ‘영원의 흰 선’을 비롯한 수 곡을 선보였다. 또한, 투어와 병행하여 시간이 날 때마다 가을에 시작 될 히라가나 케야키의 첫 주연 드라마 ‘리:마인드’의 연기 워크숍에도 참가하였다. 그 뿐 아니라 8월 중순즈음에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2기생 오디션 최종심사가 열려, 그 결과로 9명의 신멤버가 그룹에 들어오게 되었다.
8월 말, 케야키자카46의 전국투어도 마지막 공연을 맞이하였다. 전국 투어가 끝난 뒤에는 잠시 중단 되어 있었던 히라가나 케야키의 라이브하우스 투어가 재개 될 예정이었다.
겸임이 한계에 다다른 여름 투어 기간
9월 후반의 어느 날. 도쿄 도내 모 스튜디오에서 ‘케야카케’ 녹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날 녹화에는 히라가나 멤버들도 함께 참가 하는 녹화였는데 선배인 한자 케야키보다 빨리 녹화를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 온 히라가나 멤버들에게 스태프가 이런 말을 꺼냈다.
‘앞으로 나가하마 네루는 히라가나 케야키와 한자 케야키 겸임을 마치고 한자 케야키 전임 멤버가 됩니다. 한자 케야키, 히라가나 케야키 스케줄이 점점 더 바빠 질 텐데, 나가하마 본인의 건강을 생각 한 결과 이렇게 되었어요. 이번 달 26일에 열리게 될 히라가나의 Zepp Sapporo 공연에도 참가하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발표에 히라가나 멤버들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렸다. 나가하마는 히라가나 케야키에 있어 유일한 ‘오리지널 멤버’인 동시에 지금까지 히라가나가 경험 해 온 모든 무대가 나가하마를 중심으로 구성되고 운영 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런 나가하마가 그룹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
실제로 나가하마는 히라가나 케야키와 한자 케야키의 겸임이 결정 된 이후로 쭉 스케줄 면에서 고민을 해 왔다. 2017년 봄에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전국투어가 시작되어 히라가나의 단독 활동이 본격화 되었는데, 그 당시 나가하마가 히라가나의 투어와 병행하고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 한자 케야키의 드라마 ‘잔혹한 관객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찌저찌 버텨 오던 그녀가 결국 겸임에 대처하지 못 하게 된 타이밍이 바로 2017년 여름에 열린 케야키자카46의 전국투어 때였던 것이다.
케야키자카46라는 그룹에 있어 첫 전국 투어인 동시에 공연곡 중 반수 이상이 신곡인 상황이었기에 그녀 뿐 아니라 모든 멤버들이 처음으로 경험하는 승부처였던 이 시기, 나가하마는 신곡의 안무 연습, 투어 리허설은 물론이고 각종 음악 페스, 미디어 출연을 병행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짬을 내서 히라가나 케야키의 연습에 합류, 짧은 시간 안에 히라가나의 곡 리허설까지 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런 나날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심지어 그녀가 히라가나의 신곡 ‘영원의 흰 선’ 안무를 배운 것이 해당 곡을 처음으로 선보이기 전날이었을 정도였다.
그 뿐 아니었다. 투어 내용면에서 보아도 그녀는 양 그룹에 모두 참가하고 있는 데다가 솔로곡까지 소화해야 했기에 쉴 틈 없이 계속 무대 위에 서 있어야 했다.
나가하마를 곁에서 지켜 봐 온 카토 시호는 이 시기의 그녀에 대해 ‘언제나 울먹이는 얼굴만 떠오른다’고 이야기한다. 히라가나의 리허설에 도중부터 참가하여 안무 숙지가 잘 되지 않아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미안해’라고 사과하는 나가하마를 보며 카토는 ‘제일 힘든 건 본인일텐데 왜 우리에게 사과하는걸까’라고 생각했다 한다. 사사키 미레이 역시 ‘네루쨩이 거기 있어 주는 것 만으로도 고마운 일인데, 항상 사과하고 있어. 정말 겸허한 아이구나’라고 느꼈다고.
하지만 한 사람이 동시에 두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그런 모순된 상황은 결국 스케줄 면에서도 체력 면에서도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모든 일에 최선을 다 하려는 나가하마를 대신하여 운영측이 결단을 내려야만 했던 것이다.
멤버들에게 나가하마의 겸임 해제 소식이 전해 진 며칠 뒤, ‘케야카케’ 방송과 동시에 운영측의 코멘트가 발표되었다.
‘(이하 운영 발표 일부 발췌) 히라가나 케야키 주연 드라마 건에 대해 이야기가 나온 뒤, 드라마 촬영도 준비 했습니다만, 전국투어가 끝난 뒤에는 한자 케야키로서의 활동 역시 더더욱 바빠 질 것으로 사료되는 가운데, 나가하마가 한자 케야키와 히라가나 케야키를 겸임하는 데 있어 본인의 건강을 생각 한 결과, 이 이상은 힘들것이라 판단하였습니다.
운영측에서 협의를 거듭한 결과, 나가하마는 한자 케야키에 있어 소중한 멤버라는 점을 알게 되었고, 히라가나 케야키는 신멤버들을 맞이하여 새로운 걸음을 걸어나가야 하는 타이밍이기에 이 타이밍에 나가하마의 겸임을 해제하고 한자 케야키 전임멤버로 활동 할 것을 결정하였습니다.’
그 말대로 그룹에 도중 가입한 이후로 계속해서 한자 케야키 멤버들과 함께 활동 해 왔고, 히라가나 케야키의 추가멤버(1기생)들이 들어 온 뒤로는 두 그룹을 겸임 해 온 나가하마였기에 한자 케야키에 있어서 그녀는 이미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존재였다. 동시에 히라가나 케야키는 잠시 중단되어 있었던 전국 투어도 재개되고, 동시에 그룹의 첫 주연 드라마 촬영도 시작되고, 2기생들이 합류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 하는 시기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 하에서 나가하마를 지켜주기 위해 운영측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이 바로 겸임해제, 그리고 한자 케야키 전임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운영측의 이런 결정에 대하여 사이토 쿄코는 ‘아 결국 이 순간이 왔구나.’라고 생각했다. 사이토 뿐 아니라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 모두가 ‘언젠간 나가하마의 겸임이 해제 될 것’이라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다카세 마나가 ‘역시나 한자 전임이 되는구나. 하긴, 네루쨩은 한자 멤버들과 함께 있을 때 반짝 반짝 빛나는걸’이라고 생각했던 것 처럼 멤버들 역시 나가하마의 한자 케야키 전임을 인정 할 수 밖에 없었다. TV화면에 비춰지는 한자 케야키, 그리고 나가하마 네루에 반해 오디션을 받은 그녀들에게 있어 ‘나가하마 네루’라는 존재는 언제나 자신들보다 한 발짝 앞서 있는, 빛나는 존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가하마가 그룹에서 없어진 지금, 남겨진 자신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 속에서 알게 된 ‘해피 아우라’
3월에 열린 도쿄 공연을 시작으로, 매 공연 세트리스트를 바꾸어 가며 오사카, 나고야 등지를 돌아 온 히라가나의 전국투어 역시 나가하마의 이탈로 인해 대대적으로 수정이 가해졌다. 지금까지 12명이 퍼포먼스 해 왔던 곡들의 포메이션을 전부 11명 버전으로 수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가하마의 노래 파트 역시 다른 멤버들에게 나눠져야 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드라마도 본격적으로 촬영이 시작되어 평소보다도 적은 시간을 짜 내 리허설을 해야만 했고, 그런 적은 리허설 시간 안에서 파트 배분 및 수정, 새로운 세트리스트 작성 등도 소화 해야만 했다.
‘그럼 여기는 네루 자리에 카키자키가 들어 가고 다른 멤버들은 무대 오른쪽으로 모여서… 아, 이런! 여기 네루 파트 아무도 배정이 안 되어 있잖아!’
멤버들 뿐 아니라 스태프들 역시 허둥지둥 눈에 보이는 대로 수정할 점들을 찾아내서는 멤버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데 필사적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히라가나의 전국 투어는 매 공연마다 색다른 것에 도전 해 보는 ‘챌린지 기획’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나가하마가 빠진 직후의 공연이었던 홋카이도 공연에선 마칭 드럼을 선보이게 되어 있었다. 멤버들은 드라마 촬영과 리허설을 병행하며, 그 적은 시간을 쪼개 새롭게 수정된 안무와 곡을 연습하는 동시에, 드러머의 휴식시간을 빌려 스튜디오 구석에 모여 마칭 드럼 연습도 해야만 했다.
이렇게 물리적인 부담이 큰 가운데, 멤버들을 불안에 떨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정신적인 상실감’이었다.
히라가나 케야키의 곡에서 나가하마와 함께 더블 센터를 맡고 있었고, 나가하마에게 있어서도 마음을 터 놓는 상대가 되어 준 카키자키 메미는 나가하마를 생각 할 때 마다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왜 네루가 여기 없는걸까. 외로워… 나는 지금껏 네루에게 기대기만 해 왔기에 정작 네루가 없으니 아무 것도 못 하는구나…’
다카모토 아야카는 지금껏 해 본 적 없는 드럼 촬영과 라이브 리허설에 매진하는 가운데 가슴 속에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히라가나 케야키는 애초에 네루쨩으로 시작된 그룹인데 정작 그런 히라가나 케야키에 네루쨩이 없다는 건 결국 아무 의미도 없는 것 아닐까? 우리들을 보기 위해 와 줄 사람이 있긴 할까?’
나가하마가 빠진 지금,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은 더 의상 존재의미가 없다는 생각은 비단 다카모토 뿐 아니라 남겨진 멤버 모두가 품고 있는 생각이었다. ‘나가하마’를 보기위해 먼 홋카이도까지 와 준 팬들이 야유를 보내지는 않을까라는 생각마저 들어 가뜩이나 불안하던 마음에 박차를 가했다.
그런 생각은 예전, 아무런 일이 주어지지 않은 채 방치되어 ‘해고’까지 각오했던 때 그녀들이 느꼈던 종류의 부정적인 생각이었다. 물리적,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심신이 모두 너덜너덜 해 진 결과, 리허설을 할 때 조차 고개를 떨구고 바닥만 바라보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사사키 쿠미가 갑작스레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밝게 행동하며 말을 꺼냈다.
‘아, 맞아. 해피 아우라야, 해피!!’
그녀를 따라 만면에 미소를 띄우고 연신 ‘해피!’ ‘해피!’라고 이야기 하다 보니 어느 사이엔가 자신들도 모르게 기운이 나고, 웃음이 나왔다.
사사키 쿠미가 이 ‘해피 아우라’라는 말을 알게 된 계기는, 고민하던 그녀를 본 한 스태프의 한 마디였다.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에도 그저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바로 그 자세야말로 너희 히라가나 케야키가 갖고 있는 해피 아우라라고 생각해.’
그 말을 들은 순간, 사사키 쿠미는 마음 속 짐이 덜어지고 구원을 받은 느낌이 들었다. 라이브를 거듭하는 가운데 얼핏 보이는 것도 같았던 ‘히라가나 케야키만의 색’… ‘보고 있는 사람들을 웃게 만들자’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기본 이념이 고스란히 담긴 단어가 바로 이 ‘해피 아우라’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케야키자카46의 전국투어기간동안 사사키 쿠미는 때때로 이 단어를 입에 올렸고, 그녀가 이 ‘해피 아우라’라는 말을 할 때마다 다른 멤버들 역시 자연스레 미소가 번졌다.
카게야마 유우카는 이 ‘해피 아우라’라는 단어가 바로 자신들이 지금껏 해 온 것들과 앞으로 해 나가야 할 것들을 일직선으로 관통하고, 서로 이어주는 단어라는 점을 깨달았다.
“3월에 있었던 도쿄 공연이 끝난 뒤, 멤버 전원이 정했던 ‘관객분들과 하나가 되어 신나게 즐긴다’는 목표가 바로 이 ‘해피 아우라’라는 단어와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어요. 앞으로 저희들이 갖고 있는 ‘해피 아우라’를 여러분께 전해 드린다는 마음가짐으로 무대 위에 선다면 저희만이 할 수 있는 라이브가 될 것 같아요.”
전국 투어가 끝날 때쯤, 어느 사이엔가 ‘해피 아우라’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들 사이에서 하나의 ‘암호’가 되어 있었다. 한자 케야키가 ‘쿨’한 그룹이라는 평가를 받는 데 반해 자신들은 아무런 장점이 없다고 좌절하던 그녀들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그녀들만의 개성, 그것이 바로 ‘해피 아우라’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단어는 나가하마 네루가 빠져버려 불안함에 사로잡혀 있던 멤버들을 북돋아 앞으로 걸어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홋카이도 공연을 하루 앞둔 날, 카키자키는 블로그에 이런 글을 적었다.
‘새롭게 2기생들이 들어 와 20명 체제가 된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아마도 이 곳이 저희들의 진정한 출발점이리라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0인 상태에서 하나씩 하나씩 쌓아 올려 가, 초심과 감사하는 마음, 겸허, 상냥함, 유대감을 잊지 않고 저희들답게 해피 아우라를 힘껏 펼쳐 보이며 모든 분들께 사랑 받는 멋진 그룹으로 성장 해 가겠습니다’
멤버들의 마음 속, 그리고 노래 속에 존재하는 나가하마 네루
9월 26일, 홋카이도 삿포로시에 위치한 라이브하우스, Zepp Sapporo에서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의 전국투어 홋카이도 공연이 열렸다.
오프닝은 모두들 걱정했던 ‘드럼 퍼포먼스’. 단 한 명도 경험자가 없는 상황에서 출발하여 조금씩 조금씩 연습을 해 온 그녀들은 무거운 드럼을 품에 안고 어려운 기술에도 도전하였다. 도전 과정에서 기기가 떨어 져 연주 할 수 없게 된 멤버들도 있었고, 콤비네이션이 제대로 되지 않아 고전한 부분도 있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연주를 끝마쳤다. ‘나가하마 네루가 없는 히라가나 케야키’가 팬들에게 받아들여질까 걱정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그녀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자신들의 무기인 ‘해피 아우라’를 의식하여 미소 지으며 퍼포먼스를 하는 것 뿐이었다.
이 날, MC 때 사사키 쿠미는 이런 말을 남겼다. 마치 다짐하는 듯한 말투였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네루쨩은 여기 없습니다. 저희는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사사키의 이 말에 객석에서는 ‘힘 내!’라는 말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 말의 뒤를 잇듯이 지금껏 들어 본 적 없을 정도로 우렁찬 성원이 그녀에게 쏟아졌다. 그렇게 성원을 보내주는 팬들 중에는 ‘나가하마 네루’라는 이름이 쓰여진 오시타올을 들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라이브가 시작되기 전에는 ‘우리를 보러 와 주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고 불안해 했던 다카모토 아야카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한 가지 확신을 얻었다.
‘우리를 믿고 지지 해 주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있다니. 이 분들이 계신다면 앞으로도 계속 노력 할 수 있어.’
이 날, 처음으로 11명이 스테이지에 서서 총 12곡을 선보였다. 포메이션이나 파트분배를 변경한 탓인지 무대 위에서 서로 부딪히거나 안무가 어긋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녀들은 시종일관 ‘해피 아우라’를 뿜어내며 앞으로 앞으로 전진해 나갔다. 특히 ‘히라가나 케야키’를 비롯한 히라가나 케야키의 오리지널 곡을 선보일 때는 부드럽고 밝은 표정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센터를 맡았던 나가하마 네루가 갖고 있던 ‘태양과도 같은 분위기’를 방불케했다.
‘영원의 흰 선’의 경우 멤버 각자가 자신의 특기나 특징을 나타내는 포즈를 취하는 구간이 있다. 이 날 공연에서 ‘영원의 흰 선’을 선보일 때, 멤버들은 각자 자신의 포즈를 취한 뒤, 전원이 뺨에 손을 포개고 눈을 감는 포즈를 취했다. 이것은 ‘자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으로, ‘네루 (※나가하마의 이름인 ‘ねる’와 잠을 잔다는 의미인 ‘寝る’가 같은 발음인 것을 이용함)가 아직 함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고안해 낸 포즈였다.
앙코르곡까지 끝나고 난 뒤, 마지막 MC 때 사사키 쿠미는 감정에 복받쳐 때때로 목이 메어가면서도 자신의 감상을 이야기하였다.
“나가하마 네루쨩 단 한명으로 시작 된 히라가나 케야키가 12명이 되고, 이토록 많은 분들께 응원을 받을 정도로 성장하였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네루쨩의 노력, 그리고 저희들은 알 수도 없을 정도의 엄청난 고생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리허설 때, 네루쨩의 빈 자리를 메워야 한다는 것이 정말로 슬펐습니다. (중략) 하지만 히라가나 케야키의 12명의 멤버들이 함께 만들어 온 역사는 사라지지 않지요. 지금껏 12명이 해 온 것들을 발판삼아, 새롭게 들어 올 믿음직한 9명의 멤버들을 더해, 총원 20명이 여러분들께 사랑 받는 그룹이, 더 큰 그룹이 되기 위하여 노력 할 생각이니 앞으로도 저희들을 응원 해 주세요.”
나가하마 네루는 그 장소에는 없었을 지 몰라도, 멤버들의 마음 속에, 히라가나 케야키의 노래 속에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처음으로 마음이 통한 30분
사실 공연 하루 전, 홋카이도로 출발하기 전에 열린 마지막 리허설 때, 나가하마 네루가 찾아 왔었다. 겸임 해제 발표 이후로 히라가나 멤버들과 만나지 못 했던 나가하마 본인이 멤버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없는 시간을 짜 내어 레슨 스튜디오를 찾은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겨우 30분. 스태프들에게 자리를 비켜달라 하고 멤버들끼리 30분간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나가하마는 멤버들에게 사과했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함께 라이브에 가지 못 해서 미안해. 나도 함께 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되어 버린 거, 어떻게 할 수 없잖아… 서로 주어진 환경을 받아 들이고 최선을 다 하자…”
나가하마는 멤버들에게 사과하며 다른 멤버들을 최대한 북돋아 주려 햇지만, 사실 가장 크게 상처를 받은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가하마 본인이었다. 그녀 역시 전국투어 기간동안 ‘내가 어중간하게 양 쪽 그룹 모두에 발을 걸치고 있는 탓에 두 그룹 모두 퍼포먼스 질이 떨어지는 거야’라고 생각 해 왔던 그녀는 투어 마지막 공연을 맞이한 날, 블로그에 이렇게 선언한 바 있다.
‘저 자신의 부족함을 통감하였기에 올 한 해는 퍼포먼스를 더더욱 갈고 닦는 한 해로 하고자 합니다. 물론 이렇게 이야기 하기 보다는 묵묵히 연습을 하다가 다른 사람들이 알아 주는 게 더 멋있긴 하지만 저는 아직 그 정도로 강하진 못 하기에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선언하고 노력하고자 합니다. 제게 있어 이번 한 해는 새롭게 시작하는 한 해로 만들겠습니다.’
그녀가 하고자 했던 말은 아마도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 해 겸임 활동에 임하겠다’는 이야기였으리라. 그리고 그런 그녀의 각오가 무색하게 곧바로 겸임이 해제 되었던 것이다. 자신에게 좀 더 힘이 있었다면 히라가나 멤버들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을 수 있었을텐데… 라고 생각하니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고, 동시에 멤버들에 대한 미안함이 가슴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히라가나 멤버들은 그런 그녀의 ‘사과’에 ‘위로’로 답했다.
“네루쨩이 사과 할 건 없어. 우리들은 네루쨩에게 감사하는 마음 뿐인걸. 우리들은 네루쨩이 안심하고 한자 케야키 전임으로 활동 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열심히 할 거야.”
나가하마는 사실 이 때 까지 히라가나 멤버들 앞에서는 항상 아무렇지 않은 척 강한 척 하고 있었다. 멤버가 자신 혼자뿐이었던 그룹에 들어 와 준 11명의 ‘후배’들을 위하여 항상 강한 모습만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강한’척’에 불과했다.
‘이 아이들은 어째서 항상 나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는 것일까. 이 다정함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이야. 이렇게나 이 아이들이 나를 사랑 해 주는데 왜 좀 더 일찍 이 아이들과 마음을 터놓지 못했을까.’
나가하마는 겸임이 해제 되어서야 비로소 다른 멤버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고, 그제서야 마음이 하나로 통했다고 느꼈다. 그리고 자신과의 이별을 눈물로 아쉬워 해 주는 멤버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저기… 케야키자카46라는 그룹은 말이야. 한자 케야키자카와 히라가나 케야키자카 2팀으로 이루어 져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내가 한자 전임이 된다고 해도 모두 같은 ‘케야키자카46’의 멤버라는 점은 변함 없는 거지… 그러니까 오늘 이렇게 헤어진다 해도 그게 영원히 헤어지는 건 아니야.”
사이토 쿄코는 나가하마의 그런 진지한 말에 즉각 반응했다.
“응. 그렇지. 악수회에서도 만날 수 있고 말이야.”
평소와 다름없는 사이토의 핀트가 나간 반응에 멤버들은 ‘쿄코가 또 저러네! ’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사이토는 이 때, 나가하마의 눈물을 멈추기 위하여 일부러 핀트 나간 얼빠진 소리를 했던 것이다.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멤버들에게 있어 지금까지는 어딘지 모르게 멀게 느껴지고, 함께 있어도 신경을 써야 했던 존재인 나가하마 네루.
그런 나가하마와 처음으로 흉금을 터놓으며 이야기 하고, 함께 웃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때,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는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12명의 멤버가 있는 하나의 그룹’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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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B가 열어버린 판도라의 상자, '프로듀스48'의 대가와 가능성
1) K팝은 프로야구, AKB는 고교야구
'K팝이 프로야구라면 AKB는 고교야구라고 할 수 있을 지 모른다'
이전, 아키모토 야스시 본인이 했던 말이다.
이 말은 그룹에 대한 비하나 자학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 프로듀서로 있는 AKB48 그룹을 냉정하게 분석한 결과였을 뿐.
'실력(가창력이나 춤 실력) 면에서는 K팝의 상대가 되지 못하지만, 인기 면에서는 충분히 비견될만하다'라는 분석이었다.
그 말을 들으면 '그건 그래'라고 수긍하게 된다.
일본에서 '고교야구'의 인기는 아직도 굳건하다.
폭염주의보 마저 발령된 무더운 날, 고시엔에 모인 소년들은 작은 공을 뒤쫓아 달리고, 투수들은 어깨가 부서져라 공을 던지고 또 던진다.
한 번의 패배가 탈락을 의미하는 생존경쟁이 2주에 걸쳐 펼쳐지는 것이다.
일본의 고교야구 제도 하에서는 '실력이 있으면 좋은 결과를 낸다'는 전제는 통하지 않는다. 프로의 세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잔혹한 게임 설정은 수 많은 불확정요소 (운)에 의해 좌우되기 마련이다.
소년들에 대한 '교육'이라는 측면에서는 말도 안 되는 엉터리요, '야구 시합'이라는 면에서 보아도 너무나도 시대착오적인 제도이지만 고교야구 팬들은 그 안에서 '드라마'를 찾아낸다.
운에 좌우되는 플레이 하나 하나에 희비를 교차시키는 소년들의 모습에서 감동을 받고, 박수갈채를 보내는 것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잔혹 쇼'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고교야구와 마찬가지로 AKB의 시스템 역시 가창력이나 춤 실력만으로 평가 받는 것이 아니다.
극장 공연이나 악수회를 중심으로 한 각종 이벤트에서 알 수 있는 '멤버와 팬간의 가까운 거리감'이라는 것이 바로 '실력' 이외의 또 다른 KPI(주요업적평가지표)가 되며, 이런 평가들이 종합적으로 반영되는 것이 AKB 총선거라 할 수 있다.
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48그룹의 KPI는 '노력'과 그 결과라고 할 수 있는 '성장' 두 가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독특한 것은 그 '노력'과 '성장'을 통해 목표로 하고 있는 곳이 '완성'이라는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니 오히려 언제나 '미완성'이라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시스템 하에서의 전제는 멤버들의 실력이 항상 '발전 도중'에 있을 것, 다시 말 해 '서투를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키모토 본인이 AKB에 대하여 '고교야구'라고 이야기 한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이다.
팬이 AKB에 기대하는 것은 '좋은 퍼포먼스'가 아니다. AKB의 팬들은 아직 '미완성'상태인 소녀들이 '노력'을 통해 '성장' 해 간다는 드라마를 즐기고, '투표'라는 형태로 그 '드라마'에 자신의 의견을 반영 해 가는 것이다.
한 편, K팝은 '프로야구'이다. K팝의 평가 기준은 철저하게 '노래'와 '춤' 실력에 맞추어져 있다.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의 K팝 팬들 역시 그런 '프로페셔널한 퍼포먼스'를 기대한다.
트와이스나 블랙핑크같은 K팝 그룹과 48그룹은 똑같이 '아이돌'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그 그룹이 갖는 의미는 굉장히 차이가 크다.
(실제로 트와이스나 블랙핑크 같은 K팝 그룹에 의해 가장 크게 피해를 본 것은 여성팬들이 많은 E걸스였다.)
2) '프로듀스48' ~K팝에 도전하다.
하지만 최근들어 이런 상황에도 큰 변화가 일고있다.
48그룹의 멤버들이 한국에 가서 K팝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고교야구 선수가 프로야구에 도전하는' 상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습은 한국의 케이블 방송국 '엠넷'에서 방송하는 리얼리티 방송 '프로듀스48'를 통해 볼 수 있다.
매회 2시간 30분 가량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에는 아키모토 야스시 역시 일본측 프로듀서로서 정식으로 협력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내용은 한/일 출신의 96명의 소녀들이 2년 반 한정으로 활동하는 프로젝트 그룹의 멤버 12명으로 발탁되기 위하여 서로 경쟁한다는 내용이다.
어떤 멤버들이 발탁이 될 지는 '국민 프로듀서'라 불리는 시청자들의 투표로 결정된다.
이 서바이벌에는 AKB는 물론이고 SKE 등 자매그룹까지 포함하여 총 36명의 48그룹 멤버들이 참가하게 되었다.
이 '프로듀스48'라는 프로그램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프로듀스 101'이라는 방송이다.
이 방송은 시즌 1 때는 걸그룹인 I.O.I를, 시즌 2때는 현재도 활동중인 보이그룹 워너원을 배출하였으며, 두 그룹 모두 크게 성공하였다.
이런 전례를 감안한다면 '프로듀스48'를 통해 새롭게 데뷔 할 새로운 유닛 역시 성공은 어느 정도 약속 된 것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아니, 선배 그룹들보다 활동 기간이 긴 것을 생각하면 더 큰 성공을 거둘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 뿐 아니라 일본에서의 활동 역시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48그룹은 이미 데뷔하여 활동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비롯하여 올 해 내로 태국, 베트남 등지에 자매그룹을 내며 해외 진출을 꾀하고 있다.
(중국에는 이미 한 번 진출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하였고, 올 해 안으로 다시 한 번 중국 진출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아시아 진출'을 노리는 48그룹에게 있어 가장 허들이 높은 시장이야말로 바로 '실력과 인기를 겸비한 K팝 아이돌들의 총본산' 한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기획을 제안 한 것은 엠넷측이라 알려 져 있지만, 이 계획을 듣고 아키모토 야스시 역시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임에 틀림 없으리라.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만만찮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과연 이 프로그램은 48그룹의 한국 진출에 있어 교두보가 될 것인가, 아니면 48그룹이 K팝에 삼켜져 버리는 결과를 낳을 것인가.
이도저도 아니라면 전혀 새로운 융화의 길을 열어 줄 계기가 될 것인가…
3) 일본 멤버들의 참패…?
해당 방송은 우선 96명의 참가자 (방송 내에서는 '연습생'이라 호칭)들이 각각 퍼포먼스를 펼치고 그 결과, 자신의 능력치에 따라 반이 나뉘어 진 뒤,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A~F 5단계)
같은 소속사에서 여러명을 내보낸 경우도, 한 명 만을 내 보낸 경우도 있다.
이 심사는 각 레벨에 맞추어 적절한 트레이닝을 하기 위함이며, 동시에 방송 개시와 함께 공개된 오리지널곡 '내꺼야'의 포지션을 나누기 위함이기도 하다.
참가자들의 능력치를 평가, 반을 나누는 것은 참가자들을 트레이닝 시켜주는 트레이너들이며, 이번 방송에는 FTISLAND의 이홍기, SISTAR의 멤버였던 소유, 래퍼 치타를 비롯하여 여러 히트곡의 안무를 짠 유명안무가 등 K팝계를 대표하는 면면들이 트레이너로 참가하였다.
한국측 참가자 57명 중 이미 데뷔를 경험 한 것은 애프터스쿨의 이가은을 비롯하여 신인 걸그룹 프로미스나인의 장규를 비롯한 3명 뿐이다. 그 셋을 제외한 54명은 각 사무소에 소속된 연습생들.
프로야구로 비유하자면 2군 선수들이나 팜에서 육성중인 유소년선수라 할 수 있는 멤버들이다.
한편 AKB그룹 참가자들은 39명으로, AKB48에서 18명, HKT48에서 10명, NMB48에서 6명, NGT48, SKE48에서 각각 2명씩 참가하였다.
그리고 이 중에는 올 해 열리 AKB48그룹 선발 총선거에서 1위를 차지한 마츠이 쥬리나나 3위를 차지한 미야와키 사쿠라, 9위인 야부키 나코, 10위인 다나카 미쿠, 12위인 다카하시 쥬리 등 쟁쟁한 멤버들이 포진해있다.
물론 인기 멤버들 뿐 아니라 총선 권외 멤버들도 다수 참가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권외였던 멤버는 총 12명, 전체 참가자의 약 1/3에 달하는 수치이다.
이를 고교야구에 비유하자면 강호학교에서 중견급 학교까지 고르게 참가하고 있는 셈이다.
에피소드 1, 2에선 참가자 96명이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평가를 받는 장면이 방영되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측 참가자들은 참패하였다.
48그룹 참가자들 대부분은 자신만만하게 퍼포먼스를 선보였지만 트레이너들로부터는 혹평만을 들을 뿐이었다. 심지어 일본측 참가자들이 선보인 곡 중 대부분은 본인들의 오리지널 곡들이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AKB그룹 내에서 가창력으로는 호평을 받는 오다 에리나 (총선 60위)나 AKB의 댄스 콘테스트에서 우승을 한 나카노 이쿠미 (권외)가 함께 선보인 퍼포먼스에 대해서도 트레이너들의 혹평이 이어질 정도였다.
트레이너들 중에서도 카라의 '미스터' 안무를 짠 안무가, 배윤정씨의 혹평이 두드러졌다.
'오다가 노래 부르는 방식은 옛날식', '솔직히 말해서 네(나카노)가 댄스 콘테스트에서 우승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 정도 레벨이라면 스테이지 위에 계속 서는 것 조차 힘들다'
이렇듯 심사는 긴장된 분위기에서 이어졌다.
4) ‘문화가 다른거야.’
이런 긴장된 분위기는 모토무라 아오이와 이마나 미나 등 HKT48의 멤버 7명이 무대 위에서 자신들의 곡 '멈추지 않는 관람차'를 선보였을 때에 정점에 달했다.
상술한 배윤정 트레이너는 아예 질린 듯한 표정으로 멤버들에게 질문하였다.
'지금 일본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거지? 그럼 이미 일본에서 오디션은 통과 했다는 건데, 대체 뭘 보고 뽑힌거야? 너희들에게 뭔가 장점이 있어서 뽑혔을 거 아니야. 사실 나는 그걸 잘 모르겠어. 정말 기묘하네.'
그런 트레이너의 말에도 무대 위의 멤버들은 그저 미소를 지을 뿐.
하지만 배윤정 트레이너의 이 말은 단순한 괴롭힘이나 화풀이가 아니었다. 그녀의 질문은 이어졌다.
'K팝 아이돌들은 칼군무로 유명하잖아. 일본에서는 칼군무가 중요하지 않아?'
이런 질문에 이마다가 입을 열었다.
'춤을 딱딱 맞추는 것 보다는, 일본 아이돌들은 애교가 더…'
이 말에 배윤정 트레이너가 납득한 듯 대답했다.
'아, 이게 문화 차이구나'
배윤정 트레이너의 이 반응은 비아냥이 아니었다. 실제로 또 다른 트레이너인 소유 역시 필사적으로 '문화의 차이'라 역설하며 일본 참가자들을 두둔하려 했다.
어쩌면 '문화의 차이'라는 말이야말로 이 상황을 잘 나타내는 말일지도 모른다.
'미완성'인 상태에서 특유의 가치를 찾아내는 48그룹과, 항상 완성형을 목표로 하는 K팝 사이에는 평가 기준이 확연히 다르기 빼문이다.
실제로 이 광경을 지켜보던 48 그룹 멤버들 역시 입을 모아 이렇게 이야기 하였다.
'우리들은 춤이나 노래를 선보인다기보다는 즐거움을 보여드리는 게 일이지…' (무토 토무)
'우리들은 그런 (즐거움을 어필하는) 엔터테인먼트라는 것을 강조 해 나가는 수 밖에 없겠네' (이와타테 사호)
'춤을 못 춰도, 노래를 못 해도 인기 있는 멤버는 인기가 있으니까…' (시노자키 아야나)
'문화가 다른거야…' (코지마 마코)
물론 아무리 문화가 다른 것이 사실이라 해도, 이번 경연의 룰은 '퍼포먼스 능력'을 기준으로 하는 K팝이 그 기준이다.
아무리 예상은 했다고 해도, 48그룹 멤버들 대다수는 곧바로 높은 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5) 마츠이 쥬리나와 미야와키 사쿠라
처음으로 퍼포먼스를 선보인 뒤, 48그룹 멤버 대부분이 혹평을 받았지만, 개중에는 시로마 미루(B반)나 다카하시 쥬리 (B), 코지마 마코 (B), 이와타테 사호 (B)처럼 상위 클래스에 들어 간 멤버도 있었다.
그리고 멤버들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자기 스스로 '댄싱 히어로'를 재즈풍으로 어레인지하여 선보인 다케우치 미유였다.
가창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A반에 배정된 다케우치는 사실 지금까지 AKB 총선거에 7번 참가하여 단 한 번도 랭크인 하지 못 한 권외멤버이다. 다시 말 해 '인기가 없는' 멤버인 것이다.
일본에서는 제대로 발휘되지 못 했던 실력이 다른 장소에 와서 비로소 인정을 받은 셈이다.
그리고 이런 '일본 멤버들의 도전'에 있어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룹 내 인기 최상위권에 위치한 마츠이 쥬리나와 미야와키 사쿠라였다.
둘 중 먼저 등장 한 것은 마츠이.
그녀는 이타노 토모미의 솔로곡 '디어 J'를 선곡하고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당당하게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행동거지 하나에도 당당함과 위엄이 있었다.
트레이너 중 한 명은 그런 그녀를 보고 '지금까지 본 일본 연습생 중 가장 춤을 잘 추었다'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결과는 B클래스였다.
마츠이는 웃으며 당당하게 무대를 뒤로 했지만 결국 A는 받지 못했다. 조금 뒤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마츠이는 이 방송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다.
에피소드 3 이후로는 전혀 눈에 띄지 않다가 결국 중도 하차하기에 이른다.
7월에는 그녀가 컨디션 불량으로 휴양한다는 발표가 나오게 되는데, 이 방송 역시 그녀의 컨디션 불량에 분명히 일조했을 것이다.
라이벌이나 후배들에게 실력면에서 추월을 당하고, 아직 데뷔조차 하지 않은 한국 연습생들의 압도적인 실력을 보며 언제나 약한부분을 보이려 하지 않는 그녀의 프라이드가 어느 사이엔가 너덜너덜 해 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마츠이에 비해 미야와키 사쿠라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무대 뒤에서 마츠이의 퍼포먼스를 보고 있던 그녀는 엄청나게 긴장하고 있었다.
이 방송은 애초부터 미야와키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다. 다른 48그룹 멤버들에 비해 분량도 많았고, 등장 순서도 마츠이의 뒤였다.
그 뿐 아니라 본인의 동기부여도 대단했다. 자신만만했던 마츠이와는 달리 자신은 실력이 없다고 토로 하는 모습이 엿보였다.
실제로 녹화가 시작되기 전에 찍은 인터뷰에서는 'HKT48에서 7년간 활동 해 왔지만 실력은 없는 편이라 생각해요. 그렇기에 항상 의문을 갖고 있었고, 불안했습니다. 실력이 늘지 않은 채 시간만 흘러 가는 것이 속상했어요.' 라고 이야기 하기도 하였다.
이 방송의 한국측 프로듀서인 한성수씨가 그녀에게 '총선거에서 상위권인데 왜 이런 위험부담을 갖고 도전하려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도 그녀는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게, 제 실력 덕분인지 아니면 여기가 일본이라 가능했던 일인지 모르겠어요', '이 방송을 통해 제 인생이 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이야기 했다.
'겸손'하다못해 '탐욕'에 가까워 보일 정도였다.
그런 그녀가 선보인 것은 AKB48의 곡, '검은 천사'.
그녀의 퍼포먼스에 대해 트레이너들의 평가는 첨예하게 갈렸다. 이홍기를 비롯한 몇몇은 B가 맞다고 이야기했지만 결과는 A였다.
평소에는 항상 엄격한 모습을 보여 온 배윤정씨가 '네가 1위 후보인 이유를 잘 알겠다'는 감상을 말 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녀가 A반에 들어 간 데 대해 이견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A랭크에 있었던 한국 연습생 중 일부도 '사쿠라가 A라는게 이해가 안 된다'고 이야기 했으며, 한국 시청자들 역시 마찬가지 의견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방송 초창기에 이미 마츠이와 미야와키 사이에 격차가 생겼다는 점이다.
일본 팬들의 인기투표에서는 마츠이에게 패했던 미야와키가 실력을 중시하는 한국에서 역전 해 냈던 것이다.
뒤이어진 한국 시청자들의 인기투표에서도 미야와키는 톱 자리에 섰고, 마츠이는 4위에 그쳤다.
그리고 이런 격차는 점점 벌어져, 결국 두 사람 사이에선 명암이 확연히 갈리게 된다.
6) 48그룹의 '대격변' 가능성
에피소드 1에서 2 도중에 이르기까지 꽤 긴 시간동안 한일 참가자들의 평가가 실시되었다. 이 기사에서는 48그룹 참가자들에게 초점을 맞추었지만, 사실 누가 보아도 실력면에서는 한국 연습생들의 압도적인 우위라고 할 수 있었다.
아키모토 야스시의 비유를 빌자면 '프로야구 2군 팀과 고교야구 선발팀이 경기를 하여, 2군팀이 압승을 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심지어 48그룹 참가자들이 자신들의 오리지널곡으로 도전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고교야구팀이 금속배트를 사용했음에도 졌다고 해야 할 지 모른다. 엄청난 참패이다.
물론 실력면에서 한국 참가자들이 압승을 거두리라는 것 정도야 쉬이 예상 할 수 있었겠지만, 그런 예상이 현실로 닥친 것이다.
그런 잔혹하다고까지 이야기 할 수 있는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다 보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이제 겨우 에피소드 2 까지밖에 보지 않았지만, 프로그램의 기저에 깔린 아키모토 야스시의 전략과 48그룹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 읽히는 듯 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AKB는 고교야구'라고 비유를 할 정도이니, 이 프로그램에서 48그룹이 참패를 하리라는 것은 이미 아키모토 본인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기획에 멤버들을 참가시켰다는 것은, 그가 이 프로그램을 '48그룹의 대전환기'로 보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실제로 그가 프로듀스하는 그룹들 중 현재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48그룹의 라이벌 그룹인 노기자카46와 케야키자카46이다. 그 뿐 아니라 TV 리얼리티방송 '라스트 아이돌'을 통해 파생된 여러 그룹들도 서서히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한 편 AKB그룹은 후지TV에서 중계하는 총선거 시청률이 매년 하락하고 있고, 그룹 전체를 통틀어 보아도 사시하라 리노의 뒤를 이을만한 인재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48그룹들이 전국 각지에서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고는 있지만, 그룹 전체적으로는 갑갑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CD 판매량의 의미가 퇴색되어 버린 결과, 악수권 판매를 통해 오리콘 차트를 해킹해 온 효과조차도 시들해져만 가고 있다.
이런 고착상태에서 '프로듀스48'는 어쩌면 48그룹에게 있어 마지막 타개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단순한 타개책이 아닌 '판도라의 상자'라고도 볼 수 있다.
지금껏 '팬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축으로 활동 해 온 48그룹이 노래나 춤 실력으로 K팝과 싸워나가려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키모토 야스시가 이 기획에 참가 한 것은 어쩌면 K팝을 피하기만 해서는 글로벌 전개를 해 나갈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츠이 쥬리나의 참패와 그에 따른 휴양은 그 대가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한편, 미야와키는 착실히 힘을 내고 있고, 다케우치처럼 지금까지는 발휘하지 못했던 자신의 실력을 선보이는 멤버도 있다.
아마 에피소드 3 이후로도 의외의 면이 각광을 받는 경우도 나올 것이다.
https://gendai.ismedia.jp/articles/-/56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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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화
정신 없이 달려 온 여름
2015년 8월 21일. 노기자카46의 뒤를 잇는 ‘사카미치 시리즈’의 제 2탄 그룹으로서 아이돌 그룹 ‘케야키자카46’가 새로이 결성되었다. 하지만 그 최종심사 직전, 한 후보자가 오디션을 사퇴 해 버리는 일이 벌어진다.
그 소녀의 이름은 나가하마 네루. 그녀의 존재를 계기로 새로운 그룹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이 시동을 걸게 된다. 나가하마 네루를 유일한 멤버로 하는, 소속 인원이 단 한 명 뿐인 아이돌 그룹이 결성 된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6년 5월 8일, 추가멤버 오디션에 합격한 11명이 그룹에 합류, 히라가나 케야키는 새로운 걸음을 떼게 된다. 하지만 그 직후 나가하마는 ‘겸임’이라는 명목으로 한자 케야키의 멤버로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데뷔 싱글 ‘사일런트 마조리티’의 폭발적인 히트에 힘입어 한자 케야키는 급속도로 성장, 히라가나 케야키는 한자 케야키의 그늘 안에서 빛을 보지 못하는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그녀들은 2017년 봄부터는 전국의 라이브하우스를 돌며 단독 투어를 시작, 조금씩이나마 성장 해 간다. 그리고 같은 해 여름, 히라가나 케야키의 전국 투어는 일단 중단, 한자 케야키를 중심으로 하는 아리나 투어에 함께하게 된다.
사사키 쿠미가 진심으로 소리 쳤던 날
2017년 8월 2일. 효고현 고베시의 한 대형 홀에서 케야키자카46의 전국투어가 시작되었다. 이 투어는 투어 직전에 발매 된 케야키자카46의 첫 앨범 ‘새하얀 것은 더럽히고 싶어 져’의 수록곡들을 중심으로 한 투어였다.
히라가나 멤버들 역시 이 투어의 첫 날부터 함께 하며 앨범에 수록된, 한자 케야키와의 합동곡인 ‘태양은 비춰주는 사람을 고르지 않아’ 등 여러 곡들을 선보였다.
그리고 그녀들이 선보이는 곡들 중에서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신곡인 ‘영원의 흰 선’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다들 먼저 포기하곤 해.
‘그래도 난 열심히 했어’라고 변명하면서
이 흰 선 그렇게까지 길게 긋지는 못 해
한계에 달하기 한참 전에
힘껏 뻗었던 손을 내려 버리고 말아
여기서 끝내도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꿈과 석횟가루는 아직 남아 있잖아?
아무도 가 보지 못 한 ‘영원’은 바로 이 앞인걸.’
꿈이라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간단히 이룰 수 없는 것, 하지만 꿈을 향해 끊임 없이 걸어가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그런 메시지가 담긴, 마치 응원 해 주는 듯 한 곡이었다.
이 곡의 간주 부분 안무는 다른 사람들에게 추월 당하면서도 각자 자신의 최선을 다 해 필사적으로 달리던 멤버들이 서서히 한 줄로 늘어서서 결국 하나의 ‘선’이 되어가는 모습을 표현하는 안무였다. 이것은 멤버 각자가 자신의 꿈을 좇아 가면서도 결국 12명의 멤버들이 단결하여 자신들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의 존재의의를 상징하는 것만 같은 안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당시 그녀들은 그 안무처럼 ‘하나의 그룹으로서 일치단결하’려는 의식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
이틀에 걸친 고베 공연이 끝난 직후인 8월 5일. 세계 최대의 아이돌 페스티벌 ‘도쿄 아이돌 페스티벌 2017’이 개최되었다. 그리고 이 무대에 한자/히라가나 케야키자카가 각각 참가하게 되었다. 그리고1년 전, 갓 활동을 개시한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은 바로 이 이벤트에서 ‘선배’인 한자 케야키의 퍼포먼스를 처음으로 보았었다.
처음으로 TIF무대에 선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 첫 공연은 이래저래 실수가 많은 공연이었다. 본디 전국투어용으로 만들었던 안무를 TIF 버전으로 수정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기에 혼란해 했었던 것이다. 특히 라인댄스처럼 일렬로 늘어서야 하는 장면이 많은 ‘영원의 흰 선’ 같은 경우는 포지션이 미묘하게 어긋나거나 타이밍이 안 맞는 등, 완성도가 많이 떨어졌다.
예전부터 한자 케야키의 팬이었고, 이 날 MC에서 ‘작년엔 이 무대에 선 한자 선배님들을 보기만 했는데 올 해는 저희가 이 무대에 설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고 이야기 했던 사사키 쿠미는 본 공연때 주변 상황을 본 뒤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자신들에게 있어 너무나도 소중한 이 스테이지에서 선배들처럼 정연하게 퍼포먼스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분했던 것이다.
사사키가 잔뜩 풀이 죽어 대기실로 돌아 가려 했을 때, 믿을 수 없는 말들이 그녀의 귓가로 날아들어왔다. 다른 멤버들이 ‘오늘 엄청 더웠어’. ‘땀 때문에 앞머리가 엉망이야’, ‘아, 춤 틀렸네.’ 라는 말들이었다.
이런 말들을 들은 사사키는 폭발 해 버리고 말았다.
‘아니 너희들은 분하지도 않아?!’
눈물범벅으로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그렇게 일갈하는 사사키의 모습에 대기실 안은 한 순간 얼어붙었다.
그 한마디는 언제나 온화했던 그녀가 처음으로 멤버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가감없이 드러 낸 순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룹의 앙상블
사사키 쿠미는 어릴 때부터 우등생이었다. 선생님의 말씀은 반드시 지켰고, 4살 때부터 배웠던 발레는 ‘매일 해야만 하는 일이 없어지만 나태해진다’는 이유로 중 3이 될 때 까지 1주일에 7일 빼놓지 않고 다녔다.
발레 뿐만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부터는 학교의 취주악부에 들어 트럼펫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악단 전원이 하나가 되어 앙상블을 이뤄야만 하는 취주악부의 세계는 그녀의 성격과도 너무 잘 맞았다고 한다.
중학생이 된 뒤로는 취주악을 그만두었지만,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다시금 취주악부에 들어갔다. 고교 취주악부에서는 콩쿨에 나가기 위하여 매일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고, 때로는 합숙까지 하며 매일매일 부 친구들과 함께 연주하는 것이 너무나도 즐거웠다는 그녀. 그토록 충실했던 매일매일은 수험을 위하여 부 활동을 은퇴할 때 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 가고 보니 자신이 주변 사람들에게서 붕 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장이나 옷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워하는 동급생들을 따라 가 보려 열심히 노력해서 또래 여대생처럼 단장도 해 보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파장이 맞지 않아 결국 서서히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리고 결국은 학교에서는 수업만 받고, 수업이 끝나면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매일매일이 찾아왔다. 예전 발레가 그러했듯이 자기 자신을 잡아 줄만한 존재도 없었으며, 취주악처럼 동료들과 유대감을 느끼게 해 주는 것도 없었다.
그녀의 그런 메마른 매일을 바꾸어 준 것이 바로 히라가나 케야키자카였다. 2016년 5월, 그룹의 추가멤버 오디션에 합격, 멤버가 되었을 때 그녀는 이미 20살, 대학교 3학년이었다.
사실 이 때만 해도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의 연예계 활동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아버지는 딸의 연예계 활동에 긍정적이었지만 어머니는 ‘네가 하겠다면 협력이야 하겠다만, 응원은 안 할 거야. 대학교 졸업하면 아이돌 같은 건 그만두고 제대로 취직 하는 거다?’라고 이야기 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어머니와 척을 지면서까지 선택한 아이돌의 길은 어떻게 보자면 그녀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선택한 것이라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 중에서 최연장자였던 데다가, 아이돌 생활에 대한 의욕도 있었던 그녀는 활동 초기부터 그룹을 앞장서서 견인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집에서는 막내로, 다른 사람에게 이래라 저래라 지시를 하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그녀가 그룹 내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방법은 어딘가 좀 독특한 부분이 있었다.
‘자 그럼 한 번 더 해 보자. 하나~ 둘~’
취주악부에서 악기 톤을 조율하듯이 전체를 하나로 취합하는 것이 그녀의 리더십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온화한 분위기는 그룹의 분위기에도 반영되어, 히라가나 케야키를 나타내는 이미지 중 하나로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히라가나 케야키의 단독 라이브하우스 투어가 시작 된 뒤로는 원진의 구호나 스테이지에서의 MC를 맡게 되는 경우도 늘어 났다. 초창기부터 꾸준하게 연예계 생활을 반대하던 그녀의 모친은 첫 공연에 직접 와서 딸의 모습을 본 뒤, 이렇게 이야기 했다 한다.
‘저기, 다른 팬분들이 들고 있는 펜 라이트라는 거, 엄마도 갖고 싶어. 아, 그리고 다음 라이브도 갈게’
그룹에 가입 한 지 1년 가까이 지난 시점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지금까지 내가 고른 길을 잘 걸어 왔구나’라고 느꼈다고 한다.
히라가나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들어 왔으면 좋겠어.
우등생스러운 성격, 취주악부에서 배운 앙상블 의식. 사사키 쿠미라는 사람을 이야기 하는 데 있어 빼 놓을 수 없는 핵심적인 단어들이다. 그런 그녀였기에, 그녀의 그룹이 TIF에서 보여 준 부정확하고 허접한 퍼포먼스는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목소리를 높여 화를 냈던 것이고, 다른 멤버들도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자신들의 실수를 다시 한 번 반성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다들 뭐가 중요한지에 대해 생각이 다른 것 같아. 시간이 없다는 것은 잘 알지만, 공연을 앞두고 화장에만 너무 신경 쓰는 아이도 있고 말이지. 이거 어떻게 해야 할까?”
불현듯 카토 시호가 이렇게 이야기 했을 때, 사사키의 대답은 이랬다.
“히라가나를 더 큰 그룹으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만은 다들 같을 거라 생각해. 하지만 각자 품고 있는 꿈이 다른데다가, 꿈을 이루기 위해 취하는 방법도 다른 거지.”
여름에 열린 케야키자카46의 첫 전국 투어 기간동안 사사키 쿠미와 카토 시호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언니’격인 존재인 여성 스탭과 빈번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 주제는 언제나 ‘어떻게 해야 이 그룹이 더 좋아질까’라는 것.
멤버 중에는 사사키 쿠미처럼 흔들림 없는 퍼포먼스를 추구하는 멤버가 있는 반면, ‘우리는 아이돌이니까 무엇보다 귀엽게, 객석을 향해 전력으로 어필을 하는 것이 팬 서비스이다’라고 생각하는 멤버도 있었다. 물론 두 가지 의견 모두 맞는 의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사사키 쿠미는 자신의 방식을 다른 멤버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최대한 단순하면서도 간결하게 멤버들을 독려했다.
“얘들아, 최선을 다 하자!”
라고.
8월 2일에 시작된 투어는 전국 6개 도시에서 11번의 공연을 한 뒤, 8월 30일에는 치바현 마쿠하리 멧세에서 마지막 공연을 맞이하였다. 한자 케야키에게 있어서도, 히라가나 케야키에게 있어서도 너무나도 진한 한 달이었다.
히라가나 케야키는 매 공연마다 멤버들끼리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 회의 때마다 나온 이야기는 ‘어떻게 해야 팬 여러분을 웃게 해 드릴까’, ‘우리가 선보이는 곡이 적은데, 어떻게 하면 팬분들께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멤버들의 의욕과 모티베이션을 지탱 해 준 것은 바로 멤버들이 투어를 앞두고 정한 ‘목표’였다.
‘히라가나 케야키 2기생은 히라가나를 좋아하는 아이가 들어 왔으면 좋겠어. 우리가 그런 그룹을 만들자’는 목표.
예전 ‘추가 멤버 오디션’ 개최 소식을 듣고는 자신들이 ‘전력 외 통보’를 받았다고 생각하여 격렬하게 거부반응을 보였던 히라가나 멤버들은 어느 사이엔가 강해 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이 그런 마음으로 한창 투어를 하고 있을 때, 바로 그 ‘히라가나 케야키 2기생’이 될 멤버들의 최종 오디션이 열리고 있었다. 바로 8월 13일의 일이다.
최종 오디션 결과 히라가나 케야키에 들어오게 된 것은 총 9명.
새로운 멤버들의 가세와 더불어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는 총원 21명의 그룹이 되어 새로운 출발점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출발에 맞추어 투어 막바지에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첫 주연 드라마 ‘리:마인드’의 방영 소식이 발표 되었다.
사실 멤버들은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투어 일정에도 짬짬이 시간을 내어 연기 워크숍에 다니는 등, 드라마를 대비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정신 없이 달려 온 그 해 여름. 그리고 그녀들의 그 소중한 시기를 상징하는 곡이 바로 ‘영원의 흰 선’이었다.
하지만 꿈을 향해 흰 선을 그리며 똑바로 달려 온 12명의 멤버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미래였다.
그룹의 유일한 오리지널 멤버이자, 히라가나 케야키에 있어 누구와도 바꾸기 힘든 존재였던 나가하마 네루가 그룹을 떠나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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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지는 기회가 적더라도 ‘한 순간’에 승부를 건다
2018년 3월, ‘노기자카 공사중’을 통하여 20번째 싱글 ‘싱크로니시티’의 선발멤버가 발표되었다. 야마시타는 데뷔 이후 처음으로 선발에 진입, 그것도 프론트 멤버로 발탁되었다. 이 때의 심경에 대해 그녀는 오피셜 블로그에 이렇게 적은 바 있다.
‘솔직히 이 자리가 얼마나 무거운 자리인지를 생각하면 불안할 뿐입니다. 하지만 저 자신의 성장으로 이어 질 수 있는 크나큰 기회를 받은 데 대해 감사하며, 전력을 다 하겠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해 드릴 수 있는 약속은 단 한가지,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것 뿐입니다. 선배님들, 스태프 여러분의 힘을 빌리기는 하겠습니다만, 더욱 더 크게 성장 해 나가고 싶다고 절실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저를 지켜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음악 방송 녹화 땐 어디를 봐야 하는지, 토크중에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 지… 3기생으로 가입 한 지는 1년 반 이상이 지났지만 선발로서 활동하는 것은 처음이라 모르는 것 투성이였던 야마시타. 하지만 선발에 뽑힌 것을 계기로 본인의 의식에 변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싱크로니시티는 선발멤버가 21명이나 되다 보니 사실 뮤직비디오에는 거의 비춰지지 않았어요. 처음으로 프론트에 섰음에도… 엄마도 ‘뮤비에 거의 안 나오더라’며 실망하셨지요. (웃음) 뭐 그거야 제 실력이 부족하고 인지도가 낮으니 제 탓인데 말입니다. 하지만 음악방송에서 곡을 선보일 때, 후렴구 안무 중에 원을 이루는 안무가 있는데 단 한 순간이긴 하지만 제가 센터에 서는 때가 있거든요. 그리고 그 때는 의외로 카메라가 저를 잘 잡아주시곤 했지요. 제 팬분들께서 그 순간을 일컬어 ‘슈퍼 미즈키 타임’이라고 부르시기도 합니다만 (웃음)”
처음으로 음악방송에 나갔을 때는 너무 긴장을 해서 표정이나 춤이 엄청 딱딱던 야마시타, 하지만 ‘센터에 선 그 한 순간에 목숨을 건다!’고 생각하니 의욕이 불타올랐다.
“춤 실력면에서는 아무리 해도 선배님들에게 이길 수 없지만 표현 하는 방법이라면 사람마다 각자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기에 저는 저만의 방식으로 표현을 해 보자는 마음에 여러 모로 연구를 해 봤어요. 그리고 그 결과 그런 저만의 표현을 좋아 해 주시는 분들이 많이 늘어 났지요. ‘후렴구에서 잠깐 센터에 섰을 때 보여 준 모습에 반했다’던가 ‘검은 머리 멤버’라는 식으로 기억 해 주시는 분들도 많아졌고, 실제로 악수회까지 와 주시는 분들도 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제 팬이 되어주시는 계기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찾아 올 지 알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어요. 대중에게 노출 되는 기회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런 ‘계기’가 생길 가능성도 높아 지는 것이기에 자연스레 선발로 활동을 하면 그런 계기도 많아지잖아요. 센터에 서고 싶다던가 프론트에 계속 남고싶다던가 하는 생각은 별로 없지만, 역시나 여러 분들의 눈에 들 수 있는 선발에는 계속 남고 싶습니다. 선발에 들고 나서 그런 생각이 더 강해졌어요.”
딜레마를 안은 채, ‘이것이 내 천직이다’라고 믿는다.
올 해 8월에 발매된 노기자카46의 21번째 싱글 ‘내 생각대로 하자! (이하 ‘지코츄’)’에서도 야마시타는 프론트 멤버로 발탁되었다. 오오조노 모모코와 요다 유우키가 센터 자리에 선 ‘니게미즈’로부터 약 1년이 지난 지금 그녀의 심경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1년이라는 시간을 겪으면서 정말 여러 모로 변했습니다. 요즘은 여러 가지 일들을 경험하고, 개인 자격으로 버라이어티 방송에 나가기도 하고, 출연한 영화도 곧 개봉하지요. 아직 발표하지는 못 하지만 조만간 발표하게 될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제서야 조금이나마 ‘나 열심히 하고 있구나’라는 실감이 들어요. 1년 전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안 돼’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런 자기 혐오는 많이 없어졌습니다. 물론 선발에 들고, 프론트에 서게 되며 역시 선배님들과의 레벨 차이가 너무 절실하게 느껴져서 ‘나 이대로 여기 서 있어도 되는걸까?’라는 생각을 하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지금은 그런 부정적인 감정보다는 즐거움이 더 큽니다. 그렇다고 자신이 생긴 것 까지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고민이나 우울해 하는 건 조금은… 뭐, 아예 안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웃음) 줄긴 했어요.”
조금이나마 어른이 된 것인지, 예전에 비해 그렇게까지 깊이 받아들이지는 않게 되었다는 그녀. 오오조노나 요다, 쿠보 시오리 같은 동기들에 비해 ‘아이돌성’ 면에서 뒤쳐진다고 하는 그녀는 자신의 아이돌로서의 재능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저는 아이돌로서의 재능이 없어요. (웃음) 아이돌에 어울리냐 아니냐를 따질 때 중요한 것이 ‘애교’가 있느냐 아니냐라고 생각하거든요. 기본적으로 이 직업은 사랑을 받는 게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생각 해 보세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이 일인 직업이란 거, 아이돌 정도 말고는 없잖아요. 그렇기에 아이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사랑을 받느냐하고 생각 하는 것이지요. ‘더 귀여워진다’던가 ‘토크 능력을 갈고 닦는다’ 등 아이돌 활동을 위해 노력 하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그 중에서도 ‘사랑 받기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특히 힘든 일인 것 같아요.”
그녀의 말마따나 ‘아이돌성’이라는 능력, 다시 말 해 ‘사랑 받는 능력’을 정하는 데에는 본인이 타고 난 소질이 중요하며, ‘노력’으로 커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야마시타 역시 그 점을 깨닫고는 큰 쇼크를 받고 ‘나는 정말이지 아이돌이랑 어울리지 않아. 이런 내가 어떻게 아이돌이 된 걸까?’라고 고민했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초등학생 때부터 동경 해 왔던 그녀는 자신 나름대로의 아이돌상, 어쩌면 미학이라 할 수도 있는 신념을 갖고 있다.
“아이돌, 혹은 우상에 대한 동경이나 신념이라는 면에서는 그룹 멤버들 중에서도 강한 편이라 생각해요. 노기자카46가 일반적인 아이돌 그룹과는 살짝 거리가 있는 그룹이기에 오히려 멤버 각자가 모델, 배우 등 각자의 분야에서 활약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이런 그룹은 사실 굉장히 보기 드물다고 보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아이돌’을 좋아하는 저는 저만의 ‘아이돌’ 노선을 가고자 합니다. 지금은 여러 분야의 일들을 경험하고 있지만, 제게 있어 저는 어디까지나 ‘아이돌’이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아이돌을 졸업 한 뒤에는 이런 일을 해 보고 싶다’던가, 미래의 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매사에 타협하지 않고 뜨겁게 정열을 불태우면서 스토익하게 아이돌 활동에 전념하는 그녀. 그런 그녀의 모습은 마치 수도승의 그것과도 닮았다. 그렇다면 그녀가 어째서 이렇게까지 ‘뜨거워 질 수 있’는지, 좌절하지 않고 노력 할 수 있는 지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역시나 엄마의 영향이 크다고 봐요. 저희 엄마는 완벽주의자셔서 초등학생 때 시험에서 95점을 받아도 ‘왜 100점을 못 받은 거야?’라고 하시곤 했어요.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왜 1등을 못 했냐고 하셨죠. 외동이기도 하고 기대도 많이 하셨었기에 ‘1등이 되어야 해’, ‘더 열심히 해야 해’ 라는 부담이 강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운동도 못 하고 서예 같은 것을 배우러 다니지도 않았기에 평가 받을 수 있는 것이 ‘성적’밖에 없었어요. 또 저는 요령 좋게 공부 하는 타입도 아니고 한 만큼만 성적이 나오는 타입이기에 우직하게 노력 하는 수 밖에 없었는데요, 어린 나이에도 ‘이러다 보면 언젠간 한계에 다다르겠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스스로에 대해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게 분해서 ‘언젠간 반드시 1등이 되어서 칭찬 받아야지’라며 근성이 발동되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녀의 그런 지기 싫어하는, 뜨거운 성격은 결국 자신의 콤플렉스로 되돌아 왔다. 그리고 그녀의 그 콤플렉스는 아이돌이 된 지금도 그녀를 괴롭히고 있다고.
“아마도 아이돌적으로는 제 성격이 안 맞는 것이겠지요. 딱 봐도 귀여운 맛이 없잖아요. 지켜주고 싶은 마음도 안 생길거고… 그렇기에 전력을 다 해 아이돌로서의 자신을 연기하려고 하지만, 그러다 보면 ‘뭔가 귀여운척 한다’는 식으로 오해를 받곤 해요. (웃음) 딱히 저를 좋아 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그런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제가 생각하는 ‘아이돌 다운’ 모습에 충실하려는 것 뿐인데 말이지요. 하지만 역시 너무 힘이 들어 가거나, 선을 넘어버리는 경우는 발생합니다. 노기자카46는 청순한 아가씨 이미지가 강한 그룹이다 보니 저 같이 ‘근성’과 ‘정열’로 위로 올라가려 하는 타입은 그룹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평소 제 모습을 보여드리기에는 아무런 귀여운 맛도, 재미도 없는 인간이다 보니 역시 ‘아이돌답게 행동해야 한다’던가 ‘귀엽게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은 저도 모르게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힘이 들어 가는 것이겠지만요.”
야마시타에게는 평소의 자신과 아이돌로서의 자신을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스위치’가 있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자신이 ‘아이돌 모드’에 들어갔다고 느낄 때는 역시나 ‘힘이 들어 갔을 때’라고.
“저는 온 오프가 확 갈리는 사람이에요. 스위치로 왔다갔다 걸 이랄까요. (웃음)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이돌로서의 저는 성립하지 않아요. 평소 야마시타 미즈키라는 사람과 아이돌인 미즈키쨩은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니까요. 평소 제 모습은 아무리 자도 항상 졸리고, 아무리 쉬어도 항상 피곤하며,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집 안에 틀어박혀 있는 ‘매사 귀차니스트’ 타입이에요. (웃음)”
사실 아이돌 중에 그런 ‘온/오프 스위치’를 갖고 있는 사람은 그리 드물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돌들이 ‘진정한 내 모습을 봐 달라’던지 ‘저는 꾸미지 않아요’라고 어필 하는 가운데, 그녀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스스로가 ‘저는 온 오프가 확연히 다릅니다’라고 이야기 한다. 그렇게 보자면 그녀는 꽤나 특이한 케이스라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런 그녀의 말 속에는 ‘평소와는 달리 아이돌로서 최선을 다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을 지켜 봐 주세요’라는 그녀의 본심이 숨겨져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 해 보면 의문이 생긴다. 때로는 ‘온/오프 스위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문득 아이돌로서의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보게 되는 경우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다.
“그럴 때는 저 자신에게 ‘내 천직은 아이돌’이라고 세뇌를 해요. 기본적으로 금방 질리는 성격이다 보니 뭘 해도 그리 길게 이어지지가 않는데요, 그런 제가 이렇게나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저라는 사람, 아이돌이 잘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이돌은 여러 장르의 일들을 경험 할 수 있는데다가, 악수회를 통해 많은 분들과 만날 수 있잖아요. 그게 정말 즐겁거든요. 요 전에도 엄마한테 ‘아이돌 정말 즐거워’라고 말 했더니 ‘그래? 잘 됐네. 그렇게 보면 너는 아이돌이 잘 맞는 것 같기도 해’라고 해 주셨어요. 엄마한테서 그런 말 들은 건 그 때가 처음이었지요.”
‘매사에 전력을 다 해서 귀여운 맛이 없다’, ‘아이돌은 무엇보다도 사랑 받는 게 가장 중요하기에, 애교가 없는 나는 아이돌로서의 재능이 없다’ 라며 자조하는 야마시타. 하지만 사실 아이돌에게 있어 ‘사랑 받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덕목이 있다. 그것은 바로 ‘보는 사람을 열광 시키는 재능’이다. 그것은 단순히 얼굴이 예쁜 것 뿐 아니라 그 아이돌이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그 사람의 내면과 인생에 대한 마음을 담고 있고, 그런 진정성이 보는 이들을 매료시켜, 자신의 주변에 사람들을 끌어 모으게 되는 그런 힘인 것이다. 자신에게 그런 힘이 있다는 것을 과연 야마시타는 알고 있을까? 자신이 팬들을 열광시키는 재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추구하는 이상향은 오오시마 유우코와 팀K
‘항상 자신을 꾸미며 살아 왔기 때문인지 진정한 자신이 어떤 사람인 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런 아이돌이 되고 싶다’는 이상적인 아이돌상은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상적인 아이돌상에 가까워 지기 위하여 노력하는 제 모습이야말로 어느 사이엔가 저 스스로도 잊고 있었던 제 진정한 모습일지도 모르겠네요.’ 라고 이야기 하는 야마시타. 여기까지 듣고 나면 역시 그녀가 말하는 ‘이상적인 아이돌상’은 대체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그녀는 대체 어떤 아이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일까.
“저, 오오시마 유코상을 좋아해요. 지금도 가끔씩은 예전에 모았던 생사진을 꺼내 보기도 하고요, 예전에는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집에 돌아와서 팀 K의 DVD를 꺼내 보며 힘을 내기도 했어요. 오오시마상은 언제나 밝고 쾌활하지만 동시에 심지가 굳은 분이시거든요. 아무렇지 않게 망가지기도 하셔서 언제나 그 분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두근거렸지요. 오오시마상은 정말로 ‘엔터테이너’라고 생각해요. 아니 오오시마상의 존재 자체가 ‘엔터테인먼트’라고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보통 아이돌이라면 자신의 이미지를 정착시키기 위해 머리 모양을 그다지 잘 바꾸지 않잖아요. 하지만 오오시마상은 굉장히 다양한 머리모양에 도전하시거든요. ‘RIVER’ 활동 때는 모히칸 스타일에 가까운 머리모양을 하시기도 했고, ‘마지스카학원’을 찍으실 땐 앞머리를 올리고, 옆 머리는 짧게 쳐 올리시기도 했지요. ‘머리 모양에 집착하지 않는 아이돌’이기에 더더욱 자신이 갖고 있는 여러 측면을 보여 줄 수 있었던 것 같고, 그런 모습이 정말 멋있었지요. 물론 그런 모습에 대해 ‘아이돌 답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실 지 모르지만, 저는 ‘정말 멋져. 과연 다음번에는 어떤 머리 스타일을 하실까?’라고 기대하며 보곤 했어요. 기껏해야 머리 모양을 바꾸는 것 뿐인데 그런 사소한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 분, 엔터테인먼트성 면에서 압도적인 강점을 가진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능력을 갖고 계신 오오시마상 같은 분들은 아이돌을 졸업하더라도 거기서 끝이 아니라, 앞으로도 오랫동안 기억되실 수 있는 것이지요. 오오시마상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감동은 아마 평생 잊지 못 할 것 같아요. 아마도 오오시마상의 모습은 제 마음 속에 언제까지고 남아 있을 것이고, 저는 그런 그 분의 모습을 원동력으로 삼아 이렇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게 있어 ‘아이돌로서의 이상향’은 오오시마 유코라는 아이돌이자, 그 분이 속해있던 팀 K의 정열적인 모습이기에, 앞으로도 그런 모습을 추구하며 활동 할 것 같아요.”
시간은 흘러 가는 것이니까, 인생 최고점을 지금으로
결성으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노기자카46는 국민적인 아이돌 그룹으로 불릴 정도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앞으로 이 그룹이 어떤 길을 걷게 될 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노기자카의 차세대 멤버 중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는 야마시타는 지금 자신이 속해있는 그룹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사실 저는 아이돌을 한 이후에 어떤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이 없기에, 제 인생의 최고점을 지금으로 만들고 싶어요. 그렇기에 지금 그만큼 더 노력해야만 하는 것이지요. 물론 제 인생 뿐 아니라 그룹에 대해 생각 해 보아도 지금의 이 기세를 떨어뜨려서는 안 되고요. 앞으로 노기자카가 어떤 길을 갈 지 생각 해 보자면, 아무래도 선배님들께서 졸업하실 테고, 선배님들의 졸업으로 인해 그룹의 기세는 꺾일 지도 모르지요. 어쩌면 팬 여러분께서 떠나가시는 경우도 있을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 재기 할 수 있는 힘을 저희들이 키워 가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없지만요… 지금은 선배님들의 포지션에 들어 갈 때 마다 많은 분들께서 ‘아직 저 자리 들어가긴 이른데’라고 말씀 하시거나 ‘3기생이 아니라 다른 1기생이 들어 가야 한다’고 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말씀이 옳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원래 그 자리에 서 있던 선배님들을 흉내내려고 그 자리에 선 것은 아니거든요. 어디까지나 곡을 구성하는 포지션 중 하나에, 다른 누군가의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더더욱 성장해서 들어감으로 해서 노기자카라는 그룹을 계승 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저희가 더 열심히 해야만 해야겠지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스스로를 다잡는 것 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말을 하는 그녀의 눈동자는 조용히 불타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노기자카의 미래는 그녀들, 차세대 멤버들의 손에 이미 맡겨져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따.
“시간은 의외로 엄청 빠르게 흘러 가 버리잖아요. ‘최근’ 들어 그 점에 대해 초조함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기에 여유를 부릴 수가 없는 거예요. 제 ‘아이돌 스토리’가 언제 끝나게 될 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 날이 왔을 때, ‘아이돌로서’ 모든 것을 불 태운 뒤였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타올라야 할 때 타오를 수 있는 인간’이라는 데에는 자신이 있고, 필요 할 때엔 저력을 발휘하는 사람이라 생각하거든요. 네. 그 점 만큼은 자신이 있어요.”
야마시타 미즈키는 지금 활활 불타오르고 있다. 나날이 ‘아이돌에 대한 정열’을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1등이 되어 칭찬을 받고 싶다’
‘어중간하게 살아 온 지금까지의 인생을 청산하고 싶다’
‘자신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풀고 싶다’
‘라이벌을 따라잡고 싶다’
‘선배들이라는 높은 벽을 뛰어 넘고 싶다’
‘그룹을 더더욱 진화시키고 싶다’
‘어머니에게 인정받고 싶다’
‘슈퍼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돌이 되고 싶다’
그런 마음들을 연료삼아 그녀는 불타고 있는 것이다.
‘아이돌’이라는 직업이 그녀의 마음을 불 태울 수 있는 불씨인 한, 그녀의 정열은 꺼지지 않으리라.
야마시타 미즈키가 걸어가는 미래로의 길. 그 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녀의 ‘스토리’는 어떤 식으로 전개 될까. 그녀가 그려내는 스토리에서 눈을 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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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엔타메 - 생생별 좌담회 (0) | 2018.04.02 |
성장 속도를 높여 준 라이벌과의 경쟁
오디션에 합격 한 3기생들은 곧바로 오리엔테이션과 레슨을 받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3기생들과 1, 2기 선배들이 만나는 날이 찾아왔다. 11월 어느 날에 있었던 ‘노기자카 공사중’ 녹화장에서였다.
‘TV에서만 봐 오던 분들이었기에 처음 만나게 되었을 땐 ‘정말로 이 세상에 계시는구나’라고 놀랐어요’,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받았어요.’, ‘선배님들에게 압도되었습니다’ 라는 감상을 남기는 멤버들이 대부분이었을 정도로 긴장감이 가득한 가운데, 야마시타는 복잡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좋아하는 노기자카에 들어 왔다는 기쁨,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은 있었지만, 언젠가는 저 역시 저 줄에 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자신이 없어지더라고요. 이전까지야 3기생들끼리 레슨을 받았기에 하나가 되어 ‘선배님들을 따라잡자’는 분위기였지만, 제가 선배님들과 함께 나란히 서게 된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메꿀 수 없는 차이가 있을 것 같았거든요. 같은 곳에 있지만 뭔가 엄청 먼 곳에 있는 분들 같았어요.”
그룹에 갓 들어온 3기생들과 지금까지 활동 해 온 선배 멤버들 사이에 경험의 차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야마시타는 ‘선배들과 자신들간의 거리’를 통감하고 경악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차이가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는 것 만으로도 어쩌면 그녀는 선배들에게 한 걸음 다가 선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최종심사로부터 수 개월이 지나, 레슨 삼매경인 나날을 보내고 있던 3기생들에게 깜짝 놀랄 소식이 날아들었다. 노기자카46이라는 그룹의 ‘통과의례’라고도 할 수 있는 무대, ‘프린시펄’이 개최된다는 소식이었다. 이번 ‘프린시펄’에서는 2012년 9월에 개최 된 초창기 ‘16명의 프린시펄’ 공연때 이후로 행해지지 않았던 ‘자기PR’이 부활하기도 하였으며, 본격적으로 연기를 하게 되는 제 2막에서 선보이는 것은 노기자카에 맞추어 어레인지 한 미야자와 겐지의 명작 동화, ‘은하철도의 밤’이었다. 2015년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눈물을 잊는 법’을 통해 프린시펄 공연의 가혹함을 잘 알고 있었던 3기생들은 ‘프린시펄’ 개최 소식에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2막에 나가건 못 나가건간에 일단 집에서 죽을만큼 연습했어요. 잠도 거의 자지 않고 대본을 외웠지만, 그것만으로는 2막에 서지 못 할지도 모른다는 갈등이 마음 속에 있었지요. 그래서 ‘보는 사람들 끌어들이는 매력이 없는걸까?’라던가 ‘내 장점은 어떤 것일까?’라는 고민을 하다 보니 엄청 속도 상하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어요. ‘내가 뭘 어떻게 더 해야 하지?’라는 갈등 속에서 내린 결론이 바로 ‘다음 무대에 서지 못한다면 죽어버리자’는 각오였지요. 정말 그 정도의 각오로 무대에 임했습니다. 어쩌면 그 정도의 각오로 임했기 때문에 오히려 속 편히 연기 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그런 야마시타와 함께 ‘3명의 프린시펄’공연을 견인한 멤버가 있다. 바로 쿠보 시오리다. 쿠보는 연기 미경험자라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당당하면서도 섬세한 연기를 선보이며 자신이 원하는 배역을 차례차례 따 냈다. 각자 다른 매력을 뽐내며 무대 위에서 존재감을 어필한 두 사람은 어느 사이엔가 서로가 서로를 자극하며 함께 성장하는 라이벌이 된 것 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당시의 야마시타에 대하여 쿠보는 이렇게 평가한 바 있다.
‘무대 위에 오른 순간, 한 순간에 분위기가 확 변하는 미쨩의 모습을 보고 저 역시 저 자신을 더더욱 드러내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거기서 ‘나 따위가…’라는 마음을 먹고 자신 안으로 파고들기 보다 더 적극적으로 저 자신을 드러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미쨩 덕분입니다.’
그리고 야마시타 본인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저보다 두 살이나 어린데도 무엇을 하더라도 저보다 위에 있는 것이 쿠보쨩이에요. 모든 면에서 완벽하기 때문에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노래, 춤, 연기 등 모든 면에서 쿠보쨩처럼 완벽해지고 싶다는 일념으로 ‘프린시펄’에 그 정도로 열의와 노력을 쏟아 부었다 해도 될 정도입니다. 쿠보쨩이 이 정도로 완벽한 아이가 아니었다면 저 자신도 그토록 필사적으로 노력하진 못 했을 거예요. 사실 ‘프린시펄’ 당시 2공연 연속해서 2막에 가지 못 했던 적이 있는데요, 그 때문에 ‘마지막 공연에도 뽑히지 못 할 거야’라고 낙담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대기실에서 쿠보쨩이 ‘오늘 미쨩이 어떤 배역에 입후보 할 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한 번 둘이 같은 무대에 섰으면 좋겠어’라고 이야기 해 줬어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무조건 2막 무대에 설 거야’라는 마음이 생겼지요. 그리고 그 마음은 지금까지 ‘2막에 서고 싶다’는 마음과는 확연히 다른 마음이었지요. 이전에는 ‘이토록 열심히 했고, 누구보다도 노력 했으니까 무대에 서고 싶다’는 마음이었다면 그 때 부터는 ‘연기를 즐기고 싶어’라는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쿠보쨩 덕분에 한층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3명의 프린시펄’ 기간동안 가족들과 있었던 에피소드도 인상적이다.
“제가 ‘프린시펄’ 때문에 고민하다 한밤중에 울었던 적이 있거든요. 그 때 어째선지 엄마가 그런 제 맘을 알기라도 하신 듯이 전화를 해 주셨어요. 전화를 받으며 위로를 해 주려나 내심 기대를 했었는데, 정작 돌아오는 말은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웃음) ‘너는 쿠보쨩에 비해 가창력이 없으니까 더 열심히 노력하렴’ 라던가 ‘너는 매사에 너무 깊게 생각하는 버릇이 있어서 요다쨩처럼 귀여운 맛이 없어.’ 라는 식으로 뭐라 하시더라고요. 물론 다 저를 걱정해서 해 주시는 말씀인 것을 아니까 도움은 됩니다만… 역시나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속상해서 ‘엄마 정말 싫어!’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어버리곤 했어요. (웃음)”
열등감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뛰어넘은 뒤에는
야마시타 미즈키는 오해를 사기 쉬운 타입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다가서기 힘든 아이’, ‘차가운 아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었고, 성장하여 아이돌이 된 지금도 그런 오해와 편견은 여전하다.
“요즘이야 조금씩이나마 저에 대한 시선이 바뀌고 있지만, 아직도 편견 섞인 눈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얼굴에서 풍기는 이미지도 영향이 있겠지만, ‘자존심 세 보인다’던가 ‘성격 깐깐해 보인다’ 라는 식의, 어떻게 보자면 힐 (악역)적인 면으로 보시는 분들이 많으시지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정통파 아이돌 노선으로 가고 싶었는데 말이에요. (웃음) 아, 그리고 자주 ‘노기자카랑 안 어울린다’는 말도 듣는데요, 아마도 ‘프린시펄’ 때의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 것 같아요. 쿠보쨩이 자신의 실력으로 배역을 따 낸 데 반해 저는 ‘의욕!’ ‘열의!’ ‘근성!’ 이미지가 강하거든요. (웃음) 뭐랄까요, 기백만으로 배역을 따 내려고 하는 열혈한 같은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실제로는 멘탈이 그리 강하지 않은데다가, 자존심도 그리 세지 않아요. 사실은 다른 멤버들에 비해 여러 모로 뒤떨어져 있다는 점 역시 다른 누구보다 제가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야마시타는 자신에 대한 평가가 후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동기 멤버들에 대해 열등감을 갖고 있는 편이다. 누구는 노래를 잘 하고, 누구는 춤을 잘 추고, 누구는 캐릭터가 확실하고… 그런 동기들에 비해 ‘내게는 아무 것도 없다’고 스스로를 평가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마시타 미즈키’라는 아이돌을 이야기 할 때 자주 나오는 표현은 ‘완성형’이라는 단어이다. 미디어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3기생 오디션 최종심사 단계에서 이미 야마시타에 대해 ‘완성되어 있다’는 평가를 내린 사람도 적지 않다.
“당시 기사에 달린 댓글 중에는 ‘성장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라던지 ‘프로 같아서 재미 없다’는 댓글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솔직히 그런 말을 듣는 게 정말 속도 상했고, 이제 막 그룹에 들어 와 시작하려고 하는데… 라는 생각도 들었지요. 수 많은 후보들 가운데에서 노기자카의 멤버로 선택을 받았다는 것은 제게서 무언가 가능성이나 장래성을 느끼셨기에 뽑아 주신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뽑힌 데 만족하고 안주 해 버리면 정말 거기에서 끝일 뿐인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니까, 저는 이 정도로 끝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드리고 더욱 더 높은 경지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미 완성되어 있다’는 낙인이 찍혀버린 탓에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그녀. 남들보다 높은 기준이 적용되고, 그런 기대에 부응하여야만하는 나날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녀는 어떤 마음으로 매일매일을 지내 왔을까.
“요즘들어 ‘야마시타, 알고보니 그렇게까지 완성 된 아이는 아니다’라는 점을 알아 주시는 분들이 늘었어요. 아직 모자란 부분도 많고 최근에는 어떤 캐릭터로 가야 할 지도 헤매고 있고 말이죠. (웃음) 그저 막연하게 ‘야마시타라면 이 정도는 해 내겠지’라는 기대는 아직 남아 있는 것 같네요. 하지만 솔직히 그런 과제들을 해 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훨씬 더 높은 경지에 다다라야만 다른 멤버들처럼 ‘성장했다’고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좀 힘들었어요. 혹시나 제가 틀리거나 하면 ‘프로의식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제가 실패 했을 때 위로 해 주는 사람도 없곤 했거든요. (웃음) 사소한 실수는 애교로 봐줄만한 ‘아이돌로서의 매력’이 없다는, 그런 천부적인 소질이 없다는 얘기겠지만요. 물론 그런 점이 한 편으로는 ‘심지가 굳다’는 평가의 다른 이면이라는 점 역시 알게 되었습니다. 이 점을 알기까지 2년 가까이 걸렸지만요. 올 해 버스데이 라이브 진구구장때, 노기자카46판 뮤지컬 세라문 연습 관계로 리허설에 별로 참가를 못 했거든요. 그럼에도 이코마상이나 마리카상의 포지션에 들어 가거나, ‘인플루언서’에선 니시노상의 포지션에 들어가야 했었지요. 결국 ‘이렇게 짧은 시간동안 안무 전부 못 외워!’라고 반쯤 자포자기하고 있었는데, 다르게 생각 해 보니 결국 이런 역할을 맡게 해 주신 것은 스태프분들께서 ‘야마시타라면 할 수 있다’고 믿어 주신 결과라는 점을 알게 되었어요. 그렇게 저를 평가 해 주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 역시 최근 들어서인데, 그 점을 알게 되었을 때 정말로 기뻤습니다.”
성실하고, 매사에 전력을 다 하며, 열정적이다. 야마시타에 대한 그런 이미지는 크게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평상시의 그녀가 그런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는 것 역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녀의 동기, 이토 리리아는 야마시타의 이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 바 있다.
‘무대 위에 서면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돌인데다가 외모도 도쿄의 세련된 JK(여고생) 같아요. 하지만 알고보면 사실은 꽤나 특이한 아이랍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뇌 구조부터가 특이해요. (웃음) 컨디션이 안 좋을 때면 ‘나 오늘은 게로게로파~야’ 라며 의미 모를 말을 한다던가… 초창기 때 스스로는 정통파 아이돌 노선을 가려고 했었던 모양인데, 사실 동기들은 ‘다른 건 몰라도 그 노선은 절대로 무리’라고 이야기 하기도 했었지요. (웃음) 그냥 겉보기에는 요조숙녀같지만 사실 대기실에서는 마른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고 있을 때도 있을 정도로 털털한 아재 같은 부분도 있어요.’
이에 대해 본인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안주 종류를 즐겨 먹는 건 사실이에요. 사실 저 때문에 ‘3기생 대기실은 냄새가 별로’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요. 아 물론 선배님들 계실 땐 슈크림이나 딸기 같은 걸 주로 먹어요. (웃음) 그리고 라멘이나 규동(소고기 덮밥)도 좋아해요. 혼자 먹으러 가곤 합니다.”
이외에도 ‘평소에는 목소리가 엄청 작다’, ‘벽에 대고 말을 건다’, ‘누에고치를 30개 정도 가져와선 대기실에서 쭉 세워두고 하나하나 얼굴 그리면서 논다’ 등등 TV나 무대에서 보는 야마시타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의외의 일면 역시 알 수 있었다.
관찰력이 있고 사람 보는 눈이 예리한 것으로 정평이 난 1기생 와카츠키 유미는 이런 야마시타의 개성적인 캐릭터에 대하여 ‘얼굴은 매우 예쁘지만 하는 짓이 특이한 것이 야마시타. 비주얼과 내면 사이의 갭이 마치 이쿠타 에리카를 연상하게 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제 방에 있을 때의 저와 멤버들과 함께 있을 때의 저, 그리고 무대 위에 서 있을 때의 저 이렇게 세 명의 제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제 방에 있을 때는 항상 고개를 푹 숙이고 풀 죽어 있지만 대기실에서는 개그를 치며 즐겁게 떠들어 대죠. 그리고 무대 위에 섰을 때는 최선을 다 해 아이돌로서 행동하려 하고요. 하지만 그 중 어떤 것이 진정한 제 모습이라거나 한 게 아니라 전부 저 자신인 것이죠. 아이돌은 개성이 중요하잖아요. 개성이 없으면 아이돌로서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저 같은 경우에는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며, 그런 식으로 자기 자신을 꾸미며 살아 왔기에 진정한 제 개성이 무엇인 지 모른다는 문제가 있습니다만… 아마 이 점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하지만 ‘나는 이런 아이돌이 되고 싶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상을 갖고, 그 이상에 근접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신의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저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필사적으로 기어 오르는 모습이 나답다.
2017년 8월, 노기자카46의 18번째 싱글 ‘니게미즈(신기루)’가 발매되었다. 이 곡의 센터 자리에 선 것은 오오조노 모모코와 요다 유우키. 처음으로 3기생 멤버들이 센터 포지션에 섰다는 소식은 일약 화제를 일으켰다.
야마시타 역시 이전부터 '3기생의 중심에는 요다와 오오조노가 서야만 한다'고 이야기 해 왔는데, 그런 그녀의 예언이 적중이라도 한 듯 현실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1년 전에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녀는 두 사람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 한 바 있다.
"요다모모 둘은 3기생 중에서 가장 아이돌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이에요. 가입 전에는 노기자카에 대해서도 잘 몰랐을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둘 다 규슈 출신이다보니 'TV에서 노기자카를 별로 못 봤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생각 해 보면 여러 의미로 새로운 것들을 해 낼 수 있는 멤버들이라 생각해요. 저와는 정반대 타입이라 그런 부분이 참 부럽습니다. 그 둘과 쿠보쨩은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존재들이라 생각해요. 곁에서 보고 있으면 아이돌성이나 어떻게 하면 빛나는 지 안다던가... 저와는 다른 것들을 많이 갖고 있다는 게 잘 느껴져요."
이 당시 야마시타는 '나는 아이돌 활동 내내 오오조노 모모코, 요다 유우키, 쿠보 시오리의 뒤를 쫓기만 하겠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다.
"니게미즈 활동당시는 말하자면 좌절했던 시기라고 할까요... 힘든 시기였어요. 엄청 열등감에 빠져 있었던 시기였거든요. 세 명 모두 말하자면 천재적인 부분이 있잖아요. 당시, 감사하게도 여러 모로 일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다지 눈에 띄는 결과를 남겼냐 하면 그렇지 못 했고, 저 스스로도 자신에 대해 재미없는 인간이라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매사에 무난하다 햐야 할까요... '딱히 내가 없더라도 다른 사람이 나 대신 들어 오면 문제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 와중에 동기인 요다와 오오조노는 그룹의 센터에 서서도 별다른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고, 쿠보쨩 역시 센다이의 PR이나 잡지 '세븐틴'의 모델이 되었으니까요. 그런 시기에 저까지 해서 넷이 함께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때마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여기 있는걸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야마시타도 나름 결과를 내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필사적으로 임했지만... 필사적으로 하면 할 수록 나는 안 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정말 힘들었어요."
동기들에 대한 열등감으로 인해 좌절하는 때가 많았던 야마시타. 하지만 그와 동시에 또 다른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팬분들 입장에서 보자면 제가 그렇게 필사적으로 기어 올라가려 발버둥치는 모습이 재미있으실 것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초기부터 선발에 들고, 센터에 서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있겠지만 저를 앞서가는 동기들의 모습을 보며 불안함, 초조함을 느끼면서 얻고 성장 할 수 있었던 부분이 더 컸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때문에... 물론 '안심'한 것은 아니지만 요다모모 두 사람이 센터에 섰다는 데 대해 분한 마음은 없었어요. 오히려 그것도 일종의 기회라고 생각했지요. 앞으로 얼마나 '요다모모'에 다가서느냐에 따라 주변의 시선도 바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여기서 자포자기 해 버리면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라 생각했고, 처음부터 포기 해 버리면 앞으로의 활동에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기에... 비록 보답받지 못 할 지도 모르지만 이 위기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만은 앞으로도 기억 해 주실 것이라 생각했지요."
오오조노와 요다가 센터에 선 '니게미즈'가 처음으로 '뮤직 스테이션' 무대에 서게 되었던 날. 야마시타는 눈도 깜빡하지 않고 데뷔 후부터 함께 활동을 해 왔던 동기들이 한 발 앞서 선발에 들어 선배들과 함께 반짝반짝 빛을 발하며 활약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TV에 비추는 '요다모모'의 모습을 녹화해서 몇 번이고 돌려봤어요. 속상하기도 했지만, 그것 이상으로 더 의욕을 불태우고 싶었고, 더 열심히 하고 싶었거든요. 매사에 순서라는 게 있고, 타이밍이라는 게 있는데다가 사실 제 실력으로 18번째 싱글에서 센터 자리에 설 수 있었냐 하면 절대로 아니거든요. '니게미즈'는 '요다모모'의 대표곡이 되었으니, 저 역시 제가 선발에 들었을 때 그 곡을 제 곡으로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연습해서 누구보다도 빛을 발하고 싶고요. 단 한 순간이라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멈출 수 있는 표정, 퍼포먼스를 선보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 때, '뮤직 스테이션'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아직 내 순서가 아니다.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노력 하다 보면 오오조노와 요다처럼 언젠간 자신에게도 빛을 발할 수 있는 장소가 주어 질 것이다. 그렇기에 너무 서두르지 말고 우선은 힘을 모으자. 그리고 자신이 충분히 존재감과 매력을 발휘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위로 올라가고 싶다. 야마시타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실제로 1년 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도 야마시타는 이런 말을 남겼었다.
"18번째 싱글이 전부가 아니잖아요. 18번째 싱글 하나만으로 제 인생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요. 앞으로 몇 년이고 활동을 계속 하게 될텐데, 그 동안 싱글을 여러 장 낼 것이고, 제게 있어 그 기간 전부가 중요하거든요. 지금 당장은 위로 올라 갈 계기가 없지만, 그런 계기는 앞으로 활동을 하다 보면 반드시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요다모모'는 말하자면 시골에서 홀로 상경한, 지금까지 연예계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소녀가 어느 날 갑자기 톱 아이돌 그룹의 센터에 서게 되었다는 스토리가 있잖아요. 제게는 그런 스토리가 없지만요... 하지만 최선을 다 해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팬 여러분들도 응원 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앞으로 졸업 할 때 까지의 기간을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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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기자카46의 미래를 야마시타 미즈키에게 맡기고파'
도쿄돔에서 하나로 이어진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
2017년 11월.
노기자카46에게 있어 첫 도쿄돔 콘서트인 '노기자카46 한 여름의 전국투어 2017 파이널 도쿄돔 공연'이 열렸다.
데뷔 한 지 5년 8개월이라는 시간을 들여 겨우 서게 된 '꿈의 무대', 도쿄돔 공연에는 이틀에 걸쳐 10만명이나 되는 관객들이 찾아주었다.
이로 인하여 같은 해 노기자카46의 라이브장을 찾은 사람은 총 46만명 이상에 달하여, 노기자카는 명실상부 '일본을 대표하는 아이돌'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열광과 감동으로 가득 찼던 도쿄돔 공연이 한창이던 때의 일이다.
팬들의 열렬한 환성을 받으며 무대 중앙에 난 하나미치를 걷던 야마시타 미즈키는 문득 객석 구석으로 시선을 옮겼다.
"사실 저, 이전에 도쿄돔에 왔었어요. 마에다 아츠코상의 졸업 콘서트를 보러 왔었거든요. 분명 2층 앞에서 3번째 자리에 앉아 있었지요. 그래서 '당케 셴'이나 '하우스!' 때 객석으로 갔었을 때, '아, 나도 예전에 저기서 공연을 봤었지'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 당시 오시멘이자 동경의 대상인 오오시마 유코상과 한 순간 시선이 마주친 적이 있는데, 솔직히 '이렇게 뒷자리니까 무대에서 보일 리가 없어. 그냥 기분탓일거야'라고 넘겼었어요. 하지만 정작 제가 무대에 서고 보니 예전에 제가 앉아 있던 자리의 팬분 얼굴이 너무 잘 보이더라고요. 그 때 알게 되었지요. 오오시마상도 이렇게 나를 봐 주셨겠구나. 라고. 그리고 그 순간, 6년 전… 13살이었던 저와 현재의 제가 하나로 이어진 것 같았어요."
회장을 가득 메운 팬들의 환성과 박자에 맞추어 울려퍼지는 박수소리, 그리고 회장을 빛으로 가득 채운 사이리움 불빛까지… 수 많은 모습들이 한 데 오버랩 되며 야마시타의 가슴속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때, 그녀는 마음 속으로 다시 한 번 '팬 한 분 한 분을 소중히 여겨야겠다' '맨 뒷자리에 앉아 계시는 분들께서도 즐기실 수 있도록 열심히 하자'라고 다짐을 되새겼다. 그리고 동시에 한 가지 꿈이 그녀의 가슴속에서 싹을 틔웠다.
"도쿄돔 콘서트가 끝나고나서, 앞으로 어떤 것을 해야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일반적으로 아티스트분들은 '우선 부도칸을 목표로 열심히 하자. 그리고 그 뒤에는 도쿄돔'이라는 목표를 세우곤 하시잖아요. 그런데 저희 3기생들은 첫 공연장소가 바로 그 '부도칸'이었고, 데뷔 한 지 겨우 1년만에 도쿄돔에 서게 된 거였죠. 그렇기에 더더욱 '그룹'이 아닌 자신의 목표를 잘 세워야만 했어요. 그런 점을 감안하여 자신의 꿈이 무엇인가를 생각 해 본 결과, 이렇게 말씀드리면 되게 바보같기는 하지만… '슈퍼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돌이 되자'는 것이 제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어머니의 애정과 교육, 학교에서 경험한 좌절과 포기
1999년 7월 26일.
유명한 예언자 노스트라다무스가 '7월 하늘에 공포의 대왕이 강림할지니'라며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 예언했던 그 해, 그 달에 이 세상에 태어난 야마시타 미즈키.
그렇게 태어난 야마시타는 외동딸로,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났다.
"엄청 과보호였어요. 저 자신이 보기에도 '우리 부모님께서 정말 많이 아껴 주셨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지요. 아기가 태어나면 곧바로 수건으로 감싸주잖아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에는 그 수건마저도 엄청 좋은 소재를 쓰는 비싼 브랜드 수건이었을 정도예요. 그 수건을 사 가서 간호사분께 '우리 아가는 이 수건으로 감싸주세요'라고 말하며 넘겨 주었더니, 상자마저 고급스러워서 간호사분께서 이걸 버려도 될 지 몰라 병실 구석에 수건 상자가 잔뜩 쌓여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아, 그리고 머리 손질은 항상 엄마가 해 주셨는데요, 항상 유치원에 가기 2시간 전부터 일어나서 엄청 꼼꼼하고 정성스럽게 머리를 땋아주시고, 잘라주시고 했어요. 매일 머리 스타일이 달랐을 정도였지요."
어린 시절에는 낯가림이 심하고 매사에 소극적이었다는 그녀. 본인 말에 따르면 '과묵하고 얌전하며, 표정변화도 얼마 없는 아이'였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집단생활이 잘 맞지 않았어요. 그렇기에 친구들과 밖에 나가서 놀기보다는 집에서 혼자 노는 경우가 많았지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엄마가 만들어 주신 프렌치토스트나 팬케이크를 먹으면서 의자에 앉아 드라마나 버라이어티 방송을 보곤 했어요. 심할 땐 의자에서 한 발짝도 안 움직이기도 했지요. 정말로 항상 집에만 있으면서 말도 한 마디 안 하곤 했지요. 표정도 밝지 않았고…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언제나 어두웠다고 해야 할 것 같네요. (웃음)"
그녀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그 해, 야마시타의 인생을 크게 바꾸어 놓은 계기가 찾아왔다. 그녀의 생일에 부모님이 노트북을 사 주었던 것이다.
"이전까지는 휴대폰도 엄마가 쓰시던 것을 받았던 것이었기에 제 전용 노트북이 생긴 뒤로는 단숨에 세계가 확 넓어졌지요. 아이돌에 대해서 알게 된 것도 그 때였고요. 저랑 나이 차이가 그리 많이 나지 않는 사람들인데도 사는 세계가 너무 달라 '엄청나'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 때를 기점으로 거의 매일같이 아이돌 동영상에 빠져살았어요. 혼자서 아키하바라나 나카노 브로드웨이에 가서 생사진을 교환하기도 했고요. (웃음)"
그 당시는 AKB48이 공전절후의 붐을 불러일으키고 있던 때였다. 야마시타, 그리고 그녀 주변의 친구들 중 많은 수가 AKB48의 팬이었던 점은 말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취미를 공유하는 친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애초에 외동이다 보니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그리 익숙치는 않았어요. 친구는 있지만 그냥 데면데면한 정도였달까. 사실 저 자신도 '이렇게 행동하면 평범한 사람 같겠지'라고 정해 둔 면도 있었기에 학교에서도 딱히 눈에 띄는 단독행동은 하지 않고 적당히 주변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남들 하는 걸 남들 하는 만큼 하는 그런 학생이었지요. 반 안에서도 '특별한 일부'보다는 '기타 다수'안에 들어가고 싶었고, 그렇게 되기 위하여 튀지 않으려 했지요. 눈에 띄는 것도 아니고, 너무 위도 아래도 아닌 그저 '극히 평범한' 중간 위치에서 살아 왔다고 할 수 있겠네요.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선택한 '처세술'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가 말하는대로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일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녀가 이토록 '평범'이라는 말에 의미를 두는 것은 그녀가 주변으로부터 '귀엽다'던가' 미인'이라는 소리를 들었기에, 그에 대한 반동으로 필요 이상으로 스스로를 숙여 왔던 방증은 아닐까.
"이목구비가 뚜렷하다보니 세보인다는 말을 듣는 경우가 많았어요. 표정도 풍부한 편이 아니다 보니, '쟤는 대체 뒤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라거나 '성격 나빠 보인다'는 말을 듣는 경우도 종종 있고요. 그 결과, '다가서기 힘들'다던가 '차가운 아이'라는 오해를 사곤 해요. 그렇기에 그런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따뜻해 보이려고 노력했지요. 하지만 그러다가 좀 오버 해 버리거나 하면 '쟤는 되게 나댄다'라던가 '저런 거 전부 연기'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고요. 어느 쪽으로 가도 힘들었어요."
바로 그렇기에 야마시타는 항상 '눈에 띄지 말자', '주변에 녹아들자'라며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것이다. '중간'에 위치함으로 하여 학교생활,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온갖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 해 보면 그냥 제가 너무 깊이 생각했던 것 뿐일지도 모르지만, 그 나이또래 아이들에게 있어선 학교가 전부잖아요. 그렇기에 다른 아이들에게 밉보이면 그대로 인생이 끝나버린다는 공포심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결국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칠까를 너무 신경쓰다 보니 저 자신을 남들 시선에 맞추어 버리고 있었던 것이지요."
'누가 뭐라건 나는 나야.'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어린 야마시타의 마음은 너무 여렸다. '친구들 뿐 아니라 주변 어른들의 표정도 살피며 살아왔다'고 이야기 하는 그녀.
"특히 부모님의 압박이 컸지요. 학교에서는 학급위원을 하고, 성적은 항상 톱클래스여야만 한다는 것이 저희 엄마의 이상이었거든요. 엄마도 머리가 좋으시다 보니 저 역시 그렇게 되길 바라셨던 것 같아요. 그렇기에 그런 부모님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공부하여 성적을 항상 상위권으로 유지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저 같은 경우, 애초에 머리가 나쁘다 보니 공부를 하지 않으면 성적이 나오질 않았어요. 머리가 좋은 사람은 아무 것도 안 해도 머리가 잘 돌아가잖아요. 요령이 좋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거든요. 그렇기에 시험을 앞두고는 3일 연속으로 밤을 새서 교과서를 읽고 또 읽었어요. 그러다 보니 시험기간만 되면 살이 쫙쫙 빠져서 부모님이 '못 봐주겠다'고 걱정하실 정도였지요. (웃음)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필사적으로 공부 해도 1등이 되질 못 했어요. 그 때, '아, 내 인생에서 1등이 될 일은 없겠구나'라고 자포자기하게 되었습니다."
후회를 없애기 위해 인생을 다시 시작하다.
가만히 숨을 죽인 채 학창시절을 보내던 야마시타. 하지만 그녀가 고 2였던 해 여름, 그녀의 인생을 크게 좌우할 터닝포인트가 찾아왔다.
2013년 5월에 2기생들이 가입한 이후로 3기생을 모집하고 있지 않던 노기자카46가 3년만에 3기생을 모집하기 위하여 오디션을 개최하였던 것이다.
그럼 그녀는 어떻게 그 오디션을 보게 된 것일까.
"고교생활도 나름 즐거웠었지만, 내심 매사에 타협하고 있다는 후회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특히 중학교 시절은 매사에 어중간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기억이 고교생이 된 이후로도 마음 한 구석에 찝찝하게 남아 있었거든요. 중화요리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공부를 하며 어영부영 살아가다 보니 문득 '나, 이렇게 살아도 되는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대로 가다 보면 대학교도 좋은 데는 못 들어 갈 것 같았고…"
자신의 장래에 대한 예상이 전혀 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저 하루하루 따분하게 흘러 갈 뿐… 그저 주어 진 시간동안 교실 구석에 앉아있기만 하던 무기력한 자신에 대해 혐오감마저 느꼈다고 하는 그녀.
"인생은 단 한 번 뿐인데 이렇게 낭비해도 되는걸까… 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식으로 청춘을 보낼 바에는 그냥 모든 것을 다 던져 버리고 다른 세상으로 가 버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노기자카46의 3기생 오디션을 알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오디션을 볼 생각은 없었는데 이대로 약한 저 자신에게서 도망쳐서는 언제까지고 변하지 못하고 평생 도망만 다니게 될 것 같았지요. 그렇다면 이 오디션에 모든 것을 걸어 보자!! 지금까지 어중간하게 살아 온 데 대한 후회를 전부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노기자카에 들어가서 인생을 다시 시작 해 보자! 라 생각했던 것이지요."
다 타버린 재 속에 숨어 있던 희미한 불길… '아이돌이 되고 싶다'는 희미한 꿈은 아직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 불길은 다시 한 번 야마시타의 마음 속에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인생을 리셋하자' 그런 일념을 마음에 품고, 야마시타는 3기생 오디션에 임하게 되었다.
그리고 1기생, 2기생 모집때의 그것을 크게 상회하는 4만 8986명의 응모자 중 선택을 받은 12명의 멤버 안에 그녀의 모습이 있었다.
야마시타 미즈키가 아이돌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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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고 보니 멤버 중 어떤 분도 '케야키는 본 무대에 강하다'고 하셨었지요.
스 : 그렇지요. '공화국' 때도 오프닝 '집단행동' 직전에도 그랬는데요, 곡이 흘러나왔을 때만 해도 '이거 어쩌지'라고 불안해 하고 초조해 했는데요…
- 그렇지만 정작 본 무대때는 성공리에 해 냈다. 그런 얘기시죠?
스 : 성공리에 해 냈나요? (웃음)
- 제가 보기엔 그랬는데요.
스 :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 작년에 선보인 깃발 퍼포먼스에 이어, 올 해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시려나 하고 기대 했었지요. 물론 그 기대를 멋지게 충족 시켜 주셨고요. 아, 의상도 예쁘더군요.
스 : 아, 그 의상은 멤버들도 다들 마음에 들어 했어요. 사실 TAKAHIRO선생님께서 이끄시는 댄스팀 여러분께서도 그 '집단행동'에 함께 나와 주셨는데요, 그러다 보니 대기하는 사람이 엄청 많았어요. 그것도 처음 뵙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지요. 지금까지 자주 호흡을 맞추어 보았던 분들은 2~3분 뿐이었던지라 전체적으로 호흡을 맞추는 것이 힘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멤버들과 댄서분들이 한 데 섞였다가 서로 교차하는 등의 동작이 잘 맞지 않아 시간이 엄청 걸렸어요. 물론 그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건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댄서분들과 함께 함으로 해서 퍼포먼스 자체도 좋아졌고요.
- 그렇게 좋은 흐름을 타고 전국투어가 시작되었다는 얘기군요. 이 인터뷰가 실린 호가 발매 될 때 쯤에는 아마 니이가타 공연이 끝나 있을 텐데요, 현 시점에서의 포부나 전망 등을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스 : 작년 전국 투어 때는 히라가나 멤버들이 함께 해 주었기에 도움을 받은 부분이 컸거든요. 하지만 올 해 투어는 한자 단독이다 보니 어떤 일이 일어 날 지 잘 모르겠어요… 멤버들끼리 서로가 서로의 힘이 되어 주며 극복 해 냈으면 좋겠어요.
- 작년에는 히라가나 케야키가 나눠서 짊어 졌었던 짐을 올 해는 한자 멤버들이 짊어져야 한다는 얘기군요. 개인적으로는 한자 멤버들의 유닛이 그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요.
스 : 그렇죠. 유닛곡들 중에는 귀여운 분위기인 곡들이 많아서 회장의 분위기를 밝게 바꾸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렇게 분위기에 완급을 주는 거지요.
- 스즈모토상은 'AM 1:27'에만 참가하시네요. 아, 그리고 첫 싱글에 실린 '놓친 버스' 정도인가요?
스 : 네. 하지만 앞으로는 아마 '놓친 버스'는 부르지 않을 것 같아요. 지금은 네루 역시 같은 버스에 올라 탄 상태니까. (웃음)
- 그건 그렇네요. 그럼 해 보고 싶은 유닛곡은 없나요?
스 : 음… 제가 귀여운 분위기의 곡을 해 봤자 그렇게 어울리진 않을 것 같고… 그렇다고 격렬한 춤이 특징인 유닛을 해 보고 싶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니… 저는 그냥 다른 멤버들이 유닛을 할 때, 전체 연습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신경 쓰이는 점이 있으면 그 점을 고치는 등, 좀 더 전체적인 퍼포먼스를 좋게 하는 역할을 하고 싶네요. 아, 물론 '지금'은 그렇다는 얘기예요. (웃음)
- 스즈모토상에 대해 그렇게 잘 아는 편은 아닙니다만, 분명 스즈모토상은 그렇게 남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는 모습이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작년 '공화국'에서 보여 주셨던 사이토 쿄코상과의 댄스배틀 같은 퍼포먼스도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것이 사실입니다.
스 : 아~ 뭔가 반갑네요 그 얘기.
- 그 일을 계기로 사이토상과는 교분이 깊어지셨다고 하던데요.
스 : 네. 친해졌어요. 쿙코는 나이도 동갑이고, 작년 TIF가 끝나고 6명 정도가 함께 유원지에 놀러 간 것을 계기로 급격하게 친해졌지요. 쿙코, 정말 특이하고 재미있거든요. 저 이외의 한자 멤버들과도 친해졌는데, 요즘은 그룹 활동을 거의 함께하지 못 해서 아쉽습니다.
- 히라가나 케야키 자체도 하나의 그룹으로 활동을 하고 있고, 한자 케야키는 한자 케야키대로 8월 21일에 결성 4년째가 되지요. 그렇게 보면 시간이 지나는 게 참 빨라요.
스 : 벌써 4년차인가요? 시간이 그렇게나 지났어요?! 데뷔 1~2년차 때는 정말 시간이 너무나도 빨리 흘렀었기에 요즘은 그렇게까지 '시간 흐르는 게 빠르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개인적으로는 지금 이 정도가 딱 조ㅎ은 페이스라고 생각하거든요. 애니버서리 라이브가 끝난 뒤, 여유를 되찾고 7싱글 제작기간에 들어 갔기에, 그 뒤로 이어 지는 '공화국'과 전국 투어는 흐름이 괜찮다고 생각해요.
- 전국 투어, 기대 해도 될까요? 퍼포먼스는 당연한 거고, MC면에서도.
스 : 아… 그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 하는 게 그리 익숙하지가 않아서… '공화국' 때도 이틀째에 MC를 했었는데요, 자신이 없어서 엄청 짧게 했어요. (웃음)
- 아직 부끄러우신건가요. 그럼 처음 얘기했던 내용으로 되돌아 가 보지요. MC를 그렇게 하는 데에는 어쩌면 스즈모토상 본인이 자신을 믿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무리해서 남들에게 자신을 어필 할 필요까지는 없어'라는 마음이 반영 된 것이 아닐까요.
스 : 그런 건 아니에요… 최근 들어 일상생활을 할 때에도 예전에 비해 '허용범위'가 넓어졌다고 생각하거든요.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있다면 제 생각에 동조를 해 주지 않거나, 심하게는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당연한 것이라고 납득을 했다고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도 이해 못 하는 분도 계실 것이고, 이해 해 주지 않는 분도 계실것이라고. 그런 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 그건 아마 스즈모토상이 '어른'이 되셨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스 : 그렇지요. 자신이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싫은 것이고요.
- 전에도 그런 말씀 하셨었지요. '어떤 어른이 되고 싶냐'고 여쭸을 때,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고 하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웃음)
스 : 네. 뭔가 타협하는 것 같아서 싫긴 하지만… 변화라는 것 역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 그런 사고방식, 매우 좋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사카미치 합동 오디션'을 통해 케야키자카46에 새로운 멤버가 들어 올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인원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받아들이실 수 있나요?
스 : 멤버들끼리도 그 얘기를 자주 해요. 모리야와 '어떻게 되려나'라고 이야기 한 적도 있고요. 들어 온다면 어떤 아이가 들어 올까… 라는 식으로요. 저는… 개인적으로 마음 속 어딘가에 '불만'을 품은 아이가 들어 와 주었으면 좋겠어요. 한자 케야키의 곡 중에는 메시지성이 강한 곡들이 많기에,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역시 어딘가 충족되지 못 한, 의문을 갖고 있는 아이가 더 생생하게 표현 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스즈모토상은 그런 식으로 일상적으로 그룹에 대하여 생각하고 계신가요?
스 : 음… 일상적이라고 하기는 힘들 것 같은데요. 물론 평소에도 멤버들이랑 함께 있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그렇다 해도 사생활은 별개잖아요. 그렇다곤 해도 멤버들과 이야기를 할 때는 공통된 화제가 케야키라 결국 그룹이야기를 하곤 하지만요. 뭐, 곡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 하는 거야 안무를 배울 때나 라이브 직전 정도 뿐이예요. 아예 안 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평소에는 그냥 밥 먹으러 가자던가 즐겁게 잡담 하는 경우가 더 많아요.
- 하긴 항상 긴장된 상태면 지치겠죠. (웃음) 그럼 좀 편한 질문을 해 보죠. 최근 흥미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스 : 음? 딱히 없는 것 같은데요. (웃음) 오히려 요즘 여자아이들은 어떤 걸 좋아하나 묻고 싶은걸요.
- 아니 제가 여자아이가 아니라… (웃음)
스 : 아, '흥미'라고 할 것 까지는 아니지만 맛있는 버블티 가게를 찾아 다니곤 해요. 다만, 인기있는 가게는 줄 서서 기다려야 하잖아요. '우와~ 엄청 인기 많네'라고 투덜거리면서도 결국은 서서 사곤 하죠. (웃음)
- 아, 결국 줄 서서 사는군요. 아마 그런 것도 도쿄의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스즈모토상이 생각하시는 '도쿄'란 어떤 이미지인가요?
스 : 음… 시부야의 스크램블 교차로의 이미지예요. 그 정도밖에 떠오르는 게 없네요.
- 그렇군요. 그럼 다시 아까 얘기로 돌아 가 보죠. 최근 흥미 있는 거, 정말 없나요?
스 : 음… 해외에 대해서 흥미가 있는 것 같아요. 예전부터 해 온 말이지만 파리에 가 보고 싶어요. 뭔가 세련된 곳일 것 같고, 맛있는 요리가 많다고 들었거든요. 역시 먹을 게 맛있는 동네는 매력적이죠.
- 사실 유럽은 대부분 음식이 맛 있는데 말이죠.
스 : 우와~ 언젠간 멤버들이랑 함께 유럽 가 보고 싶어요.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작은 목소리로) 가 보고 싶네요.
- 만약 해외에서 라이브를 하게 된다면 멤버들과 함께 해외에 가실 수 있겠네요.
스 : 해외에서 라이브라… 외국의 젊은 분들의 심정은 어떤 지 몰라서…
- 방금 그 말씀은 역시 '케야키자카의 곡은 젊은 사람들의 마음에 호소하는 곡'이라는 의미신가요.?
스 :저 자신도 그룹에 들어오기 전에는 마음 한 구석에 막연한 불만이 있었고, 들어 와서 저와 비슷한 아이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하지만 해외의 아이들이 어른들에 대해, 사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할 지를 모르겠어서…
- 문화는 다를 지 몰라도 근본적인 부분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요.
스 : 그런가요? 그냥 이미지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해외 아이들은 뭔가 엄청 자유롭게 사는 것 같아요. 그런 환경에서 살아 온 아이들에게 저희 곡은 통하지 않을 것 같아요…
- 해외라고 해도 나라가 하나 뿐인건 아니니까요. LA같은 경우는 특정 연령이 되기 전의 아이를 집에 혼자 두면 부모가 처벌을 받기도 하는걸요. 어린 아이가 범죄에 말려들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는 합니다만.
스 : 그렇군요… 그럼 해외의 아이들도 나름대로 생각하는 게 있겠군요.
- 일본사람들이 보기에는 자유로워 보일 지 몰라도 그들 나름대로 억압된 부분이 있겠지요.
스 : 혹시 그런 아이들이 있다면… 라이브를 하는 의미가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어렵잖아요. 언어가 다르다는 거. 메시지도 바로 전해지지 않고.
- 그럼 우선 아시아부터 노려 보시는 건 어떨까요? 악수회에 한국이나 대만 팬 분들도 오시잖아요.
스 : 아, 분명 많이 와 주세요. 하지만 해외의 팬 분들께서 어떻게 케야키자카를 좋아하시게 되셨는 지 솔직히 좀 궁금해요.
-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노래나 퍼포먼스를 보시고 팬이 되시지 않았을까요?
스 : 그렇다면 기쁩니다만… 하지만 어른들 중에서도 저희 곡을 들으시고 '우리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라고 공감 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해외의 팬분들도 마찬가지로 저희의 곡을 듣고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다면 그런 메시지를 전하러 가고 싶어요. 다만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언어 문제가… 단순히 노래를 한다고 해서 메시지가 전부 전달이 될 지…
- 케야키 라이브는 항상 스테이지 위에 설치 된 모니터에서 가사가 흘러 나오잖아요. 해외에서 공연을 한다면 그 가사를 그 나라의 언어로 번역해서 보여 주면 되지 않을까요? 쉽진 않겠지만.
스 : 오!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모니터에 대대적으로 가사가 나오니까.
- 그럼 외국어에 대해서는 흥미가 없으신가요?
스 : 음…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 했지만, 사실 영어라던가 그 외의 외국어를 할 줄 알면 즐거울 것 같긴 해요. 물론 그렇다고 영어 회화를 배우러 간다던가 할 생각은 없지만요. (웃음)
- 언젠간 그 생각을 실행에 옮기실 날이 오면 좋겠네요. 아 그러고 보니 8/21에 결성 3주년을 맞이하시는데요, 원래는 그룹 이름도 달랐잖아요. 그 점을 생각하면 어쩌면 처음에 생각했던 그룹의 분위기나 방향성도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어떠신 것 같나요?
스 : 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당초 그룹 명은 좀 미묘했던 것 같아서 (웃음) 그렇기에 합격 당일에 갑자기 그룹 명이 바뀌었을 땐 놀라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다행이다'라고도 생각했어요.
-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군요. (웃음) 스즈모토상, 12월이면 한 살 더 나이를 먹게 되시는데요, 새롭게 먹게 되는 1살은 큰 의미가 있나요?
스 : 음… 그렇게까지 큰 의미는 없는 것 같은데요… 19살에서 20살이 되었을 땐 좀 다른 것 같았지만요. 아무래도 10대에서 20대가 된다는 게 컸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평생 20살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웃음)
-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10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하세요?
스 : 예전에는 10대인 채로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실제로 20살이 되고 나니 10대
때 보다 자유롭더라고요. 하지만 21살은 딱히 뭔가 특별한
느낌도 없고… 가능하다면 이 이상 나이 먹고 싶지 않아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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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 그녀의 이미지는 '조용한 댄싱 퀸'.
애초에 성격부터가 낯가림이 심하기에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 한 눈에 그녀가 활발하고 말이 많다는 것을 알아차릴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무대 위에 서서는 백만마디의 말보다 더 많은 것들을 웅변하기라도 하는 듯 한 퍼포먼스를 선보여 주는 것 역시 그녀이다
그런 '평소의 모습'과 '무대 위에서의 모습'간의 갭 그 자체가 어쩌면 그녀의 매력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그런 스즈모토가 신중하게 표현을 골라가며, 하지만 진지하게 그룹과 자신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화제에 따라서는 변함없이 수줍어 하는 모습도 보여주었지만, 그럼에도 주어진 질문은 피하지 않고, 거짓없이 말 해 준 그녀.
때로는 크게 웃기도 하며 그녀 특유의 풍부한 표정과 함께 한 시간들을 약 1만자에 걸쳐 글로 옮겨보려 한다.
- 갑작스러운 질문입니다만, 스즈모토 미유라는 사람이 '믿는 것'은 무엇인가요?
스즈모토 (이하 '스') : (눈을 동그랗게 뜨며) 네?! 음.. 믿는 것이라… '자기 자신' 정도일까요…
- 오호라. 그렇군요. 스즈모토상은 자기 자신을 믿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라…
스 : 음… 뭐라 하죠? 다른 사람에게 기대는 게 좀 어색해서요… 결국은 저 스스로 해결 해 버리고 말아요. 지금까지 계속… 그런 식이었던 것 같네요.
- 사실 지지난호에서 오제키 리카상을 취재했었는데요, 그 때 오제키상께서 '레슨 전에 스즈모토랑 함께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하시더군요. 스즈모토상을 멤버들을 대할 때 어떠신가요?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지내시는 편이신가요?
스 : 네. 그렇지요. 하지만 저 자신에 대해 상담하거나 하는 경우는 없어요.
- 그럼 반대로 다른 멤버들의 상담을 해 주시는 경우는 있나요?
스 : 아… 기본적으로 조언을 해 준다거나 하기 보다는 그냥 조용히 얘기를 들어주기만 하는 경우가 많아요. 언제나…
-그러고 보니 예전에 '여성들이 상담을 해 올 때는 굳이 정답을 내려 하지 말고 조용히 들어 주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남성들이야 그렇다 치고, 이 얘기는 여성들끼리의 관계에서도 통하는 얘기인가요?
스 : 음… 확실히 그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긴 해요. 사실 어떻게 하고 싶은 지 그 해답이 이미 자신 속에 있을 때라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털어놓다 보면 지금까지 놓치고 있던 점이 보이는 경우도 있는데다가, 자기 혼자 끙끙대는 것 보다는… 마임이 편해지기도 하잖아요.
- 대답은 이미 자신의 마음 속에 있다… 라… 그 말씀을 들으니 스즈모토상이 갖고 계신 '철학'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것 같네요. 자, 그럼 지금부터는 지난 활동들을 되돌아 보도록 하지요. 지난 4월, 데뷔 2주년 애니버서리 라이브가 있었지요. 그 때 저는 '쉬고있는 멤버들의 몫까지 커버하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19명의 멤버'들을 보고 이 그룹의 새로운 가능성을 느꼈습니다. 그럼 본인들은 그 점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스 : 그렇네요. 애니버서리 라이브를 무사히 넘겼다는 점이 참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전원이 모이지 않았기에 포지션도 많이 바뀌었고, 안무 배분도 바뀌었지만 전원이 힘을 합쳐 대응했어요. 물론 그렇게 했어도 리허설을 해 보면 결국 조금씩 잘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지요. 물론 저 역시도 라이브를 앞두고 불안했었고요. 하지만 아무리 불안해도 안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마음에 여유가 없이 코너에 몰려 있었어요. 그렇기에 멤버 전원이 하나가 되어 극복해 낸 점이 정말 기뻤지요. 음… 뭐라 해야 할까요. '눈 앞을 가로막은 벽을 뛰어넘었다'는 느낌이었지요.
- 스즈모토상은 처음으로 '사이마조'의 센터 자리에 서셨는데요, 센터에 서기에는 용기가 필요 하시던가요?
스 : 그렇죠… 하지만 그 때는 정말로 아까 말씀드렸던 것 마냥 '답이 저 자신 안에 있었'어요. 그렇기에 센터를 해 보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거절'이라는 선택지는 없었지요. 하지만 일단 멤버들에게 물어봐야겠다 싶어서 (웃음) 몇몇 멤버랑 그 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긴 했어요.
- 그 점에 대해 사이토 후유카상도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고민하는 스즈모토상 편을 들어 드렸다고 하시던데.
스 : (잊고 있던 것을 떠올린 듯) 아! 맞다! 그랬어요! 후쨩이 말 해 주었어요. (웃음) 그리고 원래 자신이 센터가 아닌 곡의 센터에 서는 것이 저 혼자만은 아니었기에, 다른 멤버들이 저와 마찬가지로 센터 자리에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저만 고민하는 것도 좀 이상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원래 그 곡에서 스즈모토상의 자리는 센터 오른쪽 옆자리시죠? 어떻게 보면 그냥 한 자리 옆으로 간 것 뿐이시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뭔가 크게 차이가 있으시던가요?
스 : 보이는 풍경은 똑같더라고요. 그렇게까지 큰 차이는 없었다고 해야 할까요. (웃음) 사실 요 전 악수회에서 팬분들도 같은 질문을 하시더라고요. '센터자리에서 보이는 경치는 어땠냐'고. 그래서 '그냥 왼쪽으로 한 자리 옮겨 간 것 뿐이니까 그렇게까지 큰 차이는 없었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팬분들께서 당황하시던걸요.
- 그랬군요. 사실 저도 조금은 감정적인 대답이 나올 것이라 기대했었는데요. (웃음)
스 : 에?!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까지 큰 차이가 없었는걸요. (웃음) 평소와 다름 없이 '사이마조'를 선보였다는 느낌이었지, 그렇게 뭔가 크게 다르다는 의식은 없었어요. 우와… 이렇게 얘기하고 보니 정말 특별한 감정이 하나도 담겨 있지 않네요. 뭔가 죄송한걸요.
- 아녜요. 오늘 인터뷰는 어디까지나 스즈모토상의 솔직한 생각을 듣는 것이 테마니까요. 하지만 센터 자리에 서서 퍼포먼스를 한다는 의미 깊은 상황에서도 객관적으로 무대 상황을 파악하는 모습이 왠지 흥미롭네요, 그럼 평소에도 무대에 서실 때는 그렇게 제 삼자의 입장에 서서 객관적으로 보곤 하시나요?
스 : 음… 뭐라 말씀을 드려야 할까요… 춤을 출 때 어떤 감정을 갖고 추는 지, 사실 저도 잘 모르겠거든요. 확실한 건 각 곡마다 각기 다른 감정을 갖고 임한다는 것 정도겠네요. 최근에 깨닫게 된 부분이 있는데요, '케야키 공화국 2018' 때 '이제 숲으로 돌아갈까'를 선보일 때였거든요. 곡이 끝나고나서 다음 곡 준비를 하러 가야 하는데, 그 때는 어째선지 '이 곡의 세계관에 좀 더 빠져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음 곡이 '유리창을 깨라!'였는데, 다음곡의 세계관에 빠져들지 못하고 '이제 숲으로~'의 세계관에 더 머물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계속 들어서 내심 놀랐습니다. '아, 내가 이 정도로 이 곡의 세계관을 좋아하는구나'라고 생각했지요.
- 그러고 보면 '이제 숲으로 돌아갈까'라는 곡은 케야키자카가 아니라면 소화하기 힘든 곡이요, 세계관이죠. '케야키 공화국 2018'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AM1:27'도 정말 좋았습니다. 지금까지처럼 스즈모토상을 비롯한 유닛 멤버들이 선보이려나… 라고 생각하고 있으려니 전원이 퍼포먼스를 하시더군요. 정말 장관이었어요.
스 : 정말요? 그렇게 좋게 받아들여 주시니 기쁘네요. 올 해 '공화국' 공연도 정말 즐거웠어요.
- 그리고 마지막날 공연 더블 앵콜 때는 신곡인 '앰비벌런트'를 처음으로 선보이시기도 했고요. 이번 신곡 역시 안무가 대단하던데요.
스 : 네. 이번 안무 같은 경우에는 다리보다는 팔쪽의 움직임이 격렬한 안무예요. 그리고 템포도 빠르다 보니 소화하기 힘든 안무지요. 멤버들 중에는 '신나는 춤'이라는 멤버들도 많긴 합니다만…
- 스즈모토상은 예전에도 '카제후카'의 안무에 대해 '스텝이 엄청 빡세다'고 표현 하셨지요. 그럼 '카제후카'와 '앰비벌런트' 안무를 비교 해 보신다면 어떠신가요?
스 : 아… '안비바'가 더 어려워요. 싱글이 나오면 나올수록 안무가 어려워 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공화국' 더블 앵콜 때 그 곡을 선보였을 땐 정말 체력적으로 힘들었지요. 심지어 바로 앞 곡이 '가라스'였어서 내심 '와, 이 다음에 안비바 춰야 되는 거야?' 라고 생각했을 정도였어요. 하지만 정작 음악이 흘러 나오자마자 팬분들께서 '헤이~' '워우워우~'라고 따라 불러 주시더라고요. 처음으로 선보이는 곡인데도! 그 소리를 듣고 '역시 흥이 나는 곡이고, 함께 즐기기 좋은 곡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기뻤어요.
- 이 곡에 대한 멤버들의 평가도 전반적으로 높은 편이던데요. 스즈모토상은 어떠신가요?
스 : 저는… 물론 이 곡도 좋은 곡이라 생각은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불협화음'처럼 좀 센 곡조가 더 마음에 들어서요.
- 아, 스즈모토상에게는 그런 곡조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스 : 그래서인지 '가라스'도 엄청 좋아했어요.
- 팬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완성도 측면에서는 '후타리세종'과 '익센트릭'이 쌍벽을 이룬다고 생각하는데요.
스 : 아, '익센트릭'이랑 '세종'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 그리고 여름이라 하면 역시 '세카아이'의 이미지가 강하지요. 이번 '공화국'에서도 초반에 '세카아이'의 흰 제복이 보여서 뭔가 반가웠어요.
스 : 아 그러고 보니 콘서트 처음부터 그 제복 입고 있었지요. 리얼타임으로 그 제복을 입었던 당시랑 비교하면 겉모습도 꽤나 변했고, 다들 어른이 되었기에 어떻게 보면 거의 '코스프레' 처럼 보였을 지도 모르겠네요. (웃음) 그렇게 생각 해 보면 언제까지 '사이마조'를 부를 수 있을 지가 걱정되더라고요. 저희들이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데 '어른들에게 지배당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노래 하는 것이 조금 안 어울리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요.
- 그렇다곤 해도 케야키자카46의 원점이며 대명사는 다름 아닌 '사이마조'라는 점은 변하지 않지요. 물론 앞으로는 같은 곡을 선보인다 해도 곡에 대한 해석이나 관점이 바뀌는 것은 생각 해 볼 수 있겠지만요.
스 : 음… 지금은 이전과 전혀 다를 게 없는, 그 때 그대로의 '사이마조'인걸요.
- 그럼 노래가 아니라 안무면에서는 어떤가요? 어레인지를 한다던가 하시지 않나요?
스 : 아뇨. 기본적으로는 처음, MV촬영 당시의 안무에서 변하지 않았어요. 애초에 안무 자체가 굉장히 심플하기에 좀 익숙해 진 뒤에는 좀 어레인지를 한다던가, 난이도가 높고 멋진 안무를 넣고 싶어지기 마련입니다만, 멤버 각자가 그렇게 어레인지를 해 버리면 결국 안무에 통일성이 없어지게 되거든요. 최근 들어 후쨩이랑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요즘들어 다들 춤에 자신만의 버릇이 묻어나와 전체적으로 잘 안 맞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이번 '공화국' 리허설 때에도 그런 부분을 바로잡는 데 꽤나 고전했습니다. 특히 초창기 곡들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했어요.
- 아 그런 고충도 있겠군요. 참고로 올 해 '공화국'을 녹화한 모니터용 화면을 다시 한 번 점검해서 앞으로 있을 전국투어에 피드백 할 계획 같은 것은 있으신가요?
스 : 녹화된 영상을 전부 보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곡에 따라 필요할 경우에는 점검하고 있어요. 일단 지금은 '완성도를 더 높여야겠다' 싶은 곡들부터 보고 있습니다.
- 라이브 현장에서 느끼는 달성감과 시간이 지나 냉정 해 진 뒤에 영상을 보고 느끼는 점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요.
스 : 네. 특히 '안비바' 같은 경우엔 무대 위에서 춤을 추면서도 '아, 지금 관객분들께 퍼포먼스가 제대로 전달되고 있지 않구나'라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실제로는 어땠으려나 싶어서 영상을 체크 했습니다. 라이브 스태프분들께서는 '괜찮았어'라던가 '분위기가 엄청 달아올랐다'고 말씀 해 주셨지만, 역시 안무도 벼락치기로 배워서 오른 무대였기에 좀 더 확실히 레슨해서 완성도를 높여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영상을 보며 '좀 더 잘 할 수 있었을텐데'라는 생각이 엄청 들었어요. 무엇보다도 그 곡은 앞으로의 라이브에서 큰 무기가 되어 줄 곡이라 생각하거든요.
- 하긴, 히라테상이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을 보여주시는 것만으로도 라이브에서는 분위기가 달아오르는 곡이 될 것 같네요. 자, 그럼 바로 그 히라테상이 복귀하신 데 대해 여쭤보겠습니다. 스즈모토상은 히라테상의 복귀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스 : 애니버서리 라이브를 통해 히라테라는 존재가 얼마나 큰 존재인지를 알게 되었기에, 역시 히라테가 돌아 와 준 덕분에 다시금 멤버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퍼포먼스도 더욱 더 좋아졌고, 그룹 분위기 면에서도 좋아졌고요. 그렇기에 저는 히라테의 복귀가 정말 기뻐요.
- 케야키 멤버들도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가는데요, 스즈모토상이 보시기에 그룹 분위기는 어떻게 변화 해 왔나요?
스 : 음… 대기실 분위기만 봐서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고… (웃음) 다들 겉모습은 어른스러워졌지만 서로를 대하는 방식 등 다른 부분은 크게 변하지 않았어요.
- 그럼 히라테상과의 관계성은 어떻게 변해 왔나요? 초창기에는 고향이 가까웠던 것도 있어서 두 분이 콤비식으로 묶이시는 경우도 많았는데요.
스 : 요즘도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땐 히라테랑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 히라테가 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는 히라테를 신뢰하고 있거든요. 물론 저 뿐 아니라 다들 히라테를 신뢰하고 있겠지만. (웃음) 히라테는 주변을 꼼꼼하게 관찰하고 있는데다가, 그룹에 대해서, 라이브에 대해서 엄청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거든요. 최근 들어 다른 멤버들도 '이 부분은 이렇게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던지 '여기는 이렇게 해 보고 싶다'는 식으로 의견을 내기 시작했는데, 저는 그런 자리에서는 말을 아끼고 우선 히라테에게 이야기를 하곤 해요. 히라테 역시 여러 모로 생각하는 모양인지 저에게 '이거 이렇게 해 보고 싶은데 어떨까?'라고 물어 오기도 합니다만 그럴 땐 제가 거기에 대해 의견을 내는 식이에요.
- 결국 두 분이 서로를 신뢰를 하고 계시다는 얘기네요. 한편 사이토 후유카상과도 조금 다른 성격의 '신뢰관계'를 맺고 계신 것 같은데요, '공화국'을 앞두고 올라 온 사이토상의 블로그에 스즈모토상과 찍은 사진과 '여러 모로 도움을 받았다'고 적혀 있었지요.
스 : 아… 그러고 보니 같이 사진 찍었었죠.
- 어? 다른 멤버들 블로그는 잘 안 읽으시나봐요?
스 : 에? 아… 네. 잘 안 읽어요. (웃음)
- 자주 만나니까 만나서 이야기 하면 된다는 말씀이시군요. (웃음) 그럼 질문입니다. 스즈모토상은 그룹 내에서 본인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 생각하세요? 예를 들어 퍼포먼스면에서 그룹을 이끌어 가는 존재 라던지.
스 : 음… 어떤 역할일까요. 그룹이 퍼포먼스를 할 때, 최대한 전체가 잘 보일 수 있도록 밸런스를 맞추는 면에서 그룹에 공헌하고 싶어요.
- 그런 'for the group' 정신, 정말 멋지네요. 춤 실력면에서 뛰어난데도 남들 시선을 의식하고 과장하거나 튀어보이려 하지 않는 점이 대단합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이유가 궁금한데요.
스 :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서인 것 같아요. 저 자신에 대해 말이죠. 물론 춤 실력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고요.
- 겸손이라 해도 도가 지나치다 느껴질 정도인걸요.
스 : 음… 케야키는 곡이 새롭게 나올 때 마다 안무 난이도가 점점 어려워 지기 때문에, 레슨에서 처음 춤을 배울 때에 이미 어찌 할 줄 몰라하는 멤버들도 자주 나옵니다. 그렇기에 저희 그룹에서 춤 실력에 자신있다고 손 들만한 멤버는 거의 없을 거예요. 저도 물론이고요. 물론 그러던 멤버들도 정작 본 무대에 오르면 멋드러지게 춤을 추는 걸 생각하면… 정말 신기할 따름이에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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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외부에서 한 언동이 그룹에 대한 평가로 이어진다
- 케야키자카46 멤버들 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여성 패션잡지 ‘논노’의 전속모델로서 활약하였으며 ‘도쿄 걸즈콜렉션’ 등 패션 이벤트에도 다수 참가 한 경험이 있는 와타나베 리사. 이번 그라비아 촬영에서는 데뷔 초기에는 볼 수 없었던 ‘여유’마저 감돌아, 새삼스럽게 그녀가 얼마나 성장했는 지를 느낄 수 있었다.
와타나베 (이하 ‘와’) : 오키나와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촬영 스케줄이 꽤 빡빡할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예상외로 여유가 있어서 예전부터 가 보고 싶었던 곳들을 관광 할 시간도 있었습니다. 일 관계 없이 그냥 여행 온 것 같아서 즐거웠어요.
그라비아 촬영이랑 패션잡지 촬영은 조금 차이가 있는데요, 그렇게 두 가지 다른 촬영들을 겪으며 배운 것들을 적절히 섞여 활용하고 있기에 예전에 비해서 촬영에 임할 때 저항 없이 임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초창기에는 사진 찍히는 것이 좀 부끄러웠고, ‘이 각도에서 찍으면 별로일텐데’ 같은 생각도 했었습니다만, 지금은 전부 다 즐겁습니다.
- 필자가 그녀를 처음으로 인터뷰 했던 것은 2016년 4월, ‘사일런트 마조리티’로 CD데뷔 한 직후였다. 당시 그녀는 ‘그룹에 들어오기 전에는 엄청나게 소극적이고, 스스로 앞으로 나서지 않는 타입’이라고 이야기 해 주었다. 하지만 연예계란 언제나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서야만 하는’ 곳. 지난 3년간 자신의 원래 성격과 연예계에서 요구하는 덕목 사이에서 갈등하지는 않았을까.
와 : 실제로 그런 갈등은 있었고, 사실 지금도 딱히 ‘나’를 내세우며 거침없이 나서지는 못 해요. 케야키자카라는 그룹 자체가 저 같은 성격인 아이들이 많거든요 물론 개중에는 ‘내가 앞으로 나서주지’라고 생각하는 아이가 있을 지도 모르지만, 그런 마음을 주변 멤버들에게 거침없이 털어놓을 정도로 자아가 강한 타입의 아이들은 없는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도 소극적인 편이기에 멤버들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하지만요. 어쩌면 그런 성격적인 면이 그룹이 조화를 이루는 데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그런 면이 그룹 밖으로 벗어나는 순간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고, 그 결과 자신에게 좋지 않은 식으로 작용 할 때도 있다는 것 정도는 이해 합니다만…
- 논노 전속모델이 된 지 1년 이상 지난 지금도 그런 의식을 완전히 떨쳐버리지는 못 했다는 그녀.
와 : 패션모델 일을 할 때는 다른 멤버들이 함께 있는 것이 아닌데다가, 저 스스로의 일은 저 자신이 알아서 해야만 하는 환경이기에 ‘내가’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만, 그룹 안으로 돌아가는 순간 다른 멤버들에게 의존하기도 해요. 어쩌면 그 덕분에 스스로가 딱 알맞게 균형을 잡고 있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요.
- 그룹 외부에서 활동 할 때는 그룹을 대표하여 일을 한다는 책임감이나 케야키자카46의 이미지를 짊어지고 있다는 자각은 하고 있는 것일까?
와 : 저 때문에 ‘아, 케야키자카는 이런 그룹이구만’이라는 식으로 평가를 받는 건 싫기에 인사 등 여러 면에서 그룹 활동을 할 때 보다 더 신경을 써요. 하지만 그만큼 그룹 활동을 할 때는 다른 아이들에게 의존하게 되지요. 그런 면은 초창기 때나 지금이나 별로 변하지 않은 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런 면도 고쳐나가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룹 외부 일을 할 때 강한척 하는 반동이라 해야 할 지도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크거든요.
- 그럼 케야키자카46 안에서 ‘내가 다른 멤버들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없는지 물어보니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와 : 모델 일을 할 때는 아무래도 동세대의 여자아이들이 주요 타겟이고, 케야키자카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 많으시리라 생각하거든요. 그렇기에 그런 분들에게 ‘아, 케야키자카 멤버다’라고 그룹을 알아가는 계기를 만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합니다. 그런 분들이 라이브에 와 주셨으면, 악수회에 와 주셨으면 좋겠거든요. 제가 노력하는 큼 케야키자카라는 그룹의 이름이 더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그룹 안에서 그룹을 이끌겠다는 건… 아직 그 정도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 케야키자카46도 벌써 올 8월로 결성 3주년을 맞이한다. 다양한 활동을 하며 성장한 부분도 많겠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질문을 해 보았다.
와 : 아무래도 라이브 MC가 좀 부족한 것 같아요. 이건 저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 하고 있을 때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지 못 하거든요. 하고싶은 말이 있을 때도 가만히 있다가 결국 그 화제가 끝나버리는 경우도 자주 있었지요. 어떤 타이밍에 어떻게 끼어들어가는 것이 좋을 지를 잘 모르겠어요.
사실 대기실 안에서나 멤버들이랑 이야기 할 때는 아무렇지 않게 얘기에 끼어들어서 대화 나누기도 하고, 그 내용도 엄청 재미있기에 어떻게 해야 그런 면을 살릴 수 있을까 고민입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의견을 내는 것 역시 아직 조금 불편한 면이 있어요. 사람 수가 적을 때라면 직접 이야기를 하면 되지만요. 라이브 리허설만 해도 댄서 분들께 ‘여기서는 이렇게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라는 식으로 생각나는 것은 전부 말 하거든요. 예를 들어 안무 연습 하면서 딱 봐도 각이 안 나오거나 할 때는 그것을 기억 해 두거나 메모 해 두거나 한 뒤에, 나중에 댄서분께 가서 ‘어제 안무 연습하다보니 이렇게 되던데요’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확인을 받거나 해요. 그 덕분에 좋아 진 적도 많았고요.
물론 저 스스로가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말 하는 게 좋을 지도 모르지만, 그 자리에서 이야기 하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그렇기에 언제나 일단 마음 속에 담아 두었다가 나중에 이야기를 하려 하는데, 하루 지나면 대부분 잊어버리곤 해요. (웃음)
보통 그런 식이기에 매사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경우는 거의 없긴 합니다. 그렇기에 어쩌면 제가 하는 말들은 대부분 독백이라 해도 무방 할 지 모르겠네요.
그렇다고 딱히 그런 것들이 스트레스가 되는 것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스트레스가 그렇게 많이 쌓여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어쩌면 그저 주변에 흥미가 없는 것 뿐일지도 모르지만… 아, 아니예요. 흥미는 있어요. (웃음) 그냥 매사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것 뿐이에요.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도 제가 좋아하는 것 외에는 딱히 흥미가 없다고 해야 하나… 취미라던가 좋아하는 일 외에는 관심이 없는 인간이거든요. 예를 들어 서핑이라던가 스노우보드처럼 해 보고 싶은 일에는 적극적으로 달려들지만, 그렇지 않은 일에는 사실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케야키자카라는 그룹 자체는 엄청 좋아하기에, 생각나는 게 있다면 후쨩이나 네루에게 이야기하곤 해요. 그런 식으로 쌓인 감정을 푸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히라테와 같은 곳에 선 뒤, 처음으로 알게 된 감정
- 올 해 4월 6일부터 8일에 걸쳐 케야키자카46의 데뷔 2주년 기념 애니버서리 라이브가 열렸다. 이 라이브는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센터인 히라테 유리나가 결석, 다른 멤버들이 그녀의 빈 자리를 메운 라이브였다. 와타나베 역시 ‘피뢰침’이나 ‘월요일 아침, 치마가 잘려있었다’에서 히라테 대신 센터 자리에 섰다. 특히 ‘게츠스카’ 무대에 선 그녀는 압도적인 아우라와 박력을 내뿜었다.
센터 자리에 선 뒤로부터 마음 속에 ‘각오’가 섰다는 그녀에게 그 각오란 무엇인지를 물어 보았다.
와 : 여름 투어 (2017년 8월에 열린 첫 전국투어 ‘케야키자카 전국투어 2017 새하얀 것은 더럽히고 싶어져’) 나고야공연 1일차에 처음으로 히라테 없이 라이브를 하게 되었거든요. 그 라이브를 보신 스태프분께서 ‘어쩌면 2일차 공연에도 히라테가 못 나올지도 모르니까 일단 대타를 생각 해 보자’라고 말씀 하셨어요. 그 때 저는 ‘게츠스카’를 담당하게 되었지요.
그렇기에 2일차 공연 아침은 다들 일찍 일어나서 각자 자신이 담당한 곡의 안무를 새로 외워야 했지요. 하지만 결국 히라테가 2일차 공연에 나올 수 있게 되어서 연습한 것을 보여드리지는 못 하고 넘어갔었어요.
하지만 이번 애니라는 히라테가 출연하지 못 한다는 게 사전에 확정이 되었기에,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아, 이번에는 대타 서야 할 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들더라고요. 실제로 대타 얘기를 듣고, 이렇게 된 거 열심히 해 보자고 생각하고 ‘게츠스카’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곡은 히라테의 이미지가 상당히 강한 곡인데다가, 팬분들께서도 그런 이미지를 가장 기대하실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솔직히 처음에는 이 곡을 팬분들께 선보인다는 게 무섭기도 했습니다. 보러 와 주신 분들께서 어떻게 반응하실 지에 대해서도 걱정이 되었지만, 무엇보다도 기념 라이브를 성공리에 해 내지 못 하면 케야키자카라는 그룹에 미래가 없을 것 같았어요. 그렇기에 멤버 개개인이 각자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리허설을 거듭 해 갈수록 ‘해 내겠어!’라는 마음이 강해지고, 마음도 긍정적으로 바뀌었어요.
- 지난 해 연말, 와타나베를 인터뷰 했을 때 ‘2017년을 되돌아 보면 어떤 한 해였는가’라 질문을 했는데, 그녀의 답변은 ‘사실 달성감은 그다지 못 느꼈다’였다. 이는 역시 여름 전국투어의 완성도에 만족하지 못 한 부분이 컸다고 한다.
와 : 작년 여름 투어는 솔직히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을 정도예요. 저희 자신에 대해 너무 기준이 너그러웠지요. 마지막 공연때야 그나마 기합이 들어 있었찌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룹의 첫 전국투어였음에도 팬분들께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여드렸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경험을 한 뒤에 애니라를 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 뿐 아니라 원래 올 해 초에 예정되어 있었던 무도관 공연에도 나갈 수 없게 되었기에, 사실 라이브 자체가 굉장히 적어졌던 것도 있어서 애니라 3일간은 엄청 두근거렸어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기대와 즐거움에 두근거린 것 보다는 압박감이 더 컸어요. 첫 날 공연때는 정말이지 내장이 전부 몸 밖으로 튀어나오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울렁거렸을 정도였는걸요. (쓴웃음)
- 실제로 첫 날 공연을 본 멤버들 역시 ‘관객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실까? 히라테가 없는 케야키자카를 받아들여 주시기는 할까?’라고 불안해 하기도 했다.
와 : 정말로 말씀하신 대로 히라테가 없어도 받아들여 줄까하고 걱정했어요. 실제로 울기도 했던 것 같은데요. (웃음) 라이브 자체도 엄청 오랜만이었기에 그 점도 불안했고요. 하지만 해 낼 수 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공연에 임했습니다.
- 애니라 당시, 와타나베는 자신이 센터에 선 ‘게츠스카’의 가사를 다시 한 번 해석 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는 맛보지 못 한 감정에 지배되었었다고.
와 : ‘게츠스카’의 센터에 서서 퍼포먼스를 함에 있어, 통학 전철 안에서 누군가에게 치마를 잘린 주인공과 그 모습을 보고서도 못 본 체 하는 주변인들을 안무로 표현 해 내야하거든요. 단적으로 후렴구에서 히라테가 쓰러지고, 다른 멤버들이 슬슬 뒤로 빠지는 부분이 있어요. 예전에는 그 장면을 보면 ‘아, 히라테(주인공) 참 안됐다’라는 생각만 했지, 딱히 특별한 의미는 두지 않고 퍼포먼스를 했었는데, 저 자신이 히라테와 같은 위치에 서서 퍼포먼스를 해 보니 ‘어, 이런 감정이 드는구나’라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를 두고 뒤로 빠지는 다른 멤버들이 무서워졌다고 해야 하나요… 굉장히 복잡한 마음이 들었어요.
솔직히 곡에서 받는 인상이 이토록 확 바뀌어 버리는 것도 좀 이상한 일이라 생각해서 처음엔 그렇게 큰 의미를 안 두었었기에 실제로 겪고 보니 엄청 당황하게 되더라고요.
- 클라이맥스에는 와타나베의 솔로파트, ‘네깟게 나에 대해 뭘 알아’라고 외치는 파트가 있다. 이 대사를 내뱉는 그녀의 표정에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느낀 적 없는 분노와 절망, 슬픔이 느껴졌다.
와 : 사실 히라테가 어떻게 했는 지를 보면 무의식적으로 따라하게 될 것 같아서 히라테가 어떻게 했는 지는 안 보고 연습했어요.
- 많은 멤버들이 어떻게 해야 히라테와 비슷하게 퍼포먼스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고전하는 가운데 와타나베는 ‘히라테의 퍼포먼스를 재현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고뇌하였다.
와 : 물론 ‘네깟게 나에 대해 뭘 알아?’ 부분에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는 건 아니지만, 피로 하는 바로 그 순간만큼은 별다른 생각 없이 했어요. 너무 깊이 생각하면 헛발질 할 것 같았거든요.
제가 그 대사를 하기 직전에 다른 멤버들은 움직임을 멈추고 저 혼자 헤매는 듯한 움직임을 취하거든요. 그 안무를 연습 할 때도 댄서분께서 ‘거기 있는 것은 나이지만 동시에 내가 아니어야 해. 와타나베, 거기 부분은 네가 와타나베가 아니라는 마음으로 춤 춰야 해’라고 이야기 해 주신데다가, TAKAHIRO선생님께도 그 곡의 세계관과 의미에 대해 배우기도 했어요.
사실 엄청 어렵기도 했고, 때로는 몰입이 안 되는 때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치마가 잘린 주인공이 되어 ‘날 좀 도와줘’라는 마음을 표현 해 냈다고 생각해요. 노래라고 해야하나, 아니면 절규라고 해야 하나… 연기 할 때 대사를 이야기 하는 것 보다 힘들었어요.
- ‘네깟게 나에 대해 뭘 알아?’라는 단 한 마디지만, 그 짧은 한 마디에서 느껴지는 설득력은 첫 공연때보다 두 번째 공연, 두 번째 공연보다 세 번째 공연… 라는 식으로 횟수를 거듭 해 나가면서 점점 더 강해졌다. 그 중에서도 3일차 공연 때는 말 그대로 감정을 폭발시키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런 데에는 비밀이 있었다고.
와 : 그렇게 칭찬 해 주시니 기쁘네요. 하지만 그 순간은 정말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말 그대로 ‘무’의 경지였다고 할까요. 그래서인지 그 때의 기억이 없어요.
사실 첫 날, 둘째 날 공연 때는 레코딩 된 음원을 틀어놓고 그 위에 제가 라이브로 소리를 쳤었는데, 마지막 날 공연 때는 스태프분께 ‘음원 꺼 주세요’라고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마지막 날은 100% 제 목소리만 들어 가 있답니다.
같은 경험을 했기에 ‘히라테는 대단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 이번 라이브에서는 와나타베 이외의 멤버들도 센터 자리에 섰다. 하지만 다른 곡들과 비교해서 ‘게츠스카’에는 좀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는 그녀.
와 : ‘게츠스카’는 특히 안무 면에서 다른 곡들과 좀 다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익센트릭’이나 ‘카제후카’ 같은 곡들은 안무 자체가 확실히 ‘춤’이라는 느낌이거든요. 그 두 곡 안무도 굉장히 힘들긴 하지만, ‘게츠스카’는 춤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이야기’를 몸으로 표현 해 낸다는 느낌이 강해요. 말하자면 연기에 가깝다고 할까요. 어쩌면 그런 점이 다른 곡들 안무에 비해 소화하기 쉬운 점이었을 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기에 히라테와 같은 역할을 ‘연기’ 함에도 제가 해석한 주인공은 히라테의 해석과는 다르게 보일 것이라 생각하고요. 각각의 캐릭터가 독립되어 있고, 그렇게 독립 된 채로 성립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게츠스카’는 라이브 중반에 위치한 유닛파트가 끝난 직후, 따로따로 움직이던 멤버들이 다시 한 번 뭉쳐 전 멤버가 피로하는 곡이다. 그 중심에 와나타베가 서서 이 곡을 표현한다는 것은 결국 공연 후반의 흐름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런 중요한 역할이 맡겨진 데에 대하여 불안함, 부담감을 안은 채로 무대에 선 그녀는 매 공연마다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결과적으로 자신 외에는 보여줄 수 없는 유니크한 공연을 성공리에 선보였다.
와 : 그렇게 말씀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 곡을 퍼포먼스했을 때의 기억이 거의 없어요. 그저 엄청 긴장 했었다는 기억 밖에는…
하지만 곡이 시작되기 전에, 정확히 누군지는 몰라도 누군가가 어깨를 토닥여주기도 했고, 시작 포즈가 다들 앉아있고 저 혼자 서 있는 포즈였는데, 그 때도 누군가가 다리를 건드려 주기도 했어요. 이런 식으로 조금씩이나마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조금은 안심이 되었지요.
- 그리고 센터라고 하는, 막중한 책임을 요하는 포지션에 서서 최선을 다 한 결과, 다시 한 번 히라테 유리나라는 인물을 깊이 이해 할 수 있었다는 그녀.
와 : 히라테는 이 ‘게츠스카’ 이외에도 6싱글 연속으로, 그것도 타이틀곡 뿐 아니라 커플링곡들까지 많은 곡들에서 중심에 서 왔잖아요.
저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활동 초기부터 계속 이렇게도 힘들고 무서운 경험을 해 온 거잖아요.
이번에 이렇게 여러 멤버들이 센터라는 자리를 경험 한 덕분에 다시 한 번 21일 전원이 무대에 서서 제대로 된 라이브를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졌어요. 그리고 단순히 ‘라이브를 하’는 것이 아니라 ‘팬 여러분께 좋은 공연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마음도 강해졌고요.
또 다시 센터에 서고 싶냐고요? 솔직히 서더라도 계속 서고 싶지는 않아요. 제 마음이 버텨 줄 것 같지가 않거든요. 케야키자카 곡들 중에는 좀 무거운 곡들이 많잖아요. 실제로 히라테를 보고 있으면 새삼스럽지만 ‘하긴, 저런 마음이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라는 생각이 들곤 해요. ‘불협화음’도 그렇고, 좀 과장일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심각하다 해야 하나요… 그런 분위기의 곡들은 들으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마음에 울리는 것이 있으시겠지만, 퍼포먼스 하는 저희들로서는 저희 마음 자체가 곡에 의해 엄청 소모되어 버리기에 그 균형을 맞추기가 엄청 힘들어요. 그것도 한가운데에 서 있는 사람은 그런 게 더 크게 와 닿는 점을, 이번에 센터에 서 보고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히라테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렇게 말씀 드리면 남 일 얘기하는 것처럼 들릴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같은 경험을 했기에 자신있게 말씀 드릴 수 있어요. 히라테는 대단하다고. 정말 그 말 밖에 안 나와요.
계속해서 변화 해 가는 그룹에 있어, ‘최선’이란 무엇인가
- 일반적으로는 ‘쿨하다’, ‘웃지 않는 아이돌그룹’ 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케야키자카46. 하지만 와타나베와 인터뷰를 하며 느낀 점은 그런 ‘표면적인 인상’만으로는 다 전해지지 않는, 깊은 무언가가 있는 그룹이라는 점이었다.
와 : 정말 어려운 그룹이에요. 케야키자카는. 뭐라 해야 할까요… 솔직히 ‘무섭’기까지 해요. 엄청 불안정한 그룹이니까요. 이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 날 지도 알 수 없는 그룹인데다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어느 날 갑자기 해산 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은 항상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터뷰 등에서 자주 ‘이 그룹의 장래에 대해 이야기 해 달라’라던지 ‘올 해의 목표’ 등 미래에 관한 질문을 받곤 합니다만, 앞으로 어떻게 되어 갈 지에 대해서는 정말 하나도 상상조차 안 되기에 대답하기가 좀 힘들어요. 정말 아무 것도 모르거든요… 그룹의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아도, 그것도 알 수 없고요. 그저 눈 앞에 놓인 것들을 필사적으로 해 나가는 것 외에는 해 본 적도 없고요. 지금까지도 눈 앞에 준비 된 과제를 전원이 힘을 합쳐 해결 해 나가는 것 만으로도 벅찼었기에, 새삼스럽게 그룹의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이나 앞으로 해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갑자기 불안해 지곤 합니다. 농담이 아니라, 앞으로 몇 달 뒤에 어떤 일이 일어 나 있을 지 알지 못하니까요… 지금 당장만 해도 21명 멤버 전원이 함께 활동을 하고 있는 상황도 아닌데다가, 언제쯤 되어야 전원이 다 모일 지도 알 수 없고,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정말 전원이 모이는 날이 오긴 할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렇기에 정말 하나도 모르겠어요. 어렵네요.
- 그렇다면 하다못해 지금 당장 그룹에 있어 ‘최선’은 무엇일까. 미래 얘기가 아니라 현재 케야키자카46라는 그룹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 것일까.
와 : 21명 전원이 모이는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퍼포먼스 등 매사에 확실히 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멤버들이 쌓아 온 ‘케야키자카46’라는 그룹의 장점, 이미지, 퍼포먼스에 임하는 마음가짐 등을 잃지 말고 계속해서 활동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하고, 계속 그렇게 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만약 전원이 모여서 함께 활동을 하게 된다면 반드시 지금까지 보여드렸던 것 이상의 것을 보여드릴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에, 전원이 모일 때 까지는 지금 있는 멤버들로 성실하게 활동 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해요.
- 그런 점을 감안하고 지난 4월의 애니라를 되돌아 보았을 때, 와타나베 스스로는 그 라이브에 만족하는 지 궁금했다.
와 : 음… 어떻게 평가 해야 할까요. 시간이 좀 지났으니 객관적으로 보자면 딱히 합격점도, 불합격점을 주기도 애매한 것 같아요. 네. 잘 모르겠어요.
그 때 할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 해 해 냈다는 자부심은 있어요. 그렇기에 라이브가 끝난 직후 엄청 즐겁기도 했지만… 아, 즐거웠다고 이야기 하기 보다는 해방되었다는 기쁨이라 해야 할까요. 사실 그 전까지는 딱히 해방감이라고 할만한 것을 느껴 본 적이 별로 없었거든요. 이전에는 그저 ‘즐거웠다’던가 ‘(잘 해 내지 못 한 데 대해) 속상하다’ 같은 느낌을 주로 받았는데, 이번에는 저 뿐 아니라 모든 멤버들이 ‘드디어 해방되었다!’라는 말을 실제로 했었어요. 불안정한 상황에서 라이브를 하게 되었기에 다들 중압감을 안고 있었다는 얘기겠지요.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 해 보면 ‘해방되었다’는 말, 엄청난 말이잖아요. (웃음) 물론 그렇게 생각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요.
3일에 걸친 라이브가 끝난 순간, 무대 위에서 울음을 터뜨린 멤버도 있었기에, 그 모습을 보며 ‘준비 기간 때부터 이래저래 쌓인 게 많았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멤버 개개인이 생각한 것들도 있을텐데 그런 생각들을 전부 이야기 할만한 여유는 없다는 것도 다들 이해하고 있었고요. 그저 닥친 일들을 해 나갈 수 밖에 없었어요. 그 3일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기에 라이브가 끝난 뒤의 상황에 ‘해방’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가장 걸맞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높은 벽에서 ‘해방’된 와타나베 리사의 목표
- 3일에 걸쳐 열린 애니라는 그룹의 기념일을 기념한다는 측면에서도, 센터가 부재, 멤버 전원이 모이지 않은 상황에서 열렸다는 측면에서도 지금의 케야키자카라는 그룹에 있어 일대 전환기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케야키자카는 애니라 이후로도 변함없이 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5월 6일에는 아이돌 페스 ‘비바라팝’에 히라테, 시다, 하라다, 이마이즈미 4명이 빠진 17명이 출연하기도 하였다. 불안정한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에도 큰 무대에서 라이브를 감행하기도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룹의 동기부여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까.
와 : 음… 동기부여라고 하기 보다는 할 수 밖에 없다고나 할까요… 동기부여를 따지기 이전에 일단 기합으로 어떻게든 하는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그렇다고 해도 애니라때처럼 한 가지 목표에 올인하다가 해방되는 그런 감각이랑은 조금 다릅니다. 일단 눈 앞에 있는 일을 극복 해 내고, 그 곳에서 해방 된 뒤로는 그 다음 라이브를 위해 여러 모로 준비 해 나가는 것 뿐이지요.
솔직히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 질 지는 아무도 모르는데다가, 지금 눈 앞에 놓인 과제들을 필사적으로 극복 해 나가기만 하는 것도 사실 엄청 힘들고 괴로운 것도 사실이에요. 아, 물론 그렇다고 지금 저희가 절망하고 있다는 건 아닙니다만 (웃음). 2주년 애니라를 끝낸 뒤에는 조금 편해졌거든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그 3일동안이 가장 큰 벽이었어요.
- 전환점이 된 애니라를 극복 해 내고 자기 자신에 대해 조금이나마 자신감이 붙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필시 지금까지 서 본 적 없는 센터 자리에 서서 쉽사리 얻을 수 없는 수확도 얻었을 터이다. 히라테가 센터자리에 서는 평소였다면 얻기 힘든 경험이었을 테니.
와 : 지금 생각 해 보면 역시 좋은 경험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센터에 선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라고 지금껏 알 수 없었던 감점도 이해 할 수 있게 되었기에 개인적으로 큰 수확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그런 경험이 자신감으로 이어졌냐고 한다면… 잘 모르겠어요.
사실 저는 자신에 대한 평가가 낮은 편이거든요. (웃음) 애초에 ‘자신감’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도 그다지 의식하는 편도 아니고, 자신감을 갖고 지금껏 살아 온 편도 아니예요. 물론 그렇다고 엄청나게 네거티브한 편도 아니기에, 말 하자면 의외로 적당적당히 살아 온 편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웃음) 하지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제대로 생각하고 있답니다.
이 세계에 있다보면 때로는 못 할 것 같은 일에도 ‘할 수 있다’고 손을 들어야만 하는 경우도 있을 지 모르고, 그럴 때 손을 들 수 있는 것을 ‘자신감’이라 부르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럴 때 곧바로 손을 들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런 상황에 처하면 일단 ‘생각 해 보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곰곰히 생각 해 볼 시간을 갖는 타입이거든요. 못 할 것 같은 일에 대해 분위기에 휩쓸려 ‘네’라고 쉽게 대답해서는 안 된다는 것 역시 이 세계에 들어 와 배웠기 때문에 일단 시간을 얻어 저 자신과 상담 해 보려 합니다.
- 그럼 와타나베 리사라고 하는 한 개인은 어느 정도까지 앞으로의 비전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 어떤 것에 흥미를 갖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것에 도전 해 보고 싶은 것일까에 대해 질문을 하니 그녀는 ‘라디오 관련 일이 엄청 즐거워요’라고 대답해주었다.
와 : ‘코치호시’ (닛폰방송에서 방송중인 케야키자카의 칸무리 라디오방송 ‘케야키자카46 여기는 유라쿠초 별하늘 방송국’)에서 멤버들과 이야기를 하며, 팬분들께 저희들의 평소 모습을 알려 드리는 것이 정말 즐거워요.
혼자 떠드는 건 잘 못 하지만 (웃음) ‘코치호시’나 ‘유우파라’ (NHK FM에서 방송중인 ‘유우가타 파라다이스’. 매주 케야키자카 멤버가 2명씩 출연중)처럼 멤버들과 함께 이야기 하는 건 마음 편하게 임할 수 있기도 하고, 들어주시는 분들께 멤버들끼리의 관계성을 더 깊이 알려드릴 수 있는 기회라고도 생각을 하기에,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모델 일도 즐거워요. 특히 제가 잡지에서 입은 옷을 더 많은 분들께서 입어 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일에 임하고 있기에, 저 스스로부터가 더욱 더 옷을 잘 입을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아직 모델일은 1년밖에 경험을 하지 못 했기에 앞으로 더욱 더 성장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20살이 되기 직전에 발견한 새로운 ‘취미’
- 올 해 7월 27일에 20살이 되는 와타나베. 연령면에서 보아도 ‘어른’이 됨과 동시에 지금까지 이상으로 무거운 책임이 요구되는 입장에 서게 된 것이다.
와 : 스무살이라… 시간 빠르네요. 아직 실감이 전혀 안 돼요. 중학생 때는 스무살이라 하면 엄청 어른인 것 같았는데, 정작 제가 그 나이에 가까워 지고 보니 사실 고등학생 때랑 별 다를 것 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 면에서도 좀 더 성장해야 하겠지만요.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최근 들어 알게 된 건데요, 어른들은 참 어휘력이 풍부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일을 하며 다양한 어른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야기 도중에 어려운 숙어나 영어 단어가 자주 나오거든요. 집에 돌아가서 찾아보고 ‘아 그 단어는 이런 뜻이구나’ 라고 느끼곤 합니다. 그렇게 새롭게 배운 뒤에는 ‘기회 되면 써 봐야지’ 라고 생각하고요. (웃음) 매일매일 공부가 되지요.
요 전에도 네루가 ‘예의 그’라는 말을 썼는데요, 지금까지 들어 본 적이 없었기에 어떤 뜻인지 몰라서 ‘이게 뭔 말이지?’라는 생각이 들어 검색을 해 봤더니 ‘잘 알고 있는, 항상 그러한’이라는 뜻이 있더라고요. 저 자신이 너무 상식이 없는 것 같아 부끄러웠지요. (쓴웃음)
그렇기에 요즘에는 책을 좀 더 읽으려 하고 있어요. 잘 모르는 것이 있을 때, 그것에 대해 ‘알고 싶다’는 열망은 강한 편이기에 잘 모르는 한자라던가, 속담이라던가, 숙어 같은 것이 있으면 바로바로 공부 해 두면 살아가면서 언젠가 꼭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우선 간단한 책들부터 읽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비록 인터넷으로 보기는 하지만 뉴스도 챙겨보려 하고 있습니다. 아직 모르는 것이 더 많긴 하지만, 정치나 사회 문제 같은 것도요.
- 어른이 되는 날이 다가 오는 탓일까, 최근 들어 여러 분야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는 그녀. 그럼 그녀가 ‘지금’ 이 순간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흥미가 생겼다.
와 : (손뼉을 치며) 아, 최근 말씀이죠! 최근에는 영화를 엄청 보고 있거든요. 한 달 동안 8편이나 봤어요. 그것도 전부 영화관에 가서 말이죠. 전부 외국 영화였는데, 전부 정말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영화를 잔뜩 보려고 합니다. 영화감상을 취미로 갖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까지는 취미나 특기가 엄청 빈약했었는데, 앞으로는 ‘제 취미는 영화감상입니다’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영화를 보고 싶어요. 뭐, 겉멋부터 시작하는 타입이라 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웃음) ‘제 취미는 이것입니다’라고 확실이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영화를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외국 영화를 볼 때 자막에 잘 모르는 한자나 숙어가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면 ‘아까도 이 단어 나왔었는데’ 라는 식으로 몇 번이고 거듭 되면서 조금씩 뜻을 이해 할 수 있게 되거든요. 그 단어를 쓰는 상황으로 유추해서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이지요. (웃음)
‘그레이티스트 쇼맨’과 ‘레디 플레이어 1’은 두 번씩 봤어요. 그리고 ‘주만지 ~월켐 투 정글~’이나 ‘어번제스 인피니티 워’ 같은 작품을 보면서 제가 SF, 액션 장르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그렇기에 이런 타입의 영화들을 많이 보고 싶어요.
영화에 재미를 붙이기 전에는 사실 거의 국내(일본) 영화만, 그것도 대부분 로맨스물만 봤었거든요. 최근 나오는 로맨스 영화는 대부분 결말에 주인공이 불행해지거나 사랑이 결실을 맺지 못하고 연인중 누군가가 죽는다던가 하는 식으로 뭔가 속이 답답해지는 스토리가 많은데, 외국 영화를 보기 시작 한 뒤로는 외국영화 특유의 시원시원함에 푹 빠져버려 ‘영화는 정말 재미있는 것이구나’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해리 포터’ 같은 영화는 보았고, 그런 작품들도 재미있게 보긴 했습니다만, 해리포터는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이다보니 딱히 취미라고 내세우지 않았어요. 하지만 최근 1달정도의 기간동안 다양한 영화들을 보며 영화라는 것이 정말로 재미있는 세계라는 것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영화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오늘 여기서 처음 이야기 하는 거예요. 오늘 이 인터뷰를 계기로 새로운 작품은 물론이고 예전 명작들도 잔뜩 보고 싶습니다.
크리에이티브방면에서도 힘을 발휘 할 수 있다면
- 그룹의 화제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단어를 골라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던 와타나베, 하지만 화제가 자신의 취미 이야기로 바뀌자마자 시동이라도 걸린 듯 신나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와 : 아, 그리고 요즘에는 생명의 근원이라던가 그런 쪽에도 관심을 갖고 찾아보고 있어요. 최근에 생명의 근원은 박테리아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럼 박테리아가 어떻게 번식을 하는지 까지는 아직 알지 못 하기에, 그런 부분을 조금씩 알아가려고 합니다.
카메라맨 분 중에 생명의 근원 같은 분야에 박식하신 분이 계셔서, 그 분과 이야기를 하는 게 정말 즐거워요. 그 분께서 제게 박테리아에 대해 가르쳐 주셨는데, 박테리아가 진화를 통해 원숭이가 되고 그 원숭이가 다양한 역경을 극복하여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점을 알려 주셨어요. 생각 해 보면 엄청난 일이잖아요. 그 대화를 계기로 ‘역경’이라는 단어의 의미도 확실히 알 수 있었기에 앞으로는 이런 숙어의 뜻들을 좀 더 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한자 뿐 아니라 영어 등 외국어도 공부 해 보고 싶어요. 친구 중에 대학에서 외국어를 배우는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가 영어로 문장을 적고, 제가 그 문장을 보며 독해하는 식으로 놀곤 하거든요.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을 때엔 정말 즐거워요.
흥미가 있는 일에 대해서는 무엇이든 알고 싶어하고, 왜 그렇게 되는 지 찾아보곤 합니다. 어릴 때부터 주변의 일들에 의문을 갖고, 이상하게 생각 해 왔어요. 그런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조사 해 보는 것이 즐겁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식으로 흥미를 갖고, 조사 해 보고, 그렇게 얻은 것들을 자신의 지식으로 쌓아 갔으면 해요.
아, 사실 저 청소하는 것도 엄청 좋아하거든요. 더럽혀진 곳을 깨끗하게 하는 데에서 보람을 느껴요. 화장실이나 욕실, 주방처럼 물을 쓰는 곳 청소처럼 제가 청소를 하면 할수록 눈에 보이게 깨끗해 지는 게 좋아요. TV도 가지에몽(집안일 + 도라에몽에서 따 온 예명, 본명은 마츠하시 슈타로, 코미디언, 청소/세탁 소믈리에)상이 나오시는 방송을자주 보는데요, 볼 때마다 ‘엄청나!’라고 감탄하곤 합니다. 사실 이 얘기는 예전부터 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된다면 고미야시키 (쓰레기가 가득 찬 집) 청소 같은 것도 해 보고 싶어요. (웃음) 그런 도전하는 기획 방송 같은 것이 있다면 부디 도전 하게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생각지도 못 한 변화구가 날아왔다. 하지만 그녀의 마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와 : 아, 그리고 또 좋아하는 거… 플라레일(플라스틱으로 만든 기관차 및 기관차 레일 장난감)도 좋아해요. 사촌동생이 플라레일을 좋아해서 엄청 많이 갖고 있거든요. 어릴 때엔 그것 갖고 함께 놀았는데, 자기 마음대로 열차 레일을 조립하곤 했지요. 이 세상에선 절대로 있을 수 없는 노선을 만들곤 했는데, 그렇게 만들어 가는 작업 자체가 좋았어요.
그런 성격이다보니 실바니안 패밀리 (작은 동물 인형 및 그 인형이 들어가는 집, 가재도구등이 세트로 이루어진 장난감) 집을 장식 할 때도 절대 있을 수 없는 구조로 만들곤 합니다. 그렇게 스스로 생각해서 뭔가를 만들고 조립하는 과정을 좋아해요.
그런 성격이라 그런 건지는 몰라도 사실 언젠가 한 번쯤 공장에서 일 해 보고 싶기도 합니다. (웃음) 일정한 과정을 거쳐서 물건이 만들어지고, 완성된 것을 출하하는 흐름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결과가 나올 때 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말이죠. 그래서 빵을 만든다던가 무언가를 분류한다던지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서핑에도 한 번쯤 도전 해 보고 싶어요. (웃음) 요 전에 3년만에 스노우보드를 타러 갔거든요. 겨우 두 번째이긴 했지만 별 문제 없이 탔기에 더 잘 탈 수 있도록 연습 하고 싶어요. 이런 식으로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다 보면 인생을 즐기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웃음)
- 현재의 활동을 감안하면 그룹의 방향성과 꽤나 거리가 있는 것 같은 인상이 있는데.
와 : 아, 물론 지금 하고 있는 활동이 싫다던가 그런 의미는 아니에요. 지금 활동도 엄청 즐겁고, 소중한 동료들과 만났다는 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요. 그저 그런 활동과는 별개로 취미로서 도전 해 보고 싶다는 얘기예요. 말하자면 쉬는 날에 공장에 가서 일 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정도? (웃음)
지금 활동도, 특히 라이브를 하는 것은 엄청 좋아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세트리스트도 저 스스로가 구성 .해 보고 싶고, 콘서트 구성이나 연출 등, 전부에 참여 해 보고 싶습니다.
콘서트 제작은 물론이고 콘서트 굿즈 제작에도 참가 해 보고 싶습니다. 저 뿐 아니라 많은 아이들이 콘서트 굿즈 제작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실제로 '실용적인 것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이야기도 자주 해요. 예를 들어 오리지널 슬리퍼라던가. 슬리퍼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것이잖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집에서 슬리퍼를 신기에, 그렇게 실제로 쓸 수 있는 케야키자카의 굿즈가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젓가락이나 도시락통 같은 것도 괜찮겠네요. 젓가락이나 도시락통은 학생들이라면 항상 쓰는 것이잖아요. 제가 학생이고, 그런 굿즈가 있다면 꼭 쓸 것 같고요.
그렇다고 너무 케야키자카색이 강한 굿즈라면 쓰기가 힘들 수도 있기에, 평범하게 일상생활에서 쓸 수 있는 디자인의 굿즈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아까 말씀드린 슬리퍼도 그렇고, 쿠션이나 쿠션커버 같은 것도 좋겠고요. 집에서도 케야키자카와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굿즈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면에서 보면 6번째 싱글 활동기간동안 나왔었던 파우치 같은 굿즈는 정말 좋았다고 생각해요. 귀엽기도 했고, 디자인도 좋았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오리지널 굿즈를 제가 직접 디자인 하고, 공장에서 만들어 박스에 포장해서 출하까지 해 보고 싶네요. (웃음) 물론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돈도 많이 들 테고, 여러 모로 사정도 있을 거라 생각하기에 이루기 쉽지야 않겠지만요.
-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고 든 생각이 있었다. 그녀가 '크리에이티브'면에 흥미가 많다는 점이다. 이는 기획을 하는 것 뿐 아니라 식제로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 까지에 이르는 일련의 작업 전부를 말이다. 어쩌면 그녀 안에는 프로듀서로서의 소질이 숨겨 져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와 : 기획은 물론이고 그런 기획을 상품화 한다는 것, 정말 재미있어 보이지 않나요? 하지만 프로듀서라... 정작 해 봤는데 소질이 없으면 어쩌죠. (웃음)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경험 해 보지 못 한 분야이기에 언젠가 한 번은 도전 해 보고 싶어요.
공장에서 일 해 보고 싶다고 이야기 했는데요 (웃음) 저는 성격이 급한 편인지라 매사에 효율적으로 팍팍 해 치우고 싶은 타입이거든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기도 하고, 효율 좋게 일을 해치우면 기분이 좋거든요. 계속해서 한 가지 일을 반복한다던지, 집중해서 해 보고 싶어요.
뭔가에 푹 빠지면 철저하게 빠지는 편이긴 하지만, 동시에 금세 싫증을 내는 타입이기도 하거든요. 그러니까 싫증내지 않도록 적당한 페이스로, 재미있는 것들을 계속 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그녀의 이런 '취미'들이 앞으로 케야키자카46의 멤버, 와타나베 리사라는 한 사람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칠 것인가.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점이 굉장히 기대되기 시작했다.
와 : 어떻게 될까요? (웃음) 앞으로 어떻게 흘러 갈 지 지금은알 수 없지만 좋은 방향으로 흘러 갔으면 좋겠네요. 무의식적으로 여러 가지들을 흡수하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네요.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 노력 해야겠지요.
그룹일이나 개인 일은 물론이고, 스무살이 된 것을 계기로 취미면에도 충실히 살아가고 싶어요. 그러려면 엄청 바빠지겠네요. (웃음) 하지만 앞으로는 크리에이티브한 면에서도 그룹의 힘이 되고 싶고, 저 스스로의 인간으로서의 면 역시 깊이를 더하고 싶기도 하고요. 그렇게 하면 주변 분들도 저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식으로 보아 주실것이라 생각해요. 21살이 될 때엔 오늘 이렇게 이야기 이야기를 나눈 저 보다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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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화
서지 못한 마지막 인사
2017년 4월 6일에 열린 ‘케야키자카46 데뷔 1주년 라이브’.
라이브 개시 직전,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은 우연히 자신들의 그룹에 추가멤버가 들어 오게 되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다.
지금껏 12명 체제로 운영되어 오던 히라가나 케야키가 더 이상 자신들의 그룹이 아니게 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멤버들. 한 때는 ‘이럴 바엔 모두 그만 둬 버리자’는 극단적인 이야기도 나왔지만 스태프들의 설명을 듣고 일단 진정하였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멤버들 사이에선 새로운 의식이 싹텄다. ‘앞으로는 한자 케야키의 언더 그룹이 아니라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독립된 그룹으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히라가나 케야키다움’이라는 것을 모색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런 가운데 동년 5월 31일, Zepp Namba에서 개최된 라이브에서는 세트리스트도 큰 폭으로 바꾸며 ‘새로운 히라가나 케야키’의 모습을 선보이게 된다.
‘모두 함께 히가시무라를 믿어주자’
Zepp Namba 공연이 종료된 그날 밤, 멤버들과 스태프들은 근처 음식점에서 공연이 무사히 끝난 것을 기념하며 회식을 가졌다.
멤버들이 한 명씩 차례대로 일어나 그 날 공연에 대한 감상과 다음 공연인 Zepp Nagoya 공연에 대한 각오를 이야기 하는 시간도 있었다. 멤버들은 다들 밝고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불과 얼마 전에 있었던 Zepp Tokyo공연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 날, 고향인 나라현에서 온 가족들 앞에서 노래를 했던 히가시무라 메이 역시 평소보다 밝고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다른 멤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실 이 날 공연이 시작되기 전, 리허설 때만 해도 히가시무라는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오사카 출신인 다카세 마나와 함께 듀엣곡인 ‘미소가 슬퍼’를 연습하고 있었을 때의 일이었다.
히라가나 케야키에 들어오기 전만 해도 노래방에서 남들 앞에서 노래하는 것 조차 부끄러워 좀처럼 마이크를 손에 들지 못 했던 히가시무라가 큰 라이브하우스의 관객들 앞에서 노래를 한다는 것은 사실상 엄청난 부담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히가시무라가 부담을 느낄 것이라는 점은 이미 스태프들도 예상하고 있는 바였다. 평소에도 얌전하고 목소리도 작은데다가 그룹 내에서 가장 눈물이 많은 그녀에게 솔로파트가 많은, 그것도 듀엣곡을 부르게 한다는 것은 시기상조가 아니냐는 지적 역시 스태프들 사이에서 오갔다.
‘히가시무라 괜찮으려나… 만에 하나 오늘 본무대에서 실수라도 하면 더 큰 상처가 될테고, 그러다 보면 아예 퍼포먼스 하는 것 자체를 무서워 하게 될 수도 있는데… 하지만 오늘 이 시련을 넘어서지 못 하면 성장 하지 못 할 거야. 모두 함께 히가시무라를 믿어주자’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히가시무라는 본 무대를 훌륭하게 소화 해 냈다. 그리고 주변 멤버들과 스태프들에게 ‘잘 했어’라고 칭찬을 받기도 하였다.
그 뿐 아니라 그녀는 같은 해 7월 6일에 열린 Zepp Nagoya 공연에서는 유닛곡인 ‘푸른 하늘이 달라’나 ‘놓쳐버린 버스’에도 참가하였고, 더 나아가 한자 케야키의 곡 중에서도 춤이 격렬한 편인 ‘이야기 한다면 미래를…’에서도 자신의 잠재성이 얼마나 큰 지를 멋지게 증명 해 보였다. 참고로 이 곡은 히가시무라가 예전부터 꼭 도전 해 보고 싶었던 곡이기도 했다.
3월부터 시작된 전국 투어를 통하여 히가시무라의 ‘퍼포머로서의 소질’은 급격하게 꽃을 피웠다. 그리고 그녀를 그렇게 급격히 성장시켜 준 것은 다름아닌 그녀 본인의 성격… 눈물이 많은 성격 그 자체였다.
지금 자신의 모습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는 강한 마음
히가시무라는 중학생때 부 활동으로 ‘컬러가드’라는 경기를 하며 운동능력을 키워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컬러가드 프로 퍼포머가 되고싶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 않았다.
당시 그녀는 장래에 치위생사가 되기를 꿈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치위생사라는 꿈 역시 딱히 무슨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막연하게 해 보고 싶었던 것 뿐이었다.
그런 그녀가 고 2가 되었을 무렵, 그녀의 언니가 히라가나 케야키 오디션을 보라고 추천하였다. 그녀 본인이 이 오디션에 응모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몸 움직이는 건 좋아하니까’ 라는 막연한 이유였다.
오디션 당시만 해도 스태프들은 그녀에게서 어떤 특별한 퍼포머로서의 재능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뿐 아니라 합격 이후, 댄스와 노래 레슨 때마다 툭하면 눈물을 터뜨리는 그녀를 보며 내심 ‘얘는 앞으로 잘 해 나갈 수 있을까’라는 불안이 더 컸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가 간과하고 있었던 점은, 그녀가 우는 이유가 단순히 그녀가 ‘약해서’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약하긴 커녕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녀 자신이 스스로에게 설정한 높은 기준과, 그 기준에 부합하지 못 하는 자신에 대한 회한이 부글부글 끓어 오르고 있었다.
‘왜 내 생각처럼 노래 하지 못할까. 속상하네. 내 마음처럼 퍼포먼스 하지 못 하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
말 하자면 그녀는 지금 자신의 모습에서 시선을 돌리거나 타협하지 않고 더 높은 경지를 추구하는 강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컬러가드 전국대회에 나가 금상을 땄을 때조차도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않고 더욱 더 자신을 채찍질하며 연습에 몰두했던 중학생때부터 변치 않고 그녀 마음 속에 존재 해 왔던 미덕이었다.
그렇기에 히가시무라 메이는 눈물을 흘릴 때마다 조금씩 성장 해 올 수 있었다. Zepp Namba 공연에서 ‘미소가 슬퍼’를 맡게 되었을 때에도 리허설 때는 눈물을 흘렸지만 공연이 끝난 뒤에는 그 경험을 자신감으로 바꾸어 냈듯이 말이다.
그 뿐 아니었다. 전국 투어 회가 거듭될수록 그녀는 눈에 띄게 성장하였다. ‘세카아이’에서 포에트리 리딩에 도전하거나, 케야키자카46의 곡들 중에서도 최고 난이도의 곡 중 하나인 ‘AM 1:27’의 가창 멤버에 발탁 되었을 때에도 그런 난관들을 하나씩 극복 해 가며 그녀의 노랫소리는 점점 커졌고, 그녀의 춤은 점점 더 활력을 띄게 되었다.
그리고 투어가 끝난 뒤 취재를 위해 멤버들에게 배부한 앙케이트의 ‘좋아하는 것’ 항목에 그녀가 적은 것은 ‘춤 추고 노래하는 것입니다’였다.
스테이지 뒤에서 흘린 두 사람의 눈물
Zepp Nagoya 공연이 끝난 뒤, 히라가나케야키의 전국투어는 9월까지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
그 동안에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케야키자카46로서 여름을 지냈던 것이다.
케야키자카46는 이 해 처음으로 전국 투어를 실시, 겨우 한 달이라는 시간동안 6개 회장에서 11공연이라는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 해 냈다. 그 뿐 아니라 ‘ROCK IN JAPAN FESTIVAL 2017’이나 ‘SUMMER SONIC 2017’ 등 록 페스티벌에도 다수 참가하였고, 거기에 더하여 각 방송국들의 여름 음악 특방에도 출연하였다.
그렇게 눈코뜰 새 없이 바쁜 여름의 시작을 알린 것이 바로 7월 22일, 23일 양일간 열린 그룹의 첫 야외 라이브, ‘케야키공화국 2017’이었다.
사실 1월에 있었던 1주년 라이브의 완성도에 만족할 수 없었던 케야키자카46 멤버들에게 있어 이 라이브야말로 리벤지 무대라고 할 수 있었다.
라이브 본 공연은 케야키자카의 깃발을 든 맴버들의 마칭 퍼포먼스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불꽃놀이 연출을 신호로 첫 곡인 ‘사이마조’가 흘러 나왔고, 뒤를 이어 ‘세카아이’, ‘후타리세종’ 등 싱글 타이틀곡들이 선보여졌다.
약 2시간 반에 걸친 본 스테이지가 끝난 뒤에는 객석을 향해 물을 뿌리는 등 지금껏 케야키자카46라는 그룹이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참신한 연출들이 시도되었다.
히라가나 케야키는 한자 케야키와 함께 부르는 곡인 ‘W KEYAKIZAKA의 노래’를 비롯하여 총 4곡에 참가하였으며, 중간에 있었던 댄스브레이크 때 사이토 쿄코가 스즈모토 미유와 함께 춤을 전보이는 장면도 있었다.
스즈모토는 전체 그룹을 통틀어 보아도 춤으로는 한 손에 꼽히는 멤버로 춤의 절도, 박력, 표현력 등 모든 분야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뽐내는 퍼포머라 할 수 있다.
그런 스즈모토와 마주보고 춤을 추게 된 사이토는 필사적으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였다. 때로는 한자/히라가나 케야키의 전곡 안무를 담당한 TAKAHIRO에게 직접 조언을 구하기도 하였다.
사이토가 ‘이렇게 하면 되나요?’라고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 하며 직접 춤을 추어 보이면 TAKAHIRO가 ‘좀 더 자신감 갖고 해 봐’라고 조언을 해 주는 식이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해 볼 수 있는 것이야말로 뒤를 좇는 자의 특권, 사이토는 그런 특권을 마음껏 구사하며 본 무대에서 지금껏 본 적 없는 멋진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히라가나 멤버들 중 자신의 껍질을 깨 부수고 새롭게 태어난 것은 히가시무라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라이브 이틀째 마지막 공연에서 다시 한 번 히라가나 멤버들은 큰 변곡점을 지나게 된다.
2016년 크리스마스에 열린 ‘케야키자카46 첫 원맨라이브 in 아리아케 콜로세움’이후로 전체 라이브의 마지막곡은 언제나 ‘W KEYAKIZAKA의 노래’로 정해져 있었다. 아무리 참가 곡수가 적다고 해도 이 곡을 통하여 히라가나 멤버들이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케야키 공화국’ 첫 날 공연 역시 마찬가지로 ‘W KEYAKIZAKA의 노래’로 끝을 맺었다.
하지만 2일째 마지막 공연은 앙코르로 W KEYAKIZAKA의 노래를 한 뒤 끝이 나지 않았다. 이 날은 더블 앙코르가 나왔기에 이에 응하여 한자 케야키 멤버들만이 무대에 서서 신곡인 ‘위태로운 계획’을 처음으로 선보였던 것이다.
이 곡은 공연 직전에 발매 된 케야키자카의 첫 앨범에 수록된 곡으로, 여름 페스티벌에 어울리는 신나는 곡이었다.
갑작스러운 신곡 피로에 회장 안을 메운 관객들은 열광하였다.
한자 케야키 멤버들 역시 그런 팬들의 열기에 화답하듯 있는 힘을 다 쥐어 짜 내며 퍼포먼스를 하였다.
신곡 피로가 끝난 뒤, 흥분상태에 있던 한자 멤버들이 일렬로 늘어 서 손을 잡고 객석에 인사를 했던 바로 그 순간, 이어모니터를 통하여 스태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 정말 최고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 뒤로 돌아 온 순간, 히라테 유리나가 갑작스럽게 무너져 내리더니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아 울기 시작했다.
히라테는 울먹이며 ‘너희들 정말 사랑해’라고 이야기 했고, 그런 히라테의 말을 들은 한자 멤버들은 서로 어깨를 부둥켜안고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룹 멤버들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 낸 완벽한 라스트신에 멤버들, 스태프들 할 것 없이 모두가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들의 기쁨의 눈물과는 또 다른 눈물이 무대 뒷편에서 흐르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우리도 팬분들께 마지막 인사 드렸으면 좋았을텐데’
웃으며 스테이지에서 내려오는 한자 케야키 멤버들을 보며 카토 시호가 입을 열었다. 눈에는 눈물이 잔뜩 맺혀있었다.
그리고 그런 카토의 모습을 보며 사사키 쿠미를 비롯한 주변 멤버들 역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사실 라이브 마지막에 ‘W KEYAKIZAKA의 노래’를 부르고, 객석에 인사를 한다는 것은 히라가나 멤버들에게 있어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아무리 오리지널 곡 수가 적고, 아무리 한자 케야키의 그늘 아래 숨겨 져 있어도 ‘우리 역시 이 라이브를 함께 만들어 온 그룹의 일원이다’라는 점을 느끼게 해 주는 순간이 바로 그 마지막 인사였기 때문이다.
1주년 기념 라이브에서의 추가 멤버 모집 발표를 계기로 ‘더 이상 한자 케야키의 언더 그룹이 아닌, 아무리 미약하다 해도 독립된 그룹으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의식을 갖게 되고, 전국 투어를 통하여 자신들의 성장을 확인하였던 히라가나 멤버들에게 있어, ‘자신들이 없어도 공연은 별 지장 없이 진행되고, 관객들도 성대하게 박수를 보내준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하여 히라가나 멤버들은 다시 한 번 자신들의 존재의의에 대하여 고민하고, 그 답을 찾기 위하여 모색하는 나날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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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화
우리들의 목표
Zepp TOKYO에서 열린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1st 원맨라이브'
이 라이브는 그룹에게 있어 의미 깊은 첫 단독 라이브였지만, 자신들의 경험 부족으로 인하여 달성감을 느끼지 못 할 정도의 결과만 남기게 되었다.
멤버들은 라이브가 끝난 뒤, 수 차례에 걸쳐 의견을 교환하면서 그룹의 새로운 방향성을 정했다. 바로 '관객들과 하나가 되어 즐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멤버들은 다시 한 번 마음이 하나로 모아 다시 한 번 달려나가려 하고 있었다.
한편, 케야키자카46의 데뷔 1주년을 맞이하여 개최 된 1주년 라이브 회장에서는 서프라이즈로 '히라가나 케야키 주가 멤버 모집' 발표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은 우연히 그 소식을 미리 알게 되어버렸다.
지금까지 12명이 함께 만들어 온 그룹이 더 이상 자신들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멤버들은 충동적으로 좁은 의상실에 틀어박혀버린다.
그리고 의상실에선 멤버들의 비통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우리 모두 함께 그만 둬 버리자'
지금의 자신들과 같은 길을 걸어 온 한자 케야키
2017년 4월 6일 도쿄 요요기 제 1체육관에서 열린 '케야키자카46 1주년 기념 라이브'
앙코르곡이 끝나고 진행되던 MC도중에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추가멤버 오디션' 소식이 VTR을 통해 발표되었다.
멤버들이 리허설 때 보았던 대로였다.
'히라가나 케야키 증원 결정!'
'올 여름 개최!'
객석을 가득 메운 12,000여명의 관객들이 술렁이는 가운데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사사키 쿠미에게 마이크가 건네졌다.
'지금 너무 깜짝 놀라서 머릿 속이 새하얀데요… 사실 저희도 지금 한자 케야키 선배님들 뒤를 쫓아 가는 것 만으로도 벅차기에, 이런 저희들이 선배가 된다는 게 너무나도 불안하기만 합니다… 저희도 한자 케야키 선배님들처럼 늠름한 선배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더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사실 멤버들 중 몇 명은 다리가 후들거려 서 있는것만 해도 벅찰 지경이었다.
관객들을 알 방법이 없었지만, 사실 다들 이 충격적인 소식을 가슴 속에 숨긴 채 지금껏 스테이지 위에 서 왔던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로 관객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각오만이 그녀들을 버틸 수 있게 해 주었다.
라이브가 시작되기 전의 이야기이다.
의상실에 틀어박힌 멤버들을 설득하기 위해 여성 매니저들이 달려 왔다.
어찌저찌 문을 열고 의상실로 들어 갔을 때, 매니저들이 가장 처음 본 것은 너무나도 울어서 엉망이 되어 있는 멤버들의 얼굴이었다.
매니저들이 멤버들을 위로하며 진정시키고 있으려니 다른 스태프들이 몰려 와 추가멤버 오디션에 대하여 설명을 해 주었다.
'우선 이 오디션은 히라가나 케야키를 위하여 여는 오디션이라는 점을 알아 주었으면 한다. 지금 이대로라면 결국 너희는 한자 케야키의 그늘에 가려져 한자의 언더 그룹으로 활동 할 수 밖에 없어. 그런 너희가 한자 케야키에 필적 할 수 있는 '정규군'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힘을 더해 한 단계 윗 레벨에 도달해야만 해. 그러기 위해 추가 멤버를 받는 거야. 그러니까 이 멤버 모집은 히라가나를 위한 거라는 거지. 우리를 좀 믿어 주면 좋겠다.'
하지만 예상치도 못 하게 발표 내용을 목격 한 직후였던 멤버들은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혼란에서 벗어 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들 대다수는 10대 소녀, 그것도 이 세계에 발을 들인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던 초짜들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들이 냉정하게 스태프들의 설명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사실상 무리가 있는 얘기였다.
물론 이런 멤버들의 사정따위, 현장에 모인 팬들이 알 바가 아니었다.
그녀들은 프로답게 힘든 티를 내지 않고 스테이지 위에 서야만 했다.
모두들 그것만은 이해하고 있었다.
뭐가 뭔지 모를 정도로 혼란한 상태로 울며 대기실로 돌아가던 사사키 쿠미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이시모리 니지카였다.
'괜찮니?'
이미 사정을 들어 알고 있던 이시모리의 위로를 받던 도중, 사사키 쿠미의 머릿속을 문득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우리가 들어 올 때, 한자 선배님들도 같은 마음이었겠구나'
자신들이 그룹에 들어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처음 한자 케야키와 대면했을 때, 한자 케야키 멤버들은 그저 당당하고 빛나는 '연예인'으로만 느껴졌다.
하지만 실제로는 한자 케야키 멤버들 역시 히라가나 멤버들에게 겁을 먹고, 어찌 대하면 좋을 지 몰라 화장실에 틀어 박히지 않았던가.
물론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 사건이 잡지 인터뷰로 밝혀 진 이후였지만 말이다.
'그 때 한자 선배님들은 지금 우리가 느낀 것과 같은 것을 느끼셨을텐데, 전혀 티도 내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셨었지. 추가 멤버 오디션을 받는 애들에게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우리도 그 아이들을 받아들여 줘야만 해. 한자 선배님들이 그러셨듯이.'
카토 시호 역시 머릿속에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이전, 라이브를 보러 오신 어머니의 말씀이었다.
'한자 멤버들 21명이 춤추는 것을 보다가 너희 12명이 춤추는 것을 보면 뭔가 텅 빈 것 같아.'
레슨에서 한자 케야키의 곡을 연습 할 때에도 '역시 사람 수가 적으니 좀 심심해 보이는데, 너희들이 보기엔 지금 히라가나 인원 수가 어떤 것 같니?'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카토는 항상 '언젠간 사람이 늘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히라가나의 단독 투어가 시작된 직후의, 그것도 겨우 멤버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었을 때 발표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 했기에 크게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다른 멤버들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을 때, 다른 멤버들보다 빠르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음 단계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멤버도 있었다.
카게야마 유카는 라이브가 끝난 직후에 있었던 밀착카메라 인터뷰에 홀로 임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
'언제까지고 쳐져 있을 수 만은 없으니까요. 2기생들이 들어 왔을 때 섞이기 편한 환경을 만들려 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바꾸어 다시 한 번 열심히 하겠습니다.'
히라가나 케야키 사상 최대의 사건이자 시련이었던 '추가 멤버 모집 발표'.
이것은 결과적으로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현재 모습을 다시 한 번 생각 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언더'라는 단어로부터 해방되다
1주년 기념 라이브가 끝난 며칠 뒤, 케야키자카46 운영 스태프는 한 통의 메시지를 받았다.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이 보낸 것이었다.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우리들의 목표
・더욱 더 큰 스테이지에서 라이브를 하고 싶습니다.
・전국 47개 도도부현을 돌며 투어를 하고 싶습니다.
・지명도를 올리기 위해 게릴라 악수회를 하고 싶습니다.
・히라가나만의 칸무리 방송을 갖고 싶습니다.
・언젠간 꼭 히라나가 케야키 명의로 CD를 내고 싶습니다.
등등…
멤버들이 주체적으로 자신들의 목표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그 결과를 정리하여 리스트를 만든 것이었다.
이 내용들은 어쩌면 '프로 아티스트'의 의사표명이라기엔 너무나도 유치한 내용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목표'에서는 '이제부턴 우리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히라가나 케야키자카 46'라는 그룹을 하나의 독립된 그룹으로서 인정받게 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있었다.
처음에는 '한자 케야키의 언더 그룹'으로 결성 된 히라가나 케야키.
이 순간, 그녀들은 바로 그 '언더'라는 단어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신들만의 길을 걸어가려고 한 것이다.
이는 '추가 멤버 모집'이라는 극약처방이 가져 온 의식개혁이자 그녀들의 자립심이 싹 튼 순간이기도 했다.
일단 방향성이 정해지고 나니 어떤 일을 해야 할 지는 간단했다. 5월 31일로 예정 된 Zepp Namba 공연을 멋진 공연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는 아쉬운 결과로 남은 Zepp Tokyo공연의 리벤지이기도 했다.
라이브를 성공시키기 위하여 멤버들은 수시로 스태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런 회의 도중,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사이마조나 불협화음은 한자 케야키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잖아. 그러니까 좀 더 히라가나다운 세트리스트를 생각 해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 순간, 이 한마디에 눈물을 쏟기 시작한 멤버가 있었다. 카토 시호였다.
'이렇게나 저희를 생각 해 주실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애초에 히라가나에는 한자 케야키를 동경해서 들어 온 멤버가 많았다.
그렇기에 더더욱 '한자 선배님들처럼 멋있게, 쿨한 곡을 선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멤버들이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이 '독자노선'을 생각하기 시작 한 뒤로는 어느 사이엔가 '한자 케야키를 상징하는 곡들을 꼭 불러야만 한다'는 의미는 흐려 져 있었다.
아니, 오히려 '히라가나 케야키다운 것은 무엇인가' 라는 것을 고민하고, 세트리스트에도 그런 '케야키다움'을 담아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하고 있었다.
1주년 기념 라이브 무대 뒤에서 스태프가 이야기 했던 '(스태프들이) 히라가나 케야키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었던 것이다.
모든 스태프들이 실제로 히라가나 케야키의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카토 시호가 눈물을 흘리게 된 것은 그런 스태프들의 마음을 느껴서였다.
결과적으로 Zepp Namba의 세트리스트는 이전 공연의 그것과는 크게 변경되었다.
비록 오리지널곡이 적어 한자 케야키의 곡을 빌려 올 수밖에 없었지만, 이미 춤까지 숙지하고 있었던 '사이마조'나 '우리들의 전쟁'을 세트리스트에서 제외하고 '교복과 태양', '석양 1/3', '미소가 슬퍼' 등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새로이 추가 된 곡들은 템포가 느리고 따뜻한 느낌이 드는, 말하자면 '히라가나 글자 같은 인상'을 가진 곡들이었다.
또한, Zepp Namba의 챌린지 미션이었던 탭댄스 역시 연습,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무대에 임했던 것이다.
처음으로 일체감을 느낀 스테이지
히라가나 케야키에게 있어 이번 라이브는 처음으로 '오사카'에서 열린 라이브였다.
심지어 한자 케야키조차 오사카에서는 라이브를 하지 못 했다.
그런만큼 멤버들은 기합이 확 들어 있었고, 그만큼 긴장감 역시 대단했다.
하지만 오프닝 액트로서 탭댄스를 선보인 시점에서 이미 지금까지의 라이브에서는 느끼지 못 한 것들이 느껴졌다.
'역시 오사카 사람들은 흥이 있어. 라이브라는 게 이렇게 즐거운 것인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어.'
히라가나 케야키에서 유일하게 오사카 출신인 다카세 마나는 당당히 고향에 개선한 기쁨을 느꼈다.
다른 멤버들 역시 적극적으로 반응 해 주는 관객들을 보며 용기를 얻고, 기분이 들뜨는 것을 느꼈다.
특히 MC에 대한 반응은 예상 이상이었다. 별다른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임했던 Zepp Tokyo에서의 MC 실패 경험에 비추어, MC내용 역시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누며 갈고 닦았다.
그리고 그 결과, 비록 서투르긴 해도 관객들의 호응을 불러냈던 것이다.
'오사카라 하면 타코야키죠. 여러분 한 번 상상 해 보시겠어요? 동그란 타코야키에~ 소스가 반짝반짝 빛이 나고~ 그 위에 김가루가 뿌려 져 있어요~ 정말 너무 좋지 않나요? 아, 물론 저는 타코야키 못 먹습니다만'
이라고 혼자 얼빠진 소리를 해 대는 네루의 MC에 다른 멤버들은 마치 콩트의 한 장면처럼 일제히 바닥에 쓰러졌다.
오사카 관객들 역시 멤버들과 함께 앞으로 쓰러지는 척 하며 회장의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중요한 것은 관객들과 하나가 되는 것' 그리고 이 순간이야말로 그녀들이 어떻게 해야 관객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지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퍼포먼스 면에서도 '히라가나 케야키다움'을 의식하여 최선을 다했다.
'세카아이' 도입부의 포에트리 리딩을 담당했던 카게야마는 일부러 대사 타이밍을 살짝 어긋나게 하여 곡에 드라마틱한 면을 더했다.
Zepp Tokyo공연 때는 한자 케야키의 CD를 그대로 외워서 히라테 유리나와 완전히 똑 같은 타이밍에 대사를 하려고 노력했던 점을 생각하면 엄청난 변화였다.
진로상담에 임하는 학생들의 불안함, 그리고 희망을 노래한 '교복과 태양'의 센터로는 카토 시호가 낙점되었다.
사실 처음 센터 자리에 이름이 불렸을 때, 카토는 자신이 없어 '왜 나지?'라고 울며 사사키 쿠미에게 상담을 했다.
하지만 정작 본무대가 시작되었을 때엔 카토 특유의 여성스러운 분위기와 올곧은 모습이 곡의 '청춘찬가' 적인 면과 완벽히 매치되어 회장 안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카세와 함께 듀엣곡 '미소가 슬퍼'를 부른 것은 히가시무라 메이였다.
라이브를 할 때마다 항상
울곤 했던 히가시무라는 이 투어에서 크게 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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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화
'우리 모두 그만 둬 버리자'라고 이야기 했던 날
첫 단독이벤트 '히라가나 오모테나시회' 이후 수 개월에 걸쳐 활약의 기회를 거의 받지 못 했던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자신들의 미래에서 아무런 희망도 느낄 수 없어진 멤버들은 그룹 해산의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Zepp Tokyo에서 첫 단독 라이브가 열리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일정은 2017년 3월 21일, 22일 양일간이었다.
히라가나 케야키가 단독으로 스테이지에 서는 것은 '오모테나시회' 때 이래, 5개월만의 일이었다.
멤버들 중에는 이구치 마오와 우시오 사리나처럼 비밀 특훈을 하며 라이브에 대비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개개인을 떠나 그룹 전체로 보자면 아직 해소되지 못 한 큰 불안이 아직 도사리고 있었다.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는 몸
'좀 더 퍼포먼스를 잘 하고 싶어!'
카키자키 메미가 입을 열었다.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맺혀 있었다.
라이브를 앞두고 리허설을 하던 어느 날, 스태프와 멤버들이 함께 회의를 하던 중에 일어 난 일이었다.
사실 그 당시, 멤버들 사이에는 '그룹 활동과 라이브에 대한 자세'에 대한 차이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일부 멤버들이 이야기 한 '아이돌이란 노래나 춤 실력보다는 우선 자신을 귀엽게 보이도록 연출하는 게 중요하지 않느냐'는 말에 대한 카키자키의 반론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라이브 연출가 역시 카키자키와 마찬가지로 '쇼로서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이 귀엽게 보이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멤버들끼리 더 협력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결국 스태프들과의 회의가 끝난 뒤, 멤버들끼리 따로 가진 회의에서는 '개인 플레이가 아니라 좀 더 팀으로서 퍼포먼스에 힘쓴다'는 결론이 났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큰 방향성의 이야기일 뿐 라이브를 성공시키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면 되는 지에 대한 지침이 내려 진 것은 아니었다.
아니, 아직 경험이 부족한 그녀들이 그런 구체적인 내용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었다.
그 뿐 아니라 첫 단독 라이브임에도 11곡이나 선보이게 되어, 체력적인 면에서도 불안이 남아 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여러 차례 마라톤대회서 우승하고 중학생 때는 거의 매년같이 육상 전국대회에 출전하기까지 했던 히가시무라 메이마저도 실전 리허설이 끝난 뒤에 '힘들어. 무리일지도…'라고 생각 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불안은 적중했다.
라이브 당일, 근육통과 피로가 다 낫지 않은 상태로 무대에 섰던 멤버들은 자신의 몸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며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예전부터 춤을 배워, 그룹 퍼포먼스의 중심축으로 활약하고 있었던 사사키 미레이조차도 무대 위에서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 해 초조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거 큰일인데. 이대로라면 어중간하게 보여 주고 싶은 것도 다 보여드리지 못 한 채 라이브가 끝나버리겠어'
나가하마 네루 역시 패닉상태에 빠져 있었다.
한자 케야키를 겸임하고 있었던 그녀는 이 당시 한자 케야키의 두 번째 주연 드라마인 '잔혹한 관객들' 촬영으로 눈코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기에 단독 라이브의 전체 연습에는 거의 참가하지 못 하고 개별 레슨을 받고 있었다.
결국 그녀가 멤버들 전체와 함께 리허설에 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라이브 당일에 있었던 최종 리허설 단 한 번 뿐이었다.
시간이 없었기에 그 리허설에서 그녀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개별적으로 외운 포지션이 틀리지 않는가 확인하는 것 뿐이었다.
부족한 라이브 경험, 스케줄면에서 오는 불편 등 수 많은 것들이 겹친 결과, 결국 멤버들은 무대를 즐길 수가 없었다.
실패를 겪으며 알게 된 '자신들이 목표로 해야 할 곳'
첫 단독 라이브에서는 케야키자카46의 4번째 싱글 '불협화음' 에 수록된 히라가나 케야키 명의의 커플링곡, '우리들은 사귀고 있어'가 처음으로 선보여지기도 하였다.
'우리들은 사귀고 있다고 소리치고 싶어져.
이대로 계속 비밀로 할 수는 없는걸.
친구들조차도 눈치 못 채게 한다니
바보 같은 일이잖아.
확실하게 공개 해 버리자'
연애 초창기의 두근거림과 어린 커플의 빛나는 생동감을 그려 낸 곡이었다.
전작인 '누구보다도 높이 뛰어!'가 객석을 열광하게 하는 신나는 무언가가 있는 곡이라 하면, 이 곡은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지는 따뜻한 곡으로, 히라가나 케야키의 라이브를 이끌어 갈 또 다른 '키 곡'이라 할 수 있는 곡이었다.
또한, 이 라이브 중에 서프라이즈로 '전국 Zepp 투어' 개최가 발표되기도 하였다.
도쿄 회장 다음 회장은 오사카부의 Zepp NAMBA이며, '탭댄스에 도전하는 챌린지 기획'이 예정되었다.
갑작스러운 서프라이즈 발표에 객석은 열광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 했듯이 다양한 불안을 안은 채 스테이지 위에 서 있던 멤버들은 그런 객석을 지켜 볼 여유조차 없이 그저 세트리스트대로 라이브를 하는 것 만으로도 벅찼다.
특히 별달리 준비도 하지 않고 즉석에서 짠 공연 MC내용에 대해서는 공연이 끝난 뒤, 연출가로부터 질책을 듣기도 하였다.
'MC는 말하자면 공연의 분위기를 띄우는 계단 같은 것인데, 오늘 MC는 그런 역할을 전혀 해 주지 못했어. 다른 멤버들이 이야기 하고 있을 때, 다들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 지 생각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 했고. 이래서는 관객분들과 하나가 되지 못 한다고'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멤버들은 'MC란 그저 그 때 느낀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라이브에 단계를 나누어 주고, 다음 곡으로 가기 위해 회장의 분위기를 형성 해 주는 MC라는 것이 그리 적당적당히 해서 될 것일 리가 없었다.
라이브가 끝난 뒤, 멤버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거듭하다 보니 자신들에게 지금 부족 한 것이 무엇인지가 조금씩이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비단 MC뿐 아니라 객석의 반응을 꼼꼼히 살피고, 그에 맞추어 회장의 열기를 끌어 올릴 수 있도록 퍼포먼스를 하여야만 '라이브가 하나의 쇼로서 성립 할 수 있는 조건'이자 '관객과 하나가 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때부터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팀'이 하나가 되어 목표로 해야 할 곳이 보이기 시작했다.
'관객분들과 함께 신나게 즐기자'
첫 단독 라이브의 실패를 통하여 겨우 자신들이 해야 할 것이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목표가 정해졌으니 남은 것은 체력을 길러 앞으로 남은 라이브에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임하는 것 뿐이었다.
Zepp Tokyo 공연에선 만족스럽게 리허설에 참가 할 수 없었던 나가하마 네루도 Zepp Namba공연부터는 미리미리 스케줄을 조정 해 달라고 운영측에 직접 부탁을 하였다.
이 때, 처음으로 히라가나 케야키 12명의 멤버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직후에 히라가나 케야키자카 사상 최대의 사건이 터질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니터에 비춰진 '긴급공지'라는 네 글자
1st 원맨라이브가 끝난 지 약 보름가량이 지난 2017년 4월 6일.
요요기 제 1체육관에서는 '케야키자카46 데뷔 1주년 기념 라이브'가 열리고 있었다.
이 날은 '사이마조'가 발매 된 지 1년이 되는 날로, 지금까지 케야키자카46가 릴리스 한 싱글의 수록곡들을 전부 선보이는 대규모 라이브로, 당연히 히라가나 케야키 역시 참가하는 라이브였다.
이 날, 다카세 마나는 리허설 시점에서 이미 뭔가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꼈다. 어째서인지 집중이 되지 않았고, 안무나 포메이션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쩌면 이것은 그 날 있을 사건에 대한 전조였을 지도 모른다.
오리지널 곡 수가 적은 히라가나 케야키는 이 날, 대기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었다.
그렇기에 공연을 앞두고 신경 쓰이는 부분을 체크하기 위하여 넓은 곳으로 이동하여 연습을 하려 했다.
이는 이 날 처음으로 이용하게 된 토롯코(사다리차)의 체크를 겸한 것이었다.
'여기서는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였던가?'
'아, 거기는 이렇게 이동해서 이렇게 하면 돼'
라고 서로 가르쳐 주기는 했지만, 어째서인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다들 어딘가 안절부절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였다. 히가시무라 메이가 문득 자신 옆에 있던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스태프들이 회장 전체의 모습을 모니터링 할 때 사용하는 모니터였다.
화면에는 리허설에 매진하는 한자 케야키 멤버들의 모습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한자 케야키 멤버들의 연습이 끝난 뒤, 갑작스럽게 모니터에 글자 네 자가 떠올랐다.
'긴급공지!'
히가시무라는 그 글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런 히가시무라의 모습을 눈치 챈 다른 멤버들도 곁으로 몰려 와 화면을 보며 '어… 이거…'라고 입을 뗐다.
그리고 화면에서 네 글자가 지워진 뒤, 곧이어 충격적인 내용이 떠올랐다.
'히라가나 케야키 증원 결정!'
'올 여름, 오디션 개최'
멤버들은 한 순간 지금 자신들이 보고 있는 글자들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 할 수 없었다.
멤버들 중 몇몇이 비명을 질렀고, 일부는 눈 앞에 있던 의상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본 나머지 멤버들도 서둘러 의상실로 뛰어들어갔다.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끔찍한 장면을 보기라도 한 듯 히라가나 멤버들은 작은 의상실에 숨을 죽이고 틀어 박혀 상황을 정리했다.
사실 이 때 그녀들이 목격한 VTR은 라이브가 끝날 때 서프라이즈로 발표 될 내용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절대로 멤버들이 볼 수 있는 곳에 틀어놓아서는 안 될 내용이었지만, 리허설을 겸해 영상 내용을 체크하기 위하여 스태프용 모니터에만 틀어 놓는다는 것이 실수로 흘러 나왔던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대기실에 있었어야 할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이 연습 및 확인을 위해 외부에 나왔다가 우연히 목격하게 된 것이었다.
'히라가나 케야키 인원을 늘린다'
이것은 곧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이 지금 있는 12명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는 뜻이었다.
Zepp Tokyo공연의 실패를 통하여 수 없이 반성회와 회의를 거치며 이제 겨우 마음이 하나가 되어 새롭게 출발하려 했던 그녀들에게 있어 그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이야기였다.
좁은 의상실에 틀어박힌 멤버들은 패닉상태에 빠져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갑자기 사사키 미레이가 의상실 문을 걸어잠그고는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이럴 바에는 그냥 모두 그만 둬 버리자!'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느니 차라리 그룹을 그만 둬 버리는 게 낫다는 이야기였다.
뒤이어 누군가가 '그냥 오늘 라이브도 나가지 말자'라고 말을 받았고, 주변 멤버들 역시 그 의견에 동의했다.
사이토 쿄코는 분노 해 있었다.
'대체 나는 지금까지 뭘 해 온 거야!'
중학생 때부터 이 세계에 들어오기 위해 수 많은 좌절을 이겨내며 노력을 아끼지 않아 온 그녀가 처음으로 자포자기한 순간이었다.
12명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 하며, 서로를 지탱 해 주면서 해 온 지금까지의 노력들이 하나도 인정 받지 못 한 채, '너희는 아무 쓸모가 없다'고 선고를 받은 것만 같았다.
거대한 요요기 제 1체육관 안의 한 작은 방 안에서 소녀들은 감정의 폭풍우에 휩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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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화
미소의 뒷편
히라가나 케야키의 첫 단독 이벤트인 '히라가나 오모테나시회'는 실전에 강한 멤버들의 실력과 스테이지를 즐기려는 자세, 그리고 멤버들끼리의 협력 덕분에 성공리에 마무리되었다.
또한, 케야키자카46의 3번째 싱글 '후타리세종'에 실린 히라가나 케야키의 2번째 오리지널곡 '누구보다도 멀리 뛰어!'는 라이브의 분위기를 띄워주는 그루비한 걸작으로 완성되었다.
하지만 '오모테나시회'가 끝난 뒤, 수 개월동안 히라가나 케야키에게는 활약의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우리들, 이대로 해산 해 버리는 걸까?'
불안감에 떠는 멤버들 사이에 항상 밝게 행동하는 우시오 사리나의 모습이 있었다.
오디션에 합격한 자의 '사명'
이야기를 2015년으로 되돌려보자.
이 해 연말, 우시오 사리나는 시계바늘과 눈싸움을 해 가며 열심히 휴대폰으로 뭔가를 쓰고 있었다.
이 날 23시 59분으로 마감이 되는 히라나가케야키 오디션 웹 응모 양식에 필요사항을 적고 있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기대 해 왔던 '홍백가합전' 조차도 노기자카의 스테이지만 보고, 바로 방에 틀어박혀서 몇 번이나 문장을 고쳐가며 응모 양식을 적은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겨우 송신 버튼을 누른 것은 마감시간 수 분 전이었다.
그녀가 히라가나 케야키의 오디션을 받기로 마음 먹은 것은 불과 며칠 전의 이야기였다.
"노기자카가 그렇게 좋으면 오디션이라도 받아보지?"
우시오가 노기자카의 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친구가 그녀에게 히라가나 케야키의 오디션을 추천 해 주었던 것이다. 이유는 '어차피 같은 사카미치 시리즈니까'.
우시오는 노기자카가 결성 된 직후부터 노기자카의 팬이 되었다. 노기자카의 칸무리 방송인 '노기도코'는 첫 회부터 녹화를 잊지 않고 보아왔고, 시라이시 마이와 니시노 나나세의 악수회에 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자신이 아이돌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노기자카 2기생 오디션에도 응모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랬던 그녀가 아무리 친구가 추천을 해 주었다고는 해도 히라가나 오디션에 응모를 하게 된 것은 타이밍 덕분이 컸다.
당시 고 3이었던 그녀는 이미 11월 시점에 추천시험(수시전형)으로 대학교에 합격, 진학이 정해 져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계속 해 온 클래식 발레도 이미 고 3이 되면서 그만 두었기에 입학식까지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타고 나길 성실한 성격이었던 그녀는 입시를 앞두고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뭔가 하긴 해야 할텐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 시점에 오디션을 권유 해 주고, '사진이 없으면 우리 집에서 찍어 줄게'라며 힘을 불어넣어주는 친구의 마음을 무시 할 수 없었기에 히라가나 케야키 오디션에 응모하게 된 것이었다.
응모 당시만 해도 '내가 붙을 리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본인의 그런 예상과는 반대로 그녀의 서류는 물 흐르듯 심사를 통과했다.
그리고 봄이 찾아왔을 무렵, 최종 후보자들은 인터넷 방송 서비스 '쇼룸'을 통해 개인 방송을 하게 되었다.
딸을 걱정한 모친은
'이제 막 대학교에 들어 갔는데 그렇게 인터넷에 얼굴이 팔리고나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니. '오디션 떨어진 애'라고 소문이라도 나면 친구 안 생길지도 몰라.'
라고 걱정스럽게 이야기 하였다.
딸과 마찬가지로 부모님들도 자신의 딸이 오디션에 합격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 했던 것이다.
그리고 우시오는 결국 부모님의 말을 따라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쇼룸 방송에 임했다.
최종 심사에도 갈까 말까 고민했지만 '앞으로 아이돌이 될 아이들을 직접 보기나 하자'라는 마음으로 참가했다.
하지만 우시오는 이 최종심사를 통과 해 버리고 만다. 서류 응모 숫자를 생각 해 보면 경쟁률 1000:1이 넘는 좁은 문을 열고 들어 가 버린 것이다.
하지만 정작 오디션에 합격하고 나니, 부모님이 활동에 맹반대를 하시기 시작했다.
'아이돌이 되어 사람들 앞에 서다보면 상처받게 될 일도 많아 질 거야. 엄마는 사리나가 그냥 평범하게 대학을 졸업해서 안정된 직장을 갖고, 평범한 행복을 손에 넣었으면 하는데.'
부모님의 말은 어디 하나 틀린 부분이 없었다. 어쩌면 여기서 사퇴하는 것이 자신의 인생을 생각했을 때 옳은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 말씀을 순순히 따를 수도 없었다.
오디션이 진행되던 도중, 그녀는 한 명의 후보생과 친해지게 된다.
그리고 그 후보생이 중간에 탈락하게 되었을 때, 이런 말을 남겼던 것이다.
'사리나, 꼭 아이돌이 되어서 내 몫까지 활약 해 줘.'
그런 '친구'의 부탁 외에도 그녀가 아이돌을 포기 할 수 없는 이유는 더 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그녀는 '오디션 합격자 수는 미리 정해 져 있어서, 누군가가 합격하면 다른 사람이 떨어져야 하는 것'이라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이야 당연히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그녀는 친했던 후보생을 비롯하여 탈락 한 수 많은 후보생들에 대해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동시에 다름아닌 '자신'이 합격한 데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어쩌면 이게 나의 운명일지도 몰라. 이 운명을 받아들이고 다른 아이들 몫만큼 더 열심히 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사명일지도…'
이렇게 느낀 우시오는 부모님을 설득하여 겨우겨우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님들이 걱정하던 사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빠르게도 현실이 되었다.
노기자카46에게 배운 '미소의 힘'
최종심사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히라가나 케야키의 새 멤버 11명의 사진이 공개되었다.
그 사진은 최종심사일에 합격 발표가 있은 직후에 찍힌 것으로 머리 모양, 화장은 물론이고 의상에 이르기까지 너무나도 촌스럽고 초짜 티가 나는 멤버들의 모습이 담겨 있는 사진이었다.
자신의 시잔이 공개된 직후, 우시오는 인터넷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 해 보았다가 충격을 받았다.
'얘는 대체 어떻게 아이돌이 된 거래?'
'얘가 들어 올 수 있었다는 게 이해가 안 돼'
'오히려 내가 더 낫겠다' 등등…
심지어 그녀가 지금껏 살아 오면서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심한 말들도 적혀 있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왔던 친구가 뒤에서는 그녀에 대해 험담을 하고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된 뒤 부터는 항상 바닥만 보며 걷게 되었다.
우시오 본인이 '다른 사람이 없는 곳에서 험담을 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 하는 성격이었기에 충격은 더더욱 컸고, 인간불신 직전까지 가게 되었다.
아이돌이 된 뒤 처음으로 겪은 '좌절'이었던 것이다.
이대로라면 정신적으로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던 그녀는 스태프에게 면담을 청했다. 그리고 면담자리에서 그녀는 울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더 이상은 못 버티겠어요. 그만 두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말에 스태프는 이렇게 대답했다.
'노기자카 멤버들도 초기에 너 처럼 이렇게 울며 말 했었어. 하지만 지금은 '그 때 그만두지 않길 잘 했어요'라던가 '계속 하길 잘 했어요'라고 한단다. 여기서 그만두는 건 간단한 일이지만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오는 건 간단하지 않아. 머지 않아 '계속하길 잘 했다'고 생각하는 날이 올 테니 조금만 더 노력 해 보자.'
근본이 성실하고 진중한 우시오는 스태프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잠시 더 노력 해 보기로 결심했다.
인터넷을 봐 봤자 상처만 받기에 잠시동안 자신에 대한 정보에서 멀리 떨어지기로 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활동이 시작 된 뒤, 그녀는 아이돌이라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잡지 취재도, 악수회에서 팬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정말 즐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 것은 '춤'이었다.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발레를 해 왔던 우시오는 춤을 추는 것을 좋아했다.
평소에는 항상 헤실헤실 웃고 있지만 곡이 흘러나오고, 댄스 모드에 돌입하는 순간 마치 다른사람이 된 듯 표정이 변했다.
쿨한 곡도 정열적인 곡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멋지게 소화 해 내는 그녀의 표현력은 이미 다른 멤버들의 인정을 받은 무기였다.
'빙의형', '천재'라고 불리는 히라테 유리나와도 같은 무대에 서 온 나가하마 네루조차도 무대 위에 선 우시오의 풍부한 표정, 능숙한 표현력에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기에 우시오는 '히라가나 오모테나시회' 라는 무대에 선 것이 정말로 즐거웠고, 자신들만의 오리지널 곡이 늘어나고, 그에 따라 자신들이 선보일 춤이 늘어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하지만 '오모테나시회'가 끝난 뒤 몇 달동안 히라가나 케야키가 활약을 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한자 케야키와 함께 연말 'FNS음악제'에 나가기는 했지만 그녀들에게는 거의 스포트라이트가 주어지지 않았고, 녹화 된 영상을 보아도 자신들의 얼굴조차 구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힘들었다.
'히라가나는 대체 뭘까. 우리가 한자 선배님들과 같은 그룹이라는 게 의미가 있긴 할까. 그냥 버리는 패가 되어 금방 잘려 버리는 건 아닐까'
집에 있을 때는 거의 항상 울고만 있었다. 한 번 불안감이 머리를 가득 채우게 된 뒤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아, 밤에는 잠도 이룰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멤버들 앞에서는 항상 의연한 모습으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미소'는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노기자카46를 응원하며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떨 때라 해도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노력한다면 누군가가 그런 모습을 지켜 봐 줄 것이라는 것 역시.
그렇기에 우시오는 다른 멤버들을 고무시키기라도 하듯이 레슨장에서나 일 하는 현장에서나 밝게 행동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미 이 때부터 업계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은 되게 밝고 적극적이야. 함께 일을 하다보면 이 쪽까지 기분이 좋아진다니까.'
하지만 히라가나 멤버들과 함께 활동을 하면서도 동시에 그녀들을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었던 사람… 나가하마 네루가 보기에는 그런 업계 사람들 평가와는 달리, 히라가나 멤버들은 '본래부터 밝고 적극적'인 아이들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잘 울고 소극적인 아이들이 더 많다고 느껴졌다. 그저 결과를 낼 수 있는 기회 자체를 거의 받을 수 없었던 그녀들에게 있어 무리를 해서라도 스스로를 북돋아 주어진 일 하나 하나에 임하는 것만이 그녀들이 계속해서 활동 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행동했던 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히라가나 케야키의 자세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우시오 사리나라는 한 인간이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그녀들에게 다시 한 번 찬스가 찾아왔다.
'오모테나시회'가 끝난 지 5개월이나 지난 2017년 3월, 히라가나 케야키의 첫 단독 라이브가 열리게 된 것이다.
단 둘만의 비밀특훈
라이브 타이틀은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1st원맨라이브' 였다.
'오모테나시회'가 각각의 특기나 연기를 보여주는 자리였다면 이 라이브는 말 그대로 '노래'를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선보이기로 예정 된 곡들은 한자 케야키, 노기자카의 곡들을 더해 총 11곡. 심지어 잭슨 파이브의 'ABC'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곡은 어릴 적 자카르타에 살았던 우시오와 대만에 살았던 사사키 미레이, 영국에 살았던 다카세 마나 세 명, 다시 말 해 3명의 귀국자녀 (일명 '3인무스메')가 영어로 선보이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세계 일주를 꿈꾸어 왔고,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가 된 뒤로도 해외에서 라이브 하는 것이 목표였던 우시오에게 있어 라이브에서 외국곡을 부르게 되었다는 사실은 정말로 기쁜 소식이었다.
'히라가나 케야키에 들어 오길 잘 했어, 그 때 그만두지 않길 잘 했어'
우시오는 의욕에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그녀와는 달리 스테이지의 내용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있는 멤버들도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구치 마오였다.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춤을 못 추는 그녀가 케야키자카46의 3번째 싱글 '후타리세종'에서 솔로파트를 추게 된 것이다.
원곡을 부른 한자 케야키에서 이 부분을 소화하는 것은 히라테 유리나. 발레와 모던댄스를 융합시킨 어려운 안무 뿐 아니라 대담한 애드리브까지 소화 해 내는 히라테의 능력으로 크게 반향을 불러 일으킨 파트를 이구치가 담당하게 된 것이었다.
'농담하시는 거죠? 그거 무리잖아요. 애초에 왜 저를 고르신거예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질문을 하는 이구치에게 되돌아온 스태프의 대답은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그런 무책임한 대답을 들은 이구치는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전부터 발생 해 온 '멤버들과 스태프들의 오해'는 이 때도 어김없이 발생했던 것이다.
스태프가 이구치에게 전하려 했던 것은 '원래부터 춤을 잘 추는 아이들이 하는 것 보다 춤이 서툰 이구치가 필사적으로 춤 추는 것이 더 재미있고,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다른 사람들도 감동을 받을 것'이라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이구치 입장에서는 단순히 '재미있어 보인다'는 말만이 뇌리에 남게 된 것이다.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목놓아 울기 시작한 이구치를 보며 우시오도 울기 시작했다.
자신이 힘든 일이라면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밝게 행동 할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다 보니 감정이 이입되어 참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때부터 이구치를 위한 비밀특훈이 시작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도 오지 않은 이른 아침에 단 둘이 모여 스테이지에서 선보일 곡을 몇 번이고 반복하며 연습했다.
이구치가 보기에 우시오의 퍼포먼스는 너무나도 완벽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에 반해 자신은 박자조차 맞추지 못 하는 한심한 모습이었다.
특히 '후타리세종' 안무 중에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항상 잊어 버리는 부분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 부분 안무를 틀리지 않을까 고민 한 끝에, 해당 안무를 해야 할 때 우시오가 윙크를 해서 신호를 주기로 하였다.
그 결과, 이구치는 이 부분을 틀리지 않고 스무스하게 퍼포먼스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윙크의 효과는 특훈 때 뿐 아니라 본 무대에서도 발휘되었다. 이 윙크 덕분에 본방에서도 이구치는 안무를 틀리지 않고 춤을 출 수 있었다.
사실 연습 당시, 윙크 덕분에 안무를 틀리지 않은 이구치를 향해 우시오는 이런 말을 했다.
'이제 다 외웠으니 윙크 할 필요 없겠네'
그리고 이에 대한 이구치의 대답은
'아니, 앞으로도 사리나쨩이 윙크를 해 주면 좋겠어. 춤 출 때 사리나쨩 얼굴을 보면 기운이 나거든' 였다.
그리고 두 사람만의 비밀 신호는 그 이후로도, 아니 지금도 라이브 중에 남몰래 오고 가고 있다.
하지만 이 첫 단독라이브의
뒷편에는 아직 수 많은 문제점들이 숨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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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화
조명이 들지 않는 아이돌
팬들에 대한 첫 피로연 스테이지를 무사히 끝낸 히라가나 케야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악수회에 오는 사람들이 늘어 난 것은 아니었다. 멤버들은 변함 없이 텅 빈 악수회 레인에 서서 시간만 보내야 했다.
그런 와중에 반가운 소식이 날아 들었다. 첫 단독 이벤트, '히라가나 오모테나시회' 개최 소식이었다.
지금껏 경험 해 보지 못 한 긴 레슨과 아이돌이라는 직업의 냉엄함을 처음으로 직면한 멤버들은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주는 가운데 서서히 '유대감'이라는 것을 만들고, 강화 해 나갔다.
그리고 찾아 온 2016년 10월 28일. 이벤트 당일 아침이 밝았다.
12명이 선보인 '사이마조'
도쿄 미나토구에 위치한 라이브 하우스, '아카사카 블리츠'. 약 1000여명의 팬들이 스탠딩석을 가득 메운 가운데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 12명이 무대 위에 올랐다.
이벤트는 나가하마 네루의 인사로부터 시작되었다.
나가하마 : "오늘 이렇게 와 주신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멤버 일동 여러분과 만나기를 기대 해 왔습니다. 오늘은 히라가나 케야키의 첫 단독 이벤트입니다. 마지막까지 느긋하게 즐겨 주세요."
이벤트 전반은 가공의 '부 활동 발표회'라는 설정으로 이루어졌다.
멤버 12명을 각각 코러스부, 댄스부, 사회진행을 담당한 방송부로 나누어 지난 2주동안 연습 해 온 퍼포먼스를 선 보인 것이다.
우선 방송부 소속 이구치 마오가 입을 열었다.
이구치 : "사실 불안한 마음 밖에는 들지 않습니다만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뒤에 이어진 이구치의 토크는 말 그대로 '두려움을 모르는' 무쌍상태였다. 이구치의 토크에 회장 분위기는 한 층 달아올랐다.
뒤를 이어 사사키 미레이, 우시오 사리나 등 총 6명이 소속 된 코러스부의 차례가 돌아왔다. 코러스부는 '히라가나 케야키', '사이마조' 등을 아카펠라로 선보였다.
대기실에서 연습 할 때만 해도 '그다지 노래 잘 하지도 않는 우리가 반주도 없이 노래 하면 비웃음만 살 것'이라며 불안해 하던 멤버들도 스테이지 위에 오르자 마치 언제 그런 걱정을 했냐는 듯이 3부 화음을 넣으며 멋진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사람의 목소리란 건, 사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악기라 할 수 있어. 그러니까 너무 불안해 하지 말고 자신 있게 목소리를 내 줬으면 좋겠다."
는 스태프의 조언을 듣고 자신들의 목소리의 특징을 찾고, 밸런스를 맞추어 가며 연습 한 성과였다.
한편 댄스부는 실전 직전까지 난관에 허덕이고 있었다. 지금껏 경험 해 본 적 없는 힘든 안무를 외워야 했을 뿐 아니라, 솔로파트 때는 각자의 특기도 선보여야 했기 때문이다.
이 '특기' 중에는 실패 가능성이 높은 것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카게야마는 축구공을 이용하여 리프팅을 했고, 히가시무라는 마칭용 라이플을 돌렸다.
실제로 리허설 때는 전원이 한 번에 성공 한 적이 없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본 무대에 올라서는 누구 하나 실패하지 않고 훌륭히 특기를 선보였다.
댄스부에 이어 무대에 선 연극부 땐 12명의 멤버 전원이 즉흥극에 도전하였는데, 때때로 대사를 더듬거리기는 했어도 눈에 띄는 큰 실수는 없이 무난하게 완수 해 냈다.
이후 히라가나 케야키가 라이브 경험을 쌓아가며 그녀들의 대명사로 자리잡게 될 '승부에 강한 측면'이나 '무대 그 자체를 즐기는 자세'는 이미 이 때부터 발휘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이벤트에 있어 정말 문제였던 것은 다름아닌 후반부에 있었던 라이브 파트였다.
이 날 라이브에서 선보인 곡은 그녀들의 첫 오리지널 곡인 '히라가나 케야키'와 한자 케야키의 대표곡인 '사이마조'와 '세카아이'였다.
TV 음악 방송을 통하여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곡들을 선보인다는 것은 멤버들에게 있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도 21명으로 이루어진 한자 케야키의 곡을 12명이 선보여야 한다는 점부터가 엄청난 난관이었다.
'한자 케야키를 패러디 하는 것 처럼 보여서는 안돼.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
모든 곡에서 센터 자리에 섰던 나가하마의 뇌리는 이런 생각들로 가득했다. 물론 이런 생각은 나가하마 뿐 아니라 모든 히라가나 멤버들의 머릿속에 도사리고 있는 생각이었다.
멤버들은 불안을 공유하며 레슨에 임했다. 12명 버전으로 포메이션이 어레인지 된 '사이마조'는 아무리 연습을 해 보아도 한자 케야키만큼의 강렬한 포스가 나오지 않아 멤버들을 초조하게 했다.
그렇게 불안해 하던 그녀들을 도와주었던 것은 의외로 한자 케야키 멤버들이었다.
레슨 기간동안 한자 케야키의 댄스 리더격 존재, 사이토 후유카를 비롯한 한자 멤버들이 리허설 룸을 찾아 히라가나 멤버들에게 조언을 해 주었던 것이다.
오리지널 센터인 히라테 유리나 역시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스케줄과 스케줄 사이에 짬이 나면 리허설실을 찾아 다음 스케줄 직전까지 연습을 도와주거나, 자신이 스테이지 위에서 어떤 것들에 중점을 두는 지 등을 세심하게 조언 해 주기도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이벤트는 히라가나 멤버 12명만의 무대가 아닌 케야키자카46이라는 그룹과 그 주변 사람들이 모두 함께 힘을 모아 만들어 낸 무대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벤트 당일 무대 위에서 히라가나 케야키가 선보인 퍼포먼스는 비록 기술적으로도 부족하고 박력도 없었을 지는 몰라도, 얼굴에 경련이 올 정도로 필사적으로 미소짓고 퍼포먼스를 하는 그녀들의 모습은 관객들의 가슴을 울리는 데에는 충분하였다. 그녀들의 퍼포먼스에 감동을 받은 관객들은 그녀들에게 성대한 박수를 보냈다.
멤버들이 마지막 인사를 하고 무대 뒤로 사라진 뒤에도 관객들의 우렁찬 '히라가나' 콜은 멈출 줄 몰랐다.
공연이 끝난 뒤, 무대 뒷편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사사키 미레이는 이런 말을 남겼다.
"지금보다 더 성장하고 싶어요. '대단해'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이 당시, 12명의 멤버들은 자신들의 눈 앞에 펼쳐 질 밝은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높이 뛰어!'에 담긴 테마
이 해 11월 30일에 발매 된 3번째 싱글 '후타리세종'에 다시 한 번 히라가나 케야키의 곡이 커플링으로 실리게 되었다.
히라가나 케야키의 두 번째 오리지널곡의 제목은 '누구보다도 높이 뛰어!'였다.
전작인 '히라가나 케야키'의 차분한 분위기와는 정 반대로 디스코 뮤직풍의 경쾌한 사운드에 자유와 희망에 대한 갈망이 담긴 씩씩한 가사가 녹아 든 회심의 곡이었다.
'자 앞으로 크게 뛰어봐! 있는 힘을 다 해 다리를 들어!
따라잡지 못 할 정도로 큰 점프를!
희망의 날개를 태양이 비추어 주고 있어!
믿어 봐 You Can do! 할 수 있어 You can do! 조금만 더…'
이 곡의 안무 역시 명확한 테마가 설정 되어 있었다.
바로 '라이브 때 흥할 안무'라는 것이 그 테마였다.
한자 케야키에 비해 인지도가 압도적으로 부족한 히라가나 케야키. 오리지널 곡 수는 물론이고 인원 수 조차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었기에 한자 케야키와 함께 라이브를 해 봤자 아무런 임팩트를 주지 못 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관객들에게 임팩트를 주고, 분위기를 띄울 수 있는 신나는 안무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 임팩트 있는 안무를 만들기 위하여 댄스 레슨에서는 독특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우선 절반인 6명이 먼저 퍼포먼스를 하고, 나머지 6명은 건너편에 앉아 그 모습을 마치 관객인 듯 지켜보았다. 퍼포먼스를 하는 측은 지켜 보는 멤버들의 흥을 돋구기 위하여 실전처럼 퍼포먼스를 하고, 지켜보는 멤버들은 콜을 하면서 '어떻게 해야 관객들이 더 달아오를 수 있을 지'를 객관적으로 생각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이다. 또한, 후렴구에서는 멤버와 팬이 함께 점프를 할 수 있는 부분도 마련되었다.
그리고 히라가나 케야키의 오리지널 포즈, 일명 '히라가나 포즈' 역시 이 곡과 함께 쓰이기 시작했다. 멤버들 자신이 고안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번 곡은 지난 곡과는 달리 MV도 만들어졌다. 히라가나 멤버들에게 있어 MV촬영은 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었다.
원래부터 울보가 많은 그룹이기도 하지만, 이 MV를 찍을 때는 특히나 많은 멤버들이 울거나 의기소침 해지거나 했다.
예를 들어 어릴 때부터 발레를 배워 춤에는 자신이 있었던 사사키 쿠미는 카메라 앞에서 노래하며 춤 추려 한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 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히라가나 케야키'에 이어 2작품 연속으로 나가하마와 함께 더블 센터에 선 카키자키 역시 나가하마에 비해 안무 습득 속도가 느린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나 눈물을 흘렸다.
한편, 애초에 춤에는 자신이 없었던 이구치는 타이밍이 어긋나 혼이 나도 '항상 있는 일'이었기에 그렇게 크게 상심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MV가 공개 된 뒤, 자기 자신의 어설픔을 지적하는 무수한 댓글들을 보았을 때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이렇듯 당시만 해도 아직 미완성인 부분이 많았던 이 곡은 이후 히라가나 케야키를 상징하는 곡중 하나로 자리잡게 된다.
히라가나 케야키는 어느 사이엔가 첫 단독 이벤트를 성공리에 마무리 하면서 얻은 자신감과 라이브를 흥하게 하는 새 곡이라는 '자신들을 어필 하기 위한 새로운 무기'를 손에 넣은 것이었다.
괴로웠던 '노기자카 3기생들과의 공연'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 않았다. '오모테나시회' 이후로 몇 달이 지나도록 그녀들에게는 아무런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어 지지 않았던 것이다.
분명 같은 그룹일 터인 한자 케야키는 홍백 가합전 출장이 정해지고, 더욱 더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게 되었으며, 다시금 '전원 선발'로 발매 된 새 싱글 '후타리세종' 역시 전작을 상회하는 좋은 성적을 내었다.
한 편 같은 시기 히라가나 케야키는 새로운 일도 거의 받지 못 하고, 그저 주말에 있는 악수회만을 전전하며 시간을 보낼 따름이었다. 결성 당시만 해도 미디어의 취재가 줄을 이었지만 이 당시에는 이미 그런 취재 역시 거의 끊겨 있었다.
당시 아직 학교에 다니며 오사카에 살고 있었던 다카세 마나는 자신들을 가리켜 '완전히 커플링 악수회 아이돌'이라 자조했을 정도였다.
케야키자카46의 싱글에는 '커플링곡'에만 참가하고, 싱글 활동이라 해 봤자 주말에 있는 악수회가 전부인 자신들의 상황을 표현한 말이었다.
다카세와 마찬가지로 학교에 다니고 있던 멤버들은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로서 활동 했던 기억보다는 학생으로서 학교생활을 한 것이 더 기억에 남을 정도인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그런 자신들의 미묘한 위치를 깨닫게 해 주는 에피소드도 여러 번 있었다.
12월 중순에 방송 된 음악특방 '2016 FNS가요제' 때. 히라가나 케야키는 자매그룹인 노기자카46의 신 멤버, 3기생들과 함께 공연을 하게 되었다.
노기자카 3기생들은 그 해 9월 데뷔한 직후였기에 사실상 경력으로 따지자면 히라가나 케야키보다도 후배였고, 히라가나가 2곡이나 갖고 있는 오리지널 곡도 하나도 없는 말하자면 '생초짜'인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녀들이 함께 퍼포먼스를 하게 된 곡은 노기자카46의 '제복 마네킨'이었다.
나가하마가 센터에 서고 노기자카 3기생들이 그 옆에 서는 포메이션이었다.
하지만 나가하마 이외의 히라가나 멤버들의 자리는 맨 뒤쪽, 조명이 거의 들지 않는 곳이었다.
나가하마 이외에 화면을 통해 얼굴이 인식 가능한 멤버는 사사키 쿠미와 카토 시호 정도였기에 인터넷에서는 '나가하마 네루와 노기자카3기생들의 마네킨'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말 하자면 히라가나 멤버들은 그 존재조차도 잊혀졌던 것이다.
한자 케야키 멤버들은 이런 상황을 보고 '히라가나쨩, 전혀 화면에 비추지 않네. 안됐어.'라고 안타까워 해 주었다.
이후, 한자 멤버들의 이 발언을 전해들은 카키자키는 '우리들이 화면에 비추지 않는 건 당연한 건데 이렇게 걱정 해 주다니, 한자 선배님들 정말 다정하시네'라고 생각했다 한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던 어느 날, 멤버들끼리 패밀리 레스토랑에 갔을 때, 카토 시호가 '우리는 어쩌면 이런 취급을 받을 운명일지도 몰라'라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다른 멤버들 조차도 자조적으로 웃을 뿐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 했다.
연말에 열린 '케야키자카46 첫 원맨라이브 in 아리아케 콜로세움' 에서도 히라가나 멤버들이 참가 한 것은 오리지널곡 2곡과 한자 케야키와의 합동곡 '케야키자카의 노래'뿐이었고, 그 뒤로는 그저 무대 옆에서 조용히 한자 케야키를 응원할 뿐이었다.
그룹에 들어 오기 전, AKB48의 '드래프트 회의'라는 오디션에 참가 하였을 때, 이미 아리아케 콜로세움 스테이지에 서 본적이 있었던 카게야마에게 있어 다시금 이 스테이지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일종의 '운명'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공연 도중 '얘들은 누구야?'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관객들의 모습을 목격 한 뒤, '우리는 한자 선배님들의 '덤'으로 여기 서 있구나… 우리는 정말 작디 작은 존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말에 있었던 홍백 가합전 역시 히라가나 멤버들은 전원 집에서 TV를 통해 한자 케야키의 퍼포먼스를 보아야 했다.
한자 케야키의 멤버, 즉 '선발 멤버'가 되어 싱글 타이틀을 부르는 것이 목표였던 사이토 쿄코는 나날이 벌어져만 가는 한자 케야키와의 격차에
'아 이제 한자와 히라가나 멤버 교대는 없겠구나. 완전히 별개의 그룹이 되어버렸어'라고 생각했다.
자신들의 존재의의를 생각 하면 할수록 뭐가 뭔지 알 수 없어졌다.
심지어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이미 이 그룹이 한자만으로도 잘 굴러간다면 히라가나는 필요 없잖아. 조만간 스태프분이 '히라가나를 만든 건 실수였습니다. 오늘로 히라가나 케야키는 해산합니다'라고 말 해도 이상할 게 없겠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당시, 히라가나 멤버들은 자주 한 데 모여 고민을 이야기하곤 했다. 자신들이 지금 놓여 있는 상황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녹록치 않았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뭔가 해야만 했다.
하지만 뭔가 시도 해 보려 해도 그럴 기회조차 얻지 못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렇게 헛되게 오가는 대화 속에 멤버들의 마음은 조금씩 침식되어갔다.
하지만 그렇게 모두가 침울해 져 있을 때에도 남들 몫까지 밝게 행동하는 멤버가 있었다.
우시오 사리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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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화
첫 피로연과 첫 단독이벤트
2016년8월 상순, 히라가나 케야키 추가멤버 11명은 도쿄 도내에서 합숙을 실시하였다. 코 앞으로 다가 온 첫 피로연을 대비하여 집중적으로 레슨을 받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히라가나 케야키의 오리지널 멤버인 나가하마 네루는 한자 케야키와의 겸임으로 인하여 좀처럼 다른 멤버들과 함께 레슨을 받기가 힘들었다.
히라가나 케야키, 한자 케야키를 막론하고 케야키자카46의 모든 멤버들은 '언젠가 양 그룹간에 멤버가 교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에 복잡한 마음을 숨기고 있었다.
그리고, 첫 피로연 날 아침이 밝았다.
아무도 오지 않는 악수회
2016년 8월 13일. 하늘을 뒤덮은 구름 덕분인지 한여름의 찌는 듯한 무더위는 그나마 한 풀 가셔 있었다.
그 날은 아이치현 나고야시에 위치한 대형 이벤트 홀에서 케야키자카46의 2번째 싱글, '세상에는 사랑뿐이야' 전국 악수회가 개최 된 날이었다.
이 전국 악수회라는 이벤트는 싱글이 발매 될 때마다 전국 주요 도시들에서 열리는 이벤트로, 악수회 외에도 해당 싱글 수록곡들을 팬들에게 선보이는 미니 라이브 역시 개최되는 이벤트이다.
이 날은 2번째 싱글 활동 첫 전국악수회였다. 그리고 이 날은 2번째 싱글부터 활동에 참가한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을 팬들에게 처음으로 선보이는 피로연의 장이기도 하였다.
오전 11시, 회장안에 케야키자카46의 오버추어(공연 등이 시작 됨을 알리는 서곡)가 울려 퍼졌다.
오버추어의 뒤를 이어 시작 된 미니라이브는 우선 타이틀곡인 '세상에는 사랑뿐이야'를 필두로 싱글 수록곡 5곡이 연달아 선보여졌다.
그리고 그 중에는 나가하마 네루의 솔로곡인 '다시 만나 주세요'도 포함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가하마의 솔로곡이 끝난 뒤 울려 펴진 음악은 한자 케야키의 오버추어를 어레인지 한 히라가나 케야키의 오버추어였다.
자신들만의 오버추어에 맞추어 스테이지 위에 모습을 드러낸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 12명.
팬들 앞에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12명의 멤버들은 푸른 의상을 맞춰 입고 있었다.
이 의상은 한자 케야키의 2번째 싱글 활동 의상, 다시 말 해 흰 바탕에 푸른색 라인이 들어 간 원피스 제복을 색만 반전시킨 의상이었다.
파란 바탕에 흰 색 라인이 들어 간 원피스는 그녀들의 청초하면서도 풋풋한 모습을 더욱 더 돋보이게 해 주는 디자인이었다.
멤버들은 처음으로 이 의상을 받은 날, 다들 굉장히 신나하며 서로 사진을 찍었다.
특히나 아이돌 팬이었던 사사키 쿠미에게 있어 이 '오리지널 의상'은 '아이돌'의 상징인 동시에 그녀가 항상 동경 해 왔던 것이기도 하였다.
사사키 (쿠) : "이 의상은 정말로 제 몸에 완벽하게 딱 맞게 되어 있어요. 정말 엄청나죠. 말 그대로 저 하나만을 위한 옷이잖아요. 저희들, 정말로 아이돌이 됐네요."
의상 사이즈는 멤버 한 사람 한 사람의 체형에 맞추어 만들어 졌지만, 스커트 길이만은 조금씩 달랐다.
멤버 각자의 신장이나 다리 길이가 다 달라도 일렬로 섰을 때 밑단이 전부 같은 높이에 있도록 계산이 되어 만들어 진 스커트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의상을 입고 멤버들이 일렬로 늘어서면 치마 밑단에 들어 간 흰 선이 같은 높이에서 일직선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 해, 이 의상은 멤버 개개인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그룹으로서 통일감이 한 눈에 보이도록 많은 계산과 궁리를 하여 만들어 진 의상이라는 이야기이다.
이런 의미 깊은 의상을 걸치고, 처음으로 팬들 앞에 서서, 자신들의 첫 오리지널곡인 '히라가나 케야키'를 선보인 멤버들.
히라가나 케야키의 댄스는 케야키를 상징하는 격렬하고 스타일리시한 댄스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소박하면서도 나긋나긋한 안무였다.
그렇기에 언뜻 보기에는 쉬운 안무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곡 도중에 나오는 '멤버들이 지그재그로 교차하는 안무'에는 모든 멤버들이 한참 고생을 했다고 한다.
레슨 때에도 몇 번이나 연습을 거듭했음에도 생각처럼 잘 되지 않고 거듭 서로 부딪히거나 길을 막거나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부분 동작들을 보면 분명 간단한 안무라 할 수 있겠지만, 다른 멤버들과의 동선이나 호흡 등 신경 쓸 점이 많은 안무였던 것이다.
몇 번이나 거듭해서 안무 연습을 하는 가운데, 멤버들은 서로 눈을 바라보며 호흡을 맞추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노하우를 구사하여, 피로연 본 공연에서는 서로 부딪히지 않고 무사히 공연을 끝낼 수 있었던 것이다.
나가하마 네루와 함께 이 곡의 센터 자리에 선 카키자키 메미는 이 날의 공연에 대하여 이렇게 술회한다.
카키자키 :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을까요… 그저 아름다운 바다를 보는 것 같았어요."
어두컴컴한 회장을 가득 메운 수천 개의 사이리움. 회장에 모인 팬들은 케야키자카46의 그룹 컬러인 녹색 사이리움으로 멤버들에게 성원을 보내주었다.
카키자키의 말마따나 스테이지 위에 선 멤버들에게 이 광경은 마치 끝 없이 펼쳐진 녹색 빛의 바다처럼 보였으리라.
멤버들의 걱정과는 달리 팬들은 따뜻하게 히라가나 케야키를 맞이 해 주고, 성원 해 주며 새로운 멤버들의 출발을 축복 해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미니라이브가 끝난 뒤 이어진 악수회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수십분씩 기다려가며 악수를 해야 할 정도로 수 많은 사람들이 몰린 한자 케야키 멤버 레인에 비해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 레인에는 사람들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단 한명도 줄을 서지 않는 레인도 있었을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 우시오 사리나는 한자 멤버들의 레인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팬들과 가위바위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우시오 : "어차피 할 게 없다면 그냥 멍하게 있는 것 보다는 조금이라도 팬분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하면 팬분들도 즐거워 해 주시고, 저 역시 아무도 없어서 외롭고 쓸쓸한 상황인 것을 잊을 수 있잖아요."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은 사람이 오지 않는 상황에서도 좌절하거나 불행하다 여기지 않고, 자신들을 찾아 주는 많지 않은 팬들에게 성심성의껏 감사의 마음을 담아 대응했다.
아직 TV나 미디어에 제대로 나온 적도 거의 없는 생초짜 신인인 자신들에게 있어 그런 상황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준 시간
2번째 싱글 악수회는 약 2개월에 걸쳐 행해졌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 한자 케야키는 각종 이벤트, 페스는 물론이고 2편이나 되는 칸무리 방송을 비롯하여 각 방송국의 음악방송, 패션쇼 등 다양한 미디어에 출연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데뷔곡인 '사일런트 마조리티'가 일본 연예계 역사에 남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일까, 수 많은 사람들이 신성의 등장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냈던 것이다.
하지만 히라가나 케야키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변함없이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 쓸쓸한 악수회와 레슨, 이 두 가지만이 그녀들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심지어 유일한 오리지널 곡인 '히라가나케야키'의 안무 레슨이 끝난 뒤에는 그나마도 할 일이 없어 져, 그녀들은 다시 한 번 댄스와 보컬을 기초부터 다시 배우는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런 그녀들에게 터닝포인트가 찾아 온 것은 10월 어느 날이었다.
리허설룸에 모인 멤버들에게 스태프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단독 이벤트를 열 생각입니다'라고 입을 열었다.
생각도 못 했던 반가운 소식에 멤버들은 하나같이 들떠서 신나했다. 하지만 바로 이어진 스태프의 말은 그런 그녀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것 같은 말이었다.
'이벤트 개최일은 이번 달 말이고, 장소는 아카사카 블리츠입니다. 이번 이벤트는 히라가나 케야키의 첫 단독 이벤트이자, 히라가나 케야키가 가진 실력을 보여 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합니다. 모두 힘을 합쳐 준비 해 주세요. 그럼 이만.'
개최 일자는 10월 말, 남은 시간은 불과 3주 남짓뿐이었다.
그녀들이 보유 한 오리지널 곡은 겨우 1곡 뿐인데다가 받는 레슨이라 해 봤자 기초 중의 기초만 하고 있는데 '단독' 이벤트를 잘 해 낼 수 있을까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안했던 것은 다름 아닌 인기…
악수회에도 한자 케야키의 수분의 1정도밖에 사람들이 오지 않는 자신들만의 힘으로 수용인원 1000명이 넘는 아카사카 블리츠를 채울 수 있을 지 걱정이 되었다.
처음으로 단독 이벤트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과, 현실적인 불안이 그녀들의 마음 속에서 어지러이 교차하며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이 이벤트의 제목은 '히라가나 오모테나시회'로 결정되었다.
'오모테나시회', 한자 케야키도 데뷔 직후에 같은 타이틀로 단독 이벤트를 연 바 있었다.
그 때는 멤버들이 각각 '부 활동'을 정하여, 마치 각 부의 발표회 형식으로 이벤트를 진행 한 바 있다.
이벤트를 앞두고 재개된 레슨 첫 날, 코러스부에 소속 되어 있던 카토 시호는 금세 난관에 봉착 해 있었다.
카토는 '생각만큼 노래가 안된다'며 울기 시작하여 스태프들을 당황케 하였다.
댄스부에 소속되어 있던 히가시무라 메이 역시 '안무가 안 외워진다', '라이플 돌리기가 잘 안 된다'며 자주 눈물을 흘렸다.
이 둘 외에도 많은 멤버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스태프들은 내심 '얘들이 잘 할 수 있을까?'라고 불안해 했다.
하지만 누군가 눈물을 흘리며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 다른 멤버들이 그 주변에 모여들어 위로 해 주며 '함께 해 보자'고 힘을 합하는 모습도 여기저기서 연출되었다.
그 모습은 마치 그녀들의 첫 오리지널 곡, '히라가나케야키'처럼 부드럽고 다정한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모습이었다.
매일 오랜 시간 레슨을 하다보니 때로는 지친듯한 모습을 비출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 조차도 휴식 시간에는 삼삼오오 모여서 동물 울음소리 흉내를 내며 노는 흐뭇한 모습은 예전과 변함 없었다.
한 가지 목적을 향하여 함께 시간을 보내는 가운데, 서로가 서로를 더 잘 알게 되고,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주는, 그룹으로서의 바람직한 모습 역시 서서히 완성되어갔다.
하지만 그런 그녀들의 모티베이션을 저하시키는 사건이 일어 났으니…
납득 할 수 없는 포지션
'오모테나시회'는 각각 '부'를 정해 성과를 발표하는 코너 이외에도 12명 전원이 참가하는 라이브 파트도 준비 되어 있었다.
한자 케야키의 '오모테나시회' 때에는 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였다.
이 날 라이브에서 선보이기로 되어 있던 곡들은 히라가나 케야키의 오리지널 곡 '히라가나케야키'와 한자 케야키의 데뷔곡 '사일런트 마조리티', '세상에는 사랑뿐이야' 총 세 곡이었다.
그녀들이 한자 케야키의 곡을 선보이는 것은 이 날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한자 케야키의 곡을 선보임에 있어 중요한 '포지션'은 레슨 성과를 보며 정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레슨 중에 스태프가 불쑥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부터 포지션을 결정 할 테니 춤 춰 봐.'
그 말을 들은 멤버들은 자신이 가진 온 힘을 다 해 최선의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스태프에게 어필하였다.
하지만 한 번 어필 한 것이 끝이 아니었다.
포지션이 결정되어 한 차례 연습을 하고 나면 곧바로 '아 그럼 XX는 3열로 가. 그리고 OO랑 YY가 자리를 바꿔'라는 식으로 포지션 체인지가 행해졌다.
이런 식으로 몇 번이고 포지션이 바뀐 뒤, 겨우 포지션이 결정되었다 싶었는데, 바로 다음날에는 또 다른 자리에서 춤을 추라는 지시가 내려왔던 것이다.
처음부터 누구는 어느 자리라고 딱 정해 주었더라면 자신이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해 춤을 배우고 연습 할 수 있었을텐데,
그렇게 하지 못 하고 몇 번이나 자리를 바꾸다 보니 멤버들 표정에서도 불안함이 묻어났다.
좋은 포지션에 서서 기뻐하다 포지션이 나빠 져 의기소침해 지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자리를 빼앗는 것 같아 괜시리 분위기가 서먹해지기도 하였다.
자연스레 리허설실의 분위기도 나날이 무거워 져만 갔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에 못 이겨 눈물을 흘리는 멤버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그 뿐 아니었다.
최종적으로 결정 된 포지션이 아무리 생각해도 퍼포먼스 능력과는 관계가 없는 포지션이었던 것이다.
의문을 갖게 된 멤버들이 '어째서 이 순서냐'고 물었을 때, 스태프가 내뱉은 대답은 '키 순서'라는 어이 없는 것이었다.
'히라가나케야키'에선 센터 바로 옆자리였던 다카세 마나는 '세카아이'에서는 키 순서대로 앞줄로 가고, '사이마조'에서는 마찬가지로 키 순서대로 맨 뒷줄로 가는 등 정신 없이 움직여야했다.
다카세 : "열심히 하면 앞으로 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결국 맨 뒤로 가게 되었지요. 아이돌이란 거 만만치 않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포지션이 변하기 전까지 열심히 외웠던 건 대체 다 뭘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어릴 때부터 댄스를 배워 왔기에 나름 춤에는 나신이 있었던 사이토 쿄코 역시 '키 순서'로 포지션을 정하는 단순한 방식에 납득 할 수 없었다.
사이토 : "저는 맨 뒷줄에서도 맨 끝자리였지만 딱히 분하거나 하진 않았어요. 비록 그 자리에 서긴 했지만 그렇다고 제가 여기서 춤을 제일 못 추느냐 하면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뭐, 말하자면 스태프분들이 적당히 정한 포지션이었고요."
물론 그룹 아이돌의 포지션이라는 것이 단순히 누가 춤을 잘 추느냐는 것을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21명이 선보이던 작품을 12명이 선보인다는 것은 결국 그만큼 객석에서 멤버 전원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스태프들은 그런 점을 감안, 모든 멤버들이 최대한 빛을 낼 수 있도록 계산해서 포지션을 짜는 것이다.
신장에 따른 밸런스 역시 그런 '감안할 점' 중 하나라 할 수 있기에, '사이마조'에서는 키가 큰 사사키 쿠미와 사사키 미레이 두 사람을 대칭을 이루도록 구성 한 것이다.
그렇기에 스태프가 이야기 했던 '키 순서'라는 말은 '거짓말'도, '적당히 정한' 것도 아니었다.
몇 번이나 포지션을 바꾸어 가며 연습을 시킨 것 역시 의미가 있어서, 어떤 포지션에서도 대응 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킨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스태프들의 의도를 멤버들이 이해 할 수는 없었다.
물론 스태프들이 어린 멤버들의 섬세한 마음을 배려 해 주지 못한 것 역시 오해를 부른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조금씩 발생하기 시작한 멤버들과 스태프들간의 오해는 이후 더 큰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예상 이상으로 모여 준 팬들
10월 중순.
팬들에게 '히라가나 오모테나시회' 개최가 발표 된 다음날, 멤버들이 참가하는 티켓 판촉 이벤트가 개최되었다.
이벤트 개최 소식은 당일 오전에 발표 되었고, 장소도 이벤트 개시 1시간 전에 공식 트위터에서만 발표되었을 정도로 게릴라 이벤트였다.
멤버들은 게릴라 개최에 평일 개최였다는 점도 있어 팬들이 모이지 않을 거라 불안해했다.
하지만 그 날 회장을 메워 준 것은 무려 700명 이상이나 되는 팬들이었다. 당일 판매분 티켓 매수를 훨씬 뛰어넘는 인원이었다.
사람이 안 와서 텅빈 악수회장을 지켜야만 했던 멤버들에게 있어 이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이 결과는 9월에 방송된 케야키자카46의 칸무리방송, '케야카케'에 히라가나 멤버들이 출연하여 다소 지명도가 올랐던 점, 그리고 그룹 전체를 통틀어서도 악수회 인기가 1, 2위를 다투는 나가하마 네루의 존재, 마지막으로 한자 케야키를 응원하던 팬들이 '히라가나의 첫 단독 이벤트'라는 의미 깊은 무대에 흥미를 가지고 참가 해 주었다는 점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으리라.
긴 여름 내내 '한자케야키'의 그늘에 가려 싹을 틔우지 못 했던 히라가나 케야키에게도 조금씩이나마 순풍이 불기 시작 한 것이었다.
그리고 10월 28일.
드디어 히라가나 케야키의
첫 단독 이벤트, '히라가나 오모테나시회' 개최일 아침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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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화
아무도 모를 눈물의 이유
2016년. 히라가나 케야키의 추가멤버 오디션에 합격, 새로운 길을 걷게 된 11명의 소녀들.
거기에 지금껏 홀로 활동 해 온 나가하마 네루를 더하여 총 12명 체제를 갖춘 '히라가나 제 2장'이 시작 된 것이다.
신체제 첫 일거리는 자신들을 소개하는 오리지널곡 '히라가나 케야키'의 녹음이었다.
하지만 이 곡이 실리게 된 2번째 싱글 '세상에는 사랑뿐이야' 때부터 나가하마는 한자 케야키와 히라가나 케야키를 겸임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가하마의 스케줄 문제로 히라가나 멤버들과 함께 레슨을 받을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히라가나 멤버들과 한자 멤버들의 대면이 이루어졌다.
언젠간 '한자' 멤버가 되고 싶어?
히라가나 케야키 추가 멤버들이 활동을 시작했을 무렵부터 멤버들끼리 자주 나누던 이야기가 있다.
'언젠가는 한자 멤버가 되고 싶어? 아니면 계속 히라가나 멤버로 남고싶어?'
물론 여기서 말하는 '한자'와 '히라가나'는 '한자 케야키'와 '히라가나 케야키'를 의미한다.
이런 질문이 이상하지 않았던 것이, 애초에 그녀들이 추가 멤버 오디션을 받았을 당시만 해도 히라가나 케야키는 어디까지나 '한자 케야키의 언더 그룹'이라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언더'라는 것을 선배 그룹인 노기자카의 예를 들어 설명을 해 보자면, 언더는 싱글 타이틀곡을 부르는 멤버들을 뽑는 '선발'과정에서 선택을 받지 못 한 멤버들을 의미한다. '선발'과 '언더'는 매 싱글마다 바뀌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멤버들 사이에 극심한 경쟁이 벌어지게 된다.
노기자카의 이런 시스템을 잘 알고 있는 멤버들 입장에서는 결국 '언더 그룹'이라 함은 곧 '언젠가는 선발인 한자 케야키에 들어 갈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여 졌던 것이다.
하지만 히라가나 케야키를 '언더 그룹'이라 한 의미가 정확히 무슨 의미로 한 것이었는지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새롭게 만들어진 이 그룹이 어떻게 활동을 해 나갈 지 역시 당연히 정해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멤버들은 각자 '언더'라는 단어를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케야키자카46의 칸무리방송 '케야카케'가 방송되지 않는 나가노현 출신 카키자키 메미는 인터넷을 통해 히라가나 케야키 오디션을 알게 되고, 이 그룹이 '언더 그룹'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조차 거의 생각 못 한 채 오디션을 받은 케이스였다.
아이돌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던 히가시무라 메이는 '언더라는 건 말 그대로 케야키자카라는 그룹 산하 그룹이라는 얘긴가?'라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오디션을 받았다.
반면 노기자카의 팬으로 언더 라이브에도 가 본적이 있는 카토 시호는 '언더'라는 단어에 딱히 마이너스 이미지는 갖고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히라가나 케야키 오디션에 합격 한 뒤, '한자 케야키 멤버들은 다 귀엽겠지? 드디어 나코쨩이랑도 만날 수 있겠다!'라고 단순히 기뻐했다.
마찬가지로 이전부터 케야키자카46 멤버들의 블로그를 열심히 읽을 정도로 팬이었던 사사키 쿠미에게도 한자 케야키 멤버들은 말 그대로 '구름 위의 존재'였다. 그렇기에 자신이 그런 멤버들과 섞여 함께 활동을 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앞서 이야기 한 질문, 다시 말 해 '앞으로도 계속 히라가나 멤버로 남고 싶냐'는 질문에 대한 멤버들의 대답은 대부분 다음과 같았던 것이다.
'저는 지금 이대로 히라가나 멤버로 남고 싶어요. 이 멤버로 계속 활동하고 싶어요.'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 중 일부는 가슴속에 은밀히 자신만의 미래상을 그리고 있는 멤버도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멤버가 바로 사이토 쿄코였다.
노력과 오디션으로 점철된 매일매일
히라가나 케야키의 현 멤버중에서도 톱클래스의 가창력과 댄스실력을 뽑내는 사이토 쿄코.
하지만 이런 능력은 천부적인 재능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명확한 목적의식을 갖고 갈고 닦아 온 노력의 결정체였다.
사이토는 초등학교 1학년 때에 발레를 시작하고, 2학년때부터는 댄스를 배워왔다.
춤을 배우며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하게 된 그녀는 장래 희망도 '프로 댄서'로 적을 정도로 춤에 푹 빠져 살았다.
초등학생 때 열린 댄스 발표회에서 가장 춤을 잘 추는 아이가 맨 앞 센터자리에 서 춤 추는 것을 뒤에서 바라보던 그녀는 '나도 춤 연습을 더 열심히 해서 언젠가 저기 서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고, 실제로 더욱 더 열심히 댄스 연습에 매진하였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에는 이미 춤이 생활의 중심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매일매일 춤에 빠져 살았을 정도였다.
이후 중학생이 된 그녀는 한 아이돌을 알게 된다.
AKB48 제 2회 싱글 선발 총선거에서 1위에 오른 오오시마 유코였다.
키는 작아도 누구보다 힘껏 손발을 쭉쭉 뻗으며 감정을 폭발시키듯 춤을 추는 오오시마의 퍼포먼스를 본 사이토는 오오시마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사이토는 오오시마가 실린 잡지나 굿즈 등을 모을 수 있는 한 모았을 정도로 열렬히 그녀를 응원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사이토 본인도 연예계에 대한 동경을 갖기 시작, 오디션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돌, 댄서, 배우… 여러 번 오디션을 받았지만 합격 하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들과 함께 온천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한 그녀에게 가족들의 칭찬이 쏟아졌다.
그녀가 '노래'에 관심을 갖게 된 날이었다.
그리고 중 3이 되어서는 댄스 스쿨을 그만두고 보컬 스쿨에 다니기 시작하였다.
그녀에게 있어 '노래'란 단순한 취미나 기분전환용 유흥거리가 아니었다.
노래방을 갈 때에도 친구들과 가기 보다는 혼자 가는 경우가 많았다.
단순히 친구들과 '놀러 가는' 곳이 아니라 '노래를 연습하러' 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홀로 노래방에 들어 가, 마이크를 잡고는 마스터 하기로 정한 곡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철저하게 익숙해 질 때까지 부르고 또 불렀다.
이전, 한 다큐멘터리 방송에서 오오시마는 '노력 한다면 누구나 오오시마 유코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네. 될 수 있어요. 물론 저와 같은 노력 한다는 게 그리 쉽지는 않을 걸요'라고 대답 한 바 있다.
스스로 그렇게 자불 할 수 있을 정도로 노력가인 오오시마 유코를 존경하고 있었던 사이토였기에 '자신의 꿈을 위해 하는 노력'은 전혀 괴로운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노래'와 '춤'이라는 두 가지 무기를 손에 넣은 사이토는 고등학교에 들어 간 뒤로는 아티스트가 되기 위하여 오디션을 받았다.
하지만 오디션 결과란 운에 좌우되기 쉬운 것, 연예계로의 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고 3이 되기 직전, 사이토는 이렇게 결심을 했다.
'이제 연예인이 된다는 꿈은 접자. 앞으로는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돌아 가, 진학 준비를 해야지'
매사에 진지하게 임해 온 그녀였기에 포기할 때 조차도 결연했다.
그토록 꿈꾸어왔던 연예계에 대한 동경을 단칼에 끊어내고 보컬스쿨마저 그만 둔 채 평범한 생활로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마치 기차가 급커브를 꺾는 것 같은 급격한 방향전환이었다.
하지만 꿈을 쫓아 달려 온 나날 동안 알게모르게 쌓아 온 작은 인연이 그녀를 다시 한 번 '연예계'라는 꿈으로 이끌어 주었던 것이다.
TV너머에 서 있던 옛 동료
사이토가 고3이 된 해의 가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새 방송 '케야카케'를 보고 있자니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 눈에 띄었다.
깜짝 놀라 라인으로 연락을 해 보니 TV에서 본 사람은 자신의 지인이 맞았다.
지인은 '케야키자카46라는 그룹의 오디션에 붙어, 멤버가 되었다'고 이야기 했다.
이 '지인'은 한자 케야키의 인기 멤버, 이마이즈미 유이였다.
사이토와 이마이즈미가 만난 것은 그녀가 고 1때의 일이었다
한 레코드 회사의 오디션 겸 라이브에 출전하였을 때, 사이토 바로 앞 순서로 노래 했던 것이 이마이즈미였다.
기본적으로 오디션장에서 만난 다른 후보자들이랑 친구가 되는 경우는 없었지만, 자신과 마찬가지로 가수가 되기 위하여 노래 실력을 갈고 닦던 한 살 아래의 이마이즈미와는 어째서인지 금새 의기투합, 연락처도 교환하며 친해지게 되었다.
그렇게 오디션장에서 만났던 친구가 지금 TV화먼 너머에 서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 같은 해 11월에 히라가나 케야키 추가 멤버 오디션 소식이 흘러나왔다.
연예인이 된다는 꿈을 접었던 사이토가 이 오디션을 받기로 한 데에는 이마이즈미의 존재와, 오디션이 '대학 입시 직전'이었다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가수나 댄서 오디션이라면 아깝게 떨어 진 적이 있지만, 아이돌 오디션은 금방 떨어지겠지. 하지만 대학생이 된 뒤에는 오디션 받기 힘들어 질 테니까 어차피 떨어 질 거 마지막으로 도전 해 보자'
라는 마음으로 사이토는 '인생 마지막 오디션'에 임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디션은 본인의 예상과는 달리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 중에서도 사이토 본인의 매력이 가장 잘 발휘되었던 것은 '쇼룸'을 통한 개인 방송에서였다.
인터넷 방송 서비스인 쇼룸을 통해 후보자들이 개인 방송을 한다는 이 기획은 비록 '심사결과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고는 했지만, 시청자의 수나 응원 수 등이 집계되는 포인트제로 운영되었다.
매사에 최선을 다 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사이토는 당연히 1위를 목표로 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방송을 하였다.
카메라 앞에서 춤을 추기도,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참고로 그녀의 대명사라고도 할 수 있는 낮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이야기 하는 모습은 이 때도 변함이 없어, 시청자로부터 '아나운서같다'는 평가를 받으며 화제를 일으켰다.
사실 이 말투는 초등학생 때 그녀의 부친이 엄하게 교육시킨 결과물이었다.
어릴 적에는 엄한 아버지 때문에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예상도 못 했던 곳에서 '그 당시 아버지가 엄격하게 가르쳐 주셔서 다행이야'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쇼룸을 통해 지금껏 자신이 해 온 노력들이, 지금껏 쌓아 온 모든 것들이 발휘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쇼룸 심사에서 1위를 차지한 사이토는 최종심사 때 케야키자카46의 '손을 잡고 돌아갈까'를 심사위원들 앞에서 당당히 노래하고, 오디션에 합격하였다.
합격 발표 직후 사진 촬영을 위하여 다른 합격자들과 함께 무대 위에 섰을 때, 그녀의 마음 속에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수 없이 받아 온 오디션 결과들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어. 모든 오디션이 결국 이 오디션으로 이어 진 거구나.'
집으로 돌아 간 그녀를 부모님이 반겨주었다. 부모님의 손에는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울기 싫어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고 있던 그녀는 그런 부모님의 모습에 속이 후련 해 질 만큼 울었다.
불안감에 틀어박힌 한자 케야키 멤버들
하지만 사이토에게 있어 오디션 합격은 어디까지나 '꿈의 시작'일 뿐 종착역이 아니었다.
그녀의 가슴 속에는 한 가지 목표가 있었다.
'이 세계에 들어 온 이상 어중간한 건 싫어. 무조건 유명 해 질 거야. 히라가나가 한자의 언더 그룹이라면 난 히라가나 중에서 가장 열심히 노력해서 한자 선발에 들겠어.'
그녀는 이미 오디션에 응모 했을 때부터 '한자 케야키' 멤버로서 싱글 타이틀곡을 부른다는 목표를 세웠던 것이다.
최연장자이면서도 춤에 자신이 없어 사이토와 함께 자주 자주연습을 했던 이구치 마오 역시 그런 그녀의 목표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녀는 실력도 의욕도 있는 사이토의 꿈이 이루어 지기를 진심으로 빌어 주었고, 객관적으로 보아도 사이토의 능력이라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2016년 8월 중순.
코 앞으로 다가온 피로연을 대비하여 집중 레슨을 받고 있으려니 갑작스레 한자 케야키와 히라가나 케야키의 합동 리허설을 하게 되었다.
나가하마 네루 이외의 멤버들에게 있어서는 선배들과 처음으로 대면할 기회였다.
리허설 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한자 케야키 멤버들이 차례차례 들어왔다.
'사이마조'로 데뷔하여 금새 '사회 현상'이라 불릴 정도의 붐을 일으키고, TV나 잡지 등 각종 미디어를 석권한 한자 케야키 멤버들이 사이토의 눈 앞에 일렬로 줄지어 섰다.
그리고 그 중에는 옛 친구, 이마이즈미 유이의 모습도 있었다.
초짜나 다름없는 자신들에 비해 한자 케야키 멤버들은 너무나도 세련되고 당당해 보였다.
눈 앞에 서 있는 20명의 '연예인'들이 뿜어내는 박력 때문일까, 리허설실의 분위기가 긴장감으로 가득찼다.
하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인사를 하며 울먹이는 멤버도 있었지만 선배를, 연예인을 앞둔 사람이라면 긴장하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하지만 갑자기 사이토가 목을 놓아 울기 시작했다.
오디션 때에도, 힘든 레슨 때에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사이토가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모습을 보며 주변 멤버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 했다.
그리고 전원이 '어째서 저렇게까지 우는거지?'라며 의문을 표했다.
이 때 그녀가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참 전부터 연예계를 동경하여 수 없이 오디션을 보고, 떨어졌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부단히 노력하여 겨우 '꿈이 시작'되는 출발선에 선 그녀가 이 때 어떤 생각을 했는 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다.
사이토 쿄코는 눈 앞에 서 있는 한자 케야키 멤버들의 당당한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아, 이건 무리다. 이 사람들은 이미 나와 차원이 달라. 내가 이런 대단한 사람들과 경쟁해서 선발에 들어 간다는 건 무리야.'
이것은 그녀 혼자만이 느낀 아이돌의 세례, 첫 '좌절'이었다.
하지만 사실 한자 케야키 멤버들 역시 이 때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을 보며 동요하고 있었다.
데뷔 싱글 '사이마조'와 2번째 싱글 '세카아이' 두 번 연속으로 전원 선발로 활동 해 왔던 그녀들은 자신들에, 히라가나 케야키와 겸임을 하게 된 나가하마를 포함한 21명의 멤버들이야말로 '케야키자카46'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당시 한자 케야키 멤버들이 자주 언급했던 이야기가 있다.
'케야키(느티나무 거, 欅)라는 한자는 21획으로 이루어 져 있어요. 그렇기에 이렇게 21명의 멤버가 모인 건 운명인 것이죠.'
어떻게 보면 매우 소녀감성을 자극하는 운명론적인 이야기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이야기에 의미를 둘 정도로 21명의 멤버들의 유대는 각별했던 것이다.
히라가나 케야키와 대면하기 직전, 한자 케야키 멤버들 대부분이 부끄러움, 불안함으로 화장실에 틀어박혀 있었을 정도였다.
사이토 쿄코와 한자 케야키 멤버들이 느낀 불안감, 공포는 그 뒤로도 오랜 기간동안 해소되지 못 한 채 앙금처럼 남아 있게 된다.
이것은 '언더'라는 단어 하나가 가져 온 저주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가운데 히라가나 케야키의 피로연 날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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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화
히라가나케야키
2016년 봄, 케야키자카46의 데뷔곡 '사이마조'가 한창 사회현상을 일으키고 있을 무렵, 히라가나 케야키의 추가 멤버 오디션 역시 막바지에 다다라 있었다.
최종심사 직정, 후보자들은 인터넷 방송 서비스인 '쇼룸'을 통해 각자 개인방송을 하게 되었다. 업계에서도 전례가 없는 시도였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방식을 통하여 그녀들 개개인의 매력이 발휘되어, 데뷔도 하기 전부터 팬들과의 인연을 맺는 멤버도 생겨났다.
그리고 5월 8일, 히라가나 케야키의 추가 멤버 11명이 결정되었다. 지금까지는 홀로 그룹을 짊어 져 온 나가하마 네루와 함께 총원 12명 체제로 '히라가나 제 2장'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례적인 속도로 만들어진 오리지널곡
합격자들의 활동은 꽤나 느긋한 페이스로 흘러갔다. 1, 2주에 한 번 정도 모여서 기초적인 댄스 스탭을 배우거나 레크리에이션 정도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명확하게 리더십을 발휘하는 멤버는 딱히 없었지만, 당시 20살이던 사사키 쿠미는 모든 멤버들에게 신경 써 주고 말을 걸어 주었고, 중 3에 불과했던 카게야마 유카는 레슨 중에 자신의 생각을 확실하게 이야기 하며 다른 멤버들이 의견을 내기 쉬운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전체적으로 보아 의사소통이 자유롭고 따뜻한 분위기의 팀이었던 것이다.
그녀들에게 있어 첫 번째 '일'은 케야키자카46의 2번째 싱글, '세상에는 사랑뿐이야'에 실린 커플링곡 녹음이었다.
일반적으로 새롭게 오디션에 합격한 멤버들이 이토록 빠르게 오리지널 곡을 받게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예를 들어 2015년 8월에 결성 된 한자 케야키가 처음으로 레슨을 시작 한 것은 같은 해 10월, 데뷔곡인 '사이마조' 녹음을 시작 한 것은 이듬해인 2016년 2월이었다. 약 반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린 것이다.
그에 비해 히라가나 케야키는 2016년 5월에 오디션에 합격 해서는 첫 녹음에 임한 것이 불과 같은 해 7월이었다. 말 그대로 이례적인 속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사실 우연히 그녀들이 가입했던 시기가 2번째 싱글 제작기간과 겹첬기에 갑작스레 결정 된 일이었다.
레코딩은 큰 스튜디오에 11명의 멤버가 전원 들어 간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노기자카의 팬으로, TV를 통해 노기자카의 레코딩 장면을 본 적 있던 카토 시호는 실제로 스튜디오에 들어 간 순간부터 가슴이 뛰었다.
'마이크가 엄청 크네. 이게 이전에 TV에서 봤던 거구나. 나도 이제부터 레코딩이란 걸 하는구나.'
레슨 때 생각대로 춤을 추지 못 해서 금새 좌절 해 버린 이구치 마오 역시 이 날의 일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나, 평범하게 살았더라면 경험하지 못 할 일을 하고 있네. 이거 대단한데? 나 지금 아이돌이네!'
하지만 아직 제대로 레슨도 하지 않았던 그녀들의 노래는 전체적으로 퀄리티가 낮았기에 디렉터가 몇 번이나 한심하다는 듯 지적을 했다.
'리듬이 엉망이야', '목소리가 제대로 안 들려', '음정이 부정확해' 등등…
헤드폰을 쓰고 있었기에 부스 밖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오는 지 확실히는 알 수 없었지만 분위기로 보아 자신들의 노래에 질려 버리고, 한심하게 보고 있으리라는 것은 유추 할 수 있었다.
녹음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두근거렸지만, 정작 녹임이 시작 된 뒤로는 자신들의 무능력함에 실망 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완성 된 음원은 그 당시의 풋풋한 그녀들 외에는 흉내 낼 수 없는 소박하면서도 천진스럽고 솔직한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히라가나 케야키46의 첫 오리지널 곡의 제목은 '히라가나 케야키'
말하자면 새롭게 출발한 그녀들의 자기소개와도 같은 곡이었다.
'앞으로 잘 부탁해 히라가나처럼 솔직한 자신의 모습 그대로
한 그루 느티나무부터 물들어 가듯 이 마을에 조금씩 녹아들었으면 좋겠어.
춤 추듯 떨어지는 낙엽들은 계절 따라 옷을 갈아 입고
어제와는 다른 표정을 한 푸른 하늘이 얼굴을 비추지'
이 곡에서 나가하마 네루와 함께 더블 센터를 맡은 카키자키 메미는 이 가사를 처음 보았을 때, '우리 얘기다'라고 느껴 져 기뻤다고 한다.
앞으로 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 곡을 부르며 자신들을 알리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기대감으로 부풀었다.
그 중에서도 후렴구의 '한 그루 느티나무부터~'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스테이지 위에서 노래 할 때, 이 부분에서 12명의 멤버들이 옆으로 죽 늘어서서 팔을 위로 들어 느티나무 가지를 표현하는 부분이 있다. 그 뒤, '사이마조'의 안무 일부분을 거쳐 마지막으로 멤버 전원이 큰 느티나무 모양으로 포메이션을 짜는 퍼포먼스를 하게 된다..
이 때만 해도 히라가나 케야키는 선배 그룹인 한자 케야키와 함께 한 그루의 큰 느티나무를 구성하는 일부분이자 함께 걸어 갈 존재였다.
'일반인들 사이에 연예인이 한 사람 있는 것 같았다'
새롭게 11명의 동료들을 맞이한 나가하마 네루는 이 때 이미 복잡한 입장에 처해있었다.
4월 말에 있었던 '사이마조' 발매 기념 악수회에는 결석 멤버들의 언더로서 미니 라이브에 참가, 한자 케야키의 곡을 3곡 함께 선보였다. 물론 그룹의 대표곡인 '사이마조' 역시.
또한, 히라가나 케야키의 합격자 발표 직후에 있었던 악수회에서 무대에 서게 되었을 땐, 한자 멤버 중 몇명인가가 원진을 짜며 '네루와 함께 스테이지에 서는 건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모두 힘을 합쳐 열심히 하자'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였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눈물을 흘리는 멤버들의 모습도.
그 뒤로도 딱히 히라가나 멤버들과 대면할 기회를 받지 못 한 채, 한자 케야키의 첫 주연 드라마 '누가 도쿠야마 다이고로를 죽였는가?'의 리허설에 참가, 그대로 다른 멤버들과 함께 드라마 촬영에 쫓기는 매일을 보내게 되었다.
어느 사이엔가 나가하마는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한자 케야키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 있었다.
6월, 나가하마에게 새로운 변환점이 찾아왔다.
케야키자카46의 칸무리 방송인 '케야카케' 녹화중에 '나가하마 네루는 2번째 싱글부터 한자 케야키와 히라가나 케야키를 겸임한다'는 내용이 발표 된 것이다.
그 순간, 나가하마를 비롯하여 여러 멤버들이 눈물을 흘리며 나가하마를 축복해 주었다.
이 결과 나가하마는 정식으로 한자 케야키의 일원이 되어 2번째 싱글 타이틀곡 '세상에는 사랑뿐이야'에도 참가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겸임'이라는 조치는 결과적으로 이후 나가하마를 괴롭히는 원인이 되며, 다른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이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고민하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하에서 히라가나 케야키의 11명의 멤버들은 조금씩이나마 레슨이나 취재 등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8월 상순에는 합숙도 하며 같은 달 13일로 예정 된 첫 이벤트에 대비하여 집중 레슨을 받았다. 추가 멤버들과 나가하마 네루가 함께 '활동'을 한 것은 사실상 이 합숙기간이 처음이었다.
양자가 처음으로 함께 '활동'을 한 것은 한 잡지의 촬영이었다.
당일 한자 케야키의 멤버로서 '도쿄 아이돌 페스티벌 2016'에 출연중이던 나가하마는 낮 공연과 밤 공연 사이에 회장을 빠져나와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들과 함께 잡지 촬영에 ㅇㅣㅁ했다.
사실 오디션이 끝난 뒤에 무대에서 스쳐 지난 정도의 관계였지만, 카토 시호나 다카모토 아야카 등 일부는 나가하마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었다.
"네루쨩이라 불러도 돼요?" 라는 질문에 나가하마는
"당연히 되지. 경어 안 써도 돼"라 대답하였다.
이틀 뒤 밤,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 12명이 한 자리에 모여 회식을 하였다.
명목은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의 친목회였지만 사실 그 의도는 나가하마와 다른 멤버들의 거리를 줄이기 위함이었다.
함께 합숙을 하며 사이가 돈독해 진 히라가나 멤버 가운데 나가하마만이 붕 떠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침없이 나가하마에게 다가오는 다른 멤버들에 비해 나가하마는 오히려 소극적인 모습이었다.
그런 자신의 모습에 대해 나가하마는 내심
'아, 나는 이번에도 늦어 버렸구나'라 생각했다.
한자 케야키에 '늦게' 가입한 뒤, 홀로 히라가나 케야키로서 활동 해 온 그녀.
겨우 동료가 생겼는데 자신의 스케줄 문제로 레슨에도 변변히 참가 하지 못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함께 오디션에 합격하여 함께 데뷔를 목표로 노력하고 있는 아이들의 그룹 안으로 들어 가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른 멤버들 역시 나가하마는 자신들과 다른 입장에 서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사카에서 올라 와 합숙에 참가했던 다카세 마나는 자신들과 나가하마의 관계를 '일반인들 사이에 연예인이 한 명 있는 것 같았다'고 표현한다.
카토 시호 역시 나가하마에 대하여 'TV에서 보던 사람'이라고 생각했었기에 사실상 자신과 같은 그룹의 멤버라는 실감이 들지 않았다.
이후로도 몇 번인가 함께 레슨을 받을 기회는 있었지만, 그 때마다 나가하마는 한자 케야키 멤버로서의 활동, 라이브나 TV촬영, 댄스 레슨 등 하드 스케줄로 인하여 항상 뒤늦게 연습에 참가하였고, 항상 '늦어서 죄송하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카게야마를 비롯한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은 맨얼굴인 자신들과는 달리 프로에게 메이크업을 받은 채 레슨을 받는 나가하마의 모습을 보며 '인기 아이돌 네루쨩과 함께 레슨을 받는다니 뭔가 신기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한다.
갑작스레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 리허설실
새로운 체제로 완성된 히라가나 케야키의 첫 피로연이 얼마 남지 않았던 어느 날, 한자 케야키와 히라가나 케야키는 합동 리허설을 갖게 되었다.
11명의 추가 멤버들에게 있어서는 이 날이 처음으로 선배 멤버들과 만날 기회였다.
나가하마 네루를 비롯한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이 리허설실에서 대기 하는 가운데, 한자 케야키 멤버들이 들어왔다.
12명의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과 20명의 한자 케야키 멤버들이 첫 대면하는 순간이었다.
'TV에서나 보던' 한자 케야키 멤버들이 눈 앞에 일렬로 늘어 서 있는 모습은 엄청난 박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선배들을 앞에 두고 히라가나 멤버들이 한 명씩 자기소개를 하였다.
이름을 이야기 하고, 특기나 좋아하는 음식을 이야기 하는 정도의 간단한 인사였지만, 긴장으로 목소리가 떨리거나 눈물을 흘리는 멤버도 있었다.
그러던 가운데, 한 멤버가 갑작스레 목을 놓아 울기 시작했다.
모두를 당황하게 만든 그 멤버의 이름은 사이토 쿄코.
사실 사이토는 남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타입이 아니다.
그런 그녀의 성격은 이미 다른 사람들도 익히 알고 있었기에 그런 그녀가 갑작스레 목을 놓아 울기 시작하였을 때엔 모두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이 때 그녀가 흘린 눈물에는 남모를 사정이 숨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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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화
카게야마 유카의 '두 번째' 오디션
2015년 11월. 히라가나 케야키의 유일한 멤버로 활동을 시작한 나가하마 네루. 초기에는 한자 케야키멤버와의 사이에 알력도 있었지만, 그녀의 성실하면서도 따뜻한 성격 덕분에 서서히 다른 멤버들과의 거리를 좁혀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않아 케야키자카46는 '사일런트 마조리티'로 화려하게 데뷔하였고, 비슷한 무렵 히라가나 케야키 추가 멤버 오디션 역시 막바지에 다다랐다.
이 오디션에서는 인터넷 방송 서비스 '쇼룸'을 이용, 최종 후보자들이 개인방송을 한다는 전대미문의 방식이 시도되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띈 것은 자신의 얼굴을 감춘 채, 딱 30분간 '라디오 방송'을 했던 후보였다. 당시 갓 중 3이 된 소녀, 카게야마 유카였다.
높은 능력 때문에 반감을 사다
2001년 도쿄에서 태어난 카게야마는 어릴 때부터 활발한 소녀로, 6살 때는 동네 축구팀에 들어갈 정도였다. 팀 내에서는 유일한 여자아이였지만, 남자 아이들에게도 뒤지지 않는 왕성한 체력을 자랑했다.
한 번은 상대방에 슬라이딩 태클에 넘어져, 손을 잘못 디디는 바람에 두 곳의 뼈가 동시에 부러지는 큰 부상을 당하기도 하였지만 그 때도 부모님께서는 '다음부터는 좀 조심하렴'이라 주의를 듣는 정도로 그쳤다. 결국 부상이 나은 뒤에는 자연스레 팀으로 돌아 가, 6학년때까지 축구를 계속했다.
그 뿐 아니었다. 유치원때부터 학원을 다니거나 영어 회화교실을 다니며 성적도 발군이었다. 학교 수업중에는 선생님의 질문이 있을 땐 항상 손을 들었고, 학급의 분위기를 선도하는 타입이었기에 자연스레 반장에도 선출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능력치가 높은 사람은 반감을 사기도 쉬운 법.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명문중학교 입시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반 아이들 중 일부가 '나댄다'고 험담을 하기 시작 한 것이다. 그 뒤로는 따돌림을 당하거나 심할 때는 누군가 필통을 훔쳐가기도 했다.
이렇게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그녀의 눈에 들어 온 것이 있었다.
다름아닌 AKB였다.
화려한 아이돌 세계에 마음을 빼앗긴 그녀는 자연스레 가족들 앞에서 AKB나 노기자카의 곡을 노래 하거나 춤 추어보이고는 했다.
힘들었던 중학교 입시가 끝나고 그녀는 일본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명문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중 1 끝무렵에 그녀에게 큰 전환기가 찾아왔다.
TV를 보고 있으려니 AKB48의 오디션 광고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 광고에 반응을 보였던 것은 의외로 그녀의 부친이었다.
"유카, 이 오디션 받아보지 그러니?"
이 때만 해도 그녀는 물론 그녀의 부모님조차 학업과 아이돌 활동의 양립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 그녀의 부친은 단순히 아이돌을 좋아하는 자신의 딸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았으면 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한 말이었던 것이다.
사실 카게야마 본인은 자신이 아이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았지만, 정작 아버지가 추천을 한 뒤로는 괜히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 한 켠에는 이런 마음도 숨겨져 있었다.
'보란듯이 아이돌이 되어서 지금까지 나를 괴롭힌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해 주고 싶어. 나한테 사인 해 달라고 조를 정도로 유명 해 지자.'
그런 마음을 가슴에 품은 채, 그녀는 인생 첫 오디션에 참가하게 된다.
해당 오디션의 명칭은 '제 2회 AKB48 그룹 드래프트 회의' 였다.
'3열 맨 구석자리'에 세워진 후보자
이 '드래프트 회의'란 AKB48그룹의 현역 멤버들이 후보자 중에서 자신의 팀원을 지명하는 유니크한 형식의 오디션이었다.
3차심사를 통과한 최종후보자들은 공식 홈페이지에 얼굴 사진과 프로필이 소개되었으며, 5박 6일에 걸친 혹독한 레슨 합숙 모습 역시 TV 카메라가 녹화, 방영되었다.
그리고 그 '최종 후보자' 둥에는 카게야마의 모습도 있었다.
2015년 5월 10일, 도쿄 아리아케 콜로세움에서 오디션 최종심사에 해당되는 '드래프트 회의'가 열렸다.
수천명의 팬들과 업계 관계자들이 지켜보고, 케이블TV가 생중계 하는 가운데 성대하게 열린 이벤트였다.
최종 후보자에 이름을 올린 것은 47명, 이 47명의 최종 후보자들은 합숙때 열심히 연습한 곡들을 스테이지 위에서 선보였다.
그 뒤, 그 모습을 본 현역 멤버들이 후보자 지명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카게야마의 이름은 마지막까지 불리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이 오디션에 임하면서 모친과 한 가지 약속을 했다.
'만약 오디션에 떨어진다면 평범한 생활로 돌아 간다'고.
아이돌이 되지 않더라도 학교로 돌아 가 평범한 중학생활을 보내면 되지 않느냐는 어머니의 바람이 담긴 약속이었다.
카게야마 역시 모친의 그 말을 순순히 받아들여, 드래프트 회의가 끝난 뒤에는 이전의 생활도 돌아 갔다.
하지만 사실 오디션을 거치면서 그녀 가슴 속에 새로운 꿈이 싹 터 있었다.
'사실 난 좀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나에게 맞는 오디션은 이 오디션이 아니라 따로 있을 지 몰라'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스테이지에서 부를 곡의 포지션이 발표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47명 중 3열 구석에 세워진 카게야마는 '벌써부터 이 자리면 데뷔 한다해도 아이돌로 활약하긴 힘들겠다'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덕분일까, 그녀는 지명을 받지 못했지만 그리 상처를 크게 받지는 않았었다.
실제로 당시 상황을 생중계한 영상을 보아도 다른 탈락자들이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 그녀만은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그녀가 드래프트에서 떨어 진 직후인 2015년 6월, 노기자카46의 후속 그룹이자 '사카미치 시리즈'의 제 2탄 그룹의 오디션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8월 21일에는 최종심사에 합격한 멤버들이 새 그룹 '케야키자카46'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카게야마는 이미 오디션 단계부터 이 새 그룹을 주목하고 있었다.
'노기자카는 아마 올 해는 반드시 홍백에 출전 할 거야. 사이토 아스카상을 비롯한 어린 멤버들도 버티고 있다는 점을 보면 분명 앞으로도 인기를 얻겠지. 그 여동생 그룹인 케야키자카도 노기자카의 기세를 타고 히트 칠 게 분명해'
사실 매사를 분석하곤 하는 것은 그녀의 버릇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의 성향이 잘 드러나는 것이 바로 '축구'.
그녀가 어떤 클럽을 응원 할 때는 단순히 팀의 전술 등에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 팀의 유스부터 대표에 이르기까지 클럽의 구조 전체를 분석해 보곤 하는 것이다.
10월이 되어 케야키자카46의 칸무리방송, '케야카케'가 시작된 뒤, 그녀는 완전히 케야키자카46의 팬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11월, 나가하마 네루의 가입과 동시에 히라가나 케야키의 추가멤버 오디션 개최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듣는 순간, 카게야마의 직감이 이렇게 외쳤다.
'어쩌면 이번이야 말로 그 순간일지도 몰라. 내가 다시 한 번 오디션을 받는다면 이 그룹밖에 없어' 라고
카게야마가 아이돌이 된다는 꿈을 아직 포기하지 못 하고 있다는 것은 그녀의 모친 역시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카게야마가 '한 번만 더 오디션을 받겠다'고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녀의 모친은 흔쾌히 딸의 부탁을 들어 주었다.
이렇게 카게야마 유카는 인생 두 번째 오디션에 임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3차심사까지 통과하였다.
일생을 관통하는 '페어 정신'
3차심사를 통과한 후보자들은 1주일간 쇼룸 방송을 하게 되었다.
요즘이야 노기자카, AKB그룹의 멤버들의 오디션에서도 같은 방식의 심사가 도입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일반인'인 후보자들에게 개인 방송을 시킨다는 것은 전대미문의 시도였다.
그 뿐 아니라 당시는 노기자카의 멤버나 케야키자카 멤버들조차도 아직 개인 쇼룸방송을 하기 전이었기에 더더욱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아 줄 지'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작 방송을 시작하고 보니 예상했던 것을 아득히 뛰어 넘는 수천명이나 되는 유저들이 그녀들의 방송을 보러 와 주었다. 처음에는 조심조심 단시간동안만 방송을 하던 후보자들도 2일째, 3일째가 되어 어느 정도 익숙해 진 뒤로는 방송 시간이 점점 길어졌고, 멤버에 따라서는 노래나 춤을 선보이면서 유저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 가운데 카게야마 유카는 소위 말하는 '라디오 방송' 형식으로 목소리만을 이용하여 방송을 하였다.
얼굴도 공개하지 않은 채 겨우 30분만을 방송하는 그녀의 방송에 대해 유저들 사이에선 '말을 재미있게 잘 한다', '아이돌부터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화제가 풍부하다'며 호평가가 줄을 이었다.
사실 얼굴을 공개한다면 할 수 있는 것들도 폭이 넓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보러 와 줄 것이다.
실제로 그녀처럼 처음에는 라디오 방송을 하다 서서히 얼굴을 공개한 후보자들도 있었다.
방송을 어떻게 진행 할 지는 개인의 자유, 카게야마는 그 자유를 이용하여 끝까지 '라디오 방송'을 관철 해 냈다.
그녀가 이렇게 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드래프트 회의 때 내 사진이나 영상이 많이 퍼졌으니 여기서 얼굴을 공개하면 그 당시 후보자였던 걸 금새 알 수 있을 거야. 물론 '얘 또 오디션 보네?'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건 별로 신경 안 쓰지만 내가 드래프트 후보생이었다는 게 화제가 되어 다른 후보들보다 주목을 받게 되면 나 혼자만 유리한 위치에서 출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잖아. 그런 건 절대로 싫어. 나는 내 힘만으로 승부 해 보고 싶어.'
이는 어릴 때부터 스포츠를 접해오며 그녀에게 뿌리박힌 '페어 정신'이었다.
그렇게 '라디오 방송'을 하기로 한 그녀는 이왕 하는 거, '진짜 라디오 방송'처럼 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다른 후보자들의 방송을 전부 보고 그 특징을 메모한 뒤, 다른 후보생들과 겹치지 않도록 화제를 고르고 자신만의 어필 포인트를 생각해 가미하였다.
이렇게 '라디오 방송'의 구성을 궁리한 결과, 매일매일 그 날에 대한 화제를 꺼내고, 정해진 시간이 되면 라이브로 노래를 두 곡 부른 뒤 유저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시간을 갖고, 마지막으로 히라가나 케야키에 대한 자신의 각오나 다음 방송에서 다룰 이야기에 대한 예고를 하는 방식으로 틀을 잡았다.
토크 능력 뿐 아니라 가창력 등도 주목을 받으며 그녀의 방송은 매 회 매 회 거듭 될수록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른 후보자들 역시 쇼룸 심사를 통해 자신만의 개성이나
매력을 전면에 내세우며 방송을 하였다. 그 결과 마지막 방송날에는 많은 멤버들이 '정말 즐거웠다', '계속 하고 싶다'며
눈물을 흘리는 예상도 못 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떻게 흘러 갈 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 했던 '쇼룸 개인방송'은 불과 1주일만에
각 후보자들의 매력을 이끌어내었고, 그 결과 그녀들은 오디션에 합격하기 전부터 '팬덤'이 형성 되게 되었던 것이다.
기대와 불안, 두 가지 감정을 느끼며
5월 8일, 도쿄 도내 모처에서 히라가나 케야키 추가 멤버 오디션 최종심사가 열렸다. 최종후보자들은 이 자리에서 처음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쇼룸 심사에서 포인트 랭킹 1위에 오른 사이토 쿄코는 개인방송을 통해 익혀 놓은 타 후보자들의 얼굴을 보면서 '모두 함께 쇼룸을 한 동료'라고 생각했다.
한편 당시 대학교에 갓 입학한 상태였던 우시오 사리나는 '그렇게 얼굴 팔려놓고 떨어지기라도 하면 학교 가서 친구 안 생긴다'며 부모님이 맹반대 하신 결과 쇼룸 방송을 하지 못 한 상태였다.
그녀는 그저 다른 후보자들의 방송을 보기만 했었기에, 자신 주변에 모여있는 다른 후보자들의 얼굴을 보며 '다들 연예인같아. 나는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라고 생각했다.
그 날 심사에서는 후보자들의 자기소개와 가창력심사가 진행 된 뒤, 심사위원들의 질의응답시간이 주어졌다. 그 날 심사위원들이 자주 물은 질문 중에는 쇼룸에 관한 질문도 많았다.
카게야마 유카는 마이크를 들고 무대 위에 올라서는 이렇게 자기소개를 했다.
"카게야마 유카, 중학교 3학년입니다. 오늘, 5월 8일은 제 15번째 생일입니다."
물론 최종심사일이 생일이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이었지만 그런 우연 역시 어쩌면 그녀가 히라가나 케야키의 오디션 광고를 보고 느꼈던 '이 오디션일지도 모른다'는 직감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마친 카게야마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팬이 된 모리타카 치사토의 '내가 아줌마가 되어도'를 불러 자신의 인생에 있어 두 번째 오디션에 당당히 합격하였다.
그리고 이 날의 심사를 통하여 '멤버가 단 한 명인 아이돌 그룹'의 유일한 멤버로 그룹을 짊어져 온 나가하마 네루와 함께 할 히라가나 케야키 추가멤버 11명이 결정되었다.
심사가 끝날 때까지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나가하마는 합격자 발표 직후 무대 위로 올라 와, 심사위원과 미디어, 그리고 새로운 멤버들의 앞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드디어 여러분과 함께 활동 할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지금은 기대로 두근거리는 마음이 큽니다만, 한편으로는 앞으로 어떻게 될 지에 대한 불안한 마음도 있어요.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끼고 있습니다만, 여러분과 함께 성장 해 나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케야키자카46이라는 그룹의 일부이지만 동시에 일반적으로 알려진 케야키자카46와는
다른,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이라는 미묘한 포지션이 주어
진 그녀들은 합격 직후로부터 다양한 벽들에 맞닫뜨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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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화
처음으로 '동료'가 된 날
케야키자카46의 오디션 최종심사 당일, 나가사키에서 도쿄로 상경 해 온 모친의 손에 이끌려 나가사키로 되돌아 가며 아이돌이 되는 것을 한 번은 단념했던 나가하마 네루.
하지만 노기자카46의 라이브를 본 그녀의 부모님은 생각을 바꾸어 딸의 꿈을 응원하기로 마음먹는다.
최종심사를 받지 않은 나가하마는 새롭게 결성되는 그룹, '히라가나 케야키'의 유일한 멤버로서 출발선에 서게 되었다.
하지만 케야키자카의 칸무리방송 '케야카케' 녹화 현장에서 처음으로 한자 케야키 멤버들을 대면하였을 때, 그녀는 한 멤버로부터 자신에 대한 확실한 '거부의사'를 목도하게 된다.
어릴 때 알게 된 '여자들, 무섭구나'
한자 케야키의 멤버 요네타니 나나미가 오디션을 받은 것은 고 1때의 일이었다. 오사카부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명문 진학교에 다니던 그녀는 학교 사정으로 심사에 늦기도 하고, 정식으로 가입하기 전부터 학업과 활동을 병행하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당연히 그녀의 부모님들 역시 아이돌이 되는 데 대해 맹반대를 하였지만, 그녀는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붙여가며 적극적으로 부모님을 설득하여 겨우겨우 케야키자카의 멤버로 합류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 앞에 갑작스레 '나가하마 네루'라는 새 멤버가 나타났던 것이다. VTR에선 부모님의 반대로 결국 오디션 최종심사를 포기하고 울기만 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특별하게 가입하게 된 것이었다.
'내가 과연 얘를 인정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든 요네타니는 거짓말을 못 하는 자신의 성격대로 두 번째 녹화가 시작되기 전에 나가하마에게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정말 미안한데, 난 너랑 친해지지 못 할 것 같다.'
나가하마는 당연히 이 선언에 큰 충격을 받았다. 곧이어 다음 녹화가 시작 되었지만, 녹화 내내 눈물을 참느라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나가하마가 이렇게 '뒤늦게 혼자 들어 와, 기존 멤버들에게 거절당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3살 때부터 나가사키현 고토열도에서 살며 '섬 주민은 모두 한 가족'이라는 환경 안에서 자라 왔던 그녀는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무렵 나가사키시의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었다. 그리고 전학 직후, 거대한 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주변 여학생들이 섬에서 자라온 붙임성 좋은 이 전학생을 '귀여운 척 한다'며 따돌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을 겪으며 나가하마는 초등학교 2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 인생관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여자들, 무섭구나. 조금이라도 눈에 띄면 바로 따돌림 당하는 거구나. 가급적 눈에 띄지 않게 다른 사람들에게 신경 쓰며 살아야겠다.'
이런 성격은 케야키자카의 멤버가 된 뒤로도 이어져, 나가하마는 다른 멤버들 안색을 살폈다.
아무리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멤버라 해도 반드시 '~상'을 붙여 불렀고, 화장을 할 때도 제일 나중에 했다. 어딜 들어 갈 때도 가장 먼저 가서 문을 열고, 다른 멤버들이 다 들어 갈 때 까지 문을 잡고 있었다.
'나는 나중에 들어 왔으니까 후배야'
라고 생각했던 나가하마는 그게 당연한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서로 끌어안았던 무대 구석
녹화일로부터 1개월 반이 지난 12월 후반, 케야키자카의 멤버들은 새로운 과제에 직면해 있었다.
2016년 1월에 개최 된 '신춘! 오모테나시회'라는 이벤트를 위하여 레슨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아직 오리지널 곡을 한 곡도 갖고 있지 않았던 케야키자카는 이 이벤트에서는 여러 '부'로 나뉘어 각자 준비한 것을 팬들에게 선보일 예정이었다.
이 때 '연극부'에 소속되었던 멤버는 총 7명. 그리고 그 안에는 나가하마와 요네타니의 모습도 있었다.
나가하마는 요네타니의 그 '선언' 뒤로 요네타니와는 이야기를 하지 못 했다. 물론 다른 멤버들에게도 쉽사리 접근하지 못 했다. '친한 척 군다'는 오해를 받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을 제외한 5명의 멤버들이 편의점에 가는 바람에 레슨장에는 나가하마와 요네타니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자연스레 레슨장 안에는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리고 그런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 해 보자 나가하마는 윗몸일으키기와 스쿼트를 시작했다.
'그럼 전 운동 할 테니까 저 신경 안 쓰셔도 돼요.'라는 의사표현이었다.
한편 요네타니는 말을 걸어야 할 타이밍을 놓쳐 초조해 하고 있었다.
사실 그녀가 당시에 썼던 블로그를 보면
'(나가하마가 가입한다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땐 혼란스럽고 불안했어요. 지금도 조금은 석연치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이젠 같은 케야키의 멤버니까요! 조금씩 조금씩 threh는 느릴 지 모르지만, 사이 좋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아직 완벽하게 모든 것을 떨쳐 낸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같은 그룹의 멤버로서 서로간의 거리를 가까이 하고 싶다는 솔직한 마음을 적은 블로그였다.
그 뿐 아니라 요네타니는 매니저에게도 나가하마와의 관계에 대해 상담을 하혼 했다. '어떻게 하면 그 때 자신이 내뱉어 버린 차가운 말을 사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그녀의 마음 한 구석에 앙금처럼 남아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의 관계가 극적으로 변화 한 것은 '오모테나시회' 당일의 일이었다.
나가하마의 가입이 발표되기 전 이미 '오모테나시회'를 경험한 바 있었던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이번 이벤트가 첫 이벤트였던 나가하마. 대기실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때부터 이미 불안함에 눈물이 흘렀다. 무대 구석에서 스테이지를 보고 있으려니 다리의 힘이 탁 풀리는 것만 같았다.
불안을 가슴에 안은 채 나가하마가 무대로 올라가려는 찰나, 누군가 나가하마의 등을 토닥여주며 말을 건넸다.
"힘 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요네타니가 서 있었다.
차마 상상조차 하지 못 했던 요네타니의 격려에 격앙된 나가하마는 결국 울음을 참지 못 하고 그 자리에서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요네타니 역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끌어안았다.
스테이지에 나가기 직전, 겨우 10여초에 불과한 일이었지만 이 일이야 말로 지금까지의 두 사람의 관계성을 완전히 역전시켜 서로를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동료'로 인식하게 된 계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서로 거리를 좁힌 나가하마와 요네타니는 이후 함께 공부를 할 정도로 절친해졌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 요네타니가 나가하마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미안해."
예전에 '너랑은 친해지지 못 할 것 같다'고 한 데 대한 사과였다.
더 이상 그 일을 신경쓰지 않았던 나가하마는 오히려 어리둥절해 하며 벙 쪄 있었다.
요네타니는 이렇듯 답답할 정도로 우직한 면이 있는 것이다.
물론 요네타니처럼 직접적으로 이야기는 하지 않더라도 나가하마의 뒤늦은 가입을 탐탁치 않게 보며 인정해 주지 않았던 멤버들은 많았다.
하지만 나가하마의 일견 도가 지나친 듯 보이는 '겸손' 안에 숨겨진 특유의 붙임성 덕분에 그런 멤버들도 서서히 나가하마를 케야키자카46의 멤버로 받아들여주기 시작했던 것이다.
2월, 케야키자카의 데뷔곡 '사일런트 마조리티'의 MV 촬영이 시작되었다. 히라가나 케야키의 멤버인 나가하마 네루는 이 곡에 참가하지 못했지만 자주적으로 레슨에는 전부 참가하였고, MV촬영에도 참가하여 다른 멤버들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살이 에이도록 추운 한밤의 시부야역에서 익힌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안무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하는 멤버들.
태어 나 처음으로 경험 해 보는 MV촬영은 누구에게나 가혹한 것이었다.
하지만 추워하는 다른 멤버들을 위하여 촬영이 중지 될 때 마다 멤버들에게 따뜻한 스프를 퍼 주고, 손난로를 흔들어 가져다 주는 멤버가 있었다. 다름아닌 나가하마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따뜻함'에 이끌리기라도 한 듯 다른 멤버들도 하나 둘 그녀 주변으로 몰려 들었다.
'케야키자카46'에 나는 없어
3월이 되어 '사이마조'의 MV가 공개되었다. 그리고 그 직후 소위 '사이마조현상'이라 불릴 정도로 큰 반향을 얻게 되었다.
'너에겐 너답게 살아 갈 자유가 있어 어른들에게 지배당하지 마'
라는 메시지가 담긴 가사가 공감을 얻어, '사이마조'는 청소년 대상 잡지가 실시한 '좋아하는 곡' 앙케이트에서 1위로 뽑히기도 했다.
그 뿐 아니라 여름에 실시된 음악 특방의 아케이트에서도 AKB48, 노기자카46의 대표곡들을 누르고 1위에 뽑히는 등 데뷔곡만으로 아이돌 업계를 완전히 뒤집어 엎어버릴 듯한 기세를 뽐냈던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 '히라가나 케야키'의 유일한 멤버, 나가하마 네루의 모습은 없었다. MV촬영때와 동일하게 자켓 사진 촬영때도 함께 하긴 하였지만, 나가하마 혼자만은 카메라맨과 같은 곳에 서서 멤버들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때 본 자신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의 사진이 시부야의 패션 빌딩 벽면을 수 놓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신기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세상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는 케야키자카46라는 그룹에 내 자리는 없구나.'
2016년 4월 6일에 릴리스 된 데뷔 싱글 '사일런트 마조리티'에 수록 된 총 6곡 중에 그녀가 참가한 곡은 단 한곡. '놓친 버스'라는 곡이다.
이 곡은 '히라가나 케야키의 나가하마 네루가 센터에 선 곡'으로 만들어 진 곡이며, 그룹에 '늦게 올라 탄' 그녀의 심경을 가사로 표현한 곡이다.
'미안해 나 혼자 늦어버린 것 같아. 내가 가 보니 아무도 없었어.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랐어. 꿈으로 향하는 편도 티켓을 손에 쥔 채 언덕길 가운데서 어쩔 줄 몰라했지.'
나가하마는 이 가사를 처음 보았을 때 '신이 쓴 가사인가'라고 생각 했다고 한다.
특히 '언덕길 가운데서 어쩔 줄 몰라했다'는 부분은 오디션 최종심사날, 모친의 손에 이끌려 언덕길(나가사키는 언덕이 많음)을 오르던 자신의 모습을 하늘 위에서 신께서 보고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금세 그런 그녀에게도 '동료'가 생겼다.
전대미문의 오디션
전년 11월, 나가하마 네루의 가입발표와 함께 발표되었던 '히라가나 케야키 추가 멤버 오디션'은 케야키자카46가 '사이마조'로 데뷔하였을 때 즈음 마무리가 되었다.
4월 하순 시점에서 3차 심사를 통과한 후보자는 총 18명. 그리고 이 18명의 후보자들은 지금껏 누구도 경험 해 보지 못 한 독특한 시도를 하게 된다.
인터넷 동영상 방송 서비스 '쇼룸'을 통하여 개인 방송을 하는 것이었다.
'가상 라이브공간'을 표방한 '쇼룸'은 개개인이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을 이용하여 실시간으로 영상을 방송하는 서비스이다.
이후 한자 케야키 멤버들도 때때로 개인 방송을 하는 경우가 늘어나기도 하지만, 당시만 해도 케야키자카라는 그룹이 '쇼룸'을 이용 한 것은 이 오디션이 처음이었다.
노기자카나 AKB그룹을 포함해도 '쇼룸'을 '오디션'에 활용한 것은 이 케이스가 처음이었다.
주어진 기간은 딱 1주일. 오디션을 위해 마련된 특설 사이트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적혀 있었다.
'이벤트 기간중에 방송을 한 내용, 획득한 포인트, 순위 등을 오디션 심사 과정에 참고하겠습니다. 다만 이 내용들이 직접적으로 합격 여부에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쇼룸은 방송 중에 팬들이 보내 준 코멘트의 숫자나 소위 '선물'이라 불리는 아이템을 받은 개수 등을 포인트로 합산하는 시스템이다. 비록 '직접적으로 합격 여부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순위가 매겨지는 이상 아예 관계가 없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고, 심사하는 측도 남들 몰래 방송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모든 것이 처음인 후보자들이 이 '쇼룸'을 엄연한 심사 과정의 하나라 생각 하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었다. 심지어 심사위원들 이외에도 수천명의 유저들이 자신들을 평가하는 것이었다.
사이토 쿄코의 경우 '1등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1주일 내내 자신이 방송을 하지 않을 때는 다른 후보자들의 방송을 보는 생활을 보냈다. 그리고 그 결과, 목표로 했던 1위를 획득 해 냈다. 사이토는 이 때의 일을 '거의 '일'이라 생각하며 했다'고 술회했다.
한편 이구치 마오는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얼굴을 클로즈업 하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등 '아이돌 지망생'의 방송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자유분방한 방송을 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구치의 방송에선 유저들이 자신의 아이콘을 바꾸면 받을 수 있는 아바타, '달마(일본 장난감/장식품)'를 활용, 시청자들이 합심하여 달마 아바타를 착용하기도 하는 등 데뷔하기도 전부터 굳건한 팬 커뮤니티를 형성하기도 했다.
그러는 와중에 얼굴을 공개하지 않은 채, 목소리만으로 방송을 진행하는 특이한 후보자도 있었다.
당시 갓 중 3이
된 소녀, 카게야마 유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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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기자카46가 부모님에게 안긴 충격
집으로 돌아 갔을 때엔 이미 눈물도 더 나오지 않았다.
무표정하게 멍하니 TV를 보던 나가하마의 눈에 원래대로라면 자신이 받았어야 할 오디션의 결과를 알리는 뉴스가 비춰졌다.
활짝 웃으며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드는 합격자들의 모습.
그룹 이름은 당초 예정 되어 있었던 '토리이자카46'에서 '케야키자카46'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버지에게도 한 마디 상담 없이 독단적으로 네루를 데리고 돌아 온 어머니에게 네루의 언니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마지막까지 기회를 줬어야 하는 거 아냐? 위험해 보인다고 지레짐작해서 싹을 뽑아버리기 보다는 일단 하고 싶은대로 하게 해 보고 힘들어 할 때 도와주는 게 좋지 않았을까?"
네루의 모친 역시 아무 표정 없이 오디션 뉴스를 바라보는 네루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파왔다.
'어쩌면 내가 되돌릴 수 없는 잘못을 저질러 버린 것일지도 몰라.'
라는 생각이 들어 어머니의 마음도 혼란스러웠다.
가족들의 혼란해 하는 모습을 본 네루의 부친은 그 날 밤, 자신의 딸이 최종 심사를 받지 못 했던 바로 그 그룹, '케야키자카46'의 운영 스태프에게 전화를 했다.
"저희 아내가 딸을 데리고 돌아 와 버리기는 했습니다만, 저희가 이렇게 딸아이의 꿈을 막아버리는 것이 과연 잘 하는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애비로서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나 하는 생각에 이렇게 뻔뻔하게 연락을 드립니다."
솔직하게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하는 네루 부친의 말에는 듣는 이의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사실 이 때, 네루의 가족과 운영측 사이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신기한 인연이 양 측을 다시 이어주게 되었다.
최종심사 바로 다음날, 그리고 다다음날 이틀에 걸쳐 후쿠오카에서 노기자카46의 전국 투어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가하마 본인도 꽤나 전부터 티켓을 구입, 오매불망 기다려 온 콘서트였다.
운영 스태프의 결론은 바로 그 노기자카의 라이브에 나가하마의 부친, 모친을 초대하는 것이었다.
"일단 저희의 라이브를 한 번 봐 주세요. 라이브를 보시면 저희가 어떤 세계관을 만들고 있는 지 아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8월 23일 밤.
나가하마일가는 후쿠오카 국제센터에서 열린 노기자카46의 라이브 회장에 있었다.
그리고 나가하마 네루의 앞으로의 인생을 크게 바꾸어 버릴 무대를 목격하게 된다.
이 해 전국투어는 각 공연마다 특정 멤버에 대한 특별 VTR을 회장에 트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나가하마의 가족이 참가한 후쿠오카 공연에서는 아키모토 마나츠라고 하는 멤버와 그 아버지에 대한 VTR이 상영되었다.
아키모토 : "(노기자카에 합격했을 때) 엄마에게 전화를 했어요. 당연히 기뻐 해 줄 거라 생각했지만, 엄마의 반응은 '에…' 였지요."
아키모토는 중학교 입시를 통하여 중고 일관교인 진학교에 입학한 멤버로, 고등학생 때는 학생회장을 역임했을 정도로 우등생이었다. 그런 딸이 고 3때 갑자기 노기자카의 오디션을 받겠다고 나섰을 때, 아키모토의 부친은 맹반대를 했다. 그리고 부모의 반대로 인하여 아키모토는 오디션 합격 직후부터 활동을 쉬어야만 했다.
아키모토의 부친은 그 당시 본인이 느꼈던 갈등, 그리고 대학에 합격 한 뒤 노기자카에 복귀하여 지금 이렇게 TV안에서 자신만의 길을 열어가는 딸을 보며 느끼게 된 것에 대해 진심을 담아 적은 편지가 VTR과 함께 흘러 나왔다.
'지금껏 이야기 하지 못 했지만, 사실 지금은 활동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언제나 마나츠의 편입니다.'
라는 말로 끝맺어진 아키모토 부친의 편지를 보며 나가하마의 부친은 '내 마음과 통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다.
'아, 어느 부모건간에 다 이렇게 걱정하면서 딸을 연예계에 내보내는구나.'
나가하마의 모친 역시 콘서트를 보며 마음이 서서히 변해갔다.
지금껏 편견을 갖고 바라보았던 '아이돌'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화려한 것인지, 그리고 최선을 다 해 노력하는 멤버들의 모습이 얼마나 멋진지를 알게 된 것이다.
'이렇게 제대로 된 그룹이었구나. 우리 딸도 자신이 최선을 다 할 곳을 찾은 거구나. 그렇다면 부모로서 그 결정을 믿고 지지 해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위험하다고 과보호하기 보다는 우선 본인이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 지 이해 해 주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콘서트가 끝난 뒤, 나가하마의 양친은 운영 스테프에게 머리를 숙이며 부탁을 했다.
"이미 늦은 이야기입니다만, 부디 오디션 사퇴를 없던 일로 해 주실 수 없을까요."
하지만 최종심사를 받지도 않은 멤버를 그대로 그룹에 받아들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바로 이 순간, 나가하마 네루의 특이한 아이돌 인생이 시작 된 것이다.
나가하마 네루의 '동료'를 찾아주자
케야키자카 운영회에서는 곧바로 나가하마의 처우를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다시 한 번 최종심사 때와 같은 상황에서 오디션을 보게 하죠."
"나가하마를 그룹에 받아들일 지 말 지 팬들에게 판단 하도록 하자."
등등의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결정적이었던 것은 케야키자카의 종합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의 한 마디였다.
"부모님의 마음을 생각하면 나가하마 네루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 싶기는 한데, 이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멤버들에게 미안한 일이지. 그러니까 케야키자카46라는 그룹 내에 히라가나 표기인 별도 팀을 만드는 건 어떨까? 나가하마 네루는 그 팀의 첫 멤버로 받아들여, 그녀와 함께 활동을 할 '동료'를 뽑는 오디션을 따로 개최 하자고."
사실 케야키자카46은 당초 히라가나 표기인 케야키자카46이라는 이름으로 발표 할 예정이었다.
선배 그룹인 '노기자카46'가 그룹 이름을 지명에서 따 왔듯이 케야키자카 역시 도쿄 도내에 실존하는 '케야키자카(히라가나 표기)'에서 따 올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룹 이름을 성명학적으로 풀이 하러 갔을 때, 스태프가 실수로 점쟁이에게 한자로 표기한 '케야키자카'를 제시하였고, 점쟁이가 그 한자 표기 '케야키자카'가 엄청나게 좋은 운을 가진 이름이라 한 것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룹 이름이 한자 표기가 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 해,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명은 결국 '환상 속의 존재'로 남아버린 첫 기획을 재활용 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자 케야키와 다른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을 만듦으로 하여 나가하마에 대한 반감을 조금이나마 경감시키려는 의도였다.
아무리 운영측이 그녀에 대해 '합격 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했다 한들, 결국 그녀가 최종심사를 받지 않은 것은 사실. 그 점에 대해 그녀를 공격하는 팬들이 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를 '케야키자카의 후배'격인 포지션에 두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케야키자카의 일부분인 동시에 한자 케야키와는 다른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은 대체 어떻게 받아들이면 되는 것일까? 한자 케야키의 언더격인 존재? 하지만 지금껏 보지 못 한 완전히 새로운 형식의 무언가?
사실 이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의 위치에 대해서는 2018년 현재도 명확히 정리 되지 않았다. 운영 스태프들을 비롯하여 그 누구도 이 답을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히라가나 케야키라는 그룹의 역사는 다름 아닌 '소속 멤버들이 자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으며 걸어 온 여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말 잘 하고 낯가림 없는 아이'
오디션이 끝나고 약 한달여가 지난 9월 하순. 케야키자카의 매니저가 나가하마 네루를 만나기 위하여 나가사키로 향했다. 매니저의 곁에는 케야키자카의 칸무리방송인 '케야카케'의 디렉터의 모습이 보였다.
나가사키에서 나가하마와 만난 두 사람은 나가하마와 함께 그녀가 사는 마을을 걸으며 이 곳에서 어떤 생활을 해 왔는지, 그리고 최종심사날 당일에는 어떤 기분이었는 지 등을 물었다.
그리고 그 때 매니저가 느낀 감정은 '얘 잘 떠드네. 낯가림도 없고.' 였다고.
나가사키시내에서 태어난 나가하마는 3살 때부터 7살이 될 때까지 5년동안 고토열도의 한 섬에서 살았다.
그녀는 복잡한 해안선, 높낮이가 변화무쌍한 섬의 자연에서 자라난 그녀는 낚시를 해서 낚은 생선들을 뼈까지 먹고는, 나무를 타며 매일 매일을 보냈다.
맞벌이로 바쁜 부모님 대신 낮에는 이웃집 아주머니가 뒤치닥거리를 해 주는 등, 시골 특유의 '섬 사람은 모두 한 가족'이라는 분위기에서 자연스레 몸에 익혀 온 붙임성이야 말로 그녀의 성격을 이루는 근간이었다.
그녀의 운명을 바꾼 노기자카의 콘서트로부터 케야키자카에 합류하기까지 약 2개월동안은 그녀 특유의 붙임성 있는 성격을 숨기지 않고 지내 온 기간이기도 했다.
그녀가 도쿄로 상경 해 온 것은 10월. 그리고 거의 동시기에 케야키자카의 지방 출신 멤버들 역시 도쿄로 상경했다. 하지만 운영측은 일부러 나가하마의 존재를 다른 멤버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혹여 사무소에서 서로 마주치기라도 할 까 세심하게 신경을 썼고, 레슨 역시 나가하마 혼자 받도록 배려 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나가하마 본인은 새롭게 시작 될 도쿄에서의 새로운 생활에 기대를 감추지 못 하고 있었다.
오디션에 응모 했을 때만 해도 자신이 어째서 아이돌이 되고 싶은 지 잘 알지 못 했지만, 나중에 생각 해 보니 사실 탈출구가 '아이돌'이었건 아니건 상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남이 깔아 둔 레일 위를 걷기만 하는 인생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히라가나 케야키'로서 인생의 새로운 분기점을 맞이한 그녀는 혹독한 첫 '세례'를 받게 된다.
비명과 오열이 소용돌이치는 스튜디오
11월 어느 날.
'케야카케' 녹화가 이뤄지는 한 스튜디오에 나가하마가 나타났다.
그녀는 깜짝 등장을 위하여 다른 멤버들이 녹화 하고 있는 세트장 뒷편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만간 인생 처음으로 TV카메라 앞에 홀로 서게 된다고 생각하니 겁이 나고, 눈물이 났다.
스튜디오에 갑작스레 '긴급 발표! 케야키자카46 신멤버 가입'이라는 나레이션이 흘러나온 순간, 멤버들 사이에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9월에 나가사키에서 취재했던 내용이 담긴 VTR 소리를 들으며 나가하마는 오랜만에 고향 생각이 났다.
나가하마는 눈물을 닦고 세트 중심으로 걸어 가, 자기소개를 했다. 그녀의 '히라가나 케야키' 가입 소식과 함께 '히라가나 케야키 추가멤버 오디션 개최' 소식이 흘러나왔다.
사실 나가하마가 처음 등장한 '케야카케'에서는 케야키자카46 결성 후 첫 이벤트에서의 인기랭킹을 소개하고 있었다.
'CD데뷔를 위하여 모두 함께 힘을 합쳐'야 하는 시점에서 처음으로 '그룹 내 서열'이라는 것이 매겨진 데 대하여 멤버들이 충격을 받은 직후였던 것이다.
멤버들의 충격이 다 가시기도 전에 '추가 멤버 가입' 발표가 있고, '(나가하마는) 노기자카로 말하자면 언더 멤버'이며 '(이후 추가 오디션을 통해 히라가나 케야키 멤버들이 들어 오면) 한자 케야키와 히라가나 케야키간에 멤버가 바뀔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발표가 이어 져, 눈물을 터뜨리는 멤버들도 있었다.
노기자카46의 언더 멤버란 싱글 타이틀 곡을 부르는 '선발' 멤버에 발탁되지 못 한 멤버들을 뜻한다.
노기자카는 매 싱글이 나올 때 마다 해당 멤버의 인기, 해당 멤버에 대한 기대치에 따라 선발과 언더를 나누는 형식이다.
다시 말 해, 모든 멤버들이 '언더'인 나가하마가 들어옴으로 하여 케야키자카에서도 결국 그룹 내 경쟁이 격화 될 것이라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런 어수선한 상황에서 첫 번째 촬영을 끝내고 두 번째 촬영이 시작되려는 찰나, '사건'이 터졌다.
나가하마의 옆에 앉아있던 멤버가 나가하마에게 '선언'을 했던 것이다.
"정말 미안한데, 난 너랑 친해지지 못 할 것 같다."
그룹에 들어 온 순간, 같은 그룹 멤버에게 엄청난 반감을 사게 된 것이었다.
멤버가 단 한명뿐인 아이돌 그룹 '히라가나 케야키'는 이렇게 파란만장한 가운데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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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화
멤버가 한 명 뿐인 아이돌그룹
2015년 8월 21일. 도쿄 도내의 한 회장에서는 후일 '케야키자카46'이라는 이름으로 데뷔 하게 될 멤버들의 최종 오디션이 열리고 있었다.
심사를 앞두고 사진촬영을 하기 위하여 무대 위에 줄지어 선 후보자들. 하지만 '후보자 번호 17번'의 자리에는 어째서인가 아무도 서 있지 않았다.
사실 이 자리에 서 있어야 할 소녀는 최종심사 당일, 나가사키에서 상경 해 오신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나가사키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 있었다.
이 소녀의 이름은 나가하마 네루.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 줄여서 '히라가나 케야키'라 불리는 아이돌 그룹이 걸어 온 기구하면서도 농밀한 스토리는 다름아닌 그녀의 개인적인 사정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충동적으로 참가 한 오디션
1998년 나가사키 시내에서 태어 난 나가하마 네루.
'네루'라는 독특한 이름은 '심사숙고하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이름이다. 그런 이름 덕분일까, 어릴 대부터 총명하고 책을 좋아했던 그녀는 고등학교 역시 현내에서 1, 2위를 다투는 명문 진학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공부 자체는 싫어하지 않았기에 고등학교에 들어 간 이후로는 시험을 앞 둔 때엔 하루에 16시간씩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곤 했다. 하지만 마음 안은 언제나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고.
이 당시에 겪었던 일 중 그녀의 뇌리에 깊게 남아 있는 풍경이 있다.
그녀가 고 1이던 어느 겨울날, 학교가 끝나고 평소와는 다른 길로 집에 돌아가기 위하여 자주 타지 않는 전철을 탔을 때 보았던 풍경이다. 해안가를 따라 깔린 선로를 달리는 전철에서 보이는 나가사키의 바다가 저녁놀에 물들어 오렌지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과,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에서 때 마침 흘러나온 노기자카46의 앨범, '투명한 색'을 듣는 순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런 자신의 모습에 자기 자신도 크게 놀랐지만, 흘러 내리기 시작한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고 한다.
당시 그녀는 진학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세상 물정을 모를 어릴 때부터 해외 여행을 여러 번 경험했고, 나가사키의 국제 교류단체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기도 했던 나가하마는 막연하게 장래 희망으로 공항의 그라운드 스태프 (지상근무직원)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고등학교를 졸업 한 뒤에는 해당 분야의 전문학교에 진학 할 생각이었지만 학교측에서는 당연하게도 그런 그녀의 생각에 반대, 4년제 대학에 진학하라고 그녀를 설득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대해 그녀는 '결국 난 누군가가 깔아 놓은 레일 위에서 벗어나지 못 한 채, 학교가 원하는 대로 진학하겠지'라는 불만을 갖고 있었다.
그 결과, 자기 자신의 미래조차도 어떻게 흘러 갈 지 상상이 되지 않고 흐릿하게만 느껴졌다. 그 뿐 아니라 인간관계를 극도로 신경 쓰는 그녀 자신의 성격 탓에 교실 안에서도 어찌 해 볼 수 없는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에 응어리져 있던 것들이 눈물이 되어 흘러 나온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때는 노기자카의 뒤를 이을 새로운 프로젝트의 멤버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나왔던 때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부활동으로 PC부에 소속되어, PC로 AKB의 영상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곤 했던 그녀는 'AKB의 공식 라이벌'로 결성 된 노기자카를 초창기부터 응원 해 왔다. 당시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졌던 노기자카를 '나만의 아이돌'이라 부를 정도였다고.
물론 그녀의 마음은 어디까지나 팬으로서의 마음일 뿐, 딱히 자신이 멤버가 되고 싶다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기에 노기자카의 2기생 오디션이 열렸을 때에도 응모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이어폰에서 흘러 나오는 노기자카의 곡들을 들으며 좋아하고 행복해 했을 뿐.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고, 매일매일 갈등에 시달리면서 결국 그녀는 충동적으로 이 '프로젝트'에 응모하게 된다.
물론 응모 당시만 해도 자신이 아이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기에, 응모서류의 '지원동기'란에는 아무 것도 쓰지 않은 채 제출 했던 것이다.
'S' 평가를 받은 소녀
현재 한자 케야키와 히라가나 케야키를 운영하는 스태프들은 그녀의 응모서류를 지금까지도 잘 기억하고 있다.
우선 무엇보다 '네루'라는 독특한 이름이 눈길을 끌었고, 그녀가 다니고 있는 학교가 매우 유명한 명문 진학고라는 점도 특이했다. 그리고 응모서류에 붙어 있는 그녀의 사진 속 큰 눈동자에서는 '아이돌성'이 느껴졌다. 수 없이 보내져 온 수 많은 응모서류 중에서도 그녀의 서류는 특별하게 빛을 발하는 것 처럼 보였다.
서류심사를 통과한 나가하마는 후쿠오카에서 열린 2차 심사에 진출하였다.
그리고 심사위원들 앞에서 자신의 특기인 '원숭이 팔 (팔 관절을 역으로 꺾는 것)'을 선보인 뒤, 노기자카의 멤버인 이토 마리카의 '마릿카 '17'을 불렀다.
''우등생'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보니 밝고, 말도 잘 하는데다가 서류 사진보다도 훨씬 귀여운 아이' 이 시점에서 그녀의 오디션 서류에는 'S' 평가가 내려졌다. S는 말할 것도 없이 Special의 머릿글자. '합격' 수준을 나타내는 A보다도 더 뛰어난 경우에만 주어지는 특별한 평가였다. 이 오디션에 참가한 2만명 이상의 소녀들 중에서 S평가를 받은 것은 불과 수 명에 지나지 않았다.
2차심사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그녀의 귀에 들어 간 것은 그녀가 런던에 살고 있는 숙모의 집에 홈스테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사실 본인이 알기 전에 나가사키의 양친들에게는 연락이 갔었지만, 그녀의 부모님들은 그녀에게 그 소식을 전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가 오디션을 받았다는 것은 가족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기념삼아 응모' 한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오디션에 합격 한 뒤에도 평소와 다름 없이 학교에 다닐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 때 이미 '사건'의 씨는 뿌려졌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 때만해도 나가하마 본인은 '어차피 최종심사에선 떨어질거야'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도쿄에서 열린 3차 심사는 어디까지나 도쿄 구경을 간다는 느낌으로 참가했던 것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3차심사 역시 아무 문제 없이 통과, 오기 전에 예약 해 두었던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급하게 취소하고 운영측이 잡아 둔 호텔에 묵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가족들이 이 일에 대해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 한 것 역시 이 때가 처음이었다.
영상통화를 받은 모친의 표정에서는 숨길 수 없는 당혹감이 느껴졌다.
다음날 개최 될 예정이던 최종 오디션에 참가하는 후보자의 수는 나가하마를 포함하여 46명.
나가하마의 모친은 '어쩌고46이니까 저 46명이 전부 합격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불안해졌다.
물론 전원이 다 합격하는 것은 아니지만, 만에 하나 자신의 딸이 합격이라도 해 버린다면 이름과 얼굴이 대중에게 팔리게 된다. 기껏 열심히 공부해서 들어 간 명문 고등학교를 그만두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양친과 언니가 모여 오랜 기간 이야기를 나누어 본 결과는 '네루의 결정을 응원 해 주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가하마의 모친은 다음 날 아침, 딸을 도와 최종심사에 함께 참여하기 위하여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자신을 데리고 가기 위해 온 어머니에게 내뱉은 한 마디
오디션 당일 아침, 오디션 담당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호텔에 있던 스태프가 건 긴급 전화였다.
'나가하마 네루상이 최종심사를 사퇴, 어머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고 하는데요.'
갑작스런 소식에 깜짝 놀란 담당자는 급히 네루의 모친에게 연락을 취해, 겨우겨우 이야기 나눌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양측의 대화는 냉랭한 분위기에 금세 끝나 버렸다. 네루의 모친은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고, 본인은 한 마디 말도 없이 그저 울고만 있었다.
이 이상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어 진 담당자는 마지막으로 두 사람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주제넘은 이야기일 지도 모르겠지만, 이번 일은 기본적으로 부모와 자식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문제라 생각합니다. 네루쨩, 아이돌이 되고 싶다면 자기 마음을 어머님께 확실히 말씀 드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 어머님, 따님의 이야기를 잘 들어 보시고 다시 한 번 생각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결국, '후보자번호 17번'의 자리는 공석인 채, 최종심사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어째서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가족회의를 통해 '응원하자'고 이야기 했던 모친이 갑자기 네루를 데리고 돌아 가겠다고 이야기 하게 된 것일까?
사실 네루의 양친은 두 분 모두 나가사키의 학교에서 근무하는 선생님들이다.
견실하게 세 명의 아이들을 길러 온 양친이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엄격하게 군 적도 없었다.
나가하마 본인도 부모님으로부터 '공부 해'라던지 '그거 하지 마' 라는 식으로 주의를 받은 기억이 없다.
오디션을 받는다고 했을 때 역시 걱정하며 '응원 해 주겠다'고 해 주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쩌고46'이라는 그룹에 대해 잘 알지 못 하는 모친에게 있어 연예계라는 세계는 자신들이 알지 못 하는 미지의 세계였다.
나가사키를 떠나 하네다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홀로 가만히 생각을 하면 할수록 마음 속에는 불안만이 커져갔다.
그리고 도쿄에 내릴 때 즈음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네루를 데리고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이 확고해졌다.
어머니가 '자신을 응원하러 와 준다'고 생각하고 있던 나가하마는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돌아가자'고 말을 꺼내는 어머니의 모습에 아연실색했다.
아무리 '여기까지 온 거, 끝까지 하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해 보았지만, 지금껏 부모님에게 제대로 된 반항이라 할 것도 해 보지 않은 그녀는 결국 이번에도 부모님의 말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전, 고등학교에서 진로 문제로 고민 했던 때 처럼 다시 한 번 '다른 사람이 정한 레일 위를 걸어 갈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느낀 그녀의 마음 속에는 슬픔만이 가득했다.
지금까지 그토록 다정했던 어머니가 우격다짐으로 자신의 미래를, 가능성을 빼앗으려 든다는 점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네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던 그녀는 어머니에게 단 한 마디를 남겼다.
독기가 가득 서린 한 마디였다.
"엄마, 이제
만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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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NMB48의 일익을 담당하며 인기를 지탱 해 온 인기 멤버 중 한 명인 야구라 후코가 4월 10일에 있을 극장공연을 마지막으로 그룹을 졸업하게 되었다. 지난 4월 4일에는 졸업 콘서트가 열리기도. 본지는 그런 야구라와, 그룹의 중심멤버이자 AKB48의 선발로도 이름을 올리고 있는 시로마 미루를 더 해 인터뷰를 할 기회를 얻었다.
팬들에게 ‘후우미루’콤비로 잘 알려진 두 사람. 그리고 본지의 이번 인터뷰야 말로 그런 ‘후우미루’가 콤비로서 갖는 마지막 인터뷰이다. 10번째 싱글 ‘라시쿠나이’에서 타이틀곡 더블 센터로 기용 된 이후, ‘라이벌’로 엮여 온 두 사람의 관계성과 졸업 콘서트를 끝낸 뒤의 솔직한 기분, 나아가 현재 NMB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 등, 다양한 것들을 들어 보았다.
- 이번에 이렇게 시로마상과 야구라상, 소위 말하는 ‘후우미루’ 콤비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야구라상은 4월 10일에 있을 졸업공연을 끝으로 그룹을 졸업하시는데요. 그렇게 보자면 이 인터뷰가 사실상 콤비로서는 마지막 취재가 되시겠네요.
야구라 (이하 ’야’) : 네. 그렇게 되겠네요.
- 지난 4일에 졸업 콘서트가 열렸습니다만, 졸업 콘서트가 끝나고 마지막 극장 공연을 앞두고 계신 지금, 어떤 기분이신가요?
야 : 졸업 콘서트는 ‘전부 다 보여 줄 거야!’라는 기분으로 임했고, 실제로 제가 가진 전부를 보여 드린 뒤에 ‘와, 정말 다 내 보였어!’라는 달성감을 느꼈어요. 하지만 정작 졸콘 바로 다음날에도 극장 공연이 있었기에 감정을 0부터 다시 만들어야 했지요. 한 분이라도 많은 분들께서 저를 보아 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다음날 무대에 올랐습니다.
시로마 (이하 ‘시’) : 대단하죠. 졸콘때 그렇게 완전 연소 해 버렸는데도 말이에요. (웃음) 분명 졸콘 다음날, 레슨장에서 함께 레슨을 하면서 ‘이대로 졸업 안 하고 계속 함께 하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어요. 아마도 졸업 한 뒤에 정말로 ‘아, 후쨩이 없네’라고 깨닫게 될 것 같지만요/
- 마지막 극장공연이 끝나면 엄청나게 상실감을 느끼게 되실 것 같네요. 졸콘 때는 야구라상과 관계가 깊은 노래들이 많이 나왔었는데요.
야 : 이번 콘서트를 통해 지금까지 제가 걸어 온, NMB48에서의 역사를 되짚어 보며, 저 역시 이렇게 성장 해 왔다는 것을 보여드릴 수 있었으면 했거든요. 세트리스트를 짤 때도 스태프 분들과 함께 고민을 거듭해서 짰습니다. 그 덕분인지 끝난 뒤에 느낀 달성감이 대단했어요. 매니저분은 물론이고, 함께 세트리스트를 고민 해 주신 스태프 분, 그리고 NMB48이라는 그룹에 대한 고마움으로 가슴이 벅찰 정도였습니다.
- 야구라상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공연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럼 시로마상께서는 이 공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시 : 리허설 때 부터 울음이 터졌어요. ‘아이돌의 여명’이 첫 곡인데요, 곡이 시작되자마자 예전에 후쨩인 배턴(지휘봉)을 휘두르는 모습을 겹쳐 보면서 ‘아… 후쨩 정말 반짝반짝 빛 난다. 정말 어른이 되었구나…’라고 생각 하며, 팬 여러분께서 어떤 마음으로 응원을 하시는 지 알 수 있었어요. 제가 팀 M으로 이적해서 함께 했던 곡들… 특히 ‘리셋’ 같은 건 정말 힘들더라고요. 인트로가 나오자마자 ‘아… 리셋 공연때 정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아려 오고, 눈물이 났어요.
- 시로마상과 야구라상 두 분이 함께 미디어에 나오시는 경우가 많았지요. 특히 ‘라시쿠나이’ 때는 더블 센터에 서시기도 했고요. 졸업 콘서트 때 시로마상이 쓴 편지에도 ‘라이벌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뒤 부터,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서로를 의식했었지’라는 부분이 있었습니다만, 역시 주변 분위기가 바뀌면서 서로를 라이벌로 의식하게 되신 건가요?
시 : 그렇…지요. 주변에서 다들 ‘라이벌’이라고 하시니까요. 저희들 끼리는 ‘라이벌 같은 거 아닌데…’라고 말은 했지만 의식은 하고 있었어요.
- 의식이라는 건 ‘좋은 의미’에서 의식했다는 얘긴가요?
시 : 네. 그리고 그렇게 의식 했기에 둘 다 지금까지 노력 해 올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해요.
- 두 분이 상대방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팬 분들께서도 그 말에 집중 하셨던 것 같은데요.
시 : 그랬어요. 저 스스로 말을 꺼내는 건 아무래도 쑥쓰럽기도 해서 지금까지 후쨩에 대해서는 말을 많이 하지 못 했어요. 그렇기에 이번 졸콘때 편지를 읽을 수 있는 기회를 받은 게 정말 다행이에요.
야 : 편지 내용을 들으면서 어린애처럼 울었지만요. (웃음)
미 : 와! 귀여워!! 근데 사실 편지 읽기 전부터 울고 있었잖아. (웃음)
- 여러 부분에서 눈물바다가 된 졸콘이었지요. 보다 보니 멤버분들 탈수로 쓰러지시는 건 아닐까 걱정 될 정도였어요. (웃음)
야 : 이 이상은 눈물이 더 안 나올 것 같아.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울었는데도 더 나오더라고요. 저 자신도 ‘아직도 눈물이 남아 있었어!’라고 놀랄 정도. (웃음)
- 시로마상이 편지를 다 읽으신 뒤, 두 분이 서로 부둥켜 안으신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요.
시 : 마음이 엄청 후련했어요. 말하고 싶었지만 지금껏 하지 못 했던 말들도 다 털어 놓았으니까요. 정말 ‘사랑’을 담아 끌어 안았지요. ‘우리, 정말 최고야!’라는 느낌이라 해야 할까요.
야 : ‘청춘이 담긴 허그’ 였어요.
- 그 순간이야말로 지금까지의 두 분의 역사가 담긴 순간이었다고 봅니다. 그러고 보니 새 싱글 ‘욕망자’에도 두 분의 유닛곡 ‘오해’가 들어 가 있는데요, 이 곡 가사는 정말이지 ‘후우미루의 관계성’을 글로 옮겨 놓은 것 같더라고요. 당사자이신 두 분이 보시기엔 이 점,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야 : 저희들의 얘기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요.
시 : 특히 노래 초반부 가사가 비슷한 것 같아요. ‘나를 싫어 할 거라고, 어째선지 지금껏 오해 해 왔어’라는 부분이라던가.
- 실제로 서로를 그렇게 생각 했던 시기도 있었던 건가요?
시&야 : 네. 있었어요.
시 : 실제로 서로를 의식했었으니까요. 이걸 어떻게 표현 해야 하지…
야 : 멋대로 착각하고 있었어요.
- 두 분이 처음으로 함께 센터에 섰던 ‘라시쿠나이’가 벌써 3년 전 곡인데요,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바뀌었나요?
야 : 당시에는 아직 많이 어렸던 것 같아요. 미숙했으니 분한 일이 있으면 노골적으로 태도에서 읽힐 정도였거든요.
시 : 그랬지.
야 : 지금 그 때 같은 상황에 놓였더라면 아마 저희 둘의 관계성은 지금과는 또 다른 식으로 형성 되었을 것 같아요. 지금이라면 좀 더 서로를 배려 해 줄 수 있었을 거고, 가사에서 나오는 그런 관계성은 아니었겠지요. (웃음)
- 그럼 그렇게 서로를 의식하던 관계성이 변한 건 언제쯤 부터였나요?
시 : 서로 팀이 갈린 뒤 부터였던 것 같아요.
야 : 응. 서로 만나는 것도 선발 일 할 때 정도밖에 안 만나게 된 뒤.
시 : 물론 팀이 나뉜 뒤로도 신경은 쓰였지만, 서로 거리가 생긴 뒤부터 지금까지는 보지 못 했던 후쨩의 좋은 점이 더더욱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 뒤로 점점 더 후쨩이 좋아졌어요.
- 그렇군요. 그럼 시로마상, 야구라상은 어떤 멤버인지 말씀 해 주시겠어요?
시 : 정말 상냥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 할 줄 아는 사람이에요. 발언을 할 때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이고요. 저는 생각 난 것들을 직설적으로 내뱉는 타입이거든요. (웃음) 그렇기에 저랑 정 반대의 성격으로 보일 지 모르지만, 의외로 닮은 부분도 많답니다. 제가 강하게 밀어붙이는 타입이라면 후쨩은 상냥하게 밀어붙이는 타입이랄까요.
- 그럼 야구라상은 NMB라는 그룹에 있어 어떤 존재인가요?
야 : 와 이거 두근거리네요.
시 : 다들 ‘저렇게 되고 싶다’고 동경하는 존재예요. 귀엽고,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재미있기까지 하니까요. 다들 후쨩을 동경한답니다.
야 : 에, 정말? YNN 보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텐데 (웃음)
시 : 그런 부분이 좋은 거야. (웃음)
- 그렇게 망가질 줄 아는 부분도 전부 야구라상의 ‘재미있는 점’이라 할 수 있겠지요.
시 : 후쨩 싫어하는 사람 없어요. 모두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기도 하고.
- 야구라상, 졸콘을 끝내시고 NMB라는 그룹을 조금은 객관적으로 보시게 되셨나요?
야 : 새로운 멤버들이 점점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게 대단하다 생각했고, 아직 기세가 있는 그룹이라 생각하게 되었어요. 팬 여러분께서 악수회에 오셔서 ‘NMB 괜찮을까?’라고 걱정 해 주시곤 하지만, 그렇게 걱정 할 것 까진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룹 전체가 ‘아이돌’ 스러운 면이 강화되고 있고, 그런 한 편 멋있는 곡들도 늘어나고, 그룹이 갖고 있는 재미있는 부분도 강화되고 있기에, 정말로 여러 일면을 갖고 있는 그룹이라 생각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보면 다른 어떤 그룹보다 강점을 갖고 있는 그룹이라 생각해요.
- 그럼 이번 기회에 새롭게 발견 한 것은 있으신가요?
야 : 졸업 발표 이후에야 후배들이 이토록 이글이글 불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졸업 발표 전까지는 저 스스로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데 급급해서 주변을 여유있게 둘러보지 못 했거든요. 하지만 여유를 갖고 주변을 둘러 보니, 선발 멤버가 아닌 아이들도 악수회에서 치고 올라오고 있는데다가, 모두들 각각 투지라고 해야 하나, 그룹에 대한 확고한 마음을 갖고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 그럼 이번에는 시로마상, ‘라시쿠나이’ 때 두 분을 가르켜 ‘차세대’라고 했었는데요, 요즘 그룹 내에서 ‘차세대’멤버들이 차례차례 두각을 나타내고 있잖아요. 그런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시 : 예전에는 사야네 혼자만 강한 상황이었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멤버 각자가 자신만의 무기를 발견하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특유의 무엇인가’를 갖고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요시다 아카리쨩이 유튜브나 패션으로 활로를 연 것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지요. 물론 그 외에도 각자가 활약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외부에서 활약 할 수 있는 멤버 개개인이 모여 그룹을 이루고 있기에, 더욱 더 강한 그룹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 시로마상 역시 AKB48의 선발에 드시게 되면서, 더 많이 외부에 노출되게 되셨고, 그렇게 외부에서 받은 자극을 NMB에 가져 오시는 멤버 중 한 분이라 생각합니다.
시 : 계속 한 그룹에만 있으면 그 안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만 생각하게 되는데요, AKB의 선발에 들어, 같은 세대인 사쿠라쨩, 미온쨩을 보게 되고, 그런 멤버들에게 ‘지기 싫다’는 마음이 들면서 기합이 들어가지요. 그런 마음을 NMB로 갖고 와서 다른 멤버들에게 ‘좀 더 불타올라 보라고!’라며 엉덩이를 토닥여 줄 수 있는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야 : 이렇게 NMB 뿐 아니라 AKB에서도 경쟁 하면서도 약한 소리를 하지 않고 다른 멤버들을 이끌어 주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강하구나… 큰 존재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이런 말 하는 게 이상할 지도 모르지만, 정말 강해졌다고… 좋은 의미로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시 : 에, 거짓말?! (웃음)
- 객관적으로 보자면 시로마상은 AKB의 선발에 들어가신 뒤, 한층 더 강해지셨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도 책임감이 강한 분이셨다 생각하지만, AKB 선발이 되신 뒤에 발언 하나하나에 설득력이 강해지셨고요.
시 :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직 한참 부족해요. 요즘도 매일 혼자 고민하는 걸요…
- 그런 갈등도 겪고 계시는군요. 그럼 최근 싱글인 ‘욕망자’를 통해 NMB의 어떤 일면을 보여 주실 생각이신가요?
야 : 사야카상이 센터인 만큼 댄스에 이목이 모일 거라 생각해요. 오랜만에 멋진 NMB를 보여드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시 : 멋있게, 절도있게 춤을 추는 NMB를 좋아 해 주시는 팬분들이 많으시거든요. ‘카모네긱스’라던가. 그런 점이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렇죠. NMB는 그런 ‘멋있는’ 일면이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여러 모로 폭 넓은 작품들을 선보이는 경우가 많았기에, ‘멋 있는’곡으로 회귀 한 게 솔직히 신선하기도 한데요.
시 : 갭이 크죠. 기본적으로 다들 웃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서 평소에는 시끌벅적하게 떠들곤 하지만, 퍼포먼스가 시작되면 딱딱 맞춘다던가.
- 그렇죠. 특히 큰 회장에서 열리는 라이브 같은 데에서는 그런 부분들이 정말 액센트로서 뇌리에 남지요. 요 전에 있었던 요코아리 공연 때도 NMB만이 보여 줄 수 있는 완급조절이 대단했습니다.
시&야 : 정말요? 기뻐요!
- 라이브를 보며 새삼 깨닫게 된 것인데요, NMB에는 탤런트로서의 능력이 높은 멤버들이 모여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것이 요즘은 극장 뿐 아니라 SNS 등 발언의 장이 확장됨에 따라 활약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 져, 각자의 동기부여로 작용 한 것이 아닐까 하는데요.
시 : 말씀하신대로예요. 좋아하는 것, 혹은 하고 싶은 것들을 발견 해서 스태프분께 상담을 하면 ‘오 좋은 생각이야! 좀 더 적극적으로 SNS등지에서 어필 해 보면 길이 열릴 지도 모르니 열심히 해 봐’라고 말씀 해 주시기도 하고, 여러 모로 협력 해 주시기도 하거든요.
야 : 저 역시 멤버 각각의 파워가 늘었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일거리’로 연결 짓는다는 것은, 솔직히 다인원 그룹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NMB라는 그룹 안에서 선발이 아닌 멤버들도 각자 자신의 일이 주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멤버 각각이 강해졌다는 증거라 생각합니다. 제 남동생은 유튜브 보는 것이 취미인데요, 그런 동생의 말에 따르면 아카링상이 정말 대단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렇게 개인 활동을 통해 그룹의 인지도도 높아 져 가게 되니, 말하자면 윈윈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 개인의 성공을 주변 멤버들과 나눈다는 얘기군요. 어떻게 보자면 강한 팀 워크가 그룹의 무기라고 할 수도 있겠군요.
시 : 네. 기본적으로는 서로 하고 싶은 말은 하는 그룹이기에 그렇게 숨기는 것도 없고요.
야 : 다른 멤버가 사진집이나 포토북을 내면 자기 일 처럼 기뻐하는 그런 관계성이 정말 멋져요.
- 후배들의 활약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시 : 자기들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기에 지금처럼 두각을 나타내는 것일테니까요. 제 일처럼 기뻐요.
- 새로 들어 온 후배들 중에 나이 차이가 있는 멤버들이 있는데요, 후배들을 대하는 방식이 변하거나 했나요?
시 : 저 같은 경우, 예전에 춤을 엄청 못 췄거든요. 그렇기에 저랑 비슷하게 춤으로 고민하는 후배들을 보면 ‘이런 식으로 하면 돼’라고 조언을 해 주곤 해요. 예전에는 후배들이 동기들이랑 있으면 질투하거나 졸졸졸 따라붙거나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요즘은 후배들이 어리광 부리는 걸 받아주곤 해요. (웃음)
- 야구라상이 졸업을 하신 뒤에도 NMB라는 그룹은 계속 될 텐데요, 앞으로 NMB는 어떤 그룹을 목표로 해야 할까요?
시 : 지금은 저희가 가장 빛나는 곳이 ‘라이브’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여러 곳에서 라이브를 하고 싶어요. 저희 라이브에 와 주신다면 저희 노래가, 춤이 얼마나 좋은지, MC가 얼마나 재미있는 지 아시게 되시고, 저희의 팬이 되실 거라 확신하거든요.
- 그렇군요. 요코아리 라이브는 오랜만에 관동권에서 열린 단독 라이브였는데요, 그 것을 보고 저 역시 ‘좀 더 큰 곳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세트리스트나 연출에 대해서 멤버들끼리도 생각하는 부분이 있으실 텐데, 그런 부분이 잘 느껴져서 재미있었습니다.
시 : 그룹의 특징이 엄청 잘 묻어나죠. (웃음)
- 마지막으로 야구라상에게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앞으로는 외부에서 NMB48를 지켜보게 되실 텐데요, 앞으로 NMB가 어떤 그룹으로 성장했으면 하시나요?
야 : 저 뿐 아니라 지금까지 NMB에 재적했던 멤버들에게 ‘저게 뭐야’라는 식으로 실망을 주지 않는 그룹이 되도록 노력 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제 모든 청춘을 바친 곳이기도 하기에, 지금보다 더 커지고 더 강한 그룹이 되었으면 합니다. 좀 더 욕심을 내자면 제가 평범하게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NMB를 접할 수 있을 정도로 활약 해 주었으면 해요.
- 그럼 지금까지 자신이 해 온 것을 계승 해 주었으면 하는 멤버는 누구인가요?
야 : 음… 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기에, 계승을 할 것 까지도 없지만, 5기생 멤버들이 선발에도 치고 올라오고 있기에, 저희 둘이 ‘라시쿠나이’를 계기로 서로 절차탁마 해 왔듯이 서로서로 경쟁 하며 더 큰 존재가 되어 줄 것이라 믿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http://realsound.jp/2018/04/post-18052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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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별 좌담회
이코마쨩의 졸업과 세 사람의 유대감
- 이코마상이 졸업을 발표하셨을 때, SNS에서는 이코마상 외에도 '생생별'이 트렌드에 들은 바 있습니다.
이코마 (이하 '코') : 초기 싱글에서 함께 프론트에 섰었지만, 본격적으로 '유닛'으로서 활동을 한 것은 아니었지요. 저희 셋이 함께 부른 유닛곡은 '여기가 아닌 어딘가'와 '보름달이 사라졌다' 두 곡 뿐임에도 팬 여러분께서는 이토록 애착을 가져 주신다는 게 참 의외였고, 감사한 일이지요.
이쿠타 (이하 '쿠') : 특히 초기부터 저희를 지켜 봐 주신 팬 여러분께서 매우 '아쉽다'고 말씀 해 주시거든요. 아마도 그 당시를 생각 해 주시는 것이겠지요. 20번째 싱글에서도 초심을 잊지 않고 노력 하겠습니다.
호시노 (이하 '호') : 라이브에선 저희 '생생별' 셋이 프론트에 서서 노래를 하는 곡을 하는 경우가 많기에, 역시 이렇게 셋이 나란히 서서 노래를 하면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요.
- 20번째 싱글의 선발 포메이션 발표 때, 역시 '생생별' 세 분이 나란히 서기를 바라는 팬분들도 계셨을텐데요.
코 : 20번째 싱글은 오히려 '앞으로 노기자카라는 그룹이 변해 갈 모습'을 상징하는 선발이라 생각합니다.
-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그런 선발과는 거리가 멀다는 말씀이시군요.
코 : 여러분께서 그렇게 생각 해 주시는 것은 정말로 감사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노기자카46라는 그룹이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졸업 싱글'이라는 말 자체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고 할까요. 마지막으로 센터에 서고, 솔로곡을 받으며 모든 화제를 저 자신이 가져가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기에 그런 얘기가 있었을 때에도 사양했습니다.
- 그랬군요. 이코마상이 멤버들에게 '졸업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셨을 때, 처음으로 반응 하셨던 것이 이쿠타상이라 하시던데요.
쿠 : 이코마쨩의 메시지를 읽고 '졸업을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아 주기를 바라는구나'라고 느꼈어요.
코 : 응. 가볍게 '잘 부탁해' 정도의 느낌으로 보냈으니까요. (웃음)
쿠 : 그래서 저는 바로 '그래, 그럼 즐기자'라고 답변을 보냈지요. 그럼 제 모습을 보고 다른 멤버들도 밝은 분위기에서 받아들여 주지 않을까 했었어요.
호 : 그랬어. 전체적으로 '함께 즐겨보자'는 분위기가 되었지요. 제가 졸업을 할 때에도 너무 분위기가 다운되기 보다는 '힘 내'라며 밝게 보내줬으면 좋겠고, 팬 여러분께도 미소를 보여드리며 졸업하고 싶거든요.
코 : 졸업 라이브 역시 침울한 분위기가 되지 않았으면 해요. 일반적인 '아이돌의 졸업 라이브'랑 저는 안 맞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쿠 : 그렇다면 팬 여러분께도 확실히 그렇다고 말씀 드리는 편이 나을거야.
코 : 그렇네. 무엇보다도 '즐거움'을 중시한 새로운 타입의 졸업 라이브를 만들고자 합니다. 여러분 기대 해 주세요.
- 이전에도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는데요, 노기자카46이 본격적으로 데뷔 하기 전에 AKB48의 리퀘스트아워에 등장하셨잖아요. 그 때 호시노상이 긴장한 이코마상의 허리에 손을 가져다 대고 격려 해 주는 모습이 다큐멘터리 영화 '슬픔을 잊는 법'에 나온 적이 있었지요.
호 : 아… 사실 딱히 뭔가를 생각하고 한 건 아니예요. 그 당시의 일을 떠올려 보면 그저 힘들었다는 기억 뿐인걸요.
코 : 그 당시엔 정말 여러 모로 힘들었어요.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저희가 갑자기 AKB48분들의 스테이지에 올라서 '구루구루 커튼'을 부른다니, 상상만해도 무서운 일이었지요.
- 지금이야 세 분 모두 한결 편해지신 모습인데요, 당시에는 정말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계셔서 힘드셨을 것 같은데요.
호 : 초기에는 저 자신을 엄청 싫어했거든요. '제대로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왜 내가 맨 앞자리지'라고 고민했었어요. 제 성격이 어떤 성격인지도 알려지지 않았고, 애초에 오해 받기 쉬운 성격이기도 했기에 어떻게 해야 좋을 지 몰랐어요. 이래저래 고민 한 결과, '아무 말도 하지 않는것이 가장 좋을 지 몰라'라고 생각하기도 했지요.
코 : 데뷔 당시에는 정말 여유가 하나도 없고 그냥 주어진 것들을 하는 것 만으로도 벅찼어요. 그건 비단 센터라서, 프론트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멤버들이 그런 상황이었던 것이지요. 때때로 당시 제 상황을 드라마식으로 다루어 주시는 경우가 있는데요, 솔직히 그런 것을 보면 굉장히 안타까워요. 저 뿐만이 아니라 모든 멤버들이 힘들고 괴로운 시기를 겪으며 아이돌 활동을 해 왔고, 하고 있는걸요. 다른 멤버들 모두가 묵묵히 당연한 듯 하는 일이기에, 딱히 '미담'이 되는 것은 싫어요.
- 이쿠타상도 힘드셨겠네요.
쿠 : 활동을 하면 할수록 저 자신이 아이돌이랑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는데, 그런 마음과 갈등하며 활동 하는 게 힘들었어요. 그런 면에서 바로 곁에서 최선을 다해 부딪히는 이코마쨩의 모습이 정말 눈부셨어요.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힘이 되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사실 당시 제게는 이코마쨩의 힘이 되어 줄 방법이 없었기에 결국 아무 것도 해 주지 못 했지요. 모든 멤버들이 서로의 '힘이 되어 주'고, 서로를 '인정' 한 것은 솔직히 의외로 최근의 일이에요. 이제 와선 그게 지나쳐서 오랜 기간 함께 해 온 중년 부부 같은 관계가 되어버렸지만.
코 : 그러고 보니 정말 '중년 부부'같네. (웃음) 10대 여자아이들을 한 데 몰아놓고 '그럼 알아서 절차탁마하며 노력 하렴'이라 해 봤자 솔직히 그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물론 다들 사이는 좋았지만, 다른 멤버들을 마치 자기 자신처럼 생각 할 수 있게 된 것은 최근 1, 2 사이의 일이예요.
- 6번째 싱글 이후로는 세 분이 각자 다른 방향성을 확립하셨다고 봐야 할 것 같은데요.
쿠 : 저 같은 경우에는 그 때쯤부터 조금은 더 자유로워 졌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 5번째 싱글 까지는 딱히 의식하지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나는 이렇게 행동해야만 해'라는 식으로 스스로를 얽맨 부분이 있었어요. 말 하자면 진중한 우등생 이미지가 강했다고 해야 할까요. 하지만 6번째 싱글 이후로는 어느 정도 어깨의 힘이 빠져서 저 자신도 몰랐던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알게 되기도 했지요.
코 : 6번째 싱글에서 마이얀이 센터에 선 뒤, 엄청 해방감을 느꼈어요. (웃음) 5번째 싱글까지는 저 자신을 생각 할 여유가 없었거든요. 지금 생각 해 보면 거의 자기암시를 걸고 마이너스적인 방향으로 치달렸던 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인걸요. 그 때만 해도 어렸기에 저 자신이 얼마나 스스로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는 지도 몰랐던 것 같고요. 어른이 된 지금이야 '그 때 그렇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됐을텐데'라고 생각 할 수 있게 되었지만, 16, 17살 때만 해도 어리고, 생각하는 게 물렀어요. 물론 아이돌의 매력 중 하나가 그런 '무르'고 서투른 부분이라고도 생각합니다만… 아이돌이라는 직업이 얼마나 심오한 지 알게 된 것도 18살이 되어서였어요.
- 호시노상은 한 때 언더에 몸을 담기도 하셨는데요, 그 때가 마침 언더 라이브가 시동을 걸 때 쯤이었지요. 언더 역시 노기자카라는 그룹 전체를 활성화 시키는 촉매제가 되었는데요.
호 : 언더에 있었던 경험이 제게 있어 플러스가 되었어요. 기분면에서도 한 차례 리셋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제게 있어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해요.
- 2015년 NHK 홍백가합전 출장 때, 당시 최신곡이 아닌 '너의 이름은 희망'을 부르셨는데요, 세 분께는 감회가 새로우셨을텐데요.
코 : 처음으로 홍백가합전에 나가, '노기자카46는 이런 그룹입니다'라고 보여드리는 곡이 '너의 이름은 희망'이었다는 게 정말 기뻤어요.
호 : 홍백에 나가더라도 딱히 앞줄은 아닐 테니 그렇게까지 긴장 할 일은 없겠거니…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정작 뚜껑을 열어 보니 제가 프론트에 서는 '너의 이름은 희망'이어서… 그것도 초기만 해도 노기자카가 음악 방송에 나가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 사실 5번째 싱글까지는 TV에서 부른 적이거의 없었거든요. 그랬던 게 갑자기 홍백에서 부른다니… 정말 엄청 긴장했어요.
- 이코마상, 호시노상의 사진집 보셨나요?
코 : 아직 못 봤어요. 미나미쨩의 섹시 사진은 솔직히 보고싶지 않은 마음도 있는걸요. (웃음)
호 : 촬영 중에는 딱히 부끄럽지 않았는데요, 정작 멤버들이 본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부끄러워 지더라고요. (웃음)
코 : 미나미가 벌써 20살이라니…
호 : 자기소개를 할 때 '20살 호시노 미나미입니다'라고 말 하는 데 저 스스로도 위화감이 있어요. 결성 당시에 20살이었던 멤버가 누군 지 생각 해 보면 그룹 최연장자였던 유미네잖아요. 당시를 떠올려 보면 저 스스로도 굉장히 신기해요.
- 무대에서 활약하고 계시는 이쿠타상을 존경한다고 하시기도 했지요.
코 : 무대에 서서 연기를 하는 이쿠쨩을 보면 정말 '배우'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만만치 않은 세계라고 생각하는데다가, 쉽사리 묻혀버리기 쉬운 세계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세계에서 자기 자신을 더 높은 경지로 성장시키고, 노기자카라는 그룹의 이미지 역시 이끌어 올려 준 것이 이쿠쨩이니까요. 앞으로도 계속 무대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 주었으면 해요.
쿠 : 응. 열심히 할게.
- 이쿠타상과 호시노상, 이코마상에게 이후 기대하고 계시는 것이 있으신가요?
쿠 : 노기자카에서는 아무래도 혼자서 짊어지는 것들이 많았으니까, 졸업 후에는 그런 부담에서 해방되어 조금은 자유로워 졌으면 하고, 자유로워진 이코마쨩이 어떤 표정을 보여 줄 지가 기대됩니다.
호 : 집에 돌아 와, TV를 켰을 때 이코마쨩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 지금도 매일같이 만나는 것만 같아요. 앞으로 졸업 한 뒤로도 TV를 통해 이코마쨩을 만나게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어요.
코 : 저 자신도 지금 그다지 외롭거나 하지 않아요. 말하자면 새 학기가 되어서 반이 바뀐 정도의 느낌이랄까요.
- 졸업을 하면 그런 마음도 바뀌실 수 있을 것 같으네요
코 : 그럴까요? 만약 졸업 라이브에서 눈물을 흘린다면 자신에게 화가 날 것 같은데요. (웃음)
쿠 : 나나밍도 졸업 직전까지 '그룹에 대해 여한이 없다'고 이야기 했지만, 졸업 라이브가 끝난 뒤에 '내가 노기자카라는 그룹에 이토록 깊이 마음을 주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고 깨달았다고 하지요. 이코마쨩의 마음 역시 바뀔 지 모르겠네요. 인간이란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소중했는 지 알게 된다고 하니까요.
코 : 우와 의미심장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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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이쿠쨩의 과거'
유소년기
독일에서 다녔던 유치원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는 건 이상한 것들 뿐이에요. 낮잠 시간 때 선생님들이 아이들이 잠을 자나 안 자나 보고 다니셨는데, 그 선생님이 무서워서 잠도 안 오는데 자는 척 했던 거나 그 선생님이 간식을 주셨는데, 제가 좋아하는 사과인 줄 알고 깨물었더니 파프리카였던 것이다. 솔직히 엄청 맛 없었는데 그렇다고 무서운 선생님께 돌려 드리는 것도 무서워서 집에 갈 때 까지 깨작깨작 먹었던 기억이 있네요.
그리고 팔에 상처가 날 정도로 제 팔을 깨문 아이가 있었어요. 당시에는 '아 물렸네… 짜증나'라는 정도로만 생각 하고 크게 반응하지 않을 정도로 얌전한 아이였지요.
지역 이벤트 중에 '라테르네'라는 게 있었는데 풍선 안에 라이트를 넣고 그 풍선을 들고 행진을 하는 행사였어요. 그런데 한 번은 그 풍선에 그리는 그림 디자인을 제가 했었답니다. 디자인이 호평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때부터 그림 그리는 재능이 있었던 것 같네요.
초등학생시기
달리기가 엄청 느렸기에 운동회 때 달리기를 하면 항상 5명 중 5등이었어요. 하지만 그림은 여전히 잘 그렸습니다. 그림으로 상을 받은 적도 있을 정도니까요. 아니, 초등학생 레벨의 '잘 그린다'와 어른들의 '잘 그린다'는 다르잖아요. 정말로 초등학교 때는 완벽했다니까요.
하지만 수업중에는 손도 들지 않을 정도로 소극적이었어요. 2학년 때 뮤지컬 '애니'를 보고 뮤지컬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지요. 물론 당시에는 '꿈'이라 할 정도는 아니었고, 가볍게 '한 번쯤 저 무대에 서 보고 싶다'는 정도였지요.
중학생시기
중학생 때는 엄청 진지하고 성실한, 선생님들이 좋아하시는 타입의 학생이었어요. 중 2때 학급위원이 된 뒤로 '똑바르게 행동해야 해'라는 부담감을 느꼈어요. 그리고 그 뒤로는 어딘지 얽매인 느낌이었지요.
그렇게 보내 온 제게 있어 중학교 3년 중 유일한 '청춘'은 중 3때 갔던 수학여행이었지요. 원래 일정은 여러 절들을 돌아다니며 견학하는 것이었지만, 같은 조에 있던 리더격 아이가 선도해서 다들 중간에 빠져나가 카모가와에 가서 물장난을 하고 놀았지요. 인생 첫 '반항'이었지요. (웃음)
노기자카에 들어 온 것은 중 3때의 일인데요, 솔직히 '아이돌이 되고 싶다'는 이유 보다는 '소니'라는 대기업이 기획한다는 것이 응모 한 큰 이유였어요. 합격 한 뒤 같은 반 아이들이 '이쿠타상이 왜?'라고 반응했었어요.
고등학생시기
고등학교 3년단은 정말 힘들었어요. 그룹이 시작 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이었기에 학업에 전념 할 수가 없었거든요. 친한 친구가 둘 있었는데요, 요즘은 만나면 '밝아졌다'고 놀라곤 해요. 저 스스로는 기억이 없는데, '에리카쨩,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적이 있다'고 할 정도였지요. 친구들 역시 '피곤할 테니 말 걸면 안 되겠지'라고 생각했다고 하더라고요. 학부모 면담때 선생님께서도 '이쿠타상은 '말 걸지 마 아우라'를 내뿜었어요'라고 하셨던 것을 생각 해 보면 뭔가 내뿜긴 했나 보네요. (웃음)
Part 5
'가족들의 이야기'
어머니가 딸에게
어릴 때부터 '한가한데 뭐 할까?'라는 고민을 한 적이 없는 아이였어요.
항상 뭔가를 묵묵히 노력하고, 그런 노력을 힘들어 하지 않는 타입이거든요.
순수하게 다른 이들의 조언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가치관과 조화롭게 재구성하려 노력 하는 아이이긴 합니다만, 애초에 완고한 성격인지라 조언을 전부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거든요. 아마 자연히 취사선택 하고 있을 겁니다.
최근 들어서는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분들과 접하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늘어, 자극을 받아 시야가 넓어 진 것 같습니다. 축복받은 환경에 감사 할 따름이지요.
때로는 자기 능력 이상으로 일이 많아 고생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일 자체는 재미있고 보람이 있는 것 같아 다행이네요.
Part 6
'노기자카46'
- '무지개색 프렐류드' 이후로 그룹 외 연극 일이 많이 늘어 났는데요, 심정적으로 변화는 있었나요?
이 : 노기자카에 들어 온 뒤엔 사실 그렇게 고민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어요. 바쁘기도 했기에 '멈춰서서 고민할 바에는 일단 전진하자'고 생각했거든요. 어떻게 보자면 '기계적'이었다고 할 수 도 있을 거고, '깊이'가 없는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아이돌과는 달리 무대는 긴 시간을 들여 완성시켜 나가는 것이기에 자신의 능력을 뼈저릭 느낄 수 있거든요. 주변에 있는 분들이 워낙 쟁쟁한 분들 뿐이시다 보니 더더욱 저 스스로의 약함을 알고, 스스로를 마주봐야만 하는 것이지요. 그런 갈등을 겪으며 조금은 인간적이 된 것 같아요.
- 그러다 보면 갑자기 고민들이 몰아닥쳐서 당황하게 될 것 같은데요.
이 : 네. 엄청 패닉이었어요. 그럴 땐 혼자 고민 해 봤자 해결 될 게 없으니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요. 선배님들께 조언을 듣는 것도 중요하고, 때로는 그저 대화를 나누는 것 만으로도 도움이 되지요. 기본적으로 고민을 해결 하는 방법은 노력을 통해 제 능력을 키워 극복하는 것 밖에 없으니까요. 해 낼 수 밖에요.
- 이쿠타상은 스스로가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 전혀 없다고 생각해요.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못 하는 인간이기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부러워요. 뮤지컬을 하다보면 사전에 발성을 하지 않고도 갑자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요, 저는 노래를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는데다가, 목소리를 내는 것도 여러 모로 생각을 해서 내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감성만으로 해 낼 수 있는 타입이 아니다 보니…
- 많은 사람들이 이쿠타상을 보고 '천재형'이라 평가하는데요, 그런 타인들의 인식과 스스로의 의식 사이에 차이를 느끼거나 하신 적은 없나요?
이 : 피아노 교실을 다닐 때만해도 저보다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은 수두룩했던 데다가, 뮤지컬이나 드라마 오디션에도 수 없이 떨어졌는걸요. 애초에 저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그렇기에 지금처럼 일이 끊기지 않고 들어 오는 환경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 지는 잘 알고 있는데다, 항상 과거를 생각하며 초심을 잃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어요. 노기자카를 졸업 한다면 지금처럼 활동 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현실이 아니잖아요.
- 다른 사람을 질투하거나 한 적은 없나요?
이 : 질투라 해야 하나요. 저도 인간이다 보니 다른 이와 자신을 비교하게 되는 경우는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이니까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무엇을 하건 찬반이 나뉘는 것은 당연하니, 무엇을 하건 받아들여 주지 않는 사람은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고요. 하지만 응원 해 주시는 팬 분들께서 항상 '그렇게까지 날 생각 해 주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를 생각 해 주시기에 '이 분들을 항상 소중히 여겨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지요. 그런 분들을 위해서 노력 해 나가는 과정에서, 새롭게 저를 '괜찮다'고 생각 해 주시는 분들이 늘어나신다면 그 분들 역시 소중하게 여겨 나가는 것이지요. 아무래도 사람들이란 마이너스적인 것들에 주목하기 쉬운데요, 그런 상황에서도 잘 찾아보면 플러스적인 것들은 반드시 있으니까, 그런 플러스적인 것들을 발견 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 아까전에 '대화를 하는 것 만으로도 도움이 된다'고 하셨는데요, 노기자카 멤버들과 이야기를 하며 도움을 받거나 하시나요?
이 : 당연하죠. 예전에는 좀 냉정한 부분이 있어서 '숙제 해야하는데 왜 다들 떠드는거야'라며 '내 세계를 방해하지 말아 줘'라는 아우리를 뿜었었는데요, 요즘은 다른 멤버들이랑 대화를 나노는 게 즐거워요. 아, 물론 다들 해야 할 때는 하는 아이들이기도 하고요.
- 그러고 보면 '튤립'의 일원이시기도 하지요.
이 : 네. (웃음) 아마 예전 같았으면 들어가지 않았을 거예요. 지금은 완전히 물들어 버렸지만 (웃음)
- 작년 말에는 MTV 언플러그드에 출연하시기도 했지요. 세트리스트는 스스로 정하셨나요?
이 : 노기자카 곡들 중에는 좋은 곡들이 많은데요, 리듬감이 중요한 곡들이 많은 편이잖아요. 그런 리듬감이 있는 곡들을 천천히 곱씹으며 불러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선보일기회가 많지 않은 유닛곡, '나, 일어나'를 오프닝 액트로 해 보거나, 단순한 노래방 분위기가 되는 것도 곤란하니 블록을 나누어 본다던지.
- 하시모토상의 솔로곡 '나이모노네다리'나 나카모토상이 센터에 서신 곡 '너는 나와 만나지 않는 편이 좋았으려나'도 부르셨는데요. 아이돌 활동에 '졸업'은 떼어 놓을 수 없는 일입니다만, 멤버들이 좋업을 할 때마다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있으신가요?
이 : 6년 이상이나 함께 해 온 멤버들이니까요. 아무래도 쓸쓸해지죠.
- 도쿄 돔에서 있었던 더블 앙코르 때 나카모토상과 함께 걸으며 눈물을 흘리시는 이쿠타상의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어요.
이 : 기본적으로는 멤버들이 졸업 할 때엔 웃으며 응원을 담아, 밝게 보내주려는 편이거든요. 하지만 역시 히메탄 같은 경우, 졸업을 발표 한 뒤 함께 일을 할 기회가 없었고, 돔 공연때도 함께 부르는 곡이 없었기에 정말로 그 더블 앙코르곡이 '겨우 함께 설 수 있는' 스테이지 였기에 엄청나게 감정이 복받쳐 올랐어요. 제게 있어 히메탄의 졸업과 함께 노기자카라는 그룹의 제 1장이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존재였습니다. 히메탄은.
- 이쿠타상을 돌봐 줄 멤버가 졸업한 것이기도 하지요.
이 : 그렇지요~ 다른 멤버들은 저를 못 본 척 하는 방법을 알아 버렸기에 요즘은 주로 3기생들에게 접근하곤 해요. (웃음) 아직은 어울려 주거든요. 특히 하즈키쨩이나 미즈키쨩이.
- 이쿠타상, 지금처럼 끊임 없이 일이 들어 온다면 졸업 하실 필요는 없지 않나요?
이 : 팬 여러분께서 '졸업 하지 마'라고
말씀 해 주십니다만, 현재로선 졸업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제가
이렇게 제 꿈을 좇아 갈 수 있는것도 전부 제가 노기자카라는 그룹에 있는 덕분이라 생각하거든요. 노기자카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연예계라는 꿈 자체를 포기 했을 지도 모르지요. 그런 식으로 그룹에 신세를 진 만큼, 그룹에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마음, 이 그룹에서 새로운 발견을 하고싶다는
마음이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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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IUS
이쿠타 에리카
Part 1
'이쿠쨩도 할 수 있는 헤어메이크를 고찰 해 보다'
패션면에서는 센스가 없어요. 그저 '맨날 똑 같은 옷만 입네'라는 말은 안 듣도록 신경쓰는 것이랑, 무늬가 들어 간 옷 보다는 심플한 옷을 입는 것 정도는 신경 쓰네요. (웃음) 전체적으로 레이스가 들어 간 옷이 많은 편인 듯 싶기는 하네요. 최근 들어서는 캐주얼계 의상에도 도전 해 보려 하고 있습니다.
옷의 형태는 상당히 중요하다 생각해요. 펑퍼짐한 옷이 영 안 어울리기에 볼륨감이 있는 옷을 입는 편이 좋거든요. 기본적으로 어떤 옷이 어울리는 지는 알고 있기에 딱히 모험은 안 하네요. 언젠가는 저도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는데, 지금은 패션보다는 제게 어울리는 화장법이나 헤어 어레인지에 도전 해 보고 싶어요.
전에 해외에 라이브를 하러 가서 자유 시간에 멤버들과 거리를 걷다가 문득 '그 머리모양은 어떻게 하는거야?'라고 물었거든요. 그랬더니 '이건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된다'고 하는 것을 보고 '와, 완전 멋진 여자다!'라고 생각했어요. 특히 미사나 레이카 같은 경우, 머리모양을 자유자재로 연출할 줄 알기에 부러워요.
저 같은 경우에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머리 길이가 크게 변함이 없기 때문에 분위기만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멋쟁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번 취재에서 이렇게 헤어 어레인지를 배워 보고 싶다고 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사진을 찍을 땐, 머리에 볼륨감을 주기 위하여 뒷머리를 핀으로 고정시켰어요. 여성스러운 머리모양이 아닐까 합니다.
두 번째 사진은 머리 땋는 법을 배워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저 머리 모양을 고른 거예요. 보브 머리는 아무래도 쉽사리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어버리곤 하기 때문에, 얼굴 앞쪽이 답답 해 보일 때가 있거든요. 그렇다고 머리를 귀쪽으로 넘겨버리면 너무 딱딱해 보이고요. 하지만 이렇게 땋아서 넘기면 답답해 보이지도 않고, 센스도 있어 보이지요.
최근에는 고데기를 거의 안 써서 이번 취재를 통해 고데기 사용 방법부터 새로 배웠어요. 제가 멋대로 하다 보면 고데기로 머리를 어떻게 말아야 하는 지 헛갈리게 되곤 하거든요.
화장 같은 경우, 평소에는 그냥 손 놓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노기자카에 들어 오기 전에는 화장 자체를 아예 안 했었기에 그 때와 비교 해 보면 지금이 그나마 낫긴 하지만, 모험을 하지 않는 안정 지향이기에 결국 언제나 하고 있는 화장을 하게 되거든요. 멤버들은 유행을 따라 화장법을 바꾼다던가 하기에, 저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어요. 특히 맛층 같은 경우에는 화장 방식을 여러 모로 바꾸는 인상이 있네요.
첫 번째 사진을 찍을 땐 핑크색을 위주로 한 화장이었어요. 멤버들 사이에선 핑크 메이크를 하는 아이들이 많거든요. 그리고 두 번째 사진을 찍을 땐 빨간 립스틱을 포인트로 삼았지요. 평소에는 '립스틱 발라봤자 어차피 밥 먹다 보면 지워질텐데'라고 생각하는 편인지라 화장을 할 땐 잘 안 지워지는 립스틱을 바르거나, 아예 안 바르는 경우가 많아요. 아무래도 화장보다 먹을 게 중요하니까요. (웃음)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립스틱이 한 종류밖에 없는데, 언젠가는 입은 옷 스타일에 따라 입술 색을 바꾸거나 하는 여성이 되고 싶어요.
팬 여러분께선 '어차피 이쿠타가 메이크업을 잘 하게 될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계실 지도 모르지만, 오늘 촬영 때 코디네이터 분께 화장 하는 법을 배우면서 '이건 어떻게 하면 되나요?'라는 식으로 엄청 집요하게 물어 보았기에, 앞으로는 혼자서도 헤어 어레인지를 할 수 있을 거예요!!
Part 2
'이쿠쨩도 간단히 쓸 수 있는 요리용품을 고찰 해 보다'
1. 감자를 슬라이스해서 전자레인지에 넣는 것 만으로 기름 없이도 간단히 포테이토칩을 만들 수 있는 '친시테칩스'
이쿠타 (이하 '이') : 음… 포테토칩 자체에 그닥 흥미가 없어서요. 친구가 집에 놀러 왔을 때, 간식으로 내기에 좋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개인적으로는 간식으로 내 간다면 초콜렛이 더 낫지 않나 싶어서요. 아, 감자를 쓴다면 그냥 단순히 삶아서 버터랑 함께 먹는 게 좋겠어요!
2. 날계란을 넣고 돌리는 것 만으로 푸딩이 되는 '마루고토푸링'
이 : 오호라!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푸딩을 만들기보다는 그냥 삶아서 소금 찍어 먹는 게 더 좋아요. 최근 들어 재료의 맛과 질을 중시하고 있거든요. 죄송합니다!
3. 식칼이나 필러(감자칼) 없이도 채소 껍질을 깨끗하게 벗길 수 있는 '뭇키'
이 : 올 해 1월에 처음 감자칼로 감자 껍질을 깎아 봤거든요. 그게 엄청 재미있어서 정신없이 벗겨대다 보니 왼손 새끼손가락까지 함께 벗겨 버린 적이 있어요. 정말이지 밤새도록 피가 멎질 않아서 액체 반창고를 발라 봐도 쓰라리기만하고 효과가 없었지요. 이 장갑만 있다면 그런 부상 걱정이 없겠네요! 이거, 써 볼 게요!!
4. 생선 뿐 아니라 스테이크, 빠에야(스페인요리)까지 만들 수 있는 '그릴팬'
이 : 이거 최곤데요! 평소에 아침부터 스테이크를 먹곤 하는데요, 일반적인 프라이팬으로 구우면 고기 속까지 열이 전달이 안 되어서 중간중간 잘라 줘야 하잖아요. 하지만 이 그릴팬만 있으면 원적외선을 이용해서 전체적으로 바삭하게 구울 수 있겠네요. 이것도 채용!
5. 쌀을 넣고 전자레인지에 15분 가열하는 것 만으로 가마솥밥맛이 나는 '가마도밥솥'
이 : 이 가마솥, 전자레인지 뿐 아니라 가스레인지로도 요리가 가능하네요? 크기도 작아서 밥이 남으면 솥째로 냉장고에 넣을 수도 있고. 이 솥으로 밥을 지으면 맛있는 누룽지도 생길 것 같고요. 평소 전가족이 먹을 양을 만들 땐 보통 밥솥에 2홉 반(1홉 = 1공기~2공기 분량) 정도 넣고 밥을 만드는데요, 저 혼자 밥을 먹을 땐 그냥 전자레인지용 레토르트밥을 전자레인지에 덥혀 먹곤 해요. 하지만 아무래도 레토르트밥은 맛도 그렇고 영양면에서도 좀… 그런 의미에서 이 솥이 있다면 적은 양의 밥도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겠네요! 집에서도 써 보겠습니다!
6. 시판 잉글리시 머핀과 소시지, 계란을 넣고 세팅하는 것 만으로 맛있는 에그머핀을 만들 수 있는 '샌드위치 메이커'
이 : 우와 이거 대단한데요! (박수) 아빠가 빵을 좋아하시니까 이거 보시면 기뻐하실 것 같아요. 에그머핀 말고도 이래저래 만들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은데요. 소시지 대신 햄버그를 넣고, 빵 대신 밥을 넣으면 라이스버거도 만들 수 있을 것 같고요! 이것도 채용!
번외편. 이쿠쨩, 초콜릿에 대한 편애에 대하여
이 : 가장 좋아하는 것은 기본적인 초콜릿인데요, 크런치계열이나 베리계열은 예외예요. 좋아하는 초콜릿 브랜드는 장 폴 에반입니다! 아, 물론 고급품이 아니라도 상관 없어요. 촬영 도중에 쉬는 시간이면 매니저분들에게 '초콜릿 없어요?'라고 묻고 다니곤 합니다. 하지만 이건 저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서 하는 행동인데요, 이렇게 물어 봤는데 아무도 안 갖고 계시다면 깔끔하게 포기가 되거든요. 아, 물론 갖고 계신 분이 있다면 얻어 먹고요. 매니저 분께서 '저 녀석 귀찮게 구네'라는 소리를 들을 지도 모르는 리스크가 있는 일이기에, 있다고 하시면 묻기만 하는 게 아니라 확실히 얻어 먹지요.
Part 3
'이쿠쨩이 편히 잠 들 수 있는 베게에 대하여 고찰 해 보다'
예전부터 잠을 그리 잘 자는 편은 아니었어요. 잠을 잘못 자서 목이 결리거나 하는 경우도 많았고, 쾌적하게 잠을 자질 못 해요. 하지만 아무래도 무대에 오르다 보면 '역시 잘 자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뮤지컬 첫 공연 전날에도 겨우 두 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 했거든요. 기껏 자리에 누워서도 생각이 많았어요. '내일을 대비해서 일찍 자야지'라고 생각하면 할수록 잠이 오질 않더라고요. 수면시간이 적어지면 목 상태도 안 좋아지고, 피로도 풀리지 않기에 이 문제는 정말 어떻게든 꼭 해결 하고 싶어요.
'해결 방법이 없을까'라고 생각하고 또 생각 한 결과, 역시 베게를 바꿔보자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다지 베게를 신경 써 본 적이 없거든요. '저반발 소재가 좋다지?' 라는 생각으로 베게를 고른 정도였기에, 저에게 잘 맞는 베게를 새롭게 맞추고 싶어요.
이번에 이렇게 베게 피팅을 해 보고 배운 게 있는데요, 지금까지는 천정을 바라보고 꼿꼿하게 누워 자는 게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사실 여러 번 자세를 바꿔가며 자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자면서 20~30번 정도 뒤척이면 체액 순환에도 좋고, 체온 조절에도 좋다는 것을 배웠어요. 그렇기에 더더욱 베게를 고를 땐 똑바로 누웠을 때 뿐만 아니라 옆으로 누웠을 때에도 딱 맞는 높이의 베게를 골라야 한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을 땐 마음 속으로 '그렇구나!'라는 감탄 버튼을 수 없이 연타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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